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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ny Cash: Forever Words 조니 캐쉬의 미발표 시집을 노래한 앨범 [2 LP]

Johnny Cash 작사/Kris Kristofferson, Willie Nelson, Brad Paisley, Chris Cornell 노래 외 14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SonyMusic / Legacy | 2018년 04월 10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12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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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ny Cash: Forever Words 조니 캐쉬의 미발표 시집을 노래한 앨범 [2 LP]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8년 04월 10일
제조국 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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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품의 이벤트 (1개)

음반소개

디스크

Disc 1
  • 01 Forever / I Still Miss Someone - Kris Kristofferson & Willie Nelson
  • 02 To June This Morning - Ruston Kelly & Kacey Musgraves
  • 03 Gold All Over The Ground - Brad Paisley
  • 04 You Never Knew My Mind - Chris Cornell
  • 05 The Captain's Daughter - Alison Krauss & Union Station
  • 06 Jellico Coal Man - T-Bone Burnett
  • 07 The Walking Wounded - Rosanne Cash
  • 08 Them Double Blues - John Mellencamp
Disc 2
  • 01 Body On Body - Jewel
  • 02 I'll Still Love You - Elvis Costello
  • 03 June's Sundown - Carlene Carter
  • 04 He Bore It All - Dailey & Vincent
  • 05 Chinky Pin Hill - I'm With Her
  • 06 Goin', Goin', Gone - Robert Glasper Feat. Ro James & Anu Sun
  • 07 What Would I Dreamer Do - The Jayhawks
  • 08 Spirit Rider - Jamey Johnson

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1

아티스트 소개 (19명)

자니 캐쉬(Johnny Cash)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컨트리 음악계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영향력 있는 활동을 펼친 뮤지션 중 한명이다. 깊고 낭랑한 중음역대의 보컬과 간결한 기타와 함께 그는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자신만의 진보적이고 독특한 사운드를 추구했다. 컨트리뮤직의 고향인 내쉬빌사운드(Nashville), 홍키통크(Honky Tonk), 로큰롤(Rock’n’Roll), 그 어떤 것에도 치우치지 않은 자신만의 ... 자니 캐쉬(Johnny Cash)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컨트리 음악계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영향력 있는 활동을 펼친 뮤지션 중 한명이다. 깊고 낭랑한 중음역대의 보컬과 간결한 기타와 함께 그는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자신만의 진보적이고 독특한 사운드를 추구했다. 