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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Pyramid Arena 엘비스 프레슬리 추모 공연 실황 (Elvis Tribute Concert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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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1994년 Pyramid Arena 엘비스 프레슬리 추모 공연 실황 (Elvis Tribute Concert '94)

브라이언 아담스, 토니 베넷, 이기 팝, 마이클 볼튼 등 참여

[ 2CD / 디지털 리마스터링 ]
Sammy Hagar, Michael Hutchence, NRBQ (New Rhythm & Blues Quintet), Dwight Yoakam, Kris Kristofferson 노래 외 23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Red River / Air Cuts | 2018년 07월 03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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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Pyramid Arena 엘비스 프레슬리 추모 공연 실황 (Elvis Tribute Concert '94)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8년 07월 03일
제조국 영국

관련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Disc1
  • 01 Intro
  • 02 Good Rockin' Tonight - Sammy Hagar
  • 03 Baby Let's Play House - Michael Hutchence & NRBQ
  • 04 Mystery Train - Dwight Yoakam
  • 05 Interviews
  • 06 That's Alright - Kris Kristofferson
  • 07 One Night - Billy Ray Cyrus & The Jordanaires
  • 08 Blue Moon - Chris Isaak With Scotty Moore & D.J. Fontana
  • 09 Now's The World Treating You - Chet Atkins
  • 10 Interviews
  • 11 Don't Be Cruel - Marty Stuart & The Jordanaires
  • 12 All Shook Up - Cheap Trick
  • 13 Leiber & Stoller Interview
  • 14 Talk
  • 15 Blue Suede Shoes - Carl Perkins With Scotty Moore & D.J. Fontana
  • 16 Rip It Up - Iggy Pop
  • 17 Memories - Mac Davies
  • 18 Interviews
Disc2
  • 01 Hound Dog - Bryan Adams With Scotty Moore & D.J. Fontana
  • 02 Always On My Mind - Sam Moore
  • 03 Talk / Interviews / WLUP Announcer
  • 04 I Want You, I Need You, I Love You - Ann Wilson
  • 05 Teddy Bear - Tanya Tucker
  • 06 Talk & Interviews
  • 07 Love Me Tender - Tony Bennett
  • 08 Young And Beautiful - Aaron Neville
  • 09 Jailhouse Rock - Michael Bolton With Scotty Moore, D.J. Fontana & Carl Perkins
  • 10 Talk
  • 11 Kentucky Rain - Suspicious Minds - Eddie Rabbitt & Mavis Staples
  • 12 C.C. Rider - Jerry Lee Lewis With James Burton & NRBQ
  • 13 Burning Love - Melissa Etheridge
  • 14 Introductions - Talk - Lisa Marie Presley & Michael Jackson
  • 15 Amazing Grace Finale
  • 16 Too Much - NRBQ
  • 17 Lawdy Miss Clawdy - Travis Tritt

아티스트 소개 (28명)

