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 때문에 사진을 찍는가?
어떻게 다가서고 표현해야 하는가?
무엇으로 사진을 평가할 수 있는가?
인식과 사유, 표현과 감상, 마음가짐에 이르기까지 ‘사진함’에 있어 한 번쯤 스스로 묻게 되는 수많은 질문들이 있다. 칸트, 헤겔, 하이데거, 벤야민, 들뢰즈, 롤랑 바르트 등 철학의 거장들과 수전 손택, 존 버거, 지젤 프로인트, 다이안 아버스, 마이클 케나 등 사진연구자, 위대한 사진작가들과 함께 사진과 철학의 접점에서 솟아나는 질문들에 대해 사유한다.
사진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또 우리로 하여금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그것은 예술인 동시에 사회적 실천인 사진의 태생적 속성 때문이기도 하고, 존재와 시간 그 자체로 이루어진 사진의 물성 때문이기도 하고, 사진이 찍는 이와 감상하는 이 모두에게 거울 혹은 창으로 비추는 사유의 매체이기 때문이다. 『사진철학의 풍경들』은 사진을 중심에 두고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철학적 사유들에 대해 깊이 탐색해보고자 한 시도이다.
오랫동안 사진을 찍어온 사진가이자 이론을 연구해온 사진평론가로서 활발히 활동하며 광주비엔날레, 대구사진비엔날레 등에 전시기획자로 참여한 저자 진동선은, 『사진철학의 풍경들』에서 철학의 거장들을 비롯해 사진작가와 사진이론가들을 한 자리에 호출하여 사진에 대한, 사진에서 촉발되는 수많은 질문들을 던지고 함께 고민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철학은‘묻는’학문이다. 답을 내리는 학문이라기보다는 끊임없이 묻고, 묻게 하는 학문이다. 물음을 통해서 깨닫는 학문이기에 철학과 사진이 만나게 되는 것이다.”
다섯 가지 사진철학의 풍경들
『사진철학의 풍경들』은 사진을 철학적으로 탐색하고 사진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말해보려는 시도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눈과 마음의 감각적 풍경에서부터 삶과 죽음의 정신적 풍경까지 다섯 가지 철학적 풍경들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다섯 가지 철학의 풍경들이 명료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사진철학에 대한 분명한 개념 정의와 구분, 의미 규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진의 철학이란 무엇인지, 사진으로 철학한다는 것이 어떤 정신에 입각한 탐구와 성찰인지를 말해보고자 하는 방법론이었다. 스스로 묻고 답하고 깨닫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사진철학의 정신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 프롤로그 중에서
사진은 ‘보는 것’에서 시작하여 ‘보는 것’으로 끝난다. 뷰파인더를 통해 세상(피사체)을 인식하고, 대상으로 사유하고, 감정으로 표현하고, 그 표현을 감상하며, 훗날 마음으로 돌이킨다. 『사진철학의 풍경들』에서는 이 일련의 과정들을 인식의 풍경, 사유의 풍경, 표현의 풍경, 감상의 풍경, 마음의 풍경으로 나누어 그 철학적 테제들을 살펴보고 있다.
인식의 풍경 - 본다는 것의 의미에서부터 감각과 지각의 현상학까지, 어떤 대상 앞에서 눈과 마음의 동일체로서 우리의 눈이 곧 카메라의 눈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사유의 풍경 - 존재의 시간에서부터 그 존재로부터 출몰한 의식의 지향과 방향성까지, 시간의 죽음과 시간의 부활이라는 시간의식과 기호인식에 대하여 말한다.
표현의 풍경 - 조형과 사진심리에서부터 인상과 인식, 나아가 차이와 반복까지 사진은 의미의 드러남이며, 사진의 표현은 곧 감각의 연주임을 말한다.
감상의 풍경 - 사진은 결국 미와 진리를 향한 바라봄과 알아봄의 문제라는 사실과, 관객에게 전달되는 감각의 누설과 표상은 미학을 넘어선 예술의 근원과 맞닿아 있음을 말한다.
