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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발행일 | 2018년 07월 0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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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60쪽 | 590g | 140*210*30mm |
ISBN13 | 9788954651837 |
ISBN10 | 8954651836 |
2024 부커상 인터내셔널 황석영 『철도원 삼대』 최종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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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시의 날/예스24 X 난다] 가장 오래된 고백의 이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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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 2024년 04월 30일
15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올해 들어 펑퍼짐한 원피스를 두 벌 샀다. 교복 이후로 처음 입어보는 치마다. 예쁜 원피스가 너무 입고 싶어서 산 건 아니다. 갑자기 살이 너무 쪄서 가진 옷 중에는 맞는 옷이 없어서였다. 그럼 평소처럼 바지를 사면 될 텐데, 사이즈 올린 바지를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괜히 우울했다. 기존에 입던 옷보다 큰 사이즈의 옷을 사야 한다는 현실이 화가 났고, 어쩌면 곧 다시 살이 빠질지도 모르니까 지금 큰 사이즈 옷을 사는 건 낭비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래, 나는 곧 전의 몸무게로 돌아갈 거야. 지금 큰 사이즈 옷을 사는 건 돈 낭비야. 어차피 곧 입지도 못할 텐데 뭐.' 우울함은 멈추지 않고 반년 넘게 계속됐다. 반년 동안 나는 거의 7kg에 가깝게 살이 쪘고, 큰 사이즈 바지를 입어도 울퉁불퉁 삐져 올라오는 살을 가려주지 못했다. 결국 포댓자루 같은 원피스를 사고야 말았다. 밉게 올라온 살들을 가려줄 게 헐렁한 원피스 말고는 없었다.
플럼이 길을 걸으면서 자기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불편해하고, 쇼핑몰에 들어가서도 주눅 들고, 직장에서 하는 일이 아니라 재택근무를 권유받은 상황들이 눈앞에 그대로 펼쳐졌다. 길을 걷다가 나도 모르게 덩치 큰 여자에게 시선이 가던 경험, 필요한 옷이 있어서 들어간 쇼핑몰에서 큰 사이즈를 찾아달라고 말하면서 슬펐던 일이 떠올랐다. 플럼이 키티의 대필 이메일을 작성하는데도 직장인 오스틴 타워가 아니라 집에서 일해도 된다고, 마치 플럼을 배려하듯이 했던 말은 거짓이었다. 그녀의 뚱뚱한 몸을 날씬한 여자들이 활보하는 오스틴 타워에서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플럼은 버틴다. 그녀에게는 키티의 보조 일을 하면서 월급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수술을 예약했다. 곧 그녀의 몸에서 지방이 빠져나가고 그녀는 날씬한 여자가 될 것이다. 수술 후 입을 예쁜 옷들도 미리 사놨다. 그녀의 원래 이름 '얼리샤'가 되돌아 왔을 때 '플럼'을 과감히 버리고 그녀는 원래 찾아야 할 인생으로 돌아갈 거다. 십 대의 고민 상담에 매뉴얼대로 답장을 써서 보내고, 돈도 벌고, 아름다운 여자들이 가득한 오스틴 타워의 일원이라는 자부심도 필요했다. 현재의 삶이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의 소리 없는 총격이 불편하고 자존심 상하지만, 이것도 곧 사라질 거니까.
