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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댓 마스터피스' 시리즈
CD

올 댓 마스터피스 20CDs Box Set [특별한정반]

[ 20CD ]
전인권, 조하문, 최성원, 11월, 주찬권 노래 외 5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LON Music | 2012년 04월 16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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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댓 마스터피스 20CDs Box Set [특별한정반]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2년 04월 16일
시간, 무게, 크기 2,200g

관련분류

카테고리 분류

음반소개

구성

아티스트 소개 (10명)

1987년 미국 공연을 끝으로 들국화의 멤버들은 각자의 활동 속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최구희는 괴짜들을 재결성 하여 앨범을 발표했고 주찬권은 믿음소망사랑을 결성했다. 최성원과 손진태는 세션으로 바쁜 솔로 활동을 시작했고 전인권(1954년)은 허성욱과 듀엣 앨범인 < 추억 들국화 >를 내 놓는다. 알 스튜어트(Al Stewart)의 ‘The palace of Versailles’’를 리메이크 한 ‘사랑한 후에’가 ... 1987년 미국 공연을 끝으로 들국화의 멤버들은 각자의 활동 속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최구희는 괴짜들을 재결성 하여 앨범을 발표했고 주찬권은 믿음소망사랑을 결성했다. 최성원과 손진태는 세션으로 바쁜 솔로 활동을 시작했고 전인권(1954년)은 허성욱과 듀엣 앨범인 < 추억 들국화 >를 내 놓는다. 알 스튜어트(Al Stewart)의 ‘The palace of Versailles’’를 리메이크 한 ‘사랑한 후에’가 대단한 인기를 얻은 이 앨범의 이름은 ‘들국화를 오래 기억해달라’라는 뜻을 가진 것이었으며 허성욱의 미성을 느낄 수 있는 ‘머리에 꽃을’, 최구희의 필에 젖은 기타가 일품인 ‘어떤...(가을)’ 그리고 연극 < 칠수와 만수 >에 삽입되었던 작자 미상의 ‘사노라면’ 등이 수록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종종 전인권과 최성원의 주도권 다툼으로 해석되고 있는 들국화의 해체는 전인권의 대마초 사건으로 가속화되었고 그렇게 그룹 들국화는 전설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전인권은 삼청동의 자기 집에서 1여 년을 쉬며 파랑새 기획을 만들고 히식스 출신의 김광석, 변성군, 민재현, 배수현 등과 그룹 가야를 구상했다. 하지만 우여곡절을 겪은 이 그룹은 끝내 탄생하지 못했고 전인권은 1988년 자신의 솔로 앨범을 제작한다. 역시 들국화를 산출한 동아기획과 자신의 기획사인 파랑새에서 나온 이 앨범에는 ‘돌고 돌고 돌고’가 스매시 히트를 기록한 가운데 ‘돛배를 찾아서’, 따로또같이 시절에 부른 ‘헛사랑’ 등이 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좀더 완성도 높은 < 지금까지 또 이제부터 >를 발매한다. 이 앨범에는 큰 히트곡은 나오지 않았지만 ‘Last song’’, ‘언제나 영화처럼’, ‘우리들의 사랑은’ 등과 같은 수작이 진열되어 있으며 최성원의 코러스를 들을 수 있는 ‘제발’이 다른 버전으로 녹음되어 있다. 이 앨범에서 그는 최성원에 못지 않은 작곡 실력을 뽐내면서 존 레논(John Lennon)의 ‘Oh my love’’와 ‘Love’’를 인구에 회자시켰다. 이러한 형태의 자기 표현은 전인권을 존 레논으로 최성원을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전인권은 민재현, 이건태, 정태국, 유태구 등과 함께 들국화의 재건을 시작한다. 하지만 오리지널 멤버들의 전설을 따라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들국화의 이름으로 내놓은 3집은 아쉬움 속에서 외면을 받았다. 모든 사람들은 들국화의 이름보다는 전인권의 새 그룹을 원했다. 그리고 그는 한상원과 조인트 앨범을 내놓으며 그의 소울풀한 가창력이 아직도 살아 있음을 알렸다. 그러나 그는 음악 활동 속에서 줄곧 대마초에 손을 대며 동면 속에 빠진다. 그리고 모든 공연에서 부르는 그의 노래는 정확한 음정보다는 필링이 주가 되는 양상을 띤다. 한번 떨어진 집중력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최근 그는 대마초 흡연은 죄가 아니라는 표현으로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얻고 있다. 