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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s Singers 킹스 싱어즈 골드 - 거쉰/ 칠코트 등의 작품 (GOLD - Close Harmony / Spiritual / Secu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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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s Singers 킹스 싱어즈 골드 - 거쉰/ 칠코트 등의 작품 (GOLD - Close Harmony / Spiritual / Secular)

Bob Chilcott, Paul McCartney, John Lennon, Angelique Kidjo, Billy Joel 작곡 외 25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Signum Classics / Signum Classics | 2018년 01월 26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96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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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s Singers 킹스 싱어즈 골드 - 거쉰/ 칠코트 등의 작품 (GOLD - Close Harmony / Spiritual / Secular)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8년 01월 26일
제조국 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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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품의 이벤트 (1개)

음반소개

디스크

Disc 1 Close Harmony
  • 01 Bob Chilcott: We are I note the obvious differences
  • 02 Paul McCartney & John Lennon, arr. Bob Chilcott: And I Love Her I give her all my love
  • 03 Frances, arr. Christopher Bruerton: Don't worry about me I’ll feel the fear for you
  • 04 Angelique Kidjo, arr. Toby Young: Kelele
  • 05 Billy Joel, arr. Bob Chilcott: And so it goes In every heart there is a room
  • 06 Harold Arlen, arr. Gordon Langford: Down with love You sons of Adam, you daughters of Eve
  • 07 John Legend & Tobias Gad, arr. Alexander l'Estrange: All of me What would I do without your smart mouth?
  • 08 Traditional, arr. Bob Chilcott: Shenandoah
  • 09 Traditional, arr. Goff Richards: Lamorna Way down to Lamorna
  • 10 Paul Simon, arr. Andrew Jackman: Some folks' lives roll easy
  • 11 Wiz Khalifa & Charlie Puth, arr. Christopher Gabbitas: See you again It’s been a long time
  • 12 Spike Milligan & Alan Clare, arr. Gordon Langford: Alice in Wonderland
  • 13 KT Tunstall, arr. Alexander l'Estrange: Black horse and the cherry tree Well my heart knows me better than I know myself
  • 14 Traditional, arr. Peter Knight: Danny Boy
  • 15 Paul McCartney & John Lennon, arr. Grayston Ives: I'll follow the sun One Day, you'll look to see I've gone
  • 16 Traditional, arr. Gordon Langford: Bobby Shaftoe
  • 17 George Gershwin, arr. Richard Rodney Bennett: Love is here to stay It's very clear
  • 18 Traditional, arr. Christopher Gabbitas: Scarborough Fair Are you going to Scarborough Fair?
  • 19 James Taylor, arr. Simon Carrington: That lonesome road Walk down that lonesome road all by yourself
  • 20 Traditional, arr. David Overton: Loch Lomond By yon bonnie banks and by yon bonnie braes
  • 21 Traditional, arr. Robert Rice: Down by the riverside Lay that burden down
  • 22 U2, arr. Bob Chilcott: MLK Sleep tonight and may your dreams be realised
Disc 2 Spiritual
  • 01 Henry George Ley: A Prayer of King Henry VI Domine, Jesu Christe
  • 02 William Byrd: Sing joyfully Sing joyfully
  • 03 Bob Chilcott: Thou, my love, art fair Thou, my love, art fair
  • 04 Giovanni Pierluigi da Palestrina: Sicut cervus (Partie 1 de: Sicut cervus desiderat)
  • 05 Thomas Tallis: In manus tuas, Domine
  • 06 Toby Hession: Master of Music Glory of architect, glory of painter, and sculptor, and bard
  • 07 Roland de Lassus: Musica Dei donum
  • 08 Joseph Rheinberger: Abendlied Bleib bei uns, (nº 3 de: 3 Geistliche Gesange, op.69)
  • 09 Richard Rodney Bennett: The bell doth toll (nº 5 de: Sermons and devotions)
  • 10 Francis Poulenc: Quatre Petites Prieres de Saint Francois d'Assise Complete: Salut, Dame sainte - Tout puissant, tres saint - Seigneur, je vous en prie - O mes tres chers freres
  • 11 Heinrich Schutz: Das ist je gewißlich wahr SWV277
  • 12 Max Reger: Morgengesang Du hochstes Licht, ewiger Schein (nº 2 de: 8 Geistliche Gesange, op.138)
  • 13 Eric Whitacre: This Marriage
  • 14 Salomone Rossi: Shir hamma'alot L'David (Psaume 124 de: Hashirim Asher Li'Shlomo)
  • 15 Alonso Lobo: Versa est in luctum
  • 16 Ralph Vaughan Williams: Rest O Earth, lie heavily upon her eyes
  • 17 Geoffrey Poole: Tutivillus (Mouvement 3 de: Wymondham Chants)
  • 18 Charles Villiers Stanford: The blue bird op.119 nº 3 The lake lay blue below the hill
Disc 3 Secular
  • 01 John Rutter: Be not afeard
  • 02 Gabriel Faure, arr. Goff Richards: Le papillon et la fleur op.1 nº 1 La pauvre fleur disait au papillon celeste
  • 03 Roland de Lassus: Dessus le marche d'Arras
  • 04 William Byrd: Though Amaryllis dance
  • 05 Juan Vasquez: Lagrimas de mi consuelo
  • 06 Toru Takemitsu: Handmade proverbs Your eyes, your hands, your breasts
  • 07 Camille Saint-Saens: Les marins de Kermor op.71 nº 1 Les premieres lueurs de l'aurore naissante
  • 08 Juan de Anchieta, arr. Bob Chilcott: Con amores, la mi madre
  • 09 Johannes Brahms: All meine Herzgedanken (nº 5 de: 7 Lieder, op.62)
  • 10 Franz Schubert: Die Nacht Wie schon bist du, freundliche Stille (nº 4 de: 4 Gesange, D983)
  • 11 Claude Le Jeune: Revecy venir du Printans
  • 12 Camille Saint-Saens: Romance du soir op.118 La romance du soir dans les airs s'evapore
  • 13 Peter Louis van Dijk: Horizons Sleep, my springbok baby
  • 14 Jean-Paul-Egide Martini, arr. Goff Richards: Plaisir d'amour
  • 15 Edward Johnson: Come, blessed Byrd
  • 16 Traditional, arr. Samuel Ernest Lovatt: The little green lane
  • 17 Ludwig Senfl: Das G'laut zu Speyer Nun kumbt hieher all
  • 18 Josquin Des Prez: Basiez-moi!