노래 : Kris Kristofferson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노래 : Billy Ray Cyrus (빌리 레이 사이러스)
노래 : Marty Stuart (마티 스튜어트)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불기 시작한 20세기 대중음악 총 정리 붐. 그 동안 음악팬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던 ‘소외 뮤지션’들을 부활시킨 계기가 되었다. 말로만 ‘펑크의 대부’이지 제대로 된 평가한번 받지 못했던 이기 팝에게도 그것은 커다란 축복(?)이었다. 그를 팬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만든 첫 타자는 바로 펑크의 세례를 받고 자란 헤비메탈 키드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와 슬레이어(Slayer)...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불기 시작한 20세기 대중음악 총 정리 붐. 그 동안 음악팬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던 ‘소외 뮤지션’들을 부활시킨 계기가 되었다. 말로만 ‘펑크의 대부’이지 제대로 된 평가한번 받지 못했던 이기 팝에게도 그것은 커다란 축복(?)이었다. 그를 팬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만든 첫 타자는 바로 펑크의 세례를 받고 자란 헤비메탈 키드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와 슬레이어(Slayer). 이들은 각각 펑크가 자신들의 음악적 토대임을 증명하는 1993년 펑크 커버 앨범 < The Spaghetti Incident? >와1996년의 < Undisputed Attitude >에서 이기 팝의 스투지스 시절의 곡인 ‘Raw power’와 ‘I`m gonna be your god’를 각각 실었다. 생기가 없이 방치되던 그의 음악에 살아 펄떡대는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다. ‘이기 팝 바로 세우기’는 이에 그치지 않고 영화에까지 손을 뻗쳤다. 1996년 개봉되어 컬트 무비의 걸작으로 평가받은 영화 <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 >에 그의 곡 ‘Lust for life’가 삽입된 것이다. 이는 그의 음악 지지층이 소수에서 다수로 저변 확대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난해 개봉되었던 영화 < 벨벳 골드마인(Velvet Goldmine) >을 통해 그와 데이비드 보위와의 묘한(?) 관계가 낱낱이 공개됨으로써 그는 또 한차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본인이 아닌 그의 열혈 추종자들에 의해 음악과 인생 이력서가 쓰여진 것이다. 이기 팝은 자신을 향한 이러한 스포트라이트에 새 앨범 < Avenue B >로 화답했다. 하지만 그와의 만남이 짧은 팬이라면 아무 일 없다는 듯 넘어가겠지만 그가 행해왔던 기괴한 퍼포먼스와 니힐리즘이 가득한 펑크 애티튜드를 생각한다면 이번 신보는 예삿일이 아니다. 그가 자신의 주무기를 버리고 명상음악처럼 아주 듣기 편안한 음악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기 팝의 이런 ‘탈(脫)펑크’는 그의 오랜 지기이자 조력자인 데이비드 보위를 만나면서부터 예견된 상황이었다. 물론 ‘펑크의 클래식’으로 평가받는 1973년 음반 < Raw Power >의 프로듀서를 데이비드 보위가 담당했지만 그것 또한 펑크의 미래를 예시한 작품이었다. 한발 앞서 나가는 뮤지션을 대동한 그의 음악이 진보하는 것은 당연지사. 데이비드 보위의 그늘에서 벗어나 만든 이번 앨범에서 이기 팝은 재즈밴드 메데스키 마틴 앤 우드(Medeski Martin & Wood)와 함께 고급화를 지향하고 있다. 단지 ‘SHakin` all over’, ‘Corruption’에서만 펑크의 흔적을 추적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내가 50세였을 때 겨울이었다. 내가 그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정말로 혼자였다.”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시작하는 담담한 독백 ‘No shit’처럼 이기 팝은 이 음반에서 자신의 인생에 대해 회고하고 있다. 특히 그를 거쳐간 여인에 대해서 진솔하게 털어놓고 있다. ‘Nazi girlfriend’, ‘Miss argentina’, ‘She called me daddy’, ‘I felt the luxury’ 등에서 투영되고 있다. 그의 삶의 궤적을 되짚어보는 좋은 본보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강성(强性) 펑크의 선봉장 역할을 자처했던 이가 팝이었기에 안타까움도 던져주고 있다. 갑자기 노쇠해져버린 그의 음악에서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힘없이 주저앉아버린 그의 나약함을, ‘상처뿐인 영광’으로 남은 그의 상반신을 감추고 싶기라도 하듯 옷을 걸치고 돌아서는 그의 모습에서는 펑크의 한계를 발견할 수 있다. 재평가 작업이 한창 진행중인 이기 팝. 이제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은 것 같다.
노래 : Tony Bennett (토니 베넷,Anthony Dominick Benedetto)
미국의 가수, 영화배우 미국의 가수, 영화배우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가수, 그러나 가장 천대받는 가수 이처럼 극도로 엇갈린 가수는 없다. 미국의 대중 주간지 < 피플 >은 92년 “그는 팝 음악의 창공에 독특한 위치를 점령하고 있다”며 “팬들로부터 그처럼 열광적인 환호를 받고 동시에 음악 비평가들로부터 그토록 신랄하게 비판받는 아티스트도 드물 것이다”고 기술했다. ‘이 시대의 스타’ 마이클 볼튼(Michael Bolton), 1990년 신년 벽두에 ‘그대없...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가수, 그러나 가장 천대받는 가수 이처럼 극도로 엇갈린 가수는 없다. 미국의 대중 주간지 < 피플 >은 92년 “그는 팝 음악의 창공에 독특한 위치를 점령하고 있다”며 “팬들로부터 그처럼 열광적인 환호를 받고 동시에 음악 비평가들로부터 그토록 신랄하게 비판받는 아티스트도 드물 것이다”고 기술했다. ‘이 시대의 스타’ 마이클 볼튼(Michael Bolton), 1990년 신년 벽두에 ‘그대없이 어떻게 살아가리?(How am I supposed to live without you?)’