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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ing Vinyl 30th Anniversary 1986 - 2016

Oysterband, The Happy End, Paul Kelly, S.E. Rogie, Ewan MacColl 노래 외 57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Cooking Vinyl | 2017년 12월 05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12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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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ing Vinyl 30th Anniversary 1986 - 2016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7년 12월 05일
제조국 영국

관련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Disc1 1986 - 1995
  • 01 Hal an Tow - Oysterband
  • 02 The Ballad of John Henry - The Happy End
  • 03 Bradman - Paul Kelly
  • 04 My Lovely Elizabeth - S.E. Rogie
  • 05 Sweet Jane - Cowboy Junkies
  • 06 Dirty Old Town - Ewan MacColl
  • 07 Byker Hill - The Barely Works
  • 08 War Baby - Tom Robinson
  • 09 Viva Las Vegas - Goats Don't Shave
  • 10 Radio Africa - Bhundu Boys
  • 11 Call Mother a Lonely Field - Jackie Leven
  • 12 Old Tarts Song - Poison Girls
  • 13 (Sometimes I Feel Like) Fletcher Christian - The Mekons
  • 14 Get in Line - Ron Sexsmith
  • 15 The Space Race Is Over - Billy Bragg
Disc2 1996 - 2005
  • 01 And God Created Brixton - Carter U.S.M.
  • 02 Montreal - The Wedding Present
  • 03 Both Hands - Ani Difranco
  • 04 New Year's Day - Chuck Prophet
  • 05 Toy Balloon - Bert Jansch
  • 06 Overflow - Madder Rose
  • 07 Fob.com - Prolapse
  • 08 Nursery Walls - The Lilac Time
  • 09 Swing Lite - Alright - Luke Vibert & B. J. Cole
  • 10 Robert Onion - Frank Black
  • 11 Make Me Shine - Echo And The Bunnymen
  • 12 Seen It Coming - The Church
  • 13 Somewhere Nicer - Obi
  • 14 She Said It Was Destiny - Richard Thompson
  • 15 Ace of Spades - Hayseed Dixie
  • 16 Take the Skinheads Bowling - Camper Van Beethoven
  • 17 Ladies and Gentlemen - American Music Club
  • 18 Mona Lisa - Grant-Lee Phillips
Disc3 2006 - 2016 Part. 1
  • 01 Scribble - Underworld
  • 02 Only Man - Audio Bullys
  • 03 Collapsing Cities - Get Cape Wear Cape Fly
  • 04 I Won't Kneel - Groove Armada
  • 05 Going Out In Style - Dropkick Murphy’s
  • 06 Fragile Bird - City and Colour
  • 07 Bassline - Reverend And The Makers
  • 08 Do It with a Rockstar - Amanda Palmer
  • 09 Never Knew Your Name - Madness
  • 10 The Clock - The View
  • 11 Soulman - The Orb
  • 12 Gimme the Sign - Enemy
  • 13 Tomorrow - The Cranberries
  • 14 All Lips Go Blue - HIM
  • 15 I Am Dust - Gary Numan
  • 16 When I Was Your Girl - Alison Moyet
  • 17 I Never Wear White - Suzanne Vega
  • 18 We Go Home - Adam Cohen
  • 19 The Courrier - Seth Lakeman
Disc4 2006 - 2016 Part. 2
  • 01 Minute Mile - The Rifles
  • 02 In the End - Embrace
  • 03 Gone Baby Gone - James
  • 04 Monument - Royksopp
  • 05 The Day Is My Enemy - The Prodigy
  • 06 Deep Six - Marilyn Manson
  • 07 Glory Days - Carl Barat and the Jackals
  • 08 Me and the Devil - The Fratellis
  • 09 Share Your Air - Kate Miller-Heidke
  • 10 The Young Birds - Jack Steadman & Jamie MacColl
  • 11 Get Low - Stornoway
  • 12 What School? - The Proclaimers
  • 13 You Can't Call Me Baby - Teddy Thompson and Kelly Jones
  • 14 Keep Me Around - Turin Brakes
  • 15 Daughters - Lissie
  • 16 Hinterland - The Cult
  • 17 Smile More - Deap Vally
  • 18 Hold On - Richard Ashcroft

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1

아티스트 소개 (62명)

노래 : The Happy End (해피 엔드,はぴいえんど)
스코틀랜드의 싱어송라이터이자 포크 뮤지션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Doll by Doll 이라는 밴드를 구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John Foxx 와 함께 음악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는 1994년 다시 솔로 커리어를 시작하였는데 현재는 쿠킹바이닐과 계약하였다. 그리고 포크록 스타일의 신보를 선보였다. 스코틀랜드의 싱어송라이터이자 포크 뮤지션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Doll by Doll 이라는 밴드를 구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John Foxx 와 함께 음악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는 1994년 다시 솔로 커리어를 시작하였는데 현재는 쿠킹바이닐과 계약하였다. 그리고 포크록 스타일의 신보를 선보였다.
레너드 코헨, 조니 미첼, 고든 라이트푸트 그리고 닐 영의 캐나다 포크 싱어송라이터 전통의 계승자인 론 섹스스미스는 사실상 무명의 상태지만 농밀하고 진지한 음악으로 평단의 호응을 얻는 뮤지션이다. 1964년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태어나 나이아가라 폭포지역에서 자란 그는 폴 매카트니, 엘비스 코스텔로, 존 하이어트(John Hiatt)와 같은 작곡의 거성들의 영향으로 음악에 뜻을 굳혔다. 14살에 벌써 밴드를 결성해... 레너드 코헨, 조니 미첼, 고든 라이트푸트 그리고 닐 영의 캐나다 포크 싱어송라이터 전통의 계승자인 론 섹스스미스는 사실상 무명의 상태지만 농밀하고 진지한 음악으로 평단의 호응을 얻는 뮤지션이다. 1964년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태어나 나이아가라 폭포지역에서 자란 그는 폴 매카트니, 엘비스 코스텔로, 존 하이어트(John Hiatt)와 같은 작곡의 거성들의 영향으로 음악에 뜻을 굳혔다. 14살에 벌써 밴드를 결성해 연주하기 시작했고 고향지역의 클럽에서 경력을 쌓으면서 가수보다는 작곡가로 방향을 잡았다. 나중 토론토로 옮겨선 그룹을 결성한데 이어 낮에 급사로 일하면서 부지런히 자신의 곡을 썼다. 1991년 그룹 블루 로데오의 밥 와이스먼이 낸 앨범 < Grand Opera Lane >에 그가 쓴 곡이 들어가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마침내 작곡자로서 인터스코프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데모 몇 곡이 레코드사 고위간부 지미 아이오빈과 테드 필드의 관심을 끌면서 운명이 달라졌다. 그들은 론 섹스스미스에게 사무실로 불러 연주해볼 것을 요청했고 그의 노래에 반한 그들은 즉석에서 레코딩 계약을 제안했다고 한다. 1995년 프로듀서 미첼 프룸과 파트너를 이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데뷔작을 낸데 이어 2년 뒤에 2집 < Other Songs >를 발표했다.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입지는 매니아를 중심으로 형성되어갔지만 판매실적은 거의 없었다. 이 시기에는 공연에 집중해 엘비스 코스텔로, 치프턴스, 카디건스 등의 공연에 오프닝으로 나섰으며 엘비스 코스텔로로부터 ‘재능있는 싱어송라이터’라는 칭송을 받기도 했다. 역시 미첼 프룸과 짝을 이뤄 1999년에 발표한 3집 < Whereabouts >에서도 섬세한 발라드 주조술이 발휘되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미첼 프롬과의 작업이 주는 한계와 인터스코프 측의 무성의로 레코드사 이적을 고려한 끝에 뉴욕의 인디 음반사 스핀아트(SpinART)로 옮겼다. 여기서 스티브 이얼과 레이 케네디를 프로듀서로 2001년 발표한 신보 < Blue Boy >는 전작에 비해 강한 색조를 드러내면서 다시 한번 캐나다의 음유시인이라는 작은 명성을 확인했다.
singer/songwriter : David Gedge guitarist : Peter Solowka bassist : Keith Gregory drummer : Shaun Charman 1985년 영국 리즈에서 결성. singer/songwriter : David Gedge
guitarist : Peter Solowka
bassist : Keith Gregory
drummer : Shaun Charman

1985년 영국 리즈에서 결성.
노래 : Ani Difranco (애니 디프랑코)
멤버 : 칼 하이드(Karl Hyde), 릭 스미스(Rick Smith) 1980년 Karl Hyde 와 Rick Smith 가 결성한 영국 일렉트로닉 그룹으로 초기에는 Kraftwerk 등과 음악적 파트너쉽을 맺고 활동했다. 1988년 데뷔앨범 Underneath The Radar 를 발매했고 1991년에는 DJ Darren Emerson 을 기용해 트리오의 모양을 하고 댄서블 테크노를 프로듀싱한다. 네 ... 멤버 : 칼 하이드(Karl Hyde), 릭 스미스(Rick Smith)

1980년 Karl Hyde 와 Rick Smith 가 결성한 영국 일렉트로닉 그룹으로 초기에는 Kraftwerk 등과 음악적 파트너쉽을 맺고 활동했다. 1988년 데뷔앨범 Underneath The Radar 를 발매했고 1991년에는 DJ Darren Emerson 을 기용해 트리오의 모양을 하고 댄서블 테크노를 프로듀싱한다. 네 번째 앨범인 Second Toughest in The Infants 가 발매 될 즈음에 영화 트레인스포팅에 삽입 된 언더월드의 곡 Born Slippy NUXX 가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UK 싱글차트 2위에 오른다. 현재까지도 듀오는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국내에도 두 번의 내한공연으로 팬들과 만남을 가졌다.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공연 총 음악감독으로 발표된 언더월드는 연출을 맡은 대니보일 Danny Boyle 감독과의 각별한 인연으로 벌써부터 전세계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얻고 있다.