컨트리뮤직의 고향인 내쉬빌사운드(Nashville), 홍키통크(Honky Tonk), 로큰롤(Rock’n’Roll), 그 어떤 것에도 치우치지 않은 자신만의 서브장르를 만들고 구축했다. 감성적으로 무디고 정직한 포크(Folk)와 반항적인 로큰롤(Rock’N’Roll) 그리고 염세적인 컨트리(Country)뮤직 사이의 중간지점에서 캐쉬는 로큰롤의 탄생과 반항적 태도 그리고 다분히 록적인 간소함과 솔직한 음악적 발성법을 적절히 융화시켜냈다. 거기에는 깊은 역사적 공감대가 존재했다. 그는 음악적 사명을 다하는 그 날까지 100곡이 넘는 히트싱글을 내며 흑과 백 모두에게 인정받았고, 특히 록의 황제(King of Rock)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를 비롯해 한 시대를 풍미한 당대의 거목들(칼 퍼킨스, 제리 리 루이스, 척 베리)과 함께, 1950년~60년대를 빛낸 로커빌리(Rockabilly)음악의 대표적 인물 중 하나였다. 아칸사스 출신인 자니 캐쉬는 세 살 때에 다이에스(Dyess)로 이주했다. 열둘 어린나이에 그는 이미 자신의 노래를 쓰기 시작했다. 라디오에서 들은 컨트리 송에 음악적 영감을 얻은 그는 고등학교시절 아칸사스 라디오 방송국(KLCN)에서 노래했다. 대학을 졸업한 1950년에는 자동차회사에 취직해 디트로이트로 거처를 옮겼다. 한국전쟁의 발발과 함께 그는 공군에 입대했다. 공군에 있는 동안 캐쉬는 기타를 구입해 스스로 연주를 익혔다. 그는 ‘Folsom prion blues’를 포함해 본격적으로 곡을 쓰기 시작했다. 캐쉬는 1954년 공군에서 예편해 텍스사 여성 비비안 리베르토(Vivian Leberto)와 결혼했다. 멤피스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그는 라디오 아나운서과정을 밟았다. 밤에는 기타리스트 루더 퍼킨스와 베이시스트 마샬 그랜트로 구성된 트리오의 일원으로 컨트리음악을 연주했다. 지방라디오방송국(KWEM)에서 무료로 공연을 간간히 겸하면서 안정된 연주의 기틀을 마련하던 트리오는 선 레코드사에 오디션을 볼 기회를 잡게 된다. 마침내 1955년 샘 필립스가 설립한 선 레코드사(Sun Records)에 오디션을 치르게 된 캐쉬는 처음에 자신을 가스펠싱어로 소개했다. 필립스는 자니에게 좀 더 상업적인 것을 요구했고, 그는 ‘Hey Porter’로 곧 필립스를 매료시켰다. 이를 계기로 캐쉬는 자신의 데뷔싱글 ’Cry Cry Cry’/Hey Poter’를 발매하게 된다. 필립스는 싱글레코드에 캐쉬를 “자니”라고 기입했다. 레코드 프로듀서는 또한 퍼킨스와 그랜트를 테네시 투(Tennessee Two)라고 불렀다. 1955년에는 ‘Cry Cry Cry’가 인기를 얻으며 컨트리차트 14위에 올랐다. 그리고 루이지애나 헤이라이드(Louisiana Hayride) 지역에서 거의 1년간 머물렀다. 두 번째 싱글 ’Folsom prison blues’가 1956년 초 컨트리차트 4위의 쾌거를 올렸고, 연이어 ‘I walk the line’이 6주간 1위를 차지함과 더불어 팝 차트에도 탑20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1957년에도 컨트리싱글차트 13위에 랭크된 ‘Give my love to rose’를 포함해 몇 곡의 히트곡을 내며 히트행진을 이어갔다. 캐쉬는 또한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한 타 뮤지션들과 달리 완전히 검정복장으로 그해 그랜드 올 오프리(Grand Ole Opry debut)에 데뷔했다. 이로 인해 그는 ’맨 인 블랙‘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그리고 1957년 11월에 그는 드디어 자신의 처녀작 < Johnny Cash with his hot and blue guitar >를 발매해 음반매장을 강타했다. 1958년에는 10주간 차트 정상을 지킨 ‘Ballad of a teenage queen’을 비롯해 또 다른 넘버원 싱글 ’Guess thing happen that way을 포함해 무려 8곡을 컨트리와 팝 차트 공히 상위권에 올리며 성공가도를 질주했다. 1958년에 그는 가스펠앨범을 녹음하고자 했으나 선(sun)에서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선 레코드는 또한 캐쉬의 음반로열티 인상에도 반대했다. 