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라 1990년대 첫 슈퍼스타가 된,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메가톤급 히트 앨범 < 영혼의 공급자(Soul Provider) > 이후 발표하는 앨범마다 기록적인 판매로 대중적인 명성을 구가했지만 비평가들로부터는 철저히 외면 당했다. 평론가들은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그에게 호된 질책으로 일관했다. 그것은 거의 ‘두들겨 패는’ 수준이었다. 일례로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지의 유명 저널리스트 ‘로버트 힐번’은 그를 가리켜 창조성 없이 악보를 그대로 전달하는 단계에 그친다는 의미에서 ‘팝의 썰매’라고 규정짓고는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자신이 돌파 할 수 없는 노래에 결코 도전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틀 속에 안주하려 한다. 그와 음악과의 관계는 스티븐 시걸과 영화와의 관계나 같다” 말이 그렇지 이것은 모욕이나 매 한가지다. 사정이 이러하니 그가 평자들로부터 아티스트란 말을 들을 수가 없다. 볼튼이 소울의 고전을 비롯해 흘러간 명곡을 멋들어지게 재해석해 노래해도 그들은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이구동성으로 “원작의 기품을 버려 놓았다”고 질타한다. 그 가운데 가장 심한 것이 < 롤링 스톤 >지의 평가였다. 이 잡지는 1993년 43명의 비평가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 그를 ‘최악의 남자 가수’로 선정했다. 또한 빅 히트작 < 불후의 고전(Timeless, The Classics) >를 ‘최악의 앨범’으로 뽑아 미국에서만 5백만 장 이상이 팔려 나간 대중적 인기를 무색케 해 버렸다. 그가 이처럼 비평계의 푸대접을 받게 된 것은 물론 그의 보컬 스타일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핏줄을 솟게 하고 마치 토해 내는 듯한’ 창법을 구사한다. 4옥타브를 충분히 넘나드는 넓은 음역, 이것이 팬들에게는 환상이었지만 평론가들의 귀에는 높고 답답하게 들릴 뿐이었다. 그들은 그의 가창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금방 눈치챌 정도로 ‘작위적’이어서 곧 사람들을 질리게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그들은 예술적 고뇌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없는 그 작위가 결국은 상업성을 노린 것임을 경계한다. 로버트 힐번이 지적하는 ‘안주적 자세’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이를테면 대중적 성공에 떠밀려 아티스트적 실험 정신을 휴지화했다는 것인데, 실제로 볼튼은 < 영혼의 공급자 > 이후 앨범들인 < 시간, 사랑 그리고 부드러움(Time, Love And Tenderness) >과 < 불후의 고전 >에서 새로움을 선사하기보다는 전작의 성공패턴을 답습하는 경향을 드러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옛 곡의 리메이크가 성공하자, 줄줄이 리메이크 작품을 내놓았으며 더구나 보컬 스타일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면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변명의 여지없이 전작의 성공 재창출에 지나치게 집착했기 때문인 것이다. 다시 말해 팔리는 음반을 만들기 위해 모험을 가능한 배제한 채 빅히트된 음반(Soul provider)을 모델로 그 스타일을 철저히 쫓는다는 얘기다. 비평가들이 이처럼 유난히 그에게 비판의 화살을 겨냥하는 데는 그가 곡을 만들어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라는 점도 크게 작용한다. 평론가들은 노래만 하는 싱어일 경우 그가 대중적 호응만을 고려한다 할지라도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 대중의 기호에 따라 그들의 정서를 위무해 주는 팝 가수도 나름대로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곡을 만들 능력이 있는 사람, 즉 싱어송라이터의 경우는 자신의 음악 세계를 펼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그가 앨범 판매량을 늘리기에 얽매여 있을 때는 가차없이 장사꾼으로 매도해 버린다. 만약 볼튼이 단순한 싱어에 머물렀다면 아마도 그처럼 잔인한 혹평에 시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과연 이러한 비평가들의 철저한 외면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비평가들이 뭐라 떠들어도 압도적으로 자신의 노래를 사랑해 주는 대중이라는 ‘응원군’을 내세워 여유를 잃지 않았고 앨범의 높은 판매고를 ‘비평에 견디는’(Critic-proof) 방파제로 제시하곤 했다. 사실 그의 노래에 대해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진 음악 관계자들도 적지 않다. 우선 그가 1988년 ‘만의 부두에 앉아(Sitting on the dock of the bay)’를 리메이크했을 때 이 곡의 원작자인 오티스 레딩의 미망인 젤마 여사로부터 극찬을 받은 사실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녀는 볼튼에게 편지를 써서 또는 공개석상에서 그의 노래가 “지금까지 나온 남편 곡의 무수한 버전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며 “만약 지하에 있는 남편도 들었다면 흡족했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볼튼의 강력한 후원자인 어머니 헬렌 볼로틴(볼튼의 본명은 Bolotin) 여사는 “내 아들이 노래하는 것을 비명을 지르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그는 단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드러낼 뿐이다”라며 비평계의 시각을 몰지각으로 단정한다. 그와 곡을 함께 쓰는 오랜 친구 다이안 워렌(Diane Warren)은 한편으로 볼튼에 대한 평자들의 차가운 시선이 오히려 대중의 호응을 증폭시켰다는 흥미로운 견해를 내놓고 있다. 그의 주장은 “한 남자가 혹독하게 비판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한없이 부드럽게 노래할 때 여성들은 오히려 그를 사랑해 준다. 