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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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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규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30일 리뷰 총점10.0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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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7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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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수/페이지 수 약 4.2만자, 약 0.7만 단어, A4 약 26쪽 글자 수/페이지 수 안내
ISBN13 9788954648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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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저자 소개 (1명)

1961년 경기 화성에서 태어났다. 199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 『밥그릇 경전』 『놈이었습니다』 등이 있다. 현대시학작품상, 시작문학상, 오장환문학상을 수상했다. 1961년 경기 화성에서 태어났다. 199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 『밥그릇 경전』 『놈이었습니다』 등이 있다. 현대시학작품상, 시작문학상, 오장환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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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이슬의 탄생」전문

출판사 리뷰

● 편집자의 책 소개
시인 이덕규가 세 번째 시집을 펴냈다. 『놈이었습니다』라는 제목의 이 시집은 1998년 『현대시학』으로 데뷔한 이후 근 20년 가까이 꾸준한 시작 활동을 해온 그의 또 하나의 결과물이자 다음 시집의 전초다. 당연하다 할 이 얘기를 앞서 꺼내든 이유는 이번 시집의 마지막 시에 해당하는 「설파(說破)하는 뱀」의 마지막 구절 때문이다. “―마침내 말로서 바위를 꾸짖어 산산조각 내겠다는 것이지”라고 맺음을 하는데 왠지 끝이라기보다 한창 러닝머신 위를 최고조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 운동깨나 한 사내 같아서다. 멈춤이 아니라 계속 달림의 신호, 밤새 열을 올린 선풍기의 뜨거운 만져짐처럼 이번 시집이 그렇다. 겉은 까매도 속은 빨갛다. 겉은 단단한 얼음장 같아도 속은 달궈진 구들장 같아서다. 진짜 이번 시집이 그렇다는 얘기다.
시인 이덕규를 만나본 적이 있거나 그의 얼굴과 체구를 멀리서나마 훔쳐본 자가 있다면 딱 이거구나 할 제목 속의 글자가 바로 ‘놈’이다. 시에 대고 ‘놈’이라 붙일 수 있는 이는 생각보다 많지가 않다. 남자라서 다 ‘놈’이라 붙일까, 여자라서 다 ‘년’이라 붙일까. 결로 치면 가장 부드러운 것이 시의 속살이고 성격으로 보자면 가장 예민한 것이 시의 심성이라 할 때 ‘놈’의 지칭은 자칫 위험해질 수도 있는 선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 이덕규의 시집 머리에 ‘놈이었습니다’를 통 크게 간판으로 붙여 올린 데는 그만큼 정이 많고 한편으로 시의 스케일이 넓고 깊은데다 가끔 시의 솜털에 휘파람을 불어주는 섬세한 입의 사나이를 그 말고는 쉬이 만나보지 못한 까닭이다. 그의 시편들을 하나하나 읽을 때면 접어대는 페이지가 잦아간다. 어쩌면 투박하다 할 그의 시가 손으로 적어 꼬깃꼬깃 접은 뒤 당신 호주머니에 몰래 넣어주고 싶은 만큼 귀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닭살이라고 저리 치우라고 할 것이 빤하니 화려한 멋 따위는 뽐내지 않지만 구절구절마다 그의 뜨끈한 진심이, 그의 호방한 마음씀씀이가 우리에게로 고스란히 타전됨을 두둑해진 심장의 두근거림으로 느낄 수 있는 탓이다.

자라면서 기댈 곳이
허공밖에 없는 나무들은
믿는 구석이 오직 허공뿐인 나무들은
어느 한쪽으로 가만히 기운 나무들은
끝내 기운 쪽으로
쿵, 쓰러지고야 마는 나무들은
기억한다, 일생
기대 살던 당신의 그 든든한 어깨를
당신이 떠날까봐
조바심으로 오그라들던 그 뭉툭한 발가락을
-「허공」전문

조금만 참아라
다 와간다 좋아진다
이제 따뜻한 국물 같은 거
먹을 수 있다
멀리서 가까이로
개 짖는 소리 들리고
언뜻 사람들 두런거리는 소리도
지척에까지 가까워졌다가는
이내 다시
아득히 멀어졌다
어머니
누비 포대기 속에서
자다 깨다 자다 깨다
마흔아홉번째 겨울이 간다
-「밤길」전문

