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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앤비 음악 모음집 (The Classic R&B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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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알앤비 음악 모음집 (The Classic R&B Collection)

알 켈리, TLC, 어셔, 크랙 데이빗, 저스틴 팀버레이크, 휘트니 휴스턴, 알리야, 존 레전드 등

[ 3CD ]
Luther Vandross, Donell Jones, John Legend, R. Kelly, Ginuwine 노래 외 49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SonyMusic | 2017년 06월 26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204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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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앤비 음악 모음집 (The Classic R&B Collection)

이 상품의 시리즈 (5개)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7년 06월 26일
제조국 EU

관련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Disc1
  • 01 Never Too Much - Luther Vandross
  • 02 I Don't Care - Raheem DeVaughn
  • 03 U Know What's Up - Donell Jones
  • 04 Used to Love U - John Legend
  • 05 Ignition - R. Kelly
  • 06 Pony - Ginuwine
  • 07 I've Got a Little Something for You - MN8
  • 08 Cry Me a River - Justin Timberlake
  • 09 No Scrubs - TLC
  • 10 My Love Is Your Love - Whitney Houston
  • 11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 Fugees
  • 12 Ms. Jackson - OutKast
  • 13 Westside - TQ
  • 14 U Got It Bad - Usher
  • 15 Rendezvous - Craig David
  • 16 If There's Any Justice - Lemar
  • 17 Charlene - Anthony Hamilton
  • 18 How You Gonna Act Like That - Tyrese
  • 19 The Color of Love - Boyz II Men
Disc2
  • 01 Love Sex Magic - Ciara feat. Justin Timberlake
  • 02 Gotta Work - Amerie
  • 03 I Will Never Let You Down - RITA ORA
  • 04 Give Me Everything - Pitbull feat. Ne-Yo, Afrojack & Nayer
  • 05 Breathe - Blu Cantrell feat. Sean Paul
  • 06 If You Had My Love - Jennifer Lopez
  • 07 Boy You Knock Me Out - Tatyana Ali
  • 08 Spotlight - Jennifer Hudson
  • 09 No More - Ruff Endz
  • 10 I Wanna Know - Joe
  • 11 Pretty Wings - Maxwell
  • 12 Gettin' Grown - Cee-Lo
  • 13 Too Close - Next
  • 14 When I See U - Fantasia
  • 15 Ice Box - Omarion
  • 16 Bleeding Love - Leona Lewis
  • 17 Try Sleeping with a Broken Heart - Alicia Keys
  • 18 Breathe Again - Toni Braxton
  • 19 Anything - 3T
Disc3
  • 01 Girlfriend - B2K
  • 02 Nobody Knows - The Tony Rich Project
  • 03 Let Me Love You - Mario
  • 04 Wish I Didn't Miss You - Angie Stone
  • 05 Beautiful Girls - Sean Kingston
  • 06 Right Here - SWV
  • 07 Back & Forth - Aaliyah
  • 08 After Party - Koffee Brown
  • 09 Freak Me - Another Level
  • 10 What a Girl Wants - Christina Aguilera
  • 11 Like You - Bow Wow feat. Ciara
  • 12 Work - Kelly Rowland
  • 13 Everybody in Love - JLS
  • 14 There You Go - P!nk
  • 15 Sure Thing - Miguel
  • 16 No Air - Jordin Sparks feat. Chris Brown
  • 17 They Don't Know - Jon B.
  • 18 If You Love Me - Brownstone
  • 19 Let's Get Married - Jagged Edge
  • 20 Nobody's Supposed to Be Here - Deborah Cox
  • 21 Nothing's Real but Love - Rebecca Ferguson

아티스트 소개 (54명)

노래 : Luther Vandross (루더 밴드로스,Luther Ronzoni Vandross)
흑인 남성 싱어 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로 입지전적인 위치를 다진 루더 밴드로스(Luther Vandross)는 본격적인 캐리어를 쌓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왕성한 음악 활동을 펼치면서 20세기 후반 리듬 앤 블루스를 언급하는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거물급 인사가 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이후 그의 노래들이 빌보드 싱글 차트의 높은 순위에 오르면서 알려졌다. 제작자로서 그에 대한 평가는 스티비... 흑인 남성 싱어 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로 입지전적인 위치를 다진 루더 밴드로스(Luther Vandross)는 본격적인 캐리어를 쌓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왕성한 음악 활동을 펼치면서 20세기 후반 리듬 앤 블루스를 언급하는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거물급 인사가 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이후 그의 노래들이 빌보드 싱글 차트의 높은 순위에 오르면서 알려졌다. 제작자로서 그에 대한 평가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나 프린스(Prince), 테디 라일리(Teddy Riley) 등과 동등한 위치에서 언급되고 있으며 초코 우유처럼 감미로운 그의 테너와 바리톤의 중간 음색으로 그려지는 가창력은 현존 최정상임을 입증한다. 1951년 4월 20일 뉴욕에서 태어난 이 재능 있는 뮤지션은 샘 쿡(Sam Cooke),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같은 소울 가수들의 음반들을 들으며 음악적인 진실함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채득했다. 1970년대에는 선배 가수들의 백보컬 활동과 TV 광고 노래를 부름으로서 음악 생활을 시작했다. 1981년, 루더 밴드로스는 첫 번째 정규 앨범 < Never Too Much >를 자신이 직접 어레인지와 제작을 담당해 음악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음반 제작을 관장하는 흑인 아티스트가 드물었기 때문에 루더 밴드로스의 처녀작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에 대한 호평으로 그는 1980년대 초반 ‘소울의 영왕’ 아레사 프랭클린을 위해 퓨젼 재즈 베이시스트 마커스 밀러(Marcus Miller)와 파트너가 되어 ‘Jump to it(24위)’, ‘Get it right(61위)’ 등을 작곡하고 음반을 제작하면서 그녀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이후 이들의 관계는 음악적인 파트너쉽을 넘어 인간적인 우정으로 지속된다. 1980년대를 활동하면서 모두 6장의 정규 음반을 발표했지만 싱글 종합 차트와 국내에서의 반응은 흑인 음악 차트에 비해 폭발적이지는 못했다. 데뷔 곡 ‘Never too much(33위)’, 댄서블한 ‘Stop to love(15위)’와 ‘She won’t talk to me(30위)’, 그리고 ‘Give me the reason(57위)’과 ‘Any love(44위)’ 등이 주로 차트의 허리권에서 멤돌다가 사라지곤 했었다. 1990년대가 밝아오면서 루더 밴드로스는 지난 10년을 재조명하는 베스트 음반을 발표했다. 이 앨범에 수록된 신곡 ‘Here and now(6위)’가 최초로 Top10에 랭크되면서 20세기의 마지막 10년을 화려하게 장식할 준비를 시작했다. 1991년의 < Power Of Love >는 싱글 ‘Power of love/Love power(4위)’와 ‘Don’t want to be a fool(9위)’의 호 성적으로 그의 앨범들 중에서 가장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1992년에는 영화 < 모 머니 >에 수록된 ‘The best thing in life are free(10위)’를 자넷 잭슨(Janet Jackson)과 함께 호흡을 맞추었고 1994년에는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와 함께 ‘Endless love(2위)’를 리메이크 했다. 루더 밴드로스의 음악 스타일과 역량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친절하게 멜로디를 살려주는 그의 노래들은 화음보다 최소한의 리듬을 강조하는 현재의 흑인 음악의 트랜드와 다소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지금, 그의 음악이 발전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정체하고 있는 것처럼 비추어 지는 면이 없지 않지만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은 한 번도 식은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음악은 언제든지 사랑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R&B, 소울 가수 R&B, 소울 가수
알 켈리(R. Kelly)는 1990년대 베이비페이스(Babyface)와 더불어 흑인음악 최고의 프로듀서로 활약하며 어번 알앤비(Urban R&B), 뉴잭/질스윙(New Jack/Jill Swing)의 확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뮤지션이다. 1969년 1월 8일 시카고 외각의 사우스 사이드(South Side)에서 태어난 알 켈리(본명: Robert Kelly)는 흑인 빈민가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아버... 알 켈리(R. Kelly)는 1990년대 베이비페이스(Babyface)와 더불어 흑인음악 최고의 프로듀서로 활약하며 어번 알앤비(Urban R&B), 뉴잭/질스윙(New Jack/Jill Swing)의 확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뮤지션이다. 1969년 1월 8일 시카고 외각의 사우스 사이드(South Side)에서 태어난 알 켈리(본명: Robert Kelly)는 흑인 빈민가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아버지가 가정을 버리고 떠나 홀어머니와 살아야 했으며, 흑인 갱들과 어울리다 총상을 입는 등 그의 유년기는 저질 흑인 빈민의 삶이었다. 저급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농구선수의 꿈을 키워나가던 그는 레나 맥린(Lena McLin)이라는 음악 선생님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게 되고 어머니가 선물한 키보드를 가지고 뮤지션으로서의 도전을 시작한다. R&B 그룹 MGM을 결성한 그는 거리 공연을 통해 시카고 다운타운 최고의 뮤지션으로 성장해 간다. TV 음악 컨테스트인 < Big Break >에 출연하여 우승하는 등 지명도를 더해 나가던 알 켈리는 결국 자이브(Jive) 레코드의 웨인 윌리엄즈(Wayne Williams)의 눈에 들게 되었고, 1992년 데뷔 앨범 < Born Into The 90’s >를 발표했다. 데뷔는 성공적이었다. 첫 싱글 ’She’s got that vibe’가 R&B 차트에서 선전하며 눈길을 끌었고, 이어지는 ’Honey love’, ’Slow dance(Hey Mr. DJ)’가 연이어 R&B 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초대형 R&B 뮤지션의 탄생을 알렸다. 데뷔 이듬해인 1993년 발표된 두 번째 앨범 < 12 Play >는 신인급 뮤지션 알 켈리를 R&B 정상의 인기 뮤지션으로 끌어올린다. 70년대 펑키(Funky)스타일과 90년대 힙합을 결합한 알켈리적 사운드가 위력을 발휘했고, 달콤하게 애원하는 발라드 곡 ’Bump n’ grind’가 싱글 차트에서 4주, R&B 차트에서 12주간 정상을 지키며 음악계를 강타했다. 솔로 뮤지션으로서 정상의 자리에 오른 알 켈리는 프로듀서로서의 또 다른 정상을 향해 순항을 시작한다. 1994년 알리야(Aaliyah)의 데뷔 앨범 < Age Ain’t Nothin’ But A Number >를 프로듀싱하며 15세 소녀 가수를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알리야를 통해 뉴잭/질 스윙의 선두주자로 부상한 알 켈리는 이후 자신의 앨범은 물론 다른 뮤지션들의 앨범에 참여하여 R&B 최고의 프로듀서로 자리하며 어번(Urban) R&B의 흐름을 주도한다. 1995년 ’You are not alone’을 프로듀싱하여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에게 차트 정상의 기쁨을 선사하기도 했던 그는 토니 브랙스턴(Toni Braxton),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자넷 잭슨(Janet Jackson), 메리 제이 블라이지(Mary J. Blige), 보이즈 투 멘(Boyz II Men) 등 거의 모든 정상급 어번 R&B 뮤지션들의 앨범에 참여하며 프로듀서로서 맹활약했다. 1995년 발표한 3집 앨범 < R. Kelly >는 상업적으로 음악적으로 모두 성공을 거두며 알 켈리 최고의 앨범으로 자리했다. 4백만장 이상이 팔려 나갔고, 발표한 세 장의 싱글 ’You remind me of something’, ’Down low(Nobody has to know)’, ’I can’t sleep baby(If I)’가 모두 플래티넘을 기록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앨범은 노골적으로 성적 유혹에만 치중한 전작과 달리 기독교인으로서의 자세를 담았고, 고급스러움과 저속함을 동시에 담아내는 그 만의 독특한 매력이 빛을 발한다. 1996년 영화 < Space Jam > 수록 곡 ’I believe I can fly’가 차트 정상에 오르며 전 세계에 알 켈리의 이름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고, 이 곡으로 그래미(Grammy) 3개 부문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영화 < Batman & Robin >의 사운드 트랙에 참여하여 ’Gotham city’를 연이어 히트시킨 알 켈리는 당시 최고의 인기 여가수였던 셀린 디욘(Celine Dion)과의 듀엣 곡 ’I’m your angel’을 발표하며 다시금 차트 정상을 밟는다. 싱글 ’I’m your angel’의 여세를 몰아 발표한 4집 < R. >(1998)은 더블 앨범에 30여 곡이 수록되었고, 퍼프 대디(Puff Daddy), 나스(Nas), 제이-지(Jay-Z) 등 화려한 게스트들이 힘을 보탰음에도 불구 평단으로부터 냉담한 반응을 얻었고, 이후 큰 히트 싱글 또한 만들어 내지 못했다. 유명 아티스트들의 참여가 알 켈리 특유의 매력을 감소시켰고, 자신의 이름에 대한 중압감 때문인지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전작에서의 흔들림을 감안한 듯 2000년 발표한 < TP-2.com >은 대중성 강했던 < 12 Play >로 회귀하며 달콤함으로 앨범을 채웠다. ’I wish’, ’The storm is over now’, ’Fiesta’ 등이 고루 인기를 얻었지만 이 앨범 역시 R&B 최고의 뮤지션 알 켈리에게 특별한 히트 싱글 하나 가져다 주지 못했다. 알 켈리는 2002년 < R. >앨범에서 함께 했던 제이-지(Jay-Z)와 다시 한 번 손을 잡고 < The Best Of Both Worlds >를 발표하는 등 슬럼프로 접어드는 힘겨운 시기를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노래 : Justin Timberlake (저스틴 팀버레이크)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는 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틴팝 씬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보이밴드 중 하나인 엔싱크(Nsync)의 프론트맨이다. 게다가 지난 2002년에는 솔로 데뷔작 < Justified >을 발표하면서 독자적인 활동도 모색하고 있다. 그룹과 솔로를 모두 아우르려는 모험에 도전한 것이다. 1981년 미국 테네시주의 멤피스 지방에서 출생한 저스틴은 브리트니 스피어...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는 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틴팝 씬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보이밴드 중 하나인 엔싱크(Nsync)의 프론트맨이다. 게다가 지난 2002년에는 솔로 데뷔작 < Justified >을 발표하면서 독자적인 활동도 모색하고 있다. 그룹과 솔로를 모두 아우르려는 모험에 도전한 것이다. 1981년 미국 테네시주의 멤피스 지방에서 출생한 저스틴은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 등과 함께 어린 시절 디즈니 채널의 미키마우스 클럽에 출연하면서 ‘엔터테이너’로써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이후 1996년에 엔싱크에 참여했고, 2년 뒤인 1998년에 엔싱크의 첫 음반 < ’Nsync >가 발표되었다. 데뷔 음반에서는 ‘I want you back’가 준(準)히트를 기록했다. 1999년 발표된 2집 < No Strings Attached >는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결과를 얻었다. ‘Bye bye bye’, ’It’s gonna be me’ 등의 박진감 넘치는 댄스곡들은 메가 히트를 달성하였고, 음반은 2주일만에 더블 플래티넘을 획득할 정도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틴에이저들의 절대적 지지를 등에 업은 가공할 만한 엔싱크의 파워는 당시 인기 정상에 올라있던 백스트리트 보이스(Bakcstreet Boys)를 차츰 뒷골목으로 몰아넣었다. 저스틴의 재능이 본격적으로 발휘되기 시작한 것은 3집 < Celebrity >(2001년)부터. 작곡가로써, 공동 프로듀서로써 저스틴의 이름을 크레디트에 올리기 시작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첫 싱글이었던 ’Pop’, ‘Celebrity’, ‘Gone’등의 주요 곡들을 포함한 7곡이 저스틴의 손으로 만들어졌고, 다섯 곡을 공동 프로듀싱했다. 그러나 엔싱크는 어디까지나 풍선껌처럼 언제 터져 버릴지 모르는, 변덕스러운 10대들의 버블검 밴드였다. 슈퍼급 보이밴드 백스트리트 보이스의 인기가 점차 시들해져가면서 엔싱크도 같은 전철을 밟으려 하고 있었다. 특히 독립을 꿈꾸던 저스틴에게 틴에이저들의 트렌드를 지향해야하는 보이밴드에서 자신의 음악적 포부를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저스틴은 솔로로 나섰다. 그 스스로 굉장히 열심히, 그리고 마음껏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하는 첫 솔로 음반 < Justified >는 < Celebrity >에서 보여주었던 재능을 한층 발전시켜 아티스트로써의 가능성 또한 내비친 작품이었다.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넵튠스(The Neptunes)와 팀발랜드(Timbaland), 그리고 브라이언 맥나이트(Brian McKnight)의 음반 작업 참여 또한 데뷔 음반의 퀄리티를 높여주는데 큰 몫을 했다. 이에 힘입어 음악 전문지 < 롤링스톤 >은 2002년을 빛낸 음반 중 하나로 저스틴 팀벌레이크의 < Justified >를 선정하기도 했다. 이제 문제는 연령층이다. 저스틴의 음악은 다분히 십대 후반과 이십대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부분의 팬 층은 얼굴에 솜털도 채 가시지 않은 틴에이저들이기 때문이다. < 타임 키즈 매거진 > 등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한 ‘보이밴드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어 내기가 어렵다. 대형 아티스트로 도약하려하는 저스틴에게 지금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팬 연령 스펙트럼의 확대이다.
