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게 소개하는, 폴 콜린스의 대표작《식스펜스 하우스》
아무도 하지 않은 이야기,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이야기, 혹은 잘 알려진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늘 시야에서 벗어나곤 했던 부분을 끄집어내어 따뜻한 빛을 쪼이는 이상한 작가가 하나 있다. 혹자는 성공에 관한 이야기들을 하기도 바쁜 세상에 왜 우리가 실패하고 묻힌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며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나 물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여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기발한 생각, 외로운 분투, 숭고한 열정, 역사 속에 잊힌 딱한 이상주의자들의 삶에 따뜻한 연민을 보내는 작가가 있다. 그의 이름은 폴 콜린스다.
이번 《식스펜스 하우스》까지 한국에 출간된 폴 콜린스의 책은 모두 4권이다. 개인의 서사와 역사적 사실을 겹쳐서 서술하는 독특한 글쓰기 방식 때문에 그의 책은 역사서이자 체험기이며, 비밀을 밝혀가는 추리극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밴버드의 어리석음》에서는 한때 세간의 주목을 받았으나 실패와 조롱의 나락으로 추락해 버리고 만 열세 사람을,《네모난 못》에서는 ‘자폐증’이라는 말이 처음 만들어지기 전에 존재했던, 따라서 어떤 기록에도 그런 이름으로 명시되지 않은 자폐인들을, 《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에서는 세계 3대 혁명(미국 독립운동과 프랑스 혁명, 영국 혁명)에 소용되고 난 뒤 잊히고 버려진 사상가 토머스 페인을 이야기한다. 그의 책에는 역사에서 잊힌 이들이 폴 콜린스의 글을 통해 다시 부활하여 위로받고 안식을 얻는다.
《식스펜스 하우스》는 사람이 아니라 책에 대한 이야기지만, 묻히고 버려지고 잊힌 것에 대한 애틋한 마음만은 변함없다. 영국의 헌책마을 헤이온와이에서 폴 콜린스는 아무도 읽지 않는 헌책들을 읽으며 이 책들에 다시 생명을 부여한다.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한 무수한 책들은 모두 사정없이 버려지고 소각되거나 폐지처리장으로 간다. 운이 좋아야 간신히 누군가의 눈에 띄어 다시 팔린다. 그러나 그 책들이 모두 쓰레기인가? 폴 콜린스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는 심지어 실패한 책 안에 숨겨져 있어 “무명의 깊은 바다 속에 침몰한 채로 영영 물 밖으로 떠오르지 못하는 멋진 문장”에 대해서까지도 안타까움을 느낀다.
이런 까닭에 《식스펜스 하우스》는 폴 콜린스의 작품들 가운데 ‘작가’로서 폴 콜린스의 생각과 가치관을 이해하기에 가장 좋은 책이다. 책과 더불어 살아온 인생과 함께 헤이온와이에서 만난 책들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폴 콜린스의 대표작으로서 2003년에 출간되어 미국 독자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책을 만든 편집자로서 작가이자 나와 같은 편집자로서 폴 콜린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폴 미안해, 너무 늦게 소개해서.”
책벌레 폴 콜린스가 길어 올린 책과 인생에 대한 따뜻한 연민
첫 작품 《밴버드의 어리석음》의 출간을 기다리는 초보 작가였던 폴 콜린스. 그는 번잡한 샌프란시스코 생활을 접고 영국의 시골마을에 이민 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갓 돌을 넘긴 아들 모건에게 시골 생활을 경험하게 하고 싶다는 핑계로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가득 찬, 인구 37.5명당 서점이 하나씩 있는 영국의 헌책마을 헤이온와이에 정착하기로 한다. 그곳은 폴 콜린스에게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 그는 날마다 도서관에 출몰해 희귀본 서가를 들락거리는 책벌레이자 골동품 수집가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폴 콜린스와 그의 가족이 헤이온와이에 정착하며 벌어진 일들을 다루는 흥미진진한 영국 생활 도전기이며 동시에 ‘책 자체에 대한 책’이다. 책이 어떻게 쓰이고, 읽히고, 혹은 읽히지 않고, 어떻게 만들어지고, 절판되고, 파괴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헤이온와이는 마을 전체가 수백만 권의 헌책과 헌책방들로 가득 차 있어 책 애호가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 있는 곳이다. 폴 콜린스는 우연한 기회에 이 헌책마을의 설립자이자 ‘자칭’ 헤이의 왕인 리처스 부스에 발탁되어 서점에서 미국 문학작품을 분류하는 일을 맡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쓴 해리엇 비처 스토와《 주홍글씨》를 쓴 다니엘 호손, 「가지 않은 길」을 쓴 로버트 프로스트 등 베스트셀러 작가에서부터 이름 모를 무명의 작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군상들의 이야기와 만난다. 