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YES24 카테고리 리스트

YES24 유틸메뉴

Global YES24안내보기

Global YES24는?

K-POP/K-Drama 관련상품(음반,도서,DVD)을
영문/중문 으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Korean wave shopping mall, sell the
K-POP/K-Drama (CD,DVD,Blu-ray,Book) We aceept PayPal/UnionPay/Alipay
and support English/Chinese Language service

English

作为出售正规 K-POP/K-Drama 相关(CD,图书,DVD) 韩流商品的网站, 支持 中文/英文 等海外结账方式

中文

검색


어깨배너

10월 전사이벤트
10월 혜택 모음
네네
싱가포르
킷캣
모바일 리뉴얼
1/6

빠른분야찾기


윙배너

마우스를 올려주세요.

마케팅 텍스트 배너

웹진채널예스


공유하기 예스24 음반 판매 수량은
차트와 차트 집계에 반영됩니다. 한터차트/가온차트 집계 반영 안내
수입
LP

'멍하고 혼돈스러운 ' 영화음악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Dazed and Confused OST vol.2 - Even More Dazed and Confused) [퍼플 & 핑크 스플래터 컬러 LP]

[ 1300개 넘버링 한정반 ]
Alice Cooper, War, Dr. John, Peter Frampton, Seals and Crofts 노래 외 6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Real Gone Music (USA) | 2018년 10월 05일 | 원제 : They found your stash... again!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상품 가격정보
판매가 52,900원
할인가 42,900 (19% 할인)
YES포인트
추가혜택쿠폰 및 사은품(1종)
추가혜택쿠폰 쿠폰받기
  • 주문금액대별 할인쿠폰
카드혜택
결제혜택
카드할인 정보
카카오페이 카카오페이 3천원 즉시할인 (5만원 이상 결제시, 1회) 자세히 보기
 모바일팝 모바일 4% 즉시할인 (모바일 결제시) 자세히 보기
네이버페이 네이버페이 1% 적립 (전체결제) 자세히 보기
페이코 페이코 포인트결제 2% 적립 (신규고객 4,500원 할인) 자세히 보기
할인/적립 카드 더보기
구매 시 참고사항
구매 시 참고사항
  • 명확한 재생 불량 사유가 확인된 경우에만 반품이나 교환이 가능함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판매중| 한정판매

수량
배송비 : 무료 배송비 안내
  • 국내배송만 가능
1/4
광고 AD

'멍하고 혼돈스러운 ' 영화음악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Dazed and Confused OST vol.2 - Even More Dazed and Confused) [퍼플 & 핑크 스플래터 컬러 LP]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8년 10월 05일
제조국 미국

관련분류

음반소개

<컬러 디스크 LP를 구매하실 때 아래 사항을 참고해 주세요>

디스크

Disc1
  • A1 The Edgar Winter Group: Free Ride
  • A2 Alice Cooper: No More Mr. Nice Guy
  • A3 The Steve Miller Band: Living in the USA
  • A4 Head East: Never Been Any Reason
  • A5 War: Why Can’t We Be Friends
  • A6 Seals and Crofts: Summer Breeze
  • A7 Dr. John: Right Place Wrong Time
  • B1 ZZ Top: Balinese
  • B2 Black Oak Arkansas: Lord Have Mercy on My Soul
  • B3 Foghat: I Just Want to Make Love to You
  • B4 Peter Frampton: Show Me the Way
  • B5 Peter Frampton: Do You Feel Like We Do

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1

아티스트 소개 (11명)