1990년대 ‘걸 그룹 붐’의 한복판에 서있던 TLC는 음악은 물론이고 신선한 발상의 전환이 돋보이는 여성 트리오다. 톡톡 튀는 힙합과 말랑말랑한 팝이 절묘하게 녹아든 이들의 음악은 팝계 최고의 남성 작곡가와 프로듀서의 작품이다. 하지만 이들은 결코 만만하게 그 남성들, 또 그들이 지배하는 사회의 종속물로 흡수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같은 남성들을 마음껏 비웃으며 자유자재로 요리하는 것이 바로 TLC의 스타일이다... 1990년대 ‘걸 그룹 붐’의 한복판에 서있던 TLC는 음악은 물론이고 신선한 발상의 전환이 돋보이는 여성 트리오다. 톡톡 튀는 힙합과 말랑말랑한 팝이 절묘하게 녹아든 이들의 음악은 팝계 최고의 남성 작곡가와 프로듀서의 작품이다. 하지만 이들은 결코 만만하게 그 남성들, 또 그들이 지배하는 사회의 종속물로 흡수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같은 남성들을 마음껏 비웃으며 자유자재로 요리하는 것이 바로 TLC의 스타일이다. 남성들과 동등해질 여성들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그 구도 자체를 허무는 것이며 차라리 그 구도를 역전시키는 것이었다. 솔트 앤 페파나 엔 보그 같은 선배 여성그룹들에게 영향받았을 법한 이들의 자유분방하고 솔직한 태도는 이미 페미니즘이나 성 담론의 차원을 넘어선다. 천방지축 장난기 어린 모습으로 등장했던 데뷔시절부터 성숙한 여인의 모습을 지나 사이버 여전사의 모습으로 변신한 최근까지 이들의 남성 상은 한결같다. 이들에게 남성은 즐거움의 상대인 동시에 언제나 계도대상이며 한 수 아래인 존재다. 데뷔앨범 이 전하는 메시지는 바람기 많은 남자친구를 다루는 방법이며, 2집의 히트곡 ‘Creep’은 자신에게 충실하지 못한 남자에게 여자의 한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주는 곡이다. 또 3집의 히트곡 ‘No scrubs’는 여자에게 의존해 사는 찰거머리 같은 남자를 차버린다는 가사를 담았다. 남자들 입장에서 본다면 내심 가슴 떨리는 내용들이다. 이러한 가치전복(?)적 마인드가 담긴 ‘여성찬가’는 그러나 그리 과격하지 않은 형태로 전달된다. 재미있는 상상력으로 접근하는 TLC의 메시지는 섹시하고 사랑스럽게 들린다. 그만큼 이들의 음악은 거부감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이것이 남들과 구별되는 이들만의 뛰어난 능력이다. 비록 그것이 치밀한 계산의 산물일지라도 발상이 새로운 이들의 메시지와 남들이 다 속을 정도로 완벽한 이들의 모습은 분명 감탄할 만한 의미를 지닌다. 티 보즈(T-Boz), 레프트 아이(Left Eye), 칠리(Chilli)로 이뤄진 TLC는 1991년 미국의 애틀랜타에서 결성되었다. R&B 여성 가수 페블스(Pebbles)에 의해 발탁된 이들은 댈러스 오스틴과 베이비페이스의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1992년 데뷔작 을 발표했다. 넝마 같은 힙합 바지를 입은 장난꾸러기 모습으로 데뷔한 이들은 급속도로 팝 음악계를 잠식했다. 수록곡 ‘Ain`t 2 proud 2 beg’(6위), ‘Baby-baby-baby’(2위), ‘What about your friend’(7위)가 연이어 싱글차트를 휩쓸며 ‘여성의 즐거움’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이어 1994년에는 2집 이 발매되었다. 개구쟁이 소녀에서 깔끔한 숙녀로 변모한 이들은 관능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며 전작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성공을 맛봤다. 힙합과 팝, 소울이 가미된 이 앨범은 3곡이나 정상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고, 그래미상, 빌보드 어워즈, MTV 어워즈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1천만 장이 넘게 팔린 그 앨범은 또한 지난 세기에 가장 많이 팔린 힙합 앨범으로 선정되었다. 이들은 공연패션으로 콘돔의상을 입고 나와 충격을 주는 등 남다른 상상력을 이어갔다. 그 같은 성공 여파로 이들은 이후 장기간 휴지기에 들어가서 해체 의혹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1999년 3집 을 출시하며 팬들에게 복귀했다. 전작들과 음악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관록의 TLC답게 일정수준 이상의 노래들을 선보였다.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싱글 ‘No scrubs’와 ‘Unpretty’를 차트정상에 등극시키며 저력을 과시했다. 사이버 시대답게 앨범 커버와 외모를 사이버 패션으로 장식해서 이목을 끌기도 했다. TLC는 완벽한 팝 사운드와 넘치는 끼로 여성그룹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 비록 그 성공의 절반은 LA 리드&베이비페이스, 지미 잼&테리 루이스, 저메인 듀프리, 댈라스 오스틴 같은 막강 프로듀서들의 몫이지만 TLC의 눈부신 활약은 그 절반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다. 적어도 마초적 남성사회에게 구속되지 않고 오히려 역습하는 이들의 재기는 분명 그들 자신의 공로다.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은 1980, 1990년대 남성들에 의해 주도되던 메탈의 포화를 뚫고 스탠다드 팝 시장을 개척해 낸 대표적인 ’디바’ 뮤지션이다. 휘트니 휴스턴은 1963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났다. 알앤비 가수 씨시 휴스턴(Cissy Houston)의 딸이었으며 시대를 풍미한 여가수 디온 워윅(Dionne Warwick)이 친척이었던 그녀는 어려서부터 대형 가수들을 옆에서 지켜볼 수 ...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은 1980, 1990년대 남성들에 의해 주도되던 메탈의 포화를 뚫고 스탠다드 팝 시장을 개척해 낸 대표적인 ’디바’ 뮤지션이다. 휘트니 휴스턴은 1963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났다. 알앤비 가수 씨시 휴스턴(Cissy Houston)의 딸이었으며 시대를 풍미한 여가수 디온 워윅(Dionne Warwick)이 친척이었던 그녀는 어려서부터 대형 가수들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고, 어머니의 재능을 이어받아 어려서부터 성가대에서 노래하며 그 실력을 뽐냈다. 수려한 외모까지 겸비한 휘트니는 10대의 나이에 이미 모델, 배우, 가수의 세 가지 활동을 병행하고 있었다. 샤카 칸(Chaka Khan) 등의 백업보컬로 또 클럽에서 가수로 활동하던 그녀는 1982년 19살의 어린 나이에 폴 자바라(Paul Zabara)의 ’Eternal love’라는 곡에 보조 보컬로 참여하며 처음으로 정식 음반 녹음에 참여한다. 이듬해 아리스타(Arista)와 계약을 체결했고, 그녀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레코드사는 데뷔 앨범에 27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자하며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1985년 데뷔앨범 < Whitney Houston >은 흑인 디바 시대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앨범은 14주간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오르며 솔로 아티스트의 데뷔 앨범 중 가장 오랜 기간 1위에 머무른 앨범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세계적으로 2,300만장이라는 경이적인 앨범 판매를 이루어내며 데뷔 앨범 하나로 팝계 최고의 여가수로 자리하게 된다. 앨범 내에서는 ’Saving all my love for you’, ’How will I know’, ’Greatest love of all’(조지 벤슨의 곡 리메이크)의 세 곡이 연속해서 차트 정상에 오르고, 앨범의 경이적인 성공으로 86년 그래미와, 86,87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를 차지한다. 1987년 그녀는 두 번째 앨범 < Whitney >를 통해 전작의 인기를 이어간다. 전작보다 비트감을 더한 이 앨범 역시 대단한 성공을 일구어 낸다. 발매 첫 주에 미국과 영국차트에서 동시에 1위에 오르는데 팝 역사상 처음으로 이룩한 기록이었다. 앨범은 차트 정상에 11주간 머물렀으며 세계적으로 2,000만장이 팔려나갔다. 싱글들의 인기도 대단해서 ’Wanna dance with somebody(Who loves me)’, ’Didn’t we almost have it all’, ’So emotional’, ’Where do broken hearts go’ 네 곡이 연속해서 차트 정상을 밟으며 이전 앨범부터 7개의 싱글이 연속해서 정상을 밟는 대 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 앨범으로 또다시 1988년 그래미를 거머쥐었고, 역시 88년, 89년의 아메리칸 뮤직어워드를 수상한다.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 같은 정통 소울 아티스트들로부터 음악적 영감을 얻었던 그녀이지만 1,2집에서 보여준 음악은 대중성이 지나치게 강조된 흑, 백의 사운드가 뒤섞인 음악이었다. 자신도 그런 자신의 음악에 만족하지 못했는지 1990년 발표한 세 번째 앨범 < I’m Your Baby Tonight >에서는 대중성을 신경 쓰지 않고 정통 소울 음악으로 변신을 시도한다.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루떠 반데로스(Luther Vandross)등과 함께 작업하는 등 흑인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에 집착했던 이 앨범은 역시 이전 앨범들만큼의 성공을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I’m your baby tonight’, ’All the man that I need’가 1위에 올랐고, 앨범은 전 세계 1,200만장의 판매를 기록하는 등 여전히 그 인기는 대단했다. 세 장의 정규 앨범 이후 그녀는 영화 배우로의 변신을 시도하며 세 장의 사운드 트랙을 연속 발표한다. 시작은 < 보디가드 >였다. 1992년 케빈 코스트너와 함께 출연한 ’보디가드’의 사운드 트랙에서 6곡을 노래했고, 이는 팝 역사에 길이 남을 경이적인 상업적 성공을 이끌어낸다. 첫 싱글 ’I will always love you’(돌리 파튼의 곡을 리메이크)는 차트 정상에 14주간 머물렀으며, 앨범은 20주간 1위를 지켰고, 세계적으로 3,500만장이라는 어마어마한 판매고를 기록한다. 1994년 그녀는 다시 한 번 그래미를 거머쥐었고,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는 8개 부문 수상이라는 대 기록을 세우게 된다. 1995년 휘트니 휴스턴은 다시 한 번 사운드 트랙에 참여한다. 자신이 주연한 < Waiting for Exhale >의 사운드 트랙에 3곡을 수록하면서 영화와 앨범의 성공에 기여한다. 이 앨범은 노장 흑인 여가수들과 신예 흑인 여가수들이 총 동원되어 만들어졌으며, 프로듀서로 참여한 베이비페이스(Babyface)는 그래미 12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영예를 누리게 된다. 1996년 그녀는 영화 < The Preacher’s Wife >에서 주연을 맡으며 다시 한 번 사운드 트랙에 참여한다. 14곡을 자신이 직접 맡은 이 앨범은 가스펠 위주의 곡들로 채워져 있으며 대중성보다는 종교적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어 앨범판매에 있어서는 그다지 큰 성공을 이끌어내지 못하였다. 정규 앨범을 발표하지 않고 영화와 사운드 트랙에만 전념해왔던 그녀는 98년 8년 만에 정규앨범 < My Love Is Your Love >을 발표한다. 흑인 아티스트로서의 음악에 충실함을 기했던 이 앨범은 1,000만장의 앨범 판매를 기록하며 그녀의 앨범 중 가장 저조한 성적을 거두게 된다. 앨범 내에는 영화 ’이집트의 왕자’ 주제곡인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와의 듀엣 곡 ’When you believe’가 수록되어 있다. 2000년 그녀는 자신의 15년 음악생활을 결산하는 베스트 앨범 < The Greatest Hits >를 발표한다. 조지 마이클, 엔리케 이글레시아스와의 듀엣 곡 등 네 곡의 신곡도 포함하고 있는 이 앨범은 발라드 곡들만을 모은 < Cool Down >과 댄스곡 및 댄스 리믹스 곡들을 모은 < Throw Down > 두 장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우피 골드버그가 주연한 < 시스터 액트2 >를 본 사람은 영화 속에서 가수가 되고 싶어하던 흑인 소녀를 기억할 것이다. 그의 이름은 로린 힐이다. 로린 힐은 자라서 아이티 출신의 흑인 남자 프라스, 그의 사촌 와이클레프와 함께 3인조 그룹 ‘푸지스’(Fugees)를 결성해 진짜 가수가 된다. 푸지스의 신보 < 스코어(The Score) >는 전미 앨범 차트에 정상에 오르면서 지금까지 3백만장이 팔려나가는 선풍적인... 우피 골드버그가 주연한 < 시스터 액트2 >를 본 사람은 영화 속에서 가수가 되고 싶어하던 흑인 소녀를 기억할 것이다. 그의 이름은 로린 힐이다. 로린 힐은 자라서 아이티 출신의 흑인 남자 프라스, 그의 사촌 와이클레프와 함께 3인조 그룹 ‘푸지스’(Fugees)를 결성해 진짜 가수가 된다. 푸지스의 신보 < 스코어(The Score) >는 전미 앨범 차트에 정상에 오르면서 지금까지 3백만장이 팔려나가는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꿈을 거의 완벽하게 성취해낸 셈이다. 로린 힐을 보면 푸지스가 순풍에 돛단 듯 인기가도를 질주해온 것 같지만 다른 두 멤버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그룹 이름 푸지스는 ‘난민’이란 뜻의 레푸지스(Refugees)를 줄여 쓴 것이다. 왜 두 사람이 난민인가? 이들은 어린 나이에 아이티에서 미국으로 이주해 차별 대우를 받으며 어렵게 성장했다. 그러나 이들이 당한 차별 대우는 백인 사회에서 흑인이 당하는 인종적 설움만이 아니다. “우린 흑인이므로 인종차별로부터 탈출하고 싶다. 그런데 가끔 미국 흑인들까지 우리가 아이티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중으로 차별을 받았던 것이다. 로린의 경우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또한 나름대로의 차별을 받고 있다.” 푸지스는 “그럴 때는 정말 어디론가 도망칠 곳이 있어야 한다”고 결론 내린다. 푸지스란 팀 이름은 기존 사회의 틀에서 벗어나거나 망명하려는 이들의 의지를 함축한다. 이들이 차별에 저항하는 메시지를 힙합을 기본으로 하는 목소리로 끊임없이 내뱉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힙합과 랩을 토대로 하면서 솔, 펑크, 리듬 앤 블루스, 레게 등을 감칠나게 혼합하여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음악을 만들어 냈다. 일례로 ‘킬링 미 소프틀리(Killing me softly)’는 1973년 로버타 플랙이 불러 유명한 솔의 고전으로 힙합으로 새롭게 각색한 것이다. 그동안 위축되어 있다가 최근 다시 부상하고 있는 이른바 네오 솔(neo soul)에 해당한다. 이들은 또한 밥 말리의 레게 명곡 ‘여자들이여 울지 말아요(No woman, no cry)’를 자기 스타일로 리메이크했으며, ‘패밀리 비즈니스(Family business)’에서는 그 유명한 ‘알함브라의 궁전’의 도입 기타 연주 부분을 샘플링해 삽입했다. 이 때문에 낯선 힙합이 비교적 친근하게 다가온다. 음악은 단순하고 재미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개성’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푸지스를 통해 재확인하게 된다. 또한 흑인에게 음악은 탈출구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절감한다.
