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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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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강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27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60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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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7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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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13 9788954647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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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저자 소개

저자 : 김이강
1982년 여수에서 태어나 바다 보며 자랐다. 2006년 겨울 『시와세계』로 등단했다.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아직 그곳에서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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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황홀과 불안 사이에서 묻다,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환상과 일상, 그리고 꿈과 깸


2006년 데뷔 이후, 동시대 젊은 시인들과 한국 시단의 새로운 지형도를 그리며 주목을 받아온 김이강 시인의 첫 시집이 출간되었다. 데뷔 6년 만에 펴내는 첫 시집이라 출간 소식을 기다린 문단 안팎의 시선들이 많았을 터. 이 첫 시집은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높아진 기대감에 충분히 값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각각 발표된 김이강 시인의 시에서 느껴졌던 신선함과 새로움을 넘어서서, 이 젊은 시인이 첫 시집을 내기까지 짧지만은 않은 시간 동안 차곡차곡 다져온 자신만의 시 세계가 한 권의 시집 안에 완성도 있게 그러모아져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집의 서시인 「소독차가 사라진 거리」는 시인의 유년 시절에 대한 이야기처럼 읽힌다. 유년 시절에 겪은 몇몇 친구의 죽음과 남겨진 아이들. 잠자리의 투명한 날개를 뜯어내며 투명해지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는 아이들은, 투명하게 사라지는 것과 현실에서 채집되어 남겨지는 것 사이에서 황홀하고 불안한 상상을 한다. 강가에서 익사하여 결코 돌아오지 않는 친구들이야말로 투명해지는 데 성공한 것일지 모른다는 불순한 상상 같은 것. 세계로부터 빠져나가 돌아오지 않는 투명함에 대한 욕망과, 반대로 그런 황홀하고 불안한 상태에서 건져져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것을 바라는 마음 사이에서 김이강 시인의 시적 환상은 시작된다.

방과 후에는 곤충채집을 나섰지만
잡히는 건 언제나 투명하고 힘없는 잠자리였다

우리는 강가에 모여 잠자리 날개를 하나씩 뜯어내며
투명해지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다
익사한 아이들의 몸처럼 커다란 투명
정환이네 아버지 몸처럼 노랗게 부풀어오르는
투명 직전의 투명

우리는 몇 번씩 실종되고 몇 번씩 채집되었다가
강가에 모여 저능아가 되기를 꿈꾸는 날도 있었지만
우리의 가족력이란 깊고 오랜 것이라서
자정 넘어 나무들은 로켓처럼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가
아침이면 정확히 찾지해 있곤 했다

몇 번의 추모식과 몇 번의 장례식
몇 개의 농담들이 오후를 통과해가고
낮잠에서 깨어나면 가구 없는 방처럼 싸늘해졌다
우리에게 알리바이가 필요했다

방과 후면 우리는 소독차를 따라다니며 소문을 퍼뜨리고
우체부를 따라다니며 편지들을 도둑지랗고
강가에 쌓인 죽은 잠자리들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는 드디어 형식적 무죄에 도달할 것 같았고
우리는 끝내 자정이 되면 발에 흙을 묻힌 채 잠이 들었다

몇 번의 사랑과 몇 번의 침몰도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가 세상 끝 어딘가에서 착지하고
-「소독차가 사라진 거리」 전문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권희철은 “어느 쪽으로도 확정될 수 없는, 황홀과 불안의 모호한 출렁거림. 그것이 김이강의 시에 고르게 번져 있는 감정의 물결이다”라고 했거니와, 이번 시집에서 유독 질문들이 눈에 많이 띄는 이유는 아마 그 모호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인은 어쩌면 하고 싶은 말이 없는지도,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알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비단 시인뿐 아니라 오늘날의 세대의 특징인 듯도 하다. 시인은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말하고 싶지도 않고 알 수도 없는 말들을 그저 날것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그것은 곧 또다른 황홀과 불안을 낳는다. 환상과 일상을 꿈과 깸의 상태로 그리면서, 시인은 황홀과 불안 사이에서 동요를 일으킨다. 그리고 모호함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그 동요는 환상과 일상, 꿈과 깸의 경계에 선 시인에게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남긴다.