  • 19 Juan Vasquez: Gentil senora mia
  • 20 Georges Auric, arr. Gordon Langford: Quand tu dors pres de moi

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1

아티스트 소개 (30명)

작곡 : John Lennon (존 레논 (비틀즈))
1964년 2월 이들이 처음 미국에 상륙했을 때 미국 전역이 떠들썩했다. 케네디 공항에는 1만 명 이상의 틴에이저들이 운집했고, 그들이 출연한 ‘에드 설리반 쇼’의 시청률은 70%를 상회했다. 그 시간대의 뉴욕시의 소년 범죄는 드물게도 제로를 기록했다 ... 짤막한 비틀스 스토리다. 비틀스의 전설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그것을 창조한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등 ‘전설의 4인’(Fab Fou... 1964년 2월 이들이 처음 미국에 상륙했을 때 미국 전역이 떠들썩했다. 케네디 공항에는 1만 명 이상의 틴에이저들이 운집했고, 그들이 출연한 ‘에드 설리반 쇼’의 시청률은 70%를 상회했다. 그 시간대의 뉴욕시의 소년 범죄는 드물게도 제로를 기록했다 ... 짤막한 비틀스 스토리다. 비틀스의 전설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그것을 창조한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등 ‘전설의 4인’(Fab Four)은 1960년대 내내 대중음악과 청년 문화를 주도하면서 시대를 대변했다. 1960년대는 그들의 것이었다. 1970년 그룹은 해산되었고 비틀스라는 이름은 무대에서 사라져 갔지만 멤버 모두가 빛나는 솔로 활동을 펼쳐 재결합설은 끊임없이 그들을 에워쌌다. 그러나 그룹 성원 가운데 한 사람인 존 레논이 1980년 괴한의 흉탄에 피살되면서 사실상 비틀스 스토리는 끝이 났다. 존 레논은 비틀스의 리더였다. 그의 이름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룹을 이끌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중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충분하다. 그렇기에 그가 사망했을 때 시사주간지 < 타임 >과 < 뉴스위크 >는 동시에 그를 커버스토리로 다뤄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았던가(권위를 자랑하는 이 양대 주간지가 문화 예술인을 발행일이 같은 날에 표지인물로 취급하기는 존 레논이 최초였으며, 지금까지 그밖에 없다). 그는 우리에게도 유명하다. 비틀스의 리더라는 사실은 차라리 상식이고, 필생의 라이벌이었던 폴 매카트니와의 다툼으로도 유명하다. 아내가 일본 여인 요코라는 점도 유명하다. 특히 우리 팝 팬들에게 ‘이매진’, ‘러브’, ‘오 마이 러브’ 등 아름다운 팝송을 남긴 ‘부드러운 가수’로 널리 알려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1970년 비틀스 해체 전후로 정치, 사회적 제반 문제를 강도 높은 톤으로 노래하고 한때 일선 투쟁에까지 가담한 ‘투사’였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존 레논이라는 어찌보면 한 사람의 대중 스타의 존재에 시사성의 가치를 부여하고 무게를 실어준 이 중요한 사실이 우리 대부분의 팝 팬들 기억에는 자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비틀스 시절이 1960년대 후반 존 레논에게 대중음악은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는 인기 창출의 수단이 아니라 어떤 문제를 꿰뚫고 그 인식을 전달하는 미디어로 파악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3인칭 대중 소설 쓰기를 포기하고 자신의 존재를 규명하고 사회적 사고를 전달하는 1인칭 다큐멘터리를 쓰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한다. 1968년 그는 ‘혁명(Revolution)’이란 제목의 노래를 싱글로 발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곡은 레논의 사실주의적, 정치적인 노래쓰기의 신호탄을 올렸다. ‘혁명을 원한다고들 하지. 그래, 우리 모두는 세상을 바꾸고자 하지... 그러나 당신들이 파괴에 관하여 얘기할 때 나를 제외시키게 된다는 것을 모르는가요... 헌법을 개정할 거라고들 하죠. 예, 우리는 머리를 변화시키길 바라죠.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들 하죠. 대신 정신 상태를 해방시켜야 할 거예요. 모택동의 사진을 들고 나선다면 여하튼 누구와도 성과를 얻지 못할 겁니다.’ 미국과 영국 전역에 민주화 투재, 반정 운동으로 시위와 집회가 들끓기 시작하던 그 당시 존은 과격한 행동주의 노선에 앞서 ‘정신 개조’와 ‘의식혁명’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작금의 풍조에 편승할 것이 아니라 의식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는 얘기다. 그 무렵 존은 자신이 양친 없이 이모 밑에서 자란 불우한 유년기를 비롯, 자신이 겪게 된 불행의 근본적 원인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있다고 자각한 상태였다. 이러한 존재 규명을 토대로 그는 비틀스 해산 후 자신의 ‘색깔’을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1971년도 음반 < 플라스틱 오노 밴드(Plastic Ono Band) >의 수록곡 ‘어머니(Mother)’에서 존은 ‘어머니 가지 말아요, 아버지 돌아오세요’라고 광기서린 듯 절규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토해 내고는 곧바로 ‘노동 계급의 영웅(Working Class Hero)’이란 곡에서는 전투 의지를 다지는 현재의 변모된 자신을 펼쳐 보인다. ‘그들은 가정에서 당신에게 상처를 주고 학교에서는 당신을 매질하지. 당신이 똑똑하면 증오하고 바보일 땐 무시하지. 그래서 당신은 돌아 버려 그들의 규율을 따르지 않게 되지. 노동계급의 영웅이란 될 만한 거야... 그들은 당신을 종교와 섹스와 TV로 중독시키지. 그런데 당신은 자신이 현명하고 계급이 없으며 자유롭다고 여기는 거야. 그러나 내가 아는 한 당신은 여전히 형편없는 농부나 다름없다구. 노동계급의 영웅이란 될 만하지... 영웅이 되려거든 자 나를 따르라구!’ 존은 무차별로 법, 종교, 도덕 등 자본주의의 이념적 베일을 들추어 그 실체를 통렬히 고발하면서 개량과 개혁을 넘어서는 혁명을 부르짖는다. 의식 혁명의 단계를 뛰어넘어 이제는 실천과 투쟁의 시점으로 진입해야함을 느낀다. 노래로써 그가 내세운 테마는 ‘사랑과 평화’(Love and Peace)로 포장되었다. < 플라스틱 오노 밴드 >와 곧이어 공개된 < 이매진(Imagine) > 음반의 수록곡을 비롯해 해산 직후에 싱글로 발표한 노래를 살펴보자. ‘인스탄트 카르마가 네게 올 거야. 네 머리를 두드릴 거야. 자신과 만나야 할거야. 곧 당신은 죽게 될 터인데 도대체 뭘 생각하는 거야. 사랑 앞에서 비웃으면서 말야.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당신에게 달려 있어... 인스탄트 카르마가 네게 찾아올 거야. 당신의 발을 움직이게 할 거야. 네 주위의 형제들을 인식하라구. 네가 만나고 있는 모든 사람을 말야... 우린 빛날 수 있어. 달과 별과 해처럼. 어서와, 만나자구.’ ‘인스탄트 카르마(Instant Karma)’ 카르마는 인연 또는 만남을 가리키는 말로, 존은 이 곡을 통해 미디어를 포함한 현대적이고도 ‘즉각적인 만남’을 역설하고 있다. 발표 당시 영미(英美)에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으며,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상품 광고배경으로 이용돼 다시금 주목받았다. ‘민중에게 권력을! 즉각 민중에게 권력을! 우린 혁명을 바라지. 똑바로 두발을 세워 거리로 나서야 해... 당신이 부리는 사람들이 아무런 대가를 못받고 노동하고 있어. 그러니 그들이 사실상 가지고 있는 것을 그들이 소유하도록 해줘요. 우리가 전면에 나서 당신들을 끌어내릴 것이야.’ ‘민중에게 권력을(Power to the People)’ ‘난 군인이 되고 싶지 않아. 난 죽고 싶지 않아. 난 법관이 되고 싶지 않아. 