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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이 모토지로, 코바야시 타끼지, 나쓰메 소세키, 나오키 산주고, 나카야 우키치로 저 외 22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봄날의책 | 2017년 12월 04일 리뷰 총점9.3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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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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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7년 12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344쪽 | 482g | 140*220*30mm
ISBN13 9791186372166
ISBN10 1186372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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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27명)

저 : 가지이 모토지로 (Motojiro Kajii,かじい もとじろう,梶井 基次郞)
1901년 2월 17일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났다. 기타노(北野)중학교를 거쳐 1919년에 제3고등학교(第三高等?校) 이과에 진학하지만 점차 문학과 음악에 흥미가 있었다. 1920년 9월에는 폐첨카타르(폐결핵) 진단을 받고 잠시 학교를 휴학했다가 11월에 다시 복학하였다. 문학에 대한 관심은 날로 깊어져 1922년부터 습작을 시작하는 한편, 방탕한 생활로 5년 만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24년 도쿄제국대학 영... 1901년 2월 17일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났다. 기타노(北野)중학교를 거쳐 1919년에 제3고등학교(第三高等?校) 이과에 진학하지만 점차 문학과 음악에 흥미가 있었다. 1920년 9월에는 폐첨카타르(폐결핵) 진단을 받고 잠시 학교를 휴학했다가 11월에 다시 복학하였다. 문학에 대한 관심은 날로 깊어져 1922년부터 습작을 시작하는 한편, 방탕한 생활로 5년 만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24년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하고, 나카타니 다카오(仲谷孝雄) 등과 동인지 [아오조라(靑空)]를 창간했다. 같은 해에 객혈(喀血)과 이복 여동생의 죽음을 겪으며 심적으로 예민하고 불안정해졌다.

1925년 1월, [아오조라] 창간호에 「레몬」을 발표하고, 병이 깊어가는 와중에도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1926년 말부터 요양을 위해 이즈(伊豆)의 유가시마(湯ヶ島)온천에 머물며 1년여를 보냈다. 이를 계기로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를 비롯한 당시의 문인들과 교류하였다. 1928년 27세에 도쿄로 상경했으나 병세가 악화되어 오사카로 돌아갔다. 병상에서도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1931년 5월 작품집 『레몬』이 간행되었으나 이듬해인 1932년 3 월 24일, 서른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저 : 코바야시 타끼지 (Takiji Kobayashi,こばやし たきじ,小林 多喜二)
20세기 초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의 대표적 작가. 아끼따 현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에 홋까이도오로 이주, 백부의 빵 공장 일을 도우며 통학했다. 졸업 후 홋까이도오 척식은행에 다니면서 글쓰기를 시작했고 1920년대 중반부터 하야마 요시끼, 막심 고리끼 등을 읽으며 프롤레타리아 작가로서 자각을 지니게 된다. 1928년, 사회주의 이론가인 쿠라하라 코레히또를 만나 그의 예술론에 크게 영향받았으며, ... 20세기 초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의 대표적 작가. 아끼따 현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에 홋까이도오로 이주, 백부의 빵 공장 일을 도우며 통학했다. 졸업 후 홋까이도오 척식은행에 다니면서 글쓰기를 시작했고 1920년대 중반부터 하야마 요시끼, 막심 고리끼 등을 읽으며 프롤레타리아 작가로서 자각을 지니게 된다. 1928년, 사회주의 이론가인 쿠라하라 코레히또를 만나 그의 예술론에 크게 영향받았으며, 그해 『1928년 3월 15일』을 내놓으며 세상에 알려진다. 1929년에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게 가공선』을 발표하는데, 먼 바다를 떠도는 거대한 배를 무대로 자본주의의 착취 구조를 드러내고 노동자의 자각과 투쟁을 역동적으로 그려내어 그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읽힌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수준을 사상의 영역으로까지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일본 근대문학에도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밖에 『부재지주』 『공장세포』 『당 생활자』 등의 소설과 다수의 산문을 집필했다. 일본공산당에 대한 혹독한 탄압이 계속되면서 지하조직으로 옮겨가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집필과 헌신적 활동을 계속하다 1933년 2월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 끝에 사망한다. 경찰 당국은 사인을 정확히 규명하기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2차대전 종전 후에도 그의 작품들을 금서 취급하는 등 사후에도 철저하게 박해받았다. 최근 경제위기로 인해 노동 현실이 척박해지면서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게 가공선』이 다시 인기를 끌며 새로이 주목받았다.
저 : 나쓰메 소세키 (Natsume Soseki,なつめ そうせき,夏目 漱石,나츠메 긴노스케 夏目 金之助)
소설가이자 평론가, 영문학자. 일본 최초의 근대 문학 작가로, 일본에서 소위 ‘국민 작가’로 불리며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일본의 근대문학을 대표하며 일본의 셰익스피어라 불릴 정도로 확고한 문학적 위치에 있는 일본의 국민작가다. 본명은 나쓰메 긴노스케(夏目金之助)로 일본 도쿄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생후 바로 양자로 보내졌다가 9세에 본가로 다시 돌아왔다. 청년 시절에는 친부모와 양부모 사이... 소설가이자 평론가, 영문학자. 일본 최초의 근대 문학 작가로, 일본에서 소위 ‘국민 작가’로 불리며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일본의 근대문학을 대표하며 일본의 셰익스피어라 불릴 정도로 확고한 문학적 위치에 있는 일본의 국민작가다. 본명은 나쓰메 긴노스케(夏目金之助)로 일본 도쿄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생후 바로 양자로 보내졌다가 9세에 본가로 다시 돌아왔다. 청년 시절에는 친부모와 양부모 사이의 불화가 이어졌는데 그때의 경험은 자전적 소설 『한눈팔기』에 등장하기도 한다. 도쿄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제1고등학교 시절에 가인(歌人)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를 알게 되어 문학적, 인간적으로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도쿄고등사범학교·제5고등학교 등의 교수를 역임하였다. 1893년 도쿄제국대학을 영문과를 졸업하고 1900년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된다. 영국 유학 중 신경 쇠약에 빠진다.

타지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예민하고 우울한 자아를 남겼으며, 귀국 후 도쿄제국대학 강사로 일했지만 다시 정신 질환을 앓는다. 그는 치유의 한 방편으로 1905년, 다카하마 교시의 권유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집필했다. 이 작품은 1905년 『호토토기스(두견)』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1906)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어 큰 호평을 받았다. 불혹에 가까운 나이로 소설 창작을 시작했지만, 소설가이기 전에 그는 이미 뛰어난 하이쿠(俳句) 시인이었고 영문학자였다.
교직 생활과 소설 창작을 동시에 병행해야 하는 데에 고충을 느끼던 소세키는 아사히(朝日)신문사의 전속 작가 초빙을 받아들여 교직을 떠나 본격적인 창작 활동에 전념한다. 1907년에 교직을 사임하였으며 아사히[朝日]신문사에 입사하여 『우미인초(虞美人草)』를 연재하고 『도련님』(1906), 『풀베개[草枕]』(1906) 등을 발표하였다. 그 후 대부분의 저작은 아사히 신문을 통해 발표되었다. 그는 초기의 경쾌하고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들에서 출발하여 점차 인간의 심층 심리를 예리하게 관찰하고 그 움직임을 묘사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였다.

20세기 초 근대적 주체와 삶의 불안한 내면 풍경을 깊은 통찰력으로 꿰뚫어 보여주는 그의 작품들은 일본적 감수성과 윤리관으로 서구 근대의 기계문명과 자본주의를 비평적으로 바라보며 인간세계를 조명하고자 했다. 경쾌한 리듬과 유머를 바탕으로 권선징악과 같은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가치에 기반을 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며 템포가 빠르고 리듬감이 있는 문체로 자연스레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소설 외에도 수필, 하이쿠, 한시 등 여러 장르에 걸쳐 다양한 작품을 남겼으며, 그림에도 재능이 있었다.
그의 작풍은 당시 전성기에 있던 자연주의에 대하여 고답적인 입장이었으며, 그후 『산시로[三四郞]』(1908), 『그후』(1906), 『문(門)』(1910)의 3부작에서는 심리적 작풍을 강화하였고, 다시 『피안 지나기까지』(1912), 『마음』(1914) 등에서는 근대인이 지닌 자아·이기주의를 예리하게 파헤쳤다. 반복적인 위궤양, 당뇨 등을 앓았던 그는 1916년 12월 병이 악화되어 『명암』 집필 중 49세의 나이로 타계하였으며, 1984년, 영국에서 그가 살았던 집 맞은편에는 런던 소세키 기념관이 설립되었다.

