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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즈 영화음악 (Singles OST) [25th Anniversary 2CD Deluxe 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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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싱글즈 영화음악 (Singles OST) [25th Anniversary 2CD Deluxe Edition]

[ 2CD ]
Chris Cornell, Paul Westerberg, Jimi Hendrix 노래/Mike McCready 연주/Alice in Chains 밴드 외 7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SonyMusic / Epic Legacy | 2017년 05월 17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84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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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즈 영화음악 (Singles OST) [25th Anniversary 2CD Deluxe Edition]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7년 05월 17일
제조국 EU

관련분류

카테고리 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Disc 1
  • 01 Would? - Alice In Chains
  • 02 Breath - Pearl Jam
  • 03 Seasons - Chris Cornell
  • 04 Dyslexic Heart - Paul Westerberg
  • 05 Battle of Evermore - The Lovemongers
  • 06 Chloe Dancer / Crown of Thorns - Mother Love Bone
  • 07 Birth Ritual - Soundgarden
  • 08 State of Love and Trust - Pearl Jam
  • 09 Overblown - Mudhoney
  • 10 Waiting for Somebody - Paul Westerberg
  • 11 May This Be Love - Jimi Hendrix
  • 12 Nearly Lost You - Screaming Trees
  • 13 Drown - The Smashing Pumpkins
Bonus CD
  • 01 Touch Me I'm Dick - Citizen Dick
  • 02 Nowhere but You - Chris Cornell
  • 03 Spoon Man - Chris Cornell
  • 04 Flutter Girl - Chris Cornell
  • 05 Missing - Chris Cornell
  • 06 Would? - Alice In Chains
  • 07 It Ain't Like That - Alice In Chains
  • 08 Birth Ritual - Soundgarden
  • 09 Dyslexic Heart - Paul Westerberg
  • 10 Waiting for Somebody - Paul Westerberg
  • 11 Overblown - Mudhoney
  • 12 Heart and Lungs - Truly
  • 13 Six Foot Under - Blood Circus
  • 14 Singles Blues 1 - Mike McCready
  • 15 Blue Heart - Paul Westerberg
  • 16 Lost In Emily's Woods - Paul Westerberg
  • 17 Ferry Boat #3 - Chris Cornell
  • 18 Score Piece #4 - Chris Cornell

아티스트 소개 (12명)

노래 : Paul Westerberg (폴 웨스터버그,Paul Harold Westerberg)
노래 : Jimi Hendrix (지미 헨드릭스)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들에게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라는 이름은 하나의 신주단지와도 같다. 그의 전성기는 1960년대 말이었고 1970년대가 열리자마자 이 세상을 떠나 이미 오래 전 역사 속으로 들어간 인물이지만 그는 지금도 불멸의 기타 천재로 많은 뮤지션들의 추앙을 받는다. 누구 말마따나 ‘아직까지도 일렉트릭 기타 음악이 위대한가 아닌가 여부를 판단하는 절대적 기준’이다. 아마 그의 위대함...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들에게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라는 이름은 하나의 신주단지와도 같다. 그의 전성기는 1960년대 말이었고 1970년대가 열리자마자 이 세상을 떠나 이미 오래 전 역사 속으로 들어간 인물이지만 그는 지금도 불멸의 기타 천재로 많은 뮤지션들의 추앙을 받는다. 누구 말마따나 ‘아직까지도 일렉트릭 기타 음악이 위대한가 아닌가 여부를 판단하는 절대적 기준’이다. 아마 그의 위대함을 묘사하는데 있어서 동시대의 그룹이었던 도어스(The Doors)의 건반주자 레이 만자렉(Ray Manzarek)의 말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을 것이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를 천재로 추켜세우는 이유는 그가 진짜로 천재였기 때문이다.” 지미 헨드릭스는 이처럼 먼저 뮤지션들로부터 인정을 받는다. 그가 활동하던 시절에도 록 뮤지션들은 한결같이 그가 창조해낸 폭발적인 기타 연주에 넋을 잃었다. 마이크 블룸필드(Mike Bloomfield)라는 기타연주자는 혀를 내두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놀라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 연주음은 마치 수소폭탄이 터지는 것 같았고 유도미사일이 날아다니는 듯 했다. 