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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pire Brass 클래식 브라스 온 디 엣지 - 엠파이어 브라스 (Class Brass on the 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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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pire Brass 클래식 브라스 온 디 엣지 - 엠파이어 브라스 (Class Brass on the Edge)

Aram Khachaturian, Camille Saint-Saens, Georges Bizet, Dmitri Shostakovich, Gabriel Faure 작곡 외 4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Telarc / Telarc | 2018년 04월 01일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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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pire Brass 클래식 브라스 온 디 엣지 - 엠파이어 브라스 (Class Brass on the Edge)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8년 04월 01일

관련분류

디스크

Disc
  • 01 Aram Khanchaturian: Sabre Dance
  • 02 Camille Saint-Saens: Danse Bacchanale
  • 03 Georges Bizet: Farandole
  • 04 Dmitri Shostakovich: Festive Overture
  • 05 Georges Bizet: Aragonaise
  • 06 Mikhail Ippolitov-Ivanov: Procession Of The Sardar
  • 07 Gabriel Faure: Pie Jesu
  • 08 George Enescu: Romanian Rhapsody
  • 09 Sergei Prokofiev: March
  • 10 Leos Janacek: Allegretto
  • 11 Reinhold Gliere: Russian Sailors' Dance
  • 12 Igor Stravinsky: Berceuse
  • 13 Leonard Bernstein: Overture To Candide
  • 14 Aaron Copland: Saturday Night Waltz
  • 15 Jacques Offenbach: Cancan

아티스트 소개 (9명)

작곡 : Aram Khachaturian (아람 하차투리안,Aram Il'yich Khachaturian / Aram Ilitch Khatchatourian)
파리 출생. 7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뛰어난 음악적 재능은 흔히 모차르트의 유년시절과 비교되었다. 1846년 10세 때 데뷔하고, 12세 때 파리음악원에 입학하여 오르간과 작곡을 배웠다. 1853~1877년 마들렌교회의 오르간 연주자로 근무하면서는, 오르간 ·피아노 연주의 명수, 즉흥연주의 대가로 이름을 떨쳤다. 또 1861∼1865년에는 에콜 니데르메이에르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교수하였는데, A.메사제, G... 파리 출생. 7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뛰어난 음악적 재능은 흔히 모차르트의 유년시절과 비교되었다. 1846년 10세 때 데뷔하고, 12세 때 파리음악원에 입학하여 오르간과 작곡을 배웠다. 1853~1877년 마들렌교회의 오르간 연주자로 근무하면서는, 오르간 ·피아노 연주의 명수, 즉흥연주의 대가로 이름을 떨쳤다. 또 1861∼1865년에는 에콜 니데르메이에르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교수하였는데, A.메사제, G.포레 등은 이 시기의 제자들이다.

1871년 유지들과 파리에서 '국민음악협회'를 결성하고 유력한 멤버로서 프랑스음악계에 교향악운동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작곡가로서는 1852년과 1864년에 로마대상에 낙선하여 그 이후 1880년경까지는 별로 인정받지 못하였으나, 국민음악협회, C.라무뢰 등의 오케스트라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명성이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작품에는 '삼손과 델릴라 Samson et Dalila'(1877)를 비롯한 13편의 오페라, 교향곡 4, 피아노협주곡 3, 그 밖에 피아노곡을 비롯한 많은 기악곡이 있다. 작품은 모두 고전적인 단정함, 세련된 관현악법에 의한 화려한 표현이 특징이다.

