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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스케치 6집 - 노을 속에 흐르는 추억의 팝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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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스케치
CD CBS FM 배미향의 저녁스케치

저녁스케치 6집 - 노을 속에 흐르는 추억의 팝송

[ 2CD 디지팩 ]
Il Divo, Il Volo, Jeane Manson, Julio Iglesias, Jessica 노래 외 30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SonyMusic | 2017년 09월 14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588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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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스케치 6집 - 노을 속에 흐르는 추억의 팝송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7년 09월 14일
시간, 무게, 크기 60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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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소개

디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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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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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소개 (35명)

멤버 : 카를로스 마린 (Carlos Marin), 세바스티앙 이장바르 (Sebastien Izambard), 데이비드 밀러 (David Miller), 우르스 뷜러 (Urs Buhler) 멤버 : 카를로스 마린 (Carlos Marin), 세바스티앙 이장바르 (Sebastien Izambard), 데이비드 밀러 (David Miller), 우르스 뷜러 (Urs Buhler)
노래 : Il Volo (일 볼로 (팝페라 트리오))
멤버 : Piero Barone, Ignazio Boschetto, Gianluca Ginoble 멤버 : Piero Barone, Ignazio Boschetto, Gianluca Ginoble
노래 : Julio Iglesias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이스라엘과의 평화조약 체결로 한때 중동평화를 이끌어냈던 이집트의 고(故) 사다트 대통령이 1970년대 후반 대통령 전용 특별헬리콥터를 타고 지방시찰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사하라 사막에서 매우 어렵게 살고 있는 유목민들을 목격하고 비행사에게 착륙을 지시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성은’을 베푸는 과정에서 사다트대통령은 생활 형편이 곤란한 이 유목민들이 모두 카세트녹음기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훌리오 이글레... 이스라엘과의 평화조약 체결로 한때 중동평화를 이끌어냈던 이집트의 고(故) 사다트 대통령이 1970년대 후반 대통령 전용 특별헬리콥터를 타고 지방시찰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사하라 사막에서 매우 어렵게 살고 있는 유목민들을 목격하고 비행사에게 착륙을 지시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성은’을 베푸는 과정에서 사다트대통령은 생활 형편이 곤란한 이 유목민들이 모두 카세트녹음기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라는 이름의 가수 테입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했다. 사다트대통령이 “이 가수를 압니까?”라고 묻자 그들은 일제히 “알다마다요,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죠.”라고 대답했다. 다음에는 “스페인어로 노래하는 가수인데, 노랫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요?”라는 질문을 던졌더니 유목민은 이렇게 답변하는 것이었다. “모릅니다. 하지만 이 노래가 러브송인지는 압니다. 그러면 됐지, 언어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사다트대통령은 유목민들이 훌리오는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대통령인지는 전혀 알지 못한 것 같았다고 뒤에 술회한 바 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라틴 가수로 꼽히는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진가를 설명하는 데는 이 하나의 일화로 충분할 것이다. 1970년대에는 라틴 권역에서 만 이름이 알려진 그는 1980년대 들어서는 세계를 주름잡는 진정한 글로벌 스타로 거듭났다. ‘사하라 사막에서 사하라 호텔에 이르기까지’, ‘이집트에서 미국까지’ 전 세계 각계각층이 그의 매력에 포박된 것이다. 특히 중년여성들은 부드럽고 넉넉한 그의 목소리와 외모에 빠져 압도적 팬 층을 형성, 이를 두고 이탈리아의 한 여류 사회학자는 훌리오를 ‘폐경(肺經)기 여성의 새로운 남성적 상징’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1943년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출생한 훌리오는 가수가 되기 전 법학 공부를 하던 중(영국 캠브리지 대학 졸업) 스페인의 축구 명문구단인 레알 마드리드에서 골키퍼로 선수활동을 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 교통사고로 운동을 하지 못하게 되자 가수로 지망을 조정했다. 1968년 오디션에서 합격한 뒤 스페인 지역 레이블을 통해 성공적인 음반활동을 하다가 1970년대 들어서는 부지런히 라틴 국가들을 돌며 지명도를 축적했다. 1978년 ‘CBS 인터내셔널’과 계약을 체결했으며 그 전후로 발표한 앨범들인 < A Mis 33 Anos >(1977년) < Emociones >(1979년) < Hey >(1980년)로 잇달아 히트를 기록, 스페인과 라틴 아메리카 음반시장을 주름잡았다. 1979년의 ‘Quiereme mucho(Ou est passee ma boheme)’와 1980년의 ‘Hey’가 이 시기의 빅 히트송들. 특히 ‘Hey’는 1980년대 초반 국내 라디오를 잠식, 적어도 한국에서는 최고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애청 레퍼토리로 기성세대의 기억에 남아 있다. 스페인어 이탈리어 불어만을 노래하던 그는 1980년대를 맞아서는 영미시장을 노려 1981년에는 콜 포터(Cole Porter)의 작품인 ‘Begin the beguine’를 스페인어로 부른 ‘Volver a empezar’로 마침내 영국차트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국제적으로는 영어 곡보다는 여전히 스페인어 노래들이 더 사랑을 받았다. 1982년 앨범 < Moments >에서는 ‘Nathalie’를 비롯해 ‘Amor’ ‘Momentos’ ‘La paloma’ 등이 거푸 히트했다. 이 무렵 국내에선 ‘Hey’에 이어 다시 ‘Nathalie’가 폭발적으로 애청되어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앨범을 찾는 고객들이 매장에 쇄도했다. 1984년 우리의 한 연예 잡지는 국가를 막론한 그의 폭넓은 인기에 주목, “현재 음악계에는 마이클 잭슨과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라이벌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는 기사를 게재했을 정도였다. 1983년 콜롬비아 레코드사로부처 전 세계 1억장 판매고로 다이아몬드 디스크를 받은 그는 이듬해 완연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꿈의 목표인 미국진출을 시도한다. 철저한 계획 하에 전곡을 영어로 부른 앨범 < 1100 Bell Air Place >를 내놓아 여기서 컨트리 슈퍼스타 윌리 넬슨(Willie Nelson)과 호흡을 맞춘 곡 ‘To all the girls I’ve loved before’는 전미차트 5위에 오르며 순식간에 10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 노래는 ‘전에 내가 사랑했던 모든 여인들에게’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유독 여성 팬이 많은 그의 이미지를 적절히 활용하는 기획이 돋보였다. 