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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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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자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30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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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7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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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수/페이지 수 약 5.2만자, 약 0.9만 단어, A4 약 33쪽 글자 수/페이지 수 안내
ISBN13 9788954648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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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저자 소개

저자 : 최문자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귀 안에 슬픈 말 있네』 『나는 시선 밖의일부이다』 『울음소리 작아지다』 『나무고아원』 『그녀는 믿는 버릇이 있다』 『사과 사이사이 새』가 있고, 시선집 『닿고 싶은 곳』이 있다. 한성기문학상, 박두진문학상, 한국여성문학상을 수상했다. 협성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동대학 총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배재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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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재료들」 전문

출판사 리뷰

이것이 가끔 나였구나”

문학동네시인선 071 최문자 시집 『파의 목소리』


최문자 시인의 일곱번째 시집 『파의 목소리』가 출간되었다. 앞선 시집들에서도 그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듯 이번 시집에서도 시인 특유의 유연한 목소리와 자유자재로 뻗는 상상력의 자발성과 그럼에도 다소곳한 성품의 차분함이 읽는 내내 어떤 울컥함으로 내 안에 차고 고임을 느끼게 된다. 관록이라 부름직하지만 41년생, 우리 나이로 일흔다섯의 시인이 써나가는 시라 할 때 이토록 엄살 없이 아플 수 있을까, 이토록 긴긴 달굼 없이 뜨거울 수 있을까, 이토록 풍만하고 이토록 군살 없으며 이토록 처음 시를 쓸 때의 그 긴장의 허리뼈를 여전히 곧추세울 수 있을까.
최문자의 시는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놀랍게 읽힌다. 삶과 죽음 사이, 사랑과 이별 사이, 남자와 여자 사이, 하늘과 땅 사이…… 인간이 제아무리 설명한다 해도 실패로 끝나기 십상인 온갖 우주의 섭리를 여타의 다른 비유를 빌리지 않고 온전히 제 살아옴의 경험만으로 빗대 무척이나 솔직한 어조로 우리에게 다가와 있다. 간만에 시다운 시, 시답다할 시, 시여야만 하는 시를 만난 기분이다. 그래 시는 이렇게 우리 얼굴을 간질이는 동물의 털처럼 흔들리는 것이 아닌가. “짐승들이 자꾸자꾸 몸안에 들어와 입이 되고 발이 되”는 소리 아닌가. 그러다 만나는 게 가끔 온전한 내가 아니던가.

지도에 없는 마을에선 눈이 왔다
수증기가 이야기를 해주는 밤이 있다
무슨 말을 해도 글썽이다가 그냥 가는 연인도 있다
흰 눈에게도
사람이 흉내낼 수 없는 바퀴 달린 사랑이 있다
한 번은 아찔하고 한 번은 출렁거리다 멈춰
며칠이나 지층에 머리 박고 죽으려 했던 자해의 흔적이 있다

(……)

그리운 것들이 기화되면 어디에 가 묻히나
마지막으로 육체끼리 얼어붙는 얼음 사랑이 있는 곳
눈의 지도에만 있다
―「눈의 지도」 부분

밑줄 긋는 시의 구절들마다 아프다. 시인은 그새 꽤 아팠던 모양이고, 그새 더 아픈 영영 이별의 순간도 맞닥뜨려봤던 듯싶고, 그럼에도 더 고통스럽게 몸을 비틀며 살다 간 ‘어머니’를 마치 처음 알게 된 여인처럼 와락 껴안으며 그녀 안에서 자신을 발견한 듯 묘한 생경스러움으로 묘한 친밀함으로 그녀, ‘어머니’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최문자 시인에게 모성은 자식뿐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몸에 들일 때도 동일한 완력으로 그 당겨 안음에 온몸을 다하고 있는데, 이때의 이 ‘정성’과 ‘곡진함’은 최문자 시인이 평생 써온 시에 들이는 그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 가히 짐작이 되고도 남음이다.
총 63편의 시 매 편마다 세상의 각진 것을 둥글게 오므려가며 안으로 더 안으로 무성해지는 눈물을 삼키고 선 여인. “눈물을 가리던 고독한 우산도 쓰지 않”고 그저 “잠시 잠깐 신에게 그곳 땅을 조금 빌려 사는 들짐승의 털이 날리는 유목민의 아내”처럼 “어떤 슬픔인지도 모르는 그걸 멈추려고 거기다 너무 많은 못을 박”은 여인. 그렇게 마지막 상상으로 “유목민의 아내”를 꿈꾸는 여인.