노래 : Outkast (아웃캐스트)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출신의 듀오 아웃캐스트는 구디 몹(Goodie Mob)과 함께 남부 랩을 상징하는 그룹이다. 그들은 서부 랩의 간판인 갱스타 랩을 남부로 끌어들여 서던 소울과 펑크(Funk) 등을 가미시킨 독특한 스타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닥터 드레(Dr. Dre)가 창안한 지 펑크(G-Funk)를 남부 특유의 강직한 음악 스타일로 재 탄생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웃캐스트는 1992년 고등학교 ...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출신의 듀오 아웃캐스트는 구디 몹(Goodie Mob)과 함께 남부 랩을 상징하는 그룹이다. 그들은 서부 랩의 간판인 갱스타 랩을 남부로 끌어들여 서던 소울과 펑크(Funk) 등을 가미시킨 독특한 스타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닥터 드레(Dr. Dre)가 창안한 지 펑크(G-Funk)를 남부 특유의 강직한 음악 스타일로 재 탄생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웃캐스트는 1992년 고등학교 친구 사이인 드레(Dre)와 빅 보이(Big Boi)에 의해 탄생된 팀. 그들은 그룹을 결성하기 전부터 서로 랩 배틀을 벌이며 차곡차곡 실력을 갈무리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듀오의 잠재력은 TLC와 엔 보그(En Vogue)의 프로듀서로 명망이 드높은 오거나이즈드 노이즈(Organized Noise)의 눈에 띠게 됐고, 베이비페이스(Babyface)와 엘 에이 리드(L.A. Reid)가 세운 < 라페이스(LaFace) > 레이블과의 앨범 계약 체결로 이어졌다. 친구의 승승장구는 시작됐다. 1994년 그들의 데뷔 싱글 ''Player''s Ball''은 빌보드 랩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고, 그해 공개된 데뷔작 < Southernplayalisticadillacmuzik >도 플래티넘을 획득하는 성과를 얻었다. 1996년 소포모어 앨범 < ATLiens >, 1998년 3집 < Aquemini > 역시 모두 사이좋게 차트 2위에 랭크되었고, 당연하게 백 만장을 돌파했다. ''Elevators (me and you)'', ''Two dope boyz (in a cadillac)'', ''Atliens'', ''Rosa parks'', ''Chonkyfire'' 등이 히트 행진을 벌였다. 아웃캐스트는 지난해 내놓은 네 번째 음반 < Stankonia >을 또다시 앨범 차트 2위에 올려놓으며 힙 합 팬들의 끊임없는 애정에 화답했다. 아직도 차트에 머물려 삼 백 만장 이상을 팔아치운 앨범은 듀오의 실험 정신을 확인 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속사포처럼 매우 빠르게 내리꽂는 그들의 래핑이 충격으로 다가오는 ''B.O.B.'', 묵직한 베이스 라인이 신선하고 독특한 ''So fresh, so clean'' 등이 대표적이다.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한 ''Ms. Jackson''은 아웃캐스트의 음악 본령이다. 단지 힙 합 카테고리뿐만 아니라 2000년에 발표된 모든 팝 앨범들 사이에서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다. 요즘 백인 악동 에미넴(Eminem)이 힙 합의 대변인을 자임하고 있지만, 힙 합의 주인은 역시 흑인이라는 것을 아웃캐스트는 뛰어난 음악으로서 증명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어른 뺨치게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어린 소년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지난 2001년 4년여의 공백을 깨고 R&B 정상에 우뚝 선 어셔(Usher)가 그 주인공이었다. 어셔(본명: Usher Raymond)는 1979년 미국 테네시(Tennessee)의 채터누가(Chattanooga)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하기 시작한 그는 어머니인 조네타 패튼(Jonnetta Pat... 1990년대 중반 어른 뺨치게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어린 소년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지난 2001년 4년여의 공백을 깨고 R&B 정상에 우뚝 선 어셔(Usher)가 그 주인공이었다. 어셔(본명: Usher Raymond)는 1979년 미국 테네시(Tennessee)의 채터누가(Chattanooga)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하기 시작한 그는 어머니인 조네타 패튼(Jonnetta Patton,이후 그의 매니저로서 활동한다)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성가대 지휘자로 활동하며 역량을 키운다. 아틀란타(Atlanta)로 이주해 온 그는 12살의 어린 나이에 벌서 가수의 길을 준비한다. 출중한 노래 실력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1992년 라페이스(LaFace) 레코드사에서 주최하는 경연대회에 참가하여 브라이언트 레이드(Bryant Reid)의 눈에 들게 된다. 라페이스 레코드사 공동 대표 안토니오 “엘에이” 레이드(Antonio "LA" Reid)의 동생이었던 그는 형에게 이 출중한 소년을 소개했고, 어셔 레이먼드는 1994년 14살의 어린 나이에 안토니오 “엘에이” 레이드(Antonio "LA" Reid)와 퍼프 대디를 프로듀서로 삼아 데뷔 앨범 < Usher >를 선보인다. 14살 어린 소년의 음악은 대중의 호응을 얻어내며 큰 인기를 누렸다. ’Think of you’가 R&B 차트 톱10(팝에선 58위) 히트를 기록했으며 앨범 또한 골드를 획득했다.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미래의 가능성을 인정받은 그는 이후 여러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친다. 1995년에는 ‘코카콜라’ 음료수 회사의 레코딩에 나섰으며, 남성 R&B 그룹인 블랙 멘 유나이티드(Black Men United)의 ‘You will know’에 입을 보탰다. 이어 영화 < Jason’s Lyric > 사운드트랙에도 참여했으며, 모니카(Monica)와 듀엣 곡 ’Let’s straighten it out’을 부르기도 했다. 어셔가 가진 매력은 남다른 것이었다. 어린아이가 가져야 할 순수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성인 못지 않은 감성을 이끌어 내는 매력은 어느 뮤지션에게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그의 재기는 1997년의 두 번째 앨범 < My Way >로 용트림을 한다. 저메인 듀프리(Jermaine Dupri), 테디 라일리(Teddy Riley), 베이비페이스(Babyface)를 공동 프로듀서 겸 작곡가로 끌어 들였고, 이들의 참여는 어셔의 탁월한 재능이 돋보이게끔 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18살이었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내 놓은 이 앨범에서 그는 소년 뮤지션으로서의 이미지를 벗어 던지며 ‘보이 투 맨’ 한다. 직접 곡 작업에도 참여하여 9곡의 노래 중 6곡에 참여하였으며, 보컬에 있어서도 이전보다 한층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소년의 티를 벗은 그에게 대중은 열렬한 지지의 뜻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첫 싱글로 커트 된 정통 R&B 곡 ’You make me wanna’는 대단한 인기를 얻으며 차트 2위에 7주 동안 머무르게 된다. 당시 1위 곡이 영국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죽음과 맞물려 14주간 굳건히 1위를 지킨 엘튼 존(Elton John)의 ’Candle in the wind ’97’인 것을 감안한다면 이 곡의 인기가 다른 1위 곡들에 못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인기행진은 쉴 틈 없이 계속되었다. 힙합 스타일의 ’Nice and slow’가 1998년 드디어 차트 정상을 정복했고, 동명 타이틀의 ‘My way’도 차트 2위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 노래까지 세 싱글은 모조리 플래티넘(100만장)을 기록했다. 한편 미드나잇 스타(Midnight Star)의 곡을 리메이크한 ’Slow jam’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앨범에는 거물급 프로듀서들말고도 낯익은 뮤지션들이 참여해 ’Slow jam’에는 모니카(Monica)가, ’Just like me’에는 릴 킴(Lil’ Kim)이 참여했다. 1997년 흑인 음악계를 이끌어 갈 최고의 유망주로 각광 받은 어셔는 97년 소울 트레인 어워드(Soul Train Award)에서 ’Best R&B Single by a Male’ 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으며, 그레미(Grammy)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하였다. 최고의 R&B 스타로 등극했지만 그는 춤과 연기에도 재주를 가진 만능 엔터테이너이기도 하다. 수준 급의 연기로 주목받는 배우는 아니지만 그는 1998년 호러 영화인 < 더 패컬티 >(The Faculty)에 연기자로 출연했고, 이후 학교 드라마인 < 라이트 잇 업 >(Light It Up) 등 3작품에서 가수 이외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두 번째 앨범의 성공 이후 라이브 투어 활동에 진력하던 어셔는 2000년 싱글인 ‘Pop ya collar’를 발표하며 컴백한다. 미국 뮤지션인 그에게 이 곡은 색다른 결과를 가져다주었는데 이 곡은 자국인 미국보다 영국에서 인기를 얻으며 2001년 2월 영국 차트 2위의 성공을 이끌어 낸다. 2000년 11월 2.5집이라고 할 < All About U >를 내놓았으며 < All About U >의 곡들에 새로운 싱글들을 더해 2001년 8월 < 8701 >을 내놓는다. 발매 이전에 이미 싱글 ’U remind me’가 발매 4주만에 정상을 밟은 이 앨범은 전작에 참여했던 거물급 뮤지션들이 다시 손을 걷었음은 물론 어셔 자신 또한 이전 앨범에서 보여준 것보다 훨씬 많은 부분에서 아티스트로서의 역량을 뽐내고있다. 사실상 세 번째 정규 앨범이라고 할 수 있는 < 8701 >은 정통 R&B 곡들의 매력이 주를 이루면서도 지난 앨범보다 힙합에 더 치중한 듯 보이며, 스패니시 요소를 삽입하는 등 전체적으로 다양하고 성숙한 기량을 드러내고있다. 역시 차트 정상을 밟은 두 번째 싱글 ’You got it bad’는 한국 그룹인 지오디(god)의 곡 ‘길’과 표절 논란이 일며 한국 팬들에게도 관심을 끌었다.
