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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es Davis (마일즈 데이비스)  - Live at the Fillmore 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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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Miles Davis (마일즈 데이비스) - Live at the Fillmore East

[ 2CD ]
Miles Davis, Steve Grossman, Chick Corea, Keith Jarrett, Dave Holland 연주 외 2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Music on CD | 2017년 07월 07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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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es Davis (마일즈 데이비스) - Live at the Fillmore East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7년 07월 07일
제조국 EU

관련분류

카테고리 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Disc1
  • 01 Directions
  • 02 Bitches brew
  • 03 The mask
  • 04 It's about that time
  • 05 Bitches brew / the theme
  • 06 Directions
  • 07 The mask
  • 08 It's about that time
Disc2
  • 01 It's about that time
  • 02 I fall in love too easily
  • 03 Sanctuary
  • 04 Bitches brew / the theme
  • 05 It's about that time
  • 06 I fall in love too easily
  • 07 Sanctuary
  • 08 Bitches brew
  • 09 Willie nelson / the theme

아티스트 소개 (7명)

연주 : Miles Davis (마일즈 데이비스)
재즈 트럼펫 주자이자 작곡가, 밴드 리더인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음악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 롤링스톤 >는 록전문지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100년 간의 톱10 뮤지션(8위) 가운데 한사람으로 그를 선정했다. 인상적인 선율로 마음 한 가운데를 울리는 우수 어린 트럼펫 소리는 분명 ‘마일스’만의 것이다. 그러나 마일스 데이비스는 출중한 연주실력을 지닌 재즈 음악인이기 전... 재즈 트럼펫 주자이자 작곡가, 밴드 리더인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음악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 롤링스톤 >는 록전문지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100년 간의 톱10 뮤지션(8위) 가운데 한사람으로 그를 선정했다. 인상적인 선율로 마음 한 가운데를 울리는 우수 어린 트럼펫 소리는 분명 ‘마일스’만의 것이다. 그러나 마일스 데이비스는 출중한 연주실력을 지닌 재즈 음악인이기 전에 재즈의 다양한 장르를 창조해 낸 ‘스타일리스트’이다. 1940년대부터 90년대에 이르기까지 마일스는 정체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나가는 창조의 면모를 보여준다. 쿨, 모드, 휴전에 이르기까지 그는 재즈 음악의 새로운 경향을 제시하고 리드해 갔다. 마일스는 현재에 유행하는 음악에 민감했고 시대 상황에 예의 주시할 줄 아는 아티스트였다. 단지 뛰어난 기량을 지닌 일반 뮤지션의 범주에서 논할 수 없는 가히 ‘대가’였다. 본명 마일스 듀이 데이비스 주니어인 그는 1926년 5월 25일 일리노이주 알턴에서 태어났다. 치과의사인 아버지를 둔 중산층의 유복한 가정환경에 자라나 이스트 세인트루이스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13세가 되던 생일 아버지가 사주신 트럼펫이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트럼펫 훈련을 받게 된다. 16세때 부터 바(Bar)에서 주말마다 연주를 한 마일스는 지역 밴드인 ‘에디 랜들스 블루 데빌스’의 멤버로 활동하다 17살이었던 1944년 비밥(Bebop)의 혁명을 몰고 온 디지 길레스피와 찰리 파커가 활동하던 ‘빌리 엑스타인 빅 밴드’가 그가 살던 이스트 세인트 루이스에 순회공연을 오게 됐고, 마일스는 우연한 기회에 그들과 한 무대에 설 기회를 얻게 된다. 이 때의 경험은 그가 길레스피와 파커의 추종자가 됨을 물론 비밥의 스타일을 스스로 터득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스피디한 연주, 두드러진 즉흥 솔로, 복잡한 리듬감으로 어우러진 비밥은 40년대 재즈계를 강타한 ‘재즈혁명의 전주곡’이었다. 