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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팝 음악 모음집 (The Classic 90s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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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1990년대 팝 음악 모음집 (The Classic 90s Collection)

크랙 데이빗, 브리트니 스피어스, 엔싱크, 제니퍼 로페즈, 백스트리트 보이즈 등

[ 3CD ]
Backstreet Boys, Britney Spears, Christina Aguilera, Nsync, Steps 노래 외 53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SonyMusic | 2017년 06월 26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204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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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팝 음악 모음집 (The Classic 90s Collection)

이 상품의 시리즈 (5개)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7년 06월 26일
제조국 EU

관련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Disc1
  • 01 Everybody (Backstreet's Back) - Backstreet Boys
  • 02 ...Baby One More Time - Britney Spears
  • 03 Genie in a Bottle - Christina Aguilera
  • 04 I Want You Back - *NSYNC
  • 05 Tragedy - Steps
  • 06 Cotton Eye Joe - Rednex
  • 07 Everybody Get Up - Five
  • 08 Mambo No. 5 (A Little Bit of...) - Lou Bega
  • 09 Shake Your Bon-Bon - Ricky Martin
  • 10 Torn - Natalie Imbruglia
  • 11 You're Not Alone - Olive
  • 12 Insomnia - Faithless
  • 13 I'm Outta Love - Anastacia
  • 14 Think Twice - C?line Dion
  • 15 C'est la vie - B*Witched
  • 16 Waiting for Tonight - Jennifer Lopez
  • 17 Where Love Lives - Alison Limerick
  • 18 Steal My Sunshine - Len
  • 19 Rewind - Craig David
  • 20 At the River - Groove Armada
Disc2
  • 01 It's Like That - RUN-DMC vs. Jason Nevins
  • 02 Mr. Loverman - Shabba Ranks feat. Chevelle Franklin
  • 03 Summertime - DJ Jazzy Jeff & The Fresh Prince
  • 04 She's Got That Vibe - R. Kelly & Public Announcement
  • 05 Can I Kick It? - A Tribe Called Quest
  • 06 Insane in the Brain - Cypress Hill
  • 07 Fu-Gee-La - Fugees
  • 08 I've Got a Little Something for You - MN8
  • 09 Gonna Make You Sweat (Everybody Dance Now) - C+C Music Factory feat. Freedom Williams
  • 10 Moving on Up - M People
  • 11 A Deeper Love - Aretha Franklin
  • 12 I'm Every Woman - Whitney Houston
  • 13 Shy Guy - Diana King
  • 14 Boy You Knock Me Out - Tatyana Ali
  • 15 You Make Me Wanna... - Usher
  • 16 Shackles (Praise You) - Mary Mary
  • 17 Creep - TLC
  • 18 Westside - TQ
  • 19 Angel of Mine - Monica
Disc3
  • 01 Place Your Hands - Reef
  • 02 Two Princes - Spin Doctors
  • 03 Hush - Kula Shaker
  • 04 Stop the Rock - Apollo 440
  • 05 Butterfly - Crazy Town
  • 06 Gone Till November - Wyclef Jean
  • 07 Here We Are - Gloria Estefan
  • 08 Volare (Nel Blu di Pinto di Blu) - Gipsy Kings
  • 09 Macarena - Los Del Rio
  • 10 Another Night - Real McCoy
  • 11 Step by Step - New Kids On The Block
  • 12 Can't Get Enough of Your Love - Taylor Dayne
  • 13 Steel Bars - Michael Bolton
  • 14 Damn I Wish I Was Your Lover - Sophie B. Hawkins
  • 15 I Wonder Why - Curtis Stigers
  • 16 Bomb Diggy - Another Level
  • 17 Blue Angels - Pras
  • 18 She's so High - Tal Bachman
  • 19 I Need You - 3T
  • 20 Hallelujah - Jeff Buckley
  • 20 Life - Des'ree

아티스트 소개 (58명)

노래 : Backstreet Boys (백스트리트 보이즈)
멤버 : A.J. McLean, Brian Littrell, Howie Dorough, Nick Carter 얼마 전 록 전문지 < 롤링스톤 >이 MTV와 공동으로 선정한 ‘팝 역사를 수놓은 명곡 100선’에 백스트리트 보이스(Backstreet Boys)의 ‘I want it that way’가 예상 밖으로 높은 순위인 10위에 올라 눈길을 끈 바 있다. 10대들을 주요 팬 층으로 하는 ‘버블 검 음악’이... 멤버 : A.J. McLean, Brian Littrell, Howie Dorough, Nick Carter

얼마 전 록 전문지 < 롤링스톤 >이 MTV와 공동으로 선정한 ‘팝 역사를 수놓은 명곡 100선’에 백스트리트 보이스(Backstreet Boys)의 ‘I want it that way’가 예상 밖으로 높은 순위인 10위에 올라 눈길을 끈 바 있다. 10대들을 주요 팬 층으로 하는 ‘버블 검 음악’이라 하여 여기저기서 비판을 받는 와중에 권위 있는 록 언론에 의해 이들의 노래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백스트리트 보이스는 분명 음반업계의 기획에 의해 ‘잘 만들어진 그룹’이다. 보통 이런 기획상품의 경우 아티스트의 자기 표현을 최고 덕목으로 치는 사람들은 여지없이 평가 절하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무시되지 않는 이유는 먼저 예상 밖으로 양질의 음악을 선사하고있기 때문이다. 곡도 좋고 멜로디를 타는 멤버들의 노래솜씨와 코러스도 우수하다. 애들 음악이라고 푸대접하지만 막상 들으면 모든 곡들이 귀를 감는다. 또 하나 백스트리트 보이스가 손꼽히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버블 검 음악이 1990년대 중반 이후의 팝 주요 경향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들이 요즘의 유행을 만들었고 또 주도하고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백스트리트 보이스가 성공을 거두자 팝 음악계에서는 우후죽순으로 10대 소녀들을 겨냥한 ‘보이 밴드’들이 출현하고 있다. 닉 카터, 하위 D, 케빈 리처슨, AJ 맥클린 그리고 브라이언 리트렐 등 다섯 남자로 이루어진 그룹이다. 케빈은 1972년 생이고 가장 어린 1980년 생 닉 카터도 나이 스물을 넘어섰다. 10대 음악을 하지만 멤버들 가운데 틴에이저는 없다. 1994년 결성될 때는 당시 음악이 얼터너티브 록과 갱스터 랩 판이어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2집 < Backstreet''s back >부터 미국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으며 1999년 초에 발표한 3집 < Millenium >에 와서는 세계적 열풍을 야기했다. 이 앨범은 지금까지 1300만장이 팔려 틴 음악 앨범 중에서는 최고 판매고를 보이고 있다. 잠시 공백을 갖는 사이 같은 소속사의 라이벌 N싱크한테 추월 당한 감이 없지 않지만 최근 새 앨범 < Black & blue >을 내놓고 왕관탈환에 나섰다. 그래서 과연 신작이 얼마만큼 팔려나갈 것인가가 관심이다. 관계자들은 이번 앨범이 그들의 장수 여부를 결정지을 것으로 내다본다.
노래 : Britney Spears (브리트니 스피어스 (팝 보컬))
지금 미국 팝계를 뒤흔들고 있는 가수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라는 이름의 아직 19살이 안된 어린 여가수다. 그녀의 지난해 데뷔앨범은 미국 내에서만 천2백만장 판매고라는 일대 회오리를 일으켰다. 단숨에 ‘틴에이저 여왕’으로 떠오른 그녀가 막 2집 앨범을 내놓자 전 미국이 또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미국의 도하 각 신문과 방송은 브리트니 스피어스 모시기 쟁탈전을 벌이고있다. 전 매체의 당면 최대 과제가 ‘브리트니 스피어... 지금 미국 팝계를 뒤흔들고 있는 가수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라는 이름의 아직 19살이 안된 어린 여가수다. 그녀의 지난해 데뷔앨범은 미국 내에서만 천2백만장 판매고라는 일대 회오리를 일으켰다. 단숨에 ‘틴에이저 여왕’으로 떠오른 그녀가 막 2집 앨범을 내놓자 전 미국이 또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미국의 도하 각 신문과 방송은 브리트니 스피어스 모시기 쟁탈전을 벌이고있다. 전 매체의 당면 최대 과제가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잡아라!’라는 것이다. 아무리 인기 있는 틴에이저 가수가 출현해도 거들떠보지도 않던 언론이 예외적으로 그녀를 다루는데 골몰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어리지만 어른 특히 성인남자 팬들이 많기 때문이다. 남성들한테 브리트니는 결코 소녀로 비치지 않는다. 옷을 하나 입어도 섹시하게 치장하고, 춤을 춰도 어른 못지 않은 에너지가 넘친다. 그녀가 내뿜는 강한 섹슈얼 파워에 어른들도 매혹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어린 섹스심벌’이다. 솔직히 그녀가 대단한 미모이거나 다리가 길다거나 하는 탁월한 신체조건의 소유자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보통의 외모에 섹슈얼리티를 갖춘 것이 도리어 또래들에게는 자신감, 어른들에게는 친근감을 주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런 탓에 그녀는 ‘롤링스톤’과 같은 록 전문지의 표지인물로도 등장한다. 최신호 커버에 등장한 그녀가 던지는 인상은 ‘착해 보이면서도 섹시하다’는 것이다. 그녀의 음악도 외모를 닮아있다. 달콤한 멜로디를 지닌 댄스곡들이지만 아주 힘차다.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있는 신곡 ‘Oops! ... I did it again''부터가 강렬한 비트를 바탕으로 하고있다. 다른 댄스 팝 여가수들과 여기서 차별화된다. 실제의 그녀 또한 마돈나처럼 스스로 캐리어를 개척하는 독립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보에서 그녀는 대담하게 록그룹 롤링 스톤스의 명곡 ‘(I can''t get no)Satisfaction''를 부르고 있다. 레코드회사나 주변인들이 ‘해봤자 욕먹는다’며 말렸는데도 끝내 고집을 부려 새 앨범에 이 곡을 수록했다. 브리트니는 “강한 느낌의 곡을 만들어낼 테니 두고 보라”고 큰소리쳤다고 한다. 브리트니가 록계에서도 주목받는 것은 이처럼 음악계 어른들의 말대로 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밀고 나가는 당돌한 자세 때문이다. 관심사는 신보가 과연 얼마나 팔려나가는데 있다. 전작의 판매고를 따른다는 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곡은 벌써 라디오 최다 신청곡 기록을 깼다. 현재 미국 라디오 전파는 브리트니의 노래로 완전히 장악되었다는 소식이다.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여기저기서 신보의 대박 조짐이 보인다. 무엇보다 음악이 대중적으로 어필할 소지가 충분하다. 음반업계는 그녀만은 소포모어 징크스 즉 2집 앨범 징크스는 없을 것으로 단정하고 있다. 2000년 팝계가 다시 그녀의 것이 될 공산이 크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주요 기록]
-여섯 장의 정규 앨범으로 통산 8천 6백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
-대한민국 통산 판매량 100만 장 돌파
-3곡의 빌보드 싱글차트 1위곡, 5곡의 영국차트 1위곡 보유
-새싱글 ‘3’ 빌보드 싱글차트 1위로 핫샷데뷔 * 非아메리칸 아이돌 싱글로는 21세기 유일
-그래미상, 빌보드상,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 등 주요 시상식 수상
-2003 포브스 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유명인사 (가수로는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
-야후! 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많이 검색되는 유명인사 7년간 1위
-2000년대에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아티스트
-2000년대에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여가수
-기네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10대 아티스트
-기네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10대 아티스트의 앨범 "...Baby One More Time"
-기네스 선정 7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많이 검색되는 인물
-기네스 선정 가장 어린 나이에 가장 많은 영국차트 1위를 기록한 여성 아티스트
-기네스 선정 가장 어린 나이에 5장의 빌보드 넘버원 앨범을 보유한 아티스트
-가장 어린 나이에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여성 가수
-가장 어린 나이에 빌보드 앨범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여성 가수
-가장 어린 나이에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 에 입성한 셀러브리티
-가장 어린 나이에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 여성 가수
-그녀의 저서 “Heart To Heart” - 뉴욕 타임즈 주간 및 베스트 셀러 선정
-역대 투어 티켓 수입 5억달러, 머천다이즈 수입 2억달러 이상 (역대 최고 기록)
-역사상 가장 많은 수입을 벌어들인 셀러브리티 향수 “Curious” - 6억 달러 이상의 수익
-2004년 가장 많이 판매된 향수 “Curious” - 출시 5주만에 1억달러 수익 돌파
-브리트니의 향수 통산 수익 20억 달러 돌파 * 향수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드린 셀러브리티
-동명의 앨범/싱글을 같은 주에 빌보드 앨범/싱글차트 1위에 올린 최초의 아티스트
-영국에서 가장 단기간에 가장 많이 판매된 싱글 "...Baby One More Time"
-미국에서 역사상 가장 많은 리퀘스트를 받은 곡 “Oops!...I Did It Again”
-데뷔 앨범부터 두 장의 음반이 연속으로 미국에서 다이아몬드 인증 (1,000만장 이상 판매)
-2000년 이후 메인스트림 팝 라디오차트에 가장 많은 곡을 올린 아티스트: 22곡의 싱글
-역사상 많은 'Teen Choice Awards' 를 수상한 스타: 통산 16개
-여섯 장의 음반이 모두 빌보드 앨범차트 1위, 혹은 2위를 차지한 유일한 여가수
-MTV TRL 에서 가장 많은 비디오를 순위에 올린 아티스트 (18곡)
-MTV TRL 에서 가장 많은 비디오를 1위에 올린 아티스트 (15곡)
-MTV TRL 에서 가장 많은 비디오를 명예 은퇴 시킨 아티스트 (13곡)
-영국 역사상 첫 주에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 앨범 “Greatest Hits: My Prerogative”
-월드 차트에서 가장 많은 1위 곡을 보유한 여가수 2위 (1위: 마돈나)
-미국에서 첫 주에 가장 많이 팔린 여성 가수의 앨범 "Oops!...I Did It Again" - 131만장
-미국에서 50만 장 이상의 오프닝 세일즈를 기록한 음반을 네 장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여가수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여성가수 8위
-미국에서 첫 주에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여성 가수의 싱글 "Womanizer" ? 28만 6천건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가장 높은 순위 상승으로 1위를 기록한 곡 "Womanizer" - 96위 → 1위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뮤직비디오 “Womanizer”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지 선정 지난 25년간 가장 위대한 팝 앨범 중 하나로 선정된 ‘Britney’
-가장 많은 트위터 ‘Follower’ 를 보유한 아티스트
-미국 인기 시트콤 ‘How I Met Your Mother’ * 브리트니 카메오 출연분 시리즈 통산 시청률 1위
-최신 월드 투어 “The Circus Starring: Britney Spears” - 61회에 걸친 북미 투어 전회 매진
-“Circus” 투어는 북미 공연으로만 94만 명 이상의 관객 동원, 8천만 달러 이상의 수입 기록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큰 규모의 투어 “The Circus Starring: Britney Spears”
-2002 코스모폴리탄 매거진 선정 올해의 여성
-2003 글래머 매거진 UK 선정 올해의 여성
-2004 FHM 매거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
-2008 코스모폴리탄 매거진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컴백’
-2008 GQ 매거진 독일 선정 ‘올해의 여성’
-2008 AOL 선정 가장 많이 검색된 유명인사
-2009 플레이보이 매거진 선정 가장 섹시한 뮤직비디오 “Womanizer”
-2009 상반기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투어 “The Circus Starring: Britney Spears”

[브리트니 스피어스 주요 수상 경력]
Grammy Awards
-2000 Best New Artist 후보
-2000 Best Female Pop Vocal Performance "...Baby One More Time" 후보
-2001 Best Pop Vocal Album "Oops!...I Did It Again" 후보
-2001 Best Female Pop Vocal Performance "Oops!...I Did It Again" 후보
-2003 Best Female Pop Vocal Performance "Overprotected" 후보
-2005 Best Dance Recording "Toxic" 수상

Billboard Music Awards
-1999 Female Artist of the Year 수상
-1999 Female Album Artist of the Year 수상
-1999 Hot 100 Singles Female Artist of the Year 수상
-1999 Best New Artist of the Year 수상
-2000 Best Album Artist 수상
-2000 World-Record Breaker "Oops!... I Did It Again" 수상
-2004 Best-selling Dance Single of the Year "Me Against the Music" 수상
-2007 Best Album of 2007 "Blackout" 선정
-2008 Best Album of 2008 "Circus" 선정
-2009 Best Album "Circus" 수상

American Music Awards
-2000 Favorite Pop/Rock New Artist 수상
-2000 Favorite Pop/Rock Artist 후보
-2000 Favorite Pop/Rock Album "...Baby One More Time" 후보
-2001 Favorite Pop/Rock Artist 후보
-2001 Favorite Pop/Rock Album "Oops!...I Did It Again" 후보

MTV Video Music Awards
-1999 Best Female Video "...Baby One More Time" 후보
-1999 Best Pop Video "...Baby One More Time" 후보
-1999 Best Choreography in a Video "...Baby One More Time" 후보
-2000 Best Female Video "Oops!...I Did It Again" 후보
-2000 Best Pop Video "Oops!...I Did It Again" 후보
-2000 Best Dance Video "(You Drive Me) Crazy" 후보
-2000 Viewer's Choice "Oops!...I Did It Again" 후보
-2001 Best Pop Video "Stronger" 후보
-2002 Best Female Video "I'm a Slave 4 U" 후보
-2002 Best Dance Video "I'm a Slave 4 U" 후보
-2002 Best Choreography in a Video "I'm a Slave 4 U" 후보
-2003 Best Video from a Film "Boys" 후보
-2004 Video of the Year "Toxic" 후보
-2004 Best Female Video "Toxic" 후보
-2004 Best Pop Video "Toxic" 후보
-2004 Best Dance Video "Toxic" 후보
-2008 Video of the Year "Piece of Me" 수상
-2008 Best Female Video "Piece of Me" 수상
-2008 Best Pop Video "Piece of Me" 수상
-2009 Best Pop Video "Womanizer" 수상
-2009 Video of the Year "Womanizer" 후보
-2009 Best Direction in a Video "Circus" 후보
-2009 Best Choreography in a Video "Circus" 후보
-2009 Best Art Direction in a Video "Circus" 후보
-2009 Best Editing in a Video "Circus" 후보
-2009 Best Cinematography in a Video "Circus" 후보

MTV Europe Music Awards
-1999 Best Song "...Baby One More Time" 수상
-1999 Best Pop Act 수상
-1999 Best Female Solo Artist 수상
-1999 Best Breakthrough Act 수상
-2000 Best Song "Oops!...I Did It Again" 후보
-2000 Best Female Artist 후보
-2000 Best Pop Artist 후보
-2001 Best Pop Artist 후보
-2002 Best Female Artist 후보
-2004 Best Female Artist of the Year 수상
-2004 Best Song "Toxic" 후보
-2004 Best Pop Artist 후보
-2008 Album of the Year "Blackout" 수상
-2008 Best Act of 2008 수상
-2008 Best Act Ever 후보
-2009 Best Video "Circus" 후보

Kids' Choice Awards
-2000 Favorite Song "(You Drive Me) Crazy" 후보
-2001 Favorite Female Singer 수상
-2001 Favorite Music Solo or Group 후보
-2003 Favorite Female Singer 후보
-2005 Favorite Song "Toxic" 후보

Teen Choice Awards: 총 16개 부문 수상 (역사상 가장 많이 수상한 스타)
-1999 Choice Single "...Baby One More Time" 수상
-2000 Choice Female Artist 수상
-2000 Choice Hottie Female 수상
-2001 Choice Hottie Female 수상
-2002 Choice Female Artist 수상
-2002 Choice Hottie Female 수상
-2004 Choice Single "Toxic" 수상
-2009 The Ultimate Choice Awards 수상 등

MTV Total Request Live Awards
-2003 First Lady Award 수상
-2008 Most iconic video of the past TRL decade "...Baby One More Time" 수상
-2008 Queen of TRL 수상
-2008 Queen of Music Videos 수상

World Music Awards
-2000 World's best selling Pop Female Artist 수상
-2001 World's best-selling Pop Female Artist 수상
-2001 World's best-selling Dance Female Artist 수상

Rolling Stone Magazine Awards
-2001 Artist of the Year 수상
-2002 Best Dressed Female 수상
-2002 Best Female Artist 수상

NRJ Radio Awards (프랑스)
-2000 Best International Female Artist
-2008 Best International Album "Blackout" 수상
-2009 Female International Artist of the Year 수상
-2009 Video of the Year "Womanizer" 수상

Groovevolt Awards
-2004 Video of the Year "Toxic" 수상
-2004 Best Female Album "In The Zone" 수상
-2004 Best Song Performance by a Female Artist "Everytime" 수상
-2004 Most Fashionable Artist 수상

Bravo A List Awards
-2009 A-List Artist of the Year 수상
-2009 A-List Album " Circus " 수상
-2009 A-List Download "Circus" 수상