앨리스 쿠퍼는 현재 대부분의 헤비메탈, 익스트림 록 밴드들이 공통적으로 취하고 있는 이미지, 즉 기괴한 의상, 현란한 분장, 충격적인 무대 매너 등을 가장 먼저 시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록의 산증인’으로 평가 받고 있는 거물이다. 음악 팬들은 30년 넘게 행해진 그의 엽기 반란의 음악과 무대를 ’쇼크 록’으로 명명하고 그를 대부로 임명했다. 1980년대 전성기를 누린 헤비메탈을 시작으로, 1990년대... 앨리스 쿠퍼는 현재 대부분의 헤비메탈, 익스트림 록 밴드들이 공통적으로 취하고 있는 이미지, 즉 기괴한 의상, 현란한 분장, 충격적인 무대 매너 등을 가장 먼저 시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록의 산증인’으로 평가 받고 있는 거물이다. 음악 팬들은 30년 넘게 행해진 그의 엽기 반란의 음악과 무대를 ’쇼크 록’으로 명명하고 그를 대부로 임명했다. 1980년대 전성기를 누린 헤비메탈을 시작으로, 1990년대 데스, 고딕, 블랙, 둠 등으로 가지 치기를 한 익스트림 메탈에 이르기까지 앨리스 쿠퍼가 심어놓은 이미지 장치들은 헤비메탈의 올 라운드를 아우르고 있다. 또한 마릴린 맨슨으로 대표되는 인더스트리얼도 엘리스 쿠퍼의 편린들이다. 1948년 2월 4일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앨리스 쿠퍼(본명: Vincent Furnier)는 고교시절 친구들과 함께 나즈(Nazz)라는 스쿨밴드를 결성하며 거친 록의 세계에 문을 두드렸다. 1968년 앨리스 쿠퍼로 개명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밴드명으로 내걸고 쇼크 록의 오프닝을 알렸다. 음악 자체가 파격적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이미지와 행동거지는 파격을 넘어서 충격적이었다. 까마귀를 연상시키는 검은 분장을 눈자위 가득 칠하고 영적인 듯한 행동을 일삼았다. 이는 일부 대중에게 역겨움을 이끌어 내었지만 동시에 수 많은 추종자들을 만들어내며 엽기와 극단이 록의 중추적인 흐름으로 이끌어가는데 큰 역할을 했다. 엘리스 쿠퍼는 1969년 레이블을 통해 발표한 데뷔작 부터 1973년 7집 에 이르는 기간동안 쇼크 록의 제왕으로서 그 본분을 충실히 했다. ’I’m eighteen’, ’Under my wheels’, ’Elected’, ’No more mr. nice guy’, ’Teenage lament ’74’ 등 많은 하드 록 히트곡들을 쏘아올렸고, 1971년 투어로 대표되는 극단적인 공연 모습을 통해 전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마녀가 자신의 뒤를 이으라고 하는 요상한 꿈을 꾼 것으로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만큼 그의 행동은 주술성이 강한 것이었다. 샤머니스트, 또는 ’악령의 전도사’와 같은 단어가 매우 잘 어울렸다. 공연에서는 누런 얼룩 구렁이와 입을 맞추고, 목을 매는 등 갖은 엽기 행각은 절정에 달했다. 1975년 부터 솔로 뮤지션으로 전향한 그는 강렬한 록 밴드의 프런트맨에서 인간미를 겸비한 싱어 송 라이터로 파격 변신을 했다. 당시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고 있기도 했던 그는 전성기 시절에 비해 음악적으로 평가절하 되었지만 1970년대 중반부터 선보이기 시작한 ’You & me’, ’I never cry’, ’How you gonna see me now’ 등 팝에 가까운 발라드 곡들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확보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잠시동안의 휴지기 이후 앨리스 쿠퍼는 이전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다시금 본령을 회복했다. 1986년 작품 로 재기에 성공한 그는 조 새트리아니, 롭 좀비, 슬래시 등 많은 후배 뮤지션들과 조우하며 거장의 면모를 과시했고, 1994년 발표한 컨셉 앨범 등에서 특유의 개성 넘치는 창작력을 발휘하며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970년대 펑키(funky), 소울(soul), 재즈 그리고 록을 결합한 고유상표의 음악을 창조, 일련의 팝 히트곡을 낸 추억의 흑백 혼성그룹이다. 그들의 펑키한 멜로디와 정치성이 강했던 음악은 1990년대 들어와 신세대 록과 힙합 그룹에게 암암리에 영향력을 미친 그룹으로 재조명된 바 있다. 애초 애니멀스(Animals) 출신의 백인 블루스 로커 에릭 버든(Eric Burden)이 그룹의 간판으로 활동했으며 우... 1970년대 펑키(funky), 소울(soul), 재즈 그리고 록을 결합한 고유상표의 음악을 창조, 일련의 팝 히트곡을 낸 추억의 흑백 혼성그룹이다. 그들의 펑키한 멜로디와 정치성이 강했던 음악은 1990년대 들어와 신세대 록과 힙합 그룹에게 암암리에 영향력을 미친 그룹으로 재조명된 바 있다. 애초 애니멀스(Animals) 출신의 백인 블루스 로커 에릭 버든(Eric Burden)이 그룹의 간판으로 활동했으며 우리들에게는 ’Before the rain’ 등 감성적인 하모니카 연주를 들려준 리 오스카(Lee Oskar)가 몸담았던 그룹으로도 유명하다. 