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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To Love Somebody: The Songs Of The Bee Gees 1966-1969 (비지스 초기 음악 리메이크 컬렉션)

ACE 레이블 송라이터 시리즈

Sharon Tandy, Al Green, James Carr, Percy Sledge, Nina Simone 노래 외 19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Ace Records / Ace Records | 2017년 07월 07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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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Love Somebody: The Songs Of The Bee Gees 1966-1969 (비지스 초기 음악 리메이크 컬렉션)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7년 07월 07일
제조국 영국

관련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Disc
  • 01 World - Sharon Tandy
  • 02 How Can You Mend A Broken Heart - Al Green
  • 03 To Love Somebody - James Carr
  • 04 I'Ve Gotta Get A Message To You - Percy Sledge
  • 05 I Can't See Nobody - Nina Simone
  • 06 Words - Bettye Swann
  • 07 Bury Me Down By The River - Lulu
  • 08 Give A Hand - Take A Hand - The Staple Singers
  • 09 Only One Woman - Marbles
  • 10 New York Mining Disaster 1941 - Velvett Fogg
  • 11 Red Chair, Fade Away - Sidewalk Society
  • 12 Every Christian Lion Hearted Man Will Show You - Goon Moon
  • 13 Like Nobody Else - Los Bravos
  • 14 Sun In My Eyes - Sandie Shaw
  • 15 And The Sun Will Shine - Paul Jones
  • 16 Spicks And Specks - The Status Quo
  • 17 He's A Thief - April Byron
  • 18 Exit Stage Right - Ronnie Burns
  • 19 Town Of Tuxley Toymaker Part 1 - Jon
  • 20 Maypole Mews - David Garrick
  • 21 I Started A Joke - Pat Kelly
  • 22 Morning Of My Life - John Holt
  • 23 Massachusetts - Tommy Roe
  • 24 First Of May - Jose Feliciano

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1

아티스트 소개 (24명)

레이 찰스, 샘 쿡, 아레사 프랭클린, 오티스 레딩, 제임스 브라운…. 이들의 공통점은(흑인인 것 빼고) 무엇일까? 바로 목소리 하나만으로 50- 60년대 대중 음악의 혁명을 일궈낸 흑인 보컬의 대가들이란 점이다. 소울로 대변되는 흑인 대중 음악은 ‘흑인의 정신’과 연결되며 한껏 우렁차고 독특한 울림을 창조하며 60년대 흑인들의 자존심을 한껏 높이는데 기여했다. 록의 역사에서 이들의 음반을 두고두고 명반으로 추대... 레이 찰스, 샘 쿡, 아레사 프랭클린, 오티스 레딩, 제임스 브라운…. 이들의 공통점은(흑인인 것 빼고) 무엇일까? 바로 목소리 하나만으로 50- 60년대 대중 음악의 혁명을 일궈낸 흑인 보컬의 대가들이란 점이다. 소울로 대변되는 흑인 대중 음악은 ‘흑인의 정신’과 연결되며 한껏 우렁차고 독특한 울림을 창조하며 60년대 흑인들의 자존심을 한껏 높이는데 기여했다. 록의 역사에서 이들의 음반을 두고두고 명반으로 추대하는 것 또한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대중 음악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만큼 대중 음악의 고향 미국에서 흑인이 대중 앞에 서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담아 노래를 해 지지를 받는 것이 어려웠다는 애기다. 70년대 들어서도 흑인 대중 음악은 보컬이 단연 강세였다. 