노래 : Craig David (크레이그 데이빗 )
영국의 R&B 가뭄을 단번에 해갈시켜준 브리티시 R&B 신동 영국의 R&B? 좀 낯설다. R&B 음악은 미국의 전유물이 아니던가? 사실 그렇다해도 무리는 아니다. 근래 영국에서 배출된 R&B 가수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90년대 전반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무엇보다 실(Seal)이 있었고, 여성 가수로 리사 스탠스필드나 가브리엘이 있었다. ‘High’라는 곡으로 국내에 유명해진 듀오 라이트하우스 ... 영국의 R&B 가뭄을 단번에 해갈시켜준 브리티시 R&B 신동 영국의 R&B? 좀 낯설다. R&B 음악은 미국의 전유물이 아니던가? 사실 그렇다해도 무리는 아니다. 근래 영국에서 배출된 R&B 가수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90년대 전반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무엇보다 실(Seal)이 있었고, 여성 가수로 리사 스탠스필드나 가브리엘이 있었다. ‘High’라는 곡으로 국내에 유명해진 듀오 라이트하우스 패밀리도 영국 출신이다. 그렇지만 90년대 후반을 지나 현 2000년대에 와서는 전혀 찾아보기 힘들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영국에는 R&B 뮤지션이 없단 말인가. 영국이 그런 음악을 싫어해서일까. 아니다. 미국 R&B 가수들은 영국에서도 인기 있으며 그들은 종종 차트 정상에 오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일까. 이방인인 우리에게 그것은 알 수 없는 미스터리일 수밖에 없으나 추측해보면, 아무래도 영국인들 특유의 고집스런 성질, 즉 ‘영국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미국 얼터너티브 록에 맞서 브릿 팝을 고수했던 영국성! 자존심이나 프라이드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그 기질 탓에 여타의 영국 뮤지션들이 ‘양키’ 냄새나는 음악을 꺼려했던 것 같다. 물론 이건 추측이지만 영국인들은 그러고도 족히 남을만한 위인들이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미국의 R&B 뮤지션들이 자국에 와서 큰 인기를 누리는 걸 바라만 봤던 영국인들은 내심 속이 쓰렸을 것이 분명하다. 그 ‘속 쓰림’은 그러나 지난해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온 한 소년에 의해 한방에 치유되었다. 그는 물론 크레이그 데이비드다. 스티비 원더, 테렌스 트렌트 디아비, 시스코 등의 미국가수들을 좋아하노라고 공공연히 밝힌 이 열아홉 살 소년은 미국식 R&B와 힙 합을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거기에 영국 특유의 멜로디 감각도 곁들여 미국과 영국을 동시 만족시킬 수 있는 산뜻한 R&B를 개척해냈다. 어쩐지 출발부터 예감이 좋았다. 앨범을 발매하기도 전부터 눈길을 끌더니 첫 싱글이 발매되자마자 차트 정상에 올랐고, 얼마 후 나온 데뷔앨범도 앨범차트 1위를 점령했다. 자국의 좀 괜찮은 뮤지션이 나왔다 하면 무한대로 ‘밀어주는’ 영국 언론들도 신이 났다.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 만난 격. 모두들 신동이 나왔다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NME) >지는 “왜 이제야..”라는 감격조로 그의 출현을 반겼으며, “왜 크레이그 데이비드가 지금까지 영국 최고의 R&B 가수인가. 대답은 바로 그의 앨범에 있다.”고 그를 한껏 치켜세웠다. R&B 키드에서 라디오.클럽 DJ로 그리고 R&B 뮤지션으로 이제 그의 이력을 살펴보자. 1981년 5월 5일 영국의 사우스햄튼(Southamton)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을 ‘정말로’ 음악과 함께 보냈다. 그의 손엔 언제나 가사를 적기 위한 노트북이나 펜이 있었고, 방바닥에는 멜로디를 녹음하기 위한 구술용 소형 녹음기가 있었다. 그 시절 그의 가장 큰 모험은 어머니의 감시의 눈을 피해 몰래 자신이 좋아하는 R&B에 탐닉하는 것이었다. 14살 때부터는 동네의 해적방송국 < PCRS 106.5FM >, 또 인근의 유명 클럽에서 DJ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주로 R&B를 틀었지만 곧 둔중한 레게 베이스와 작렬하는 비트의 개러지 하우스 댄스로 전향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향후 음악동료가 될 마크 힐(Mark Hill)과의 운명적 만남이 성사된다. 어머니의 권유로 나간 작곡 대회에서 우승한 뒤, 크레이그 데이비드는 개러지 밴드 아트풀 다저(Artful Dodger)의 멤버이기도한 마크 힐과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주말마다 런던으로 원정 다니며 디제잉하던 그는 휴먼 리그의 히트곡인 ‘Human’을 R&B로 변형시킨 그의 첫 레코드를 녹음했고, 얼마 후 아트풀 다저의 ‘Rewind’를 버전업해서 발표해 언더그라운드에서 스매시 히트를 기록했다. 계속해서 그와 마크 힐은 여러 라디오방송에서 성공적인 개러지 공연을 치르면서 더욱 주가를 올렸으며 그 때문에 데이비드는 ‘개러지 뮤지션’이라는 다소 곡해된 인칭으로 불렸다. 그러나 첫 싱글 ‘Fill me in’이 발매되자 그 같은 인칭오류는 사라졌다. 그의 진가는 R&B였다. 라틴 풍의 감미로운 기타 연주, 극도로 잘게 쪼개지는 비트, 로맨틱한 전염성 멜로디라인, 부드러운 키보드와 드럼, 거기에 곡예 하듯 질주하는 멋진 보컬 등 ‘크레이그 데이비드 표’ R&B의 특질이 모두 포함된 그 곡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Fill Me In’은 곧바로 영국차트 1위를 차지했으며, 그는 ‘1위 곡을 가진 가장 어린 영국 남성 솔로가수’로 기록되었다. 그의 나이 열아홉이었다. 두 번째 싱글 ‘7 Days’ 역시 1위에 올랐고, 2000년 8월 발매한 데뷔앨범 < Born To Do It >도 가뿐히 차트 정상을 밟았다. 그가 좋아하는 한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제목을 붙였다는 이 음반은 R&B는 물론 록, 소울, 개러지, 재즈 그리고 라틴의 영향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처럼 음악은 복잡하지만 그가 가사에서 다룬 소재는 단순하다. 어린 나이답게 그는 여성에 대해서, 또 여성과의 관계에 대해서 곡을 썼다. 그는 자기 또래의 심리를 가사에 그대로 반영했으며 R&B의 섹슈얼리티에도 충실했다. ‘7 Days’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과 7일간 ‘마라톤 정사’를 벌인다는 재미난(?) 내용을 담고 있다. “월요일에 여자를 만나서 화요일에는 술을 마시며 사랑을 나눴지. 우린 수요일까지 사랑을 나눴어. 그리고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까지 계속해서. 일요일에야 우린 겨우 쉴 수 있었지. 난 사실 그리 색마는 아니야. 하지만 하룻밤 사랑으로는 너무 모자란 걸.” 그 외에 시스코의 ‘Thong song’이 연상되는 ‘Can’t be messing ’round’, 10대의 풋풋한 향기가 느껴지는 파티송 ‘Time to party’, 넘버원 싱글 ‘Booty man’ 등 모든 수록곡들은 < NME >가 말했듯, 그가 왜 최고의 R&B 가수인지 확인시켜준다. 이 천재 소년의 노래들을 들어보면, 올 2월에 개최된 < 브리티시 어워즈 >에서 로비 윌리엄스에게 참패한 것쯤은 하나의 해프닝에 불과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만큼 그의 테크닉은 경이에 가깝다. 국내에는 미처 발매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R&B 매니아들 사이에선 이미 컬트적 지지를 받은 지 오래다. 이젠 일반 음악팬들에게도 공개되니 이 음반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노래 : Boyz II Men (보이즈 투 맨)
1980년대 후반부터 불어닥친 랩(Rap) 음악의 열풍은 한편으로 기존의 부드럽고 감성적인 소울 음악에 대한 향수라는 역풍(逆風)을 몰고 왔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등장한 4명의 흑인 청년들로 구성된 보컬 그룹 보이즈 투 멘(BoyzⅡMen)은 수려한 보컬 하모니를 무기로, 무너진 소울 음악의 정통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했고 그 결과로 단번에 R&B계의 주류로 일대 신분이 상승, 1990년대 R&B 최강자로 떠올... 1980년대 후반부터 불어닥친 랩(Rap) 음악의 열풍은 한편으로 기존의 부드럽고 감성적인 소울 음악에 대한 향수라는 역풍(逆風)을 몰고 왔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등장한 4명의 흑인 청년들로 구성된 보컬 그룹 보이즈 투 멘(BoyzⅡMen)은 수려한 보컬 하모니를 무기로, 무너진 소울 음악의 정통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했고 그 결과로 단번에 R&B계의 주류로 일대 신분이 상승, 1990년대 R&B 최강자로 떠올랐다. 흑인 음악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모타운(Motown) 레코드사가 198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소위 확실하게 밀 카드가 없어 부진의 늪에 빠졌으나 필라델피아 고교 동창생인 나산 모리스 (Nathan Morris), 마이클 맥커리(Michael Mccary), 숀 스톡맨(Shawn Stockman), 와냐 모리스(Wanya Morris) 이들 4명의 데뷔앨범은 90년대 모타운 사운드의 부활을 예고했으며 모타운 사의 중흥을 1990년대까지 이어가는 가교 역할을 해냈다. 이들의 우상이기도 했던 뉴 에디션(New Edition) 출신의 마이클 비빈스(Michael Bivins)에 의해 발탁, 정식 데뷔를 하게 된 보이즈 투 멘은 1991년 달라스 오스틴(Dallas Austin)과 트로이 테일러(Troy Taylor)가 공동 프로듀서한 데뷔앨범 < Cooleyhighharmarmony >로 대중들 앞에 첫 선을 보였다. 순식간에 차트 3위를 기록하며 플래티넘 고지를 점령한 첫 싱글 ’Motownphilly’는 모타운 사와 보이즈 투 멘 자신들을 홍보하는 내용(모타운+필라델피아의 신조어를 제목으로 따옴)에다 뉴 잭 스윙 형식을 취한 현대적 두 왑 곡으로 그들의 은인 마이클 비빈스가 제작에 참여하고 랩을 담당했다. 이 곡이 아카펠라의 맛 보여주기를 시도했다면 두번째 싱글 ’It’s so hard to say goodbye to yesterday’는 아카펠라의 진수를 보여준 곡이었다. 그들의 주무기인 환상적인 보컬 하모니를 들려준 이 곡은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Black or white’에 밀려서 2위에 수주간 머무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이들의 음악 색깔을 여과 없이 드러낸 명곡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 곡의 영향으로 보컬 그룹들은 가창력을 인정받기 위해서 너나 할 것 없이 아카펠라 곡을 앨범에 수록하는 붐이 일어날 정도였다. 앨범에선 이외에도 고급스런 R&B 스타일을 선보인 ’Uhh ahh’(이상 3곡의 싱글은 차례로 R&B차트 정상에 올랐다.)와 맨하탄스(Manhattans)의 음악을 연상시키는 ’Please don’t go’ (9위)등이 인기를 얻었고, 앨범도 최고 순위 2위까지 오르며 900만장 이상이 팔려나간 엄청난 히트작이 되었다. 각종 시상식에서 R&B 부문의 상들을 휩쓸며 아직 10대의 티를 벗지 못한 4명의 소년들을 R&B계의 가장 주목할 신성으로 자리잡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후의 활동에서 데뷔작의 성공은 시작에 불과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1992년 그들은 베이비페이스(Babyface)와 첫 인연을 맺고 에디 머피(Eddie Murphy) 주연의 영화 < 부메랑 >의 사운드트랙 수록곡이자 역작인 ’End of the road’를 부르게 된다. 다분히 보이즈 투 멘을 위해 만들어진 곡임을 증명하듯 4명의 멤버는 자신들의 파트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또한 1956년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Don’t be cruel/Hound dog’으로 기록한 11주의 기록을 훌쩍 넘어서 13주간 싱글차트 정상을 지키는 신기원을 이룩한다. 그래미상 2연패와 플래티넘 획득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같은 해 또 하나의 사운드트랙 < 더 잭슨스: 아메리칸 드림 >에 다시 아카펠라 곡을 선사한다. 파이브 새틴스(Five Satins)의 1956년도 오리지널을 리메이크한 전통적인 두 왑 스타일의 ’In the still of the nite(I’ll remember)’로, 이 곡 역시 팝 차트 3위, R&B차트 4위에 오르며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1993년 발매된 캐롤 앨범 < Christmas Interpretations >은 브라이언 맥나이트(Brian Mcknight)가 제작에 참여하고 함께 입을 맞춘 ’Let It snow’(19위)로 인기를 모았으며 이듬해 대망의 2집 앨범 < Ⅱ >를 내놓게 되는데 이들에겐 소모포어 징크스는 조금도 영향을 주지 못했다. 앨범은 발매와 동시에 차트 1위로 데뷔하여 5주간 그 자리를 지켰고 미국에서만 1200만장이라는 어마어마한 판매고를 올렸다. 모타운 레코드사에 안겨준 최고의 선물이었다. 베이비페이스가 만들고 프로듀서한 첫 싱글 I’ll make love to you’는 빠른 속도로 차트 정상을 점령하더니 14주간이나 머물러 자신들이 세운 기록을 불과 1년만에 갱신한 대선배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과 타이를 이루었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곡을 차트 1위에서 끌어내린 곡이 두 번째 싱글 ’On bended knee’였다는 점이다. 비틀즈와 엘비스만이 가지고 있는 이런 기록을 20대 초반의 흑인 청년들이 손쉽게 이루어낸 사실에 팝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며, 지미 잼 & 테리 루이스가 프로듀서한 ’On bended knee’는 아름다운 화음과 세련된 멜로디가 돋보이는 곡으로 1위 자리를 2번에 걸쳐 오르며 총 6주간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그외에도 ’Thank you’(21위), 매끄럽기 그지없는 ’Water runs dry’(2위), ’Vibin’(56위)등이 차례로 차트에 올라 인기를 얻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앨범에는 팝계의 최고의 프로듀서들이 참여했다. 앞서 언급한 베이비페이스와 지미 잼 & 테리 루이스, 데뷔 앨범을 함께한 달라스 오스틴, 트로이 테일러, 브라이언 맥나이트, 엘 에이 레이드, 토니 리치등 모두가 쟁쟁한 일급 프로듀서들이었다. 이들의 도움으로 보이즈 투 멘은 다시 한번 1995년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와 함께 한 ’One sweet day’로 인기 정점에 오른다. 당대 최고의 여가수와 최고의 보컬그룹의 만남을 대중들은 16주간 차트 정상이라는 신기록으로 환호했으며 판매고는 200만장을 훌쩍 넘어섰다. 같은 해에 보컬 그룹으로 드물게 리믹스 < The Remix Collection >앨범에 도전했는데 이 앨범엔 브랜디(Brandy)와 와냐의 듀엣곡 ’Brokenhearted’(9위), 엘 엘 쿨 제이(L.L. Cool J)와 함께한 플래티넘 싱글 ’Hey lover’(2위)등이 기존의 히트곡들의 리믹스 버전과 함께 수록되어 있었고 신곡 ’I remember’(46위)도 선전을 했었다. 이후 2년 동안을 필라델피아 교외에 묻혀 앨범 제작에 몰두했고 97년 3집 < Evolution >을 들고 나타났지만 이들의 새 앨범은 기대만큼 큰 화제를 얻지는 못했다. 그 단적인 면이 앨범 판매고에서 나타나 신작은 반짝 인기에 그치며 200만장을 넘기는 것도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였다. 지미 잼 & 테리 루이스의 ’4 Seasons of loneliness’와 베이비페이스의 ’A song for mama’를 적극 밀었지만 첫 싱글은 차트 1위에 1주간 머무르는데 그쳤고, 두번째 싱글은 영화에 삽입하면서 홍보전략을 폈지만 7위까지 오르는 그들로선 평범한 히트를 기록하고 말았다. 당시 한창 주가를 올리던 퍼프 대디(Puff Daddy)를 프로듀서로 초빙한 수고로움도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결과만 초래했다. 1998년에는 다이안 워렌이 만든 < 이집트의 왕자 > 사운드트랙의 수록곡 ’I will get there’(32위)로 차트에 다시 등장했고, 데뷔 이후 모타운 레코드의 달러박스로 큰 몫을 차지했던 이들은 이듬해 레코드사의 인수 합병으로 인해 유니버살(Universal) 레코드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고 대망의 2000년을 맞이하여 멤버 자신들의 이름을 내건 네번째 앨범 < Nathan Michael Shawn Wanya >를 발매하기에 이른다.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그 동안의 앨범 작업마다 참여했던 유명 프로듀서들의 이름이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멤버 자신들이 직접 곡을 쓰고 프로듀서 했기에 자신들의 색깔을 제대로 냈고 진정한 싱어송라이터로 거듭났다는 평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상업적으로는 실패했다. 처음 시도하는 빠른 라틴 비트의 ’Beautiful women’, ’Good guy’로 시대의 흐름을 읽는데 소홀히 하지 않았고, 마치 테크노를 듣는 듯 신선한 ’Bounce, shake, move, swing’, 포크 송처럼 부드러운 ’Do you remember’, 특기인 아카펠라를 가미한 두 왑 ’I do’등 전체적으로 수작으로 손꼽을 만한 앨범이었다. 하지만 앨범 홍보가 미비했고 3집에서 시작된 대중들의 피로감 때문에 이미 많은 팬들이 등을 돌린 탓도 있었다. 결국 2001년 베스트 앨범 < Legacy: The Greatest Hits >를 끝으로 아리스타(Arista) 레코드로 새롭게 둥지를 틀었고 절치부심 새 음반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10대에 데뷔하여 현재 30대 초반이 된 이들이 10년 동안 팝과 R&B계에 끼친 영향력은 그들 이후 많은 보컬그룹들이 생겨났다는 점과 더불어 이런 보컬 그룹들의 음악적 실력을 비교하는 잣대가 되었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많은 곡들이 차트에 올랐다가 빠르게 사라져 갔지만 유독 이들의 노래들만은 오랫동안 머물며 사랑을 받았다는 것도 이들의 존재가치를 확실히 웅변하는 대목이다.
