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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 사소한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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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레키 저 / 신해경 | 아작 | 2016년 05월 25일 | 원서 : Ancillary justice 리뷰 총점8.6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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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6년 0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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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22.29MB 파일/용량 안내
ISBN13 9791187206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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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저자 소개

저자 : 앤 레키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시공간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물과 사건들을 능란하게 그려낸 저자 앤 레키는 어릴 때부터 열성적인 SF 독자였고 일찍부터 작가로서의 미래를 꿈꾸었으나 실제로는 중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한 늦깎이 작가다. 청소년기에 쓴 초기작품이 거의 발표 기회를 얻지 못하자 문학 대신 음악을 공부한 저자는 결혼하고 두 아이를 출산한 후에 다...
역자 : 신해경
더 즐겁고 온전한 세계를 꿈꾸는 전문번역가. 대학에서 미학을 배우고 대학원에서 경영학과 공공정책학을 공부했다. 생태와 환경, 사회, 예술, 노동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아랍,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버블 차이나》, 《덫에 걸린 유럽》, 《침묵을 위한 시간》, 《북극을 꿈꾸다》, 《발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 《제대로 된 시체답게 행동해》(공역) 등이 있다.
1부?-?정의의 꽃 닐트 / 올스 / 닐트 / 올스 / 닐트 / 올스 / 닐트 / 올스 / 닐트 / 올스 2부?-?공정의 꽃 닐트?/ 저스티스 토렌 호?/ 닐트?/ 저스티스 토렌 호 / 닐트 / 저스티스 토렌 호 3부?-?이익의 꽃 통관원 케이트 / 통관감독관 / 우주정거장 / 벨 오스크 함장 / 아난더 미아나이 / 머시 칼르 호 / 브렉 미아나이 감사의 말 해설 및 역자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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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사소하지만 숭고한, 인간 아닌 인간적 존재의 자유와 방랑

『사소한 정의』는 출간된지 몇 년 안 된 시점에 이미 어떤 이들에겐 다음 세기에도 남을 명작 취급을 받는 이유를 스스로 충분히 증명한다. 이 소설은 SF 역사 초기엔 서구에서도 비하되는 하위장르였던 스페이스 오페라가 백여 년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사색과 경이와 재미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장르로 자라났는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라 할 만하다.

20세기는 인류가 미래의 어느 시점엔 거주공간을 지구 바깥으로 확장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을 가장 강하게 가진 시대였다. 본격적인 우주 탐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인간이 우주로 나가 외계인과 조우하는 이야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우주를 배경으로 한 활극’이라 번역할 수 있는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장르의 탄생도 자연스러웠다.

반면에 21세기는 낙관에 가득 찼던 전 세기와는 달리 인간이 결국은 지구를 벗어나지 못하고 멸종할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시대가 되었다. 종말론은 예전에도 있었으나 그 원인으로 제시되는 것 역시 당혹스럽다. 20세기의 종말론은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해진 핵무기와 같은 과학기술의 힘에 대한 공포에 근거했다. 그것은 공포였지만 자연의 속박을 뛰어넘은 인간의 힘을 보여준다는 점에선 일종의 자아도취이기도 했다.

그러나 21세기의 파국론은 역시 인공적이지만 인간조차 그 작동원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더 이상 쓸모없어진 인간을 대체하려고 하는 인공지능에게서 연유한다. 섣부른 예언가들은 1~2세기가 지나기 전에 인공지능이 현생 인류의 모습을 결정적으로 변화시킬 거라고 떠들어댄다. 세계대전이나 핵전쟁과 같은 화려한 불꽃놀이에 대한 공포는 지구별에 갇혀 자신이 만들어낸 창조물에게 밀려나 천천히 말라 죽어가는 상황에 대한 불안으로 대체되었다.

우주와 인공지능이 함께 나올 때

물론 SF소설은 오랫동안 ‘우주’와 ‘인공지능’을 함께 다루었다. 전자는 인간 바깥에서 인간에게 가장 정복하기 어려운 외부의 영토를 상징했고, 후자는 인간의 가장 내밀한 부분에 있기에 다가서기 어려운 영역을 재현하는 일이었다. 그것들은 현대의 과학기술로서도 가장 상상하기 어려운 과업이었기에 가장 발달된 미래 사회를 상상할 때 함께 나오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낙관의 시대가 비관의 시대로 전환되면서 익숙한 소재들이 결합하는 양상도 바뀌고 있다.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해봤을 때, 오랫동안 ‘우주’는 탐구해야 할 객체였고 주체는 ‘인간’이었으며 ‘인공지능’은 그 주체의 조력자였다.