다이애나 로스(Diana Ross)와 부른 곡 ‘All of you’도 19위에 올라 성공을 반복했다. 이후부터는 지속적으로 영어 노래를 앨범에 수록하기 시작해, ‘Ni te tengo ni te olivido’으로 다시 라틴의 맹주임을 확인시킨 앨범 < Libra >에서도 콜 포터의 곡 ‘I’ve got you under my skin’을 소화했다. 1988년에 낸 앨범 < Non Stop >에서도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와 짝을 맞춘 ‘My love’로 다시 싱글 차트에 명함을 내밀었다. (1993년 프랭크 시내트라의 앨범 < Duets >에선 ‘Summer wind’를 프랭크 시내트라와 함께 하모니를 일궜다) 스탠더드 팝에 대한 그만의 여유 넘치는 해석은 1990년 팝 리메이크 앨범인 < Starry Night >의 성공을 이끌었으며 여기선 제목을 제공해준 돈 맥클린의 ‘Vincent’와 리오 세이어의 ‘When I need you’가 널리 애청되었다. 1994년 앨범 < Crazy >에서도 윌리 넬슨이 써준 타이틀곡 ‘Crazy’는 줄기차게 전파를 탔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다시 중심을 라틴 앨범으로 돌려, 1995년 < La Carretera >, 1996년의 < Tango >, 2000년의 < Noche De Cuatro Lunas >, 2003년의 < Divorcio > 등을 발표했지만 선율의 매력은 영어 앨범보다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지금까지 스페인어 영어 불어 이탈리아어는 물론 독일어 포르투갈어 심지어 일본어로도 노래를 불렀다. 그리하여 총 7개 국어로 부른 노래로 지금까지 2억장이 넘는 앨범 판매량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대 들어서 시장에서의 위치는 전 같지 않지만 여전히 앨범 판매력과 공연에서의 관객동원력은 유지하고 있다. 그의 인기는 아들 엔리케 이글레시아스(Enrique Iglesias)가 잇고 있다.
제시카는 1998년 국내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팝송 < Goodbye >로 익숙한 이름이다. 원래 이 곡은 호주그룹 에어 서플라이(Air Supply)가 불렀으나 제시카가 풍부한 음색으로 리메이크하여 다시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당시 영화 < 약속 >에 이 노래가 삽입되었고 영화의 성공과 함께 주제가였던 < Goodbye >도 애청되었던 것이다. 제시카의 본명은 제시카 폴커(Jessica Folker)로 아바(A... 제시카는 1998년 국내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팝송 < Goodbye >로 익숙한 이름이다. 원래 이 곡은 호주그룹 에어 서플라이(Air Supply)가 불렀으나 제시카가 풍부한 음색으로 리메이크하여 다시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당시 영화 < 약속 >에 이 노래가 삽입되었고 영화의 성공과 함께 주제가였던 < Goodbye >도 애청되었던 것이다. 제시카의 본명은 제시카 폴커(Jessica Folker)로 아바(Abba) 록시트(Roxette) 에이스 오브 베이스(Ace Of Base) 그리고 야키다(Yakida) 등을 배출한 ‘팝의 강국’ 스웨덴 출신이다. 올 24살의 나이로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약간 검은 피부와 시원한 이목구비를 지녀 비주얼로도 매력적이다. 이러한 외모 때문에 그녀는 한때 패션모델 활동을 했지만 결국은 어릴 적부터 열정이 남달라 필생의 분야였다는 음악으로 돌아오게 된다. 음악학교에서 받은 교육으로 독특한 음색을 얻은 그는 스웨덴의 스타들의 백업보컬로 가수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제시카는 곧 스웨덴 팝 음악계의 실력자이자 백스트리트 보이스, 파이브 등을 발굴한 프로듀서 데니즈 팝(Denniz Pop)의 눈에 들게 된다. 2년 전 세상을 떠난 그는 제시카로부터 뛰어난 감각과 가능성을 발견하고 자이브(Jive) 레코드사에 소개해주었으며 앨범 프로듀서를 자임했다. 제시카가 이번에 발표한 앨범은 ‘Dino''가 제목. 디노는 바로 데니즈 팝의 애칭이다. 즉 자신을 위해 큰 도움을 주어 존경해마지 않았던 고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앨범을 통째로 그에게 바친 셈이다. 1997년 디노가 만든 앨범 < Jessica >로 제시카는 스웨덴 전역에 새바람을 몰고 왔다. < Goodbye >도 이 앨범에서 발표된 싱글. 그녀가 유독 두각을 나타낸 지역은 위에서 말한 대로 우리 한국이다. 당시 제시카는 < Goodbye >가 부상과 함께 홍보 차 내한, TV에 출연하기도 했다. 한편 두 번째 앨범 < Dino >의 첫 싱글 ‘To be able to love’는 빠르고 강한 템포와 리듬을 내세우고있다. 이에 대해 제시카는 “업템포(uptempo) 곡들을 좀 더 많이 시도해보고 싶었다. 첫 앨범에서는 강력한 사운드나 빠른 템포의 곡들이 부족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제시카는 신보홍보를 위해 4월초 다시 내한한다.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은 1980, 1990년대 남성들에 의해 주도되던 메탈의 포화를 뚫고 스탠다드 팝 시장을 개척해 낸 대표적인 ’디바’ 뮤지션이다. 휘트니 휴스턴은 1963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났다. 알앤비 가수 씨시 휴스턴(Cissy Houston)의 딸이었으며 시대를 풍미한 여가수 디온 워윅(Dionne Warwick)이 친척이었던 그녀는 어려서부터 대형 가수들을 옆에서 지켜볼 수 ...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은 1980, 1990년대 남성들에 의해 주도되던 메탈의 포화를 뚫고 스탠다드 팝 시장을 개척해 낸 대표적인 ’디바’ 뮤지션이다. 휘트니 휴스턴은 1963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났다. 알앤비 가수 씨시 휴스턴(Cissy Houston)의 딸이었으며 시대를 풍미한 여가수 디온 워윅(Dionne Warwick)이 친척이었던 그녀는 어려서부터 대형 가수들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고, 어머니의 재능을 이어받아 어려서부터 성가대에서 노래하며 그 실력을 뽐냈다. 수려한 외모까지 겸비한 휘트니는 10대의 나이에 이미 모델, 배우, 가수의 세 가지 활동을 병행하고 있었다. 샤카 칸(Chaka Khan) 등의 백업보컬로 또 클럽에서 가수로 활동하던 그녀는 1982년 19살의 어린 나이에 폴 자바라(Paul Zabara)의 ’Eternal love’라는 곡에 보조 보컬로 참여하며 처음으로 정식 음반 녹음에 참여한다. 이듬해 아리스타(Arista)와 계약을 체결했고, 그녀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레코드사는 데뷔 앨범에 27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자하며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1985년 데뷔앨범 < Whitney Houston >은 흑인 디바 시대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앨범은 14주간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오르며 솔로 아티스트의 데뷔 앨범 중 가장 오랜 기간 1위에 머무른 앨범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세계적으로 2,300만장이라는 경이적인 앨범 판매를 이루어내며 데뷔 앨범 하나로 팝계 최고의 여가수로 자리하게 된다. 앨범 내에서는 ’Saving all my love for you’, ’How will I know’, ’Greatest love of all’(조지 벤슨의 곡 리메이크)의 세 곡이 연속해서 차트 정상에 오르고, 앨범의 경이적인 성공으로 86년 그래미와, 86,87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를 차지한다. 1987년 그녀는 두 번째 앨범 < Whitney >를 통해 전작의 인기를 이어간다. 전작보다 비트감을 더한 이 앨범 역시 대단한 성공을 일구어 낸다. 발매 첫 주에 미국과 영국차트에서 동시에 1위에 오르는데 팝 역사상 처음으로 이룩한 기록이었다. 앨범은 차트 정상에 11주간 머물렀으며 세계적으로 2,000만장이 팔려나갔다. 싱글들의 인기도 대단해서 ’Wanna dance with somebody(Who loves me)’, ’Didn’t we almost have it all’, ’So emotional’, ’Where do broken hearts go’ 네 곡이 연속해서 차트 정상을 밟으며 이전 앨범부터 7개의 싱글이 연속해서 정상을 밟는 대 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 앨범으로 또다시 1988년 그래미를 거머쥐었고, 역시 88년, 89년의 아메리칸 뮤직어워드를 수상한다.