난 그 앞에서 내 기타조차 꺼내들 수가 없었다.” 당시 큰 소리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그룹 더 후(The Who)의 기타리스트 피트 타운센드(Pete Townshend)와 기타의 신(神)이라는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등 초일류 연주자들도 충격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피트 타운센드는 그 소리를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자 경쟁심이고 뭐고 다 떠나서 지미 헨드릭스의 기념비적인 미국 몬터리 팝 페스티벌(Montery Pop Festival) 데뷔를 주선했으며 에릭 클랩튼은 지미가 죽었을 때 하루종일 슬피 울었다고 한다. 스스로 최고라 뻐기고 있던 그를 긴장시킨 천재의 죽음이 너무나 안타까웠기 때문이었다. 대중음악 역사에서 지미 헨드릭스가 터뜨린 두 가지 혁명적 대사건이 있다. 하나는 상기한 1967년 몬터리 팝 페스티벌에서였고, 다른 하나는 전설적인 1969년의 우드스탁 페스티벌(Woodstock Festival)에서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몬터리 공연에서 그는 < Wild thing >을 연주하고 나서 뜻밖에 기타 앞에 무릎을 꿇더니 거기에 기름을 부어 불을 질러버렸고 마치 의식을 거행하듯 그 기타의 화염을 애무(?)했다. 객석은 순식간에 절정의 도가니로 변했다. 필름과 사진으로 잘 알려진 이 사건은 격동의 1960년대를 주도한 ‘성난 젊은이’의 포효로서, 록의 혈통에 면면히 흐르는 항거와 도발의 전형적 의식(儀式)으로 기록되고 있다. 영국의 음악전문지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New Musical Express)는 록의 가장 충격적인 사건의 하나로 꼽으면서 ‘바로 이 순간 록의 전설이 탄생했다’고 했다. 2년 뒤 우드스탁 축제에서의 사건 또한 너무도 유명하다. 공연 마지막 순서에 나와 일절 딴 악기 없이 오로지 기타만을 가지고, 그것도 다른 곡도 아닌 신성한 미국의 국가 < Star spangled banner >를 ‘린치하듯’ 연주해낸 것이었다(지미는 영국에서 먼저 이름이 났지만 미국 흑인이다). 거기에는 구사된 갖가지 파열음과 소음을 들은 사람들은 즉각 그것이 총격과 포화의 전쟁터를 묘사하고 있는 것임을 알았다. 그 연주는 곧 ‘미국은 현재 전쟁(월남전)중’이라는 암시였고 동시에 기성의 미국에 대한 젊은이들의 저항을 축약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백인 보수적 중산층에게 그는 하나의 공포일 수밖에 없었다. 1968년 민주세력의 염원과 달리 대통령에 당선된 닉슨은 젊은이들의 ‘반(反)문화’를 파악하기 위해 지미 헨드릭스와 만남을 시도했었다는 일화를 남긴다. 지미 헨드릭스는 그리하여 대중음악의 예술성외에 ‘시대성’을 소유한 역사상 드문 인물이다. 그에게는 반드시 기존체제와 질서의 해체를 부르짖었던 1960년대 베이비붐 세대의 카운터 정서를 연주로 대변한 뮤지션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이것이 다른 기타영웅들인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Jimmy Page), 제프 벡(Jeff Beck), 리치 블랙모어(Richie Blackmore) 등과 뚜렷하게 차별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서태지가 그렇듯 하나의 음악가인 동시에 ‘사회적 인사’로서 의미를 지녔던 셈이다. 지미 헨드릭스의 말을 들어본다. “젊은이들은 지금 자신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그들은 크고 거칠고 폭력에 가까운 어떤 것을 찾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록 공연장에 가지 않는다면 폭동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그가 시대와 음악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기타 오케스트레이션’을 창조해낸 데는 전문적인 용어로 ‘피드백’(feedback)과 ‘와우와우’(wah-wah) 주법의 힘이 컸다. 피드백은 기타와 앰프 사이에서 나는 불협화음인 하울링(howling)을 화음의 소리로 들리게 하는 지점을 찾아 사운드를 이어가는 방식을 가리킨다. 와우와우 역시 효과음페달로서 마치 어린아이 우는 소리처럼 들리는 이 이펙터(effector)를 지미 헨드릭스만큼 유효하게 또 인상적으로 다룬 연주자가 없다는 게 정설로 되어있다. 그는 피드백과 와우와우를 통해 당시 젊은이들의 심정을 관통하는, 마치 고통으로 흐느끼고 울부짖는 기타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신음하는 기타, 말하는 기타였다. 더욱이 그의 음악은 슬픈 블루스였고 그 블루스는 지미 헨드릭스에 의해 록의 기반과 뿌리임이 낱낱이 증명되었다. 그를 ‘블루스의 혁명아’로 일컫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가 생전에 남긴 앨범은 1967년의 < Are you experienced > < Axis! bold as love >, 1968년의 < Electric ladyland > 등 3장 밖에 없다. 하지만 연주자나 팬들 그리고 록과 록 기타를 연구하는 사람들한테는 생필품과 같은 작품들로서 모조리 록의 명반으로 꼽힌다. 곡으로는 ‘Hey Joe’ ‘Purple haze’ ‘All along the watchtower’ 그리고 ‘Voodoo child’가 애청된다. 1970년 9월 27살에 요절했지만 그의 천둥 연주는 지금도 쇼크이며, 지금도 아름답고, 지금도 록 무대 특유의 성적 쇼맨십과 오만의 절정을 이룬다. 지금도 그는 많은 기타지망생들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지만 ‘예술성과 시대정신’이 공존하는 그 산을 넘은 사람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도 없다.
