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 101이란 오디션 프로그램이 갓 시작되었을 때 자기소개 영상에서부터 발군의 활약을 선보인 연습생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바로 김세정이었다. 걸그룹 명가 JYP 소속 연습생이자 최종 1위를 기록하게 되는 전소미와 엇비슷한 성적을 거두다가 막판 뒷심 부족으로 2위를 차지하고 말았지만 전소미가 트와이스 멤버를 선정하기 위한 오디션 식스틴에 아깝게 낙방하며 인지도를 잔뜩 높인 상태로 프로듀스 101에 출연했던 것과 김세정이 몇 년 전에 SBS K팝스타에 출연해서 맥 없이 중도 탈락하고 말았던 것을 비교해본다면, 그리고 김세정의 소속사 젤리피쉬가 제대로 된 걸그룹이라곤 내놓지도 못하고 있었으며 아이오아이 활동 중에도 대중친화적이지 못한 행보를 통해 아이오아이 팬들의 불만을 샀던 일을 생각해본다면 전소미를 상대로 김세정이 경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몇 년 사이 잔뜩 업그레이드 되어 등장한 김세정의 개인적인 매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김세정이란 아이돌이, 아이오아이 활동과 구구단 활동이 겹쳐졌던 시기에 1 대 100이란 KBS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했던 말이 걸작이다. 본격적으로 노래 연습을 한 후 기획사 오디션을 보게 되었는데, 같은 날 있던 다른 기획사의 오디션 장소와 착각해서 젤리피쉬 오디션을 보게 되었단다. 그렇게 엉뚱하게 도착한 오디션 결과 30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게 되었다나 뭐라나. 오디션 장소를 헷갈린 이 가수 지망생은 젤리피쉬에서 연습생 활동을 하던 중 다른 기획사로 갈 뻔도 했었단다. 제안이 왔던 쪽은 더 큰 기획사였던 것 같은데 세정의 어머니가, 용의 꼬리가 되는 것보다 뱀의 머리가 되는 것이 좋다고 얘기를 한데다가 마침 젤리피쉬에 좋은 선배 가수들이 있기도 해서 젤리피쉬에 남게 되었다고. 참고로 그때의 그 좋은 선배 가수들이란 아마도 지금은 젤리피쉬를 떠난 박효신, 성시경 등이 아닐까 싶다.

프로듀스 101 오디션 동안 그야말로 맹활약을 선보였 김세정은 그렇게 선발된 아이오아이 활동 도중 구구단 1집 활동도 겸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아이오아이 열혈팬들로부터 악플 공격을 받기도 했다는데,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아이돌 팬덤에 익숙치 않은 젤리피쉬에서 그 몇 달을 기다리지 못해 다소 성급한 판단을 했던 것 같달까. 아무튼 이렇게 해서 아이오아이 팬덤 일부에겐, 구구단 활동을 겸하는 김세정은 원탁의 기사 속 랜슬롯 비슷한 이미지가 되어버렸달까. 원탁의 기사 세계관 속 아더왕 다음의 2인자이자 그들 중 최강의 전사인 동시에 그들 세계의 금기를 어긴 존재 랜슬롯... 어찌되었건 아이오아이 활동도 끝이 나서 이제 아이오아이 멤버들은 그들 각자의 회사로 돌아가 각개약진을 해야만 하는 시기가 되었고 김세정은 구구단 멤버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다.

젤리피쉬란 기획사가 아이돌 프로듀싱 경험이 적어서인지 구구단이란 걸그룹을 데뷔시키면서 몇 가지 실수를 하게 된다. 구구단이란 투박한 팀 이름 작명은 물론이요 데뷔 때 아이오아이 열혈팬들의 심기를 거스른 것도 그렇고 매 음반마다 컨셉을 달리 하는 것도 현재로선 실수라고 봐야할 것이다. 남자 그룹 빅스를 어느 정도 성공시킨 젤리피쉬로서는 여자 아이돌 그룹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과포화 상태인 걸그룹 시장인데다가 일본과 중국에서의 한류 붐마저 거품이 상당히 꺼진 상태이니 구구단의 성공은 험난하기 이를 데 없달까. 김세정 본인은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활약은 물론 드라마 주연까지 맡으며 방송계의 기린아로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그에 비해 구구단이란 팀 자체는 트와이스, 레드벨벳, 블랙핑크, 마마무, 여자친구의 아성에 도전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