지금 소개하는 알 그린 역시 70년대를 대표하는 흑인 보컬리스트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선 그가 70년대 스티비 원더나 80년대 라이오넬 리치만큼의 지명도는 없지만 적어도 그가 활동한 미국에선 소위 보컬의 대가로 그를 알아 모신다. 그가 인기를 누리던 시기 마빈 게이와 스티비 원더, 배리 화이트가 ‘셀프 프로듀싱’을 감행하며 아티스트의 명예를 획득하는 동안 알 그린은 과거 선배들처럼 오로지 목소리로만 승부하며 흑인 대중음악계의 기린아로 떠오른다. 스모키 로빈슨, 마빈 게이와 같은 디트로이트의 모타운(motown) 보컬이 고급 와인처럼 잘 정제된 세련된 보컬이라면 그의 보컬은 잘 익은 곡주처럼 구수한 멤피스 지역의 어틀랜틱 레코드 산하 스택스(stax) 소울에 보컬 정체성을 두고 있다. 멤피스를 중심으로 미국 중남부를 주 활동무대로 한 그는 바로 멤피스 소울의 대가 오티스 레딩의 혼을 계승한 보컬리스트이다. 텁텁한 느낌에, 숨이 막히듯 조여 드는 듯한(오티스 레딩의 ‘Sitting on the dock of bay’를 들어보라!) 멤피스 소울 처럼 그의 보컬색은 대중들이 쉽게 다가가긴 힘든 성질이지만 익숙해지면 그만의 보컬 마력에 헤어나오지 못한다. 귀를 콕콕 찌르는 듯한 강한 훅을 날리는 그의 보컬은 그래서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감흥이 있다. 하지만 알 그린은 선배 오티스 레딩의 업적을 단순히 계승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1972년에 발표한 그의 명반 < I’m Still in Love with You >에선 로이 오비슨의 히트곡 ‘Oh pretty woman’ 과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의 컨트리 곡 ’For the good times’과 이듬해 1973년 명반 < Call Me >에선 컨트리의 아버지 행크 윌리엄스의 ‘I’ m so lonesome I could cry’와 역시 컨트리 싱어 윌리 넬슨의 ‘Funny how times slips away’를 무리 없이 리메이크해 그의 보컬dl 단순히 정통 흑인 성향의 것을 넘어 백인들에게도 어필하며 보편성을 획득했다. 여기에 비지스를 연상시키는 유려한 팔세토(가성) 실력은 특유의 섹시(sexy)함을 과시하며 오빠부대를 양성하기도 했다. TV 출연도 많이 해 공연 시 관객석에 꽃을 건내며 대중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연출하는 그의 무대 매너 또한 시선을 집중시키는데 한 몫 했다. 그의 목소리를 돋보이게 해준 세련된 연주 편곡도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다. 1971년부터 1976년까지 활동하면서 그의 든든한 오른팔이 되준 윌리 미첼(Willie Mitchell)은 알 그린의 명성을 가능케 해준 일등 공신이다. 음계의 8개 노트를 코드로 사용하는 재즈적인 화성전개와 스트링이 애잔하게 깔아주는 그의 편곡방식은 다소 거북하게 느껴지는 알의 목소리에 도회지적인 세련된 감수성을 더해줬다. 여기에 1960년대 대표적인 R&B 연주 밴드 부커 티 앤 엠지(Booker T. & Mg’s)의 드러머 알 잭슨(Al Jackson)을 모셔오면서 알 그린-윌리 미첼-알 잭슨의 3인 공조 체제를 유지하며 히트곡 양산에 나선다. 1946년 미국의 아칸소주 태생인 알 그린은 교회를 통해 자연스레 음악을 접했고, 재키 윌슨(Jackie Wilson)의 음악에 매료되면 차츰 소울 가수로의 꿈을 키우게 된다. 종교적인 분위기의 집안 환경 탓에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지만 1967년 자신의 밴드 ‘소울 매이트’를 조직해 ‘Back up train’이라는 싱글을 발표해 빌보드 차트에 진입하지만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진 못한다. 1969년 텍사스의 한 클럽에서 무명가수로 활동하던 알 그린은 그의 보컬에 매료 되 그의 프로듀서를 자청해 나선 윌리 미첼과 운명적 만남을 갖는다. 재즈 빅밴드의 리더였던 윌리는 원래 트럼펫 연주가였는데, 알 그린의 보컬을 접한 그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를 멤피스로 데리고 가 하이(Hi) 레코드사를 설립, 이후 그와 뗄래야 뗄 수 없는 명콤비로 자리 메김 한다. 