두 가지 결정적 연유로 캐쉬는 결국 1958년 콜롬비아레코드사(Columbia Records)로 레이블을 옮겨 그해 말 싱글 ‘All over again’을 내놓았다. 이 곡은 컨트리차트 4위와 팝 차트 38위에 올랐다. 1959년 초에는 콜럼비아에서 발표한 두 번째 싱글 ‘Don’t take your guns to town’ 또한 컨트리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팝 차트에도 32위까지 올라 그의 최대히트곡 중 하나가 된 이 곡과 함께 그해 내내 발매된 싱글들이 앞 다퉈 차트 정상에 등극했다. 캐쉬는 가스펠앨범을 낼 기회도 맞았다. 자니 캐쉬의 찬송가는 1970년대까지 주제앨범연작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칠 줄 모르는 히트행진을 지속하던 그의 쾌속질주에도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1959년에, 그는 1년에 거의 300회가 넘는 공연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암페타민(각성제)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1961년까지 그의 약물복용은 날로 증가했다. 그로인한 악영향은 히트 싱글과 앨범 수의 감소세로 나타났다. 1963년에 그는 가족을 떠나 뉴욕으로 이주하기에 이른다. 그러던 중 캐쉬는 술친구 칼 스미스(Carl Smith)의 아내 준 카터(June Carter)에게서 받은 ‘Ring of fire’로 컨트리차트 정상을 마크한다. 이 곡은 7주간 차트정상에 머무르며 팝 차트에도 20위에 올랐다. 1964년에는 ‘Understand your man’가 넘버원 히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약물중독의 어두운 그림자에 둘러싸여있던 캐쉬는 1965년 자신의 기타케이스로 엠페타민을 다량 밀수하다 엘 파소(El Paso)에서 체포되었다. 같은 해 그랜드 올 오프리(Grand Ole Opry)에서의 공연이 거절당했고, 그동안 각광받아온 커리어에도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 1966년에는 아내 비비안이 이혼을 제소했다. 이혼 후 캐쉬는 내쉬빌로 이주했다. 거기에서 그는 칼 스미스와 이혼한 준 카터와 친밀해졌다. 카터의 조력으로 그는 약물중독에서 서서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녀는 또한 캐쉬를 기독교신자로 바꿨다. 1968년 초 ’Jackson’과 ‘Rosanna’s going wild’가 탑 텐 히트 기록하면서 재비상의 날개를 펴기 시작한 자니는 공연 중 무대 위에서 운명의 여인 준 카터에게 드라마틱한 청혼을 했고, 1968년 봄 결혼식을 올렸다. 1968년에, 자니 캐쉬는 가장 큰 인기를 끈 앨범 < Johnny Cash at Folsom Prison >을 녹음 발표했다. 교도소 공연실황을 녹음한 이 앨범에서 싱글 커트된 ‘Folsom prison blues’가 팝 차트에 걸쳐 큰 인기를 얻으며 컨트리차트 정상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연말에 레코드는 골드를 기록했다. 이듬해, 그는 후속앨범 < Johnny Cash at San Quentin >을 발표했다. ’A boy named sue’는 컨트리차트 1위와 팝 차트 2위에 오르며 히트싱글이 되었다. 캐쉬는 1969년 밥 딜런(Bob Dylan)의 컨트리앨범 < Nashville Skyline >에 게스트로 참여했다. 딜런은 ABC 가수 텔레비전프로그램 ‘자니 캐쉬 쇼’에 출연해 그에 화답했다. 자니 캐쉬쇼는 1969년과 71년, 2년에 걸쳐 방영되었다. 캐쉬는 1970년대 들어 제2의 전성기를 누린다. 자신의 텔레비전쇼와 더불어, 그는 백악관에서 리차드 닉슨(Richard Nixon)을 위해 공연한 것을 비롯해, (Gunfight)에서는 명배우 커크 더글라스(Kirk Douglas)와 함께 공연했으며,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와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했다. 다큐멘터리영화의 테마로도 주목받은 그는 ’Sunday morning coming down’과 ‘Flesh and blood’이 넘버 원 히트를 기록하며 변함없는 인기를 이어갔다. 1971년을 통해, 자니 캐쉬는 차트 3위를 기록한 ’Man in black’을 포함해 히트행진을 지속했다. 