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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가지 진풍경으로 그리는 조선

신병주 | 글항아리 | 2011년 04월 14일 리뷰 총점7.5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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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1년 04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552쪽 | 978g | 153*224*35mm
ISBN13 9788993905571
ISBN10 8993905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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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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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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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였다(석사, 박사).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건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를 전공하고 있으며, KBS1 TV에서 ‘역사저널 그날’을, KBS1 라디오에서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을 진행했으며,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연산군과 광해군, 왕과 아들, 전염병 편에 출연하였다. 문화재재단 이사, 궁능활용심의위원 등...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였다(석사, 박사).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건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를 전공하고 있으며, KBS1 TV에서 ‘역사저널 그날’을, KBS1 라디오에서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을 진행했으며,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연산군과 광해군, 왕과 아들, 전염병 편에 출연하였다. 문화재재단 이사, 궁능활용심의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KBS 1 라디오 ‘신병주의 역사여행’을 진행하고 있다. 2018년에는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 최고 베스트 강사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남명학파와 화담학파 연구』, 『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 『하룻밤에 읽는 조선사』, 『고전 소설 속 역사기행』, 『조선왕실 기록문화의 꽃, 의궤』, 『조선왕조실록』, 『왕으로 산다는 것』, 『참모로 산다는 것』, 『왕비로 산다는 것』, 『조선평전』, 『조선과 만나는 법』, 『56개 공간으로 읽는 조선사』, 『절반의 한국사』(공저) 등이 있다. 규장각에 있는 수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의 전통 문화를 일반인에게 좀 더 친근하게 소개하는 연구 사업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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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조선이란 어떤 나라인가?에 대한 답변
큰 틀부터 세세한 문화의 논리까지 찾아나선 오디세이
전공자가 사료에 비춰 정통으로 밝힌 ‘조선의 모든 것’

현재에도 펄펄 살아있는 조선시대


이 책은 조선시대 정치, 사회, 문화의 사건과 풍경들을 60갑자의 틀 속에 담아낸 ‘조선평전’이다. 조선시대 역사의 진면목들을 흥미롭게 펼쳐내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재와 대화하는 방식으로 서술했다. 이미 여러 권의 대중 역사서를 집필했고, 오래 전부터 방송의 역사 프로그램에 자문을 해온 저자 신병주 교수는 “역사는 박물관 속에 갇혀 있을 때보다 이를 되살려내 현재화시킬 때 의미가 있다”고 보고 조선시대 역사의 전면적 현대화를 이 책을 통해 실천하고 있다.

2011년 일본의 대지진 참사를 지켜보면서 조선시대 지진의 발생과 그 대응 방식은 어떠했는가를 생각했고, 조선의 과거시험 열기를 요즈음의 수능제도와 비교해보았다. 조선의 관리들을 괴롭혔던 신참례 문화가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이어지는 것을 목격해 그것이 갖는 폐단을 짚어보았고, 1623년 3월의 인조반정을 다루면서는 그것이 5·16 군사정변과 12·12 쿠데타 등 현대의 군사쿠데타와 연결되는 흐름을 갖고 있음을 밝혔다. 최근 프랑스에서 한국으로의 반환이 결정되면서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외규장각 의궤에 대한 내용도 다룸으로써 조선시대 역사가 현재진행형임을 알리고자 했다. 역사는 이처럼 몇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 되살아나 우리의 삶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역사의 현장성도 놓치지 않는다. 서울 성곽과 자신만의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조선 왕릉의 역사를 다뤘고, 1623년 인조반정의 역사 현장을 따라가 보았다. 청계천 물길에는 태종·영조대 영광의 역사가 담겨 있음을 강조했고, 중인층의 위항문학 운동의 산실인 인왕산 일대의 문화유적지들도 소개했다. 1795년 화성행차의 노선과 구체적인 일정을 보여주는 한 편의 글을 읽어보면서는 정조가 추구했던 개혁정치의 현장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옛사람들의 놀이, 화폐, 코끼리, 고구마와 감자, 왕의 식단 등 생활사에 관한 내용을 다뤄 독자들이 조선의 역사를 피부에 닿게 느끼도록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조선의 정치, 사회, 문화, 자연을 포괄적으로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는 점이다. 주요 사건이 망라되었고, 각 신분의 이야기가 있으며, 사시사철의 풍속의 책 속에서 뛰어논다. 균형 잡힌 시각은 어떤 사안을 보더라도 장점과 단점을 치우침 없이 서술했으며, 자유로운 문체와 엄정한 사료적 판단을 좌우에 쥐고 그야말로 조선이라는 나라의 생애를 핍진하게 묘사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부제인 ‘60가지 진풍경으로 그리는 조선’은 60갑자의 사람의 생애와 오버랩되고, 진풍경은 ‘진짜 풍경’이면서 동시에 치부와 우스꽝스러운 모습까지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진상’의 의미를 포함한다. 장마다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풍부한 도판은 나무와 숲을 동시에 조망하는 이 책의 존재감을 더욱 살려준다.