영국의 록그룹 애니멀스의 리더였던 에릭 버든은 1969년 잠시 활동을 중단하고 있다가 작곡자 겸 프로듀서인 제리 골드스타인(Jerry Goldstein)의 기획에 따라 블루스를 기반으로 한 그룹을 구상했다. 1970년 미국으로 건너와 로스앤젤레스에서 새 그룹을 만들었고 이 것이 에릭 버든 앤 워(Eric Burden And War)였다. 멤버들은 1960년대 크리에이터스(Creators)에서 나이트 시프트(Night Shift)란 이름으로 캘리포니아 롱 비치에서 활동하던 흑인 플레이어들이 중심이 되었다. 건반을 연주하며 노래하는 로니 조단(Ronnie Jordan), 기타 하워드 스코트(Howard Scott), 색소폰과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찰스 밀러(Charles Miller) 베이스 피터 로센(Peter Rosen) 그리고 드럼 해롤드 브라운(Harold Brown)이 그들이었다. 워에는 당시 버든과 친교하던 백인 하모니카주자 리 오스카가 포함되었다. 그룹이름은 당시 1970년대 평화물결에 대한 집착과 상반(相反)하려는 의도에서 붙였고 거기에는 이들의 정치적 지향이 담겨있었다. 곧바로 피터 알렌이 약물과용으로 숨지자 전 크리에이터에서 베이스를 연주하던 비 비 디커슨(B. b. Dickerson)이 들어왔고 건반주자 토마스 알렌(Thomas Allen)이 추가로 영입돼, 7인조 라인업이 확립됐다. 1970년에 발표된 첫 앨범 < Eric Burden Declares War >에서 ’Spill the wine’이 차트3위에 오르며 골드 레코드를 기록, 단숨에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1971년 2집 < The Black man’s Burden >의 발표와 함께 2월에 단행된 에릭 버든은 유럽 순회공연에서 피로함이 역력해 공연을 마치지 못한 채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가 버렸다. 그룹과 매니저는 그 없이 활동하기로 결정했다. 에릭 버든 없이 그 해 5월 발표된 앨범 < War >에서는 싱글 ’All day music(36위)’가 커트되었고 로니 조던이 리드보컬을 맡고 난 이 때부터 워의 전성기가 열렸다. 에릭 특유의 샤우트 창법을 버리고 펑키하면서 라틴 풍의 리듬을 살린 곡들이 발표되어 차트와 시장을 성공적으로 공략했다. 이듬해인 1972년 신보 < All Day Music >에서 편집하여 새롭게 다듬은 싱글 ’Slippin’ into darkness’는 차트16위에 머물렀지만 골드를 달성했고 그 해 겨울 내놓은 새 앨범 < The World Is Ghetto >는 2주간 앨범차트 정상을 차지하면서 단숨에 밀리언셀러가 됐다. 완연한 펑키 및 소울 냄새가 물씬한 이 앨범의 타이틀곡은 10분 길이였고, 수록곡 ’City, country, city’는 러닝타임이 13분이나 됐다. 싱글 ’The world is ghetto(7위)’와 ’The Cisco kid(2위)’는 모두 골드 디스크를 따냈다. 이후 ’Gypsy man(8위)’ ’Me and baby brother(15위)’, 라이브 ’Ballero(33위)’에 이어 1975년 앨범 < Why Can’t We Be Friends >에서 타이틀곡(6위)과 라틴 풍 펑키 ’Low rider(7위)’가 연속 빅히트를 쳤다. 특히 ’Why can’t we be friends’는 당시 지구궤도 순환에 모처럼 조우한 미소(美蘇) 우주인에게 보내는 축하 곡으로 채택되어 지금도 그룹 워를 대표하는 노래로 남아있다. 하지만 골드가 된 그 해 여름의 싱글 ’Summer(7위)’을 끝으로 이들은 다시 차트 톱10에 복귀하지 못하게 된다. 1976년 그룹과 유나이티드 아티스트(United Artists)와의 마케팅을 둘러싼 갈등으로 소속 레이블을 옮기고 인원이 잇따라 교체되면서 그룹은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리 오스카도 이 무렵 솔로활동을 개시했다. 그러나 그룹은 블루 노트, MCA, RCA로 옮겨 다니면서도 1980년대 내내 지속적인 활동을 펼쳤다. 1990년대 초반 그들의 앨범이 재발매된 가운데 R&B와 힙합에 대한 그들의 영향이 신세대 그룹들에게 평가되면서 다시 관심이 일기 시작했다. 복원된 인기를 밑천으로 모처럼 만든 1994년 신보 < Peace Sign >는 평단의 격찬을 낳았다. 스카펑크 그룹 스매시 마우스(Smash Mouth)는 1997년 앨범 < Fush Yu Mang >에 ’Why can’t we be friends’를 리메이크했고 그 해 개봉된 영화 < 부기 나이츠 >(Boogie Nights)에 ’Spill the wine’이 삽입되는 등 1970년대 소울 펑키 복고 붐이 일면서 그들의 노래는 지금도 끊임없이 라디오에서 울려 퍼지고있다.
노래 : Dr. John (닥터 존,Mac Rebennack)
재즈 / 블루스 / 락 피아노 연주자, 가수 재즈 / 블루스 / 락 피아노 연주자, 가수
