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는 화가이기 전에 미식가였다!
섬세한 미각으로 삶을 구석구석 맛본 모네,
그의 부엌, 그의 식탁, 그의 정원, 그의 아틀리에를 들여다보다
모네의 요리 수첩을 보면서 나는 의외의 기쁨을 맛보았다. 그의 수첩은 소박하고 서민적이면서 맛있는 요리들의 보고(寶庫)였다. 어떤 요리는 눈을 감고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지만, 전문가 수준으로 난이도가 높은 것도 있는데, 지금처럼 편리한 조리 도구들이 전무한 시절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런 요리를 집에서 해 먹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만의 창의적인 식도락관, 푸짐한 요리들, 빼어난 요리법들, 한 시대의 식단을 진실하게 증언하고 있는 그 귀중한 수첩들, 자기만의 일상을 만들어간 라이프스타일. 모네를 알게 된 것은 내게 정말 큰 행운이었다. _조엘 로뷔숑(요리사, 작가)
마흔네 해 동안, 지베르니는 모네를 품었고 모든 것을 베풀었다. 그 땅에서 얻은 채소와 과일, 새와 물고기 들로 ‘맛있는 요리를 만들겠다는 생각 말고는 별다른 야심이 없었던’ 모네 부부는, ‘세상의 끝’과 같은 지베르니에서 마음껏 먹고 마시며 삶을 만끽했다. 이제 지베르니는 그 너그러운 품을 열어 우리를 모네의 식탁으로 초대한다. ‘셀러리, 금빛 꽃상추, 시금치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걸으며,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모네가 지베르니의 축복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그가 남긴 풍성한 향연에 취해, 여전히 아름답고 영원히 아름다울 그 땅을 그리워한다. _황경신(작가)
모네의 식탁을 포스팅하다
‘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준다’는 말이 있다. 트위터에서, 블로그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식탁을 전시하고, 누군가의 식탁을 엿본다. 인상파의 거장 화가 클로드 모네가 오늘날 우리들의 간편하고 간소해진 식탁을 보았다면 진짜 맛있을 음식을 먹어본 적 없는 야만인 취급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인상파’라는 말의 기원이 된 「해돋이-인상」의 작가이자 ‘수련’ 연작 등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화가 중 한 사람인 모네는 탁월한 예술가이기도 했지만 대단한 미식가이기도 했다. 모네는 맛있지 않으면 음식이 아니며, 음식은 맛있게 먹기 위해 먹는 것이라고 여긴 진정한 식도락가였다. 화가로서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해 제대로 벌이를 못하던 시절에도 요리사를 두 명이나 두었을 정도이니, 먹는 것에 대한 그의 열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한번 정한 식사 시간은 일종의 의식처럼 평생 지키고, 한 끼의 식사를 마련할 때에도 재료의 품종부터 신선함과 맛까지 세밀하게 따졌다. 지베르니로 이사 갔을 때 모네 일가가 가장 먼저 한 일도 집수리와 더불어 정원을 가꾸고 채소밭을 만드는 것이었다. 오로지 잘 먹기 위해서였다. ‘수련’ 연작으로 유명한, 사시사철 온갖 꽃이 피어나던 정원은 사실 모네 가족의 밥상을 책임지는 채소밭이요, 닭과 오리를 키우는 마당이기도 했다. 지베르니의 정원과 자연은 그의 캔버스뿐만 아니라 식탁도 함께 채워준 천혜의 선물이었던 셈이다.
“모네는 자기 그림은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린 것에 불과하며, 그림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모네는 맛있지 않으면 요리가 아니며, 음식은 번듯하게 먹으라고 있는 것이라고 태연히 말했을 법하다. 모네는 늘 음식은 맛있게 먹어야 한다고 여겼고 그렇게 살아왔다.”_본문에서
클로드 모네와 아내 알리스가 만든 그들만의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에 주목해, 특히 그들의 식생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오랜 시간 연구해온 미술사가 클레르 주아는 마치 그들의 일상을 매일매일 포스팅 하듯이 편안하고 유려하게 모네의 ‘그림 같은’ 식탁 이야기를 풀어간다. 지은이는 요리와 식생활을 중심으로 모네의 일상사, 생활사에 밀착해 서술하는데, 그 덕분에 모네의 인생과 예술세계와 사람됨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모네의 후손인 장-마리 툴구아, 유명 셰프이자 작가인 조엘 로뷔숑의 도움을 받아 복원한 모네의 ‘요리 수첩’도 책 후반에 함께 실려 있는데, 이러한 구성은 마치 전채와 메인 그리고 후식까지 정성스레 잘 짜놓은 코스 요리처럼 입맛을 돋운다. 수프, 소스, 전채 요리와 다양한 메인-새고기, 소고기, 돼지고기, 사냥고기, 생선 등-요리, 후식과 티타임용 간식 그리고 잼과 저장식품까지 즐겨 먹은 음식들을 기록한 모네의 요리 수첩을 읽어보면, 누구나 100여 년 전 모네의 푸른색 타일이 둘러진 부엌의 화덕에서 만들어진 요리를 하나쯤 재현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게다가 지베르니의 집과 정원의 풍경을 담은 사진과 모네 일가의 식탁에 올라간 음식들을 재현한 아름다운 화보를 보면 식욕이 절정에 달할 것이다.