여성들은 거기서 녹아 버린다”는 것이다. 부연하면 평론가들의 무차별 공격이 도리어 여성 특유의 모성본능을 자극해 그를 감싸주게 됐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그의 음악팬들은 절대 다수가 여성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처럼 비평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가엾은(?) 남자가-더구나 수려한 외모를 갖춘 남자가!-애절하게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를 노래할 때 대부분이 여성들은 이성이 마비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마이클 볼튼과 비평과의 대치는 곧 ‘감성적인 여성 팬들’과 ‘날카로운 평론가들’간의 보이지 않는 대결(?)의 측면도 가세된 셈이다. 하지만 아티스트란 어떤 형태로든 비평가들의 눈초리를 암암리에 의식하게 된다. 그는 얼마나 심기가 불편했던지 1991년 그래미 최우수 남자 팝 가수상을 받던 날 밤 기자들에게 “무례한 사람들은 내 엉덩이에 키스하라”고 퍼붓기도 했다. 여기서 무례한 사람들이란 마구 펜을 휘갈기는 저널리스트나 비평가를 가리킴은 물론이다. 그런데 1993년 하반기에 그가 내놓은 앨범 < 한가지 >는 상당히 비평가들을 의식해 만들었다는 느낌을 주었다. 보컬의 톤도 많이 낮추고 자작곡의 비중을 높였으며 비판의 핵이었던 리메이크 남발도 자제, 옛곡은 빌 위더스의 ‘내게 기대어(Lean on me)’ 한 곡으로 대폭 줄여 버린 것이었다. 평론가들의 반응은 당연히 ‘이제까지 볼튼의 앨범 중 최고’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작품성을 인정받는 대가로 대중적인 음반 판매 실적은 과거에 비해 저조해 두 마리 토끼를 사냥하지는 못했다. 그의 상업성이 유달리 지적 받게 된 데는 또한 그의 ‘눈물겨운 과거’도 한 요인이 되었다. 7살 때 섹스폰을 잡고 11살에 기타를 치는 등 음악 생활을 일찍 시작했지만 그의 청년기는 지극히 불우했다. 발표하는 음반마다 실패해 야간 업소 출연으로 겨우 연명해 나갈 정도였다. 1975년 레코드점 여직원인 모린(Maureen)과 결혼한 이후에도 생활은 개선되지 않아 노래 과외와 아이 돌봐주는 일, 즉 베이비시터로 집세를 충당하곤 했다(참고로 그가 봐 준 아이 중의 한 사람이 다름 아닌 폴라 압둘이었다. 이상하게도 두 사람의 관계는 묘한 악연으로 발전해 1990년 마이클 볼튼의 ‘그대 없이 어떻게 살아가리?’를 1위 자리에서 끌어내린 곡이 폴라 압둘의 ‘오포지츠 어트랙트(Opposites attract)’였고 이듬해 앨범 1위를 볼튼과 바통 터치한 주인공도 폴라 압둘이었다). 그의 술회에 따르면 당시 볼튼 부부와 세 딸은 마카로니와 치즈로 끼니를 때웠다고 하며 볼튼은 허구한 날 식탁에 앉아 “어떻게 집세 내고 자식을 먹여 살릴 것인가”만을 걱정했다고 한다. 그때의 심정을 그는 “터널의 끝에서도 빛을 볼 수 없을 만큼 참담했다”고 표현했다. 때문에 36세가 되어서야 성공했을 때(그는 1954년생으로 미국 코네티컷 주 뉴 헤이븐 출신) 주변에서 ‘하룻밤 자고 나니 스타가 된 케이스’라고 하자 “무슨 소리냐. 성공하기까지 대략 3천6백42번의 밤을 보냈다”고 응수했던 것이다. 비평가들은 그가 바닥 생활을 청산하자마자 곧바로 상업적으로 치달은 것을 못마땅해한다. 그럴수록 과거의 고난을 예술적으로 승화해 작품에 구현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의 성공은 사생활에도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 영혼의 공급자 >가 수면 위로 부상하던 1989년 아내 모린과 15년 결혼 생활을 청산하게 된 것이었다. 그 시점이 볼튼을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 그 무렵 한 인터뷰에서 그는 “하필 가장 잘 나가는 때에 성공을 축하하는 전화가 걸려 오는가 하면 이혼 증언 서류에 대한 변호사의 전화가 걸려 왔다. 너무 아이러니컬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그는 이듬해 정식으로 이혼했다. 그리하여 방문하는 관계로 매듭짓긴 했지만 세 딸들 아이사(20), 홀리(18), 타린(16)과도 떨어져 살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는 성심 성의껏 딸들을 보호하는 자상한 아빠의 역할에 충실하다고 한다. 그리고 자식들이 인정하는 가운데 1992년부터 TV배우인 니콜레트 셰리단(Nicollette Sheridan)과 건전한 연인 관계를 맺어 오고 있다. 마이클 볼튼은 우리에게 대중적으로 성공한 뮤지션과 비평계간의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사이를 생각하게 한다. 앨범이 많이 팔려 나갈수록(진지함이 없을 경우) 비평가들로부터 매질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그처럼 실감나게 보여준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는 성공과 함께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그 스스로도 “성공하면 할수록 그것은 네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비디오 게임처럼 첫 번째 스크린을 통과하고 나면 너를 쏘려고 레이저 미사일을 단 비행접시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공의 대가는 쓰디쓴 법이다.
노래 : Mavis Staples (메이비스 스테이플스)
노래 : Jerry Lee Lewis (제리 리 루이스)
노래 : Melissa Etheridge (멜리사 에더릿지 )
블루스 락 / 하트랜드 락 기타 연주자, 가수 블루스 락 / 하트랜드 락 기타 연주자, 가수
마이클 잭슨 음악 여정은 주지하다시피 1963년 4명의 형들과 함께 결성했던 패밀리 그룹 잭슨 파이브(Jackson 5)로 시작되었다. 5살이라는 어린 나이와 그에 걸맞지 않게 리드 보컬을 맡았던 그는 너무나도 빼어났던 가창력과 귀여운 춤 실력 때문에 언제나 세간의 관심대상이었다. 지방을 중심으로 명성을 쌓아가던 잭슨 파이브와 마이클은 1969년 베리 고디의 모타운 레코드와 계약하면서 본격적으로 팝 음악계에 뛰어... 마이클 잭슨 음악 여정은 주지하다시피 1963년 4명의 형들과 함께 결성했던 패밀리 그룹 잭슨 파이브(Jackson 5)로 시작되었다. 5살이라는 어린 나이와 그에 걸맞지 않게 리드 보컬을 맡았던 그는 너무나도 빼어났던 가창력과 귀여운 춤 실력 때문에 언제나 세간의 관심대상이었다. 지방을 중심으로 명성을 쌓아가던 잭슨 파이브와 마이클은 1969년 베리 고디의 모타운 레코드와 계약하면서 본격적으로 팝 음악계에 뛰어들었다.