역시 그의 벽은 들국화였을까? 그는 다시 최성원, 주찬권과 들국화로 돌아온다. 그리고 장기 공연을 펼치며 왕년의 지지자들을 다시 끌어 모은다. 들국화의 트리뷰트 앨범도 나왔으며 팬 사이트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계속 공감대를 확산시켰다. 그리고 모두들 전인권은 혼자 일 때보다 들국화의 보컬리스트일 때 가장 돋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리운 금강산’을 작곡한 아버지 최영섭에게서 탁월한 작곡 능력을 부여받은 최성원은 한 때 기타리스트로 스튜디오에서 활동했으며 군에서 제대한 후에는 CM송을 작곡하거나 음반 제작에 관여하며 신촌의 < 모노 >라는 카페에서 통기타로 노래를 부르던 전인권, 허성욱 등을 만나 들국화를 결성하게 된다. 이미 < 우리 노래 전시회 >을 기획하며 뛰어난 곡들을 발표한 그는 그룹 들국화에서 음악 감독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고 ... ‘그리운 금강산’을 작곡한 아버지 최영섭에게서 탁월한 작곡 능력을 부여받은 최성원은 한 때 기타리스트로 스튜디오에서 활동했으며 군에서 제대한 후에는 CM송을 작곡하거나 음반 제작에 관여하며 신촌의 < 모노 >라는 카페에서 통기타로 노래를 부르던 전인권, 허성욱 등을 만나 들국화를 결성하게 된다. 이미 < 우리 노래 전시회 >을 기획하며 뛰어난 곡들을 발표한 그는 그룹 들국화에서 음악 감독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고 해체 후에도 동아 기획에서 나오는 여러 가수들의 음반에 갖가지 형태로 참여하며 음악 기획자의 면모를 다진다. 전인권이 먼저 솔로 앨범을 발표 한데 이어 들국화의 멤버로서는 2번째로 음반을 내놓은 그는 보컬 면에서는 전인권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야성의 목소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미성과 가성의 섬세한 감각으로 응수한 그의 멜로디들은 낭만적인 소재의 노스탤지어 안에서 완벽한 훅들로 채워져 있으며, 또한 확고한 중심을 잡아 주고 있다. 전인권은 모든 곡을 목소리만으로 해석하는 능력을 지녔다면, 최성원은 아름다운 곡들과 거기에 어우러진 편곡, 아기자기한 가사들로 새로운 지휘자의 지평을 열었다. 이것은 들국화 시절부터 계속 화제 거리가 된 두 뮤지션의 비교 우위적 관점이다.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와 존 레논(John Lennon)의 경우처럼 자주 회자되는 두 개인의 능력은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경외의 대상이 될 만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다. 최성원의 첫 번째 앨범은 전곡이 사랑을 받으며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별이란 없는 거야’를 필두로 ‘제주도의 푸른 밤’이 심야의 라디오를 강타했으며 ‘이제는’, ‘난 이제’ 등이 최성원의 여린 음성으로 전해졌다. 이 앨범은 한 번 들으면 계속 찾게되면 마약과 같은 멜로디들로 가득 차 있으며 최성원 음악의 진수를 보여주는 결정체들로 곳곳을 빈틈없이 메우고 있다. 여러 가수들의 음반을 기획하며 제작하던 최성원은 1990년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한다. 1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프로듀싱하고 전곡을 만든 그는 과거에 강인원에게 주었던 ‘어린 왕자’를 리메이크해서 우주인으로 생각되는 인물의 나레이션을 집어넣었고 타이틀곡인 ‘솔직할 수 있도록’은 TV에 얼굴 한번 나가지 안았지만, 다운타운이나 라디오의 차트에서는 높은 순위에 랭크되며 그의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이 앨범에서는 팬들에게 ‘니 앞에서만’이 사랑을 받았고 주찬권의 곡을 리메이크한 ‘가자 바다로’ 등이 주목을 받았다. 단 두 장밖에는 솔로 음반이 나오지 않았지만, 최성원의 곡들은 후에 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었으며 < 들국화 트리뷰트 > 앨범에서도 동물원, 언니네 이발관 등이 불러 들국화 못지 않은 영향력을 떨쳤음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이후 패닉, 테라, 박주연 등의 음반을 제작하며 제작자로 더 명성을 날린 최성원은 전인권, 주찬권과 다시 손을 잡고 들국화의 재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룹 들국화에 몸담았던 뮤지션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음악성을 겸비한 시대의 기린아들이었다. 