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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동감 1 배리어스 오리지널 [재발매]

[ 6CD ]
토이 작곡/장동건, 임재범, 이현우, 이지훈 노래 외 71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Naturally Music | 2017년 04월 14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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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 1 배리어스 오리지널 [재발매]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7년 04월 14일
시간, 무게, 크기 700g

관련분류

카테고리 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CD 1 : 원빈의 테마 - 이별 (총 16곡 수록)
  • 01 정말 그러길 바랄게 - 장동건
  • 02 너를 위해 (동감 OST中) - 임재범
  • 03 요즘 너는 - 이현우
  • 04 인형 - 이지훈
  • 05 슬픈 사랑의 노래 - 이문세 & 이소라
  • 06 마지막 사랑 - 박기영
  • 07 천상연 - CAN
  • 08 Goodbye - 플라워
  • 09 널 보내며 - 홍경민
  • 10 Love - 조장혁
  • 11 약속 - 김범수
  • 12 날 닮은 너 - 임창정
  • 13 Say Goodbye - 페이지 & 김조한
  • 14 미안해요 - 페이지
  • 15 내게 오는 길 - 성시경
  • 16 혼잣말 - 김장훈
CD 2 : 장동건의 테마 - 눈물 (총 17곡 수록)
  • 01 Intro - 장동건
  • 02 다시 이제부터 - 전인권
  • 03 슬픔만은 아니겠죠 - 해바라기
  • 04 이연 - 유익종
  • 05 암연 - 고한우
  • 06 묻어버린 아픔 - 김동환
  • 07 문밖에 있는 그대 - 박강성
  • 08 비원 - 박상민
  • 09 밤의 길목에서 - 김세영
  • 10 나만의 슬픔 - 김돈규
  • 11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김장훈
  • 12 해줄 수 없는 일 - 박효신
  • 13 그대는 어디에 - 임재범
  • 14 마지막 콘서트 - 이승철
  • 15 오랜 방황의 끝 - 김태영
  • 16 다음 세상에서 - 조서연
  • 17 안녕 (어른들은 몰라요 O.S.T) - 산울림
CD 3 : 유오성의 테마 - 여행 (총 19곡 수록)
  • 01 돌고 돌고 돌고 - 윤도현 밴드 & 전인권
  • 02 욕망이란 이름... - 박완규
  • 03 말달리자 - 크라잉 넛
  • 04 차우차우 - 델리스파이스
  • 05 다시 시작해 - 임재범
  • 06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 강산에
  • 07 오늘도 참는다 (주유소 습격작전 OST中) - 배기성
  • 08 연극이 끝나고 난 후 - 김현철 & 낯선사람들
  • 09 휴식같은 친구 - 김민우
  • 10 먼지가 되어 - 이윤수
  • 11 시작 - 박기영
  • 12 조조할인 - 이문세
  • 13 누군가 했더니 - 김현정
  • 14 마지막까지 - 조성모
  • 15 애수 - god
  • 16 불효자는 웁니다 - CAN
  • 17 외면 - 이승철
  • 18 잘못된 만남 - 김건모
  • 19 파란 - 코요테
CD 4 : 구본승의 테마 - 추억 (총 17곡 수록)
  • 01 어떤 그리움 - 이은미
  • 02 사랑보다 깊은 상처 - 임재범
  • 03 행복한 나를 - ECO
  • 04 어머님께 - god
  • 05 헤어진 다음날 - 이현우
  • 06 눈물 - 플라워
  • 07 우미에 - 서영은
  • 08 I Believe - 이수영
  • 09 보이지 않는 사랑 - 신승훈
  • 10 너에게로 또다시 - 변진섭
  • 11 그대가 나에게 - 이승철
  • 12 지금은 알 수 없어 - 김종서
  • 13 넌 할 수 있어 - 강산에
  • 14 먼 훗날에(알바트로스) - 박정운
  • 15 서시 - 신성우
  • 16 무한지애(無恨之愛) - 김정민
  • 17 불멸의 사랑 - 조성모
CD 5 : 정준호의 테마 - 향수 (총 17곡 수록)
  • 01 바람에게 - 윤상
  • 02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 TOY
  • 03 실연 - 조장혁
  • 04 마지막 사랑 - ECO
  • 05 사랑일뿐야 - 김범수
  • 06 당신은 모르실거야 - 조관우
  • 07 LIE - 박화요비8
  • 08 말리꽃 - 이승철
  • 09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해 - 플라워 feat.서영은
  • 10 그녀의 연인에게 - K2
  • 11 안녕 - 이은미
  • 12 은하수 - 박상민
  • 13 각인 - 서문탁
  • 14 어제처럼 - J
  • 15 거짓말처럼 - 김현정
  • 16 후회 - 박혜경
  • 17 부치지 않은 편지 (공동경비구역 JSA OST中) - 김광석
CD 6 : 다섯남자의 테마 - 친구 (총 18곡 수록)
  • 01 자유 - 전인권
  • 02 이등병의 편지 - 김광석
  • 03 옛사랑 - 이문세
  • 04 ...라구요 - 강산에
  • 05 그대 내맘에 들어오면은 - 조덕배
  • 06 애수 - 진시몬
  • 07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 배인숙
  • 08 그대 그리고 나 - 소리새
  • 09 다가기전에 - 이치현과 벗님들
  • 10 가을비 우산속 - 최헌
  • 11 슬픈 계절에 만나요 - 백영규
  • 12 남행열차 - 김수희
  • 13 돌아와요 부산항에 - 조용필
  • 14 아니 벌써 - 산울림
  • 15 흰구름 먹구름 - 딕훼밀리
  • 16 등불 - 영사운드
  • 17 연극이 끝난후(친구OST中) - 샤프
  • 18 돌아와요 해운대(미발표 원곡) - 조용필

