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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버드 영화음악 (Lady Bird OST by Jon Brion)

Jon Brion 작곡/Prayer of St. Francis, Alanis Morissette, Julie, John Hartford 노래 외 12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SonyMusic / Legacy | 2018년 03월 02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24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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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버드 영화음악 (Lady Bird OST by Jon Brion)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8년 03월 02일
시간, 무게, 크기 11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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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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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소개 (17명)

작곡 : Jon Brion (존 브라이언)
노래 : Alanis Morissette (앨라니스 모리셋)
1995년에 홀연히 등장한 앨러니스 모리세트(Alanis Morissette)는 당시 큰 인기를 구가하던 여성 싱어 송라이터의 득세에 확실한 방점(傍點)을 찍었으며,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의 사망 이후 주춤하던 포스트 그런지와 얼터너티브 록에 다시 인기의 불꽃을 지핀 여전사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가리켜 ’분노한 여성 록의 선두주자’라고 칭했지만 정작 자신은 소극적인 페미니스트라 정의되길 ... 1995년에 홀연히 등장한 앨러니스 모리세트(Alanis Morissette)는 당시 큰 인기를 구가하던 여성 싱어 송라이터의 득세에 확실한 방점(傍點)을 찍었으며,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의 사망 이후 주춤하던 포스트 그런지와 얼터너티브 록에 다시 인기의 불꽃을 지핀 여전사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가리켜 ’분노한 여성 록의 선두주자’라고 칭했지만 정작 자신은 소극적인 페미니스트라 정의되길 원한 당시 21살의 젊은 여성이었다. 1974년 6월 1일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에서 3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앨러니스 모리세트는 TV 아역 배우로서 연예계의 문을 두드렸다. 14살이 된 이 소녀는 연기보다 가수의 길에 중점을 두어 트레이닝되기 시작했다. 1991년과 1992년에는 현재의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의 노래 같은 댄스팝 데뷔 앨범 < Alanis >와 < Now Is The Time >을 공개해 본국인 캐나다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주노 어워드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이 인기를 바탕으로 1994년에 미국으로 남하(?)한 그녀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잊을 수 없는 은인 글렌 발라드(Glen Ballard)를 만나 세계 무대로 진출할 처녀작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앨러니스 모리세트처럼 그 또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과 윌슨 필립스(Wilson Phillips), 폴라 압둘(Paula Abdul), 포인터 시스터스(Pointer Sisters), 디바지(DeBarge), 샤카칸(Chaka Khan) 등과의 작업으로 록보다는 팝적인 감각을 몸으로 익힌 프로듀서이자 엔지니어 겸 작곡가였다. 그러나 기성복처럼 만들어진 댄스팝을 노래했던 앨러니스 모리세트와 글렌 발라드가 화학 반응을 일으킨 앨범은 예상을 뒤 업고 얼터너티브 록을 구사한 < Jagged Little Pill >이었다. 바로 이것이 록 평론가들이 그녀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크게 부족한 것 없는 중산층 가정에서 무난하게 자라 TV 쇼에서 아역 스타의 자리까지 오른 그녀가 당시 얼터너티브 음악의 시류에 영합해 하루아침에 기타를 들고 ’록의 전사’로 탈바꿈했다고 보는 것이다. 즉 그녀의 음악에는 록의 저항성과 순수성, 그리고 자발성이 부재(不在)한다고 여긴다. 그들에게 모리세트의 음악은 목적 없는 분노이자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인 셈이다. 또한 < Jagged Little Pill >을 발매한 매버릭 레이블의 사장이 마돈나(Madonna)이기 때문에 그녀의 입김에 의해 앨러니스의 세계 시장 데뷔 앨범이 성공했다는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은 지금까지 10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화제성에 주목하는 그래미는 캐나다에서 온 이 여성에게 5개의 트로피(올해의 앨범, 올해의 록 앨범, 최우수 록 노래, 최우수 록부문 여성 가수, 최우수 장편 뮤직비디오)를 몰아 주면서 그 음반의 완성도를 인정했고, ’You oughta know’, ’Hand in my pocket’, ’All I really want’, ’Ironic’, ’You learn’, ’Head over feet’ 같은 싱글들도 차트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하며 대중들과의 교류에도 성공했다. 1996년 11월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내한 공연을 가진 모리세트는 영화 < 시티 오브 엔젤스 >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Uninvited’로 다시 한번 그래미 최우수 록 여가수와 최우수 록 노래로 선정되어 그 인연을 이어갔다. 인도를 비롯한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얻은 경험을 담아 좀 더 개인적인 심상으로 침잠한 1998년도의 < Supposed Former Infatuation Junkie >는 전작에 비해 음반 전체적인 색채는 어두워졌고 그 결과 음반의 판매고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Thank you’, ’That I would be good’, ’I was hoping’ 등이 내적으로 무르익어 가는 그녀를 표현한 트랙들이다. 이듬해인 1999년에 두 번째로 국내 무대를 찾아 우리나라 팬들에게 자신의 성숙하고 겸손해진 음악을 들려준 앨러니스 모리세트는 언플러그드 라이브 음반 < Alanis Unplugged >로 일단 숨을 고른 뒤, 2002년에는 < Under Rug Swept >를 공개했으나 싱글 ’Hands clean’이 20위권에 머물다가 퇴출당할 정도로 이전의 음반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상업적인 실패를 경험했다. 그러나 앨러니스 모리세트는 흔들리지 않았다. < Under Rug Swept >는 음반사의 요구사항을 수용한 꼭두가시 앨범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자신의 입으로 얘기하는 아티스트로 거듭 태어났다.