아직까지도 모든 포커스는 전인권과 최성원에게 맞추어져 있지만, 들국화 1집에서 세션으로 참가했던 최구희와 주찬권(1955년)은 들국화의 영역에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천재들이다. 이 중 주찬권은 팀웍에 기초한 드럼으로 그룹의 음악을 안정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고, 들국화의 해체가 가시화 될 때까지도 상대적으로 전혀 주목... 그룹 들국화에 몸담았던 뮤지션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음악성을 겸비한 시대의 기린아들이었다. 아직까지도 모든 포커스는 전인권과 최성원에게 맞추어져 있지만, 들국화 1집에서 세션으로 참가했던 최구희와 주찬권(1955년)은 들국화의 영역에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천재들이다. 이 중 주찬권은 팀웍에 기초한 드럼으로 그룹의 음악을 안정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고, 들국화의 해체가 가시화 될 때까지도 상대적으로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2집의 ‘또 다시 크리스마스’는 이미 그의 작곡 실력을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주찬권의 음악 생활은 1974년 그룹 뉴스 보이스를 결성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그룹 믿음소망사랑에서 앨범을 발표했던 그는 신중현이 만들었던 세 나그네란 그룹에 몸담았고 들국화의 1집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2집부터 정식 멤버로 숱한 공연을 지켰던 그는 들국화 해체 시기인 1987년에 조준형, 최효남, 장정철 등과 믿음소망사랑을 재 결성해 2집을 발표했고 전인권, 최성원, 최구희, 손진태 등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솔로 음반을 발표한다. 전곡을 작곡하며 뛰어난 멜로디 감각을 선보였던 1집으로 자신의 존재를 전면에 부각시킨 그는 이후 완성도 높은 2집과 3집을 발표하며 이상은에게 곡을 주기도 했으며 여전히 과묵하고 겸손한 모습과 서글서글한 성격 그대로 천재의 기를 발산했다. 오만과 비타협적인 기존의 재능 있는 사람들에게 느끼기 힘든 친근함이 그를 더욱 더 우러러보게 한 것이다. 최구희, 강상영 등과 그룹 도솔천을 결성해 실험성 가득한 음반을 발표한 그는 이후 여러 가수들의 세션으로, 또는 자신이 경영하는 카페에서 음악을 하며 길고 긴 내공의 시간을 쌓았다. 1998년 고 허성욱의 죽음으로 다시 들국화의 재건에 참가한 주찬권은 들국화의 이름으로 소극장으로 돌며 장기간의 공연을 가졌으며 2000년에는 영화 < Commitment >의 삽입 곡들을 연상시키는 블루스의 필이 가득한 앨범 < One Man Band >를 발표했다. 혼자 작사, 작곡, 편곡은 물론이고 모든 악기를 연주한 이 앨범으로 그는 노장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관록을 선사했으며 그간 과거의 음악에만 젖어 노력하지 않는 기존 선배들의 이미지를 한 순간에 날려버렸다. 비록 댄스 음악에 밀려 시장의 외면을 받긴 했지만 아직도 들국화의 신화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 용기 있는 시도였다. 전인권, 최성원과 함께 들국화의 멤버로 새 앨범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묵묵하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우리의 곁을 지키고 있는 자연과 같은 뮤지션이다.
미국 흑인 음악의 뿌리를 지니고 있는 블루스라는 장르를 한국에서 꽃 피운 신촌블루스는 리더 엄인호의 지휘아래 처음에는 신촌 지역의 작은 카페에서 잼 형식의 공연을 하며 자기 만족을 누렸던 그룹이다. 스트레이트한 록의 기법이 다듬어지고 축적되어 결국 열반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이들의 블루스는 20세기 음악의 문법을 장악한 록을 탄생시킨 장르이며 고향을 그리는 흑인 노예들의 갈구와 타향살이의 절규를 승화시켜 소울과도... 미국 흑인 음악의 뿌리를 지니고 있는 블루스라는 장르를 한국에서 꽃 피운 신촌블루스는 리더 엄인호의 지휘아래 처음에는 신촌 지역의 작은 카페에서 잼 형식의 공연을 하며 자기 만족을 누렸던 그룹이다. 