특히나 이번 시집에서 그는 어떤 ‘순간’에 대한 집중력에 최선을 다한 듯하다. 사랑이 오는 순간, 사랑이 가는 순간, 늙어가는 순간, 젊어지지 못하는 순간, 착해지는 순간, 못되어지는 순간, 질투를 느끼는 순간, 승부욕을 발휘하는 순간, 패배를 인정하는 순간, 눈물을 삼키는 순간, 눈물이 쏟아지는 순간, 서러워지는 순간, 으쓱해지는 순간 등등 그가 쑥 하니 그 큰 손을 밀어 넣어 잡아챈 현실의 그 ‘순간’들은 대개 특별하지 않고 일상적이어서 뭔가 대단한 것을 기대한 이들에게라면 실망을 줄 법도 하지만 돌아서면 잊기 십상인 우리네 삶의 그림자들을 이렇게나 모아놨구나 싶으니까 그만 내 얘기만 같아 품에 안게도 되는 것이다.

오빠,

이 얼마만의 다정다감하고 우쭐한 호칭인가
오빠, 한때 전선에서 나라를 지키던 오빠, 학교에서 거리에서 정의와 진리를 찾아 헤매던 오빠, 어둑한 골목 끝에서 치한을 물리치던 오빠,

믿어라, 믿는다, 손만 잡고도 한밤을 건너고 세상 어디든 다 갈 수 있다던 오빠,
손잡고 오빠를 따라간 후로 감쪽같이 실종된 누이들, 결국 아무데도 못 가고 오빠하고 사는 누이들아!

오빠가 없다, 전선은 여전히 팽팽하고
정의와 진리는 오리무중이고 치한과 도둑은 거리를 활보하는데
그때 그 오빠가 없다
언제 어디서든 부르면 어김없이 달려오던 그 이름
-「오빠」에서

높은 담장에 안간힘으로 매달려 언제쯤 손을 놓을까 망설이는 사이
쥔 손이 먼저 슬그머니 놓아버린

벼랑의 딸,

밑도 끝도 없이
막막한 허공에서 쿵, 떨어졌달 수밖에 없는 당신

여전히 애 낳는 얼굴로 힘준 채 썩어간다
시커먼 검버섯을 찌르면 손가락이 굳은 표정 속으로 푹푹 들어간다
자리를 뜨자 그동안 꿍쳐놓은 십 원짜리 동전이 좌르르 쏟아진다

두엄 더미에 내다버린 엄마,
들어낸 자궁 속에서 꼬물꼬물 대가족이 기어나온다
-「호박」전문

다시 말해, 그가 어루만지는 시의 세계가 인간 사이의 어떤 ‘뜨거움’, 어떤 ‘결의’, 어떤 ‘정의’를 향해 흔들리는 나침반의 바늘같이 미세하나마 정확함을 향해간다는 말이다. 총 4부로 나뉘어 담긴 이번 시편들에서 잡아채고 있는 어떤 찰나, 이른바 맺혀 떨어지기 직전, 담겨 건네지기 직전, 흘러넘치기 직전, 끌어안기 직전, 끓어 넘치기 직전, 예컨대 “싹트기 전날 밤의 완두콩 심장 소리”를 유심히 귀에 담아낸 것처럼 말이다.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우는, 겉으로는 늘 건강하지만 속으로는 자주 아픈 그의 이러한 두 얼굴이 어쩌면 그의 시를 이루는 주요한 세계가 아닐까 싶다. 누구보다 착하게 그는 시를 쓴다. 누구보다 호기롭게 그는 시를 쓴다. 무엇보다 그는 뺏기려고, 주려고 시를 쓴다. 손에 쥔 것이 있다면 탈탈 털어 네게 날아가기를 바라면서 그는 시를 쓴다. 그래서 그는 부자다. 그의 씨앗이 우리 모두에게 가 달라붙었으니 지금도 내 옷자락 끄트머리에서 그의 시가 자란다. 자라고 있다. 이 얼마나 든든한가. 이덕규라는 시인, 이 ‘놈’은 영원히 ‘오빠’이자 영원한 ‘삼촌’이 아닐 수 없다.

● 시인의 말
한여름 초록 들판을 전심전력으로 달려 건너온 푸른 사내의 심장을 녹즙기에 내려 마셨다. 이제 막 가을로 접어든 내 몸속에서 한결 맑아진 서늘한 도랑물 소리가 난다.

2015년 11월
이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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