대표작으로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坊っちゃん)』, 『풀 베개(草枕)』, 『산시로(三四?)』, 『마음(こころ)』, 『노방초(道草)』 『명암』(미완) 등이 있다.
저 : 나오키 산주고 (Sanjuugo Naoki,なおき さんじゅうご,直木 三十五)
일본의 소설가,각본가,영화감독. 본명은 우에무라 소이치이다. 순문학이 대세이던 20세기 초 일본 문단에 대중문학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도쿄에서 잡지 편집을 하다 간토 대지진을 계기로 고향인 오사카에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작가들에게 대중문학을 청탁하여 본인도 직접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간결한 문장, 철저한 고즘, 이야기의 개인성, 독자들을 움직일 수 있는 감성과 풍부한 상상력 등, 그가 주장... 일본의 소설가,각본가,영화감독. 본명은 우에무라 소이치이다. 순문학이 대세이던 20세기 초 일본 문단에 대중문학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도쿄에서 잡지 편집을 하다 간토 대지진을 계기로 고향인 오사카에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작가들에게 대중문학을 청탁하여 본인도 직접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간결한 문장, 철저한 고즘, 이야기의 개인성, 독자들을 움직일 수 있는 감성과 풍부한 상상력 등, 그가 주장한 대중문학 작가의 조건과 마음가짐은 여러 작가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사실상 일본 대중 문학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다.
나오키 자신도 「유비근원대살기」,「남국태평기」등을 비롯해 여러 소설을 썼으며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나오키 산주고라는 필명은 직접 지은 것으로, 본명 중 우에의 한자를 둘로 나눠 나오키라는 성을 만들었다. 산주고는 35라는 뜻으로, 서른한 살 때 산주이치(31)라는 필명을 만들고 나이를 먹을 때바다 그에 맞춰 필명을 바꾸었는데, 서른다섯 살이 되던 해 산주고로 바꾼 후 죽을 때까지 그 이름을 사용했다.
일본 최고의 대중 문학상이라 불리는 나오키 상은 그의 이름을 딴 것으로, 문예춘추사 사장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가쿠치간이 '대중 문학의 역사를 바꾼 나오키 산주고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1935년 창설했다. 오사카에 그를 기념하는 나오키 산주고 기념관이 있다.
저 : 나카야 우키치로 (Ukichiro Nakaya,なかや うきちろう,中谷 宇吉郞)
1930년 홋카이도대학에 부임해 1962년 숨을 거둘 때까지 눈과 얼음에 관한 연구에 몰두한 실험물리학자로 1936년 세계 최초로 저온 실험실에서 인공 눈을 만들었다. 특히 홋카이도 북부의 지역 특성을 살려 당대까지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눈, 얼음, 안개, 번개, 서릿발 등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실험을 통해 그 생성 조건을 밝혀냈으며 알래스카와 그린란드를 누비며 설빙학이라는 과학 분야를 개척했다. 나쓰메... 1930년 홋카이도대학에 부임해 1962년 숨을 거둘 때까지 눈과 얼음에 관한 연구에 몰두한 실험물리학자로 1936년 세계 최초로 저온 실험실에서 인공 눈을 만들었다. 특히 홋카이도 북부의 지역 특성을 살려 당대까지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눈, 얼음, 안개, 번개, 서릿발 등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실험을 통해 그 생성 조건을 밝혀냈으며 알래스카와 그린란드를 누비며 설빙학이라는 과학 분야를 개척했다. 나쓰메 소세키의 제자로 알려진 물리학자 데라다 도라히코를 사사해 엄격한 과학적 연구 방법에 충실했을 뿐 아니라 시와 그림에도 조예가 깊어 평생 수많은 수필과 칼럼을 남겼다. 지은 책으로 대표작 『눈雪』과 『눈의 연구雪の?究』를 비롯해, 『겨울 꽃冬の華』 『번개雷』 『과학의 방법科學への道』 『일본의 과학日本の科學』 『과학과 사회科學と社會』 『북극의 얼음北極の氷』 등이 있다.
저 : 다자이 오사무 (Dazai Osamu,だざい おさむ,太宰 治,츠시마 슈지津島修治)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 군 카나기무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가진 자로서의 죄책감을 느꼈고,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한다. 1930년, 프랑스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지만, 중퇴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소설가 이부세 마스지[井伏_...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 군 카나기무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가진 자로서의 죄책감을 느꼈고,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한다.

1930년, 프랑스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지만, 중퇴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소설가 이부세 마스지[井伏_二]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는 본명 대신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35년 소설 「역행(逆行)」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35년 제1회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단편 「역행」이 올랐지만 차석에 그쳤고, 1936년에는 첫 단편집 『만년(晩年)』을 발표한다. 복막염 치료에 사용된 진통제 주사로 인해 약물 중독에 빠지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지만, 소설 집필에 전념한다. 1939년에 스승 이부세 마스지의 중매로 이시하라 미치코와 결혼한 후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많은 작품을 썼다.