젊은 재즈 연주자들은 모두 비밥에 심취해 있었고 마일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단지 비밥을 추종하는 트렌드의 수혜로 그치지 않으려고 했고, 그 해 이스트 세인트루이스를 떠나 뉴욕에 있는 줄리어드음대에 입학한다. 줄리어드음대를 다니면서 그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곳은 바로 뉴욕 52번가의 ‘민턴스 플레이 하우스’라는 재즈 클럽이었다. 매일 밤 이곳에 나가 음악을 듣고 또 그곳의 전통에 따라 무대에 돌아가며 올라가고 하면서 재즈 트럼펫 연주의 정체를 깨닫는다. 1947-48년 동안 찰리 파커의 밴드에서 활동하게된 마일스는 이를 통해 비밥의 문법을 완전히 자기의 것으로 익힌다. 1948년 여름 마침내 마일스는 당시로서는 생소한 9인조 빅 밴드를 조직한다. 뉴욕에서 만난 캐나다 출신의 작곡가 길 에반스(Gil Evans)를 비롯한 미국 서부 출신 백인 재즈 연주자들을 기용, 이듬해인 1949년 캐피톨(Capitol)을 통해 발표된 앨범 < Birth Of Cool >은 재즈의 바탕에 백인적 감수성을 가미시킨 걸작이었다. 이 앨범은 ‘쿨의 탄생’이란 제목이 입증하듯 이후 당시 앨범에 참여했던 리 코니츠, 제리 멀리건과 같은 뮤지션들이 중심이 되어 미국 웨스트 코스트를 중심으로 한 ‘쿨’이라는 음악 스타일을 개척하는 데 씨앗을 뿌린 재즈사(史)의 명반이었다. 이 음반이 녹음된 당시엔 재즈계의 촉각이 비밥에 쏠려 있던 시기라 아무도 마일스의 시도에 주목하지 않았다가 1957년 2월 캐피톨사가 이 앨범을 재발매하면서 마침내 그의 진가가 인정받기에 이른다. 1950년대 초반 잠시 헤로인에 중독된 마일스는 위기를 맞지만 이후 프레스티지(Prestige) 레이블을 통해 수많은 음반을 발표한다. 테너 색스폰 주자 존 콜트레인과의 협연으로 유명한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Miles Davis Quintet)의 시작을 알렸던 시기인 프레스티지의 내공축적 시절 동안, 마일스는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는다. 그의 대표작으로 반드시 입에 오르는 ‘Round midnight’를 1955년 7월 뉴 포트 재즈페스티벌서 연주하게 되었고 이를 도화선으로 메이저 레이블인 콜럼비아 레코드사와 계약한다. 트럼펫의 마일스 데이비스를 비롯하여 테너 색스폰의 존 콜트레인, 피아노에 레드 갈런드, 베이스에 폴 챔임버, 드럼에 필리 조 존슨으로 구성된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은 같은 해 10월 콜롬비아 레코드 데뷔작 < Round Midnight >를 발표, 그의 음악은 대중적인 인지도를 획득하기 시작했다. 콜롬비아에서 첫 앨범을 내놓았지만 아직 프레스티지 레코드와 5장의 음반에 대한 계약 분이 남아있었기에 마일스는 잔여 분을 해결하기 위해 단 이틀만의 전대미문 세션을 통해 녹음 작업을 마치는데 성공한다. 그 결과 나온 작품이 < Relaxin > < Cookin’ > < Workin > 그리고 < Steamin’ >이었으며 이 음반들 모두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의 전작 < Round Midnight > 이상의 호평을 받는다. 1957년 < Birth Of Cool >의 재발매와 동시에 그는 이전 음악 동료인 길 에반스와 다시 만난다. ‘쿨의 탄생’에서 보여준 빅 밴드 편성을 다시 도입, 길 에반스의 클래시컬한 편곡으로 ‘쿨의 탄생’에서 진일보한 연주를 선보이기 위해서였다. 1956년의 < Miles Ahead >와 이듬해 < Porgy & Bess > 그리고 1960년의 < Sketches of Spain >이 모두 마일스와 길 에반스와의 공동의 땀으로 결실을 맺은 명작들이었다. 1957년 12월에는 파리를 방문, 프랑스 ‘누벨 바그’ 영화의 거장 루이 말 감독의 <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L’Ascenseur pour l’Echafaud )의 스코어를 맡았으며 이 영화음악으로 1960년 그래미상 베스트 재즈 퍼포먼스부문 후보에 오르는 성과도 거둔다. 1958년에는 존 콜트레인과 함께 했던 그의 퀸텟에 알토 색스폰 주자인 캐논볼 애덜리를 영입, 6인조 섹스텟으로 새로 출발하여 < Milestone >을 녹음한다. 재즈에 모드(mode: 각 스케일, 노트에서 일곱음을 모두 사용하는 연주 방식) 주법을 처음 도입한 이 앨범을 끝으로 밴드 내의 피아노 주자 레드 갈란드가 떠나고 모드에 정통한 피아노 주자 빌 에반스(Bill Evans)가 들어오면서 그의 섹스텟의 색깔은 더욱 ‘모드’로 진행되었다. 모드 주법의 본격적인 시도를 알렸던 그의 대표작 < Kind of Blue >(1959)는 ‘드림팀’이라고 할 만한 쟁쟁한 멤버들로 구성된 그의 섹스텟 연주의 정점이었다. 이 앨범은 코드 변화와 즉흥연주 중심의 기존 재즈음악 스타일을 과감히 벗은 ‘모던 재즈’(modern jazz)의 시작을 알렸으며 지금까지 200만장 판매라는 상업적 성공도 포획했다. 1960년대 초반 솔로 활동을 위해 존 콜트레인과 빌 에반스가 마일스의 섹스텟을 떠나고 이들을 대신할 피아노 주자 윈튼 켈리와 색스폰 주자 행크 모빌이 들어온다. < Kind Of Blue > 때와 같은 창조성은 아니었지만 이전보다 대중들과의 친화력을 더 높아졌으며 < Someday My Prince Will Come >(1961)과 같은 수작 생산을 거르지 않는다. 