[아래 자료 출처: 이즘 (www.izm.co.kr)]
대중성이란 잣대로 평가한다면 적어도 1996년은 언더월드를 위한 해였다고 해도 과장된 말은 아닐 것이다. 영화 < 트레인스포팅 >에 삽입된 이 일렉트로니카 삼인조 밴드의 싱글 ‘Born slippy’의 몽환적인 외침은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었고, 심지어 우리나라의 클럽에서도 울려 퍼지는 개가(?)를 거두었다. 이 한 곡으로 이들은 테크노 씬 최고 스타의 반열에 올랐고, 여러 외국 언론들은 주저 없이 1996년 최고의 아티스트로 언더월드를 지목했다. 철저한 무명이었던 지난 10여 년의 세월이 주목받은 것은 당연지사. 늦깎이 중고신인의 진정한 데뷔는 이처럼 화려했다. 원래 밴드는 칼 하이드와 릭 스미스의 2인조 체제였다. 1984년부터 언더월드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던 이들은 계속되는 상업적 실패로 비운을 맛보던 중, 1990년대의 애시드 하우스 폭발을 목격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대대적인 음악적 방향의 수정이 필요함을 절감한 둘은 결국 대런 에머슨을 DJ로 영입하면서 제 2기 언더월드를 출범시켰다. 3인조로서 최초로 내놓은 작업물인 1992년의 싱글 ‘The hump’로 어느 정도 언더그라운드 댄스 씬에 이름을 알린 뒤 이들은 1994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 < Dubnobasswithmyheadman >(1994)으로 영국 차트 12위까지 진출하는 성공을 맛보았다. 무엇보다도 테크노의 전형적인 모습과 보컬과 기타의 실제 연주라는 록 음악의 주체가 함께 공존하고 있는 새로운 시도가 높이 평가받았다. 라이브에서도 이들은 록 공연의 포맷을 대거 도입, 테크노 팬과 록 팬 모두를 수용할 수 있는 폭넓은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를 자랑했다. 허나 골수 테크노 매니아들에게는 이것이 단점으로 작용하여 밴드는 언더그라운드의 순수성을 배신한 자들로 평가절하 되기도 했다. 하지만, 1집의 성공은 단지 맛보기에 불과했다. 1996년 초에 싱글 ‘Born slippy’로 전유럽을 강타한 이들은 연이은 2집 < Second Toughest in the Infants >(1996)의 대히트로 얼터너티브를 대체할 일렉트로니카 군단의 최선봉에 자리잡았다. 앨범에서 이들은 칼 하이드의 기타 사운드를 많이 줄이는 대신 테크노적인 어법을 전폭적으로 수용함으로서 자신들이 근본적으로 테크노 밴드임을 천명했다. 1999년에 발표한 3집 < Beaucoup Fish >은 비록 전작들에 비해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얻었지만, 사운드를 세밀하게 조절할 줄 아는 노련함은 이미 이들이 ‘전자 음악의 거장’ 위치에 올라섰음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밴드는 새천년에 < Everything, Everything [live] >을 내놓으며 보컬과 기타, 그리고 파편화된 가사와 테크노 사운드를 동시에 라이브로 재현해 내려는 야심을 전면에 드러냈다.
노래 : Get Cape Wear Cape Fly (겟 케이프 웨어 케이프 플라이)
노래 : Groove Armada (그루브 아마다)
영국 런던 출신의 일렉트로니카 댄스 듀오 그루브 아마다(Groove Armada)는 베이스먼트 잭스(Basement Jaxx), 모치바(Morcheeba), 엠제이 콜(MJ Cole) 등과 함께 세기말 유행처럼 번진 일렉트로니카와 트립 합의 계보를 이어간 그룹이다. 이들은 레벨 42(Level 42), 스파이로 자이라(Spyro Gyra), 샤카탁(Shakatak) 같은 일련의 재즈펑크(Jazz-Funk) 퓨전 ... 영국 런던 출신의 일렉트로니카 댄스 듀오 그루브 아마다(Groove Armada)는 베이스먼트 잭스(Basement Jaxx), 모치바(Morcheeba), 엠제이 콜(MJ Cole) 등과 함께 세기말 유행처럼 번진 일렉트로니카와 트립 합의 계보를 이어간 그룹이다. 이들은 레벨 42(Level 42), 스파이로 자이라(Spyro Gyra), 샤카탁(Shakatak) 같은 일련의 재즈펑크(Jazz-Funk) 퓨전 그룹들처럼 언더그라운드 클럽가를 중심으로 출발해 이후 영국 실험주의 음악노선을 초토화시키는데 든든한 공을 세웠다. 톰 핀들레이(Tom Findlay)와 앤디 카토(Andy Cato)의 2인 체제로 구성된 그루브 아마다는 일렉트로니카, 앰비언트, 다운비트, 트립 합, 테크노 등의 다양한 장르를 한데 융합한다. 아울러 이들은 음반을 통해 몽환적이고 중독성 강한 일렉트로닉 연주 음악을 들려주는가 하면 객원싱어들을 초빙해 각 앨범마다 독특한 색깔을 주조해낸다. 1997년에 이르러 선보인 ‘4 tune cookie’, ‘At the river’ 등의 몇몇 싱글과 이듬해 발표한 데뷔음반 < Northern Star >(1998)부터 그러한 사운드 특징을 잘 증명한다. 그룹은 1999년 보다 범위가 폭넓어진 2집 음반 < Vertigo >을 발표해 영국차트 톱 20에 들어가는 성적표를 얻어냈다. ‘If everybody looked the same’, ‘At the river’, ‘I see you baby’(팻보이 슬림에 의해 리믹스) 같은 히트곡을 배출해내며 이들을 일렉트로티카 계열 그룹의 리스트에 당당히 올려놓았다. 이후 그룹은 엘튼 존(Elton John) 공연의 오프닝 밴드로 무대에 서며 조금씩 성공가도를 내달렸고, 2000년에 접어들어 2집 < Vertigo >를 미국에서 재 발매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넓혀나갔다. 2000년 발표된 < The Remixes >에 뒤이어 선보인 < Back to Mine >(2000)은 알그린(Al Green), 베리 화이트(Barry White), 티어스 포 피어스(Tears for Fears),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 루츠 마누바(Roots Manuva) 등의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앨범의 질을 드높였다. 나아가 그룹은 이듬해에 드디어 주류로 진입해 일렉트로닉 앨범차트 7위를 기록한 3집 음반 < Goodbye Country (Hello Nightclub) >에서 이스트코스트 래퍼 제루(Jeru)가 피처링한 ‘Suntoucher’와 싱글 ‘Superstylin’ 등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자신들의 개성을 거침없이 표출했다. 2년 뒤인 2003년에 발표된 4집 < Lovebox >은 전작보다 진일보해 일렉트로닉 앨범차트 3위까지 오르는 성과를 거둔다. 특히 앨범은 이글 아이 체리(Eagle-Eye Cherry)의 누나인 네네 체리(Neneh Cherry), 랩 그룹 내피 루츠(Nappy Roots), R&B 여가수 선샤인 앤더슨(Sunshine Anderson), 포크 싱어 리치 헤이븐스(Richie Havens) 등과 함께 작업해 다양한 양질의 사운드를 구사하기도 했다.