노래 : John Hartford (존 하트포드,John Cowan Hartford)
노래 : Ani Difranco (애니 디프랑코)
노래 : Altered Images (얼터드 이미지스)
뉴웨이브-포스트펑크 밴드 뉴웨이브-포스트펑크 밴드
노래 : Monkees (몽키즈 (팝/락 밴드))
1964년의 비틀스 선풍은 모든 사람들의 의식을 뒤바꿔놓을 만큼의 혁명적인 현상이었다. 비틀스의 살인적 인기와 그에 따른 엄청난 부는 홍보, 판매, 팬 관리 등 모든 부문에 전략과 전술의 개념이 도입되어 조직적으로 실행된 결과였다. 음악 관계자들은 비틀스의 성공을 통해서 이른바 ‘대중접근’의 방식에 눈이 떴다. 비틀스 선풍은 또한 영국 출신 그룹들의 미국 진출 붐을 초래했다. 미국에 상륙한 영국 그룹들은 미국가수... 1964년의 비틀스 선풍은 모든 사람들의 의식을 뒤바꿔놓을 만큼의 혁명적인 현상이었다. 비틀스의 살인적 인기와 그에 따른 엄청난 부는 홍보, 판매, 팬 관리 등 모든 부문에 전략과 전술의 개념이 도입되어 조직적으로 실행된 결과였다. 음악 관계자들은 비틀스의 성공을 통해서 이른바 ‘대중접근’의 방식에 눈이 떴다. 비틀스 선풍은 또한 영국 출신 그룹들의 미국 진출 붐을 초래했다. 미국에 상륙한 영국 그룹들은 미국가수들을 젖히고 무대를 완전 장악, 미국인들의 기를 죽였다. 언론은 그것을 ‘영국의 침공’이라고 했다. 미국은 남의 잔치에 땅을 빌려준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어떤 형태로든’ 미국의 대중음악계는 자존심 회복이 요구되었다. 이윽고 두 명의 미국인이 비틀스에 맞서는 미국 그룹을 만들어 긍지를 되찾고 그들처럼 막대한 부를 창출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프로듀서 밥 라펠슨과 버트 슈나이더였고 그들의 기획포인트는 ‘조립식 비틀스의 창조’였다. 그 기획하에 그룹 몽키즈가 탄생되었다. 당시 콜롬비아 영화사 사장 아들인 버트 슈나이더와 재능있는 제작자 밥 라펠슨은 리차드레스터가 만든 비틀스 영화(A Hard Day’s Night)의 대성공을 주시하고 거기서 ‘비틀스 같은 4인조 그룹을 만들어보자’는 뜻을 구체화했다. 그들은 65년 레이버트 프로덕션을 설립하여 먼저 주요 헐리우드 업계지에 구인광고를 냈다. “텔리비전 새 시리즈에 출연할 17~21세의 네 익살꾼을 찾습니다.” 슈나이더와 라펠슨은 한 달간 4백 37명의 응모자를 오디션했다. 응모자들 가운데는 스티븐 스틸스와 나중 희대의 연쇄살인사건을 일으킨 찰스 맨슨도 포함되어 있었다. 만약 스틸즈가 오디션을 통과했더라면, 록계는 수준높은 음악을 선보인 ‘버팔로 스프링필드’나 ‘크로스비 스틸스 & 내시’를 배출하지 못하게 됐으리라. 정말 스틸스에게는 불합격이 불행중 다행이었다. 사진 잘 받고 활달하며 연예계 활동 경력이 일천한 네 명의 소년이 엄선되었다. 아마추어 가수 마이크 네스미스, 그리니치 빌리지의 포크 싱어 피터 토크, 아역배우 출신의 미키 돌렌즈, 그리고 탁월한 연기력을 지닌 배우 데이비드 존스가 행운의 면면들이었다. 그들이 그룹 몽키스가 되었다. 그런데 몽키스 멤버들 중 둘은 가수, 둘은 배우였다. 온전한 뮤지션으로 평가받기에 이미 성분상 몽키스는 ‘절반의 실패’를 안고 들어갔다. 그것은 불행의 씨앗이었다. 두 제작자는 몽키스라는 ‘상품’을 팔리게 하기 위해 그것의 포장 및 품질관리 작업을 했다. 윌리암 프러울리라는 언더그라운드 영화 감독을 고용하여 몽키스에게 스파르타식 연기 수업을 지도케 했다. “처음에 그들은 당황했고, 몸이 굳어 있었으며, 약간은 촌스러웠다. 때때로 마룻바닥을 굴렸으며, 동물처럼 되라고 요구했다. ‘넌 개야. 기린이 하는 식으로 말하라구. 코끼리하구 놀라구. 마치 찻잔이 얘기하는 듯이 말해야 해.’ 그건 그들을 외적으로 개조해 육체를 새로운 방식으로 이용하려는 훈련이나 다름없었다.” 프러울리의 말이다. 그들은 인위적으로 창조되어가고 있었다. 포장은 그럴 듯해졌으나 이제 품질이 문제였다. 몽키즈가 직접 곡을 쓰고 연주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라펠슨-슈나이더팀은 그 유명한 돈 커시너에게 접근했다. 