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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na Simone (니나 시몬) - Sings Ellington!

[ 디지팩 ]
Duke Ellington 작곡/Nina Simone 노래 | Jazz Images | 2017년 07월 21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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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na Simone (니나 시몬) - Sings Ellington!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7년 07월 21일
제조국 EU

관련분류

카테고리 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Disc
  • 01 Do Nothin' Till You Hear From Me
  • 02 I Got It Bad (And That Ain't Good)
  • 03 Hey, Buddy Bolden
  • 04 Merry Mending
  • 05 Something To Live For
  • 06 You Better Know It
  • 07 I Like The Sunrise (From The Liberian Suite)
  • 08 Solitude
  • 09 The Gal From Joe's
  • 10 Satin Doll
  • 11 It Don't Mean A Thing (If It Ain't Got That Swing)
  • 12 [Bonus Album : The Amazing Nina Simone] Blue Prelude
  • 13 Children Go Where I Send You
  • 14 Tomorrow (We Will Meet Once More)
  • 15 Stompin' At The Savoy
  • 16 It Might As Well Be Spring
  • 17 You've Been Gone Too Long
  • 18 That's Him Over There
  • 19 Chilly Winds Don't Blow
  • 20 Theme From "The Middle Of The Night"
  • 21 Can't Get Out Of This Mood
  • 22 Willow Weep For Me
  • 23 Solitaire
  • 24 Nobody Knows You When You're Down And Out

아티스트 소개 (2명)

‘음의 마술사’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은 두말할 필요없이 재즈역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대가로 첫손에 꼽히는 인물이다. 1927년 데뷔이래 근 50년에 이르는 오랜 활동 기간동안 무려 6000곡이라는 미증유의 창작력을 보이며 빅 밴드 재즈 연주가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실험과 혁신을 선보였다. 그는 빅 밴드를 구성하는 악기 하나 하나의 특색을 정확히 이해했다. 관악기의 독특한 울림이 들리는 그의 ... ‘음의 마술사’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은 두말할 필요없이 재즈역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대가로 첫손에 꼽히는 인물이다. 1927년 데뷔이래 근 50년에 이르는 오랜 활동 기간동안 무려 6000곡이라는 미증유의 창작력을 보이며 빅 밴드 재즈 연주가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실험과 혁신을 선보였다. 그는 빅 밴드를 구성하는 악기 하나 하나의 특색을 정확히 이해했다. 관악기의 독특한 울림이 들리는 그의 음악엔 그만의 음색이 느껴진다. 여기에 그는 재즈의 정체성을 강화해주는 다양한 화성 전개를 고안했고, 클래식 음악에서나 볼 수 있는 조곡(suite) 형식의 대곡을 재즈로 소화해낸다. 사후에도 그의 음악유산은 막대한 영향력을 과시, 많은 음악 학자들이 “듀크 엘링턴은 세계 대중음악을 20년 이상 앞당겼다”고 평했을 만큼 그는 재즈를 예술적인 차원으로 승화시켰다. 1899년 4월29일, 에드워드 케네디 엘링턴이라는 본명으로 미국 워싱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 연주를 접한다. 