하늘이 인간에게 복을 내릴 때 전부 다를 주는 법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피터 프램튼(Peter Frampton)은 예외인 것 같다. 꽃미남형의 잘생긴 얼굴에 출중한 기타 실력은 물론 음반 제작과 싱어 송라이터의 자질까지 두루 갖춘 그는 팝 계의 멀티 플레이어이다. 짧지 않은 경력에 비해 1970년대 중반이라는 한정된 기간의 음악이 피터 프램튼을 대표하고 있는 점은 매우 안타깝다. 그 이유는 1976년에 발표된 ... 하늘이 인간에게 복을 내릴 때 전부 다를 주는 법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피터 프램튼(Peter Frampton)은 예외인 것 같다. 꽃미남형의 잘생긴 얼굴에 출중한 기타 실력은 물론 음반 제작과 싱어 송라이터의 자질까지 두루 갖춘 그는 팝 계의 멀티 플레이어이다. 짧지 않은 경력에 비해 1970년대 중반이라는 한정된 기간의 음악이 피터 프램튼을 대표하고 있는 점은 매우 안타깝다. 그 이유는 1976년에 발표된 라이브 명반 < Frampton Comes Alive! > 때문이다. 이 실황 음반은 ‘Baby, I love your way’와 ‘Show me the way’, ‘Do you feel like we do’ 같은 곡들에게 부활의 기회를 부여했고, 피터 프램튼 자신도 재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평론가들은 그의 음악을 인색하게 평가했다. 더 허드와 험블 파이처럼 실험적인 밴드 구성원이던 이 미남 가수가 상업적인 음악으로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었다. 1950년 4월 22일 영국에서 태어난 피터 프램튼은 어린 시절부터 기타에 미쳐 학업은 관심 밖이었다. 그리곤 15살 때부터 프로 뮤지션으로 데뷔했다. 1960년대부터 사이키델릭 밴드 더 허드(The Herd)와 블루스 하드록 그룹 험블 파이(Humble Pie)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프램튼은 1971년부터 독자 노선을 걸었다. 하지만 1972년의 첫 솔로 앨범 < Wind Of Change >부터 1974년에 나온 4집 < Frampton >까지 빌보드 싱글 차트 100위안에 오른 곡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그 노력에 대한 결과는 미미했다. 그것은 아마도 스튜디오 작업이나 싱글 커트보단 라이브 무대를 중요시한 이 영국 청년의 의로운 고집 때문일 것이다. “공연은 뮤지션에게 가장 소중하다. 공연 때문에 내 음악이 살아있고 내가 숨쉴 수 있다. 너무 중요해 포기할 수 없다”라고 말한 피터 프램튼은 1976년에 두 장 짜리 실황 음반을 들고 대중들 앞에 섰다. 그 유명한 < Frampton Comes Alive! >다. 발라드 ‘Baby, I love your way(12위)’와 시원한 트랙 ‘Show me the way(6위)’, 13분 짜리 대곡 ‘Do you feel like we do(10위)’가 라이브 버전으로는 드물게 싱글 차트에 올라 인기몰이에 도화선 역할을 한 < Frampton Comes Alive! >는 1,500만이 팔려 라이브 음반으로 가장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Show me the way’와 ‘Do you feel like we do’에서는 토크 박스(Talk Box)라는 이펙터를 사용해 새로운 청각적인 경험을 제공했다. 일명 보이스 박스(Voice Box)라고도 불리는 이 이펙터는 1983년에 열린 US 페스티벌에서 스콜피온스(Scorpions)가 사용해 다시 한번 주목받은 바 있다. ‘Show me the way’는 얼터너티브 록 밴드 다이노서 주니어(Dinosaur Jr.)가 1987년에 불량하게 커버했었고, ‘Baby, I love your way’는 영화 < 리얼리티 바이츠 >에 수록된 빅 마운틴(Big Mountain)의 레게 버전으로 1994년에 6위까지 올랐다. 이 곡은 국내에서도 큰사랑을 받아 여름만 되면 들을 수 있는 시그니처 송으로 자리잡았다. 한 마리의 제비를 보고 봄이 온 것을 깨닫듯이 빅 마운틴의 ‘Baby, I love your way’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여름이 다가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이전인 1988년에는 댄스 듀오 윌 투 파워(Will to Power)가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의 ‘Freebird’와 함께 엮은 ‘Baby, I love your way/Freebird’ 메들리로 정상을 차지했다. 이듬해인 1977년에는 5집 < I’m In You >로 어렵게 지핀 인기의 불꽃을 이어갔다. 비극적 발라드인 타이틀 트랙은 2위,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노래를 리메이크 한 ‘Signed, sealed, delivered(I’m yours)’는 18위, 롤링 스톤스(Rolling Stones)의 믹 재거(Mick Jagger)가 백보컬리스트로 도움을 준 ‘Tried to love(41위)’가 그 주인공들이다. 1970년대 후반, 피터 프램튼에게는 여러 악재가 겹친다. 