아티스트 소개 (76명)

* 마지막 로맨티스트 TOY, 그리고 유희열의 Biography 'TOY = 유희열' 작곡자이자 프로듀서인 유희열의 프로젝트 밴드. 작사, 작곡, 프로듀서, 건반 연주와 일부 보컬을 본인이 담당하며, 다수의 객원 보컬들을 통해 곡들을 표현한다. ARTIST : 1989년 고등학생 시절 김장훈 1집 '햇빛 비추는 날'을 통해 음악계에 등장한 유희열은 이후 서울대학교 작곡과 입학, 1992년 제4회 ... * 마지막 로맨티스트 TOY, 그리고 유희열의 Biography

'TOY = 유희열'
작곡자이자 프로듀서인 유희열의 프로젝트 밴드. 작사, 작곡, 프로듀서, 건반 연주와 일부 보컬을 본인이 담당하며, 다수의 객원 보컬들을 통해 곡들을 표현한다.

ARTIST : 1989년 고등학생 시절 김장훈 1집 '햇빛 비추는 날'을 통해 음악계에 등장한 유희열은 이후 서울대학교 작곡과 입학, 1992년 제4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달빛의 노래'로 대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곡자 활동을 시작한다. 윤정오와 함께 토이를 결성, 1집을 발표했지만 유학(윤정오)과 군입대(유희열)로 인해 공백기를 갖게 됐고, 1996년 유희열 원맨 밴드 형식에 객원보컬 체제를 본격적으로 가동한 2집을 발표하며, 지금까지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바램', '여전히 아름다운지', '스케치북', '좋은 사람', 'Silly Love Song'을 비롯한 수많은 히트곡들을 발표했으며, 이승환, 박정현, 김연우, 이소은, 김장훈, 김형중, 이소라, 성시경, 윤종신, 박효신, 이문세를 비롯한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음반에 프로듀서와 송라이터로 참여하며 셀 수 없이 많은 히트곡들을 양산했다.
DJ : MBC FM4U의 '유희열의 음악도시'(1997년 10월~2001년 3월)를 통해 심야 대표 라디오 DJ로 큰 사랑을 받았고, 역시 MBC FM4U의 '유희열의 올댓뮤직'(2002년 10월~2004년 4월)을 통해 브라질리안, 시부야계, 일렉트로닉을 비롯한 새로운 음악을 전파하는 파이오니아로 거듭났으며, TU DMB의 '라운드 미드나이트'(2005년 5월~2006년 1월)를 통해 편안한 수다와 함께 팬들과 소통해왔다.