연주 : Mike McCready (마이크 맥크레디)
록 밴드 펄 잼의 리드 기타 연주자 록 밴드 펄 잼의 리드 기타 연주자
밴드 : Alice in Chains (앨리스 인 체인스)
1990년대 초반에 개봉된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 주연의 영화 <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 >을 통해서 우리는 미국 북서부에 위치한 시애틀이란 도시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여름을 제외하곤 항상 비를 뿌리는 굿은 날씨 때문에 이 지역 출신 뮤지션들의 음악은 밝거나 경쾌하지 않다. 시애틀의 4인방이라 불리는 너바나(Nirvana), 펄 잼(Pearl Jam),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 1990년대 초반에 개봉된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 주연의 영화 <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 >을 통해서 우리는 미국 북서부에 위치한 시애틀이란 도시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여름을 제외하곤 항상 비를 뿌리는 굿은 날씨 때문에 이 지역 출신 뮤지션들의 음악은 밝거나 경쾌하지 않다. 시애틀의 4인방이라 불리는 너바나(Nirvana), 펄 잼(Pearl Jam),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 사운드가든(Soundgarden)의 음악은 생기 발랄함과는 거리가 있다. 분명 그곳의 날씨가 이들의 음악에 영향을 준 것이다. 이 ‘그런지 빅 4’의 노래들은 한결같이 우울하고 항상 무엇인가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는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공통점 아래, 각 밴드들마다 구별되는 개성을 갖고 있다. 너바나가 펑크에 가깝다면, 펄 잼은 하드록과 더 친하고, 앨리스 인 체인스는 어두운 고딕 메탈적이며, 사운드가든은 정통 헤비메탈에 사이키델릭을 칵테일화한 음악을 추구했다. 1990년 ‘Man in the box’’, ’’Put you down’’, ’’We die young’’이 수록된 앨리스 인 체인스의 데뷔 앨범 < Facelift >가 나왔을 때 많은 메탈 팬들로부터 지지를 얻었다는 것이 그런지와 헤비메탈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증거다. 그런지가 정점을 향해 피치를 올리던 1992년 ‘쇠사슬에 묶인 앨리스’는 1집보다 더 무거운 암흑의 심연으로 듣는 이를 이끈 2번째 앨범 < Dirt >를 발표한다. ‘Sick man’’, ’’Hate to feel’’같은 곡에서는 프로그레시브적인 시도를 함으로써 음악적인 영역을 넓혔다. 이후 베이스 주자가 마이크 스타(Mike Starr)에서 마이크 이네즈(Mike Inez)로 바톤터치를하고 2번째 EP인 < Jars Of Flies >를 선보이는데 바로 이 앨범이 ‘팝 역사상 최초로 앨범 차트 정상에 오른 EP’’라는 영광의 수식어구를 차지한다. 1992년에 나온 첫 번째 EP인 < Sap >처럼 정규 음반과는 달리 어쿠스틱하고 밝은 분위기의 연주곡들 위주로 채색된 이러한 ‘번외’ 음반들을 시도함으로써 한 장르의 틀에 속박되길 거부했다. 보컬리스트 레인 스탈리(Layne Staley)가 헤로인 중독으로 고통받고 있던 1995년 앨리스의 마지막 정규 앨범 < Alice In Chains >가 발표됐다. 블루스적인 ‘Heaven besides you’’를 비롯해 메탈적인 기타 리프가 전작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줄었다. 앨리스의 음악은 기타 연주에 마이너 코드를 사용함으로써 어두운 분위기를 창조한다. 그래서 이들의 노랫말에는 죽음, 절망, 약물, 외로움같은 주제들이 자주 등장한다. 패배주의가 1990년대 X세대의 시대 성격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음악이 인기를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인기나 유행이 아니라 동질성의 공유였다. 제리 칸트렐(Jerry Cantrell)의 무뚝뚝한 기타와 레인 스탈리의 무미건조한 보컬은 듣는 이로 하여금 한번쯤 ‘자포자기’란 단어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고, 어둡고 투박하며 짙은 느낌의 기타 리프는 이 시애틀 밴드가 블랙 사바스의 직계 후손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2002년 4월, 음악만큼 허무한 질감의 목소리를 소유한 레인 스탈리는 시애틀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커트 코베인에 이어 또 다른 위대한 밴드의 리더가 공허하게 우리 곁을 떠남으로써 4월과 얼터너티브 그런지는 계속되는 악연의 역사를 써 내려갔다. 