첫 넘버 원 싱글 ‘I want you back’에 이어 ‘ABC’ ‘The love you save’ ‘I’ll be there’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2년 간 그룹활동에 전념하던 마이클 잭슨은 1971년 12월 탐라-모타운 레코드와 솔로 계약을 체결했다. 1971년 데뷔곡 ‘Got to be there’를 발표해 싱글차트 4위에 랭크시킨 후 ‘Rockin’ Robin’, ‘Ain’t no sunshine’, ‘Ben’, ‘I wanna be where you are’,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솔로와 그룹활동을 성공적으로 병행했다.

마이클 잭슨이 변성기가 지나고 성인으로 접어들자 잭슨 파이브도 점점 퇴색해갔고, 1979년 마이클은 드디어 성인으로서 첫 음반 을 발표했다. 1977년 흑인판 <오즈의 마법사>였던 뮤지컬 영화 <더 위즈(The Wiz)> 사운드트랙을 통해 만났던 퀸시 존스가 앨범의 프로듀서로 동참해 마이클 잭슨의 ‘성인신고작’을 한결 윤택하게 빛냈다.

활기 넘치는 리듬의 펑크(funk)와 디스코, 소울, 그리고 록과 팝, 발라드가 퓨전된 그 음반에는 마이클 잭슨이 작곡한 2곡의 업 템포 댄스넘버 ‘Don’t stop till you get enough’(최근 영화 <러시아워2>에 삽입되었음)와 ‘Working day and night’와 로드 템퍼튼 작곡의 깔끔한 팝 넘버 ‘Rock with you’, 절제된 보컬의 발라드 ‘She’s out of my life’ 같은 히트곡이 실려있었다. 수록곡 중 ‘Girlfriend’는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가 작곡해 준 곡으로 향후 둘 간의 파트너십을 예고했다.

이 마이클 잭슨의 방향성을 제시해 준 앨범이라면 1982년 12월에 발표된 는 ‘팝의 황제’라는 마이클 잭슨의 원대한 꿈을 실현시킨 회심작이었다. 퀸시 존스와 마이클 잭슨의 공동 프로듀스작인 그 앨범은 37주간이나 앨범차트 정상을 지켰으며 현재까지 미국에서만 2천6백만장의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또한 전례가 없는 무려 7곡이 싱글 발매되어 모두 차트 10위 내에 올랐고 그 중 2곡이 정상을 차지했다. 그 앨범으로 마이클 잭슨은 1984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역대최다인 7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2000년 산타나와 타이 기록).

‘문워크(Moonwalk)’라는 독창적인 댄스를 유행시킨 ‘Billie Jean’과 에디 밴 헤일런의 기타 속주가 흐르는 ‘Beat it’이 차트 1위에 올랐으며, 첫 싱글로서 폴 매카트니와의 듀엣 곡이었던 ‘The girl is mine’(2위), ‘Wanna be startin’ somethin’(5위), ‘Human nature’(7위), ‘P.Y.T.’(10위), 마지막 싱글 ‘Thriller’(4위) 등이 연속해서 히트했다. 백인 최고스타 폴 매카트니와 록 기타의 거장 에드워드 밴 헤일런을 끌어들였다는 것은 크로스오버는 물론, 더 많은 수요층에게 다가가려는 그의 음악적 야심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Billie Jean’의 뮤직비디오는 MTV가 백인 록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만을 방영한다는 불문율을 깨고 틀었던 역사적인 첫 흑인 뮤직비디오였다. 한편 1984년 4월에는 폴카 음악과 ‘패러디의 대가’인 얀코빅(‘Weird Al’ Yankovic)이 ‘Beat it’을 패러디한 ‘Eat it’을 발표해 싱글차트 12위에 진입시키기도 했다.