스트레이트한 록의 기법이 다듬어지고 축적되어 결국 열반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이들의 블루스는 20세기 음악의 문법을 장악한 록을 탄생시킨 장르이며 고향을 그리는 흑인 노예들의 갈구와 타향살이의 절규를 승화시켜 소울과도 맥을 같이 하는 음악이었다. 신촌블루스는 그룹에서 활동하던 많은 가수들이 솔로로 독립하면서 수없이 많은 멤버 교체가 있었지만 엄인호가 대들보로 있으면서 4장의 앨범을 통해 블루스라는 흑인 정서의 음악을 한국화 시킨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부산에서 DJ를 했던 엄인호는 1979년 이정선, 이광조 등과 함께 트리오 풍선으로 데뷔했으며 주로 포크록 계열의 음악을 연주하다가 1986년 이정선, 이광조, 한영애, 고 김현식 등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신촌블루스를 탄생시켰다. 1988년에 발표한 이들의 1집은 정통 블루스를 하고 싶었던 이정선이 주축이 되었으며 엄인호의 ‘그대 없는 거리’와 ‘아쉬움’이 상당한 인기를 얻었으며 대학가를 중심으로 이들의 공연이 성황리에 이어져 갔다. 다양한 조인트 형식의 세션을 가졌던 이들은 한영애가 빠진 자리를 김현식이 주도적으로 메우고 정서용, 봄여름가을겨울 등이 참여해 다음해 2집을 발표한다. 기존 블루스의 음악에 레게나 펑키, 재즈 등의 다양한 장르를 시시때때로 가미하며 장르의 합종연횡을 거듭했던 이들은 2집에서 앨범의 완성도를 위해 ‘환상’과 같은 곡에서 브라스를 배치했으며 ‘골목길’을 히트시키며 블루스계열의 음악을 주요한 트렌드의 하나로 격상시킨다. 3집부터 이들은 팀에서 기타를 담당했던 엄인호와 이정선은 음악의 견해 차이를 보여 헤어지고 2인자였던 엄인호에 의해 독자 노선을 걷는 신촌블루스 시대를 시작한다. 엄인호의 음악적 역량이 잘 표출된 이들의 3집에는 ’’90년대를 통해 보컬의 힘을 보여준 정경화, 이은미가 가세해 색다른 블루스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엄인호의 ‘향수’, 김현식의 ‘이별의 종착역’, 연주곡 ‘신촌, 그 추억의 거리’ 등에서 편안한 엄인호식 블루스를 표현하고 있다. 1994년 4집을 발표했지만 전국을 휩쓴 댄스 열풍으로 아무런 반응도 얻지 못한 이들은 현재 엄인호를 주축으로 잦은 교체를 보이는 멤버들과 공연 위주의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1991년 라는 독집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던 엄인호는 일본의 박보 밴드와 프로젝트 앨범 를 발표하고 한.일을 오가며 활발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엄인호는 현재 2001년 5월 개봉을 준비중인 영화 음악을 맡아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노래만을 위해 혼을 불사른 가수로 사후에 절대적인 평가를 받는 김현식은 고등학교 시절 밴드부에 몸담은 경력이 있으며 학교에서 자퇴한 후에는 음악다방에서 통기타를 치며 음악에 대한 꿈을 꾸었다. 그는 1978년 이장희의 주선으로 솔로 앨범을 준비했으나 대마초 사건과 회사 사정으로 2년이나 늦게 자신의 앨범을 갖게 된다. 이 앨범에는 후에 그룹 봄여름가을겨울의 주요 레파토리가 되는 ‘봄여름가을겨울’이 있고 3집에 다... 노래만을 위해 혼을 불사른 가수로 사후에 절대적인 평가를 받는 김현식은 고등학교 시절 밴드부에 몸담은 경력이 있으며 학교에서 자퇴한 후에는 음악다방에서 통기타를 치며 음악에 대한 꿈을 꾸었다. 그는 1978년 이장희의 주선으로 솔로 앨범을 준비했으나 대마초 사건과 회사 사정으로 2년이나 늦게 자신의 앨범을 갖게 된다. 이 앨범에는 후에 그룹 봄여름가을겨울의 주요 레파토리가 되는 ‘봄여름가을겨울’이 있고 3집에 다시 실리는 ‘떠나가 버렸네’ 등이 실려 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밤무대를 떠도는 무명의 가수로 생계를 이어간다. 결혼과 함께 피자 가게를 운영하기도 했던 그는 1984년 그의 소울 창법이 블루스 속에서 빛을 발하는 2집을 발표한다. 이 앨범에서 ‘사랑했어요’와 ‘어둠 그 별빛’, ‘당신의 모습’ 등이 크게 사랑 받았으며 그는 대중적인 인지도를 서서히 얻기 시작한다. 그는 한때 조원익이 리드하고 최구희가 기타를 치던 그룹 동방의 빛 리드싱어로 있기도 했으며 이 그룹의 해체 후에는 정성조가 팀을 이끌어 가던 메신저스의 싱어도 맡으면서 진가를 발산하기도 했다. 김종진, 전태관, 고 유재하와 후에 빛과 소금이라는 그룹으로 활동하는 박성식 장기호 등과 함께 만든 그룹 봄여름가을겨울과 같이 한 3집은 그를 인기 가수로 만든 앨범이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은 ‘비처럼 음악처럼’은 비가 오는 날이면 여지없이 라디오의 전파를 탔으며 ‘그대와 단둘이서’, ‘쓸쓸한 오후’ 등이 연이어 인기를 끌었다. 