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YES24 카테고리 리스트

YES24 유틸메뉴

Global YES24안내보기

Global YES24는?

K-POP/K-Drama 관련상품(음반,도서,DVD)을
영문/중문 으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Korean wave shopping mall, sell the
K-POP/K-Drama (CD,DVD,Blu-ray,Book) We aceept PayPal/UnionPay/Alipay
and support English/Chinese Language service

English

作为出售正规 K-POP/K-Drama 相关(CD,图书,DVD) 韩流商品的网站, 支持 中文/英文 等海外结账方式

中文

검색


어깨배너

9월 상품권
9월 혜택모음
주말엔 보너스
서포터즈
1/6

빠른분야찾기


윙배너

마우스를 올려주세요.

마케팅 텍스트 배너

웹진채널예스


엘튼 존 명곡 커버 앨범 (Revamp: The Songs Of Elton John & Bernie Taupin) [2LP]
공유하기 예스24 음반 판매 수량은
차트와 차트 집계에 반영됩니다. 한터차트/가온차트 집계 반영 안내
수입
LP

엘튼 존 명곡 커버 앨범 (Revamp: The Songs Of Elton John & Bernie Taupin) [2LP]

[ 콜드플레이, 에드 시런, 샘스미스, 레이디 가가 등이 커버한 엘튼 존의 노래 ]
Logic, Alessia Cara, Sam Smith, Ed Sheeran, Florence + The Machine 노래 외 10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Universal / Virgin | 2018년 06월 26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60 판매지수란?
상품 가격정보
판매가 44,200원
할인가 35,800 (19% 할인)
YES포인트
추가혜택쿠폰 및 사은품(1종)
추가혜택쿠폰 쿠폰받기
  • 주문금액대별 할인쿠폰
카드혜택
결제혜택
카드할인 정보
 모바일팝 모바일 5% 즉시할인 (모바일 결제시) 자세히 보기
네이버페이 네이버페이 1% 적립 (전체결제) 자세히 보기
페이코 페이코 포인트결제 2% 적립 (신규고객 4,500원 할인) 자세히 보기
할인/적립 카드 더보기
구매 시 참고사항
구매 시 참고사항
  • 명확한 재생 불량 사유가 확인된 경우에만 반품이나 교환이 가능함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판매중| 한정판매

수량
배송비 : 무료 배송비 안내
  • 국내배송만 가능
1/4
광고 AD

엘튼 존 명곡 커버 앨범 (Revamp: The Songs Of Elton John & Bernie Taupin) [2LP]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8년 06월 26일

관련분류

카테고리 분류

이 상품의 이벤트 (1개)

음반소개

디스크

Disc
  • 01 Bennie And The Jets (2018 Version) - Elton John & P!nk & Logic
  • 02 We All Fall In Love Sometimes - Coldplay
  • 03 I Guess That's Why They Call It The Blues - Alessia Cara
  • 04 Candle In The Wind (2018 Version) - Ed Sheeran
  • 05 Tiny Dancer - Florence + The Machine
  • 06 Someone Saved My Life Tonight - Mumford & Sons
  • 07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 Mary J. Blige
  • 08 Don't Go Breaking My Heart - Q-Tip
  • 09 Mona Lisas And Mad Hatters - The Killers
  • 10 Daniel - Sam Smith
  • 11 Don't Let The Sun Go Down - Miley Cyrus
  • 12 Your Song - Lady Gaga
  • 13 Goodbye Yellow Brick Road - Queens Of The Stone Age

아티스트 소개 (15명)

노래 : Logic (로직,Sir Robert Bryson Hall II)
로버트 브라이슨 홀 2세 (Sir Robert Bryson Hall II, 1990년 1월 22일 ~) 는, 로직 (Logic)이란 예명으로 알려진 미국 래퍼이다. 메릴랜드 주 게이더스버그 출신이며 친구들과 함께 만든 랫팩 (RattPack) 소속으로 많은 인터넷 구독자를 모았다. 가장 최근 비평가들에게 극찬을 받은 Young Sinatra: Welcome to Forever를 비롯하여 4장의 정식 믹스테잎을 발... 로버트 브라이슨 홀 2세 (Sir Robert Bryson Hall II, 1990년 1월 22일 ~) 는, 로직 (Logic)이란 예명으로 알려진 미국 래퍼이다. 메릴랜드 주 게이더스버그 출신이며 친구들과 함께 만든 랫팩 (RattPack) 소속으로 많은 인터넷 구독자를 모았다. 가장 최근 비평가들에게 극찬을 받은 Young Sinatra: Welcome to Forever를 비롯하여 4장의 정식 믹스테잎을 발매하였다.

비저너리 뮤직 그룹 및 데프 잼 레코딩스과 계약을 맺고 2014년 10월 21일, 데뷔 음반 Under Pressure를 발매했다. 음반은 빌보드 200 차트 4위로 데뷔하여 첫 주에 7만 3천장의 판매고를 기록하였다. 또한 2015년 11월 13일, 2번째 정규 음반 The Incredible True Story를 발매하였다.
노래 : Alessia Cara (알레시아 카라)
태어난 곳은 아일랜드이지만 기반은 영국이다. 잉글랜드 남동부 서퍽(Suffolk)에서 성장했다. 열한 살 무렵 삼촌으로부터 낡은 기타를 선물받아 스스로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직접 만드는 새로운 노래에 눈을 떴다. 스스로 찾은 자질도 중요하지만, 함께 공연을 관람하면서 청중의 호응이 따르는 음악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부모도 곁에 있었다. 그리고 고교시절부터 바쁜 일과가 시작됐다. 낮에는 학교 가고, 밤에는 크고작은... 태어난 곳은 아일랜드이지만 기반은 영국이다. 잉글랜드 남동부 서퍽(Suffolk)에서 성장했다. 열한 살 무렵 삼촌으로부터 낡은 기타를 선물받아 스스로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직접 만드는 새로운 노래에 눈을 떴다. 스스로 찾은 자질도 중요하지만, 함께 공연을 관람하면서 청중의 호응이 따르는 음악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부모도 곁에 있었다. 그리고 고교시절부터 바쁜 일과가 시작됐다. 낮에는 학교 가고, 밤에는 크고작은 클럽을 찾았다. 밤새워 공연하는 날도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지만, 차차 사람들과 교감하는 방법을 터득해 간다. 어쿠스틱 공연을 기대했던 사람이든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이든 박수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자신했을 무렵, 입소문을 타고 관계자들이 찾아온다.