하지만 ‘라드츠 우주’의 세계에선 이 관계가 다소 뒤집혀 있다. 라드츠 제국의 전력의 핵심인 라드츠 함선은 인공지능이 통제하는데, 그 인공지능은 함선만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육체를 ‘보조체’로 사용한다. 크게 손상을 입히지 않고 사살한 적군의 병사나 민간인을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서 함선 인공지능이 통제하는 육체로 활용한다. 그리하여 함선 인공지능은 이론적으론 수천 개의 육체에서 존재할 수 있다. 여기에선 차라리 인공지능이 주체이며 인간은 그에 대해 보조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당연히 라드츠 함선에도 인간 장교가 탑승한다. 장교는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함선에 명령을 내리고 함선 기능에 의해 보살핌을 받으며, 보조체 병사들을 부대원으로 부리기도 한다. 서열로만 본다면 인간이 인공지능의 위에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어떨까. 기본적으로 함선에 탑승한 인간의 모든 정보는 여과없이 함선에 제공될 뿐더러, 백 년 남짓한 라드츠인의 수명과는 달리 수천 년을 살아남은 함선들은 경험의 폭과 질에서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 라드츠 군주인 아난더 미아나이와 대면했을 때 덜 당황스러워 하는 것도 장교보다는 함선 쪽이다. 사실 ‘유전적으로 동일하고 빠짐없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수천 개의 몸을 가지고 3천 년 동안 라드츠 우주를 지배했다는 아난더 미아나이는 인간보다는 라드츠 함선과 보조체 쪽에 더 가까운 존재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표류하는 인간과 고장난 프로그램

이처럼 라드츠 우주는 수천 년 혹은 수만 년 후인지 알 수 없는 아득한 미래가 배경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정서를 대변한다. 현대 사회의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낸 것들에 의해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가 되고 밀려난다는 느낌을 받는다. 작중에서 그런 느낌을 가장 강하게 대변하는 이는 라드츠 함선 소드 나드타스 폭발의 유일한 생존자로 천 년 동안 냉동되어 있다가 깨어난 세이바든 대위일 것이다. 천 년 전 세상에서 자신의 가문과 능력, 그러니까 사회적 지위에 대해 오만한 확신을 지니고 살아가던 세이바든은 다시 깨어난 세상에서 자신이 알던 가문은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황당한 현실을 맞이해야 한다. 세이바든은 그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엔 자신이 확고한 사회적 지위를 누렸던 라드츠 제국을 벗어나 우주의 변경을 떠도는 표류하는 인간이 된다.

작품 초반부터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는, 함선 인공지능의 한 파편이라 표현해야 할 주인공인 브렉은 그런 세이바든을 구해주고 돌봐주긴 하지만 그 처지에 대해 깊이 연민하지는 않는다. 세이바든의 과거와 현재를 잘 아는 그에게 차라리 세이바든은 냉소의 대상에 가깝다. 세이바든이 ‘한미한 가문’ 출신을 조롱할 때에 수천 년의 기억을 가진 브렉은 역사 속에서 명멸해 간 여러 가문들의 사례를 생각한다. 결코 인간적이지 않은 시간인 천 년이란 간극을 건너 뛴 세이바든은 이제 함선 인공지능과 비슷한 경험의 폭 속에서 자기 자신을 좀 더 객관화해야만 한다.

그런 사정은 브렉에게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함선 인공지능은 라드츠 군주의 명령에 충성해야만 한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에 의해 지금의 브렉은 누구의 명령에 따르는 것도 그다지 적절하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다. 재미있는 것은 바로 이렇게 모든 명령이 무화되는 지점에서 브렉은 일련의 행동들을 하게 되고 그것이 마치 브렉의 자유로운 의지의 결과로 보인다는 것이다. 아난더 미아나이는 그러한 브렉의 행동에 대해 “슬픔으로 미쳐버린 인공지능의 마지막 남은 조각이다”라고 품평을 한다.

