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YES24 카테고리 리스트

YES24 유틸메뉴

Global YES24안내보기

Global YES24는?

K-POP/K-Drama 관련상품(음반,도서,DVD)을
영문/중문 으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Korean wave shopping mall, sell the
K-POP/K-Drama (CD,DVD,Blu-ray,Book) We aceept PayPal/UnionPay/Alipay
and support English/Chinese Language service

English

作为出售正规 K-POP/K-Drama 相关(CD,图书,DVD) 韩流商品的网站, 支持 中文/英文 等海外结账方式

中文

검색


어깨배너

대한민국 동행세일
7월 혜택모음
설민석
푸 153
네네마트
1/6

빠른분야찾기


윙배너

마우스를 올려주세요.

마케팅 텍스트 배너

웹진채널예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 영화음악 (Guardians Of The Galaxy 2 - Awesome Mix Vol.2 OST)
미리듣기 공유하기
수상내역
예스24 음반 판매 수량은
차트와 차트 집계에 반영됩니다. 한터차트/가온차트 집계 반영 안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OST
CD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 영화음악 (Guardians Of The Galaxy 2 - Awesome Mix Vol.2 OST)

George Harrison, Cat Stevens, Sam Cooke, Glen Campbell, Parliament 노래 외 5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Universal / Walt Disney Records | 2017년 04월 28일 리뷰 총점8.0 정보 더 보기/감추기
음악
4점
디자인/구성
4점
회원리뷰(1건) | 판매지수 666 판매지수란?
상품 가격정보
판매가 18,100원
할인가 14,700 (19% 할인)
YES포인트
추가혜택쿠폰 및 사은품(1종)
추가혜택쿠폰 쿠폰받기
  • 주문금액대별 할인쿠폰
카드혜택
결제혜택
카드할인 정보
카카오페이 카카오페이 3천원 즉시할인 (5만원 이상 결제시, 1회) 자세히 보기
 모바일팝 모바일 4% 즉시할인 (모바일 결제시) 자세히 보기
네이버페이 네이버페이 1% 적립 (전체결제) 자세히 보기
할인/적립 카드 더보기
구매 시 참고사항
구매 시 참고사항
  • 포스터 증정 이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판매중

수량
배송비 : 2,000원 해당 상품과 도서 포함하여 만원
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배송비 안내
  • 해외배송 가능
1/4
광고 AD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 영화음악 (Guardians Of The Galaxy 2 - Awesome Mix Vol.2 OST)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7년 04월 28일
시간, 무게, 크기 110g

관련분류

카테고리 분류
수상내역 및 미디어 추천 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Disc
선택듣기

