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의 빙하가 사라지는 것이 자연재앙이듯 중산층 붕괴는 사회재앙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생성되는 데는 긴 세월이 걸리지만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다시 복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무너지는 중산층, 빅뱅이 필요하다!
중산층이 붕괴하고 있다. 비정규직이 800만에 이르고, 양질의 일자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일자리를 구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등 삶에서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들조차 힘겹고 버거운 일이 되어버렸을 정도로 보통 사람들의 삶은 벼랑 끝에 이르러 있다.
저자 추미애는 이 책《중산층 빅뱅》에서 무엇이 이처럼 심각한 중산층의 붕괴를 초래하고 있는지 그 구조적인 원인과 현상을 진단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한다. 경쟁과 성장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를 대체하는 새로운 경제질서의 구축을 통해 한숨소리로 가득한 서민들의 삶에 다시 웃음소리를 찾아주자는 것이다.
무너진 중산층의 재건에는 빅뱅과도 같은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과 사회, 경제 구조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 책의 제목이 ‘중산층 빅뱅’인 이유다.
한국의 중산층은 왜 몰락하고 있는가
저자는 중산층 몰락의 원인과 현상을 분석하고 진단하기에 앞서 한국의 경제발전과 중산층 형성 과정을 살핀다. 국가는 경제발전을 위해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정책을 오랫동안 펼쳤다. 냉전도 한국의 경제발전에 한몫했다. 미국과 서방 선진국들은 남북분단으로 냉전의 최전선에 있는 한국에 매우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냉전에서 이기는 데 있어서 한국의 경제성장과 발전은 체제 경쟁의 필수적인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경제는 급속도로 성장했지만 정치사회적 부문에는 희생이 뒤따랐다. 독재 정권 하의 국가가 성장 일변도의 경제정책을 펼치는 동안 산업화를 통해 중산층은 점점 두터워졌다. 하지만 성장의 그늘 아래서 민주주의와 노동인권은 무시되었고 농업 부문은 국가정책에서 소외되었다.
이제 이 모든 것이 바뀌었거나 바뀌고 있다. 냉전에서 승리를 거둔 마당에 미국이 무조건적으로 한국을 도와줄 이유는 없어졌다. 오히려 미국과 서방 선진국들은 한국을 경쟁자로 여기게 되었다. 또한 경제성장의 그늘 아래 억눌려 있던 민주주의와 노동인권에 대한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변화는 외환위기 이후 더욱 가속화되었다. IMF 이후 급속하게 도입된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가 일으킨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산층은 다시 엷어지고 있다. 중산층이 위기에 빠진 것이다.
이와 같이 저자 추미애는 현재 중산층이 겪고 있는 위기의 원인을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와 세계화에서 찾는다. 하지만 저자가 세계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만은 아니다. 세계화에는 두 얼굴이 있다. 먼저 신문명으로서의 세계화다. 이러한 세계화는 개인을 세계의 주역으로 만들어주며 문학과 학문 간의 경계를 허물어 서로 조화롭게 융화될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또 다른 세계화가 있다. 바로 물신적 세계화다. 물신적 세계화는 시장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대자본에게 무한 자유를 허용하는 곳에 존재한다. 국가가 이러한 물신적 세계화가 일으키는 폐단을 경계하고 다스리려고 하지 않으면, 대자본은 국가로부터 경제정책의 수단을 빼앗고, 더 많은 이익을 위해 근로자를 비정규직으로 전환해 더 많은 국민을 가난하게 만들며, 시장을 독점해 서민경제를 파탄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만다.
따라서 저자는 한미 FTA로 인해 누가 혹독한 대가를 치를지에 대해 분명히 생각하고 넘어갈 것을 요구한다. 미국은 한미 FTA를 통해 자국이 절대우위에 있는 지적재산권을 강력하게 보호하려 하고 있다. 자동차와 섬유 분야 등에서의 관세 인하 등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 눈이 멀어 한미 FTA가 이대로 수정 없이 체결된다면, 이후 벌어질 사태는 불 보듯 뻔하다. 미국은 지적재산권을 무기로 국내 시장을 독점하려 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의 사회적 후생은 감소하고, 지역경제와 문화는 초토화될 가능성이 크다.