그런지의 4대 거두 중 너바나는 커트 코베인의 자살로 그룹 이름처럼 해탈의 경지에 입적했고, 앨리스 인 체인스와 사운드가든은 역사 속에서만 존재의 자치를 인정받게 되었으며, 펄 잼만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데뷔 시절만큼 신선한 충격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지 음악은 1990년대 초중반에 상업적으로 크나큰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면서 사실상 사망 선고를 받았다. 록은 음악 그 자체만큼이나 그 사상과 사회적 연관성을 간과할 수 없음에도 이러한 장르가 대중화되면서 뮤지션 당사자들의 순수성이나 본질은 외면된 채 너도나도 그런지 음악 형태만 차용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고귀한 이념과 정신을 지키기 위해 커트 코베인이 목숨을 내놓았으며, 앨리스 인 체인스와 사운드가든이 해체했다. 이들은 더 이상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사슬에 묶인 앨리스도 아니다. 역사 속에서 자유로운 앨리스이다. 이제 고인이 된 레인 스탈리는 그 어느 속박에도 묶이지 않는 진정한 ’프리 버드’가 되었다.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은 지친 자신의 육신을 한 자루의 권총과 함께 영원한 열반의 경지로 올려보냈고, 크리스 코넬(Chris Cornell)은 정치 투사로 변신해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에 합류했다. 그런지, 나아가 얼터너티브의 태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인디 레이블인 시애틀 < 서브 팝(Sub Pop) > 출신들의 현재 모습이다. 너바나(Nirvana...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은 지친 자신의 육신을 한 자루의 권총과 함께 영원한 열반의 경지로 올려보냈고, 크리스 코넬(Chris Cornell)은 정치 투사로 변신해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에 합류했다. 그런지, 나아가 얼터너티브의 태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인디 레이블인 시애틀 < 서브 팝(Sub Pop) > 출신들의 현재 모습이다. 너바나(Nirvana)와 사운드가든(Soundgarden)의 예로 알 수 있듯 이제 시애틀 그런지는 죽었다. 그들과 동고동락했던 펄 잼(Pearl Jam)과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도 기력이 쇠하여 예전만 못하다. 그러나 너바나, 사운드가든과 함께 < 서브 팝 >의 트로이카 불리며 그런지를 창조해냈던 머드허니는 메이저 레이블 < 리프라이즈(Reprise) >로 영전하며 아직까지도 그런지의 마지막 숨을 몰아 쉬고 있다. 다른 레이블 동료 밴드들에 비해 세계적인 지명도는 한참 뒤떨어졌지만, 그들은 현재까지 단 한 번의 흐트러짐도 없이 그런지의 전도사로서 복음에 여념이 없다. 1980년대 중반 개라지 밴드 그린 리버(Green River)에서 활동했던 보컬리스트 마크 암(Mark Arm)과 기타리스트 스티브 터너(Steve Turner)가 드러머 댄 피터스(Dan Peters), 베이시스트 매트 러킨(Matt Lukin)과 뜻을 모아 1988년 결성된 머드허니는 보통 ''시애틀 그런지의 파이오니아''로 불린다. 그들이 같은 해 공개한 데뷔 싱글 ''Touch me, I''m sick''은 ''최초의 그런지 송''이자 ''위대한 그런지의 송가''로 남아있다. 스티브 터너의 광대한 기타 디스토션과 마크 암의 분노에 찬 보컬이 2분 30초의 짧은 순간에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여진은 1991년 ''Smells like teen spirit'' 와 ''Alive''를 뒤흔들었다. ''Touch me, I''m sick''의 강·약과 고·저를 적당하게 조절하여 1989년 데뷔작 < Mudhoney >, 1991년 두 번째 앨범 < Every Good Boy Deserves Fudge >을 탄생시킨 그들은 < 서브 팝 >을 떠나 < 리프라이즈 >로 둥지를 옮기고 새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전매 특허인 개라지 펑크는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기타는 으르렁거렸고, 마크 암의 목소리는 비비꼬여있었다. 모든 곡들이 노이즈로 뿌옇게 포장되어 있었다. 1992년 < Piece Of Cake >, 1993년 < Five Dollar Bob''s Mock Cooter Stew >, 1995년 < My Brother The Cow > 등이 그것이다. 데뷔작의 수록곡 ''When tomorrow hits''의 응답인 1998년 앨범 < Tomorrow Hit Today > 이후 신보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지만, 그들은 요즘도 시애틀과 인근 포틀랜드를 오가며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다. 하지만 자신들이 잉태시킨 그런지와 함께 마지막 불꽃을 피우고 활화산의 화염 속으로 스스로 뛰어들려는 이별 연습으로 자꾸만 비치는 까닭은 왜일까.