난 거짓말하고 싶지 않아. 난 성직자가 되고 싶지 않아. 난 울고 싶지 않아.’ ‘난 군인이 되고 싶지 않아(I Don`t Want to bed a Soldier)’ 직설적이고 과격한 메시지 일색이다. 마지막 곡에서 그 일단이 엿보이고 있지만, 특히 종교는 그의 독설을 피하지 못한다. ‘신은 우리가 고통을 재는 척도로서의 관념일 뿐이야. 다시 한번 말하자면 신은 관념이야, 그것으로 우린 고통을 측정하는 거지... 난 마법을 믿지 않아. 성경을 믿지 않아. 히틀러를 믿지 않아. 예수를 믿지 않아. 케네디를 믿지 않아. 석가를 믿지 않아. 엘비스 프레슬리를 믿지 않아. 밥 딜런을 믿지 않아. 비틀스를 믿지 않아. 난 나만을 믿어. 요코와 나를. 그것이 현실이야. 꿈은 끝났어. 어제까지 난 꿈을 쫓고 있었지만 이제 난 다시 태어났어.’ ‘신(God)’이라는 노래다. 여기서 신은 종교적인 신 외에 현실적 우상으로서의 신을 포함하고 있는데 존은 모두를 깡그리 거부하고 있다. 무신론자의 극단을 노출하는 곡으로 비틀스 때인 1966년 “비틀스는 예수보다 유명하다”(Beatles is More Popular than Jesus)라는 발언으로 일대 파문을 일으킨 전력을 면면히 이어나간 것이다. 그의 역사관, 사회관은 1971년의 명곡 ‘이매진(Imagine)’으로 완결된다. 존은 이곳에서 ‘천국이 없다고,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 보라’고 하고는 말미에 가서 ‘사유재산이 없다고 상상해보라’고 유도하고 있다. ‘물론 상상하기 어려울 거야. 그리되면 탐욕에 대한 필요도, 기아도 없지. 형제애만이 있을 거야. 모든 사람이 세상을 공유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게나.’ 루소에서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의 기초로, 인간의 인간에 대한 착취의 원리로 파악된 사유재산제에 회의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 노래는 1980년대 초반 영화 < 킬링 필드 >의 마지막 부분에 삽입되어 많은 관객들에게 진한 감동을 안겼다. 영화 사운드 트랙의 백미라고 칭송을 하기도 했지만, 당시 존의 생활권인 영미사회, 즉 자본주의사회에 대한 부정이 테마인 만큼 공산주의의 잔학상을 고발하는 영화에 이 곡이 삽입된 것이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이 무렵 그는 어느덧 가수의 위치에서 크게 일탈, 노래 운동가이자 행위주체로 변해 있었다. 평화를 주제로 한 정치색 짙은 일련의 이벤트에 적극 나섰으며 1960년대 말 대학가의 시위를 주도한 제리 루빈이나 애비 호프먼 등 신좌익 활동가와 친교를 긴밀히 한다. 활동 거점은 미국의 뉴욕. ‘정치 가수’로서의 존 레논을 언급하기 위해서는 당시 미국사회의 배경을 언급하지 않으면 안된다. 1960년대 말 불길처럼 퍼져나간 공민권 투쟁, 반전 운동은 1968년 마르틴 루터 킹 목사 암살 사건과 월남전의 격화를 계기로 과격한 양상으로 번져갔다. 대학가의 징병 거부 시위는 무장 투쟁의 단계로까지 진입했고 평화를 주창한 비폭력 노선의 히피들 간에도 과격집단 이른바 ‘이피’(Yippie)가 등장했다. 이피들은 흑인 무장 투쟁 그룹인 ‘블랙 팬더’와 제휴, 폭력 혁명의 기치를 드높였는데, 이 이피들의 리더적 존재가 제리 루빈과 애비 호프만이었다. 비틀스 말기부터 이피의 입장에 공감을 가졌던 존은 이들에 동조하고 실천적으로 연대해 정치색을 노골화한다. 1969년 5월 캐나다 몬트리얼에서의 ‘베드인’ 행사, 같은 해 9월 캐나다 터론터에서의 ‘라이브 피스’ 공연을 가진 데 이어 1970년에는 미국으로 파고들어가 11월 뉴욕 아폴로극장에서의 ‘애티카 자선 콘서트’, 12월 미시건주 앤아버의 미시건대학에서의 ‘존 싱클레어 자선 콘서트’(제리 루빈도 참석) 등에 잇따라 출연하여 평화를 외치고 사회의 억압 및 모순을 규탄한다. 애비 호프만과 제리 루빈과 같은 신좌익(New Left)과 손잡고 일선 투쟁에까지 나섰으니 일련의 사회운동을 체제에 대한 도발로 간주했던 미국정부가 어찌 가만히 있었겠는가. 존의 행동은 백악관의 닉슨 대통령에게 즉각 보고되었고 닉슨 정권은 ‘위험 인물’인 존의 미국 추방을 궁리하게 됐던 것이다. 1972년 6월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자 존은 강도높게 미공화당 정부의 사기성을 공격했으며, 이로 인해 더욱 닉슨의 미움을 샀다. 당시 민주당 조지 맥거번 후보와 치열한 선거전을 벌이고 있었던 닉슨 정권은 존 레논이 급기야 그 무렵 개최된 공화당 전당대회를 전복시키려 했다는 것을 확신했다. 어떤 방법으로든 그를 미국땅에서 내쫓아야 했다. 닉슨 정부가 두려워했던 인물은 무장투사보다는 미국과 같은 사회에서 특히 효과적인 존 레논 부류의 ‘문화적 게릴라’인 까닭이었다. 이때부터 FBI가 존과 요코의 생활을 은밀히 감시하기 시작했다. 존은 정부 차원의 ‘외압’이 자신에게 가해져오고 있음을 감지했지만 결코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는 당시 외쳤다. “아무것도 나를 막지 못할 것이다. 내가 여기 있든 또한 어디에 있게되든 나의 생각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거리낌없이 말할 참이다.” 1972년 2월로 기한이 끝나게 된 그의 미국 체류 비자 연장 신청은 기각되고 말았다. 표면상의 기각 사유는 1968년 그의 체포까지 몰고왔던 영국에서의 마리화나 소지죄였다(궁색하지 그지없다). 이후 미국 영주권을 획득하려는, 존의 미국 정부 당국을 대상으로 한 길고도 치열한 법정 투쟁이 전개되었다. 비자 연장 신청 기각으로 가시화된 닉슨 정부의 국외추방기도에 분기탱천한 그는 1972년 6월 가장 과격한 메시지를 담은 2장짜리 음반 < 뉴욕에서의 한때(Sometime in New York) >를 출반하여 미정부에 응답한다. 그때까지 나온 대중 가요 음반을 통틀어도 가장 급진적이라 할 만한 이 작품에서 존은 1971년 뉴욕시 애티카 형무소에서 폭동이 일어나자 주방위군이 발포해 43명의 사망자를 낸 반민주적 사태를 성토하고 있고, 영국정부에도 핏발을 세워 당시 격화일로를 걷고 있던 북아일랜드 식민 정책에 대해서도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그는 영국 정부에 대해서도 강경한 자세를 보여 1969년 11월 영국군이 월남과 나이지리아 전쟁에 참전한 데 항의, 비틀스 시절 받았던 국가공로훈장 MBE를 반환해버렸다). ‘죄수를 쏘다니. 43명의 가련한 여인들을. 언론은 죄수에게 책임을 돌리지만 죄수들은 서로 죽이지 않았어. 록펠러가 방아쇠를 당겼지! 그게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거야. 모든 죄수를 석방하라!’ ‘애티카(Attica State)’ ‘앵글로 잭슨 돼지들과 스코틀랜드인들이 북부(아일랜드) 식민지화를 위해 보내졌지. 피에 젖은 유니언 잭을 흔들면서. 그게 무슨 가치가 있는가. 어찌 너희들이 자랑스럽고 자유로운 사람들을 감히 억류한단 말인가. 아일랜드는 아일랜드에게 맡기고 영국군은 바다로 되돌아가라!’ ‘일요일, 피에 젖는 일요일(Sunday, Bloody Sunday)’ 이 음반에 수록되어 있고 역시 북아일랜드 식민화 정책을 비판한 노래 ‘아일랜드인의 운명(The Luck of the Irish)’과 함께 ‘일요일, 피에 젖은 일요일’은 매상의 이익금이 아일랜드 독립을 위한 무장게릴라 단체인 북아일랜드공화군(IRA)에 기부되었다. 이 곡은 또 아일랜드 출신으로 1980년대 팝계를 강타한 그룹 유투(U2)에게 영감을 제공하기도 했다. 유투는 곡은 존의 것과 다르지만 ‘일요일, 피에 젖은 일요일’이라는 똑같은 제목의 노래를 불렀다. 이 앨범에는 또 ‘안젤라(Angela)’라는 노래가 들어 있는데, 흑인 여성운동가인 안젤라에 대한 당국의 부당한 탄압을 고발하고 있다. ‘안젤라, 그들이 당신을 감옥에 집어넣었죠. 당신의 배우자를 총살했구요. 정말, 당신은 세계의 무수한 정치적 죄수 중 한 사람이죠... 안젤라. 세계가 바뀌는 소리가 들리는가요? 세상은 당신을 주시하고 있어요. 당신은 곧 세계의 누이 형제들에게 돌아가게 될 거예요. 당신은 아직도 민중의 교사지요.’ 그런데 과연 안젤라를 탄압한 인물은 누구였을까.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였고 나중 8년간 미국 대통령에 재임한 로널드 레이건 바로 그 사람이었다. 레이건은 1970년 말 카터를 꺾고 대권을 쥐었고, 레논은 그때 피살되었으니 운명의 엇갈림치고는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 뉴욕에서의 한때 >음반의 꽃은 ‘여성은 세계의 노예(Woman is the Nigger of the World)’라는 곡이었다. ‘우리 여성더러 가정만이 그녀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말하지. 