그렇다면 모네는 과연 어떤 식도락가였을까? 엄청난 식탐의 소유자였던 괴테, 여성을 유혹하는 방법보다 언혹적인 요리 비법을 남긴 카사노바까지 미식가들이야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언제나 존재했으며, 특히 현재의 기준에서 보면 이 정도의 미식 취향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는 디저트 칼로리만 해도 요즘의 웬만한 한 끼 식사에 버금갈 정도로 음식에 관해서는 어쨌든 질보다 양이 우선이던 시대였다. 뿐만 아니라 와인, 치즈, 메뉴판 적는 법, 각종 식사예법 등 오늘날 세계적으로 알려진 프랑스식 요리문화가 간신히 걸음마를 시작하던 무렵이었고, 운송과 보관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그때그때 신선한 식재료를 구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음식에 관한 모네의 철학은 별나고 호사스런 것이었다. 게다가 이를 제대로 실행에 옮긴다는 것은 대단한 열정과 수완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모네는 채소밭을 꾸미기 위해 루아르 계곡 지방과 센 강 유역의 품종 카탈로그를 샅샅이 뒤지곤 했다. 새고기 요리에 대해서도 극도로 까다로워 마음에 드는 씨암탉이나 씨오리를 찾으려고 오랜 시간을 들여 각종 조류 상점과 사육장을 돌아다녔다. 모네 가족은 식탁에는 반드시 채소가 올라와야 한다고 여겼다. 따라서 채소 재배도 체계적으로 하는 것이 당연했다. 특히 정원사 플로리몽에게 관리를 맡겼던 채소밭은 모네가 자랑스러워하는 걸작(!)이었다. 채소밭은 화원, 각종 축사, 직접 담근 진한 와인, 연못의 수련, 깔끔한 양복, 모네 가족의 요리사 마르그리트가 쉴 새 없이 만들어내는 훌륭한 음식, 아틀리에 겸 거실에서의 독서 시간 등처럼 모네의 세계에서 핵심을 이루는 요소였다. 모네는 여행을 갈 때마다 종자와 모종을 구입했고, 정원 가꾸기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과 품종을 교환했으며, 지베르니의 기후는 아랑곳하지 않고 키우기 힘든 수종을 즐겨 시도했다. 종자 카탈로그도 수없이 모았으며, 종자, 화분, 묘목 보호용 유리 덮개, 온실을 덮을 거적 등을 끊임없이 주문했다. 모네는 채소 수확 시기에 대해서도 굉장히 까다로워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불벼락을 내려 정원사를 전전긍긍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마음에 들었던 유명 식당이나 호텔의 요리법을 가져와 이대로 해보라며 던져주어 집안의 요리사들을 혼란과 좌절에 빠뜨리곤 했다. 모네 일가의 식탁 이야기가 이토록 드라마틱한 이유는 놀랍도록 정력적으로 숱한 실험을 거듭하고, ‘맛있는 음식’을 향한 애착을 탁월하게 구현하는 과정에 있다. 이런 태도를 통해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모네 일가만의 라이프스타일이 탄생한 것이다.
넉넉하고 까다로운 정력가, 모네가 요리한 삶
첫 번째 부인 카미유가 세상을 떠난 후, 알리스 오슈데와 파리를 떠나 시골 마을 지베르니로 이사하던 날부터 모네의 인생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스스로 선택한 소박한 시골 생활과 대도시 특유의 자유롭고 독립적인 정신이 매력적으로 배합되어 있던 지베르니의 정원은 모네에게 세상과 격리되어 창작에 몰두할 수 있는 정신적 도피처였다. 또한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고도 날씨와 햇빛에 따라 작품의 소재가 될 풍경을 무한히 제공하는 자연의 축소판이자, 온갖 초목이 우거진 조경을 통해 거주 공간을 예술로 승격시키고자 하는 모네와 알리스의 의도와 식도락의 꿈을 실현시켜줄 무대이기도 했다.
“이 집에서는 맛있는 음식에 관심이 없다고 고백하는 일은 삼가는 편이 좋았다. 그랬다간 당장 야만인 딱지가 붙고 불쌍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 뻔했다.”_본문에서
모네 일가의 생활은 끝없이 이어지는 손님 초대와 소풍, 사냥 등을 축으로 돌아갔다. 그 중심에는 늘 손님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근사한 요리들이 있었다. 이 책은 이처럼 식생활이라는 가장 일상적인 영역에서도 개인적 취향과 예술적 향취가 배어나기 시작한 세기말의 분위기를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모네 일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일견 사소해 보이는 일화들과 꼼꼼한 묘사를 통해 인상파 그룹을 위시한 예술가들의 뒷얘기나 당시 문화계의 흐름은 물론 식민지배와 이국취향으로 인한 급격한 식습관 변화, 당대에 불어닥친 일본 문화의 유행, 고단한 하인 계층의 삶, 테크놀로지가 프티부르주아의 생활양식을 바꾸기 시작하던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의 사회상, 전위예술ㆍ문화적 스노비즘ㆍ사치스런 소비로 대변되는 사교계 등 다양한 일상의 풍경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시대상과 함께 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모네의 식탁이 성장과 모험과 격변과 몰락을 겪는 현장이 한 편의 소설처럼 묘사된다. 한 집안의 식탁 너머로 한 영혼의 색깔과 한 시대의 입맛을 동시에 일견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