아티스트 소개 (10명)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룹 비틀스의 한 사람으로 파퓰러 뮤직에 지대한 공헌을 남긴 그는 그룹과 솔로활동에 걸쳐 휘황찬란한 영광과 쓰린 고난의 인생을 살았다. 2001년 11월29일 후두암으로 유명을 달리하면서 존 레논의 죽음과 함께 이제 비틀스는 역사의 장으로 넘어가게 됐다. 비틀스 시절 작곡 콤비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에 눌려 자신의 음악세계 구현에 어려움을 겪던 그는 1970년 그룹 해산 전후에 창작의 힘찬 날...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룹 비틀스의 한 사람으로 파퓰러 뮤직에 지대한 공헌을 남긴 그는 그룹과 솔로활동에 걸쳐 휘황찬란한 영광과 쓰린 고난의 인생을 살았다. 2001년 11월29일 후두암으로 유명을 달리하면서 존 레논의 죽음과 함께 이제 비틀스는 역사의 장으로 넘어가게 됐다. 비틀스 시절 작곡 콤비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에 눌려 자신의 음악세계 구현에 어려움을 겪던 그는 1970년 그룹 해산 전후에 창작의 힘찬 날개를 저으며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Something’ ‘Here comes the sun’ 그리고 비틀 최초의 솔로 1위 곡인 ‘My sweet lord’ 등 불멸의 팝송을 남겼다. 그는 이후에도 ‘What is life’ ‘You’ ‘Crackerbox palace’ ‘All those years ago’ 등의 히트곡으로 독자적인 히트행진을 계속했다. 영국 리버풀의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1943년에 태어나, 열 세 살이던 1956년 레벨스(Rebels)를 결성한 그는 폴 매카트니의 소개로 만난 존 레논과 함께 비틀스를 만들어 팝 역사의 신기원을 창조했다. 그룹 시절 내성적인 성격으로 카리스마 강했던 존과 출중한 능력의 폴이나 사적(私的) 흡인력이 강했던 링고 스타에 비해 돋보이지 못했으나, 그 성실성과 겸손함으로 도리어 비틀 매니아들의 꾸준한 성원을 받았다. 비틀스 시절에 그가 심취한 것은 인도사상과 종교였다. 음악적으로도 인도에 경도되어 인도 벵갈리의 시타르(sitar)의 달인인 라비 샹카(Ravi Shankar)와 교분을 가졌으며 실제로 비틀스의 작품인 ‘Norwegian wood’에서 막 배운 시타르를 연주하기도 했다.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의 수록곡으로 역시 시타르를 연주한 ‘Within you without you’는 인도냄새가 물씬했다. 비틀스가 공식적으로 해산한 1970년 그는 비틀스 멤버 중 최초로 차트 1위를 차지한 ‘My sweet lord’와 이 곡이 실린 3장 짜리 LP < All Thins Must Pass >로 화려한 솔로 활동을 개시했다. 하지만 그의 첫 솔로작품은 전자악기를 실험했고 인도 풍으로 채색된 1968년의 앨범 < Wonderwall Music >이었다. 훗날 브릿 팝 그룹 오아시스(Oasis)의 미국정복을 달성하게 한 곡 ‘Wonderwall’이 바로 이 앨범의 제목을 딴 것이었다. 조지 해리슨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이듬해인 1971년 여름 미국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개최한 ‘방글라데시 자선 콘서트’였다. 그가 주관하여 CBS TV로 미 전역에 중계된 이 행사에는 밥 딜런, 레온 러셀, 에릭 클랩튼, 빌리 프레스톤 그리고 라비 샹카가 동참했고 그 실황은 역시 3장 짜리 LP인 < Concert For Bangla Desh >로 엮어냈다. 이 공연은 1980년대를 장식한 ‘라이브 에이드’ ‘넬슨 만델라 고희공연’ 등 자선공연의 패턴을 미리 제시했다는 평을 받는다. 이 앨범은 이듬해 그래미상의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다. 이 앨범에서 싱글로 내놓은 ‘Bangla desh’는 차트 25위(영국 10위)에 올랐고 1973년 발표한 앨범 < Living In The Material World >에서는 다시 차트 정상을 밟은 곡 ’‘Give me love(give me peace on earth)’가 나왔다. 이 무렵 그는 존 레논과 더불어 세계평화 이념에 봉사했다. 잇단 성공에 고무된 그는 다크 호스(Dark horse)란 이름의 독자 레이블을 설립했고 동명의 앨범 < Dark Horse >를 선보여 ‘Dark horse’(15위) ‘Ding dong; ding dong’(36위)로 준(準)히트를 기록했으나 예상만큼의 호응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 무렵은 아내 패티 보이드(Patti Boyd)와 결혼생활이 흔들리면서 파경상태에 접어들어 앨범에는 블루스의 비애로 가득한 ‘So sad’ 그리고 패티와의 이별을 암시한 에벌리 브라더스의 넘버 ‘Bye bye love’가 수록되었다. 결국 패티는 그의 곁을 떠나 자신에게 변함 없는 열애를 전한 에릭 클랩튼의 품에 안겼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1976년 자신의 대표작인 ‘My sweet lord’가 쉬퐁스(Chiffons)의 ‘He’s so fine’ 일부 멜로디를 무의식적으로 표절했다는 법정판결을 받아 배상금으로 58만7천 달러를 무는 불명예를 당했으며 A&M에 앨범 출반 시기를 어기는 바람에 우여곡절 끝에 음반배급사를 워너 브라더스로 옮기는 진통을 겪었다. 이어 1976년 말에 내놓은 새 앨범 < 33 ⅓ >의 첫 싱글 ‘This song’(25위) 역시 표절의혹에 휩싸이는 등 역경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두 번째 싱글로 낸 ‘Crackerbox palace’는 조지 해리슨 특유의 리듬감과 독특한 음색을 전하면서 차트 19위로 분전했다. 1978년에는 올리비아 아리아스와 재혼하여 활기를 되찾았고 이듬해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앨범과 히트곡 ‘Blow away’(16위)로 건재를 과시했다. 그의 이름이 다시 광채를 발했던 시점은 1981년 고 존 레논에 대한 트리뷰트 ‘All those years ago’가 차트 2위에 올랐을 때였지만 이듬해 낸 독집 < Gone Troppo >는 참패를 면치 못했다(앨범 차트 108위). 이후 그는 음악활동을 중단하고 영화와 TV극 제작에 몰두했으며 1982년에는 자서전 < I Me Mine >(비틀스의 앨범 < Let It Be >에 수록된 조지의 곡명)을 내놓기도 했다. 1987년에는 5년의 공백을 뚫고 그룹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ELO)의 제프 린(Jeff Lynne)이 프로듀스한 앨범 < Cloud Nine >으로 컴백, 싱글 ‘Got my mind set on you’으로 통산 3번째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1962년 제임스 레이(James Ray)의 올드 넘버를 리메이크한 이 곡에 이어 비틀스 시절을 그린 ‘When we was fab’도 차트 23위에 올랐다. 이 곡은 그의 차트 마지막 히트곡이 됐다. 제프 린과의 작업을 계기로 그는 1988년 제프 린이 주도한 프로젝트 그룹 트래블링 윌베리스(Traveling Wilburys)에 참여, 다시 한번 존재를 각인시켰다. 여기에는 그와 제프 린 말고도 록의 초기 거장 로이 오비슨(Roy Orbison) 밥 딜런(Bob Dylan)과 탐 페티(Tom Petty) 등 팝의 거물들이 가세, 5인조 라이업을 취했다. 