돈 커시너는 60년대 초반 ‘크리스탈즈’나 ‘로네츠’같은 여성 보컬그룹 유행을 몰고 온 음악제작업의 대부(代父)로, 그의 영향 아래 닐 세다카-하위 그린필드, 제리 고핀-캐롤 킹 등 명작곡 콤비들이 탄생했다. 커시너는 당시 ‘스크린 젬스 콜롬비아 뮤직’사 대표였는데, 그 때 막 콜젬스 레코드사를 신설했다. 그는 박력있고 흥이 넘치는 사운드를 몽키스에게 기대했지만, ‘함량 미달’이라는 것만을 확인했고, 이들을 훈련시켜 한 앨범에 22곡을 수록하고 다섯 개 TV쇼에 출연시키기엔 시간이 없었다. ‘출고 시점’을 맞춘 생산이 요구되었던 까닭이었다. 할 수 없이 돈 커시너는 그가 거느린 작곡 부대를 활용해야 했다. 그리하여 고핀-킹, 세다카-그린필드, 토큰즈, 닐 다이아먼드 등 프로 작곡가들이 몽키스 긴급 수혈을 위해 동원되었다. 연주 또한 자체로 해결할 수 없어 ‘캔디 스토어 프로페츠’라고 불린 팀이 맡았다. 몽키스는 딴 사람이 써서 연주해준 곡에 입을 벌리고 몸만 놀리면 되었다. 그들은 밴드가 아니라 서커스 원숭이들이었다. 그룹명도 몽키스이지 않았던가. 품질과 포장이 완성된 그들은 드디어 출고 시점인 1966년 6월 NBC TV의 카메라 앞에 섰다. 팬들의 반응은 라펠슨과 슈나이더의 기대에 한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그들이 출연한 < 몽키스 위클리 >프로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응은 화산이 폭발하듯 터져버렸다. 그 해 겨울 몽키스 프로는 회당 1천만 명 이상의 시청자가 지켜보았다. 하루에 날아든 팬레터는 무려 5천통에 달했다. 비록 ‘모조된 비틀스’였지만, 몽키스는 오리지널 비틀스만큼 잘 팔렸다. 그들의 노래는 데뷔작 ‘클락스빌로 가는 마지막 열차(The Last Train to Clarksville)’가 차트 1위로 치솟은 것을 비롯, 당시 차트는 그들의 것이었다. 4장의 앨범이 연속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그 해가 가기 전에 셔츠, 코트, 카드, 인형, 도시락 등 몽키스 기획상품은 2천만 달러의 판매고를 올렸다. ‘몽키스 현상’이었다. 그룹 멤버 미키 돌렌즈는 “우리가 상품을 팔고 있다. 우린 몽키스를 팔고 있다"고 자랑스레 외치기도 했다. 그들의 인기가 절정이었을 때 영국의 데이비드 존스라는 이름의 가수가 막 데뷔했다. 그러나 몽키스의 멤버 중 데이비드 존스가 있었기 때문에 혼동을 피하기 위해 이름을 데이비드 보위로 바꾸었다. 70년대 대중음악에 획을 그은 슈퍼스타 보위도 몽키스로 인하여 본명을 잃어버렸던 셈이었다. 몽키스는 너무 했다 싶을 정도로 비틀스의 성공 패턴을 본떴다. 데뷔음반을 발매하기 직전 ‘몽키스가 오고 있다’는 내용의 포스터를 수천 장 개첨한 것을 포함, 광고 캠페인에 10만 달러를 썼으며 방송국의 디스크쟈키들에게 일제히 홍보판을 살포했다. 이와 같은 홍보 전략은 비틀스의 전설적 매니저인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이미 활용했던 방식이었다. 그룹 이름도 비틀스처럼 고의적으로 스펠을 틀리게 했다(딱정벌레는 Beetles인데 Beatles라 한 것과 같이 Monkeys를 Monkees로 썼다.) 레이버트 프로덕션의 한 간부 스스로가 몽키스를 ‘미국판 비틀스’라고 언급할 지경이었다. < 뉴스위크 >지는 그들을 ‘외형적인 비틀스의 직계후손’이라고 표현했고, < 타임 >지는 1967년 “교활한 프로모터 한 팀이 제록스 기계로 비틀스를 복사해 몽키스를 내놓았다”고 코멘트했다. 평론가들은 애초부터 몽키스의 TV쇼나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이 완전한 가수, 완전한 연기자 둘 가운데 어디에도 귀속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비틀스처럼 진지하게 대중음악을 추구하는 밴드가 아니라는 사실은 악평과 무시를 유발시키기에 적합한 치명적 약점으로 작용했다. 그들은 예술적 역량이 부족했고 그것을 메울 수 있는 환경에 처하지도 못했다. 물론 몽키스가 이를 모르지는 않았다. 