노래 : Amanda Palmer (아만다 파머,Amanda MacKinnon Gaiman Palmer)
오브(Orb)는 아직까지도 테크노의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존재이다. 현재 오브의 힘은 많이 소진된 상태이지만 과거, 울트라월드 앨범의 파워는 테크노의 다크사이드 오브 더 문으로 견주어질 정도로 거대한 것이었다. 오브는 알렉스 패터슨(Alex Patterson) 원맨이며 작업 때 마다 많은 어시스터들이 동원된다. 유투의 리믹스 작업 등에서 부각되었던 폴 오큰폴드(Paul Oakenfold) 그리고 현재 시스템 세븐... 오브(Orb)는 아직까지도 테크노의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존재이다. 현재 오브의 힘은 많이 소진된 상태이지만 과거, 울트라월드 앨범의 파워는 테크노의 다크사이드 오브 더 문으로 견주어질 정도로 거대한 것이었다. 오브는 알렉스 패터슨(Alex Patterson) 원맨이며 작업 때 마다 많은 어시스터들이 동원된다. 유투의 리믹스 작업 등에서 부각되었던 폴 오큰폴드(Paul Oakenfold) 그리고 현재 시스템 세븐으로 독립한 스티브 힐라지(Steve Hillage) 역시 오브 패밀리로서 각각의 작업에서 꾸준히 교제하고 있다. 알렉스 패터슨의 음악세계는 레이브의 물결속에 런던의 애시드 클럽을 전전하던 아마츄어 디제이서부터 출발하였다. 같은 시기에 펑크밴드인 킬링 조크(Killing Joke)의 로디를 했던 이색적인 경력도 있다. 최초에는 지미 코티(Jimmy Cauty)와 함께 작업을 하였으나 코티가 KLF로 전입하면서 알렉스는 동시에 오브를 창조하고 앰비언트 하우스 뮤직의 새장을 열게 된다. 원론적 앰비언트 음악은 바로, 주변환경 같은 음악이다. 음악이 환경처럼 작용하여 인간과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것이다. 그러한 순수한 앰비언트 음악은 최소한의 선율과 최소한의 리듬만을 사용하여 듣는 이의 신경을 최대한으로 덜 건드리게 되있으므로 어쩔수 없이 지루하기 마련이다.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의 앰비언트 시리즈 작품들이 대표적으로 그러하였다. 그러한 이노류의 비트레스(Beatless)한 명상적 앰비언트에 비트를 부가함으로써 활력을 조성했던 테크노 음악이 바로 ''앰비언트 하우스(Ambient+House)''이다. 오브의 데뷰작인 < The Orb''s Adventures Beyond the Ultraworld >(1991)로 말미암아 앰비언트는 비트가 간섭하지 않는 명상적인 음악에서 적당한 그루브를 형성하는 동력감을 수반한 음악으로 약진한다. 울트라월드 앨범은 그 대작성의 심도있는 작품성 때문에 프로그레시브 하우스라고 진단되기도 하였다. 후속작인 < U.F.Orb >(92)는 울트라월드의 비사이드 같은 앨범으로 오브의 대표싱글인 Blue Rooms이 수록되어있으며 특징적으로 덥(Dub) 스타일이 만개한 앨범이다. 오브의 작품은 상업적으로도 꽤 성공하였다. 독일의 테크노 아티스트인 토마스 휄만(Thomas Fehlmann)과 공동작업한 < Pomme Fritz >(94)는 UK앨범차트 6위에, < Orbvs Terrarvm >(95)은 20위안에 랭크된다. 이러한 테크노 음반의 히트는 그대로 테크노 문화 발달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알렉스 패터슨은 앤디 웨더랠, 다렌 에머슨, 폴 오큰폴드 등을 몰고다니며 화려한 테크노 긱을 자주 벌여 테크노 문화의 확산에 직접 이바지하였고 함께했던 수행 디제이들 역시 현재는 헤비급 디제이들이 되어 트랜스 하우스 씬을 주도하고 있다. 테크노를 단지 땐스로 가볍게 넘길수 없는 이유가 수많은 퓨어 앰비언트와 앰비언트 하우스 작품들에 있다. 특히 오브의 앨범은 테크노 싱글들의 짜깁기 모음식 느낌이 아닌 앨범 전체적으로 감상하면 빛을 발하는 드라마 형식이 강한 음악적 테크노이다. 그것은 좋은 앰비언트 작품들의 공통점이며 퓨처 사운드 오브 런던(FSOL), 에이펙스 트윈(Aphex Twin), 글로벌 커뮤니케이션(Global Communication)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항상 오브가 존재하였다. 닥치고 춤이나 추기에는 사뭇 진지한, 댄스임파서블한 테크노 작품들은 무궁무진하다. 테크노는 댄스를 위한 재물이라는 편견을 일축하기위해서는 양질의 좋은 작품들이 더욱 많이 소개되어야 할 것이다. 테크노의 이면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 출발점으로서 오브의 입지는 매우 중요하다.
‘8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영국 일렉트릭 팝 듀오 야주(Yazoo) 출신 싱어송라이터 ‘8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영국 일렉트릭 팝 듀오 야주(Yazoo) 출신 싱어송라이터
흔히 ‘음유시인(吟遊詩人)’이란 말을 한다. 원래 고대 그리스나 중세 유럽에서 떠돌이 시인을 일컫는 용어였던 그 말은 최근에 와서 레오나드 코헨처럼 문학적 소양을 지니고 때론 음울한 목소리로 자신만의 세계를 노래하는 가수에게 전용되었다. 그런 점에서 수잔 베가(Suzanne Vega)는 여성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음유시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인물이다. 허스키한 음색이 매력 만점인 수잔 베가는 가사를 쓸 줄... 흔히 ‘음유시인(吟遊詩人)’이란 말을 한다. 원래 고대 그리스나 중세 유럽에서 떠돌이 시인을 일컫는 용어였던 그 말은 최근에 와서 레오나드 코헨처럼 문학적 소양을 지니고 때론 음울한 목소리로 자신만의 세계를 노래하는 가수에게 전용되었다. 그런 점에서 수잔 베가(Suzanne Vega)는 여성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음유시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인물이다. 허스키한 음색이 매력 만점인 수잔 베가는 가사를 쓸 줄 아는 ‘지적인’ 포크 가수다. 잔잔하고 감성적인 포크 사운드는 물론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며 쓰는 진지한 노랫말이 그녀가 지닌 최대의 미덕이다. 일례로, 학대받는 아이의 관점에서 가사를 쓴 ‘Luka’는 거대한 성공을 거두며 아동학대에 대한 세상의 관심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 가사 속의 상처받은 아이는 지난밤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감춘 채, "난 괜찮으니까 더 이상 묻지 말아요"라고 아래층 사람에게 쓸쓸히 말한다. 수잔 베가가 높이 평가받는 게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1980년대 후반 트레이시 채프먼과 더불어 포크 음악을 리바이벌시킨 주역이라는 점이다. 1985년 발표한 셀프 타이틀 데뷔음반이 비평적인 갈채를 받으며 새로운 포크 붐을 일으켰다. 여성만이 갖는 섬세한 감수성이 어필했던 것이다. 그녀의 성과는 자신만의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당시의 여성 포크 운동은 계속 이어져서 얼마 후 등장하는 숀 콜빈, 토리 에이모스, 애니 디프랑코, 주얼 같은 90년대 여성 포크 가수들이 활약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1959년 8월 12일 뉴욕에서 태어난 수잔 베가는 소설가였던 양아버지의 문학적 영향을 받고 자랐다. 또한 레오나드 코헨, 루 리드의 음악에 감동 받으며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덕분에 싱어 송 라이터의 자질을 완벽히 갖출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무용을 전공했던 그녀는 그때(1975년경)부터 곡을 쓰기 시작했다. 대학에 진학한 뒤에는 회사 접수원으로 일하는 한편, 그리니치 빌리지 포크 순회공연에서 홀로 어쿠스틱 공연을 벌여나갔다. 수잔 베가의 공연은 차츰 주목받았으며, 1984년 < 뉴욕 타임즈 > 리뷰에서는 ‘뉴욕 포크 진영에서 가장 기대되는 유망주 중 하나’로 그녀를 기술하기도 했다. 여기에 힘을 얻은 베가는 < A&M > 레코드와 계약하고 이듬해인 1985년 데뷔앨범 < Suzanne Vega >를 발표했다. 소박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에 문학적 노랫말, 청초한 여성의 음색 등 전에 없던 새로운 음악에 잠시 당황한 비평가들은 그녀의 음악에 ‘네오 포크’라는 신종 용어를 붙여줬고, 이후 그녀는 신흥 여성 포크의 기수로 대두된다. 1987년 발표한 두 번째 앨범 < Solitude Standing >에서는 앞서 언급한 ‘Luka’와 담백한 아 카펠라 트랙 ‘Tom’s diner’ 등이 크게 히트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무명이던 숀 콜빈이 백보컬로 참여한 ‘Luka’는 < 그래미상 >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1990년작인 < Days Of Open Hand >를 기점으로는 테크노 등 음악적인 실험이 시작된다. 한편, 1990년에는 영국의 댄스 리믹스 듀오 DNA가 아카펠라 곡 ‘Tom’s diner’를 반복되는 댄스리듬과 함께 샘플링해서 발표, 그 곡이 다시 한번 주목받는 계기가 되었다. 수잔 베가는 그 후 미첼 프룸(Mitchell Froom)을 프로듀서로 맞이해 두 장의 앨범, < 99.9F >(1992년)와 < Nine Objects Of Desire >(1996년)를 발표했다. 1995년에 그녀와 결혼하기도 한 미첼 프룸은 포크 록이었던 베가의 음악을 전자음, 인더스트리얼 등 보다 실험적으로 이끌었다. 2001년 10월에는 새 앨범 < Songs In Red And Gray >을 통해 포크 록으로 돌아왔다.