본문의 주요 내용

기록의 나라, 조선의 면모를 밝히다
저자는 기록의 나라 조선의 면모를 여러 면에서 조명한다. 조선이 헌법 『경국대전』을 완성하기까지의 지난한 노력, 완성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보완해나간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남아 세계적 문화유산이 된 조선왕조실록 보존의 연대기도 소개된다. 임진왜란 때 조선왕조실록은 소실 위기에 처했다. 실록이 역사에서 모두 그 자취를 감출 뻔한 아찔한 순간, 전주 사고의 실록만은 살아남았다. 참봉 오희길과 유생 손홍록, 안의가 발 벗고 나섰다. 위기를 감지한 이들은 전주 사고의 실록을 내장산으로 옮기고 불침번까지 서가면서 실록을 지켰다. 이후에도 실록은 해주와 묘향산 등을 떠돌다 마침내 강화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안의나 손홍록 같은 평범한 백성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실록은 지켜질 수 있었다. 전란 이후 실록의 보관체계에 변화가 생겼다. 험준한 산지에 설치해 안정성을 높인 것이다. 그 외에 뛰어난 관찰력과 문장력의 소유자인 신숙주가 일본에 건너가 현지의 물정과 정치와 지리 등을 꼼꼼히 기록한 『해동제국기』 이야기, 왕과 왕비의 결혼을 기록한 의궤, 전쟁에 대한 생생한 기록인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오희문의 『쇄미록』, 민초들의 벗이자 현대까지 이야기의 힘을 살려나가고 있는 『춘향전』, 박지원의 『열하일기』 등을 꼼꼼히 살펴보면서 저자는 조선이 기록의 나라이자, 뛰어난 문명국가였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왕실문화의 이모저모 손에 잡히듯
이 책엔 조선을 이끌어간 국왕의 이야기가 신하들의 이야기에 비해 좀 많은 편이다. 조선은 양반의 나라인 것 이상으로 왕의 나라였던 만큼 저자의 풍부한 자료와 구성진 설명으로 만나는 왕실의 이모저모는 ?길을 끌 수밖에 없다. ‘영조와 정순왕후의 혼례식’을 통해서는 온 나라의 관심사이자 가장 떠들썩한 잔칫날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살펴보았고, ‘옛사람들의 새해 풍속도’를 통해서는 신년하례식의 모습, 농사를 권장하는 교서, 왕이 베푸는 회례연, 궁중의 신년 행사 등 분주한 모습을 묘사하기도 했다. 세종은 두 차례에 걸쳐 다루었는데 훈민정음, 농사직설, 해시계 등 문자와 농사와 과학이라는 국가 발전의 세 축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위대한 업적을 조명하는가 하면, 싱크탱크 집현전을 설치하고 ‘함께하는 정치’의 모범을 보였던 인재 경영의 높은 경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연산군은 완벽한 폭군으로, 광해군은 안타까운 개혁의 좌절로 소개하면서 ‘반정’으로 얼룩진 조선 정치사를 개괄하기도 했다. 나아가 왕들의 사생활이라고 할 만한 내용들도 많이 소개되었다.

과거제도와 관료사회의 풍경
조선시대에 관리들을 감찰하는 기관인 사헌부는 소위 군기가 ‘빡센’ 기관이었다. 이 책은 과거시험을 통과해 신입 관리의 신고식 문화를 묘사하는데, 특히 사헌부에서는 새로 들어온 사람을 신귀新鬼라 하여 여러 가지로 욕을 보였다. 방 가운데서 서까래만 한 긴 나무를 신참한테 들게끔 하는데, 이를 경홀擎笏이라 했다. 이 나무를 들지 못하면 주먹으로 맞았다. 또 신참에게 물고기잡기 놀이를 하게 하는데, 신참이 연못에 들어가 사모紗帽로 물을 퍼내서 의복이 모두 더렵혀지게 했다. 거미잡기 놀이라는 것도 있었는데, 귀와 손으로 부엌 벽을 문질러 두 손이 옻칠하듯 검어지면 손을 씻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물이 매우 더러워지면 신참에게 이를 마시게 하니 토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저팔계, 삼살보살, 이귀박 등 생소한 괴물들 이름을 단숨에 외게 시켜서 못할 경우 엄청난 괴로움을 주기도 했다. 이처럼 혹독한 신고식을 마치고 술이 거나해지면 사헌부의 관청 노래에 해당하는 ‘상대별곡霜臺別曲’을 불렀다. 마치 고등학교 동문회에 가면 실컷 ‘군기’를 잡다가 마지막에는 교가를 부르는 방식과 흡사하다.

