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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저녁이 저물 때

예니 에르펜베크 저/배수아 | 한길사 | 2018년 07월 20일 리뷰 총점9.6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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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8년 07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472g | 142*211*25mm
ISBN13 9788935670581
ISBN10 8935670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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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2명)

21세기 독일어권의 대표적인 서사적 소설가인 예니 에르펜베크는 훔볼트 대학교에서 연극학을 공부하고 한스 아이슬러 음악학교에서 오페라 연출을 공부했다. 이때 하이너 뮐러, 루트 베르크하우스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후 베를린과 오스트리아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수많은 오페라 작품을 연출했다. 1999년 『늙은 아이 이야기』를 발표하고 독일 문단의 호평을 받으며 작가로 데뷔했다. 2001년 단편집 『탄트』, 2004... 21세기 독일어권의 대표적인 서사적 소설가인 예니 에르펜베크는 훔볼트 대학교에서 연극학을 공부하고 한스 아이슬러 음악학교에서 오페라 연출을 공부했다. 이때 하이너 뮐러, 루트 베르크하우스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후 베를린과 오스트리아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수많은 오페라 작품을 연출했다.

1999년 『늙은 아이 이야기』를 발표하고 독일 문단의 호평을 받으며 작가로 데뷔했다. 2001년 단편집 『탄트』, 2004년 장편소설 『사전』을 발표했다. 여러 작품이 14개국 언어로 번역 소개되었다. 잉게보르크 바흐만 심사위원상, 예술가협회 문학상, 졸로투른 문학상, 하이미토 폰 도더러 문학상, 헤르타 쾨니히 문학상, 리테라투르 노르트 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전업 작가와 연출자로서 베를린에 살고 있다.
소설가이자 번역가.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서 이화여대 화학과를 졸업했다. 1990년대에 등장한 젊은 작가 가운데에서도 그녀는 독특하다. 이화여대 화학과에 입학한 배수아는 국어 과목을 아주 싫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20대 후반으로 접어들었다는 자의식으로 인해 소설을 쓰게 됐다. 1993년 서점에서 단지 표지가 이쁘다는 이유로 우연히 집어든 문학잡지 [소설과 사상]에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이 당선되면서 ... 소설가이자 번역가.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서 이화여대 화학과를 졸업했다. 1990년대에 등장한 젊은 작가 가운데에서도 그녀는 독특하다. 이화여대 화학과에 입학한 배수아는 국어 과목을 아주 싫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20대 후반으로 접어들었다는 자의식으로 인해 소설을 쓰게 됐다. 1993년 서점에서 단지 표지가 이쁘다는 이유로 우연히 집어든 문학잡지 [소설과 사상]에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취미로 글을 쓴다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문학적 엄숙주의는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당혹스럽고 생경하며 파격적이다. 배수아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불온하고 불순한 이미지에 둘러싸여 있다. 한결같이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늦된 아이들이며 주로 스무살 안팎의 주변적 존재이다. 이들은 사회규범에 적응하지 못하고 진화를 거부하는 인물이며 '스스로 선택한' 이상한 인물이다. 이러한 인물들의 신세대적 일상을 파고들며 신세대적 일상에 숨어 있는 존재의 어둠과 불안, 삶의 이중적 풍경에 대한 감각적 묘사로 일관하다. 체험과 사실성이 강조되던 우리 문학사에서 배수아는 은폐된 존재의 어둠을 탐사하며 독특한 개성을 갖춘 신세대 작가로 성장해왔고, 이제는 미적 성숙의 단계를 완성해가고 있다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는 이지적이면서 자기 주장이 강한 문체를 통해 남녀관계의 속물성을 파헤치고, 독신녀의 시선을 통해 보여지는 경제ㆍ섹스ㆍ결혼관ㆍ자기세계에 대한 솔직하고 쿨한 느낌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 사람의 첫사랑』에서 주인공들은 모두 사회로부터 버림받거나 스스로 추락중이다. 그들의 배후에는 일탈과 파격, 섬뜩한 비애가 차갑게 펼쳐져 있다. 세기말의 쓸쓸함과 밀봉된 희망, 피학적인 아픔이 한꺼번에 만져지는 작품이다.

『붉은 손 클럽』은 외형의 독특함을 넘어, 단자화된 관계에 상처받으면서도 결국 또 다시 사랑을 선택하는 인간의 심리, 사랑의 대상을 향한 비이성적 감성들, 일상에 물든 관계의 지리멸렬함을 포착해 내는 배수아의 섬세한 감성과 날카로운 시선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배수아의 감각적이고, 이미지적인 글쓰기가 잘 나타나 있다. 『심야통신』은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그녀 특유의 감각 더듬이로 포착하고 있는 창작집이다. 배수아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아무것에도 감동하지 않는 일상인의 내부에 꿈틀거리는 목마름과 허기를 이야기한다. 그녀는 후기 산업사회의 일련의 징후를 상징하고 허무주의적 인간형과 이미지와 기호로 점철된 우리 세대의 문제적인 서사 형식을 보여주면서 자기만의 자리, 자기만의 소설을 탄생시켰다.