영국의 난민구호 자선 프로젝트였던 밴드 에이드(Band Aid)의 ‘Do they know it’s christmas?’의 성공에 자극 받은 마이클 잭슨과 라이오넬 리치는 막강한 스타들을 규합, 유에스 포 아프리카(USA For Africa)를 조직해 1985년 1월 그 미국 버전인 ‘We are the world’를 만들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다. 그 해 8월에는 그간 음악동지였던 폴 매카트니와의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 마이클 잭슨이 ‘레논/매카트니’ 크레딧으로 된 250곡이 넘는 비틀스 곡들의 판권을 4천7백5십만 달러에 사버렸기 때문이다. 이 일로 인해 협력관계가 깨졌음은 물론 현재까지도 그 둘은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갱스터 영화의 대부 마틴 스코시즈가 감독한 17분짜리 뮤직비디오 ‘Bad’가 1987년 2월에 선보였고, 8월에는 분위기가 한층 어두워졌으며 록적인 느낌이 강화된 새 앨범 가 발매되었다. 퀸시 존스가 세 번째로 프로듀스를 맡은 이 앨범은 전작의 흥행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8백만장 이상 팔려나가는 성공을 거둔다. 특히 무려 5곡이 싱글차트 1위를 기록해 2곡이 1위에 오른 전작을 능가했다.

여성 보컬 시다 가렛과 호흡을 맞춘 ‘I just can’t stop loving you’를 시작으로 타이틀곡 ‘Bad’, 흥겨운 핑거 스냅이 시종일관 등장하는 ‘The way you make me feel’, 시다 가렛과 글렌 발라드가 공동 작곡한 발라드 넘버 ‘Man in the mirror’, 음산한 분위기가 압권인 ‘Dirty Diana’ 등 모두 5곡이 차례로 정상에 등극했다. 그 외에도 ‘Smooth criminal’, ‘Leave me alone’ 등 수록곡 전반이 주목받았다. 1988년 12월에는 마이클 잭슨과 존 레논의 아들 숀 레논 등이 출연한 영화 <문워커(Moonwalker)>가 전 세계에 개봉되었다.

보다 자신 고유의 음악을 찾기 위해 퀸시 존스와 헤어진 마이클 잭슨은 1991년 홀로서기를 시도한 첫 작품 를 발표한다. 젊은 프로듀서 테디 라일리를 메인 프로듀서로 받아들여 만든 이 음반은 마이클 특유의 사운드에 최신식 힙 합과 랩, 메탈 음악 등이 합쳐졌다. 작곡과 제작에 있어 마이클 잭슨의 재능을 마음껏 펼쳐 보인 음반이었지만 너바나 같은 그룹의 얼터너티브 록 태풍에 휘말려 전작들의 파괴력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emember the time’, ‘Jam’, ‘In the closet’ 등 테디 라일리가 솜씨를 발휘한 곡들과 영화 <프리 윌리>의 주제곡으로 쓰였던 ‘Will you be there’ 같은 곡들은 대중들과 평단으로부터 동시에 큰사랑을 받았다. 또한 ‘Black or white’의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준 ‘모핑’ 기법 같은 놀라운 기법들은 향후 영상 발전에 디딤돌이 되었으며 에서부터 구현된 환상적인 스튜디오 기술로 다시 한번 녹음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마이클 잭슨은 자신이 원하는 악기음색과 음원을 찾을 때까지 스튜디오 작업에 매달렸으며, 코러스 만해도 음색을 바꿔가며 다채롭고 풍부하게 꾸며 일반 제작자들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녹음기술만으로 볼 때는 모든 ‘프로듀서와 엔지니어의 드림’이었다.

해가 지지 않는 성공가도를 달리던 마이클 잭슨의 기세가 한풀 꺾인 것은 1993년의 일이다. 그 해 8월 바로 어린이 성추행 사건이 터진 것. 이 사건은 그간 깨끗한 이미지를 이어가던 그에게 막대한 타격을 주었으며, 한동안 그는 언론의 집중포화에 시달렸다. 그러다 얼마 후 갑작스레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결혼했고, 이에 매스컴은 ‘여론 무마용’이라며 그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매체의 공격이 심해짐에 따라 마이클 잭슨의 분노도 정비례했다. 그에 대한 분노는 1995년에 발표한 더블앨범 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 장은 히트곡들로, 다른 한 장은 신곡들로 구성된 이 음반은 ‘역사’로 해석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얘기들을 많이 담고있었다. 특히 그를 괴롭혀온 매스컴과 어린이 성추행 소송인에 대한 원한과 경멸, 냉소 등이 짙게 깔려있었으며, 그 때문에 음악도 예전과는 달리 상당히 거친 사운드가 지배적이었다.