그는 지칠 줄 몰랐다. 2005년부터 2011년에 이르기까지 공개한 EP만 여덟 장이다. 2009년에만 총 312회 공연을 치뤘는데, 어디선가 봤던 제임스 모리슨의 연간 공연이 200회였다면서 그걸 뛰어 넘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고 했다. 행운이 따르기도 했다. 2010년 어느 시낭독 행사가 있었고 거기서 공연제의를 받아 미국 LA로 갔는데, 운좋게 제이미 폭스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시야에 그가 들어왔고 덕분에 제이미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여유롭게 미국을 여행할 수 있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정력적인 공연, 달랑 어쿠스틱 기타 하나로 다루는 풍요로운 장르, 젊음, 그리고 그 젊음으로 만들어낸 풍요로운 이야기들, 이 모든 것들은 두터운 팬덤을 형성하고 본격적인 주류 활동을 준비하는 기반이 되었다. 2011년 기회는 찾아오고 결국 데뷔 앨범이 나왔다. 나오자 마자 일주일 만에 10만장을 팔아치우며 UK 차트 1위에 등극했고, 각종 매체에서는 "10년 만에 데뷔 앨범으로 차트 1위를 정복한 남자 신예" "심장을 뚫고 차트를 정복한 달콤한 목소리" 등 호평이 따랐다.