- Discography -

1994년 1집 "내 마음 속에"
1996년 2집 "You Hee Yeol"
1997년 3집 "선물(Present)"
1999년 4집 "A Night In Seoul"
"익숙한 그 집 앞" (삽화집+연주 음반)
2000년 "FM 음악도시 유희열입니다" (라디오 프로그램의 기획 컴필레이션)
"Long Live Dream Factory" (프로듀서와 작곡자로 참여)
2001년 "The History of Toy" (초기곡들을 모은 베스트 앨범)
5집 "Fermata"
라이브 앨범 "Toy Live"
2002년 "A Walk Around The Corner" (유희열이 제작한 일렉트로니카 컴필레이션)
2004년 김연우 2집 "연인" (프로듀서 참여)
2007년 "고양이 이야기" (토이의 신곡이 수록된 기획 컴필레이션)
6집 "Thank You"

more information : www.toymusic.co.kr / www.antennamusic.co.kr
한국 최고의 미남 배우라는 수식어와 함께 수많은 여성팬을 거느리고 있는 장동건은 1992년 MBC 21기로 연예계에 데뷔하였다. 이후 TV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과 <마지막 승부> 등에서 잘생긴 외모와 우수에 젖은 눈동자로 큰 인기를 끌었다. 탤런트로 성공한 그는 97년 김희선과 함께 나온 이광훈 감독의 <패자부활전>으로 영화에 데뷔하였지만, 영화에서는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런 장동건이 영화배우로서... 한국 최고의 미남 배우라는 수식어와 함께 수많은 여성팬을 거느리고 있는 장동건은 1992년 MBC 21기로 연예계에 데뷔하였다. 이후 TV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과 <마지막 승부> 등에서 잘생긴 외모와 우수에 젖은 눈동자로 큰 인기를 끌었다. 탤런트로 성공한 그는 97년 김희선과 함께 나온 이광훈 감독의 <패자부활전>으로 영화에 데뷔하였지만, 영화에서는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런 장동건이 영화배우로서 인정을 받은 작품은 역시나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대선배인 안성기, 박중훈과 출연한 이 영화로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였고, 이전까지 꽃미남 탤런트로만 인식하던 그를 관객들은 영화배우로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2000년에는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우리 독립군 의열단에 관한 영화 <아나키스트>에서 세르게이역을 맡아 <영웅본색>의 주윤발과도 같은 멋진 액션씬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 후 <친구>, <태극기 휘날리며> 등의 영화를 거치며 명실공히 흥행보증수표로 자리잡았을 뿐 아니라, <해안선>,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등의 연기변신을 통한 도전과 노력도 게을리 하고 있지 않다.

[필모그래피]