저자 추미애는 우리에게 맞는 방식대로 우리의 강점은 살리고 약점은 보완하면서 신자유주의 이후의 세계경제 질서에 맞는 한국식 포스트 세계화 모델을 발굴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어렵게 얻어낸 민주화와 민주화의 기반인 중산층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시장경제를 지속하게 하는 모델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세계화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의 실패와 전환을 요구하는 위기의 대한민국
하지만 중산층의 몰락에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와 세계화 말고도 또 다른 원인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정치의 실패다. 우리나라보다 세계화를 더 일찍 받아들였던 그 어떤 나라들뢺다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비율이 훨씬 더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정치의 실패를 여실히 보여준다. 세계화를 받아들인 나라들 가운데 노동권을 기업에 일임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 말고는 단 한 나라도 없다.
IMF 당시 기업을 살리기 위해 막대한 공적자금을 쏟아 부었던 정부는 이후로도 기업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대기업우선정책에만 매달려왔다. 하지만 대기업들이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사이 서민들의 삶은 오히려 갈수록 어려워졌다. 임금이 삭감되고, 비정규직이 양산되었으며, 명퇴를 당하거나 조기 퇴직한 근로자들은 영세자영업자로 전락했다.
각종 통계는 이처럼 참담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하우스 푸어, 워킹 푸어, 스펙 푸어 등 온갖 푸어들이 양산되고 있고, 가계부채는 역대 최고치를 계속 경신하고 있다. 하우스 푸어는 108만 가구로 10가구 중 1가구꼴이고, 10가구 중 4가구는 상환 기간을 연장하지 않고는 빚을 갚을 여력이 없다. 반면 10대 대기업이 보유한 토지의 공시지가는 사상 처음으로 60조 원을 넘어섰고, 이들이 보유한 토지의 공시지가는 최근 3년 만에 50% 이상 올랐다. 재벌들 또한 실물투자보다 부동산투자에 더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성장부진의 원인은 저축이나 투자부족이 아니라 투기를 조장하는 토건정책에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고용 없는 성장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중산층 비중은 12%p 이상 줄어들었다. 중산층이 얇아지면 나라살림 또한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중산층이 힘들어지면 합리적인 정치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정치 또한 이념적으로 양극화하기 때문이다. 이는 경제위기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미국의 정치에서도 확인된다. 극단적 원리주의가 판을 치고, 오로지 표를 얻기 위한 표(票)퓰리즘이 만연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론가들과 정부의 주장과 달리, 트리클다운 효과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중소기업과 서민경제의 희생을 대가로 혜택을 본 대기업들은 이익을 나누지 않았다. 2010년 우리나라 5대 대기업의 매출액은 700조로, 국민총생산의 60%에 이른다. 그럼에도 이들 대기업이 전체 국세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단 3%에 불과할 뿐이다. 기업들은 벌어들인 수익을 계속 기업 내부에 쌓아두고 있다. 2002년에 180조였던 기업의 현금성 자산은 2009년 말 현재 400조 원을 훌쩍 넘어섰다. 반면 무려 800만에 달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적은 임금과 고용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560만 영세자영업자들이 처한 현실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기업은 갈수록 부자가 되고 있는데, 국민은 갈수록 가난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정치는 외면하거나 방치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중산층을 되살릴 것인가
저자는 욕망의 경제학에서 동행의 경제학으로의 전환을 촉구한다. 사회적인 존재인 인간은 더불어 살지 않으면 더불어 망하고 말 것이다. 인간의 욕망이 자연을 파괴하고 지구 온난화 등 자연재앙을 불러왔듯이, 신자유주의는 부를 축적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무제한으로 풀어놓음으로써 사회 구성원의 빈부격차를 심화시켜 사회적 재앙을 불러왔다. 이러한 양극화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인식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진보의 진화를 요구한다. 보수도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설득력과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대안을 내는 합리적 진보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진보정치가 무엇보다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은 빈곤층으로 전락해가는 중산층의 재건이다. 이를 위해 추미애는 두 가지 구체적인 정책 제안을 한다.