NewNowNext-Awards
2009 Always Now, Forever Next Award 수상

People's Choice awards
-Best International Artist 수상

MTV Asia Awards
-2002 Best Female Artist 수상

MTV Video Music Brazil Awards
-2009 International Artist Of The Year 수상

Bambi Awards (독일)
-2008 Best International Pop Star 수상

AOL Awards
-1999 Best New Artist 수상

Much Music Awards (캐나다)
-1999 Best International Artist 수상

Germany Bravo Gold Awards (독일)
-1999 Best International Female Vocalist 수상

Japan Golden Disc Awards (일본)
-Best International Music Video "I'm Not A Girl, Not Yet A Woman" 수상
-Best International New Artist 수상 외 세계 각국에서 다수의 수상경력 보유
노래 : Christina Aguilera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영미의 팝 음악은 그간 국내 대중음악의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아무래도 우리 가요보다 수준이 높아 팝 음악만을 듣는 마니아들도 폭넓게 존재해 있고 사실 배울 것도 많다. 팝은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며 음악시장에서 나름대로 지분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10대 중심의 댄스음악에 몰려 있는 국내 음악계에 귀감이 되어왔다. 이 점은 한편으로 미국 팝 음악은 결코 우리처럼 틴에이저 지향의 댄스음악으로 몰리지 않는다는 것을 말... 영미의 팝 음악은 그간 국내 대중음악의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아무래도 우리 가요보다 수준이 높아 팝 음악만을 듣는 마니아들도 폭넓게 존재해 있고 사실 배울 것도 많다. 팝은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며 음악시장에서 나름대로 지분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10대 중심의 댄스음악에 몰려 있는 국내 음악계에 귀감이 되어왔다. 이 점은 한편으로 미국 팝 음악은 결코 우리처럼 틴에이저 지향의 댄스음악으로 몰리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웬일인지 미국에도 최근 10대 댄스음악 열풍이 불고 있다. 국내 음악계의 교사 역할을 해왔던 미국이 도리어 한국 음악계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라 있는 곡 ‘Genie in a bottle’의 주인공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라는 이름의 여가수다. 올해 나이 겨우 18살이다. 금발에 푸른 눈의 뛰어난 미모를 소유해 노래 이상으로 가수 본인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전해진다. 크리스티나를 출세시킨 곡 ‘Genie in a bottle’은 물론 댄스음악이다. 이러한 10대 여가수 선풍은 벌써 올해 들어 두 번째다. 상반기에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라는 소녀가수 얘기로 팝계가 한바탕 떠들썩했다. 크리스티나처럼 미모인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17살이며 역시 댄스음악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크리스티나와 브리트니는 모두 올란도 지역의 TV 쇼프로 ‘미키 마우스 클럽’에 출연하다가 가수로 데뷔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것은 미국 음반업계의 스타시스템이 그간의 록 그룹이나 성인 여가수 중심에서 ‘미모의 틴에이저 여가수’를 키우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다. 근래 국내 가요계의 모습과 비슷해져버린 것이다. 그러나 차이점은 있다. 아무리 어린 여가수를 뽑아내 홍보와 마케팅으로 스타를 만들어낸다 할지라도 최소한 ‘기본’을 지킨다는 점이다. 그 기본이란 바로 가수의 필요조건인 가창력이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확실히 증명한다. 얼핏 금발의 미모라서 비디오만 믿고 내보낸 것 같지만 실은 나이답지 않게 노래를 잘한다. ‘Genie in a bottle’외에 그녀의 데뷔작에 수록된 곡 ‘I turn to you’ ‘So emotional’ ‘Reflection’ 등은 기성 가수가 들어도 인정할 정도의 노래 실력이다. 우리의 어린 여가수처럼 듣기가 전혀 거북하지 않다. 특히 발라드 ‘I turn to you’는 감정처리마저 아주 능란하다. 어린 백인 여가수치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흑인 리듬 앤 블루스의 소화력이 뛰어나다. 크리스티나의 포부는 감각이나 앳된 외모를 내세운 하이틴 스타가 아니라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머라이어 캐리와 같은 ‘디바’가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여전히 우리가 적극적으로 참고하고 반성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 팝계에 어린 여가수 붐이 일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같거나 또는 앞서 있다고 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영국 출신 스텝스(Steps)는 우리 팝 팬과 그다지 친숙한 그룹은 아니었지만 영국에서는 한때 1990년대 중반의 우리 그룹 룰라처럼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혼성 댄스그룹이다. 1998년부터 약 4년 간 활동하면서 아바와 흡사한 음악으로 최고 인기그룹 자리에 올랐지만 ‘기획자에 의한 상업적 그룹’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2001년 말 간판을 내렸다. 페이 토저(Faye Tozer), 리사 스콧 리(Lisa Sc... 영국 출신 스텝스(Steps)는 우리 팝 팬과 그다지 친숙한 그룹은 아니었지만 영국에서는 한때 1990년대 중반의 우리 그룹 룰라처럼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혼성 댄스그룹이다. 1998년부터 약 4년 간 활동하면서 아바와 흡사한 음악으로 최고 인기그룹 자리에 올랐지만 ‘기획자에 의한 상업적 그룹’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2001년 말 간판을 내렸다. 페이 토저(Faye Tozer), 리사 스콧 리(Lisa Scott-Lee), 클레어 리처즈(Claire Richards) 등 여성 셋에다 남자 두 사람 리 래치포드 에번스(Lee Latchford Evans), 이언 에이치 워트킨스(Ian H Watkins)를 포함, 5인조 구성이었다. 이들은 1997년에 < 더 스테이지 >라는 영국잡지에 ‘댄스 기량이 출중하고 외모와 재능을 구비한 젊은이들을 찾는다’는 광고를 통해 선발된 인물들이었다. 이 그룹을 막후에서 지휘한 전설의 ‘흥행프로듀서’ 피터 워터맨(Peter Waterman)은 이들을 전설적인 아바(Abba)처럼 띄우려는 시도 아래 시대에 맞춰 ‘스피디한 아바 사운드’를 취했다. 노골적으로 아바처럼 벨소리 같은 여성의 고음 보컬화음과 감각적인 댄스리듬을 강조했고 그 결과 당시 영국을 주름잡던 브릿팝(Brit-pop) 밴드들의 소란스런 록 스타일과는 애초 길을 달리해, 유쾌한 댄스 팝을 바라는 음악소비층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첫 싱글 ‘5-6-7-8’이 영국차트 14위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바나라라마(Bananarama)의 것을 리메이크한 ‘Last thing on my mind(6위)’와 ‘One for the sorrow(2위)’가 연속으로 히트했고 1999년 초에는 비지스 오리지널 ‘Tragedy’로 영국차트 정상을 밟았다. 데뷔 앨범 < Step One >과 이어서 새 싱글 ‘Better best forgotten’ ‘After The Love Has Gone’도 차트 2위를 기록했고 이 곡들이 수록된 2집 앨범 < Steptacular >는 발매와 동시에 차트정상으로 솟아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면서 이듬해 브릿 어워드 시상식에선 ‘1999년 최대 앨범판매 아티스트’로 뽑혀 인기그룹으로 공인되었다. 2000년에도 그들의 인기는 식을 줄 몰라 3집 앨범 < Buzz >가 차트1위로 데뷔했고 여기서도 ‘Stomp(1위)’ ‘It’s the way you make me feel(2위)’ 등의 대형 히트싱글이 나와 이듬해까지 열기가 계속되었다. 데뷔 시기부터 이들의 독창적인 춤은 음악을 한층 북돋워주는 고유 흥행상표였다. 그것은 한 줄로 서서 춤을 추는 이른바 라인 댄스(Line dance)라는 것이었다. 멋진 외모와 몸매의 젊은 남녀 다섯이 줄을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은 팬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2001년 말에는 히트곡과 ‘Chain reaction’을 포함한 신곡 4곡이 수록된 < Gold-Greatest Hits >가 발표되어 120만장이 팔리는 선풍을 재현했지만 해산설이 끊이질 않았으며 마침내 그룹은 해체됐다. 그러나 해체 뒤 멤버들은 각자 솔로와 듀엣으로 활동을 계속한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보이그룹 메누도의 아이돌스타에서 라틴영웅으로 훌쩍 커버린 리키 마틴은 단연 라틴열풍의 일등공신이다. 팝과 살사 리듬이 크로스오버된 라틴 팝을 들려주는 그는 ‘변방’에 있던 라틴음악을 ‘중앙’으로 화려하게 진입시켰다. 절충적 사운드와 함께 영어로 노래함으로써 팝에 친숙한 영어권 음악팬들과 라틴 본토의 팬들을 동시 만족시켰다. 또한 그의 격렬한 움직임과 넘치는 에너지, 강렬한 땀 냄새는 지구촌의 여성 팬들을 사로잡았... 보이그룹 메누도의 아이돌스타에서 라틴영웅으로 훌쩍 커버린 리키 마틴은 단연 라틴열풍의 일등공신이다. 팝과 살사 리듬이 크로스오버된 라틴 팝을 들려주는 그는 ‘변방’에 있던 라틴음악을 ‘중앙’으로 화려하게 진입시켰다. 절충적 사운드와 함께 영어로 노래함으로써 팝에 친숙한 영어권 음악팬들과 라틴 본토의 팬들을 동시 만족시켰다. 또한 그의 격렬한 움직임과 넘치는 에너지, 강렬한 땀 냄새는 지구촌의 여성 팬들을 사로잡았다. 이러한 그의 섹시한 매력은 여가수로 치자면 전성기 시절의 마돈나에 비견될 정도다. 거기에 레코드사의 든든한 후원까지 등에 업은 리키 마틴은 가공할 만한 위력을 발휘하며 팝 음악의 한 지류에 머물던 라틴음악을 ‘팝의 주류’에 입성시켰다. 리키 마틴은 1971년 12월 24일 푸에르토리코의 산 후안(San Juan)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엔리케 마틴 모랄레스(Enrique Martin Morales). 어렸을 적부터 합창단에서 노래하기 시작한 그는 카톨릭 학교를 거쳐 예술학교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노래와 연기 수업을 쌓아 나갔다. 1984년 리키 마틴은 변성기 이전의 미소년들로 구성된 보이그룹 메누도(Menudo)의 일원이 되었다. 5년간 메누도의 리드싱어로 활약하던 리키는 그룹의 까다로운 나이규정 탓에 팀을 떠났다. 이후 1991년 리키 마틴은 셀프타이틀 데뷔앨범 < Ricky Martin >을 발표했다. 향후 리키의 작업에 조력자로서 지속적인 도움을 주는 메누도 시절의 동료 로비 로사(Robi Rosa)가 이 음반의 공동작곡자로 참여했다. 2년 후에는 리키의 두 번째 앨범이 출시되었고, 이 2장의 앨범 발매 이후 점차 미국시장에도 그의 인지도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4년부터 3년간 ABC의 인기 드라마 < General Hospital >에 바텐더 겸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출연한 덕도 봤다. 리키 마틴은 1995년 풍성한 라틴 리듬 위에 록 비트가 강화된 3집 < A Medio Vivir >를 발표했으며, 3년 뒤에는 4집 < Vuelve >를 내놓았다. ‘La copa de la vida’가 프랑스 월드컵 주제곡으로 만방에 울려 퍼져 한껏 기세가 오른 리키 마틴은 1999년 영어앨범 < Ricky Martin >을 진수시켰다. 블록버스터 싱글 ‘Livin` la vida loca’가 수록된 이 앨범은 전세계적으로 1천5백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라틴 관중을 넘어 전세계 음악팬들이 그의 라틴 팝에 흥분하도록 만들었다. 그 흥행여파로 리키 마틴은 MTV 라틴 뮤직 시상식, 빌보드 시상식 등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석권했다. 각종 매체에서도 그를 집중 조명했다. < 피플(People) >지는 그를 ‘1999년 가장 흥미로운 인물 25명’중 한 명으로 뽑았으며, 시사주간지 < 타임 >은 ‘1999년 화제의 인물’로 선정했다. 2000년에는 두 번째 영어앨범 < Sound Loaded >의 발매에 맞춰 내한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스타일이 너무 정형화된 그 앨범이 예상 밖의 부진에 빠지자 그는 수록곡 ‘Nobody wants to be lonely’를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함께 재녹음해서 인기만회를 시도했다. 2001년 3월에는 데뷔작부터 최근의 히트곡까지 수록한 스페인어 베스트앨범 < La Historia >를 출시했다. 2001년 1월 리키 마틴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축하공연을 가졌다. 이에 대해 그의 동반자 로비 로사가 강도 높은 비판을 해 화제다. 보수적인 부시의 취임식에서 노래한 것은 당파성이 다분한 행동이며 히스패닉에 대한 심각한 배반행위라는 것이다. 리키 마틴은 인터뷰에서 "그 공연에 정치적 이유는 없었다. 단지 나의 음악을 전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참여했다"고 해명했다. 이 같은 에피소드를 보면 리키 마틴의 지향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 그는 상업가수이다. 상업가수로서 자신을 알리는 일은 중요하다. 리키 마틴은 그러한 자신의 본분을 훌륭히 해냈다. 적어도 그의 음악은 우리를 충분히 흥분시킨다.
노래 : Natalie Imbruglia (나탈리 임브룰리아)
# ‘진정한 나’,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음악여정 ‘Torn’의 위력은 너무나 거대했다. 나탈리 임부를리아(Natalie Imbruglia)의 데뷔싱글이었던 그 곡은 전 세계 음악팬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1997년과 1998년 사이 영국에서만 1백만장이 팔려나갔고, 미국에서도 10주가 넘게 방송차트 1위를 고수하는 등 국제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녀를 ‘팝계의 신데렐라’로 만들어준 그... # ‘진정한 나’,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음악여정 ‘Torn’의 위력은 너무나 거대했다. 나탈리 임부를리아(Natalie Imbruglia)의 데뷔싱글이었던 그 곡은 전 세계 음악팬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1997년과 1998년 사이 영국에서만 1백만장이 팔려나갔고, 미국에서도 10주가 넘게 방송차트 1위를 고수하는 등 국제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녀를 ‘팝계의 신데렐라’로 만들어준 그 곡은 그러나 동시에 그녀에게 치명적인 해악이었다. 문제는 ‘Torn’과 그녀 자신이 너무나 예뻤다는 것. 상큼한 팝과 성난 록이 잘 정제된 음악적 내용물도, 시원한 향기가 배어나는 목소리도, 그리고 ‘밤비’ 같은 큰 눈을 가진 그녀의 얼굴도 너무 예뻤다. 때문에 대중들이 그녀를 소비하는 것은 단 한가지, 바로 그 예쁘장함이었다. 나탈리 임부를리아의 데뷔앨범 < Left Of The Middle >은 ‘Torn’이 성공가도를 달리던 얼마 후에 발매되었다. 만만치 않은 음악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 곡의 빛에 가려 음반에 실린 다른 곡들은 별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사실 ‘Torn’은 라디오를 통해, 또 수많은 컴필레이션 음반들을 통해 얼마든지 들을 수 있었으니 정규음반은 사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게다가 잡지나 신문들은 주로 그녀의 외모나 스캔들 따위에 포커스를 맞추었고 팬들은 그 매체에 실린 사진을 오려 방에 걸어두며 그녀를 ‘핀업 걸’로 대했다. 사람들은 그저 ‘Torn’만 들으면, 그녀의 얼굴만 보면 만족했다. 사실 어찌 보면 나탈리에게 그러한 것들은 당연한 결과다. 태어나고 자랐던 호주에서 10대 시절부터 TV스타였던 그녀는 1996년 가수를 꿈꾸며 영국으로 건너갔고, 그곳의 음반 관계자들의 눈에 띄어 가수로 데뷔했다. 그 과정 속에서 그녀의 데뷔앨범은 이미 결정된 거나 다름없었다. 아무 일도 못하고 1년여를 방황했던 탓에 그녀는 하루라도 빨리 가수가 되길 원했으며, 그 때문에 음반사에서 자신을 부르자 바로 계약했다. 따라서 음반계약 후에도 음악이나 이미지에 대한 선택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없었다. 그녀를 선택한 레이블은 그녀의 청순한 비주얼과 생기 있는 목소리를 십분 활용하면서도 당시 강세를 보이던 앨라니스 모리셋 류의 여성 얼터너티브 록과 어쿠스틱 팝/록 사운드를 덧입히려 했다. 그를 위해 그룹 큐어(Cure)의 베이시스트였던 필 토낼리(Phil Thornalley), 라디오헤드의 < OK Computer >를 제작한 나이젤 고드리치(Nigel Godrich) 등의 일류 프로듀서들을 동원했고, 그들은 아주 훌륭하게 그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그 결과 ‘Torn’이라는 빅히트곡을 탄생시켰으며 그 외에도 ‘Big mistake’, ‘Wishing I was there’, ‘Smoke’ 같은 괜찮은 느낌을 주는 곡들을 배출했다. 이렇게 나탈리 임부를리아의 음악과 이미지는 결정되었고,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는 ‘Torn’과 핀업 걸의 이미지가 고정되었다. 상업적인 측면에서는 도움이 되었을 지는 몰라도 그녀에게 그것은 분명 상당한 부담이었으며 앞날을 고려한다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다. 뮤지션이라면 그러한 장애물은 음악을 통해 극복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녀는 3년여 동안 음악에 전념하며 자신과의 투쟁을 벌였고, 드디어 이번에 그 흔적들이 담긴 두 번째 앨범 < White Lilies Island >를 내놓았다. # 예쁜 이미지 벗고 내적 성숙 완연한 새 앨범 그렇다고 이번 신보가 전작과의 완전한 결별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Torn’의 작곡자였던 필 토낼리가 또 다시 참여하고 있으며 여전히 풋풋하고 싱그러운 곡들이 눈에 띈다. 하지만 전작에 비해 전체적인 분위기는 상당히 가라앉았다. 같은 상큼함이라도 더욱 멜랑콜리하게, 더욱 애처롭게 들린다. 그런 변화의 조짐은 1999년도 영화 < 스티그마타 > 사운드트랙에서 불렀던 ‘Identify’에서 이미 예고된 바 있다. 스매싱 펌킨스의 빌리 코건이 작곡했던 그 곡은 나탈리답지 않은 음울함으로 세간을 놀라게 했었다. 특별한 기교 없이 부르는 보컬도 편안하게 들린다. 의도적으로 앨라니스 모리셋를 따라했던 전작에서의 보컬보다 훨씬 자연스러워졌으며, 또 발전했다. 첫 싱글부터 큰 차이가 난다. 전자기타와 피아노, 현악이 묘한 화음을 이루는 첫 싱글 ‘That day’에서 리드미컬한 나탈리의 보컬은 무언가에 불만에 찬 듯 노래하며 예쁘장함 따위는 벗어 던진다. 첼로의 묵직한 연주로 시작하는 ‘Wrong impression’은 어쿠스틱 기타의 영롱함에 슬라이드 기타의 푸근함이 더해져 분위기가 ‘업’된 팝/록 넘버다. 공간의 웅장함이 느껴지는 ‘Beauty on the fire’에서는 일렉트로닉의 몽롱한 전자음이 일렁이며, 사랑스런 느낌이 가득 한 ‘Satellite’는 따뜻한 어쿠스틱 기타 톤과 코러스가 돋보이는 곡. 앨범의 베스트라면 5번째 트랙인 ‘Do you love’을 꼽을 수 있다. 착 가라앉은 분위기에 절제된 보컬이 이끌어 가는 이 곡은 멜랑콜리함을 극대화시키는 중간의 하드 록 연주와 귀를 잡아채는 멋진 멜로디의 훅이 잊혀지지 않는다. 꿈속에 있다가 뒤늦게 꿈에서 깨어나 절규하는 듯한 진행이 압권인 ‘Goodbye’, 인트로 부분이 국내밴드 미선이의 ‘진달래 타이머’를 연상시키는 ‘Everything goes’, "동화 속 신데렐라는 이제 없다"며 담담히 노래하는 마지막 트랙 ‘Come September’ 등이 매력적인 트랙들이다. 음반에 수록된 10곡 모두 나탈리 임부를리아가 공동작곡과 작사를 담당했으며, 그중 절반은 희망을, 나머지 절반은 삶의 비의(悲意)와 깨달음을 노래하고 있다. 그 외의 프로듀서들로는 마돈나의 작업으로 유명한 패트릭 레너드와 필 토낼리, 게리 클락 등이 앨범제작에 참여했다. 몇 년 간 내적 침잠의 결과물인 이번 앨범으로 그녀는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아티스트로서의 가능성을 확보했다.
2001년 영국에서 가장 많은 앨범을 팔았다는 다이도(Dido)... 그녀는 자신의 음악에 담긴 일렉트로니카의 요소들의 성공을 자신의 음악을 프로듀싱한 페이스리스(Faithless) 멤버들의 덕으로 돌렸다. 포크적 감성으로 만든 다이도의 음악에 일렉트로니카의 서정성을 덧입혀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이끌어 낸 주인공들이 바로 페이스리스이다. 1995년 영국에서 결성된 일렉트로니카 밴드 페이스리스는 다이도가 속해 있던... 2001년 영국에서 가장 많은 앨범을 팔았다는 다이도(Dido)... 그녀는 자신의 음악에 담긴 일렉트로니카의 요소들의 성공을 자신의 음악을 프로듀싱한 페이스리스(Faithless) 멤버들의 덕으로 돌렸다. 포크적 감성으로 만든 다이도의 음악에 일렉트로니카의 서정성을 덧입혀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이끌어 낸 주인공들이 바로 페이스리스이다. 1995년 영국에서 결성된 일렉트로니카 밴드 페이스리스는 다이도가 속해 있던 그룹으로 뒤늦게 국내에도 그 이름을 알렸다. 다이도가 팝 뮤지션으로서의 역량을 키운 페이스리스의 메인 브레인은 다름 아닌 그녀의 친오빠 롤로 암스트롱(Rollo Armstrong)... 페이스리스는 1993년 프로듀서 겸 리믹서로 이름을 날리던 롤로 암스트롱과 DJ로 인기를 누리던 시스터 블리스(Sister Bliss)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롤로 암스트롱은 1992년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펠릭스(Felix)라는 이름으로 ’Don’t you want me’를 제작하여 25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린 바 있으며 영국 차트에서 세 곡의 No.1과 4곡의 Top10 싱글을 리믹스 해 낸 정상의 프로듀서와 리믹서로 활약해 왔다. 롤로와 함께 페이스리스를 이끌어 가는 시스터 블리스 역시 이전 경력이 화려하다. 