윌리와 알은 이후 6개의 골든 앨범과 8개의 골든 싱글을 양산하며 70년대를 그들의 시대 로 만들었다. ‘Tired of being alone’(1971), ‘Let’s stay together’(1971) , ‘Look what you have done for me’(1972), ‘You ought to be with me’(1972) , ‘Call me’(1973) , ‘Here I’m’(1973), ‘Livin’ for you’(1973) , ‘Sha-La-La(1974)를 모두 빌보드 차트 top 10에 올려놓는다. 골드를 기록한 앨범 < Let’s Stay Together >(1972), < I’m Still in Love with You >(1972), < Call Me >(1973)는 지금까지도 대표적인 소울 명반으로 빠짐없이 추대된다. 부와 명예를 획득한 알의 인생행로는 그러나 이후 순탄치 않았다. 위장과 척추에 이상이 오며 건강이 악화되고 자신이 보는 앞에서 그의 부인이 권총으로 자살을 하는 불상사가 생긴다. 정신이 극도로 황폐해진 그는 이후 ‘신의 경고’라는 생각에 1977년 윌리 미첼과 결별하며 대중 음악계를 떠난다. 그리고 교회를 사 들여 목사가 되기로 한 그는 이후 설교와 가스펠 가수 활동을 병행한다. 80년대 내내 그는 대표적인 가스펠 싱어로 등극하며 수많은 그래미 상을 획득하기도 한다. 영원히 결별인줄 알았던 윌리 미첼과 1985년에는 재결합하며 앨범 < He is the right >를 발표했지만 이미 알 그린만의 매혹적인 보컬마력은 거세 당한 후였다. 대중들은 차츰 70년대 섹시미를 날리던 왕년의 알 그린을 잊고 있었다. 70년대의 그의 보컬업적은 이후 섹시 록커 프린스 등 수많은 소울 가수들에게 영향을 주며 대중음악계에 끼친 그의 공로를 인정 받아 1995년엔 락 앤 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영광을 얻는다. 그리고 올해 2003년, 그가 정확히 대중음악계를 은퇴한지 26년 만에 왕년의 알 그린식 소울을 들고 컴백했다. 그것도 그의 명 콤비 윌리 미첼이 프로듀싱과 편곡을 담당하며 그를 기억하던 팬들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2003년 11월 26년만의 회심작 < I’ Can’t Stop >을 재즈 레이블 블루노트에서 발표하며 활동을 재개한 그는 20대 전성기의 느낌을 50대 중반의 노장 가수의 느낌으로 고스란히 담아냈다. 혼의 우렁찬 울림과 펑키한 느낌이 배가된 더욱 다채로워진 윌리 미첼의 편곡과 그의 농익은 보컬은 여전히 ‘노장은 살아있다’를 증명하고도 남는 반가운 컴백이다.
노래 : Percy Sledge (퍼시 슬레이지)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엘라 핏제랄드(Ella Fitzgerald), 줄리 런던(Julie London), 사라 본(Sarah Vaughan), 디나 워싱턴(Dinah Washington)과 함께 최고의 여성재즈가수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디바 니나 시몬(Nina Simone). 음지에 잔뜩 웅크린 자세로 바깥세상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그녀의 목소리는 마법의 주...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엘라 핏제랄드(Ella Fitzgerald), 줄리 런던(Julie London), 사라 본(Sarah Vaughan), 디나 워싱턴(Dinah Washington)과 함께 최고의 여성재즈가수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디바 니나 시몬(Nina Simone). 음지에 잔뜩 웅크린 자세로 바깥세상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그녀의 목소리는 마법의 주문과도 같다. 통한과 슬픔, 분노와 격정 그리고 발산하고 싶어도 마땅한 곳을 찾을 수 없어 떠도는 영혼들에게 그녀는 구원의 손짓을 보낸다. 어둡고 습한 곳에 자신을 숨기고 있지만 말고 잘못된 세상을 향해 분노를 터뜨리라고. 화를 내고, 하고 싶은 소리를 외치라고. 이제 너의 주장을 펴고 권리를 찾을 때라고. 속삭이듯 한탄하듯 때론 비단처럼 윤기 나게 때론 벨벳처럼 부드럽게 노래에 실어 전언한다. 