마음의 풍경 - 우리 앞의 사진들은 수많은 의미의 경쟁이라는 사실과 사진이 왜 그토록 광범위한 사회적 실천인지, 어째서 이미지 수사학인지, 그리하여 어떻게 필수적인 유희와 욕망의 수단이 되었는지 우리 시대 마음의 풍경으로서 말한다.
위의 다섯 가지 풍경들에서는 사진철학의 세계로 안내하는 여러 철학자들을 만날 수 있다. 칸트와 헤겔,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흄 등 여러 철학자들의 사유를 대입하여 사진을 바라보고,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과 사진에 대한 중요한 개념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특히 비중 있게 다룬다. 또한 벤야민, 들뢰즈, 보드리야르 등 사진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철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철학이론과 사진이 이루는 교집합을 비롯해, 사진을 특히 사랑했던 철학자들이 남긴 사진에 대한 빛나는 통찰은 사진을 아끼고 즐기는 독자들에게 의미 깊은 만남이 될 것이다.
또 듀안 마이클, 소피 칼, 다이안 아버스, 마이클 케나 등 여러 사진가들의 작품세계를 철학적 관점에서 조망하면서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고, 사진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이론서들을 풍부하게 소개하면서 친절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어 사진전공자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참고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진은 반드시 예술사진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사진가가 프로인가 아마추어인가, 예술사진인가 아닌가를 떠나, 많은 이들이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는 모든 사진들이 철학적 탐색의 대상이고 그 주인공이다. “우리는 매일 사진과 만난다. 일상에서 사진을 찍고 새기고 기록한다. 수많은 사진들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며, 어디를 향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분명하게 답할 이는 사진 그 자체이다.”(298쪽)
철학하는 순간, 사진이 달라질 것이다
철학이 사진을 좋게 만들고 사진을 잘 찍을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사진(가)에게 묻게 하고 탐색하게 하는 정도다. 그러나 물음과 탐색은 중요하다. 이 같은 행위를 통해서 놓친 것, 간과한 것, 헤아리지 못한 것들을 인식하고 지각한다. 철학은 사진을 잘 찍는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답을 줄 수도 없고, 답이 있다는 생각 자체를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철학이 사진에게 주는 분명한 선물은 사유를 통해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하는 멘토로서의 역할이다. -본문 중에서
여기 사진을 둘러싸고 솟아나는 수많은 질문들이 있다.
“사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사진가는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어떻게, 왜 찍어야 하는가?” “카메라로 무엇을 보아야 하고, 어떻게 보아야 하고, 왜 보아야 하는가?” “사진으로 무엇을 말해야 하고, 어떻게 말해야 하고, 왜 말해야 하는가?” “관객들은 무엇을 들어야 하고, 어떻게 들어야 하고, 왜 들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까지.
또 본다는 것에 대하여 “사진가가 들어 있지 않은 사진에서 사진가는 어떻게 감지되고 또 보여지는가?” “사진을 본다는 것은 결국 사진가가 보았던 것을 본다는 것인데 사진가가 보이지 않거나 시선이 느껴지지 않으면 어찌되는가? 또한 꼭 사진가가 느껴져야 되는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있다고 규정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들, 혹은 감상자로서 “당신은 사진을 볼 때 작품의 전체만 보는가, 부분까지 세밀하게 보는가?” “당신은 사진을 볼 때 작가의 마음, 촬영 위치, 초점 위치, 노출 정도, 피사계 심도 등, 작가가 고려한 요소들을 얼마나 헤아리면서 보는가?” 등의 질문까지.
위의 질문들을 비롯해, 이 책에는 일일이 꼽기 어려울 만큼 사진에 대한 수많은 사유의 질문, 탐색의 질문, 고민의 질문들이 가득하다. 그 질문들 중에는 누구나 한 번쯤 사진을 찍으면서 혹은 사진을 감상하면서 스스로 던져보았을 법한 질문도 있을 것이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생소한 질문들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미덕은 사진철학의 방법론, 혹은 철학적 질문들에 대한 정답을 알려주는 데 있지 않다. 사진 속, 그리고 사진가 자신에게 숨어 있는 질문을 이끌어내게 함으로써, 그러한 질문들에 대해 철학하는 순간 카메라에 담을 사진과 그 사진철학의 풍경들이 다채롭게 변모하게 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