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구도자, 아우렐리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는 마르쿠스가 자신의 마음을 향해 사념하고, 사색하고, 성찰하고, 느낀 바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것은 마르쿠스라는 모체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태아의 관계와 유사하다. 이 둘 사이에는 탯줄을 통해서 피가 흐르고 있다. 그러므로 이 『명상록』을 읽기 위해서는 먼저 마르쿠스라는 인간의 깊숙한 내면을 음미하는 것이 필요하다.
『명상록』은 마음속의 대립을 적은 글이자 자기 분열의 글이며, 모순의 글이다. 그러나 그러한 대립, 분열, 모순을 드러낸다 하여도 만일 마르쿠스의 인품이 이러한 대립, 분열, 모순을 감동적으로 표현하지 못했다면 『명상록』이 오늘날까지도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길 수가 있었을까?
마르쿠스는 숨이 막힐 정도로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의 고백처럼, 약삭빠른 재능과 지혜는 타고나지 않았을지 모르나, 타협하지 않는 철저한 진지함, 인간적 성실함, 근엄함은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었다. 이런 것들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대립과 모순, 자기분열이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고전을 성립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대립과 모순은 이른바 생모와 의붓어머니의 분열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그에게 황제라는 자리에서의 궁정 생활은 세상의 규칙으로 인한 운명이지만 그에게 안락한 생활은 아니었다. 그곳은 추악한 인간들이 꿈틀대고 온갖 악행이 넘쳐흐르며 권모술수가 날뛰는 세계다. 청렴하고 고지식한 마르쿠스로서는 도저히 태연히 머물 수 없는 곳이어서, 그는 격렬하게 분노하고 고뇌하며 궁정을 혐오하고 멸시한다. 그러나 훗날 이러한 기분을 책망하고 예전처럼 마음의 평온을 되돌리려 한다. 한편으로 황제라는 본분의 자각은 그의 완전주의와 스토아적 근엄함을 몰아세워 로마에서도 전쟁터에서도 그에게 완벽한 황제이도록 노력하게 했다. 사실 궁정 생활은 이 세상의 저속한 면이 응축된 것이다. 궁정 생활에 대한 염증은 넓게 보면 추악한 인간에 대한 거부 반응, 인간 혐오로 통한다.
이러한 인간 세상의 규칙과 방해로부터 그를 달래는 것은 생모인 철학이고, 철학의 거처인 내면 세계이다. 본디 소란스럽고 혼잡한 궁정 생활은 철학에 익숙하지 않다. 그렇기에 그는 그만큼 평온한 전원생활을 바랐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동경하는 전원이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말한다. 마음속의 전원에서 그는 철학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그가 생모라고 일컬었던 진실한 철학에서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철학에 마음이 기우는 것은 타고난 것이었다. 아무리 나쁜 상황에 놓여도, 아무리 불충분한 형태라도 거기에서 영혼의 안락함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육체는 궁정에 머물렀지만 영혼은 이 세상을 넘어서 있었다. 이처럼 그는 영혼의 고향에서 떨어져 고향을 그리워하며 이곳 지상의 타향을 떠도는 유랑자였다. 이것이 곧 그의 대립이고 분열이며, 그리고 그는 이 대립과 분열을 극복하고자 우직하리만큼 열심히 살아갔던 것이다.
나 자신에게 이르는 길『명상록』
『명상록』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유일한 저서이다. 원전은 그리스어로 적혀 있고 원제는 『타 에이스 헤아우톤(Ta eis heauton)』으로 직역하면 ‘나 자신에게 보내는 글’, 또는 ‘나 자신에 대한 글’이라는 정도의 의미가 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나 자신에게 ‘보내는 글’ 또는 ‘들려주는 이야기’로 풀이할 수 있다. 또 ‘비망록’이나 ‘훈계’라는 말을 보충하여 ‘나 자신을 위한 비망록’ 이나 ‘자신에 대한 훈계’ 등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또 이 책 속에는 ‘때때로 자기 자신의 내면으로(에이스 헤아우톤) 돌아가서 다시 한 번 분발하라’는 의미의 권고가 자주 나오므로, 원제의 의미를 ‘자기 자신으로 돌아감’ 또는 ‘나 자신에게 이르는 길’ 등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명상록』의 문장 또는 문체는 적어도 세 종류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그 내용이 단순한 메모 정도인 것이나, 그렇지 않더라도 명백하게 스스로에 대한 권고나 격려, 반성 등이 있으며 아무런 기교 없이 대충, 때로는 부주의하게 쓴 것도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주의 깊고 정성들여 쓴 문장으로, 그 속에는 내용적으로 봐도 자기 이외의 다른 독자를 염두에 두고 썼으리라 생각되는 것도 존재한다. 이것은 아우렐리우스가 어릴 때부터 문장수련을 쌓아 왔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 쓴 문장도 자연히 그렇게 정돈된 형태가 되었다고 보아야 할지, 아니면 공간될 가능성을 고려하여 그렇게 쓴 것으로 생각해야 할지, 연구자의 의견이 분분하다. 마지막으로, 다른 책에서 발췌한 문장으로만 이루어진 장도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철학
아우렐리우스가 사상적으로 주로 스토아파 철학에 의거하고 있었음은, 그에게 철학을 가르친 교사들이 주로 스토아파 철학자였던 것에서 추정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명상록』의 내용 자체에서도 거의 확실히 알 수 있다. 그의 윤리적 사상은 에픽테토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행복’을 스토아파 창설자 제논에 따라 ‘생활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이라고 때때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인식론에서도 자연학적 사상에서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철학은 주로 스토아적이다.