아버지는 백악관에서 일하는 집사였고 당시 흑인들 중에선 드물게 중산층에 속했던 덕에 가정교사를 통해 정규 클래식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1914년, ‘Soda fountain rag’와 ’What you gonna do when the bed breaks down’를 처음으로 작곡했고, 18세 때에는 워싱턴 지역의 유명한 밴드 리더로서 지역의 유명인사로 떠오른다. 1923년 재즈의 메카로 부상하던 뉴욕에 진출한 그는 자신의 밴드 ‘더 워싱턴스’(The Washingtons)를 결성한다. 이 때 자신의 이름에 영예로운 공작(Duke) 칭호를 부여하며 듀크 엘링턴으로 개칭한다. 1927년에 이르러 밴드는 뉴욕 지역의 여러 나이트클럽에서 인정을 받았고, 얼마 후 백인 전용클럽이었던 코튼 클럽(Cotton Club)에 입성한다. 그가 악장으로 일하게 된 코튼 클럽은 미국의 상류층들이 가무를 즐기던 곳으로 이후 재즈의 상징어가 된다. 뉴 올리언즈의 스토리 빌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서 음악 생활을 하게 된 그는 바야흐로 자신의 음악세계를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되었고 여기서 그의 첫 출세작 ‘East St. Louis toddle-oo’(1927)가 발표된다. ’와우-와우‘하는 독특한 트럼펫 소리가 시작을 알리는 이 곡은 당시까지의 재즈 연주가 대부분 장조였던 것과 달리 구슬픈 멜로디가 들리는 단조 풍의 연주곡이었다. 독특한 악기 음색과 치밀한 계산이 돋보이는 연주 편곡은 당시 28세를 갓 넘은 청년 듀크 엘링턴을 일약 재즈의 비범한 뮤지션으로 상승시킨다. 1931년까지 코튼 클럽에서 연주를 하며 ‘Black beauty’(1928), ’Mood indigo’(1930)와 같은 걸작을 남긴다. 하지만 대공황이라는 경제 한파는 코튼 클럽에 사람들의 발길을 주춤케 했고 그는 잠시 유럽으로 진출, 이후에 있을 전성기를 위한 ’일보후퇴‘를 택한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경제 개혁은 미국 사회에 다시 활기를 되찾게 해준다. 여기에 NBC, CBS, ABC 미국 3대 라디오 방송국이 뉴욕에 생기면서 재즈 음악인들은 금주(禁酒)령으로 묶인 그들의 창작 혼을 다시금 살려 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맞이한다. 듀크 엘링턴은 이 절호의 찬스를 통해 ‘스윙의 왕’으로 군림하며 1930-40년대를 그의 음악 경력 상 최고의 절정기로 기록되게 한다. 경제 공황이라는 무거운 짐을 떨쳐버린 1930년대 미국 시민들은 신나고 경쾌한 음악을 필요로 했고, 1935년 베니 굿맨과 카운트 베이시로 대표되는 스윙(Swing)의 폭발은 뉴욕 시내의 무도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코튼 클럽에서 다시 지휘봉을 잡은 듀크 엘링턴은 이 시기에 ’It dont mean a thing(If it ain’t got that swing)’(1932), ’Echoes of Harlem’(1936), ‘Dimuniendo in blue’(1937), ‘Cotton tail’(1940), ’Ko-ko’(1940), ’Take the “A" train’(1941) 등 그를 대표하는 수많은 명곡들을 발표한다. 특히 1937년에 발표한 ’Dimuniendo in blue’는 재즈 역사에서 처음으로 접하는 7분이 넘는 대곡이다. ‘Dimuniendo in blue’가 탄생하기까지엔 웃지 못할 애피소드가 있다. 1930년대 당시 SP(78회전)음반 한 면에는 대략 3분 정도의 음악 밖에 수록할 수 없었다. 이 음악을 녹음하기 위해 그는 앞뒷면을 전부 사용해서 녹음을 했고, 결국 7분이 넘는 연주 테입은 SP 음반에 앞뒷면으로 나뉘어져 실린다. ‘3분 짜리 춤곡’으로 인식되었던 당시 스윙 음악 스타일에 그는 자신의 음악성을 한정 당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스윙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당당하게 외친 그는 스윙이라는 음악을 단순한 ’춤곡‘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고자 했다. 훗날 마일스 데이비스가 애용했던 플런저(Plunger; 트럼펫 앞을 막았다 닫았다 하며 음색을 조절하는 기구, 우리말로 소음기라고도 한다)를 이용한 트럼펫의 독특한 울림은 여전히 연주 전체에 ’약방의 감초‘처럼 짜릿한 생기를 불어넣었고, 정적인 분위기와 웅장한 분위기를 번갈아 가며 연출하는 세련된 편곡은 스윙 연주 편곡의 전형을 제시했다. 