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따위 안 들어도 죽지는 않지. 하지만 꼭 듣고 싶다면?
음악팬 전체를 놓고 봐도 재즈를 듣는 사람은 아주 적다. “재즈”라고 하면 자유롭다거나, 뭔가 진지하고 깊은 세계가 있는 것 같다거나, 왠지 쿨해 보인다거나 하는 식으로 좋은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 많은데도 그렇다. 그러다 보니 음악 자체는 향유되지 않으면서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경향도 있다.
재즈가 정 붙이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재즈광으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처음 재즈 콘서트에 갔을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이 두 곡을 알고는 있었는데,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원곡의 멜로디와는 아주 다른 것이었다…. 그야말로 힘차고, 도발적이며, 신비하고, 그리고…검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소리를 검은 색상으로 느꼈다.”(재즈 에세이, 김난주 역, 열림원, 1997년판, pp 27-29) 천하의 하루키 선생이 이렇게 느꼈으니 재즈가 잘 안 들리고, 뭐가 뭔지 모르겠고, 심지어 졸린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겠다.
이 책은 클래스가 달라!
저자인 테드 지오이아는 베테랑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평론가, 음악 역사가로 “미국 최고의 음악 역사가”로 불린다. 재즈에 관해 10여 권의 저서를 썼으며, 두 권이 《뉴욕타임스》 선정 “올해 주목할 만한 책”으로 선정되었고, 다른 세 권이 미국 작곡가 작가 출판인 협회(ASCAP)에서 선정하는 딤스-테일러 상을 수상했다. 재즈를 알기 쉽게 소개하는 책이라면 그를 따라갈 사람은 없다. 이 책은 클래스가 다르다. ‘불후의 명곡’으로 무려 252곡을 선정하여 소개한다. 해설의 깊이도 다르다. 악곡의 유래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이러저러한 느낌이 든다’는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멜로디가 대부분 화성음으로 되어 있으나 매력적인 화성 변화 덕분에 산뜻한 느낌을 준다’며 ‘두 번째 마디에서 오그먼트 코드에 대응하는 예리한 5도음을 들어보라!’는 해설이 붙는다. 그냥 읽어도 아주 재미있다. 글솜씨가 대단하기 때문이다. “호오, 이렇게 기가 막힌 곡이라면 반드시 들어봐야겠는걸!”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제 당신 차례다!
바로 그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빛을 발한다. 한 곡 한 곡 소개가 끝날 때마다 추천 녹음 목록이 나오는 것이다. 가장 먼저 발표된 버전, 역사적으로 중요한 연주, 감성과 창조력, 실험정신이 어우러진 그야말로 ‘필청의 명연’이 정리되어 있다. 세상이 좋아져 어렵게 판을 구하러 다닐 필요도 없다. 유튜브에 가서 곡목과 연주자만 입력하면 바로 들을 수 있다. 이 연주들을 비교해 듣다 보면 어느새 그 곡이 친근하게 들린다. 저절로 재즈와 친해지는 것이다. 하루에 한두 곡씩만 들어도 몇 개월 후에는 재즈의 고수가 되어 정신 없이 음반을 사 모으게 될지도 모른다. 거기에 따른 시간적, 경제적 손실은 물론 출판사에서 책임질 수 없지만, 장담컨대 결코 손해로 생각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최고의 벗을 얻은 기쁨에 가슴이 벅찰 것이다. 그 친구는 절대로 곁을 떠나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놀라운 상상력과 따뜻한 위안을 건네주며, 가슴 저미는 슬픔과 아찔한 환희와 아슬아슬한 긴장과 산들바람 같은 느긋함의 세계를 펼쳐 보일 것이다. 지난 1백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그와의 우정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가꾸고, 영혼을 고양시키고, 인간과 우주의 깊은 비밀을 들여다 보았다. 이제 당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