1947년에는 전쟁에서 패한 일본 사회의 혼란한 현실을 반영한 작품인 「사양(斜陽)」을 발표한다. 전후 「사양」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인기 작가가 된다. 그의 작가적 위상은 1948년에 발표된, 작가 개인의 체험을 반영한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을 통해 더욱 견고해진다. 수차례 자살 기도를 거듭했던 대표작은 『만년(晩年)』, 『사양(斜陽)』, 「달려라 메로스」, 『쓰기루(津?)』, 「여학생」, 「비용의 아내」, 등. 그는 1948년 6월 13일, 폐 질환이 악화되자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人間失格)』을 남기고 카페 여급과 함께 저수지에 몸을 던진다.
저 : 모리 오가이 (Ogai Mori ,もり おうがい,森 鷗外)
본명은 모리 린타로(森林太?)로, 근대 일본의 대표적인 계몽기 지식인이자 근대 문학의 선각자다. 오가이(鷗外)는 도쿄대학(東京大學) 의학부 출신의 군의관으로 독일 유학(1884∼1888)을 가서 위생학 연구뿐만 아니라 서양 문학을 두루 섭렵했다. 1894년 가을, 1개월간 군의관으로 조선 부산에 체재하면서 남긴 일기 등도 있다. 동서양에 걸친 넓은 시야의 소유자로서, 동서양의 학문과 문학 일반에 대한 이해를 바탕... 본명은 모리 린타로(森林太?)로, 근대 일본의 대표적인 계몽기 지식인이자 근대 문학의 선각자다. 오가이(鷗外)는 도쿄대학(東京大學) 의학부 출신의 군의관으로 독일 유학(1884∼1888)을 가서 위생학 연구뿐만 아니라 서양 문학을 두루 섭렵했다. 1894년 가을, 1개월간 군의관으로 조선 부산에 체재하면서 남긴 일기 등도 있다. 동서양에 걸친 넓은 시야의 소유자로서, 동서양의 학문과 문학 일반에 대한 이해를 바탕 삼아 일본 근대 문학 초창기에 평론과 번역으로 근대화에 크게 기여했으며, 소설가·시인·학자로서도 여러 업적을 남겨 근대 문학 성숙기의 일본 문단에서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와 쌍벽을 이루는 작가다.
오가이의 대표작은 일본 근대 최초의 번역 시집 『그림자(於母影, 오모카게)』(1889)와 서양 문학 번역에 안데르센의 『즉흥시인』(1892), 입센의 『노라(인형의 집)』(1913), 괴테의 『파우스트』(1913)가 있고, 단편 소설 「무희(舞?)」(1890), 「망상(妄想)」(1911), 장편 『청년』(1910), 『기러기(雁)』(1911), 역사 소설 「아베 일족(阿部一族)」(1913), 「산쇼 대부(山椒大夫)」(1915) 「다카세부네(高?舟)」(1916), 역사 인물 전기 『시부에 추사이(?江抽?)』(1916), 그리고 『시로 쓴 일기(うた日記)』(1905)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면서 다방면에 걸쳐 활약했다.
오가이는 ‘서양에서 돌아온 보수주의자’답게 ‘동도서기(東道西器)’와 비슷한 소위 ‘화혼양재(和魂洋才)’로서 동서양에 대한 해박한 식견과 복안으로 서양의 장점을 배워 바람직한 일본 근대화의 방향을 모색했다.
저 : 미야모토 유리코 (Yuriko Miyamoto,みやもと ゆりこ,宮本 百合子)
1899년 도쿄 출생. 1916년 3월 오차노미즈 고증학교를 졸업하고, 4월 일본여자대학 영문과 예과에 입학하였으나, 데뷔작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를 『중앙공론』9월호에 발표하고 학교를 자퇴해 작가 생활에 들어갔다. 1918년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그곳에서 아라키 시게루를 만나 이듬해 결혼하였다. 1930년 일본 프롤레타리아 작가 동맹에 가입하였으며, 이듬해 11월에는 일본 공산당에 가입하였다. ... 1899년 도쿄 출생. 1916년 3월 오차노미즈 고증학교를 졸업하고, 4월 일본여자대학 영문과 예과에 입학하였으나, 데뷔작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를 『중앙공론』9월호에 발표하고 학교를 자퇴해 작가 생활에 들어갔다. 1918년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그곳에서 아라키 시게루를 만나 이듬해 결혼하였다. 1930년 일본 프롤레타리아 작가 동맹에 가입하였으며, 이듬해 11월에는 일본 공산당에 가입하였다. 작품활동으로 인해 여러 차례 검거와 석방을 되풀이 하였으며, 1938년 1월 부터 이듬해 봄까지 집필 금지를 당하여 정신적,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았다. 태평양 전쟁 발발 직후 검거되어 시력과 언어장애 등을 얻었지만, 작품활동을 계속 하였으며, 1951년 1월 21일 급성 뇌수막염균 패혈증으로 사망하였다.
저 : 미야자와 겐지 (Kenji Miyajawa,みやざわ けんじ,宮澤 賢治)
일본의 대표적인 동화 작가이자 시인이면서 농예과학자이다. 이와테 현 하나마키 시의 독실한 불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일본의 시조라 할 수 있는 단가를 짓기 시작한 겐지는 열여덟 살 무렵부터 동화를 지어 형제들에게 읽어 주었다고 한다. 1921년에는 무작정 도쿄로 상경하여 동화를 창작했는데, 겐지 동화의 초고는 대부분 이 시기에 쓰여졌다. 이후 농업 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왕성한 창작 활동을 계속... 일본의 대표적인 동화 작가이자 시인이면서 농예과학자이다. 이와테 현 하나마키 시의 독실한 불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일본의 시조라 할 수 있는 단가를 짓기 시작한 겐지는 열여덟 살 무렵부터 동화를 지어 형제들에게 읽어 주었다고 한다. 1921년에는 무작정 도쿄로 상경하여 동화를 창작했는데, 겐지 동화의 초고는 대부분 이 시기에 쓰여졌다. 이후 농업 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왕성한 창작 활동을 계속하였는데, 생명 존중 사상과 공생(共生)의 행복관을 담아내던 겐지의 동화들은 당시 주위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배타적이던 일본에서는 외면당한다. 결국 겐지의 동화는 끝내 빛을 보지 못하고,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늑막염으로 생을 마친다.

그러나 사후 7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일본 열도는 '겐지 붐'이라고 할 만큼 열광적인 독자군이 형성되어 있으며, 그의 작품은 일본 교과서에 오랫동안 수록되어 정서적 영감을 불어넣을 만큼 수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는 겐지의 작품이 현대 사회에 대한 환멸감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대표작으로는 『쥐돌이 쳇』, 『주문이 많은 요리점』, 『바람의 마타사부로』, 『은하 철도의 밤』, 『첼로 켜는 고슈』, 『카이로 단장』 『미야자와 겐지 전집 1,2』등이 있다.
저 : 사카구치 안고 (Ango Sakaguchi,さかぐち あんご,坂口 安吾,사카구치 헤이고)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로 다자이 오사무와 더불어 ‘무뢰파(無賴派)’의 대표 작가이다. 본명은 헤이고. 1906년 10월 20일 니가타현 니가타시에서 아버지 니이치로와 어머니 아사 사이의 5남으로 태어났다. 사카구치가의 선조는 지금의 후쿠오카현 가라쓰의 도공이었다가 후에 니가타로 이동해 온 지방 부호다. 아버지 니이치로는 당시 중의원 의원이자 니가타 신문사 사장이었고 한시 시인으로도 알려진 정치가로서 언제나 다망했으...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로 다자이 오사무와 더불어 ‘무뢰파(無賴派)’의 대표 작가이다. 본명은 헤이고. 1906년 10월 20일 니가타현 니가타시에서 아버지 니이치로와 어머니 아사 사이의 5남으로 태어났다. 사카구치가의 선조는 지금의 후쿠오카현 가라쓰의 도공이었다가 후에 니가타로 이동해 온 지방 부호다. 아버지 니이치로는 당시 중의원 의원이자 니가타 신문사 사장이었고 한시 시인으로도 알려진 정치가로서 언제나 다망했으며 장남을 제외한 자식들에게는 무관심하고 냉담했다. 사카구치가의 재산은 체면과 의리를 중시했던 니이치로의 대에서 탕진되게 된다. 니이치로의 전처와 첩의 아이까지 합한 열세 명의 형제 중 열두 번째 아이로 태어난 안고는, 어린 시절 이미 방랑벽이 있었으며, 골목대장 행세를 하며 싸움질을 하고 돌아다녀 어머니의 미움을 사는 한편, 주로 무사들의 군담을 숙독했고, 남몰래 닌자의 인술을 연구하기도 했다. 1919년 니가타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이 무렵부터 집과 학교를 싫어해서 수업을 빠지고 홀로 방황하는 날들을 보내다 낙제하게 되고,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발자크 등의 소설을 탐독하며 지내다가 결국 1922년에 퇴학당했다. 그해 가을 상경해 부잔 중학교에 입학했고 에드거 앨런 포와 이시카와 다쿠보쿠 등을 인생의 낙오자로서 사랑하며 그들의 작품을 숙독했다.

막연하게 엄격한 구도자의 삶을 동경하여 1926년, 도요 대학 인도철학윤리과에 입학한다. 입학 후 불교서와 철학서를 섭렵하는 데 몸을 혹사하며 공부에 매진한 탓에 생긴 신경쇠약 증세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티베트어, 라틴어, 프랑스어 등 어학을 맹렬히 공부한다. 1930년, 대학을 졸업한 후 동인지 [말]과 [청마]를 창간했다. 1931년에 발표한 단편소설『바람 박사』와 『구로타니 마을』이 소설가 마키노 신이치의 극찬을 받음으로써 신진 작가로 급부상한다. 1932년 여류 작가 야다 쓰세코를 알고 사랑에 빠지지만 1936년 절교한 후 신생을 기하며 교토를 방랑하면서 그녀와의 사랑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눈보라 이야기』를 썼다. 1946년, 전후의 시대적 본질을 예리하게 통찰하고 파악한 「타락론」과「백치」에 의해 일약 시대의 총아, 오피니언 리더로 떠오르며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에세이 「타락론」에서는 전쟁에 졌기 때문에 인간이 타락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인간에게는 타락의 본성이 있고 혼란은 필연적이며, 타락을 통해 다시 일어날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타락론」을 소설화한 것이 「백치」다.