천장까지 뒤덮인 책의 무덤 앞에서 책을 고르며 그는 끊임없이 ‘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한때 누군가의 꿈과 열정이 담긴 책, 그러나 이제는 책더미 속에서 누군가가 발견해 주지 않으면 존재조차 알 수 없는 책, 유품을 정리하는 경매에서 헐값에 팔린 책들, 값어치를 모르는 이들에게 감자 몇 알과 바꿔 얻어 온 책더미들, 불쏘시개가 될 뻔하다 운 좋게 여러 쓰레기와 함께 살아남은 헌책들 속에서 그는 깊은 연민과 애정므 느낀다. 자신의 책도 언젠가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막 책을 출간하려는 작가가 이런 곳에서 일한다는 것은, 임신한 여성이 영안실에서 일하는 것하고 비슷한 것이다. 이런 곳에서는 날마다 망각을 맞닥뜨린다. 대부분 책이나 작가는 비평의 포물선을 따라 지나간다. 대개 첫 번째 책은 ‘장래가 촉망’되었다가 두 번째 책은 ‘실망스럽기’ 마련이다. 세 번째 이후는 ‘괜찮은’ 책이고(독자들에게 무척 미안하지만 이 책은 두 번째니까 ‘실망스러운’ 책이다). 그런데 만약 책 한 권만 내고, 아니면 두어 권 정도만 내고 사라져 버린다면? 세계의 하드 드라이브에서 한자리도 차지하지 못한다면? (165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 콜린스는 말한다. 책의 생명력은 작가보다 더 길다고. 그것이 훗날 다른 사람들에게는 놀림거리로 남는 우스꽝스러운 것이 되거나 누군가에게는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여겨질지라도 말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 속 큰 고리들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열망과 성공과 실패, 사연들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기억과 망각의 무수한 반복이 역사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역설한다.
책을 썼다는 사실에는 참 희한하고도 사람을 겸허하게 만드는 점이 있다. 책은 잊히기도 하지만 한편 놀라울 정도로 생명력이 질겨서 대개의 경우 작가보다 오래 남는다. 《주홍글씨》를 쓴 호손은 자기가 처음으로 출간한 소설 《팬쇼》를 어떻게든 없애 보려고 모두 사들여서 태웠다. 친구나 친지들에게 준 책도 다시 빼앗아 왔다. 누구에게도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내조차도 호손이 죽기 전까지 그런 책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호손은 성공하지 못했다. 몇 권이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호손은 죽었지만 오늘날 《팬쇼》는 여러 가지 판본으로 나온다. (168쪽)
군데군데 숨겨져 있는 ‘책 만드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이 책을 읽는 재미이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시기가 바로 폴 콜린스가 그의 첫 작품인《밴버드의 어리석음》의 출간을 앞두고 있던 때였기 때문이다. 영국에 살면서도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편집자와 메일로 제목, 교정, 표지 문구, 마케팅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고받는다. 덕분에 책의 죽음과 더불어 책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책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책벌레들이라면, 집이 무너질 정도로 책이 많아 이삿짐을 쌀 때마다 핀잔을 듣는 책수집가들이라면, 필생의 역작을 쓰고 출간을 기다리며 가슴 설렐 작가들이라면, 오늘도 낮밤을 잊고 저자와 원고로 옥신각신하며 문장 하나, 표지 문구 하나, 제목을 고민하는 편집자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절로 웃음을 터트릴 만한 위트로 가득 찬 이야기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업자가 작가의 총을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비난부터 하기 전에 정황을 모두 알아보는 게 옳다.” 1893년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칼럼니스트 제임스 페인이 이런 글을 썼다.
출판하는 사람과 출판되는 사람 사이의 전쟁은 역사가 깊은 명예로운 전쟁이다. 양쪽 모두 상대방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데 양쪽 다 그렇게 생각할 만하다. 작가 입장에서, 수정된 원고를 보는 것은 충격이다. 내가 쓴 원고라도 몇 달 만에 보게 된다면 마치 남의 글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내가 원래 뭐라고 썼는지 보게 되고 그다음 그걸 무어라고 고쳐 놓았는지 읽는다. 그러면 화가 치밀었다가, 다시 겸허한 마음이 된다. 그러다가 다시 화가 난다. 그러고는 두어 시간쯤 침대에 누워 한숨을 내쉰다. (275쪽)
《밴버드의 어리석음_세상을 바꾸지 않은 열세 사람 이야기》의 작가,
폴 콜린스의 따뜻하고 재치 넘치는 영국 생활 도전기
책의 가치를 묻는 폴 콜린스의 태도는 헤이온와이에 정착해 살아가는 그의 생활 방식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준다. 이 책을 읽는 또다른 재미는 바로 영국 문화의 단면을 엿보는 것에 있다.