우리들의 천국(TV)(1990)|주연배우
마지막 승부(TV)(1993)|주연배우
패자부활전(1997)|주연배우
홀리데이 인 서울(1997)|주연배우
연풍연가(1999)|주연배우
인정사정 볼것 없다(1999)|주연배우
아나키스트(2000)|주연배우
친구(2001)|주연배우
2009 로스트 메모리즈(2001)|주연배우
해안선(2002)|주연배우
태극기 휘날리며(2004)|이진태
태풍(2005)|씬
무극(2005)|쿤룬
무극+10분단편(2005)|주연배우
태풍(디지털상영)(2005)|주연배우
태풍+10분단편(2005)|주연배우
지구(2007)|기타
지구 (우리말 녹음)(2007)|기타
전사의 길(2010)|주연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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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과 요철로 가득한 길. 가수 임재범이 걸어온 길은 결코 평탄하진 않았다. 그는 편안한 내부에 있을 때에도 항상 풍랑으로 가득한 바깥을 꿈꿨다. 앨범 발표 후마다 기정 사실화된 ‘잠적’은 주류와의 화해를 거부하는 몸짓처럼 보였다. 시나위와 외인부대, 아시아나를 거치며 임재범은 국내 굴지의 록 보컬리스트로 군림하게 된다. 그의 카리스마 가득한 보이스는 시나위의 프론트맨 자리를 계승한 김종서를 제외하면 별다른 맞수... 굴곡과 요철로 가득한 길. 가수 임재범이 걸어온 길은 결코 평탄하진 않았다. 그는 편안한 내부에 있을 때에도 항상 풍랑으로 가득한 바깥을 꿈꿨다. 앨범 발표 후마다 기정 사실화된 ‘잠적’은 주류와의 화해를 거부하는 몸짓처럼 보였다. 시나위와 외인부대, 아시아나를 거치며 임재범은 국내 굴지의 록 보컬리스트로 군림하게 된다. 그의 카리스마 가득한 보이스는 시나위의 프론트맨 자리를 계승한 김종서를 제외하면 별다른 맞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특히 시나위 1집에 실린 ‘크게 라디오를 켜고’와 외인부대 시절의 히트곡 ‘줄리’는 임재범의 역량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명곡이었다. 1991년 < On The Turning Away >를 공개하며 그는 솔로 가수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이 밤이 지나면’이 인기를 얻었지만 뒤이어 터진 불미스러운 일은 임재범의 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을 가했고 그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리고 정말 긴 시간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를 회상하는 사람들도 서서히 지쳐갈 무렵인 1997년 임재범은 두 번째 앨범 < 임재범 Ⅱ >를 들고 나타났다. 첫 번째 앨범에 비해 한층 소울의 맛이 강해지고 가사적으로도 성숙이 드러난 이 음반은 그 동안의 오랜 칩거에 대한 소문을 일소해 버릴 수 있는 수준의 작품이었다. 제법 인기를 모은 ‘그대는 어디에’와 자신의 삶을 고백조로 말하는 듯한 ‘비상’등에서 깊이가 더해진 그의 보이스가 한껏 드러났다. 세 번째 음반 < 고해 >는 록으로의 귀환을 알리는 앨범이었다. 마치 초창기 그룹 시절의 앨 범을 듣는 듯한 강한 리프와 보컬이 압도감을 주었다. 수록곡들은 그의 출신 성분이 어디인지를 역력히 피력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종적을 감췄다. 1999년 박정현과 함께 부른 ‘사랑보다 깊은 상처’가 모 이동통신회사의 CF에 삽입되며 그는 다시 한번 대중들의 주목대상이 됐다. 정작 가수의 행방은 묘연한 가운데 노래는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원래 이 노래는 그의 2집에 실렸던 곡으로 발표 당시에는 별다른 관심을 얻지 못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빛을 보게 된 것이었다. 갑작스레 쏠린 세인들의 시선에 한 번 눈길을 줄만도 했으나 그는 끝까지 침묵으로 응답했다. 그는 역시 ‘인기’라는 것에 즉물적으로 반응할 가수는 아니었다. 다시 오랜 침묵을 걷어 내고 임재범은 2000년 4집 < Story Of Two Years >를 공개했다. 수록곡 중 ‘너를 위해’가 김하늘, 유지태 주연의 영화 < 동감 >에 삽입되면서 그는 다시 한 번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이 됐다. 허나 그는 요란한 메인스트림과는 체질적으로 어울리지 않았다. 별다른 방송 활동 없이 그는 소실점 너머로 멀어져 갔다. 비록 빈번히 자아를 드러내는 가수는 아니지만 임재범의 보컬 소화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고음 역과 저음 역에서 모두 강점을 보이는 그의 목소리는 경이로울 정도다. 가창력을 갖춘 신인이 등장할 때마다 그의 이름이 종종 ‘비교 우위’의 대상으로 언급되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음악을 알리는 데 ‘공중파’라는 것이 ‘정도(正道)’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라이브 무대에서라도 그의 모습을 봤으면 하는 게 팬들의 바램이다. 좀더 유연한 모습을 보일 시기도 됐다.