이들의 첫 앨범 < Taveling Wilburys Vol. 1 >은 차트 3위에 오를 만큼 화제와 성공을 창출했다. 이후에도 조지 해리슨은 1991년 일본공연, 이듬해 그가 따르던 인도사상가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의 내추럴 로우(Natural Law) 신당 출범 공연 등 잇따라 콘서트에 모습을 드러냈다. 1997년 그가 후두암 질환에 시달린다는 공식발표가 나왔고 2000년에는 살해협박과 피습을 당하는 역경도 있었으나 아픈 몸을 이끌고도 영국 자택의 스튜디오에서 음반작업은 지속했다(유작 발표예정). 2001년 11월29일 그는 병마를 이기지 못한 채 유명을 달리했다. 그의 사망소식을 전해들은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는 “나는 비틀스와 함께 성장했다”고 애도했으며 미국의 팬들은 1980년 존 레논이 사망했을 때 추도 장소였던 뉴욕의 센트럴 파크로 돌아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자기성찰과 신(神)에 대한 경배로 삶은 보낸 그에 대해 오랜 친구인 여배우 미아 패로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많은 사람들을 고무시킨 가운데 하나는 평생을 신의 존재 탐구에 바쳤다는 사실이었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나는 조지 해리슨이 신 옆자리에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노래 : Cat Stevens (캣 스티븐스 (유수프 이슬람),Yusuf Islam )
북한에 애인을 남겨두고 남으로 내려온 한 남자의 사랑을 그린 최근 영화 을 보면 주인공인 두 북한 남녀가 놀이공원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 ‘The first cut is the deepest’라는 팝송이 들린다. 첫 사랑이 남긴 깊은 인상을 노래하는 이 곡은 1977년에 로드 스튜어트에 의해 히트되었고, 2003년에는 여가수 셰릴 크로우가 리메이크해 다시 주목을 받았지만 실은 캣 스티븐스가 작곡하고 불렀던 곡... 북한에 애인을 남겨두고 남으로 내려온 한 남자의 사랑을 그린 최근 영화 을 보면 주인공인 두 북한 남녀가 놀이공원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 ‘The first cut is the deepest’라는 팝송이 들린다. 첫 사랑이 남긴 깊은 인상을 노래하는 이 곡은 1977년에 로드 스튜어트에 의해 히트되었고, 2003년에는 여가수 셰릴 크로우가 리메이크해 다시 주목을 받았지만 실은 캣 스티븐스가 작곡하고 불렀던 곡이다. 캣 스티븐스는 1970년대 초중반에 ‘Wild world’, ‘Peace train’, ‘Morning has broken’, ‘Moonshadow’ ‘Oh very young’ ‘Another Saturday night’등 일련의 히트송으로 당시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확보했던 인기 팝가수였다. 그 시절의 히트 퍼레이드는 최고 가수 엘튼 존에 못지않을 만큼 거셌다. 특히 ‘Wild world’는 나중 1993년, 록 그룹 미스터 빅(Mr. Big)이 소개해 줄기차게 전파를 탔고, ‘Morning has broken’은 얼마 전 어린 가수 조셉 맥매너스(Joseph McManners)를 포함해 무수한 가수가 즐겨 부르는 팝의 명곡으로 꼽힌다. 통기타의 찰진 울림을 강조한 그의 음악은 파워가 실린 보컬 덕분에 서정적이면서도 강렬함을 내뿜은 것이 특징이었다. 1966년 그룹 ‘스프링필즈’ 출신의 마이크 허스트가 발굴, 그해 데카의 프로그레시브 록 레이블인 데람(Deram)에서 데뷔 싱글인 ‘I love my dog’을 냈고 세 번째 싱글이자 강한 메시지가 담긴 ‘I’m gonna get me gun’은 영국에서 톱10을 기록했다. 나쁜 건강으로 2년을 쉰 그는 1970년에 완연한 싱어송라이터로 복귀, 앨범 과 이국풍의 싱글 ‘Lady d’Arbanville’을 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때는 이듬해인 1971년 앨범 < Tea For The Tillerman >에서 ‘Wild world’가 미국 차트 11위에 오르는 히트를 치면서였다. (캣 스티븐스가 곡을 썼지만 영국에서 한 해 전 레게 가수 지미 클리프의 노래로 먼저 알려졌다) 같은 해 첫 빌보드 톱10을 기록한 ‘Peace train’과 19세기의 찬송가인 ‘Morning has broken’이 수록된 < Teaser And Firecat >을 비롯해 < Catch Bull At Four >(1972년) < Foreigner >(1972년) < Buddah And The Chocolate Box >(1973년) 등의 성공적인 앨범으로 당대를 풍미했다. 하지만 1979년 이후로 팝 음악계에서 캣 스티븐스라는 이름은 영원히 종적을 감추었다. 그가 이름을 유수프 이슬람(Yusuf Islam)으로 바꾸고 이슬람교도로 개종하면서 서구 팝 무대와 작별해버렸기 때문이다. 인기를 버리고 신념을 택한 것. 그 뒤로 걸프전쟁 등 간혹 뉴스에 등장하기도 했지만 그 멋진 팝 음악은 더 이상 내놓지 않았다. 그렇다고 음악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는 이슬람교도로 평화에 대한 신념을 전파하기 위한 종교와 음악 활동을 지속해왔다. 일례로 딸 하산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앨범 < A Is For Allah >(2000년 재발매)은 서방세계에 불법으로 널리 유통되었다. 1999년에는 기존에 발표한 앨범들을 CD로 리마스터링하는 과정에서 영국 스튜디오에 나타나 화제를 모았으며 이 무렵 영국 BBC는 그의 음악을 다룬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하기도 했다. 2005년, 캣 스티븐스는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쓰나미’ 희생자를 위한 자선음악회를 개최했다. 동시에 자선기금 모금용 앨범 < Indian Ocean >도 만들었다. 그러나 음악 외적인 측면에서 근래 미국과 이슬람국가 간의 갈등으로 인해 그의 대외적 입장은 반미(反美)노선을 취하고 있는 듯 보인다. 실제로 그는 걸프전이나 이라크전쟁을 수행한 미국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는 2004년, 런던 발 워싱턴행 항공기에 탑승했다가 뒤늦게 테러 요주의 인물 리스트에 오른 사실이 확인되면서 미국 입국은커녕 강제 추방을 당했다. 그간 몰래 이슬람 저항단체인 ‘하마스’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비밀이 없고 평화적인 구호 활동을 했다는 것을 안다.”며 혐의를 반박했다. 얼마 뒤에 그는 고르바초프재단이 주는 평화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한편에서는 테러 요주의 인물이요, 다른 한편에서는 평화주의자라는 상반된 대우를 받은 것이다. 입장을 떠나 그의 신념이 지구촌의 평화 정착에 대한 바람에 있음은 분명하다. 한창 팝 가수로 명성을 날릴 시절의 노래 ‘Peace train’이 생생하게 말해준다. 다만 이슬람교도라는 신분 때문에 미국에 대한 반대의 이미지가 유독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 Indian Ocean > 앨범을 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과거 캣 스티븐스로 되돌아간 것이 아니라 이슬람 신도이자 예술가로서 나의 관심사를 표현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나는 이 두 가지 요소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 특히 명분이 옳을 때 더욱 그렇다는 것을 믿는다.” 이 말은 결국 음악을 하되, 인기에 영합하는 식이 아니라 자신의 명분 즉 평화에 대한 신념을 실천하는 음악활동을 하겠다는 뜻이다. 1947년, 그리스 혈통으로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팝 가수 출신임을 감안하면 그의 의식과 행적은 남다르다. 그래서 때로 그는 ‘기인’으로도 통한다. 이런 사실에 관심이 끌리기도 하지만 우리가 캣 스티븐스를 기억하는 것은 훌쩍 30년이 지났어도 그 노래가 선사하는 빼어난 미학이다. 1976년 세계 순회공연실황을 담은 것으로 2004년에 발매된 앨범 < Majikat >가 말해준다. (국내에서도 2006년 라이선스로 발매되었다) 다시 들어보는, 단호하면서도 서정적인 그의 음악은 여전히 아름답다.