자신의 말에 따르면 '사과나무가 사과를 맺듯이 운명처럼 작품을 썼다.' 고 하는 카미유 생상스('생상'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많은데, 작곡가의 후손이 밝힌 바에 따르면 '생상스'로 부르는 게 맞다고 한다). 그는 피아니스트로서 즉흥 연주의 대가였고 리스트로부터는 '세계 최고의 오르간 주자'라는 찬사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작가이자 뛰어난 화가이기도 했으며 자연과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베를리오즈는 약간 비꼬는 투로 '생상스는 모든 분야에 뛰어나지만 미경험(未經驗)에 대해서만은 부족하다.'라고 말하기도 했지만(그러나 '오늘날 가장 위대한 음악가 중 하나'라고 극찬한 적도 있다), 그의 왕성한 탐구심과 근면함(그는 죽기 바로 전날까지도 작곡을 했다)은 여러 장르에 걸쳐 많은 걸작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도 사실이다.
오페라 [카르멘] 의 작곡가로서 널리 알려진 비제는 음악가의 부모 밑에서 자랐는데 10세 때 파리 음악원에 입학했다. 그는 스승인 구노와 알레비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짧은 생애였던 탓으로 많은 오페라를 쓰지는 못했다. 그러나 [카르멘], [아를의 여인], [진주잡이] 등은 명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세 때 로마 대상을 받아 3년간 로마에 가서 유학할 수 있는 혜택을 얻었으며 귀국 후 피아노 개인 교수... 오페라 [카르멘] 의 작곡가로서 널리 알려진 비제는 음악가의 부모 밑에서 자랐는데 10세 때 파리 음악원에 입학했다. 그는 스승인 구노와 알레비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짧은 생애였던 탓으로 많은 오페라를 쓰지는 못했다. 그러나 [카르멘], [아를의 여인], [진주잡이] 등은 명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세 때 로마 대상을 받아 3년간 로마에 가서 유학할 수 있는 혜택을 얻었으며 귀국 후 피아노 개인 교수와 편곡등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는데 1863년 오페라 [진주잡이]를 상연하여 호평을 받게 되어 오페라를 쓰기 시작했다. 그 뒤에 [아를의 여인] 등의 무대음악 27곡을 썼고, 서곡 [조국] 등을 발표하여 성과를 올렸으며 1875년에는 문제의 작품 [카르멘]을 초연하였다.

그의 작곡 태도는 등장 인물의 정확하고 치밀한 표현과 구성이라든지 작곡 기법의 새로운 점에서 19세기 오페라에 큰 업적을 남겼다. 그의 음악은 대단히 참신하며 화성, 대위법, 조바꿈법, 관현악법 등은 당시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기도 하다. 비제는 우리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재들을 사용하여 현실적인 감동을 주는 극음악을 작곡하였다.
작곡 : Dmitri Shostakovich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 Schostakowitsch Dmitriyevich Shostakovich )
러시아의 작곡가이다. 그는 소비에트 정부와 복잡한 관계에 있었는데, 1936년과 1948년에는 그의 두 작품이 공개적인 경고를 받기도 했으며, 종종 그의 작품에 대해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 그는 동시대의 가운데 가장 유명한 소비에트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이자, 여러 개의 표창과 상을 받기도 했으며, 소비에트 최고 회의 위원이기도 했다. 초창기의 아방가르드 시기를 제외하면, 쇼스타코비치는 주... 러시아의 작곡가이다. 그는 소비에트 정부와 복잡한 관계에 있었는데, 1936년과 1948년에는 그의 두 작품이 공개적인 경고를 받기도 했으며, 종종 그의 작품에 대해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 그는 동시대의 가운데 가장 유명한 소비에트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이자, 여러 개의 표창과 상을 받기도 했으며, 소비에트 최고 회의 위원이기도 했다.

초창기의 아방가르드 시기를 제외하면, 쇼스타코비치는 주로 낭만파의 작품을 썼으며, 특히 구스타프 말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무조주의 형식을 도입하였으며 종종 12음렬 기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의 음악은 강한 대조에, 그로테스크적인 요소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의 작품 가운데 교향곡과 현악 사중주 각각 열 다섯 곡씩이 유명하며, 오페라와 여섯 개의 협주곡, 그리고 여러 영화 음악도 널리 알려져 있다.

쇼스타코비치는 1906년 러시아 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9살 되던 해부터 피아노를 그의 어머니 소피아 바실리에프나로부터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는 남다른 재능 덕분에 또래 아이들보다 월등한 피아노 실력을 갖게 되었다. 그는 피아노와 함께 작곡도 배웠는데, 작곡 부문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쇼스타코비치의 어릴 때 기억은 거의 육성 회고록에 잘 나타나있다.

