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망라하는 철학적 개념들 수많은 흥미진진한 심리학 실험들
이를테면 자존감증진 운동의 사례를 보자.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아이들을 키우는 데 ‘자존감’이란 개념이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지만, 이미 1970년대부터 자존감이 중요한 성공 원인으로 간주되면서 자존감증진 운동이 전 세계에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1986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인 자존감증진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는데, 당시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 만연한 범죄, 십대 임신, 약물중독, 낮은 학업 성취도 등의 원인이 낮은 자존감 때문이라고 진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의 자존감을 증진시키면 이것이 사회적 질병을 예방하는 ‘사회적 백신’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교사들은 ‘모든 아이들은 자신이 진정한 기적이라고 믿을 자격이 있고 (…) 아이의 행복과 성공에 자존감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라고 적혀 있는 교사 지침서를 받았으며, 학생들은 아침마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다!’ 또는 ‘○○야! 넌 참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야’와 같은 구호를 외치며 체계적인 프로그램 관리를 받았다.
그러나 1990년대에 이 운동의 결과를 살펴본 모든 연구들은 이 운동이 학생들의 성적을 향상시키지도 못했고, 반사회적 행동이나 마약중독을 감소시키지도 못했으며, 어떤 좋은 결과도 얻어내지 못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자신이 잘났다고 믿게 하는 부작용을 낳아 공부를 더 안 하게 되고, 성인이 되어서도 항상 칭찬받아야 한다는 불안증으로 고생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1995년 캘리포니아에서 자존감증진 운동을 담당하던 부서는 폐지되고 만다.
또한 1995년 국제 수학경시대회에서 미국 학생들은 가장 낮은 점수를 받고 한국 학생들은 가장 높은 성적을 얻었는데, 학생들에게 자신이 수학을 얼마나 잘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봤을 때는 미국 학생들이 스스로를 가장 높게 평가하고, 한국 학생들은 가장 낮게 평가했다. 수학에 대한 자존감이 수학에 대한 성취도와 반대되는 모순이 나타난 것인데, 이 사례는 ‘좋은 감정’이라는 심리가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을 정확히 볼 수 없게 한다는 예로 종종 인용되곤 한다. 이런 예는 해마다 국제 수학경시대회 때마다 반복되는 결과를 보이기 때문에 미국 교육계에 큰 논란 중 하나가 되고 있다. 결국 자존감이란 자동차 축전지처럼 인위적으로 충전되는 것이 아니며, 마치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효과가 없는 것처럼 자존감도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 삶의 결과인 것이다. (본문 107쪽 참고)
한편 인간의 내적 동기인 자발성(재미, 의미 추구)과 외적 동기인 보상 중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인가에 대한 실험도 흥미롭다. 이스라엘에서는 매년 기부의 날에 고등학생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기부금을 모금하는데, 이러한 활동에 금전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면 동기부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실험을 해봤다. 학생들을 세 그룹으로 나눈 다음 A그룹에게는 기부 활동의 중요성만을 설명해주고 집들을 방문하도록 했으며, 나머지 B그룹과 C그룹에게는 같은 내용의 설명을 한 다음 B그룹에게는 모집 금액의 1%를, C그룹에게는 10%를 돈으로 보상해준다고 했다. 그 결과 A그룹 학생들이 모은 기부금이 B그룹과 비교해서 55%, C그룹과 비교해서는 9%가 많았는데, 금전적인 보상이 오히려 이들의 활동 의욕을 꺾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중 한 예로, 2009년 마이크로소프트사는 16년 동안 공들인 인터넷 백과사전 사업을 위키피디아의 출현으로 인해 중단해야 했다. 사람들이 보수도 받지 않고 결과물을 열심히 내놓는다는 것은 당시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현재 많은 분야에서 이런 형태의 무료 소스가 공개되고 있다. 경영학자 라카니가 공개 소스 개발자 684명을 연구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이들 활동의 동기로 다음 세 가지가 중요했다. ①자신의 창의력이 발휘되는 즐거움, ②보수, ③사회에 대한 책임감. 즉 보수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일 자체를 즐기고 자신이 사회에 봉사한다는 자부심이 주요 동기로 작용한 것이다. (본문 155쪽 참고)