노래 : Seth Lakeman (세스 레이크맨)
노래 : Embrace (임브레이스)
1990년에 결성된 임브레이스(Embrace)는 브릿팝의 끝물결에서 단연 주목받은 밴드이다. 이들은 결성 당시부터 자신들의 음악에 대한 자신감에 충만해 있었고 이를 대변하듯 음반 회사에 보낸 데모에 대해 많은 계약 요청을 받았다. 결국 버진(Virgin)레코드와 계약한 임브레이스는 1998년에 데뷔 앨범 < The Good Will Out >을 발표하며 인기 몰이를 시작했다. 1집은 마치 오아시스(Oasis)와 ... 1990년에 결성된 임브레이스(Embrace)는 브릿팝의 끝물결에서 단연 주목받은 밴드이다. 이들은 결성 당시부터 자신들의 음악에 대한 자신감에 충만해 있었고 이를 대변하듯 음반 회사에 보낸 데모에 대해 많은 계약 요청을 받았다. 결국 버진(Virgin)레코드와 계약한 임브레이스는 1998년에 데뷔 앨범 < The Good Will Out >을 발표하며 인기 몰이를 시작했다. 1집은 마치 오아시스(Oasis)와 버브(Verve)를 결합한 듯한 사운드를 들려주며 초반부터 이들의 팬베이스를 두텁게 하는데 공헌했다. 큰 스케일로 진행되는 훅(hook)과 서정적이고 애잔한 감성이 함께 공존하는 밴드만의 스타일을 잘 살려낸 앨범이었다. 특히 첫 싱글인 ’All you good good people’은 < NME >가 선정한 ‘이주의 싱글’로 뽑히는 등 큰 히트를 기록했다. 2000년에 나온 두 번째 앨범 < Drawn From Memory >에서 임브레이스는 더욱 유연해진 음악적 사고와 확장된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재기발랄한 첫 싱글 ’Hooligan’과 사이키델리아를 탐구한 ’New adam new eve’가 그 증거였다. 이 곡들은 전형적인 임브레이스표 사운드와 차별화된 동시에 앨범 전체와 어울리면서 예상외의 히트를 기록했다. 깔끔한 멜로디 라인을 지닌 발라드 트랙들도 여전한 고수준을 자랑하면서 이 작품은 결국 ‘안정속의 개혁’을 이룩해냈다. 단연 임브레이스 최고 명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1년 뒤에 발표한 < If You’ve Never Been >(2001)은 이들의 디스코그라피 중 가장 조용한 사운드를 담아내었다. ‘멜로디 지상주의자’ 답게 발라드 트랙들 뿐 아니라 빠른 템포의 곡들에서도 수려한 악곡 능력을 뽐냈다. 전작들에 비해 음악적으로 결코 처지지 않았으며 이제는 중견 밴드인 이들의 여유로움과 관록이 앨범 전체를 수놓고 있었다. 물론 임브레이스가 맥나마라 형제의 호언장담처럼 ‘위대한 밴드’의 지위에 등극할 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그러나 3장의 앨범으로 이들은 자신들의 항해가 순항을 거듭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성공적인 여행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임브레이스가 시간을 두고 지켜볼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멤버 : Adrian Oxaal, Andy Diagram, Chloe Alper, David Baynton-Power, Jim Glennie, Mark Hunter, Saul Davies, Tim Booth 멤버 : Adrian Oxaal, Andy Diagram, Chloe Alper, David Baynton-Power, Jim Glennie, Mark Hunter, Saul Davies, Tim Booth
현재 일렉트로닉 신을 이끄는 세련된 노르웨이 듀오 록익솝! 노르웨이에서 4번의 넘버원 앨범을 기록했다. 노르웨이 그래미 어워드에서 7회 수상, 인터내셔널 뮤직 어워드 5회 수상, 그래미, 브릿팝 어워드 베스트 인터내셔널 그룹 노미네이트 기록했다. 각종 페스티벌 헤드라이너, 할리우드볼 3회 단독 공연 기록. 2009년 글로벌개더링을 통해 내한 공연을 펼쳤다. 로빈과 만든 ‘Do It Again’은 노르웨이 뮤지션 ... 현재 일렉트로닉 신을 이끄는 세련된 노르웨이 듀오 록익솝! 노르웨이에서 4번의 넘버원 앨범을 기록했다. 노르웨이 그래미 어워드에서 7회 수상, 인터내셔널 뮤직 어워드 5회 수상, 그래미, 브릿팝 어워드 베스트 인터내셔널 그룹 노미네이트 기록했다. 각종 페스티벌 헤드라이너, 할리우드볼 3회 단독 공연 기록. 2009년 글로벌개더링을 통해 내한 공연을 펼쳤다. 로빈과 만든 ‘Do It Again’은 노르웨이 뮤지션 사상 최초 미국 빌보드 200에 14위로 전격 데뷔했다. 콜드플레이, 레이디 가가, 킹스 오브 리온, 디페시 모드가 이들의 팬! 로익숍은 이들의 리믹스 앨범을 제작했다.
노래 : Marilyn Manson (마릴린 맨슨,Brian Hugh Warner)
시대를 타고나는 것은 아티스트에게 커다란 하늘의 축복이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갈무리했더라도 시대의 은총 없이 비상하기란 정말 버겁다. 그런 점에서 마릴린 맨슨은 행운아일 것이다. ‘세기말’이라는 혼란스럽고 어두운 시대는 그에게 음악계를 고공 비행할 수 있는 날개를 달아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뉴 밀레니엄. 희망이라면 희망의 시기다. 과연 새 ‘세기초’도 그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줄 수 있을까. 소위 음악을 꽤... 시대를 타고나는 것은 아티스트에게 커다란 하늘의 축복이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갈무리했더라도 시대의 은총 없이 비상하기란 정말 버겁다. 그런 점에서 마릴린 맨슨은 행운아일 것이다. ‘세기말’이라는 혼란스럽고 어두운 시대는 그에게 음악계를 고공 비행할 수 있는 날개를 달아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뉴 밀레니엄. 희망이라면 희망의 시기다. 과연 새 ‘세기초’도 그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줄 수 있을까. 소위 음악을 꽤나 듣는다는 매니아들 사이에서도 마릴린 맨슨에 대한 단상(斷想)은 음악이 아닌 ‘이미지’가 주를 이뤘다. 섹스의 화신 마릴린 먼로와 세기의 살인마 찰스 맨슨의 이름을 합한 그의 명칭(그룹명이기도 하다)과 함께 흉물스런 분장과 저주받은 앨범 커버는 음악을 듣기도 전에 이미 일반의 뇌리에 ‘사탄의 자식’이라는 인상을 각인했다. 게다가 끊이지 않는 사건과 사고로 타블로이드의 가십난에 단골로 등장하면서 그런 ‘이미지 포위’는 더욱 확고해졌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 특히 보수세력과 기독교 단체에서는 그가 음악보다 쇼크기법으로 인기에 부합하려고 한다며 비난했다. 정말 맨슨의 음악과 행동은 순전히 스포트라이트를 위한 의도된 계획이었을까. 그럼 10대들이 ‘맨슨교의 교주’라 칭하며 기꺼이 광신도를 자청하는 이유는 어떻게 풀이해야 하는가. 음악 외적인 퍼포먼스? 한때의 엽기적 패션? 우선 ‘걸어 다니는 화약고’ 맨슨과 관련된 사건과 사고 퍼레이드를 보자. 1994년 10월 유타주 솔트 레이크시에서의 공연 도중 그는 몰몬교의 성서를 한 장씩 찢으며 관중들에게 뿌리는 용감무쌍한 돌출행동을 벌였다. 이후 그는 솔트 레이크에서 영원히 공연을 할 수 없게 됐으며 자연 악마주의 논쟁에 휘말렸다. 1997년 11월에는 네바다주의 레이몬드 쿤츠라는 사람은 자신의 15살 난 아들이 맨슨의 2집 앨범 < Antichrist Superstar >를 듣고 자살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1998년 1월에는 텍사스의 18살 청소년 존 슈로더(John Schroeder)가 맨슨의 노래 일부분인 ‘I am the God of Fuck’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는 이유로 경찰서로 끌려가는 일이 발생했다. 그는 125달러의 벌금을 물었다. 분쟁의 씨앗을 제공한 마릴린 맨슨의 행위는 어찌됐건 비판의 대상이 되기에 마땅하다. 하지만 그의 행동을 이목제고를 위한 방법론으로 해석하기 전에 한번 이면에 숨은 메시지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는 성경을 찢은 행위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 계획된 것이었다. 종이 한 장이 중요한 게 아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념에 대해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들이 배운 모든 것들이 그들이 ‘믿고자 하는 것’인지 혹은 ‘믿어야 한다고 배운 것’인지 다시 한번 숙고하기를 원한다." # 맨슨은 가해자 아닌 피해자? 결국 신앙의 근본을 파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라는 이름 하에 행해지는 온갖 부패와 타락을 꼬집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1994년 데뷔작 < Portrait Of An America >부터 줄곧 담아온 중심 테제기도 하다. "미국은 죄를 전가시킬 아이콘을 즐겨 찾는다. 내가 적 그리스도의 역할을 맡았다는 걸 인정한다. 사람들은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을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활동과 연관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맨슨은 그렇게 희생양이 된 자신의 처지를 말한다. 가사도 다를 게 없다. 데뷔 앨범의 수록곡 ‘Lunchbox’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한 학생이 도시락으로 저항하는 내용인데 총에 대한 노래로 저널리스트가 잘못 해석함으로써 피해를 당했다고 한다. ‘Get your Gunn’ 역시 낙태에 관한 곡인데 미디어에 의해 잘못 오역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각의 10대들은 사회의 오판과 매도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마릴린 맨슨을 자신들의 대변자로 받아들인다. 그의 깊은 속내는 모를지언정 어느 정도 의미파악은 한다. 진부함과 상투성에 안주한 부모세대와는 다르기에 말이다. 그것은 음악에서 더욱 광채를 발한다. 맨슨은 ‘쇼크 록의 창조자’ 앨리스 쿠퍼, ‘글램 록의 대부’ 데이비드 보위, 그리고 ‘악마의 화신’ 오지 오스본의 이미지를 물려받아 그 위에 제도권과 종교계를 향한 비판적 메시지를 더함으로써 자신의 형체를 갖췄다. 그 비주얼 이미지들에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음악으로 발현시켜 완벽한 천지창조를 이뤘다. 그의 음악은 1990년대 사운드의 결정판이다. 메탈, 테크노, 고딕, 인더스트리얼, 로큰롤 등 모든 음악적 텍스트가 집결되어있다. 그래서 딱히 어느 한 장르로 규정하기에는 범위가 광대하다. 