그동안 그는 가진 게 별로 없었다. 늘 혼자였다. 휴식을 모르고 목청껏 노래하는 젊음이 있었고, 어쿠스틱 기타 하나가 있었으며, 사운드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루프 페달(loop pedal)이 있었을 뿐이다. 공연 영상을 뒤적여보면 재미있는 풍경이 나온다. 'Black Horse and the Cherry Tree'를 부르던 데뷔 시절의 케이티 턴스털이 그랬던 것처럼, 그도 몇 마디 연주를 띄우고 그걸 녹음해 계속해서 돌린다. 그렇게 만들어진 베이스를 바탕으로, 그 위에 소리를 덧입혀 노래하고 연주한다. 홀로 내는 소리가 헐겁게 느껴지지 않도록 사운드를 쌓는 방식이다. 한편 혼자 무작정 만들고 공연했고, 혼자 CD를 팔았다. 알아서 해결할 만한 실력이 있었고 그만큼 적극적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10월 영국 공연이 죄다 매진될 만큼 무수한 호응이 있다. 준수한 음악, 유망한 신예에 대한 세계의 관심 또한 기다리고 있다.
노래 : Florence + The Machine (플로렌스 앤 더 머신)
노래 : Lady GaGa (레이디 가가,Stefani Joanne Angelina Germanotta)
1986년 3월 28일, 미국 뉴욕에서 이태리 혈통을 가지고 태어난 스테파니 조안 안젤리나 저마노타(Stefani Joanne Angelina Germanotta)는 음악에 재능을 많이 간직한 아이였다. 4살 때 피아노에 관심을 보인 그는 13살 때 작곡을 시작해 14살에는 작은 무대에 서면서 가수로서의 경험을 축적했다. 뉴욕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한 스테파니는 학교를 중퇴하고 전문 작곡가로 음반사에 취직했으나 빛을... 1986년 3월 28일, 미국 뉴욕에서 이태리 혈통을 가지고 태어난 스테파니 조안 안젤리나 저마노타(Stefani Joanne Angelina Germanotta)는 음악에 재능을 많이 간직한 아이였다. 4살 때 피아노에 관심을 보인 그는 13살 때 작곡을 시작해 14살에는 작은 무대에 서면서 가수로서의 경험을 축적했다. 뉴욕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한 스테파니는 학교를 중퇴하고 전문 작곡가로 음반사에 취직했으나 빛을 보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멤버로 있었던 록 그룹의 미래 역시 불투명했다. 밴드를 탈퇴한 스테파니는 음악 노선을 팝으로 궤도수정 해 롭 푸사리라는 음반 제작자를 만나는데 그는 이탈리아 피가 흐르는 이 아가씨의 노래를 듣고 퀸(Queen)의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가 떠오른다며 퀸의 노래 ‘Radio Ga Ga’에서 힌트를 얻어 예명을 하사했다. 레이디 가가. 롭 푸사리는 훗날 레이디 가가의 데뷔앨범에 수록된 ‘Disco heaven’과 ‘Beautiful, dirty, rich’를 공동 작곡자로 음반 크레디트에 오른다. “퀸과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는 내 인생의 열쇠 같은 가수들이다. 그들을 알기 전까지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으니까”라고 밝힐 정도로 퀸과 데이비드 보위,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마돈나(Madonna)에게 경도된 레이디 가가는 2008년에 첫 음반 < Fame >을 공개했다. 이 앨범에 대해 “사람들이 명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담았다”고 설명한 레이디 가가는 첫 싱글 ‘Just dance’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라 그에게 벼락스타덤을 선사했고 후속 싱글 ‘Poker face’ 역시 넘버원을 차지해 ‘레이디 가가 신드롬’을 양산했다. < Fame >은 앨범차트 4위까지 상승했고 ‘Just dance’는 51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댄스 레코딩 후보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스테파니 조안 안젤리나 저마노타라는 길고 두려운(?) 이름으로 태어난 레이디 가가는 글램록 아티스트의 화려한 섹슈얼리티와 거침없는 자신감 그리고 확실한 멜로디 라인을 가지고 있는 쉽고 대중적인 노래로 대중 속으로 들어갔다. 그것도 매우 성공적으로.
노래 : Miley Cyrus (마일리 사이러스)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는 10대 청소년들을 위한 디즈니채널의 TV코미디시리즈 (Hannah Montana)에 주역을 맡아 2006년 하루 밤새 대형스타로 급부상했다. 부전자전, 우연인지 필연인지 1992년 ‘Achy breaky heart'를 빌보드 싱글차트 넘버원에 올려놓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라선 그의 아버지 빌리 레이 사이러스(Billy Ray Cyrus)의 행운을 물려받은 것. 더욱이 ’Ac...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는 10대 청소년들을 위한 디즈니채널의 TV코미디시리즈 (Hannah Montana)에 주역을 맡아 2006년 하루 밤새 대형스타로 급부상했다. 부전자전, 우연인지 필연인지 1992년 ‘Achy breaky heart'를 빌보드 싱글차트 넘버원에 올려놓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라선 그의 아버지 빌리 레이 사이러스(Billy Ray Cyrus)의 행운을 물려받은 것. 더욱이 ’Achy Breaky Heart‘가 빌보드차트 정상을 강타한 그해 마일리가 태어나 천우신조(天佑神助)가 따로 없었다. 1992년 11월23일, 억세게 운 좋은 사나이 빌리와 아내 레티시아(Leticia) 사이러스는 하늘이 내려준 딸 데스티니 호프 사이러스(Destiny Hope Cyrus)를 선물 받아 겹경사를 맞았다. 꼬마둥이 때부터 쾌활한 성격의 미소천사였던 데스티니 호프는 스마일리라는 별칭을 얻었고 그러한 연유로 지금의 마일리로 불리게 되었다. 타고난 탤런트 활동은 텔레비전 의학시리즈 (2003)의 에피소드에 아버지와 함께 출연하면서 첫발을 내딛었다. 같은 해 그녀는 팀 버튼(Tim Burton)의 영화 (Big Fish)에서 단역으로 출연해 대형스크린에까지 발을 뻗었다. 마일리는 일찍이 노래를 쓰고 가창법을 배우면서 음악에 관심과 자질을 개발해 나아갔다. 이제 갓 10대에 들어선 꼬마였던 그는 마침내 2005년 타고난 연기와 음악 재능을 작품에서 마음껏 펼쳐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마일리는 의 타이틀 역으로 캐스팅되었고, 2006년 3월24일 전파를 타기 시작한 이 TV쇼 프로그램에서 그는 낮엔 평범한 여학생 마일리 스튜어트면서 밤이면 밤마다 금발의 한나 몬타나로 변신해 세계적 유명 팝 스타로서의 숨겨진 끼와 춤 실력을 발산하는 생기발랄 10대 소녀를 연기했다. 2006년 3월 “한나 몬타나”에 출연, 가수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마일리는 청소년 시청자들의 대대적 호응에 힘입어 디즈니채널의 뉴 호프(New Hope), 힐러리 더프와 린제이 로한의 뒤를 이어 새로운 ‘드라마 퀸’으로 추대되었다. 10월엔 시트콤 에서도 음악가 아버지로 동반 출연한 그의 아버지 빌리 레이와의 듀엣노래 ’I learned from you'를 포함해, TV쇼에서 마일리가 부른 노래와 다른 삽입곡들로 구성된 사운드트랙음반이 발매되었다. 그해 가을 마일리는 디즈니가 배출한 또 다른 팝 스타 치타 걸스(Cheetah Girls)의 오프닝 무대를 장식해 관중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갈채와 환호를 받았다. 2006년 10월 첫 번째 사운드트랙앨범 이 발매된 데 이어 2집과도 같은 더블앨범 가 2007년 11월 발매되었다. 는 발매되자 곧 빌보드차트 정상에 오르며 기염을 토했다. 싱글 커트된 ‘See you again'(또 봐요)은 빌보드싱글차트 탑10을 노크했다. 2008년 봄에는 45개 지역 순회공연실황을 보너스 DVD와 패키지로 묶은 (Hannah Montana/Miley Syrus: Best of Both World Concert Tour)가 음반시장에 풀렸다. 그는 또한 자신이 공동작사, 작곡에 참여한 독집 < Breakout >(2008)을 공식 발표하며 본격 팝 아티스트 활동을 공표했다. ※마일리의 형제자매들 마일리는 이복언니 브랜디(Brandi), 두 명의 이복오빠 트레이스(Trace)와 크리스토퍼 코디(Christopher Cody), 남동생 브레이슨(Braison), 그리고 여배우 여동생 노아 린제이 사이러스(Noah Lindsey Cyrus)를 가족으로 두고 있다.
노래 : Mary J. Blige (메리 제이 블라이즈)
‘힙합 소울의 여왕’ 메리 제이 블라이즈(Mary J. Blige)는 지금까지 발표한 다섯 장의 음반들 통해서 자신의 입지를 탄탄히 구축해나간 실력파 여성 R&B싱어이다. 1990년대 초반 R&B 계열에 혜성같이 등장한 그녀는 타고난 가창력을 등에 업고 단숨에 흑인음악 신(Scene)에서 촉망받는 여성가수로 거듭나며 성공적인 음악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971년 1월 11일 ‘랩 / 힙합의 메카’ 뉴욕의 브롱스에... ‘힙합 소울의 여왕’ 메리 제이 블라이즈(Mary J. Blige)는 지금까지 발표한 다섯 장의 음반들 통해서 자신의 입지를 탄탄히 구축해나간 실력파 여성 R&B싱어이다. 1990년대 초반 R&B 계열에 혜성같이 등장한 그녀는 타고난 가창력을 등에 업고 단숨에 흑인음악 신(Scene)에서 촉망받는 여성가수로 거듭나며 성공적인 음악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971년 1월 11일 ‘랩 / 힙합의 메카’ 뉴욕의 브롱스에서 태어난 메리 제이 블라이즈는 어린 시절부터 글래디스 나이트(Gladys knight), 알 그린(Al Green) 등의 소울을 즐겨들으며 풍부한 감성을 키워갔다. 이런 덕분에 지금까지도 그녀는 고음역이나 현란한 기교 위주가 아닌 ‘영혼으로 노래하는 싱어’라는 평가를 받게됐다. 그녀는 자신이 존경했던 아니타 베이커(Anita Baker)의 곡 ‘Caught up’을 가라오케 장비로 불러서 녹음한 데모 테이프가 레코드의 사장이던 안드레 헤렐(Andre Harrell)의 눈에 띄어 가수로 데뷔하는 결정적인 기회를 얻었다. 헤렐은 그녀의 보이스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결국 의 프로듀서로 활동하던 션 “퍼피” 콤스(Sean “Puffy” Combs), 일명 피 디디(P Diddy)는 그녀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차리고 곧바로 앨범 작업에 들어갔다. 1992년 그녀의 데뷔작 이 발표되었을 때 비평계와 음악팬들은 파워풀한 가창력을 겸비한 걸출한 소울 싱어의 탄생에 한바탕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매력적인 보이스를 맘껏 자랑하며 소울과 R&B가 절묘하게 결합된 음악으로 그녀는 금새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이나 샤카 칸(Chaka Khan)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촉망받았다. 