본명은 유니스 웨이몬(Eunice Waymon), 가수 니나 시몬(Nina Siomone)으로 대중음악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그는 사우스캐롤라이나 트라이온에서 가난한 집안의 여섯 자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4살 때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 피아노신동으로 불린 그는 ‘유니스 웨이몬 기금’(Eunice Waymon Fund)을 설립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음악선생님의 도움으로 음악교육을 계속 받을 수 있었고 뉴욕 소재 줄리아드 음악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가정을 지탱하기위해, 그는 피아노반주자로 일을 시작해야만 했다. 1954년 여름 그는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에 있는 아일랜드 바의 연주자로 직업을 잡았는데, 바 주인은 그에게 노래도 잘하길 요구했다.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끊임없는 연습을 해왔던 유니스 웨이몬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아차릴 새도 없이 연예사업으로 들어섰다. 그는 이름을 니나(리틀 원)시몬으로 바꿨다.(1950년대 할리우드의 쟁쟁한 여배우들과 어깨를 겨룬 프랑스의 여배우 시몬 시뇨레(Simone Signoret)의 이름을 차용) 1950년대 후반, 니나 시몬은 베들레헴 레이블에서 최초의 트랙들을 녹음했다. 이 곡들에서 피아니스트, 가수, 편곡과 작곡가로서 그의 비범한 재능은 한층 더 빛을 발했다. ‘Plain gold ring’, ’Don’t smoke in bed’, ’Little girl blue’와 같은 노래들은 곧 그의 상연목록에서 스탠더드가 되었다. 오페라 (Porgy and Bess)의 곡 중 하나인 ‘I love you, Porgy’가 타운 홀, 카네기 홀 그리고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에서 불리고 히트를 기록하면서 나이트클럽 가수였던 그는 스타로 발돋움했다. 재즈스탠더드, 가스펠, 흑인영가, 클래식음악, 유래가 다양한 포크음악, 블루스, 팝, 뮤지컬과 오페라 송, 아프리카의 영창 게다가 자신이 직접 작곡한 곡까지, 이미 음악활동의 시작부터 창대했던 그는 준비된 스타였다. 기회는 당연한 만찬이었다. 클래식의 대위법, 재즈의 즉흥연주, 블루스의 변조 등 다방면의 음악요소를 결합해내는 시몬의 재능은 더 이상 무시될 수 없는 발군의 실력이었다. 독자적인 타이밍, 고요함의 음악적 극대화, 몇몇 코드로만 곡을 진행시키는 피아노연주 등의 방식으로 절제미가 돋보이는 자신만의 공연분위기를 주조해내는 실력은 가히 범접을 불허할 정도로 특징적이었으며 그의 여러 작품들에 녹아들었다. 때로 그의 목소리는 어둡고 가공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것에서부터 부드럽고 달콤한 것까지 변화무쌍한 스펙트럼을 과시했다. 잠시의 휴지와 반복 속에 그의 목소리는 외치고 속삭이고 또 한탄했다. 가끔은 피아노, 노래 소리, 몸짓이 따로 노는 것 같으면서도 하나의 결정체로 모아졌다. 다양한 방식으로 그는 청중들에게 주문을 걸었다. 여러 가지 주문 중 하나에만 걸려도 니나 시몬이 비교불허의 아티스트란 걸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마력에 청중들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1963년 버밍햄의 교회에서 터진 폭파사건으로 네 명의 흑인아이들이 사망하자, 니나는 미국에서 동족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비통함과 격노를 금치 못했고 곧 규탄의 의미를 담은 ‘Mississippi Goddam’(빌어먹을 미시시피)을 썼다. 이 노래의 강력한 호소력과 필립스 레코드에서 처음 녹음 발표한 < Nina Simone in Concert >에 실린 노래들은 그녀의 또 다른 예술적 지평을 보여주었다. 예술적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 자신만의 음색과 세심한 피아노연주에 심혈을 기울인 그는 사랑, 증오, 슬픔, 기쁨, 외로움 등 인간의 모든 감정을 노래에 실어 분명하게 전해주었다. 한때 커트 웨일(Kurt Weill)과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d Brecht)가 작곡한 노래 ‘Pirate Jenny’를 부르며 여배우로서 대극장을 순회하기도 했던 그는 프랑스에서 자끄 브렐(Jacques Brel)의 연약한 사랑노래 ’날 떠나지 말아요’(Ne me quitte pas)를 부르기로 했다. 