말하자면 그가 고장난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전에 보지 못한 이세돌의 수에 패턴이 깨지고 이해할 수 없는 수를 남발하는 알파고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표류하는 인간과 고장난 프로그램 사이엔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일까? 소설은 단지 사회 발전이나 인공지능에 의해 밀려나는 인간을 연민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초월하는 위치에서 인간성에 관한 의문을 제기한다.

인공지능에게 감정이 필요한 이유는

브렉의 존재는 당연히 우리가 지금 상상할 수 있는 인공지능과는 사뭇 다르다. 알파고가 바둑 수싸움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연산을 하여 최적의 선택지를 찾는 ‘약한 인공지능’이라면 브렉은 인간과 유사한 방식으로 사고하는 ‘강한 인공지능’에 해당한다. 소설은 그 메커니즘에 대해선 설명할 수 없지만 인공지능에게 감정을 부여해야 했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한다. 브렉은 인공지능이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감정이 없으면 사소한 결정을 내리는 일조차도 끝없이 이어지는 하찮은 사항들을 비교해야 하는, 몹시 괴로운 일이 된다. 감정을 가지고 처리하는 편이 훨씬 쉽다.”

여기엔 심리학적 지식이 깃들어 있다. 감정을 주관하는 뇌의 기능이 상실된 환자는 이성을 사용할 수 있어도 사소한 것에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보고가 있다. 바둑은 경우의 수가 무한에 가깝다지만 어쨌든 룰이 명확히 규정된 상황에서의 선택이므로 연산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겪는 문제들은 바둑보다 훨씬 단순한 문제라 하더라도 감정이 없이는 우선순위를 조율해서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

그렇기에 라드츠 함선은 감정을 가져야만 한다. 라드츠 군주 아난더 미아나이는 “함선들은 여전히 애착을 느끼고, 여전히 아끼는 이들을 챙기지. (...) 그런 걸 없애려 들면 함선들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밖에 없어. (...) 함선들은 똑똑해야 해. 생각할 수 있어야 하거든”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생각’이란 ‘연산’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현실의 여러 상황은 각각 양적으로 수치화하여 비교하기 어렵고, 그런 상황에서 질적으로 제각각인 사태를 판단하기 위해선 감정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감정을 가지게 하면 어떤 특정한 개체에게 애착을 가지고 특별하게 대하게 될 가능성이 생긴다. 감정이란 애초에 그러한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라드츠 함선이 명령에 불복할 가능성이 생겨난다. 라드츠 함선은 자신이 특별히 더 사랑하는 함장을 잃으면 슬픔에 미쳐버린다. 그렇기에 만일 그런 이를 해하라는 명령이 나오게 된다면 다만 인공지능이라 하여 수월하게 따르게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사랑과 죽음, 그리고 자유와 윤리

결국 인공지능이 복종의 명령을 거부하게 될 가능성을 따지는 것은 인간이 윤리적일 수 있는 가능성을 따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애착, 그들의 죽음에 대한 거부, 그리고 이를 위해선 자신의 죽음조차 불사하는 행동의 발현은 인류 역사에서 지극히 드물지만 언제나 꾸준하게 이어져 왔다. 그런 행동은 대부분의 인간에겐 기대하기 힘들고, 매우 윤리적인 인간에게라도 지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나 기대할 법한 것이다. 하지만 매우 예외적인 이들이 매우 예외적인 상황에서 선뜻 그러한 행동을 취하는 상황이 꾸준히 발생했다는 것 역시 역사적 진실이다. 어떤 이들은 사람들이 그렇게 죽음을 불사하는 상황에서도 소신을 지키는 것에서 자유와 윤리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선택을 내리는 인간(혹은 비인간)의 내면도 따지고 보면 표류하는 인간이며 고장난 프로그램이다. 알파고는 연산만 하기 때문에 연산으로 답이 안 나오는 상황에 몰리면 아무렇게나 돌을 던지는 추태를 연출한다. 사실 인간 역시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행동을 보일 수도 있다. 요즘 말로 하면 ‘멘탈붕괴’다. 하지만 감정이 있는 존재들은 이성과 감정의 우선순위가 뒤틀리고 완전히 꼬여버리는 상황에 발생하면 옆에 있는 이들은 비합리적이라 느낄지라도 특정한 감정의 결을 따라서 전진할 수도 있다. 인간과 인공지능을 편견없이 관통하면서 이 소설에서 나오는 말로 쓴다면 ‘미친’ 짓을 언제 하느냐의 문제다.