알 켈리와 지미 잼 & 테리 루이스, 댈러스 오스틴 등이 프로듀서로 참여한 이 음반에서는 여동생 재닛 잭슨과 듀엣을 이룬 ‘Scream’과 ‘They don’t care about us’, ‘D.S.’, ‘Money’, ‘2 Bad’ 같은 곡을 통해 쇼비즈니스와 세상의 폭력에 대한 분노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물론 ‘You are not alone’, ‘Smile’ 등 따뜻한 노래들도 있었지만 다른 차가운 곡들 탓에 듣기가 좀 부담스러웠고, 그래서였는지 ’주라기음반’에 걸맞지 않게 흥행도 부진했다. 1997년에는 리믹스 앨범 을 발매하기도 했다.

4년이 흘러 2001년 그는 솔로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3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영예를 얻었으며, 9월에는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휘트니 휴스턴을 비롯해 엔 싱크, 브리트니 스피어스, 데스티니스 차일드, 어셔 등 당대 최고의 팝스타들이 출연한 가운데 그의 솔로 30주년 기념 공연을 가졌다.

그리고 10월 30일, 마이클 잭슨은 6년만의 정규 앨범 을 발표하며 다시 팬들 앞에 섰다. R&B 최고의 프로듀서 로드니 저킨스가 메인 프로듀서로 참여한 이 음반은 전작에 비해 훨씬 부드러워졌으며 한동안 찾아보기 힘들었던 특유의 활기 넘치는 리듬도 회복했다.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등 여러 좋은 일이 겹쳐서인지 밝은 분위기의 내용물들이 담겼다.