캐쉬와 카터 모두 1970년대 초 토착미국인과 죄수들의 시민권을 위한 캠페인에 참여하며 사회적 활동을 넓혀갔다. 가끔은 빌리 그래험(Billy Graham)과 함께 하기도 했다. 1970년대 중반, 캐쉬의 차트 등장횟수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마이너히트를 이어갔다. 그리고 1976년 ‘One piece at a time’(컨트리차트1위)를 비롯해 웨일론 제닝스(Waylon Jennings)와 듀엣으로 노래한 ’There ain’t no good chain gang’(컨트리차트 2위)와 ‘(Ghost)riders in the sky’와 같은 빅 히트싱글을 간간이 냈다. 1975년 캐쉬는 자서전 < Man in black >을 출간했다. 1980년에 그는 가장 젊은 나이에 컨트리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러나 1980년대에는 눈에 띄는 히트싱글을 내지 못하면서 고전했다. 콜럼비아 레코드사와도 마찰을 빚었다. 자니 캐쉬(Johnny Cash)는 1982년 선(Sun)출신의 로커빌리 명인 칼 퍼킨스(Carl Perkins), 제리 리 루이스(Jerry Lee Lewis)와 함께 팀을 이뤄 레코드 < The Survivors >를 발표했고 괜찮은 성과를 올렸다. 캐쉬, 웨일론 제닝스, 윌리 넬슨(Willie Nelson) 그리고 크리스 크리스토퍼슨(Kris Kristofferson)이 동참한 밴드 The highwaymen은 1985년 그들의 첫 앨범을 발표했다. 이 앨범 또한 적당한 성공을 거뒀다. 다음 해, 캐쉬와 콜럼비아사의 계약이 만료됐다. 그리고 그는 머큐리 내쉬빌(Mercury Nashville)과 계약했다. 새로운 레이블은 그러나 그의 성공을 입증해주지 못했고, 스타일의 방향을 둘러싼 논쟁을 해야 했다. 게다가 컨트리 라디오방송 프로는 더욱 현대적인 아티스트에게 호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캐쉬는 곧 자신이 차트에서 밀려날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콘서트를 통해 대중들과의 소통을 계속해 나갔다. 하이웨이멘(Highwaymen)은 1992년 두 번째 앨범을 녹음했다. 그리고 머큐리에서 낸 캐쉬의 어떤 레코드보다 상업적으로 더 큰 성공을 거뒀다. 그 즈음 머큐리와의 계약기간이 끝난 그는 1993년에 아메리칸 레코드사(American Records)에 새 둥지를 틀었다. 새 레이블에서 낸 첫 앨범 < American Recordings >는 설립자 릭 루빈(Rick Rubin)이 프로듀싱을 맡았다. 이 앨범의 전 수록곡은 어쿠스틱한 노래들이었다. 이 앨범은 대박을 터뜨리지는 못했으나, 그의 커리어를 되살리는 기폭제가 됨과 동시에 그를 록 중심의 젊은 음악팬들과 호흡할 수 있게 했다. 1995년에 하이웨이멘은 그들의 세 번째 앨범 < The Road Goes on Forever >를 발표했다. 이듬해 캐쉬는 탐 페티& 하트브레이커스가 피처링으로 참여한 그의 두 번째 앨범 < Unchained >를 발표했다. 그리고 2000년 봄 캐쉬는 자신의 생애를 되돌아 본 회고조의 앨범을 사랑, 신, 살인 세장으로 묶어 선보였다. 그 다음해에는 새로운 스튜디오앨범 < American Ⅲ: Solitary Man >이 뒤이어 발매되었다. 1990년대와 2000년에 들어 자니 캐쉬는 건강문제로 힘든 나날을 보냈지만 루빈과의 레코드작업을 지속해나갔다. 그들은 네 번째 합작품 < American Ⅳ: The man comes around >을 2002년 후반에 발매했다. 이듬해에는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의 ‘Hurt’를 커버한 뮤직비디오가 기대이상의 갈채를 받으며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MTV뮤직비디오시상식에서 ’올해의 비디오‘에 후보로 지명돼 그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수많은 화제를 뿌리며 한창 분위기에 젖어있을 때, 운명적 음악인생의 동반자(아내) 준 카터 캐쉬가 심장수술 경과 악화로 2003년 5월 15일 그의 곁을 떠나갔다. 4개월 후 자니도 당뇨 합병증으로 테네시 내쉬빌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나이 71세였다.
