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은 먼저 하늘나라와 그의 정의를 행하라”
어느 사제의 삶이 증명해낸, 우리 시대의 징표
“교회가 자리한 곳이 곧 삶의 현장이다. 잘못된 사회, 정치제도는 교회에서 바로잡아야 한다.” 1970년대 초 박정희 유신통치기부터 현재까지, 한국 민주화운동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직면하며 우리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함세웅 신부. 현대사 주요 인물들의 삶을 집대성해온 서울대 한인섭 교수가 함 신부의 대담자로 나서, 암울한 시대에 ‘정의’의 참뜻을 몸소 보여준 사제이자 역사의 한복판에 뛰어든 운동가의 삶을 기록하고 이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비어 있던 자리를 알차게 채워냈다.
민주주의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낸 2016년 촛불은 국민들에게 여전히 떨쳐내지 못한 근현대사의 망령들의 존재를 새삼 일깨워주었다. 이 뿌리 깊은 구조적 적폐는 단 수년의 진상규명만으로 복구해낼 수 없으며 이를 온전히 없애는 데에는 전사회적인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 이에 함세웅의 존재는 보수와 진보를 가로지르며 적폐와 끊임없이 싸워온 한 인간의 전형이자, 순수한 지식인의 모범으로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책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창립을 이끈 민주화운동가로서의 함세웅 신부를 넘어, 전세계 가톨릭의 변화를 위해 교회의 구습을 성경의 구절 하나하나를 근거로 혁파해온 교육자이자, 가난하고 억눌린 시민들을 거둬들여 슬픔을 어루만져온 민중의 사제로서의 그를 다각도로 조명한다. 책 말미에 실린 연보는 그의 뜨겁고 다채로운 삶이 한국현대사 그 자체였음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암흑 속 횃불로서의 ‘정의구현사제단’과 함세웅
1942년 일제치하에서 태어난 함세웅은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하는 여느 꼬마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의 예배당에서 들은 이야기가 그의 마음에 깊이 새겨진다. “모세가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들으며 가슴을 쓸어내렸어요. 이처럼 성경 이야기 중 처음으로 가슴에 들어온 것이 모세를 통해 노예를 해방시키고 압제자들을 응징한 이야기예요. 나중에 이런 모티브가 제 안에 자라서 해방신학으로 이끌어주고, 독재정권과 맞싸우는 해방의 여정으로 인도해주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27~28면)
1956년 용산중학교 2학년 때 예배당 신부의 일을 돕는 복사가 되며 신부의 꿈을 키워갔다. 1960년 서울 혜화의 대신학교(지금의 가톨릭대)에 입학한 뒤 1965년부터 1973년까지 로마로 유학하여 그레고리오 신학대에서 교부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위성직자의 길을 목전에 두고 있었지만 새로운 교회를 꿈꾸며 1973년 귀국했고, 곧바로 이곳의 참담한 현실을 맞닥뜨리게 된다. 1973년 8월 김대중 납치사건, 그해 10월 서울대 최종길 교수 고문치사 사건, 1974년 4월 민청학련과 인혁당재건위 사건 등이 잇달아 일어난 것이다.
1974년 원주교구장인 지학순 주교가 유신헌법은 무효라고 선언하자 박정희정부는 지 주교에게 내란음모죄를 씌워 옥에 가뒀다. 1975년 4월에는 인혁당사건을 조작하여 8명의 억울한 생명을 앗아갔다. 정권의 포악함 앞에서 함세웅, 문정현 등 청년 사제들은 성당 안의 성직자가 아닌 거리의 신부가 되기로 결심한다. 감옥에 갇힌 이들을 찾아가는 것이 참된 선교이며, 그들과 함께 싸우는 것이 진실한 신앙의 고백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1974년 9월 함세웅은 동료 사제들과 함께 하나의 모임을 만들면서 “우리는 인간의 위대한 존엄성과 소명을 믿는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그 유명한 시국선언문을 발표한다. 유신헌법 철폐, 민주헌정 회복 등을 요구한 그 선언문에서 사제단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사제의 양심에 입각하여 살겠다는 다부진 결기를 밝혔다.
이 모임이 바로 정의구현사제단(공식 명칭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다. 함세웅과 정의구현사제단은 이후 40여년간 실과 바늘처럼 함께 움직였다. 그뒤 수많은 민주화운동의 현장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의 활약은 빼놓을 수 없다. 민청학련과 인혁당사건의 조작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민주회복국민회의 결성에서, 동일방직과 YH의 노동자들을 성당의 품에서 지켜낸 처절한 현장에서 보여준 헌신을 통해 함세웅과 정의구현사제단은 이제는 시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서 자리매김한다.