몽키스 멤버 중 가장 의식있는 마이크 네스미스는 “우리 음악은 하등 우리와 관계가 없다”고 불평을 토로했으며 서서히 비틀스 흉내와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것’에 염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1967년 말부터 묻혀버린 자기 존재를 찾으려는 노력에 돌입, 악기를 연주하고 곡쓰기를 시도했으며, 순회공연을 통해 새 이미지를 부각시키려고 애썼다. 네스미스는 몽키스가 뮤지션으로 인정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사람들은 우리를 ‘제도권의 도구’로 인식하고 있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으며, 우린 오늘날 ‘우상 타파적’인 청춘의 가장 진실된 표현이다”라고 강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몽키스의 이러한 국면전환 노력은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순간을 노린 기획상품이었기에 그들의 인기는 오래 지속될 리 만무였고 1969년에 이르러서는 시청률이 크게 하락하면서 시리즈는 방영이 중단되었다. 이런저런 문제가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서 밴드는 엉망이 되어 갔고 피터 포크가 그룹을 탈퇴했으면 몇 개월 후 몽키스는 마침내 공식 해체되었다. 몽키스는 조립식 비틀스 또는 제 2의 비틀스를 표방했지만, 둘간에는 본질적으로 커다란 차이가 내재하고 있었다. 비틀스는 영국의 노동계급 출신 젊은이들이 ‘욕구 분출’을 위해, ‘신분 상승’을 위해 음악을 한 ‘자생적’ 그룹이었다. 그들은 브라이언 엡스타인을 만나 제도권에 진입했지만, 주체의식을 소유하고 있었기에 그것에 용해되거나 도구화되는 위험을 피하고 오히려 제도권을 요리하고 사회를 ‘지도’할 수 있었다. 반면 몽키스는 제도권 또는 자본계급이 ‘부의 축적’을 위해 만든 ‘인위적’ 그룹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몽키스는 자본가의 목적이 달성됐을 때 효력을 상실했고, 따라서 쉽게 ‘폐기 처분’되고 말았던 것이었다. 이를테면 비틀스는 아래에서 발생하여 위로 올라간 그룹이라면 몽키스는 위에서 만들어 아래로 내려보낸 그룹이었다. 몽키스는 제도권에 의한, 제도권을 위한, 제도권의 그룹이었고 또한 제도권의 희생양이기도 했다. 록 뮤직이 기본적으로 ‘기존 사회를 향해 외치는 젊음의 의사표현’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전제할 때 몽키스는 정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었다. 록 평론가들이 몽키스를 진정한 록 그룹으로 규정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티스트의 주체성을 배제한 제도권의 대중음악은 단명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몽키스는 실증했다. 또 그에 의해 고정된 이미지는 쉽게 타파할 수 없음을 가르쳐주었다. 몽키스 멤버들은 그룹이 해체된 후 솔로의 길을 모색하면서 고정된 이미지로 인해 일을 찾는 데 굉장한 어려움을 겪었다. 제도권이 가져다주는 명성과 부의 대가는 그처럼 잔인한 법이다! 피너 토크는 87년 주간지 < 피플 >과의 인터뷰에서 몽키스 시절을 이렇게 평했다. “60년대는 정말 분열의 시기였다. 한편으로는 희망과 갈채 그리고 우아함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잔인함이 있었다. 몽키스는 어느 면에서 좋은 쪽의 증류액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극단적인 멋, 극단적인 갈채, 극단적인 무해(無害)의 축소판이었다.” 그 때 몽키스는 20년만에 재결합하여 < 그것은 옛날, 이것은 지금 >(That was Then, This is Now)이란 히트곡을 내어 올드팬의 기억을 되살려주었다.(마이크 네스미스는 참여를 거부했다). 아마 몽키즈의 좋은 쪽은 - 어쩌면 유일할 수도 있다 - 그때의 컴백에서처럼 올드팬의 향수를 달래주고 있다는 사실이리라...