노래 : Sam Cooke (샘 쿡 ,Dale Cook)
소울음악을 거론함에 있어 샘 쿡의 위상은 매우 지대하다. 그는 흑백통합의 광맥이었으며 연주자로서뿐 아니라 레코드비즈니스를 아울러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했다. 예술가이자 사업가로서 자신이 갈 인생길을 현명하게 개척해 갔던 것. 그만큼 당대 음악계 전반에 걸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위치는 물론 음반과 출판사를 소유하고 운영할 정도로 그의 관록은 실로 대단했다. 쿡은 그러한 가운데 사회문제에도 ... 소울음악을 거론함에 있어 샘 쿡의 위상은 매우 지대하다. 그는 흑백통합의 광맥이었으며 연주자로서뿐 아니라 레코드비즈니스를 아울러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했다. 예술가이자 사업가로서 자신이 갈 인생길을 현명하게 개척해 갔던 것. 그만큼 당대 음악계 전반에 걸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위치는 물론 음반과 출판사를 소유하고 운영할 정도로 그의 관록은 실로 대단했다. 쿡은 그러한 가운데 사회문제에도 적극 동참했다. 인종차별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던 당시 흑인들의 인권보장을 위한 공민권운동에 열정을 불태운 그는 노래를 통해 흑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그러한 그의 의욕적 활동에 흑인들 모두 지지를 보냈다. 사회활동가로서의 지지도는 장차 그에게 돌아올 사회적 지위와 명성에 다름 아니었다. 흑인과 백인의 인종적 갈등의 조정자로서 그리고 기성과 청춘의 세대적 통합자로서 그의 호소력은 당대의 다른 아티스트들을 모두 아우른 것이었다. 1931년 1월에 태어난 그는 목사인 아버지의 교회합창단에서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시카고로 이주한 후 삼형제와 함께 그룹 활동을 하기도 했던 그는 대중음악의 흐름 또한 놓치지 않았다. 틴 하이웨이 큐씨스(Teen Hightway QCs)라는 성가대의 멤버였던 그는 1950년, 전국적 가스펠그룹 소울 스터러스(Soul Stirrers)에 합류했다. 6년여의 활동기간 중 ‘그의 옷자락을 만질 수만 있다면’(Touch the hem of his garment), ’당신에게 더 가까이‘(Nearer to thee), ’내겐 천국 이었어’(That’s heaven to me)와 같은 노래를 통해 흑인사회의 스타로 부상한 그는 그러나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종교와 흑인계를 넘어 더 많은 청중들에게 다가가는 게 그의 목표였기 때문. 소울 스터러스와 결별한 그는 1956년, 싱글 ‘사랑스러운’(Lovable)을 발표하며 진정한 자아 정체성 탐구를 위한 새로운 첫발을 내디뎠다. 1950년대 가장 많이 팔린 싱글 중 하나가 된 이 곡과 함께 팝과 알앤비 차트 정상을 차지한 ’You send me’는 2백만 장 이상이 팔려나갔다. 가스펠과 팝 R&B 요소가 응집력 있게 혼합된 노래는 당시로선 선구적인 소울 음반이었다. 그는 또한 로맨틱한 발라드와 틴 팝 싱글들을 연이어 발표하며 지속적인 인기를 확보했다. ‘감상적 이유 때문에’(For sentimental reasons), ’모두 차 차 차를 좋아해‘(Everybody loves to cha cha cha), ’겨우 16세‘(Only sixteen),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What a Wonderful world)를 비롯해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yday)에게 바치는 헌정앨범 < Tribute to the Lady >에 실린 노래들까지 당대를 대표할만한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소속사인 킨 레이블에서의 한계를 느낀 그는 메이저 레이블로의 이적을 계획, 콜롬비아(Columbia), 데카(Decca)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큰 3대 레이블 중 하나인 RCA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했다. 음반뿐 아니라 출판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해 왔던 그는 출판사 칵스 뮤직(Kags Music)과 레코드레이블 SAR을 설립해 뮤직비즈니스에 본격 착수했다. RCA에 둥지를 튼 쿡은 차트 2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한 싱글 ’한 사슬에 묶인 옥외 노동죄수들‘(Chain gang, 1960년 싱글2위)로 팝과 소울에 새 지평을 열었으며 블루스적인 로맨틱 ‘슬픈 분위기(Sad mood, 1960년 싱글29위), 목가적 로맨틱 소울 ’큐피드‘(Cupid, 1960년 싱글17위), 보통의 댄스넘버 ‘밤새도록 트위스트를 춰요’(Twistin’ the night away, 1962년 싱글9위), ’나의 집으로 그걸 가져오세요‘(Bring it on home to me, 1962년 싱글13위)’와 같이 다채로운 음악요소와 사회적 인식을 한데 엮어낸 곡들을 내며 왕성한 활동을 펼쳐나갔다. 이 곡들을 포함, 무려 13곡의 히트넘버가 2년간 차트를 장식했다. 틴에이저와 기성세대 그리고 흑인 전 세대에 걸쳐 폭넓은 팬층을 확보한 그는 특히 백인 청취자들에게 더욱 강하게 다가가고자 했다. 흑인뮤지션에게 주로 굳게 닫혀있던 문을 열고자 했던 것. 1957년 초 뉴욕 코파(Copa)에서 연주를 통해 이를 실현코자 했던 그의 시도는 그러나 실패로 돌아왔다. 경험미숙이 문제였다. 1964년 그는 그러나 당당하게 클럽으로 컴백해 라이브실황을 녹음했고 그해 가장 정교한 앨범 중 하나로 꼽히는 수확을 올렸다. 중년과 백인중산층만을 위한 무대가 됐다는 주위의 냉정한 평가가 뒤따르긴 했지만. 1963년 중반 쿡은 마이애미의 할렘 스퀘어 클럽에서의 공연과 실황을 담은 음반으로 자신의 진가를 확증했다. 흑인청취자들과 함께한 그는 땀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열창하며 황홀한 연주무대를 통해 쇼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멜로디와 직설적인 소울 감성이 적절히 어우러진 라이브 레퍼토리들은 그야말로 베스트 오브 베스트였다. 