섹스텟을 떠난 빌 에반스와의 작업을 이후에도 지속하여 같은 해 내놓은 앨범 < Live At Carnegie Hall >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오넷 콜먼(Ornette Coleman)이라는 젊은 색스폰 주자가 ‘프리 재즈’를 선보이면서 재즈 음악계는 어느덧 ‘프리 재즈’ 쪽으로 말을 갈아 타고있었다. 마일스는 이런 오넷 콜먼의 시도를 그다지 반기지 않았고 마일스의 섹스텟의 활동이 다소간 시들해진 60년대 중반, 다시 퀸텟으로 밴드를 재편했다. 이 때의 명분은 반(反)프리재즈에 입각한 듯한 ‘재즈-스탠더드 풍의 전통에 입각한 새로운 시도’였다. 베이시스트 론 카터,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 드러머 토니 윌리엄스, 테너 색스폰에 웨인 쇼더와 같은 젊은 피를 수혈받으며 마일스의 쿼텟은 < Kind Of Blue > 이후 최고의 창작력을 다시 불태운다. 1965년 < E.S.P >를 시작으로 < Miles Smiles >(1966), < Sorcerer >(1967), < Nefertiti >(1967), < Miles In The Sky >(1968), < Fills De Kilimanjaro >(1968)까지 줄기차게 이어진다. 이중 < Miles Smiles >는 1967년 그래미상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성과를 거뒀고, 기타리스트 조지 벤슨이 참여한 < Miles In The Sky >와 칙 코리아의 일렉트릭 피아노가 참여한 < Filles De Kilimanjaro >는 얼마 후 마일스의 또 한차례 혁명인 ‘재즈-록 휴전’으로의 이동을 암시하는 작품이었다. 1968년 마일스는 제임스 브라운, 슬라이 & 더 훼밀리 스톤, 지미 헨드릭스 등 당시 대중들을 휘어잡은 R&B와 펑키 음악에 관심을 갖는다. 얼마 후 지미 헨드릭스를 만나게 되었고, 둘은 함께 작업할 것을 약속한다(물론 이 약속은 지미 헨드릭스의 요절로 이뤄지지 못했다.)마일스는 당시 유행하던 록 음악의 열풍을 예의 주시했고, 일렉트릭 기타와 키보드가 재즈의 진보를 이끌어낼 것으로 판단한다. 콜트레인의 죽음 후 재즈는 기존 프리 재즈에서 더 진행하지 못하고 있었고, 수요층 측면에서 어느덧 백인 지식인이나 상류층들이 즐기는 음악으로 변모해가고 있었다. 1968년 말 그의 두 번째 퀸텟은 해산을 맞아 색스폰 주자 웨인 쇼더를 제외하고 모두 솔로로 독립한 상황이었지만 마일스는 또 다시 새로운 시도를 감행함으로써 존재를 부각한다. 토니 윌리엄스를 대신 할 잭 드자넷, 론 카터를 대신할 데이브 홀란드, 일렉트릭 건반주자 칙 코리아, 조 자위눌이 마일스와 함께 연주를 하게 되고, 영국 출신의 일렉트릭 기타리스트 존 맥러플린도 그의 밴드에 합류한다. 이들과 함께 1969년 2월에 녹음한 < In A Silent Way >는 코드 없이 부유하는 듯한 멜로디로만 진행된 방식으로서, 거기에 일렉트릭 기타사운드를 집어넣어 ‘록’적인 요소를 재즈에 본격적으로 가미한 것이었다. 같은 해 8월 재즈계의 최대 문제작인 < Bitches Brew >이 녹음되어 1970년 3월 세상에 나왔다. 오케스트라 편곡으로 도저히 옮겨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즉흥성에 토대를 둔 이 앨범에서 마일스의 트럼펫은 전기 코드를 꽂은 듯 우렁찼으며 일렉트릭 피아노와 일렉트릭 기타의 펑키(funky)감과 드럼의 강한 비트는 바야흐로 재즈-록 휴전(Jazz Rock Fusion)의 출현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이미 길이 갈라선 록과 재즈의 융합을 꾀한 이 기념비적 가치의 앨범은 발매되자 마자 골드를 기록했고 빌보드 Top40에 오르는 인기를 누려 대중들에게 다가가려는 취지를 충분히 달성했다. 마일스의 재즈-록으로의 실험은 이후 5년 간 계속된다. 라이브 실황을 담은 < Miles Davis In Filmore East >(1970), < Live-Evil >(1970)를 비롯하여 흑인 권투선수 잭 존슨에게 헌정하는 < Tribute to Jack Johnson >(1970), 슬라이 스톤과 제임스 브라운으로부터 영향 받은 게 명백한 펑키 리듬의 < On the Corner >(1972)와 같은 ‘재즈-록 휴전’의 명반을 잇달아 발표한다. 그가 시도한 재즈-퓨전은 잇단 재즈 슈퍼그룹의 출현을 몰고 왔다. 칙 코리아는 1970년 말 마일스를 떠나 써클(Circle)을 거쳐 1971년 리턴 투 포에버(Return To Forever)를 결성했으며 기타주자 존 맥러플린도 같은 해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Mahavishnu Orchestra)를 만들었다. 마일스에게 일렉트릭 피아노를 소개했던 조 자위눌과 색스폰 주자 웨인 쇼터는 그들 보다 더 빠른 1970년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를 결성하면서 1970년대 재즈의 대세를 재즈-록 퓨전으로 돌려놓았다. 건강상의 이유로 1975년 마일스는 은퇴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정확히 6년 후인 1981년, 일렉트릭 베이스에 마커스 밀러, 일렉 기타에 마이크 스턴, 색스폰에 빌 에반스 등 젊은 재즈 뮤지션들로 완비된 밴드와 함께 재기해 < The Man With The Horn >을 발표한다. 이어 기타리스트 존 스코필드를 가입시키고 자신이 직접 표지그림까지 완성한 < Star People >(1982), < Decoy >(1983), < You’re Under Arrest >(1985)를 연달아 내놓으며 에너지를 과시했다. 30년 동안의 콜롬비아에서의 활동을 마감하고 1986년 워너로 이적하여 < TuTu >를 선보인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투투 주교의 이름을 따온 이 앨범은 토미 리푸마, 마커스 밀러, 조지 듀크 등 3인 프로듀서의 지휘 아래 만들어졌고, 마일스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고 있던 마커스 밀러가 작곡과 편곡을 맡았다. 