1947년 가지 미치요와 결혼하고, 전후의 시대상을 반영한 소설과 에세이, 탐정소설, 역사 연구, 문명 비평 르포르타주 등 다채로운 집필 활동을 전개하여 전후의 난세에 문화와 역사 및 사회의 흐름에 대한 대중의 지적 갈증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와 동시에 세무 당국을 상대로 한 소송, 경륜 부정 사건 고발, 각성제와 수면제 중독에 의한 정신착란 발작 등 실생활 면에서도 언제나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1955년 2월 17일 지방 취재 여행에서 돌아온 후 자택에서 뇌일혈로 급사했다. 향년 50세였다. 전후 일본 사회의 혼란과 퇴폐를 반영한 작풍을 확립하고 시대의 새로운 윤리를 제시함으로써 일본인에게 충격과 감동을 안겨준 사카구치 안고는 다자이 오사무와 오다 사쿠노스케 등과 함께 전후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무뢰파 작가로 평가된다.
저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Ryuunosuke Akutagawa,あくたがわ りゅうのすけ,芥川 龍之介)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1892년 도쿄의 서민 지역인 시타마치에서 태어났다. 외가에 양자로 들어가 두 이모가 그를 양육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도쿄제일고등학교를 거쳐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해 차석으로 졸업했다. 기쿠치 칸, 구메 마사오 등과 재학생 시절 동인지 『신사조』를 발간해 『라쇼몬』 『코』 등의 단편을 발표했는데 나츠메 소세키로부터 단편 『코』가 절찬을 받으며 일약 다이쇼 시대 문단의 총아로 ...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1892년 도쿄의 서민 지역인 시타마치에서 태어났다. 외가에 양자로 들어가 두 이모가 그를 양육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도쿄제일고등학교를 거쳐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해 차석으로 졸업했다. 기쿠치 칸, 구메 마사오 등과 재학생 시절 동인지 『신사조』를 발간해 『라쇼몬』 『코』 등의 단편을 발표했는데 나츠메 소세키로부터 단편 『코』가 절찬을 받으며 일약 다이쇼 시대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전공인 영문학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러시아문학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아 간결하면서도 평이하고 명쾌한 필치가 특징이지만 한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왕조물’, ‘기독교물’, ‘에도물’, ‘개화기물’, ‘현대물’ 등의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나생문(羅生門)』, 『마죽(芋粥)』 등 150편 정도의 단편 소설을 남겼다.

초기에는 일본 고대 설화 문학에서 소재를 취해 보편적이면서 현대적인 인간 에고이즘의 내면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썼고, 이후 예술지상주의적인 경향의 작품들, 에도 시대 그리스도교 박해를 다룬 기리시탄 작품들, 일본의 근대화를 주제로 한 작품들 등을 쓰다가 말년에는 자살을 염두에 둔 듯 자신의 삶을 무자비하게 조롱하고 야유하는 자전적인 작품들이 많다. 1927년 7월 24일 새벽, 비가 세차게 내리는 가운데 다바타의 자택에서 치사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자살했다. 그가 밝힌 자살의 이유는 ‘장래에 대한 그저 막연한 불안’이었다. 아쿠타가와의 자살은 관동대지진과 더불어 일본 근대사에서 다이쇼라는 한 시대의 종언으로 느껴질 정도로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던졌다. 1935년 아쿠타가와의 친구였던 문예춘추의 사주 기쿠치 칸이 아쿠타가와상을 제정했고 현재까지도 이 상은 일본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으로 인정된다.
저 : 오카쿠라 텐신 (Tenshin Okakura,おかくら てんしん,岡倉 天心)
메이지(明治)시대의 미술사가이자 미술교육자. 요코하마(橫浜)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 이름은 카쿠조오(覺三)이다. 도쿄대학(東京大學)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하면서 미국인 페노로사의 감화를 받아 일본 미술에 깊이 빠졌다. 졸업 후에는 문부성(文部省)에 들어가 일본의 고찰과 신사 등에 소장되어 있는 고미술품을 조사하면서 일본화(日本畵)의 쇄신에 힘썼다. 1886년, 미국과 유럽을 시찰하고 귀국해서 동경미술학교를 ... 메이지(明治)시대의 미술사가이자 미술교육자. 요코하마(橫浜)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 이름은 카쿠조오(覺三)이다. 도쿄대학(東京大學)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하면서 미국인 페노로사의 감화를 받아 일본 미술에 깊이 빠졌다. 졸업 후에는 문부성(文部省)에 들어가 일본의 고찰과 신사 등에 소장되어 있는 고미술품을 조사하면서 일본화(日本畵)의 쇄신에 힘썼다. 1886년, 미국과 유럽을 시찰하고 귀국해서 동경미술학교를 설립하는 데 참여하여 교장직을 맡았고, 1898년에 교장직을 사퇴한 뒤에는 일본 미술원을 창설하였다. 1904년부터는 보스턴미술관 동양부장을 맡았다. 그는 『동양의 이상』 『일본의 각성』 『차의 책』 등 영문으로 쓴 저서에서 독자적인 문명관을 피력하였다. 사후에는 헤이본샤(平凡社)에서 그의 전집 9권을 내놓았다.
저 : 요사노 아키코 (Akiko Yosano,よさの あきこ,輿謝野 晶子)
요사노 아키코는 일본의 가인이자 시인, 작가, 사상가이다. 잡지 『묘조明星』에 단카를 발표하고 낭만주의의 중심적인 인물이 되었다. 대표작으로는 평론 『정조를 파괴하는 자는 남자』, 가집 『흐트러진 머리칼』, 시 「너 죽는 일 부디 없기를君死にたまふことなかれ」, 남편과 함께 남긴 기행문 『파리에서巴里より』 등이 있다. 요사노 아키코는 사카이(堺)의 전통 과자점 스루가야(駿河屋)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12세 ... 요사노 아키코는 일본의 가인이자 시인, 작가, 사상가이다. 잡지 『묘조明星』에 단카를 발표하고 낭만주의의 중심적인 인물이 되었다. 대표작으로는 평론 『정조를 파괴하는 자는 남자』, 가집 『흐트러진 머리칼』, 시 「너 죽는 일 부디 없기를君死にたまふことなかれ」, 남편과 함께 남긴 기행문 『파리에서巴里より』 등이 있다.

요사노 아키코는 사카이(堺)의 전통 과자점 스루가야(駿河屋)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12세 무렵부터 가업을 도와 장부를 기록하거나 대나무 껍질로 단팥묵을 포장하는 등 일에 쫓기는 생활을 해야 했다. 후일 유년 시절을 회상한 글에서 그녀는 “밤일이 끝나기를 기다려 밤 12시에 꺼지는 전등 아래서 겨우 1시간 또는 30분 부모의 눈을 피해가며 내가 읽은 책들은 여러 가지 공상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어 나를 위로하고 용기를 주었다”고 술회했는데, 답답한 일상 속에서 그녀의 유일한 벗은 문학 작품 속의 주인공들이었다. 부친의 장서였던 『겐지 이야기(源氏物語)』, 『마쿠라노소시(枕草子)』, 『영화 이야기(榮華物語)』 등 고전문학 작품 속의 주인공들을 동경하며 소녀 아키코는 암울한 현실의 저편에 있는 감미로운 사랑의 세계를 꿈꾸었을 것이다.