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 같은 정통 소울 아티스트들로부터 음악적 영감을 얻었던 그녀이지만 1,2집에서 보여준 음악은 대중성이 지나치게 강조된 흑, 백의 사운드가 뒤섞인 음악이었다. 자신도 그런 자신의 음악에 만족하지 못했는지 1990년 발표한 세 번째 앨범 < I’m Your Baby Tonight >에서는 대중성을 신경 쓰지 않고 정통 소울 음악으로 변신을 시도한다.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루떠 반데로스(Luther Vandross)등과 함께 작업하는 등 흑인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에 집착했던 이 앨범은 역시 이전 앨범들만큼의 성공을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I’m your baby tonight’, ’All the man that I need’가 1위에 올랐고, 앨범은 전 세계 1,200만장의 판매를 기록하는 등 여전히 그 인기는 대단했다. 세 장의 정규 앨범 이후 그녀는 영화 배우로의 변신을 시도하며 세 장의 사운드 트랙을 연속 발표한다. 시작은 < 보디가드 >였다. 1992년 케빈 코스트너와 함께 출연한 ’보디가드’의 사운드 트랙에서 6곡을 노래했고, 이는 팝 역사에 길이 남을 경이적인 상업적 성공을 이끌어낸다. 첫 싱글 ’I will always love you’(돌리 파튼의 곡을 리메이크)는 차트 정상에 14주간 머물렀으며, 앨범은 20주간 1위를 지켰고, 세계적으로 3,500만장이라는 어마어마한 판매고를 기록한다. 1994년 그녀는 다시 한 번 그래미를 거머쥐었고,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는 8개 부문 수상이라는 대 기록을 세우게 된다. 1995년 휘트니 휴스턴은 다시 한 번 사운드 트랙에 참여한다. 자신이 주연한 < Waiting for Exhale >의 사운드 트랙에 3곡을 수록하면서 영화와 앨범의 성공에 기여한다. 이 앨범은 노장 흑인 여가수들과 신예 흑인 여가수들이 총 동원되어 만들어졌으며, 프로듀서로 참여한 베이비페이스(Babyface)는 그래미 12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영예를 누리게 된다. 1996년 그녀는 영화 < The Preacher’s Wife >에서 주연을 맡으며 다시 한 번 사운드 트랙에 참여한다. 14곡을 자신이 직접 맡은 이 앨범은 가스펠 위주의 곡들로 채워져 있으며 대중성보다는 종교적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어 앨범판매에 있어서는 그다지 큰 성공을 이끌어내지 못하였다. 정규 앨범을 발표하지 않고 영화와 사운드 트랙에만 전념해왔던 그녀는 98년 8년 만에 정규앨범 < My Love Is Your Love >을 발표한다. 흑인 아티스트로서의 음악에 충실함을 기했던 이 앨범은 1,000만장의 앨범 판매를 기록하며 그녀의 앨범 중 가장 저조한 성적을 거두게 된다. 앨범 내에는 영화 ’이집트의 왕자’ 주제곡인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와의 듀엣 곡 ’When you believe’가 수록되어 있다. 2000년 그녀는 자신의 15년 음악생활을 결산하는 베스트 앨범 < The Greatest Hits >를 발표한다. 조지 마이클, 엔리케 이글레시아스와의 듀엣 곡 등 네 곡의 신곡도 포함하고 있는 이 앨범은 발라드 곡들만을 모은 < Cool Down >과 댄스곡 및 댄스 리믹스 곡들을 모은 < Throw Down > 두 장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노래 : Melissa Manchester (멜리사 맨체스터)
가수, 영화배우 가수, 영화배우
노래 : Joe Dassin (조 다생 (샹송 보컬))
서정적인 발라드 곡 ‘The water is wide’로 잘 알려진 칼라 보노프는 포크 음악이 사회 저항에서 한 발짝 물러서 개인과 내면을 노래했던 1970년대 싱어 송 라이터들과 함께 활동하며 탄탄한 음악성을 과시했던 인물이다. 1952년 L.A.에서 태어난 칼라 보노프는 15세의 어린 나이에 작곡가로 데뷔했을 정도로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1960년대 자신의 언니인 리사 보노프와 함께 인근 클럽가에서 ... 서정적인 발라드 곡 ‘The water is wide’로 잘 알려진 칼라 보노프는 포크 음악이 사회 저항에서 한 발짝 물러서 개인과 내면을 노래했던 1970년대 싱어 송 라이터들과 함께 활동하며 탄탄한 음악성을 과시했던 인물이다. 1952년 L.A.에서 태어난 칼라 보노프는 15세의 어린 나이에 작곡가로 데뷔했을 정도로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1960년대 자신의 언니인 리사 보노프와 함께 인근 클럽가에서 활동하며 명성을 쌓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최고의 싱어 송 라이터들과 친분을 쌓으며 그 커뮤니티에 당당히 합류했다. 그녀는 트루바두르(음유시인, Troubadour)라 불리며 활약했던 엘튼 존, 제임스 테일러, 잭슨 브라운 등과 함께 활약하였고, 얼마 후 케니 에드워즈(Kenny Edwards), 웬디 월드만(Wendy Waldman), 앤드류 골드(Andrew Gold)와 함께 ‘브린들(Bryndle)’이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하지만 브린들은 시대를 앞서 가던 인물들로 꾸며진 화려한 라인업임에도 불구하고 음반사로부터 외면당하며 앨범조차 내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브린들의 해산 후 멤버들은 각자의 길에서 성공을 거두어 나간다. 그 중 케니 에드워즈와 앤드류 골드는 린다 론스테드(Linda Ronstadt)의 밴드에서 활동했는데 이들이 린다 론스테드에게 칼라 보노프의 곡들을 소개해 주었다. 그 결과 1976년 린다 론스테드의 음반 < Hasten Down The Wind >에 칼라 보노프가 작곡한 노래 세 곡이 실리면서 보노프는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동료들의 도움 속에 뒤늦게 빛을 발한 칼라 보노프는 < 콜럼비아 레코드사 >와 계약을 맺고, 1977년 셀프 타이틀 데뷔음반 발표하였다. 오랜 동료 케니 에드워즈가 프로듀서를 맡은 이 음반은 ‘I can’t holo on’이 히트했으며, ‘Someone to lay down beside me’를 비롯해 이미 린다 론스테드의 앨범에 수록되었던 세 곡 역시 인기를 얻었다. 1979년에는 두 번째 앨범 < Restless Nights >를 발표했다. 싱어 송 라이터인 그녀였지만 이 음반에는 두 곡의 커버 곡이 수록되었는데,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아일랜드 민요 ‘The water is wide’가 그 중 한 곡이었다. 3년 뒤인 1982년 내놓은 세 번째 음반 < Wild Heart Of The Young >은 두 전작이 기대한 만큼의 큰 성공을 거두어들이지 못한 데 대한 고민이 역력하게 드러난 작품이었다. 다시 커버 곡을 사용하고 외모를 드러내는 등 상업적 성공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칼라 보노프의 기대와 달리 음반은 참패를 면치 못했고, 그 여파로 < 콜럼비아 레코드사 >와 결별하고 말았다. 1984년 영화 < Footloose >의 사운드트랙에 참여하는 등 과외 활동을 이어가던 칼라 보노프는 6년여의 긴 공백을 깨고 1988년 < New World >를 발표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린다 론스테드와 아론 네빌(Aaron Neville)이 듀엣으로 앨범에 수록된 ‘All my life’을 리메이크하며 그래미상을 수상하면서 칼라 보노프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기회를 살려 칼라 보노프와 그의 옛 동료들인 케니 에드워즈, 앤드류 골드, 웬디 월드만은 브린들을 재결성했고, 4년 간의 준비 과정을 거친 뒤 1995년 뒤늦은 데뷔 앨범 < Bryndle >을 선보였다. 브린들 멤버로서 자신의 모습에 즐거움을 표했던 칼라 보노프는 현재 두드러지는 활동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지만 그룹의 한 일원으로 또 솔로 뮤지션으로서의 꾸준한 창작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노래 : Andy Williams (앤디 윌리엄스)
앤디 윌리엄스는 감미로운 목소리와 편안한 음악스타일의 크루너(Crooner)창법 가수이다. 3장의 플래티넘과 17장의 골드 디스크상을 수상한 이지 리스닝 계열의 대표 주자로 최고의 스탠다드 팝 가수이자 영화주제가의 황제, TV 스타로서 ‘50~’60년대에 전성기와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다. 앤디 윌리엄스는 1927년 12월 3일, 미국 아이오와주 월 레이크에서 태어났다. 소년 시절에 3명의 형과 보컬그룹을 ... 앤디 윌리엄스는 감미로운 목소리와 편안한 음악스타일의 크루너(Crooner)창법 가수이다. 3장의 플래티넘과 17장의 골드 디스크상을 수상한 이지 리스닝 계열의 대표 주자로 최고의 스탠다드 팝 가수이자 영화주제가의 황제, TV 스타로서 ‘50~’60년대에 전성기와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다.