단조와 장조를 교묘하게 합쳐 놓은 듯한 정교한 멜로디 진행, 싱코페이션(당김음)을 이용한 원활한 감정 처리, 극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빠르기 조절과 다양한 악기 음색을 실험하며 그는 정통 재즈(mainstream)의 알파에서 오메가까지를 자신의 음악에 모두 담아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무렵 ’재즈의 세대교체’를 선언하며 등장한 비밥(Bebop)의 선풍에 아랑곳없이 듀크 엘링턴은 여전히 자신의 빅 밴드를 지속시키며 스윙을 고집했고, 주변의 많은 밴드들을 위해 수많은 곡을 써 줄 정도로 왕성한 창작력을 유지한다. 1950년대 중반에 들어 그는 작곡 구조에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기에 이른다. 이른바 ‘조곡’(suite)형식이 바로 그것인데, 하나의 커다란 주제를 갖고 여러 소품들을 만들어 전체가 하나의 큰 대곡 형식을 갖추는 조곡을 재즈에 도입해 그는 다시 한번 재즈 역사에 방점을 찍는다. 그의 작곡 콤비로 오랜 동안 함께 해온 작곡가 빌리 스트레이혼(Biily Strayhorn)과 공동으로 작, 편곡하여 1957년 발표한 < Such Sweet Thunder >같은 앨범은 조곡 스타일의 재즈 연주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극찬을 받았다. 세익스피어(Shakespear)의 작품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묘사한 이 작품은, 재즈 역사에 손꼽히는 명반 중 하나로 남아있다. 1956년 뉴욕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하며 듀크 엘링턴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1950년대 말엽과 1960년대의 활동은 비록 1930년대만큼의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쉬지 않고 빅 밴드를 이끌며 세계 투어를 비롯하여, 활발한 음반 발표와 곡 작업을 지속한다. 이 당시에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Tourist point of view’(1966)같은 곡에선 말년에 아랑곳없이 기세 등등한 멤버들의 연주실력과 그의 변함 없는 음악성이 느껴진다. 빅 밴드 단원들은 기복 없는 안정적인 연주를 했는데, 이는 1930년대부터 그가 죽을 때까지 평생을 같이한 단원들이 함께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바리톤 색스폰 주자 해리 카네이(Harry Carney)는 듀크 엘링턴이 코튼 클럽에서 데뷔한 1927년 때부터 무려 47년 동안 그가 그의 밴드 멤버로서 활동한다. 후반기 명작으로 거론되는 재즈 조곡 < Latin American Suite >(1970)를 발표하고 끊임없는 투어는 1970년대 초까지 계속 되었으나 몸이 쇠약해진 듀크 엘링턴은 결국 1974년 5월 24일 세상을 떠나고 만다. 끊임없이 재즈 음악에 새로움을 불어넣기 위해 자기개발에 부단했던 그는 죽을 때까지도 피아노 앞에서 작곡을 놓지 않는 열정의 소유자였다. ‘위대한 재즈 맨’ 듀크 엘링턴은 그의 밴드와 자신의 곡으로 미국 대중음악의 국보인 재즈의 위상을 한껏 높이는데 기여했다. 클래식 계를 비롯한 전 세계의 유명한 작곡가들은 지금까지도 초연 되지 않은 그의 곡들을 연구하며 지금도 그의 놀라운 음악성에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엘라 핏제랄드(Ella Fitzgerald), 줄리 런던(Julie London), 사라 본(Sarah Vaughan), 디나 워싱턴(Dinah Washington)과 함께 최고의 여성재즈가수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디바 니나 시몬(Nina Simone). 음지에 잔뜩 웅크린 자세로 바깥세상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그녀의 목소리는 마법의 주...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엘라 핏제랄드(Ella Fitzgerald), 줄리 런던(Julie London), 사라 본(Sarah Vaughan), 디나 워싱턴(Dinah Washington)과 함께 최고의 여성재즈가수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디바 니나 시몬(Nina Simone). 음지에 잔뜩 웅크린 자세로 바깥세상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그녀의 목소리는 마법의 주문과도 같다. 통한과 슬픔, 분노와 격정 그리고 발산하고 싶어도 마땅한 곳을 찾을 수 없어 떠도는 영혼들에게 그녀는 구원의 손짓을 보낸다. 어둡고 습한 곳에 자신을 숨기고 있지만 말고 잘못된 세상을 향해 분노를 터뜨리라고. 화를 내고, 하고 싶은 소리를 외치라고. 이제 너의 주장을 펴고 권리를 찾을 때라고. 