우리 가정은 제1차 세계대전, 2월 혁명, 10월 혁명과 연이어 터지는 사회적 사건들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이 연대에 썼던 내 작품에서 이미 무언가 실생활을 담아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드러나는 것은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이러한 ‘실생활을 담고 싶다’는 어린 마음으로 만든 작품에는 피아노 소곡 <병사>, <자유의 찬가>, <혁명의 희생자에게 바치는 장송 행진곡>이 있다."

쇼스타코비치의 회고록에서도 잘 나타나 있듯이, 그는 어린 시절부터 ‘혁명’ 같은 사회적 현상에 관심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쇼스타코비치는 1919년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하였다. 그는 작곡과 피아노를 모두 공부하였는데, 작곡은 막시밀리안 슈테인베르크에게, 피아노는 로자노바와 레오니드 니콜라에프에게 사사하였다. 그는 음악원에서 다양한 형식과 장르의 곡을 썼다. 이 당시 썼던 곡들은 피아노를 위한 소품 시리즈, 관현악을 위한 주제와 변주곡,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트리오, 피아노를 위한 전주곡 등이 있다. 그는 음악원 졸업 작품으로 첫 번째 교향곡을 탄생시켰다. 그의 작품은 당대 최고의 지휘자였던 토스카니니, 브루노 발터 등에 의해 소개되어 젊은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쌓기 시작한다.

쇼스타코비치는 1번 교향곡(1925)를 작곡한 이후, 2번 교향곡, 10월 혁명에 바침(1927), 3번 교향곡, 메이데이]](1929), [[4번 교향곡(1936)을 작곡하였다. 그리고 1927년에는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피아노 부문 2등을 하기도 한다. 이 무렵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뿐만 아니라 오페라, 발레음악 등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작곡하였다. 그는 오페라 귀는 1933년에,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은 1934년에 발표한다.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은 전통 오페라와 달리 상당히 전위적인 작품이었는데, 당시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에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비판하는 기사가 실리게 된다. 당시 "프라우다"에는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음악이 아니라 혼란(Chaos instead of Music/Sumbru vmesto muzyki)"라고 표현한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사건 때문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으나 결국 1936년 4번 교향곡을 완성했다. 하지만 <4번 교향곡>의 초연 일정이 무산되었고, 25년이 지난 1961년에 초연이 이루어졌다.

그는 1937년에서 1941년에는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1943에서 1948년에는 모스크바 음악원의 작곡교수를 지냈다.

쇼스타코비치의 5번 교향곡은 1937년에 작곡된다. 5번 교향곡은 혁명 교향곡이라고도 불린다.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비롯한 자신의 음악이 지나치게 형식주의적이라는 비판을 깨기 위해 다음 작품에 더욱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5번 교향곡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이전의 비판과는 달리 호평을 받아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다. 그 뒤로 쇼스타코비치는 6번교향곡과 7번 교향곡을 작곡한다. 특히 7번 교향곡은 1941년 6월, 히틀러가 레닌그라드를 침공했을 때 레닌그라드에서 작곡한 작품인데, 이 때문에 7번 교향곡은 '레닌그라드 교향곡'이라고도 불린다. 레닌그라드 교향곡의 초연은 소련 내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컸다. 초연은 토스카니니가 지휘하는 NBC 교향악단이 진행했는데, 이 공연은 미국 전 방송국을 통해 중계되었다.