또한 그녀의 독서 목록에는 제국대학에 재학 중이던 오빠가 보내오는 당시의 최신 문예 잡지와 신소설이 포함되어 있었다. 소학교 졸업 후 진학한 사카이 여학교는 현모양처를 양성하는 봉건적 여성 교육을 주로 하는 학교였으나, 아키코는 독서를 통해 새로운 시대의 사조를 체감하고 가부장적 구습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할 의식을 키워갔다. 그녀의 재기는 1899년 서일본 지방 문학청년들의 모임인 관서청년문학회 입회를 통해 싹트기 시작해, 요사노 뎃칸과의 운명적인 만남과 함께 일시에 분출되었다. 그 첫 번째 결실인 『헝클어진 머리칼』은 근대적 자아에 눈뜬 새로운 여성의 목소리를 대담하고 분방하게 표현한 것으로, 단숨에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초기 일본 낭만주의의 거점이었던 문예지 「묘조」의 여왕으로 활약하며 일본 문학사상 ‘정열의 가인’으로 기록된다. 결혼 후에는 소설, 시, 평론, 고전 연구 등 다방면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는 한편, 11명의 자녀를 키우며 가계를 꾸려가는 정력적인 삶을 영위했다. 그사이 작풍은 초기의 격정적인 어조는 퇴색되었으나 낭만적 미질을 유지하는 가운데 점차 내면적인 깊이를 더해 고요한 자기 관조와 사색적 서정을 내포해 가게 되었다. 1912년 뎃칸과 함께한 유럽 여행 이후에는 여권 신장 운동 체험을 바탕으로 넓은 사회적 시야를 갖고 부인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문화학원(文化學院)을 창립(1921)해 초대 학감에 취임하는 등 문학은 물론 교육 활동에 있어서도 폭넓은 족적을 남겼다. 『헝클어진 머리칼』과 함께 널리 회자되는 그녀의 대표작으로는 반전시로 일컬어지는 장시 「너는 죽지 말거라(君死にたまふことなかれ)」(1904)를 들 수 있다. 아키코는 무엇보다 진실한 마음을 표현하는 시의 가치를 믿었으며 전 생애를 다해 사랑을 노래한 작가로 기억된다. 1942년 뇌일혈 투병 중 사망하기까지 그녀가 남긴 가집은 20권, 약 5만 수다.
저 : 이시카와 다쿠보쿠 (Takuboku Ishikawa,いしかわ たくぼく,石川 啄木,본명 : 石川 一)
1886년 이와테 현에서 태어났다. 모리오카 보통중학교를 중퇴한 후 문학지 『묘조』의 동인으로 활동하며 시부타미 보통소학교·야요이 보통소학교 대리교사와 『하코다테 일일신문』 ·『호쿠몬신보』 ·『오타루일보』 ·『구시로 신문』 기자 등 여러 직장을 전전했다. 이후 『아사히 신문』 교정계에 취직하여 후타바테이 시메이 전집을 교정하고 아사히가단의 선자選者로 일했으나 1912년에 폐결핵으로 요절했다. 저서로는 가집 『한 ... 1886년 이와테 현에서 태어났다. 모리오카 보통중학교를 중퇴한 후 문학지 『묘조』의 동인으로 활동하며 시부타미 보통소학교·야요이 보통소학교 대리교사와 『하코다테 일일신문』 ·『호쿠몬신보』 ·『오타루일보』 ·『구시로 신문』 기자 등 여러 직장을 전전했다. 이후 『아사히 신문』 교정계에 취직하여 후타바테이 시메이 전집을 교정하고 아사히가단의 선자選者로 일했으나 1912년에 폐결핵으로 요절했다. 저서로는 가집 『한 줌의 모래』, 『슬픈 장난감』, 시집 『동경』, 소설 『구름은 천재로소이다』 등이 있다.
저 : 이즈미 교카 (Kyoka Izumi,いずみ きょうか,泉 鏡花,본명 : 이즈미 교타로)
1873년 일본 이시카와 현 가나자와에서 금속공예가 아버지와 예능인 집안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메이지 시대 대표 작가 중 한 사람인 오자키 고요 중심의 ‘겐유샤(硯友社, 벼루 동인)’ 작가다. 전통문화가 정착되고 구비전승이 살아 숨 쉬는 도시 가나자와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문학적 감수성을 키워나갔다. 17세에 메이지 시대 대표적 소설가 오자키 고요의 작품을 읽고 감동을 받아 그의 문하생이 되고자 도쿄로... 1873년 일본 이시카와 현 가나자와에서 금속공예가 아버지와 예능인 집안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메이지 시대 대표 작가 중 한 사람인 오자키 고요 중심의 ‘겐유샤(硯友社, 벼루 동인)’ 작가다. 전통문화가 정착되고 구비전승이 살아 숨 쉬는 도시 가나자와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문학적 감수성을 키워나갔다. 17세에 메이지 시대 대표적 소설가 오자키 고요의 작품을 읽고 감동을 받아 그의 문하생이 되고자 도쿄로 상경하여 1891년부터 3년간 오자키 고요에게 사사했다. 1895년 「야행순사」와 「외과실」을 발표하여 평론가들의 호평을 얻고 유망한 신진작가로 인정받았다. 이후 대표작인 「고야산 스님」을 비롯하여 「초롱불 노래」 「여자의 계보」 「눈썹 없는 혼령」 등 요괴나 민담, 일본의 전통 예능을 소재 삼아 이계(異界)의 공간과 고전의 세계를 그린 3백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1939년 폐종양으로 6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1973년 이즈미 교카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이즈미 교카상’이 제정되어 요시모토 바나나, 유미리 등 많은 유명 작가에게 수여되었다.
저 : 하기와라 사쿠타로 (Hagiwara Sakutaro,はぎわら さくたろう,萩原 朔太郞)
1886년 11월에 군마 현 마에바시 시에서 태어났다. 마에바시 중학교 때부터 당시의 가장 유명한 문학잡지인 [명성(明星)]에 단가(短歌)를 투고하는 등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을 떠나 타지의 고등학교에 진학하지만 몇 번의 낙제를 거듭한 후 귀향하여 1913년경부터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개시했다. 이후로 수도 도쿄(東京)와 고향을 오가는 생활을 계속하면서 시작에 전념하여 1917년... 1886년 11월에 군마 현 마에바시 시에서 태어났다. 마에바시 중학교 때부터 당시의 가장 유명한 문학잡지인 [명성(明星)]에 단가(短歌)를 투고하는 등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을 떠나 타지의 고등학교에 진학하지만 몇 번의 낙제를 거듭한 후 귀향하여 1913년경부터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개시했다.

이후로 수도 도쿄(東京)와 고향을 오가는 생활을 계속하면서 시작에 전념하여 1917년, 처녀 시집 『달 보고 짖는다』를 간행했다. 이 시집에서 근대인들의 고독감과 신경 쇠약, 우울증을 구어체(口語體)로 섬세하게 표현해 냄으로써, 하기와라 사쿠타로는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郞)와 함께 ‘일본 근대시의 완성자’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게 된다. 관능적이며 근대적인 고독에 대한 시를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로 썼고, 이는 일본 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1923년에 두 번째 시집 『우울한 고양이』를 출판한다. 이 시집에서는 우울함과 무료함, 권태로움을 ‘우울한 고양이 스타일’이라 불리는 독특한 시 형식으로 표현했다. 쇼펜하우어와 니체, 불교의 영향을 받은 염세적 허무 의식과 관능적이며 퇴폐적인 시상이 주를 이루고 있다. 1925년에 발간한 『순정 소곡집』은 단가에서 시로 옮길 때의 작품인 ‘애련(愛憐) 시편’과 30대 후반에 발표한 ‘... 향토망경(鄕土望景) 시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자에는 소년 시절의 순수한 감상과 영탄이, 후자에는 도쿄에서 바라본 변해가는 고향의 모습과 비속한 인생에 대한 분노가 표출되어 있다.