앤디 윌리엄스는 1927년 12월 3일, 미국 아이오와주 월 레이크에서 태어났다. 소년 시절에 3명의 형과 보컬그룹을 만들어 지역교회 성가대에서 함께 노래한 것이 계기가 되어 4인조 ‘윌리엄스 브라더즈(Williams Brothers)’를 결성하였다. ‘52년에 형이 결혼하자 그룹을 해산하게 되었으며, ‘53년에 솔로로 독립했다. ‘56년에 커덴스(Cadence) 레이블과 계약을 맺으면서 “Canadian Sunset”이란 곡으로 첫 성공을 거둔다. ‘61년 콜롬비아 레코드사로 이적한 후에 맡은 NBC 방송의 ‘Andy Williams Show’를 시청률 최고의 프로그램으로 만들면서 절정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 특히 ‘61년도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주제가 “문 리버(Moon River)”를 비롯 수많은 할리우드 명작영화 주제가를 부르면서 ‘영화 주제가의 황제이자 대명사’가 되었다. ‘앤디 윌리엄스 쇼’는 ‘62년부터 ‘71년까지 방영되면서 3차례나 ‘에미상’을 수상했고, 명사회자로서 매년 크리스마스 특별 쇼를 진행했다.

또한 그래미상 후보로 5번이나 지명되었으며, 여러 해 동안 그래미상 시상식 사회를 맡았다. ‘84년에는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로 ‘Greatest Love Classics’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90년대 초 레코딩 업계를 떠나 자신의 초대형 극장인 ‘앤디 윌리암스 문 리버 극장(Andy Williams Moon River Theatre)’의 경영자로 변신하여 열정적인 문화사업을 펼쳤다. ‘81년 11월에는 국내에 내한 공연차 방문하여 국내 음악팬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2011년 11월, 앤디 윌리엄스는 자신이 방광암을 앓고 있다고 하면서 잠정적인 활동중단을 밝혔다. 그 후 1년여 가까이 투병생활을 해오다 2012년 9월 25일 밤, 미주리 주 자택에서 향년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영화배우, 가수 영화배우, 가수
노래 : Tammy Wynette (태미 와이네트)
노래 : Miriam Makeba (미리암 마케바)
프랑스의 1세대 여성 록 아티스트이자 국민가수. 60년대 초반 유럽에서 파생된 예예(Ye-ye) 장르를 대표하였다. 프랑스의 1세대 여성 록 아티스트이자 국민가수.
60년대 초반 유럽에서 파생된 예예(Ye-ye) 장르를 대표하였다.
배우, 샹송 가수 배우, 샹송 가수
노래 : Dan Fogelberg (댄 포겔버그 (포크 보컬))
지난 2002년 브릿 어워드(Brit Award)는 단 한 장의 앨범을 낸 신인 여가수 다이도(Dido)에게 최우수 여성 가수(Best British Female)상과 최우수 앨범(Best British Album)상을 넘겼다. 그만큼 다이도가 보여주는 매력은 다양하고 특별하다. 클래식의 격조, 포크의 친근함, 토속음악을 통한 신비감, 게다가 일렉트로니카의 중독성까지 그리고 밝고 귀여운 이미지 등등. 어울릴 것 ... 지난 2002년 브릿 어워드(Brit Award)는 단 한 장의 앨범을 낸 신인 여가수 다이도(Dido)에게 최우수 여성 가수(Best British Female)상과 최우수 앨범(Best British Album)상을 넘겼다. 그만큼 다이도가 보여주는 매력은 다양하고 특별하다. 클래식의 격조, 포크의 친근함, 토속음악을 통한 신비감, 게다가 일렉트로니카의 중독성까지 그리고 밝고 귀여운 이미지 등등.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많은 이미지들이 그녀 안에서는 하나가 된다. 다이도는 1971년 크리스마스에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다이도 암스트롱(Dido Armstrong)이다. 5살 때 리코더를 훔친 것이 계기가 되어 음악을 시작하게 된 이색적인 경력을 갖고 있는 그녀는 클래식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영국의 줄리아드’로 알려진 길드홀(Guildhall) 음악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10대의 대부분을 클래식 음악에 파묻혀 살았던 그녀는 피아노, 바이올린, 리코더 연주에 능했고, 작곡 실력과 노래 실력 또한 늘려 나간다. 그녀는 어린 시절을 클래식에 묻혀 살았다. 18살이 되어서 대중음악을 처음 접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뒤늦게 접한 대중음악의 매력은 클래식에서 맛볼 수 없는 강한 것이었고, 결국 다이도는 클래식을 버리고 대중음악 뮤지션으로 음악적 방향을 바꾼다. 여기에는 친오빠 롤로(Rollo)의 도움이 컸다. 정상급 소울 테크노 그룹 페이스리스(Faithless)의 리더였던 롤로는 일렉트로니카와 클래식의 접목을 원했고, 클래식을 공부한 동생 다이도를 멤버로 맞아들인다. 페이스리스의 멤버로 투어를 펼치며 팝 뮤지션으로의 변신에 성공한 다이도는 ‘My lover’s gone’을 데모 앨범으로 제작하며 솔로전향을 선언했고, 아리스타(Arista) 레코드에서 데뷔 앨범 작업에 들어간다. 아카펠라나 기타, 피아노를 사용한 심플한 사운드를 생각하고 있었던 데뷔 앨범은 프로듀싱에 참여한 오빠 롤로 및 엔지니어의 요구에 따라 네오팝적인 사운드가 가미되었고, 그 과정에서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포크 사운드가 결합된 독특한 매력을 지닌 앨범이 탄생하게 된다. 이리하여 탄생한 데뷔작 < No Angel >은 1999년 6월, 자국이 아닌 미국에서 먼저 발매되었다. 발매 직후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음악은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대중들에게 알려진다. 시작은 ‘Here with me’였다. 미국 TV 시리즈인 < 로스웰 >(Roswell)에 이 곡이 테마음악으로 사용되었고, 이어 기네스 펠트로우 주연의 영화 < 슬라이딩 도어스 >(Sliding Doors)에 그녀의 곡 ‘Thank you’가 삽입된다. 별 반응 없이 사라져가던 < No Angel >은 다시 한번 대중들에게 어필했고, 그와 때맞추어 인기 래퍼 에미넴(Eminem)이 자신의 곡 ‘Stan’에 다이도의 곡 ‘Thank you’를 샘플링으로 사용한 덕분에 그녀의 음악과 이름은 뒤늦게 널리 퍼지게 됐다. (‘Stan’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이 바로 다이도!). 이 곡은 2001년 빌보드 톱10에 오르는 빅히트를 기록했다. 다이도는 이 무렵 고국 영국에 돌아와 마침내 인기스타로 올라섰고 에미넴도 ‘Stan’으로 첫 영국차트 1위의 영예를 누리며 서로 도움을 교환했다. *Dido Interview http://nine4u.asiamusic.net/dj/program.asp?popstory+15
노래 : Mary Macgregor (매리 맥그리거)
노래 : Natalie Imbruglia (나탈리 임브룰리아)
