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는 바보 정말 바보들이 모여 산다”
공광규 시인, 신간 시집 ‘파주에게’서 복잡한 분단현실을 서정적으로 풍자
1. 1986년 월간 ‘동서문학’으로 등단하여 윤동주상문학대상(2009)과 현대불교문학상(2011) 등을 수상한 위안과 치유, 저항과 창조의 시인 공광규(57, 사진) 씨가 신간 시집 ‘파주에게’(실천문학사)를 냈습니다.
2. 공시인은 시집에서 현재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와 남한의 사드배치로 복잡해진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 남북관계를 주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주변국의 눈치를 보면서 전쟁불안에 떠는 삶을 사는 남북사람 모두를 파주 부근의 휴전선 철책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철새들의 입을 빌려 한반도에 사는 “바보 정말 바보들”이라고 풍자하고 있습니다.
3. 시집에는 표제시 ‘파주에게’ ‘모텔에서 울다’ ‘자화상’ ‘흰빛을 얻다’ ‘열매는 왜 둥근가’ ‘나쁜 짓들의 목록’ 등 모두 60편의 시가 실려 있습니다. 시집 뒤에 해설 대신에 시인의 고향인 충남 청양에서 보낸 청소년기 체험을 시로 형상한 시인의 산문 ‘고향 체험과 시’가 실려 있어 시인의 시 세계와 방법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3. 문학평론가 유성호 씨는 표4 글에서 “공광규는 인간 존재에 대한 궁극적 긍정을 통해 평정의 미학과 현실탐색의 긴장을 결합하여 노래해온 우리 시단의 수범 사례”에 속하며, “근원 지향과 현실탐색의 결속을 통해 우리 시가 나아가야 할 한 표지標識를 세워주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또 공광규의 시 “안에는 위안과 치유” “저항과 창조”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4. 표제시 ‘파주에게’는 지리적으로 북한과 마주한 휴전선 부근의 파주시 시민들이 만드는 신문 ‘파주에서’ 창간 1주년 기념축시로 발표했던 시입니다. 이 시를 표제시로 잡은 이유는 현재 북핵과 사드배치로 복잡하고 불안해진 남북관계와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을 ‘바보’들이라고 꼬집어, ‘바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현재 지속하고 있는 분단 상황에 관심을 더 갖고 주체적으로 해결하도록 노력해달라는 시인의 서정적 주문입니다.
5. 이번 공시인의 시집 특징을 몇 가지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사회정치적 상상력의 복원입니다. 그동안 첫시집 ‘대학일기’(1987) ‘마른잎 다시 살아나’1989) ‘지독한 불륜’(1996)에서 보여주었던 주제들을 다시 복원하고 있습니다. 표제시 ‘파주에게’는 파주 임진강변으로 군대에 간 아들을 면회하고 오면서 경험한, 논바닥에서 모이를 줍던 철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화자를 비웃듯 철책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데서 발상한 시입니다. 새들은 철책을 넘어 남북을 자유롭게 오가는 것은 물론 개성과 일산, 먼 지나반도에서 러시아와 유럽까지 오가며 한반도에 한심한 바보들이 산다고 소문을 냅니다. 그러면서 철책을 두르고 있는 한반도가 얼마나 아픈지 자기 자신의 허리에 가시 철책을 두르고 있어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파주 철책선 부근에 철새가 유난히 많은 이유가 “자유를 보여주려는 단군할아버지의 기획”이라고 합니다. 군에 간 아들 면회를 가서 쓴 ‘유월독서’나 댓잎 끝에 매달린 이슬방울이 모여서 섬진강을 만나 서해나 동해로 흘러가 “슬픈 한반도의 해안을 흰 포말로 쓰다듬”는다는 역사적 연민을 표현한 ‘평사리에서’, 히로시마 평화공원에서 체 게바라가 서있던 자리에서 묵념을 했다는 내용의 ‘동지’, 촛불집회 경험을 쓴 ‘11월26일’, 세월호 사건을 형상한 ‘노란리본을 묶으며’와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한 세대 차이를 동물의 생존경쟁으로 비유한 ‘먹이다툼’, 이동의 자유를 구속하는 현실을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새를 통해 비판하는 ‘겨울 화제’도 분단현실을 상상하게 합니다. 그리고 시 ‘지금 당장!’을 통해 독일 통일이 말실수를 해서 이루어졌듯 남북한도 말실수를 통해 통일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황당하지만 의미 있는 제안을 하기도 합니다.