이 앨범에는 후에 그들의 앨범에 실리게 되는 ‘쓸쓸한 오후’를 비롯한 봄여름가을겨울의 작품과 유재하의 작품 ‘가리워진 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대마초로 약 2달간 전인권, 허성욱 등과 구속되었던 그는 삭발 콘서트를 벌여 대성공을 거두고 1988년 4집을 발표한다. ‘언제나 그대 내 곁에’가 사랑을 받은 4집에는 윤상의 데뷔 곡 ‘여름밤의 꿈’ 고 유재하의 ‘가리워 진 길’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3집의 ‘우리 이제’에 이어 ‘한국 사람’이라는 하모니카 곡이 그의 연주로 한 트랙을 차지하고 있다. 이정선과 엄인호의 신촌블루스에서 절절한 필링의 블루스를 열창하던 그는 강인원, 권인하, 신형원 등과 영화 < 비오는 날의 수채화 >의 메인 타이틀을 불러 엄청난 인기를 모은다. 그러나 고독을 항상 술로 달래던 그는 이 때부터 육체적으로 힘든 나날 속에 노래를 부르는 병자의 모습으로 살게 되고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가운데 병원을 드나들기 시작한다. 1990년에는 그의 공식적인 앨범으로서는 마지막인 5집이 발매되고 하반기에는 그가 ‘이별의 종착역’을 부른 신촌블루스 3집이 발매된다. 그의 5집은 특별한 히트곡은 없었지만 ‘넋두리’, ‘향기 없는 꽃’이 사후에 사랑을 받았으며 < 비오는 날 수채화 >에 실린 ‘그 거리 그 벤치’도 영화 사운드 트랙의 판매에 힘입어 라디오에서 자주 흘러 나왔다. 1990년 11월 1일 오후 5시 20분 그는 초인적인 힘으로 6집을 녹음하다 지병인 간경화로 자택에서 사망했다. 불과 서른 두 살의 나이로 그를 아끼는 많은 팬들과 동료들의 염원도 소용없이 너무나도 빨리 지상에서 사라졌다. 사후 앨범인 6집은 팬들의 명복 속에 밀리언셀러를 기록했으며 히트곡 ‘내 사랑 내 곁에’는 오태호에게 작곡가상의 영예를 안겨 주었다. 그의 사망 1주기에는 추모콘서트가 열려 김수철, 이정선, 전영록, 강인원, 조하문, 한영애, 김태화, 봄여름가을겨울 최호섭, 권인하 등 30여 명의 가수들이 참가해 그의 노래를 부르며 그의 부재를 안타까워했고 2000년에는 그의 트리뷰트 앨범에 신인 가수와 중견 가수들이 골고루 참여해 그를 기리는 것은 물론 가요계 화합의 장으로 이어졌다. 김현식, 그는 모든 악기와 곡의 멜로디, 리듬을 떠나서 목소리만으로도 영혼을 울릴 수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그의 음성 자체가 외로움이 되고 사랑이 되며 무궁무진한 절대적 표현이 됨을 보여준 절창의 뮤지션이다.
현존하는 그룹들 중에서 최장수 그룹으로 인정받고 있는 사랑과 평화는 처음에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던 최고의 뮤지션들이 모여 결성되었다. 이들은 펑키한 감각을 펼쳐 보임으로써 미국 병사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렸으며 그에 따라 대우도 국내 뮤지션들 중에서 최고의 액수를 지급 받았다. 당시 활동 정지를 당했던 이장희의 지원에 힘입어 본격적인 국내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절대적 명반의 한 칸을 차지하는 데뷔 앨범을 197... 현존하는 그룹들 중에서 최장수 그룹으로 인정받고 있는 사랑과 평화는 처음에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던 최고의 뮤지션들이 모여 결성되었다. 이들은 펑키한 감각을 펼쳐 보임으로써 미국 병사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렸으며 그에 따라 대우도 국내 뮤지션들 중에서 최고의 액수를 지급 받았다. 당시 활동 정지를 당했던 이장희의 지원에 힘입어 본격적인 국내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절대적 명반의 한 칸을 차지하는 데뷔 앨범을 1978년 발표한다. 한번 들으면 절대 잊혀지지 않는 가사와 멜로디로 충격을 몰고 온 ‘한동안 뜸했었지’가 들어 있는 이 앨범은 펑키한 기타 사운드가 전체를 휘감고 있는 가운데 레게풍의 ‘노래여 퍼져라’, 펑키한 재즈 감각의 농익은 연주를 선보인 ‘뭉게 구름’, 김명곤의 키보드가 춤을 추는 베토벤(Beethoven)의 ‘운명’ 등이 탄탄한 연주력과 호흡을 증명해 주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내공이 되어 있는가를 오늘날 들어도 여실히 느끼게 해 주고 있다. 1978년을 온통 ‘한동안 뜸했었지’의 해로 만든 이들은 다음 해 또 한 장의 명반을 내놓으며 국내 그룹 중 최고의 라인업을 자랑한다. 2집에 수록된 ‘장미’는 전작에 못지 않은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으며 ‘딱 꼬집어 얘기 할 수 없어요’를 비롯한 앨범의 수록곡들은 다시 한번 드림팀의 면모를 과시한다. 2집에서는 송홍섭이 이남이 대신에 들어 왔으며 1집의 ‘뭉게 구름’같이 ‘축제’, ‘솔바람’ 등의 창작곡과 ‘엘리제를 위하여’, ‘아베마리아’ 등과 같은 클래식 소품들을 연주곡으로 삽입해 최고의 기량을 인정받았다. 