『명상록』에서 엿보이는 아우렐리우스의 철학 또한 스토아적이다. 그에 따르면 철학은 이 세계와 삶에서 우리를 수호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철학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자연(본성)의 요구이다. 그리고 철학은 우리가 그것에 기대어 쉬기 위한, 이른바 안식처이다. 궁정 생활과 철학은 어떤 의미에서 대립적이지만, 궁정에 있으면서도 사람은 철학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철학이란 무엇일까. 명시적으로 정의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것은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한 기술이고 신들(또는 전체적인 자연)과 인간의 자연에 대한 인식이다. 그것은 또 자기 안에 깃들어 있는 신적인 것을 더럽히지 않은 것이다.
스토아 윤리학의 특색 가운데 하나는 선악의 정의에서 볼 수 있다. 스토아파는 일반 사람이 흔히 선하다, 악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도덕적인 의미에서의 선악은 완전히 성질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도덕적인 의미에서의 선한 것, 즉 정신의 아름다움인 덕과, 덕에 바탕을 둔 의지와 행위야말로 진실로 선한 것이고, 진실한 악은 정신의 추함인 악덕이라고 규정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우리가 선한 것 또는 악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사물은 대부분, 진실한 선이나 악을 실현하기 위한 소재나 수단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다.
깊은 울림! 숭고한 영혼의 고백
스토아철학을 따른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는 인간을 이성적인 생물로 보았다. 『명상록』에는 인간 이성의 기능으로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언급된다. 첫째 허위와 불확실한 것(표상)을 믿지 않고 진실만을 긍정한다. 둘째 전우주의 형태와 그 영원한 역사를 총관(總觀)한다. 셋째 육체적인 쾌락과 고통의 지각에서 자신을 분리하여 초연함을 유지한다. 넷째 진실한 선만을 애호하고 진실한 악만을 기피한다. 다섯째 이웃을 사랑하고 사회적 공동적으로 유익한 것을 추구한다. 여섯째 주어진 자신의 운명을 전체에 유익한 것으로서 기꺼이 받아들인다.
앞서 언급했듯이 덕이란 정신의 아름다움이고, 정신이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고 있는 상태이다 개개의 덕목으로서는 신중한 판단, 사려분별, 절제, 염치, 온화함, 신의, 진실함 등 많은 것이 열거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중시되는 것은 경건함과 정의이다. 경건함은 운명을 마음속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을 포함하고, 정의는 진실을 이야기하고 이웃에 너그러우며 사회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포함한다. 왜냐하면 정의는 같은 가치를 가진 자에게는 같은 가치를 지닌 것을 배분하기를 요구하며, 모든 이성적 존재자는 어떤 의미에서 같은 가치이기 때문이다.
우주 안의 모든 개체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 소멸하는 덧없는 것이다. 그러나 또 인간의 역사는 같은 종류의 사건의 반복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의 어리석은 행동, 같은 일의 반복이 마르쿠스에게는 이따금 어떤 염세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켜 죽음을 기다리는 심경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명상록』에는 그의 이러한 모든 마음속 대립이 숨김없이 고백되어 있기에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더 없이 숭고한 아우렐리우스 영혼의 고백으로 우리는 참된 삶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로마제국이야기』는 로마의 탄생과 배경부터 로마 공화정의 특징 및 대제국을 쌓아올린 비밀에 얽힌 지식들을 자세히 알려준다. 이 탄탄한 기초지식 위에 로마 황제들의 삶, 널리 알려진 로마인들의 인생이 시간 순서에 따라 펼쳐지면서 그야말로 로마의 건국과, 성장시대, 전환기, 황금시대, 쇠망기의 흐름이 새롭게 정리되어 있다. 우리에게 남겨진 고대 로마의 유산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욱 깊고 더욱 넓다. 로마인들의 성공과 실패 역사는 오롯이 우리 인생의 배움터이자 인간 영혼의 휴식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