그리곤 그녀가 친구가 되기엔 너무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하는 거야. 그녀가 하인이 아니면 우릴 사랑하게 아니라고 하거든. 여성은 노예 중의 노예야.’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해주는 또 하나의 기둥인 가부장제와 여성 차별을 통렬하게 풍자하고 있다. 이 노래는 대중 가요 최초로 우먼리브(Woman lib), 즉 여성해방운동을 정면으로 다룬 곡이라는 게 정설이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는 우먼리브 물결이 솟구쳐 1969년 뉴욕에서 제1회 페미니스트회의가 개최되어 남녀의 완전 평등이 주창되었고 1972년에는 미국 최초의 여성월간지 < 미즈 >가 창간되었다.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에 대한 공식적 항의가 제기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여성은 세계의 노예’는 우먼리브운동에 열정적이었던 아내 요코의 사고방식이 크게 영향을 미쳤는데, 우먼리브를 매우 적절하게 소화해냈다고 평가받았다. 존은 노래만 부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이념을 적극 실행에 옮겨 요코와 숫제 남녀 역할을 교체해버린다. 요코와 잠시 헤어졌다가 필생의 반려자임을 재확인하고 1975년 재결합한 이후 내내 집안에 들어앉아 아들 숀의 육아에 전념하는 등 안살림에 치중, 실제로 자신을 그렇게 불렀듯 ‘하우스 허스번드’(House Husband : 主婦 아닌 主夫가 되는 셈이다)로 변신하여 모든 바깥일은 요코에게 일임한다. 요코가 존의 사후에 사업가의 면모를 견지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남편 덕분(?)이다. ‘여성은 세계의 노예’와 관련하여 또 하나 지적해야 할 부분은 이 곡이 발표됐을 때 니거(Nigger)가 차별 용어에 해당된다고 해서 방송 금지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차별을 고발한 노래인데 용어가 차별적이라고 금지되다니 우습기만 하다. 존의 노래는 그 이념성, 급진성, 그리고 묘사의 대담성으로 인해 방송 금지라는 억압이 유달리 자주 가해졌다. 심지어 ‘어머니’ 같은 곡은 너무 광기를 띠고 있다는 이유로 발표 당시 일부 방송국에서 금지 지정을 받기도 했다(이유치고는 너무 인색하다). 그러나 1974년 이후 존의 이미지는 크게 바뀌고 만다. 이 무렵 내놓은 음반 < 마인드 게임즈(Mind Games) >나 < 벽과 다리(Walls and Bridges) >에서 나타나듯 투사적 대열에서 극단적 퇴각을 시사, 민주화 투쟁에 지친 모습을 군데군데 노출시키고 음악적 주장은 자취를 감춘 채 공허한 사랑타령을 해대기도 한다. 물론 이 두 앨범은 요코와 별거중일 때 출반되어 절망과 공허감이 상당 부분 작용한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의 급진성에 매료된 팬들에게는 적지 않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아주 오래 전 그것은 꿈속에서였을까? 단지 꿈이었을까? 알아, 난 알아. 그것은 너무 현실 같았어. 거리를 산책했고 열기 속으로 속삭이는 나무들. 난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지. 두 개의 정신이 이상하게 춤을 추고 있었지...’ ‘9번째 꿈(#9 Dream)’ 빅히트한 노래였지만 그의 작품으로서는 너무 무게가 제거되어버렸다. 불과 2년 전의 그가 아니었다. 이같은 외형상의 사상 전향(?) 때문인지 미국 정부는 마침내 1975년 10월 존에게 미국영주권을 발급해주었다. 더구나 그는 이후 음악 생활을 단절한 채 작품 출반은 물론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꺼렸다. 한편 1987년 전기작가 앨버트 골드만은 존의 전기문인 『존 레논의 삶』을 내놓고 그 무렵 그가 깊이 마약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기록, 일대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뉴스위크 >지는 이와 관련한 갑론을박을 커버스토리로 취급했다). 5년간 동면하고 난 후인 1980년 그는 앨범 < 이중환상(Double Fantasy) >을 들고 화려히 컴백하여 새출발의 의지를 팬들에게 알렸다. 그렇지만 그 새출발의 정체란 일반인이 상상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매일 우린 사랑을 나누곤 했지. 왜 우리 둘은 멋지고 편하게 사랑을 나누지 못할까. 이제 우리들의 날개를 펴고 휠훨 날아가야 할 때야. 또 하루가 우리 사랑을 비껴가지 않도록. 마치 새출발하는 것처럼 말이야.’ ‘새출발 하듯(Just Like Starting Over)’ 그의 새 모습은 ‘바퀴를 바라보며(Watching the Wheels)’라는 곡에는 더욱 선명하게 그려진다. ‘난 그저 여기 앉아 바퀴가 굴러가는 것만을 응시할 테야. 난 정말 그것이 굴러가는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워. 더 이상 회전목마는 타지 않을 테야. 굴러가도록 내버려둘 거야. 사람들은 혼란에 빠져 내게 질문하지. 난 문제는 전연 없고 해결만이 있다고 말하지. 그러면 그들은 마치 내가 이성을 잃었다는 듯 고개를 젓지. 난 서두를 것 없다고 말하지. 난 단지 여기 앉아 시간을 즐길 뿐이야.’ 참으로 많이 변질된 상태다. 과연 존은 훼절한 것인가. 엄청난 부와 안락에 취해 투쟁 의지를 저버린 것인가. 이런저런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앨범 발표 몇 개월만인 1980년 12월 8일 그는 팬이라고 자처하고 순순히 다가온 마크 채프먼이라는 정체불명의 청년이 쏜 총에 맞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얼마 전 미국 CIA의 조종으로 마크 채프먼이 존을 살해했다는 미확인 외신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어쨌든 존의 사망과 함께 미국은 레이건의 보수 시대가 활짝 열렸다). 존의 후반기 삶을 집중 조명한 사람들은 “그도 별 수 없는 인물이었다”라고 결론 내리기도 한다. 1970년대 초반의 거침없는 돌진과 견주었을 때 이같은 단정이 무리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결론은 성급한 측면도 없지 않다고 생각된다. 방법론에 변화가 있었을 뿐 최후의 앨범에까지(아무리 냉정하게 따져도) 그의 영원한 테마인 ‘사랑과 평화’는 결코 그의 두뇌에서 분리되지 않았다. 다만 가정이 큰 관심사로 부각되었을 따름이었다. 그의 유작 < 이중 환상 >에는 과잉이라고 여겨지리만치 요코에 대한 헌신과 자식에 대한 애정이 전편을 흐르고 있다. 그에게서 가정이란 의미는 개인에게 가치뿐만 아니라 ‘변화의 밑거름’인 교육을 제공하는 ‘사회의 살아있는 세포’로 간주되었다. 그간의 현실 투쟁에서 이제 가족을 단위로 한 길고 긴 ‘역사투쟁’에 돌입한 것이었다. 존 레논의 전설은 신비와 혼돈의 안개에 뒤덮여 있다. 그가 보여준 인생의 드라마틱한 굴곡이 그에 대한 확실한 규정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서방체제의 제반 가치를 통렬히 고발한 투사로서의 존의 모습은 재조명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비록 그의 육신은 사라진 지 10년이 훨씬 흘렀지만 엘비스 프레슬리와 같은 ‘서방의 순종파 가수들’과 달리 현실 개혁과 직접 투쟁으로 일생을 숨가쁘게 달려간 그는 여전히 많은 가수들에게 ‘노래 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서 있다. 섹스 피스톨즈의 쟈니 로튼, 퀸의 브라이언 메이, ELO의 제프 린, 유투 그리고 조지 마이클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스타들이 그의 영향을 공개적으로 시인하고 있다. 레논이 사망했을 때 영원한 라이벌이자 친구인 폴 매카트니는 이러한 추모사를 남겼다. “존 레논은 예술, 음악 그리고 세계평화에 누구와 견줄 수 없는 지대한 공헌으로 영원히 기억될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는 아직 살아 숨쉬고 있다.
