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가장 탁월한 저술가 중 한 명으로, 그리고
가장 진보적인 이론가이자 실천가로 꼽히는 리오 휴버먼.
그가 일생을 걸고 통찰해낸 자본과 노동,
소유와 분배에 관한 거스를 수 없는 진실!
출간된 지 수십 년이 된 논픽션이, 그것도 무겁고 딱딱한 사회과학 분야의 책이 전 세계에 걸쳐 여전히 수십만 권 이상 팔리고 있다면, 그 책의 작가에게는 분명히 뭔가가 있을 것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노동운동가이자 진보 지식인인 리오 휴버먼은 바로 그런 작가이다. 그는 복잡한 사회사상과 심오한 학문을, 수려하면서도 쉽고 간결한 문체로 풀어내는 탁월한 재능을 지닌 저술가이다.
1951년에 출간된 이 책 『휴버먼의 자본론 HUBERMAN’S CAPITAL』(원제: The Truth About Socialism)은, 휴버먼의 그간 저술활동을 집대성한 대표작이다. 휴버먼의 저작 가운데 국내에 많이 알려진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원제: Man’s Worldly Goods)가 봉건제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초기 자본주의 경제사를 훑고 있다면, 이 책은 자본주의의 맹주인 미국을 집중 대상으로 삼아 소유, 분배, 노동, 독점, 이윤, 국가, 계급, 정의, 자유, 권력 등 시대를 관통하는 중심 현안들을 하나하나 규명해 나간다. 휴버먼이 일생을 걸고 통찰해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관한 거스를 수 없는 진실이 이 책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여지없이 깨뜨리는 휴버먼의 혜안과 화법
대공황, 오일쇼크, 전 지구적 금융위기 등 세계경제가 걷잡을 수 없는 고장을 거듭 일으키면서, 20세기를 대표하는 경제 시스템인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지난 2008년 미국의 부동산 부실 대출에서 비롯된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이후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전 세계 지식인들에게 하나의 유행이 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집중포화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기세등등하게 썩은 부산물들을 쉼 없이 토해내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이른바 경제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조차 청년실업과 부당해고, 소득의 양극화, 금융 시스템의 부실화, 거대 기업들의 독과점 폐해가 극에 달하고 있다. 아시아와 중남미의 약소국들은 신자유주의 광풍에 휘말려 경제 주권을 잠식당하고 있으며,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는 속출하는 분쟁과 내전, 테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모습은, 휴버먼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1950년대 전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양극화(계급), 신자유주의(제국주의), 글로벌 금융위기(대공황), 자원전쟁(오일쇼크), 세계대전(전 지구적 분쟁들) 등 자본주의에서 비롯된 다양한 폐해들이 개념과 형태만 달리할 뿐 오히려 더 치명적이고 악질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휴버먼은 이러한 폐해는 자본주의에 내재해 있는 속성에서 비롯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폐기하지 않는 한 그 폐해 또한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 설파한다.(117쪽)
휴버먼이 활동했던 당시 지식인들은 자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그 본질에 대한 궁구(窮究)는 하지 않았다. 이는 지금에 와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를테면 여전히 대세를 이루는 자유방임주의 경제학자들은 거듭되는 경제위기가 정부정책의 오류, 권력자들의 부정부패, 천재지변 등 외부적 요인 때문이지, 자본주의의 속성에 기인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양극화’와 ‘세계화’ 같은 말을 빌어 자본주의의 외피를 열심히 비판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와 같은 의미인 ‘계급’이나 ‘제국주의’ 같은 개념은 구시대적 유물이라며 입에 올리는 것조차 거부한다. 휴버먼은 이처럼 본질을 호도하는 위선적인 지식인들의 행태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이를테면 휴버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것은 존재하는 엄연한 현실이다. ‘계급’이라는 말이 선동가들의 발명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상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사람들이 계급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원자를 ‘발견’한 과학자들더러 원자를 ‘발명’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터무니없는 것이다. 원자의 존재에 대해 믿는 것을 중단한다고 해서 원자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계급은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들의 의지에 따라 존재하는 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의지로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다.”(21쪽)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반영하는 개념들을 얼버무린다고 해서 그 폐해가 극복되는 게 아니라, 정확한 개념의 이해를 통해 현실을 솔직하게 직시해야만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게 휴버먼의 지론인 것이다.