둘째, 불교적 제재와 사유의 형상입니다. 이전 시집 ‘소주병’(2004)과 ‘말똥 한 덩이’(2008) 그리고 ‘담장을 허물다’(2013) 에서 돋보였던 방법의 시입니다. 시에 불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형상하는 방법은 공시인의 특기이기도 합니다. 더운 여름날 절간에서 백일장과 사생대회 심사를 하는데 곤줄박이가 날아 들어와서 선풍기에 앉는 바람에 새가 다칠까봐 선풍기를 켜지 않고 심사를 새와 같이 했다는 ‘곤줄박이 심사위원’이나, 마당가에 감나무가 있고 감나무에 탱화를 걸어놓았던 경남 산청 절에서 보내온 밤을 깎으며 쓴 ‘율곡사’, 달리던 자동차를 정지선에 정지하고서야 꽃을 보았다는 ‘정지’, 사하촌 가는 길을 묻는 화자에게 물을 따라 가라고 하는 선승과 같은 말을 하는 공양주보살이 있는 ‘마곡사’, 그리고 시집을 보내주겠다고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자신의 주소가 바람이라고 한 스님의 예화를 쓴 ‘주소’, 번화한 도시의 길가에 있는 ‘상해 안정사’, 가벼운 찻잔도 오래 들고 있으면 무거우니까 내려놓아야 한다는 ‘그만 내려놓으시오’, 시인의 어머니가 남기고 간 가래나무 염주를 다시 꿰면서 어머니를 생각하는 ‘가래나무 열애를 꿰며’, 다시 태어난다면 대구를 파는 외포항의 생선장수가 되어 상자에 두 마리씩 다정하게 담아놓는 선업을 쌓겠다는 ‘외포항’ 등의 시들입니다.
셋째, 낡음과 늙음, 그리고 죽음에 대한 관조와 긍정적 수용입니다. 시골인 고향을 찾아갔다가 오래 사용하지 않아서 잘 수 없는 빈집에서 나와 읍내 모텔에서 자면서 쓴 유장한 우울이 넘치는 ‘모텔에서 울다’, 시골 독거노인의 죽음을 다룬 ‘고독사에 대한 보고서’, 장례식장 앞에 있는 여관 간판을 보고 삶이라는 것이 잠시 여관에 드는 것이라는 상상과 관을 들고 묻으러 가면서 사람이 죽고 사는 것과 상관없이 새와 초목은 즐겁게 노래하고 화사하게 꽃을 피운다는 ‘그러거나 말거나’, 주변의 기독교 학교와 중남미문화원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지만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시골에 사는 독거노인을 닮았다는 쓸쓸한 ‘고향향교’ 등의 시입니다.
넷째, 자기 성찰과 위로의 시들입니다. 시 ‘병’에서는 고지대에 사는 야크가 낮은 곳에 내려오면 세속에 물들지 않아서 시름시름 아프다는 비유를 통해, 역설적으로 이미 세속에 물이 잔뜩 들어서 아부도 잘하고 돈벌이도 무난한 화자 자신이 병이 든 것이라고 합니다. ‘선물’은 명절선물을 쌓아놓은 딸의 방을 치우다가 딸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이라고 합니다. 수십 년 동안 도심 빌딩에서 돈벌이를 하느라 마음과 몸이 일그러졌다는 ‘자화상’, 사람의 일생을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는 낙타의 삶과 비유한 ‘낙타의 일생’, 고통스러운 순간을 쉽게 잊어버리고 장래를 대비하지 못하는 인간의 속성을 비유한 ‘산박쥐’, 항문이 헐거워지고 화장실 물을 깜박 잊고 내리지 않아 아내와 다투었다는 웃음을 짓게 하는 ‘근황’, 방에 꽉 찬 가구나 책들을 치우고 햇빛을 방에 받아들였다는 ‘흰빛을 얻다’, 집을 나가 사는 자식들을 걱정하며 잠을 못 이루는 부모의 심정을 다룬 ‘새벽에 잠이 깨어’, 자기의 주장보다 평생 남의 말을 들으며 사느라 자신의 내면적 집 한 채 짓지 못했다는 ‘헛간을 짓다가’, 잘 익어서 떨어진 매실을 보고 그것이 인내의 결과이며 성인들이 그렇다는 것을 암시하는 ‘열매는 왜 둥근가’ 등의 시입니다.
다섯째, 자연친화적 심상입니다. 시 ‘나쁜 짓들의 목록’에서 공시인은 자신의 나쁜 짓이라는 것이 길을 가다가 개미를 밟고 풀잎을 꺾고 꽃을 따고 돌멩이를 함부로 옮기는 일이라며 절대적인 자연친화주의자임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시 ‘본적’은 시인의 본적 번지가 지금은 시골의 빈 밭이라며 “개미와 땅강아지와 귀뚜라미와 지렁이가 모여살고/ 산비둘기가 오고 참새가 와서 발자국을 찍고 가는 밭이/ 내 본적이”라고 합니다. 화자 자신을 포함한 인간은 본래 빈 밭에서 왔다는 사유입니다. 시 ‘새벽비’는 도시의 새벽 잠결에 아파트 베란다 스테인리스 난간에 부딪혀 실로폰 소리를 내는 맑은 심상을 통해 시골집 양철지붕에 떨어지는 빗줄기를 연상합니다. 울릉도 여행경험에서 “왕오장나무 발을 쳐서 꽁치를 잡는 마을이 있다면/ 한 오년쯤 머슴살이 하며 보내고 싶다”고 싶다는 원망을 담은 ‘저동항’, 메뚜기 귀뚜라미 여치 방아깨비 등 곤충들이 가을을 이고 지고 안고 찧으며 오느라 곤충들의 뒷다리가 가을밤만큼 길어졌다는 심상과 색깔이 선명한 ‘가을이 왔다’, 중국 상해박물관에서 편종 소리를 듣고 청동기시대의 짐승과 벌레소리가 귓바퀴를 굴러다닌다는 ‘편종’ 등의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