일렉트릭-펑키 풍의 편곡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던 흑인 로커 프린스(Prince)의 영향을 느끼게 했다. 이듬해 1987년 워너 브라더스에서 두 번째로 내놓은 < Siesta >는 엘렌 바킨, 줄리앙 샌즈 주연의 동명 영화 음악으로 작품 전체가 예전 길 에반스와의 작업 < Sketches Of Spain > 때와 같이 스페니시한 연주로 가득 차있다. 마일스는 사망하기 직전인 1991년 7월 스웨덴에서 열린 몬트럭스 재즈 페스티벌서 연주자로 참여, 그의 음악적 동반자로 1988년 세상을 떠난 길 에반스와 녹음했던 많은 곳들을 재즈팬과 평론가들 앞에서 재현하며 엄청난 환호의 박수를 받았다. 꿈꾸던 재즈의 진보를 평생동안 실현해온 마일스는 1991년 9월28일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소재의 세인트 존스 호스피탈 앤 헬스 센터에서 폐렴에 의한 호흡곤란과 뇌졸중으로 숨을 모았다. 사망 후 완성된 2개의 트랙이 포함된 스튜디오 앨범 < Doo-Bop >이 1992년 공개되면서 위대한 재즈맨을 잃은 상실감에 젖은 팬들의 아쉬움을 달래줬다. 마일스는 ‘모든 음악적 요소’를 그에 트럼펫에 담아 내려했고,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 뮤지션이 되길 원했다. 비밥의 출현 때부터 재즈의 중심에 있어오면서 기존의 전통을 답습하기보다는, 재즈-스탠더드를 바탕으로 현재의 음악흐름을 늘 주시했고 거기에서 항상 새롭고 실험적인 것을 추구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길 원했다. 마일스에게 ‘재즈의 거장’이라는 칭호를 붙임에 있어선 논란의 여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길 에반스와의 작업과 재즈-록 퓨전을 시도할 당시 일각의 재즈평론가들로부터 ‘백인에게 아부하는 재즈 뮤지션’ 혹은 ‘재즈를 팔아먹었다’는 식의 혹평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근거 없는 비판은 이미 루이 암스트롱이나 듀크 엘링턴과 같은 대가들도 경험했던 얘기들이었다. 마일스의 시도는 그의 음악을 통해 대중에게 더 접근하고 싶어 한 그 만의 것이었다. 마일스는 자신의 공연을 할 때 젊은 흑인관객과 눈이 마주치길 원했고, 그런 흑인 청중들에게 반가운 미소를 보내었다.(하지만 물론 지금까지 그의 음악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거의 백인들이다.) 그의 유산은 오늘날에 음악 곳곳에서 확인된다. “이념과 인종으로 갈라진 세상에서 음악만큼이라도 퓨전되어야 한다”는 그의 지론과 명언은 어느덧 재즈는 물론이고 현대의 대중음악을 가로지르는 음악트렌드가 되었다.
연주 : Steve Grossman (스티브 그로스맨 )
재즈 색소폰 연주자 재즈 색소폰 연주자
70년대 대중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은 재즈-록 퓨전 밴드 리턴 투 포에버(Return to forever; 이하 RTF)의 수장 칙 코리아는 이미 1960년대부터 독창적인 연주 영역을 개척해 온 재즈 피아노의 대가이다. 그는 1940년대 버드 파웰, 1950년대 호래이스 실버와 빌 에반스 ,1960년대 맥코이 타이너와 같은 재즈 피아니스트들의 음악적 유산을 이어받으며 20세기 현대 클래식 음악계를 대표하는 힌데... 70년대 대중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은 재즈-록 퓨전 밴드 리턴 투 포에버(Return to forever; 이하 RTF)의 수장 칙 코리아는 이미 1960년대부터 독창적인 연주 영역을 개척해 온 재즈 피아노의 대가이다. 그는 1940년대 버드 파웰, 1950년대 호래이스 실버와 빌 에반스 ,1960년대 맥코이 타이너와 같은 재즈 피아니스트들의 음악적 유산을 이어받으며 20세기 현대 클래식 음악계를 대표하는 힌데메스(Hindemeth), 바르톡(Bela Bartok)의 전위적인 4성 화음 전개를 자신의 연주에 도입하며, 특유의 서정성과 박진감이 묻어나는 피아노 연주를 창조해낸다. 피아노 한 대만으로도 완벽한 오케스트레이션을 구현한 그는 재즈-펑크의 기인 허비 핸콕(Herbie Hancock)과 ECM을 활동무대로 한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Keith Jarrette)과 더불어 당대 ‘3대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추앙되곤 한다. 작열하는 라틴 음악의 기운은 그의 음악세계를 이해하는 키워드이다. 이미 재즈 스탠다드 반열에 오른 ‘La fiesta’, ’Spain’, ’Window’에서 펼쳐보인 유려한 라틴 선율은 그의 연주에 한층 대중성을 띄게 해준다. 하드 밥 스타일의 연주를 특기로 한 재즈 초년병 시절을 시작으로 60년대 말, 마일즈 데이비스의 퓨전 사단의 일원으로, 이후 재즈 퓨전과 정통 재즈의 경계를 넘나들며 폭넓은 음악세계를 보여준 그는 지금까지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만도 앤소니 코리아(Armando Anthony Corea) 라는 본명으로 1941년 6월 12일 미국 매사츄세츠 주 태생인 칙 코리아는(참고로 그의 성 ‘Corea’는 우리나라와 전혀 관련이 없다) 4세부터 피아노 연주를 시작, 버드 파웰과 호래이스 실버의 피아노 연주를 통해 재즈에 관심을 갖는다. 