알고 있었니
어머니는 무릎에서 흘러내린 아이라는 거
내 불행한 페이지에 서서 죄 없이 벌벌 떠는 애인이라는 거
저만치 뒤따라오는 칭얼거리는 막내라는 거
앰뷸런스를 타고 나의 대륙을 떠나가던 탈옥수라는 거

내 몸 어디엔가 빈방에 밤새 서 있는 여자
지익 성냥불을 일으켜 촛불을 켜주고 싶은 사람

어머니가 구석에 가만히 서서
나를 꺼내 읽는다

자주 마음이 바뀌는 낯선 부분
읽을 수 없는 곳이 자꾸 생겨나자 몸밖으로 나간 어머니
알고 있었니
기도하는 손을 가진 내 안의 양 한 마리
―「어머니」 전문

최문자 시인의 시편들에 있어 더한 매력은 팽창하여 터지는 온갖 색채감에 있다. 더불어 오감을 자극하는 향에 있다. 희고 빨갛고 노랗고 연두에 초록에 회색과 황색과 검정이 눈과 사과와 꽃과 열무와 파와 재와 모래와 죽음을 대신하는데 이 색들이 뒤섞인 이번 시집은 그럼에도 얼룩덜룩한 것이 아니라 선명하고 고유한 제 빛깔로 깊이 잘 물든 손수건을 건네기에 충분하다. 이는 시인이 직관적으로 잽싸게 시로 끌고들어온 소재들 본연의 향과 컬러가 특별하기에 가능하다는 얘기도 된다. 도무지 감추려 해도 도저히 감춰지지가 않는 냄새의 힘. 대표적으로 ‘풀’이 그렇고 ‘열무’가 그렇고 ‘파’가 그러하다. 그러니까 식물의 힘. 여성이라는 힘. 어머니라는 힘. 그리고 사랑이라는 힘이 절대적이기에 다분히 소박하다 할 수 있는 소재들이 발휘하는 내공은 어떤 줄자로도 가늠이 불가능하다 하겠다.
초록으로 쭉 뻗은 파. 머리 깊이 땅에 묻고 물구나무서듯 반듯하게 몸을 추슬러온 듯하나 뽑으려 밭에 들어갈라치면 작심하고 그 매운 내를 풍겨버리는 파. 식물의 전형이나 동물의 본성처럼 질기다 할 파. 이 파 없이 어떤 요리이든 그 맛을 제대로 낼까 싶다만 너무 만만해서 너무 당연해서 너무 흔하디흔해서 안중에 두지 않을 가능성이 큰 파. 이 파의 목소리로 시를 쓰고 시집을 채운 최문자 시인은 여성을 꼭 빼닮은 이 연하고 무른 상상력과 재기발랄한 시어들로 온 군데 파밭에서 풍기는 온갖 시의 냄새들을 힘껏 피워냈다. 매운 여자, 쓰라린 여자, 그러나 그만큼 건강한 여자들의 냄새를!

뜨는 무지개만 여러 번 보았다
무지개가 죽는 건 본 적이 없다
무지개는 죽을 때 어디다 색깔을 버릴까
적어도 일곱 가지 이상의 감정을 죄다 지우고
회칠한 듯한 흰 손 들고
어디 가서 몰락할까
죽는 순간
하얀 홑이불 한 겹 뒤집어쓰고
뭉게뭉게 떠돌다
모네의 그림 상단에서 멈췄을까
쓰라린 파밭을 내려다보고 있다
―「파밭」 부분

풀의 증상이라고 합니다
울다가도
달빛이 좋아서
온몸에 풀이 나고
흐린 무릎엔 달빛이 맨발로 서 있습니다
푸른 느낌표처럼

풀의 흔적이 없는데
자고 깨면
풀의 신발이 신겨 있습니다
―「풀의 증상」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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