허나 포괄적이면서도 분산되지는 않는다. 하나로 결속해 광기 어린 에너지를 뿜어댄다. 이것이 바로 마릴린 맨슨의 힘이자 특수성이다. 그의 작품 중 최고로 평가받는 1997년 앨범 < Antichrist Superstar >가 이를 생생하게 전한다. 수록곡 ‘The beautiful people’만 들어봐도 충분하다. 분노에 찬 짐 점(Zim Zum, 현재는 존 5로 교체)의 기타 리프와 포효하는 진저 피쉬(Ginger Fish)의 드럼 울림과 트위기 라미레즈(Twiggy Ramirez)의 베이스, 그 사이를 활강하는 게이시(M.W. Gacy)의 키보드는 맨슨의 극단적인 보컬과 맞물리며 ‘세기말 사운드’를 정점으로 끌어올렸다. 혼돈과 무질서의 세기말 끝물의 정서에 편승하여 더욱 그 음악의 보편적 호소력이 상승한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 상황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마를린 맨슨의 곧 나올 예정인 그의 소설 제목이기도 한 이번 신보 < Holy Wood(In The Shadow Of The Valley Of Death >는 여전히 그의 농축된 음악적 응집력과 함께 도발적 에너지로 가득하다. 현미경처럼 더욱 예리해지는 음(音)에 대한 감각과 멤버들의 빼어난 연주 기량은 더할 나위 없이 준수하다. 이제는 그는 음악 구세주인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의 트렌트 레즈너의 영향권 내에서 완전 해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스스로도 인더스트리얼 메탈 성향의 2집과 글램 지향적이었던 1998년 3집 < Mechanical Animals >사이의 접착제라고 말할 정도로 양자의 색깔이 적절히 혼합, 배치되어있다. # 콜롬바인 총기사건 공세에 대한 반격 첫 싱글인 ‘Disposable teens’와 ‘The fight song’은 ‘The beautiful people’를 잇는 전형적인 맨슨의 음악 스타일로 그의 광신도들에게 공감의 줄을 퉁긴다. 멜로디 라인이 뚜렷이 들려오는 ‘Target audience(Narcissus narcosis)’나 ‘In the shadow of the valley of death’ 같은 곡들은 그가 전체 사운드만큼 곡 하나 하나에도 세밀히 신경 쓰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앨범은 이처럼 전체와 개체 측면에서 질적 동반상승이 두드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솔직히 그의 사운드가 어느 정도 친숙해져 ‘첫 경험의 쇼크’가 부족하다는 것 외에는 단점이 거의 없어 보인다. 메시지도 날카롭다. 이번 앨범은 1999년 4월 전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콜로라도주 리틀턴의 콜롬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을 테마로 잡았다. 그 사건의 주범인 학생들의 집에서 자신의 음반이 발견되어 제도언론으로부터 마녀사냥을 당한 것에 대한 응분의 반격이다. ‘우리는 하찮은 사람이지만 대단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우리가 죽었을 때 그들은 우리가 누군지 알게 될 것이다(We are the nobodies/We wanna be somebodies/When we`re dead/They`ll know just who we are)’로 시작되는 ‘The Nobodies’가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 롤링스톤 >지는 "다른 메인스트림 뮤지션은 상대도 안 되는 연극적인 열정과 통렬한 힐난으로 실제 삶을 전달하는 맨슨을 존경해야만 한다"며 극찬했다. 시대는 태어나는 자 모두를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시대를 움직이는 자는 몇 안 되는 소수이다. 얼마나 잘 이용해서 솟아나느냐가 관건이다. 마릴린 맨슨의 원래 직업은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한 성공적 음악평론가였다. 음악 판을 바라보는 시각이 남보다 열려있고 선봉에 서있음을 시사한다. 세기말을 활동시간표로 선택한 것도 그의 선구안 덕분일 것이다. 처음 나른한 슈게이징 그룹에 몸담았다가 갑작스레 ‘극단의 이미지와 음악’으로 변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마릴린 맨슨은 시대를 타고났고, 어쩌면 그것을 이용했다. 그리고 한 때를 풍미했다. 만약 신보로 ‘세기초’마저 관통한다면 그는 순간의 트렌드를 창조한 세기말 ‘원 히트 원더’를 넘어서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언제나 있을 왜곡과 부조리를 긁어주는,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이터널리 맨슨’임이 증명될 것이다. 물론 그동안에도 아버지의 혐오는 계속되겠지만.

* 디스코그래피
Portrait of An American Family (1994)
Antichrist Superstar (1996)
Mechanical Animals (1998)
Holy Wood (In the Shadow of the Valley of Death) (2000)
The Golden Age of Grotesque (2003)
Eat Me, Drink Me (2007)
The High End of Low (2009)
Born Villain (2012)
노래 : Proclaimers (프로클레이머스)
노래 : Lissie (리시,Elisabeth Corrin Maurus)
포크 록 싱어송라이터 포크 록 싱어송라이터
멤버 : Julie Edwards, Lindsey Troy 멤버 : Julie Edwards, Lindsey Troy
노래 : Richard Ashcroft (리차드 애쉬크로프트)
#이제 모두 버리고 홀로 서는 거야 영국은 해마다 국가를 대표하는 록그룹을 배출해왔다. 1994년은 블러였고, 1995년은 오아시스, 1996년은 프로디지였다. 그리고 1997년의 주인공은 더 버브(The Verve)였다. 이해 발표된 곡목처럼 웅대한 심포니 곡조의 ‘Bittersweet symphony’는 영국을 넘어 미국시장도 흔들어놓았다. 당시 영국 음악언론들은 오아시스 저리 가라할 정도로 난리법석을 피웠다... #이제 모두 버리고 홀로 서는 거야 영국은 해마다 국가를 대표하는 록그룹을 배출해왔다. 1994년은 블러였고, 1995년은 오아시스, 1996년은 프로디지였다. 그리고 1997년의 주인공은 더 버브(The Verve)였다. 이해 발표된 곡목처럼 웅대한 심포니 곡조의 ‘Bittersweet symphony’는 영국을 넘어 미국시장도 흔들어놓았다. 당시 영국 음악언론들은 오아시스 저리 가라할 정도로 난리법석을 피웠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룹의 고질적인 내부정치의 혼돈으로 끝내 더 버브는 해산으로 치닫고 말았다. 그러나 더 버브에는 간판 리처트 애시크로프트가 있었다. 잠시 휴지기를 거친 뒤 그는 오래 전부터 노려온 독립을 단행해 솔로 앨범과 함께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여기에는 홀로 된다는 것의 ‘즐겁고도 괴로운’ 역설의 미학이 있다. 영원한 방랑자가 들려주는 ‘비터스위트’ 스토리! 기쁨과 슬픔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하지만 영국 록밴드 더 버브의 행보는 언제나 환희와 고통이 동시공재(同時共在)해왔다. 스팅으로 하자면 싱크로니시티. 그것은 가히 더 버브가 음악을 들려주는 밴드라고 하기 이전에 인생의 단면을 조명하게 하는 성질의 그룹이라는 착각을 부를 정도였다. 우선 기쁨은 1997년 하반기의 스매시 ‘Bittersweet symphony’였다. 이 곡은 영국 차트 2위로 치솟으면서 오아시스가 좋아하는 밴드, 그러나 영국 언론이 평가 절하했던 밴드라는 종래의 이분법을 완전 종식시키는 후련한 성공을 거두었다. 음악전문지 < 복스 >는 "1997년은 더 버브의 해였다"고 단정지었다. 그 해 12월 역시 음악잡지 < 모조 >가 독자 설문을 통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100곡’에도 이 곡은 당당 60위에 올라 당시 그룹의 열풍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보통 최신 히트곡은 이런 조사에서 뽑히지 않는다. H.O.T라면 몰라도). 이 곡의 인기는 비단 영국만 떠들썩하게 한 것이 아니라 급기야 미국 시장도 공략해 오아시스 외에는 접근하지 못했던 전미 싱글차트마저 정복하면서 꿈에 그리던 월드 스타덤을 포획하는데 성공했다. 이어 내놓은 그들의 앨범 < Urban Hymns >는 ‘The drugs don’t work’와 ‘Lucky man’ 두 곡이 연속 영국 차트 1위를 차지하면서 영국에서만 19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미국에서도 100만장을 쾌척해 세계적으로 400만장이라는 오아시스 이후의 최대실적을 쌓아올렸다. #환희와 고난이 동거했던 ‘비터스위트’ 그룹생활 그러나 이런 석세스 항로에 커다란 암초가 걸렸다. 그토록 호평을 얻은 시그니처 송 ‘Bittersweet symphony’가 롤링 스톤스의 초기 걸작인 ‘Last time’의 오케스트라 버전에 대한 저작권 침해로 결론이 나버린 것이다. 리처드 애시크로프트와 더 버브에게는 한푼의 로열티도 돌아오지 않았다. 반은 믹 재거, 반은 키스 리처드의 것이었다. 분명 그 곡의 네 마디를 반복 사용하긴 했지만 그토록 멋지게 재창조해낸 리처드 애시크로프트(Richard Ashcroft)의 노력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그는 억울한 나머지 자조하듯 ‘Bittersweet symphony’를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가 20년만에 쓴 베스트 송"이라고 투덜거렸다. 씨름 잘해도 등허리에 흙 떨어질 날 없다고 했던가. 비터스위트, 정말 곡 제목대로 ‘달콤하고도 쓰디쓴’ 과정이었다. 밖에서만 흙이 떨어진 게 아니었다. 그룹 내부의 정치도 크게 휘청거렸다. 앨범 ‘Urban Hymns’가 성공을 거두자 리처드 애시크로프트와 기타리스트 닉 매케이브(Nick McCave)의 불안한 잠정휴전도 끝나 ‘유서 깊은’ 갈등이 재연되었다. 주도권 쟁탈에서인지, 본래가 물과 기름 관계인지 모르지만 그룹 내에서 싱어와 기타리스트는 늘 긴장관계에 있다. 그리고는 얼마 못 가서 갈라서고 곧 두 사람은 솔로 앨범을 내고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조니 마와 모리세이가 충돌한 스미스(The Smiths), 이언 브라운과 존 스콰이어가 신경전을 벌인 스톤 로지스(Stone Roses), 그리고 갤러거 형제의 갈등으로 얼룩진 오아시스(얼마 전 노엘이 그룹을 박차고 나갔다)를 보라. 헌데 이것은 묘하게도 영국그룹의 ‘전통’이기도 하다. 