무려 300만장의 음반판매고를 기록한 그녀의 데뷔작품은 앨범차트 6위까지 순항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Real love’(7위), ‘Sweet thing’(28위), ‘You remind me’(29위), ‘Love no limit’(44위), ‘Reminisce’(57위) 같은 다수의 싱글 곡을 배출했다. 이듬해 같은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들과 함께 (1993)에 참여한 후 다시금 피 디디와 작업한 소포모어 음반 (1994년)는 앨범차트 7위까지 기록했고 힙합과 소울을 성공적으로 결합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인기행진을 이어나갔다. 흑인들의 슬픔과 자신의 개인적인 고통을 담은 곡들을 수록한 두 번째 음반은 싱글 ‘I’m goin’ down’(22위), You bring me joy(57위) 등이 히트했고, 비록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이듬해 그래미상에서 ‘베스트 R&B 앨범’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다. 두 장의 음반으로 게토 흑인여성의 진솔한 삶과 생각들을 생생하게 표현해낸 그녀는 결국 ‘힙합 소울의 여왕’이라는 거창한 칭호를 자연스레 얻게되었다. 프로듀스를 맡았던 피 디디가 명성을 드높이게 된 계기가 된 시점도 바로 이때부터였다. 그 후 잠깐의 시간동안 그녀는 베이비페이스(Babyface)가 총 프로듀스를 맡은 영화 의 사운드트랙 수록곡이었던 ‘Not gon’ cry’(2위)를 빅 히트시키기도 했다. 2집의 녹음기간 동안 재정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기도 한 그녀는 자신을 지원해준 서지 나이트(Suge Knight)의 레이블과 계약하고 세 번째 정규음반 작업에 들어갔다. 1997년에 발매된 3집 는 지미 잼(Jimmy Jam) & 테리 루이스(Terry Lewis) 작곡콤비와 더불어 베이비페이스, 알 켈리(R. Kelly), 로드니 저킨스(Rodney Jerkins) 같은 실력파 뮤지션들과 함께 했다. 음반은 발매 첫 주 빌보드 앨범차트 정상에 등극했고 ‘Everything’(24위), ‘I can love you’(28위) 같은 준(準)히트 싱글을 배출했다. 일부 비평가들은 “예전작품에 비해 보다 진부한 소울 사운드이다”라면서 다소 못마땅해 했지만 팬들은 여전히 그녀에 대한 사랑을 아끼지 않았다. 이듬해인 1998년에 라이브 음반 (21위)를 발표한 뒤 그녀는 흑인 게토정신을 보다 더 공고히 한 4집 (1999년)를 발표했다. 음반은 ‘All that I can say’(44위)의 히트와 더불어 앨범 차트 2위까지 올랐으며 전작에 비해 그녀만의 스타일을 좀더 풍부하고 우아하게 담아내 한층 세련되고 깊이를 더한 사운드를 선보였다. 엘튼 존(Elton John)과 버니 토핀(Bernie Taupin),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아레사 프랭클린,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 로렌 힐(Lauryn Hill), 베이비페이스 등 장르를 초월한 여러 뮤지션들과의 신선한 교류 중에도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은 음악을 들려줘 다시 한번 1990년대 최고의 ‘소울 퀸’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2001년에 발매된 5집 는 그녀가 이전에 발표했던 그 어떤 작품보다도 음악적인 면에서 보다 많이 관여했으며 작곡까지 손을 대는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음반은 앨범차트 2위까지 기록했고, ‘Family affair’(1위), ‘No more drama’(15위) 같은 빅히트 싱글을 양산해냈다. 같은 해 모음집 를 발표해 스티비 원더의 ‘Overjoyed’를 커버해 수록했고, 이듬해에는 (76위)를 발표해 ‘Rainy dayz’(12위)를 히트시켰다. 지난해 그래미상에서는 무려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영광을 차지하기도 했다.
세상일에 아무 관심없는 천재 작곡가 대중 음악인을 ‘음악 하는 자세’와 관련하여 분류한다면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그가 처해 있는 시대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여 대중 정서의 현 위치를 찾으려는 사람들이며, 다른 한쪽은 주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든 무관하게 자신의 음악만을 표출하는 데 심혈을 쏟는 사람들이다. 두 가지 스타일이 혼재되어 있는 음악인도 있을 테지만 대체로 전자의 무게 중심은 시각... 세상일에 아무 관심없는 천재 작곡가 대중 음악인을 ‘음악 하는 자세’와 관련하여 분류한다면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그가 처해 있는 시대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여 대중 정서의 현 위치를 찾으려는 사람들이며, 다른 한쪽은 주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든 무관하게 자신의 음악만을 표출하는 데 심혈을 쏟는 사람들이다. 두 가지 스타일이 혼재되어 있는 음악인도 있을 테지만 대체로 전자의 무게 중심은 시각(view)일 것이며 후자는 예술(art)이다. 엘튼 존은 바로 후자를 대표하는 금세기 최고 록 스타 가운데 한사람이다. 흔히 그는 1970년대를 대변하는 톱 가수로서 록 역사에 기록된다. 1970년대가 개막되면서 ‘보더 송(Border song)’을 빌보드 차트에 랭크시키며 등장한 그는 이후 당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탁월한 선율로 인기 차트를 석권했다. 그의 멜로디를 뽑아내는 재주는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쌍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경이적이었고 또 천재적이었다. 만약 1970년대에 그가 없었더라면 팝계의 ‘예술적 활기’는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와 관련, 록 평론가인 로버트 크리스트고(Robert Christgau)의 엘튼 존에 대한 서술은 참으로 맹쾌하다. “1960년대의 비치 보이스처럼 엘튼 존은 1970년대의 필수적인 시금석으로 남아 있다. 따라서 그가 해악의 진부성을 축약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그렇게 하라. 하지만 내 생각으로 그는 가장 유순하고 황량한 시절마저도 생기로 가득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인물이다.” 그런데 크리스트고도 인정하고 있듯이 1970년대는 사회성으로 특징지어진 1960년대 록 혁명의 정신이 함몰되어 버린 ‘록 예술성의 시대’로 정의된다. 크리스트고가 그때를 ‘해악’이니 ‘유순하고 황량한 시절’이니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식에 기초한 것이다. 엘튼 존 스스로도 ‘음악을 만들면서 정치적 이슈를 내거는 것은 넌센스다. 세상사를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가서 음악하는 것뿐’ 이라며 자신의 비(非)참여적 음악관을 천명하곤 했다. 그는 “음악에 있어서 정치가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말로 세상을 바꾸려 했던 1960년대 가수들을 보라. 삶은 여전히 똑같지 않은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가 록의 사회성에 얼마나 등을 돌렸는지는 곡 쓰기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그는 다른 송라이터들과 달리 작사는 직접 하지 않고 남에게 맡겼는데 당시 그의 작사 파트너는 버니 토핀(Bernie Taupin)이었다. 버니가 쓴 노랫말은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으로 가득 찼다. 버니는 사회를 떠난 신변잡기의 소재에 집착하면서 공상을 써내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엘튼은 그의 가사를 좀처럼 따지지 않았다. 그저 즐겁게 그의 공상을 팬들에게 전달할 뿐이었다. 그는 심지어 “난 정말 버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 어떤 사람에 대한 노래냐고 묻기는 하지만 의미를 캐내지는 않는다. 난 그의 가사 10편에 곡을 붙일 때까지 그를 만나지 않은 적도 있다”고 스스럼없이 밝히기도 했다. 자기 환상만을 늘어놓는 작사가, 그것을 검증도 없이 곡을 쓰고 즐겁게 노래하는 가수, 그들에게서 시각을 바랄 수 없다. 그런 음악은 본질적으로 예술 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엘튼 존이 1970년대의 특성을 떠 안은 인물임을 시사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단서가 있다. 1970년대는 1960년대 히피의 프리 섹스 여파로 성의 일반적 개념이 철저히 해체되어 독신, 동성애, 그룹 섹스, 배우자 바꾸기 등 새로운 섹스 스타일이 마구 고개를 들던 시기이기도 했다. 때문에 1970년대를 ‘자극의 시대’라고도 일컫는 것이다. 엘튼은 소문난 양성(兩性)주의자였다. 아니, 스스로 바이 섹슈얼(Bi-sexual)이라고 공언하고 다녔다. 그런 충격적 신상 공개는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를 뺀다면 록 스타들 중에서는 그에게서 최초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는 양성주의자가 아니라 동성주의자, 즉 게이라는 사실이었다. 최근 < 디테일즈 >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왜 그 때 호모라고 하지 않고 바이 섹슈얼이라고 했냐”하는 질문에 “아마 겁이 나서였기 때문일 거다. 진실 파기이지만 그 당시에는 가능한 한 ‘외교적’으로 말하려고 생각했다”고 답변했다. 이 부분에 관해서 그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인터뷰 내용을 더 살펴보기로 하자. - 언제부터 여성 관계를 단계적으로 끝냈는가? :끝내다니? 어떠한 여성 관계도 결코 없었다. 그 누구도 나는 끝내고 자시고 하지 않았다. - 몇 살 때부터 자신이 게이임을 알았는가? :대략 23세쯤이었을 거다(그는 1947년생이므로 1970년쯤 된다). 그때가 나의 첫 실제 경험이었다. 아마 그 전부터 게이인지 알았을 텐데 23살에 실질적으로 그것을 맞이했다. - 그런데 결혼은 왜 했나? :잘못된 이유로 결혼했다. 난 결혼하면 내가 당하고 있는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난 게이야. 난 정말 불행해’라고 여기곤 했으니까. 동성연애자라는 여론의 화살을 피하려고 결혼했다는 얘기다. 그는 1984년 독일 출신의 레코딩 엔지니어인 레니트 블라우어(Renete Blauer)와 결혼식을 올렸다. 게이라고 공공연히 밝힌 사람이 여자에게 갔다는 이유로 화제를 모았던 이 관계는 당연히 오래가지 못했다. 둘은 3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1987년 이혼했다. 게이 발언, 여성과 결혼, 그리고 이혼 등의 사건으로 이미 타블로이드 신문의 가십 단골이 된 그는 1988년 마침내 한 차례 커다란 홍역을 치러야 했다. 