속삭이듯 한탄하듯 때론 비단처럼 윤기 나게 때론 벨벳처럼 부드럽게 노래에 실어 전언한다. 본명은 유니스 웨이몬(Eunice Waymon), 가수 니나 시몬(Nina Siomone)으로 대중음악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그는 사우스캐롤라이나 트라이온에서 가난한 집안의 여섯 자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4살 때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 피아노신동으로 불린 그는 ‘유니스 웨이몬 기금’(Eunice Waymon Fund)을 설립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음악선생님의 도움으로 음악교육을 계속 받을 수 있었고 뉴욕 소재 줄리아드 음악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가정을 지탱하기위해, 그는 피아노반주자로 일을 시작해야만 했다. 1954년 여름 그는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에 있는 아일랜드 바의 연주자로 직업을 잡았는데, 바 주인은 그에게 노래도 잘하길 요구했다.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끊임없는 연습을 해왔던 유니스 웨이몬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아차릴 새도 없이 연예사업으로 들어섰다. 그는 이름을 니나(리틀 원)시몬으로 바꿨다.(1950년대 할리우드의 쟁쟁한 여배우들과 어깨를 겨룬 프랑스의 여배우 시몬 시뇨레(Simone Signoret)의 이름을 차용) 1950년대 후반, 니나 시몬은 베들레헴 레이블에서 최초의 트랙들을 녹음했다. 이 곡들에서 피아니스트, 가수, 편곡과 작곡가로서 그의 비범한 재능은 한층 더 빛을 발했다. ‘Plain gold ring’, ’Don’t smoke in bed’, ’Little girl blue’와 같은 노래들은 곧 그의 상연목록에서 스탠더드가 되었다. 오페라 (Porgy and Bess)의 곡 중 하나인 ‘I love you, Porgy’가 타운 홀, 카네기 홀 그리고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에서 불리고 히트를 기록하면서 나이트클럽 가수였던 그는 스타로 발돋움했다. 재즈스탠더드, 가스펠, 흑인영가, 클래식음악, 유래가 다양한 포크음악, 블루스, 팝, 뮤지컬과 오페라 송, 아프리카의 영창 게다가 자신이 직접 작곡한 곡까지, 이미 음악활동의 시작부터 창대했던 그는 준비된 스타였다. 기회는 당연한 만찬이었다. 클래식의 대위법, 재즈의 즉흥연주, 블루스의 변조 등 다방면의 음악요소를 결합해내는 시몬의 재능은 더 이상 무시될 수 없는 발군의 실력이었다. 독자적인 타이밍, 고요함의 음악적 극대화, 몇몇 코드로만 곡을 진행시키는 피아노연주 등의 방식으로 절제미가 돋보이는 자신만의 공연분위기를 주조해내는 실력은 가히 범접을 불허할 정도로 특징적이었으며 그의 여러 작품들에 녹아들었다. 때로 그의 목소리는 어둡고 가공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것에서부터 부드럽고 달콤한 것까지 변화무쌍한 스펙트럼을 과시했다. 잠시의 휴지와 반복 속에 그의 목소리는 외치고 속삭이고 또 한탄했다. 가끔은 피아노, 노래 소리, 몸짓이 따로 노는 것 같으면서도 하나의 결정체로 모아졌다. 다양한 방식으로 그는 청중들에게 주문을 걸었다. 여러 가지 주문 중 하나에만 걸려도 니나 시몬이 비교불허의 아티스트란 걸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마력에 청중들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1963년 버밍햄의 교회에서 터진 폭파사건으로 네 명의 흑인아이들이 사망하자, 니나는 미국에서 동족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비통함과 격노를 금치 못했고 곧 규탄의 의미를 담은 ‘Mississippi Goddam’(빌어먹을 미시시피)을 썼다. 이 노래의 강력한 호소력과 필립스 레코드에서 처음 녹음 발표한 < Nina Simone in Concert >에 실린 노래들은 그녀의 또 다른 예술적 지평을 보여주었다. 예술적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 자신만의 음색과 세심한 피아노연주에 심혈을 기울인 그는 사랑, 증오, 슬픔, 기쁨, 외로움 등 인간의 모든 감정을 노래에 실어 분명하게 전해주었다. 