7번 교향곡(레닌그라드)을 쓰고 난 이후, 그는 8번 교향곡을 작곡한다. 7번 교향곡은 전쟁의 고통을 가장 극적으로 반영한 교향곡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쇼스타코비치는 9번 교향곡을 작곡한다. 그는 9번 교향곡 자체를 쉽고 명쾌한 분위기에 의한 곡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귀엽고 발랄하기만 한 9번 교향곡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스탈린은 9번 교향곡이 지니는 상징성(예를 들어, 베토벤의 9번 합창 교향곡이 갖는 상징성)과 전쟁의 종결이라는 큰 사건이 결합하여 대단한 걸작이 탄생할 것이라 기대했지만, 쇼스타코비치의 9번 교향곡은 그러한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이로 인해 즈다노프 비판이 시작되었다. 즈다노프 비판은 다양한 문화 영역에서 이루어졌는데, 음악 분야의 토론은 1948년 1월에 진행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전후 서유럽에서 도입된 형식주의적 사상과의 투쟁, 광범위한 인민대중을 높은 음악성에 가까워지도록 하기 위한 음악 예술 발전의 과제가 토의되었다. 이 회의 이후, 쇼스타코비치 뿐만 아니라 프로코피예프, 하차투리안, 포포프, 세바린, 미야스코프스키 등이 형식주의자로 비난을 받게 된다. 이 즈다노프 비판으로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이 사망하는 1953년까지 교향곡을 작곡하지 않게 되고, 주로 스탈린 선전용 영화음악만을 작곡하게 된다.

스탈린이 사망(1953)하고 나서 쇼스타코비치는 같은 해 10월 10번 교향곡을 8년 만에 발표한다. 그리고 그 이후로 11번 교향곡과 12번 교향곡, 13번 교향곡, 14번 교향곡을 발표한다. 11번째 교향곡과 12번째 교향곡은 혁명을 주제로 쓴 교향곡이라고 평가받는데, 이는 표제 음악적 특징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반면 13번째 교향곡과 14번째 교향곡은 합창이 들어가기 때문에 성악 교향곡의 형태를 띠고 있다.

쇼스타코비치는 제 14번 교향곡을 작곡한 2년 뒤에 마지막 교향곡인 15번 교향을 작곡한다. 15번 교향곡은 앞 선 두개의 교향곡과 달리 순수 기악곡이다. 이 곡을 작곡할 때, 쇼스타코비치는 심근경색으로 병상에 있었다. 계속적인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그는 1975년에 심장 발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의 음악은 러시아 사람들의 생활이나 기분을 잘 나타냈으며 듣기 쉬운 것이 특징이다.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은 교향곡이 대표적이며, 교향곡 뿐만 아니라 오페라, 관현악곡, 협주곡, 실내악곡, 피아노곡, 성악곡으로 매우 다양하게 존재한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은 총 15개로 이루어진다.

제 1번 교향곡은 쇼스타코비치의 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졸업 작품으로, 이 곡을 통해 세상에 젊은 작곡가, 쇼스타코비치가 알려지기 시작한다. 곡은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당시 예술과 혁명은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서유럽의 현대음악 콘서트가 열리면서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2번 교향곡, 3번 교향곡을 작곡한다. 2,3번 교향곡에서는 대위적인 기법을 많이 사용하는데, 2번 교향곡에서는 극단적으로 27성부 모두 폴리포니를 이루기도 한다.

4번 교향곡은 표제가 없는 순수한 절대 음악이다. 또한 쇼스타코비치의 작품 중 가장 많은 인원(총 134명)이 필요한 기악곡이다. 하지만 4번 교향곡이 <프라우다>지에서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에 대한 비판 사건으로 초연이 연기된다.