라이브의 황제로 우뚝 선 순간이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1963년 중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닥쳤다. 그의 어린 아들이 익사한 것. 쿡은 그해 말까지 깊은 시름에 잠겨 공식적인 음악활동을 중단했다. 그 기간 동안 그러나 그는 비즈니스 매니저 앨런 클라인(Allen Klein)과 함께 재정적으로 그리고 음악활동을 위한 독립의 발판을 견고히 다졌다. 1963년 11월 초 마침내 그의 레코드들에 대한 최종 소유권을 확보했고 지휘감독권도 성취했다. 그가 다시 음반작업에 들어갈 즈음은 1960년대 초의 저항음악적 흥분과 열기가 한창 고조되고 있을 때였다. 쿡은 흑인들을 포함해 차별받는 소수자들의 치료제와 같이 작용한 밥 딜런(Bob Dylan)의 노래 ‘Blowin’ in the wind’에 크게 감화되었다. 피터, 폴&메리도 그 한복판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커다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의식있는 아티스트들의 이러한 사회적 변화의 움직임에 그도 두팔 걷어부치고 나섰다. 샘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변화(의 시기)는 올 겁니다’(A change is gonna come)가 이때 나왔다. 공민권투쟁의 산물로 나온 가장 위대한 노래중 하나. 가스펠부터 팝까지 다양한 음악성향 안에서 탄생한 이 곡은 그의 가장 위대하고도 우아한 예술적 찬양가였다. 이 시기동안 그는 또한 싱글 ’Shake’ 를 통해 더 진보한 댄스 본위의 소울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이 두 노래는 쿡의 음악여정에 새로운 가속을 알리는 것이었다. 또 다른 전성기를 알리는 장이 열리는 듯 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의 꿈과 희망은 한순간에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1964년 11월 11일 이른 오후, 로스앤젤레스의 저급한 모텔에서 쿡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 언쟁에 휘말려 모텔매니저의 총탄을 맞고 싸늘히 식어갔다. 정확한 사인은 규명되지 않고 미궁으로 남았다. 쿡의 죽음으로 흑인 사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애도의 물결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1965년에 발매된 싱글 ‘A change is gonna come‘과 < Sam Cooke At The Copa > 앨범이 그랬듯 싱글 ‘Shake’는 유작으로 사후 탑 텐 히트를 기록했다.
노래 : Parliament (팔리아먼트 (소울, 훵크 그룹))
밴드 : Electric Light Orchestra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E.L.O.)
밴드 : Jay & The Americans (제이 앤 더 아메리칸스)
멤버 : 하워드 케인(Howard Kane), 존 트레이너(John Traynor), 캐니 벤스(Kenny Vance), 샌디 아구다(Sandy Yaguda), 데이비드 브렛(David Blatt) 멤버 : 하워드 케인(Howard Kane), 존 트레이너(John Traynor), 캐니 벤스(Kenny Vance), 샌디 아구다(Sandy Yaguda), 데이비드 브렛(David Blatt)
1970년대에 ‘Fox on the run’이나 ‘Ballroom blitz’, ‘Action’, ‘Love is like oxygen’ 같은 록 넘버들로 사랑 받은 스위트(Sweet)는 남들이 준 노래를 부르는 뮤지션보다 자신들의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가 되길 원했다. 명 작곡가 콤비인 니키 친(Nicky Chinn)과 마이크 채프만(Mike Chapman)의 노래들로 전성기를 달리던 1970년대 중반에 그들의 ... 1970년대에 ‘Fox on the run’이나 ‘Ballroom blitz’, ‘Action’, ‘Love is like oxygen’ 같은 록 넘버들로 사랑 받은 스위트(Sweet)는 남들이 준 노래를 부르는 뮤지션보다 자신들의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가 되길 원했다. 명 작곡가 콤비인 니키 친(Nicky Chinn)과 마이크 채프만(Mike Chapman)의 노래들로 전성기를 달리던 1970년대 중반에 그들의 도움을 거부하며 ‘Made in Sweet’의 음악으로 평가받고 싶었다. 성공이 보장된 현재대신 불확실한 미래를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전문 작곡가가 수혈한 10대 취향의 버블검 사운드를 뽑아냈던 스위트는 후대에 상대적으로 후한 평가를 받으며 록 역사의 한 칸을 차지한다. 스위트의 보컬리스트 브라이언 코놀리(Brian Connolly)와 드러머 믹 터커(Mick Tucker)는 그룹 결성 이전인 1960년대에 웨인라이츠 젠틀멘(Wainwright’s Gentlemen-딥 퍼플의 보컬리스트 이안 길란이 첫 번째 보컬리스트였다)이라는 그룹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음악에 대한 공감대를 조율했다. 하지만 웨인라이츠 젠틀멘은 단 한 장의 정규 앨범을 공개하지 못한 채 1968년에 해산하자 브라이언과 믹은 새내기 기타리스트 프랭크 토피(Frank Torpey)와 베이시스트 스티브 프리스트(Steve Priest)를 영입해 더 스위트 샵(The Sweet Shop)을 결성했다. 곧 이름을 스위트로 간단명료화 시키며 세계를 향해 웅비할 준비를 갖춘다. 폰타나 레코드에서 발표한 싱글이 주목 받지 못하자 성미 급한(?) 프랭크 토피가 탈퇴하지만 그 후임으로 가입한 앤디 스코트(Andy Scott)는 복덩어리였다. 이후에 스위트는 RCA 레코드사에서 제시한 계약서에 서명을 했고, 음반사에서 당시로서는 무명 작곡 콤비였던 니키 친과 마이크 채프만을 스위트의 전담 작곡가로 점지(?)해 주면서 이름처럼 ‘달콤한’ 성공을 음미하기 시작한다. 1970년대 초반, 니키 친과 마이크 채프만이 작곡한 ‘Little Willy’, ‘Blockbuster’, ‘Ballroom blitz’, ‘The six teens’, ‘Teenage Rampage’ 같은 노래들이 미국과 영국에서 모두 랑데부 히트를 기록했다. 스위트가 이렇게 10대 우상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글램 록에서 영향을 받은 화려한 모습이었다.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나 퀸(Queen), 티 렉스((T-Rex) 등 동시대의 다른 글램 록 뮤지션들과는 달리 스위트의 음악은 쉽고 확실한 멜로디 훅을 가지고 있어 이름처럼 달았다. 바로 이것이 스위트가 버블검과 글램 록에서도 중요하게 언급되는 이유다. 1970년대 중반에 스위트는 니키 친과 마이크 채프만의 몸값을 불려주는 대행업체 역할과 틴에이저 그룹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통해 ‘아티스트’가 되길 원했다. 이 욕심 많은 밴드는 미국에서 5위까지 오른 ‘Fox on the run’과 1970년대에 국내의 9시 뉴스 시그널 음악으로 사용된 ‘Action(20위)’, 그리고 ‘Fever of love’ 같은 하드 록 트랙으로 자립했는데, 이것은 또한 펑크의 ‘네 스스로 하라(Do it yourself)’를 실천한 스위트의 치열한 노력으로 이뤄진 결과였다. 1978년에 공개된 < Level Headed >는 전체적으로 프로그레시브 록을 담아내어 자신들에게 두 번째 자극을 주었다. 