밴드 : Screaming Trees (스크리밍 트리즈)
부활 속의 위기?! 스매싱 펌킨스가 새 앨범 < Machina/The Machines Of God >를 발표하며 ''희비의 쌍곡선''을 그리고 있다. 1996년 마약 문제로 인해 퇴출당했던 드러머 지미 챔버린이 복직한 신보는 전자 음향의 전작 < Adore >의 악몽을 말끔히 씻어냈다. < 롤링스톤 >은 ''그런지의 난폭함 속에 핑크 플로이드의 이미지를 재건축한 음반''이라며 호평했다. 프로듀서 플러드(Flood... 부활 속의 위기?! 스매싱 펌킨스가 새 앨범 < Machina/The Machines Of God >를 발표하며 ''희비의 쌍곡선''을 그리고 있다. 1996년 마약 문제로 인해 퇴출당했던 드러머 지미 챔버린이 복직한 신보는 전자 음향의 전작 < Adore >의 악몽을 말끔히 씻어냈다. < 롤링스톤 >은 ''그런지의 난폭함 속에 핑크 플로이드의 이미지를 재건축한 음반''이라며 호평했다. 프로듀서 플러드(Flood) 역시 "지미의 컴백은 빌리 코건이 앨범에서 말하고자 하는 중요 포인트"라며 챔버린의 강력한 드럼비트를 반겼다. ''일렉트로닉에서 로큰롤''로 성공적인 회귀. 빌리 코건의 거대 구도아래서 치밀히 계산된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이에 따르는 희생도 컸다. 홍일점 베이시스트 다아시(D''Arcy)가 영화배우를 하겠다며 앨범 < Machina >의 녹음작업을 마친 지난해 9월 그룹을 탈퇴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가 창작인 아닌 연주만 하는 역할에 환멸을 느껴 그만뒀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빈자리는 홀의 멤버 멜리사 아우프 데 마우어(Melissa Auf Der Maur)가 채웠다. 그룹내의 잡음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매니저였던 오지 오스본의 아내 샤론 오스본은 올 1월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했다. "빌리는 나를 아프게 만들었다. 그는 모든 것을 관리 통제한다. 때문에 내가 머물 이유가 없다."며 코건의 독재에 불만을 토로했다. 스매싱 펌킨스측은 이에 대해 그녀를 계약 파기로 고소해 놓은 상태. 이러한 잇단 악재들로 인해 불거진 밴드의 해산설에도 음악감독 빌리 코건은 위풍 당당 아니 오만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나는 다른 멤버들의 재능을 묵살한 게 아니라 스매싱 펌킨스라는 록 밴드의 사운드를 창조하기 위한 조치였다. 멤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나는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자화자찬할 정도로 뛰어난 코건의 음악성. 바로 스매싱 펌킨스가 폐허가 된 얼터너티브의 잔해 속에서 빠져 나와 생존할 수 있었던 핵심 키워드였다. 1988년 시카고에서 결성된 스매싱 펌킨스는 그런지 전성기였던 1991년 데뷔 앨범 < Gish >를 발표하며 음악계에 등단했다. 1960년대 사이키델릭과 1970년대 하드록을 1990년대 식으로 재해석한 앨범은 평단으로부터 ''시대를 변화시킬 역작''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너바나로 대변되는 얼터너티브 장벽은 너무나 높았다. 펑크의 미니멀리즘에 경도된 대중들에게 다양한 록의 스펙트럼을 제시하고자 했던 그들의 음악은 바보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코건은 "3분 짜리 펑크가 아닌 5분 짜리 록을 하고 싶었다."는 자신의 대망(大望)을 1993년 2집 < Siamese Dream >을 통해 실현시켰다. 데뷔작의 업그레이드 판인 이 앨범은 사이키델릭의 날카로움과 선율의 아름다움이 다이내믹한 조화를 이루며 대중성과 실험성을 모두 획득했다. 싱글 ''Today'', ''Disarm'' 등의 히트곡은 빌리 코건을 1990년대 최고의 송 라이터 반열에 올려놓았고 그룹은 이듬해 룰라팔루자 공연의 헤드라이너로 초청되기도 했다. 빌리 코건이 펼친 발군의 음악적 역량은 음악주도권과 여인(그룹 홀의 커트니 러브)을 놓고 한때 자웅을 겨뤘던 커트 코베인이 자살한 후 최고조에 달했다. 스매싱 펌킨스의 1995년 3집 음반 <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 >는 몰락한 얼터너티브 록의 대안을 제시한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그들은 전작들의 전통 록 사운드 패턴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복잡한 코드웍과 수려한 멜로디를 구사하며 반 연주 미학의 거친 소리샘을 잠재웠다. 수록곡 ''Tonight tonight'', ''Bullet with butterfly wings'', ''1979'' 등은 그룹의 인기몰이에 견인차 역할을 했고 앨범은 지구촌을 상대로 6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수작을 만든 아티스트라도 범작이나 졸작이 있게 마련. 스매싱 펌킨스의 1998년 앨범 < Adore >가 그랬다. 그들은 드러머의 공백을 드럼머신과 신시사이저로 대신했다. "록은 죽었다(Rock is dead). 대중들은 우리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출 것이다." 하지만 코건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앨범 판매량은 저조했고 팬들의 관심도 싸늘했다. 그해 발표된 쇼크 록 스타 마릴린 맨슨의 싱글 ''Rock is dead''는 코건의 음악적 변절에 대한 일침이었다. 결국 코건은 그룹의 사운드 메이커 챔버린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코건의 새 앨범 참여 제의는 ''나와 결혼해 주겠어요''라는 말처럼 내게 들렸다." 챔버린의 기쁨에 찬 소감이다. 기대와 설렘을 안고 스매싱 펌킨스는 5집 앨범 < Machina >로 팬들 앞에 다시 섰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죽지 않았어''를 외치는 첫 곡 ''The everlasting gaze''는 강성(强性)의 록이 그들의 음악적 뿌리임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Heavy metal machine'' 또한 마찬가지. 챔버린은 그 동안 묵혀왔던 질주하는 드러밍 솜씨를 ''Stand inside your love'', ''Wound''에서 마음껏 펼치고 있다. 예전의 파워 넘치는 기력을 다시 회복한 것이다. 독단과 독선에는 ''타협의 미학''이 필요하다. 음악 독재자 빌리 코건이 신보에서 수용한 타협점은 드러머의 귀환이 고작이었다. 그룹의 존페론이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이다. 실제로 스매싱 펌프킨의 순항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코건은 얼마 전 그룹이 흔들리고 있다고 실토했다. 이미 멀어져간 마음이 다시 돌아올지는 미지수이다.