노래 : Kris Kristofferson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노래 : Willie Nelson (윌리 넬슨,Willie Hugh Nelson)
컨트리, 락 기타 연주자, 싱어송 라이터 컨트리, 락 기타 연주자, 싱어송 라이터
노래 : Brad Paisley (브래드 페이즐리)
노래 : John Mellencamp (존 멜렌캠프,Johnny Cougar / John Cougar / John Cougar Mellencamp)
하트랜드 락 싱어송라이터 하트랜드 락 싱어송라이터
주얼(Jewel)은 1990년대 이후 등장한 포크 계열의 여성 싱어 송 라이터들 중 가장 주목되는 아티스트다. 그녀는 솔직하고 진지한 인생 이야기를 맑고 청명한 포크 사운드에 얹어내며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냈다. 고단했던 인생 역정을 딛고 꾸준한 발전상을 일궈내는 이 알래스카 아가씨는 앞으로도 계속적인 성과가 기대되는 팝 음악계의 소중한 블루칩이다. 1974년 미국 유타주 패이슨에서 태어난 주얼(본명... 주얼(Jewel)은 1990년대 이후 등장한 포크 계열의 여성 싱어 송 라이터들 중 가장 주목되는 아티스트다. 그녀는 솔직하고 진지한 인생 이야기를 맑고 청명한 포크 사운드에 얹어내며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냈다. 고단했던 인생 역정을 딛고 꾸준한 발전상을 일궈내는 이 알래스카 아가씨는 앞으로도 계속적인 성과가 기대되는 팝 음악계의 소중한 블루칩이다. 1974년 미국 유타주 패이슨에서 태어난 주얼(본명 Jewel Kilcher)은 초기 유년 시절을 알래스카 호머에서 보냈다. 그녀는 물과 전기조차 귀했던 알래스카 시골 벽지에서 광활한 대자연에 깊이 감화되며 자신의 음악적 기반이 되는 특유의 서정성을 키워갔다. 싱어 송 라이터였던 부모의 영향으로 여섯 살 때 이미 관광객을 상대로 요들송을 부르기도 했던 그녀는 작곡과 노래에 소질을 보이며 뮤지션의 꿈을 차츰 키워나갔다. 여덟 살 때 부모가 이혼하자 어머니를 따라 샌디애고로 이주했지만 그녀는 이후 7년 이상을 아버지와 함께 클럽 등지를 전전하며 생활했다. 학창시절 미시간 주의 인터로첸 예술학교(Interlochen Fine Arts Academy)에서 장학생 대우로 알찬 교양을 쌓기도 했으나 형편상 대학까지 진학하진 못했다. 다시 샌디애고로 돌아온 그녀는 웨이트리스와 같은 잡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집세를 아끼기 위해 허름한 밴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는 가난한 나날들이 이어졌다. 힘든 와중에도 노래와 작곡, 그리고 시 쓰기를 포기하지 않고 있던 그녀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 것은 한 카페의 싸구려 가수 아르바이트였다. 그 곳에서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단아한 외모와 청아한 목소리는 손님들의 입을 타고 조금씩 세상에 알려졌고, 결국 주얼의 재능을 알아차린 레코드사가 1994년 그녀와 앨범 계약을 체결했다. 그녀는 이듬해인 1995년 그토록 바라던 대망의 데뷔 음반 [Pieces Of You]를 발표했다. 처음엔 별 주목을 받지 못하던 그녀의 첫 음반은 발매 후 1년 이상이 지난 다음에야 늦바람을 일으켰다. 회사의 끈질긴 지원과 적극적인 라이브 활동 덕분이었다. 첫 싱글 ‘Who will save your soul’(11위)은 차트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뒤이은 ’You were meant for me와 ‘Foolish game’의 양면 싱글(2위)은 차트에 65주간이나 머물며 당시 로스 델 리오(Los Del Rio)의 ‘Macarena’가 보유하고 있던 60주 싱글 차트 랭크 기록을 깨뜨리기도 했다. 