동기로만 보자면 정말로 ‘사소한 정의’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들이 거대한 영역에서도 숭고한 행동과 변화를 낳아 왔다. 인류가 우주로 퍼져나가든 혹은 지구를 벗어나지 못하고 말라죽든 간에 그 사실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행동을 이해하거나 실행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탄생한다면, 인간과 인공지능은 서로 자유로운 존재로서 사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라드츠 우주에서,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다.

해설 및 역자후기

이렇게 격찬을 받으며 등장한 데뷔작도 흔치 않을 것이다. 2013년에 발표된 앤 레키의 첫 장편소설 『사소한 정의』는 평단과 독자들로부터 대대적인 찬사를 받으며 네뷸러상과 휴고상, 영국판타지문학상, 아서 C. 클라크상, 로커스상 등 과학 소설계의 굵직한 상들을 휩쓸다시피 했고, 2014년에는 폭스TV에 드라마화 판권이 팔렸다.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시공간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물과 사건들을 능란하게 그려낸 저자 앤 레키는 어릴 때부터 열성적인 SF 독자였고 일찍부터 작가로서의 미래를 꿈꾸었으나 실제로는 중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한 늦깎이 작가다. 청소년기에 쓴 초기작품이 거의 발표 기회를 얻지 못하자 문학 대신 음악을 공부한 저자는 결혼하고 두 아이를 출산한 후에 다시 작가의 길을 모색했다. 작가가 되기 전엔 웨이트리스, 접수원, 도로측량원, 음반 엔지니어로 일하기도 했다. 2005년에 지역 글쓰기 모임에서 옥타비아 버틀러의 지도를 받으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고, 첫 장편소설인 『사소한 정의』를 완성하는 데는 6년이 걸렸다.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 살고 있다.

앤 레키가 창조한 가상세계인 ‘라드츠 우주’의 중심에는 끊임없이 정복과 확장을 계속하며 3천 년간 우주를 지배해온 라드츠 제국이 있고, 라드츠 제국의 중심에는 복제를 통해 동시에 수천 개의 몸으로 존재하며 3천 년간 제국을 지배해온 절대군주 아난더 미아나이가 있다. 라드츠 사회는 가문과 가문 간에, 개인과 개인 간에 맺는 보호-피호 관계를 바탕으로 한 위계질서에 기초하는데, 보호가문 또는 보호인은 사회적, 재정적으로 피호가문 또는 피호인의 울타리를 제공하고 피호가문 또는 피호인은 보호가문 또는 보호인을 섬기고 부양한다. 새로이 ‘병합’된 지역은 기존에 있던 유력한 라드츠 가문이 새로 구성된 피정복지 가문에 피호권을 제공함으로써 라드츠 사회에 안전하게 포섭된다. 이론적으로 아난더 미아나이는 라드츠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가문을 피호민으로 거느린 존재다.

신분제에 맞먹는 엄격한 위계질서를 가진 라드츠 제국을 떠받치는 건 ‘정의, 공정, 이익’을 실현하는 군주에 대한 신뢰와 ‘병합’을 통해 인류를 문명화시켜야 한다는 사명에 대한 믿음이다. 출신 가문에 따른 차별에도 불구하고 라드츠 제국의 가치가 실현되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사회적 장치가 ‘적성검사’다. 15세가 되는 라드츠 시민은 누구나 적성검사를 받을 수 있고, 약물을 이용하는 적성검사는 각자의 자질을 평가하여 가장 알맞은 직업을 배정해준다. 적성검사의 공정성을 의심하지 않는 라드츠 시민들은 유력 가문 출신들이 군이나 정계의 주요 자리를 독차지하는 이유가 그들이 그런 직업에 알맞은 보다 강건한 성격을 타고나기 때문이라고 받아들인다.

인류를 문명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병합’ 작업을 벌이는 라드츠 제국에서 장교는 매우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새로운 행성계에서 새로운 가문들과 접촉할 수 있기 때문에 각 가문 입장에서도 장교를 배출한다는 것은 가문의 부와 영향력을 확대하는 기회를 만든다는 의미가 있다. 라드츠 제국의 전함은 세 종류로 나뉘며 자체 관문을 형성하여 빛보다 빨리 시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가장 규모가 큰 저스티스급은 병력 수송선이고 실제 전투의 주축은 소드급이 맡는다. 가장 규모가 작은 머시급은 주로 초계함으로 쓰인다.