# ‘진정한 나’,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음악여정 ‘Torn’의 위력은 너무나 거대했다. 나탈리 임부를리아(Natalie Imbruglia)의 데뷔싱글이었던 그 곡은 전 세계 음악팬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1997년과 1998년 사이 영국에서만 1백만장이 팔려나갔고, 미국에서도 10주가 넘게 방송차트 1위를 고수하는 등 국제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녀를 ‘팝계의 신데렐라’로 만들어준 그... # ‘진정한 나’,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음악여정 ‘Torn’의 위력은 너무나 거대했다. 나탈리 임부를리아(Natalie Imbruglia)의 데뷔싱글이었던 그 곡은 전 세계 음악팬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1997년과 1998년 사이 영국에서만 1백만장이 팔려나갔고, 미국에서도 10주가 넘게 방송차트 1위를 고수하는 등 국제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녀를 ‘팝계의 신데렐라’로 만들어준 그 곡은 그러나 동시에 그녀에게 치명적인 해악이었다. 문제는 ‘Torn’과 그녀 자신이 너무나 예뻤다는 것. 상큼한 팝과 성난 록이 잘 정제된 음악적 내용물도, 시원한 향기가 배어나는 목소리도, 그리고 ‘밤비’ 같은 큰 눈을 가진 그녀의 얼굴도 너무 예뻤다. 때문에 대중들이 그녀를 소비하는 것은 단 한가지, 바로 그 예쁘장함이었다. 나탈리 임부를리아의 데뷔앨범 < Left Of The Middle >은 ‘Torn’이 성공가도를 달리던 얼마 후에 발매되었다. 만만치 않은 음악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 곡의 빛에 가려 음반에 실린 다른 곡들은 별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사실 ‘Torn’은 라디오를 통해, 또 수많은 컴필레이션 음반들을 통해 얼마든지 들을 수 있었으니 정규음반은 사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게다가 잡지나 신문들은 주로 그녀의 외모나 스캔들 따위에 포커스를 맞추었고 팬들은 그 매체에 실린 사진을 오려 방에 걸어두며 그녀를 ‘핀업 걸’로 대했다. 사람들은 그저 ‘Torn’만 들으면, 그녀의 얼굴만 보면 만족했다. 사실 어찌 보면 나탈리에게 그러한 것들은 당연한 결과다. 태어나고 자랐던 호주에서 10대 시절부터 TV스타였던 그녀는 1996년 가수를 꿈꾸며 영국으로 건너갔고, 그곳의 음반 관계자들의 눈에 띄어 가수로 데뷔했다. 그 과정 속에서 그녀의 데뷔앨범은 이미 결정된 거나 다름없었다. 아무 일도 못하고 1년여를 방황했던 탓에 그녀는 하루라도 빨리 가수가 되길 원했으며, 그 때문에 음반사에서 자신을 부르자 바로 계약했다. 따라서 음반계약 후에도 음악이나 이미지에 대한 선택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없었다. 그녀를 선택한 레이블은 그녀의 청순한 비주얼과 생기 있는 목소리를 십분 활용하면서도 당시 강세를 보이던 앨라니스 모리셋 류의 여성 얼터너티브 록과 어쿠스틱 팝/록 사운드를 덧입히려 했다. 그를 위해 그룹 큐어(Cure)의 베이시스트였던 필 토낼리(Phil Thornalley), 라디오헤드의 < OK Computer >를 제작한 나이젤 고드리치(Nigel Godrich) 등의 일류 프로듀서들을 동원했고, 그들은 아주 훌륭하게 그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그 결과 ‘Torn’이라는 빅히트곡을 탄생시켰으며 그 외에도 ‘Big mistake’, ‘Wishing I was there’, ‘Smoke’ 같은 괜찮은 느낌을 주는 곡들을 배출했다. 이렇게 나탈리 임부를리아의 음악과 이미지는 결정되었고,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는 ‘Torn’과 핀업 걸의 이미지가 고정되었다. 상업적인 측면에서는 도움이 되었을 지는 몰라도 그녀에게 그것은 분명 상당한 부담이었으며 앞날을 고려한다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다. 뮤지션이라면 그러한 장애물은 음악을 통해 극복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녀는 3년여 동안 음악에 전념하며 자신과의 투쟁을 벌였고, 드디어 이번에 그 흔적들이 담긴 두 번째 앨범 < White Lilies Island >를 내놓았다. # 예쁜 이미지 벗고 내적 성숙 완연한 새 앨범 그렇다고 이번 신보가 전작과의 완전한 결별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Torn’의 작곡자였던 필 토낼리가 또 다시 참여하고 있으며 여전히 풋풋하고 싱그러운 곡들이 눈에 띈다. 하지만 전작에 비해 전체적인 분위기는 상당히 가라앉았다. 같은 상큼함이라도 더욱 멜랑콜리하게, 더욱 애처롭게 들린다. 그런 변화의 조짐은 1999년도 영화 < 스티그마타 > 사운드트랙에서 불렀던 ‘Identify’에서 이미 예고된 바 있다. 스매싱 펌킨스의 빌리 코건이 작곡했던 그 곡은 나탈리답지 않은 음울함으로 세간을 놀라게 했었다. 특별한 기교 없이 부르는 보컬도 편안하게 들린다. 의도적으로 앨라니스 모리셋를 따라했던 전작에서의 보컬보다 훨씬 자연스러워졌으며, 또 발전했다. 첫 싱글부터 큰 차이가 난다. 전자기타와 피아노, 현악이 묘한 화음을 이루는 첫 싱글 ‘That day’에서 리드미컬한 나탈리의 보컬은 무언가에 불만에 찬 듯 노래하며 예쁘장함 따위는 벗어 던진다. 첼로의 묵직한 연주로 시작하는 ‘Wrong impression’은 어쿠스틱 기타의 영롱함에 슬라이드 기타의 푸근함이 더해져 분위기가 ‘업’된 팝/록 넘버다. 공간의 웅장함이 느껴지는 ‘Beauty on the fire’에서는 일렉트로닉의 몽롱한 전자음이 일렁이며, 사랑스런 느낌이 가득 한 ‘Satellite’는 따뜻한 어쿠스틱 기타 톤과 코러스가 돋보이는 곡. 앨범의 베스트라면 5번째 트랙인 ‘Do you love’을 꼽을 수 있다. 착 가라앉은 분위기에 절제된 보컬이 이끌어 가는 이 곡은 멜랑콜리함을 극대화시키는 중간의 하드 록 연주와 귀를 잡아채는 멋진 멜로디의 훅이 잊혀지지 않는다. 꿈속에 있다가 뒤늦게 꿈에서 깨어나 절규하는 듯한 진행이 압권인 ‘Goodbye’, 인트로 부분이 국내밴드 미선이의 ‘진달래 타이머’를 연상시키는 ‘Everything goes’, "동화 속 신데렐라는 이제 없다"며 담담히 노래하는 마지막 트랙 ‘Come September’ 등이 매력적인 트랙들이다. 음반에 수록된 10곡 모두 나탈리 임부를리아가 공동작곡과 작사를 담당했으며, 그중 절반은 희망을, 나머지 절반은 삶의 비의(悲意)와 깨달음을 노래하고 있다. 그 외의 프로듀서들로는 마돈나의 작업으로 유명한 패트릭 레너드와 필 토낼리, 게리 클락 등이 앨범제작에 참여했다. 몇 년 간 내적 침잠의 결과물인 이번 앨범으로 그녀는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아티스트로서의 가능성을 확보했다.
마이클 잭슨 음악 여정은 주지하다시피 1963년 4명의 형들과 함께 결성했던 패밀리 그룹 잭슨 파이브(Jackson 5)로 시작되었다. 5살이라는 어린 나이와 그에 걸맞지 않게 리드 보컬을 맡았던 그는 너무나도 빼어났던 가창력과 귀여운 춤 실력 때문에 언제나 세간의 관심대상이었다. 지방을 중심으로 명성을 쌓아가던 잭슨 파이브와 마이클은 1969년 베리 고디의 모타운 레코드와 계약하면서 본격적으로 팝 음악계에 뛰어... 마이클 잭슨 음악 여정은 주지하다시피 1963년 4명의 형들과 함께 결성했던 패밀리 그룹 잭슨 파이브(Jackson 5)로 시작되었다. 5살이라는 어린 나이와 그에 걸맞지 않게 리드 보컬을 맡았던 그는 너무나도 빼어났던 가창력과 귀여운 춤 실력 때문에 언제나 세간의 관심대상이었다. 지방을 중심으로 명성을 쌓아가던 잭슨 파이브와 마이클은 1969년 베리 고디의 모타운 레코드와 계약하면서 본격적으로 팝 음악계에 뛰어들었다.