수록곡 ‘Love is like oxygen(8위)’과 ‘California nights(76위)’가 히트 밴드로서의 위상을 지켜주었지만 다른 곡들은 아트 록을 지향하고 있으며 심지어 ‘Strong love’는 펑크(funk)를 시도하고 있다. 스위트는 이 음반으로 자신들의 음악에 대한 관심을 넓히고 그 깊이를 서서히 담아냈다. 이 앨범을 끝으로 보컬리스트 브라이언 코놀리(1997년 사망)는 스위트를 떠나고 건반 연주자 개리 모벌리(Gary Moberly)가 가세했지만 더 이상 앞서가는 변화를 보여주지 못하고 1982년에 해산을 선언했다. 하지만 앤디 스코트와 믹 터커는 1989년에 스위트를 재가동시켜 지금까지 런던의 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밴드 : Fleetwood Mac (플리트우드 맥)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은 이글스(The Eagles), 비지스(Bee Gees)와 더불어 70년대 후반 음반 시장의 산업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밴드이다. 1977년작 < Rumours >는 70년대 단일 뮤지션 최다판매 앨범의 기록을 갖고 있을 만큼 상업적으로 성공했다. 1967년 영국에서 결성된 플리트우드 맥은 1970년대 후반 ‘팝화된 록’으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지만 실상 음악적 시작은 블루...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은 이글스(The Eagles), 비지스(Bee Gees)와 더불어 70년대 후반 음반 시장의 산업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밴드이다. 1977년작 < Rumours >는 70년대 단일 뮤지션 최다판매 앨범의 기록을 갖고 있을 만큼 상업적으로 성공했다. 1967년 영국에서 결성된 플리트우드 맥은 1970년대 후반 ‘팝화된 록’으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지만 실상 음악적 시작은 블루스였다. 존 메이올의 블루스브레이커스(John Mayall’s Bluesbreakers) 출신의 두 아티스트 피터 그린(Peter Green, 기타), 믹 플리트우드(Mick Fleetwood, 드럼)가 제레미 스펜서(Jeremy Spencer, 세컨기타), 존 맥비(John McVie, 베이스)를 영입하여 출발했다. 밴드는 1968년 < Peter Green’s Fleetwood Mac >을 발표하여 영국차트 5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둔다. 리듬 부분이 약하다는 판단 하에 세 번째 기타리스트로 대니 커완(Danny Kirwan)을 끌어들여 이후 그의 뛰어난 작곡에 힘입어 성공 행진에 가속을 더한다. 1960년대 말 블루스 붐을 타고 많은 싱글들이 영국차트 10위 권내에 진입했으며, 1970년대 중반까지 거침없는 인기가도를 질주한다. 하지만 밴드는 잦은 멤버 교체로 블루스 그룹으로서의 정체성을 차츰 상실해갔고 게다가 1970년 그룹의 간판인 피터 그린(Peter Green)이 그룹을 떠났고, 그린의 후임으로 크리스틴 퍼펙트(Christine Perfect)를 맞아들여 < Kiln House >를 발표하지만 곧 제레미 스펜서마저 밴드를 떠난다. 새 멤버 밥 웰치(Bob Welch)를 받아들인 후 음악은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변화는 후에 있을 대성공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들은 블루스 음악에서 벗어나 선율을 보강한 팝 성향의 앨범을 연이어 발표한다. < Future Games >와 < Bare Trees >는 이전 블루스에 익숙해 있던 영국 팬들을 혼란 속에 빠지게 했지만 미국시장에서 선전하며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크리스틴 퍼펙트(존 맥비와 결혼하여 이후 Christine McVie로 활동한다.), 밥 웰치, 존 맥비, 믹 플리트우드의 라인업으로 활동하던 이들은 다시 한 번 멤버 교체를 겪는다. 웰치 대신 듀오로 활동하던 스티브 닉스(Stevie Nicks)와 린지 버킹햄(Lindsey Buckingham)을 맞아 들인 것이다. 바로 이 5명이 거대한 성공을 창출한 플리우드 맥 전성기의 주역들이다. 1975년 겨울 미국차트를 장식한 앨범 < Fleetwood Mac >은 500만장이 팔려나가는 스매시 히트를 기록했고 첫 싱글 ‘Over my head(20위)’에 이어 ‘Rhiannon(will you ever win)’과 ‘Say you love me’는 모두 11위에 올라 확실하게 성공의 발판을 다진다. 그리고 1977년 그 유명한 < Rumours >를 발표한다. 앨범은 2,500만장이 팔려나가 마이클 잭슨의 < Thriller >가 나오기 전까지 한 아티스트의 앨범으로서는 가장 많은 판매를 기록한 앨범으로 기네스북에 올랐으며, ‘Go your own way(10위)’에 이어 ‘Dreams(1위)’, ‘Don’t stop(3위)’, ‘You make loving fun(8위)’ 등 싱글 넷이 모조리 톱10을 차지하는 괴력을 발한다. 싱글과는 별도로 ‘Songbird’와 ‘The chains’도 널리 애청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정상의 자리에 오른 순간에 그룹의 결속력은 눈에 띄게 후퇴했다. 부부였던 존 맥비(John McVie)와 크리스틴 맥비(Christine McVie)는 파경을 눈앞에 두고 있었고 연인 사이었던 스티브 닉스(Stevie Nicks)와 린지 버킹햄(Lindsey Buckingham) 역시 애정에 금이 가 있었다. 결국 파경 관련 루머는 사실이 되어 맥비 부부는 이혼하고 스티브와 린지도 갈라서고 만다. 하지만 이런 좋지 않은 결속력으로도 이들은 1980년대 후반까지 < Tusk >(79년), < Mirage >(82년), < Tango In The Night >(87년)에 이르는 히트를 일구어내며 ‘헤쳐 모여’로 성공하는 아이러니를 이어갔다(결속력이 약하다고 음악이 약하지는 않은 법!). 이 시절에도 < Mirage >의 ‘Gypsy(12위)’나 < Tango In The Night >의 ‘Big love(5위)’와 ‘Little lies(4위)’처럼 록이든 발라드 풍이든, 밝은 듯 우울한 이들의 독특한 매력의 곡들은 국내에서도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 이들의 음악적 특성은 기타 톤에서 잘 드러난다. 맑은 톤에 울림을 주어 고음에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유지한다. 바로 이 점이 플리트우드 맥 음악이 록에 대한 거부감을 뚫고 대중을 스며들 수 있었던 주인(主因)으로 분석된다. 1988년 새로운 멤버들로 짜여진 플리트우드 맥은 1990년대 중반까지 라이브 활동으로 일관했고 1997년 < Rumours > 발매 20주년을 맞아 성공의 주역들이 다시 모여 < The Dance >를 발표, 5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저력을 발휘했다.