교통사고로 뜻하지 않은 공백기를 가져야 했고, 새 앨범 < Where I Should Be >와 배우로 데뷔한 뮤지컬 영화 < 서전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 모두 실망스런 결과를 가져왔다. 상업적인 성공이 비평과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음반과 영화의 성적이 최하라는 점에서 같았다. 더군다나 < 서전 페퍼스..... >는 역사상 최악의 영화 중 하나로 당당히(?) 자리를 굳혔다. 이때부터 하향세를 탄 ‘프램튼 주식’은 이후 단 한 차례도 상승 곡선을 타지 못했다. 2001년에는 < Frampton Comes Alive! >의 탄생 25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이 음반이 재 발매되었다. 이번에는 1976년 발표 당시 수록되지 못한 노래들까지 모두 들어있는 온전한 상태에서 팬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그러면서 이 앨범은 올드 팝 팬들에게 왕년(?)의 화려했던 옛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했다. 그러나 그들뿐만이 아니라 피터 프램튼에게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노래 : Seals and Crofts (실즈 앤 크로포츠)
멤버 짐 실스, 대시 크로포츠로 구성된 미국 소프트 락 듀오 멤버 짐 실스, 대시 크로포츠로 구성된 미국 소프트 락 듀오
노래 : Head East (헤드 이스트)
밴드 : The Edgar Winter Group (에드가 윈터 그룹 )
1960년대 중반 대서양을 건너 미국을 침공한 영국 뮤지션들의 활약에서 자극 받은 미국 아티스트들은 그들의 뿌리인 블루스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롤링 스톤스나 야드버즈 같은 영국 팀들이 초기 로큰롤이나 그것을 낳은 블루스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은 음악이라고 무시했던 태도를 지양하고 블루스를 배우고 연구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음악을 구현하게 되었다. 재니스 조플린(Janis Jop... 1960년대 중반 대서양을 건너 미국을 침공한 영국 뮤지션들의 활약에서 자극 받은 미국 아티스트들은 그들의 뿌리인 블루스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롤링 스톤스나 야드버즈 같은 영국 팀들이 초기 로큰롤이나 그것을 낳은 블루스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은 음악이라고 무시했던 태도를 지양하고 블루스를 배우고 연구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음악을 구현하게 되었다.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텐 이어스 애프터(Ten Years After), 캐니드 히트(Canned Heat), 폴 버터필드(Paul Butterfield), 그리고 형제인 조니와 에드가 (Johnny & Edgar Winter) 등이 미 본토의 블루스 붐을 주도했다. 기타리스트인 형 자니 윈터와는 달리 키보드와 색소폰을 다루면서 다른 블루스맨들과 차별화를 기했던 동생 에드가는 1970년 자신의 데뷔 앨범과 이듬해 결성한 그룹 화이트 트래시(White Trash)를 통해 2장의 앨범 < Edgar Winter’s White Trash > < Roadwork >를 발표하며 콘서트활동으로 지평을 넓혀나갔다. 그러나 그는 그룹을 깨고 1972년 다시 유능한 뮤지션들을 규합해 자신의 이름을 내건 에드가 윈터 그룹(Edgar Winter Group)을 결성해 좀더 실험적인 록을 추구하기로 했다. 건반과 색소폰, 보컬을 맡은 에드가 윈터를 축으로 당시 촉망받는 기타리스트 로니 몬트로스, 베이스 겸 보컬 댄 하트먼 그리고 드럼과 퍼커션의 척 러프으로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1994년 사망한 댄 하트먼은 1984년 영화 < 스트리츠 오브 파이어 >에 수록되어 6위까지 올랐던 ’I can dream about you’를 불렀던 그 인물이다). 이외에 앨범의 프로듀서인 릭 데린저(Rick Derringer)가 기타와 백업 보컬에도 참여해 다섯 번째 멤버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72년에 공개된 이들의 처녀작 < They Only Come Out At Night >은 블루스와 로큰롤이 줄기를 이루고있지만 그 외에도 컨트리, 포크, 팝, 서던 록 같은 미국의 국가대표급 음악 장르들 그리고 재즈에서 영향을 받은 프로그레시브까지 형식을 망라하고있다. 여러 음악 스타일이 만개하던 1970년대의 분위기를 타고 자신들의 음악에 이 모든 것을 실험했던 것이다. 여기에 수록된’Frankenstein’은 연주곡임에도 불구하고 전미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스매시 히트를 기록했으며, 앨범은 3위까지 오르며 200만장의 판매광풍을 야기했다. 