대학 졸업 후인 1962년 뉴욕에 진출, 본격적인 프로 연주자로 나선 그는 아프로-큐반 퍼커션 주자 몽고 산타 마리아를 비롯, 윌리 보보, 블루 미첼, 스탄 게츠와 같은 당대 중견급 재즈 뮤지션들의 밴드에서 피아노를 연주한다. 1966년까지 여러 밴드의 사이드 맨으로서 활약한 그는 당시의 세션 경험을 통해 얻은 라틴 재즈의 기운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낸다. 어틀랜틱 레코드사와 계약하며 첫 솔로 앨범< Tones For Joanes Bone >(1966)과 < Inner Space >(1966)을 연이어 발표하며 현대 클래식과 라틴 음악을 접목한 그의 독특한 연주 작법에 평론가들의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얼마 후 블루 노트사에서 내놓은 초기 걸작 < Now He Sings, He Sobs >(1968)에서 들려준 신선한 트리오 연주(미로슬라브 비터우스;베이스, 로이 하인즈; 드럼)는 ‘50-60년대 빌 에반스 트리오에 이은 또 하나의 쾌거‘라는 호평을 받으며 ’칙 코리아 스타일‘이라는 그만의 연주 세계를 확립시킨다. 당시 새로운 음악적 실험을 모색했던 재즈 퓨전의 창시자 마일즈 데이비스는 이런 그의 독창적인 프레이징에 매료, 그에게 러브 콜을 보내며 마일즈의 5인조 퀸텟의 마지막을 알린 < Filles De Kilimanjaro >(1968)에서 키보드 연주를 하게 된다. 얼마 후 재즈 퓨전의 서막을 장식한 < In A Silent Way >(1969)와 < Bitches Brew >(1969)에서도 키보드 연주자로 참여한 그는 마일즈와의 세션 경험을 통해 70년대 자신이 일궈낼 재즈 퓨전의 신화의 초석을 다지게 된다. 2년간 마일즈와 함께 한 그는 다시 솔로로 나서며 전위적인 프리 재즈 연주를 들려준 써클(Circle)을 조직, 마일즈 데이비스의 < Bitches Brew >녹음을 통해 만난 베이시스트 데이브 홀란드(Dave Holland)와 드러머 베리 알트슐(Barry Altschul)와 의기투합하며 < Song For Singing >(1970), < A.R.C >(1971)를 발표한다. 평단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은 써클은 프리 재즈 색스폰 주자 앤소니 브랙스톤(Anthony Braxton)과 함께 한 야심찬 라이브 실황 앨범 < Circle-Pari concert >(1971)까지 발표하지만 평론가들의 극찬과는 달리 엘리트적이라 느껴진 프리 재즈의 광기에 등을 돌려버린 대중들의 외면에 결국 그의 실험밴드 써클은 얼마 후 쓰디쓴 해산을 맛본다. 다수와 함께 공감할 수 없는 음악이 무용하다고 느낀 그는 과거 마일즈 데이비스와의 작업을 떠오르게 되었고, 얼마 후 그의 재즈 퓨전 밴드 RTF가 탄생한다. 1972년 < Return To Forever >와 < Light As A Feather >를 연이어 발표한 그는 비슷한 시기 마하비쉬누 오케스트라, 웨더 리포트와 함께 재즈-록 퓨전의 ‘빅 3’로 떠오르며 차츰 대중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피아노 대신 일렉트릭 키보드만을 연주한 앨범에서 수록곡 ‘La fiesta’와 ’Spain’이 좋은 반응을 얻는다. 이후 일렉트릭 기타가 연주의 중심으로 부각되며 한층 힘이 실린 하드 록 성향의 연주를 지향하며 < Hymn Of Seventh Galaxy >(1973), < Where Have I Known You Before >(1974), < No Mystery >(1975), < The Romantic Warrior >(1976)를 모두 빌보드 앨범 차트에 진입시키며, 2개의 그래미상을 얻어내며 RTF는 70년대 가장 인기 있는 재즈-퓨전 밴드로 부상한다. 그러나 한층 인기의 주가가 치솟았을 무렵 RTF는 라이브 앨범< Live >(1977)를 끝으로 종언을 선언했다. RTF 활동과 병행, 그는 < The Leprechaun >(1975), < My Spanish Heart >(1976)과 같은 솔로 앨범을 발표하며 자신의 음악 세계를 규정했던 플라멩코 음악의 정수를 집대성한다. 특히 앨범 < My Spanish Heart >에 수록된 대곡 ‘El bozo’와 ’Spanish f antasy’는 그의 음악 인생의 화두인 라틴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가늠케 하는 본보기이다. RTF의 해산과 함께 그는 80년대 중반까지 듀엣, 트리오, 쿼텟을 통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며 70년대 초부터 콤비로 활약한 비브라폰 주자 게리 버튼(Gary Burton)과의 협연 작< Crystal Silence >(1972), < Duet >(1978), < Live In Zurich >(1979), < Lyric Suite For Sextet >(1982)를 연이어 발표하며 1979년 그래미상을 획득하는 성과를 올렸고, 허비 핸콕과 함께 한 이색적인 피아노 듀엣 작 < A Evening With Chick Corea & Herbie Hancock >(1978)을 발표한다. 80년대 초엔 자신의 레이블 스트레치(Stretch)를 설립하며 음악 산업 내 사업가로도 활약하게 된 그는 자신의 레이블을 통해 마이클 브레커(색스폰), 에디 고메즈(베이스), 스티브 갯(드럼)과 같은 탁월한 테크니션들과 함께 한 프로젝트< Three Quartets >(1981)을, 게리 피콕(베이스), 로이 하인즈(드럼), 조 핸더슨(색스폰)과 함께 한 < Live In Montreux >(1981)을 발표한다. 