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상황에 따라 내용에 관계없이 인기를 끄는 책들이 가끔씩 나타난다. 대표적인 책이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였던 것 같다. 사례가 풍부하게 제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정치철학을 다룬 책이기 때문에 그 안에 담긴 함의가 간단치 않은데 2010년 출간된 그 해 무려 100만부 이상이 판매되어 세간에는 읽지는 않지만 책장에는 꽂아두는 책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돌기도 했다. 워낙 공정과 정의라는 말이 공허했던 당시 현실을 보여주는 지표로 여겨졌다.

 4년뒤 그 엄청난 부정과 정책실패에도 불구하고 정권이 연장되어 사회적 불만이 팽배할 무렵,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을 들고 나오자 다시 한 번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였다. 자본주의 경제 발전의 역사에서 줄곧 자본수익률(r)＞경제성장률(g)의 관계가 유지되어 오므로써 불평등이 점차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입증한 것인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 폴 크루그먼 등도 많은 자리에서 불평등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역설해 이제 불평등의 문제는 식상한 주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쉽지 않을 경제학적 접근이 아닌 20세기 초반부터 세상을 겪어온 대가가 한때는 희망의 상징이었던 아메리칸 드림 쇠락의 배경을 날카로운 눈으로 분석한 내용을 차분히 들려준다면 그게 더구나 미국의 양심이라 불리는 노엄 촘스키의 주장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경청해야 할 가치가 있다.

 노엄 촘스키는 책에서 불평등의 이유로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10가지를 원리를 꼽고 있는데 다수에 맞서서 부유한 소수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지는 민주주의 축소, 민간기업과 국익 등의 강조를 바탕으로 교의와 교육 등을 이용하는 이데올로기 형성, 이에 발맞춘 금융화 중심의 경제체제 구축 및 노동자 불안정 확대 방향의 경제 개조 추진, 금융화 중심이 가져오는 필연적 결과로서 소수 부유층에 부가 집중되는 금권경제와 이를 뒷받침할 부자감세가 대표하는 부담의 전가,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거센 공격에서 볼 수 있듯 개인의 형해화를 목적으로 하는 연대에 대한 공격을 전반부에 지적하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경제학의 포획 이론처럼 공공을 위해서 존재하고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규제기관이 기업, 특정 이익집단 등 힘을 가진 피규제기관의 로비 등으로 그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결과를 낳도록 만드는 규제자를 관리하라, 부의 집중이 정치권력의 집중을 낳는 것처럼 기업이 막대한 후원으로 금권선거를 자행하는 선거를 주물러라, 대중과 노동조합의 분리에서 발견되는 하층민을 통제하라, 홍보나 광고 등을 활용해 비합리적 선택을 유도하는 동의를 조작하라, 1%로 대표되는 극소수 부유층을 위한 정책 추진과 더불어 자기 이익에 반하는 방향으로 다수를 조직해 사회적 관계를 해체하는 국민을 주변화하라를 나머지 원리로 제시하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의 진혼곡이라는 이 책의 원제에서 알 수 있듯 1930년대 뉴딜정책에서 비롯된 민주주의 확산과 노동‧민권운동 등이 불평등을 최소화하면서 1960년대까지 미국 국민들은 번영을 누려왔고 아메리칸 드림을 떠받치던 계급 이동성 역시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후 소수 특권계층들이 대규모의 경제적‧정치적 공세를 펼치면서 대공황 속에서도 꿈꿨던 그리고 어느 정도 실현이 가능하리라 보였던 정의, 평등 그리고 자유를 더 많이 누리고, 억압적인 계급 구조가 무너지는 미래가 사라졌으며 지금도 계속 여건이 악화되고 있다. 이런 현실은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촘스키가 생각하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부와 권력의 불평등 확산에 깔려있는 10가지 원리를 미국의 역사적 사례를 통해 낱낱이 파헤친 저자는 우리 자신이 변화의 주역으로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고 하워드 진의 말로 책을 맺는다. “중요한 것은 이름 없는 사람들이 행한 무수히 많은 작은 행동이며, 바로 이런 사람들이 역사에 기입되는 중요한 사건들의 토대를 놓았다.” 결국 부와 권력을 모두 갖춘 국가‧자본세력이 원하는대로 힘없는 다수가 각자도생의 길을 갈 것이 아니라 서로의 처지를 공감하고 연대의 틀을 만들어내어 계속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결같이 대중의 편에 서서 현실 참여를 통해 강자의 허구와 위선을 고발해왔으며 90세가 넘을때까지 사회참여적 저술활동을 그치지 않고 있는 지성의 고민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를 이 책은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 또한 각 원리 말미에 있는 참고자료의 개략적인 설명을 통해 저자 주장의 배경을 뚜렷이 하면서 더 자세한 내용을 살펴볼 수도 있도록 안내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