니나는 ‘소울의 여대사제’로 불리며 팬들과 비평가들에 의해 신비로운 인물로 존경받음과 동시에 거의 종교계인사로 종종 오해를 사기도 했다. 1966년 흑인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시선을 네 명의 흑인여성들의 비애로 써낸 ‘네 여인들’(Four women)을 발표했는데, 이 노래는 흑인들에게 모욕적이라는 이유로 필라델피아와 뉴욕 라디오방송에서 금지되었다. 여대사제는 말씀전파에 적당한 음악을 찾기 위해 다른 길을 걸어갔다. RCA레이블로 옮겨 발표한 첫 앨범 < Nina Simone Sings The Blues >에 실린 ‘I want a little sugar in my bowl’, ’Do I move you?’, ’My man’s gone now’ 그리고 랭스톤 휴스(Langston Hughes)가 그녀를 위해 써준 시를 토대로 한 저항가요 ‘Backlash blues’를 포함해 더 많은 공민권운동가요를 불러 자신의 노선을 확증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의 비극을 노래한 ‘Why?(The King of Love is Dead)’을 위시해 ’Brown baby’, ’Images’(워링 쿠니의 시에 근거한), ‘Go limp’, ’Old Jim Crow’, ’To be Young, Gifted and Black’ 등의 노래들은 미국에서 흑인국민적인 찬가가 되었다. 그녀는 홀로 외롭게 노래하고 연주한 앨범 < Nina Simone and Piano ! >(1970)로 열성적인 팬들조차 놀라게 만들었다. 환생, 죽음, 고독 그리고 사랑에 대한 내성적인 노래들로 채운 모음집은 그녀의 녹음경력에 변함없는 하이라이트였다. 노래들에 새롭고 더 깊은 차원의 선물을 담아냈다. ‘Ain’t got no/I got life’(뮤지컬 “헤어”에서),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의 ’Suzanne’, ‘To love somebody’와 같은 비지스의 노래들, 봉고연주로 두 배의 속도감을 붙인 클래식 ’My way’, ‘Just like Thumb’s blues’ 그리고 네 곡의 밥 딜런의 노래들의 주목할 만한 버전들에는 더 새롭고 깊은 차원의 재능을 담아냈다. < Emergency Ward >는 절정의 선물이었다. 그녀는 조지 해리슨이 쓴 두 곡 ’My sweet lord’와 ‘Isn’t it a pity’의 긴 버전을 연주하면서 환각과 도피성을 배제한 분위기로 꾸몄다. 니나는 그러나 어쨌든 자유로워지고자 했다. 그녀는 자신이 조종당해 왔다고 느꼈고, 음반회사, 연예사업, 인종차별주의에 넌더리가 났다. 1974년 미국을 떠나 바바도스(Barbados)로 향한 그녀는 이듬해 리베리아, 스위스, 파리, 네덜란드에서 살다가 마지막으로 프랑스의 남부에 안착했다. 1978년엔 주디 콜린스(Judy Collins)의 ‘My father’를 정확한 해석으로 다시 부른 버전과 최면술을 거는 ’Everything must change’가 실린 새 앨범 < Baltimore >을 오랜만에 내놓았다. 그리고 1982년 미국으로부터 자진 “망명”을 선언한 자신의 마음을 노래로 표시한 앨범 < Fodder On My Wings >을 파리에서 녹음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결연한 의지가 여느 때보다도 잘 담긴 앨범이었다. 니나는 곡을 쓰고 개작하고 편곡했다. 피아노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며 영어와 프랑스어로 노래했다. 이 앨범은 1988년 그녀의 아버지의 죽음을 회상(추억)하는 노래 ‘Alone again naturally’의 특별버전을 포함한 몇몇 보너스트랙이 더해져 CD로 재발매 되었다. 1984년, 런던의 로니 스콧(Ronnie Scott)에서 열린 그녀의 콘서트실황을 담은 필름이 매혹적인 비디오로 발매되었다. 드럼에 폴 로빈슨(Paul Robinson)이 찬조 출연한 이 비디오에는 그녀의 첫 레코드에서 발췌한 노래 ‘My baby just cares for me’가 포함돼 큰 인기를 누렸다. 다음 해 < Nina’s Back >(니나의 귀환)이란 제목의 새 앨범을 발표한 그녀는 전 세계를 누비는 콘서트에 나섰다. 1989년 그녀는 피트 타운젠트(Pete Townsend)의 뮤지컬 < The Iron Man >에 공헌한 것을 시작으로 1990년과 1991년 브라질 팝가수 마리아 베사니아(Maria Bethania)와 아프리카음악의 세계화에 앞장선 유명 여성보컬리스트 마리암 마케바(Mariam Makeba)와 함께 녹음했다. 1991년엔 또한 자서전 < I Put A Spell On You >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프랑스, 독일 그리고 네덜란드어 번역본으로도 출판되었다. 