1997년 차트의 정상을 정복한 ‘헤어진 다음날’은 오랫동안 기억에서 잊혀졌던 한 가수를 부활시켰다. 이 곡의 성공은 이현우(이상원/Jessie Lee, 1966년)를 각종 프로그램의 DJ와 MC로 환대케 했으며 그가 그토록 추구하고 싶었던 록과 뉴웨이브 사운드의 결합에 대한 열망도 이룰 수 있게 했다. 아마도 이토록 화려한 재기는 결코 없었으리라. 이현우는 이미 중학교 시절부터 밴드를 조직하면서 음악에 대한 꿈... 1997년 차트의 정상을 정복한 ‘헤어진 다음날’은 오랫동안 기억에서 잊혀졌던 한 가수를 부활시켰다. 이 곡의 성공은 이현우(이상원/Jessie Lee, 1966년)를 각종 프로그램의 DJ와 MC로 환대케 했으며 그가 그토록 추구하고 싶었던 록과 뉴웨이브 사운드의 결합에 대한 열망도 이룰 수 있게 했다. 아마도 이토록 화려한 재기는 결코 없었으리라. 이현우는 이미 중학교 시절부터 밴드를 조직하면서 음악에 대한 꿈을 꾸었다. 미국으로 이민 가서도 일방통행이라는 그룹을 만들었으며, 미술을 전공하던 대학 때는 Out Low 라는 그룹을 결성하면서 가수로서의 내공을 쌓아놓고 있었다. 그가 1991년에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로 데뷔한 후 후속곡으로 발표한 ‘꿈’은 젊고 오만한 패기가 넘치는 그의 모습과 어우러져 데뷔 후 1년여만에 인기가수로 만들었으며 1992년 KBS에서 10대 가수상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이 전도 유망한 젊은이는 2집 녹음 중 대마초 사건으로 구속되었으며 단숨에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졌다. 부모님의 간절한 지원으로 그가 택한 것은 문차일드라는 록 밴드였다. 그는 신윤철, 김도균, 김민기 등과 5인조로 된 그룹을 만들었으며 라이브무대를 돌며 ‘행복의 나라로’와 ‘아니 벌써’를 부르며 음악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고 갈고 닦았다. 그러나 이미 깊숙한 무명의 자리를 파고든 위치에서 이어지는 지리한 음악에 대한 미련과 갈등은 그를 수없이 많은 회의에 빠지게 했다. 와신상담 끝에 발표한 3집은 과거 발표했지만 묻기엔 아까웠던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나 문차일드 시절 음악에 대한 강렬한 애정을 노래한 ‘나의 노래’ 등을 실었지만 시장에서는 그를 차갑게 외면했다. 하지만 시련의 시간 속에서 정성을 다했던 음악과 달리 쉽고 기분 좋게 만든 ‘헤어진 다음날’이 들어 있는 그의 통산 4집은 그를 팬들의 품안으로 안기게 했다. 1997년에 발표한 < Free Will of My Heart >은 윤희중이 속한 3534, True Master 등의 힙합 뮤지션으로부터 도움을 받았으며 그를 오버그라운드의 TV 카메라 앞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는 MBC의 장수 라이브 프로그램을 김광민과 함께 맡았으며 여러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인기 가수로서의 환대를 받았다. 그가 영화 음악 < 카라 > 이후에 발표한 6집은 ‘닥쳐’나 사창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정육점’에서 알 수 있듯이 조금더 록필에 다가갔다. 데뷔 때의 댄스 음악인에서 발라드로의 성공적인 변신을 한 후 그는 자신의 색깔을 그토록 원했던 록에 맞추고자 했다. 물론 이 앨범에서는 ‘Marry me''와 같은 곡이 인기를 끌었지만 그의 노력은 2001년에 발표한 리믹스 앨범에서도 이어져 그에 대한 투명한 장래를 기약하게 한다. 그는 이후 영화 <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의 주제곡을 불렀으며 노총각 4인방으로 TV를 수놓았던 멤버들과 < 사색동화 >라는 앨범을 발표했고 2001년 3월에는 요리책을 발간했다. 기획사와 앨범 판매고로 진통을 겪기도 했지만 오랜 스토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그는, 이제 자유롭게 자신의 음악을 하기 위한 도약을 하고 있다.
약관의 나이에 CBS 라디오 프로그램 < 세븐틴 >의 MC로 방송계에 입문한 이문세(1959년)는 1980년대 발라드 주자 중 최고의 인기를 누린 가수이자 DJ이다. 그가 작곡가 이영훈을 만나 발표한 1980년대 후반의 명반들은 한 앨범에서 단일 히트곡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곡의 히트곡이 뜰 수 있게 만든 촉발점이 되었으며, 그 전까지 과거의 곡들을 재탕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던 시점에서 앨범의 완성도에 대... 약관의 나이에 CBS 라디오 프로그램 < 세븐틴 >의 MC로 방송계에 입문한 이문세(1959년)는 1980년대 발라드 주자 중 최고의 인기를 누린 가수이자 DJ이다. 그가 작곡가 이영훈을 만나 발표한 1980년대 후반의 명반들은 한 앨범에서 단일 히트곡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곡의 히트곡이 뜰 수 있게 만든 촉발점이 되었으며, 그 전까지 과거의 곡들을 재탕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던 시점에서 앨범의 완성도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을 획득하게 했다. 그의 음반부터 시작된 음반 가격 인상으로 구매자들의 출혈은 심해졌지만 그는 당당히 그 난관을 작품성으로 돌파해 나갔다. ‘나는 아직 모르잖아요’와 ‘휘파람’으로 오랜 꿈이었던 가수로서의 정상에 올라서자, 그의 절대적인 지지자들이 라디오 프로그램 < 별이 빛나는 밤에 >로 모이기 시작했다. 연일 나오는 그의 노래와 모든 중.고생들의 공개방송 방청열풍은 월요일 학생들의 주요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에 나온 그의 4집은 100만장 설을 등에 업고 끊임없는 상승을 거듭했다.