이어 또 다른 싱글 ‘Free ride’마저 차트 상위권 14위를 기록했으며 국내에서는 감미로운 발라드 ‘Autumn’이 가을만 되면 단골 리퀘스트를 받으며 현재도 라디오전파를 수놓고있다. 이 무렵 프로듀서인 릭 데린저가 정식 멤버로 가입해 로니 몬트로즈를 이은 제리 윔스(Jerry Weems)를 대신해 앨범 < Shock Treatment >(13위)를 발표, 다시 한번 위용을 발휘하지만 웅대한 시작과 달리 이후의 활동은 레드 제플린의 하드록과 디스코의 광풍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1975년 보다 록 성향이 강해진 < With Rick Derringer >를 끝으로 이 유능했던 밴드는 록 현장에서 용퇴(勇退)했다. 이후 에드가 윈터는 형 조니의 앨범 < Johnny Winter > < Second Winter >, 릭 데린저의 명 앨범 < All American Boy >, 댄 하트맨의 솔로 앨범 등에 참여하는 것을 비롯해 자신의 솔로 앨범 < Edgar Winter Group >(1979년) < Standing On Rock >(1981년)를 발표해 블루스연주와 록에 대한 꺼질 줄 모르는 애정을 과시했다. 1992년에도 그는 형 조니와 뉴욕의 유명한 리츠에서 공연, 박수갈채를 받았다. 음악 프리즘이 다양했던 1970년대에 에드가 윈터 그룹의 진보적인 시도는 결코 아트 록 매니아나 밴드 자신들만을 위한 만족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러 이들의 진취적이고 새로운 실험은 상업적으로 비추어질 수 있지만 그러한 주장은 명 연주곡 ’Frankenstein’ 앞에서는 무의미한 탁상공론(卓上空論)일 뿐이다.
지난 1월 18일 지지 탑은 텍사스인의 명예를 드높인 부시의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는 공연을 워싱턴의 한 호텔에서 부시가 지켜보는 가운데 화려하게 펼쳤다. 물론 부시와 지지 탑의 인연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벌써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텍사스 주지사로 재직하던 부시는 오스틴에서 5월 15일을 ''지지 탑의 날''로 선포하고 화려한 기념행사를 가졌다. 부시는 지지 탑에게 텍사스인의 명예를 전세계에 떨친 공... 지난 1월 18일 지지 탑은 텍사스인의 명예를 드높인 부시의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는 공연을 워싱턴의 한 호텔에서 부시가 지켜보는 가운데 화려하게 펼쳤다. 물론 부시와 지지 탑의 인연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벌써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텍사스 주지사로 재직하던 부시는 오스틴에서 5월 15일을 ''지지 탑의 날''로 선포하고 화려한 기념행사를 가졌다. 부시는 지지 탑에게 텍사스인의 명예를 전세계에 떨친 공로로 길이 남을 선물을 전달한 것이다. 지지 탑은 텍사스를 대표하는 최고의 그룹이다. 그들은 텍사스인(Texan)이라는 특유의 자존심을 가지고 주(州) 사람들의 정서적 대변자 노릇을 해왔다. 해오고 있다. 지지 탑은 미국을 대표하는 블루스 록, 부기 록의 자존심이다. 1960년대 후반 흥했던 블루스 록과 부기우기 록의 양식을 전수 받아 오늘날까지 30년간 한번의 흐트러짐 없이 유지, 발전시켜 왔다. 그 동안 한 차례의 멤버 변화가 없었다는 점도 밴드를 위대하게 만드는 중요 요건이다. 또한 빌리 기본스(Billy Gibbons)과 더스티 힐(Dusty Hill)의 배꼽까지 내려온 긴 수염, 하얀 운동 모자, 그리고 코믹한 제스처와 뱀, 닭, 새, 황소 등을 무대 위에 직접 올려놓고 공연을 하는 독특한 풍경 등은 지지 탑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들이다. 물론 ''Blue jean blues''도 빼놓을 수 없는 지지 탑의 보물이다. 지지 탑은 1969년 기타리스트 빌리 기본스, 베이시스트 더스트 힐, 드러머 프랭크 비어드(Frank Beard)의 트리오도 결성됐다. 밴드는 1970년 데뷔작 < Z.Z. Top''s First Album >, 1972년 두 번째 앨범 < Rio Grande Mud >를 발표했지만, 고향 텍사스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삼인조는 1973년 < Tres Hombres >가 차트 8위, 2년 뒤의 < Fandango! >가 차트 10위에 랭크되면서 미 전역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후자는 라이브 실황과 스튜디오 녹음을 동시에 담아낸 독특한 작품으로 ''Tush''가 인기를 모았다. ''지지 탑이 내시빌에서 앨비스 프레슬리의 인기를 능가한다''는 < 뉴스위크 >의 당시 기사는 트리오의 명성이 텍사스를 뛰어넘어 미국 전체로 퍼졌음을 알 수 있다. 이어 1976년 < Tejas >를 내놓은 밴드는 재충전을 위해 2년 가량의 휴지기에 들어갔다. 새롭게 각오를 다진 지지 탑은 1980년대 접어들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신시사이저를 가미시켜 현대적인 부기 록을 선보인 1983년 앨범 < Elimination >은 현재까지 미국에서만 천 만장이 넘는 경이로운 판매고를 기록했다. 