"모두 다죠!" 나는 그녀에게 쏘아붙였다. "얼리샤는 늘 혼자 있을 필요도 없을 테고, 이 아파트에 하루종일 틀어박혀 있을 필요도 없을 테고, 예쁜 옷을 입고 여행도 하고 마음에 드는 회사에 취직하고 디너파티를 열 수도 있어요." 마지막으로 한 말은 우습게 들렸겠지만, 예전부터 나는 빈 와인병에 초를 꽂아서 병을 타고 종유석처럼 흘러내린 주황색과 빨간색 촛농을 감상하는 디너파티를 여는 게 소원이었다. (162페이지)
여기까지만 보면, 이 소설은 뚱뚱한 여자의 다이어트 분투기나 성공기처럼 읽힐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플럼은 이제 살이 빠지고 예뻐질 것이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데이트도 나갈 것이고, 세상 사람들(특히 남자들)의 시선을 받겠지. 칙칙한 방에서 나가기 싫었던 과거의 시간은 다 지우리라. 얼리샤의 인생을 되찾아와 삶이 빛날 것이다. 하지만 소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플럼이 유레일라 뱁티스트 프로그램(다이어트)에 참여하면서 날씬한 몸으로 가는 길을 걷는 동안 속은 것이 드러난다. 해당 프로그램은 살을 빼려는 사람들을 위한 게 아니라 유레일라 뱁티스트의 상술이었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온갖 돈벌이 수단으로만 이용되었던 거다. 설상가상 유레일라 뱁티스트의 원조는 교통사고로 죽었고, 프로그램은 해체된다. 거기에 유레일라의 딸 베레나는 이 다이어트 프로그램의 이면을 만천하에 드러낸다. 거짓과 위선으로, 돈벌이로만 이용되어 많은 사람의 주머니를 털어간 사기꾼임을 밝혀낸다. 그런데도 플럼은 포기할 수 없었다. 프로그램은 망했지만, 그녀에게는 아직 남은 대책이 있다. 바로 수술. 날짜면 기다리면 된다. 변함없는 바람처럼, 그녀는 날씬해질 것이라고 주문을 걸던 그 순간 플럼의 뒤를 쫓던 리타의 등장은 소설의 분위기를 전환한다. 베레나가 쓴 『다이어트랜드 대모험』은 뱁티스트 다이어트 프로그램이 인간의 몸을 대상으로 한 거대한 사기극인지 드러낸다.
"우리 여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우리를 잡아갈지 모르는 나쁜 남자를 조심하라는 교육을 받잖아요. 나쁜 남자에게 성폭행과 성추행은 물론이고 심지어 살해를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죠. 하지만 문제는 좋은 남자와 나쁜 남자를 구분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모든 남자를 경계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우리는 밤늦게 혼자 외출하지 말고, 옷도 이상하게 입지 말고, 모르는 남자와는 말도 섞지 말고, 남자가 관심으로 착각할 만한 행동은 하지 말라는 얘기를 들어요. 호신술 수업을 받고, 문을 잠그고, 페퍼 스프레이와 호신용 호루라기를 들고 다니고요. 남자에 대한 두려움은 어린 시절부터 우리 머릿속 깊이 뿌리박혀 있죠. 그게 일종의 테러리즘 아닌가요?" (344페이지)
뚱뚱한 여자의 다이어트 분투기에서 사회적인 문제의 큰 그림을 보게 한다. 요즘 한참 이슈가 되는 '미투 운동'이나 '탈코르셋'을 떠올리게 된다. 왜 여자는 날씬하고 예뻐야 하는가, 왜 화장으로 아름다움을 더해야 하고, 말로의 책 제목처럼 왜 '떡을 치고 싶은 여자'로 보여야 하는가, 왜 성폭력 앞에서 당당한 피해자가 되지 못하는가, 등등. 여성으로 살면서 고통받는 많은 순간의 부조리를 고발한다. 성폭력의 피해자가 오히려 죽음으로 생을 마감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성폭력의 가해자가 오히려 당당한 놀이를 즐길 것처럼 말하는 세상을 단죄한다. 여기에서 드러난 인물 제니퍼는 더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죄를 벌할 수 없다는 걸 안다는 듯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여성을 무참히 짓밟은 인물들을 한 명씩 처리한다. 조용히 납치해서, 고통의 시간을 겪게 한 후, 사막의 한가운데에 떨어뜨린다. 제니퍼는 누구인가, 또 누가 제니퍼를 돕고 있는 건가, 제니퍼는 정의로운가?