첫 넘버 원 싱글 ‘I want you back’에 이어 ‘ABC’ ‘The love you save’ ‘I’ll be there’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2년 간 그룹활동에 전념하던 마이클 잭슨은 1971년 12월 탐라-모타운 레코드와 솔로 계약을 체결했다. 1971년 데뷔곡 ‘Got to be there’를 발표해 싱글차트 4위에 랭크시킨 후 ‘Rockin’ Robin’, ‘Ain’t no sunshine’, ‘Ben’, ‘I wanna be where you are’,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솔로와 그룹활동을 성공적으로 병행했다.

마이클 잭슨이 변성기가 지나고 성인으로 접어들자 잭슨 파이브도 점점 퇴색해갔고, 1979년 마이클은 드디어 성인으로서 첫 음반 을 발표했다. 1977년 흑인판 <오즈의 마법사>였던 뮤지컬 영화 <더 위즈(The Wiz)> 사운드트랙을 통해 만났던 퀸시 존스가 앨범의 프로듀서로 동참해 마이클 잭슨의 ‘성인신고작’을 한결 윤택하게 빛냈다.

활기 넘치는 리듬의 펑크(funk)와 디스코, 소울, 그리고 록과 팝, 발라드가 퓨전된 그 음반에는 마이클 잭슨이 작곡한 2곡의 업 템포 댄스넘버 ‘Don’t stop till you get enough’(최근 영화 <러시아워2>에 삽입되었음)와 ‘Working day and night’와 로드 템퍼튼 작곡의 깔끔한 팝 넘버 ‘Rock with you’, 절제된 보컬의 발라드 ‘She’s out of my life’ 같은 히트곡이 실려있었다. 수록곡 중 ‘Girlfriend’는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가 작곡해 준 곡으로 향후 둘 간의 파트너십을 예고했다.

이 마이클 잭슨의 방향성을 제시해 준 앨범이라면 1982년 12월에 발표된 는 ‘팝의 황제’라는 마이클 잭슨의 원대한 꿈을 실현시킨 회심작이었다. 퀸시 존스와 마이클 잭슨의 공동 프로듀스작인 그 앨범은 37주간이나 앨범차트 정상을 지켰으며 현재까지 미국에서만 2천6백만장의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또한 전례가 없는 무려 7곡이 싱글 발매되어 모두 차트 10위 내에 올랐고 그 중 2곡이 정상을 차지했다. 그 앨범으로 마이클 잭슨은 1984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역대최다인 7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2000년 산타나와 타이 기록).

‘문워크(Moonwalk)’라는 독창적인 댄스를 유행시킨 ‘Billie Jean’과 에디 밴 헤일런의 기타 속주가 흐르는 ‘Beat it’이 차트 1위에 올랐으며, 첫 싱글로서 폴 매카트니와의 듀엣 곡이었던 ‘The girl is mine’(2위), ‘Wanna be startin’ somethin’(5위), ‘Human nature’(7위), ‘P.Y.T.’(10위), 마지막 싱글 ‘Thriller’(4위) 등이 연속해서 히트했다. 백인 최고스타 폴 매카트니와 록 기타의 거장 에드워드 밴 헤일런을 끌어들였다는 것은 크로스오버는 물론, 더 많은 수요층에게 다가가려는 그의 음악적 야심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Billie Jean’의 뮤직비디오는 MTV가 백인 록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만을 방영한다는 불문율을 깨고 틀었던 역사적인 첫 흑인 뮤직비디오였다. 한편 1984년 4월에는 폴카 음악과 ‘패러디의 대가’인 얀코빅(‘Weird Al’ Yankovic)이 ‘Beat it’을 패러디한 ‘Eat it’을 발표해 싱글차트 12위에 진입시키기도 했다.

영국의 난민구호 자선 프로젝트였던 밴드 에이드(Band Aid)의 ‘Do they know it’s christmas?’의 성공에 자극 받은 마이클 잭슨과 라이오넬 리치는 막강한 스타들을 규합, 유에스 포 아프리카(USA For Africa)를 조직해 1985년 1월 그 미국 버전인 ‘We are the world’를 만들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다. 그 해 8월에는 그간 음악동지였던 폴 매카트니와의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 마이클 잭슨이 ‘레논/매카트니’ 크레딧으로 된 250곡이 넘는 비틀스 곡들의 판권을 4천7백5십만 달러에 사버렸기 때문이다. 이 일로 인해 협력관계가 깨졌음은 물론 현재까지도 그 둘은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갱스터 영화의 대부 마틴 스코시즈가 감독한 17분짜리 뮤직비디오 ‘Bad’가 1987년 2월에 선보였고, 8월에는 분위기가 한층 어두워졌으며 록적인 느낌이 강화된 새 앨범 가 발매되었다. 퀸시 존스가 세 번째로 프로듀스를 맡은 이 앨범은 전작의 흥행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8백만장 이상 팔려나가는 성공을 거둔다. 특히 무려 5곡이 싱글차트 1위를 기록해 2곡이 1위에 오른 전작을 능가했다.

여성 보컬 시다 가렛과 호흡을 맞춘 ‘I just can’t stop loving you’를 시작으로 타이틀곡 ‘Bad’, 흥겨운 핑거 스냅이 시종일관 등장하는 ‘The way you make me feel’, 시다 가렛과 글렌 발라드가 공동 작곡한 발라드 넘버 ‘Man in the mirror’, 음산한 분위기가 압권인 ‘Dirty Diana’ 등 모두 5곡이 차례로 정상에 등극했다. 그 외에도 ‘Smooth criminal’, ‘Leave me alone’ 등 수록곡 전반이 주목받았다. 1988년 12월에는 마이클 잭슨과 존 레논의 아들 숀 레논 등이 출연한 영화 <문워커(Moonwalker)>가 전 세계에 개봉되었다.

보다 자신 고유의 음악을 찾기 위해 퀸시 존스와 헤어진 마이클 잭슨은 1991년 홀로서기를 시도한 첫 작품 를 발표한다. 젊은 프로듀서 테디 라일리를 메인 프로듀서로 받아들여 만든 이 음반은 마이클 특유의 사운드에 최신식 힙 합과 랩, 메탈 음악 등이 합쳐졌다. 작곡과 제작에 있어 마이클 잭슨의 재능을 마음껏 펼쳐 보인 음반이었지만 너바나 같은 그룹의 얼터너티브 록 태풍에 휘말려 전작들의 파괴력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emember the time’, ‘Jam’, ‘In the closet’ 등 테디 라일리가 솜씨를 발휘한 곡들과 영화 <프리 윌리>의 주제곡으로 쓰였던 ‘Will you be there’ 같은 곡들은 대중들과 평단으로부터 동시에 큰사랑을 받았다. 또한 ‘Black or white’의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준 ‘모핑’ 기법 같은 놀라운 기법들은 향후 영상 발전에 디딤돌이 되었으며 에서부터 구현된 환상적인 스튜디오 기술로 다시 한번 녹음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마이클 잭슨은 자신이 원하는 악기음색과 음원을 찾을 때까지 스튜디오 작업에 매달렸으며, 코러스 만해도 음색을 바꿔가며 다채롭고 풍부하게 꾸며 일반 제작자들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녹음기술만으로 볼 때는 모든 ‘프로듀서와 엔지니어의 드림’이었다.