노래 : Dave Matthews Band (데이브 매튜스 밴드)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기타리스트인 데이브 매튜스(Dave Matthews)가 결성한 데이브 매튜스 밴드는 루츠 록의 중심에 우뚝 서서 현재까지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밴드이다. 특히 이들은 라이브가 앨범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현장감에 충실하며 메탈리카(Metallica)와 맞먹는 공연 수입을 자랑한다. 허나 이것은 단지 미국 내에서의 성과라는 한계성 또한 내포하고 있다. 데이브 매튜스 밴드의 음악이...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기타리스트인 데이브 매튜스(Dave Matthews)가 결성한 데이브 매튜스 밴드는 루츠 록의 중심에 우뚝 서서 현재까지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밴드이다. 특히 이들은 라이브가 앨범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현장감에 충실하며 메탈리카(Metallica)와 맞먹는 공연 수입을 자랑한다. 허나 이것은 단지 미국 내에서의 성과라는 한계성 또한 내포하고 있다. 데이브 매튜스 밴드의 음악이 미국의 전통적 음악들, 이른 바 루츠(roots)로 지칭되는 음악들을 뒤섞은 스타일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루츠 록의 음악적 유전자는 포크/컨트리, 그리고 서던 록을 포함한 아메리칸 하드 록의 복고성을 그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데이브 매튜스 밴드의 음악은 동시대의 루츠 동료들, 예를 들어 후티 앤 더 블로피시(Hootie & The Blowfish)류의 사운드와는 그 궤를 달리 한다. 흑백이 적절히 혼합되어 있는 멤버 구성과 색소폰과 바이올린이 정규 멤버로 포함된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의 음악 속에 녹아있는 월드 뮤직적인 색채가 차별화의 주동인이다. 여기에 더해지는 자유롭고 재지한 분위기 형성은 밴드의 음악을 고급화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임프로비제이션(즉흥 연주)에 강하고 라이브 연주시에도 원곡과는 다른 해석을 하는 경우가 잦다. 라이브 앨범이 정규 디스코그라피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점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그러나 이런 특징적 면모에도 불구, 미국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는 점은 여전한 밴드의 숙제로 남아있다. 1993년에 나온 데뷔작 < Remember Two Things(live) >이 스튜디오 앨범이 아닌 라이브 실황이라는 점은 데이브 매튜스 밴드의 음악 지향의 근본을 잘 명시해준다. 이 작품은 소량의 한정반이 모두 팔려버리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미래의 슈퍼 밴드로의 도약에 시금석을 마련했다. 공연장 가판대와 우편물 판매로만 거둔 실적임을 상기한다면 밴드가 전국적 배급망을 가질 경우의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었던 것이다. 메이저 레이블에서 발매한 공식적인 1집 < Under the Table and Dreaming >(1994)은 ‘예상대로’ 엄청난 성공을 일궈냈다. 미국 내에서만 4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 것이다. 