노래 : Ciara (시아라,Ciara Princess Harris)
가수이자 배우로 [Ora] [R.I.P.] [Poison] [Body On Me]등의 앨범을 발표하였고,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사우스포><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50가지 그림자: 심연><50가지 그림자: 해방> 등에 출연하였다. 가수이자 배우로 [Ora] [R.I.P.] [Poison] [Body On Me]등의 앨범을 발표하였고,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사우스포><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50가지 그림자: 심연><50가지 그림자: 해방> 등에 출연하였다.
핏불(Pitbull)의 본명은 아르만도 크리스티안 페레스(Armando Christian Perez) 로 미국의 랩퍼, 가수, 프로듀서이다. 핏불(Pitbull)의 본명은 아르만도 크리스티안 페레스(Armando Christian Perez) 로 미국의 랩퍼, 가수, 프로듀서이다.
노래 : Jennifer Lopez (제니퍼 로페즈)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는 리키 마틴(Ricky Martin), 마크 앤소니(Marc Anthony), 엔리케 이글레시아스(Enrique Iglesias) 등 걸출한 남성 스타들이 독점하는 라틴 팝 시장에서 당당히 지분을 차지하고 들어서 있는 미녀 가수이다. 그녀는 또한 가수 이전의 본업이었던 영화 배우로서도 상한가를 달리고 있으며, 헐리웃의 베스트 드레서답게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의류 브랜드 산...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는 리키 마틴(Ricky Martin), 마크 앤소니(Marc Anthony), 엔리케 이글레시아스(Enrique Iglesias) 등 걸출한 남성 스타들이 독점하는 라틴 팝 시장에서 당당히 지분을 차지하고 들어서 있는 미녀 가수이다. 그녀는 또한 가수 이전의 본업이었던 영화 배우로서도 상한가를 달리고 있으며, 헐리웃의 베스트 드레서답게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의류 브랜드 산업에 뛰어들기도 하는 등 멀티 엔터테이너의 조건을 완벽히 갖췄다. 그래서 과감한 노출, 섹시한 외모와 함께 발표하는 음반마다 넘버원 싱글을 내놓는가 하면 찍는 영화마다 좋은 흥행 실적을 거둬온 제니퍼 로페즈의 인기는 라틴 팝의 흥겨운 리듬만큼이나 뜨겁다. 푸에르토리코 혈통의 미국인인 제니퍼 로페즈는 1970년 미국 뉴욕의 브롱스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춤과 노래에 남다른 재능과 열정을 보였던 그녀가 처음으로 화면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6살 때 영화 < My little girl >에서 단역을 맡으면서부터였다. 4년 후 텔레비전 시리즈인 < In living colors >의 주인공(댄서)인 ‘Fly girls’의 한 명으로 분하면서 본격적인 입지를 쌓아가기 시작했고, 이후 비운의 여가수 셀레나(Selena)의 생애를 담은 영화 < 셀레나(Selena) >등에서 엔터테이너로써의 기질을 마음껏 발휘하였다. 이후 그녀는 < 아나콘다(Anaconda) >와 < 유 턴(U-turn) > 등을 거치며 배우로써의 명함을 굳히는가 싶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뜨거운 애정을 쏟아왔던 춤과 노래를 버릴 수 없었다. 실제로 자넷 잭슨(Janet Jackson)의 댄서로도 활동한 바 있는 그녀는 결국 1999년 300만장의 판매고에 빛나는 데뷔작 < On The 6 >와 함께 가수로서도 매우 고무적인 첫 걸음을 내딛었다. 글로리아 에스테판(Gloria Estefan)의 남편 에미리오 에스테판(Emilio Estefan), 마크 앤소니 등 라틴 스타들이 대거 참여한 음반은 발매되자마자 빌보드 앨범 차트 6위에 랭크되었고, 라틴의 흥겨움이 가득한 첫 싱글 ‘If you had my love’는 싱글 차트1위를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 ‘Let’s get loud’, ‘Waiting for tonight’ 등도 준(準) 히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이목은 그녀의 외모에 더욱 집중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엉덩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었으며 도발적인 의상도 늘 화제 거리였다. 화려한 남성 편력으로 ‘플레이걸’의 이미지도 굳어져갔고, 과감한 노출의 뮤직 비디오가 항상 뜨거운 감자였다. 따라서 외모가 실력보다 더 큰 인기 요인이 아니냐는 따가운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제니퍼는 2001년 발표한 소포모어 음반 < J.Lo >로 주위의 색안경 낀 생각들을 완전히 불식시켰다. 힙합 스타 자룰(Ja Rule)이 피처링한 ‘Love don’t cost a thing’(3위), ‘I’m real’(1위) 등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곡들이 담겨진 2집은 200만장 가까이 팔려나가면서 빌보드 앨범 차트를 장악했다. 라틴의 느낌을 조금 가라앉히고 힙합 리듬을 배가시켜 팝 적인 접근을 꾀했던 것이 성공의 요인이었다. 한층 발전한 그녀의 음악은 섹시함을 한껏 과시한 뮤직비디오와 함께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또한 음악 전문지 < 롤링스톤 >이 선정한 2001년의 인물 중 하나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같은 해 제니퍼 로페즈 주연 영화 < 웨딩 플래너(Wedding Planner) >가 전미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면서, 그녀는 한 해 동안 최고의 차트들을 다섯 번이나 정복하며 우먼 파워를 전세계에 과시했다. 그 여세를 몰아 지난 2002년 발매한 히트곡 리믹스 음반 < J To Tha Lo > 또한 앨범 차트 1위에 올라섰다. 새롭게 리믹스된 2집 수록곡 ‘Ain’t it funny’는 싱글로 발표되어 수주간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지켰다. 한 번의 결혼 실패 후, 래퍼 피 디디(P. Diddy)와의 불륜, 그리고 그녀의 백댄서였던 크리스 주드(Chris Judd)와의 9개월 간의 짧은 결혼 생활 등 뭇 남성들과의 많은 스캔들을 불러일으킨 제니퍼 로페즈가 안착한 곳은 인기 절정의 배우 벤 에플렉(Ben Affleck)의 품이다. 지난 해 크리스 주드와의 이혼설을 기정사실화하고 2003년 초 벤 에플렉과 약혼식을 올린 제니퍼 로페즈는 새 음반 < This Is Me... Then >에서 더욱 힙합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잘 나가는 래퍼 엘엘 쿨 제이(LL Cool J)의 피처링이 돋보이는 음반의 첫 싱글 ‘All I have’는 이미 빌보드 정상을 정복, 고수하고 있으며 판매량도 매우 호조를 보이고 있다. 아직 가수의 길을 그리 오래 밟지 않은 그녀이지만 음반을 낼 때마다 수그러들지 않는 인기와 음악적 발전은 배우로서의 활동과는 별개로 음악인으로서의 독자적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때로는 수많은 스캔들, 가십 거리를 양산해 내고는 있지만 배우와 가수로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포획하고 있는 제니퍼 로페즈의 인기는 그칠 줄 모른다.
노래 : Tatyana Ali (타티아나 알리 (Tatyana Marisol Ali))
영화배우, 가수 출생 1981년 9월 12일 (미국) 수상 2007년 제79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영화 드림걸즈 (에피 화이트 역/2006) 영화배우, 가수
출생 1981년 9월 12일 (미국)
수상 2007년 제79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영화 드림걸즈 (에피 화이트 역/2006)
조지아 출신의 조는 1999년 ‘팝의 디바’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의 넘버원 히트곡 ‘Thank god I found you''에 나인티에이트 디그리스(98 Degrees)와 함께 게스트 보컬로 참여하여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가수이다. 입술 두껍고 투박하게 생긴 흑인 청년의 목소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의 음색은 부드럽고 달콤하다. 정통 소울의 진함이 베어 있으며, 현대적인 심플함도 있다... 조지아 출신의 조는 1999년 ‘팝의 디바’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의 넘버원 히트곡 ‘Thank god I found you''에 나인티에이트 디그리스(98 Degrees)와 함께 게스트 보컬로 참여하여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가수이다. 입술 두껍고 투박하게 생긴 흑인 청년의 목소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의 음색은 부드럽고 달콤하다. 정통 소울의 진함이 베어 있으며, 현대적인 심플함도 있다. 알 켈리(R. Kelly)와 흡사하다. 또한 그는 노래만 잘 부르는 것이 아니라, 작곡, 키보드 연주, 프로듀싱 등 다방면에 걸쳐 재능을 가지고 있는 만능 뮤지션이다. 조 토마스(Joe Thomas)라는 본명을 가진 조는 신실한 기독교 집안 환경 덕분으로 쉽게 가스펠 음악을 익힐 수 있었고, 교회 성가대 활동을 통해 몸으로 체득했다. 다른 리듬 앤 블루스 싱어들처럼 그는 성장하면서 자연스레 마빈 게이(Marvin Gaye)와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에 경도 되었고, 198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키스 스웨트(Kith Sweat)와 뉴 에디션(New Edition)의 음악도 즐겨들었다. 자신의 실력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은 그는 뉴저지로 생활 터전을 옮기고 본격적인 가수로서의 길을 걸었다. 그 첫 번째 노력은 < 폴리그램(Polygram) >을 통해 1993년에 내놓은 데뷔작 < Everything >에 담겨있다. 그러나 결과는 썩 신통치 못했다. 음반은 약간의 주목도 받지 못한 채 사장됐다. 조는 그러나 용기를 잃지 않았고, < 자이브 >로 소속사를 옮겨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잡았다. 그는 1997년에 내놓은 두 번째 앨범 < All That I Am >에서 자신의 기량을 100퍼센트 발휘했다. 편안하고 쉽게 다가오는 멜로디와 보컬은 컨템포러리 리듬 앤 블루스의 전형이었다. 이미 1996년 영화 < Don''t Be A Menace >의 사운드트랙에 삽입되어 차트 11위에 오른 ‘All the things (your man won''t do)''를 포함해, ‘Don''t wanna be a player'', ‘No one else comes close’ 등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3년 뒤인 지난해 발매한 3집 < My Name Is Joe >도 전작의 히트 행진을 이어갔다. 음반은 앨범 차트에서 같은 레이블 식구 엔 싱크(''N Sync)에 밀려 2위를 차지했지만, R & B 차트에서는 당연하게 정상을 정복했다. 톱 파이브 안에 진입한 ‘I wnna know'', 엔 싱크와 함께 한 ‘I believe in you’, 고품격 발라드 ‘Somebody gotta be on top'' 등 주옥같은 리듬 앤 블루스 곡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또한 조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머라이어 캐리의 빅 히트곡 ‘Thank god I found you''을 래퍼 나스(Nas)의 도움을 받아 색다른 버전으로 만든 것도 신선했다. 조의 리듬 앤 블루스는 누구나 들어도 감미롭고 친근하다. 흑과 백의 경계선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특히 멜로디를 중시하는 우리 나라에서도 그의 노래는 충분히 어필할 만 하다.