작곡 : Angelique Kidjo (안젤리크 키드조)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수련해 온 한 소년은 어느 날 에드 셜리번 쇼에 나온 비틀즈의 모습에 감명 받아 뮤지션으로서 삶을 영위하기로 결심했다. 피아노만큼이나 좋아했던 권투 선수로서의 인생을 포기하고 한 우물만 파기로 한 뒤 로컬 밴드에 몸담으며 내공을 연마해나갔다. 당시 20살이 채 안된 어린애가 장차 거물급 싱어 송라이터 명단에 세세토록 이름을 남길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건 당연지사.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수련해 온 한 소년은 어느 날 에드 셜리번 쇼에 나온 비틀즈의 모습에 감명 받아 뮤지션으로서 삶을 영위하기로 결심했다. 피아노만큼이나 좋아했던 권투 선수로서의 인생을 포기하고 한 우물만 파기로 한 뒤 로컬 밴드에 몸담으며 내공을 연마해나갔다. 당시 20살이 채 안된 어린애가 장차 거물급 싱어 송라이터 명단에 세세토록 이름을 남길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건 당연지사.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 했던 그 아이, 바로 영원한 피아노맨 빌리 조엘(Billy Joel)이다. 빌리 조엘은 1965년부터 에코스(The Echoes), 해슬스(The Hassles), 아틸라(Attila) 등의 밴드에서 활동하며 팝 계에 명함을 내밀었다. 허나 당시 하드록, 사이키델릭이 주를 이뤘던 음 세계는 대중들의 무관심 속에 사장되고 말았다. 생계를 위해 저널에 비평을 기고하고 음악적 실패로 인해 마약 센터에 들락거리며 자살을 기도하는 등, 최악의 상황이 그를 엄습한 시기였다. 1971년에 빌리 조엘은 솔로 데뷔작 < Cold Spring Harbor >를 내놓으며 복귀식을 치렀다. 발표 직후 가졌던 공연 릴레이는 호평 받았지만 지지부진한 판매고는 여전했다. 결국 빌리 조엘은 L.A.에 새 둥지를 틀었고, 빌 마틴(Bill Martin)이란 가명으로 클럽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며 재기를 꿈꿨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비슷한 시기에 겹경사가 일어났다. 1973년 엘리자베스 웨버와 결혼하며 안정을 찾았고 ’Captin Jack’의 라이브 버전이 라디오 전파를 타기 시작한 것이다. 재능을 간파한 콜롬비아(Columbia)가 구애의 손길을 보낸 것은 예정된 순서였다. 같은 해에 2집 < Piano Man >이 등장했다. ’피아노맨’이라는 별명의 진원지이기도 한 앨범은 빌보드 차트 27위까지 올랐고 타이틀 트랙 역시 싱글 차트 40위권에 안착하며 그에게 처음으로 성공의 단 열매를 맺어주었다. 제이 가일스 밴드(The J. Geils Band), 두비 브라더스(The Doobie Brothers)의 오프닝을 맡아 투어를 돈 뒤, 1974년 말에 내놓은 3집 < Streetlife Serenade >(1974)은 차트 35위를 기록하며 탄탄대로를 열어주는 듯 했다. 허나 4집 < Turnstiles >(1976)는 명곡 ’New York State of Mind’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 차트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제작 전에 프로듀서인 궈시오(Guercio)를 해고하고 아내를 매니저로 기용하는 등, 잡음이 많았던 점이 실패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1977년의 < The Stranger >는 오늘날의 빌리 조엘이 있게 한 명반이었다. 1970년대 후반에 접어들며 미국에서 각광받았던 시티 뮤직을 대폭 수용한 작품은 차트 2위까지 상승하며 단숨에 플래티넘을 따냈고 ’Just the way you are’(3위), ’Monin’ out’(17위), ’Only the good die young’(24위), ’She’s always a woman’(17위)등, 네 곡의 히트작을 쏟아냈다. ’Just the way you are’는 그래미에서 ’Record of the Year’와 ’Song of the Year’, 두 개 부문을 수상하며 비평적 찬사를 안겼다. 6집 < 52nd Street >(1978)도 맹렬한 기세를 이어나갔다. 아니, 오히려 능가했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8주간 1위를 고수하며 한달 만에 200만장을 세일즈했고 ’My life’(3위), ’Big shot’(14위) ’Honesty’(24위)등이 수시로 울려 퍼졌다. 마침내 그는 그토록 소망했던 그래미 ’올해의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펑크와 뉴 웨이브의 세상 속으로 과감히 돌진한 < Glass Houses >(1980)에서도 한번 불붙은 열기는 식지 않았다. 급격한 음악적 변화에도 기존 팬들은 쌍수 들어 그를 환영했다. 앨범 차트 6주간 1위, 4곡의 히트송 배출, 그래미 ’Best Rock Vocal Performance, Male’ 부문 수상이 마치 자연스런 수순처럼 보일 정도였다. 1년 뒤, 초기곡들의 라이브 콜렉션인 < Songs in the Attic >(1981)을 발표한 뒤, 빌리 조엘은 이혼과 오토바이 사고를 겪으며 위기의 남자가 되었다. 베이비 붐 세대의 삶에 대해 컨셉트 앨범으로 꾸민 야심작 < The Nylon Curtain >(1982)마저 낮은 판매량에 허덕이며 전성 시대가 지난 것 아니냐는 추측성 발언을 낳게 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불굴의 의지로 다시 일어섰다. 과거 사운드로 회귀한 < An Innocent Man >(1983)을 내놓으며 슈퍼스타로서의 면모를 되찾았다. 차트 1위에 오른 ’Tell her about it’을 비롯해, ’Uptown girl’, ’An innocent man’, ’Keeping the faith’ 등이 바톤 터치하며 차트 상위권에 안착했다. MTV 시대를 맞이하며 비디오 제작에도 심혈을 기울였던 그는 이를 계기로 만난 슈퍼모델 크리스티 브링클리와 결혼에 골인했다. 1985년에 중간 결산 차원에서 피아노 맨은 히트곡 모음집 < Greatest Hits, VolumeⅠand VolumeⅡ >을 내놓으며 미국에서만 무려 2천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앨범 판매량 역대 5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자 미국인들이 그의 음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 The Bridge >를 발표하여 성공을 이어나간 빌리 조엘은 1987년, 소련에서 공연을 가졌는데 이 때의 실황을 담은 더블 앨범 < Kohuept(Live In Leningrad) >(1987)을 선보이기도 했다. 신장 결석과 법정 소송의 혼란 속에서 등장한 < Storm Front >(1989)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을 선물한 작품이었다. 앨범 차트 1위에 오른 것은 제쳐두고서라도, 싱글 ’We didn’t start the fire’가 세계 역사를 훌륭히 그려냈다는 이유로 미국 전역의 고교에 악보가 배포되는 등 화제를 낳았기 때문이다. 베스트 앨범에서 숫자로 드러난 미국인들의 애정이 공적으로 가시화된 순간이었다. 퀸시 존스, 자니 캐쉬, 아레사 프랭클린과 함께 1990년부터 1년 간 가졌던 월드 투어로 ’Grammy Living Legend’상을 수상한 빌리 조엘은 1993년 나온 < River of Dreams >(1위)로 순항을 거듭했다. 1996년 크리스티 브링클리와 이혼한 후, 이 위대한 싱어 송라이터는 20세기 마지막 날 타임스 스퀘어(Times Square)에서 가졌던 공연 결과물 < 2000 Years: The Millennium Concert >를 발매하며 새 출발을 암시했다. 결국 그는 또 다른 히트송 콜렉션인 < The Essential Billy Joel >(2001)로 팝 아티스트로서의 화려했던 시절을 마감했다. 그리고 같은 해, 빌리 조엘은 클래식 크로스오버 작품인 < Fantasies & Delusions >을 소개하며 클래식 작곡가로서의 야심한 행보에 첫 걸음을 내디뎠다.