세상에 만연한 사회주의에 대한 오해를 풀어내는 데 있어서도 휴버먼의 혜안은 뢵보인다. 사람들은 여전히 ‘사회주의’란 개인의 자유를 심하게 훼손하고 사유재산을 완전히 부정하는 무시무시한 이념으로 생각한다. 또 사회주의에서는 이윤추구가 금지됨에 따라 노동에 대한 동기 부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이러한 사회주의에 대한 오해를 휴버먼은 담담하면서도 냉철한 어조로 벗겨낸다. 우선 공장의 기계와 은 ‘생산수단’의 사유화를 금지할 뿐,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좋은 차나 집을 장만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재산의 사유화를 금지하는 게 사회주의가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317쪽 이하) 사회주의가 자유를 심하게 훼손한다는 통념도 휴버먼에 의해 여지없이 깨진다. 휴버먼은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자는 누구인가?”라고 반문한다.(337쪽 이하) 예컨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없으면 질 좋은 교육의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고, 이는 결국 ‘질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는 ‘교육적 계급’(이를테면 ‘학력 차별’)을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반면, 사회주의에서는 무상교육 시스템을 통해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일과 학문을 습득하기 위한 교육이 충분히 보장된다고 한다. 휴버먼의 이러한 논조는 사교육비 부담과 대학 등록금 현실화 논쟁이 한창인 지금의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결국 휴버먼은 사회주의를 단지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위한 이념적인 산물로서가 아닌, 우리의 삶 근저에 맞닿아 있는 ‘복지’와 ‘사회보장’의 측면으로 접근한다. 휴버먼은 이 책의 마지막 장인 ‘인간 _당신은 진정 사람답게 살고 있는가’에서 노동자, 농민, 청년, 유색 인종, 여성은 물론 예술가, 과학자 등 전문직 종사자에 이르기까지 사회주의가 그들의 일상을 어떻게 바꿔놓을 수 있는지 짧지만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한다.(379쪽 이하) 이처럼 휴버먼은 자본주의건 사회주의건, 그것이 맞서 싸워야 하는 상대이든 애써 추구해야할 대상이든, 우선은 그 본질과 그것을 둘러싼 진실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394쪽)
누구든 한 번은 반드시 읽어야 할
가장 불온한 논픽션!
이 책이 출간되던 1950년 전후의 미국은 매카시즘 광풍이 휘몰아치면서 매우 우울한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 당시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를 논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 국익을 해치는 불순분자로 치부되어 FBI나 CIA와 같은 공안당국의 감시를 받거나 심지어 사법당국에 체포되기도 했다. 미국의 수정헌법이 제1조에서 “언론·출판을 포함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그 당시는 헌법조차도 공허한 선언에 지나지 않았다.
서슬이 퍼랬던 바로 그 시절에 출간된 이 책은, 휴버먼에게 커다란 시련을 가져다주는 단초가 되었다. 휴버먼은 이 책에서, 미국이야말로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된 나라가 아닌 거대 독점 자본과 불공정한 시장만능주의가 만연한 곳임을 다양한 실증 자료를 들어 주장한다.(57쪽 이하) 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국민인 미국인들은 대부분 의식주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가난한 국민이라는 사실 역시 당시 통계 자료를 인용해 낱낱이 파헤친다.(85쪽 이하) 아울러 흑인을 비롯한 유색 인종들에 대한 미국사회의 이중적 모습을 고발하면서, 미국이 더 이상 민주주의에 걸맞지 않는 곳임을 설파한다.(217쪽 이하) 휴버먼은 이 책에서 미국이 가장 숨기고 싶어 하는 아킬레스건들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다.