그의 앨범이 없는 학생들은 왕따가 되었으며 그의 노래 한 두 곡 따라 부르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모든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4집의 전곡을 틀었다. 그가 출연하지 않은 TV 가요 순위만 빼고 이문세는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TV 순위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믿음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이런 대외적인 신임에 힘입어 이문세는 이영훈과 합작한 최고의 걸작을 1988년 공개한다. 세상을 떠나는 연인의 이별 곡 ‘시를 위한 시’, 세미 트로트 ‘광화문 연가’, 재즈와 블루스의 합작품 ‘기억의 초상’, 초췌한 회상의 연가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사랑에 빠진 자의 대용물 ‘붉은 노을’, 한 영혼을 차지하고 있는 오랜 연인에 대한 불면의 고백 ‘내 오랜 그녀’ 등이 수록된 이 앨범은 작곡가 이영훈의 이별과 추억에 대한 개인사를 중심으로 만들었으며 그룹 사랑과 평화 출신의 김명곤이 편곡을 주제 했다. 이문세는 이 앨범으로 3연속 골든 디스크 상을 수상했으며 연말의 각종 가수상과 라디오에서의 활약으로 DJ상을 독식했다.

그는 3집으로 정상권에 진입한 뒤 TV에는 출연하지 않았지만 계속 매체의 힘을 빌리며 자신의 입지를 다졌다. 가수로서의 인기가 식은 다음에도 < 별이 빛나는 밤에 >와 TV 프로그램 < 일요일 일요일 밤에 >의 MC로 계속 전업을 이어가며 결코 가수로서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고 이러한 성과는 1996년 김현철, 유희열, 정원영, 황세준 등을 끌어들인 < 화무 >에서 ‘조조할인’의 히트로 빛을 발한다. 청소년들에게 최고의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던 < 별이 빛나는 밤에 >로, 10년 이상 방송한 DJ에게 주는 골든 마우스 상을 수상한 그는 1996년, 이 프로그램을 울음으로 끝맺고 TV의 MC로 자리를 옮겨 < 이문세 쇼 > 등을 진행한다. 그리고 가수 못지 않게 항상 DJ라는 직업의 사랑을 강조해온 그답게 < 2시의 데이트 >라는 MBC 간판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옮겨 매끄러운 말솜씨로 절정의 감각을 발휘한다.

