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의 책 소개
내 시집 언제 나올 거냐고
그것이 내게, 무엇이 되겠느냐고
1953년에 태어나 등단 13년 만에 펴내는 김연숙 시인의 첫 시집 『눈부신 꽝』
2015년 11월, 문학동네시인선 75번째 김연숙 시인의 『눈부신 꽝』을 펴낸다. 시인의 첫 시집이기도 한 이번 책의 제목이 어쩌다 ‘눈부신 꽝’이 되었는가를 머리에 두고 책 소개를 시작하는 것이 시인과 시를 이해하는 데 여러모로 주목도를 높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눈부신 꽝’이라, 눈이 부신 것까지는 좋은데 그 뒤에 붙는 ‘꽝’은 사실 시집 제목으로 보자면 위태할 수도 있는 선택이다. 첫 시집이라면 바람 빵빵하게 부풀려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긴장감을 더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순전한 도리일 텐데 일찌감치 ‘꽝’라는 새는 김을, 우리에게 그 패를 까고 시작하게 하는 자신감이 어쩌면 무모함으로 자칫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눈부신 꽝’만큼 우리네 인생을 올곧이 그대로, 읽는 순간 그 즉시로 비유해내고 있는 제목이 어디 쉽겠는가.
꽝은 당연히 흰빛
지금 그 여자 머리 위를 한번 보세요
눈부신 꽝입니다
-「당신은 꽝입니다」 부분
‘딱 우리 얼굴의 앳된 여자’가 있다. 평생 시를 꿈꿔왔고 시를 살아냈지만 한 권의 시집에 제 이름이 적힌 문패를 달아주기까지 너무도 오래 걸린 것 또한 사실이다. 2002년 『문학사상』으로 데뷔해 첫 시집을 펴내기까지 13년, 뭐 첫 시집의 유예기간이 긴 데는 그만한 저만의 사정들이 있겠지만 김연숙 시인의 경우 조금의 과장을 보태 63년을 기다려왔다는 데 그 간절함에 먼저 덥석 손을 잡아주게 된다. 1953년 태어나 2015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곳곳을 돌았고 그리고 한국에 정착에 오늘에 이르기까지 시인은 시가 아니고서는 제 삶의 둑이 늘 무너져 있다고 스스로의 기울음에 평생 아파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평생을 매만진 그의 첫 시집의 밀도는 촘촘하면서도 그 누구도 거울을 삼지 않았다는 데서 독특함이 인다. 눈으로 읽는 맛도 스스럼없이 샘솟지만 소리 내어 시들을 하나하나 읽어내려갈 때 뭔가의 아련함과 더불어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어떤 동심, 어떤 장난기, 튼튼한 어떤 모터의 엔진 소리로 우리를 안심하게 함과 더불어 전진하게 한다. 시 안에서의 전진은 시를 넘기는 페이지에 침을 묻히는 횟수를 잦게 한다는 것. 접히는 페이지를 늘려서 퉁퉁하게 만든다는 것.
뭉게구름 같은, 둥글고 뾰족한 제각각의 생각덩이를 이고
나무들은 그냥 서 있지
저 무성한 생각덩이들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으면서 이고만 있네
살랑살랑, 바람도 불지 않는데
-「벽돌공 남자」 부분
63년의 생애 동안 쓰고 버리고 물고 빨면서 오늘에 남긴 이 시들의 흔적은 총 61편에 달한다. 억지를 조금 보태자면 1년에 한 편씩을 고르고 골라 남긴 것이 아닌가 하는 끈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고생 많으셨다. 시를 놓지 않고 산다는 일의 귀함, 그 집요함을 우리에게 몸소 실천해 보이셨다. ‘딱 우리 얼굴의 앳된 여자’는 결코 아트를 한 게 아니다. 생활을 시로 살아냈다. 시에 평생 목숨을 건다는 건 생각보다 그리 쉬운 일은 아니렷다.
총 4로 나뉘어 펼쳐져 있는 이번 시집의 시 세계는 일단 환하고, 일단 터지는 감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하늘에서 사라지는 색색의 폭죽은 아니다. 이를테면 샛노란 계란노른자를 방불케 한다고나 할까. 시더러 계란노른자라니 시집더러 노랗다니…… 따지고 보면 그것이 바로 시인 것이다. 계란노른자를 두고 우리가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있냐는 말이다. 맘껏 상상하고 맘껏 비유하고 그렇게 갖고 놀아볼 수 있는 ‘무성한 생각덩이들’을 자유분방하게 늘어놓은 것이 시인 김연숙이 보유한 놀라운 재능이다.
문득 타인의 그것을 바라볼 때
가슴이 매캐하고 답답해오지
스스로는 볼 수 없는
막막한 그 얼
보는 사람도 멍해지는, 영혼의 멍들
두 사람이 만나 서로 마주보는 때
하필이면 멍과 멍, 얼과 얼이
바라보게 된다면
-「푸른 보석들의 밤」에서
신의 작품은 천의무봉이라는데
우리를 빚어 하나하나
세상으로 내보내던 그때에도
그런대로 되었다, 보기에 좋다, 아쉬운
속내 감춰 좋은 얼굴로
등 투덕여 내보낸 것 아닐까
조놈은 조기가 약한데
요놈은 요기가 아슬아슬하구만
씨줄 날줄 올들이 조금씩, 조금씩
미어지고 있을 텐데
벌어지고 있을 텐데
지금도 마음 쓰며 바라보는 그 눈이
어디 혹시 있을까?