지난 1979년 소녀들의 비명 소리에 가까운 환호성으로 시작하는 ‘I want you to want me’의 라이브 버전은 그룹 창단 여섯 돌을 맞이하는 칩 트릭(Cheap Trick)에겐 고대하던 성공의 축포였다. 1973년의 공식적인 결성 이후 6년 동안 년(年) 200회 이상의 초인적인 공연을 강행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들에게 당시 전미차트 7위에 오르는 이 곡의 차트정복은 가뭄 속의 단비였다. 칩 트... 지난 1979년 소녀들의 비명 소리에 가까운 환호성으로 시작하는 ‘I want you to want me’의 라이브 버전은 그룹 창단 여섯 돌을 맞이하는 칩 트릭(Cheap Trick)에겐 고대하던 성공의 축포였다. 1973년의 공식적인 결성 이후 6년 동안 년(年) 200회 이상의 초인적인 공연을 강행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들에게 당시 전미차트 7위에 오르는 이 곡의 차트정복은 가뭄 속의 단비였다. 칩 트릭의 신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1973년 미국의 일리노이즈에서 결성된 4인조 팝 록 밴드 칩 트릭의 뿌리는 기타리스트 릭 닐슨(Rick Nielsen)과 베이시스트 톰 피터슨(Tom Petersson)이 1960년대 후반에 결성한 퓨즈(Fuse)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대 초반 현재의 이름 칩 트릭으로 개명하고 번 E. 카를로스(Bun E. Carlos)와 랜디 호건(Randy Hogan)을 각각 드러머와 보컬리스트로 받아들였지만 이들의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그러자 공동 리더인 릭과 톰은 팀의 프론트를 랜디 호건에서 미소년의 외모를 소유한 전직 포크 싱어 로빈 잰더(Robin Zander)로 전격 교체하고 비상을 준비한다. 1977년에 공개된 역사적인 데뷔 앨범 < Cheap Trick >은 비록 싱글 히트곡은 없었지만 비틀스에게서 물려받은 확실한 선율 감각과 더 후(The Who)로부터 전수 받은 듯한 파워풀한 연주가 유머러스한 가사와 앙상블을 이뤄 이들의 재능이 꿈틀대고 있음을 내비친 작품이었다. 같은 해에 나온 < In Color >에서는 2년 뒤 공연 실황 버전으로 차트를 강타하게 될 ‘I want you to want me’가 온전한 스튜디오 버전으로 수록되어 있다. 1978년에 발표된 < Heaven Tonight >도 가능성을 재확인하면서 이들에게 첫 번째 싱글 히트곡 ‘Surrender’(62위)’를 제공했다. 펑크적인 기타 백킹 연주와 팝적인 멜로디가 찰떡 궁합을 과시한 이 곡은 전형적인 칩 트릭 사운드를 구현한 대표적인 노래 중 하나이다. 그동안 이들은 자신들의 조국인 미국보단 태평양 건너에 있는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로빈 잰더의 잘생긴 외모와 귀를 슬슬 잡아당기는 자연스런 멜로디의 매력에 빠진 일본 소녀들은 칩 트릭의 진가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1978년 4월, 이들은 일본의 그 유명한 공연장인 무도관에서 대대적인 공연을 가졌고, 그 열기를 고스란히 담은 음반이 바로 록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 Live At Budokan >이다. 실은 이 앨범도 일본음반자본이 지원해 탄생되었다. 이전의 어떤 음반 못지 않게 화끈한 연주와 후끈 달아오른 현장의 분위기를 실감나게 전달한 이 앨범에서 ‘I want you to want me’와 1950년대 흑인 로큰롤 스타 팻츠 도미노(Fats Domino)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Ain’t that a shame’은 싱글로 커트되어 각각 7위와 35위를 기록하면서 일본, 미국, 유럽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반을 풍미한 버블검 사운드를 표현한 ‘I want you to want me’는 그 앙증맞은 후렴구 때문에 지금까지도 칩 트릭을 정의하는 노래로 남아 있다. 이 LP는 라이브 실황임에도 불구하고 빌보드 앨범 차트 4위까지 올랐고, 3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함으로써 상업적인 면과 음악적인 면 모두를 달성하는 성과를 올렸다. 같은 해인 1979년, 싱글 ‘Voices(32위)’와 ‘Dream police(26위)’가 들어 있는 다음 앨범 < Dream Police >로 확실하게 스타급 밴드의 반열에 올랐지만 비틀스와 아메리카(America)의 프로듀서였던 조지 마틴(George Martin)을 초빙해 제작한 1980년 < All Shook Up >은 과욕 탓인지 제1의 프로듀서와 최고 인기 밴드의 상봉은 융화되지 못한 채 어색한 만남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 앨범 후 톰 피터슨은 그룹을 떠났고, 그 후임으로 존 브랜트(Jon Brant)를 영입해 ‘If you want my love(45위)’와 ‘She’s tight(65위)’가 싱글 차트에 입적한 < One On One >을 발표하면서 팝의 시대인 1980년대를 맞이했다. 그러나 이 무렵 톰이 없는 칩 트릭은 예전과 같은 음악을 뽑아 내지 못한 채 힘겨움을 드러냈다. 상생(相生)의 필요성을 절감한 칩 트릭과 피터슨이 재회한 것은 1988년에 공개한 < Lap Of Luxury > 때였다. 최초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의 영광을 안겨 준 발라드 ‘The Flame’과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원곡을 커버한 ‘Don’t be cruel(4위)’, ‘Ghost town(33위), ’Never had a lot to lose(75위) 등을 4장의 싱글을 토해낸 이 음반으로 칩 트릭은 1980년대의 부진을 걷어내고 재기에 성공했다. 특히 국내에서는 경쾌한 분위기의 ‘Don’t be cruel’이 애청되면서 다시 일어선 칩 트릭의 인기를 주도했다. 1988년 말에는 로빈 잰더가 하트(Heart)의 보컬리스트 앤 윌슨(Ann Wilson)과 함께 멜 깁슨과 미셸 파이퍼가 주연한 영화 < 데킬라 선라이스 >의 주제곡 ‘Surrender to me’를 불러 6위에 랭크 시키기도 했다. 곡은 우리에게 ‘Now and forever’와 ‘Right here waiting’, ‘Endless summer night’ 등으로 널리 알려진 리차드 막스(Richard Marx)가 썼다. 이들의 음악은 1980년대에 등장한 헤비메탈 밴드와 1990년대의 얼터너티브 그룹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전수했다. 후배 뮤지션들은 인터뷰를 통해 “칩 트릭의 힘이 넘치는 기타 리프와 사운드에서 음악적인 영감을 받았다”며 무한한 존경과 신임을 밝힌 바 있다. 특히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는 자신들의 오프닝 무대를 칩 트릭에게 부탁하기도 했으며, 1980년대 팝 시대의 아들들임에도 불구하고 포르노 포 파이러스(Porno for Pyros)의 리더인 페리 파렐(Perry Farrell)이 주창한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 페스티벌의 대명사 롤라팔루자에 참여한 바 있다. 1990년대가 되면서 다시 한번 음악적 침체기를 맞이한 칩 트릭은 현재까지 새로운 음반 제작보다는 데뷔 초기처럼 ‘최고의 라이브 밴드’라는 명성에 걸맞은 줄기찬 공연 활동을 전개하고있다. 칩 트릭의 노래들은 이름처럼 결코 값싸지도 않으며 속임수 또한 아니다. 저항성과 함께 록의 양 날개 중 다른 날개인 ‘대중성’으로 따진다면 이들은 극점에 위치하는 그룹이다. 앞으로도 이들만큼 ‘완벽한 기타 주도의 팝 록 사운드’를 구현한 그룹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회원리뷰 (1건)