해가 지지 않는 성공가도를 달리던 마이클 잭슨의 기세가 한풀 꺾인 것은 1993년의 일이다. 그 해 8월 바로 어린이 성추행 사건이 터진 것. 이 사건은 그간 깨끗한 이미지를 이어가던 그에게 막대한 타격을 주었으며, 한동안 그는 언론의 집중포화에 시달렸다. 그러다 얼마 후 갑작스레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결혼했고, 이에 매스컴은 ‘여론 무마용’이라며 그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매체의 공격이 심해짐에 따라 마이클 잭슨의 분노도 정비례했다. 그에 대한 분노는 1995년에 발표한 더블앨범 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 장은 히트곡들로, 다른 한 장은 신곡들로 구성된 이 음반은 ‘역사’로 해석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얘기들을 많이 담고있었다. 특히 그를 괴롭혀온 매스컴과 어린이 성추행 소송인에 대한 원한과 경멸, 냉소 등이 짙게 깔려있었으며, 그 때문에 음악도 예전과는 달리 상당히 거친 사운드가 지배적이었다.

알 켈리와 지미 잼 & 테리 루이스, 댈러스 오스틴 등이 프로듀서로 참여한 이 음반에서는 여동생 재닛 잭슨과 듀엣을 이룬 ‘Scream’과 ‘They don’t care about us’, ‘D.S.’, ‘Money’, ‘2 Bad’ 같은 곡을 통해 쇼비즈니스와 세상의 폭력에 대한 분노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물론 ‘You are not alone’, ‘Smile’ 등 따뜻한 노래들도 있었지만 다른 차가운 곡들 탓에 듣기가 좀 부담스러웠고, 그래서였는지 ’주라기음반’에 걸맞지 않게 흥행도 부진했다. 1997년에는 리믹스 앨범 을 발매하기도 했다.

4년이 흘러 2001년 그는 솔로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3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영예를 얻었으며, 9월에는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휘트니 휴스턴을 비롯해 엔 싱크, 브리트니 스피어스, 데스티니스 차일드, 어셔 등 당대 최고의 팝스타들이 출연한 가운데 그의 솔로 30주년 기념 공연을 가졌다.

그리고 10월 30일, 마이클 잭슨은 6년만의 정규 앨범 을 발표하며 다시 팬들 앞에 섰다. R&B 최고의 프로듀서 로드니 저킨스가 메인 프로듀서로 참여한 이 음반은 전작에 비해 훨씬 부드러워졌으며 한동안 찾아보기 힘들었던 특유의 활기 넘치는 리듬도 회복했다.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등 여러 좋은 일이 겹쳐서인지 밝은 분위기의 내용물들이 담겼다.

