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위한 한 줌의 언어를 온몸으로 갈구하며……
마침내, 간신히 희망!
서울의 우울
쇄빙의 아침이다
오늘 하루도 얼음장을 깨고 쇄빙의 시간 속으로 나간다
갈비뼈 있는 데서 피가 흐른다
쇄빙의 칼날 밑에 오늘도 네 사람의 학생과
한 사람의 교수가 자살했다
면류관 같은 얼음칼이 쇄골에 쿡쿡 박힌다
속이 차디찬 사과의 반쪽이 떨어져 있다
차바퀴가 하얀 사과의 속살을 뭉개고 지나간다
반쪽 가슴의 사과는 아프다
조간신문이 내 골 속에 떨어진다
돈 돈 돈…… 하고 우르르 몰려간다
나는 시인이다
연탄재를 버리려고
연탄집게를 들고 영동대로에 서 있다
버릴 곳이 없다
얼어붙은 입이 자꾸 구겨지며 피가 터진다
-「서울의 우울 3」 부분
이번 시집에는 연작시들이 많아 시선을 끈다. 그중에서도 2부의 주를 이루고 있는 「서울의 우울」 연작은 날카로운 현실 분석과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연민 가득한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유독 매서운 추위가 유난히 일찍 찾아온 이번 겨울. 그러나 이 겨울의 추위가 무색하게 서울은 이미 오래전부터 얼어붙어 있었다. 자신의 이름으로 사는 것이 힘들어 저마다 고개를 숙이며 살고(「서울의 우울 1」) 있는 가운데, “서울은 날이면 날마다 유격전이다”(「서울의 우울 2」). “어린 소녀를 따라가는 성추행범”과 “성폭행하고 손목까지 잘라 유리컵에 꽂아놓는 미친놈”과 “손바닥 뒤집는 거짓말”이 너무도 많은 도시(「서울의 우울 5」). 가공할 만한 범죄물 연속극 수준의 이곳에서 시인은 그것을 피해 따뜻한 곳으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으로 걸어들어가 비극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얼음을 깨고, 부서진 얼음칼이 “쇄골에 쿡쿡 박”혀도. 그녀는 시인이기 때문에.
아이스링크에 누워 있는 여자의 목 위로 스케이트 날이 지나갈 것만 같은 삼엄한 계절이다. 새들조차 하늘 안에서 얼어붙을 것만 같다. 사람들은 추위를 피해 종종걸음 치며 따뜻한 곳을 찾아가지만, 김승희는 얼음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왜냐하면 시인은 인간이 아니니까. 시인은 늘 “빙하를 뚫고 죽음을 살리려는 오르페우스”의 애인이니까. “인간보다도 못한” 저승의 악사이니까. _허윤진, 해설 「빙하에 내리는 비」에서
시인 김승희의 눈과 가슴에 맺히는 사건은 무엇보다 죽음이다. 잘못도 없이 죽임을 당하거나, 마찬가지로 죽음으로 내몰린, 하여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러나 어느새 아무 일 없는 듯 묻혀버린 장자연에 대해 쓸 때에는 “황폐한 도성에서 죽어가는 어린 것들을 보며 창자가 찢어지고 피가 끓는 극한 고통을 느꼈던 예레미야의 탄식이 이 시집에 황혼처럼 내려앉아 있”(허윤진)는 듯하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우리는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할까. 연탄집게를 든 초라한 모습으로 대로에서 할 일을, 갈 곳을 잃고 만 시인의 등에 대고 살며시 묻는다.
한국어의 이삭 줍기
시인의 말에서 시인은 “폐허에서 쓰러지기 직전에 가끔은 말의 에피파니(epiphany)를 꿈꾸기도 했다. 신은 시인에게 언어와 언어의 꿈을 주었기에. 결국은 말의 에피파니가 부서진 세계와 영혼의 병을 구원하는 것일까? 거기에 그리움이 있었고, 희망의 빈혈로 너무 아플 때면 우리말을 부여잡고 우리말에 기대어 울어보기도 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얼어붙고 어두운 세상에서 불안과 죽음들이 빚어놓은 비극을 목격한 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언어에 기대어 울어보는 일. 그렇게 ‘희망’을 조심스럽게 꺼내보는 일을 테다.
1부를 수놓고 있는 ‘~라는 말’로 표현된 제목의 시들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인이 담아내는 ‘하물며’ ‘부디’ ‘아직’ ‘이미’ ‘어쨌든’ ‘비로소’ ‘아랑곳없이’ ‘저기요’ ‘아~’ 등의 말은 문장에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지만 적절한 활기를 부여하며 의미를 풍성하게 하기 위한 부사와 감탄사이다. 이번 시집의 해설은 맡은 허윤진은 “명사와 형용사보다는 동사와 부사가 언어의 정취를 결정하는 한국어의 세계에서 부사는 동사를 단장하는 마지막 손길 같은 것이”며, “시작(詩作)에 있어서 한 번도 탐미주의자가 아닌 적이 없었던 김승희에게, 부사는 헤어짐의 순간까지 손을 놓고 싶지 않은 연인과 다를 바가 없다”고 설파한다. 그리고 이 언어의 이삭을 줍기 위해 “국어사전의 귀퉁이에서, 소박하게 낡아가는 단어들 앞에서 기꺼이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는 이 시인의 자세”와 “긴 시간 동안 한국어를 갱신해온 이 놀라운 시인이 한낱 단어들 앞에서 허리를 숙이고 있는 풍경”을 역설한다.
시인은 자신을 구원할 한 줌의 언어를 온몸으로 갈구하는 사람이다. 언어의 섬광이 자신의 골수와 영혼을 꿰뚫고 뒤흔들어 영혼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때까지, 도래할 말을 기다리며 눈물 젖은 얼굴로 온밤을 세우는 사람이다. 수혈되지 않는 언어를 기다리며 매일의 빈혈을 가까스로 버티는 사람이다. 그녀는 상에서 떨어진 음식 부스러기 같은 말들을 제발, 부디, 달라고, 부끄러움 없이 손을 내밀고 신에게 언어를 구걸한다. 부지불식간에 언어의 아사(餓死)를 겪고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하여._허윤진, 해설 「빙하에 내리는 비」에서
간신히, 희망!
얼음처럼 차가운 현실의 냉혹함. 그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시인의 절박함이 이끌어낸 언어들. 그리하여 간신히, 희망을 희망해보는 오늘. “오히려 그 희망 때문에/ 무섭도록 더 외로운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시인은 “도망치고 싶고 그만두고 싶어도/ 이유 없이 나누어주는 저 찬란한 햇빛, 아까워/ 물에 피가 번지듯……/ 희망과 나,/ 희망은 종신형이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어쩔 수 없이, “희망이 외롭다”((「희망이 외롭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