한편 우리가 광고를 반복적으로 시청하면서 특정 제품을 구매하는 행위는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실험, 즉 고전적 조건화(개가 종소리만 듣고도 침을 흘리는 것)와 동일한 원리인데, 그렇다면 어떤 보상이 더 효과적일까를 연구한 실험 결과도 있다. 즉 보상을 주는 스케줄을 변경시켜 행동이 나타나는 빈도와 강도를 측정한 실험 결과, 바람직한 행동을 할 때마다 매번 보상을 주는 ‘연속 보상’(예: 성과급)보다는 가끔 보상하는 ‘간헐 보상’ 방식이 더 효과적이며, ‘간헐 보상’의 4가지 방법(①고정간격, ②변동간격, ③고정비율, ④변동비율) 중에서도 ‘변동비율’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한다. 이는 처음 보상을 제공하고 다음 추가적인 보상을 줄 때, 행동의 빈도나 성과에 비례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부정기적으로 보상하는 것으로, 대표적인 예가 슬롯머신이다. 즉 보상의 총량은 이미 결정되어 있지만 그 양과 간격을 변동시키는 것으로, 흔히 알려진 ‘조삼모사’도 일종의 변동비율 보상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 262쪽 참고)
그런데 이러한 보상 체계에서 사람들의 작업 동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형평성’이라고 한다. 즉 다른 사람들과의 상대적인 비교를 통해 자신에 대한 보상이 공정하게 이뤄졌는지를 판단하는 것으로, 만약 보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사람들은 ‘형평 회복 행동’을 일으킨다고 한다. 형평 회복 행동에는 ①투입 변경(예: 노력?태업), ②결과 변경(예: 임금인상 요구), ③현장 이탈(결근?이직) 등이 있는데, 예컨대 자신의 노력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열심히 일해서 투입을 증가시키거나, 반대로 자기 노력에 대한 부당한 평가절하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일을 게을리해서 투입을 감소시키는 등의 행동이 모두 ‘투입 변경’에 의한 형평 회복 행동이다. (본문 269쪽 참고)
한편 현대 사회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인정 욕구’는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인정 욕구는 기본적으로 사회관계에서 나타나는 동기이기 때문에, 자폐증과 같이 사회관계에 대한 욕구가 부족한 경우는 인정 욕구가 약한 반면, 사회관계에 대한 욕구가 강할수록 인정 욕구가 강하며 명성과 명예를 중요시한다. 그리고 명예는 때로는 자신의 생명과 동일한 가치를 지녀서, 명예를 고귀하게 생각할수록 그 반대인 수치와 모욕에 대한 감수성이 크며 명예자살도 흔히 나타난다. 그리고 인정 욕구에서 비롯된 행동 중 하나가 과시인데, 그 핵심에는 ‘보여주기’라는 행위가 있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누구나 가능한 것은 과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비싼 고급 브랜드의 청바지는 과시 효과가 있지만, 부자들에게 이런 청바지는 신호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오로지 바지로서의 기능만을 갖는다. 그래서 값비싼 청바지의 과시 효과는 그것을 쉽게 살 수 없는 집단에서만 나타난다. 오늘날 부유한 상류층 사이에서 이뤄지는 과시는 보다 은밀하게 나타나는데, 타인의 눈에 쉽게 띄는 것은 중류층의 모방으로 인해 과시 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10미터 거리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 베르사체 선글라스는 5미터쯤 접근해야 알아볼 수 있는 구찌에 비해 더 싸고, 선글라스 가운데 최고품은 까르띠에라고 하는데 테에 새겨진 작은 ‘C’자로만 구별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본문 313쪽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