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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 순애 그리고 탄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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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 순애 그리고 탄실이

신여성의 탄생, 나혜석 김일엽 김명순 작품선

나혜석, 김일엽, 김명순 저/심진경 | 교보문고 | 2018년 08월 31일 리뷰 총점10.0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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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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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8년 08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528g | 140*210*30mm
ISBN13 9791159096501
ISBN10 1159096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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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4명)

정월 나혜석(晶月 羅蕙錫, 1896∼1948)은 1896년 경기도 수원에서 부 나기정과 모 최시의 사이에서 5남매 중 넷째, 딸로는 둘째로 태어난다. 부 나기정은 시흥군수와 용인군수를 지낸 개화 관료였다. 나혜석의 초명은 아지(兒只)였고, 진명여학교 입학 시 명순(明順)으로 불렸으나,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 졸업 때는 혜석으로 개명한다. 1913년 3월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둘째 오빠 경석의 권... 정월 나혜석(晶月 羅蕙錫, 1896∼1948)은 1896년 경기도 수원에서 부 나기정과 모 최시의 사이에서 5남매 중 넷째, 딸로는 둘째로 태어난다. 부 나기정은 시흥군수와 용인군수를 지낸 개화 관료였다. 나혜석의 초명은 아지(兒只)였고, 진명여학교 입학 시 명순(明順)으로 불렸으나,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 졸업 때는 혜석으로 개명한다. 1913년 3월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둘째 오빠 경석의 권유로 일본으로 유학하여 도쿄시립여자미술학교 서양화부 선과 보통과 1학년에 입학한다.

1914년 12월 도쿄 조선인 유학생 잡지 「학지광」 제3호에 최초의 글 『이상적 부인』을 발표하고, 오빠 경석의 친구인 최승구와 연애 관계를 맺는다. 1915년 아버지의 결혼 강요로 여주공립보통학교 교원으로 1년간 근무하여 학비를 마련하고, 11월 복학하면서 고등사법과 1학년으로 전입했으나 제대로 다니지 못한다. 12월 아버지가 사망하고, 애인 최승구는 결핵에 걸려 귀국하여 요양을 한다. 1916년 최승구가 사망한 뒤 오빠 경석의 강력한 권유로 김우영과 교제를 시작한다. 1918년 3월 「여자계」 제2호에 나혜석의 대표작이자 문학사적 가치를 지닌 단편소설 『경희』를 발표하고, 'H.S.'라는 필명으로 시 「광(光)」을 발표한다. 사립여자미술학교를 졸업하고, 4월에 귀국하여 모교인 진명여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건강이 안 좋아 그만두고, 집에서 그림 공부를 한다. 9월 「여자계」 제3호에 『회생한 손녀에게」를 발표한다.

1919년 3월 박인덕 한신준려 한황애 시덕한 김마리아 등과 3한1운동에 여학생 참가를 의논하고, 개성과 평양으로 가서 자금 모금과 만세 운동 확산을 위해 이정자 한박충애와 만나 의논한다. 이화학당 학생들이 만세를 부른 사건으로 체포되어 5개월간 옥고를 치른 후 풀려난다. 1920년 김우영과 결혼하고 그와 함께 전남 고흥군에 있는 최승구의 묘지에 찾아가 비석을 세우고 돌아온다. 1921년 임신 9개월의 몸으로 경성일보사 내청각에서 유화 개인전람회를 연다. 4월 첫딸을 낳고, 7월 「신가정」 창간호에 『규원』을 발표한다. 9월 만주 안동현 부영사로 부임하는 남편을 따라 만주로 이주하고, 1922년 3월 여자 야학 설립을 주도한다. 6월 조선총독부 주최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 유채수채화 분야에 출품한 『봄』,『농가』가 입선한다.

1923년 1월 첫딸을 임신하여 낳고 돌이 될 때까지의 심리적한육체적 변화를 솔직히 기록한 「모(母) 된 감상기」를 발표한다. 6월 제2회 조선미술전람회에 『봉황성의 남문』이 4등, 『봉황산』이 입선한다. 이후 해마다 조선미술전람회에 유화를 출품하여 입선하며, 1926년 제5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천후궁(天后宮)』이 특선, 『지나정(支那町)』이 입선한다. 1926년 4월 「조선문단」에 『원한』을 발표한다.