폴 콜린스와 그의 가족들이 영국에 정착하는 일은 온통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투성이다. 만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선 집을 구하는 일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이방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영국은 이해할 수 없는 일로 가득 차 있다. 판매자를 위해서만 일한다고 공공연히 떠드는 부동산 중개업자와, 낡은 지하실에 물이 넘쳐 포도주 통이 넘실거리는 것을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집주인 사이에서 집 구하는 일은 멀고도 험하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간절히 원하는 집은 일명 ‘식스펜스 하우스’이다. 6펜스짜리, 우리 돈으로 10원도 안 되는, 말하자면 엄청나게 낡고 오래된 집에 그는 강한 애착을 보인다. 지하실에는 물건이 둥둥 떠다닐 정도로 물이 차서 더럽고, 바닥마루는 밟을 때마다 파도처럼 울렁거리는, 한때 술집이었던 작고 낡고 무너질 것 같은, 더러운 식스펜스 하우스를 얻으려고 노심초사 애정을 바친다. 잘 짜여진 미국의 합리적인 삶을 그리워하고, 영국의 비논리적인 생활 방식에 불평을 쏟아내면서도 그는 이런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아니, 오히려 즐기는 것 같다. 아마도 헌책을 좋아하는 폴 콜린스라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땠어요?”
“밤에 옷장에 옷을 걸어 놓으면, 다음 날 아침에 옷이 젖어 있었죠.”
그때 랫클리프 부인이 무언가를 떠올렸다. 소방관인 딸이 지난봄에 그 건물 지하실에서 물을 뽑아내는 일을 했다고 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늘 매물로 나와 있었어요. 주인도 여럿 바뀌었죠.”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하면 애물단지라는 얘기다.
우리는 그 집을 사기로 했다. (213쪽)
시종일관 소심하기 짝이 없는 불평을 하지만 영국에 대한 그의 시선은 따뜻하고 위트가 넘친다. 날카로운 통찰력과 유머로 가득 찬 그의 글을 읽다보면 영국 문화의 단면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희한하게도 영국 시사만화가들은 세계 최고다. 미국 시사만화는 세상 누구나, 신문을 보지 않는 무식한 사람들조차도 뜻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미국 만화가들은 화면 안에 있는 모든 대상에 이름표를 붙인다. 그냥 당나귀와 코끼리를 등장시키면 안 되고, 사람들이 잘 알아볼 수 있게 민주당, 공화당이라고 써넣어야 한다. 아직 그 개념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조지 W. 부시를 그렸다면 몸통 어딘가에 ‘부시’라고 적어야 한다. 미국 시사만화가들은 사람들의 멱살을 움켜쥐고 흔들어 댄다. “무슨 말인지 알았어? 알았냐고? 왜 웃기는지 알겠어?”
대조적으로 영국 만화는 알 듯 말 듯 미묘하다. 오늘 어떤 신문에는 윌리엄 헤이그(영국 외무장관)가 교황 옷을 입고 운석에 깔려 있는 만화가 실렸다. 일단 만화가는 이름을 써넣지 않아도 독자들이 윌리엄 헤이그를 알아보고 그가 최근 여론조사 때문에 곤경에 빠졌음을 알고 있으리라고 전제한다. 또 믿기지 않게도, 독자들이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왕립미술관 설치미술 작품을 알아보리라는 전제도 깔려 있다. 이 작품은 교황이 성당 천장을 뚫고 들어온 운석을 맞고 바닥에 쓰러진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07-208쪽)
폴 콜린스와 그의 가족들이 과연 영국에 무사히 정착할 수 있었을까? 애석하게도 대답은 ‘노’이다. 첫 저자 낭독회는 실패로 끝나고, 여권을 분실하고, 벽이고 바닥이고 모두 고쳐야 살 수 있다는 감정 평가를 받은 식스펜스 하우스에 대한 기억을 뒤로하고 그는 다시 미국 시민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아무려면 어떤가. 폴 콜린스의 말마따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아름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