R&B, 소울 가수 R&B, 소울 가수
< 롤링 스톤 >지은 84년 이 그룹을 ‘올해의 밴드’로 선정하고 대서특필했다. 미국의 대중주간지 < US >는 85년 “아일랜드에서 온 성난 십자군들이 미국을 산산조각내고 있다”며 그들의 미순회공연을 충격적으로 보도했다. < 타임 >지는 87년 관계자의 말을 인용. 이 그룹이 비틀즈 다음에 랭크되어야 한다고 썼다. 언론의 지적처럼 이 그룹은 실로 ‘80년대 최고의 록 밴드’였다. 음악전문가들 사이에서뿐 아니라 ... < 롤링 스톤 >지은 84년 이 그룹을 ‘올해의 밴드’로 선정하고 대서특필했다. 미국의 대중주간지 < US >는 85년 “아일랜드에서 온 성난 십자군들이 미국을 산산조각내고 있다”며 그들의 미순회공연을 충격적으로 보도했다. < 타임 >지는 87년 관계자의 말을 인용. 이 그룹이 비틀즈 다음에 랭크되어야 한다고 썼다. 언론의 지적처럼 이 그룹은 실로 ‘80년대 최고의 록 밴드’였다. 음악전문가들 사이에서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일반 팬들에게 당대 록 그룹 인기서열 1위는 언제나 이들 차지였다. 심지어 “지진이 일어날 만큼 수많은 관객이 운집해 열광하는 그들의 공연을 누가 능가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교황만이 가능할 것이다.”라는 얘기도 나왔다.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4인조 그룹 유투(U2). 그룹명을 고공첩보기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이들은 이런 인기 외에 가수의 울타리를 뛰어넘은 영향력까지 누리고 있다. 아일랜드의 수상 가렛 피처랄드가 이 그룹 리더에게 정부의 실업 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한 것이 그 일례에 속한다. 리드 싱어 보노(Bono)의 원시적 야수성이 번득이는 보컬, 에지(Edge)의 자극적인 기타 연주(그룹 후의 피트 타운센트는 “그의 연주를 들었을 때 기타 연주를 포기하고 싶었다”고 실토한 바 있다). 아담 클레이튼(Adam Clayton)의 베이스, 래리 뮬렌 주니어(Larry Mullen Jr.)의 드럼이 융합되어 토해내는 ‘스트레이트 록큰롤’은 가히 일품이다. 발라드나 댄스곡 일색인 이 시대에 유투의 광포한 록 사운드처럼 팬들 가슴에 불을 당긴 밴드는 없었다. 록 뮤직의 본질인 폭발성과 열정 그리고 현장성의 부재에 갈증난 팬들에게 이들은 ‘가뭄 속의 단비’였다. 그렇다고 유투가 이같은 록큰롤에 대한 투신만으로 명성을 구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평가받게 된 보다 정확한 이유는 사회현실을 주시하고 세상의 부조리를 파헤쳐 고발하는 ‘매서운 감시 기능’에 자리한다. 워싱턴 대학의 부총장이자 록 역사가인 데이비드 P. 차트메리 씨는 91년 펴낸 『록킹 인 타임』이란 저서에서 “유투는 록 음악이 60년대에 보여준 ‘비판정신’이 복원되고 있음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실체”라면서 그들의 음악을 저항적이라고 기록했다. 유투 본인들도 자신들이 거둔 성공의 주된 이유는 “좋은 노래, 즉 현실적(real)인 노래를 쓴다는 데 있다”고 인정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리드 싱어이면서 모든 가사를 쓰고 있는 그룹의 실세 보노(본명 폴 휴즌)는 더 구체적으로 “80년대 사람들은 칵테일 감성을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엘리베이터에서 들려나오는 소위 ‘무드음악’을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우리가 반대하는 것들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자세로 음악을 한다.”고 그룹 이념을 밝혔다. 바로 이런 태도가 그들에게 인기 외에 존경을 더해준 것이다. 지난 76년에 결성된 유투는 78년 기네스 맥주회사가 주최한 가요제에서 우승하면서 팝 무대에 공식 진출했다. 상당기간 충전을 거듭한 뒤 80년 첫 앨범 < 소년(Boy) >과 81년 < 10월(October) >을 연이어 출반했으나 비평가들의 찬사만 들었을 뿐 판매는 부진했다. 여기까지 그들은 평범한(물론 나중의 음반과 비교해서) 소재를 다루었으나 이후에는 음악에 정치적 메시지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입장 정리를 끝내고 나자 유투는 < 전쟁(War) >, < 잊혀지지 않을 불꽃(The Unforgettable fire) >, < 여호수와 나무(Joshua Tree) >, < 분노의 소리(Rattle and Hum) > 등 걸작을 터뜨리면서 한 번도 현실과 등진, 공허한 상업성의 메아리를 울리지 않았다. 전환점은 82년 10월 북아일랜드의 항구도시 벨파스트에서 가진 공연이었다. 여기서 유투는 역사적인 아일랜드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일요일, 피에 젖은 일요일(Sunday, Bloody Sunday)’을 관객들에게 선보여 일대 주목을 받았다. 왜곡된 현실의 제문제들을 취급하기로 마음먹은 그들이었지만 그 가운데 가장 먼저 유투의 눈에 걸려든 것은 자신들의 조국 아일랜드의 분단과 전쟁이었다. ‘아이들 발 아래 깔린 깨진 병들, 막다른 골목길에 널린 시체들, 투쟁이 막 시작됐어. 많은 사람이 죽어가지만 승리한 자는 누구인가. 참호가 패이는 것은 우리들 가슴 속이지. 어머니의 자식 형제들 누이들이 찢어지고 ...’ 아일랜드 상황을 그린 존 레논의 72년도 노래와 제목이 같은 이 곡에서 유투는 종교의 차이 때문에 나라가 남북으로 갈려 끝없이 다투는 것을 두고 언제까지 우리가 레논의 노래를 불러야 하겠느냐며 ‘오늘밤에라도 우린 하나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유투의 소원은 고국 아일랜드의 통일이다. 보노는 “하나의 섬인 나라를 남북으로 갈라놓은 경계선은 완전한 허위”라고 주장한다. 유투의 눈에 세상은 투쟁과 분열로 혼탁하며 반민주적 상황이 도처에 산재하고 있는 ‘문제의 세상’이었다. 이 노래가 수록된 83년의 음반 < 전쟁 >이 시사하듯 세계적 현실은 여러 가지 레벨의 전쟁 상황이나 다름없다. 당연히 국제간의 정치 분쟁, 핵 지대화, 민권 침해 등 주요 문제들이 이 고공첩보기의 감시를 받는다. ‘서에서 동까지 당신들은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식이야. 야밤의 도둑처럼 당신들은 촛불로 세상을 보고 있는 거야. .. 매일 매일이 혁명인 거야. 소련, 동독, 런던, 뉴욕, 북경! 배후를 조종하는 앞잡이들이야. 안녕, 안녕, 안녕하는 데는 1초밖에 걸리지 않아. 버튼을 누르고 플러그를 당겨. 안녕이야.’ ‘초(Seconds)’ 역시 < 전쟁 >에 실려 있는 이 곡은 핵무기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다. ‘부서진 등은 천장에 걸리고 깨어진 코는 바닥에 닿아 있지. 난 문 뒤에서 웅얼거리는 침묵에 비명을 지르지. 간수는 말하는 거야. 비상구는 열려 있으니 나가려면 은과 금이 있어야 한다고. .. 이 사슬은 더 이상 날 묶지 못해. 발에 있는 족쇄도 마찬가지야. 죄수는 밖으로, 안에는 자유를! 그들을 풀어주라.’ ‘은과 금(Silver and Gold)’ 요하네스버그 남부에 사는 어느 흑인을 소재로 했다는 이 곡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서슬퍼런 흑인 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신랄할 비판이 담겨 있다. 이 노래는 리틀 스티븐의 제창으로 아파르트헤이트의 반대를 호소한 음반 < 선 시티(Sun City) >에 보태기 위해 만든 곡이다. 유투는 특히 인권 탄압에 예민하다. 세계 도처에 행해지고 있는 인권 침해의 현실을 문책하는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에 깊이 관여하면서 85년, 86년 이를 위한 공연에 잇따라 참여했다. 유투의 팬들은 < 선전 >이라는 잡지를 발행, 독자들로 하여금 국제사면위원회를 대신해 인권을 탄압하는 각국의 정부에 편지를 띄우도록 하고 있기도 하다. 유투의 노래 방향은 한마디로 ‘민주주의’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그 어느 정치 체제나 경제 이데올로기의 입장에는 서있지 않다. 이들의 관심은 어떤 이념의 체제이든 그 국가가 현실정치에서 저지르고 있는 반민주적 요소와 왜곡을 규탄하고 전면적 반성을 촉구하는 데 집중된다. 따라서 60년대와 70년대 록 스타에게서 가끔 나타나던 반체제, 무정부주의, 반종교의 기색은 발견되지 않고 이념과 체제는 절대 건드리지 않는 가운데서 운동성이 출발한다. 이들의 음악이 우리의 귀에 다소 시끄럽게 들리는 것은 그 속에 70년대 중반 영국을 휘몰아쳤던 펑크 사운드가 살아 있는 까닭이다. 