당시에 흔치 않았던 이러한 시도는 펑키함 외에도 프로그레시브한 면과 재즈적인 측면을 강조한 그룹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이들은 그러나 음악적 견해차로 인해 갈등을 겪게 된다. 그리고 드러머 김태홍의 갑작스런 교통사고는 팀을 와해의 상태로 만들어 공백기를 조성한다. 이 기나긴 휴식기에는 몇몇의 새로운 멤버들이 사랑과 평화를 거쳐간다. 재즈피아니스트 김광민과 정원영, 드러머 문영배 등이 바로 그들로, 이들은 후에 국내 대중 음악계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인물들로 자리잡는다. 한편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몇몇 재즈 팀에서 활동하던 최이철은 사랑과 평화에서 했던 재즈록의 열망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이남이를 불러들인다. 그리고 촉망받던 연주인들을 불러모아 10여 년만에 새 앨범을 내 놓는다. 이 앨범에서는 ‘울고싶어라’가 크게 히트하고 ‘겨울바다’, ‘노래는 숲에 흐르고’ 등과 같은 훌륭한 곡들로 이들이 실력이 녹록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가수 김세화가 리메이크 작품을 다시 내놓는 등 그 해를 강타했던 ‘울고싶어라’는 이남이의 개인적인 인기를 부풀려 놓음으로써 이남이의 솔로 독립만을 지원한 꼴이 되었다. 오뚜기 최이철은 다시 퓨전 재즈의 가능성을 이 땅에 심어준 봄여름가을겨울 출신의 빛과 소금 두 멤버를 영입해 두 팀의 공통점인 재즈적인 팀컬러를 확실히 구축한다. 이 작은 거장들이 합세한 4집 음반은 음반사의 경제 악화에도 불구하고 ‘샴푸의 요정’이라는 히트곡을 내었으며 이들은 한국을 대표하여 < 환태평양 록 오사카 음악제 >에 출전해 사물놀이와 양약을 섞은 ‘덩더쿵’이라는 곡으로 일본 관계자들로부터 격찬을 받는다. 이 환대로 < 경주 엑스포 >에서 펼쳐진 특별 무대를 갖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박성식과 장기호가 종교적인 이유로 팀을 떠나 빛과 소금이라는 팀을 결성하자, 최이철은 또 다른 라인업을 구상해야 했다. 과거에 팀에서 같이 잠깐 활동했던 이병일 , 이승수, 안정현 등의 뮤지션과 함께한 최이철은 ‘못 생겨도 좋아’가 실린 5집, ‘착각하지마’가 들어 있는 6집을 발표하며 댄스 음악의 한복판을 정면 돌파해 나갔다. 하지만 예전만큼의 인기를 획득하지는 못했다. 현재 이들은 그간 꾸준히 팀을 이끌어 오던 최이철이 팀을 떠나 개인 활동에 들어가고 나머지 멤버가 송기영과 이권희를 받아들여 사랑과 평화를 계속 유지해 오고 있다.
약관의 나이에 CBS 라디오 프로그램 < 세븐틴 >의 MC로 방송계에 입문한 이문세(1959년)는 1980년대 발라드 주자 중 최고의 인기를 누린 가수이자 DJ이다. 그가 작곡가 이영훈을 만나 발표한 1980년대 후반의 명반들은 한 앨범에서 단일 히트곡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곡의 히트곡이 뜰 수 있게 만든 촉발점이 되었으며, 그 전까지 과거의 곡들을 재탕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던 시점에서 앨범의 완성도에 대... 약관의 나이에 CBS 라디오 프로그램 < 세븐틴 >의 MC로 방송계에 입문한 이문세(1959년)는 1980년대 발라드 주자 중 최고의 인기를 누린 가수이자 DJ이다. 그가 작곡가 이영훈을 만나 발표한 1980년대 후반의 명반들은 한 앨범에서 단일 히트곡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곡의 히트곡이 뜰 수 있게 만든 촉발점이 되었으며, 그 전까지 과거의 곡들을 재탕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던 시점에서 앨범의 완성도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을 획득하게 했다. 그의 음반부터 시작된 음반 가격 인상으로 구매자들의 출혈은 심해졌지만 그는 당당히 그 난관을 작품성으로 돌파해 나갔다. ‘나는 아직 모르잖아요’와 ‘휘파람’으로 오랜 꿈이었던 가수로서의 정상에 올라서자, 그의 절대적인 지지자들이 라디오 프로그램 < 별이 빛나는 밤에 >로 모이기 시작했다. 연일 나오는 그의 노래와 모든 중.고생들의 공개방송 방청열풍은 월요일 학생들의 주요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에 나온 그의 4집은 100만장 설을 등에 업고 끊임없는 상승을 거듭했다.

