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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한 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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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민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06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24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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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7년 11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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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수/페이지 수 약 4.8만자, 약 1.1만 단어, A4 약 31쪽 글자 수/페이지 수 안내
ISBN13 9788954647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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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저자 소개

저자 : 여성민
1967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났다. 안양대학교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2010년 『세계의문학』에 소설이, 201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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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불가능하고 가능하다

등단 당시 “반복되는 말과 말로 공간을 이루고 거기에 막연과 아연의 풍경들을 자리하게 해, 시 자체가 하나의 사건을 이루고 있”다는 평을 받은 것처럼, 여성민은 반복되는 언어로 섬세하게 구조를 쌓아올린다. 때문에 그의 시는 견고하고 촘촘하지만 동시에 계속해서 변주가 가능하다.

이것이 너의 슬픔이구나 이 딱딱한 것이 가끔 너를 안으며 생각한다

이것은 플라스틱이다

몸의 안쪽을 열 때마다 딱딱해지는 슬프고 아름다운

플라스틱

하지만 네가 부엉이라고 말해서 나는 운다

피와 부엉이 그런 것은 불가능한 슬픔 종이와 철사 인디언보다 부드러운 것
그런 것을 떠올리면 슬픔은 가능하다

지금은 따뜻한 저녁밥을 생각한다
손으로 밥그릇을 만져보는 일은 부엉이를 더듬는 일 불가능한 감각
―「불가능한 슬픔」 부분

시집의 첫번째 시에서도 화자는 “이것이 너의 슬픔이구나” 하고 명확하게 대상을 정의한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지시는 시 속에서 계속 바뀐다. 눈을 가리고 손으로 대상을 만지는 것에 여성민의 시를 비유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너’의 몸속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그리고 그 안의 슬픔을 만지는데 그것은 딱딱한 감각으로 내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것은 쥐는 사람이나 시간에 따라 다른 감각으로 잡힐 수 있다. 그 사실을 아는 ‘나’는 슬프며, 이 슬픔 역시 플라스틱이나 부엉이 등의 무엇이 될 수 있고, 밥그릇 같은 어떤 사물을 만져보는 것은 무형의 슬픔을 만지는 것처럼 실은 “불가능한 감각”일지도 모른다.

병에는 예쁜 장총들을 꽂아놓지
그것을 꽃병의 감정이라고 부르는데
너는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하고
나는 안으로부터 금지되고 싶어하고
꽃병엔 꽃이 없어
꽃병 안에는 꽃보다 더 어두운 것이 있지
나는 불온한 조짐들을 찾아다니지
―「꽃병의 감정」부분

감각은 실재인 동시에 파편적이다. 그리하여 가능한 동시에 불가능하다. 그것이 부분적인 사실이라는 것은 다른 감각의 방식이 더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여성민의 말은 분명하게 계속되지만 그것의 속성은 시시때때로 바뀌고, 독자들은 시집을 읽을수록 불가능한 것이 대상을 말하는 언어인지, 언어로 말하려는 속성인지 헷갈리게 된다. 확언하지만 확신할 수 없는 경계 지점에서 여성민의 시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에로틱한” 그 무엇이 된다.

투명한 틈새들

여성민의 변주는 대상뿐만이 아니라 시 안에서 구축하는 공간에서도 일어난다. 시인이 선뜻 손을 집어넣어 대상을 집는 곳은 ‘너’가 속해 있는 타인들의 공간, 약속된 언어 구조로 이루어진 세계이다. 투명한 유리로 만든 공간처럼 그곳은 들어갈 수는 없지만 은밀하게 안을 들여다볼 수는 있고, 조각난 타일로 만든 것처럼 틈새가 가득해 듣거나 만질 수도 있다.

손과 손이 맞닿는 순간의 일
그러니까 정글의 국경은 사건이다
언젠가 한번 정글을 여행한 적이 있다
정글을 걸으며 사람의 몸에서 먼저 사라지는 것은 말이다
우리는 느낌을 확장한다
―「연애의 국경」 부분

여성민의 시는 하나의 점, 하나의 화자, 하나의 대상에서 시작하지만 이 공간을 통해 그것들이 가닿는 곳은 온몸과 온 감각이다. “플룻을 부는 여자의 입술”처럼 감각은 분명하고, 이를 풀어낸 구조인 “플롯”은 “은밀”하게 순간적으로 벌어진다. 틈새 사이로 파고드는 말과 생각의 뻗어남을 따라 여성민은 미묘한 감각의 확장을 쟁취한다.

하나도 모르거나 완벽하게 다 아는 세계는 막연하거나 재미가 없다. 알 듯 말 듯한 세계, 간접적으로 접해왔던 외국과 같은 공간이 에로틱한 것이다. 숨어 있는 듯 존재하는, 생각하면 떠나버리는, 떠올랐다가 금세 사라져버리는 이미지들이 에로틱한 세계를 조직하고 에로틱한 인물을 재현하는 것이다.
―오은 해설, 「사라지는 세계와 살아나는 이야기」中

이 확장 속에서 하나의 의미만 지니고 있던 언어의 방은 좁아지고 소멸된다. 해설을 맡은 오은 시인이 이 사라짐을 “에로틱한 세계를 조직하고 에로틱한 인물을 재현”한다고 말한 것처럼, 여성민의 공간은 사라지면서 에로틱한 무엇, 바로 시적인 것들로 다시 바뀐다.

끝난 줄 알았는데 안 끝난, 말의 뼈
이 시집의 각 부 제목은 “보라색 톰” “에로틱한 찰리” “모호한 스티븐”이다. 그중 “보라색 톰”과 “에로틱한 찰리”는 각 부 안에서 한 편의 시로 등장한다. 하지만 3부의 “모호한 스티븐”은 「모호한 스티븐 1」과 「모호한 스티븐 2」로 나누어져 있다. 노련한 시인이 이렇게 시집을 구성한 데에는 아마 어떤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이 의도의 힌트는 시집 곳곳에 등장한다. “무엇이 오는 방식”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해 “길의 끝에서 아무것도 오지 않는”으로 끝나거나, “하지만”으로 시작해 “하지만”으로 끝나는 거나(「보라색 톰」), “프랑크푸르트로 간다”에서 시작해 “나는 베를린으로 간다 너를 지나 밤의 숲이 오는 쪽, 나는 더블린으로 간다”(「슬픔이 오는쪽」) 등이 그러하다. 여성민의 시들은 끝과 시작이 분리되지 않는다. 그의 시는 끝남과 동시에 다시 시작된다.

저무는, 집은 저무는 것들을 가두고 있어서 저무네 저물도록, 노래를 기다리던 후렴이 노래를 후려치고 저무는, 집에는 아직 당도한 문장과 이미 당도하지 않은 문장이 있네 다, 저무네
―「저무는, 집」부분

여성민이 확장해나가는 ‘시의 집’에는 “아직 당도한 문장과 이미 당도하지 않은 문장”이 모두 있다. 이는 ‘이미 당도한 문장’과 ‘아직 당도하지 않은 문장’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나의 말, 하나의 공간은 여성민의 언어를 담아두기에는 너무 좁고 아득하다.
여성민은 말의 뼈를 가지고 논다. 타일을 쌓듯, 레고를 조립하듯 말을 가지고 그때그때 다른 것들을 구성해 보여준다. 그러니 여성민을 따라 시의 은밀한 공간 속으로 손을 넣어보자. 분명하게 알 수는 없으나 분명하게 느껴지는 말의 뼈가 잡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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