영국의 < 선 >지가 “엘튼이 10대 어린이들을 모아 놓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추잡한 섹스 파티를 벌였다”는 기사를 게재한 것이었다. 그 기사에 따르면 그는 게이를 초월하는 ‘성도착증 환자’이자 ‘성격 장애자’나 다름없었다. 인간 관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어머니마저 창피해 스페인으로 떠나버리자 분기탱천한 그는 두주먹 불끈 쥐고 < 선 >지를 고소했고 이어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이게 됐다. 그는 이 재판에서 승소해 명예를 회복했지만 이후 언론으로부터는 ‘흥미의 대사(Ambassador of Fun)’라는 불명예스런 타이틀을 얻었다. 애초부터 매스컴과 우호적인 관계는 아니었지만-언론의 등쌀이 마릴린 먼로를 죽이게 했다는 내용을 노래 ‘바람속의 촛불(Candle in the wind)’로 알 수 있다-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언론에 몸서리를 치게 되었다. 그는 영화 < 라이온 킹 >의 사운드 트랙은 ‘오늘밤 그대는 사랑을 느끼나요?(Can you feel the love tonight?)’으로 재기한 94년까지 근 7년 간 가능한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회피했다. 그의 기자 혐오증은 너무나 유명하다. 스스로도 “난 영국의 언론에 분노가 치민다. 정말로 그들이 싫다. 그들은 거짓말쟁이들이며 지구의 깡패들이다”라고 강도 높게 말하기도 했다. 그의 언론에 대한 분노는 지금도 살아 끓어 넘친다. 올해 발표된 새 앨범의 타이틀 송 ‘메이드 인 잉글랜드(Made in England-8월 19일자 빌보드 싱글 차트 52위)’가 그것을 실증해 주는 곡이다. “난 영국에서 만들어졌어. 블루 코티나차처럼 말야... ...넌 스캔들의 냄새를 좇았지. 여기 내 가운데 손가락을 봐. 난 고통의 40년을 살았어. 아무것도 기댈 것이 없어... ...넌 아직도 호모라고 얘기하고 모든 사람이 웃지.” 그가 이처럼 투정을 부리는 것도 일리는 있다. 원래가 솔직하고 감성적인 성격으로 자신의 성(性)을 고백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을 거치면서 일반인들의 미움과 손가락질이 생겨난 것이라고 그는 믿기 때문이다. 그의 인기가 하향세로 접어든 것도 양성주의자임을 밝힌 1976년부터였다. 그는 1989년 < 파리 마치 >지와의 인터뷰에서 “지난번 앨범 < 레그 스트라이크스 백(Reg Strikes Back) >은 전세계적으로 판매 성적이 대단히 좋았는데 유독 영국에서만은 결과가 안 좋았다. 영국인들 대부분이 < 선 >지의 악의적인 기사를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어떤 논리적인 응수에도 불구하고 그가 ‘예술과 자극’의 1970년대라는 보수 시대를 살아왔으며 보수 성향의 인물이라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는 또 명백한 ‘록 엘리트’다. 부자라는 점에서도 그렇거니와 음악 능력의 측면에서도 그렇다. 그는 “버니의 가사를 받아 기분이 좋을 때면 곡을 쓰는데 15분도 안걸린다”고 자랑했다. 그런 천부적 재능을 밑천 삼아 그는 지금까지 무려 32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물론 이 왕성한 생산력을 아티스트의 성실성이라는 측면에서 극구 칭송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틀어보면 그것은 음악 엘리트만이 할 수 있는 일 아닐까. 실제로 그는 비평계 일각으로부터 ‘음악의 과소비’를 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그가 1970년대 후반 ‘엘리트만이 아니라 누구나 음악할 수 있다’는 평등의 이데올로기를 내건 펑크 진영의 공격 대상이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아직도 그의 이름에는 ‘로커’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러며 연상되는 과거의 거친 피아노 연주나 기행적 무대는 분명 폭발과 반란을 특질로 하는 록의 전형적 제스처였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서 그러한 ‘록의 반항적 미학’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오늘밤 사랑을 느끼나요’가 말해주듯 중산층의 격조와 결탁한 ‘AOR(Adult Oriented Rock)’이나 스탠더드 팝으로 색깔을 바꾸어 안전지대에 정착해 있다. < 타임 >지는 얼마전 그의 새로운 전성기가 도래했음을 대서특필하는 순간에도 ‘그에게는 실재(實在)하는 록 스타의 고뇌와 거친 감정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빼놓지 않았다. 그가 ‘팝계의 불사조’라는 작위를 하사 받아야 함은 마땅하다. 정글과도 같은 팝계를 4반세기에 걸쳐 롱런한 ‘영광의 생존’만으로도 그는 위대하다. 1993년에 이미 엘비스 프레슬리의 벽을 넘어 24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차트 40위권의 히트곡을 낸(올해로 그 햇수는 26년으로 늘어났다) 사실만으로도 그의 위력을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 마흔여덟 살의 노장이 신인들 틈새에서 몇 백만 장의 음반 판매고를 올리는 것 또한 우리 입장에서는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그 나이의 사람에게 록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는 것도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시각이 없다. 그는 4반세기 동안 그의 관점을 개인으로부터 해방시킨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보수적인 시대에 환영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내내 부진하다가 미국 사회에 보수적인 기류가 소생한 지난해(1994년) 재기한 것을 보라. 그의 노래들 ‘굿바이 옐로 브릭 로드(Goodbye yellow brick road)’ ‘오늘밤(Tonight)’ ‘미안하다는 말은 정말 어려워(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등은 아직도 우리들에게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는 실로 우리의 팝송 청취와 수용이 예술적 가치에만 집중되어 있음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래 : Pink (핑크,Alicia Beth Moore)
2000년에 데뷔한 신인 R&B 여가수 핑크는 베이비페이스와 LA 리드가 설립한 레이블 < 라페이스 >(LaFace)가 점찍은 전도유망한 기대주다. 분홍빛 머리색에서 따와 이름을 정한 핑크는 어려서부터 갈고 닦은 가창력을 바탕으로 업 템포의 댄스 팝과 R&B 넘버들을 들려준다. 언뜻 듣기에 TLC 같은 선배 여가수들과 비슷하게 들리지만 튀는 외모만큼이나 상큼한 개성이 남들과 구별된다. R&B 최정상 레이블인 < ... 2000년에 데뷔한 신인 R&B 여가수 핑크는 베이비페이스와 LA 리드가 설립한 레이블 < 라페이스 >(LaFace)가 점찍은 전도유망한 기대주다. 분홍빛 머리색에서 따와 이름을 정한 핑크는 어려서부터 갈고 닦은 가창력을 바탕으로 업 템포의 댄스 팝과 R&B 넘버들을 들려준다. 언뜻 듣기에 TLC 같은 선배 여가수들과 비슷하게 들리지만 튀는 외모만큼이나 상큼한 개성이 남들과 구별된다. R&B 최정상 레이블인 < 라페이스 >가 선택한 가수답게 핑크는 충분한 실력과 잠재력을 지진 가수다. 1979년에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핑크는 음악가정에서 성장했다. 밥 딜런과 돈 맥클린의 노래를 기타로 즐겨 치곤 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녀는 10대 초반부터 클럽에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여러 클럽을 순회하며 댄스와 힙합에 젖어들었으며, 14살 때에는 처음으로 노래를 작곡했다. 얼마후 이를 눈여겨본 음반사 관계자에 의해 오디션을 보게 되지만 탈락했다. 하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핑크는 초이스(Choice)라는 여성 3인조 그룹을 결성해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 < 라페이스 >에 보냈다. 다행히도 그 테이프가 통과되어 핑크는 당당 < 라페이스 > 사단의 일원이 되었다. 얼마 후 초이스는 해체되고 핑크는 솔로로 독립했다. 그 첫 행보가 2000년 출시된 데뷔앨범 < Can’t Take Me Home >이다. ‘마이다스의 손’ 베이비페이스와 LA 리드 그리고 대릴 시몬의 손길이 닿은 이 앨범은 새로운 여성 R&B 스타를 탄생시켰다. 이 앨범을 들어보면 요즘의 프로듀서진들이 얼마만큼 뛰어난 지 느낄 수 있다. 꽉 찬 사운드에 탄탄한 곡 구성력은 감탄할 정도다. 가히 ‘프로듀서들의 시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프로듀서들은 핑크의 매력적이고 원기 충만한 보컬을 충분히 부각시켰다. 신시사이저 프로그래밍이 대부분의 곡에 사용되고 있는 것이 특색. 데뷔 싱글 ‘There you go’은 TLC의 ‘No scrub’을 만들어 크게 히트시켰던 섹스피어(She’kspeare)가 작곡한 곡이다. 펑키함이 꿈틀거리는 이 곡은 톱10 히트를 기록했다. 닐 크리크의 곡을 샘플링한 발라드 곡 ‘Let me let you know’에서 핑크의 보컬은 머라이어 캐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국내 모 틴 여가수가 표절했다는 시비가 붙기도 한 ‘Most girls’ ‘Just to be loving you’ 같은 곡에서의 검은 정글 리듬은 근래 틴 팝의 경향과도 일맥상통한다. 전체적으로 TLC의 영향이 감지되는 가운데 틴 팝과 머라이어 캐리 풍의 발라드도 함께 구사하고 있다. 나무랄 데 없는 재능을 지녔지만 1집만 가지고 본다면 이 앨범의 영광은 프로듀서의 몫으로 돌려야 할 것 같다. 2001년 6월에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마야, 릴 킴과 함께 영화 < 물랑 루즈 >의 삽입곡 ‘Lady Marmalade’를 불러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밴드 : Mumford & Sons (멈포드 앤 선즈)
밴드 : The Killers (킬러스 (락/팝 밴드))
멤버 : Brandon Flowers (리드보컬/키보드), Dave Keuning (기타/백보컬), Mark Stoermer (베이스/백보컬), Ronnie Vannucci Jr (드럼/퍼커션) 2004년에 ‘Somebody told me’라는 메이저 데뷔 싱글로 큰 성공을 포획한 킬러스(Killers)는 정체성을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알쏭달쏭한 그룹이다. 신시사이저를 앞세운 철지난 1980년대의 뉴웨이브를... 멤버 : Brandon Flowers (리드보컬/키보드), Dave Keuning (기타/백보컬), Mark Stoermer (베이스/백보컬), Ronnie Vannucci Jr (드럼/퍼커션)