오늘날 논술고사는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조선시대에도 진사시 이외에 본시험인 문과에서 책문策文이라 하여 주제에 맞는 문장 작성 능력을 비중 있게 평가했다. 그런데 문장시험에서는 종종 직접 생각해낸 글 대신 다른 사람의 문장을 그대로 베껴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인조대의 학자 신흠은 과거 답안지를 채점하면서 “기존의 문장을 그대로 베낀 경우가 거의 반수가 되었다”고 개탄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공무원이 되는 것은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웠다. 따라서 당시에는 과거 보러 가는 것을 ‘영광을 보러 간다’는 뜻의 ‘관광觀光’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도망가는 노비, 살해되는 주인

조선초기의 공노비 수는 『성종실록』(성종 15년 8월)의 기록에 ‘추쇄도감推刷都監’에서 아뢰기를, “추쇄한 서울과 지방의 노비는 모두 26만1984구이고, 여러 고을과 여러 역驛의 노비는 모두 9만581구입니다”라고 하여 노비 수가 35만여 명에 이르렀음을 보고하고 있다. 당시의 인구 대비 공노비는 전체의 10퍼센트 정도였으며, 사노비의 수까지 고려하면 조선시대 노비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노비는 해야 하는 일의 의무만 있었을 뿐 권리라고는 없었다. 특히 사노비는 공노비와는 달리 그들을 직접 구속하여 통제했던 까닭에 신분적 예속이 더 심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노비가 주인을 살해한 사건 수십 건이 기록되어 있다. 1556년(명종 11) 4월 원주 노비 복수福守는 주인 원영사 및 그 가족 다섯 명을 죽였는데 뱃속의 아이까지 꺼내 죽였다. 당연히 노비 복수는 극형에 처해졌고 원주의 관리까지 처벌했다. 숙종대에는 살주계殺主契가 조직되어 조직적으로 주인을 살해하는 사례도 있었다.

왕자도 하인도 더불어 즐겼던 장치기 놀이

조선시대에는 왕자부터 일반 서민, 하인에 이르기까지 재미있게 놀던 놀이로는 장치기가 있었다. 장치기는 타구打毬라고도 했는데, 길 위에 여기저기 구멍을 파놓고 긴 막대기로 둥글고 작은 공을 쳐서 그 구멍에 들어가게 하는 놀이로, 오늘날의 골프와 그 형태가 비슷했다. 구멍은 가능하면 공이 잘 들어가기 어려운 자리에 움푹하게 만들었으며, 까딱하면 빗나가는 다리 끝과 같은 곳에 만들어 아슬아슬한 승부를 맛보게 했다. 1413년의 『태종실록』에는 장치기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혜정교惠正橋 거리에 아동 곽금郭金·막금莫金·막승莫升·덕중德中 등이 있어 타구打毬 놀이를 하는데, 매 구毬의 칭호를 하나는 주상主上이라 하고, 하나는 효령군孝寧君이라 하고, 하나는 충녕군忠寧君이라 하고, 하나는 반인伴人이라 했다. 서로 치다가 구毬 하나가 다리 밑의 물로 굴러 들어가자, 그 아이가 대답하기를 ‘효령군이 물에 빠졌다’고 했다.” 장치기에 쓰이는 공의 크기는 달걀 정도였고 나무나 차돌멩이로 만들었다. 공을 치는 채의 모양은 긴 숟가락처럼 생겨 오늘날 골프채나 하키채와 비슷했다. 세종대왕도 왕자일 때 하인들과 어울려 장치기 놀이를 했다. 특히 세종대왕은 날씨가 추워 궁궐 밖에 나가기 어려운 겨울부터 이듬해까지 이 놀이를 즐겼다 한다. 위대한 임금 세종대왕도 어린 시절에는 장치기 놀이에 흠뻑 빠졌던 개구쟁이였던 것이다.

한강은 어떻게 수도가 되었을까?