3마디의 독특한 리듬이 중독성을 발휘하는 첫 트랙 ‘Unbreakable’, 춤추기에 좋은 부드러운 댄스리듬 그리고 약간은 복고적 사운드가 듣기 편한 첫 싱글 ‘You rock my world’, 변화가 심한 비트가 인상적인 ‘Heartbreaker’ 등이 비트감 느껴지는 곡들. 라틴 풍의 기타 연주가 잔잔한 ‘Whatever happens’에서는 산타나의 무게감 있는 연주도 들을 수 있으며, ‘Speechless’, ‘The lost children’, ‘Break of dawn’ 같은 곡들은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발라드 곡들이다.
컨트리 기타, 바이올린, 노래, 작곡 컨트리 기타, 바이올린, 노래, 작곡
지난 1979년 소녀들의 비명 소리에 가까운 환호성으로 시작하는 ‘I want you to want me’의 라이브 버전은 그룹 창단 여섯 돌을 맞이하는 칩 트릭(Cheap Trick)에겐 고대하던 성공의 축포였다. 1973년의 공식적인 결성 이후 6년 동안 년(年) 200회 이상의 초인적인 공연을 강행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들에게 당시 전미차트 7위에 오르는 이 곡의 차트정복은 가뭄 속의 단비였다. 칩 트... 지난 1979년 소녀들의 비명 소리에 가까운 환호성으로 시작하는 ‘I want you to want me’의 라이브 버전은 그룹 창단 여섯 돌을 맞이하는 칩 트릭(Cheap Trick)에겐 고대하던 성공의 축포였다. 1973년의 공식적인 결성 이후 6년 동안 년(年) 200회 이상의 초인적인 공연을 강행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들에게 당시 전미차트 7위에 오르는 이 곡의 차트정복은 가뭄 속의 단비였다. 칩 트릭의 신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1973년 미국의 일리노이즈에서 결성된 4인조 팝 록 밴드 칩 트릭의 뿌리는 기타리스트 릭 닐슨(Rick Nielsen)과 베이시스트 톰 피터슨(Tom Petersson)이 1960년대 후반에 결성한 퓨즈(Fuse)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대 초반 현재의 이름 칩 트릭으로 개명하고 번 E. 카를로스(Bun E. Carlos)와 랜디 호건(Randy Hogan)을 각각 드러머와 보컬리스트로 받아들였지만 이들의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그러자 공동 리더인 릭과 톰은 팀의 프론트를 랜디 호건에서 미소년의 외모를 소유한 전직 포크 싱어 로빈 잰더(Robin Zander)로 전격 교체하고 비상을 준비한다. 1977년에 공개된 역사적인 데뷔 앨범 < Cheap Trick >은 비록 싱글 히트곡은 없었지만 비틀스에게서 물려받은 확실한 선율 감각과 더 후(The Who)로부터 전수 받은 듯한 파워풀한 연주가 유머러스한 가사와 앙상블을 이뤄 이들의 재능이 꿈틀대고 있음을 내비친 작품이었다. 같은 해에 나온 < In Color >에서는 2년 뒤 공연 실황 버전으로 차트를 강타하게 될 ‘I want you to want me’가 온전한 스튜디오 버전으로 수록되어 있다. 1978년에 발표된 < Heaven Tonight >도 가능성을 재확인하면서 이들에게 첫 번째 싱글 히트곡 ‘Surrender’(62위)’를 제공했다. 펑크적인 기타 백킹 연주와 팝적인 멜로디가 찰떡 궁합을 과시한 이 곡은 전형적인 칩 트릭 사운드를 구현한 대표적인 노래 중 하나이다. 그동안 이들은 자신들의 조국인 미국보단 태평양 건너에 있는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로빈 잰더의 잘생긴 외모와 귀를 슬슬 잡아당기는 자연스런 멜로디의 매력에 빠진 일본 소녀들은 칩 트릭의 진가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1978년 4월, 이들은 일본의 그 유명한 공연장인 무도관에서 대대적인 공연을 가졌고, 그 열기를 고스란히 담은 음반이 바로 록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 Live At Budokan >이다. 실은 이 앨범도 일본음반자본이 지원해 탄생되었다. 이전의 어떤 음반 못지 않게 화끈한 연주와 후끈 달아오른 현장의 분위기를 실감나게 전달한 이 앨범에서 ‘I want you to want me’와 1950년대 흑인 로큰롤 스타 팻츠 도미노(Fats Domino)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Ain’t that a shame’은 싱글로 커트되어 각각 7위와 35위를 기록하면서 일본, 미국, 유럽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반을 풍미한 버블검 사운드를 표현한 ‘I want you to want me’는 그 앙증맞은 후렴구 때문에 지금까지도 칩 트릭을 정의하는 노래로 남아 있다. 이 LP는 라이브 실황임에도 불구하고 빌보드 앨범 차트 4위까지 올랐고, 3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함으로써 상업적인 면과 음악적인 면 모두를 달성하는 성과를 올렸다. 같은 해인 1979년, 싱글 ‘Voices(32위)’와 ‘Dream police(26위)’가 들어 있는 다음 앨범 < Dream Police >로 확실하게 스타급 밴드의 반열에 올랐지만 비틀스와 아메리카(America)의 프로듀서였던 조지 마틴(George Martin)을 초빙해 제작한 1980년 < All Shook Up >은 과욕 탓인지 제1의 프로듀서와 최고 인기 밴드의 상봉은 융화되지 못한 채 어색한 만남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 앨범 후 톰 피터슨은 그룹을 떠났고, 그 후임으로 존 브랜트(Jon Brant)를 영입해 ‘If you want my love(45위)’와 ‘She’s tight(65위)’가 싱글 차트에 입적한 < One On One >을 발표하면서 팝의 시대인 1980년대를 맞이했다. 그러나 이 무렵 톰이 없는 칩 트릭은 예전과 같은 음악을 뽑아 내지 못한 채 힘겨움을 드러냈다. 상생(相生)의 필요성을 절감한 칩 트릭과 피터슨이 재회한 것은 1988년에 공개한 < Lap Of Luxury > 때였다. 최초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의 영광을 안겨 준 발라드 ‘The Flame’과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원곡을 커버한 ‘Don’t be cruel(4위)’, ‘Ghost town(33위), ’Never had a lot to lose(75위) 등을 4장의 싱글을 토해낸 이 음반으로 칩 트릭은 1980년대의 부진을 걷어내고 재기에 성공했다. 특히 국내에서는 경쾌한 분위기의 ‘Don’t be cruel’이 애청되면서 다시 일어선 칩 트릭의 인기를 주도했다. 1988년 말에는 로빈 잰더가 하트(Heart)의 보컬리스트 앤 윌슨(Ann Wilson)과 함께 멜 깁슨과 미셸 파이퍼가 주연한 영화 < 데킬라 선라이스 >의 주제곡 ‘Surrender to me’를 불러 6위에 랭크 시키기도 했다. 곡은 우리에게 ‘Now and forever’와 ‘Right here waiting’, ‘Endless summer night’ 등으로 널리 알려진 리차드 막스(Richard Marx)가 썼다. 이들의 음악은 1980년대에 등장한 헤비메탈 밴드와 1990년대의 얼터너티브 그룹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전수했다. 후배 뮤지션들은 인터뷰를 통해 “칩 트릭의 힘이 넘치는 기타 리프와 사운드에서 음악적인 영감을 받았다”며 무한한 존경과 신임을 밝힌 바 있다. 특히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는 자신들의 오프닝 무대를 칩 트릭에게 부탁하기도 했으며, 1980년대 팝 시대의 아들들임에도 불구하고 포르노 포 파이러스(Porno for Pyros)의 리더인 페리 파렐(Perry Farrell)이 주창한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 페스티벌의 대명사 롤라팔루자에 참여한 바 있다. 1990년대가 되면서 다시 한번 음악적 침체기를 맞이한 칩 트릭은 현재까지 새로운 음반 제작보다는 데뷔 초기처럼 ‘최고의 라이브 밴드’라는 명성에 걸맞은 줄기찬 공연 활동을 전개하고있다. 칩 트릭의 노래들은 이름처럼 결코 값싸지도 않으며 속임수 또한 아니다. 저항성과 함께 록의 양 날개 중 다른 날개인 ‘대중성’으로 따진다면 이들은 극점에 위치하는 그룹이다. 앞으로도 이들만큼 ‘완벽한 기타 주도의 팝 록 사운드’를 구현한 그룹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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