1927년 만주 안동현 살림을 정리하고 귀국하여 동래 시집에서 지내다가, 6월 남편과 함께 구미 여행길에 오른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를 거쳐 파리에 도착한다. 스위스한벨기에한네덜란드 등을 여행하고, 법률 공부를 위해 남편이 베를린으로 간 사이 파리에서 야수파 화가인 비시에르의 화실에 다니면서 그림 공부를 한다. 10월 천도교 도령(道令)으로 파리에 온 최린을 만나 예술을 논하고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연애 관계를 맺는다. 1929년 귀국하여 9월 수원에서 '구미 사생화 전람회'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연다. 1930년 김우영이 서울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으나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파리 시절 최린과의 연애에 관한 소문이 나서 남편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결국은 이혼한다.

이후 나혜석은 실의를 딛고 그림 작업에 몰두하여 계속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해서 좋은 평가를 얻는다. 1932년 금강산 해금강에서 제13회 제국미술원전람회에 출품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다가 불의의 화재로 10여 점밖에 건지지 못해 충격을 크게 받는다. 1933년 생계와 그림 활동을 위해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여자미술학사'를 열고 운영한다. 1934년 김우영과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고 이혼하기까지의 개인적인 생활과 심경을 솔직하게 서술한 『이혼 고백장』(「삼천리」, 1934. 8∼9)을 발표한다. 이 글에서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정조 관념을 비판함으로써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 뒤 사회의 냉대로 점점 소외되었다. 1935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전시회를 열었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수덕사·해인사 등을 전전하며 유랑생활에 들어가 정확한 행적을 알 수 없다. 1946년 서울 자혜병원에서 행려병자로 쓸쓸히 인생을 마감했다.

조선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문인, 언론인으로 파격적인 작품과 사회 비판적 주장을 통해 봉건적 제도와 인습이라는 금기에 도전했다.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남기며 가부장제 타파와 여성 의식화에 주춧돌을 놓았다.
시인, 소설가, 수필가 등 어느 호칭으로 불려도 좋을 만큼 전방위 글쓰기를 보여 준 사람이다. 또한 여성운동가, 계몽운동가, 종교인의 면모도 간과할 수 없다. 널리 불렸던 일엽(一葉)은, 춘원 이광수가 일본의 유명 여성 문인의 이름에서 따와 지었다고 알려지기도 한 아호인데, 본명은 원주(元周)다. 후일 불가에 귀의하고 얻은 이름은 하엽(荷葉), 도호(道號), 백련도엽(白蓮道葉) 등이나 널리 알려진 것은 아니다. ... 시인, 소설가, 수필가 등 어느 호칭으로 불려도 좋을 만큼 전방위 글쓰기를 보여 준 사람이다. 또한 여성운동가, 계몽운동가, 종교인의 면모도 간과할 수 없다. 널리 불렸던 일엽(一葉)은, 춘원 이광수가 일본의 유명 여성 문인의 이름에서 따와 지었다고 알려지기도 한 아호인데, 본명은 원주(元周)다. 후일 불가에 귀의하고 얻은 이름은 하엽(荷葉), 도호(道號), 백련도엽(白蓮道葉) 등이나 널리 알려진 것은 아니다.

1896년 6월 9일(음력 4월 28일) 평안남도 용강군 삼화면 덕동리에서 5대 독자이며, 개신교 목사인 용겸(用兼) 씨와 이마대(李馬大) 여사의 5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구세학교와 진남포 삼숭여학교를 다녔는데, 신체시 「동생의 죽음」이 육당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보다 한 해 앞선 1907년에 창작되었다는 견해가 있어, 사람에 따라서는 이를 신체시 또는 신시의 효시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1909년에 어머니를 병으로 여의고, 이화학당을 다니던 1915년경 아버지마저 여의었다. 그사이 동생 넷도 세상을 떠나 가족을 모두 잃게 되었다. 이후 그의 가세를 자세히 알 길은 없으나, 이 무렵 첫 번째 결혼을 하게 되고 1918년에는 이화전문을 졸업하며, 이듬해 3·1 운동 때는 전단을 작성해 돌리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어 외할머니의 후원으로 일본에 건너가 도쿄 영화(英和)학교에 다녔는데, 1920년에 이 학교를 수료하고 귀국한 후 잡지 『신여자』를 창간해 4호까지 간행했다.

이 무렵 기독교 청년회관에서 ‘여자 교육과 사회 문제’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동아일보』에 「여자 교육의 필요」 등의 계몽적 주제의 글을 싣는 등 여성 운동에 앞장섰다. 아현보통학교 등에서 교사로 잠시 재직한 적이 있으며, 첫 번째 결혼의 실패에 이은 ‘사랑’의 문제를 둘러싼 방황으로 세인의 주목을 크게 받은 바 있다. 이 무렵 단편소설로, 「계시」(1920), 「어느 소녀의 사」(1920), 「혜원」(1921) 등을, 시로는 계몽적 주제의 창가류에 이어 개인의 애욕과 정서를 표현한 「짝사랑」, 「그대여 웃어 주소서」 등을 썼다.