『철수』는 인간 존재 안의 어둠과 생의 운명적인 폭력 속으로 더 한층 깊이 탐사해 들어가는 배수아 소설의 불온한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섬뜩한 생의 이면을 보아버린 자의 어둡고 서늘한 내면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이바나』는, 소설 속의 '나'가 외국 여행 중에 산 중고 자동차의 이름이다. 또, '그녀'로 불리는 이바나는 여행기를 편집하는 편집자에겐 신비의 여성이다. '이바나'는 어느 도시의 이름이기도 하고, 어느 지방에선 흔한 이름이기도 하다. 자신의 단편집 말미에, 배수아는 '나에게 제목이란 면상의 흉터와도 같아서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이 치명적이다. ...... 지금 나는 왜 모든 소설은 예외 없이 제목을 필요로 하는가 회의스럽다.' 고 말했다. 가장 짧은 제목이 가장 좋은 제목이라고도 했는데, 이 소설의 제목 '이바나'는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는 이 '이바나'는 내내 소설 속 화제의 중심인데 비해,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뭉개져 있다. 나, K, B, 산나, Y...... '죽기 전까지는 대도시를 빠져나갈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이 견디는 불면의 밤을 섬뜩하게 그리고 있다.

이 외에도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 『뱀과 물』,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 『동물원 킨트』, 『이바나』,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당나귀들』, 『독학자』, 『훌』, 『에세이스트의 책상』, 『북쪽 거실』, 『올빼미의 없음』, 『서울의 낮은 언덕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등을 썼다. 산문집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창작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그 사람의 첫사랑』 등과 장편소설 『랩소디 인 블루』, 『부주의한 사랑』, 『붉은손 클럽』 등이 있다. 또한 몸을 주제로 한 에세이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를 펴냈다.

역서로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 프란츠 카프카의 『꿈』,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자』, W. G. 제발트의 『현기증. 감정들』, 『자연을 따라. 기초시』,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의 골드문트』, 『데미안』 등으로 2003년 한국일보문학상, 2004년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사데크 헤다야트의 『눈먼 부엉이』,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 프란츠 카프카의 『꿈』,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자』,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달걀과 닭』과 『G. H. 에 따른 수난』 등이 있다.

전통 소설의 인물과 이야기 중심에서 벗어나 어떻게 서술 자체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인 「무종」을 통해 2010년 제34회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였으며, ‘월요일 독서클럽’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독특한 문체와 색깔로 열혈 독자군을 거느려 왔던 그녀는 이제 사유하는 문장의 힘으로 새로운 독자들과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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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배수아의 손길로 탄생한 또 하나의 예술 작품

배수아는 작가이자 독일어 번역가로 활동하며 이전부터 많은 작품을 한국에 소개해왔다. 배수아와 에르펜베크의 만남은 2010년에 출간된 에르펜베크의 작품 『그 속에 집이 있었을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배수아는 에르펜베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모든 저녁이 저물 때』를 번역했다.
그녀가 번역한 문장은 어느 것 하나 인위적이지 않다. 소설을 꼼꼼하게 살피다보면 그녀가 독일어와 한국어의 차이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자연스러운 문장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여실히 드러난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무는 날카롭고 선명한 이야기

『모든 저녁이 저물 때』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나치 정권, 소비에트 시대, 독일 통일 이후를 아우르는 격동의 시대에서 살아가는 한 여인이 선택할 수 있었던 다섯 가지의 삶과 다섯 번의 죽음을 추적한다. 예니 에르펜베크는 여자가 갓난아기로 죽었을 경우, 성인이 되어 낯선 남자에게 살해당하는 경우, 히틀러 시대에 억울하게 스파이로 지목되어 처형당하는 경우, 중년에 발을 헛디뎌 난간에 떨어져 죽는 경우, 노년에 치매를 앓다가 요양원에서 죽는 경우를 통해 죽음의 다양한 양상을 보여준다. 인물들은 각 권에서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막간극에서는 숙명적 우연을 거듭하며 생명을 이어나간다. 작가는 막간극에서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만약 그때 그랬다면”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묻는다.