2004년에 ‘Somebody told me’라는 메이저 데뷔 싱글로 큰 성공을 포획한 킬러스(Killers)는 정체성을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알쏭달쏭한 그룹이다. 신시사이저를 앞세운 철지난 1980년대의 뉴웨이브를 섞은 펑크 사운드와 미국 라스베이거스 출신이면서도 대서양 건너편인 영국과 유럽에서 먼저 반응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1980년대 정서는 히트 공식이며 미국 출신임에도 영국 성을 지향한 음악 스타일은 전 세계 음악 팬들로부터 받는 인기의 기반이 되는 블루칩이다. 킬러스가 뉴웨이브 사운드를 한다는 근거는 보컬리스트 브랜드 플라워스(Brandon Flowers)가 신시사이저를 구사하는 것 외에 그의 음색이 카스(Cars)의 목소리 릭 오케이섹(Ric Ocas다)이나 데드 오어 얼라이브(Dead Or Alive)의 피트 번스(Pete Burns)처럼 목에 떨림을 최대한 강조해 에코가 잔뜩 들어가 있는 1980년대 뉴웨이브 팀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건반과 보컬을 맡고 있는 브랜든 플라워스와 오아시스(Oasis)의 기타에 경도된 기타리스트 데이비드 크닝(David Keuning)이 만나 베이시스트 마크 스토어머(Mark Stoermer), 드러머 로니 바누치(Ronnie Vannucci)를 규합해 2002년에 조직한 ‘살인자들’은 리자드 킹이라는 영국의 인디 레이블의 관심을 받고 2003년에 대영제국에서 싱글 ‘Mr. Brightside’를 발표하면서 음악 팬들의 민감한 촉수를 끌어당겼다. 이듬해인 2004년에 공개한 데뷔앨범 < Hot Fuss >에서는 미국에서 발표된 첫 싱글 ‘Somebody told me’가 51위까지 밖에 오르지 못했지만 후속타인 ‘Mr. Brightside’가 10위에 오르면서 미국 내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고 그 밖에 ‘All these things that I've done’과 ‘Smile like you mean it’, ‘Jenny was a friend of mine’ 등이 고루 조명을 받았으며 음반은 앨범차트 7위를 기록해 신인으로서는 드물게 멀티 히트를 기록했다. 특히 영국에서 먼저 화제가 된 ‘Mr. Brightside’는 2006년에 국내 은행의 광고음악으로 쓰여 국내 팬들에게 인식되었고 ‘All these things that I've done’은 2008년 여름, 베이징 올림픽이 한창일 때 스포츠 브랜드의 광고음악으로 사용돼 깊이 각인되었다. ‘All these things that I've done’의 가사 ‘I got soul, but I'm not a soldier’가 나오는 소절과 운동경기 모습을 스피디하게 교차 편집한 이 광고는 깊은 스포츠의 감동을 전했으며 이것으로 킬러스의 음악이 얼마나 역동적인지를 반증했다. 2006년에는 두 번째 음반 < Sam's Town >에서는 ‘Bones’, ‘When you were young(14위)’, ‘Read my mind(62위)’가 인기를 얻으며 앨범차트 2위까지 오르는 스매시히트를 쳤으나 평가는 전작에 미치지 못했다. 2007년에는 미공개 트랙과 B 사이드 곡 그리고 리메이크 노래들로 채워진 < Sawdust >를 공개해 숨고르기를 결정했지만 이 앨범마저 음반차트 12위에 랭크되며 메이저 급 밴드로 성장했음을 등록했다. 여기서는 루 리드(Lou Reed)와 함께 한 ‘Tranquilize’와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의 원곡을 재해석한 ‘Shadowplay’, 그해의 블록버스터 영화인 < 스파이더맨 3 >에 삽입된 ‘Move away’ 등이 반응을 얻었지만 하이라이트는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의 오리지널에게 새로운 호흡을 불어넣은 ‘Romeo and Juliet’이다. 에비로드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이 곡은 우리가 킬러스의 보지 못했던 면을 결정적으로 부각시켰다. 부지런한 ‘살인자들’은 2008년 가을에 세 번째 정규앨범 < Day And Age >를 발표했다.
밴드 : Coldplay (콜드플레이)
멤버 : 크리스 마틴(Chris Martin, 보컬, 피아노), 존 버클랜드(Jonny Buckland, 기타), 윌 챔피언(Will Champion, 드럼), 가이 베리맨(Guy Berryman, 베이스) 콜드플레이(Coldplay)는 오아시스 이후 또 한번의 미국정복을 고대한 영국 언론으로부터 ’’넥스트 빅 씽’’으로 지목되어 2000년에 영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누린 밴드이다. 이들은 데뷔와 동시에 언론... 멤버 : 크리스 마틴(Chris Martin, 보컬, 피아노), 존 버클랜드(Jonny Buckland, 기타), 윌 챔피언(Will Champion, 드럼), 가이 베리맨(Guy Berryman, 베이스)