유투는 펑크의 소리만 되살린 데 그치지 않고 펑크의 ‘저항 정신’을 함께 복원시켜 저항을 자신들의 슬로건으로 내세웠지만 반체제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인(다시 말해 ‘부정적인’) 옛 펑크와는 저항의 본질을 완전히 차별화했다. 기타주자 에지는 말한다. “펑크는 죽었다. 그것이 과연 존재하기나 했던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래서 현재 밀어닥치는 새로운 팝의 소용돌이 속에 펑크는 버팀목으로서 음반 < 전쟁 >이 기획되었다. 우리는 클래시의 초기 주장과 리차드 헬, 그리고 섹스 피스톨즈를 좋아해왔다. 그러나 우린 분노와 사랑을 동시에 원한다. 우린 프로테스트(저항) 음반을 원하지만 분명히 ‘긍정적인’ 프로테스트 음반을 원한다.” 반종교 또는 반그리스도 주장 또한 이들에게는 ‘큰일날’ 소리다. 이들은 파문을 일으켰던 존 레논의 “우린 예수보다 위대하다”는 발언을 끔찍한 것으로 여긴다. 레논의 음악과 저항 자세는 존경할 만하지만 그가 무종교주의자라는 점은 배격한다. 영국과 아일랜드 출신, 특히 아일랜드산 가수 중에는 반미감정의 소유자가 적지 않은 편인데, 유투의 경우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탄력적’인 것은 이와 같은 ‘긍정적 비판’ 혹은 ‘비판적 지지’의 자세에서 연유한다. 이들은 < 여호수와 나무 >에 수록된 ‘푸른 하늘에 총탄을(Bullet the Blue Sky)’을 통해 80년대 중미 국가에 행사된 미국의 압력적 개입에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악마의 씨를 뿌리고 화염을 일으킨다. 그들이 십자가를 불태우는 것을, 높이 높이 솟구치는 불꽃을 보라. .. 가시덤불의 장미처럼, 로열 플래시의 모든 색깔처럼 그리고 그는 달러 지폐를 낙하시키고 있다. 난 전투기가 아기가 잠든 진흙 오두막집을 가로지르고 조용한 도시의 거리를 지나는 것을 본다. .. 벽을 통해 우린 도시의 신음소리를 듣는다. 미국이 밖에 있다. 미국이 밖에 있다.’ 그러나 결코 원색적 반미의 기조는 없다. 유투에게 미국은 ‘신의 나라’이며 ‘마음의 땅’이기도 하다. 보노는 87년 < LA 타임즈 >와의 인터뷰에서 이 부분에 대한 입장을 분명하게 개진한 바 있다. “미국이 특히 중미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악몽인 것은 틀림없다. 미국은 농부와 인민의 황폐화를 자행하고 있다. 그러나 난 미국 시민에 대한 증오에서가 아니라 진정한 존경심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난 미국이 ‘악몽이면서 꿈’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박혀 있다." 상당수는 이러한 유투의 ‘체제 인정, 현실 지적’의 노선(부연하자면 혁명을 통한 체제변화의 방식이 아닌 개혁에 의한 체제의 수정, 발전을 모색하는 방식)을 현실적으로 가장 좋은 ‘방법론’이라고 판단하고 이들에게 지지를 보내주는 것 같다. 87년에 발표된 < 여호수와 나무 >는 영국에서 1백50만 장, 미국에서 4백만 장, 전세계적으로 1천5백만 장이 팔려나가 팬들의 성원이 압도적임을 여실히 증명했다. 이들이 일반 소비자뿐 아니라 미국의 제도권으로부터도 환영받는 것(언론의 그 호의적인 반응을 보라)은 이같은 노선에 힘입은 바 크다. 따라서 일부로부터는 - 당연히 급진적 좌파가 되겠지만 - 이들이 일정한 한계에 머물러, 앞서 지적한 영국의 클래시나 섹스 피스톨즈 같은 펑크 그룹이 보여준 진보성에는 훨씬 못미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유투는 60년대의 혁명정신을 계승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러나 그들의 혁명은 ‘체제의 혁명’이 아니라 ‘사랑의 혁명’이다. 그들이 87년 < 뮤지션 >지에 밝힌 내용을 통해 유투의 혁명관을 분석할 수 있다. “황량하기만 한 시대인 현 80년대에서 우린 60년대를 돌아본다. 그 시대는 정말 ‘재능’과 ‘드높은 이상’ 그리고 ‘무언가를 변화시키려는 의지와 욕구’의 저장탱크였다. 나는 그때의 아티스트들처럼 사랑의 혁명에 관심을 갖는다. 물론 그들의 일부는 사회혁명을 외쳤지만 우리는 사랑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한다. 혁명을 하고 싶다면 자신의 가정에서부터 주변사람들과의 인간 관계에서부터 혁명을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들의 모든 노래는 결국 ‘사랑을 통한 화합’으로 귀결된다. 기독교적 박애의 분위기다. 이런 탓에 급진성의 함량 미달이라는 혹평 말고도 너무 잘난 척만 일삼고 성직자연한다는 비아냥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투는 60년대 히피처럼 사랑만이 모든 질곡으로부터 해방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구세주임을 확신하고 있다. ‘한 사람이 사랑의 이름으로 왔다네. .. 4월 4일 이른 아침 멤피스의 하늘에 총성이 울렸지. 마침내 자유다! 그들이 당신의 목숨은 앗아갔지. 그러나 당신의 자부심은 빼앗지 못했지. 사랑이라는 이름에 대한 자부심은. 사랑의 이름 이상의 그 무엇이 있으랴.’ ‘프라이드(Pride in the Name of Love)’ 여기에 등장하는 한 사람은 비폭력 민권운동 지도자였던 마르틴 루터 킹 목사. 유투는 이 곡을 그의 영전에 바쳤다. ‘나는 나의 과거를 정복했지. 마침내 미래가 여기 있지. 난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다네. 내 바로 앞에 있는 파멸들은 곧 나를 놓치게 될 것이야. 사랑은 나를 구조한다네.’ ‘사랑이 나를 구조하네(Love Rescue Me)’ 유투는 래리 뮬렌이 열네 살 때 마운트템플 고교 게시판에 공고를 내 조직한 그룹. 보노나 뮬렌 둘다 모친을 병 또는 사고로 잃어 그 동병상련을 깊은 연대감으로 승화시킨 그룹. 처음에는 악기 하나 소리 하나 제대로 못내다가 절차탁마를 거듭해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추게 된 ‘노력지향’의 그룹(보노는 노래에 별다른 소질이 보이지 않아 매니저가 되라는 권유를 받기도 했으나 지금은 천부적 노래꾼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가사는 보노가 쓰지만 작곡은 모든 멤버가 임해 스스로를 ‘네발 달린 테이블’이라고 하는 공동체적 민주주의 그룹. 이들에게 단단한 팀웍이 구축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 결과인지도 모른다. 네 명의 유투 멤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유투의 관계자들 대부분이 그들과 같은 공동체 의식의 소유자들이다. 그들의 매니저인 폴 맥기니스와 관련한 소식 하나. 맥기니스는 평소 솔직한 발언을 잘 하기로 이름이 나있는데, 90년 더블린에서 가진 한 세미나에서 슈퍼스타 폴 매카트니와 피트 타운센트를 크게 꾸짖었다. 이유는 그들이 돈많은 갑부인데도 불구하고 염치없이 떼돈을 챙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폴 매카트니가 순회 공연을 하면서 비자카드의 후원을 잡아 수백만 달러를 챙기고 티켓을 살 때 그 카드만 사용하도록 한 것을 보면 그는 정말 탐욕스러운 사람이다. 공연할 때 후원이 없으면 남지 않는다고 그가 주장한다는 것은 정말 ‘개똥’ 같은 얘기다. 그처럼 돈많은 사람이 말이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그룹 ‘후’가 맥주회사를 공연 후원업체로 잡았을 때 난 무지 당황했다. 피트 타운센트는 회복기의 알콜중독자 아닌가. 이러한 이율배반을 그가 몰랐던 게 아니라 무시했다고 생각한다.” 맥기니스는 심지어 그들의 공연 후원잡기 행태를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먹는다는 뜻에서 ‘파우스트적 거래’라고 맹공했다. 매니저부터가 실로 유투적이다! 유투는 88년 < 분노의 소리 >이후 4년간 공백을 갖다가 92년 < 액퉁 베이비(Achtung Baby) >라는 제목의 새 앨범을 내놓았다. 슈퍼스타답게 역시 이 음반은 크게 히트했고 기독교적 사랑을 전체 수록곡을 통해 제창하고 있다. 앞으로 또 음반을 내도 유투는 계속해서 기독교적 사랑을 노래하고 사회현실을 지적할 것이다. 이 작업은 87년의 빅 히트곡 ‘난 아직 찾고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지(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의 가사처럼 아마도 끝없는 여로일 터이다. ‘난 가장 높은 산을 올라갔지. 난 들판을 가로질러 달렸지. 난 뛰었고 기었지. 이 도시의 벽을 기어오르기도 했지. 오로지 그대와 함께 하기 위하여. 그러나 난 아직 찾고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지.’