밴드 : Blood Circus (블러드 서커스)
그런지 락 밴드 그런지 락 밴드
사운드가든(Soundgarden)은 1984년에 시애틀에서 결성되어 1997년 4월 9일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바로 이 점, 시애틀 출신이라는 태생적 배경 때문에 그런지(Grunge)의 카테고리에 소속되었지만 사운드가든의 음악적 뿌리는 어디까지나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와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영향권 안에 있는 헤비 메탈이었다. < 스핀 >지가 이들을 ’메탈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 사운드가든(Soundgarden)은 1984년에 시애틀에서 결성되어 1997년 4월 9일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바로 이 점, 시애틀 출신이라는 태생적 배경 때문에 그런지(Grunge)의 카테고리에 소속되었지만 사운드가든의 음악적 뿌리는 어디까지나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와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영향권 안에 있는 헤비 메탈이었다. < 스핀 >지가 이들을 ’메탈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메탈 밴드’라 평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즉, 사운드가든이 그런지로 분류되는 것은 음악적인 이유보다는 성장 스토리에 기인한다. 1990년대 얼터너티브 밴드의 전형적인 경력 쌓기라 부를만큼 점진적인 과정 속에 슈퍼 밴드의 지위를 획득했기 때문이다. 기타리스트인 킴 테일(Kim Thayil)과 베이시스트 히로 야마모토(Hiro Yamamoto) 그리고 브루스 파비트(Bruce Pavitt)는 워싱턴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언더그라운드 음악 신에 투신했다. 후에 파비트는 저 유명한 < 서브 팝(Sub Pop) > 레이블을 설립하며 비즈니스로 방향을 선회했고 야마모토는 친구인 크리스 코넬과 그룹 결성의 의지를 다졌다. 여기에 킴 테일과 드러머 맷 카메론(Matt Cameron)이 합류하며 공식적으로 사운드가든이 발족했다. 다음 수순은 예상대로였다. 친구 파비트가 세웠던 서브 팝과 계약한 사운드가든은 1987년과 1988년 EP < Screaming Life >와 미니 앨범 < FOPP >을 연속으로 내놓았다. 두 작품으로 음악성을 인정받은 넷은 수많은 메이저 음반사들의 유혹의 손길에도 불구, < SST >와 손잡고 < Ultramega OK >를 1988년 말에 발매했다. 앨범은 얼터너티브와 메탈 양진영 모두로부터 대환영을 받는 성공을 거두었다. < A&M >으로 배를 갈아탄 뒤 발매한 < Louder Than Love >(1990)는 밴드 역사상 중요한 순간을 일궈낸 수작이었다. < 그래미 >에 노미네이션 되는 쾌거를 이룩한 것. 비록 수상은 못했지만 멤버 모두를 자신감에 충만케 한 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사운드가든은 전국적인 명성을 확보해 나갔다. 아쉽게도 시련은 바로 이즈음에 찾아왔다. 오랜 음악 동지였던 야마모토가 탈퇴하게 된 것이다. 너바나(Nirvana)의 기타리스트였던 제이슨 에버맨(Jason Everman)이 공석을 잠시 메꾸웠고 이후 벤 셰퍼드(Ben Shepard)가 합세하며 다시 4인조로서의 위용을 갖추었다. 전열을 가다듬은 뒤, 1991년에 등장한 < Badmotorfinger >는 불운한 음반이었다. 초반에 앨범 차트 39위까지 오르며 선전하는가 했지만 같은 해의 혁명적 명반이었던 너바나의 < Nevermind >에 밀려 빛을 잃고 말았다. 허나 현재까지 이 앨범을 밴드 최고반으로 꼽는 이가 많을 만큼 높은 수준의 연주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실보다는 득이 많은 시기였다. 너바나가 폭발하면서 시애틀은 새로운 음악 도시로 각광받았고 사운드가든도 그런지 4인방에 소속되면서 집중 조명을 받는 행운을 누렸다. 1994년의 < Superunknown >이 발매되자마자 앨범 차트 1위에 오른 것이 이를 증명한다. 싱글 ’Black hole sun’의 인기와 더불어 3백만장이 넘게 판매되었고 두 개의 < 그래미 >를 거머쥐기도 했다. 1996년에 사운드가든은 < Down on the Upside >로 돌아왔다. 전체적으로 전작의 대중적 버전이었던 앨범은 차트 2위로 등극했고 200만장이 팔리면서 변치 않는 팬층을 과시했다. 하지만 얼터너티브 씬 전체의 하락세와 더불어 사운드가든은 롤라팔루자 헤드라이너 임무를 완수한 직후인 1997년 운항을 중단했다.