그의 앨범이 없는 학생들은 왕따가 되었으며 그의 노래 한 두 곡 따라 부르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모든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4집의 전곡을 틀었다. 그가 출연하지 않은 TV 가요 순위만 빼고 이문세는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TV 순위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믿음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이런 대외적인 신임에 힘입어 이문세는 이영훈과 합작한 최고의 걸작을 1988년 공개한다. 세상을 떠나는 연인의 이별 곡 ‘시를 위한 시’, 세미 트로트 ‘광화문 연가’, 재즈와 블루스의 합작품 ‘기억의 초상’, 초췌한 회상의 연가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사랑에 빠진 자의 대용물 ‘붉은 노을’, 한 영혼을 차지하고 있는 오랜 연인에 대한 불면의 고백 ‘내 오랜 그녀’ 등이 수록된 이 앨범은 작곡가 이영훈의 이별과 추억에 대한 개인사를 중심으로 만들었으며 그룹 사랑과 평화 출신의 김명곤이 편곡을 주제 했다. 이문세는 이 앨범으로 3연속 골든 디스크 상을 수상했으며 연말의 각종 가수상과 라디오에서의 활약으로 DJ상을 독식했다.

그는 3집으로 정상권에 진입한 뒤 TV에는 출연하지 않았지만 계속 매체의 힘을 빌리며 자신의 입지를 다졌다. 가수로서의 인기가 식은 다음에도 < 별이 빛나는 밤에 >와 TV 프로그램 < 일요일 일요일 밤에 >의 MC로 계속 전업을 이어가며 결코 가수로서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고 이러한 성과는 1996년 김현철, 유희열, 정원영, 황세준 등을 끌어들인 < 화무 >에서 ‘조조할인’의 히트로 빛을 발한다. 청소년들에게 최고의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던 < 별이 빛나는 밤에 >로, 10년 이상 방송한 DJ에게 주는 골든 마우스 상을 수상한 그는 1996년, 이 프로그램을 울음으로 끝맺고 TV의 MC로 자리를 옮겨 < 이문세 쇼 > 등을 진행한다. 그리고 가수 못지 않게 항상 DJ라는 직업의 사랑을 강조해온 그답게 < 2시의 데이트 >라는 MBC 간판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옮겨 매끄러운 말솜씨로 절정의 감각을 발휘한다.

1980년대의 가수들이 무명으로 건너온 1990년대를 방송을 중심으로 바쁘게 뛰어온 이문세는 오랜 파트너 이영훈과 다시 손잡고 13번째 앨범을 2001년에 발표한다. 이 앨범에는 N세대보다는 1980년대 그의 음악을 사랑했던 팬들이 사랑할만한 음악들로 가득 차 있으며 녹록치 않은 이영훈의 감각이 여전히 쓸만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전에 그는 박상원과 < WAD피플 >이라는 매니지먼트 회사를 차리고 헤이(Hey)라는 여가수를 지원하고 있다. 그의 인기의 바탕에는 이영훈과 DJ라는 무시 못할 지원자가 있었던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엔터테이너로서 가지고 있던 뛰어난 기질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 대중음악에 있어 다양한 장르의 지평을 연 ’80년대에는 블루스 음악을 선도한 신촌블루스와 본격적인 퓨전 재즈의 향취를 풍긴 봄여름가을겨울으로 인해 그 다양성을 꽃 피울 수 있었다. 특히 봄여름가을겨울의 음악은 당시 우리 나라에도 불기 시작한 퓨전 재즈 동호인들의 확산과 더불어 주목을 받았으며 초창기 같이 인기를 얻었던 ‘샴푸의 요정’의 빛과 소금, ‘춘천 가는 기차’의 김현철, 이후 버클리4인방 정원영, 한... 한국 대중음악에 있어 다양한 장르의 지평을 연 ’80년대에는 블루스 음악을 선도한 신촌블루스와 본격적인 퓨전 재즈의 향취를 풍긴 봄여름가을겨울으로 인해 그 다양성을 꽃 피울 수 있었다. 