5번 교향곡은 쇼스타코비치의 15개 교향곡 중 으뜸으로 뽑힐 만큼 높은 작품성을 지녔다. 그는 그 무렵 [프라우다]에 쓰인 자신에 대한 비판, 즉 지나친 형식주의자라는 평가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러한 고민 끝에 탄생한 작품인 5번 교향곡은 베토벤의 5번 교향곡 운명과 극복-승리라는 내용으로 자주 비교되곤 한다.쇼스타코비치는 회고록을 통해 5번 교향곡의 주제가 인간성(인격)의 확립이라고 이야기 한다. 이 작품은 4악장으로 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는 모든 악장에 일정 리듬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조성을 명확하게 표시하지 않았는데, 1악장은 d단조, 2악장은 a단조, 3악장은 f#단조, 4악장은 d단조로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하자 소련 정부는 예술에 대한 간섭을 더욱 심하게 한다. 그리고 애국적인 예술 작품을 탄생시키는데, 7번 교향곡 레닌그라드도 이러한 맥락에서 탄생한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쇼스타코비치는 독일군이 레닌그라드를 포위하였던 것에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시작하였다. 이 작품 발표 당시 쇼스타코비치는 이 곡은 전쟁의 시(詩)이며, 뿌리 깊은 민족정신의 찬가이다라고 발표했지만 1악장을 제외하고는 묘사적 요소가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10] 이전,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비난을 했던 <프라우다>에서도 이 곡에 대해서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곡은 훗날, 레닌그라드 시(市)에 헌정되었으며, 당시 스탈린상도 수상하게 된다. 이 곡은 표제 음악이며, 1악장은 '전쟁', 2악장은 '회상', 3악장은 '조국의 광야', 4악장은 '승리'로 알려져 있다.

쇼스타코비치의 9번 교향곡은 짧고 매우 경쾌한 소품 형식이다. 곡 자체는 완성도가 높은 편이었지만, 대작이 나올 것을 기대하였던 사람들에게 소규모의 경쾌하고 재치있는 곡은 실망을 안겨주었다. 쇼스타코비치는 9번 교향곡은 만든 지 8년 후에 제 10번 교향곡을 발표한다. 이 곡은 스탈린이 사망한 직후에 쓰여진 작품이었기 때문에 전 세계의 관심을 받았다. 총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곡을 "확대 된 타악기군을 포함하는 오케스트라"의 표준에 가까운 4악장의 교향곡이라고 설명하였다.

그의 13번 교향곡과 14번 교향곡에는 성악 부분이 들어가 있다.

쇼스타코비치가 마지막으로 쓴 교향곡은 1971년의 15번 교향곡이다. 15번 교향곡은 순수 기악 교향곡이다.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뿐만 아니라 관현악곡, 협주곡, 실내악곡, 피아노곡, 오페라, 성악곡에 걸쳐 많은 작품을 썼다. 관현악곡은 모음곡, 서곡, 교향시가 대부분이다. 특히 모음곡에서는 발레 음악을 모은 발레 모음곡이 대표적이다. 또한 쇼스타코비치는 민족 음악에도 관심을 가져 러시아와 기르기스 민요 서곡 op.115같은 민속적 선율로 곡을 쓰기도 하였다. <10월 혁명>이라는 교향시 op.131는 1967년에 있었던 10월 혁명 50주년을 기념하여 작곡된 작품이다.