최고의 하우스 DJ로 대접받는 그녀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수업을 정식으로 받았으며, 섹소폰과 베이스를 연주하기도 했던 실력파 뮤지션이다. 1987년부터 하우스 뮤직에 심취한 그녀는 여러 악기를 다룰 수 있다는 그녀만의 차별화 된 능력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음악들을 만들어 가며 영국 최고의 DJ로 자리 한다. 1993년 페이스리스로서의 작업을 시작한 화려한 경력의 두 하우스 뮤지션은 1995년 두 명의 보컬리스트 재미 카토(Jamie Catto)와 맥시 재즈(Maxi Jazz)를 영입하여 데뷔 싱글 ’Salva mea’를 발표한다. 재미 카토는 빅 투르스 밴드(The Big Truth Band) 출신의 보컬리스트이자 송라이터로 현재는 그룹을 탈퇴하고 솔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소울 푸드 카프 밴드(The Soul Food Caf Band) 출신인 맥시 재즈는 재즈, 힙합 보컬리스트이면서 동시에 DJ로도 활약하며 그룹의 또 하나의 핵심 인물로 자리해 있다. 1983년에 힙합을 시작한 그는 1980년대 DJ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명성을 쌓았고, 1992년에는 자신의 레이블인 나무 레코드(Namu Record)를 세우기도 하였다. 후에 자미로콰이(Jamiroquai)의 밴드 멤버로 투어를 하기도 했던 그는 불교 신자로서 그룹에 레게 스타일과 애시드 스타일의 곡을 제공하고 있다. 화려한 경력의 DJ들로 구성된 페이스리스는 ’Salva mea’를 크게 히트시키고, 연이어 ’Insomnia’, ’Reverence’로 성공 행진을 이어간다. 멤버들이 DJ, 프로듀서로서 솔로 활동을 해 나가고 있었던 만큼 이들은 프로젝트 그룹의 성격이 강했지만 세 싱글의 연이은 성공은 이들의 결속력을 강화 시켰고, 1996년 롤로의 레이블인 치키(Cheeky) 레코드를 통해 데뷔 앨범인 < Reverence >를 내놓으며 페이스리스의 이름을 이어가게 된다. 하우스 씬의 강자들답게 이들의 데뷔앨범은 영국 댄스 씬에서 히트했고, 각 멤버들은 자신들 나름의 바쁜 활동 속에서도 ’페이스리스’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일렉트로닉 시도들을 이어나가게 된다. 데뷔 앨범의 성공으로 메이저 레코드사인 아리스타(Arista)와 계약을 체결한 이들은 1998년 두 번째 앨범 < Sunday 8pm >을 발표한다. 맥시 재즈의 곡인 ’God is a DJ’를 비롯한 여러 곡들이 히트하면서 명성을 이었고, 1999년에는 인기에 보답하듯 < Sunday 8pm >을 리믹스 앨범으로 다시 선뵈기도 하였다. 하우스라고 하는 최종적으로 춤을 위한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하는 이들이지만 이들의 음악이 단순한 하우스 비트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일렉트로니카 음악 속에서도 감수성을 잃지 않고 있으며, 일렉트로니카의 소울 음악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소울이 가진 보컬의 가치, 가사의 가치, 선율의 가치에도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 소울 리메이크 곡들이 눈에 띄는 리믹스 앨범 < Back to Mine >에서는 이러한 특징이 더욱 강하게 부각되어졌다. 2001년 이들은 다이도의 후광(?)을 업고 세 번째 정규 앨범인 < Outrospective >를 내놓았다. 데뷔 앨범 시절부터 백보컬 등으로 활약하며 그룹의 일원으로 활약해 온 다이도와 폴린 테일러(Paulin Taylor)가 그룹의 보컬로 전면에 자리한 이 앨범 역시 페이스리스만의 감수성이 돋보이는 앨범으로 일렉트로니카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래어 버드(Rare Bird)의 명곡 ’Sympathy’를 샘플링하기도 하였으며, 다이도가 4곡에서 보컬로 등장하며, 오빠에 대한, 또 자신을 키워준 밴드에 대한 고마움을 선사하고 있다.
멤버 : 시네드 오코너(Sinead O), 에델 배럿(Edele Barrett), 린드세이 아마우(Lindsay Armaou), 캐비 린치(Keavy Lynch) 멤버 : 시네드 오코너(Sinead O), 에델 배럿(Edele Barrett), 린드세이 아마우(Lindsay Armaou), 캐비 린치(Keavy Lynch)
노래 : Jennifer Lopez (제니퍼 로페즈)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는 리키 마틴(Ricky Martin), 마크 앤소니(Marc Anthony), 엔리케 이글레시아스(Enrique Iglesias) 등 걸출한 남성 스타들이 독점하는 라틴 팝 시장에서 당당히 지분을 차지하고 들어서 있는 미녀 가수이다. 그녀는 또한 가수 이전의 본업이었던 영화 배우로서도 상한가를 달리고 있으며, 헐리웃의 베스트 드레서답게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의류 브랜드 산...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는 리키 마틴(Ricky Martin), 마크 앤소니(Marc Anthony), 엔리케 이글레시아스(Enrique Iglesias) 등 걸출한 남성 스타들이 독점하는 라틴 팝 시장에서 당당히 지분을 차지하고 들어서 있는 미녀 가수이다. 그녀는 또한 가수 이전의 본업이었던 영화 배우로서도 상한가를 달리고 있으며, 헐리웃의 베스트 드레서답게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의류 브랜드 산업에 뛰어들기도 하는 등 멀티 엔터테이너의 조건을 완벽히 갖췄다. 그래서 과감한 노출, 섹시한 외모와 함께 발표하는 음반마다 넘버원 싱글을 내놓는가 하면 찍는 영화마다 좋은 흥행 실적을 거둬온 제니퍼 로페즈의 인기는 라틴 팝의 흥겨운 리듬만큼이나 뜨겁다. 푸에르토리코 혈통의 미국인인 제니퍼 로페즈는 1970년 미국 뉴욕의 브롱스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춤과 노래에 남다른 재능과 열정을 보였던 그녀가 처음으로 화면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6살 때 영화 < My little girl >에서 단역을 맡으면서부터였다. 4년 후 텔레비전 시리즈인 < In living colors >의 주인공(댄서)인 ‘Fly girls’의 한 명으로 분하면서 본격적인 입지를 쌓아가기 시작했고, 이후 비운의 여가수 셀레나(Selena)의 생애를 담은 영화 < 셀레나(Selena) >등에서 엔터테이너로써의 기질을 마음껏 발휘하였다. 이후 그녀는 < 아나콘다(Anaconda) >와 < 유 턴(U-turn) > 등을 거치며 배우로써의 명함을 굳히는가 싶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뜨거운 애정을 쏟아왔던 춤과 노래를 버릴 수 없었다. 실제로 자넷 잭슨(Janet Jackson)의 댄서로도 활동한 바 있는 그녀는 결국 1999년 300만장의 판매고에 빛나는 데뷔작 < On The 6 >와 함께 가수로서도 매우 고무적인 첫 걸음을 내딛었다. 글로리아 에스테판(Gloria Estefan)의 남편 에미리오 에스테판(Emilio Estefan), 마크 앤소니 등 라틴 스타들이 대거 참여한 음반은 발매되자마자 빌보드 앨범 차트 6위에 랭크되었고, 라틴의 흥겨움이 가득한 첫 싱글 ‘If you had my love’는 싱글 차트1위를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 ‘Let’s get loud’, ‘Waiting for tonight’ 등도 준(準) 히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이목은 그녀의 외모에 더욱 집중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엉덩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었으며 도발적인 의상도 늘 화제 거리였다. 화려한 남성 편력으로 ‘플레이걸’의 이미지도 굳어져갔고, 과감한 노출의 뮤직 비디오가 항상 뜨거운 감자였다. 따라서 외모가 실력보다 더 큰 인기 요인이 아니냐는 따가운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제니퍼는 2001년 발표한 소포모어 음반 < J.Lo >로 주위의 색안경 낀 생각들을 완전히 불식시켰다. 힙합 스타 자룰(Ja Rule)이 피처링한 ‘Love don’t cost a thing’(3위), ‘I’m real’(1위) 등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곡들이 담겨진 2집은 200만장 가까이 팔려나가면서 빌보드 앨범 차트를 장악했다. 라틴의 느낌을 조금 가라앉히고 힙합 리듬을 배가시켜 팝 적인 접근을 꾀했던 것이 성공의 요인이었다. 한층 발전한 그녀의 음악은 섹시함을 한껏 과시한 뮤직비디오와 함께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또한 음악 전문지 < 롤링스톤 >이 선정한 2001년의 인물 중 하나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같은 해 제니퍼 로페즈 주연 영화 < 웨딩 플래너(Wedding Planner) >가 전미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면서, 그녀는 한 해 동안 최고의 차트들을 다섯 번이나 정복하며 우먼 파워를 전세계에 과시했다. 그 여세를 몰아 지난 2002년 발매한 히트곡 리믹스 음반 < J To Tha Lo > 또한 앨범 차트 1위에 올라섰다. 새롭게 리믹스된 2집 수록곡 ‘Ain’t it funny’는 싱글로 발표되어 수주간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지켰다. 한 번의 결혼 실패 후, 래퍼 피 디디(P. Diddy)와의 불륜, 그리고 그녀의 백댄서였던 크리스 주드(Chris Judd)와의 9개월 간의 짧은 결혼 생활 등 뭇 남성들과의 많은 스캔들을 불러일으킨 제니퍼 로페즈가 안착한 곳은 인기 절정의 배우 벤 에플렉(Ben Affleck)의 품이다. 지난 해 크리스 주드와의 이혼설을 기정사실화하고 2003년 초 벤 에플렉과 약혼식을 올린 제니퍼 로페즈는 새 음반 < This Is Me... Then >에서 더욱 힙합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잘 나가는 래퍼 엘엘 쿨 제이(LL Cool J)의 피처링이 돋보이는 음반의 첫 싱글 ‘All I have’는 이미 빌보드 정상을 정복, 고수하고 있으며 판매량도 매우 호조를 보이고 있다. 아직 가수의 길을 그리 오래 밟지 않은 그녀이지만 음반을 낼 때마다 수그러들지 않는 인기와 음악적 발전은 배우로서의 활동과는 별개로 음악인으로서의 독자적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때로는 수많은 스캔들, 가십 거리를 양산해 내고는 있지만 배우와 가수로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포획하고 있는 제니퍼 로페즈의 인기는 그칠 줄 모른다.
노래 : Craig David (크레이그 데이빗 )
영국의 R&B 가뭄을 단번에 해갈시켜준 브리티시 R&B 신동 영국의 R&B? 좀 낯설다. R&B 음악은 미국의 전유물이 아니던가? 사실 그렇다해도 무리는 아니다. 근래 영국에서 배출된 R&B 가수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90년대 전반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무엇보다 실(Seal)이 있었고, 여성 가수로 리사 스탠스필드나 가브리엘이 있었다. ‘High’라는 곡으로 국내에 유명해진 듀오 라이트하우스 ... 영국의 R&B 가뭄을 단번에 해갈시켜준 브리티시 R&B 신동 영국의 R&B? 좀 낯설다. R&B 음악은 미국의 전유물이 아니던가? 사실 그렇다해도 무리는 아니다. 근래 영국에서 배출된 R&B 가수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90년대 전반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무엇보다 실(Seal)이 있었고, 여성 가수로 리사 스탠스필드나 가브리엘이 있었다. ‘High’라는 곡으로 국내에 유명해진 듀오 라이트하우스 패밀리도 영국 출신이다. 그렇지만 90년대 후반을 지나 현 2000년대에 와서는 전혀 찾아보기 힘들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영국에는 R&B 뮤지션이 없단 말인가. 영국이 그런 음악을 싫어해서일까. 아니다. 미국 R&B 가수들은 영국에서도 인기 있으며 그들은 종종 차트 정상에 오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일까. 이방인인 우리에게 그것은 알 수 없는 미스터리일 수밖에 없으나 추측해보면, 아무래도 영국인들 특유의 고집스런 성질, 즉 ‘영국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미국 얼터너티브 록에 맞서 브릿 팝을 고수했던 영국성! 자존심이나 프라이드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그 기질 탓에 여타의 영국 뮤지션들이 ‘양키’ 냄새나는 음악을 꺼려했던 것 같다. 물론 이건 추측이지만 영국인들은 그러고도 족히 남을만한 위인들이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미국의 R&B 뮤지션들이 자국에 와서 큰 인기를 누리는 걸 바라만 봤던 영국인들은 내심 속이 쓰렸을 것이 분명하다. 그 ‘속 쓰림’은 그러나 지난해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온 한 소년에 의해 한방에 치유되었다. 그는 물론 크레이그 데이비드다. 스티비 원더, 테렌스 트렌트 디아비, 시스코 등의 미국가수들을 좋아하노라고 공공연히 밝힌 이 열아홉 살 소년은 미국식 R&B와 힙 합을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거기에 영국 특유의 멜로디 감각도 곁들여 미국과 영국을 동시 만족시킬 수 있는 산뜻한 R&B를 개척해냈다. 어쩐지 출발부터 예감이 좋았다. 앨범을 발매하기도 전부터 눈길을 끌더니 첫 싱글이 발매되자마자 차트 정상에 올랐고, 얼마 후 나온 데뷔앨범도 앨범차트 1위를 점령했다. 자국의 좀 괜찮은 뮤지션이 나왔다 하면 무한대로 ‘밀어주는’ 영국 언론들도 신이 났다.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 만난 격. 모두들 신동이 나왔다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NME) >지는 “왜 이제야..”라는 감격조로 그의 출현을 반겼으며, “왜 크레이그 데이비드가 지금까지 영국 최고의 R&B 가수인가. 대답은 바로 그의 앨범에 있다.”고 그를 한껏 치켜세웠다. R&B 키드에서 라디오.클럽 DJ로 그리고 R&B 뮤지션으로 이제 그의 이력을 살펴보자. 1981년 5월 5일 영국의 사우스햄튼(Southamton)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을 ‘정말로’ 음악과 함께 보냈다. 그의 손엔 언제나 가사를 적기 위한 노트북이나 펜이 있었고, 방바닥에는 멜로디를 녹음하기 위한 구술용 소형 녹음기가 있었다. 그 시절 그의 가장 큰 모험은 어머니의 감시의 눈을 피해 몰래 자신이 좋아하는 R&B에 탐닉하는 것이었다. 14살 때부터는 동네의 해적방송국 < PCRS 106.5FM >, 또 인근의 유명 클럽에서 DJ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주로 R&B를 틀었지만 곧 둔중한 레게 베이스와 작렬하는 비트의 개러지 하우스 댄스로 전향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향후 음악동료가 될 마크 힐(Mark Hill)과의 운명적 만남이 성사된다. 어머니의 권유로 나간 작곡 대회에서 우승한 뒤, 크레이그 데이비드는 개러지 밴드 아트풀 다저(Artful Dodger)의 멤버이기도한 마크 힐과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주말마다 런던으로 원정 다니며 디제잉하던 그는 휴먼 리그의 히트곡인 ‘Human’을 R&B로 변형시킨 그의 첫 레코드를 녹음했고, 얼마 후 아트풀 다저의 ‘Rewind’를 버전업해서 발표해 언더그라운드에서 스매시 히트를 기록했다. 계속해서 그와 마크 힐은 여러 라디오방송에서 성공적인 개러지 공연을 치르면서 더욱 주가를 올렸으며 그 때문에 데이비드는 ‘개러지 뮤지션’이라는 다소 곡해된 인칭으로 불렸다. 그러나 첫 싱글 ‘Fill me in’이 발매되자 그 같은 인칭오류는 사라졌다. 그의 진가는 R&B였다. 라틴 풍의 감미로운 기타 연주, 극도로 잘게 쪼개지는 비트, 로맨틱한 전염성 멜로디라인, 부드러운 키보드와 드럼, 거기에 곡예 하듯 질주하는 멋진 보컬 등 ‘크레이그 데이비드 표’ R&B의 특질이 모두 포함된 그 곡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Fill Me In’은 곧바로 영국차트 1위를 차지했으며, 그는 ‘1위 곡을 가진 가장 어린 영국 남성 솔로가수’로 기록되었다. 그의 나이 열아홉이었다. 두 번째 싱글 ‘7 Days’ 역시 1위에 올랐고, 2000년 8월 발매한 데뷔앨범 < Born To Do It >도 가뿐히 차트 정상을 밟았다. 그가 좋아하는 한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제목을 붙였다는 이 음반은 R&B는 물론 록, 소울, 개러지, 재즈 그리고 라틴의 영향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처럼 음악은 복잡하지만 그가 가사에서 다룬 소재는 단순하다. 어린 나이답게 그는 여성에 대해서, 또 여성과의 관계에 대해서 곡을 썼다. 그는 자기 또래의 심리를 가사에 그대로 반영했으며 R&B의 섹슈얼리티에도 충실했다. ‘7 Days’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과 7일간 ‘마라톤 정사’를 벌인다는 재미난(?) 내용을 담고 있다. “월요일에 여자를 만나서 화요일에는 술을 마시며 사랑을 나눴지. 우린 수요일까지 사랑을 나눴어. 그리고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까지 계속해서. 일요일에야 우린 겨우 쉴 수 있었지. 난 사실 그리 색마는 아니야. 하지만 하룻밤 사랑으로는 너무 모자란 걸.” 그 외에 시스코의 ‘Thong song’이 연상되는 ‘Can’t be messing ’round’, 10대의 풋풋한 향기가 느껴지는 파티송 ‘Time to party’, 넘버원 싱글 ‘Booty man’ 등 모든 수록곡들은 < NME >가 말했듯, 그가 왜 최고의 R&B 가수인지 확인시켜준다. 이 천재 소년의 노래들을 들어보면, 올 2월에 개최된 < 브리티시 어워즈 >에서 로비 윌리엄스에게 참패한 것쯤은 하나의 해프닝에 불과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만큼 그의 테크닉은 경이에 가깝다. 국내에는 미처 발매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R&B 매니아들 사이에선 이미 컬트적 지지를 받은 지 오래다. 이젠 일반 음악팬들에게도 공개되니 이 음반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노래 : Groove Armada (그루브 아마다)
영국 런던 출신의 일렉트로니카 댄스 듀오 그루브 아마다(Groove Armada)는 베이스먼트 잭스(Basement Jaxx), 모치바(Morcheeba), 엠제이 콜(MJ Cole) 등과 함께 세기말 유행처럼 번진 일렉트로니카와 트립 합의 계보를 이어간 그룹이다. 이들은 레벨 42(Level 42), 스파이로 자이라(Spyro Gyra), 샤카탁(Shakatak) 같은 일련의 재즈펑크(Jazz-Funk) 퓨전 ... 영국 런던 출신의 일렉트로니카 댄스 듀오 그루브 아마다(Groove Armada)는 베이스먼트 잭스(Basement Jaxx), 모치바(Morcheeba), 엠제이 콜(MJ Cole) 등과 함께 세기말 유행처럼 번진 일렉트로니카와 트립 합의 계보를 이어간 그룹이다. 이들은 레벨 42(Level 42), 스파이로 자이라(Spyro Gyra), 샤카탁(Shakatak) 같은 일련의 재즈펑크(Jazz-Funk) 퓨전 그룹들처럼 언더그라운드 클럽가를 중심으로 출발해 이후 영국 실험주의 음악노선을 초토화시키는데 든든한 공을 세웠다. 톰 핀들레이(Tom Findlay)와 앤디 카토(Andy Cato)의 2인 체제로 구성된 그루브 아마다는 일렉트로니카, 앰비언트, 다운비트, 트립 합, 테크노 등의 다양한 장르를 한데 융합한다. 아울러 이들은 음반을 통해 몽환적이고 중독성 강한 일렉트로닉 연주 음악을 들려주는가 하면 객원싱어들을 초빙해 각 앨범마다 독특한 색깔을 주조해낸다. 1997년에 이르러 선보인 ‘4 tune cookie’, ‘At the river’ 등의 몇몇 싱글과 이듬해 발표한 데뷔음반 < Northern Star >(1998)부터 그러한 사운드 특징을 잘 증명한다. 그룹은 1999년 보다 범위가 폭넓어진 2집 음반 < Vertigo >을 발표해 영국차트 톱 20에 들어가는 성적표를 얻어냈다. ‘If everybody looked the same’, ‘At the river’, ‘I see you baby’(팻보이 슬림에 의해 리믹스) 같은 히트곡을 배출해내며 이들을 일렉트로티카 계열 그룹의 리스트에 당당히 올려놓았다. 이후 그룹은 엘튼 존(Elton John) 공연의 오프닝 밴드로 무대에 서며 조금씩 성공가도를 내달렸고, 2000년에 접어들어 2집 < Vertigo >를 미국에서 재 발매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넓혀나갔다. 2000년 발표된 < The Remixes >에 뒤이어 선보인 < Back to Mine >(2000)은 알그린(Al Green), 베리 화이트(Barry White), 티어스 포 피어스(Tears for Fears),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 루츠 마누바(Roots Manuva) 등의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앨범의 질을 드높였다. 나아가 그룹은 이듬해에 드디어 주류로 진입해 일렉트로닉 앨범차트 7위를 기록한 3집 음반 < Goodbye Country (Hello Nightclub) >에서 이스트코스트 래퍼 제루(Jeru)가 피처링한 ‘Suntoucher’와 싱글 ‘Superstylin’ 등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자신들의 개성을 거침없이 표출했다. 2년 뒤인 2003년에 발표된 4집 < Lovebox >은 전작보다 진일보해 일렉트로닉 앨범차트 3위까지 오르는 성과를 거둔다. 특히 앨범은 이글 아이 체리(Eagle-Eye Cherry)의 누나인 네네 체리(Neneh Cherry), 랩 그룹 내피 루츠(Nappy Roots), R&B 여가수 선샤인 앤더슨(Sunshine Anderson), 포크 싱어 리치 헤이븐스(Richie Havens) 등과 함께 작업해 다양한 양질의 사운드를 구사하기도 했다.
노래 : DJ Jazzy Jeff & the Fresh Prince (DJ 재지 제프 앤 더 프레시 프린스)
힙합 듀오 힙합 듀오
