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귀가 먹먹해질정도의 소음이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어버린 육교위에서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철도위의 기차를 찍는 한 사내아이를 보았다. 지나가는 기차만을 찍기위해 육교위에 최대한 붙어있는 모습이 취미로 찍는다고 보기에는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보였다. 게다가 셔터를 누르는 모습은 사뭇 전쟁터에 나가는 전사마냥 진지해보이기까지했다. 거듭 몇번을 시도한끝에 마음에 흡족해졌는지 앞으로 걸어가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도 덩달아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남들에게는 너무 사소해보이는 일일지라도 자신이 애정을 갖고 그 일을 하면 결국에는 다른사람들도 그 일을 애정을 갖고 지켜봐주지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요즘따라 삶의 무의미를 자주 느끼는 내게 여름에 먹는 아이스크림같은 달콤함을 느끼게해준 일이었다.

 최근에 나는 김경욱작가님의 <동화처럼>이란 책을 읽었다. 하지만 읽고난후 몇일동안 큰 고민에 빠졌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장미라는 여자와 내가 너무 비슷해서 창피함을 감출수가 없었다. 그래서 글을 써야하나 말아야하나 한참을 고민했다. 현실에 만족스럽지 않을때 동화적 상상력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모습과 내가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상대방을 판단하는 오류, 아직도 소녀적 감성으로 현실판단이 서툴다는것 등 말이다. 특히 결혼에 있어서의 주인공 장미의 모습과 나는 동일한 선상에 서있다.

신데렐라,백설공주,인어공주 등 어렸을적 동화책을 자주 읽어서인지 결말에 나오는 <00공주는 왕자와 결혼하여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을 아직도 있는 그대로 믿고 있기 떄문이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던지 나를 사랑해주기만 하면 결혼후 매일을 행복하게 살수있을거란 착각말이다. 아직도 인연을 믿고 사랑만 하면 둘이 노력해서 멋진 결혼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상상말이다. 이런 나의 착각때문에 그동안 내 사랑의 성숙도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이유를 알수없다고 고개를 젖고만 있었는데 이 책으로 인해 나의 문제점을 찾게되는 기회를 갖게됬다.

 아~ 너무 내 얘기만 하는거 같아서 잠시 본문으로 돌아가 볼까한다. 이 책은 우선 <눈물의 여왕>,<침묵의 왕>이란 짧은 동화가 서두에 나오고 곧 1부에서 4부까지 눈물의 여왕인 현실속 주인공 장미와 침묵의 왕의 현실속 주인공 명제가 나온다. 둘은 대학교 한 동아리 안에서 서로 다른 상대에게 마음을 두고있다. 상사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어릴 적부터 세계 곳곳을 다닌 한서영,곱슬머리에 얼굴을 해사하고 키도 훤칠한 치대생 서정우가 그들이다. 서로 멋진 상대에게 짝사랑을 하던 두 남녀는 어떤 오해와 인연이라는 끈으로 사회인이 되어 다시 재회하게된다. 그리고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과 마찬가지의 연애와 결혼을 하게되고 그 안에서 옛사랑과의 불륜,실직,상상임신과 같은 문제점이 터지게된다. 그리고 그러한 역경을 해치고 다시 서로를 이해하고 꿈을 찾아가게되는 이야기가 동화라는 장르와 잘 버무려저서 멋진 하모니를 완성시킨다.

 줄거리만 본다면 너무 지극히 평범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할수있다. 하지만 우리중의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들이고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반드시 되집어봐야하는 문제점들이 있다.

그런것들을 보여주는게 김경욱작가의 매력적인 글쓰기가 아닌가 싶다. 그 중 현대인의 사랑의 상실이 가져다주는 내면의 고통적인 모습을 여러각도로 보여준다. 우선 주인공 장미는 친엄마의 냉대속에서 자라났다. 그래서 친엄마를 계모라고 차라리 생각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그럭저럭 살아간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게되지만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은 모습을 감당하지 못해 차라리 외로움을 선택하게 된다. 또한 주인공 명제는 어머니의 부재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모른다. 그져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라 슬퍼도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내면은 울고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주인공 장미의 어머니는 사랑의 표현방식이 특이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서 자신이 상처받을까봐 차라리 자신의 딸을 괴롭히는 쪽을 선택한다. 이렇게 다양한 이유로 사랑의 상처를 받은 등장인물들은 서로를 이해하면서 차츰 치유된다.

 2000년대 소설은 더이상 개인을 사회속의 한 분류로 인식하지는 않는다. 그 개인의 지극히 평범한 삶이야말로 이 시기를 대변한다고 말하고 있다. 김승옥의 <서울,1964년 겨울>부터 시작된 개인의 삶에 관한 이야기는 더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왔고 그 일은 오늘날 젊은 작가들이 해낸것들이다. 그 중 한 사람이 김경욱작가님이지 않나싶다. 평범한 삶에서도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그 무엇을 발견해주는것 또한 소설의 한 기능이라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내게 큰 만족을 가져다줬다고 말할수 있다. 앞으로도 좋은 한국소설이 많이 탄생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