뉴욕 브룩클린 출신의 맥스웰(1973년 생)은 가창력보다는 리듬과 비트에 중점을 둔 1990년대의 현대적인 리듬 앤 블루스 추세 속에서 소울의 감칠맛 나는 음색을 구현해 내며 네오 소울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인물이다. 상업적인 색채가 짙게 드리워진 현란하고 화려한 리듬 앤 블루스의 트렌드에서 한 발짝 비켜서서 가슴을 울리게 하는 1970~1980년대의 전통적인 리듬 앤 블루스를 재현해낸 것이다. 때문에 얼터너티브 ... 뉴욕 브룩클린 출신의 맥스웰(1973년 생)은 가창력보다는 리듬과 비트에 중점을 둔 1990년대의 현대적인 리듬 앤 블루스 추세 속에서 소울의 감칠맛 나는 음색을 구현해 내며 네오 소울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인물이다. 상업적인 색채가 짙게 드리워진 현란하고 화려한 리듬 앤 블루스의 트렌드에서 한 발짝 비켜서서 가슴을 울리게 하는 1970~1980년대의 전통적인 리듬 앤 블루스를 재현해낸 것이다. 때문에 얼터너티브 R & B, 뉴 클래식 소울 등으로 칭하여 진다. 에리카 바두(Erykah Badu), 디앤젤로(D’Angelo) 등도 이 분야의 간판스타들이다. 서부 인디언과 푸에르토리코인의 혈통을 물려받은 혼혈아인 맥스웰은 열 일곱 살이 되던 해 친구로부터 낡아빠진 키보드를 선물 받고 음악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를 해나갔다. 작곡과 보컬 창법 등에 대해 꾸준히 공부하여 갈고 닦았으며,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 뉴욕 클럽 등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앨범을 발표하지도 않았는데도 발빠른 입 소문을 통해 뉴욕 클럽 신의 유명 인사로 발돋움한 그는 뒤늦게 내놓은 1996년 데뷔작 < Maxwell’s Urban Hang Suite >로 리듬 앤 블루스 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몰고 왔다. 영혼을 담아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섹시하면서도 진실에 찬 목소리는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평론가들은 ‘프린스(Prince)와 마빈 게이(Marvin Gaye)의 합작품’이라고 했다. ‘Sumthin’ sumthin’ ’, ‘Ascension(Don’t ever wonder)’, ‘Whenever, wherever, whatever’ 등의 히트곡들이 증명한다. 플래티넘을 획득한 이 음반으로 그는 < 롤링스톤 >에 의해 ‘최우수 R & B 아티스트’로 선정됐고, 그래미 상 후보에도 올랐다. 또한 소울 트레인 시상식에서 ‘최우수 남자 가수’, ‘올해의 소울 앨범’, ‘올해의 싱글(‘Ascension’)’, ‘최우수 신인 아티스트’ 등 4개 부문 상을 휩쓰는 저력을 발휘했다. 이듬해에는 MTV 언플러그드 공연 실황을 엮은 < Maxwell Unplugged EP >를 발표하기도 했다. 2년 뒤인 1998년 들고 나온 두 번째 작품 < Embrya >에서 맥스웰은 전작보다 더욱 더 깊이 있는 리듬 앤 블루스를 선보였다. 매우 가라앉은 그의 음색은 깊이를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철학적이고 사색적이었다. 대중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칩거한 것이다. 하지만 이듬해 영화 < Life >의 사운드트랙에 삽입된 ‘Fortunate’가 빅 히트를 치면서 그의 이름은 다시금 세상에 회자됐다. 단 두 장의 정규 앨범으로 트래디셔널 리듬 앤 블루스 싱어로서 당당히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맥스웰은 현재 새 음반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이다.
넥스트는 1990년대 중반 들어 침체 국면으로 접어든 남성 보컬 그룹의 명맥을 다시금 대중 음악계 전면으로 부상시킨 팀이다. 부드럽고 섹시함이 철철 넘쳐흐르는 리듬 앤 블루스 사운드는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고, 인기 힙 합 그룹 노티 바이 네이처(Naughty By Nature)의 케이기(Kaygee)에 의해 발탁됐다는 점도 인기 몰이에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다. 미네아폴리스에서 태어난 티 로우(T-L... 넥스트는 1990년대 중반 들어 침체 국면으로 접어든 남성 보컬 그룹의 명맥을 다시금 대중 음악계 전면으로 부상시킨 팀이다. 부드럽고 섹시함이 철철 넘쳐흐르는 리듬 앤 블루스 사운드는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고, 인기 힙 합 그룹 노티 바이 네이처(Naughty By Nature)의 케이기(Kaygee)에 의해 발탁됐다는 점도 인기 몰이에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다. 미네아폴리스에서 태어난 티 로우(T-Low), 트위티(Tweety) 형제는 1990년대 초반 지역 교회 성가대의 음악 감독을 맡고 있던 삼촌으로부터 노래 잘하는 알 엘(R. L.)을 소개받고 넥스트의 미래를 구상했다. 티 로우의 대모인 사운드 오브 블랙니스(Sound Of Blackness)의 리드 보컬리스트 앤 네스비(Ann Nesby)의 집에 머물며 소울과 리듬 앤 블루스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을 받은 트리오는 미네아폴리스를 중심으로 클럽 활동을 펼쳤다. 1995년 삼인조의 실력을 눈여겨본 케이기에 의해 전격 스카우트된 후, 그들은 2년여의 노력 끝에 1997년 데뷔 앨범 < Rated Next >를 발표했다. 음반은 발매 당시에는 별 반응을 얻지 못해 그냥 이대로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하는 멤버들의 조바심도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6개월 후 감미로운 리듬 앤 블루스로 무장한 두 번째 싱글 ''Too close''가 빌보드 싱글 차트 넘버원을 기록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Butta love'', ''I still love you'' 등도 히트 행진을 이어나갔고, 이에 힘입어 300만장의 엄청난 앨범 판매고를 올렸다. 단숨에 최고의 남성 보컬 그룹으로 떠오른 것이다. 지난해 내놓은 두 번째 작품 < Welcome II Nextasy >에서도 넥스트가 들려주는 달콤한 하모니는 막강했다. 첫 싱글로 커트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던 ''Wifey'', 수려한 멜로디가 귀를 자극하는 ''My everything splash'' 등에서 트리오의 중독성 강한 엑스터시 향연을 체험할 수 있다. 지금 넥스트에게서 보이즈 투 멘(Boy Ⅱ Men)을 기대하는 것은 분명 무리다. 그들은 그러나 뛰어난 실력으로 1990년대 중·후반 남성 중창 그룹의 인기를 부활시키는데 한 몫을 했다. 이는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트리오에게는 ''넥스트(Next)''가 있지 않는가.
노래 : Fantasia (판타지아 (R&B 보컬))
노래 : Leona Lewis (리오나 루이스)
2006년에 방송된 리얼리티 스타 발굴 프로그램 < X Factor >의 시즌 3 우승자 리오나 루이스(Leona Lewis)는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과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의 장점을 겸비한 21세기 형 섹시 디바다. 파워풀한 가창력은 기교를 앞세운 머라이어 캐리보다는 휘트니 휴스턴을 연상시키고 라틴 혈통의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의 핏줄을 이어받은 구리 빛 피부와 뇌쇄적... 2006년에 방송된 리얼리티 스타 발굴 프로그램 < X Factor >의 시즌 3 우승자 리오나 루이스(Leona Lewis)는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과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의 장점을 겸비한 21세기 형 섹시 디바다. 파워풀한 가창력은 기교를 앞세운 머라이어 캐리보다는 휘트니 휴스턴을 연상시키고 라틴 혈통의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의 핏줄을 이어받은 구리 빛 피부와 뇌쇄적인 외모 그리고 파마기 있는 헤어스타일은 머라이어 캐리를 떠올린다. 시장성과 성장성을 자체 프로세스한 이 두 강점은 리오나 루이스가 빠른 시간에 비상(飛上)할 수 있는 날개였다. 1985년 4월 3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리오나 루이스는 10대 때부터 스스로 피아노와 기타를 배워 송라이팅 기술을 습득하면서 접수원이나 웨이트리스의 피곤한 일상을 극복해나갔다. 그러던 중 남자친구가 < X Factor >에 지원하면서 리오나 루이스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이했다. < X Factor >에서 ‘Over the rainbow’, ‘Hero’, ‘Without you’처럼 가창력을 뽐낼 수 있는 노래들을 불러 우승을 차지한 리오나 루이스는 곧바로 메이저 데뷔 싱글로 켈리 클락슨(Kelly Clarkson)의 ‘A moment like this’를 발표해 인기가도에 박차를 가했고 대세를 이어 2007년에 데뷔앨범 < Spirit >를 공개했다. ‘Apologize’를 부른 그룹 원 리퍼블릭(One Republic)의 리더 라이언 테더(Ryan Tedder)와 ‘Beautiful soul’과 ‘She's no you’로 친숙한 아이돌 가수 제시 매카트니(Jesse McCartney)가 공공으로 작곡한 ‘Bleeding love’는 20주 동안 빌보드 싱글 차트 탑 텐에 머물며 4주간 정상을 차지하는 스매시 히트를 기록했고 두 번째 싱글 ‘Better in time’도 11위에 랭크되었다. 이제 리오나 루이스는 2008년에 대중들의 시선으로 들어왔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2008년 8월, 베이징 올림픽 폐막식에서는 2012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런던을 알리기 위해 지미 페이지(Jimmy Page)와 함께 무대에 올라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명곡 ‘Whole lotta love’를 불러 평생의 영광을 메모리 했으며 2008년 브릿 어워즈에서 4개 부문 후보로 지명되었고 2009년 그래미 어워즈에서는 올해의 레코드와 최우수 여성 팝 보컬 등 모두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2002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핵심부문인 ‘올해의 곡’(Song of the year)과 ‘최우수신인’상을 포함해 ‘여성 R&B 보컬’ ‘R&B 앨범’ ‘R&B 송’ 등 5개 부문을 석권한 앨리샤 키스(Alicia Keys)는 뉴 밀레니엄 초반의 R&B 음악양식을 대표하는 가수라고 할 수 있다. 어번(Urban) R&B라고 단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조화된 고유상표의 음악을 들려준다. 귀에... 2002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핵심부문인 ‘올해의 곡’(Song of the year)과 ‘최우수신인’상을 포함해 ‘여성 R&B 보컬’ ‘R&B 앨범’ ‘R&B 송’ 등 5개 부문을 석권한 앨리샤 키스(Alicia Keys)는 뉴 밀레니엄 초반의 R&B 음악양식을 대표하는 가수라고 할 수 있다. 어번(Urban) R&B라고 단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조화된 고유상표의 음악을 들려준다. 귀에 잘 들리는 피아노 멜로디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가스펠을 연상시키는 소울 식의 고전적 창법이 트레이드마크이며, 이 때문에 1970년대 여성 소울의 거성인 로버타 플랙(Roberta Flack)과 자주 비교되곤 한다. 하지만 재래의 미학만을 고집하는 복고형 R&B라고 하기보다는 거기에다 현대적 힙합 분위기를 삼투한 최신 스타일을 부각한 것을 특징으로 한다. 어반이란 수식어가 붙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를테면 과거 블루스와 재즈에 뿌리를 둔 음악을 현대적 창구로 전달하는 셈인데 실제로 피아노의 선율, 1970년대 풍의 소울 창법, 세련된 힙합 분위기가 어울린 그녀의 ‘모던한’ 데뷔 앨범 [Songs In A Minor]는 2001년에 발표되어 화려히 인기차트를 누볐다. 미국 뉴욕 토박이로 1982년에 태어난 앨리샤 키스는 어렸을 적부터 음악을 자신의 미래분야로 삼아 맨하탄의 퍼포먼스 아트 스쿨(Performance Art School)에서 합창을 훈련했고 10대 내내 피아노교습에 열중한다. 이 합창과 피아노는 훗날 데뷔 앨범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아울러 피아노 외의 다른 악기 연주는 물론, 작곡 편곡 등 음악작업 전반에 걸친 실력과 감각을 쌓았다. 고교를 졸업한 16살에 명문 콜롬비아 대학에 입학했지만 음악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학업을 도중 포기했고 대신 1998년 명문 레코드사인 아리스타(Arista)와 계약을 체결한다. 아리스타 사장이었던 클라이브 데이비스(Clive Davis)에 의해 픽업된 관계로, 그가 1999년 아리스타를 떠나 새로운 레이블 제이(J)를 출범시키자 앨리샤도 그를 따라 제이 레코드사로 적을 옮기게 된다. 19살이던 2001년 데뷔 앨범 [Songs In A Minor]이 발표되었고 이 음반은 데뷔와 동시에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을 밟는 스매시 히트를 기록했다. 특히 자신이 프로듀스한 첫 싱글 ‘Fallin’’은 전미차트 2주간 1위를 차지했다. 그녀의 각별한 신구(新舊)결합형 음악은 시장 뿐 아니라 마침내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그리고 그래미상이라는 공인 절차마저 거뜬히 통과했다.
노래 : Toni Braxton (토니 브랙스톤)
1967년생으로 미국 매릴랜드 주 출신인 토니 브랙스톤은 매우 신앙심이 깊은 부모 아래에서 어린 시절부터 교회 합창단에서 노래를 할 수 밖에 없었고, 이 때부터 노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녀는 교사 자격증을 받으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프로 가수를 꿈꾼 적은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그녀가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면서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던 모습을 본 매니저 윌리엄 페타웨이(William E... 1967년생으로 미국 매릴랜드 주 출신인 토니 브랙스톤은 매우 신앙심이 깊은 부모 아래에서 어린 시절부터 교회 합창단에서 노래를 할 수 밖에 없었고, 이 때부터 노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녀는 교사 자격증을 받으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프로 가수를 꿈꾼 적은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그녀가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면서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던 모습을 본 매니저 윌리엄 페타웨이(William E. Pettaway)로 인해 그녀의 인생은 바뀌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그녀와 자매들을 함께 그룹으로 묶어 브랙스톤스(Braxtons)를 결성, 1989년 아리스타 레이블과 계약을 맺은 후, 셀프 타이틀 앨범을 내놓았다. 그들의 싱글 [Good Life]의 성적은 그리 좋진 않았으나, 그 곡은 그녀의 존재를 작곡 콤비이자 자신들의 레이블인 라페이스(LaFace)를 런칭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던 엘에이 리드(Antonio "L.A." Reid)와 베이비페이스(Babyface)의 눈에 띄는 계기가 되었다. 두 사람은 그녀에게서 아니타 베이커의 매력을 가졌으면서 더 대중성이 있는 보이스의 매력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1992년 영화「Boomerang」OST를 제작하면서 원래 아니타에게 부탁하려던 [Love Shoulda Brought You Home]을 그녀에게 부르게 했고, [Give U My Heart]를 베이비페이스와 함께 듀엣으로 녹음하게 하면서 효율적으로 그녀를 팝 씬에 등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뒤이은 데뷔 앨범 「Toni Braxton」(1993)을 통해 [Another Sad Love Song](7위), [Breathe Again](3위), [You Mean the World to Me](7위), [I Belong to You/How Many Ways](28위)를 연이어 히트시키면서 그녀는 '중저음 소울 디바'의 위상을 계승할 후보 1순위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또한 그녀의 데뷔작은 미국 내에서만 8백만 장 이상을 판매하는, 신인의 데뷔앨범으로서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그 결과 그래미는 1994년 시상식에서 그녀에게 '최우수 신인상'의 영예를, 그리고 그 해부터 2년 연속으로 '최우수 R&B 보컬 퍼포먼스상'을 그녀에게 선사했다.

