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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7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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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15.84MB 파일/용량 안내
글자 수/페이지 수 약 2만자, 약 0.7만 단어, A4 약 13쪽 글자 수/페이지 수 안내
ISBN13 9788954647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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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저자 소개

저자 : 성미정
1967년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났다. 1994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대머리와의 사랑』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상상 한 상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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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 p.10-11

출판사 리뷰

1994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한 이후 우리 시단에 또 하나의 새로움으로 자리해온 성미정, 그녀의 신작 시집을 펴낸다. 올해로 데뷔 17년, 그사이 네 권의 시집을 펴낸 것이니 근 4년 만에 한 권씩은 새 부대에 새 술을 담아온 참이다. 그리 과할 것도 그리 부족할 것도 없다 싶다. 이번 새 시집에 담긴 시가 52편이니 어림잡아 지금껏 이백 편에 가까운 시를 썼겠구나, 싶은 계산이 나오는데 따지고 보면 한 달에 한 편쯤은 된다. 한 달에 한 번쯤은 “머리 속 언어의 알에 뭔가 수상한 낌새가 감지되”었을 터, “이게 그냥 곤계란인지 아님 뭔가 톡 튀어나올 건지 밤새도록 지켜”봤을 터, 그러다가 “여보세요 그 안에 누가 있나요 노란 솜털의 비약비약 울기 좋아하는 시인 혹시 거기 있나요” 두드려보기도 했었을 터(「나는 비약을 사랑하는 시인의 알에 불과할 뿐」), 품고 있는 알에 실금조차 안 갔다 해도 어쩌랴, 사실 이렇게 관심으로 두드리고 듣고 느끼려하는 과정이 죄다 시인걸. 그렇다. 어찌 보면 이 시집은 올해로 ‘마흔 다섯’이 아니라 ‘마음 다섯’이 된 시인 성미정의 여전한 성장일기이며 관찰일기라 할 수 있겠다. 나이는 먹는 대로 자라는 게 아니지만 마음은 먹는 대로 자라는 거니까.

성미정이 펴낸 시집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시집마다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이들을 모아보니 오롯이 한 여자의 역사다. 첫 시집『대머리와의 사랑』에서 소녀였고 처녀였던 그녀가 두번째 시집『사랑은 야채 같은 것』에서 연애와 결혼을 경험하며 살림하는 아내가 되더니 세번째 시집 『상상 한 상자』에서 ‘재경’이라는 아들의 엄마로 불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네번째 시집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에서 그녀는 포지션을 어떻게 취했을까. 물론 아내이며 엄마의 직함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은 앞선 시편들 때와 같으나 추가된 위치가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이가 들어 쓴 김치를 담글 수밖에 없는 예순일곱의 엄마, 이명클리닉에 다니는 일흔넷의 아빠, 이 두 분의 ‘둘째 딸년’이란 자리다.

만만하게 딸내미라고 아침 댓바람부터
전화해서 간밤에 영감님하고 한바탕
한 얘기 고해바칠라치면
엄마 나 지금
금쪽 같은 내 새끼 끼고 앉아 밥 먹거든
엄마 나 지금
개 잘난 글 쓰고 있거든
톡 전화 끊어버리고
-「딱한 사랑의 밥」중에서

엄마가 담근 새콤한 김장 김치 김장독에서 막 꺼내 살짝 살얼음이 낀 김치 한 보시기에 따뜻한 밥만 있으면 겨우내 반찬 걱정 없던 기억들은 친정집 뒤란의 장독대와 함께 사라져버렸는데 엄마는 지치지도 않고 매년 김치를 담고 있다 육십칠 년 성상(星霜) 엄마의 인생이 쓰디써 엄마 손에 남은 건 쓴맛뿐인 듯한데 그래서 김치 담그는 날이면 행여 어린 새끼들 눈 매울까봐 애태우며 김치 속 버무리느라 더 새빨개지던 그 손으로 거둔 딸년 둘도 외면해버린 김치를 엄마는 매년 쓰고 있다
-「엄마의 김치가 오래도 썼다」 중에서