소설 속에 녹아 있는 20세기 유럽의 현대사는 여자의 선택과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여자는 우연의 우연을 거듭하며 새로운 삶을 얻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녀의 운명은 역사, 사회, 정치, 문화와 맞물려 교묘하고 모호한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민족주의에서 기인한 반유대주의, 히틀러와 나치즘, 제2차 세계대전, 사회주의 혁명 등은 유럽의 역사를 뒤흔든 거대한 흐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은 모두 인간에 의해 발생했고 인간이 만들어냈다. 인간이 주도한 흐름이 세계를 형성하고 이러한 세계는 또 다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 에르펜베크는 끝을 알 수 없는 연쇄작용으로 사회와 개인,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며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녀는 인물과 세계의 상호작용을 포착하고 둘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이어가며 묵직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우리는 그녀를 통해 살아 숨 쉬는 인물과 세계를 만나게 된다. 그런 지점에서 독자들은 작가가 얇은 실을 겹겹이 엮어 촘촘하고 짜임새 있는 작품을 완성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 사람의 인생이 저문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저녁이 저무는 것은 아니다

죽음은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큰 주제이면서 작품에 가장 많이 개입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죽음의 시점으로 묘사된 세계와 감각은 사건에 앞서 죽음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한다. 에르펜베크는 우리가 끝내 알 수 없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가 운명이라 믿는 일들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주목한다. 인간의 마지막 날을 결정하는 것은 계단을 향해 내딛는 발, 얼어붙은 길거리를 피하기로 한 결정, 날씨나 옷차림 같은 미세한 요소다. 우리는 이야기 속에서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 죽음의 원인은 불분명하고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은 먼 곳에 있다가도 어느 날 눈을 뜨면 바로 우리 앞에 다가와 있다. 그러한 죽음을 목격하며 매 순간 마주하는 인물들은 그들이 사는 세계와 대결하듯 팽팽하게 맞선다.

소설 속에서 여자는 늘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며 자신 이외에 가족의 죽음까지도 마주하게 된다. 가족의 죽음은 개인의 운명을 또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는데, 가족의 죽음을 대면하는 인물들의 감정은 침착하고 절제되어 있다. 에르펜베크는 아름다운 시적 문장으로 슬픔을 표현해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묵직한 서사 속에 담긴 짓눌린 슬픔은 겉으로 표출하는 슬픔보다 더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다. 그 모습은 히틀러 시대에 남편의 실종 소식을 들은 여자에게서 잘 드러난다. 여자는 큰 소리로 울거나 술에 취하지 않는다. 그저 평생 동안 남편을 그리워하며 그를 찾을 뿐이다.

나는 지금 남편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호프만 부인이 말한다.
나는 항상 길모퉁이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일생 동안 나는 길모퉁이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여자는 60세에 난간에 발을 헛디뎌 죽게되는데, 우리는 그녀의 허무한 죽음을 목격하고 공포를 느낀다. 우리는 누군가가 나의 삶을 알아주길 원하며 죽는 그 순간조차 빛나길 소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은 때때로 너무나 허무하게 저물기도 한다. 주위 사람과 가족의 죽음을 통해 죽음의 파편들을 만나는 여자는 그들의 죽음에 자신의 죽음을 대입해보며 자신을 빗겨나간 운명에 대해서 생각한다. 인물들은 자신에게 특정한 운명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운명은 언제 어디서나 시시각각 변하며 역사와 정치 속에 함몰되어 버리기도 한다. 우리는 그런 장면들을 통해 유동적이고 유한한 인간의 모습을 깨닫게 된다.

일생 동안 그녀는, 그것이 마지막인지도 모른 채, 셀 수도 없이 여러 번 마지막으로 무엇인가를 했다. 그러니까 죽음은, 한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생에 걸친 전선인 걸까? 그러니까 그녀는, 지금 단지 이 세상 밖으로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능한 세상 밖으로 추락하는 걸까?

매 순간 죽음 앞에 놓여 있는 인물들에게는 이름이 없다. 그들은 각 권에서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또 다른 운명을 마주한다. 우리는 그들을 보며 서로 다른 인물이 아닐까 의심해보게 된다. 각 권에서 여자는 서로 아무 상관이 없는 다른 인물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확연하게 다른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각 권이 넘어가고 막간극이 시작되면 그녀는 삶으로 복기하는데 그 삶은 이전과는 방식이 다르다. 우리는 인물들을 지칭할 마땅한 이름을 찾지만 그나 그녀로 대변되는 인물들은 그저 한 인간일 뿐이다.

이렇게 변화하는 세계와 삶의 양상 속에서도 소설의 사물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되며 우리에게 안정감을 준다. 에르펜베크가 설정한 사물들은 각 권을 넘나들며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진다. 이 사물들은 저마다의 기억을 담고 있다. 여자의 일기장, ‘동쪽으로 소개됨’이라는 스탬프가 찍힌 편지, 아버지의 금색 외투 단추, 괴테 전집 등은 긴 호흡을 유지하며 제1권에서부터 제5권까지 유지된다. 이 사물들은 약간의 변주를 동반하며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의 손으로 전해진다. 인물들은 이 사물을 통해 타인의 삶을 기억하고 가족과 함께했던 시절을 추억한다. 그들이 단단하다고 여겼던 세계는 균열을 일으켰지만 이 사물들은 유지되면서 묘한 안정감을 준다.

