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좌우의 날개가 아니라 온몸으로 난다.
모든 생명은 저마다 온전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새는 온몸으로 난다 2-
좌우의 이념 대립,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첨예하다. 이런 상황을 빗대 흔히들 하는 말이 새의 날갯짓이다. 새는 한쪽 날개가 아닌 양쪽 날개로 난다는 지극히 단순하고 극명한 말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 사회도 좌우의 균형을 갖춰 제대로 의도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목판화가 이철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새는 좌우의 날개가 아니라 ‘온몸’으로 난다.”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새는)은 저마다 ‘온전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제 우리는 새의 날갯짓만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새의 온전한 생명과 세계를 이해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작가는 덧붙여 말한다. “새가 그러하고, 사람이 그러하고, 세계가 그러하다. 죽음처럼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거기서 이미 죽음에 이른 사람들까지, 온몸으로 살고, 온몸으로 죽는다.”라며 간절한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다시 말한다. “그러니 부디, 생명에 가혹해지지 말자.“라고. 이제 생명의 시대를 열자고.
2010년, 작가는 독수리의 웅혼한 날갯짓이 압권인 [새는 온몸으로 난다 2]에 위와 같은 화제(?)를 던져 놓았다. 작가 특유의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화제는 그 어떤 연설이나 격문보다도 더 절실하게 보는 이의 가슴에 와 닿는다. 긴 말이 필요 없는 것이다.
이철수 목판화 인생 30년을 한 권에 담아!!!
총 4,000여 점 중 505점 선별 수록!!!!!
이 책은 이철수 목판화 30년을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정리하고 있다.
우선, 1980년대. 이철수가 첫 개인전을 가진 시기는 1981년이다. 군사정권에 맞서 민주화 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그 시절, 작가는 [문둥이] [절규] [장승솔] [북치는 앉은뱅이] 같이 시대에 저항하는 민중미술에 몰두하며, [여기 우리와 함께] [거리에서] [새벽이 온다. 북을 쳐라!]와 같은 운동권 걸개그림에도 단골로 등장한다. 민중미술 운동사에서 돋보이는 판화작가로 시대적 요구와 민족미술에 대한 열망으로 작업했던 시기이다. [동학] 연작 등도 이 시기에 제작되었으며, 특히 데뷔 전인 1980년에 제작한 [장승솔]과 같은 작품 몇 점과 돌산교회에 작업했던 벽화들, 음악가 윤이상, 시인 신동엽, 소설가 조세희의 작품에 수록된 삽화들처럼 출판미술을 통한 사회 변혁 운동에도 열심이었던 시기이다. (도판 56점, 보조 도판 31점 수록)
두 번째 시기는 1990년대. 작가에게 대중적 명성을 가져다준 시기이다. ‘이철수 마니아’로 불리는 이들이 가장 열광하는 작품들을 완성한 시기이기도 하다. 충북 제천으로 이주해서 농사를 지으며, 한편으로는 1989년 독일 순회전을 갖고 동구권 공산주의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작가의 관심사는 자기 성찰과 생명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되기 시작한다. 특히 [좌탈(座脫)] 시리즈는 불가(佛家)는 물론이고, 대중적인 사랑을 받게 된다. 선가(禪家)의 언어 방식을 끌어 온 화제들과 시정(詩情) 넘치는 짧은 글은 ‘판화로 시를 쓴다’라는 호평을 받으며 널리 알려지게 된다. [소나무 의발을 전하다] [단청] [잣나무] [마른풀의 노래] [세한도] [이름 모르겠던 꽃나무에게] 들을 비롯한 많은 작품이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적멸] [등 뒤에서] [눈 오시는 날] [땅콩] [개소리] [이렇게 좋은 날] 등 자연, 가족, 일상 등으로 작품 세계가 확대된다. (도판 153점, 보조 도판 10점 수록)
세 번째 시기는 2000년 이후부터 현재까지이다. 전반부에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낮은 목소리로 그려 내는 작업들이 주를 이루며, 후반부에서 최근에 이르면 작품은 더욱 다양화된다. 기존의 흐름을 이어 가면서, 노동의 숭고함을 강조하는 [백장 법문] [백장 이후] [골 마중하는 마음] ,전통 수묵화를 목판으로 재해석한 듯한 작업들인 [미산계곡 1, 2] [여기서] [대숲 아래 조용한 집] 들과 문자 시리즈 작업들인 [불타는 무] [불구경 1, 2] [무(無)자 화두] 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 시기에는 새로운 형식인 [소리 하나 1, 2] 시리즈, [작은 판화] 시리즈 등의 작업들도 지속했고, [참된 행복] 시리즈, [풍수원 성당-십자가의 길] 시리즈 등도 제작했다. (도판 154점, 보조 도판 101점 수록)
이철수 작품을 읽는 법
미술평론가 이주헌은 이철수 화업 30년을 기리는 글(본문 450페이지~454페이지)에서, 그의 그림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보는 게 좋다고 한다. 이철수의 그림은 미술이니 문학이니, 민중미술이니 선(禪)미술이니 굳이 따지지 말고, “그저 편안히, 부담 없이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고, 말하는 그대로, 전해 주는 그대로 듣는 것이다. 눈길이 가는 대로 보고 마음에 느껴지는 대로 느끼는 것이다. 가장 자연스러운 나의 모습으로 다가가면 가장 자연스럽게 들려오는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라고 한다. 이철수의 작품들을 한 점 한 점 바라보다 보면, “겨울 눈 쌓이듯 뭔가가 소리 없이 내 안에 쌓이는 게 느껴지고, “충족감이랄까, 만족감이랄까, 속으로 번지는 흐뭇한 미소가 느껴지고, 그런가 하면, 내 안에 찌든 때처럼 눌어붙어 있던 뭔가가 떨어져 나가는 시원함도 느낄수 있다.”라고 한다.