같은 해 ECM을 통해 그의 초기 트리오 명반 < Now He Sings, He Sobs >에 참여했던 미로슬라브 비터우스(베이스), 로이 하인즈(드럼)이 다시 모여 < Trio Music >(1981)을 발표한다. 재즈 퓨전에서 다시 정통 재즈 뮤지션으로 귀환하는가 싶던 차에 그는 1986년 촉망받던 젊은 세션맨 데이브 웨클(Dave Weckl;드럼)과 존 패티투치(John Patitucci;베이스)와 함께 일렉트릭 밴드(Electric band)를 결성, 재즈 록 퓨전으로의 즐거운 외도를 감행한다. GRP에서 나온 밴드 데뷔작 < The Electric Band >(1986)를 시작으로 에릭 마리엔탈(Eric Marienthal; 색스폰), 프랭크 갬블(Frank Gambale;기타)이 정규 라인업으로 참여한 < Light Year >(1987), < Eye Of The Beholder >(1988), < Inside Out >(1990), < Beneath The Mask >(1991)에 이르기까지 만 5년을 활동한 일렉트릭 밴드는 RTF 시절 이상의 인기를 얻으며 ‘제2의 전성기’를 달성한다. 일렉트릭 밴드와 함께 그는 밴드 내 멤버였던 존 패티투지, 데이브 웨클과 어쿠스틱 밴드를 조직해 활동을 병행했고, 후에 이를 발전시켜 90년대 초엔 쿼텟으로 다시 재편, 밥 버그(Bob Berg;색스폰), 존 패티투치(John Patitucci; 베이스), 게리 노박(Gary Novac; 드럼)으로 구성된 ‘칙 코리아 쿼텟’ 활동으로 이어지며, < Time Warp >(1995)를 발표한다. 90년대 후반부턴 자신의 레이블 스트레치를 통한 작품 활동에만 전념한 그는 재즈 피아니스트 버드 파웰의 음악세계를 조명한 < Remembering Bud Powell >(1996)을 발표했고, 1996-97년까지 케니 가렛(색스폰), 왈리스 로니(트럼펫)와 같은 스타급 재즈 뮤지션과 세계 투어를 펼치며 비밥 피아노의 명인 델로니어스 몽크와 버드 파웰의 음악을 재해석한다. 1997년, 재즈 고전의 재해석을 모토로 한 모던 섹스텟(Sextet) 오리진(Origin)을 결성, 일본 블루 노트 클럽에서 6일 동안의 마라톤 콘서트 실황을 담은 < A Week At The Blue Note >(1998)를 발표, 노익장을 드러내며 전 세계 재즈 팬들의 화제를 모았다. 1997년엔 명콤비 게리 버튼과 15년만에 다시 만나 다섯 번 째 듀엣< Native Sense >(1997)를 발표, 이듬해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재즈 인스트루멘털 상을 획득한다. 환갑을 바로 보는 2000년, 자신의 곡과 재즈 스탠다드로 꾸며진 단출한 피아노 솔로< Piano Standard >, < Piano Original >을 발표하며 자신의 음악세계를 집대성하고, 이듬해 그의 섹스텟 오리진에서 만난 아비쉬 코헨(Avish Cohen;베이스) 제프 발라드(Jeff Ballard;드럼)와 함께 어쿠스틱 트리오를 결성 < Past, Present, Future >(2001)를 발표한다.
키스 자렛(Keith Jarrett)은 뛰어난 즉흥 연주자이다. 솔로 피아노 연주 앨범으로 이름을 떨치던 1970년대 초반부터 그는 피아노 하나로 클래식, 재즈, 가스펠, 팝송을 넘나드는 독창적인 연주 세계를 펼쳐냈다. 기타리스트 팻 메스니와 함께 ECM 레이블의 간판 스타로 자리 매김 해 온 키스 자렛은 서정적인 쿼텟 연주 앨범 < My Song >(1978)로 한국 재즈 팬들에게도 제법 친숙한 연주인이다 . ... 키스 자렛(Keith Jarrett)은 뛰어난 즉흥 연주자이다. 솔로 피아노 연주 앨범으로 이름을 떨치던 1970년대 초반부터 그는 피아노 하나로 클래식, 재즈, 가스펠, 팝송을 넘나드는 독창적인 연주 세계를 펼쳐냈다. 기타리스트 팻 메스니와 함께 ECM 레이블의 간판 스타로 자리 매김 해 온 키스 자렛은 서정적인 쿼텟 연주 앨범 < My Song >(1978)로 한국 재즈 팬들에게도 제법 친숙한 연주인이다 . ’재즈계의 쇼팽’ 이라 할 만큼 키스가 연주하는 멜로디는 운치가 있고 정감이 서려있다. 한번에 2-3사람이 동시에 연주하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그의 비범한 연주실력 또한 쉽사리 흉내낼 수 없는 대가다운 경지이다. 솔로 피아노 연주로 대변되는 뉴 에이지(New Age) 음악 열풍을 가능케 했던 선구자로도 평가받은 키스 자렛은 1980년대 조지 윈스턴(George Winston)을 위시한 뉴 에이지 스타 출현이 가능하도로 분위기를 조성했다는데에도 그의 업적은 남다르다. 1945년 5월8일 팬실베니아 알랜타운에서 태어난 키스 자렛은 1965년에 아트 블레이키(Art Blakey) 재즈 메신저에서, 이듬해 66년부터 69년까지는 찰스 로이드(Charles Lloyd) 밴드의 사이드 맨으로 활약한다. 드러머 잭 디죠넷(Jack Dejohnette), 베이시스트 찰리 헤이든(Charlie Haden)이 멤버로 있었던 찰스 로이드 밴드 내에서 그의 활동은 범상치 않은 피아니스트의 출현을 전 세계에 알렸다. 마일스 데이비스로 인해 시작된 재즈-록 열풍은 키스 자렛의 연주 이력에 전환점이 됐다. 1970-71년까지 그는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의 재즈-퓨전 사단에 합류한다. 그와의 작업을 통해 그는 일렉트릭 키보드를 연주하는데 마일즈 데이비스의 1970년 앨범 < Live-Evil >에선 그의 신들린 키보드 연주를 접할 수 있다. 