역사 속에 함몰된 여성성

우아하고 서정적인 이 작품 속에서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역사 속에 함몰된 여성이다. 작품의 여성들은 어딘가 일그러진 형상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혼자 길거리를 돌아다니거나 낯선 남자와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는 여성들을 포착하게 되는데, 이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여성은 남성을 인격체로 대하지만 남성에게 여성은 그저 성적 대상일 뿐이다. 여성은 서로 동의한 잠자리에서 남성이 건넨 돈을 받고 전쟁과 가난으로 굶주린 가족을 위해 몸을 팔 것을 강요받는다. 여성은 노동현장에서조차 여성이라는 성으로 존재한다. 남성 동지들은 여성을 자신의 동지가 아닌 여성으로 인식하며 여성은 한 집단에서 여러 번의 임신과 낙태를 반복하다 소모된다.

그러나 여성을 바라보는 이런 건조한 시선도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변화한다. 여성은 제4권에서야 비로소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진다. 여자는 소련 시를 번역해 인민에게 아름다운 문학을 소개했고 반파시스트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며 평화와 사회주의를 향한 열정을 담은 문학 작품을 발표했다. 그녀는 제4권에서 이러한 자신의 공로를 인정받으며 장례식을 치른다. 우리는 이 장면을 통해 시대가 변했음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그녀는 아기를 하나 정도는 더 낳게 되리라, 그것도 그의 아이를. 이렇게 생각하는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머리를 옷 밖으로 내민 다음에야, 그가 내민 손에 지폐가 들려 있는 걸 발견한다. 이 모든 시작이었던, 건조하고도 따뜻한 그의 손과 지폐를 바라보며, 그녀는 당장 웃음을 터뜨릴 듯한 얼굴로 묻는다. 이게 뭔가요? 하지만 그는 웃지 않고, 아마도 이렇게 말한다. 네 거야. 또는 아마도 이렇게 말한다. 법석 떨지 말고 받아. 또는 거스름돈은 필요 없어. 또는 귀여운 것, 넌 이만 한 값어치를 했어. 이런 비슷한 말을 그가 한다. 그녀는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인 듯, 그렇게 그를 바라본다.

H.동지는 60세 생일을 눈앞에 두고 우리의 곁을 영영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화환 가운데 하나를 가리킨다.
일생 동안 그녀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다해 노동계급과 당에 헌신했습니다.
그녀를 잃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예술의 선두에서 싸워온 모범적인 전사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에르펜베크는 탄탄한 구성력과 시적 언어를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을 돌아보게 한다. 그녀가 보여주는 맹렬한 서사가 급격한 상승곡선을 그릴 때 우리는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그녀가 전해주는 뜨거운 감정과 묵직하고 흡입력 있는 문체, 바로 그것이 우리가 그녀의 작품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 남자가 낡은 한 조각 천으로 겉옷을 만드네.
겉옷이 해어지자, 그것으로 조끼를 만드네.
조끼가 해어지자, 그것으로 수건을 만드네.
수건이 해어지자, 그것으로 모자를 만드네.
모자가 해어지자, 그것으로 단추를 만드네.
단추로는, 아무것도를 만드네.
마침내 마지막으로, 아무것도로 그는, 이 노래를 만드네.


추천평

소설 속 모든 단어와 이야기 그리고 기억은 독자를 혼란스럽지만 장엄한 일련의 사건들 속으로 도취한 듯 대담하게 몰고 간다. - [보스턴 글로브]

놀라운 소설. 우아하고 짜릿하다. 거장급의 맹렬한 서사. 『모든 저녁이 저물 때』는 예르펜베크의 소설 중 역사적 사실을 가장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 [뉴욕타임즈]

주문을 외우는 듯한 꿈같은 서사 - [보그]

절제되고 꾸밈 없는 서사에서 느껴지는 작가의 날카로운 지성과 부드러운 감성은 단연 압도적이다. - [니콜 클라우스]

올여름 꼭 읽어야 하는 소설 - [인디펜던트]

놀랍도록 인간적인 소설 - [BBC radio]

현존하는 작가 가운데 예르펜베크처럼 역사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소설 형식으로 특별하게 풀어내는 작가는 없다. 『모든 저녁이 저물 때』는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꼭 읽어야 하는 소설이다. 놀랍도록 심오한 작품이다. - [뉴스테이츠먼]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한 짧은 소설. 예르펜베크의 소설을 읽는 것은 마치 최면에 빠지는 것과 같다. - [가디언]

『모든 저녁이 저물 때』는 20세기 유럽의 하늘 위를 지그재그로 날아다니며 점을 연결하는 비행기에서 바라본 풍경과 같다. - [로스앤젤레스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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