아이가 제법 자라고 보니 그제야 늙은 부모가 눈에 밟히더라는 우리 모두의 때늦은 후회를 시인도 아마 요즈음 겪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시인의 재주는 슬픔을 눈물 대신 일종의 농담이나 펀(fun)으로 승화시키는 데 있다. 꽤나 심각한 상황에서도 시인은 주위를 환기시키고 짐짓 딴청을 부리듯 농을 칠 줄 안다. 뭔가를 툭, 하니 걸고넘어지는 것이다. 더 쓸쓸해지지 않도록, 더 절망하지 않도록.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시인인 남편과 함께 장난감 가게를 운영하며 사는 시인에게 동화는 상상 그 너머의 무지갯빛 신세계라기보다 생활 그 자체다. 시인이 자주 시 속으로 끌어들여 풀어놓는 동화나 그 속내의 주인공들은 그러므로 이상이 아니라 현실인 셈이다. 복잡다단한 자본주의 세상, 그것도 서울 강남의 한복판에서 빈티지 장난감을 팔며 사는 시인에게 어쩌면 시는 팔지 않고 자기들이 가지고 놀 수 있는 유일한 장난감이 아닐까 싶다. “더이상 신용대출을 해줄 수 없다는 은행에서” “우리의 장난감 가게는 그들의 노회한 눈에는 애들 장난처럼 비치겠지”만 “가을이면 은행나무가 유난히 구린내를 풍기는 이유를 이제는 조금 알 듯도 싶어”(「늙가을, 은행 앞에서」) 시인은 시를 빌려 이렇게 말한다. “여보 우린 그저 조그맣게 살자 더 넓은 평수로 갈아타려고 아등바등 살지 말고 자가용 같은 거 끌지 말고 나는 게송 같은 시 절대로 쓰지 말고 그렇게 살자 (……) 겨자씨보다 조금만 조금만 더 크게 살자”라고.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늘 멀리 있”다는 걸 너무도 잘 아는 시인, 그래서 기대할 것도 없고 기대하지도 않고 그저 어린 아들과 함께 아들의 눈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살아가는 이 시인도 이제 나이를 먹나보다. “거기에 흰 털이 났습니다”라는 고백이 이렇게 이어지니 말이다.

(……)
거기도 거기에 흰 털이 났나요
이미 거기가 흰 털로 뒤덮인 분들이 들으면
흰 털이면 어떻고 빨간 털이면 대수냐
흰 털이나마 소복이 덮여 있으면 따숩고
고마운 줄 알거라 머리털 빠지듯 그 털도
죄 빠지고 맨송맨송 민둥산 되고 나면
허 참 그 얼마나 허전 시린 일인 줄 아는가
-「거기 흰 털이 났습니다」 중에서

시인의 시 속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무상’ ‘퇴화’ ‘기억방’ 등의 언저리에서 맴돈다. 그러나 이 자각이 한편으로는 참 반갑게 느껴진다. 한 여자의 역사로 돌고 돌다 이제야 비로소 시인이 마주한 것이 바로 자신의 얼굴, 시의 생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시인의 변태일지도 모르는” 나, “오늘부터는 김치를 썰다 시를 쓰는 거야 걸레로 방바닥을 닦다가 시를 쓰는 거야 장딴지가 탄탄한 시를 쓰기 위해 숨이 차도록 달리는 거야”(「그래 의자가 너무 많았어」)라고 했으니, “쓰자마자 지워져버려도 웃자마자 눈물이 맺혀도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 시인은 시를 쓸 것이다. 시인과 고통은 항상 그렇게 엇박자의 코미디 콤비이므로, 우리 사는 동안 고통은 없을 수 없고 그 고통의 콤비가 시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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