알 켈리(R. Kelly)는 1990년대 베이비페이스(Babyface)와 더불어 흑인음악 최고의 프로듀서로 활약하며 어번 알앤비(Urban R&B), 뉴잭/질스윙(New Jack/Jill Swing)의 확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뮤지션이다. 1969년 1월 8일 시카고 외각의 사우스 사이드(South Side)에서 태어난 알 켈리(본명: Robert Kelly)는 흑인 빈민가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아버... 알 켈리(R. Kelly)는 1990년대 베이비페이스(Babyface)와 더불어 흑인음악 최고의 프로듀서로 활약하며 어번 알앤비(Urban R&B), 뉴잭/질스윙(New Jack/Jill Swing)의 확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뮤지션이다. 1969년 1월 8일 시카고 외각의 사우스 사이드(South Side)에서 태어난 알 켈리(본명: Robert Kelly)는 흑인 빈민가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아버지가 가정을 버리고 떠나 홀어머니와 살아야 했으며, 흑인 갱들과 어울리다 총상을 입는 등 그의 유년기는 저질 흑인 빈민의 삶이었다. 저급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농구선수의 꿈을 키워나가던 그는 레나 맥린(Lena McLin)이라는 음악 선생님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게 되고 어머니가 선물한 키보드를 가지고 뮤지션으로서의 도전을 시작한다. R&B 그룹 MGM을 결성한 그는 거리 공연을 통해 시카고 다운타운 최고의 뮤지션으로 성장해 간다. TV 음악 컨테스트인 < Big Break >에 출연하여 우승하는 등 지명도를 더해 나가던 알 켈리는 결국 자이브(Jive) 레코드의 웨인 윌리엄즈(Wayne Williams)의 눈에 들게 되었고, 1992년 데뷔 앨범 < Born Into The 90’s >를 발표했다. 데뷔는 성공적이었다. 첫 싱글 ’She’s got that vibe’가 R&B 차트에서 선전하며 눈길을 끌었고, 이어지는 ’Honey love’, ’Slow dance(Hey Mr. DJ)’가 연이어 R&B 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초대형 R&B 뮤지션의 탄생을 알렸다. 데뷔 이듬해인 1993년 발표된 두 번째 앨범 < 12 Play >는 신인급 뮤지션 알 켈리를 R&B 정상의 인기 뮤지션으로 끌어올린다. 70년대 펑키(Funky)스타일과 90년대 힙합을 결합한 알켈리적 사운드가 위력을 발휘했고, 달콤하게 애원하는 발라드 곡 ’Bump n’ grind’가 싱글 차트에서 4주, R&B 차트에서 12주간 정상을 지키며 음악계를 강타했다. 솔로 뮤지션으로서 정상의 자리에 오른 알 켈리는 프로듀서로서의 또 다른 정상을 향해 순항을 시작한다. 1994년 알리야(Aaliyah)의 데뷔 앨범 < Age Ain’t Nothin’ But A Number >를 프로듀싱하며 15세 소녀 가수를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알리야를 통해 뉴잭/질 스윙의 선두주자로 부상한 알 켈리는 이후 자신의 앨범은 물론 다른 뮤지션들의 앨범에 참여하여 R&B 최고의 프로듀서로 자리하며 어번(Urban) R&B의 흐름을 주도한다. 1995년 ’You are not alone’을 프로듀싱하여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에게 차트 정상의 기쁨을 선사하기도 했던 그는 토니 브랙스턴(Toni Braxton),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자넷 잭슨(Janet Jackson), 메리 제이 블라이지(Mary J. Blige), 보이즈 투 멘(Boyz II Men) 등 거의 모든 정상급 어번 R&B 뮤지션들의 앨범에 참여하며 프로듀서로서 맹활약했다. 1995년 발표한 3집 앨범 < R. Kelly >는 상업적으로 음악적으로 모두 성공을 거두며 알 켈리 최고의 앨범으로 자리했다. 4백만장 이상이 팔려 나갔고, 발표한 세 장의 싱글 ’You remind me of something’, ’Down low(Nobody has to know)’, ’I can’t sleep baby(If I)’가 모두 플래티넘을 기록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앨범은 노골적으로 성적 유혹에만 치중한 전작과 달리 기독교인으로서의 자세를 담았고, 고급스러움과 저속함을 동시에 담아내는 그 만의 독특한 매력이 빛을 발한다. 1996년 영화 < Space Jam > 수록 곡 ’I believe I can fly’가 차트 정상에 오르며 전 세계에 알 켈리의 이름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고, 이 곡으로 그래미(Grammy) 3개 부문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영화 < Batman & Robin >의 사운드 트랙에 참여하여 ’Gotham city’를 연이어 히트시킨 알 켈리는 당시 최고의 인기 여가수였던 셀린 디욘(Celine Dion)과의 듀엣 곡 ’I’m your angel’을 발표하며 다시금 차트 정상을 밟는다. 싱글 ’I’m your angel’의 여세를 몰아 발표한 4집 < R. >(1998)은 더블 앨범에 30여 곡이 수록되었고, 퍼프 대디(Puff Daddy), 나스(Nas), 제이-지(Jay-Z) 등 화려한 게스트들이 힘을 보탰음에도 불구 평단으로부터 냉담한 반응을 얻었고, 이후 큰 히트 싱글 또한 만들어 내지 못했다. 유명 아티스트들의 참여가 알 켈리 특유의 매력을 감소시켰고, 자신의 이름에 대한 중압감 때문인지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전작에서의 흔들림을 감안한 듯 2000년 발표한 < TP-2.com >은 대중성 강했던 < 12 Play >로 회귀하며 달콤함으로 앨범을 채웠다. ’I wish’, ’The storm is over now’, ’Fiesta’ 등이 고루 인기를 얻었지만 이 앨범 역시 R&B 최고의 뮤지션 알 켈리에게 특별한 히트 싱글 하나 가져다 주지 못했다. 알 켈리는 2002년 < R. >앨범에서 함께 했던 제이-지(Jay-Z)와 다시 한 번 손을 잡고 < The Best Of Both Worlds >를 발표하는 등 슬럼프로 접어드는 힘겨운 시기를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노래 : A Tribe Called Quest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는 드라 소울(De La Soul)과 함께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로 대표되는 하드코어 랩의 대척점에 서있는 컨셔스 랩(Conscious Rap)의 대표적인 아티스트이다. 그들은 마초적인 갱스터 래퍼들이 거리로 뛰쳐나가 흑인 영혼들을 선동할 때, 오히려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가 힙 합의 예술화에 집착했다. 부모님들이 즐겨듣던 올드 록을 무궁무진하게 샘플링하였으며, 스피드한 비트...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는 드라 소울(De La Soul)과 함께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로 대표되는 하드코어 랩의 대척점에 서있는 컨셔스 랩(Conscious Rap)의 대표적인 아티스트이다. 그들은 마초적인 갱스터 래퍼들이 거리로 뛰쳐나가 흑인 영혼들을 선동할 때, 오히려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가 힙 합의 예술화에 집착했다. 부모님들이 즐겨듣던 올드 록을 무궁무진하게 샘플링하였으며, 스피드한 비트를 오히려 느슨하게 몰고 갔다. 여기에 재즈를 결합시켜 힙 합의 사운드 스케이프를 한 단계 넓혀놨다. 메시지도 철학적이고 사색적이다. 여성 비하, 욕설, 성적 농담 대신 불행한 흑인들의 삶에서 벗어나자는 긍정적인 노랫말을 들려준다. 그래서 컨셔스 랩이라고 칭한다. 밴드는 뉴욕의 퀸스에서 어린 시절부터 같이 자란 래퍼 큐 팁(Q-Tip)과 파이프(Phife)가 고등학교 때 디제이 알리 샤히드 무하마드(Ali Shahead Muhammad)를 만나 1988년 조직됐다. 트리오는 1990년 데뷔작 < People''s Instinctive Travels And the Paths Of Rhythm >, 1991년 2집 < The Low End Theory >를 내놓으며 얼터너티브 랩의 강자로 급 부상했다. 특히 두 번째 앨범은 힙 합 역사상 최고의 음반 중 하나로 꼽히는 걸작으로 1970년대 록과 재즈가 랩과 한데 어울리며 기막힌 크로스오버 사운드를 창조해냈다. 때문에 다른 랩 가수들의 음악과 달리 높은 몰입도를 요구한다. 진보적인 음악이란 말이다. ‘Excursions’, ‘ Verses from the abstract’, ‘Show business’, ‘Jazz (we''ve got)’ 등의 트랙들이 잘 말해준다. 2년 뒤인 1993년 발표한 < Midnight Marauders > 역시 전작의 뛰어난 음악성을 고스란히 갈무리하며 플래티넘을 따내는 성공을 거뒀다. ‘Award tour''가 대중적으로 널리 사랑을 받았다. 창작력 부재 탓일까, 아니면 타성에 젖은 탓일까. < The Low End Theory >, < Midnight Marauders >에서 재즈 랩의 완벽한 구조를 확립한 삼인조는 이후 < Beats, Rhymes & Life >(1996년), < The Love Movement >(1998 >를 들고 나왔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음악성으로 이전에 비해 별 반응을 얻지 못했다. 이것은 곧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의 퇴진을 의미했다. 더 이상 재즈 랩의 카테고리에서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판단한 트리오는 1998년 명예롭게 은퇴했다. 멋진 결정이었다.
노래 : Cypress Hill (사이프러스 힐)
하드코어 성향의 갱스터 랩 트리오 사이프러스 힐(Cypress Hill)은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호러 힙합’이라는 새로운 힙합 양식을 개척해 주류 힙합 시장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라티노(Latino) 힙합의 슈퍼스타이다. 특히 그들은 1990년대 초반 당시 랩 그룹으로는 드물게 어둡고 암울한 사운드 스케이프를 들고 나온 점, 마리화나의 합법화를 강하게 주장하며 퍼포먼스 도중에도 캠페인을 벌인 일련의 사건으로 ... 하드코어 성향의 갱스터 랩 트리오 사이프러스 힐(Cypress Hill)은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호러 힙합’이라는 새로운 힙합 양식을 개척해 주류 힙합 시장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라티노(Latino) 힙합의 슈퍼스타이다. 특히 그들은 1990년대 초반 당시 랩 그룹으로는 드물게 어둡고 암울한 사운드 스케이프를 들고 나온 점, 마리화나의 합법화를 강하게 주장하며 퍼포먼스 도중에도 캠페인을 벌인 일련의 사건으로 더욱 유명세를 탔다. 바로 음악 팬들의 관심을 단번에 유발시킨 쇼킹한 ‘와일드 카드’로 주목을 끈 것이다. 웨스트코스트 랩의 메카로 자리잡은 LA에서 결성된 사이프러스 힐은 이탈리아 혈통의 미국인 디제이 머그스(DJ Muggs)와 멕시코계 쿠바인 비 리얼(B-Real), 그리고 쿠바 태생의 센 독(Sen Dog)의 라인업으로 1980년대 후반 힙합 무대에 노크했다. 초창기 LA 주변 등지에서 활동의 터를 마련한 이들은 1991년 < 콜럼비아(Columbia) > 레이블 산하의 < 러프하우스(Ruffhouse) >와 음반 계약을 체결하고, 같은 해 셀프 타이틀 데뷔작을 발표했다. 이들은 데뷔작을 통해 ‘How I could just kill a man’과 ‘The phuncky feel one’ 같은 랩 차트 1위 곡과 ‘Hand on the pump’(랩 차트 2위), ‘Latin lingo’(랩 차트 12위) 등의 싱글로 금새 수면위로 상승했다. 팀의 컬러를 지배한 프로듀서 머그스의 역량과 리드 래퍼 비 리얼의 쥐어짜는 듯한 비음 섞인 독특한 래핑 또한 힙합 매니아들 사이에 화제를 몰고 오기에 충분했다. 특히 힙합 유닛으로서 록 음악을 즐겨듣는 백인 중산층 집단에 크게 환영받았다는 사실은 다분히 팝 수요자들에게도 매력을 십분 끌어당긴 계기가 되었다. 결국 사이프러스 힐은 랩/힙합 월드의 ‘뉴 페이스’라는 칭호와 함께 일약 차세대 힙합거물로 급부상했다. 공포분위기를 집약한 앨범 재킷이 압권인 소포모어 앨범 < Black Sunday >(1993)는 차트 진입 첫 주만에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수록곡 ‘Insane in the brain’이 랩 차트 1위에 오르며 스매시 히트를 기록했고, ‘I ain’t going out like that’(랩 차트 21위) 같은 싱글이 연이어 히트를 부추겼다. 지금까지 사이프러스 힐의 대표작으로 남은 ‘Insane in the brain’은 국내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표절 시비 문제로 더욱 유명세를 탔다. 1993년 영화 < Judgement Night > 사운드트랙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이프러스 힐은 소닉 유스(Sonic Youth), 펄 잼(Pearl Jam) 같은 록 밴드와 협연하며 랩과 록의 한바탕 크로스오버를 시도했다. 이후 1995년에 이르러 이들은 드러머 에릭 보보(Eric Bobo)를 새 멤버로 영입해 록 그룹들의 ‘잔치 한마당’인 룰라팔루자(Lollapalooza) 무대에 승선, 마리화나를 피우며 그것을 정당화하는 행동주의를 실천했다. 같은 해 빌보드 앨범 차트 3위까지 진입한 3집 < Cypress Hill III: Temples Of Boom >은 전작들과 비교해 가장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를 선보인 작품이었다. 수록곡 ‘Throw your set in the air’(랩 차트 11위), ‘Boom biddy bye bye’(랩 차트19위), ‘Illusions’(31위) 등의 싱글이 준(準) 히트를 기록한 앨범은 질적인 면에서 전작들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비슷한 스타일로 인해 결과적으로 전작만큼의 성공을 얻어내지는 못했다. 3집까지의 히트곡들을 리믹스 버전으로 총망라한 < Unreleased & Revamped >(1996)를 발표하며 잠깐의 휴식기에 접어든 사이프러스 힐은 음악적 견해 차이로 센 독이 팀을 잠시 떠나게 된다. 그사이 머그스는 1997년에 솔로 작품 < Muggs Presents the Soul Assassins >을 공개해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이듬해 4집 < Cypress Hill: IV >(1998)로 센 독이 다시 가세하며 이들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다. 하지만 수록곡 ‘Tequila sunrise’가 잠깐의 주목만 끈 채 앨범은 예전만큼의 상업적 성공을 불러오지 못한 실패작으로 끝났다. 2년 뒤 2000년에 발표된 5집 < Skulls & Bones >은 힙합 디스크와 록 디스크의 두 장 짜리 더블 레코드로 선보인 작품이었다. 힙합 버전과 록 버전으로 수록한 ‘Superstar’가 히트했으며 앨범은 강렬한 록 사운드가 앨범 전체를 지배했다. 사이프러스 힐은 그 해 라이브 실황 음반 < Live At Fillmore >(2000)를 공개한 후 이듬해 레드맨(Redman), 매소드 맨(Method Man), 커럽트(Kurupt) 등의 게스트 힙합퍼(hip-hopper)들을 초빙해 힙합과 록을 퓨전시킨 < Stoned Raiders >(2001)를 발표,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랩 그룹으로는 드물게 장수하고 있다.
우피 골드버그가 주연한 < 시스터 액트2 >를 본 사람은 영화 속에서 가수가 되고 싶어하던 흑인 소녀를 기억할 것이다. 그의 이름은 로린 힐이다. 로린 힐은 자라서 아이티 출신의 흑인 남자 프라스, 그의 사촌 와이클레프와 함께 3인조 그룹 ‘푸지스’(Fugees)를 결성해 진짜 가수가 된다. 푸지스의 신보 < 스코어(The Score) >는 전미 앨범 차트에 정상에 오르면서 지금까지 3백만장이 팔려나가는 선풍적인... 우피 골드버그가 주연한 < 시스터 액트2 >를 본 사람은 영화 속에서 가수가 되고 싶어하던 흑인 소녀를 기억할 것이다. 그의 이름은 로린 힐이다. 로린 힐은 자라서 아이티 출신의 흑인 남자 프라스, 그의 사촌 와이클레프와 함께 3인조 그룹 ‘푸지스’(Fugees)를 결성해 진짜 가수가 된다. 푸지스의 신보 < 스코어(The Score) >는 전미 앨범 차트에 정상에 오르면서 지금까지 3백만장이 팔려나가는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꿈을 거의 완벽하게 성취해낸 셈이다. 로린 힐을 보면 푸지스가 순풍에 돛단 듯 인기가도를 질주해온 것 같지만 다른 두 멤버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그룹 이름 푸지스는 ‘난민’이란 뜻의 레푸지스(Refugees)를 줄여 쓴 것이다. 왜 두 사람이 난민인가? 이들은 어린 나이에 아이티에서 미국으로 이주해 차별 대우를 받으며 어렵게 성장했다. 그러나 이들이 당한 차별 대우는 백인 사회에서 흑인이 당하는 인종적 설움만이 아니다. “우린 흑인이므로 인종차별로부터 탈출하고 싶다. 그런데 가끔 미국 흑인들까지 우리가 아이티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중으로 차별을 받았던 것이다. 로린의 경우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또한 나름대로의 차별을 받고 있다.” 푸지스는 “그럴 때는 정말 어디론가 도망칠 곳이 있어야 한다”고 결론 내린다. 푸지스란 팀 이름은 기존 사회의 틀에서 벗어나거나 망명하려는 이들의 의지를 함축한다. 이들이 차별에 저항하는 메시지를 힙합을 기본으로 하는 목소리로 끊임없이 내뱉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힙합과 랩을 토대로 하면서 솔, 펑크, 리듬 앤 블루스, 레게 등을 감칠나게 혼합하여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음악을 만들어 냈다. 일례로 ‘킬링 미 소프틀리(Killing me softly)’는 1973년 로버타 플랙이 불러 유명한 솔의 고전으로 힙합으로 새롭게 각색한 것이다. 그동안 위축되어 있다가 최근 다시 부상하고 있는 이른바 네오 솔(neo soul)에 해당한다. 이들은 또한 밥 말리의 레게 명곡 ‘여자들이여 울지 말아요(No woman, no cry)’를 자기 스타일로 리메이크했으며, ‘패밀리 비즈니스(Family business)’에서는 그 유명한 ‘알함브라의 궁전’의 도입 기타 연주 부분을 샘플링해 삽입했다. 이 때문에 낯선 힙합이 비교적 친근하게 다가온다. 음악은 단순하고 재미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개성’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푸지스를 통해 재확인하게 된다. 또한 흑인에게 음악은 탈출구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절감한다.
노래 : C+C Music Factory (씨앤씨 뮤직 팩토리)
‘킹 오브 팝’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과 ‘팝계의 혁명아’ 프린스(Prince), 1980년대를 평정한 두 흑인뮤지션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라 그 누구도 그들을 위협할 상대는 없었다. 아니 없는 듯 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절대강자라 해도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청취자들의 요구를 다 충족시켜줄 수는 없는 법. 틈새는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혜성처럼 튀어 오른 바비 브라운(Bobby Brown... ‘킹 오브 팝’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과 ‘팝계의 혁명아’ 프린스(Prince), 1980년대를 평정한 두 흑인뮤지션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라 그 누구도 그들을 위협할 상대는 없었다. 아니 없는 듯 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절대강자라 해도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청취자들의 요구를 다 충족시켜줄 수는 없는 법. 틈새는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혜성처럼 튀어 오른 바비 브라운(Bobby Brown: 흑인소년보컬그룹 뉴 에디션 출신)이 ’뉴잭스윙’(New Jack Swing)이라 불리는 호쾌한 댄스 팝으로 ‘브랜드 뉴’를 찾는 새내기들의 왕성한 욕구에 부응했고, 음악계를 송두리째 뒤흔든 ‘립씽크’파문으로 말미암아 일순간에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긴 했으나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전 지구적 팬을 거느렸던 독일출신 흑인듀오 밀리 바닐리를 필두로, 당시 전국 방방곡곡 나이트클럽을 장악한 블랙스타일 뮤직(랩, 댄스 팝, 소울, 펑키)의 파워는 실로 대단했다. 블랙피플, 블랙뮤직을 향한 열기는 1980년도 후반을 거쳐 1990년대에 들어서도 식을 줄 몰랐다. 1990년도 빌보드 싱글차트 절반이상이 흑인뮤지션들의 노래였으며 앨범차트도 검은 돌풍에 초토화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곧이어 흑인 랩 전도사 M.C 해머와 최초의 백인래퍼 바닐라 아이스가 랩의 대중화에 앞장서면서 한층 더 빠르고 강한 비트의 음악에 매료된 팝 팬들은 좀 더 색다르고 자극적인 스타일에 목말라했다. 그 즈음 팝팬들의 갈증을 단방에 해소시켜준 4인조 그룹이 있었으니, 이름하야 씨+씨 뮤직 팩토리(C+C Music Factory). 음악 제조공장은 그렇다 치더라도 앞에 C+C가 무얼 의미하는 걸까 궁금해 하는 이가 많았으리라! C+C는 다름 아닌 그룹의 핵심브레인 로버트 시빌스(Robert Civilles)와 데이비드 콜(David Cole) 두 프로듀서의 성 이니셜을 조합한 표현. 곧 음악 제조공장의 음악은 죄다 두 C씨로부터 비롯된다는 말이다. 이들의 음악스타일은 흔한 말로 대중없었다. 록, 소울, 펑크, 팝, 알 앤 비, 테크노 등 그 음악적 뿌리는 검지만 된다싶은 사운드소스를 발굴해 잘라 붙이는 솜씨는 가히 발군이었다. 지축을 흔드는 록 기타와 드럼 사운드가 강력한 백 비트를 증폭시키는가 하면 넘실대는 펑키(Funky)리듬이 흥을 돋우고 내지르는 소울창법의 노래와 래핑이 흥분지수를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온 몸의 살들이 요동치게 만드는 이들의 음악스타일은 당시 국내 나이트클럽을 강타하며 가요계 바람을 몰고온 ’철이와 미애’의 댄스 곡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이러한 샘플링 기법은 곧 20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흑인랩송에 Cut and Paste가 유행하게 하는 데 이들의 공헌이 지대했음을 방증하는 것이었다. 과거 시점에서 혁신에 가까웠던 두 친구가 그간 갈고닦은 진가를 발휘를 한 때는 1991년. 래퍼 프리덤 윌리엄스(Freedom Williams)와 서아프리카 라이베리아 출신의 댄스가수 젤마 데이비스(Zelma Davis), 펑키 댄스의 실력자 데보라 쿠퍼(Deborah Cooper) 그리고 그룹 웨더 걸스(Weather Girls)에서 활약하던 보컬 마사 와시(Martha Wash)와 음악가족을 구성해 발표한 데뷔앨범 타이틀 싱글 ‘땀 좀 빼실 랍니까? 흠뻑 적셔드리죠!(자 모두 춤춥시다)’(Gonna Make You Sweat)가 발매 9주 만에 100만장 이상 판매고를 기록하며 댄스차트는 물론 싱글과 R&B차트까지 접수하면서 부터다. 이들의 음악적 재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이 노래를 비롯해 ‘Here We Go, Let’s Rock & Roll’(싱글3위), ’Just a Touch of Love(Everyday)’(댄스차트1위), ’Things Make You Go Hmmm..’(싱글4위)이 차례로 폭발적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분위기에 한층 고무된 두 공장장은 이듬해 리믹스 앨범과 1994년 여름에 < Anything Goes! >로 댄스차트에 맹공을 퍼부어 이후 8곡을 차트 상위에 올려놓으며 여세를 몰아갔다. 데뷔앨범이 차트2위를 지키며 롱런히트를 했던 것에 반해 공식2집 음반은 단 9주 간 차트순위를 지켰을 뿐,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들에게 행운의 반전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1995년 초 데이비드 콜이 척추염으로 사망하면서 팬들의 기대도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노래 : Aretha Franklin (아레사 프랭클린)