한때 커트 웨일(Kurt Weill)과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d Brecht)가 작곡한 노래 ‘Pirate Jenny’를 부르며 여배우로서 대극장을 순회하기도 했던 그는 프랑스에서 자끄 브렐(Jacques Brel)의 연약한 사랑노래 ’날 떠나지 말아요’(Ne me quitte pas)를 부르기로 했다. 니나는 ‘소울의 여대사제’로 불리며 팬들과 비평가들에 의해 신비로운 인물로 존경받음과 동시에 거의 종교계인사로 종종 오해를 사기도 했다. 1966년 흑인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시선을 네 명의 흑인여성들의 비애로 써낸 ‘네 여인들’(Four women)을 발표했는데, 이 노래는 흑인들에게 모욕적이라는 이유로 필라델피아와 뉴욕 라디오방송에서 금지되었다. 여대사제는 말씀전파에 적당한 음악을 찾기 위해 다른 길을 걸어갔다. RCA레이블로 옮겨 발표한 첫 앨범 < Nina Simone Sings The Blues >에 실린 ‘I want a little sugar in my bowl’, ’Do I move you?’, ’My man’s gone now’ 그리고 랭스톤 휴스(Langston Hughes)가 그녀를 위해 써준 시를 토대로 한 저항가요 ‘Backlash blues’를 포함해 더 많은 공민권운동가요를 불러 자신의 노선을 확증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의 비극을 노래한 ‘Why?(The King of Love is Dead)’을 위시해 ’Brown baby’, ’Images’(워링 쿠니의 시에 근거한), ‘Go limp’, ’Old Jim Crow’, ’To be Young, Gifted and Black’ 등의 노래들은 미국에서 흑인국민적인 찬가가 되었다. 그녀는 홀로 외롭게 노래하고 연주한 앨범 < Nina Simone and Piano ! >(1970)로 열성적인 팬들조차 놀라게 만들었다. 환생, 죽음, 고독 그리고 사랑에 대한 내성적인 노래들로 채운 모음집은 그녀의 녹음경력에 변함없는 하이라이트였다. 노래들에 새롭고 더 깊은 차원의 선물을 담아냈다. ‘Ain’t got no/I got life’(뮤지컬 “헤어”에서),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의 ’Suzanne’, ‘To love somebody’와 같은 비지스의 노래들, 봉고연주로 두 배의 속도감을 붙인 클래식 ’My way’, ‘Just like Thumb’s blues’ 그리고 네 곡의 밥 딜런의 노래들의 주목할 만한 버전들에는 더 새롭고 깊은 차원의 재능을 담아냈다. < Emergency Ward >는 절정의 선물이었다. 그녀는 조지 해리슨이 쓴 두 곡 ’My sweet lord’와 ‘Isn’t it a pity’의 긴 버전을 연주하면서 환각과 도피성을 배제한 분위기로 꾸몄다. 니나는 그러나 어쨌든 자유로워지고자 했다. 그녀는 자신이 조종당해 왔다고 느꼈고, 음반회사, 연예사업, 인종차별주의에 넌더리가 났다. 1974년 미국을 떠나 바바도스(Barbados)로 향한 그녀는 이듬해 리베리아, 스위스, 파리, 네덜란드에서 살다가 마지막으로 프랑스의 남부에 안착했다. 1978년엔 주디 콜린스(Judy Collins)의 ‘My father’를 정확한 해석으로 다시 부른 버전과 최면술을 거는 ’Everything must change’가 실린 새 앨범 < Baltimore >을 오랜만에 내놓았다. 그리고 1982년 미국으로부터 자진 “망명”을 선언한 자신의 마음을 노래로 표시한 앨범 < Fodder On My Wings >을 파리에서 녹음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결연한 의지가 여느 때보다도 잘 담긴 앨범이었다. 니나는 곡을 쓰고 개작하고 편곡했다. 피아노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며 영어와 프랑스어로 노래했다. 이 앨범은 1988년 그녀의 아버지의 죽음을 회상(추억)하는 노래 ‘Alone again naturally’의 특별버전을 포함한 몇몇 보너스트랙이 더해져 CD로 재발매 되었다. 1984년, 런던의 로니 스콧(Ronnie Scott)에서 열린 그녀의 콘서트실황을 담은 필름이 매혹적인 비디오로 발매되었다. 드럼에 폴 로빈슨(Paul Robinson)이 찬조 출연한 이 비디오에는 그녀의 첫 레코드에서 발췌한 노래 ‘My baby just cares for me’가 포함돼 큰 인기를 누렸다. 다음 해 < Nina’s Back >(니나의 귀환)이란 제목의 새 앨범을 발표한 그녀는 전 세계를 누비는 콘서트에 나섰다. 1989년 그녀는 피트 타운젠트(Pete Townsend)의 뮤지컬 < The Iron Man >에 공헌한 것을 시작으로 1990년과 1991년 브라질 팝가수 마리아 베사니아(Maria Bethania)와 아프리카음악의 세계화에 앞장선 유명 여성보컬리스트 마리암 마케바(Mariam Makeba)와 함께 녹음했다. 1991년엔 또한 자서전 < I Put A Spell On You >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프랑스, 독일 그리고 네덜란드어 번역본으로도 출판되었다. 