1993년 스튜디오에서 만든 새 앨범 < A Single Woman >이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는 로드 맥퀸(Rod McKuen)의 노래들, 자신의 노래 ‘Marry me’, 프랑스의 스탠더드를 자기버전으로 부른 ’Il n’y a pas d’amour heureux’, 매우 감동적인 ‘Papa, can you hear me?’가 수록되었다. 그녀의 노래는 영화음악으로도 사용되었다. 레퍼토리 중 5곡이 사운드트랙에 들어간 1993년 영화 (Point Of No Return, The Assassin, code name: Nina로도 불린다)를 위시해 (1996)에 사용된 ‘I wish I knew how it would feel to be free’, (1996)에 삽입된 ’My baby just cares for me’ 그리고 (1997)의 ‘Exactly like you’까지 그의 목소리는 영화와 함께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다. 세월은 흘러도 그녀의 음악은 변함없이 새롭고 젊은 청취자들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Ain’t got no/I got life’는 1988년 네덜란드에서 대형히트를 기록했다. 그녀는 또한 자신의 뒤를 든든히 받쳐주는 절친한 반주자들, 퍼커션의 레폴도 플레밍(Lepoldo Fleming), 베이스의 토니 존스(Tony Jones), 드럼의 폴 로빈슨(Paul Robinson), 키보드의 하비에르 콜라도스(Xavier Collados) 그리고 기타리스트 겸 그녀의 음악 감독 알 섀크만(Al Schackman)과 함께 세계 순회공연을 펼치며 청중들과 함께 여전히 흥분의 순간을 맛봤다. 1997년 런던에 바비칸(Barbican) 극장에서 그는 공민권운동, 형제애를 위해 미국의 첫 번째이자 주요한 리더들 중 한사람에게 헌정하는 의미의 노래 ’Every Time I Feel The Spirit’을 불렀다. ‘Reached down and got my soul’, ’The blood done changed my name’, ’When I see the blood’와 같이 더욱 영가(Spiritual)적이고 생명과 같은 노래들이 뒤를 이었다. 니나는 1997년 프랑스에서 열린 니스 재즈 페스티벌(Nice Jazz Festival), 1998년 그리스의 의 데살로니가 재즈 페스티벌(Thessalonica Jazz Festival)의 하이라이트였다. 1999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 기네스 블루스 페스티벌에서는 그녀의 딸 리사 첼레스테(Lisa Celeste)와 함께 몇몇 곡을 듀엣으로 합창해 모녀의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시몬은 라틴 수퍼스타 라파엘(Rafael)과 함께 노래하고 두 번의 디즈니 연극 워크숍에 참여, 의 타이틀 역과 의 날라 역을 맡아 공연하면서 세계 투어를 했다. 1998년 7월 24일, 니나 시몬은 넬슨 만델라의 80회 생일파티에 특별손님으로 초대됐다. 1999년 10월 7일 그녀는 더블린에서 개최된 음악시상식에서 평생업적을 기리는 공로상을 품에 안았다. 2000년에 들어 그녀는 5월 26일 애틀랜타 명예 시민권을 수여받았다. 6월 9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아프리카계 미국인 음악 협회로부터 다이아몬드 상을 수상한데 이어 8월 7일에는 프랑스에서 명예로운 총사상을 수상했다. 닥터. 시몬은 2003년 4월 21일 프랑스 남부 까리-르-루에에 그녀의 별장에서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소망대로 유해는 아프리카의 여러 곳에 뿌려졌다. 매사추세츠대학으로부터 음악과 인류애에 대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바로 최후의 전승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역사적 지위를 얻었다. 최고의 여류시인, 우리시대의 음악작가로 그는 영원히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 있을 것이다.