이처럼 화려하게 시작된 그녀의 인기는 2집「Secret」(1996)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말이 그녀에게는 전혀 적용되지 않았고, 기존 프로듀서 라인업 외에도 알 켈리(R.Kelly),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 등이 지원사격을 아끼지 않았던 이 앨범 속에서는 [You Makin' Me High]와 그녀의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 현재까지 가장 애청되고 있는 발라드 [Unbreak My Heart](이 곡 역시 90년대를 주름잡았던 여류 작곡가 다이앤 워렌(Diane Warren)의 작품이다.)이 모두 팝 싱글 차트 1위 자리를 차지했고, [I Don't Want To/I Love Me Some Him], 케니지(Kenny G)와의 조인트였던 [How Could an Angel Break My Heart] 등이 뒤를 이어 히트했다. 앨범 역시 세계적으로 총 2천만 장 이상을 판매하면서 그녀의 인기 곡선은 끝을 모르는 듯 상승했다.

그러나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그녀의 커리어는 예상치 못한 변수들로 인해 계속 험난한 여정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2집의 히트 이후 시작된 라페이스 레이블과 그녀 사이의 계약 분쟁은 1999년 2500만 달러라는 거액의 계약금으로 해결을 보긴 했으나, 2000년에 발표된 그녀의 3집 「The Heat」는 거액의 제작비를 투자한 싱글 [He Wasn't Man Enough](2위)로 기분 좋게 시작하긴 했지만, 후속 싱글들인 [Just Be a Man About It](32위), 그리고 카를로스 산타나의 기타가 가세했던 발라드 [Spanish Guitar](98위) 등이 예상보다 큰 반응을 얻지 못하는 바람에 이 앨범으로 미국 내 2백만 장 이상의 판매고와 6번째 그래미 트로피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전작과 비교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 이후에는 또 다른 문제로 그녀는 레이블과 갈등을 빚었다. 3집 작업을 통해서 만난 민트 컨디션(Mint Condition) 출신의 멤버이자 작곡자인 케리 루이스(Keri Lewis)와 2001년 결혼한 후, 4집 앨범을 막 작업 완료를 했던 시기에 그녀는 둘째 아이를 임신했는데, 그 때 토니 측에서는 앨범 발매를 미뤄줄 것을 요청했으나, 레이블 측이 이를 거절하는 바람에 4집「More Than A Woman」(2002)의 홍보 활동은 그녀의 건강 문제로 계속 꼬여버렸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탄생한 둘째 아들 디젤(Diesel)은 2006년 자폐 판정을 받았다.) 넵튠스(Neptunes)가 작업한 [Hit the Freeway]가 히트하긴 했지만, 앨범의 성과는 골드 레코드로 만족해야했고, 결국 그녀는 라페이스-아리스타 레이블과의 관계를 청산했다.

우여곡절 끝에 2003년 블랙그라운드(Blackground) 레이블로 이적한 그녀는 2005년 5번째 앨범「Libra」로 재기를 노렸지만, 첫 싱글과 앨범의 발매가 미뤄지면서 이 앨범은 제대로 홍보를 받지 못했고, 간신히 골드 레코드에 머물게 되었다. 결국 그녀는 자신과 이전 레이블에게 각각 다른 말을 했던 전 매니저에게 소송을 제기, 법원의 판결을 통해 37만 5천 달러의 선불금을 돌려주고 레이블과의 계약을 종결했다. 일단 2008년 TV 리얼리티 쇼 'Dancing with the Stars'의 시즌 7에 출연하고 관련 투어를 돌면서 그녀는 다시 한 번 재기의 발판을 찾았고, 결국 새로운 레이블과 계약을 채결하면서 5년 만인 2010년 새 앨범 [Pulse]를 발매했다.
멤버 : 티토 조셉 잭슨(Tito Joseph Jackson), 타릴 안드렌 잭슨(Taryll Adren Jackson), 토리애노 잭슨(Toriano Jackson) 멤버 : 티토 조셉 잭슨(Tito Joseph Jackson), 타릴 안드렌 잭슨(Taryll Adren Jackson), 토리애노 잭슨(Toriano Jackson)
노래 : B2K (비투케이)
1997년, 지 부그(J-Boog)와 릴 피즈(Lil’ Fizz), 래즈 비(Raz-B)라는 코흘리개 친구들이 가수의 꿈을 품고 결성한 B2K. IMx의 멤버 배트맨(Batman)의 사촌 동생(지 부그)과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 마크스 휴스턴(Marques Houston)과 작업한 크리스 스톡스(Chris Stokes)의 친척(래즈 비)이 뭉쳤다는 소문만으로 기대와 총아를 받기에 충분했... 1997년, 지 부그(J-Boog)와 릴 피즈(Lil’ Fizz), 래즈 비(Raz-B)라는 코흘리개 친구들이 가수의 꿈을 품고 결성한 B2K. IMx의 멤버 배트맨(Batman)의 사촌 동생(지 부그)과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 마크스 휴스턴(Marques Houston)과 작업한 크리스 스톡스(Chris Stokes)의 친척(래즈 비)이 뭉쳤다는 소문만으로 기대와 총아를 받기에 충분했다. 이후 TV 광고에서 활약하던 오마리온(Omarion)이 가세하면서 본격적인 팝 스타로의 트레이닝이 시작되었다. 크리스 스톡스의 지휘 아래 보컬과 댄스를 연마해 가던 중, LA에서 개최된 신인 발굴 오디션에 출전, 레코드사 관계자의 눈에 띄어 뉴욕 본사로부터 호출 받는 행운이 찾아온다. 총수, 사장 등 여러 중역 앞에서 당당하게 퍼포먼스로 펼쳐 보인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계약을 맺고 즉시 데뷔전 준비에 들어간다. 물론 릴 바우 와우(Lil Bow Wow)의 투어와 MTV, 소울 트레인, 폭스 패밀리 채널 등에 출연하면서 21세기 만능 팝 스타가 되기 위한 갖은 경험 쌓기에도 주력했다. 그러던 중 발매된 데뷔 싱글 ‘Uh huh’는 어셔(Usher)와 블루 캔트렐(Blu Cantrell)의 곡을 만든 크리스 “트리키” 스튜어트(C. “Tricky” Stewart)가 프로듀스하여 트렌트를 정확히 꿰찬 리듬과 멤버들의 고운 미성을 부각시켰는데, 호시탐탐 적기만을 노리고 있던 B2K는 이 곡과 함께 10주 연속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면서 메인 스트림으로 점핑한다. 비록 수상까지 가지는 못했으나 BET 어워드에서 세 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고,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영국 투어에서 개막 공연을 맡는 등 등장하자마자 종횡무진 인기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여세를 몰아 조속히 발표한 셀프 타이틀 데뷔작 < B2K >는 저메인 듀프리(Jermaine Dupri), 브라이언 마이클 콕스(Bryan Michael Cox) 등 호화 제작진이 참여하여 파워풀한 역동성과 스무디한 유연성을 동시에 갖췄다. ‘Uh huh’의 뒤를 이어 ‘Gots ta be’가 차트 상위권에 랭크되고, 한 달 후에는 리믹스 음반 < B2K; The Remixes Vol. 1 >과 크리스마스 앨범 < Santa Hooked Me Up >을 차례로 발매한다. 그리고 그 해 겨울에 발포한 두 번째 정규 앨범 < Pandemonium! >에서 피 디디(P. Diddy)와 알 켈리(R. Kelly)가 서포트한 메가 히트 싱글 ‘Bump, bump, bump’으로 다시 한번 차트를 점령한다. 풋내기 티가 풀풀 풍기던 전작에 비해 이제는 듬직한 뮤지션으로 성장한 것이 확연히 눈에 띄는데, 오래 전에 맥이 끊긴 흑인 보이밴드의 자존심을 지킨 것을 격찬하며 (지난번 약만 된통 올렸던) BET 어워드가 베스트 그룹상을 포함한 두 개의 상을 수여했다. 멤버들이 주연한 영화 < You Got Served >(2004년)의 사운드 트랙까지 포함해 총 다섯 장의 음반을 반년 동안 팔아치웠다. 2002년 하반기 차트에서 B2K의 이름이 빠진 적이 없을 정도라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속도에 불을 붙이다보니 정통성이 떨어진다는 문제점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신통하게도 아이들은 그 어떤 허점도 보이지 않고 완벽하게 일을 처리했다. 보이밴드의 수명을 간파하여 일망타진 전법으로 한꺼번에 밀어 붙인 것이 결과적으로는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21세기를 대표하는 팀이 되겠다는 뜻의 B2K라는 이름이 얼마나 후대에 전해질지는 의문이다.
노래 : Mario (마리오,Mario Barett)
*1986년 미국 생. 본명은 마리오 버레트(Mario Barett). *스스로를 '보이 원더(Boy Wonder)'라 칭할 정도로 R&B의 거장 스티비 원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브라이언 맥나이트, 어셔, 마이클 잭슨 등을 우상으로 성장. *14살 되던 해, 현존하는 팝계 최고의 마이다스, 클라이브 데이비스(Clive Davis)에게 재능을 인정받으며 제이 레코드(J Records)와의 메이저 계약이... *1986년 미국 생. 본명은 마리오 버레트(Mario Barett).
*스스로를 '보이 원더(Boy Wonder)'라 칭할 정도로 R&B의 거장 스티비 원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브라이언 맥나이트, 어셔, 마이클 잭슨 등을 우상으로 성장.
*14살 되던 해, 현존하는 팝계 최고의 마이다스, 클라이브 데이비스(Clive Davis)에게 재능을 인정받으며 제이 레코드(J Records)와의 메이저 계약이라는 개가를 올림.
*2002년 , 의 연속 Top 10 히트를 통해, 데뷔 앨범 [Mario]가 골드 레코드를 기록하며 스타덤에 오름.
*어셔, 알 켈리 보컬의 장점만을 취한 듯 빼어난 노래 실력, 영화계로부터 지속적인 러브 콜을 받을 정도의 수려한 외모로 어셔, 저스틴 팀버레이크 등과 어깨를 견줄 최고의 차세대 슈퍼스타로 집중적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음.
Angie’s Black Diamond 언젠가 록 전문지 < 롤링스톤 >은 ‘소울의 새 여왕들(New Queens of Soul)’이란 제목으로 흑인 여가수 16인의 이미지 포토를 특집으로 다룬 적이 있다. 그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을 살펴보면 시대의 트렌드를 리드하는 굵직한 여가수들이 대거 뽑혔다. 매이시 그레이, 에리카 바두, 메리 제이 블라이지, 인디아 아리, 미시 엘리어트, 질 스코트, 페이스 에반스, 로린... Angie’s Black Diamond 언젠가 록 전문지 < 롤링스톤 >은 ‘소울의 새 여왕들(New Queens of Soul)’이란 제목으로 흑인 여가수 16인의 이미지 포토를 특집으로 다룬 적이 있다. 그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을 살펴보면 시대의 트렌드를 리드하는 굵직한 여가수들이 대거 뽑혔다. 매이시 그레이, 에리카 바두, 메리 제이 블라이지, 인디아 아리, 미시 엘리어트, 질 스코트, 페이스 에반스, 로린 힐, 알리샤 키스 그리고 그 외 한 장의 티켓은 바로 앤지 스톤(Angie Stone)의 몫이었다. 앤지 스톤은 세기말과 새 천년에 걸쳐 폭발한 네오 소울의 르네상스를 이끈 주역으로, 이미 비평계로부터 찬사를 획득했다. 복고 소울과 모던 힙합/R&B를 절묘하게 뒤섞은 데뷔 앨범 < Black Diamond >(1999)의 반짝이는 결과물이 그의 잠재력을 입증하고도 남았다. 그 스스로 음반 제작 능력을 보였고, 노래 솜씨 역시 발군의 기량을 보였기에 사람들은 감탄사를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 전통 소울을 그리워했던 이들에게 흑인 음악의 옛 유산을 토해낸 앤지 스톤의 소리샘은 절로 흥에 겨웠을 것이다. 즉 1999년 그래미상을 석권한 로린 힐(Lauryn Hill)을 굳이 마이클 잭슨에 비유하자면 앤지 스톤은 프린스에 가깝다. 푸지스와 연계된 로린 힐이 좀더 ‘주류 지향적 뮤직’으로 흑백 청중 모두를 사로잡았다면 앤지 스톤은 ‘퍼펙트 블랙 서클’을 그리며 다수 흑인들에게 환영받는 쪽을 택했다. 이는 프린스의 자양분을 흡수했고 팔세토 창법을 섬세하게 표출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앤지 스톤은 35세 때 솔로 가수로 데뷔했다. ‘사자 머리’ 매이시 그레이(Macy Gray)가 스물 아홉에 데뷔한 것보다 훨씬 느리다. 똑같이 서구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낸 매이시 그레이의 데뷔작 < On How Life Is >가 1999년 7월 세상에 나왔고, 앤지 스톤의 데뷔작은 같은 해 9월 출시됐다. 원래는 1980년대 초반 등장, 첫 번째 메이저 여성 힙합 팀으로 기록된 시퀀스(The Sequence)의 리드 싱어/래퍼로 활동했고, 이후 힙합/알앤비 혼성 트리오 버티컬 홀드(Vertical Hold)에 몸담으며 2장의 음반을 발표했었다.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결코 데뷔 지각생인 것만도 아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디안제로(전남편)와 레니 크라비츠(음악 친구)를 작업 파트너로 만나기 전까진 완전 무명에 가까웠다. 결국 오랜 기간 지하세계에서 땀흘린 대가는 훗날 성공으로 보상받았다. ‘음반 업계의 거물인사’ 클라이브 데이비스가 새 왕국 < J > 레코드사를 설립하자 앤지 스톤은 보금자리를 그곳으로 옮겼다. 1집 음반이 클라이브 데이비스의 전(前) 소속사 < 아리스타 >에서 발매됐기 때문이다. 이윽고 공개된 2집 < Mahogany Soul >(2001)은 레니 크라비츠와 디안젤로, 그리고 프린스의 개성을 흡수, ‘여성 프린스의 등장’을 알린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3년 뒤 내놓은 3집 < Stone Love >(2004)의 내용물도 블랙 다이아몬드처럼 빛났다. 지금까지 ‘No more rain (In this cloud)’, ’Brotha’, ’Wish I didn’t miss you’, ’I Wanna thank ya’ 등의 싱글을 쏟아낸 3장의 음반이 전부 평단의 찬사를 획득했고, 흑음(黑音) 팬들에게 널리 환영받았다. 1964년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콜롬비아에서 앤젤라 라베른 브라운(Angela Laverne Brown)이란 본명으로 태어난 그가 일찌감치 음악적 재능을 뿌리내리는 데는 가스펠 그룹에서 노래했던 부친의 영향이 컸다. 자신의 음악적 영웅을 묻는 질문에 그는 아레사 프랭클린과 도니 하더웨이, 스모키 로빈슨과 마빈 게이를 주저 없이 손꼽았다. 1집 < Black Diamond >의 수록곡으로 마빈 게이의 ‘Trouble man’이 커버됐다는 것이 그 사실을 대번 입증해준다.