결국 휴버먼은 1952년에 의회의 ‘비미국인 활동 청문회’(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에 소환되어 사상 검증을 받는 시련을 겪게 된다. 한편, ‘페니 페이퍼’(1페니짜리 신문) 발행 운동으로 생긴 최초의 신문 중 하나로 미국 저널리즘의 효시가 되었던 「뉴욕 헤럴드 트리뷴」은 이 책에 대해서 “당신의 인생에서 반드시 읽어야 할 가장 불온한(rebellious) 논픽션”이라고 소개하면서, 휴버먼의 용기를 반어적으로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위트 있는 풍자에 인문학적 상상력을 더해
무겁고 딱딱한 사회과학의 한계를 넘어서다
쉽고 간결하면서도 수려한 문체, 매우 구체적인 논증자료, 해당 내용 전체를 아우르는 탁월한 인용문! 휴버먼만의 유니크한 필치를 꼭 집어 얘기한다면 아마도 위의 세 가지가 될 것이다. 이 책에서도 휴버먼 특유의 화법은 유감없이 발휘 된다. 그는 비록 ‘정치경제학’에 근접한 사회과학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대상으로 글을 쓰지만, 그의 저작 어디에도 학술용어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휴버먼은 이 책의 저자 후기에서 “나는 가장 중요한 주제에 관한, 가장 초보적인 사실들을 가능한 한 단순하고 분명하게 그리고 간단하게 얘기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히고 있다(393쪽). 휴버먼은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에만 골몰하는 꽉 막힌 학자가 아닌, 누구든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사려 깊게 ?민하는 친절한 저술가였다.
아울러 휴버먼은 남의 말을 빌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저널리스트였다. 그는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데 학술서적이나 논문을 인용하는 대신,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 자료를 활용한다. 그는 이 책에서 소득의 양극화와 부의 불공정한 분배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미국 로스앤젤레스 부근 항만도시 샌 페드로에 사는 ‘에셀 랜프로’라는 소시민 여성의 증언 자료를 사용한다. 그녀의 인터뷰는 1947년 10월 미 의회 소위원회에 제출된 정부기록물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110쪽). 또 대공황 같은 위기가 닥치면 노동계급에 견줘 자본계급의 손실이 훨씬 적게 발생하는 경제현상에 대해서는, 임시 국가경제위원회에 증인으로 나온 펜실베이니아 뉴캐슬에 사는 ‘미첼 러셀’이라는 철강 노동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빌어 설명한다(124쪽 이하).
특히 휴버먼은 문학과 영화, 유명인들의 연설문 등에서 금과옥조 같은 문장(대사)들을 따와 책의 곳곳에 배치시켜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시인 칼 샌드버그의 시를 적소에 등장시키는가 하면(25쪽, 118쪽), 자본주의 시스템의 비효율 문제를 다룬 대목에서는 찰리 채플린의 영화 [키드]의 한 장면을 따오기도 한다.(187쪽)
한편, 휴버먼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데 있어서, 체제 옹호자들의 주장을 근거로 삼는 이색적인 방법을 동원한다. 예컨대, 이런 표현을 보자. “가장 일반적이고 오래된 갈등의 근원은 다양한 형태의 불평등한 재산 분배였다. 재산을 가진 이들과 갖지 못한 이들은 지금까지 한 사회에서 뚜렷하게 차이 나는 이해관계로 뒤얽혀 있다.”(13쪽) 이 말은 얼핏 계급투쟁을 선동하는 어떤 골수 공산주의자의 구호로 들리지만, 발언의 당사자는 미국의 제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이다. 이처럼 휴버먼은 ‘그 사람의 입을 빌어 그 사람의 입장을 반박’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 준다. 딱딱한 사회과학 관련 서적에서 흔히 접할 수 없는, 품격 있고 위트 있는 풍자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독자들을 읽는 재미에 푹 빠져들게 하는 다양한 표현 기법들은 휴버먼이 영면(永眠)한지 올해로 43년이 흘렀지만, 그가 쓴 책의 인기가 왜 식지 않는지를 방증한다.
휴버먼은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미국의 시인이자 외교관인 제임스 러셀 로웰의 말을 인용하며 마무리 한다. “모든 인간과 국가에게 ‘결정적 순간’이 한번은 닥친다. 진실과 거짓이 다를 때, 선한 쪽에 설지 또는 악한 쪽에 설지를 결정하는……” 자, 이제 휴버먼은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그 결정적 순간에 어디에 설 것인가?”라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독자들로 하여금 긴장을 늦추기 않게 하는 휴버먼 특유의 화법! 이 책이 지니고 있는 보석과도 같은 매력이자 미덕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