콜드플레이(Coldplay)는 오아시스 이후 또 한번의 미국정복을 고대한 영국 언론으로부터 ’’넥스트 빅 씽’’으로 지목되어 2000년에 영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누린 밴드이다. 이들은 데뷔와 동시에 언론의 격찬세례를 받았고 오아시스(Oasis), 라디오헤드(Radiohead) 그리고 트래비스(Travis) 등의 거물들이 밴드를 설명할 때 거론되었다. 아마도 현재까지 ’’브릿팝의 차세대 선두주자’’로 이들을 언급하는데 큰 반대는 없을 듯 하다. 하지만, 비교는 비교일 뿐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음악’’ 인 것이다. 1998년부터 여러 장 EP와 끊임없는 라이브 공연으로 인지도를 넓혀가던 이들은 결국 < EMI >와 계약을 체결, 첫 싱글 ’’Shiver’’를 선보였다. 이 곡으로 인상적인 출발을 거두면서 콜드플레이는 1999년 대망의 데뷔앨범 < Parachutes >를 발표해 영국 앨범 차트 1위에 등극시켰다. 그들 특유의 서정성과 감수성이 십분 발휘된 이 앨범에서는..... 보컬의 팝적 선율(hook)과 몽환적인 기타사운드를 전면에 앞세워 청자의 귀를 잡아끈다.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예상할 수 있는 첫 트랙 ’’Don’’t Panic’’이 끝나면, 첫 싱글로 영국 차트 30위권 진입이라는 성공을 거둔 전형적인 기타 팝 넘버 ’’Shiver’’가 나온다. 어쿠스틱 기타의 공간감이 돋보이는 ’’Spies’’ 는 본작에서 가장 정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전진하는 기타 스트로크와 멜로디 라인이 인상적인 ’’Yellow’’ 는 싱글 차트 10위 이내에 들어가는 히트를 기록했고, 잠시 쉬어가는 타이틀곡 ’’Parachutes’’이 끝나면 흘러나오는 ’’High Speed’’에서는 드림 팝, 슈게이징 사운드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후렴구의 반복으로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를 선보이는 ’’Everything’’s Not Lost’’와 깔끔한 마무리가 돋보이는 히든 트랙’’Life is For Living’’까지 앨범은 이들의 첫 정규 앨범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수작들로 가득하다. 특히 기타, 베이스, 드럼에 피아노만을 첨가하여 이런 풍부한 공간감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대단한 것이다. 밴드는 위에 언급한 ’’거물’’들의 영향들을 초월해서 자신들만의 음악을 창조해낸 것이다. 라디오헤드가 < OK Computer >를 발표하기 전에 이미 완성한 곡들이라는 것 또한 증거가 되기에 충분하다. 차라리 브릿팝이 형성되기 이전의 밑거름이 된 음악들을 언급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일 것이다. 언제나 하나의 음악이 폭발한 후에는 그것을 보편적인 코드로 정착시키는 ’’안정’’이 이어지기 마련이다. 니르바나(Nirvana) 이후의 그런지 록의 득세,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이후 하드코어의 약진 등이 이것을 설명해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콜드플레이는 라디오헤드 이후에 두드러진 ’’개인적인 감상주의’’에 기반을 둔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말이 그들만의 고유한 색깔이 없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록 예술은 혁명적이며 이전 세대와의 단절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콜드플레이의 앨범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때로 록에는 편안함과 휴식을 주는 기능도 있다. 따뜻한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콜드플레이의 앨범은 바로 이 점에서 빛을 발했다.
밴드 : Queens Of The Stone Age (퀸즈 오브 더 스톤 에이지,QOTSA)