특히 봄여름가을겨울의 음악은 당시 우리 나라에도 불기 시작한 퓨전 재즈 동호인들의 확산과 더불어 주목을 받았으며 초창기 같이 인기를 얻었던 ‘샴푸의 요정’의 빛과 소금, ‘춘천 가는 기차’의 김현철, 이후 버클리4인방 정원영, 한상원, 한충완, 김광민 등과 더불어 아직까지도 대표적인 퓨전 재즈 밴드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김현식의 노래 제목에서 따온 봄여름가을겨울은 처음에 김종진, 전태관, 후에 그룹 빛과 소금을 결성하는 장기호, 박성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들은 김현식의 3집 앨범에 참여해 그의 공연에서 백밴드로 활약하며 같이 곡 작업을 하는 등 자신들의 역량을 강화하였다. 이 중 정원영의 유학기념 송별 파티에서 만나 평소 유대를 쌓아오던 김종진과 전태관은 장기호, 박성식 등 다른 활동을 모색한 팀원들의 탈퇴 후에 봄여름가을겨울이란 이름으로 첫 앨범을 발표한다. 피아노로 재즈의 새 영역을 개척해 가는 한충완, 베이스 주자 송홍섭 등과 같이 작업한 이들의 1집은 커다란 주목을 받진 못했지만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 ‘거리의 악사’ 등과 같은 그 이전에는 없었던 연주곡에 대한 배려와 인기를 얻은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에서 보여주는 곡 구성력은 스트레이트하지 못한 김종진의 보컬을 커버해 주며 새로운 장르의 출현을 선포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마침내 1989년 나온 2집으로 이들은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2곡의 연주곡은 라디오 방송의 마지막 곡으로 자주 소개가 되었으며 스매시 히트를 기록한 ‘어떤 이의 꿈’, ‘열 일곱, 스물 넷’, 리메이크 곡 ‘쓸쓸한 오후’, ‘봄여름가을겨울’, 후에 이현도가 리메이크 해 히트시키는 ‘사랑해’ 등이 수록된 이 앨범은 봄여름가을겨울을 메인 스트림의 한 지류로 부상시킨 앨범이며 퓨전 재즈 인구 증가에 공헌한 앨범이다. 라이브 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룬 이들은 공연 실황을 앨범에 담아 ‘외롭지만 혼자 걸을 수 있어’라는 신곡을 발표하고 이어 김종진이 제작하고 대부분 작곡한 최태완의 솔로 앨범을 지원한다. 이 앨범은 대중적으로 실패했지만 이들의 나날이 발전해 가는 이들의 역량을 실험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가 되었으며 외국 세션들과 작업한 3집의 밑바탕이 되었다. 1992년에 발표한 이들의 < 농담, 거짓말 그리고 진실 >은 미국에서 제작했으며 앨범에 참가한 모든 뮤지션을 미국인으로 채워 사운드는 물론 연주면 에서도 최고의 테크닉을 노린 앨범이다. 이 앨범은 이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최고의 상업적 성공을 가져다주었으며 ‘10년 전 일기를 꺼내어’, ‘그대 사진에 입맞춤’ 등이 인기를 모았다. 최고의 절정기를 보낸 이들의 하강기는 4집부터 찾아온다. 마찬가지로 외국의 세션을 기용한 이 앨범은 단 한 곡의 히트곡도 내지 못하는 앨범이 되고 말았으며 신중현의 ‘미인’을 리메이크해 활황 하는 댄스씬을 꺾고자 했던 5집, 강기영, 김세황, 이현도, 이정식, 신해철, 이주노, 김현철, 이소라 등 초호화 세션을 불러모아 변해 가는 입맛에 최대 부응하려 했던 6집도 ‘이기적이야’의 진솔한 반성도 사라져버린 팬들을 잡지 못하고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 왔다. 이들은 1997년 신곡 ‘언제나 겨울’이 들어 있는 베스트 앨범을 발표했다. 연주곡과 가사가 있는 CD로 나뉘어 나온 이 앨범에서 연주곡들은 리마스터링해 더욱 완벽한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소속사인 동아기획은 이 앨범이 나온 2년 후 이들과 상의 없이 다른 베스트 앨범을 발매해 이로 인해 서먹한 관계를 유발시키기도 했다. 이들은 1999년 자정을 넘기는 공연을 < 生生 Live! >라는 타이틀로 가졌는데, 공연실황과 사진집을 담은 앨범을 2000장 한정판으로 발매해 공연에 참여한 관객에 한해 우송하는 팬 서비스를 벌여 항상 새로운 시도로 시대에 뒤지지 않으려는 성의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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