임금이 최고의 복지다 ― ‘공정 임금제’
첫 번째는 공정임금제의 도입이다. 그동안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원칙은 하나의 기업 울타리 안에서만 적용되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원칙에는 부작용이 많았고 사용자에 의해 악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공정임금제로 바꾸면 공정한 임금의 기준을 기업별이 아닌 사회적 기준에서 측정하게 됨으로써 고용자의 비정규직 사용 동기를 줄이고, 고용유연성과 근로안정성을 동시에 높이는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공정임금제는 이미 시행되고 있는 최저임금제와 다르다. 최저임금제는 근로자의 임금을 하향평준화하고 비정규직의 임금을 차별하는 구실로 잘못 이용되고 있다. 기업은 비정규직의 열악한 지위를 이용해 숙련된 근로자에게 최저임금만 지급하려는 경향이 있고 미숙련 근로자에게도 견습, 수습 등을 핑계로 최저임금도 주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공정임금제가 도입되면 최저임금제와 달리 비정규직의 직종, 직무, 숙련도에 따른 적정 임금 지급이 가능해질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공정한 종속 관계는 중소기업의 저임금을 유발하며 기업 생태계를 파괴한다. 하지만 임금의 사회적 기준을 제시하는 ‘공정임금제’를 도입해 불공정임금을 근원적으로 예방한다면, 기업 생태계는 건강해지고 이를 바탕으로 기업의 국제 경쟁력 또한 강화될 것이다. 공정임금 없이 선진국 진입은 요원하다.
중산층 되살리기 프로젝트 ― ‘두 배로 증식 중산층 통장’
두 번째는 ‘두 배로 증식 중산층 통장’을 만들어 중산층의 재활을 도와주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담겨 있다. 그동안 기업을 살리는 데만 쓰이는 줄로만 알았던 공적자금을 중산층을 살리는 데 직접 투입하자는 주장을 강력히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IMF 외환위기 당시 정부는 무려 170조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기업살리기에 나섰다. 과잉투자와 분식회계, 무분별한 단기 외채 도입 등으로 몇몇 기업들은 외환위기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결과는 공정하지 못했다. 대기업들은 정부의 도움으로 무너지지 않고 이후 더 크게 성장해갔던 반면, 아무런 잘못도 없는 기업들이 문을 닫고 성실한 근로자들은 대량실직 사태를 맞이해야 했기 때문이다. 잘못은 대기업이 저지르고 뒷감당은 국민들의 혈세로 하고도, 애꿎은 국민들만 희생된 셈이다.
저자는 이제 정책의 방향을 전환해야 할 때가 왔다고 말한다. 정책의 기조를 기업우선에서 가계우선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튼튼한 근로중산층이 부재한 사회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중산층 부활의 문제는 단지 서민경제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국가경제의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 것이다.
IMF 당시 금융기관과 기업들에 쏟아 부은 170조 원 가운데 미회수된 자금인 60조 원에 이른다. 저자는 ‘두배로 증식 중산층 통장’에 이 정도의 공적자금만 투입해도 600만 명의 근로 중산층을 육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소득 근로자 및 영세자영업자를 대상으로 매월 일정액을 5년에 걸쳐 불입하면 그만큼의 국가보조금을 추가로 지원하는 저축 제도를 만들자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인 플랜은 이렇다. 중위소득 월 320만 원 이하 근로가구 및 영세자영업자를 대상으로, 6년 동안 매년 100만 명씩 선정해 이러한 방식으로 이들이 최소 3,000만원에서 최대 5,000만원의 목돈을 형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 총 10년 동안 600만 명에 대한 지원을 마무리할 수 있다. 재원 또한 그동안의 감세정책을 폐지하거나 축소한다면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추미애는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의 본격적인 진입을 앞두고 수백만에 달하는 워킹 푸어 근로중산층을 개인의 불행으로 여기고 그들을 남겨둔 채 일부만 갈 수는 없다고 말한다. 모두가 동행할 수 있는 재출발의 시대를 여는 체제의 구축, 이것이 추미애가 생각하는 진보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