노래 : The Staple Singers (더 스테이플 싱어즈)
노래 : Status Quo (스테튜스 큐오)
하드 록, 부기 록, 사이키델릭 록 밴드 하드 록, 부기 록, 사이키델릭 록 밴드
노래 : Jose Feliciano (호세 펠리치아노,Jose Montserrate Feliciano Garcia)
1980년대를 장식한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와 그 다음의 글로리아 에스테 그리고 세기말이었던 1999년에 쏟아져 나온 미끈했던 리키 마틴, 배우활동도 겸한 제니퍼 로페즈 그리고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아들 엔리케 이글레시아스 등은 영미 음악과는 색조가 다른 라틴 팝으로 유명한 가수들이다. 이제는 흑인보다 미국에서 인종비가 높은 히스패닉 계들의 음악이라 할 중남미의 라틴 팝은 1950년대에 국내에도 번안되어 애청된 곡 ... 1980년대를 장식한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와 그 다음의 글로리아 에스테 그리고 세기말이었던 1999년에 쏟아져 나온 미끈했던 리키 마틴, 배우활동도 겸한 제니퍼 로페즈 그리고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아들 엔리케 이글레시아스 등은 영미 음악과는 색조가 다른 라틴 팝으로 유명한 가수들이다. 이제는 흑인보다 미국에서 인종비가 높은 히스패닉 계들의 음악이라 할 중남미의 라틴 팝은 1950년대에 국내에도 번안되어 애청된 곡 ‘베사메무초’ ‘키엔 세라’가 말해주듯 특유의 낭만적인 리듬과 애조 띤 멜로디를 생명으로 구미사회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오래 전부터 인기를 누려왔다. 라틴 팝 하면 상기한 이름들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원조는 그들보다 훨씬 거슬러 올라가 1960년대 후반 미국시장을 강타한 시각장애자 가수 호세 펠리치아노(Jose Feliciano)라고 할 수 있다. 해마다 12월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길거리 스피커와 라디오 전파를 뒤덮는 곡 ‘펠리즈 나비다드(Feliz Navidad-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뜻)’를 부른 주인공이 바로 호세 펠리치아노다. 이 곡 말고도 그는 국내에서 ‘한때 사랑이 있었지(Once there was a love)’와 ‘집시(The gypsy)’, ‘레인(Rain)’, ‘케 사라(Che sara)’, ‘내추어 보이(Nature boy)와 같은 골든 팝송으로 일세를 풍미했다. 상기한 노래 대부분은 국내에서는 라디오 전파를 잠식하며 절대적인 호응을 누렸지만 본고장 팝 팬들이 기억하는 곡들은 아니다. ‘레인’의 경우도 빌보드 차트에서 76위에 그쳤다. 심지어 외국에서는 전혀 싱글로 발표되지 않은 앨범의 수록곡 가운데 우리 정서에 맞는 것들을 당대의 음악다방과 라디오 디스크자키들이 골라내 인구에 회자시킨 것이다. 말하자면 ‘한국적 팝송’이다. 디제이들이 이 곡들을 숨겨진 보물 찾듯이 발굴한데는 ‘그 애조 띤 멜로디와 낭랑한 어쿠스틱 기타 음을 분명히 우리의 팝팬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믿음에 기초했을 것이다. 그럼 미국에서는 어떤 곡들이 사랑 받았을까. 그는 음악계에 데뷔한 1968년 그때부터 딴 가수들이 부른 것을 특유의 감성으로 놀랍게 바꿔낸 ‘리메이크’ 노래들로 명성을 떨쳤다. 우선 1967년 여름에 발표되어 수 주간 전미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대중화된 록그룹 도어스(Doors)의 명곡 ‘내 불을 밝혀라(Light my fire)’를 들 수 있다. 호세 펠리치아노는 1년도 지나지 않은 이듬해 초에 이 곡을 다시 불러 내놓았다. 재해석해낸 곡의 질감은 원곡과는 영 딴판이었다. 능란한 어쿠스틱 기타연주를 바탕으로 로맨틱하면서도 클라이맥스에서 솟아오르며 사정없이 뿌려대는 보컬에 사람들은 놀라움을 넘어 기겁했을 정도였다. 도어스의 곡과 다르기로 따지면 거의 환골탈태 아니면 둔갑 수준. 사이키델릭 곡이 단숨에 라틴 팝이 되어 나온 것이다. 호세 펠리치아노의 ‘Light my fire’는 리메이크임에도 불구하고 전미차트 3위를 오르며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음악 팬들이 원작의 단순 재해석이 아닌 호세 펠리치아노 그만의 독창적 개조로 받아들인, 다시 말하면 그의 독자적 표현세계를 인정해준 덕분이었다. 지금도 호세 펠리치아노의 ‘내 불을 밝혀라’는 팝 역사상 가장 득의에 찬 리메이크 곡으로 꼽힌다. 