어틀랜틱 레코드에서 그의 첫 앨범 < Somewhere Before >(1968)를 시작으로 비브라폰 주자 게리 버튼(Gary Burton)과 함께 한 < Gary Burton & Keith Jarrett >(1970), 콜럼비아 레코드에서 내 놓은 < Expectation >(1970)까지 그는 일렉트릭-어쿠스틱 사운드를 번갈아 가며 자신의 연주 지향점을 찾아나간다. 그리고 ECM을 통해 발표한 < Facing You >(1971)를 필두로 어쿠스틱 피아노 연주에만 전념하며 솔로-쿼텟-솔로-트리오에 이르는 긴 음악 여정을 진행해 나간다. ECM 레이블을 통해 그는 1973년 스위스 로잔에서 있었던 < Solo Concert; Bremen & Lausanne > 실황 앨범과 전세계에 200만장이 팔린 그의 최고 히트작인 < Koln Concert >(1975), 6장의 CD로 구성된 대형 솔로 앨범 < Sunbear Concert >(1976)를 발표했다. 이로서 키스는 명실상부 최고의 피아노 즉흥 연주자로 부상한다. 혁명 이데올로기의 쇠퇴와 함께 어느덧 사회인으로 변해갔던 60년대 히피들은 젊은 시절의 과열 발산을 누그러뜨리고 심신을 안정시킬 음악을 찾았고 이럴때 키스 자렛의 잔잔한 피아노 솔로 연주는 젊은 재즈 팬들의 구미를 당겼다. 클럽에서 연주하는 재즈를 넘어서 조용한 콘서트 장에서 정중동의 기운이 꿈틀거리는 키스 자렛의 깔끔하고 품위 있는 콘서트 식 피아노 연주는 유럽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어간다. 솔로 활동에 병행, 키스는 1970년대 내내 아메리칸/유러피언 쿼텟을 동시에 이끌며 다양한 음악 세계를 펼친다. 찰리 헤이든(베이스), 듀이 레드먼(색스폰), 폴 모션(드럼),키스 자렛으로 구성된 아메리칸 쿼텟은 프리/아방가르드 사운드를 표방하며 각이 선명한 실험적인 재즈 연주를 들려줬다. 반면 풍부한 서정성을 부각시켰던 유러피언 쿼텟은 얀 가바렉 (색스폰), 팔레 다니엘슨(베이스), 존 크리스텐션(드럼) 구성되었고 < Belonging >(1974), < My song >(1978), < Nude Ant >(1979)같은 수작을 남겼다. 1980년대 초반 다시 솔로 피아노 연주에 중점을 뒀던 키스 자렛은 1983년, 베이시스트 게리 피콕, 드러머 잭 드자넷 과 함께 트리오 스탠다드(Standard)를 조직, 재즈사(史)에 남을 고전들의 재해석을 통해 온고지신의 저력을 발휘한다. 트리오 스탠다드의 활동은 최근 2001년 발표한 < Inside Out >에 이르기까지 근 20년을 걸치고있다.
연주 : Dave Holland (데이브 홀랜드,David Holland )
재즈 더블베이스 연주자 재즈 더블베이스 연주자
잭 디죠넷은 탁월한 스윙감이 돋보이는 드러밍 외에도 ‘감정’을 드럼연주에 실어 낼 줄 아는 몇 안 되는 드럼 연주자이다. 학구적일 정도로 치밀한 계산이 돋보이는 그의 드러밍은. 드럼 세트를 구성하는 킥-스내어-탐탐-심벌의 울림들을 물 흐르듯 유연한 느낌으로 연결시켜낸다. 이런 그의 드러밍 스타일은 70년대 등장해 폭발적인 힘과 스피드를 자랑한 재즈 퓨전 드러머 빌리 코브햄(Billy Cobham), 어떤 스타일의... 잭 디죠넷은 탁월한 스윙감이 돋보이는 드러밍 외에도 ‘감정’을 드럼연주에 실어 낼 줄 아는 몇 안 되는 드럼 연주자이다. 학구적일 정도로 치밀한 계산이 돋보이는 그의 드러밍은. 드럼 세트를 구성하는 킥-스내어-탐탐-심벌의 울림들을 물 흐르듯 유연한 느낌으로 연결시켜낸다. 이런 그의 드러밍 스타일은 70년대 등장해 폭발적인 힘과 스피드를 자랑한 재즈 퓨전 드러머 빌리 코브햄(Billy Cobham), 어떤 스타일의 재즈 연주에서도 두각을 보이는 전천후 세션 드러머 스티브 갯(Steve Gadd)과 함께 거론되곤 한다. 그의 연주는 숨 막힐 듯한 쓰릴(Thrill)이 묻어나는 파워 드러밍은 파워는 덜 하지만 버드 파웰(Bud Powell)의 음악에 영향 받은 탁월한 재즈 피아니스트라는 독특한 경력에서 알 수 있듯 드럼 연주를 리듬이라는 영역에 가두지 않고 마치 멜로디/화성 악기처럼 독주 악기로서의 가능성을 한층 드높였다고 평가된다. 1942년 8월 9일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그는 10년간 클래식 피아노 연주를 통해 음악적인 성정을 쌓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밴드에서 드럼을 치게 된 이후 그의 운명은 재즈 드러머로 향하게 된다. 1960년대 중엽까지 그는 시카고를 중심으로 하여 활동하던 진보적인 음악인들과의 교류를 갖게 되었다. 시카고에서 정착하는 동안 활발한 세션 경험을 통해 그는 대중적인 리듬 앤 블루스에서부터 프리 재즈에 이르는 폭 넓은 음악을 섬렵했다. 1966년 뉴욕으로 이주한 그는 찰스 로이드(Charles Lloyd) 쿼텟에 가입, 찰스 로이드를 비롯 키스 자렛, 찰리 헤이든과 같은 재즈 스타들과 어께를 나란히 하며 1968년까지 활동하면서 그의 존재를 전 세계 재즈 팬들에게 알렸다. 1968년 그의 첫 리더작 < Dejohnette Complex >를 발표했고, 이듬해인 1969년 마일즈 데이비스의 재즈-퓨전 밴드에 이전 드러머인 토니 윌리엄스를 대신해 참가, 앨범 < Bitches Brew >(1969) 세션으로 참여한다. 1972년까지 마일즈의 재즈-퓨전 밴드에서 활동한 그는 1974년부터 다시 솔로로 전향, 70-80년대 동안 유럽 재즈 레이블 ECM을 통해 작품 활동을 했고, ECM 소속 아티스트들인 얀 가바렉(Jan Garbarek), 케니 휠러(Kenny Wheeler), 팻 메스니(Pat Metheny)등과 함께 활발한 앨범 작업을 했다. 