한양이 계룡산을 물리치고 도읍으로 된 데에는 수로와 해로의 교통이 편리하여 국가의 조세를 쉽게 거둘 수 있다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했다. 한양으로의 마지막 결정 단계에서, 풍수지리상 이곳이 약간의 결점이 없지 않다는 지적을 듣고 태조가 “이곳의 형세를 살펴보니 왕자王者의 도읍이 될 만하다. 더구나 조운漕運이 통하고 사방의 이수里數도 고르니 사람들에게 편리하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 위의 기록은 수도로서 한양의 가치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한강과 서해를 활용한 세곡(세금)으로 거두는 곡식의 운송은 한양이 수도가 될 만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얼음에 제사지낸 나라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더운 여름을 났을까. 서민들이야 옷을 훌훌 벗고 등목 하며 지냈지만 양반들은 한강의 얼음을 이용했다. 동빙고의 얼음은 주로 제사용으로 쓰고, 서빙고의 얼음은 한여름인 음력 5월 보름부터 7월 보름까지 종친과 고위 관료, 퇴직 관리, 활인서의 병자, 의금부의 죄수들에게까지 나누어주었다. 네 치 두께로 언 후에야 얼음을 뜨기 시작했다. 이에 앞서 난지도 등지에서 갈대를 가져다가 빙고의 사방을 덮고 둘러쳤는데, 이는 냉장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얼음을 뜰 때에는 칡으로 꼰 새끼줄을 얼음 위에 깔아놓고 사람이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했다고 한다. 얼음을 뜨고 저장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세종실록』에는 장빙군藏氷裙에게 술 830병, 어물 1650마리를 하사했다는 기록이 나타나 얼음을 저장하는 사람들에게 세심한 배려를 했음을 알 수 있다. 얼음을 빙고에서 처음 꺼내는 음력 2월 춘분에는 개빙제開氷祭를 열었다. 얼음은 3월 초부터 출하하기 시작하여 10월 상강霜降 때 그해의 공급을 마감했다고 한다. 겨울에 날씨가 따뜻하여 얼음이 얼지 않으면 사한단司寒壇에서 추위를 기원하는 기한제祈寒祭를 올렸다. 영조 때에는 기한제 이후에 얼음이 꽁꽁 얼자 제관祭官들에게 상을 내렸다.

조선시대의 지진과 그 대처법

“용상은 마치 사람의 손으로 밀고 당기는 것처럼…전각 지붕이 요동쳤다”는 기록 등에서 볼 때 조선시대에도 오늘날과 같이 심한 지진이 간혹 일어나곤 했다. 실록에 기록된 것만해도 무려 1967건에 이른다. 지진의 강도가 약할 경우엔 발생 지역만 언급했고, 진도가 심할 경우엔 발생 지역과 시간, 소리의 크기, 피해 정도까지 상세히 기록했다. 그러나 지진의 원인과 인명피해를 막기 위한 노력은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들은 지진 발생의 원인을 정치에서 찾았고 임진왜란 중인 1594년 서울에 지진이 일어나자 선조는 자신의 부덕의 소치로 여기고 왕위를 왕세자 광해군에게 물려줄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백성의 절반이 곰보?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는 『진신화상첩』이라는 선비들의 초상화첩이 소장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 그려진 인물 22명 중 오재소 등 5명의 얼굴에 선명한 곰보 자국이 나타나 있다. 고위관료까지 지낸 사람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곰보였다면 의료 혜택을 거의 받지 못했던 평민들이 곰보였을 확률은 더 높아진다. 조선시대의 가장 무서운 전염병 천연두는 이처럼 거의 모든 백성들의 얼굴에 다녀간 발자국을 찍어놓았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아예 “마마신”이라 하여 엎드려 절하면서 제발 가달라고 부탁하는 신이 돼버렸을까.

태조의 무덤은 왜 홀로일까? … 왕릉의 정치학

태조가 죽은 후 왕릉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태종의 고민은 이어졌다. 조선 건국 전에 죽은 친어머니 신의왕후의 무덤(재릉)은 개성에 있었고, 계모 신덕왕후의 무덤(정릉)이 서울에 조성되어 있었지만 그 옆에 아버지를 모셔두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태자 시절 왕위를 놓고 계모와 갈등이 심했던 태종은 왕위에 오르자 결국 정릉 파괴와 이전을 지시했다. 1409년(태종 9) 정릉은 도성 밖 양주 지방, 현재의 정릉(서울 성북구) 자리로 옮겨졌다. 이어 태종은 원래 정릉의 정자각을 헐고 봉분을 완전히 깎아 무덤의 흔적을 남기지 말도록 명했다. 결국 조선의 첫 왕인 태조의 무덤은 양주 검암산 자락, 현재의 구리시 동구릉 일대에 홀로 외로이 조성되었다. 그 이후 풍수지리상으로 명당이라 그런지 조선의 왕과 왕비의 무덤이 속속 모여들었다. 동구릉의 왕릉들은 서로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왕릉은 숨은 역사 이야기를 전해준다. 선조의 ?덤인 목릉 지역에는 정비 의인왕후와 계비 인목왕후가 서로 다른 산자락에 모셔져 있고, 영조의 원릉은 조강지처 정성왕후를 버리고 계비 정순왕후와 함께 묻힌 모습이다. 헌종의 무덤인 경릉은 정비와 계비의 구분이 부담스러웠던지 헌종의 무덤 곁에 두 왕비를 나란히 묻은 삼연릉三連陵 형식을 띠고 있다.