비록 차트에는 9위에서 멈췄지만 183주나 머무는 신기원을 창출해냈다. 영국에서도 3위에 오르며 135주간 자리를 지켰다. 2년 뒤에 발표한 음반 < Afterburner > 역시 4백만 장이나 팔려나갔다. 이 기간에 ''Sharp dressed man'', ''Gimme all your lovin'''', ''Legs'' 같은 히트곡들도 쏟아져 나왔다. 1990년대에도 지지 탑의 인기는 여전했다. 1990년 < Recycler > 6위, 1992년 < Greatest Hits > 9위, 1994년 < Antenna > 14위, 1996년 < Rhythmeen > 29위 등 세월의 흐름에 굴복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특히 트리오는 1992년 다섯 장의 앨범을 내는 조건으로 3천만 달러를 받고 < 워너 >에서 < RCA >로 이적하는 ''대 사건''을 일으켰다. 웬만한 대형 아티스트조차 받기 힘든 금액을 받고 옮겨간 것이다. 다시금 그들의 진가가 녹록치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1999 < XXX >라는 타이틀로 음반을 내놓고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밴드 : Black Oak Arkansas (블랙 오크 아칸사스)
서던 록 밴드 서던 록 밴드
1969년에 탄생한 포그햇(Foghat)은 하드록에 블루스와 리듬 앤 블루스, 그리고 초기 록크롤을 혼합한 미국 스타일의 음악을 추구했던 영국의 4인조 밴드였다. 사전 지식없이 이들의 음악을 들으면 미국 출신이라고 믿을 정도로 직선적이고 호방한 음악으로 1970년대 중반 미국에서 큰 성공을 낚았다. 그러나 록순수주의자들이나 록평론가들은 포그햇이 하드록과 팝에 블루스와 부기우기를 혼합한 것 자체를 타협이란 시각으로... 1969년에 탄생한 포그햇(Foghat)은 하드록에 블루스와 리듬 앤 블루스, 그리고 초기 록크롤을 혼합한 미국 스타일의 음악을 추구했던 영국의 4인조 밴드였다. 사전 지식없이 이들의 음악을 들으면 미국 출신이라고 믿을 정도로 직선적이고 호방한 음악으로 1970년대 중반 미국에서 큰 성공을 낚았다. 그러나 록순수주의자들이나 록평론가들은 포그햇이 하드록과 팝에 블루스와 부기우기를 혼합한 것 자체를 타협이란 시각으로 보며 관대한 평가를 유보한다. 1960년대 후반 영국에서 활동했던 블루스록 그룹 사보이 브라운(Savoy Brown)에 몸담고 있던 론섬 데이브 페버렛(Lonesome Dave Peverett, 보컬&기타)과 로저 얼(Roger Earl, 드럼), 토니 스티븐스(Tony Stevens, 베이스)가 작당해 새로이 포그햇을 결성했고 로드 프라이스(Rod Price)를 기타리스트로 영입해 준비 태세를 갖췄다. 로드의 합세는 앞으로 지향하는 이들의 음악적 방향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왜냐하면 데이비, 토니, 로저는 ‘블루스맨’이었지만 로드는 하드록맨이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블루스와 하드록이 화학 반응을 일으켜 이들의 볼륨은 다른 블루스 하드록 밴드들보다 몇 수치 더 높은 데시벨에 고정됐으며 이박사만큼 신바람 나는 질주감이 있었다. 처녀작부터 3집까지는 초기 록커빌리 성향의 복고적인(?) 분위기로 채색됐지만 1974년에 발표한 < Rock And Roll Outlaws >부터는 속도감 있는 블루지한 하드록을 선보여 전성기를 이룬다. 이듬해 나온 < Fool For The City >는 그 정점에 위치한 앨범으로 자신들만의 ‘포그햇 스타일’을 확립한다. 이 4인조의 대표곡 ‘Slow ride(20위)’를 비롯해 고속도로에서 듣기 안성맞춤인 ‘Fool for the city(45위)의 선전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동시에 차기 작품에 대한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1970년대 후반 펑크와 디스코의 도전을 이겨낸 포그햇은 이번엔 뉴웨이브와 맞서야 했다. 그러나 리더 데이브는 뉴웨이브에 대해 “이 음악은 내게 록커빌리를 생각나게 한다”면서 거부감을 표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1981년에 발표된 < Girls To Chat & Boys To Bounce >에서 뉴웨이브를 시도했는가 하면 윌리 딕슨(Willie Dixon), 알 그린(Al Green),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 같은 블루스와 리듬 앤 블루스 뮤지션들의 고전들을 소화했다. 이것은 자신들의 음악에 대한 귀향이었다. 1984년에 해산했다가 지난 1990년 다시 ‘해쳐모여’를 한 이들은 다시 데뷔 시절의 원초적인 블루스 하드록으로 회귀한 음반 < Return Of The Boogie Men >으로 회춘을 시도했지만 애석하게도 2000년 2월 7일 리더 역할을 해왔던 데이브가 암으로 사망함으로써 포그햇의 앞날은 불투명한 상태다. 데이브의 죽음으로 포그햇은 평단으로부터 유보된 가치를 새롭게 맞이할 시점에 있다.