더 버브도 성공 뒤 ‘어느 날 갑자기 두 사람은 서로 혐오해왔다는 것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룹은 해체라는 영국밴드 역사가 확립한 코스를 택했다. 애시크로프트와 매케이브 간의 적의는 전에도 그룹을 소용돌이치게 한 적이 있었다. 영국의 위간(wigan)에서 결성되어 1993년 첫 앨범 < A Storm In Heaven >과 2년 뒤 < A Northern Soul >을 내면서 불거진 두 사람의 갈등은 닉 메케이브의 이탈로 이어졌다. 애시크로프트는 대타로 스톤 로지스와 시호시스의 기타리스트 존 스콰이어와 스웨이드의 기타주자 버나드 버틀러를 연이어 교섭하지만 거절당하고 말았다. 도리 없이 그는 ‘처음으로 돌아가’ 메케이브에게 롤백을 호소했고 흔쾌히 돌아온 그와 함께 천신만고 끝에 만든 앨범이 < Urban Hymns >였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당시에 왜 불화를 겪었는지, 또 어떻게 다시 합치게 되었는지 자세한 설명을 거부해 지금도 실상은 안개에 휩싸여있다. 다만 리처드 애시크로프트와 닉 매케이브의 차이가 애시크로프트가 ‘음악산업을 좋아하지 않는’ 수준이라면 매케이브는 ‘그것을 증오하는’ 정도라는 점이 확인될 따름이다. 이러니 애시크로프트가 2집을 만들 시점에서부터 자신의 솔로 앨범을 만드는 것인지, 더 버브 앨범에 참여하는 것인지에 대한 정체(正體)의 위기에 시달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의 솔로 앨범은 과연 어떠한가. 이를 파악하기 위해 우선 그의 사고체계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애시크로프트는 17-18세기 경 신비적인 종교개혁가들의 비밀결사회로 알려진 ‘장미십자회원’ 출신의 의붓아버지로부터 정신적 구원을 받는다. 그것은 어떤 것의 미래를 상상으로 축조해 미래를 자기 것으로 조절하는 의식이었다. 가령 어떤 모르는 노래를 듣더라도 이른바 시각화(visualization)과정을 통해 그것이 5년 전에 라디오에 흘러나왔는지 10년 전에 나왔는지를 즉시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부친의 죽음 후 방향감각을 상실한 어린 그에게 양부의 가르침은 위안을 넘어 가치관으로 스며들었다. 그러나 ‘미래를 안다는 것’ ‘마음만 갖추면 인간은 날 수 있다’는 둥의 얘기는 타인에게는 황당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그가 영국언론으로부터 ‘매드 리처드’로 불리며 약간은 정신이상자로 취급당한 것도 여기서 비롯된다. 그러나 애시크포프트는 확고하다. "누구든지 정말로 믿는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더 버브의 성공도 그의 시각화에 따는 정신적 의지의 결과. 적어도 애시크로프트는 그렇게 믿는다. #상상과 믿음의 패러다임이 구현된 솔로 앨범 따라서 더 버브의 해산은 아쉬운 또는 자연스런 과정일 수 있다. 여기에는 표면적으로는 애시크로프트의 미래에의 불안과 우려, 좌절 그리고 낙관과 희망이 뒤엉켜있는 듯, 한마디로 그의 상징이 된 비터스위트처럼 보이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미래를 자기 것으로 다루려는 확고한 믿음이 저류(低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전제해 앨범의 첫 곡이자 싱글로 발표된 ‘A song for the lovers’를 들여다보자. ‘우린 오늘밤 해낼 겁니다. 대기의 무엇인가가 시간이 됐으며 그래서 우리는 잘해낼 거라고 내게 말하는군요. DJ여 연인을 위한 노래를 들려줘요…. 기다리고싶지 않아요. 신이여, 난 인생 내내 방황해왔어요. 그러나 난 너무 늦었고 무섭습니다. 당신은 모르시나요. 난 어떤 미지의 세계로 열차처럼 움직이고 있어요, 난 승차권이 없어요. 그러나 난 갈 거예요…’ 그의 상상 패러다임은 ‘넌 내가 수면할 때도 내 마음 속에 있다’는 ‘You on my mind in my sleep’에도 나타나고 ‘내 마음은 느린 것’이라는 ‘Slow was my heart’에도 엿보인다. 그가 달려가는 곳은 ‘Crazy world’로 그려진 현실 삶에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은 생각할 수 없는 자신이 만든 별종의 세상 즉 ‘Brave new world’다. 어렵지 않은 어휘로 구성된 가사로 잘못 들으면 보편적 스탠더드 팝의 노랫말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의 마인드에 천착한 애시크로프트 독자적 세계의 시어(詩語)들이다. 이 점을 놓치면 앨범에 대한 접근은 애초부터 빗나간다. 음악은 ‘Bittersweet symphony’를 연상시키는 첫 싱글부터 고급스런 수준이다. 위에 나열한 곡들 모두가 단번에 청각을 자극하는 우수 ‘팝 소품들’이다. 특히 ‘Brave new world’ ‘Crazy world’와 ‘C’mon People(We’re making it now)’는 과연 자랑스런 비틀스의 후손임을 고한다고 할 만큼 선율이 우아하다. 이 정도면 무난한 데뷔전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버브 팬들은 물론 ‘History’나 ‘Bittersweet symphony’의 감동에 참여한 바 없는 문외한이 들어도 만족할만한 앨범이다. 그룹시절에 굳힌 심포니형 로큰롤, 길고 느리면서 스트링을 풍부하게 사용하여 획득한 웅장미가 전 수록곡을 관통한다. 다만 문제는 < 롤링스톤 >이 재단한대로 ‘절정의 쾌감’을 제시하지 못하고있다는데 있다. 그저 무난함으로 일관해 유려한 흐름을 반전시키는 확실한 기타 리프, 멜로디, 코러스 등 더 버브 예의 ‘총기와 카리스마’가 부족하다. 이것으로도 좋지만 패턴에 익숙한 팬들은 시시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한 롤링스톤의 지적은 새겨둘 만하다. "딴 영국의 록스타처럼 애시크로프트도 그의 신경을 건드려 약간의 마찰을 불러올 음악동료가 필요하다."(유사 닉 메케이브가 요구된다는 뜻이다) 리처드 애시크로포트는 그러나 분명히 초연하다. 장기 레이스의 초반 출발상황으로 솔로활동의 운명 전체가 결정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스스로 ‘내 마음은 느리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의 비주얼라이제이션이 언젠가는 미래의 광채를 품게 해줄 것이다. 그는 되뇐다. 미래는 항상 즐겁고도 괴로운 이중의 얼굴이라고. 그리고 이제 난 막 홀로 섰을 뿐이라고. 승차권이 없어도 그는 열차를 타고 미지의 세계로 간다.
컬트는 영국 펑크의 세례를 직접 받고 등장한 포스트 펑크 그룹이지만, 고딕, 사이키델릭, 하드 록, 헤비메탈에 이르기까지 폭 넓은 장르를 아우르며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노장 밴드다. 1995년 그룹 해체라는 최대 위기도 맞았지만, 보컬리스트 이안 애스트베리(Ian Astbury)와 기타리스트 빌리 더피(Billy Duffy)의 20년 우정은 1999년 재결합을 통해 다시금 끈끈하게 맺어졌다. 그리고 올해 신보 ... 컬트는 영국 펑크의 세례를 직접 받고 등장한 포스트 펑크 그룹이지만, 고딕, 사이키델릭, 하드 록, 헤비메탈에 이르기까지 폭 넓은 장르를 아우르며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노장 밴드다. 1995년 그룹 해체라는 최대 위기도 맞았지만, 보컬리스트 이안 애스트베리(Ian Astbury)와 기타리스트 빌리 더피(Billy Duffy)의 20년 우정은 1999년 재결합을 통해 다시금 끈끈하게 맺어졌다. 그리고 올해 신보 < Beyond Good and Evil >을 발표했다. 1994년 < The Cult > 이후 칠 년 만이다. 영국 요크셔의 브래드포드 출신의 컬트는 1982년 이안 애스트베리가 결성한 서던 데스 컬트(Southern Death Cult)가 모태이다. 서던 데스 컬트는 펑크와 고딕을 연주하는 전형적인 포스트 펑크 밴드였다. 바우하우스(Bauhaus),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의 뒤를 따른 그룹으로 볼 수 있다. 데스 컬트로 그룹명을 바꾼 애스트베리는 보다 다양한 음악을 하고자 빌리 더피를 끌어들여,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하드 록, 도어스(The Dorrs)의 사이키델릭, 에이시 디시(AC/DC)의 헤비 메탈 등을 연주하기 시작했다(물론 애스트베리와 더피 외에도 다른 멤버들이 있었지만, 워낙 자주 바뀌어서 일일이 언급하기가 힘들다). 밴드 명을 컬트로 다시 변경한 그들은 1984년 데뷔작 < Dreamtime >(차트 22위)을 발표하며 영국 음악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1년 뒤인 1985년 두 번째 음반 < Love >(4위)에 수록된 ''She sells sanctuary''(15위)와 ''Rain''(17위)이 히트를 치면서 그들은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 작품은 오늘날 고딕 펑크와 하드 록이 절묘하게 결합된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어 < 데프 잼 >의 최고 경영자 릭 루빈(Rick Rubin)이 프로듀스한 1987년 < Electric >(4위), 멜로디가 살아 있는 메탈 사운드가 주를 이룬 1989년 < Sonic Temple >(3위), 대서양 건너 미국 LA에서 녹음한 1991년 < Ceremony >(9위), 명 프로듀서 밥 록(Bob Rock)이 사운드를 책임진 1994년 < The Cult >(21위) 등이 꾸준히 발표되어 컬트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1995년 이안 애스트베리가 홀리 바바리안스(holy Barbarians)를 결성하고 팀을 떠나는 바람에 갑자기 컬트는 공중 분해됐다. 1999년 극적으로 뭉친 그들은 1992년도부터 정규 멤버로 활동하다 건스 앤 로지스(Guns & Roses)로 건너간 드러머 매트 소럼(Matt Sorum)을 다시 맞아들여 트리오로 재 탄생했다. 전작에 이어 밥 록이 참여한 새 앨범 < Beyond Good and Evil >은 컬트의 예전 사운드를 그대로 살려냈다. 빌리 더피의 제플린 식 기타 리프와 이안 애스트베리의 음산한 보컬은 여전히 위용을 자랑한다. ''American gothic'', ''The saint'', ''Nico'' 등이 주목할 만한 트랙들이다. 블링크 182(Blink 182)같이 통통 튀는 네오 펑크 그룹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요즘에 고딕 펑크와 하드 록을 연주하는 옛날 그룹 컬트가 비집고 들어가 틈이 있을지는 장담할 수 가 없다. 그만큼 음악계에도 세대 교체가 이뤄졌다는 증거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에게는 그들만을 지지하는 암울한 컬트 팬들이 있기에 한편으로 위안을 삼을 뿐이다.