반정, 조선과 중국의 차이

반정은 ‘바른 것으로 되돌린다’는 뜻으로 원래 중국의 역사서인 『춘추』 「공양전」의 ‘발란반정’撥亂反正(난리를 평정하여 바른 것으로 되돌림)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에서는 한 번도 반정이 일어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중국 역사에서는 반란을 성공시킨 인물 자신이 바로 왕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반정은 조선이라는 나라가 그만큼 성리학적인 명분을 이념화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이해된다. 비록 정권을 무너뜨린 권력의 실세라도 왕위에 오르는 것은 잘못이며 왕위는 왕통을 이을 가장 적합한 인물을 올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인식한 것이다. 조선의 역사에서 두 차례의 반정(중종반정, 인조반정)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웃 나라인 중국이나 일본과도 비교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명목상으로는 폭군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을 왕위에 올리면서 반정의 모양새를 갖추었지만 실제 권력은 반정을 주도한 훈구 공신들에게 있었다.

조선의 대운하는 왜 좌절되었나

조선시대에는 수로 교통이 지금보다 훨씬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세곡을 운반하는 루트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반도 최대 곡창인 호남의 세곡을 서울로 운반하는 데 있어 가장 난코스가 바로 태안 앞바다 일대였다. 태안 앞바다 안흥량安興梁은 물살이 빠르고 파도가 높아 이따금씩 세곡선이 침몰하는 위험지대였다. 이후 고려 인종, 조선 태종, 현종, 세종, 효종, 정조 때까지 태안반도 운하 문제가 국가 과제로 계속 제시되었다. 하지만 물밑이 온통 돌이고 돌산도 많았으며, 운하를 파도 곧 흙으로 채워질 우려가 많았다. 저자는 조선왕조의 왕들이 신하와 백성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면서 공사의 시행 여부를 결정한 점을 주목했다. 정조는 태안반도 운하 건설에 관한 내용을 과거시험 문제로 낼 정도로 관심을 기울였다. 역량 있는 젊은 인재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자 했던 것이다.

로맨스 즐기다 1년 만에 장원급제, 이도령은 천재?

저자는 전공자의 시각에서 조선시대에 관한 잘못된 상식을 곳곳에서 바로잡는다. 많은 사람들이 『춘향전』의 스토리를 그대로 믿으면서 이것이 역사적 실제인 것처럼 해석하곤 한다. 하지만 『춘향전』은 어디까지나 소설이기에 허구적 상황들이 숨어 있다. 이몽룡이 처녀가 그네 뛰는 것을 충분히 감상하고 적당한 로맨스를 즐기면서도 1년만에 과거에 장원급제 한 것은 ‘천재’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치더라도, 장원급제 후 이도령이 바로 암행어사로 나가는 것도 대단히 예외적인 경우다. 조선시대 암행어사가 가능한 최소한의 직급이 종6품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말이다. 이도령이 남원에 파견된 사례에서는 소설적 허구의 극치를 이룬다. 조선시대에는 상피제가 엄격히 적용되어 자신의 출신지에 암행어사를 파견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또한 폭정을 일삼는 변학수의 모습에서 보듯 조선시대 사또는 초법적 존재인가? 조선시대에는 수령이 함부로 사법권을 집행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으며, 단지 자신에게 수청을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목에 칼을 씌우는 형벌은 더더욱 집행할 수 없었다. 물론 자신의 목을 그대로 내놓은 사또가 아니라면 말이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도 삼심제三審制가 엄격히 시행되었으며,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각종의 법적 제도가 완비되었음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 외에도 이 책에는 중국어 학습서인 『노걸대』 『박통사』, 일본어 학습서인 『첩해신어』 등을 통해서 조선시대의 외국어학습을 살펴보기도 하고, 조선시대의 화폐를 통해 당시의 경제동향을, 소 이야기를 통해 농경사회의 면모를, 귀화인을 통해 조선시대의 재한외국인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마지막 장에서는 역사 속 지도자들의 마지막 모습, 행복한 왕과 불행한 왕, 조선시대 종친들의 삶 등을 통해 역사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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