1934년에 출판된 마지막 시집 『얼음 섬』에서는 고향을 상실한 영원한 방랑자로서 당시 사회에 대한 ‘분노와 증오와 적요(寂寥)와 격정’을 담은 ‘절규’를 비분강개의 한문 번역 투의 문어체로 표현했다. 그 밖에 아포리즘을 모은 책 『새로운 욕망』(1922), 시론집 『시의 원리』(1928), 수필집 『일본으로 회귀』(1938), 산문시집 『숙명』(1939) 등이 있다.
저 : 하라 다미키 (Tamiki Hara,はら たみき,原 民喜)
1905년~1951년. 히로시마 출생. 피폭 체험을 작품에 새긴 소설가, 시인. 1933년에 게이오 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36년부터 잡지 《미타 문학》을 무대로 단편소설을 다수 발표하기 시작했다. 1945년에 전쟁을 피해 고향인 히로시마의 형님 댁으로 옮겼지만 8월에 원폭투하를 경험하게 된다. 이 체험은『여름의 꽃』『진혼가』 등의 작품을 낳았다. 특히 『여름의 꽃』은 아름답고 냉정하고 투명한 문체로 묘사된... 1905년~1951년. 히로시마 출생. 피폭 체험을 작품에 새긴 소설가, 시인. 1933년에 게이오 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36년부터 잡지 《미타 문학》을 무대로 단편소설을 다수 발표하기 시작했다. 1945년에 전쟁을 피해 고향인 히로시마의 형님 댁으로 옮겼지만 8월에 원폭투하를 경험하게 된다. 이 체험은『여름의 꽃』『진혼가』 등의 작품을 낳았다. 특히 『여름의 꽃』은 아름답고 냉정하고 투명한 문체로 묘사된 작품인데 원폭을 묘사한 수많은 문학작품 중에서도 가장 빼어나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1951년, 중앙선 철도에서 자살했다. 향년 45세. 대표작으로는『여름의 꽃』『폐허에서』『괴멸의 서곡』『진혼가』『원폭 소경小景』 등이 있다.
저 : 하야시 후미코 (Fumiko Hayashi,はやし ふみこ,林 芙美子)
1903~1951.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 후쿠오카 현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부터 가난한 부모를 따라 여러 지방을 떠돌아다녔다. 여학교 졸업 후 도쿄에 올라와 잡일꾼, 사무원, 여공, 카페 여급 등 갖가지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작가를 꿈꾸며 고단한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1930년 자신의 가난한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방랑기』를 출판해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했다. 대공황의 와중에도 ... 1903~1951.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 후쿠오카 현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부터 가난한 부모를 따라 여러 지방을 떠돌아다녔다. 여학교 졸업 후 도쿄에 올라와 잡일꾼, 사무원, 여공, 카페 여급 등 갖가지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작가를 꿈꾸며 고단한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1930년 자신의 가난한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방랑기』를 출판해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했다. 대공황의 와중에도 60만 부나 팔린 『방랑기』를 비롯한 그녀의 작품은 당시 도시 생활자의 밑바닥 삶, 특히 여성의 자립과 가족, 사회 문제를 생생하게 그려내 대중에게 사랑받았고 사후에도 다수의 작품이 영화, 연극, 드라마로 제작됐다. 1948년 제3회 여류문학자상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는 『청빈의 서』, 『만국』, 『뜬구름』, 『밥』 등이 있다.
저 : 가타야마 히로코 (Hiroko Katayama,かたやま ひろこ,片山 廣子)
시인, 수필가, 아일랜드문학 번역가. 외교관의 장녀로 도쿄 아자부에서 태어났다. 아일랜드문학에 매력을 느껴 예이츠, 존 싱, 그레고리 부인 등의 작품을 번역했다. 자기 삶의 소소한 단상을 절제되고 우아한 문체로 엮은 만년의 수필집 『등화절』은 근대여성의 아름다운 산문으로 이름이 높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깊은 문학적 교류를 통해 서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도 했는데, 아쿠타가와가 『어느 바보의 일생』 「나보다 나... 시인, 수필가, 아일랜드문학 번역가. 외교관의 장녀로 도쿄 아자부에서 태어났다. 아일랜드문학에 매력을 느껴 예이츠, 존 싱, 그레고리 부인 등의 작품을 번역했다. 자기 삶의 소소한 단상을 절제되고 우아한 문체로 엮은 만년의 수필집 『등화절』은 근대여성의 아름다운 산문으로 이름이 높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깊은 문학적 교류를 통해 서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도 했는데, 아쿠타가와가 『어느 바보의 일생』 「나보다 나은 사람」 편에서 “재능 면에서 나와 겨룰 수 있는 여자를 우연히 만났다”며 “어찌 내 이름을 아낄까, 아껴야 할 것은 그대 이름인 것을”이라 노래한 대상으로 알려졌다.
저 : 나카하라 추야 (Chuya Nakahara,なかはら ちゅうや,中原 中也)
시인, 번역가. 야마구치현 의사 집안의 맏이로 태어났다. 부모는 그가 의사로 가업을 잇기 바랐으나 추야는 훗날 그의 자전적 수필 「시적 이력서」에서 어릴 때 죽은 동생을 그리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랭보 시집을 번역했으며 자비출판한 데뷔 시집 『산양의 노래』로 주목 받았다. 결혼 후 두 살 난 아들을 잃고 심신이 급격히 미약해져 서른 살에 가마쿠라에서 급사했다. 시인, 번역가. 야마구치현 의사 집안의 맏이로 태어났다. 부모는 그가 의사로 가업을 잇기 바랐으나 추야는 훗날 그의 자전적 수필 「시적 이력서」에서 어릴 때 죽은 동생을 그리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랭보 시집을 번역했으며 자비출판한 데뷔 시집 『산양의 노래』로 주목 받았다. 결혼 후 두 살 난 아들을 잃고 심신이 급격히 미약해져 서른 살에 가마쿠라에서 급사했다.
저 : 다카무라 고타로 (Kotaro Takamura,たかむら こうたろう,高村 光太郞,본명 : 다카무라 미츠타로)
일본에서 국민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다카무라 고타로(1883∼1956)는 그의 생애 동안 720여 편에 달하는 자연과 인간, 사랑을 노래하는 시 작품을 남겼다. 또한 그는 70여 점의 조각 작품을 완성한 조각가로 활약했으며, 이외에도 번역, 평론 등에서 업적을 남긴 예술인으로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다카무라 고타로는 1883년(메이지 16) 도쿄 시타야(下谷)에서 불사(?師)였던 아버지 고운(光雲)과 어머... 일본에서 국민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다카무라 고타로(1883∼1956)는 그의 생애 동안 720여 편에 달하는 자연과 인간, 사랑을 노래하는 시 작품을 남겼다. 또한 그는 70여 점의 조각 작품을 완성한 조각가로 활약했으며, 이외에도 번역, 평론 등에서 업적을 남긴 예술인으로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다카무라 고타로는 1883년(메이지 16) 도쿄 시타야(下谷)에서 불사(?師)였던 아버지 고운(光雲)과 어머니 와카[わか, 통칭은 도요(とよ)]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1898년 미술학교에 입학하고 1906년 2월에서 1909년) 6월에 걸쳐 미국 뉴욕,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했는데, 이 시기를 통해 예술혼에 눈뜨고 서구 문명과 그 속에서 형성된 근대적 자아를 체득하게 된 고타로는 귀국 후 제2의 고운이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와의 갈등, 파벌이나 연고(?故)가 일체를 지배하는 구태의연한 일본 예술계라는 벽을 마주하고, 스스로의 생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귀국 직후 예술 전위 모임인 ‘팬의 모임(パンの?)’에 참여해 질풍노도의 탐미적·데카당스적인 생활을 보냈다. 1909년에는 고마고메(駒?)에 있는 조부의 은거처를 아틀리에로 개조해 예술 활동을 하고, 1910년에는 일본 최초의 실험적 화랑인 로켄도(琅?洞)를 열기도 했으나, 공조자가 없었기 때문에 실패로 끝났다. 같은 해 12월에 하시모토 야에코의 소개로 지에코를 알게 되는데, 그녀는 일본여자대학 가정과를 나와, 여성 해방을 표방한 잡지 [세이토]의 표지 그림을 그릴 정도로 그림에 재능을 가진 신여성이었다. 깨어 있는 정신을 가진 두 예술가의 만남은 연애 시기를 거쳐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이어졌다. 고타로의 첫 시집 『도정』은 지에코와 결혼을 앞둔 1914년(다이쇼 3) 10월 출판되었다. 고타로는 지에코와의 연애, 결혼 생활을 내용으로 한 시를 40여 년간 써서 그것을 지에코의 사후 『지에코초』라는 연애시집으로 출간했고(1941. 8), 가난 속에서도 운명적 끈으로 연결된 두 사람의 절절한 사랑을 생생하게 그려 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고타로는 지에코의 죽음 이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본 정부의 정책에 찬동하는 시를 써서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1945년 9월 공습으로 도쿄에 있던 아틀리에가 소실되자 이와테현으로 피난했는데, 종전 후에도 이와테현 시외에 있는 오타무라 야마구치(太田村山口)의 작은 오두막에서 지내며 자기 유적(自己流謫)의 자연 친화적 생활을 보냈다. 1945년 12월 시집 『전형』을 시작으로 자연과 순수한 시작(詩作)의 정신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작품들을 발표하는가 하면, 1947년 7월에는 인생을 되돌아보는 내용의 자전적 시편인 『암우소전(暗寓小?)』을 발표함과 더불어 제국예술원(帝?芸術院) 회원으로 추대되지만 이를 사퇴한다.