노래 : B.J. Cole (비제이 콜,Brian John Cole)
영국을 대표하는 페달 스틸 기타리스트. 컨트리 록 밴드 Cochise의 멤버기도 했던 B.J. Cole은 루츠 뮤직뿐 만 아니라 즉흥 음악과 실험음악 그리고 엠비언트 뮤직까지 다양한 음악 장르를 골고루 거친 뮤지션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페달 스틸 기타리스트. 컨트리 록 밴드 Cochise의 멤버기도 했던 B.J. Cole은 루츠 뮤직뿐 만 아니라 즉흥 음악과 실험음악 그리고 엠비언트 뮤직까지 다양한 음악 장르를 골고루 거친 뮤지션이다.
밴드 : Cowboy Junkies (카우보이 정키스)
1985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결성된 포크락 밴드. 1985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결성된 포크락 밴드.
밴드 : Madness (매드니스 (스카 펑크 밴드))
멤버 : 그레이엄 부시(베이스 기타), 그레이엄 맥퍼슨(리드 보컬), 크리스 포먼(기타), 마이크 바슨(키보드, 보컬), 리 톰슨(색소폰, 보컬), 다니엘 우드게이트(드럼), 차스 스매쉬(트럼펫, 보컬) 멤버 : 그레이엄 부시(베이스 기타), 그레이엄 맥퍼슨(리드 보컬), 크리스 포먼(기타), 마이크 바슨(키보드, 보컬), 리 톰슨(색소폰, 보컬), 다니엘 우드게이트(드럼), 차스 스매쉬(트럼펫, 보컬)
멤버 : 돌로레스 오리어던(Dolores O), 퍼갤 로울러(Fergal Lawler, 드럼), 노엘 호건(Noel Hogan, 기타), 마이크 호건(Mike Hogan, 베이스) 1992년 10월 데뷔 싱글 ‘Dreams’를 발표하며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크렌베리스가 올해로 데뷔 10년을 맞이했다. 1991년 10월 내놓은 EP < Uncertain >부터 치면 11주년이 되는 해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멤버 : 돌로레스 오리어던(Dolores O), 퍼갤 로울러(Fergal Lawler, 드럼), 노엘 호건(Noel Hogan, 기타), 마이크 호건(Mike Hogan, 베이스)

1992년 10월 데뷔 싱글 ‘Dreams’를 발표하며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크렌베리스가 올해로 데뷔 10년을 맞이했다. 1991년 10월 내놓은 EP < Uncertain >부터 치면 11주년이 되는 해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시간동안 그들은 단 한차례의 라인업 변화와 기복 없이 논스톱 여정을 해왔다.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3,300만장이 팔려나간 4장의 정규 앨범 공개, 그 후속타로 전개된 지칠 줄 모르는 월드 투어와 각종 인터뷰, 그리고 자선공연 참여 등등 그들은 자신을 버리고 오직 크렌베리스를 위해 모든 것을 투자했고, 헌신했다. 아일랜드 서부의 조그만 마을 라임릭(Limerick)의 동네 꼬마 녀석들에서 월드 스타로 훌쩍 커버린 그들은 이제 자신들을 돌아보려 한다. 그리고 10년은 그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다. 잠시 짬을 내어 과거를 회고하고 또 다시 새 출발 할 수 있는. 이번에 선보이는 신보 < Wake Up And Smell The Coffee >는 그래서 더욱 각별하다. [아일랜드의 서정과 비애] 부침이 심한 대중 음악계에서 크렌베리스는 아주 성공적인 행보를 거듭해오고 있는 팀이다. 시류에 휩쓸려 등장한 수많은 밴드들이 도태되고, 좌초되는 비정한 음악세계 속에서 그들은 독특한 팝/록 사운드로 꾸준한 인기를 누려왔다. 여기서 말하는 ‘독특함’이란 바로 그들의 조국 아일랜드의 분위기를 일컫는다. 영원한 신비의 장소이자 비극의 참호 아일랜드. 그 빛과 어둠의 그림자를 크렌베리스는 고스란히 품고 있다. 아름답고 서정적이면서, 한편으론 슬프고 절망적이다. 그들의 음악은 스미스(The Smiths)의 징글쟁글 기타 팝을 기본으로 하면서, 그 안에 아이리시 포크와 켈틱 민요 등을 은근하고 깊은 맛이 우러나게끔 녹여낸다. 때문에 밴드가 표현해내는 아일랜드는 드러내고 과시하기보다는 깊게 감춰두고 서서히 향기를 풍김으로써 신비롭고 애잔한 느낌을 들게 한다. 날카롭고 폭발적인 힘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매혹적인 천상의 목소리를 뽐내는 홍일점 돌로레스 오리어던(Dolores O’Riordan, 1971년 9월 6일 생)의 보컬과 선명하고 찰랑거리는 톤을 뽑아내는 노엘 호건(Noel Hogan, 1971년 12월 25일 생)의 기타가 아일랜드의 서정과 비애를 그려내는데 일등 공신임은 물론이다. 그들을 세계적인 그룹으로 만들어준 ‘Linger’, ‘Ode to my family’, ‘Zombie’ 등의 히트곡들이 잘 말해주고 있다. 노랫말도 마찬가지다. 어려서부터 보아온 아일랜드의 현실을 그들은 외면하지 않았다. 솔직하고 직접적으로 아일랜드의 분단과 전쟁을 가사에 실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선배 그룹 유투(U2)의 노선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당신의 머리 속에서/ 당신의 머리 속에서 그들은 탱크와 폭탄을 가지고 싸우고 있어요/ 당신의 머리 속에서/ 당신의 머리 속에서 그들은 울부짖고 있어요’ -1994년 2집 < 다툴 필요 없어(No Need To Argue) >의 수록곡 ‘Zombie’ 중에서- 크렌베리스는 언뜻 보아도 심상치 않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곡에 대해 < 롤링스톤 >과의 인터뷰에 "좀비는 IRA 폭탄에 의해 두 명의 어린이가 죽은 영국 워링턴 폭파 사고에 대하여 쓴 노래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자신들의 조국 아일랜드의 상황에서 불붙기 시작한 그들의 가시도친 시선은 점차 지구촌의 문제로 확대됐다. 1996년 3집 < To The Faithful Departed >에 수록된 ‘War Child’, ‘Bosnia’ 등이 대표적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보스니아 내전 등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분쟁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아이들에 대한 곡들이다. 돌로레스 오리어던이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가 주최한 보스니아의 전쟁 고아를 돕기 위한 자선 공연에 참여하여 ‘아베마리아’를 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 "전쟁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은 바로 어린이들입니다. 그들은 연약합니다." 그러나 모든 곡들이 냉소적이고 비극적인 것은 아니다. 잠시 떨어져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노래(Ode to my family), 함께 현실을 헤쳐나가자는 화합의 노래(Animal instinct) 등 강고한 서정으로 둘러싸인 노랫말도 있다. 스케치가 될 듯 하면서도 곧바로 사라져 버리는 안개 속에 숨겨진 아일랜드의 포근하면서도 차가운 모습을 크렌베리스는 음악과 가사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0년간의 논스톱 여정] 크렌베리스는 1989년 아일랜드의 라임릭에서 기타리스트 노엘 호건과 베이시스트 마이크 호건(Mike Hogan, 1973년 4월 29일 생) 형제, 그리고 그들의 친구인 드러머 퍼걸 롤러(Fergal Lawler, 1971년 3월 4일)와 보컬리스트 나이올 퀸(Niall Quinn)에 의해 결성됐다. 당시 그룹명은 크렌베리 소 어스(The Cranberry Saw Us). 밴드는 1년 뒤인 1990년 음악적 견해차로 퀸이 탈퇴하고, 그가 소개시켜? 낭랑 18세의 매력적인 처녀 돌로레스 오리어던이 가세하면서 완벽한 짜임새를 갖췄다. 돌로레스는 이미 다섯 살 때부터 교회 성가대, 음악 페스티벌 등에 참가하며 노래 실력을 키워왔으며, 12살이 되던 해에는 ‘Calling’이라는 곡을 작곡하는 등 어려서부터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왔다고 한다. 라임릭, 더블린의 클럽 등에서 공연을 하며 음악 내공을 쌓아가던 그들은 같은 해 프로듀서 피어스 길모어(Pearse Gilmore)를 매니저 겸 프로듀서로 영입하고 < Nothing Left At All >이라는 타이틀이 붙여진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여 메이저 레이블들에 보냈다. 1991년 여러 레코드사의 유혹을 뿌리치고 < 아일랜드 >와 여섯 장의 앨범 계약을 체결한 그들은 첫 결과물로 EP < Uncertain >을 공개했다. 하지만 미니 음반은 크렌베리스의 진면목을 보여주기에는 ‘불확실한’ 부분이 있어 그들은 곧바로 데뷔 앨범 작업에 착수했다. 그들은 불화로 인해 매니저를 < 러프 트레이드 레코드(Rough Trade Records) >의 창립자 제프 트래비스(Geoff Travis)로 교체하고, 스미스와의 작업으로 유명한 스티븐 스트리트(Stephen Street)를 프로듀서로 맞이하여 제작한 1993년 1집 < Everybody Else Is Doing It, So Why Can’t We? >에 수록된 발라드 넘버 ‘Linger’(미국 차트 8위)의 스매시 히트로 인해 데뷔와 동시에 세계적인 지명도를 획득했다. 