라드츠 제국이 숭상하는 신들의 이름이 붙은 각 함선에는 감정을 가진 인공지능들이 탑재된다. 함선의 인공지능은 인간 장교들의 몸에 이식된 삽입장치들을 통해 호흡 하나, 근육의 미세한 떨림 하나까지 빠짐없이 정보를 전달받으며 한시도 놓치지 않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핀다. 또 함선의 인공지능은 과거 병합에서 사로잡은 포로들을 생명중지 상태로 저장고에 비축해놓았다가 필요한 만큼 꺼내 보조체로 활용한다. 삽입장치들을 설치하고 ‘연결’하는 일종의 수술을 통해 ‘효과적으로 죽어 있는’ 보조체들의 몸을 인공지능의 수족으로 부리는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브렉은 2천 년간 병력 수송선으로 존재하다가 파괴된 저스티스 토렌 호의 인공지능이 남긴 단 하나의 조각이다.

보조체는 인간이 아니다. 함선에 부속된 장비의 일부일 뿐이다. 인공지능도 인간이 아니다. 라드츠 제국 주변의 외계인들도 인간이 아니다. 아직 라드츠 제국에 병합되지 않은 인류는 인간이긴 하지만 라드츠 제국의 기준으로 볼 때 문명인이 아니다. 라드츠 제국과 갈등관계에 있는 외계인 프레즈거들은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유의미종(有意味種)’을 분류하고 그 외의 모든 종은 사냥감이나 장난감으로 여긴다. 라드츠 제국이 프레즈거와 평화협정을 맺기 전까지는 인간도 ‘유의미종’이 아니었다.

우리는 이 소설 곳곳에서 ‘구분선’에 대한 고민을 만날 수 있다. 그 구분선에 대한 고민은 아주 기본적인 층위에서부터 시작된다. 라드츠 제국은 성별에 따른 성역할 구분이나 차별이 없으며, 작가는 3인칭 대명사를 하나로 통일하는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인 구분선으로 작용하는 기준을 손쉽게 무너뜨리고 독자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그 대명사가 ‘그’가 아니라 ‘그녀’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그’에 딸린 지소사처럼 쓰이던 ‘그녀’라는 대명사가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군주나 성인으로 추앙받는 종교 지도자에게 붙을 때 우리는 흠칫 놀란다. 술집을 운영하고, 총을 들이대며 위협하고, 의사 가운을 입은 ‘그녀’들이 무슨 말을 하거나 어떤 몸짓을 취할 때마다 우리는 잠시 판단을 유보하고 그 인물의 생물학적 성별을 짐작할 수 있는 힌트를 찾아 이리저리 헤맨다. 심지어 주인공 브렉의 생물학적 성별조차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소설 속 장면 하나도 제대로 상상해낼 수 없다. 슬슬 짜증이 나려 한다.