국내 팝 팬들은 마찬가지 이유로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California dreaming)’이나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의 ‘Susie Q’ 그리고 산레모 가요제 입상곡인 ‘케 세라’ 등을 오리지널 이상으로 호세 펠리치아노의 독창적인 버전으로 즐겨들었다. 이번 예술의 전당 공연에서도 관객들은 오리지널 가수의 목소리로 이미 많은 대중들에게 익히 알려진 유명 팝송들을 -비틀스의 ‘Yesterday’, 사이먼 앤 가펑클의 ‘El condor pasa’, 바비 헵의 ‘Sunny’, 더스티 스프링필드 ‘The windmills of your mind’- 완전히 그의 것으로 새롭게 주조해내는 호세 펠리치아노의 노래에 감탄할 것이다. 호세 펠리치아노가 이처럼 상대적으로 리메이크 노래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아티스트와 뮤지션으로 융숭하게 대접하는 것은 리메이크가 새로운 창조임을 웅변해냈기 때문이다. 역사에 기록된 리메이크 사례로는 그가 떠오른 해였던 1968년 10월7일 야구 월드시리즈 5번째 게임에서 초대가수로 부른 미국 국가(Star-spangled banner)가 꼽힌다. 어쿠스틱 기타로 워낙 ‘괴상하게’ 부른 바람에 국가를 신성시하는 미국의 국수주의자들과 보수진영으로부터 거친 항의를 받은 것이다. 하지만 이 경기장 라이브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인기차트에도 올라 전미 차트 50위에 오르는 히트를 쳤다. 호세 펠리치아노는 그해 그래미상의 최우수신인상을 수상했다. 1945년 푸에르토리코 생인 그의 주특기는 호소력 있는 얇은 고음의 보컬 외에 낭랑한 어쿠스틱 기타의 울림이다. 선천성 녹내장으로 앞을 볼 수 없는 불리를 타고난 재능과 하루 14시간씩 연습하는 노력을 통해 빼어난 기타연주자로 거듭났다. 이름 앞에 거물 기타리스트(virtuoso guitarist)라는 수식이 모든 공식자료에 붙을 정도. 기타전문지들에 의해 수도 없이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40년 넘게 어쿠스틱 기타분야의 전설로 숭앙받으며 지금도 라틴 음악에 관한 한 ‘일렉트릭 기타는 산타나, 어쿠스틱 기타는 호세 펠리치아노’라는 일반의 인식을 확립했다. 그의 발표 곡 가운데는 ‘Fireworks’ ‘Pegao’ 등 기타 연주곡들이 많다. 라틴 기타연주자로서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은 그의 대중적 인기가 떨어진 1980-1990년대에서도 전문가들의 존경이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는 1983년 ‘Me enamore’, 1986년 ‘Lelolai’, 1989년 ‘Cielito’, 1990년의 ‘Por que te tengo que olvidar?’로 그래미 최우수 라틴 팝 퍼포먼스 상을 무려 네 차례나 수상했다. 2000년대에도 그는 계속적인 월드투어를 통해 팬들에게 라틴 음악의 로맨티시즘을 전달하는 동시에 과거의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꾸준히 신보를 발표하고 있다. 그가 연주하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 ‘음악에 대한 헌신’과 ‘음악을 향한 열정과 즐거움’이 고스란히 드러나 감동이 배가된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처럼 그는 재능과 노력 그리고 낙천적인 사고로서 예술가의 전형을 확립했다. 우리가 너무도 좋아했던 곡 ‘집시’를 통해 그의 음악 하는 자세를 확인할 수 있다. ‘난 노래를 연주하고 음반을 만들어 돈을 받는 그런 집시죠/ 난 순회하는 무리의 일부예요/ 난 온 땅을 돌아다니죠/ 내 동료를 위해 곡을 만들어주고/ 슬프고 때로는 행복한 음으로 모든 곡을 쓰고 연주해요/ 어떤 곡은 사람들을 웃기고/ 어떤 곡은 사람들을 울리죠/ 왜 그렇게 되는지는 몰라요/ 하지만 난 끝없이 음악 여행을 계속해요/ 내 기타가 낡고 쉬 고되더라도...’ 이번 내한공연에서 팬들은 그가 남긴 무수한 추억의 골든 팝, 공연장에 울림을 가져다줄 상쾌한 보컬 그리고 라틴 기타 연주의 환상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진정한 뮤지션이 전하는 헌신과 즐거움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라틴 팝가수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호세 펠리치아노의 재능과 존재감을 넘어설 인물은 없다. 우리는 세기말에 유행을 타고 우후죽순 쏟아진 라틴 팝가수들이 아닌, 그보다 훨씬 전에 등장한 호세 펠리치아노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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