협주곡은 피아노, 바이올린, 그리고 첼로 협주곡이 대표적이다.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는 미완성 작품까지 모두 3개이다. 그 중 코(The Nose) Op.15와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Lady Macbeth of Mtsensk District) Op.29이 대표적이다. 코는 고골리의 동명소설을 러시아로 번역한 것으로, G. 이오닌, A. 플라이스, J.자미야틴과 쇼스타코비치가 함께 공동으로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잃어버린 코를 찾아 원래 있던 자리에 붙인다는 내용의 원작을 모방하여 코믹적인 요소를 없앤 중후하고 무거운 음악이 오페라 전체에 흐른다.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은 1930년~1932년에 작곡되었다. 이 작품은 러시아어로 번역한 A. 플레이스와 쇼스타코비치의 공동 작품 <므첸스크의 백베스 부인>의 대본이 거의 그대로 사용되었다. 이 작품은 굉장히 규모가 큰 대작으로, 러시아 오페라의 특징을 그대로 갖고 있다. 즉, 이 작품은 부정적인 일들을 고발하고, 풍자하며, 극적이고, 서정적이면서 인물에 대한 심리 묘사, 성격 묘사에 대한 음악이 어우러진다. 이 작품은 1934년 초연 된 이후, <프라우다>지에서 ‘음악이 아니라 시끄러운 소리들일 뿐’이라는 비판을 받은 후, 상연이 금지되었다. 1979년에 원곡이 부활, 상연되었다.
작곡 : Gabriel Faure (가브리엘 포레)
가브리엘 위르뱅 포레는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 피아니스트, 교사였다. 파리의 니데르마이어 음악학교에서 공부하고, 카미유 생상스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으며, 교회의 오르간 연주도 하였다. 파리 음악원의 원장을 역임하였고, 제자로는 모리스 라벨 등 뛰어난 음악가가 많이 있다. 가브리엘 위르뱅 포레는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 피아니스트, 교사였다. 파리의 니데르마이어 음악학교에서 공부하고, 카미유 생상스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으며, 교회의 오르간 연주도 하였다. 파리 음악원의 원장을 역임하였고, 제자로는 모리스 라벨 등 뛰어난 음악가가 많이 있다.
작곡 : Sergei Prokofiev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Sergei Sergeevich Prokofiev)
1891년 러시아에서 태어났으며, 교향곡과 협주곡, 영화 음악, 오페라, 발레, 표제 음악 등 폭넓은 영역의 작품을 남겼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음악과 친숙했던 그는 5세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다. 1904년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하여 음악 이론뿐만 아니라 피아노, 지휘 등을 배웠으며, 러시아 혁명을 계기로 1918년 미국에 망명하여 미국과 유럽에서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면서 피아니스트로서도 높은 평가를... 1891년 러시아에서 태어났으며, 교향곡과 협주곡, 영화 음악, 오페라, 발레, 표제 음악 등 폭넓은 영역의 작품을 남겼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음악과 친숙했던 그는 5세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다. 1904년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하여 음악 이론뿐만 아니라 피아노, 지휘 등을 배웠으며, 러시아 혁명을 계기로 1918년 미국에 망명하여 미국과 유럽에서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면서 피아니스트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 후 여러 차례 귀국 요청을 받은 그는 1934년 조국으로 돌아가 당국의 비판을 받으면서도 작곡을 계속해 나갔다. 1936년 당국의 문화 방침에 의하여 음악 동화『피터와 늑대』를 발표해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1948년 쇼스타코비치, 하차투리안 등과 함께 당국으로부터 서구를 따르는 형식주의자라는 비판을 받는 등 창작에 제약을 받기도 했다. 이후 병으로 인하여 고생하다가 1953년 3월 스탈린과 같은 날 모스크바에서 세상을 떠났다. 주요 작품으로 오페라 <전쟁과 평화>, <바이올린 소나타 제2번>, <교향곡 제5번> 등이 있다.
작곡 : Leos Janacek (레오시 야나체크)
작곡 : Leonard Bernstein (레너드 번스타인)
레너드 번스타인은 1918년 매사추세츠주 로렌스에서 출생했다. 그의 부모는 러시아 출신이며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이다. 어린시절부터 피아노 연주하기를 좋아했으며 음악적인 재능을 보였다. 하버드대학교에 진학하여 작곡을 전공했고, 1937년 모더니즘 음악의 대가였던 디미트리 미트로폴로스(Dimitri Mitropolous)를 만나 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또한 하버드의 미학교수였던 데이비드 프롤(David Pral... 레너드 번스타인은 1918년 매사추세츠주 로렌스에서 출생했다. 그의 부모는 러시아 출신이며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이다. 어린시절부터 피아노 연주하기를 좋아했으며 음악적인 재능을 보였다. 하버드대학교에 진학하여 작곡을 전공했고, 1937년 모더니즘 음악의 대가였던 디미트리 미트로폴로스(Dimitri Mitropolous)를 만나 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또한 하버드의 미학교수였던 데이비드 프롤(David Prall)로 부터 예술을 이해하고 음악을 표현하는데 깊은 영향을 받았다. 1939년 그의 졸업논문은 '인종적 요소가 미국 음악에 끼친 영향'이라는 주제로 썼다.