20세기를 정리하는 작업이 러시를 이루는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궁금중이 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가수는 누구였는가? 많은 음악팬들이 먼저 프랭크 시내트라 또는 앨비스 프레슬리를 떠올릴 것이다. 신세대 같으면 머라이어 캐리라고 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서구 대중음악계는 거의 그 주인공을 흑인 여가수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으로 낙점한 상황이다. 먼저 시사주간지 < 타임 >이 선정한 ‘2... 20세기를 정리하는 작업이 러시를 이루는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궁금중이 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가수는 누구였는가? 많은 음악팬들이 먼저 프랭크 시내트라 또는 앨비스 프레슬리를 떠올릴 것이다. 신세대 같으면 머라이어 캐리라고 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서구 대중음악계는 거의 그 주인공을 흑인 여가수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으로 낙점한 상황이다. 먼저 시사주간지 < 타임 >이 선정한 ‘20세기 문화예술인 20인’을 보자. 여기에는 대중음악인 넷이 포함되었는데 그들은 프랭크 시내트라, 비틀즈, 밥 딜런 그리고 아레사 프랭클린이었다. # 20세기는 왜 아레사 프랭클린인가? 놀라운 사실은 로큰롤의 황제라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자타가 공인하는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빠졌다는 점이다. 두 대중음악사의 거인은 누가 봐도 아레사 프랭클린에 비해서는 대중적 지명도나 후대의 영향력 측면에서 앞선다. 만약 흑인 음악인 한 사람을 꼽았어야 했어도 그 주인공은 마이클 잭슨이 되어야 당연하다. 그런데 왜 아레사 프랭클린인가? 아레사 프랭클린이 명단에 오른 이유는 마이클 잭슨을 누른 ‘흑인의 대표성’ 때문으로만 볼 수 없다. 흑백을 떠나서 팝 음악계 전체를 진동시킨 ‘경이로운 가창력’ 때문이다. 아레사 프랭클린은 42년생 미국 멤피스에서 태어나 1960년대말 스타덤에 오른 왕년의 가수지만 지금도 노래하면 음악관계자들은 만장일치로 그녀를 거명한다. 얼마나 노래를 잘하길래 그런가. 몇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그녀가 1967년 프로듀서 제리 웩슬러의 지원 아래 어틀랜틱 음반사에서 처음 앨범을 취입했을 때 반주를 해준 사람들. 이른바 세션맨들은 아레사 프랭클린의 노래솜씨에 그만 넋을 잃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너도나도 ‘이런 환상적인 레코딩에 내가 참여한 것이 영광’이라며 어울려 춤을 췄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의 유선방송국VH원이 주최한 ‘디바스 라이브’(음반으로도 나왔다) 공연에서는 관람객 중 한 사람이었던 여배우 사라 제시카 파커가 인상적인 소감을 남겼다. “아레사를 보기 전에 난 스타에 반한 적이 없다. 그런데 지금 난 홀린 기분이다. 아레사가 나한테 ‘옷이 멋져요’ 하길래 난 주저없이 ‘가지세요’라고 했다. 발가벗고 여기를 나가게 되더라도 상관없다. 그녀는 옷을 가질만하다!” 지난해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아레사 프랭클린은 다시 한번 천부적인 가창력으로 사람들의 혼을 뺐다. 그녀는 시상식장에서 노래부르기로 돼있던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병으로 불참하게 되자 갑작스럽게 대타로 뛰게 되었다. 뒷무대에서 불과 몇분 연습하고 나서 그녀는 거뜬하게 파바로티의 ‘네순 도르마’를 불렀다. 더욱이 72인조 오케스트라에 맞추기 위해 그 곡을 파바로티의 키로 노래했다. 주최측, 오케스트라 단원 그리고 객석 모두가 ‘경외’의 박수를 쳤다. 그녀에 대한 평자들의 찬사와 칭송은 끝이 없다. ‘형언하기 어렵다’(No other description will do)가 대부분이다. 음악평론가 벤 에드먼즈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지난 50년간 우리를 놀라게 하고 겁에 질리게 한 또다른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영국의 록잡지 < 모조 >는 지난해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수 100인’을 음악관계자 설문을 통해 선정한 바 있다. 여기서 1위는 말할 것도 없이 아레사 프랭클린이었다. < 모조 >측은 2위와 표차를 엄청나게 내고 그녀가 넘버 원 싱어가 된 것에 놀랐다. 다시금 아레사 프랭클린이 남녀, 흑백, 장르를 통틀어 ‘20세기의 최고 가수’라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 그녀는 소울의 영원한 여왕 그녀의 음악은 목소리와 창법의 미학뿐 아니라 시대성이 있다. < 타임 >지가 20세기의 위대한 문화예술인 중 한 사람으로 뽑은 진정한 이유다. 1960년대 후반 아레사 프랭클린이 불러 유명한 곡 ‘존경(Respect)’, ‘체인 오브 풀스(Chain of fools)’, ‘생각해요(Think)‘ 등에는 당시 흑인들의 당당한 의식이 배어 있다. 흑인 민권운동의 불길이 솟아오르던 그 무렵 흑인들은 백인 지배사회에서 결코 흑인들이 열등한 인종이 아니며, 따라서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흑인의 영혼을 의미하는 소울(Soul)이었다. 소울 음악은 때문에 목청을 돋워 질러대는 ‘샤우트’를 특징으로 했다. 국내에서도 록의 비조로 불리는 신중현이 소울을 창조적으로 도입해 김추자, 박인수, 펄 시스터즈와 같은 소울 가수가 1970년대 초반 두각을 나타낸 바 있다. 1967년 미국의 디트로이트에 흑인 폭동이 발발했을 때 성난 흑인 민중들은 백인들에게 존경을 요구하는 의미에서 아레사 프랭클린의 그해 히트곡 ‘존경’을 시위대의 찬가로 불렀다. 이듬 해 디토로이트 시장 제롬 카바나는 ‘아레사 프랭클린의 날’을 선포하기도 했다. 미국사회가 이때부터 흑인의 음악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백인들도 흑인의 레코드를 구입하게 된 것이다. 아레사 프랭클린은 다시 말해 흑인 소울의 존재를 만천하에 고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신(神)의 조리에 의한 거 같은 지존(至尊)의 가창력으로 그것을 전했으니 그 위력은 더할 나위가 없다. 또 지적하는 바이지만 ‘존경’을 듣고 동료가수 오티스 레딩은 혀를 내둘렀다. 이 곡은 그가 쓴 곡으로 직접 불러 발표한 바도 있는데, 아레사 프랭클린이 완전히 새롭게 그리고 완벽하게 소화한 것을 듣고 질려버린 것이었다. 오티스 레딩의 경탄. “난 내 노래를 잃어버렸어. 저 여자가 내 곡을 빼았아갔어!” 아레사는 조금도 변함없는 ‘소울의 여왕(Queen of soul)’으로 통한다. ‘여성 소울(Lady soul)’이란 별명도 있다. < 디바스 라이브 >에서 아레사 프랭클린과 호흡을 맞춘 머라이어 캐리도 그렇게 호칭하고 있지만 이 호칭들은 영원히 아무도 넘아다볼 수 없을 것 같다.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은 1980, 1990년대 남성들에 의해 주도되던 메탈의 포화를 뚫고 스탠다드 팝 시장을 개척해 낸 대표적인 ’디바’ 뮤지션이다. 휘트니 휴스턴은 1963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났다. 알앤비 가수 씨시 휴스턴(Cissy Houston)의 딸이었으며 시대를 풍미한 여가수 디온 워윅(Dionne Warwick)이 친척이었던 그녀는 어려서부터 대형 가수들을 옆에서 지켜볼 수 ...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은 1980, 1990년대 남성들에 의해 주도되던 메탈의 포화를 뚫고 스탠다드 팝 시장을 개척해 낸 대표적인 ’디바’ 뮤지션이다. 휘트니 휴스턴은 1963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났다. 알앤비 가수 씨시 휴스턴(Cissy Houston)의 딸이었으며 시대를 풍미한 여가수 디온 워윅(Dionne Warwick)이 친척이었던 그녀는 어려서부터 대형 가수들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고, 어머니의 재능을 이어받아 어려서부터 성가대에서 노래하며 그 실력을 뽐냈다. 수려한 외모까지 겸비한 휘트니는 10대의 나이에 이미 모델, 배우, 가수의 세 가지 활동을 병행하고 있었다. 샤카 칸(Chaka Khan) 등의 백업보컬로 또 클럽에서 가수로 활동하던 그녀는 1982년 19살의 어린 나이에 폴 자바라(Paul Zabara)의 ’Eternal love’라는 곡에 보조 보컬로 참여하며 처음으로 정식 음반 녹음에 참여한다. 이듬해 아리스타(Arista)와 계약을 체결했고, 그녀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레코드사는 데뷔 앨범에 27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자하며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1985년 데뷔앨범 < Whitney Houston >은 흑인 디바 시대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앨범은 14주간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오르며 솔로 아티스트의 데뷔 앨범 중 가장 오랜 기간 1위에 머무른 앨범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세계적으로 2,300만장이라는 경이적인 앨범 판매를 이루어내며 데뷔 앨범 하나로 팝계 최고의 여가수로 자리하게 된다. 앨범 내에서는 ’Saving all my love for you’, ’How will I know’, ’Greatest love of all’(조지 벤슨의 곡 리메이크)의 세 곡이 연속해서 차트 정상에 오르고, 앨범의 경이적인 성공으로 86년 그래미와, 86,87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를 차지한다. 1987년 그녀는 두 번째 앨범 < Whitney >를 통해 전작의 인기를 이어간다. 전작보다 비트감을 더한 이 앨범 역시 대단한 성공을 일구어 낸다. 발매 첫 주에 미국과 영국차트에서 동시에 1위에 오르는데 팝 역사상 처음으로 이룩한 기록이었다. 앨범은 차트 정상에 11주간 머물렀으며 세계적으로 2,000만장이 팔려나갔다. 싱글들의 인기도 대단해서 ’Wanna dance with somebody(Who loves me)’, ’Didn’t we almost have it all’, ’So emotional’, ’Where do broken hearts go’ 네 곡이 연속해서 차트 정상을 밟으며 이전 앨범부터 7개의 싱글이 연속해서 정상을 밟는 대 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 앨범으로 또다시 1988년 그래미를 거머쥐었고, 역시 88년, 89년의 아메리칸 뮤직어워드를 수상한다.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 같은 정통 소울 아티스트들로부터 음악적 영감을 얻었던 그녀이지만 1,2집에서 보여준 음악은 대중성이 지나치게 강조된 흑, 백의 사운드가 뒤섞인 음악이었다. 자신도 그런 자신의 음악에 만족하지 못했는지 1990년 발표한 세 번째 앨범 < I’m Your Baby Tonight >에서는 대중성을 신경 쓰지 않고 정통 소울 음악으로 변신을 시도한다.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루떠 반데로스(Luther Vandross)등과 함께 작업하는 등 흑인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에 집착했던 이 앨범은 역시 이전 앨범들만큼의 성공을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I’m your baby tonight’, ’All the man that I need’가 1위에 올랐고, 앨범은 전 세계 1,200만장의 판매를 기록하는 등 여전히 그 인기는 대단했다. 세 장의 정규 앨범 이후 그녀는 영화 배우로의 변신을 시도하며 세 장의 사운드 트랙을 연속 발표한다. 시작은 < 보디가드 >였다. 1992년 케빈 코스트너와 함께 출연한 ’보디가드’의 사운드 트랙에서 6곡을 노래했고, 이는 팝 역사에 길이 남을 경이적인 상업적 성공을 이끌어낸다. 첫 싱글 ’I will always love you’(돌리 파튼의 곡을 리메이크)는 차트 정상에 14주간 머물렀으며, 앨범은 20주간 1위를 지켰고, 세계적으로 3,500만장이라는 어마어마한 판매고를 기록한다. 1994년 그녀는 다시 한 번 그래미를 거머쥐었고,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는 8개 부문 수상이라는 대 기록을 세우게 된다. 1995년 휘트니 휴스턴은 다시 한 번 사운드 트랙에 참여한다. 자신이 주연한 < Waiting for Exhale >의 사운드 트랙에 3곡을 수록하면서 영화와 앨범의 성공에 기여한다. 이 앨범은 노장 흑인 여가수들과 신예 흑인 여가수들이 총 동원되어 만들어졌으며, 프로듀서로 참여한 베이비페이스(Babyface)는 그래미 12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영예를 누리게 된다. 1996년 그녀는 영화 < The Preacher’s Wife >에서 주연을 맡으며 다시 한 번 사운드 트랙에 참여한다. 14곡을 자신이 직접 맡은 이 앨범은 가스펠 위주의 곡들로 채워져 있으며 대중성보다는 종교적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어 앨범판매에 있어서는 그다지 큰 성공을 이끌어내지 못하였다. 정규 앨범을 발표하지 않고 영화와 사운드 트랙에만 전념해왔던 그녀는 98년 8년 만에 정규앨범 < My Love Is Your Love >을 발표한다. 흑인 아티스트로서의 음악에 충실함을 기했던 이 앨범은 1,000만장의 앨범 판매를 기록하며 그녀의 앨범 중 가장 저조한 성적을 거두게 된다. 앨범 내에는 영화 ’이집트의 왕자’ 주제곡인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와의 듀엣 곡 ’When you believe’가 수록되어 있다. 2000년 그녀는 자신의 15년 음악생활을 결산하는 베스트 앨범 < The Greatest Hits >를 발표한다. 조지 마이클, 엔리케 이글레시아스와의 듀엣 곡 등 네 곡의 신곡도 포함하고 있는 이 앨범은 발라드 곡들만을 모은 < Cool Down >과 댄스곡 및 댄스 리믹스 곡들을 모은 < Throw Down > 두 장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노래 : Diana King (다이애나 킹)
다이애나 킹(Diana King)은 레게음악이 크게 인기를 누리던 1990년대 중반 정통 흑인 소울에 기반을 둔 차별화된 레게음악으로 인기를 누렸다. 레게의 본거지 자메이카 출신인 다이애나 킹은 자메이카의 수도 킹스턴(Kingston) 근교의 스패니시 타운(Spanish Town)에서 태어났다. 다이애나는 어린 시절 성 필립포 뱁티스트(St. Phillipo Baptist) 교회의 합창단 일원으로 활동하며 가수의... 다이애나 킹(Diana King)은 레게음악이 크게 인기를 누리던 1990년대 중반 정통 흑인 소울에 기반을 둔 차별화된 레게음악으로 인기를 누렸다. 레게의 본거지 자메이카 출신인 다이애나 킹은 자메이카의 수도 킹스턴(Kingston) 근교의 스패니시 타운(Spanish Town)에서 태어났다. 다이애나는 어린 시절 성 필립포 뱁티스트(St. Phillipo Baptist) 교회의 합창단 일원으로 활동하며 가수의 꿈을 키웠지만 재능이 남달랐음에도 불구 부모의 반대로 가수의 꿈을 펼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13살의 어린 나이에 가출을 선택했고, 호텔 나이트클럽의 가수로 생활하며 생계를 꾸려 나간다. 너무도 어린 나이에 홀로서기를 시도한 그녀는 클럽 가수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경험하며 정상급 흑인 보컬리스트로 성장해 나간다. 소울 최고의 디바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을 우상으로 삼고 있었던 그녀는 자메이카 출신이었지만 아레사를 모델로 여기고 있었던 만큼 소울/R&B의 정통 흑인 음악에 가까웠고, 소울/R&B는 물론 자메이카 특유의 레게에서 댄스곡으로 사용되는 하우스 음악과 단순한 팝 음악까지 10대의 어린 나이에 그녀가 소화해 내는 영역은 광범위했다. 씨티 히트(City Heat)라는 밴드에서 보컬을 맡기도 했던 그녀는 곧 밴드 활동을 그만두고 자신의 솔로 레코딩 작업을 서두른다. 자메이카에서 녹음한 데뷔 앨범은 별다른 히트를 기록하지 못했지만 이 앨범을 계기로 샤바 랭스(Shabba Ranks)에게 발탁되면서 서서히 메이저급 뮤지션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샤바 랭스의 투어에 듀엣 싱어로 참여한 그녀는 곧 콜럼비아(Columbia) 레코드와 계약을 맺었고, 레게 넘버들로 채워진 영화 < 쿨 러닝(Cool Runnings) >의 사운드트랙에 참여하여 정식 데뷔 싱글이라 할 수 있는 ’Stir it up’을 발표한다. 레게의 고전을 리메이크 한 이 곡은 좋은 평을 받으며 인기를 끌었고, 이 영화를 시작으로 다이애나 킹과 영화 삽입곡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진다. ’Stir it up’으로 미국 시장에서 지명도를 확보한 다이애나 킹은 1994년 노토리어스 비아이지(Notorious B.I.G.)의 앨범 < Ready To Die >에 얼굴을 보이는 등 스타 만들기를 시도하는 기획사의 배려 속에서 착실하게 성장해 나간다. 1995년 발표한 데뷔 앨범 < Tougher Than Love >은 발매 직후 큰 반응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지만 영화 < 나쁜 녀석들(Bad Boys) >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Shy guy’가 크게 히트하면서 뒤 늦게 인기를 누렸다. 영화의 선전과 맞물리며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 ’Shy guy’를 통해 다이애나 킹은 레게를 노래하는 실력파 R&B 싱어로 주목 받게 된다. 1997년 그녀는 다시 한 번 영화 사운드트랙에 도전장을 내 던진다. 국내에서도 크게 히트한 영화 <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My Best Friend’s Wedding) >에 버트 바카라(Burt Bacharach)의 고전 ’I say a little prayer’가 그녀의 목소리로 실렸고, 이 곡을 통해 다이애나 킹이라는 이름은 또 한 번 전 세계에 알려진다. 영화 사운드트랙에 실린 세 곡의 노래만으로 인기를 누린 톡특한 경력의 소유자 다이애나 킹은 레게가 창궐하던 1990년대 중반을 스쳐 지나간 한 명의 흑인 여가수에 지나지 않지만 탁월한 가창력으로 레게의 약점을 상쇄시켰던 그녀의 레게 싱어로서의 가치는 특별했다.
노래 : Tatyana Ali (타티아나 알리 (Tatyana Marisol Ali))
1990년대 중반 어른 뺨치게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어린 소년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지난 2001년 4년여의 공백을 깨고 R&B 정상에 우뚝 선 어셔(Usher)가 그 주인공이었다. 어셔(본명: Usher Raymond)는 1979년 미국 테네시(Tennessee)의 채터누가(Chattanooga)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하기 시작한 그는 어머니인 조네타 패튼(Jonnetta Pat... 1990년대 중반 어른 뺨치게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어린 소년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지난 2001년 4년여의 공백을 깨고 R&B 정상에 우뚝 선 어셔(Usher)가 그 주인공이었다. 어셔(본명: Usher Raymond)는 1979년 미국 테네시(Tennessee)의 채터누가(Chattanooga)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하기 시작한 그는 어머니인 조네타 패튼(Jonnetta Patton,이후 그의 매니저로서 활동한다)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성가대 지휘자로 활동하며 역량을 키운다. 아틀란타(Atlanta)로 이주해 온 그는 12살의 어린 나이에 벌서 가수의 길을 준비한다. 출중한 노래 실력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1992년 라페이스(LaFace) 레코드사에서 주최하는 경연대회에 참가하여 브라이언트 레이드(Bryant Reid)의 눈에 들게 된다. 라페이스 레코드사 공동 대표 안토니오 “엘에이” 레이드(Antonio "LA" Reid)의 동생이었던 그는 형에게 이 출중한 소년을 소개했고, 어셔 레이먼드는 1994년 14살의 어린 나이에 안토니오 “엘에이” 레이드(Antonio "LA" Reid)와 퍼프 대디를 프로듀서로 삼아 데뷔 앨범 < Usher >를 선보인다. 14살 어린 소년의 음악은 대중의 호응을 얻어내며 큰 인기를 누렸다. ’Think of you’가 R&B 차트 톱10(팝에선 58위) 히트를 기록했으며 앨범 또한 골드를 획득했다.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미래의 가능성을 인정받은 그는 이후 여러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친다. 1995년에는 ‘코카콜라’ 음료수 회사의 레코딩에 나섰으며, 남성 R&B 그룹인 블랙 멘 유나이티드(Black Men United)의 ‘You will know’에 입을 보탰다. 이어 영화 < Jason’s Lyric > 사운드트랙에도 참여했으며, 모니카(Monica)와 듀엣 곡 ’Let’s straighten it out’을 부르기도 했다. 어셔가 가진 매력은 남다른 것이었다. 어린아이가 가져야 할 순수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성인 못지 않은 감성을 이끌어 내는 매력은 어느 뮤지션에게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그의 재기는 1997년의 두 번째 앨범 < My Way >로 용트림을 한다. 저메인 듀프리(Jermaine Dupri), 테디 라일리(Teddy Riley), 베이비페이스(Babyface)를 공동 프로듀서 겸 작곡가로 끌어 들였고, 이들의 참여는 어셔의 탁월한 재능이 돋보이게끔 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18살이었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내 놓은 이 앨범에서 그는 소년 뮤지션으로서의 이미지를 벗어 던지며 ‘보이 투 맨’ 한다. 직접 곡 작업에도 참여하여 9곡의 노래 중 6곡에 참여하였으며, 보컬에 있어서도 이전보다 한층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소년의 티를 벗은 그에게 대중은 열렬한 지지의 뜻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첫 싱글로 커트 된 정통 R&B 곡 ’You make me wanna’는 대단한 인기를 얻으며 차트 2위에 7주 동안 머무르게 된다. 당시 1위 곡이 영국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죽음과 맞물려 14주간 굳건히 1위를 지킨 엘튼 존(Elton John)의 ’Candle in the wind ’97’인 것을 감안한다면 이 곡의 인기가 다른 1위 곡들에 못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인기행진은 쉴 틈 없이 계속되었다. 힙합 스타일의 ’Nice and slow’가 1998년 드디어 차트 정상을 정복했고, 동명 타이틀의 ‘My way’도 차트 2위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 노래까지 세 싱글은 모조리 플래티넘(100만장)을 기록했다. 한편 미드나잇 스타(Midnight Star)의 곡을 리메이크한 ’Slow jam’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앨범에는 거물급 프로듀서들말고도 낯익은 뮤지션들이 참여해 ’Slow jam’에는 모니카(Monica)가, ’Just like me’에는 릴 킴(Lil’ Kim)이 참여했다. 1997년 흑인 음악계를 이끌어 갈 최고의 유망주로 각광 받은 어셔는 97년 소울 트레인 어워드(Soul Train Award)에서 ’Best R&B Single by a Male’ 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으며, 그레미(Grammy)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하였다. 최고의 R&B 스타로 등극했지만 그는 춤과 연기에도 재주를 가진 만능 엔터테이너이기도 하다. 수준 급의 연기로 주목받는 배우는 아니지만 그는 1998년 호러 영화인 < 더 패컬티 >(The Faculty)에 연기자로 출연했고, 이후 학교 드라마인 < 라이트 잇 업 >(Light It Up) 등 3작품에서 가수 이외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두 번째 앨범의 성공 이후 라이브 투어 활동에 진력하던 어셔는 2000년 싱글인 ‘Pop ya collar’를 발표하며 컴백한다. 미국 뮤지션인 그에게 이 곡은 색다른 결과를 가져다주었는데 이 곡은 자국인 미국보다 영국에서 인기를 얻으며 2001년 2월 영국 차트 2위의 성공을 이끌어 낸다. 2000년 11월 2.5집이라고 할 < All About U >를 내놓았으며 < All About U >의 곡들에 새로운 싱글들을 더해 2001년 8월 < 8701 >을 내놓는다. 발매 이전에 이미 싱글 ’U remind me’가 발매 4주만에 정상을 밟은 이 앨범은 전작에 참여했던 거물급 뮤지션들이 다시 손을 걷었음은 물론 어셔 자신 또한 이전 앨범에서 보여준 것보다 훨씬 많은 부분에서 아티스트로서의 역량을 뽐내고있다. 사실상 세 번째 정규 앨범이라고 할 수 있는 < 8701 >은 정통 R&B 곡들의 매력이 주를 이루면서도 지난 앨범보다 힙합에 더 치중한 듯 보이며, 스패니시 요소를 삽입하는 등 전체적으로 다양하고 성숙한 기량을 드러내고있다. 역시 차트 정상을 밟은 두 번째 싱글 ’You got it bad’는 한국 그룹인 지오디(god)의 곡 ‘길’과 표절 논란이 일며 한국 팬들에게도 관심을 끌었다.