영국 튜더 왕조 시기의 작곡가. 영국 튜더 왕조 시기의 작곡가.
작곡 : Giovanni Pierluigi Da Palestrina (조반니 피에르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
작곡 : Thomas Tallis (토마스 탈리스 )
작곡 : Orlando Di Lasso (오를란도 디 라소 (롤랑드 드 라수스),Orlando de Lassus / Roland De Lassus / Orlandus Lassus)
르네상스 시대 작곡가 (1532?~1594) 르네상스 시대 작곡가 (1532?~1594)
작곡 : Joseph Rheinberger (요제프 라인베르거,Josef Gabriel Rheinberger)
작곡 : Francis Poulenc (프란시스 풀랑크)
프랑스의 작곡가, 피아노 연주자. 프랑스 6인조(Groupe des Six 또는 Les Six) 가운데 한 명. 프랑스의 작곡가, 피아노 연주자.
프랑스 6인조(Groupe des Six 또는 Les Six) 가운데 한 명.
작곡 : Max Reger (막스 레거 ,Johann Baptist Joseph Maximilian Reger)
작곡 : Salamone Rossi (살라모네 로시 / 살로모네 로시,Salomone Rossi)
1555-1617. 후기 르네상스 시대 작곡가 1555-1617. 후기 르네상스 시대 작곡가
작곡 : Gabriel Faure (가브리엘 포레)
가브리엘 위르뱅 포레는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 피아니스트, 교사였다. 파리의 니데르마이어 음악학교에서 공부하고, 카미유 생상스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으며, 교회의 오르간 연주도 하였다. 파리 음악원의 원장을 역임하였고, 제자로는 모리스 라벨 등 뛰어난 음악가가 많이 있다. 가브리엘 위르뱅 포레는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 피아니스트, 교사였다. 파리의 니데르마이어 음악학교에서 공부하고, 카미유 생상스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으며, 교회의 오르간 연주도 하였다. 파리 음악원의 원장을 역임하였고, 제자로는 모리스 라벨 등 뛰어난 음악가가 많이 있다.
작곡 : Toru Takemitsu (토루 타케미츠)
파리 출생. 7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뛰어난 음악적 재능은 흔히 모차르트의 유년시절과 비교되었다. 1846년 10세 때 데뷔하고, 12세 때 파리음악원에 입학하여 오르간과 작곡을 배웠다. 1853~1877년 마들렌교회의 오르간 연주자로 근무하면서는, 오르간 ·피아노 연주의 명수, 즉흥연주의 대가로 이름을 떨쳤다. 또 1861∼1865년에는 에콜 니데르메이에르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교수하였는데, A.메사제, G... 파리 출생. 7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뛰어난 음악적 재능은 흔히 모차르트의 유년시절과 비교되었다. 1846년 10세 때 데뷔하고, 12세 때 파리음악원에 입학하여 오르간과 작곡을 배웠다. 1853~1877년 마들렌교회의 오르간 연주자로 근무하면서는, 오르간 ·피아노 연주의 명수, 즉흥연주의 대가로 이름을 떨쳤다. 또 1861∼1865년에는 에콜 니데르메이에르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교수하였는데, A.메사제, G.포레 등은 이 시기의 제자들이다.

1871년 유지들과 파리에서 '국민음악협회'를 결성하고 유력한 멤버로서 프랑스음악계에 교향악운동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작곡가로서는 1852년과 1864년에 로마대상에 낙선하여 그 이후 1880년경까지는 별로 인정받지 못하였으나, 국민음악협회, C.라무뢰 등의 오케스트라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명성이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작품에는 '삼손과 델릴라 Samson et Dalila'(1877)를 비롯한 13편의 오페라, 교향곡 4, 피아노협주곡 3, 그 밖에 피아노곡을 비롯한 많은 기악곡이 있다. 작품은 모두 고전적인 단정함, 세련된 관현악법에 의한 화려한 표현이 특징이다.

자신의 말에 따르면 '사과나무가 사과를 맺듯이 운명처럼 작품을 썼다.' 고 하는 카미유 생상스('생상'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많은데, 작곡가의 후손이 밝힌 바에 따르면 '생상스'로 부르는 게 맞다고 한다). 그는 피아니스트로서 즉흥 연주의 대가였고 리스트로부터는 '세계 최고의 오르간 주자'라는 찬사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작가이자 뛰어난 화가이기도 했으며 자연과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베를리오즈는 약간 비꼬는 투로 '생상스는 모든 분야에 뛰어나지만 미경험(未經驗)에 대해서만은 부족하다.'라고 말하기도 했지만(그러나 '오늘날 가장 위대한 음악가 중 하나'라고 극찬한 적도 있다), 그의 왕성한 탐구심과 근면함(그는 죽기 바로 전날까지도 작곡을 했다)은 여러 장르에 걸쳐 많은 걸작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도 사실이다.
작곡 : Ludwig Senfl (루드비히 젠플)
작곡 : Josquin Desprez (조스캥 데프레 ,Josquin des Pres, Josquin des Prez, Jossequin Lebloitte)
1450경 ~ 1521.08.27 프랑스-플랑드르 작곡가. 플랑드르 악파의 중심 인물로, 초기 르네상스 시절 폴리포니(다성음악) 성악의 체계를 잡은 첫 대가로 알려졌다. 1450경 ~ 1521.08.27
프랑스-플랑드르 작곡가.
플랑드르 악파의 중심 인물로, 초기 르네상스 시절 폴리포니(다성음악) 성악의 체계를 잡은 첫 대가로 알려졌다.
킹즈칼리지 출신으로 구성된 6인조 남성 아카펠라 중창단. 멤버 David Hurley (countertenor) Timothy Wayne-Wright (countertenor) Julian Gregory (tenor) Christopher Bruerton (baritone) Christopher Gabbitas (baritone) Jonathan Howard (bass) 킹즈칼리지 출신으로 구성된 6인조 남성 아카펠라 중창단.

멤버
David Hurley (countertenor)
Timothy Wayne-Wright (countertenor)
Julian Gregory (tenor)
Christopher Bruerton (baritone)
Christopher Gabbitas (baritone)
Jonathan Howard (bass)
편곡 : Richard Rodney Bennett (리차드 로드니 베넷)
영국의 피아노 연주자, 작곡가 영국의 피아노 연주자,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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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ng's Sin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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