1923년 9월에는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만공 스님의 법문을 듣고 크게 감명을 받은 바 있었고, 1927년에는 불교 기관지 『불교』에 관여해 1932년까지 문예란을 담당하면서 활발한 집필 활동을 보여 주었다. 1928년 금강산 서봉암에서 입산하고, 이어 서울 선학원에서 만공법사 문하에서 수계를 했으며, 1933년 수덕사 견성암에서 득도한 후 이 암자의 입승(入繩)으로 25년 동안 머물렀다.

입산 후 사회생활을 가능한 한 자제한 채, 수도에 전념하다가 1971년 1월 28일 총림원 별실에서 열반했고, 수덕사가 있는 덕숭산 기슭에서 다비식이 거행되었다. 생전에 『어느 수도인의 회상』(1960), 『청춘을 불사르고』(1962), 『행복과 불행의 갈피에서』(1964) 등의 산문집을 펴냈으며, 열반 직후 유고집 『미래세가 다하고 남도록』(1974)이 간행되었다.

12살에 역사적인 첫 국문 자유시라는 업적을 남긴 문인, 언론인, 여성운동가이자 승려. 1920년에 한국 최초의 여성주의 잡지 '신여자'를 창간하며 신여성 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불교에 귀의하여 승려가 되었다. 다방면에 걸쳐 한국 근대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소설가, 시인, 언론인, 영화배우, 연극배우. 1896년 평안남도 평양군 융덕면에서 태어났다. 1913년 진명여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시부야 국정여학교에 편입하였으나 중퇴했다. 1917년 잡지 『청춘』의 현상소설 모집에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1919년에는 일본 유학길에 올랐으며 도쿄에 체류 중인 소설가 전영택의 소개로 당시 일본에 유학 중인 문학가들이 창간한 종합문예 동인지 『창조』... 소설가, 시인, 언론인, 영화배우, 연극배우. 1896년 평안남도 평양군 융덕면에서 태어났다. 1913년 진명여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시부야 국정여학교에 편입하였으나 중퇴했다. 1917년 잡지 『청춘』의 현상소설 모집에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1919년에는 일본 유학길에 올랐으며 도쿄에 체류 중인 소설가 전영택의 소개로 당시 일본에 유학 중인 문학가들이 창간한 종합문예 동인지 『창조』의 동인으로도 참여했다. 1925년에는 한국 여성 시인 최초로 시집 『생명의 과실果實』을 간행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단편소설 「처녀의 가는 길」(1920), 「칠면조七面鳥」(1921), 「외로운 사람들」(1924), 「탄실이와 주영이」(1924), 「돌아다볼 때」(1924), 「꿈 묻는 날 밤」(1925), 「손님」(1926), 「나는 사랑한다」(1926), 「모르는 사람같이」(1929) 등과 시 「동경」(1922), 「옛날의 노래여」(1922), 「거룩한 노래」 「시로 쓴 반생기」(1938), 시집 『애인의 선물』(1928) 등의 작품을 남겼다. 2000년까지 밝혀진 김명순의 작품은 시 86편(번역시 포함), 소설 22편(번역소설 포함), 수필·평론 20편, 희곡 3편 등이다.

그의 소설 작품은 인물에 대한 지적인 분석과 심리 묘사에 치중하고 있으며, 시 작품은 연정戀情, 자연의 아름다움, 추억 등을 노래한 것이 주류를 이룬다.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 탄실은 그의 필명이자 아명이기도 하다. 일본 유학 중 당한 성폭력 사건 이후 각종 스캔들에 휘말리다 끝내 가난과 정신병을 이기지 못한 채 1951년 일본 도쿄 아오야마 뇌병원에서 사망했다.