처음부터 끝까지 가독성을 놓치지 않는 소설이다. 처음에는 뚱뚱한 플럼의 날씬해지려는 계획을 지켜보는 재미로 흥미로웠는데, 중간에 한 명씩 등장하면서 그들과 어떤 조화를 이루며 소설이 흘러갈까 싶은 기대감으로 읽게 된다. 얼굴 반쪽이 화상 흉터로 자리한 새너, 아름다운 여배우에서 비만의 아이 엄마로 변한 말로,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였던 리타, 비밀이 가득해 보였던 줄리아, 칼리오페라는 성을 만들고 여성들의 자존감 회복과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가르쳐주려고 애쓰는 베레나. 다이어트가 행복이라고 생각했지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플럼, 아니 얼리샤. 그리고 제니퍼. 제니퍼의 등장은 세상 모든 여성이 어떻게 살아가는 게 행복한 일인지, 자존감을 위해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보여주면서 소설의 느낌은 점점 무거워진다. 무거워지는 만큼 진지하고, 우리가 행복해질 거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그동안 참았던 부조리, 침묵해야만 평화롭다고 믿었던 상황들, 인격적으로 살아가지 못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고 제니퍼가 쏟아낸 단죄가 옳다고 찬성하는 건 아니다. 어찌 되었든 살인은 처벌받아야 할 범죄니까. 다만, 제니퍼가 그들(?)에게 그렇게 벌을 주어야 한다고 판단하게 된 계기를 더 깊게 봐야 한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또 세상에 깊게 새기게 하는 의미들. 여성들이 지금 가진 자기 몸을 혐오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게 만들고 싶었으리라.
버스 옆면에 달린 한 쌍의 젖가슴이 나를 스쳐지나갔다.
걸어가는 동안 마음을 가다듬고 보란듯이 당당하게 턱을 들었다. 막말을 하려면 해보라지. 사람들은 늘 뚱뚱하다는 말로 내게 모욕감을 줬지만 이제 더는 그런 식으로 내게 상처를 입힐 수 없었다. 나는 뚱뚱한 게 맞았고, 내가 그걸 단점으로 보지 않으면 그들이 나를 향해 휘두른 무기는 힘을 잃었다.
나는 내 체구에 대해 미안해하길 거부하며 밝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런 원피스를 입자 반항적인 기분이 들었다. 난생처럼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데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329~330페이지)
여전히 나는 살을 빼고 싶다. 뚱뚱해지기 전 입던 옷을 다시 입고 싶고, 다시 큰 사이즈 옷을 사면서 돈 낭비도 하기 싫다. 살이 찌면서 통증이 심해지는 허리와 다리의 고충을 덜어내고 싶다. 살을 빼고 외모에서 오는 만족감보다, 병원 다닐 일이 늘어나는 게 겁나서 예전의 몸무게로 돌아가고 싶다. 플럼이 좋아하는 베이킹을 하면서 마음껏 먹고 행복해하는 모습은 이해가 가지만, 나는 먹는 것에서 그 정도의 행복과 만족감을 느끼지는 못하므로 플럼이 쌓아두고 먹는 일에 많이 공감하지는 못한다. 다만 그녀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갈 순간이 기대된다. 응원하고 싶다. 나도 그렇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가고 싶으니까. 이 소설로 최소 한 가지는 얻었다. 플럼이 길을 걸으면서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일, 그들의 수군거림이 플럼을 아파트 안으로 가두었던 일을 더는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런 삶의 자세를 나도 몸에 장착하고 살아가고 싶다는 것을.
"체중은 언제나 그랬듯이 내게 되돌아올 것이었다. 나는 온갖 일들을 겪었음에도 겉으로는 예전과 다를 게 없어 보였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은 달라져 있었다. 나는 변신을 거쳤다." (318~319페이지)
#다이어트랜드 #서레이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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