무엇보다 정의구현사제단의 활동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빛을 발한다. 당시 함세웅은 6월항쟁의 구심점이 된 명동성당에서 서울교구 홍보국장으로서 시대의 소명을 짊어졌다. 고문치사의 진범이 공안당국에 의해 조작되었음을 명동성당에서 발표하기까지의 비화를 소개한 제3부의 초반(「박종철 고문사건, 진상조사와 조작사실 폭로」부터 「6월항쟁 제2막」까지)은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가톨릭의 근본정신을 끝까지 지켜내고자 한, 이 시대의 징표
함세웅은 가톨릭의 사제이자 연구자다.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면서부터 성경공부에 맹렬히 정진했고, 로마 유학기에는 남들이 피하는 중세 교부신학을 자신의 전공으로 택해 그리스도의 참뜻을 탐구한 신학자다. 특히 그가 로마에 유학 중이었던 때는 마침 교황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전세계에 기독교의 새로운 전환을 공표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 현장을 생생히 체험하며 함세웅의 신학연구는 깊이를 더했다.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6월항쟁 전후에는 몇년에 걸쳐 매주 교구 주보를 발행, 전국으로 배포하는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또한 그 분투의 와중에도 해방신학, 민중신학, 여성신학을 두루 섭렵하며 수많은 저서와 논고를 펴내기도 했다.
“그의 신앙과 신학의 주제어는 ‘정의’였다. 하느님의 대표적 속성이 바로 정의라는 것이다. ‘너희들은 먼저 하늘나라와 그의 정의를 행하라’는 말씀에 충실하고자 했다. 선배 동료 사제들과 함께 정의구현사제단을 지금까지 지켜온 것도 하느님의 본질인 정의의 구현에 헌신해야 한다는 성경적 다짐을 사제로서 실천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달리 말해 ‘시대의 징표’를 읽으면서, 이 땅에 정의를 뿌리내리려는 삶이다.”(716면)
그의 정의를 향한 열정은 교회 바깥에서는 정권의 탄압에 부딪혔고, 교회 안에서는 각종 음해와 비난에 맞닥뜨렸다. 함세웅이 그동안 밝히지 못하다가 이 책에 털어놓은 고백적 증언들은 민주화운동의 대부인 김수환 추기경과의 끊임없는 마찰을 다룬 에피소드들에서부터 2010년대 한국 가톨릭의 현실에 대한 비판까지를 망라한다. 가톨릭 사제들에 대한 가감없는 지적과 비판은 온전히 그가 만나온 시민들에 대한 인간적 애정에서 비롯되었다. 독재정권과의 싸움 속에서도 그 체제를 순진하게 따르는 ‘정반대의 신도들’에게까지 자신의 신의를 지키고자 하는 함세웅의 모습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무엇을 행했는가 하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사제의 응답”(717면)이기도 하다.
소외받는 이들, 힘없는 이들과 여전히 함께하는, 거리의 신부
함세웅은 2012년 ‘마지막 미사’를 끝으로 ‘신부’라는 정식 직함을 떼어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신자들을 만나며, 특히 지금도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농성 현장 등을 방문하며 그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주는 ‘거리의 신부’로서 살아가고 있다. 2013년 민족문제연구소 4대 이사장에 취임한 뒤로는 친일파 청산 등 우리 근현대사의 정의를 실현하는 데에도 나섰다. 민족의 분열을 조장하는 친일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의 화해와 통일, 민주주의의 완성을 실현하는 그날을 위해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의 대담자로 나선 법학자 한인섭(서울대 법대)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기록연구자이자 기독교 신앙의 끊임없는 쇄신을 꿈꾸는 신도로서 함세웅을 만났다. 그간 우리 민주화운동에 한 획을 그어온 인물들의 육성기록을 살뜰히 모아 출간해온 한인섭은 2013년 안식년을 계기로 6개월간 함 신부를 매주 만나 우리 사회 민주화 시기의 결정적 순간들을 이끌어온 투사로서의 면모뿐 아니라 우리 시대 신학이 봉착한 문제점을 끝없이 고민해온 종교가로서의 면모까지 속속들이 파고들어 종합적 인문학으로서의 기록서사를 완성해냈다.
여전히 불의가 판을 치는 이 시대에 정의란 무엇이며 그것을 실현할 방도는 무엇일까. 이 ‘무지의 시대’에 던지는 한 사제의 고백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이러한 질문의 답을 함께 찾아가는 ‘문답서’로서 이 책을 독자들에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