1950년 11월에는 『지에코초 그 후(智?子抄その後)』 시문집을 출판하고, 70세가 되던 1952년 10월에 도와다 호반(十和田湖畔)에 세울 지에코 나부상(裸婦像) 제작을 위해 도쿄로 돌아간다. 1955년 12월 [요미우리 신문(??新聞)]에 시 「생명의 큰 강(生命の大河)」을 발표한 것을 끝으로 1956년 4월 화가 나카니시 도시오(中西利雄)의 아틀리에에서 74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영원한 반려자인 지에코와의 만남과 결혼, 사별은 다카무라 고타로의 인생에 매우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볼 수 있으며, 『도정』, 『지에코초』, 『기록』, 『전형』, 『지에코초 그 후』를 포함하는 그의 7권의 시(문)집은, 일본 근대 시사에 뚜렷한 업적을 남겼을 뿐 아니라, 메이지, 다이쇼, 쇼와에 걸친 일본 근대사의 격변기 속에서 한 예술가이자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 내고자 했던 시인의 인생 기록으로서 크나큰 감명을 주고 있다.
저 : 마사무네 하쿠초 (Hakucho Masamune,まさむね はくちょう,正宗 白鳥)
소설가, 평론가, 수필가. 일본 근대문학사에서 메이지시대와 다이쇼시대, 쇼와시대에 이르기까지 누구보다 긴 시간에 걸쳐 문학가로 활동했다. 요미우리신문에 문학, 미술, 음악, 연극, 종교 등 다양한 분야의 평론을 썼으며 「어디로」, 「포구 근처」, 「올해 가을」 등 자연주의 경향의 소설을 썼다. 특유의 절제되고 초탈한 문체로 니힐리즘에 가까운 수필을 많이 남겼으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서 안도 슈사쿠에 이르기까지 문... 소설가, 평론가, 수필가. 일본 근대문학사에서 메이지시대와 다이쇼시대, 쇼와시대에 이르기까지 누구보다 긴 시간에 걸쳐 문학가로 활동했다. 요미우리신문에 문학, 미술, 음악, 연극, 종교 등 다양한 분야의 평론을 썼으며 「어디로」, 「포구 근처」, 「올해 가을」 등 자연주의 경향의 소설을 썼다. 특유의 절제되고 초탈한 문체로 니힐리즘에 가까운 수필을 많이 남겼으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서 안도 슈사쿠에 이르기까지 문인들이 사랑한 작가들의 작가였다.
저 : 마사오카 시키 (Shiku Masaoka,まさおか しき,正岡 子規)
하이쿠시인, 수필가. 근대 하이쿠 예술을 집대성한 인물. 시키 혹은 호토토기스라 불리는 두견새는 목에서 피를 토하도록 운다는 중국설화 때문에 폐결핵을 상징하는 새가 됐다. 대학시절 폐결핵이 발병한 이래 줄곧 병상을 멀리 떠나지 못했던 그는 필명을 시키라 짓고 하이쿠 연구와 창작에 몰두했다. 그가 만든 하이쿠 잡지 『호토토기스』는 하이쿠시인을 위한 창작의 장이 됐고 시키와 평생의 벗이었던 소세키의 작품이 처음 발표... 하이쿠시인, 수필가. 근대 하이쿠 예술을 집대성한 인물. 시키 혹은 호토토기스라 불리는 두견새는 목에서 피를 토하도록 운다는 중국설화 때문에 폐결핵을 상징하는 새가 됐다. 대학시절 폐결핵이 발병한 이래 줄곧 병상을 멀리 떠나지 못했던 그는 필명을 시키라 짓고 하이쿠 연구와 창작에 몰두했다. 그가 만든 하이쿠 잡지 『호토토기스』는 하이쿠시인을 위한 창작의 장이 됐고 시키와 평생의 벗이었던 소세키의 작품이 처음 발표되기도 했다. 수필집 「병상육척」은 고통스런 일상을 위트 있고 아름다운 문체로 써낸 산문으로 이름이 높다.
저 : 오다 사쿠노스케 (Sakunosuke Oda,おだ さくのすけ,織田 作之助)
다자이 오사무, 사카구치 안고와 함께 사회통념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저작활동을 펼친 전후 무뢰파 작가. 스탕달의 영향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제3고등학교에 5년 재학하다 중퇴했다. 「비」로 다케다 린타로(武田麟太郎)에게 인정을 받았으며, 오사카에서 나고 자란 오다사쿠(애칭)는 왁자한 오사카 풍경과 저잣거리 사람들의 삶과 사랑을 생생하게 묘사한 장편소설 『메오토젠자이(부부 단팥죽)』로 큰 사랑을 받았다. 「권선징... 다자이 오사무, 사카구치 안고와 함께 사회통념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저작활동을 펼친 전후 무뢰파 작가. 스탕달의 영향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제3고등학교에 5년 재학하다 중퇴했다. 「비」로 다케다 린타로(武田麟太郎)에게 인정을 받았으며, 오사카에서 나고 자란 오다사쿠(애칭)는 왁자한 오사카 풍경과 저잣거리 사람들의 삶과 사랑을 생생하게 묘사한 장편소설 『메오토젠자이(부부 단팥죽)』로 큰 사랑을 받았다. 「권선징악」 등 역작을 차례로 발표했으나 장편 『청춘의 역설』이 반군국주의 작품으로 발금처분을 받았다. 1946년에 패전 직후의 혼란스러운 세상을 묘사한 단편을 발표했으며, 사소설의 전통에 결별을 선언한 평론 「가능성의 문학」을 집필, 그 실험적 작품이라 여겨지는 장편 『토요부인』을 [요미우리신문]에 8월부터 연재했으나 폐결핵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이미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아 건강을 해친 상태였다. 한편 「수필 오사카」, 「오사카의 얼굴」, 「오사카의 발견」 등 오사카의 감수성을 유쾌하고도 시니컬한 필체로 써내려간 산문을 다수 남겼다. 모든 사상이나 체계에 대한 불신, 옛 전통에 대한 반역을 목표로 삼았으며 고유의 감각과 직관에 바탕을 둔 스탕달풍의 템포가 빠른 작풍을 보여줬다.
저 : 이쿠타 슌게쓰 (Shungetsu Ikuta,いくた しゅんげつ,生田 春月)
시인, 번역가. 돗토리현 출생. 『감상의 봄』, 『영혼의 가을』 등 아름다운 시집을 남겼으며, 하이네의 시를 사랑하여 시집을 번역하고 일본에 가장 먼저 그를 알렸다. 오사카에서 벳부로 향하는 뱃길 여행 중 세토내해에서 투신자살했다. 시인, 번역가. 돗토리현 출생. 『감상의 봄』, 『영혼의 가을』 등 아름다운 시집을 남겼으며, 하이네의 시를 사랑하여 시집을 번역하고 일본에 가장 먼저 그를 알렸다. 오사카에서 벳부로 향하는 뱃길 여행 중 세토내해에서 투신자살했다.
저 : 오카모토 가노코 (Kanoko Okamoto,おかもと かのこ,岡本 かの子)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아토미 여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문예세계』, 『요미우리신문』 등에 단가, 시를 투고했다. 작은 오빠, 그리고 친구인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영향을 받았다. 졸업 후에는 『명성』과 『스바루』 등에 단가를 발표했다. 1910년에 우에노 미술학교의 학생이었던 오카모토 잇페이와 결혼하나 서로의 강한 개성이 격돌했고, 가족의 불행도 있었기에 결혼생활은 파탄을 맞이했다. 그 결혼생활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아토미 여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문예세계』, 『요미우리신문』 등에 단가, 시를 투고했다. 작은 오빠, 그리고 친구인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영향을 받았다. 졸업 후에는 『명성』과 『스바루』 등에 단가를 발표했다. 1910년에 우에노 미술학교의 학생이었던 오카모토 잇페이와 결혼하나 서로의 강한 개성이 격돌했고, 가족의 불행도 있었기에 결혼생활은 파탄을 맞이했다. 그 결혼생활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 부부가 종교편력을 시작했고 결국에는 대승불교에 다다르게 되었다. 1936년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모델로 한 작품으로 문단에 등장. 그 후, 「모자서정」, 「가령」, 「노기초」 등을 발표했다.
1979년 서울 출생. 작가, 번역가. 어린 시절 읽고 또 읽은 세계문학전집 한 질의 영향으로 문학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무엇을 꿈꾸며 살게 되었다. 경희대 졸업 후 여러 직장을 다니다가 와세다대학 대학원에서 일본근대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다자이 오사무 전집 중 『만년』, 『신햄릿』, 『판도라의 상자』, 『인간실격』,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평론집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 미야자와 겐지 시집 『봄... 1979년 서울 출생. 작가, 번역가. 어린 시절 읽고 또 읽은 세계문학전집 한 질의 영향으로 문학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무엇을 꿈꾸며 살게 되었다. 경희대 졸업 후 여러 직장을 다니다가 와세다대학 대학원에서 일본근대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다자이 오사무 전집 중 『만년』, 『신햄릿』, 『판도라의 상자』, 『인간실격』,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평론집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 미야자와 겐지 시집 『봄과 아수라』, 이바라기 노리코 시집 『처음 가는 마을』, 사이하테 타히 시집 『밤하늘은 언제나 가장 짙은 블루』, 오에 겐자부로 강연록 『읽는 인간』, 이노우에 히사시 희곡 『아버지와 살면』 등을 번역하였고, 일본 산문선 『슬픈 인간』 등을 엮고 옮겼다. 저서로 장편동화 『모기소녀』, 산문집 『날마다 고독한 날』 등이 있다. 문학 작품을 번역하며, 꿈속처럼 살고 사는 것처럼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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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주간우수작 아름답고도 슬픈 인간의 초상
평점8점 | r*********s | 2018-04-09 | 신고