이러한 그들의 초고속 행진은 1994년 소포모어 앨범 < No Need To Argue >, 1996년 세 번째 앨범 < To The Faithful Departed >의 연속 히트퍼레이드로 반짝 인기가 아님을 여실히 증명됐다. ‘Ode to my family’, ‘Zombie’, ‘I can’t be with you’, ‘Ridiculous thoughts’, ‘Salvation’, ‘Free to decide’, ‘When you’re gone’ 등이 영국과 미국 차트에서 맹위를 떨쳤다. 하지만 정상의 위치에 선 대가로 크렌베리스는 많은 것을 잃어야만 했다. 그들이 음반을 발표할 때마다 주위에서 짓누르는 압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보다 나은 앨범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들을 옥죄어왔고, 쌓아올린 록 스타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그들의 뇌리를 압박했다. 쉬지 않고 앨범 홍보와, 콘서트, 각종 행사 등에 참석하며 인기의 끈을 놓지 않으려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당연하게 그들은 지쳤다. "우리는 삶이 없다. 밴드가 우리의 삶이었다." 3집 공개 직후 노엘 호건의 말이다. 크렌베리스의 삶은 있을지라도, 멤버 개개인의 삶은 완전히 상실한 것이다. 오아시스(Oasis), 블러(Blur) 등이 주도한 브릿 팝의 거대한 물결도 그들을 위축시키는데 한몫 했다. 영국을 뒤덮고 세계로 힘차게 뻗어나가는 새로운 음악 무브먼트에 대항하기란 쉽지 않았다. 또 보컬리스트 돌로레스가 솔로로 전향할 것이라는 루머가 불거져 나온 시점도 이때여서 톱 클래스 밴드가 짊어져야 할 시련을 한꺼번에 맞닥뜨려야 했다. 결국 멤버들은 잠시나마 자연인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 동안 잊고 지냈던 사랑하는 가족들의 품에 안겼다. 그들이 결정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노엘은 "우리는 변화를 위해 집이 필요했고, 평범한 삶을 원했다."고 했고, 돌로레스 역시 "우리는 집에서 진정한 행복을 발견했다."며 자신들의 선택이 옳았음을 언급했다. 1996년 3집 발표이후 후속 앨범 < Bury The Hatchet >이 3년이 지난 1999년에서야 공개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킷 사진의 변화, 사운드의 록 필 강화 등 여러 모습을 취하고 있는 4집은 전세계 17개 국가에서 앨범 차트 1위라는 기염을 토해냈고, 6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는 등 오랜 공백으로 인한 크렌베리스의 불안감을 말끔히 해소시켰다. 모든 것을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간 그들의 과감한 결단이 성공한 것이다.
중독성 강한 프로디지의 음악은 테크노씬에서 성장해왔지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로큰롤밴드’라는 슬로건을 내세운다. 록의 메탈적 사운드를 받아들여 기존의 테크노와는 상이한 ‘하드코어 테크노’라는 변종을 만들어내었다. 4인조 테크노전사 프로디지의 일렉트릭과 리듬에 관한 꾸준한 실험은 전 세계를 거대한 댄스장으로 몰아넣었다. 테크노라는 용어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며 테크노 아티스트이기조차도 거부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중독성 강한 프로디지의 음악은 테크노씬에서 성장해왔지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로큰롤밴드’라는 슬로건을 내세운다. 록의 메탈적 사운드를 받아들여 기존의 테크노와는 상이한 ‘하드코어 테크노’라는 변종을 만들어내었다. 4인조 테크노전사 프로디지의 일렉트릭과 리듬에 관한 꾸준한 실험은 전 세계를 거대한 댄스장으로 몰아넣었다. 테크노라는 용어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며 테크노 아티스트이기조차도 거부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1990년대 최고의 테크노 스타로 ‘세계적인 영역표시’까지 끝낸 상태였다. 일부 평론가들과 DJ들은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이유로 비판하였지만 어두운 클럽문화를 메인 스트림으로 확대시켰다는 공로는 인정해야할 것이다. 비틀즈가 록의 예술성을 확립하였듯이 프로디지는 테크노의 미학과 대중성을 창조했다. 장르라는 기존의 틀을 파괴하고 한정된 범위에서의 안주에 반항하며 일렉트릭을 대중문화로서 확립을 시켜준 주인공이다. 힙합 레코드에서 따온 브레이크비트의 드럼 샘플과 환각적인 테크노가 합쳐진 프로디지의 거침없는 항해는 1990년대 초반 런던에서 시작되어 유럽뿐 아니라 미국까지 점령하였다. 테크노는 스카와 힙합, 거기다 출중한 춤솜씨와 어려서부터 쌓아온 건반실력으로 프로디지의 리더 리엄 하울렛(Liam Howlett)은 일렉트로닉의 격동기를 누릴 수 있는 준비된 아티스트였다. 프로디지의 레코드 중 들을 수 있는 기막힌 키보드 연주의 근원이다. 리엄은 1980년대 중반 컷투킬(Cut To Kill)이란 힙합그룹을 만들어 음악적 토대를 다졌고 레이브 문화에 심취해 디제잉(DJ-ing)으로 활동함으로써 커다란 나무가 될 프로디지의 자양분을 모두 섭취한 것이다. ‘제2의 사랑의 여름’과 ‘애시드(Acid)’의 폭풍이 강타한 1988년, 레이브파티(Rave Party)에서 디제이를 하며 인기몰이에 나선 리엄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은 춤추는 것이라고 여기는 두 친구 리로이 손힐(Leeroy Thonhill)과 키스 플린트(Keith Flint)를 만나면서 프로디지의 구상에 들어간다. 리엄 하울렛이 처음 구입했던 신디사이저 ‘무그 프로디지(moog prodigy)’에서 이름을 딴 그들은 샤키(Sharky)라는 여성을 포함하여 MC로 활동하고 있던 맥심 리얼리티(Maxim Reality)와 함께 하게 된다. 1990년 샤키는 떠났고 XL 레코드사와의 계약을 체결한다. 나머지 4명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그들의 라인업이다. 1991년 처음으로 공개된 그들의 EP < What evil lurks >는 9명에서 시작된 그들의 관중을 12번째 공연에서 12000명이나 늘려주었다. 같은 해 영국차트 3위까지 올라간 그들의 첫 싱글인 ‘찰리(Charly)’가 발표된다. ‘Charly’는 레게가 가미된 스타일로 그들이 보여줄 브레이크비트 하드코어의 전주곡이었다. 계속된 공연들과 함께 그들의 싱글 ‘Everybody in the place’,‘Fire’는 히트 퍼레이드 이루게 되며 마침내 < The Prodigy Experience >란 레이브 씬에서 탄생한 최초의 걸작이란 찬사를 받은 정규앨범으로 재탄생된다. 하지만 테크노의 장사꾼이며 이단아란 비판도 뒤따랐다. 거기다 레이브씬의 퇴조는 프로디지가 한곳에 머무를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주었다. 대안은 보다 강한 사운드였다. 일반적인 테크노 뮤지션들과는 다르게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강해지는 열광적 브레이크 비트와 과격하고 공격적인 사운드는 1995년 발표된 < Music For The Jilted Generation >에서 완성미를 보여준다. 발매된 첫 주에 이미 영국 1위를 하였으며 1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슈퍼스타가 된다. 거기다 머큐리지의 ‘올해의 앨범’에 노미네이트 되는 행운까지 얻는다. 연이어 출시된 싱글 ‘Firestarter’, ‘Breathe’에서는 키스 프린트의 역량과 강한 기타 리프의 샘플링이 확연히 드러난다. 보다 더 록적이며 보다 더 강한 폭발성은 3년 후 < The Fat Of The Land >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인더스트리얼의 잔향까지 느낄 수 있다. 이는 앨범 작업 중에도 악기로 직접 연주하는 언더월드(Underworld)나 케미컬 브라더스보다 더 강한 사운드이다. 덕분에 이 앨범에서는 장사꾼이라는 말 대신에 ‘로큰롤밴드’, 혹은 ‘메탈밴드’라는 어색한 수식어가 붙는다. 그들도 이미 1995년 영국의 유명한 연례공연 글래스톤베리에서 시스템을 층층이 쌓아놓고 연기하는 것이 아닌, 가짜가 아닌 진짜 악기로 연주한다. 연기가 아닌 실제상황인 것이다. 로큰롤 밴드라는 호칭을 들으며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쇼’를 펼쳤다"라는 평을 받았지만 아무래도 로큰롤 밴드라는 닉네임이 썩 내키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의 싱글과 정규 앨범들은 공개와 동시에 화제를 일으켰다. 장사꾼으로 몰아가며 테크노라는 음악의 본질성에 대한 문제를 제시하고 테크노와 락과의 결합을 커다란 논쟁의 요지로 몰아가는 일부 평론가들의 난도질적 구획은 음악에 대한 지식이 음악을 이해하는 필수적인 조건은 아니듯 ‘독단을 가지고서는 예술의 아름다움을 알 수 없다’는 칸트의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밴드 : The Fratellis (더 프라텔리스)
스코틀랜드의 인디락 밴드 스코틀랜드의 인디락 밴드
밴드 : Turin Brakes (튜린 브레이크스)
사우스 런던 출신 포크 듀오 Olly Knights과 Gale Paridjanian의 밴드 사우스 런던 출신 포크 듀오 Olly Knights과 Gale Paridjanian의 밴드
얼터너티브/인디 락 밴드 얼터너티브/인디 락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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