카페에서의 라이브를 그대로 녹음한 ’Little sister’와 ‘Daddy’, 그리고 故 커트 코베인(Kurt Cobein)을 추모하는 ‘Amen’도 팬들의 고른 사랑을 받았다. 자기 내면의 이야기들을 담담히 풀어낸 감미로운 처녀 음반은 차트 4위까지 오르며 1000만장이 넘는 놀라운 판매고를 올렸다. 그녀는 1997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비록 리안 라임스(LeAnn Rimes)에게 밀려 신인상을 받진 못했지만 3개 부문에 후보로 지명되는 작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엄청난 성공으로 인해 갑자기 바빠진 주얼은 1997년 여름 사라 맥라클란(Sarah McLachlan), 트레이시 채프먼(Tracy Chapman) 등과 함께 페니미즘 축제 [릴리스 페어(Lilith Fair)]에 참가하며 높아진 자신의 위상을 체감했다. 그리고 그 해 5월과 7월엔 [롤링 스톤]과 [타임]지의 커버를 연이어 장식했다. 또한 1998년에는 베스트 셀러 반열에 오른 시집 [A Night Without Armor]를 출간하며 문학적인 재능까지 뽐냈다. 주얼은 시집 발간 후 내놓은 소포모어 음반 [Spirit](1998)에서 1집의 성공 패턴을 그대로 이어가는 한편 팝 적인 느낌을 좀더 강화시켰다. 마돈나와의 작업으로 유명한 프로듀서 패트릭 레너드(Patrick Leonard)에게 음악 지휘봉을 맡겼고,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의 베이시스트 플리(Flea)나 재즈 드러머 루이스 콘테(Luis Conte)와 같은 일급 세션들을 끌어 들였다. 그 결과 전작보다 한층 더 팝 감성에 가까워진 풍성한 사운드가 구현됐다. 음반은 3위로 데뷔해 300만장 이상이 팔렸고, 싱글 ‘Hands’(6위)와 ’Down so long’(59위)이 무난히 차트에 올랐다. 한결 성숙해진 자의식을 드러낸 주얼은 음반 속지에 어머니 네드라 캐롤(Nedra Carrol)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표하며 마리안느 페이스풀(Marianne Faithfull) 원곡의 ’This little bird’를 무반주로 함께 부르기도 했다. 1999년 주얼은 영화 [Ride With Devil]에 출연해 배우로도 호평을 받았다. 11월엔 깜짝 크리스마스 앨범 [Joy : A Holiday Collection](32위)을 내놓고 20세기의 마지막 성탄절을 축하했다. 본인이 자작한 ‘Gloria’ 외에도 작자 미상의 고전 ‘Go tell it on the mountain’과 자신의 2집 수록곡 ‘Life uncommon’, 그리고 베트 미들러(Bette Midler)의 히트송 ‘From a distance’ 세 곡을 연이어 들려주는 ’Medley’ 등이 팬들에게 의외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2000년엔 또 한번의 시적 재능을 뽐낸 [Chasing Down The Dawn]을 내놓으며 앨범 공백기를 꾸준히 메워갔다. 2001년 주얼은 더 넓어진 음악 스펙트럼을 펼치며 그때까지 볼 수 없었던 사회 참여 발언을 담아낸 3집 [This Way](9위)를 발표했다. 그녀는 감미로운 첫 싱글 ‘Standing still’(25위)과 정처 없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Till we run out of road’ 등에서는 예전의 내적인 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반면 위선자들을 비아냥거리는 ‘Jesus loves you’와 새 천년의 허망한 미국 현실을 꼬집는 ’The new wild west’를 통해서는 강력한 사회비판에도 열을 올렸다. 상업적인 성과는 전만 못했지만 음악적인 진보는 분명해 보였다. 주얼은 김병현의 좌절로 더욱 기억나는 2001년 월드 시리즈 1차전에서 미국 국가를 부르며 변함 없는 자신의 지명도를 다시 한번 재확인했다.