펄 잼(Pearl Jam)은 극도로 상업화되고 겉멋에 좌우되는 1980년대 팝에 ‘분노한 젊은이들’의 극단적 음악조치라고 할 그런지와 얼터너티브 록을 대표하는 검투사격 그룹이다. 그들은 너바나와 함께 흐리고 비가 잦은 미국 북서부에 위치한 시애틀에서 발화한 이 반격의 X세대 록을 정점으로 끌어올리며 시대를 갈랐다. 하지만 < Nevermind >에 조금 늦게 공개된 펄 잼의 데뷔작 < Ten >은 당시 판매량과 ... 펄 잼(Pearl Jam)은 극도로 상업화되고 겉멋에 좌우되는 1980년대 팝에 ‘분노한 젊은이들’의 극단적 음악조치라고 할 그런지와 얼터너티브 록을 대표하는 검투사격 그룹이다. 그들은 너바나와 함께 흐리고 비가 잦은 미국 북서부에 위치한 시애틀에서 발화한 이 반격의 X세대 록을 정점으로 끌어올리며 시대를 갈랐다. 하지만 < Nevermind >에 조금 늦게 공개된 펄 잼의 데뷔작 < Ten >은 당시 판매량과 인기에서 앞섰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가치와 역사적 위상에서는 밀려났다. 이른바 ‘2인자 콤플렉스’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활동을 시작한 그런지 1세대 밴드인 마더 러브 본(Mother Love Bone)의 보컬리스트 앤드루 우드(Andrew Wood)가 마약 과용으로 사망하자 기타리스트 스톤 고사드(Stone Gossard)와 베이시스트 제프 아멘트(Jeff Ament)가 에디 베더(Eddie Vedder/보컬), 마이크 맥크리디(Mike McCready/기타), 데이브 크루센(Dave Krusen/드럼)을 규합해 결성했다. 이 5인조 밴드의 음악은 펑크와 하드록의 성분으로 호쾌함을 전해 주는 동시에 소량의 사이키델릭이 칵테일처럼 섞여 있어 몽환적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이들에 대한 지지도가 다른 고향 동료 밴드들보다 미약한 이유는 펄 잼의 노래에는 모던 록에 끌리기 시작한 국내 신세대들에게 소원(疎遠)한 미국적 하드록의 인자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1992년 초 너바나의 역사적인 싱글 ‘Smells like teen spirit’이 빌보드 싱글 차트에 오르면서 그런지 시대를 개막하자 펄 잼은 물론 앨리스 인 체인스, 사운드가든 같은 시애틀 출신의 그런지 밴드들이 일제히 전면에 솟구쳤으며, 펄 잼의 음반 < Ten >도 뒤늦게 인기 대열에 합류했다. 아이들에 대한 사회와 부모들의 무관심을 얘기한 ‘Jeremy’와 X세대의 송가 ‘Alive’ 등은 1990년대 록 씬에 획을 그은 노래들로 이 5인조 밴드에게 확고한 정체성을 확립해 주었다. 특히 에디 베더의 광기 어린 모습이 뇌리에서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Jeremy’의 뮤직비디오 클립은 M-TV 뮤직비디오 시상식에서 여러 부문을 휩쓸면서 얼터너티브의 클래식으로 남았다. 이 음반을 발표한 직후 드럼 주자 데이브 크루센이 데이브 아브루지스로 교체되었으며 1990년대 록페스티벌의 대명사 롤라팔루자와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영화 < 싱글스 > 사운드트랙에 참여하면서 분주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영화 < 싱글스 >에서는 카메오로 직접 출연도 해 달콤한 외도(?)를 즐기기도 했다. 1집의 대대적인 성공은 펄 잼을 인기 밴드로 등극시켜 주었지만 그들은 본격적으로 음반사의 스타 시스템에 대항해 단호하고도 신념에 찬 저항을 시작했다. 좀 더 강렬한 방향으로 사운드스케이프를 꾸려 간 1993년의 두 번째 음반 < Vs >에서는 일체의 싱글도 커트 하지 않았고, 뮤직 비디오 제작도 거부했다. 무엇보다 대규모 공연장에서의 라이브를 지양하고 소규모 공연장에서 자신들의 진정한 팬들과의 인간적인 교감을 중요시했으며 대중음악 상업성을 대표하는 공연 프로모터 티켓마스터(Ticket master)를 상대로 고가의 입장료 반대 투쟁을 시작했다. 달걀로 바위 치기의 이 싸움에서 패소하긴 했지만 펄 잼이 보여준 용기는 록의 진정성에 대한 주위를 환기시키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너바나가 이상주의자라면 펄 잼은 행동주의자였다. 선의의 경쟁자이자 음악적 동지였던 커트 코베인이 자신의 손으로 세상을 마감 한지 8개월 후에 공개된 < Vitalogy >의 분위기는 매우 달랐다. 후반부로 접근할수록 몽롱하면서 발라드 트랙들이 여러 곡 자리하고 있는 것은 절친한 친구를 잃은 펄 잼의 음악적인 고뇌를 반영한 것을 의미한다. 