매주 10건의 우수리뷰를 선정하여 YES상품권 3만원을 드립니다.
3,000원 이상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일반회원 300원, 마니아회원 6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리뷰쓰기

1명의 YES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리뷰 총점8.0/ 10.0
음악 음악 점수 디자인/구성 디자인/구성 점수 정보 더 보기/감추기 음악
0% (0건)
5점
100% (1건)
4점
0% (0건)
3점
0% (0건)
2점
0% (0건)
1점
디자인/구성
0% (0건)
5점
100% (1건)
4점
0% (0건)
3점
0% (0건)
2점
0% (0건)
1점

한줄평 (6건)

1,000원 이상 구매 후 한줄평 작성 시 일반회원 50원, 마니아회원 1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0/50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배송 안내
배송 구분 YES24 배송
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 포장안내1
  • 포장안내2
  • 포장안내3
  • 포장안내4
포스터 안내
  •  구매하신 상품에 포스터 사은품이 있는 경우, 포스터는 상품 수량과 동일한 수량이 제공됩니다.
  •  포스터는 기본적으로 지관통에 포장되며, 2장 이상의 포스터도 1개의 지관통에 담겨 발송됩니다.
  •  포스터 수량이 많은 경우, 상황에 따라 지관통 추가 및 별도 박스에 포장되어 발송될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반품/교환 방법
  •  마이페이지 > 반품/교환 신청 및 조회, 1:1 문의,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예스이십사(주)
서울시 영등포구 은행로 11, 5층~6층(여의도동,일신빌딩) 대표 : 김석환   개인정보보호책임자 : 권민석 yes24help@yes24.com 사업자등록번호 : 229-81-37000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05-02682호 사업자 정보확인 호스팅 서비스사업자 : 예스이십사(주)
고객만족센터 T.1544-3800
상담 전화번호
  • 중고샵 문의 1566-4295
  • 영화예매 문의 1544-7758
  • 공연예매 문의 1544-6399
1:1 문의하기 자주 묻는 질문 상담시간 안내
YES24 수상내역 정보보호 관리체계 ISMS인증획득 개인정보보호 우수사이트
소비자피해보상보험 서울보증보험
고객님은 안전거래를 위해 현금 등으로 결제 시 저희 쇼핑몰에서 가입한 구매안전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서비스가입사실 확인
EQUUS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