노래 : Elvis Costello (엘비스 코스텔로)
변화무쌍한 음악은 절대로 권태를 허락하지 않는다. 엘비스 코스텔로의 음악 파일이 그렇다.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그가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들려준 이미지와 소리샘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색을 달리했고, 해마다 허물을 벗었다. 사계절의 변화처럼 각양각색의 색깔을 띠며, 차려진 밥상을 거부했다. 항상 굵은 뿔테 안경을 쓰고 꾸부정한 모습을 취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그저 외양일 뿐이다. 아웃사이더의 리더로 브리티시 펑크... 변화무쌍한 음악은 절대로 권태를 허락하지 않는다. 엘비스 코스텔로의 음악 파일이 그렇다.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그가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들려준 이미지와 소리샘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색을 달리했고, 해마다 허물을 벗었다. 사계절의 변화처럼 각양각색의 색깔을 띠며, 차려진 밥상을 거부했다. 항상 굵은 뿔테 안경을 쓰고 꾸부정한 모습을 취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그저 외양일 뿐이다. 아웃사이더의 리더로 브리티시 펑크 록을 이끌었고((1997년)), 신나는 레게 리듬과 애조 띤 켈틱 선율에 올라타며 제3세계 음악에 흠뻑 젖었다(스페셜스(Specials)의 (1978년)과 포구스(The Pogues)의 (1985년). 그리고 미국의 리듬 앤 블루스와 소울을 하얗게 바꾸었고((1980년)), 내시빌로 들어가 컨트리를 끄집어내기도 했다((1981년). 또한 그는 챔버 밴드 브로드스키 쿼텟(Brodsky Quartet) 등과 클래식에도 발을 담갔고, 위대한 팝의 전설 버트 바카라크(Burt Bacharach)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크루너(Crooner)로 나서기도 했다. 코스텔로의 이런 종횡무진 행보는 단순히 변신을 위한 인위적인 선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풍부한 음악 공력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이끌림이다. 아마 지금도 그의 곳간에는 평생 일용하고도 남을 음악 양식이 가득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1954년 8월 25일 런던에서 태어난 그는 열 다섯 살 무렵부터 기타를 치고 노래를 작곡하며 뮤지션에 대한 꿈을 키웠다. 고등학교를 중도에 포기한 그는 낮에는 런던의 한 공장에서 컴퓨터 기사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갔고, 밤에는 클럽에서 연주하며 음악 내공을 쌓아갔다. 아티스트로써 첫 이름을 등록한 결과물은 1977년 싱글 ’Less than zero’. 이 노래는 파시스트 단체의 리더 오스왈드 모슬리(Oswald Mosley)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화제를 모았는데, 이는 코스텔로의 의식 세계가 일반적인 곧은 길과는 거리가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첫 싱글을 발표한 후 그는 5년 동안 다니던 공장을 그만두고 키보디스트 스티브 니브(Steve Nieve), 베이시스트 브루스 토마스(Bruce Thomas), 그리고 드러머 피트 토마스(Pete Thomas) 등을 규합하여 자신의 백밴드 어트랙션스(The Attractions)를 결성하고 프로 세계로 뛰어들었다. 이후 어트랙션스는 엘비스 코스텔로와 우정 - 불화 - 재결합 과정 등을 거치며 오랜 기간 함께 한다. 코스텔로는 영국의 퍼브 록(Pun Rock)과 펑크 록을 완벽하게 구현한 전형적인 ’브리티시 로큰롤’ 음반인 1977년 데뷔작 (영국 14위, 미국 32위)와 1978년 2집 (영국 4위, 미국 30위) 등을 연이어 발표하여 일약 대영제국 최고의 로커로 떠올랐다. 