 그때 누군가 피아노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친다기보다 만지는 소리였다. 무심결에 발걸음을 멈추고 스산함에 잠긴 주위를 둘러봤다. 마침 달빛이 가늘고 긴 피아노 건반을 넌지시 비추고 있었다. 명아주 수풀 속 그 피아노를.ㅡ그러나 사람의 그림자는 어디도 없었다. 딱 한 음이었다. 하지만 피아노가 분명했다. 나는 조금 으스스 해져서 다시 걸음을 재촉하려 했다. 그때 내 뒤에 잇던 피아노가 분명히 또 희미한 소리를 냈다. 난 물론 뒤돌아보지 않고 재빨리 걸어갔다, 습기를 머금은 세찬 바람이 내 등을 떠미는 걸 느끼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피아노」중에서, 38쪽) 


 좋은 산문, 좋은 수필은 어떨 것일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군더더기 없이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글은 아닐까. 평범한 일상 가운데 느닷없이 찾아오는 명징하면서도 이상한 기류를 포착할 수 있는 능력 같은 것 말이다. 일기처럼 보이지만 일기는 아닌 글, 한 발 떨어져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힘. 26명의 작가가 쓴 41편의 산문을 수록한 『슬픈 인간』을 읽으면서 산문이란 이렇게 아름답고 강렬할 수 있구나 생각했다. 나쓰메 소세키, 미야자와 겐지, 다자이 오사무를 제외하면 내게는 이름조차 낯선 작가들의 글이었다. 어떤 산문을 읽게 될지 알지 못하는 즐거움이 있다고 할까. 나쓰메 소세키의 경우 『긴 봄날의 소품』에서 만난 산문과는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담백한 유머라고 말하고 싶다.

 26명의 작가의 산문은 각각 많게는 세 편, 적게는 한 편을 읽을 수 있는데 작가의 이력을 함께 소개하고 있어 산문의 배경이나 시대적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전쟁의 상흔이나 생활고, 우울증에 대한 것들이 그러하다. 글을 통해 그 시대를 상상하고 작가의 불안을 읽는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인지 짐작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글이라는 매개체가 있어 조금이나마 그 장면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산문은 그 안에 담긴 고통을 상쇄시킬 정도로 아름다웠고 작가의 심리를 고스란히 묘사한 글은 걱정을 불러왔다.


나는 길을 걸으며 내 발소리가 고요하고 차분하다고 느낀다. 전찻길을 가로질러 폭 일 미터의 골목길로 들어서면, 양쪽 높은 건물 위로 보이는 푸른 하늘이 선명하게 아름답다. 정말 이렇게 예쁘고 파란 하늘이 거리에 존재하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거의 굶어 죽을 지경으로 불판 폐허를 비틀비틀 걸아 다녔을 때, 그때도 저 높은 하늘에서 살짝 새나온 이상하리만치 맑고 깨끗한 빛이 있었다. 내가 살아남았다는 것,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 어떤 힘이 내게 그 사실을 격렬하게 상기시켰다. 나는 나의 발소리를 나의 숨소리마냥 하나둘 세고 있다. (하라 다미키 「불의 아이」중에서, 318쪽)

 분명 보통의 일상인데 감탄을 자아내는 산문이 많았다. 그것은 작가만이 쓸 수 있는 고유한 능력일까. 아니면 쓰고 또 쓰면 가능한 것일까. 똑같은 상황이라면 나는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다자이 오사무 「온천溫泉」과 같은 짧은 글은 온천이 아니더라도 욕조에서의 기분을 써 보거나 마사무네 하쿠초의「꽃보다 경단」처럼 꽃 피는 풍경이나 추억을 묘사해도 좋을 듯하다. 26명의 작가의 글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기쁨, 치열한 아름다움과 함께 슬픈 인간의 초상이 가득하다.


 아름다운 물이다, 그래, 흡사 수정을 녹인 듯 아름답다, 나의 몸을 담그기에 어쩐지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탕으로 들어간다, 졸졸 물이 넘쳤다, 아까운 짓을 했구나, 탕 안에 찰랑찰랑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 기분 좋다, 햇살이 불투명 유리 너머로 쏟아져 물 밑까지 비추었다. 물은 다시 잠잠해져 나의 몸을 감쌌다. 정말로 밝다, 밖에서 참새가 짹짹 울었다. 무심코 밝은 창문 쪽을 바라본다, 뜰에서 드리운 나뭇잎 그림자가 불투명 유리에 검은 그림을 그렸다. 바슬바슬 미미하게 움직이고 있다. 나뭇잎 한 장이 팔랑팔랑 떨어졌다…… 괜스레 쓸쓸했다. 야릇하게 몸이 나른해졌다. 물에서 하얀 수증기가 느릿느릿 올라온다, 손으로 앞으로 쭉 뻗다 문득 손톱을 봤다, 많이 길었네, 잘라야겠어. 정말이지 고요하다, 나의 몸도 영혼도 수증기와 함께 천상으로 피어오를 듯한 기분이 들었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다자이 오사무 「온천溫泉」전문, 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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