특정한 장르의 근간을 두지 않은 전위적인 즉흥 연주로 꾸며졌던 그의 작품세계는 1970년대 동안 몇 번의 변화를 거치는데, ‘콤포스트(Compost)’로 시작한 그의 첫 밴드 활동은 이어 ‘디렉션(Direction)’으로 이어졌다. ‘아방-퓨젼(Avant-Fusion)’을 표방한 디렉션은 다시 ’뉴 디렉션(New Direction)‘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고 기타리스트 존 에이버크롬비(John Abercrombie), 레스터 보위(Lester Bowie), 에디 고메즈(Eddie Gomez)를 비롯한 여러 재즈 뮤지션들이 그의 밴드를 거쳐갔다. 1979년 통상 그의 네 번째 밴드 “Special Edition“이 출범, 같은 해 동명 타이틀 앨범 < Special Edition >을 발표해 평론계의 주목을 받는다. 1920년대 뉴 올리언즈 재즈에 근간해 모던한 분위기를 연출한 맞는 본 앨범은 그의 대표작으로 기억된다. 그의 밴드 스페셜 에디션의 음악성은 차츰 변화가 감지되는데, 그의 드럼연주는 차츰 비트가 강해지고 일렉트릭 기타나 신시사이저를 도입한 ‘팝 연주음악’의 경향까지 나타난다. 1984년에 발표된 < Album Album >은 스페셜 에디션이 보다 대중적인 접근이 돋보인 수작으로 여러 재즈 전문지로부터 ‘그 해의 앨범’으로 뽑힌다. ECM을 통해 발표된 그의 리더작 외에 그는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의 트리오 “스탠다드(Standard)”와 존 에이버크롬비의 재즈 록 트리오 “게이트 웨이(Gateway)” 멤버로서도 활발한 연주 활동을 보여준다.
연주 : Airto Moreira (에알토 모레이라)
브라질 출신의 퍼커션 주자 에알토 모레이라(Airto Moreira)는 70년대 재즈, 록, 퓨전 음악 흐름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다양한 브라질 타악기 연주를 통해, 재즈 음악과 월드 뮤직의 혼합을 통해 재즈 음악이 월드 뮤직의 장으로 한 발짝 다가서는 길을 개척해줬다. 그는 웨더 리포트, 리턴 투 포에버와 같은 70년대 인기 재즈 록 퓨전 밴드 내에서 다양한 타악기 연주를 소개하며 많은 갈채를 받았으며... 브라질 출신의 퍼커션 주자 에알토 모레이라(Airto Moreira)는 70년대 재즈, 록, 퓨전 음악 흐름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다양한 브라질 타악기 연주를 통해, 재즈 음악과 월드 뮤직의 혼합을 통해 재즈 음악이 월드 뮤직의 장으로 한 발짝 다가서는 길을 개척해줬다. 그는 웨더 리포트, 리턴 투 포에버와 같은 70년대 인기 재즈 록 퓨전 밴드 내에서 다양한 타악기 연주를 소개하며 많은 갈채를 받았으며, 이후 퍼커션 연주가 중심이 되어 재즈를 비롯한 다양한 음악 장르간의 혼합을 선보인다. 브라질의 이따이온 폴리스라는 작은 도시 출신인 그는 어린 시절부터 열대 지방에서 살았다. 정글 등지에서 접했던 수많은 야생 동물의 울음소리 등을 흉내 내고 놀았던 그는 이후 퍼커션 연주에 이런 어린 시절의 기억을 응용한다. 그가 다루는 퍼커션의 종류는 그 수만 120여개가 넘는데, 대부분의 악기가 자신이 직접 만든 악기이다. 그가 타악기로 연주했던 소리는 서구 음악인들이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신기한 소리들이 많았다. 18세 되던 해 그는 브라질의 수도 상파울로에 진출, 밴드 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 곳 재즈 클럽에서 활동하던 중 재즈 보컬이자 훗날 그의 평생 동반자가 되는 재즈 싱어 플로라 퓨림(Flora Purim)을 만난다. 브라질 내에서 밴드 생활로 괜찮은 지명도를 가졌었지만, 보다 폭넓은 음악 세계에 향한 욕구는 그를 미국 LA로 이주하게 한다. 2년 정도의 힘든 고생 끝에 그의 연주 실력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후 마일즈 데이비스를 만나 재즈-록 퓨전의 본격적 시작을 알리는 < Bitches Brew >(1969) 앨범 녹음에 참가한고 마일즈를 따라 투어에 나선다. 이후 2년간(1969-1970)마일즈 데이비스 밑에서 밴드 생활을 하면서 그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리게 된다. 그의 퍼커션 연주가 돋보였던 마일즈 데이비스의 < Live Evil >(1970)은 에알토의 퍼커션 연주가 재즈-록 퓨전 연주의 생성에 중요한 기여를 했음을 증명한다. 웨더 리포트의 창단 멤버로 참여, 데뷔작 < Weather Report >(1971)와 칙 코리아의 밴드 리턴 투 포에버의 데뷔작 < Return to Forever >(1972)에선 그의 부인 프로라 퓨림과 함께 인상적인 연주를 들려준다. 이후 명 프로듀서 크리드 테일러가 이끄는 CTI 사단에 합류, 그의 첫 리더작 < Free >(1972)를 선보였고, 73년도부터는 자신의 밴드를 가질 정도로 유명해진다. 이 외에도 그의 아내 플로라 퓨림의 음반에 참여하는 등 70년대 재즈 퓨전 음반 크레디트엔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을 정도로 활발한 세션 활동을 벌였다. 그가 지금까지 내놓았던 음악들이 모두 재즈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가 연주하는 퍼커션이라는 악기는 분명 70년대 이후 지금까지 재즈 연주에 있어 보사노바 이후 ‘월드 뮤직’과 재즈의 융합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재즈 연주의 진보를 일군 선구자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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