사실 나는 어딜 향해 이야기하는지 아직 정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도무지 모르겠어요 포도는 너무 예뻐요 농약이 묻어 있을까봐 흐르는 물에 오래 씻은 컴컴한 보랏빛 포도 포도는 신사임당을 떵올리게 해요 치마폭에 그려진 포도 어릴 적 삽화에서 보았거든요 신사임당을 쓰자마자 갑자기 불안해져요 포도 물은 잘 안 빠지잖아요 포도를 먹다가 옷에 흘리면 안 되는데 물이 안 빠지면 안 되는데 그런 걱정 없이 포도를 먹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내일 일어날 걱정도 없이 술을 먹는다면 좋겠어요 술은 아무 죄도 없고 그렇다면 도무지 어디 가서 미워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내 과거도 미래도 아무런 죄가 없는걸요
-「12월주의자들」 부분

까매질까 자꾸만 왜 꿈은 나를 깨울까 검은 문을 열고 들어간 너는 왜 나오지 않는 걸까 아빠는 왜 자꾸만 밖에서 초인종을 누르면서 방에서 잠을 잘까 할아버지는 왜 물이 흐르는 자리에 누워 계셨을까 새벽에 버드나무는 검은 머리칼을 늘어뜨리고 있었는데 버드나무는 아무렇게나 꺾꽂이해두어도 잘 자라난다는데 얌전히 물을 주던 사람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누구일까 너는 자꾸만 꿈에 나타나는,
-「모니끄네 집」 부분

하지만 김이강의 이러한 모호함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 그것은 타인을 향한 벽을 세우지 않는 일종의 천진난만함이다. 그렇다고 시인의 시선이 늘 밝은 곳을 향해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단단하게 닫혀 있는 돌멩이를 향해 계속해서 “안녕?”이라고 말을 거는 것은 다름아닌 단단한 껍질을 뚫고 나온 애벌레인 것처럼, 시인은 슬픔과 비극을 딛고 그 위에서 소리 높여 “안녕”이라 손을 흔드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감추어두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본질. 김이강의 시는 그런 것이 아닐까. 그것이 또다른 슬픔과 비극을 불러올지라도.
시인은 그것은 다른 말로 “유머”라고도 부른다.

나는 기억이 없지만
아무에게나 인사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그래도 나는 안녕이라는 말을 좋아하니까
가끔은 안녕 하고 말겠지
가끔은 앞으로 뒤로 걷다가
내가 밀쳐내고 나온 저 물속을
기억하고 말겠지
나는 머리칼에 엉켜 붙은 풀들을 하나씩 떼어낸다
떨어져나간 수초들이 조금씩 그리워지는 것 같았다
얼어붙은 발걸음들이 조금씩 선명한 슬픔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추문처럼 사람들은 자꾸만 되살아나는 것일까
-「투과하는 세기」 부분

하루 종일 졸음을 참는 일은
하루 종일 조는 일과 같을까 다를까
졸음과 안 졸음 사이에서
고민과 안 고민은 와이어에 매달려 있는데
모든 것이 순조롭다면
어딘가에 우리의 유머가 남았다는 뜻일까
-「우리에겐 아직 유머가 있다」 부분

어쩌면 첫 시집의 제목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는 시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김이강 시가 펼쳐놓은 시적 환상, 그 황홀과 불안 사이의 모호함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우리가 시인에게 건네는 물음일지도 모른다.

시인의 말

해수욕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들판을 지나 걷는다.
아주 단순하게
끝없이 걸어가는 일.

등신대로 살아간다는 것.
평평하다는 건 그런 걸까.

2012년 9월
김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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