1990년대 ‘걸 그룹 붐’의 한복판에 서있던 TLC는 음악은 물론이고 신선한 발상의 전환이 돋보이는 여성 트리오다. 톡톡 튀는 힙합과 말랑말랑한 팝이 절묘하게 녹아든 이들의 음악은 팝계 최고의 남성 작곡가와 프로듀서의 작품이다. 하지만 이들은 결코 만만하게 그 남성들, 또 그들이 지배하는 사회의 종속물로 흡수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같은 남성들을 마음껏 비웃으며 자유자재로 요리하는 것이 바로 TLC의 스타일이다... 1990년대 ‘걸 그룹 붐’의 한복판에 서있던 TLC는 음악은 물론이고 신선한 발상의 전환이 돋보이는 여성 트리오다. 톡톡 튀는 힙합과 말랑말랑한 팝이 절묘하게 녹아든 이들의 음악은 팝계 최고의 남성 작곡가와 프로듀서의 작품이다. 하지만 이들은 결코 만만하게 그 남성들, 또 그들이 지배하는 사회의 종속물로 흡수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같은 남성들을 마음껏 비웃으며 자유자재로 요리하는 것이 바로 TLC의 스타일이다. 남성들과 동등해질 여성들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그 구도 자체를 허무는 것이며 차라리 그 구도를 역전시키는 것이었다. 솔트 앤 페파나 엔 보그 같은 선배 여성그룹들에게 영향받았을 법한 이들의 자유분방하고 솔직한 태도는 이미 페미니즘이나 성 담론의 차원을 넘어선다. 천방지축 장난기 어린 모습으로 등장했던 데뷔시절부터 성숙한 여인의 모습을 지나 사이버 여전사의 모습으로 변신한 최근까지 이들의 남성 상은 한결같다. 이들에게 남성은 즐거움의 상대인 동시에 언제나 계도대상이며 한 수 아래인 존재다. 데뷔앨범 이 전하는 메시지는 바람기 많은 남자친구를 다루는 방법이며, 2집의 히트곡 ‘Creep’은 자신에게 충실하지 못한 남자에게 여자의 한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주는 곡이다. 또 3집의 히트곡 ‘No scrubs’는 여자에게 의존해 사는 찰거머리 같은 남자를 차버린다는 가사를 담았다. 남자들 입장에서 본다면 내심 가슴 떨리는 내용들이다. 이러한 가치전복(?)적 마인드가 담긴 ‘여성찬가’는 그러나 그리 과격하지 않은 형태로 전달된다. 재미있는 상상력으로 접근하는 TLC의 메시지는 섹시하고 사랑스럽게 들린다. 그만큼 이들의 음악은 거부감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이것이 남들과 구별되는 이들만의 뛰어난 능력이다. 비록 그것이 치밀한 계산의 산물일지라도 발상이 새로운 이들의 메시지와 남들이 다 속을 정도로 완벽한 이들의 모습은 분명 감탄할 만한 의미를 지닌다. 티 보즈(T-Boz), 레프트 아이(Left Eye), 칠리(Chilli)로 이뤄진 TLC는 1991년 미국의 애틀랜타에서 결성되었다. R&B 여성 가수 페블스(Pebbles)에 의해 발탁된 이들은 댈러스 오스틴과 베이비페이스의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1992년 데뷔작 을 발표했다. 넝마 같은 힙합 바지를 입은 장난꾸러기 모습으로 데뷔한 이들은 급속도로 팝 음악계를 잠식했다. 수록곡 ‘Ain`t 2 proud 2 beg’(6위), ‘Baby-baby-baby’(2위), ‘What about your friend’(7위)가 연이어 싱글차트를 휩쓸며 ‘여성의 즐거움’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이어 1994년에는 2집 이 발매되었다. 개구쟁이 소녀에서 깔끔한 숙녀로 변모한 이들은 관능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며 전작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성공을 맛봤다. 힙합과 팝, 소울이 가미된 이 앨범은 3곡이나 정상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고, 그래미상, 빌보드 어워즈, MTV 어워즈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1천만 장이 넘게 팔린 그 앨범은 또한 지난 세기에 가장 많이 팔린 힙합 앨범으로 선정되었다. 이들은 공연패션으로 콘돔의상을 입고 나와 충격을 주는 등 남다른 상상력을 이어갔다. 그 같은 성공 여파로 이들은 이후 장기간 휴지기에 들어가서 해체 의혹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1999년 3집 을 출시하며 팬들에게 복귀했다. 전작들과 음악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관록의 TLC답게 일정수준 이상의 노래들을 선보였다.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싱글 ‘No scrubs’와 ‘Unpretty’를 차트정상에 등극시키며 저력을 과시했다. 사이버 시대답게 앨범 커버와 외모를 사이버 패션으로 장식해서 이목을 끌기도 했다. TLC는 완벽한 팝 사운드와 넘치는 끼로 여성그룹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 비록 그 성공의 절반은 LA 리드&베이비페이스, 지미 잼&테리 루이스, 저메인 듀프리, 댈라스 오스틴 같은 막강 프로듀서들의 몫이지만 TLC의 눈부신 활약은 그 절반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다. 적어도 마초적 남성사회에게 구속되지 않고 오히려 역습하는 이들의 재기는 분명 그들 자신의 공로다.
노래 : Monica (모니카,Monica Denise Arnold)
지난 1998년 빌보드지 연말 결산에서 그 해 가장 많이 판매된 싱글은 단번에 260만 장을 팔아치운 ‘The boy is mine’이었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그 남자는 내 꺼야”라며 두 여성이 ‘티격태격’ 사랑싸움을 벌이던 그 싱글은 당시 ‘뉴 히트메이커’로 부상하던 로드니 저킨스(Rodney Jerkins)가 지휘했고, 세 남녀의 ‘트라이앵글 러브’를 노래해 빌보드 차트 13주간 1위를 고수했다. 그 ... 지난 1998년 빌보드지 연말 결산에서 그 해 가장 많이 판매된 싱글은 단번에 260만 장을 팔아치운 ‘The boy is mine’이었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그 남자는 내 꺼야”라며 두 여성이 ‘티격태격’ 사랑싸움을 벌이던 그 싱글은 당시 ‘뉴 히트메이커’로 부상하던 로드니 저킨스(Rodney Jerkins)가 지휘했고, 세 남녀의 ‘트라이앵글 러브’를 노래해 빌보드 차트 13주간 1위를 고수했다. 그 아름다운 선의의 경쟁을 펼친 주인공은 10대 소녀 가수의 저력을 만방에 과시했었던 브랜디와 모니카였다. 이듬해 그래미상 트로피까지 거머쥔 ‘The boy is mine’의 매력은 신세대의 사랑 방식을 유쾌하게 그려냈다는 것 외에 또 하나가 더 있었다. 사람들의 이목을 더욱 끌어당긴 것은 바로 데뷔 초 ‘10대 유망주’로 주목받으며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브랜디와 모니카가 듀엣으로 입을 맞추었다는 이슈였다. 결국 모니카에게 국제적 성공을 가져다준 ‘The boy is mine’은 곧바로 발매된 2집 < The Boy Is Mine >의 제목으로 쓰여졌고, 한달 먼저 출시된 브랜디의 2집 음반 < Never Say Never >에도 동시 수록됐다. 이렇듯 모니카 아놀드(Monica Arnold)라는 본명으로 1980년 10월 24일 남부 애틀랜타에서 울음보를 터트린 모니카는 ‘한 살 언니’ 브랜디와 여러 면에서 비교 대상이었다. 서로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고, 비슷한 또래로서 비슷한 노래(컨템퍼러리 알앤비)를 부른 까닭이다. 귀여운 외모의 소유자로 노래 솜씨 또한 발군이던 브랜디가 1994년 데뷔했고, 모니카는 이듬해 7월 처녀작 < Miss Thang >을 내놓았다. 즉 둘 다 15세의 싱싱한 풋내기 때 대중음악계에 겁도 없이 노크한 셈이다. 이후 1990년대 팝 시장의 10대 돌풍을 리드한 브랜디와 더불어 모니카의 고공비행은 빠르게 팝 네트워크를 강타했다. 음반 발매 이전부터 히트선상에 오른 첫 싱글 ‘Don’t take it personal’이 R&B 차트 정상을 밟았고, 후속곡 ‘Before you walk out of my life’ 역시 차트 1위에 오르며 팝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 무렵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유명한 구절로 틴에이저 파워를 보여준 알리야(브랜디와 동갑내기)와 함께 그 셋은 그 후로 우후죽순 생겨난 10대 여가수의 비전을 제시해줬다. 1995년 7월 흑인 음악 잡지 < 바이브 >가 모니카의 1집 < Miss Thang >을 평가한 칭찬을 들어보자. “블루지하게 메아리치는 조숙하고 소울풀한 목소리는 그 나이를 뛰어넘는 풍족한 경험과 권위의 상징이다” 모니카의 장점은 ‘어린애가 어른처럼’ 노래했다는 것이었다. 앞서 언급했던 곡을 접해보면 알 수 있듯, 도저히 15세 소녀의 목소리라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성숙한 보이스를 선사했던 것이 인기 비결이었다. 이후 블록버스터 영화 < 스페이스 잼 >(1996) 사운드트랙 삽입곡으로 인기가도를 내달린 알앤비 발라드 ‘For you I will’(팝 차트 4위)이 한번 더 그 사실을 입증했다. 모니카가 그런 매력적인 음색을 발산할 수 있었던 데는 네 살 때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하며 보컬을 가다듬은 오랜 연습이 결정적이었다. 12세가 되던 1992년, 고향 애틀랜타의 ‘10대 스타 발굴 대회’에 출전, 명 프로듀서 댈러스 오스틴(Dallas Austin)의 오감을 끌어 당겼고, 이윽고 < 아리스타 >와 계약을 성사시키며 가수 데뷔의 기회를 잡았다. ‘스타 제조기’로 불리는 클라이브 데이비스가 재능으로 똘똘 뭉친 모니카를 그냥 놓칠 리 없었다. 시작 초부터 브랜디를 의식한 탓에 클라이브는 모니카를 ‘제 2의 휘트니 휴스턴’으로 키우고 싶은 야망을 품었고, 그의 마케팅 전략은 즉시 성공을 가져다줬다. 이후 오랜 공백을 깨고 발표한 3집 앨범 < After The Storm >(2003)은 이전 2장의 음반이 < 아리스타 >에서 발매됐었기에 클라이브 데이비스의 새 왕국 < J > 레코드사에서 공개됐다. 올해로 어느새 데뷔 10주년. 그 조그마한 15세 소녀가 이제 스물 다섯의 숙녀가 됐다. 세월의 흐름은 정말 빠르다.
노래 : Des'ree (데즈리 ,Desiree Annette Weeks)
소울, R&B 보컬 소울, R&B 보컬
1990년대 블러(Blur)와 오아시스(Oasis)에 의해 주도됐던 브릿 팝 열풍은 ''복고''의 부활 선언이었다. 비틀즈(Beatles)를 전면에 내세우고, 잼(Jam), 스미스(Smiths), 스톤 로지스(Stone Roses) 등의 장점들을 적절히 취합하여 대중들에게 추억을 전달했다. 4인조 록 밴드 리프 역시 브릿 팝의 복고 붐에 편승해 커다란 인기몰이를 했던 그룹이다. 그들의 1997년 2집 앨범 < G... 1990년대 블러(Blur)와 오아시스(Oasis)에 의해 주도됐던 브릿 팝 열풍은 ''복고''의 부활 선언이었다. 비틀즈(Beatles)를 전면에 내세우고, 잼(Jam), 스미스(Smiths), 스톤 로지스(Stone Roses) 등의 장점들을 적절히 취합하여 대중들에게 추억을 전달했다. 4인조 록 밴드 리프 역시 브릿 팝의 복고 붐에 편승해 커다란 인기몰이를 했던 그룹이다. 그들의 1997년 2집 앨범 < Glow >는 영국 차트 정상에 등극했고 2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는 등 브릿 팝의 뿌리 찾기 덕택을 톡톡히 받았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은 비틀즈의 자양분을 받은 오아시스류의 브릿 팝이 아니라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를 떠올리게 하는 1960년대 후반의 리듬 앤 블루스 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여기에 소울과 펑크의 요소를 집어넣어 독창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리프는 1993년 글래스톤베리 근처의 조그만 도시 스트리트(Street)에서 기타리스트 켄윈 하우스(Kenwyn House), 베이시스트 잭 베선트(Jack Bessant), 보컬리스트 게리 스트링거(Gary Stringer), 드러머 도미닉 그린스미스(Dominic Greensmith)의 라인업으로 탄생됐다. 그룹은 처음 네이키드(Naked)라는 밴드 명으로 활동하다가 메이저 레코드사 < 소니 >의 산하 레이블인 < S2 >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리프로 명칭을 바꿨다. 그들은 1994년 ''영국 음악의 아버지'' 폴 웰러(Paul Weller)의 ''와일드 우드(Wild Wood)'' 투어에 오프닝 밴드로 선정되는 영광을 얻으며 데뷔작을 내놓기도 전에 대중들의 입 소문을 탔다. 폴 웰러가 리프의 음악을 듣고 반해서 직접 자신의 공연에 불렀다고 전해진다. 폴 웰러의 ''공인(公認)''으로부터 시작된 리프의 순항은 계속됐다. 1995년 3월에 발표한 그들의 첫 싱글 ''Good feeling''은 20위안에 진입했고, 소니사의 미니 디스크 플레이어의 광고 음악으로 쓰인 후속 싱글 ''Naked''는 11위에 오르며 인기를 얻었다. 이듬해 내놓은 데뷔 앨범 < Replenish >도 톱 텐을 차지했다. 이어 리프는 1997년 두 번째 작품으로 음악성과 상업성 모든 면에서 최고의 호평을 받으며 정점에 다다랐다. 믹 재거(Mick Jager)를 연상시키는 ''배드 보이'' 게리 스트링거의 보컬 카리스마, 소울과 블루스, 펑크, 헤비메탈 등을 자유 자재로 표현해내는 다른 멤버들의 연주력은 다른 브릿 팝 밴드들과의 차별화를 가져왔다. 수록곡 ''Place your hand'', ''Come back brighter''가 차트 6위와 8위를 기록하는 히트를 했다. 롤링 스톤즈의 노래를 듣는 듯한 ''Yer old'', 소울의 진한 맛을 내는 ''Robot riff''도 인상적인 트랙들이었다. 헤비메탈 전문지 < 케랑(Kerrang) >은 "플라스틱 팝과 비즈니스맨들이 판치는 음악계에서 리프는 꼭 필요한 존재다"라며 극찬했다. 이후 리프는 1999년 3집 음반 < Rides >, 1년 뒤 < Getaway >를 발표하며 꾸준한 음악 활동을 해나가도 있다. 하지만 ''브릿 팝의 죽었다''라는 데이먼 알반(Damon Alban)의 선언처럼 리프도 현재 기력이 많이 쇠퇴해졌다.
1996년 브릿팝(Brit Pop)의 홍수 속에서 등장한 밴드. 영화감독인 아버지 로이 볼팅(Roy Boulting)과 배우인 어머니 해일리 밀스(Hayley Mills)의 넘치는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크리스피언 밀스가 1988년 영국 서리(Surrey)의 리치몬드 컬리지에서 알론자 베번을 만나며 구상한 그룹이다. 오브젝트 오브 디자이어(Object of Desire)로 시작된 밴드의 역사는 이후 두 개의 밴... 1996년 브릿팝(Brit Pop)의 홍수 속에서 등장한 밴드. 영화감독인 아버지 로이 볼팅(Roy Boulting)과 배우인 어머니 해일리 밀스(Hayley Mills)의 넘치는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크리스피언 밀스가 1988년 영국 서리(Surrey)의 리치몬드 컬리지에서 알론자 베번을 만나며 구상한 그룹이다. 오브젝트 오브 디자이어(Object of Desire)로 시작된 밴드의 역사는 이후 두 개의 밴드를 더 거치며 와해되기에 이른다. 크리스피언 밀스는 이런 혼란 속에서 인도로 무전여행을 떠나게되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1993년에 케이스(The Kays)를 결성한다. 이들은 9세기경 막강한 권력으로 인도를 지배했던 군주 쿨라 세카라(Kula Sekhara)의 이름에서 따온 쿨라 셰이커로 밴드 명을 고치고 4명의 라인업으로 출발했다. 맨체스터의 시티뮤직 비즈니스 페스티벌(The City Music Business Festival)에서 우승하며 콜럼비아와 계약했고, 마침내 대망의 데뷔작 < K >를 발표한다. 그레이트풀 데드(Grateful Dead)의 제리 가르시아(Jerry Garcia)에게 바치는 곡인 ’Grateful when you’re dead/Jerry was there’와 ‘Hey Dude’는 넘실대는 건반과 몽롱하고 환각적인 사운드로 1960년대의 사이키델릭(Psychedelic)의 색채를 그대로 연출해내며 듣는 이로 하여금 무아지경의 최면상태에 빠지게 한다. 산스크리트어로 노래하고있는 ‘Govinda’와 “진실”이라는 의미를 담고있는 ’Tattva’는 < K >가 말하고자 하는 음악적인 중심이 인도의 신비주의로 향해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동양적인 감성은 블러(Blur)와 오아시스(Oasis) 이후의 고만고만한 브릿팝 밴드들과 쿨라 셰이커를 구분 짓는 토대가 된다. 1997년의 브릿 어워즈(Brit Awards)는 최우수 신인상(Best Newcomers)을 쿨라 셰이커에게 안겨주었고 < I know what you did last Summer -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일을 알고 있다 > 사운드 트랙에도 ‘Hush’로 참여하였다. 이 곡은 조 사우스(Joe South)의 원곡을 딥 퍼플(Deep Purple)이 리메이크하였고 다시 쿨라 셰이커가 불러서 90년대 신세대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크리스피언 밀스는 한 인터뷰에서 ‘갈고리 십자문양’에 대한 발언으로 대중의 외면을 받게되는데 인도에서는 수 천년동안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진 십자문양이 나치시대의 상징물이라는 점을 안타까워한데서 오해가 발생한 것이다. 결국 크리스피언 밀스는 신(新)나치주의자로 몰리며 다시 인도 행을 감행해야만했다.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와 엘리스 쿠퍼(Alice Cooper), 키스(Kiss)의 프로듀서였던 밥 에즈린(Bob Ezrin)이 지휘한 쿨라 셰이커의 두 번째 앨범은 3년간의 긴 공백을 깨고 1999년에야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 Peasants, Pigs & Astronauts >는 더욱더 인도사상에 심취한 곡들로 전작만큼 큰 반향을 얻지는 못했지만 ‘Mystical machine gun’, ’Sound of drums’, ’Shower your love’등이 매니아들로부터 애청되었다. 20세기가 끝날 무렵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밴드가 되 있을 거라고 했던 쿨라 셰이커는 1999년 해체되었지만 첫 번째 작품인 < K >는 오아시스의 < Definitely Maybe >이후 영국 록 역사상 가장 빨리 팔린 데뷔작으로 기록되어있다.
노래 : Crazy Town (크레이지 타운)