이철수의 판화는 일상의 고백이자 반성문
목판화를 붙들고 30년, 작가는 목판에 마음을 새겼다고 말한다. 책 제목 ‘나무에 새긴 마음’처럼 작가는 나무와 대화하며, 마음 이야기를 풀어냈다고 말한다. (작가서문, 본문 8~11페이지)
“제 판화에는 마음 이야기가 많습니다. 물론 사는 이야기, 자연과 사람 이야기를 통해서지요.
그 생각으로 사는데, 그 이야기밖에 더하겠습니까?
아시지요? 해외여행 처음 다녀온 사람이 제 여행담만 쏟아 놓고, 첫 아이나 첫 손주 본 이들 만나면 아이 이야기 들어줄 각오해야 하는 거!
저도 아직 마음 이야기 그 속에 있습니다.
사는 게 그림 그리는 일만은 아니어서, 틈틈이 농사일도 하고, 사람도 보고, 세상일 이것저것 참견도 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일 속에서 내내, 그것 모두 내 화두고 내 공부거리거니 생각했습니다.
낯설고 힘든 일은, 어려운 경전 구절처럼 여겼습니다.
못 읽어 내면 건너뛰고, 모르면 기다려서 새기는 게 책 읽는 법 아니던가요?
익숙하고 반가운 일은, 익히 아는 글처럼 다시 읽고 숨겨진 뜻을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산하대지가 한 권 경전이라고 했습니다.
산하대지뿐 아니라, 일상사 하나하나를 경전으로 여기고 살고 싶었습니다.
그것도 쉽지는 않아서 내내 갈지자걸음입니다.
제 판화도 꼭 그럴 겁니다.
제 판화가 제 일상의 고백이자 반성문이라고 말하게 되는 이유도 바로 그겁니다.”
영어와 일어로 전문 번역해 수록, 외국인 선물용으로 적합
촌철살인의 메시지와 시정 넘치는 짧은 글은 이철수 작품을 이해하는 주요 키워드 중의 하나이다. 이철수의 작품은 그간 영어와 독어, 일어 등으로 부분적으로 소개되어 호평을 받은 바 있는데, 이 책에서는 전체 작품 제목과 화제(畵題)는 물론이고, 작가 서문과 외부 원고(이태호, 이주헌) 모두를 영어와 일어로 번역해 수록했다. 특히 제목과 화제는 문자의 뜻을 전달하는 단순 번역에 그치지 않고, 작가가 의도하는 작품의 메시지를 가장 적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한국적 정서와 시대의 목소리, 현실의 일상 풍경을 솔직하게 담고 있는 작가의 작품들은 동양권은 물론 서양권 독자들에게도 큰 감명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목판화 30년 기념, 기획 초대전 열려!!
이철수 목판화 30년을 기념하는 기획 초대전 [새는 온몸으로 난다]가 관훈갤러리를 시작으로 전국 4개 도시(서울, 주문진, 전주, 창주)에서 순회전으로 열릴 예정이다. 이 책은 이 순회전의 전시 도록을 겸하고 있다. 책에 수록된 500여 점의 작품 중에서 100여 점 안팎의 작품이 전시 공간의 성격에 맞춰 선별되어 전시될 것이다. 첫 번째 전시는 관훈갤러리(서울 인사동)에서 6월 22일부터 7월 12일까지 열리며, 6월 29일 작가와의 대화도 예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