노래 : Aaliyah (알리야,Aaliyah Dana Haughton)
2001년 8월 25일, 팝팬들은 쉽게 믿겨지지 않는 비보를 접했다. 앞날이 구만리 같던 흑인 음악의 기대주 알리야(Aaliyah)가 바하마 섬에서 새로이 발표된 3집 < Aaliyah >에 수록된 곡의 뮤직 비디오를 찍고 귀환하던 도중 비행기 사고로 조종사, 스탭진과 함께 세상을 떠난 것이다. 겨우 22살이었다. 알리야 허튼(Aaliyah Haughton)이 본명인 알리야는 1979년 1월 16일 뉴욕의 브룩클... 2001년 8월 25일, 팝팬들은 쉽게 믿겨지지 않는 비보를 접했다. 앞날이 구만리 같던 흑인 음악의 기대주 알리야(Aaliyah)가 바하마 섬에서 새로이 발표된 3집 < Aaliyah >에 수록된 곡의 뮤직 비디오를 찍고 귀환하던 도중 비행기 사고로 조종사, 스탭진과 함께 세상을 떠난 것이다. 겨우 22살이었다. 알리야 허튼(Aaliyah Haughton)이 본명인 알리야는 1979년 1월 16일 뉴욕의 브룩클린에서 태어났지만 검은 음악의 메카인 모타운 레코드가 자리하고 있는 디트로이트에서 성장했다. 가수였던 어머니와 숙모였던 리듬 앤 블루스 싱어인 글래디스 나잇(Gladys Knight)과 함께 무대에 서는 등 어려서부터 연예계 체질에 적응하면서 음악적인 소양을 쌓은 알리야는 10대 초반에 알 켈리(R. Kelly)를 만나 1994년 데뷔 앨범을 발표하면서 프로 세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당시 15살이었다. 1980년대 후반, 도시 풍의 깔끔하고 세련된 흑임 음악을 일컫는‘어반(Urban)’이란 장르가 힙합 리듬, 랩, 그리고 샘플링 기법을 받아들이면서 기존의 리듬 앤 블루스보다 펑키(funky)하고 그루브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흑인 음악을 추구하는 남성 가수들을 ‘뉴 잭 스윙’, 여성 가수들을 ‘뉴 질 스윙’이라 불렀다. 이 같은 음악을 창조한 스타일리스트는 1980년대 후반에 활동했던 흑인 남성 3인조 밴드 가이(Guy)를 거쳐 1990년대를 풍미한 4인조 보컬 그룹 블랙스트리트(Blackstreet)의 리더였던 테디 라일리(Teddy Riley)였으나, 곧 라이벌이 등장해 그의 독점에 제동을 걸었다. 그 인물이 바로 알 켈리였고 그가 심혈을 기울여 발굴한 가수가 상당한 미모를 소유한 고등학생 알리야였다. 1994년에 발표된 데뷔 앨범 < Age Ain’t Nothing But A Number >에 수록된 13곡 중에서 소울 펑크(funk) 그룹 아이슬리 브라더스(Isley Brothers)의 원곡 ‘At your best (You are love)’를 제외한 12곡을 알 켈리가 작곡하고 음반을 제작하면서 시작된 이들의 인연은 필연적인 결혼으로 이어졌다. 당시 16살이었다. 뉴 질 스윙의 전형 ‘Back & Forth(4위)’와 아름다운 발라드 ‘At your best (You are love/6위)’, 그리고 자신만만한 앨범 타이틀곡 ‘Age ain’t nothing but a number’의 선전으로 하루아침에 흑인 음악계의 신성으로 떠오른 알리야의 성공은 남편이자 음악적 동지인 알 켈리의 입김이 작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오직 그것 때문에 알리야의 등장이 돋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15살이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이 음반에서 알리야의 가창력은 빛을 발한다. 특히‘At your best (You are love)’와 ‘No one knows how to love me quite like you do’에서의 노래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년이란 시간은 알리야에게 외적, 내적, 그리고 음악적으로 발효의 기간이었다. 1996년에 공개된 2집 < One In A Million >은 처녀작만큼 큰 히트 싱글은 없었지만 음반 전체적으로는 일취월장한 음반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아이슬리 브라더스의 원곡 ‘Choosey lover’와 마빈 게이(Marvin Gaye)의 1977년 1위 정복곡 ‘Got to give it up’을 리메이크해 2년 전에 비해 성숙한 음색으로 다시 나타난 알리야는 더 이상 10대의 이미지에 속박되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때도 알리야는 17살의 10대였다. 그리곤 4년이 지난 2000년, 자신이 주인공을 맡은 영화와 그 사운드트랙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연걸과 함께 주연한 액션 영화 < 로미오 머스트 다이 >에서 여주인공 역도 맡고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4곡도 직접 취입하면서 여성판 윌 스미스(Will Smith - DJ Jazzy Jeff & The Fresh Prince의 랩퍼로 출발해 현재는 영화 배우로 맹활약하고 있는 흑인 남자 배우 겸 랩퍼)가 되고자 했지만 첫 출연작이라는 부담감 때문에 그녀의 연기는 부자연스러웠고 호평도 받지 못했다. 두 번째 솔로 CD가 발표된 지 5년만인 2001년 여름, 음악 팬들은 그녀의 3번째이자 마지막 음반 < Aaliyah >를 맞이했다. 그러나 이 음반을 공개하고 본격적인 활동의 나래를 펴기 전에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생일 케이크에 22개의 촛불이 켜진 해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알리야의 데뷔 앨범 제목의 뜻은 "나이는 단지 숫자일 뿐"이다.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당하거나 과대 평가 받기를 거부하면서 정정당당하고 공평하게 자신의 재능과 능력이 인정받길 원했다. 하지만 11살 때 처음으로 무대에 섰고, 15살 때 첫 음반 발표했으며 16살에 결혼했고, 그리고 22살에 세상을 떠난 그녀에게 나이는 더 이상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노래 : Christina Aguilera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영미의 팝 음악은 그간 국내 대중음악의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아무래도 우리 가요보다 수준이 높아 팝 음악만을 듣는 마니아들도 폭넓게 존재해 있고 사실 배울 것도 많다. 팝은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며 음악시장에서 나름대로 지분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10대 중심의 댄스음악에 몰려 있는 국내 음악계에 귀감이 되어왔다. 이 점은 한편으로 미국 팝 음악은 결코 우리처럼 틴에이저 지향의 댄스음악으로 몰리지 않는다는 것을 말... 영미의 팝 음악은 그간 국내 대중음악의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아무래도 우리 가요보다 수준이 높아 팝 음악만을 듣는 마니아들도 폭넓게 존재해 있고 사실 배울 것도 많다. 팝은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며 음악시장에서 나름대로 지분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10대 중심의 댄스음악에 몰려 있는 국내 음악계에 귀감이 되어왔다. 이 점은 한편으로 미국 팝 음악은 결코 우리처럼 틴에이저 지향의 댄스음악으로 몰리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웬일인지 미국에도 최근 10대 댄스음악 열풍이 불고 있다. 국내 음악계의 교사 역할을 해왔던 미국이 도리어 한국 음악계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라 있는 곡 ‘Genie in a bottle’의 주인공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라는 이름의 여가수다. 올해 나이 겨우 18살이다. 금발에 푸른 눈의 뛰어난 미모를 소유해 노래 이상으로 가수 본인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전해진다. 크리스티나를 출세시킨 곡 ‘Genie in a bottle’은 물론 댄스음악이다. 이러한 10대 여가수 선풍은 벌써 올해 들어 두 번째다. 상반기에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라는 소녀가수 얘기로 팝계가 한바탕 떠들썩했다. 크리스티나처럼 미모인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17살이며 역시 댄스음악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크리스티나와 브리트니는 모두 올란도 지역의 TV 쇼프로 ‘미키 마우스 클럽’에 출연하다가 가수로 데뷔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것은 미국 음반업계의 스타시스템이 그간의 록 그룹이나 성인 여가수 중심에서 ‘미모의 틴에이저 여가수’를 키우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다. 근래 국내 가요계의 모습과 비슷해져버린 것이다. 그러나 차이점은 있다. 아무리 어린 여가수를 뽑아내 홍보와 마케팅으로 스타를 만들어낸다 할지라도 최소한 ‘기본’을 지킨다는 점이다. 그 기본이란 바로 가수의 필요조건인 가창력이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확실히 증명한다. 얼핏 금발의 미모라서 비디오만 믿고 내보낸 것 같지만 실은 나이답지 않게 노래를 잘한다. ‘Genie in a bottle’외에 그녀의 데뷔작에 수록된 곡 ‘I turn to you’ ‘So emotional’ ‘Reflection’ 등은 기성 가수가 들어도 인정할 정도의 노래 실력이다. 우리의 어린 여가수처럼 듣기가 전혀 거북하지 않다. 특히 발라드 ‘I turn to you’는 감정처리마저 아주 능란하다. 어린 백인 여가수치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흑인 리듬 앤 블루스의 소화력이 뛰어나다. 크리스티나의 포부는 감각이나 앳된 외모를 내세운 하이틴 스타가 아니라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머라이어 캐리와 같은 ‘디바’가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여전히 우리가 적극적으로 참고하고 반성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 팝계에 어린 여가수 붐이 일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같거나 또는 앞서 있다고 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노래 : Pink (핑크,Alicia Beth Moore)
2000년에 데뷔한 신인 R&B 여가수 핑크는 베이비페이스와 LA 리드가 설립한 레이블 < 라페이스 >(LaFace)가 점찍은 전도유망한 기대주다. 분홍빛 머리색에서 따와 이름을 정한 핑크는 어려서부터 갈고 닦은 가창력을 바탕으로 업 템포의 댄스 팝과 R&B 넘버들을 들려준다. 언뜻 듣기에 TLC 같은 선배 여가수들과 비슷하게 들리지만 튀는 외모만큼이나 상큼한 개성이 남들과 구별된다. R&B 최정상 레이블인 < ... 2000년에 데뷔한 신인 R&B 여가수 핑크는 베이비페이스와 LA 리드가 설립한 레이블 < 라페이스 >(LaFace)가 점찍은 전도유망한 기대주다. 분홍빛 머리색에서 따와 이름을 정한 핑크는 어려서부터 갈고 닦은 가창력을 바탕으로 업 템포의 댄스 팝과 R&B 넘버들을 들려준다. 언뜻 듣기에 TLC 같은 선배 여가수들과 비슷하게 들리지만 튀는 외모만큼이나 상큼한 개성이 남들과 구별된다. R&B 최정상 레이블인 < 라페이스 >가 선택한 가수답게 핑크는 충분한 실력과 잠재력을 지진 가수다. 1979년에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핑크는 음악가정에서 성장했다. 밥 딜런과 돈 맥클린의 노래를 기타로 즐겨 치곤 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녀는 10대 초반부터 클럽에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여러 클럽을 순회하며 댄스와 힙합에 젖어들었으며, 14살 때에는 처음으로 노래를 작곡했다. 얼마후 이를 눈여겨본 음반사 관계자에 의해 오디션을 보게 되지만 탈락했다. 하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핑크는 초이스(Choice)라는 여성 3인조 그룹을 결성해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 < 라페이스 >에 보냈다. 다행히도 그 테이프가 통과되어 핑크는 당당 < 라페이스 > 사단의 일원이 되었다. 얼마 후 초이스는 해체되고 핑크는 솔로로 독립했다. 그 첫 행보가 2000년 출시된 데뷔앨범 < Can’t Take Me Home >이다. ‘마이다스의 손’ 베이비페이스와 LA 리드 그리고 대릴 시몬의 손길이 닿은 이 앨범은 새로운 여성 R&B 스타를 탄생시켰다. 이 앨범을 들어보면 요즘의 프로듀서진들이 얼마만큼 뛰어난 지 느낄 수 있다. 꽉 찬 사운드에 탄탄한 곡 구성력은 감탄할 정도다. 가히 ‘프로듀서들의 시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프로듀서들은 핑크의 매력적이고 원기 충만한 보컬을 충분히 부각시켰다. 신시사이저 프로그래밍이 대부분의 곡에 사용되고 있는 것이 특색. 데뷔 싱글 ‘There you go’은 TLC의 ‘No scrub’을 만들어 크게 히트시켰던 섹스피어(She’kspeare)가 작곡한 곡이다. 펑키함이 꿈틀거리는 이 곡은 톱10 히트를 기록했다. 닐 크리크의 곡을 샘플링한 발라드 곡 ‘Let me let you know’에서 핑크의 보컬은 머라이어 캐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국내 모 틴 여가수가 표절했다는 시비가 붙기도 한 ‘Most girls’ ‘Just to be loving you’ 같은 곡에서의 검은 정글 리듬은 근래 틴 팝의 경향과도 일맥상통한다. 전체적으로 TLC의 영향이 감지되는 가운데 틴 팝과 머라이어 캐리 풍의 발라드도 함께 구사하고 있다. 나무랄 데 없는 재능을 지녔지만 1집만 가지고 본다면 이 앨범의 영광은 프로듀서의 몫으로 돌려야 할 것 같다. 2001년 6월에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마야, 릴 킴과 함께 영화 < 물랑 루즈 >의 삽입곡 ‘Lady Marmalade’를 불러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노래 : Lil' Bow Wow (릴 바우 와우,Bow Wow / Shad Gregory Moss)
힙합 래퍼, 배우 힙합 래퍼,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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