음악적인 면에서도 현재까지 밴드 최고의 명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2년 뒤 발표한 < Crash >(1996)역시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앨범 차트 2위로 진입하는 등 폭발적 인기를 구가하며 전작의 성과를 이어나갔다. 이에 고무되어 밴드는 정열적인 라이브 활동을 계속해나갔고 이것의 결과물로서 < Live at Red Rocks 8-15-95 >를 1997년에 내놓았다. 1998년에 소개한 스튜디오 3집 < Before These Crowded Streets >에서 이들은 전작들과는 달리 어둡고 내면화된 정서를 표출하면서 변신을 시도했고 이어 연속적으로 두 장의 라이브 레코딩, < Live at Luther College >(1999), < Listener Supported >(1999)를 발표하며 실황 연주 전문가로의 입지를 굳게 다졌다. 그리고 2001년, 데이브 매튜스 밴드는 싱글 ’I did it’을 앞세운 < Everyday >의 간결한 악곡들로 팬들에게 새로이 다가왔다.
스카 펑크 밴드 스카 펑크 밴드
노래 : Bone Thugs-N-Harmony (본 썩스 앤 하모니)
본 썩스 앤 하모니(Bone Thugs-N-Harmony)는 랩/힙합 네트워크에서 기존의 틀을 완전히 벗어난 멜로디컬한 랩 장르를 개척해 단숨에 팬들을 사로잡은 4인조 하드코어 랩 그룹이다. 이들은 ‘스타카토 랩’(일명 하모니 랩)이란 명칭으로 불리던 독특한 래핑을 창조해 주류 힙합 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래핑과 멜로디 흐름을 타는 새로운 랩 스타일은 대중들에게 확실히 선풍적인 인기를 ... 본 썩스 앤 하모니(Bone Thugs-N-Harmony)는 랩/힙합 네트워크에서 기존의 틀을 완전히 벗어난 멜로디컬한 랩 장르를 개척해 단숨에 팬들을 사로잡은 4인조 하드코어 랩 그룹이다. 이들은 ‘스타카토 랩’(일명 하모니 랩)이란 명칭으로 불리던 독특한 래핑을 창조해 주류 힙합 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래핑과 멜로디 흐름을 타는 새로운 랩 스타일은 대중들에게 확실히 선풍적인 인기를 끌만큼 독창적이었고, 자극적이었다. 미국 클리블랜드 출신의 멜로디 랩을 구사하는 본 썩스 앤 하모니는 험상궂은 외모의 전형적인 뒷골목 아이들이었던 크래이지 본(Krayzie Bone)과 래이지 본(Layzie Bone), 비지 본(Bizzy Bone), 위시 본(Wish Bone), 프레시 앤 본(Flesh-N-Bone)의 5인 체제로 힙합 계에 등장했다. 하지만 원래 같은 멤버였던 프레시 앤 본이 장기간 수감 문제로 인해 팀에서 제외되자 4인조로 라인업을 확정했다. 멤버들은 팀 칼라의 바탕이 된 ‘본(Bone)’이라는 애칭으로 탄탄한 팀워크와 단결력을 과시했다. 흑인 빈민가에서 성장한 이들은 바로 힙합의 혁명을 몰고 온 ‘랩 프로젝트’ N.W.A의 창단 멤버이자 1995년 3월 에이즈로 사망해 이제는 갱스터 랩 계의 전설이 된 인물인 이지 이(Easy-E)(그의 본명은 에릭 라이트(Eric Wright)이다.)에 의해 발탁되었다. 이지 이는 날카로운 안목으로 길거리에서 방황하던 본 썩스 앤 하모니를 랩이라는 키워드 속으로 한데 묵어냈다. 결국 본 썩스 앤 하모니의 스승이 된 이지 이는 오디션과 연습을 통해 네 명의 불량 청소년들을 힙합 무대로 진출시키기에 이른다. 1994년 힙합 월드에 첫 신고식을 알린 이들의 데뷔 싱글 ‘Thuggish ruggish bone’는 개성 만점의 래핑으로 단번에 화제를 몰고 왔다. 그 해 케이블 음악 방송 집계에서 가장 많이 리퀘스트 된 뮤직비디오가 50만장 이상 팔려나가며 화려한 폭죽을 쏘아 올린 것이다. 같은 해 이지 이가 설립한 < 루스리스(Ruthless) > 레이블을 통해 발표된 8곡 짜리 EP 음반 < Creepin on ah Come Up >은 빌보드 앨범 차트 12위까지 진입, 단기간 미국 내에서 300백 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음반은 차트에서 무려 70주간이나 머무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며 새로운 음악 트렌드인 하모니 랩의 저력을 과시했다. 