이어 내놓은 1979년의 (영국 2위, 미국 10위), 1980년의 (영국 2위, 미국 11위), 1981년의 (영국 9위, 미국 28위), 1982년의 (영국 6위, 미국 30위) 등도 영국 록 히스토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 음반으로 대접받을 정도로 엘비스 코스텔로가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일궈놓은 음악 스케이프는 소리 하나 하나가 반짝 반짝 빛을 발했다. ’Watching the detectives’(영국 15위), ’Pump it up’(영국 24위), ’Radio radio’(영국 29위), ’Oliver’s army’(영국 2위), ’Accidents will happen’(영국 28위), ’I Can’t Stand Up For Falling Down’(영국 4위) 등의 히트곡들이 이 시기에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의 앨범들의 수록곡이 스무 트랙을 넘으면서도 곡 당 타임이 채 3분을 넘지 않는 전형적인 로큰롤과 펑크의 형식미를 취하고 있지만 깊이가 있고 다양한 움직임과 명암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코스텔로만이 할 수 있는 비법일 것이다. 코스텔로의 이런 월드와이드 동선이 가능하게끔 된 데는 뒤에서 막후 조정 역할을 한 닉 로우(Nick Lowe)의 공헌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상기한 작품들 중에서 를 제외하고는 모든 음반들의 프로듀싱을 도맡음으로써 코스텔로와 찰떡궁합을 과시했다. 이후에도 닉 로우는 코스텔로 대부분의 앨범들을 프로듀스하며 환상적인 사운드를 연출해냈다. 코스텔로의 전성시대가 펑크와 뉴 웨이브의 정점기였던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이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외의 시기들을 무시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현재까지도 꾸준한 활동을 해오며 별다른 기복 없이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포크와 블루스뿐만 아니라 컨트리, 아이리시 음악 등 다양한 음악적 뿌리 등을 탐구한 1986년의 (영국 11위, 미국 39위), 하드록의 강렬함을 드러낸 같은 해의 (영국 16위, 미국 84위) 등이 1980년대 후반기를 빛낸 대표적인 앨범들이다. 1990년대 초반에도 의욕적으로 음악 작업을 했지만, 눈에 띄는 평가를 받지 못한 코스텔로는 1990년대 후반 들어서 전성기 때 못지 않은 인기를 회복했다. 그는 1998년 전설적인 작곡가 버트 바카라크와 함께 한 음반 (영국 32위, 미국 78위)로 그래미상을 수상하며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1년 뒤인 1999년에는 영화 [노팅 힐]의 주제가 ’She’를 부르며 대중적인 인기를 이끌어내는 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그리고 올해에는 17번째 스튜디오 앨범 을 발표하며 음악에 대한 식지 않은 열정을 드러냈다.
컨트리 싱어송라이터 컨트리 싱어송라이터
노래 : Kacey Musgraves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
2007년 USA 네트워크 방송사 음악 경연 프로그램 <내슈빌 스타> 시즌 5에 참가해 최종 7위를 차지했다. 제56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앨범 'Same Trailer Different Park' 로 올해의 컨트리 앨범상을, 'Mama's Broken Heart'로 올해의 컨트리 노래상을 수상했다. 2007년 USA 네트워크 방송사 음악 경연 프로그램 <내슈빌 스타> 시즌 5에 참가해 최종 7위를 차지했다. 제56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앨범 'Same Trailer Different Park' 로 올해의 컨트리 앨범상을, 'Mama's Broken Heart'로 올해의 컨트리 노래상을 수상했다.
노래 : Dailey & Vincent (데일리 앤드 빈센트,Jamie Dailey / Darrin Vincent)
블루그래스 / 컨트리 뮤직 그룹 블루그래스 / 컨트리 뮤직 그룹
컨트리 음악 싱어송라이터 컨트리 음악 싱어송라이터
연주 : T Bone Burnett (티 본 버넷,Joseph Henry "T Bone" Burnett III)
연주 : Robert Glasper (로버트 글래스퍼 )
피아니스트, 프로듀서 피아니스트, 프로듀서
밴드 : Alison Krauss & Union Station (앨리슨 크라우스 앤 유니언 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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