2017 연말 SBS 연예대상과 KBS 연기대상에서 연이어 신인상을 수상한 김세정은 2018년엔 구구단으로서 1위를 해보고 싶다고 새해 목표를 밝혔었다. 아이오아이로 1위를 해봤고 꽃길로 솔로 1위를 해봤으며 예능 프로그램에선 이경규, 강호동, 김병만, 백종원 등으로부터 극찬을 받는가 하면 첫 드라마 출연에 주인공을 꿰차고, 박보검과 작품을 해보고 싶다고 말하자 덜컥 박보검과 코카콜라 CF를 찍게 되는 신통방통 아이돌의 2018년 출사표랄까. 그런 가운데 새로운 앨범 속 타이틀곡의 아카펠라 버전이 선공개되었고 구구단 멤버들의 음악적 재능을 잘 보여주는 이 아카펠라 곡의 등장에 새 앨범을 기다리던 팬들은 환호를 보냈더랬다. 문제는 이 좋은 아카펠라 곡이 정작 본 앨범에는 빠져 있었다는 것. 더 부츠, 실리, 러브식 단 세 곡이 수록된 이 싱글 앨범은 어쩌면 아카펠라 곡을 포함, 정규앨범 형태로 등장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해보게 된다.

아이오아이 활동 시기와 겹쳤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활동하기엔 다소 한계가 있었던 구구단 1집의 경우 원더랜드, 구름 위로, 굿보이, 일기, 메이비 투모로우 이렇게 다섯 곡과 inst 한 곡이 실려 있는 앨범이었다. 이 시기에 구름 위로 & 원더랜드를 어쿠스틱 버전으로 편곡해서 유튜브 등을 통해 별도로 선보인 바 있는데 데뷔 당시 제대로 알리지 못했던 이 어쿠스틱 노래들을 더 부츠 아카펠라 버전과 함께 이번 앨범에 포함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참신하다 못해 엽기적인 느낌마저 들 정도의 뮤직비디오를 내세웠던 3번째 앨범 타이틀곡 초코코의 음원 성적 부진이, 구구단으로 하여금 이릉 전투에서의 갑작스런 패배와 같은 쓴 맛을 보게 했다면 이번 더 부츠 활동은 출사표를 선보인 뒤 출진한 제갈량의 첫번째 북벌 같은 것이 아닐까.

9명 멤버들의 군무를 한껏 선보이는 댄스 브레이크까지 겻들인 타이틀곡 더 부츠는 구구단 멤버들의 매력이 잔뜩 담긴 세련된 노래이며 러브식 역시도 수준급의 감미로운 노래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실리 역시도 그냥 잊혀지기엔 아쉬운 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3번째 음반이자 첫번째 싱글 앨범 수록곡인 초코코, 럭키, 스노우볼과 이번 싱글 앨범의 곡을 적당히 합쳐 미니 앨범 형태로 나오든지 아니면 기존의 곡들을 아카펠라, 또는 어쿠스틱 버전으로 편곡한 곡 등을 추가해서 좀 더 많은 곡 수를 갖춘 리패키지 음반을 발매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달까. 더 부츠, 러브식, 실리 세 곡만을 앞세운 이번 음반으로는 끝내 1위 등극에 실패했고 평창 올림픽이 끝나 많은 가수들이 대거 컴백함에 따라 활동을 일찍 접게 되었으니 오호통재라.

좋은 가수들이 소속되어 있기에 젤리피쉬란 회사에 남기로 했다는 김세정, 하지만 박효신, 성시경은 물론이요 서인국까지 떠나버린 젤리피쉬는 관우, 장비, 마초 등이 차례로 떠나간 촉나라의 모습 같지 않은가. 2018년을 맞이해 구구단의 1위 달성이라는 출사표를 던진 꽃길소녀 김세정의 꿈은 2018년 3월에는 아쉽게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2018년의 끝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으니 그 꿈의 끝자락에서 마침내 대업을 이룰 수 있을지 아니면 오장원의 제갈공명이 그러했듯 끝내 목표를 못 이루고 아쉬움을 남기게 될지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구름처럼 어지러운 아이돌 세계요 난마(亂麻)처럼 헝클어진 뮤직뱅크 순위 속에 소속그룹 구구단의 1위를 목표로 했던 김세정의 출사표는 과연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 뒤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다음 앨범을 기대하시라! (欲知後事如何, 且聽下回分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