그룹의 축가가 된 ‘Thuggish ruggish bone’(랩 차트 2위)의 빅히트와 함께 또 다른 싱글 ‘Foe tha love of $’(랩 차트 4위)는 팀 성공의 밑거름이었다. 기대 이상의 엄청난 성과도 잠시, 그룹은 곧바로 실질적인 데뷔 레코드 작업에 들어간다. 1995년 공개된 하모니 랩의 결정판으로 평가받은 < E 1999 Eternal >은 본 썩스 앤 하모니의 독창성이 가감 없이 발휘된 최상의 결과물이었다.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오른 이 앨범은 멀티 플래티넘 레코드를 기록했고, 지구촌 곳곳에 그룹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멜로디컬하고 달콤한 소울 하모니를 선보인 이들의 음악은 분명 매력적이었고, 다분히 시선을 끌었으며 그 해 힙합 시장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도 랩 계열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이 작품은 빌보드 싱글 차트 8주간 1위를 기록한 스매시 히트 싱글 ‘Tha crossroads’가 백미. 결국 이 곡으로 이듬해 그래미상에서 ‘베스트 랩 그룹’상을 거머쥐었고, ‘1st of the Month’(팝 차트 14위)와 함께 두 싱글은 쉴 틈 없이 FM 라디오와 MTV 전파를 탔다. 힙합 역사상 최초의 더블 앨범을 시도한 투팩(2Pac)을 시발점으로 사후(死後) 노토리어스 비아지(Notorious B.I.G)와 우탱 클랜(Wu-Tang Clan)에 이어 그룹은 1997년 두 장 짜리 더블 레코드 < The Art Of War >을 발표,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등극하며 여전히 거침없는 위상을 점했다. 특히 수록곡 중 영화 < 배트맨과 로빈 >의 사운드트랙에 수록되어 빌보드 싱글 차트 4위까지 오른 히트 싱글 ‘Look into my eyes’(랩 차트 2위)와 ‘If I could teach the world’(랩 차트 3위) 등의 곡은 연 타석 홈런을 날리려던 그룹에게 확실한 성공의 틀을 제공했다. 휴식기 동안 그룹 멤버 각각은 솔로 앨범을 발표하며 잠깐의 홀로 서기를 선언했다. 이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멤버들은 빌보드 앨범 차트 2위까지 진입한 2000년 작품 < BTNHResurrection >을 통해 지난 세기말 무렵 자신들이 이룩한 성공신화를 연이어 내달렸다. 2002년 < Thug World Order >(팝 앨범 차트 12위, R&B앨범 차트 3위)를 발표해 ‘팝 사운드의 연금술사’로 통하는 필 콜린스(Phil Collins)의 ‘Take me home’을 샘플링한 ‘Home’을 싣기도 했다. 랩이 주도하는 힙합은 아티스트의 독창적인 래핑이 생명이다. 그런 점에서 하모니를 섭렵한 랩 그룹 본 썩스 앤 하모니는 힙합의 진정한 승리자였다.
밴드 : Love (러브 (록 밴드),Love Revisited)
멤버: Johnny Echols, Mike Randle, David Green, David Chapple 멤버: Johnny Echols, Mike Randle, David Green, David Chapple
합창 : Adolf Fredrik's Girls Choir (아돌프 프레드릭 소녀 합창단,Adolf Fredriks Flickkor)
스웨덴 아돌프 프레드릭 음악학교(Adolf Fredrik's Music School)의 합창단. 12세에서 15세 사이의 여학생 40여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웨덴 아돌프 프레드릭 음악학교(Adolf Fredrik's Music School)의 합창단. 12세에서 15세 사이의 여학생 40여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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