음반 속으로

Official Alice Cooper

회원리뷰 (0건)

매주 10건의 우수리뷰를 선정하여 YES상품권 3만원을 드립니다.
3,000원 이상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일반회원 300원, 마니아회원 6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리뷰쓰기

등록된 리뷰가 없습니다.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0건)

1,000원 이상 구매 후 한줄평 작성 시 일반회원 50원, 마니아회원 1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0/50

등록된 한줄평이 없습니다.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배송 안내
배송 구분 YES24 배송
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 포장안내1
  • 포장안내2
  • 포장안내3
  • 포장안내4
포스터 안내
  •  구매하신 상품에 포스터 사은품이 있는 경우, 포스터는 상품 수량과 동일한 수량이 제공됩니다.
  •  포스터는 기본적으로 지관통에 포장되며, 2장 이상의 포스터도 1개의 지관통에 담겨 발송됩니다.
  •  포스터 수량이 많은 경우, 상황에 따라 지관통 추가 및 별도 박스에 포장되어 발송될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반품/교환 방법
  •  마이페이지 > 반품/교환 신청 및 조회, 1:1 문의,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예스이십사(주)
서울시 영등포구 은행로 11, 5층~6층(여의도동,일신빌딩) 대표 : 김석환   개인정보보호책임자 : 권민석 yes24help@yes24.com 사업자등록번호 : 229-81-37000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05-02682호 사업자 정보확인 호스팅 서비스사업자 : 예스이십사(주)
고객만족센터 T.1544-3800
상담 전화번호
  • 중고샵 문의 1566-4295
  • 영화예매 문의 1544-7758
  • 공연예매 문의 1544-6399
1:1 문의하기 자주 묻는 질문 상담시간 안내
YES24 수상내역 정보보호 관리체계 ISMS인증획득 개인정보보호 우수사이트
소비자피해보상보험 서울보증보험
고객님은 안전거래를 위해 현금 등으로 결제 시 저희 쇼핑몰에서 가입한 구매안전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서비스가입사실 확인
EQUUS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