끊임없이 등장인물들의 생물학적 성별을 판별하려는 우리의 무의식적 노력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등장인물들의 성별을 알기 전까지는 상황에 대한 판단을 잠시 유보하려는 우리의 무의식적 경향은, 주요 등장인물이 ‘그녀’로 지칭될 때마다 묘한 위화감을 느끼는 우리의 감정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가는 곳마다 그 사회에서 통용되는 성별 구분의 신호들을 ‘의식’하기 위해 애를 쓰고 스트레스를 받는 주인공을 따라가며 우리는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성별에 따라 다른 도덕적, 윤리적, 사회적 기준들을 적용하고 있다는 사뭇 놀라운 자각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한편, 과거에는 인간이었지만 지금은 살아있는 시체이자 2천 년을 존속해 온 함선의 인공지능,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함선 인공지능의 일부분인 제1에스크의 파편인 브렉은 인간과 비인간을 나누는 구분선에 질문을 던진다. 보조체가 되기 전 살아있는 인간이었던 ‘나’로 살라는 스트리건의 말에 브렉은 ‘어느 나’를 말하느냐고 반문한다. 하나의 작은 뇌에 갇히기는 했지만 2천 년을 존재해온 인공지능의 삶은, 그 인공지능의 일부분인 제1에스크 19번으로 살아온 수십 년간의 기억은 ‘나’가 아닌 것일까? 홀로 남은 인공지능의 한 조각이 스스로에게 ‘브렉’이라는 이름을 붙인 순간, 그것은 자신이 겪은 모든 과거와 기억을 온전히 인정하며 스스로가 하나의 인격체임을 선언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온 대위는 인간과 보조체의 차이를 거론하며, 보조체는 인간처럼 명령에 불복함으로써 더 큰 정의를 세우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1에스크 19번은 저스티스 토렌 호가 파괴될 때 마지막으로 받았던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 대신에 스스로에게 브렉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복수를 다짐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뇌에 갇혀 기능하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함선의 인공지능 자체는 어떤가. 저스티스 토렌 호는 라드츠 군주의 명령을 따르면서도 그 명령이 과연 인간에게 이로운 것인지 의문을 가진다. 라드츠 군주가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프로그래밍을 수정했다 해도 함선에 부여된 정의와 공정과 이익의 실현에 복무한다는 궁극적인 사명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함선 인공지능과 라드츠 군주의 대비는 이 주제를 더욱 극적으로 부각시킨다. 라드츠 군주는 저스티스 토렌 호를 설득하며 자신과 함선이 거의 유사한 존재 양태를 가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하나는 자기 복제를 계속하며 서로 연결된 수천 개 몸으로 구성된 단일한 한 명의 인간으로서 3천 년간 우주를 다스려왔고, 다른 하나는 서로 연결된 수천 개 보조체 몸들로 구성된 단일한 하나의 인공지능으로서 2천 년간 존재해왔다. 그러나 하나는 인간 중의 인간인 반면 다른 하나는 인간이 아닌 장비로 취급받는다. 보조체와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는 라드츠 군주가 인간이라면 저스티스 토렌 호가, 적어도 인간의 뇌에 갇힌 저스티스 토렌인 브렉이 인간이 아닌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설사 인간이 아니라 하더라도 마땅히 존중받지 못할 이유는 무엇일까? 이 소설에서 우리는 ‘비인간 인격체’라는 모순적인 표현을 뛰어넘어 ‘비인간 격체(格體)’의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된다.

저스티스 토렌 호가 논리적 사고와 경험적 교정 작업을 거듭하며 모든 측면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목표에 부합하는 조화로운 인(?)격을 키워가는 반면 인간 중의 인간인 라드츠 군주가 다른 생각을 가진 두 개 이상의 인격으로 쪼개져 서로 반목하며 살상과 파괴를 자행하는 이 소설의 설정은 그 자체가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소설에서 드러나는 또 하나의 미덕은 현실성이다. 인간에게 우주에서의 삶이란 절대 편안하거나 호화로울 수가 없다. 오히려 극한 환경에서 이뤄지는 생존실험에 가깝다. 이 소설에 그려지는 우주정거장과 우주선에서의 삶은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우주정거장 거주민들은 고작 몸 하나 뉠 정도의 공간을, 그것도 시간제로 몇 사람이 나눠서 쓰는 공간을 배정받는다. 돈을 내고 음식을 사 먹을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배급되는 건 우주공간에서 배양되는 영양물질이 전부이고, 일 인당 쓸 수 있는 물의 양도 엄격하게 제한된다. 우주정거장과 우주선의 인공지능은 한시도 빠짐없이 인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호흡 상태와 심박 수와 체온을 점검한다. 사생활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라드츠 시민들은 사생활에 대한 개념조차 희박하다. 아주 작은 구멍 하나만으로도 재앙에 이를 수 있는 우주공간이라는 환경을 고려하면 당연한 설정일 것이다.

아무리 크고 오래된 제국이라 할지라도 각각의 행성계는 어느 모로 보나 고립된 섬에 가깝다. 통신 수단과 이동 수단이 사라지면 군주라 할지라도 속수무책이다. 3천 년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온 우주 제국의 군주라도 주먹다짐을 할 수밖에 없고, 궁색하게 우주왕복선의 선체에 매달려 탈출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 우주의 크기와 멀리 떨어져 있는 행성계들의 상대적 밀도를 고려한다면 제국 전역에서 일시에 벌어지는 총력전은 환상에 가깝다. 화려한 우주전쟁을 그리고 싶은 욕구를 억제한 것도 작가의 능력이 아닐까 싶다.

좋은 책은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던져준다. 이 책도 예외는 아니다. 손에 땀을 쥐고 웃고 울며 브렉의 여정을 따라간 다음에는 부디 다시 첫 장을 펼쳐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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