이제 더 이상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과 콘(Korn)은 하드코어의 중심이 아니다. 그들은 하드코어의 서막을 연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올드 하드코어 스쿨’로 진입했다. 이것은 두 그룹 이후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의 많은 하드코어 밴드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반증이다. 때문에 그만큼 사운드와 스타일, 형식면에서 여러 갈래로 가지를 치며 하드코어는 분화를 거듭했다. 무... 이제 더 이상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과 콘(Korn)은 하드코어의 중심이 아니다. 그들은 하드코어의 서막을 연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올드 하드코어 스쿨’로 진입했다. 이것은 두 그룹 이후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의 많은 하드코어 밴드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반증이다. 때문에 그만큼 사운드와 스타일, 형식면에서 여러 갈래로 가지를 치며 하드코어는 분화를 거듭했다. 무늬만 다 같은 하드코어일 뿐이지 그 속내는 천양지차였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대세를 따르고 있는 것도 있다. 바로 사운드의 강성화(强性化)이다. 하드코어의 쌍두마차는 이제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요즘 등장하는 밴드들은 기본적으로 스피커의 볼륨을 높여 강력한 사운드를 분출시킨다. ‘누가, 누가 더 세나’가 지금 하드코어 밴드들의 주요 관심사이다. 최근 싱글 ‘Butterfly''로 차트와 라디오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LA출신의 신예 하드코어 그룹 크레이지 타운도 음악의 주된 요소는 힙 합이지만, 두 대의 기타에서 뿜어져 나오는 헤비한 기타 리프로 하드코어의 현 추세를 잘 반영하고 있는 팀이다(‘Butterfly''만 예외이다). 크레이지 타운은 일곱 명으로 이루어진 대가족이다(역시 사운드의 확장과 함께 기본적인 라인업도 증가하는 추세다). 그룹은 1990년대 초반 힙 합에 중독 되어 있던 동갑내기 소년 래퍼 시프티 셸쇽(Shifty Shellshok)과 에픽 마주르(Epic Mazur)가 의기투합하면서 결성됐다. 얼마 후 기타에 러스트 에피크(Rust Epique)와 앤소니 밸리(Anthony Valli), 베이스를 치는 페이도딜레이(Faydoedeelay), 드럼을 연주하는 제임스 브래들리 주니어(James Bradley Jr.), 그리고 마지막으로 디제이 AM(DJ AM, 디제이)이 가세하면서 완벽한 짜임새를 갖췄다. 사실 최근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모던 록 차트 1위라는 만만찮은 위세를 떨친 ‘Butterfly''가 수록된 크레이지 타운의 데뷔작 < The Gift Of Game >은 이미 1999년에 발표됐다. 그때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지난해 겨울부터 ‘Butterfly''가 라디오를 통해 심심찮게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주파수를 완전 정복했다. 앨범도 톱 텐에 진입하며 플래티넘을 획득했다. 음반이 사장되지 않고 뒤늦게라도 빛을 보게 된 데는 공연을 통한 멤버들의 홍보활동이 주효했다. 앨범 발표 이후 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강행군을 거듭하며 자신들의 음악 알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런 덕분에 LA 지역방송국을 중심으로 빈번한 리퀘스트를 받았고, 나중에는 미 전역으로 확산됐다. 과거 콘의 행보와 흡사하다. 그룹의 데뷔 앨범은 맹렬한 공격을 펼쳐대는 힙 합 비트,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빠른 래핑, 역동적이고 날카로운 기타의 삼박자를 모두 갖추고 있다. ‘Toxic'', ‘Think fast'', ‘Hollywood babylon'' 등 대부분의 트랙들에서 잘 나타나있다. 세련된 힙 합 넘버 ‘Butterfly''만이 유독 부드럽고 달콤하다. < 스핀 >은 이 곡을 ‘L. L. 쿨 제이(L. L. Cool J)의 ‘I need love''를 잇는 힙 합 러브 송’이라고 했다. 그들이 앨범 전체에서 록 기타를 취한 것은 힙 합을 돋보이기 위한 일종의 수단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힙 합 밴드임을 강조 또 강조한다. “시프티와 에픽은 항상 힙 합 키드들이었다. 그들은 록 가이들이 아니다. 크레이지 타운은 예나 지금이나, 또 앞으로도 힙 합 그룹이다.”라는 기타리스트 러스트 에피크(Rust Epique)의 코멘트가 입증해주고 있다. 크레이지 타운은 현재 거대한 인기의 파고를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또 다시 미국 전역의 클럽과 길거리로 나섰다.
노래 : Wyclef Jean (와이클리프 진)
푸지스(Fugees)하면 먼저 보컬리스트 로린 힐을 떠올리게 되지만 음악의 실세는 엄연히 와이클리프 진(Wyclef Jean)이다. 산타나의 두 번째 히트곡 ‘Maria Maria’를 불러 유명해진 바로 그 인물이다. 이미 1997년 첫 솔로 앨범을 통해 푸지스의 성과에 육박하는 발군의 음악성을 펼쳐 보였던 그가 방금 2집 ‘The Ecleftic-2 Sides Ⅱ A Book’을 발표했다. 푸지스 때의 ‘Kil... 푸지스(Fugees)하면 먼저 보컬리스트 로린 힐을 떠올리게 되지만 음악의 실세는 엄연히 와이클리프 진(Wyclef Jean)이다. 산타나의 두 번째 히트곡 ‘Maria Maria’를 불러 유명해진 바로 그 인물이다. 이미 1997년 첫 솔로 앨범을 통해 푸지스의 성과에 육박하는 발군의 음악성을 펼쳐 보였던 그가 방금 2집 ‘The Ecleftic-2 Sides Ⅱ A Book’을 발표했다. 푸지스 때의 ‘Killing me softly’와 ‘No woman no cry’ 그리고 솔로 때의 ‘Guantanamera’가 증명하듯 ‘리메이크 명수’인 그는 이번에도 핑크 플로이드의 명곡 ‘Wish you were here’를 재해석했다. 더욱이 케니 로저스(Kenny Rogers)의 1970년대 컨트리 팝 히트곡 ‘The gambler’를 랩과 결합시켜 놀라움을 주는 곡 ‘Kenny Rogers-Pharoahe monch dub plate’는 ‘컨트리힙합’의 새 장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컨트리 송을 리메이크한 것에 대해 지극히 자연스런 결과라고 설명한다. "내가 어렸을 때 그랜드마스터 플래시(Grandmaster Flash) 슈가힐 갱(Sugarhill Gang)과 같은 힙합도 들었지만 그 못지 않게 크리스탈 게일(Crystal Gayle)이나 찰리 다니엘스 밴드(Charlie Daniels Band) 등의 컨트리도 들었다. 그래서 케니 로저스가 내 음반에 참여해준 것은 영광이다. 내가 의사를 타진했을 때 그가 굵은 목소리로 ‘케니 로저스입니다’라고 메시지를 남겼을 때 난 미치는 줄 알았다." 와이클리프 진은 "케니 로저스가 내게 전화해준 것은 내 어린 시절에 마이클 잭슨이 내게 전화해준 것과 같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갖가지 퓨전과 다양한 실험이 다시 한번 농축된 앨범이다. 푸지스의 재결합설이 나도는 가운데 나왔지만 첫 곡 ‘Colombia records’로 볼 때는 그가 로린 힐, 프라스와 다시 뭉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룹의 명성보다는 개인의 자유독립을 선택한 셈이다. 신보는 빌보드 9위에 오르며 이미 골드레코드를 기록했다.
노래 : Gloria Estefan (글로리아 에스테판)
라틴음악의 본고장 쿠바 출신의 글로리아 에스테판에겐 두 가지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우선 리키 마틴의 라틴 팝 돌풍 이전에 이미 라틴의 혼을 전세계에 전파한 ‘라틴 디바’라는 것이다. 그녀는 1980년대 이미 ‘Conga’, ‘1-2-3’ 같은 라틴 팝 넘버를 히트시켰으며 일련의 노력으로 독보적인 라틴 팝 여왕의 자리를 지금껏 유지해오고 있다. ‘의지의 표상’이라는 존경할만한 또 다른 수식어도 있다. 1990년 ... 라틴음악의 본고장 쿠바 출신의 글로리아 에스테판에겐 두 가지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우선 리키 마틴의 라틴 팝 돌풍 이전에 이미 라틴의 혼을 전세계에 전파한 ‘라틴 디바’라는 것이다. 그녀는 1980년대 이미 ‘Conga’, ‘1-2-3’ 같은 라틴 팝 넘버를 히트시켰으며 일련의 노력으로 독보적인 라틴 팝 여왕의 자리를 지금껏 유지해오고 있다. ‘의지의 표상’이라는 존경할만한 또 다른 수식어도 있다. 1990년 교통사고를 당해 정상적인 생활마저 불투명했지만 그녀는 이에 굴하지 않고 훌륭히 재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20년 가까이 자국인 쿠바의 리듬을 충실히 알린 그녀에겐 라틴 디바라는 표현이 가장 적당할 것이다. 글로리아 마리아 파하르도(Gloria Maria Fajardo)가 본명인 에스테판은 1957년 쿠바 하바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대통령가족을 경호하는 일을 담당하며 비교적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갔지만 1959년 가족은 카스트로의 공산혁명을 피해 미국 마이애미로 이주해야만 했다. 난민의 처지로 미국에 정착한 그녀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일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병든 아버지를 간호하며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고 때문에 야간학교를 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힘든 상황에서 글로리아를 지탱해 줬던 것은 물론 기타와 음악이었다. 1975년 마이애미 대학에 진학한 그녀는 학업과 ‘웨딩싱어’라는 자유직업을 병행했다. 거기서 밴드 ‘마이애미 라틴 보이스’를 이끌던 에밀리오 에스테판을 만나 함께 새로운 밴드를 결성, 음악적 욕구를 실현할 토대를 구축했다. 그 그룹이 유명한 마이애미 사운드 머신이었다. 그녀와 음악동료인 에밀리오는 1978년 결혼했다. 마이애미 사운드 머신은 1984년 에픽 레코드사에서 정식 데뷔작인 < Eyes of innocence >를 발표했다. ‘Dr. beat’와 같은 흥겨운 곡이 호응을 얻기도 했지만 그들이 슈퍼스타로 웅비하게 된 것은 이듬해 앨범 < Primitive Love >를 내놓고 나서였다. ‘Conga’, ‘Bad boy’와 같은 싱글이 잇따라 스매시 히트했고, 그와 함께 라틴의 열정적인 리듬도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글로리아 에스테판의 길은 하지만 언제나 순항과 고난의 반복이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딛고 스타덤을 공고히 하는가 했더니 다시 한번 엄청난 시련이 닥쳤다. 1990년 3월 투어 차 뉴욕으로 향하던 버스와 뒤따라오던 트레일러가 추돌하는 사고가 일어났던 것이다. 이 사고로 글로리아는 등뼈가 부러졌으며 400 바늘이나 꿰매야 하는 중상을 입었다. 하지만 수술은 성공적으로 이뤄졌고, 그녀는 1년만에 치명적 상처를 딛고 일어서 놀라운 투혼으로 < In To The Light >를 발표했다. 이 앨범에는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극복하고자 하는 불굴의 의지가 투영되었다. 팬들은 진심 어린 격려와 갈채로 답했으며, 싱글 ‘Coming out of dark’는 차트 1위에 오르는 일대 기염을 토했다. 그것은 기적적인 재기였다. 최근 여러 뮤지션들에 의해 라틴음악이 유행하는 상황이지만 그녀야말로 순수한 라틴음악의 잠재력을 꿰뚫어 본 어쩌면 사상 최초의 가수였다. 1990년에 이미 스페인어로 부른 싱글 ‘Oye mi canto’을 발표했으며 3년 뒤에는 완전한 라틴앨범 < Mi Tierra >를 내놓았다. 1995년에는 다시 스페인어 음반 < Abriendo Puertas >를 출시해 라틴 부흥에 앞장섰다. 두 앨범 모두 대중적으로 큰사랑을 받았고 이 무렵 글로리아는 공식적으로 가장 많은 앨범을 판 라틴계열 가수로 등록되었다. 1998년 앨범 < Gloria! >을 발표한 그녀는 같은 해 뉴욕에서 개최된 ‘디바 라이브 공연’에 참여했다. 아레사 프랭클린, 셀린 디온, 머라이어 캐리, 캐롤 킹, 샤니아 트웨인과 함께 노래한 이 공연을 통해 글로리아는 라틴 디바로서 재확인되었다. 이듬해 그녀는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 Music Of The Heart >에 배우로서 첫선을 보였으며, 이 영화의 타이틀곡을 보이밴드 엔싱크와 함께 불러 오스카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2000년에는 세 번째 라틴앨범 < Alma Caribena >를 발표하며 남다른 라틴 정체성을 이어가고 있다.
열정이 넘치는 플라멩코(Flamenco) 기타 연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집시 킹스는 팝(pop)의 옷을 입은 대중적인 플라멩코 연주를 창조한 월드뮤직 슈퍼스타이다. 7인조 대식구로서 유랑과 가무(歌舞)로 삶을 꾸려 가는 집시들의 애환과 정서를 녹여낸 연주와 노래를 들려준다. 1989년 굴지의 메이저 레이블인 소니 뮤직에서 데뷔 앨범을 발표, 빌보드 월드뮤직 차트 1위와 200주간 차트에 머무르는 열풍을 일으키며 ... 열정이 넘치는 플라멩코(Flamenco) 기타 연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집시 킹스는 팝(pop)의 옷을 입은 대중적인 플라멩코 연주를 창조한 월드뮤직 슈퍼스타이다. 7인조 대식구로서 유랑과 가무(歌舞)로 삶을 꾸려 가는 집시들의 애환과 정서를 녹여낸 연주와 노래를 들려준다. 1989년 굴지의 메이저 레이블인 소니 뮤직에서 데뷔 앨범을 발표, 빌보드 월드뮤직 차트 1위와 200주간 차트에 머무르는 열풍을 일으키며 전 세계에 ‘월드뮤직 돌풍’을 몰고 왔다. 국내 모 제약회사의 파스제품 광고에서 울려 퍼졌던 흥겨운 연주 ‘Volare’(1989)를 통해 집시 킹스는 우리나라 대중들에게도 어느덧 익숙한 음악인이 되었다. 그룹의 시작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 프랑스에 아르레(Arles)라는 마을에 위치한 집시 공동부락 출신인 플라멩코 기타리스트 호세 레이에스의 아들들인 니콜라스 레이에스(Nicholas Reyes)와 안드레 레이에스(Andre Reyes) 형제가 주축이 되어 자신의 사촌들을 모아 1979년 집시 킹즈의 전신인 로스 레이에스(Los Reyes)를 결성한다. 이들은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거리, 축제, 결혼식장에서 연주 활동을 해 나간다. 일정한 지역에 머물지 않고 평생 떠돌아다니는 집시들의 관습을 따라 그들 역시 특정 장소에 머물지 않고 이곳 저곳을 전전하며 연주한 것이다. 집시 킹스라는 이름도 말할 것도 없이 집시라는 그들의 출신 배경에서 얻어진 것이다. 유럽 지역서 2장의 앨범을 발표했지만 프로듀서인 클로드 마틴즈(Claude Martinze)을 1986년에 만날 때까지는 프랑스와 유럽 몇몇 지역에서만 알려졌을 뿐이었다. 클로드 마틴과의 만남은 집시 킹즈의 음악인 플라멩코가 단지 그들만이 즐기던 폐쇄된 스타일을 탈피해 팝(pop) 음악의 감성을 갖추며 친화력을 획득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때부터 플라멩코 기타에 신시사이저, 일렉트릭 기타 등 서구 팝의 악기들을 도입했고, 캐스터네츠로 이용해 잘게 쪼개는 특유의 ‘마캄’ 리듬에 아프리카, 라틴 리듬 등을 차용하기도 한다. 1987년, 대망의 첫 싱글 ‘Djobi Djoba(조비, 조바)’와 ‘Bamboleo(밤볼레오)’를 프랑스 소재 인디 레이블을 통해 발표한다. 불어나 영어가 아닌 집시들의 방언인 지타네(Gitane)로 녹음된 첫 싱글은 반응이 없을 거라 우려(?)한 음악관계자들의 예상을 기우로 넘기며 프랑스 전 지역서 스매시 히트를 기록한다. 이를 기점으로 콜롬비아 레코드사 프랑스 지사와 계약을 하게 된 집시 킹스는 1988년 그들의 데뷔작 < Gipsy Kings >를 발표한다. 이 앨범은 프랑스는 물론 영국을 비롯한 전 유럽 지역서 앨범 차트 10위권 안에 오르는 선풍을 야기한다. 열풍은 이듬해 미국에까지 뻗쳐 콜롬비아(소니) 레코드를 통해 데뷔작은 미국에서도 출시된다. 신대륙에서 집시 킹스에 대한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로써 그룹은 이른바 월드뮤직을 미국 빌보드 차트에 이식하는 기념비적 업적을 이룩하게 된다. 앨범은 40주 동안 빌보드 앨범차트에 머물며 미국에서만 300만장 이상 팔려나갔다.(유럽 지역까지 합하면 1300만장) 미국을 석권하면서 그룹은 1989년 부시 대통령 취임식에도 초대를 받아 연주하는 영광을 얻는다. 과거 1970년대 엘튼 존(Elton John)이나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 레게를, 1980년대엔 폴 사이먼(Paul Simon)과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이 아프리카 음악을 선보이며 빌보드 차트에 진입한 경우는 있었지만 집시 킹스처럼 본토 출신 음악인들이 자신들의 방언으로 부른 ‘순수 월드뮤직’이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진입하기는 처음이었다. 첫 앨범의 성공에 힘입어 연이어 발표한 앨범마다 골드를 기록했다. < Mosaique >(1989), < Allegria >(1989) < Este Mundo >(1991), < Gipsy Kings Live! >(1992) < Love & Liberte >(1994) < Tierra Gitana >(1996)를 통해 그룹은 월드뮤직의 선두에 선다. 특히 1998년에 발표된 베스트 < Gipsy Kings Greatest Hits >는 빌보드 월드뮤직 앨범 차트에 1년 동안 머무르는 저력을 보였다. 이들의 플라멩코 음악은 나아가 영화에도 진출, 1993년 영화 < 피어리스 >(Fearless)의 스코어 멤버로도 참여했고, 이어 1996년 미국 공영방송 PBS에서도 그들을 초대하여 성공담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방영한다.
노래 : Los Del Rio (로스 델 리오)
멤버 : 안토니오 로미오 몽주(Antonio Romeo Monge), 라파엘 루이즈(Rafael Ruiz) 멤버 : 안토니오 로미오 몽주(Antonio Romeo Monge), 라파엘 루이즈(Rafael Ruiz)
노래 : Real McCoy (리얼 맥코이)
노래 : New Kids On The Block (뉴 키즈 온 더 블록)
90년대 초반 구미 각국에 ‘뉴 키즈’ 태풍이 불었다. 미국 보스톤 지역에서 발생한 그 태풍은 사정권에서 벗어난 지역으로 보이던 우리나라도 사정없이 강타했다. 그러나 태풍 뉴 키즈호는 우리에게 엄청난 피해만 남긴 채 스쳐 갔다. 92년 3월 서울 잠실벌에 불어온 뉴 키즈 태풍의 위력은 막강했다. 그것이 할퀴고 간 흔적에 한국 사회 전체가 들썩거렸다. 피해 상황은 사망 1명, 부상 40여 명, 외형적으로는 그리 큰... 90년대 초반 구미 각국에 ‘뉴 키즈’ 태풍이 불었다. 미국 보스톤 지역에서 발생한 그 태풍은 사정권에서 벗어난 지역으로 보이던 우리나라도 사정없이 강타했다. 그러나 태풍 뉴 키즈호는 우리에게 엄청난 피해만 남긴 채 스쳐 갔다. 92년 3월 서울 잠실벌에 불어온 뉴 키즈 태풍의 위력은 막강했다. 그것이 할퀴고 간 흔적에 한국 사회 전체가 들썩거렸다. 피해 상황은 사망 1명, 부상 40여 명, 외형적으로는 그리 큰 피해는 아니었으나 급기야 청소년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데 언론이 흥분했고 기성 세대들이 비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에게 잊을래야 잊을 수 없게 된 외국 팝 그룹 ‘뉴 키즈 온 더 블록’. ‘소녀를 몰고 다니는’ 그 그룹은 한국의 소녀들도 자극해 사망자까지 발생한 비극적 사태를 몰고왔다. 사건 직후 공연을 주최한 레코드사 사장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되었으며 문화부의 해외 팝스타 공연 불허조치로 예정되어 있던 공연이 무산 또는 연기되었다. 이 공연을 계기롤 우리 공연 문화가 수술대 위에 올랐고, 더 나아가 청소년 문화에 대한 전면적 검토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만큼 뉴 키즈 사태의 후유증은 컸고, 많은 시간과 정력을 피해복구 작업에 쏟게 했다. 뉴 키즈 사태는 한마디로 틴에이저의 ‘히스테리’가 빚어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환호 괴성 아우성 열광 기절 졸도 등의 양상으로 나타나는 히스테리는 팝스타 공연만이 갖는 고유 현상이다. 십대들은 영화배우와 TV 탤런트보다는 가수에게 열광한다. 음반과 비디오로 접하고, 다른 연예계 스타들과는 달리 공연 현장에서 직접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대를 통해 팬들과의 접촉이 빈번하게 이뤄지는 관계로 공연장 경비 등 ‘히스테리를 객석에 한정시키는’ 대책이 강구되지 않을 경우 사고는 필연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뉴 키즈 사태는 히스테리를 보인 청소년들을 매도할 것이 아니라 공연 기획 및 주최자의 준비 소홀에 그 책임을 지워야 한다. 팝스타와 관련한 틴에이저의 히스테리는 또 전통적이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뉴 키즈가 팝 히스테리의 최초 사례는 아니다. 1971년 클리프 리차드 내한 공연 때와 80년 광주항쟁 직후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개최된 레이프 가렛 공연 때는 흥분한 일부 여성 관중이 속옷을 벗어 던진 해프닝까지 발발하였다. 그때의 한국 사회는 지금처럼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들)의 시대가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같은 해프닝은 충격적 히스테리였고, 따라서 뉴 키즈 공연 때 관객들이 보여준 히스테리는 오히려 약과일지도 모른다. 영미 팝계에는 고금을 통해 십대의 히스테리를 유발시킨 가수 또는 그룹이 끊임없이 출현했다.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스. 롤링 스톤즈. 오스몬즈, 몽키스, 잭슨5, 베이 시티 롤러즈, 마이클 잭슨 등등... 이들 중 강도에 있어서 가장 압권은 역시 비틀스라 할 수 있고, 그 가운데 더러는 제도권 팝계가 ‘마케팅’의 차원에서 틴에이저의 히스테리를 겨냥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작품’도 있다. 몽키스와 잭슨5(후자의 경우는 시각에 따라 ‘자생적’이라 볼 수도 있다)가 여기 해당한다. 뉴 키즈는 바로 이 방식의 최신형이다. 비틀스 현상의 충격이 너무 컸기에 십대 소녀들로부터 유별난 인기를 끄는 그룹이 등장할 경우 흔히 ‘제2의 비틀스’라고 붙여주는 습관이 있다. 몽키스가 그랬고, 베이 시티 롤러즈가 그랬다. 뉴 키즈가 데뷔할 당시 미국의 일부 다운타운 DJ들은 그들을 제2의 비틀스라 일컬었다. 그러나 제도권의 시나리오에 의해서 탄생된 상품이라는 점에서 뉴 키즈는 제2의 비틀스라기보다는 ‘제2의 몽키스’라고 해야 옳다. 그래서 60년대의 몽키스가 제도권의 도구라는 지적을 받았던 것처럼 뉴 키즈 역시 음악 관계자들로부터 비슷한 문책을 받았다. < 타임 >지는 90년 그들을 “모리스 스타(뉴 키즈의 프로듀서)라는 제페토의 조종에 따라 움직이는 피노키오”로 비유했다. 모리스 스타는 80년대 중반 ‘뉴 에디션’이라는 흑인 틴에이저 그룹(바비 브라운이 이 그룹 출신)을 키워낸 역량을 인정받은 바 있는 인물이다. 그가 뉴 키즈 사단을 구성하려 했을 때의 출발점은 ‘경제 상황에 대한 고려’였다. 80년대 중반 당시 미국의 경기는 침체에 빠져있었고 따라서 호주머니의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시점. 모리스는 시장 조사를 통하여 그래도 돈 쓸 여유가 있는 백인 중산층의 자녀를 겨냥한 틴에이저 그룹이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룹의 구성원은 그들을 충족시킬 백인 소년들이라야 했다. 그는 민첩하게 거리로 나가 백인 중산층이 압도적으로 운집해 있는 보스톤 시내를 샅샅이 뒤져 ‘쓸 만한 애’들을 픽업해냈다. 도니 왈버그, 조나단 나잇, 조단 나잇, 조 매킨타이어, 그리고 대니 우드 등 5인조 ‘동네의 새 아이들’이 이렇게 하여 짜여졌다. 뉴 키즈는 ‘가장 완벽한 중부 미국적 그룹’이 되었다. 중부 미국(Middle America)은 지역적으로 중부일뿐 아니라 중산층이 많이 사는 지역을 상징하기도 한다. 뉴 키즈는 백인 중산층 자녀를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그룹답게 외모나 의상 등 외형 총체에서 ‘고생 없이 자라난 신세대 애들’의 이미지가 진하게 풍겨나왔다. 당연히 그들 공연장에는 대부분 부모가 중산층인 백인 십대 소녀들이 몰려들었다. 그래서 이 그룹은 옛날의 그룹들과는 여러 측면에서 차이를 드러냈다. 그 중 하나가 ‘인기와 돈의 관계’를 보는 시각이었다. 이들의 선배 그룹들은 통상적으로 공연을 개최하면서 기업으로부터의 후원을 꺼리는 경향을 보여왔다. 