음반 속으로

Universal Music Austria
LadyGagaVEVO

회원리뷰 (0건)

매주 10건의 우수리뷰를 선정하여 YES상품권 3만원을 드립니다.
3,000원 이상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일반회원 300원, 마니아회원 6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리뷰쓰기

등록된 리뷰가 없습니다.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0건)

1,000원 이상 구매 후 한줄평 작성 시 일반회원 50원, 마니아회원 1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0/50

등록된 한줄평이 없습니다.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배송 안내
배송 구분 YES24 배송
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 포장안내1
  • 포장안내2
  • 포장안내3
  • 포장안내4
포스터 안내
  •  구매하신 상품에 포스터 사은품이 있는 경우, 포스터는 상품 수량과 동일한 수량이 제공됩니다.
  •  포스터는 기본적으로 지관통에 포장되며, 2장 이상의 포스터도 1개의 지관통에 담겨 발송됩니다.
  •  포스터 수량이 많은 경우, 상황에 따라 지관통 추가 및 별도 박스에 포장되어 발송될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반품/교환 방법
  •  마이페이지 > 반품/교환 신청 및 조회, 1:1 문의,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예스이십사(주)
서울시 영등포구 은행로 11, 5층~6층(여의도동,일신빌딩) 대표 : 김석환   개인정보보호책임자 : 권민석 yes24help@yes24.com 사업자등록번호 : 229-81-37000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05-02682호 사업자 정보확인 호스팅 서비스사업자 : 예스이십사(주)
고객만족센터 T.1544-3800
상담 전화번호
  • 중고샵 문의 1566-4295
  • 영화예매 문의 1544-7758
  • 공연예매 문의 1544-6399
1:1 문의하기 자주 묻는 질문 상담시간 안내
YES24 수상내역 정보보호 관리체계 ISMS인증획득 개인정보보호 우수사이트
소비자피해보상보험 서울보증보험
고객님은 안전거래를 위해 현금 등으로 결제 시 저희 쇼핑몰에서 가입한 구매안전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서비스가입사실 확인
EQUUS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