졸업 후에는 F.라이너, S.쿠세비츠키에게 지휘법을, 톰프슨에게 관현악법을 배웠다. 1943년 뉴욕필하모니 음악감독이었던 아서 로진스키(Arthur rodzinski)의 인정을 받아 뉴욕필하모닉의 보조지휘자가 되었다. 그해 11월 14일 뉴욕필하모니의 지휘자 브루노 발터(Bruno Walter)가 급환으로 지휘를 못하게 되자, 그의 대신 뉴욕필하모니의 지휘를 맡았고 CBS방송을 통해 전국에 중계되었다. 번스타인은 이 한번의 기회로 유명세를 탔고 이름을 떨치게되었다. 1944년 피츠버그 교향악단을 지휘하였고 자신의 첫 교향곡 《예레미야 심포니 Jeremiah Symphony》을 연주했다.

당시 유럽에서 일어난 2차세계대전은 러시아로 확전되었고 히틀러가 저지런 대량학살 소식이 미국 전해졌다. 부모가 러시아 출신인 번스타인은 러시아 난민을 돕자는 자선행사에 자주 초대되어 나갔으며 카네기홀 등에서 자선 연주회를 열었다. 번스타인은 음악뿐만아니라 정치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디트로이트를 중심으로 진보당 창당에 관여하였고 진보적 단체의 단결을 주장했다. 이때부터 그는 FBI의 조사를 받았으며 그의 정치적 성향은 공산주의로 분류되었다. 그는 CBS 방송국 출입이 금지되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그의 음악과 공연은 취소되었다. 번스타인은 정치적인 성향 때문에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마침내 미국의 유력지인 라이프 지에 50명의 대표적인 좌파 블랙리스트로 번스타인이 소개되었고 뉴욕필하모니 지위자 명단에서도 제외되었다.

1953년 7월 미국 국무부는 번스타인의 여권 갱신을 거부하였고 항상 FBI의 감시를 받으며 고립되었다가 자신의 활동과 신념을 부정하는 진술서에 서명하고 나서야 여권을 받아 유럽으로 갈 수 있었다. 그해 8월에 이탈리아로 건너가 연주활동을 하였는데 음악활동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표면적으로 보수적 성향의 미국인임을 증명해야만 했다. 그 결과 컬럼비아 영화사의 승인을 얻어내 《워터프론트 Waterfront》(1954)라는 영화음악 제작을 맡을 수 있었다. 그후 포드 자동차의 의뢰를 받아 연주회를 열었고 CBS를 통해 방송되었다. 번스타인은 다시 뉴욕 필하모니로 복귀하게 되었으며 미국에서 지휘자로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1957년 뉴욕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 이듬해 음악감독으로 취임하였고 그가 연주하는 음악회는 최대의 흥행을 보증하게 되었다. 번스타인은 뮤지컬《웨스트사이드 스토리 West Side Story》(1957)의 음악을 담당하면서 가장 미국적인 뮤지컬의 창작하였다는 칭송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진보적인 성향이 보수로 전향한 것은 아니었으며 미국내 민권투쟁과 인종차별 등 사회적인 문제에 적극 참여하였다. 1964년 번스타인은 미국에서 일어난 흑인민권운동에 가담하여 마틴 루터 킹 목사(Martin Luther King)와 함께 앨라바마에서 열린 셀마 대행진에 참가하였다. 번스타인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닉슨 행정부가 일으킨 베트남 전쟁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종전을 주장하였고 미국의 제국주의를 비판하였다. 이 시기에 자신의 사회사상을 표현한 교향곡《카디시 Kaddish》(1963)와《치체스터 시편 Chichester Psalms》(1965)을 발표하였다. 미국의 보수파인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자 미국내 진보세력의 몰락을 우려하였고 보수파가 추진하는 핵무기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이상과 다르게 변모하는 미국사회의 모습으로 번스타인은 상실감으로 실의에 빠져들었다. 20세기 미국을 표현하는 오페라를 구상하였으나 끝내 작곡을 완성하지 못했다. 1985년 세계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조직하여 영국, 일본, 그리스, 헝가리 등지에서 연주했으며 이후에는 주로 유럽을 무대로 연주활동을 했다. 1990년 10월 14일 사망했다.
실내악 : Empire Brass (엠파이어 브라스,Empire Brass Quint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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