암울했던 식민시기와 더불어 기생의 딸이라는 낙인, 성폭력, 문단의 공격 등 여성에 대한 억압이라는 이중고를 겪으며 활동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소설가로서 5개 국어를 구사하며 서양 문학을 조국에 선보인 번역가이기도 하다. '자유연애'를 역설하며 여성해방을 꿈꾼 신여성이자 선각자.
문학평론가. 1968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여름 계간 [실천문학]에 「여성성, 육체, 여성적 시 쓰기」를 발표한 뒤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파라 21], [문예중앙] 편집위원을 거쳐 현재 계간 [자음과모음] 편집위원이다. 저서로, 『여성, 문학을 가로지르다』, 『떠도는 목소리들』, 『여성과 문학의 탄생』, 『문학을 부수... 문학평론가. 1968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여름 계간 [실천문학]에 「여성성, 육체, 여성적 시 쓰기」를 발표한 뒤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파라 21], [문예중앙] 편집위원을 거쳐 현재 계간 [자음과모음] 편집위원이다. 저서로, 『여성, 문학을 가로지르다』, 『떠도는 목소리들』, 『여성과 문학의 탄생』,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공저), 『한국문학과 섹슈얼리티』 등이, 옮긴 책으로 『근대성의 젠더』(공역)가 있다. 서강대학교, 서울예술대학 등에서 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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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탄실이와 주영이」중에서

출판사 리뷰

대한민국에서 여성작가로 살아간다는 것,
신여성의 탄생과 페미니즘적 치열한 삶


신여성이자 한국 근대문학이 태동하던 시기에 1세대 여성작가로 불리는 나혜석, 김일엽, 김명순. 이들은 염상섭, 이광수, 김동인 등과 동시대에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음에도 당대는 물론 지금까지도 ‘작품 없는 벙어리 작가’ 취급을 받고 있다. 실제로 나혜석, 김일엽, 김명순은 작품보다는 자신을 둘러싼 연애, 결혼, 이혼과 같은 가십거리로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1940년 1월 일제강점기의 문예지 『문장』이 조선 문단의 생존 작가를 정리한 리스트에는 이들 세 여성작가들만 누락되어 있다. 이는 창작의 주체였던 1세대 여성작가들이 한국문학사에서 인위적으로 배제되고 삭제되어 왔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정말로 ‘작품 없는 벙어리 작가’였을까? 당연히 아니다. 김명순은 1917년 『청춘』의 ‘현상문예공모(지금의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가 가작으로 당선되면서, 나혜석은 1918년 『여자계』에 단편소설 「경희」를 발표하면서, 김일엽은 1920년 단편소설「계시」를 『신여자』에 발표하면서 작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한다. 김명순은 다층적이며 복잡다단한 내면 심리 묘사에 탁월한 작가였으며, 나혜석은 시대를 앞서 산 선각자의 사상을 오롯이 글에 녹여냈다. 김일엽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잡지를 창간하고 기자 등으로 활동하며 전방위적 글쓰기로 여성의 의식을 계몽하는 과감한 글을 써내려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기 문학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 한 번 받지 못한 채, 남성작가들의 모델소설에서 (성적·도덕적으로) 타락한 신여성의 전형으로 그려졌다.

이 책은 나혜석의 「경희」 발표 100주년을 기념하여 대산문화재단이 기획한 것이다. 『경희, 순애 그리고 탄실이』라는 제목은 나혜석, 김일엽, 김명순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이름이자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고스란히 투영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들이 1918년부터 1936년까지 발표한 단편소설 중 지금 시대에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킬 가치가 있는 작품 총 12편을 묶었다. ‘모던 걸’을 ‘못된 걸’로 부르며 조롱하던 가부장사회가 빚어낸 왜곡된 욕망에도 굴하지 않고 저항하며 신여성을 제안하고, 동시에 스스로 신여성이 되고자 했던 그들의 치열한 삶과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나혜석,
인형이 되기를 거부하다!
나도 사람이다. 그 다음에는 여자다! _ 「경희」


나혜석은 조선 최초의 여성 동경 유학생이자 서양화가였다. ‘남녀평등’이라는 단어조차 없던 시절, 가부장사회에서 억압된 여성의 권리에 주목했다. 또한 성차별의 덫에 갇힌 여성을 대변하고 새로운 여성상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런 면에서 나혜석의 첫 소설이자 최고작으로 평가받는 「경희」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국문학사에서 여성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첫 소설이자 신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에 대항하기 때문이다. “계집애라는 것은 시집가서 아들딸 낳고 시부모 섬기고 남편을 공경하면 그만”이라며 정략결혼을 강요하는 아버지의 말에 경희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것은 옛날 말이에요, 지금은 계집애도 사람이라 해요. 사람인 이상에는 못할 것이 없다고 해요. 사내와 같이 돈도 벌 수 있고 사내와 같이 벼슬도 할 수 있어요. 사내가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는 세상이에요.”