3마디의 독특한 리듬이 중독성을 발휘하는 첫 트랙 ‘Unbreakable’, 춤추기에 좋은 부드러운 댄스리듬 그리고 약간은 복고적 사운드가 듣기 편한 첫 싱글 ‘You rock my world’, 변화가 심한 비트가 인상적인 ‘Heartbreaker’ 등이 비트감 느껴지는 곡들. 라틴 풍의 기타 연주가 잔잔한 ‘Whatever happens’에서는 산타나의 무게감 있는 연주도 들을 수 있으며, ‘Speechless’, ‘The lost children’, ‘Break of dawn’ 같은 곡들은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발라드 곡들이다.
연주 : James Galway (제임스 골웨이 (플루트))
재즈 색소폰 연주자 재즈 색소폰 연주자
재즈 기타 연주자 재즈 기타 연주자
연주 : Kenny G (케니 지 (재즈 색소폰))
쉬운 음악을 통해 대중적 성공을 거둔 뮤지션에 대한 시각은 언제나 양극으로 나뉘기 마련이다. 부드럽고 낭만적인 선율로 세계 시민권을 획득한 색소폰 연주자 케니 지는 최고의 인기를 누림과 동시에 경멸의 대상으로 낙인 찍혀버린 대표적인 뮤지션이다. 정통 재즈 아티스트들과 평단에서는 연주자의 영혼과 정열이 담겨있는 ’고급 음악’ 재즈를 팝화시켜 ’천한 음악’으로 만들어 놓았다며 독설을 퍼붓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하... 쉬운 음악을 통해 대중적 성공을 거둔 뮤지션에 대한 시각은 언제나 양극으로 나뉘기 마련이다. 부드럽고 낭만적인 선율로 세계 시민권을 획득한 색소폰 연주자 케니 지는 최고의 인기를 누림과 동시에 경멸의 대상으로 낙인 찍혀버린 대표적인 뮤지션이다. 정통 재즈 아티스트들과 평단에서는 연주자의 영혼과 정열이 담겨있는 ’고급 음악’ 재즈를 팝화시켜 ’천한 음악’으로 만들어 놓았다며 독설을 퍼붓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대중들에게 케니 지는 우리가 쉽게 이해하기 힘들고 접하기 어려운 재즈라는 장르를 친숙하게 만들어준 가치있는 아티스트였다. 특히 2,30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그는 잘 생긴 외모와 더불어 ’멋지고 달콤한’ 음악을 들려주는 백마 탄 왕자님이었다. 1959년 미국 시애틀에서 태어난 케니 지(본명:Kenneth Gorelick)는 1976년 17세의 어린 나이에 소울, 디스코 음악의 거장 배리 화이트(Barry White)의 러브 언리미티드 오케스트라(Love Unlimited Orchestra) 일원이 되면서 화려한 음악 캐리어의 막을 올렸다. 그의 초기 음악은 펑키(funky) 스타일이었던 듯 하다. 배리 화이트 밑에서 실력을 갈고 닦은 이후에 가담한 밴드 역시 로컬 펑키 그룹인 콜드, 볼드 앤 투게더(Cold, Bold & Together)였다. 재즈 악기로 통하는 색소폰으로 단순한 형태를 가진 팝 음악을 연주한 셈이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케니 지의 음악관은 다소 바뀌어 있었다. 글로버 워싱턴 주니어(Grover Washington Jr.)의 음악에 매력을 느꼈고, 제프 로버스 퓨전(Jeff Lorber’s Fusion)을 거치며 진정한 재즈 뮤지션으로서 성장해 나갔다. 제프 로버스 퓨전에서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명성을 얻은 그는 1982년 < 아리스타(Arista) >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하고 셀프 타이틀의 데뷔 앨범 < Kenny G >를 발표했다. 하지만 솔로 데뷔와 함께 그의 음악이 대중들의 귀를 확 사로잡은 것은 아니었다. 데뷔작은 물론이고, 1983년 < G Force >, 1985년 < Gravity >을 내놓을 때까지도 케니 지는 팝계에 충격을 줄 만한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케니 지의 대중적 성공은 1986년 작품 < Duotones >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부드럽고 고급스럽게 흐르는 소프라노 색소폰의 유려한 선율이 대중들에게 어필하기 시작했고, 수록곡인 ’Songbird’는 연주곡임에도 불구 차트 톱 텐에 진입하는 힘을 과시했다. 앨범은 300만장 이상 팔려 나갔고, 이후 그의 활동은 승승장구였다. 1988년 음반 < Silhouette >에서는 동명 타이틀인 ’Silhouette’이 스매시 히트를 기록했으며, 1989년 발표한 < Kenny G Live >역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케니 지는 자신의 음반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색소폰을 연주했다.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lanklin),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나탈리 콜(Natalie Cole) 등 흑인 디바들의 앨범에 참여하였으며, 1989년 마이클 볼튼(Michael Bolton)의 < Soul Provider >에도 가세하여 볼튼의 때늦은 성공에 한 몫 거들었다. 그는 또한 1991년 걸프전 참전 군인들에 대한 걱정을 담은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의 프로젝트 앨범 < Voices That Care >에도 이름을 올려놨으며,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 Dying Young > 사운드 트랙에도 참여하여 ’Theme from Dying Young’, ’Hillary’s theme’ 등의 낭만적인 곡들을 히트시켰다. 케니 지는 < Voices That Care >의 인연으로 데이빗 포스터가 프로듀서를 맡은 1992년 앨범< Breathless >로 이전까지의 성공을 훨씬 뛰어넘는 대박 행진을 펼쳤다. 음반은 미국에서만 8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였고, 전 세계적으로도 유래 없는 판매 기록을 세우며 기네스 북에 이름을 올리기도 하였다. 수록곡 중 국내 토크쇼 등의 배경음악으로 자주 사용되어 친숙한 ’Forever in love’이 히트했고, 걸출한 흑인 뮤지션 아론 네빌(Aaron Neville), 피보 브라이슨(Peabo Bryson)의 보컬이 담긴 ’Even if my heart would break’, ’By the time this night is over’ 등도 사랑 받았다. 한 번 점화된 열기는 이후에도 식을 줄 몰랐다. 1994년 발표된 크리스마스 앨범 < Miracles: The Holiday Album >은 캐롤 음반임에도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을 밟았고, 현재까지도 시즌마다 사랑 받으며 꾸준히 팔려 나가 미국에서만 1,0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1996년 발표한 < The Moment >는 당시 흑인 팝 음악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었던 두 명의 아티스트 토니 블랙스턴(Toni Braxton)과 베이비페이스(Babyface)가 각각 ’That somebody was you’, ’Every time I close my eyes’에 참여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동명타이틀의 연주곡 ’The Moment’, 이국적 느낌의 ’Havana’ 등도 인기를 누렸다. 1999년 내놓은 < Classics In The Key Of G >는 팝의 클래식들을 리메이크한 작품이었다. 스탠다드 팝 ’Stranger on the shore’, 더스티 스프링필드(Dusty Springfield)의 곡으로 영화 ’접속’에 삽입되기도 했었던 ’The look of love’, 조지 벤슨(George Benson)이 함께 한 재즈 최고의 고전 ’Summertime’ 등이 수록되었고, 특히 컴퓨터 기술로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의 보컬에 케니 지의 연주를 덧입힌 ’What a wonderful world’가 실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거침없는 인기 행진을 보여주었던 그이지만 1990년대 후반 이후부터는 내리막길을 걷는 듯 하다. 새로운 싱글을 공개하지 않고 있고, 1999년에 크리스마스 앨범을 디스코그라피에 하나 더 추가시켰을 뿐 별다른 창작 활동이 보이지 않아 아쉬움을 주고 있다. 글로버 워싱턴 주니어의 영향을 받은 만큼 케니 지의 음악은 멜로디에 크게 의존해 왔다. 재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임프로바이제이션, 즉 즉흥연주를 최소화하고 멜로디를 중요시 해 온 그의 스타일은 재즈 매니아들로부터 질타의 대상이 되도록 만들었다. 재즈 매니아들은 케니 지의 음악을 재즈적 향취 없이 상업성에만 물들어 있는 것으로 간주했고, 그의 음악을 재즈로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재즈적 깊이가 어찌 되었건 케니 지가 이루 어 낸 기념비적 성공과 전 세계 대중에게 선사한 따스한 음악들은 ’케니 지’라는 이름을 음악사에 길이 남겨 놓을 것이다.
비틀즈로부터 막대한 은혜를 입은 영국 요크셔 태생의 4인조 소프트 팝록 밴드 스모키(Smokie)의 국내에서의 인기는 Fab 4(비틀즈의 별명)와 맞먹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까지 ''Living next door to Alice'', ''Don''t play Rock''n Roll to me'', ''If you think you know how to love me'', ''Mexican girl... 비틀즈로부터 막대한 은혜를 입은 영국 요크셔 태생의 4인조 소프트 팝록 밴드 스모키(Smokie)의 국내에서의 인기는 Fab 4(비틀즈의 별명)와 맞먹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까지 ''Living next door to Alice'', ''Don''t play Rock''n Roll to me'', ''If you think you know how to love me'', ''Mexican girl'', ''What can I do?'', ''I''ll meet you at midnight'' 등으로 우리나라 라디오를 도배했으며 이들의 베스트 음반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 반열에 오른 지 오래다. 이들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인 19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컬에 크리스 노만(Chris Norman), 기타는 테리 우틀리(Terry Uttley), 그리고 베이스 주자에 알란 실슨(Alan Silson)이 모여 출범시킨 ''엘리자베단스(Elizabethans)''란 그룹이 스모키의 모체였다. 곧 피트 스펜서(Pete Spencer)가 드러머로 가입하자 친절하게도 이름을 ''카인드네스(Kindness)''로 바꾸고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다수의 싱글들을 발표했지만 음악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데 실패했다. 정작 이들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75년 밴드 명을 스모키(Smokey)로 교체한 다음부터였다. 1975년의 두 번째 앨범 < Changing All The Time >에 수록된 ''Don''t play Rock''n Roll to me''와 비록 2주만에 강제 퇴출당했지만 최초의 미국 싱글 차트 진입 곡으로 기록된 ''If you think you know how to love me''로서 서서히 팬들에게 다가갔다. 이 곡은 1979년 위대한 여성 록 싱어 팻 베나타(Pat Benatar)가 자신의 데뷔 앨범을 위해 리메이크함으로서 미국인들에게는 그녀의 버전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당시 철자만 약간 수정한 Smokie로 이름이 굳어지면서 음악적인 면이나 판매고적인 면 모두 형편이 나아지고 있었다. 국내와 미국에서 이들 최고의 히트곡으로 남아 있는 ''Living next door to Alice''가 1976년에 공개되어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도 21위까지 오르는 성공을 기록했고 1979년에는 보컬리스트 크리스 노만이 여성 록커 수지 쿼트로(Suzi Quatro)와 듀엣으로 ''Stumblin'' in''을 취입해 4위까지 올려놓았다. 이 4인조의 음악적 재능은 그들의 음악적 브레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작곡 파트너 닉키 친(Nicky Chinn)과 마이크 채프만(Mike Chapman)이 1980년대 초반에 결별하면서 급속히 고갈되기 시작했다. 1982년 < Strangers In Paradise >를 마지막으로 개인의 길을 걸었다가 1988년에 각자의 필요성에 의해 다시 헤체모여를 감행했다. 이후 현재까지 새로운 음반 제작보다는 올드팬들을 위한 공연 위주의 활동으로 백의종군하고 있다 로큰롤과 소프트팝, 그리고 포크가 조화를 이룬 스모키의 음악은 부드럽고, 로맨틱한 면을 강조한 밝은 음악으로 1970년대의 어두웠던 시대를 극복하던 우리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면서 대단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이들의 쇠퇴를 야기한 것이 바로 이러한 음악이었다. 음악 대세가 뉴웨이브와 팝댄스로 변한 1980년대가 도래했음에도 스모키의 멤버들은 자신들의 음악적인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바로 이 이유 때문에 팝음악 계에서 도태되었다. 스모키는 감수성이 풍부했던 편안한 음악들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던 밴드 중 하나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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