1993년 스튜디오에서 만든 새 앨범 < A Single Woman >이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는 로드 맥퀸(Rod McKuen)의 노래들, 자신의 노래 ‘Marry me’, 프랑스의 스탠더드를 자기버전으로 부른 ’Il n’y a pas d’amour heureux’, 매우 감동적인 ‘Papa, can you hear me?’가 수록되었다. 그녀의 노래는 영화음악으로도 사용되었다. 레퍼토리 중 5곡이 사운드트랙에 들어간 1993년 영화 (Point Of No Return, The Assassin, code name: Nina로도 불린다)를 위시해 (1996)에 사용된 ‘I wish I knew how it would feel to be free’, (1996)에 삽입된 ’My baby just cares for me’ 그리고 (1997)의 ‘Exactly like you’까지 그의 목소리는 영화와 함께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다. 세월은 흘러도 그녀의 음악은 변함없이 새롭고 젊은 청취자들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Ain’t got no/I got life’는 1988년 네덜란드에서 대형히트를 기록했다. 그녀는 또한 자신의 뒤를 든든히 받쳐주는 절친한 반주자들, 퍼커션의 레폴도 플레밍(Lepoldo Fleming), 베이스의 토니 존스(Tony Jones), 드럼의 폴 로빈슨(Paul Robinson), 키보드의 하비에르 콜라도스(Xavier Collados) 그리고 기타리스트 겸 그녀의 음악 감독 알 섀크만(Al Schackman)과 함께 세계 순회공연을 펼치며 청중들과 함께 여전히 흥분의 순간을 맛봤다. 1997년 런던에 바비칸(Barbican) 극장에서 그는 공민권운동, 형제애를 위해 미국의 첫 번째이자 주요한 리더들 중 한사람에게 헌정하는 의미의 노래 ’Every Time I Feel The Spirit’을 불렀다. ‘Reached down and got my soul’, ’The blood done changed my name’, ’When I see the blood’와 같이 더욱 영가(Spiritual)적이고 생명과 같은 노래들이 뒤를 이었다. 니나는 1997년 프랑스에서 열린 니스 재즈 페스티벌(Nice Jazz Festival), 1998년 그리스의 의 데살로니가 재즈 페스티벌(Thessalonica Jazz Festival)의 하이라이트였다. 1999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 기네스 블루스 페스티벌에서는 그녀의 딸 리사 첼레스테(Lisa Celeste)와 함께 몇몇 곡을 듀엣으로 합창해 모녀의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시몬은 라틴 수퍼스타 라파엘(Rafael)과 함께 노래하고 두 번의 디즈니 연극 워크숍에 참여, 의 타이틀 역과 의 날라 역을 맡아 공연하면서 세계 투어를 했다. 1998년 7월 24일, 니나 시몬은 넬슨 만델라의 80회 생일파티에 특별손님으로 초대됐다. 1999년 10월 7일 그녀는 더블린에서 개최된 음악시상식에서 평생업적을 기리는 공로상을 품에 안았다. 2000년에 들어 그녀는 5월 26일 애틀랜타 명예 시민권을 수여받았다. 6월 9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아프리카계 미국인 음악 협회로부터 다이아몬드 상을 수상한데 이어 8월 7일에는 프랑스에서 명예로운 총사상을 수상했다. 닥터. 시몬은 2003년 4월 21일 프랑스 남부 까리-르-루에에 그녀의 별장에서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소망대로 유해는 아프리카의 여러 곳에 뿌려졌다. 매사추세츠대학으로부터 음악과 인류애에 대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바로 최후의 전승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역사적 지위를 얻었다. 최고의 여류시인, 우리시대의 음악작가로 그는 영원히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 있을 것이다.

음반 속으로

Nina Simone - Sings Ellington - 01 Do Nothin' Till You Hear From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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