경희는 곳간에 ‘쌀과 돈이 그득한 탄탄대로’ 대신 ‘보리밥이라도 제 노력으로 먹는 꼬부라진 길’이라는 험난한 미래를 선택한다. 이를 위해 부단한 자기 계발과 발견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외에도 병에 시달리는 손녀를 보며 애처로워하는 할머니의 심적 고통을 담은 「회생한 손녀에게」,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에서 일방적인 희생과 수탈을 강요받고 결국엔 전통적 관습에 의해 몰락하는 여성의 모습을 그린 「원한」, 카페 여급이자 모델인 신여성 현숙이 경제적 주체로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인 「현숙」을 현대어로 번역하였다.

나혜석은 글과 그림을 통해 ‘남자와 여자를 가르기 전에 모두 사람이라며, 여자도 한 사람’임을 주장하며 인간으로 대우해줄 것을 주장했다. 그녀의 작품은 우리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이 질문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김일엽,
남성 중심의 사회에 돌을 던지다!
나 죽은 뒤에라도 그놈을 부르지도 마세요. _ 「순애의 죽음」


김일엽은 목사로서 일찍 개화하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환경에서 성장했다. 여성의 자유와 지위 향상을 주장한 그녀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잡지인 『신여자』를 간행하고 [동아일보] 문예부 기자로 활약하는 등 여성으로서 대담한 활동을 하면서 남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S언니? 순애는 그만 자살하였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순애의 죽음」은 이중의 서술구조를 통해 데이트 성폭력의 심각성을 폭로하는 소설이다. S언니는 순애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며 이런 말을 남긴다. “순애를 죽게 한 그 남자도, 모든 여성을 죽는 것보다 더한 압박과 고통을주는 모든 남성도, 시치미 뚝 떼고 유들유들하게 돌아다닐 터이지요.” 이렇듯 「순애의 죽음」은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여성에게 가해지는 다양한 ‘폭력’의 하나로 인지하고 그러한 폭력이 얼마만큼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지를 폭로한다. 이 외에도 자살로 자신의 정조를 지켜야 할 만큼 전통적 관습과 의식에 구속된 명숙이의 죽음과 극단적 정조관념에 관해 이야기하는 「어느 소녀의 사」 , 유학간 남편에게서 버림받고 나서야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기 시작하는 여인을 그린 「자각」과 「계시」 등을 수록했다.

많은 신여성들이 단단한 사회의 덫을 깨고 나오지 못해 스스로 좌절하고 만 것과 달리 김일엽은 적극적으로 작품 활동을 함으로써 여성이라는 한계를 극복했다. 그녀의 의지는 오랜 시간 폐쇄된 규범에 갇혀 있던 우리나라 여성들이 문학에 참여하고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경희, 순애 그리고 탄실이』는 김일엽의 뜨거운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김명순,
한국 근대 최초의 여성작가가 되다!
피해자에서 벗어나기 위한 처철한 노력 _ 「탄실이와 주영이」


김명순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을 다녀왔으며, 5개 국어를 구사할 만큼 뛰어난 외국어 실력과 빼어난 미모를 가진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늘 첩의 딸, 강간 피해자, 부정한 혈액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1915년 7월 30일 [매일신보]에는 김명순이 당시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 소위인 이응준에게 강간당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후 그녀는 데이트 강간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남성 편력이 심하고 돈 많은 남자들에게 경제적 후원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치와 허영의 ‘못된 걸’로 낙인찍혔다.

김명순의 자전적 소설 「탄실이와 주영이」는 그녀가 ‘나쁜 피’를 물려받은 태생적 부도덕 때문에 강간을 당한 것이라는 사회가 씌운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필한 것이다. 작품 속 탄실의 오빠 역시 그녀가 피해자임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애가 10년 전에 동정을 제 마음대로도 아니고 분명한 짐승 같은 것에게 팔 힘으로 앗기었다 하면, 시방도 바로 듣지 않고 내 누이만을 불량성을 가진 여자로 아니…….”

이처럼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제목으로 내건 소설에서 스스로가 성적으로 방탕한 ‘주영’이 아님을 말하려 한다. 실제로 ‘탄실’은 김명순의 아명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을 둘러싼 소문에 맞서서 스스로의 목소리로 그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는 끝내 마무리되지 못한다. “그것은 탄실이가 열여덟 살 나던 봄이었다.”로 시작되는 신문 연재본 마지막 회에서 김명순은 끝내 '그것'에 관해 말하지 못한 것이다. 이렇듯 「탄실이와 주영이」로 밝히고자 한 피해자의 언어는 중단되었다.

작품에 대한 결연한 의지는 그녀에게 근대 최조 여성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게 해준 「의심의 소녀」 와 「돌아다볼 때」, 그리고 다양한 얼굴을 가진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미세한 감정 변화를 잘 포착해낸 「칠면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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