관객들에게 행여 돈벌이에 집착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뉴 키즈는 스폰서가 붙는 것 자체를 ‘성공의 징표’로 보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도니 왈버그는 이렇게 털어놓는다. “팬들이 우릴 줄줄 쫓아오고 스폰서가 우리에게 계약서를 내미는 것은 내 입장에서 짜릿하기만 하다. 난 그들을 쳐다보며 ‘맥도날드, 여기서 나가주세요’라고 하지 않겠다. 난 ‘저와 함께 일해 보실래요?’라고 말하겠다.” 맥도날드 햄버거 회사는 90년 뉴 키즈 미국 순회 공연 때 스폰서로 나섰다. 맥도날드측은 그들의 후원자가 되면서 “뉴 키즈는 맥도날드사가 갖고 있는 것과 똑같은 가족의 가치관을 갖고 있는 매우 건전하고 가장 미국적인 그룹”이라며 즐거워했다. 뉴 키즈는 실로 90년대의 팝계가 ‘성공과 판매술’에 포인트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반영하는 표본적 존재였다. 멤버 전원의 기계적 율동, 현란한 쇼무대, 십대 감각을 예리하게 찌르는 음악 모두가 마케팅과 판매신장의 구도 아래서 기초되었다. 레코드가 팔리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고 싱글이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오르지 않으면 실패나 다름없다. 공연 티켓을 구입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십대 고객들이 공연장을 찾지 않으면, 또 아우성을 치지 않으면 게임은 끝이다. 이유는 단 하나, 돈에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돈을 긁어모으려면, ‘소구력이 있는 상품’을 생산해야 한다. 그것이 모리스 스타의 이념이었다. 그는 뉴 키즈를 구성하고 즉각 스파르타식 훈련을 통해 율동을 주입했다. 춤의 스타일은 빈틈없이 맞아 돌아가는 마이클 잭슨식의 리듬과 랩 뮤직 가수들이 구사하는 탄력적인 스텝을 혼합시켰다. ‘외형 가꾸기’와 더불어 음악의 색깔에도 신경을 기울였다. 모리스는 ‘전통적으로 대중에게 잘 먹히는’ 흑인 음악을 최적의 장르라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멋진 춤, 검은 음악, 흰 피부’의 뉴 키즈 온 더 블록이 탄생했다. 모리스의 기획과정 및 생산과정은 매우 ‘유서깊은 방식’이었다. 인재의 발굴, 상품화, 소구력 제고, 품질관리, 마케팅 전략 도입 등 제반 방법은 이미 몽키즈나 잭슨5 시절에 적용된 바 있었던 것들이었다. 다만 소구 대상(백인 중산층의 십대 자녀)을 확실히 정하고 들어갔다는 점이 달랐다. 그러나 모리스 기획의 효력은 즉시 나타나지 않았다. 출범한 뒤 86년 첫 음반을 발매했으나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문제는 소구 대상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때는 아직 뉴 키즈의 소구 대상이 팝계의 주체세력으로 군림한 시점이 아니었다. 그룹 유투나 휘트니 휴스턴 등의 록과 스탠다드팝을 소화할 수 있는 ‘20대 이상의 소비자들’이 팝시장의 주요 고객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뉴 키즈가 성공하려면 십대 소녀가 음반의 주구매층, 공연의 주관객층으로 떠올라야 했다. 그들의 매니저인 딕 스코트는 “팝 사람들이 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성공은 찾아왔다”고 지적했다. 팝 사람들(Pop People)이야말로 뉴 키즈가 고대하고 있던 소구대상이었는데, 바로 ‘백인 틴에이저 걸’을 지칭했다. 그 시점이 이듬해 두 번째 음반 < 굳세게(Hangin’ Tough) >가 발표된 88년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그들의 인기는 폭발했다. 90년까지 뉴 키즈의 앨범은 미국에서만 1천 5백만 장이 팔렸다. 그들의 뮤직 비디오는 3백 30만 개 이상의 판매고를 올려 그 부문 최고였던 마이클 잭슨의 기록을 앞질렀다. 89년과 90년 2년에 걸쳐 벌어들인 수입은 7천 8백만 달러나 되어 해마다 연예인 수입을 공개하는 < 포브스 >지의 리스트에 처음 오르면서 당당 5위에 랭크되었다(당시 1위는 코미디언 빌 코스비, 2위는 마이클 잭슨, 3위는 롤링 스톤즈 순이었고, 마돈나는 6천 2백만 달러로 8위를 차지했다). < 뉴욕 타임즈 >는 90년 뉴 키즈의 대성공을 더 많은 관객으로 향하려는 ‘흑인음악의 마케팅’과 ‘적절한 그룹을 시장의 적재적소에 심어놓은 프로듀서의 뛰어난 안목’ 등 두 가지 전략의 우연한 결합이 일구어낸 성과로 분석했다. 어쨌든 뉴 키즈는 잘 만들어진 상품이었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조립한 상품은 어딘가 허점이 있기 마련, 춤을 강조하다 보니 노래가 빈약해지고 특히 공연 현장에서 춤과 노래의 병행은 벅차게 되어 있다. 이 문제점을 가끔 노래를 틀어놓고 입만 벙긋거리는 소위 ‘립 싱크’로 커버할 수 밖에 없는데, 뉴 키즈도 이러한 범행(?)을 수시로 저질러 마돈나, 폴라 압둘, 자넷 잭슨 등과 함께 ‘앵무새 가수 집단’으로 분류돼 비난받기도 했다. 잠실 공연에서도 이 점이 지적된 바 있었다. 립 싱크의 그룹, 돈과 성공을 위해 조직된 그룹 가장 양키적인 그룹, 그리고 또 하나 언급할 뉴 키즈의 중요한 성격이 있다. 뉴 키즈 진영에 뉴 키즈 빼고는 스탭 전원이 흑인이라는 점이다. 프로듀서 모리스 스타, 매니저 딕 스코트를 위시하여 로드매니저, 보디가드, 공연사회자, 백 밴드 모두가 흑인들이다. 뉴 키즈는 ‘흑인이 생산, 관리하는 백인 상품’의 첫 케이스이기도 하다. 미국의 한 평론가는 이를 흑백의 조화로운 결합이라고 했다. 흑백의 결합? 아니다. 그것은 생산자와 상품의 결합이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가수, 그러나 가장 천대받는 가수 이처럼 극도로 엇갈린 가수는 없다. 미국의 대중 주간지 < 피플 >은 92년 “그는 팝 음악의 창공에 독특한 위치를 점령하고 있다”며 “팬들로부터 그처럼 열광적인 환호를 받고 동시에 음악 비평가들로부터 그토록 신랄하게 비판받는 아티스트도 드물 것이다”고 기술했다. ‘이 시대의 스타’ 마이클 볼튼(Michael Bolton), 1990년 신년 벽두에 ‘그대없...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가수, 그러나 가장 천대받는 가수 이처럼 극도로 엇갈린 가수는 없다. 미국의 대중 주간지 < 피플 >은 92년 “그는 팝 음악의 창공에 독특한 위치를 점령하고 있다”며 “팬들로부터 그처럼 열광적인 환호를 받고 동시에 음악 비평가들로부터 그토록 신랄하게 비판받는 아티스트도 드물 것이다”고 기술했다. ‘이 시대의 스타’ 마이클 볼튼(Michael Bolton), 1990년 신년 벽두에 ‘그대없이 어떻게 살아가리?(How am I supposed to live without you?)’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라 1990년대 첫 슈퍼스타가 된,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메가톤급 히트 앨범 < 영혼의 공급자(Soul Provider) > 이후 발표하는 앨범마다 기록적인 판매로 대중적인 명성을 구가했지만 비평가들로부터는 철저히 외면 당했다. 평론가들은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그에게 호된 질책으로 일관했다. 그것은 거의 ‘두들겨 패는’ 수준이었다. 일례로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지의 유명 저널리스트 ‘로버트 힐번’은 그를 가리켜 창조성 없이 악보를 그대로 전달하는 단계에 그친다는 의미에서 ‘팝의 썰매’라고 규정짓고는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자신이 돌파 할 수 없는 노래에 결코 도전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틀 속에 안주하려 한다. 그와 음악과의 관계는 스티븐 시걸과 영화와의 관계나 같다” 말이 그렇지 이것은 모욕이나 매 한가지다. 사정이 이러하니 그가 평자들로부터 아티스트란 말을 들을 수가 없다. 볼튼이 소울의 고전을 비롯해 흘러간 명곡을 멋들어지게 재해석해 노래해도 그들은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이구동성으로 “원작의 기품을 버려 놓았다”고 질타한다. 그 가운데 가장 심한 것이 < 롤링 스톤 >지의 평가였다. 이 잡지는 1993년 43명의 비평가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 그를 ‘최악의 남자 가수’로 선정했다. 또한 빅 히트작 < 불후의 고전(Timeless, The Classics) >를 ‘최악의 앨범’으로 뽑아 미국에서만 5백만 장 이상이 팔려 나간 대중적 인기를 무색케 해 버렸다. 그가 이처럼 비평계의 푸대접을 받게 된 것은 물론 그의 보컬 스타일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핏줄을 솟게 하고 마치 토해 내는 듯한’ 창법을 구사한다. 4옥타브를 충분히 넘나드는 넓은 음역, 이것이 팬들에게는 환상이었지만 평론가들의 귀에는 높고 답답하게 들릴 뿐이었다. 그들은 그의 가창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금방 눈치챌 정도로 ‘작위적’이어서 곧 사람들을 질리게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그들은 예술적 고뇌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없는 그 작위가 결국은 상업성을 노린 것임을 경계한다. 로버트 힐번이 지적하는 ‘안주적 자세’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이를테면 대중적 성공에 떠밀려 아티스트적 실험 정신을 휴지화했다는 것인데, 실제로 볼튼은 < 영혼의 공급자 > 이후 앨범들인 < 시간, 사랑 그리고 부드러움(Time, Love And Tenderness) >과 < 불후의 고전 >에서 새로움을 선사하기보다는 전작의 성공패턴을 답습하는 경향을 드러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옛 곡의 리메이크가 성공하자, 줄줄이 리메이크 작품을 내놓았으며 더구나 보컬 스타일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면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변명의 여지없이 전작의 성공 재창출에 지나치게 집착했기 때문인 것이다. 다시 말해 팔리는 음반을 만들기 위해 모험을 가능한 배제한 채 빅히트된 음반(Soul provider)을 모델로 그 스타일을 철저히 쫓는다는 얘기다. 비평가들이 이처럼 유난히 그에게 비판의 화살을 겨냥하는 데는 그가 곡을 만들어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라는 점도 크게 작용한다. 평론가들은 노래만 하는 싱어일 경우 그가 대중적 호응만을 고려한다 할지라도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 대중의 기호에 따라 그들의 정서를 위무해 주는 팝 가수도 나름대로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곡을 만들 능력이 있는 사람, 즉 싱어송라이터의 경우는 자신의 음악 세계를 펼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그가 앨범 판매량을 늘리기에 얽매여 있을 때는 가차없이 장사꾼으로 매도해 버린다. 만약 볼튼이 단순한 싱어에 머물렀다면 아마도 그처럼 잔인한 혹평에 시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과연 이러한 비평가들의 철저한 외면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비평가들이 뭐라 떠들어도 압도적으로 자신의 노래를 사랑해 주는 대중이라는 ‘응원군’을 내세워 여유를 잃지 않았고 앨범의 높은 판매고를 ‘비평에 견디는’(Critic-proof) 방파제로 제시하곤 했다. 사실 그의 노래에 대해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진 음악 관계자들도 적지 않다. 우선 그가 1988년 ‘만의 부두에 앉아(Sitting on the dock of the bay)’를 리메이크했을 때 이 곡의 원작자인 오티스 레딩의 미망인 젤마 여사로부터 극찬을 받은 사실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녀는 볼튼에게 편지를 써서 또는 공개석상에서 그의 노래가 “지금까지 나온 남편 곡의 무수한 버전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며 “만약 지하에 있는 남편도 들었다면 흡족했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볼튼의 강력한 후원자인 어머니 헬렌 볼로틴(볼튼의 본명은 Bolotin) 여사는 “내 아들이 노래하는 것을 비명을 지르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그는 단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드러낼 뿐이다”라며 비평계의 시각을 몰지각으로 단정한다. 그와 곡을 함께 쓰는 오랜 친구 다이안 워렌(Diane Warren)은 한편으로 볼튼에 대한 평자들의 차가운 시선이 오히려 대중의 호응을 증폭시켰다는 흥미로운 견해를 내놓고 있다. 그의 주장은 “한 남자가 혹독하게 비판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한없이 부드럽게 노래할 때 여성들은 오히려 그를 사랑해 준다. 여성들은 거기서 녹아 버린다”는 것이다. 부연하면 평론가들의 무차별 공격이 도리어 여성 특유의 모성본능을 자극해 그를 감싸주게 됐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그의 음악팬들은 절대 다수가 여성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처럼 비평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가엾은(?) 남자가-더구나 수려한 외모를 갖춘 남자가!-애절하게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를 노래할 때 대부분이 여성들은 이성이 마비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마이클 볼튼과 비평과의 대치는 곧 ‘감성적인 여성 팬들’과 ‘날카로운 평론가들’간의 보이지 않는 대결(?)의 측면도 가세된 셈이다. 하지만 아티스트란 어떤 형태로든 비평가들의 눈초리를 암암리에 의식하게 된다. 그는 얼마나 심기가 불편했던지 1991년 그래미 최우수 남자 팝 가수상을 받던 날 밤 기자들에게 “무례한 사람들은 내 엉덩이에 키스하라”고 퍼붓기도 했다. 여기서 무례한 사람들이란 마구 펜을 휘갈기는 저널리스트나 비평가를 가리킴은 물론이다. 그런데 1993년 하반기에 그가 내놓은 앨범 < 한가지 >는 상당히 비평가들을 의식해 만들었다는 느낌을 주었다. 보컬의 톤도 많이 낮추고 자작곡의 비중을 높였으며 비판의 핵이었던 리메이크 남발도 자제, 옛곡은 빌 위더스의 ‘내게 기대어(Lean on me)’ 한 곡으로 대폭 줄여 버린 것이었다. 평론가들의 반응은 당연히 ‘이제까지 볼튼의 앨범 중 최고’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작품성을 인정받는 대가로 대중적인 음반 판매 실적은 과거에 비해 저조해 두 마리 토끼를 사냥하지는 못했다. 그의 상업성이 유달리 지적 받게 된 데는 또한 그의 ‘눈물겨운 과거’도 한 요인이 되었다. 7살 때 섹스폰을 잡고 11살에 기타를 치는 등 음악 생활을 일찍 시작했지만 그의 청년기는 지극히 불우했다. 발표하는 음반마다 실패해 야간 업소 출연으로 겨우 연명해 나갈 정도였다. 1975년 레코드점 여직원인 모린(Maureen)과 결혼한 이후에도 생활은 개선되지 않아 노래 과외와 아이 돌봐주는 일, 즉 베이비시터로 집세를 충당하곤 했다(참고로 그가 봐 준 아이 중의 한 사람이 다름 아닌 폴라 압둘이었다. 이상하게도 두 사람의 관계는 묘한 악연으로 발전해 1990년 마이클 볼튼의 ‘그대 없이 어떻게 살아가리?’를 1위 자리에서 끌어내린 곡이 폴라 압둘의 ‘오포지츠 어트랙트(Opposites attract)’였고 이듬해 앨범 1위를 볼튼과 바통 터치한 주인공도 폴라 압둘이었다). 그의 술회에 따르면 당시 볼튼 부부와 세 딸은 마카로니와 치즈로 끼니를 때웠다고 하며 볼튼은 허구한 날 식탁에 앉아 “어떻게 집세 내고 자식을 먹여 살릴 것인가”만을 걱정했다고 한다. 그때의 심정을 그는 “터널의 끝에서도 빛을 볼 수 없을 만큼 참담했다”고 표현했다. 때문에 36세가 되어서야 성공했을 때(그는 1954년생으로 미국 코네티컷 주 뉴 헤이븐 출신) 주변에서 ‘하룻밤 자고 나니 스타가 된 케이스’라고 하자 “무슨 소리냐. 성공하기까지 대략 3천6백42번의 밤을 보냈다”고 응수했던 것이다. 비평가들은 그가 바닥 생활을 청산하자마자 곧바로 상업적으로 치달은 것을 못마땅해한다. 그럴수록 과거의 고난을 예술적으로 승화해 작품에 구현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의 성공은 사생활에도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 영혼의 공급자 >가 수면 위로 부상하던 1989년 아내 모린과 15년 결혼 생활을 청산하게 된 것이었다. 그 시점이 볼튼을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 그 무렵 한 인터뷰에서 그는 “하필 가장 잘 나가는 때에 성공을 축하하는 전화가 걸려 오는가 하면 이혼 증언 서류에 대한 변호사의 전화가 걸려 왔다. 너무 아이러니컬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그는 이듬해 정식으로 이혼했다. 그리하여 방문하는 관계로 매듭짓긴 했지만 세 딸들 아이사(20), 홀리(18), 타린(16)과도 떨어져 살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는 성심 성의껏 딸들을 보호하는 자상한 아빠의 역할에 충실하다고 한다. 그리고 자식들이 인정하는 가운데 1992년부터 TV배우인 니콜레트 셰리단(Nicollette Sheridan)과 건전한 연인 관계를 맺어 오고 있다. 마이클 볼튼은 우리에게 대중적으로 성공한 뮤지션과 비평계간의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사이를 생각하게 한다. 앨범이 많이 팔려 나갈수록(진지함이 없을 경우) 비평가들로부터 매질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그처럼 실감나게 보여준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는 성공과 함께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그 스스로도 “성공하면 할수록 그것은 네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비디오 게임처럼 첫 번째 스크린을 통과하고 나면 너를 쏘려고 레이저 미사일을 단 비행접시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공의 대가는 쓰디쓴 법이다.
노래 : Sophie B. Hawkins (소피 B. 호킨스,Sophie Ballantine Hawkins)
노래 : Pras (프라스,Samuel Prakazrel Michel)
멤버 : 티토 조셉 잭슨(Tito Joseph Jackson), 타릴 안드렌 잭슨(Taryll Adren Jackson), 토리애노 잭슨(Toriano Jackson) 멤버 : 티토 조셉 잭슨(Tito Joseph Jackson), 타릴 안드렌 잭슨(Taryll Adren Jackson), 토리애노 잭슨(Toriano Jackson)
제프 버클리(Jeff Buckley)는 1990년대의 가장 독보적인 싱어 송라이터이자 얼터너티브 포크 록 뮤지션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폭발적이면서도 감미로운 목소리로 독자적인 음악 스타일을 구축했지만 안타깝께도 1997년 5월, 서른 살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의 죽음과 함께 1990년대 음악계의 가장 비극적 사건이었다. 더욱이 단지 한 장의 앨범만을 남긴 뒤였기에 그 슬픔은 더했다. 제프 ... 제프 버클리(Jeff Buckley)는 1990년대의 가장 독보적인 싱어 송라이터이자 얼터너티브 포크 록 뮤지션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폭발적이면서도 감미로운 목소리로 독자적인 음악 스타일을 구축했지만 안타깝께도 1997년 5월, 서른 살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의 죽음과 함께 1990년대 음악계의 가장 비극적 사건이었다. 더욱이 단지 한 장의 앨범만을 남긴 뒤였기에 그 슬픔은 더했다. 제프 버클리는 1960년대 유명한 포크 뮤지션이었던 팀 버클리(Tim Buckley)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 시절부터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 졸업 후, 음악 공부를 위해 L.A로 이동한 뒤 레게 뮤지션이었던 샤인헤드(Shinehead)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내공을 쌓아나갔다. 이후 기타리스트 게리 루카스(Gary Lucas)와 결성했던 음악 공동체 가즈 앤 몬스터즈(Gods & Monsters)로 어느 정도 이름을 홍보하는데 성공했다. 밴드를 그만두고 결국 솔로로 전향한 제프 버클리는 1994년 데뷔작이자 생전 마지막 음반인 < Grace >를 발표했다. 앨범으로 그는 아버지의 영향을 예상했던 세간의 평들을 완전히 깨부순 그만의 싱어 송라이팅 스킬을 뽐내며 단숨에 주목을 받았다. 특히 동시대의 주류였던 그런지 사운드와는 완연히 다른 독특한 포크 록 소리샘이 돋보였다. 일종의 얼터너티브에 대한 얼터너티브였던 셈. 웅장하면서도 흐느끼는 듯한 그의 목소리와 탁월한 작곡 능력, 백 밴드의 안정감 있는 연주가 만난 걸작이었다. 또한 작품 전반에 걸쳐 흐르는 재지한 느낌은 앨범을 제목 그대로 ‘우아하게’ 만들어주었다. 메시지면에 있어서도 당시 얼터너티브의 염세적, 부정적인 정서가 아닌 ‘음악을 통한 사랑의 전파’라는 소신을 피력, 컬트 팬들을 세력권으로 집결시켰다. 이 후 2집 앨범을 준비하던 중에 떠난 미시시피 강으로의 여행에서 제프 버클리는 익사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데모상태로 존재했던 트랙들은 다행히도 사후 그의 어머니의 노력으로 1998년에 < Sketches (For My Sweetheart the Drunk) >라는 제목으로 발매되었다. 2집 역시도 1집에 버금가는 뛰어난 성과물이었으나 다만 ’그가 직접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았다. 그리고 2000년에는 제프 버클리의 첫 번째 공식 라이브 앨범인 < Mystery White Boy >(제프 버클리를 일컫는 듯한)가 나와 그를 못 잊는 팬들을 달래주었다. 1970년대에 시작된 ‘싱어 송라이터’라는 개념은 직접 곡을 쓰고 노래를 하는 뮤지션을 지칭하는 의미를 지녔었다. 특히 그들은 1960년대의 ‘우리’의 입장이 아닌 철저히 ‘개인적인’ 감수성을 노래했다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바로 1960년대를 ‘we decade’, 1970년대를 ‘my(혹은me) decade’라 명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싱어 송라이터는 또한 ‘독보적인 음악 파일을 완성한’ 아티스트를 말할 때 쓰일 수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1990년대에 제프 버클리만큼 자신만의 소리 메커니즘을 들려 준 아티스트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도 단 한 장의 앨범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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