-「핸드메이드」에서
추측건대, 이번 시집은 모르는 척 아닌 척 직접적으로 시를 드러내고는 있지 않으나 하나같이 속속들이 까고 보자면 시 전체가 다 시의 원형, 그 시의 처음, 그 시라는 발원지를 향해 있는 이야기다. 시를 말하기 위해 시를 읽기 위해 시를 쓰기 위해 삶 전체를 시에 투영해버린 여자, 그녀만의 ‘여자 말’이란 것이 분명 있는 듯 읽을 때 처음에는 뭔가 생소하게 뭔가 불편하게 읽히는 것도 같지만 어느 순간 그녀만의 여자 말에 승복하고 그녀만의 여자 말에 몸을 맡기게 된다. 상상력이 훼손되지 않은 여자, 말을 뜀박질하는 발처럼 마구 굴리는 여자, 그래서 귀여운 여자, 그래서 일견 안쓰러운 여자. 시에서 드러나는 이국의 풍경들 속에서 그녀가 어디서 살았고 그녀가 무엇을 먹었고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든 여자의 말은 한 번도 그녀를 만족시킨 적은 없어 보인다. 아마도 여러 시들로 유추해보건대 삶과 시의 괴리가 꽤나 컸음이 짐작되는 바이다.
사랑하는 시는 웬만해서는 앞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사랑하는 시는 늘 돌아앉아 있다. 우리는 언제나 시라는 뒤통수를 따라갈 뿐이다. 시라는 얼굴은 보는 순간 눈이 멀어 그 찰나의 기록을 놓치게 만드는 심술쟁이다. 그러나 더 사랑하는 사람이 덜 사랑하는 존재에게 패배하는 일은 너무도 당연하다. 시를 더 사랑하는 시인이 지칠 줄 모르고 벌이는 시와의 게임을 위해 링 위에서 끊임없이 발을 놀리고 쉴 새 없이 잽을 날려보는 일은 그러니까 운명이다.
화살은 직진하지 않는다
뱀처럼 구불구불
공기 속을 뚫고 나간다
망설이며 흔들리며
길을 찾아나간다
힘껏 당겨져 활시위를 떠났더라도
제 길 찾아간다는 건
이렇게나 힘든 것
돌이킬 바로 그때를
놓치지 않는 감각이
화살의 길을 만든다
잠시 지나치면 범하고 마는
제 안의 텅 빈 고요
오만 가지 생각들이 분자운동하는
공기의 저항 속
긴 시간은 주지 않는
대지의 인력 속을 가로질러
내 과녁의 중심으로 다가가는
천성이 맺힌 데 없는
빈 마음의 나는,
-「화살의 길」전문
“모두가 잠든 깜깜한 밤에도 지표 아래엔/ 썩지 못하는 수천수만의 씨앗들이/ 눈을 뜨고 형형히 밤을 밝힌다” 그 ‘뜬눈’의 한 사람이 바로 매일 밤 시인의 눈일 것이다. 어쩌다 타지에서의 잦은 생활로 늘 이방인의 기분을 삼키며 살아야 했지만 시를 놓고 보자면 다행스러운 노릇 같기도 하다. 누구도 닮지 않아 있는 얼굴, 누구와도 비슷한 생래를 가지지 않은 몸, 그래서 ‘소녀는 아니지만 소녀처럼’ 새처럼 재잘재잘 떠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수도가 필요해요/ 청청한 상수도를 위해서”처럼 균형 잡힌 생각 속에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평생을 다져온 시에 대한 자신의 주기를 아주 자연스럽게 밝혀낸 터전이기도 하다. ‘진눈깨비’를 ‘쉼표’로 비유해가며 시인은 진눈깨비를 맞을 때도, 비를 맞을 때도 말들과 언어와 함께해왔을 것이다.
추상과 구체를 넘나들며 시인이 그려온 시 세계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그녀밖에 쓸 수 없는, 나도 아닌 너도 아닌 ‘여자 말’을 가지고 그녀가 앞으로 얼마나 더 솔직하게 언어를 짓고 깨부술지는 아직 가늠할 수가 없다. 다만 솔직해서 탈인, 있는 그대로를 제 스타일대로 말하기 위해 제 언어의 맨살을 고스란히 드러내 아팠던 시인이 ‘산양 가죽으로 만든 부츠’를 신고 앞으로도 씩씩하게 시로 걸어갈 것이란 사실만은 확신한다. “시시해서 좋은 것이 시인 줄은” 안다지 않은가. 시의 그 시시함을 이미 알기에, 그럼에도 그 시시함을 이겨내지 않으려는 자가 자신임을 이미 알기에 그를 믿고 보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