드럼 플레이어가 데이브 아부르지스에서 잭 아이언스로 바뀌면서 팀 내 분위기를 쇄신하고 발표한 이 작품부터 싱글 커트를 재개했다. ‘Tremor christ(18위)’와 모던록 차트 정상을 호령한 ‘Better man(13위)’, ‘Spin the black circle(58위)’, 그리고 ‘Corduroy(53위)’ 등이 팬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섰다. 특히 싱글 ‘Spin the black circle’이 제 38회 그래미에서 최우수 하드록 부문을 수상하면서 펄 잼은 격분한 젊은이들의 치기 어린 반항의 이미지를 넘어 진지하고 솔직한 아티스트로서 승격했음을 알렸다. 마이크 맥크리디는 엘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의 보컬리스트 레인 스탈리(Layne Staley)와 매드 시즌(Mad Season)을 조직해 활동 반경을 넓혔으며, 펄 잼의 멤버 전원이 영원한 우상 그래서 ‘그런지의 대부’로 불린 닐 영(Neil Young)의 < Mirror Ball >에 힘을 보태면서 국경을 초월한 선후배간의 끈끈한 정(情)을 과시했다. 이 무렵 처녀작에 수록된 ‘Jeremy’가 뒤늦게 싱글로 발표되었고 동시에 B면에 자리하고 있던 ‘Yellow ledbetter’도 인기가 동반 상승했다. 특히 싱글이란 개념이 없는 국내에선 록 팬들이 이 곡을 찾기 위해 펄 잼의 1집부터 3집을 구입하는 헛수고를 하거나 수입 음반 취급 점을 찾아 동분서주하기도 했다. 1996년에는 싱글 ‘I got Id(7위)’가 처음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톱10에 진입하면서 히트 싱글을 보유한 밴드를 체험하기도 했다. 제3세계의 영적인 영감과 음악, 그리고 실험주의를 대폭 수용한 1996년의 음반 < No Code >에서 펄 잼의 직선적인 통쾌함은 많이 묽어졌다. 비록 ‘Who are you(31위)’와 ‘Hail Hail(69위)’를 차트에 올렸지만 동지 너바나의 부재(不在)로 인한 커다란 부담감은 음반 제작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입김으로 작용했으며 이것으로 이들은 밴드 결성 6년 만에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뇌하기 시작했다. < No Code >의 실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자신들의 본령을 되찾은 것인지 1998년에 공개한 < Yield >는 다시 하드록에 기반을 둔 본래의 사운드로 회귀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의 록 음악계는 철저하게 변했고 상업화된 얼터너티브와 그런지는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었다. 비록 싱글 ‘Given to fly(21위)’와 ‘Wishlist(47위)’, ‘Do the evolution’이 사랑 받긴 했지만 앨범의 판매력은 현저히 하락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추악한 전쟁 중 하나로 꼽히는 유고 내전 당시 고통받던 코소보 난민을 위해 제작된 음반 < No Boundaries >에서 펄 잼은 J. 프랭크 윌슨(J. Frank Wilson)이 1964년에 히트시킨 ‘Last kiss’를 커버해 빌보드 싱글 차트 2위에 진입했다. 팝의 기류가 틴 팝과 하드코어, 그리고 라틴 댄스로 도배되던 2000년, 이들은 통산 여섯 번째 작품 < Binaural >을 공개했지만 인상적인 반향을 끌어내지 못한 채 서서히 우리 곁을 지나가고 있다. 10년이란 세월은 ‘그런지의 큰 별’ 펄 잼의 날카로운 충격파마저도 무디게 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변화에 단 한번의 불평도 없이 묵묵히 자신들의 길을 걷고 있다. ‘2인자’는 결코 1등의 자리를 빼앗겼다는 식의 패배주의적 뉘앙스가 아님을 1960년대의 롤링 스톤스에 이어 1990년대의 펄 잼은 증명한다. ‘그런지의 살아 있는 역사’라는 점만으로도 펄 잼은 위대하다. 너바나는 ‘짧고 굵게’로 모든 것을 가졌지만 펄 잼은 이 시대가 가장 싫어하는 ‘길게’로서 굵음으로 남으려는 역사와의 고단하고 질긴 투쟁을 전개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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