1980년대의 가수들이 무명으로 건너온 1990년대를 방송을 중심으로 바쁘게 뛰어온 이문세는 오랜 파트너 이영훈과 다시 손잡고 13번째 앨범을 2001년에 발표한다. 이 앨범에는 N세대보다는 1980년대 그의 음악을 사랑했던 팬들이 사랑할만한 음악들로 가득 차 있으며 녹록치 않은 이영훈의 감각이 여전히 쓸만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전에 그는 박상원과 < WAD피플 >이라는 매니지먼트 회사를 차리고 헤이(Hey)라는 여가수를 지원하고 있다. 그의 인기의 바탕에는 이영훈과 DJ라는 무시 못할 지원자가 있었던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엔터테이너로서 가지고 있던 뛰어난 기질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특유의 비음을 트레이드마크로 하는 이 풍만한 몸매의 가수는 음반판매량으로 보면 사실상 현존하는 최고의 여가수다. 이소라(1969년), 그녀는 박지윤처럼 충격 요법을 쓰지도 않았고 최근의 여가수들처럼 비주얼한 측면을 강조하지도 않았지만, TV를 외면하고서도 왕관을 쓰고 봉을 잡은 미스코리아처럼 정상에서 반짝거릴 수 있는 몇 안되는 가수 중의 하나로 우뚝 서 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합창단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 ... 특유의 비음을 트레이드마크로 하는 이 풍만한 몸매의 가수는 음반판매량으로 보면 사실상 현존하는 최고의 여가수다. 이소라(1969년), 그녀는 박지윤처럼 충격 요법을 쓰지도 않았고 최근의 여가수들처럼 비주얼한 측면을 강조하지도 않았지만, TV를 외면하고서도 왕관을 쓰고 봉을 잡은 미스코리아처럼 정상에서 반짝거릴 수 있는 몇 안되는 가수 중의 하나로 우뚝 서 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합창단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1991년 화음과 재즈성을 강조한 낯선사람들이라는 그룹에서 특이한 보이스 칼라로 주목받았다. 이들의 공연을 본 김현철은 목소리와 성량에 반해 영화 < 그대 안에 블루 >에 그녀를 초청하였고 이 영화의 동명 타이틀 곡은 김현철은 물론이고 그녀에게도 대중에게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1995년, 그녀의 이름을 달고 나온 공식적인 첫 앨범은 이제껏 여가수에게는 없었던 100만장이라는 판매고의 소문을 낳은 화제작이다. 재즈 가수라는 오해를 낳기도 했던 히트곡 ‘난 행복해’는 단독 콘서트를 가능하게 했으며 공연장을 인파로 가득 차게 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1996년 겨울에 나온 2집 < 영화에서처럼 >도 ‘청혼’이라는 곡을 히트시키며 1집에 버금가는 인기를 지속시켰다. 일견 그녀의 인기는 전적으로 프로듀싱을 한 김현철의 몫으로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2집을 구상하며 조규만에게는 영화 < 아비정전 >의 느낌을 전해주며 ‘쉼’을 만들게 했고 조규찬에게는 < 칼리포니아 >의 느낌으로 ‘화’를 만들게 함으로써 그녀는 최소한이나마 앨범의 주인으로서 입김을 감추지 않았다. 다양한 사운드로 자신감을 얻은 그녀는 3집에서는 언론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록필로 다가갔다. 2집에서와 같이 전곡을 작사한 그녀는 당시 자신의 생각과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는 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대철의 ‘Praise’, 김태원의 ’Curse’ 등을 부르며 닫힌 가슴을 힘차게 분노로 열었다. 조규찬의 음악들이 대부분 포진하고 있지만 < 슬픔과 분노에 관한 >이라는 타이틀답게 그녀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창법을 들이댔으며 한 명의 아티스트로 태어나려는 날개 짓으로 힘을 다 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낮은 판매량을 보인 이 앨범을 뒤로하고 그녀는 다시 김현철의 품안으로 돌아왔다. 가출에서 돌아온 자식같이 그녀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듯, 예전의 그 분위기로 다시 함몰됐으며 박효신과 같이 부른 ‘It’s gonna be rollin’을 제외한 나머지 곡들에서 김현철이 선사하는 편안하고 달콤한 리듬의 세례를 맘껏 녹여냈다. 그리하여 3집의 어둡고 무거움을 무화시킨 음악들은 다시 그녀를 정상으로 끌어올렸고 벗었던 왕관을 되돌려 주었다. 조규찬, 이문세, 유재하 추모 앨범, 한상원, 베이시스, 이승환, 코나, 조트리오, 봄여름가을겨울, 김장훈, 김광석 추모 앨범 등에 참여하며 그녀의 목소리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던 그녀는 1996년부터 해온 인기 장수 프로그램 < 이소라의 프로포즈 >를 관두고 유희열의 바통을 이어받아 < FM 음악도시 >의 시장이 되었으며 한 차례 라이브 앨범을 발매한 뒤 2002년 10월에는 다섯 번째 앨범 < SoRa’s 5 Diary >를 발표했다. 직접 프로듀싱을 맡은 이 앨범에는 언더 그라운드의 새로운 기수들인 , 자화상의 나원주, 델리스파이스의 김민규, 불독맨션의 이한철, 루시드 폴의 조윤석 등과 작업을 했으며 이들의 어쿠스틱한 사운드가 김현철의 프로그래밍을 대신하고 있다.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가수 생활을 한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노래를 부르는 것뿐만 아니라 곡을 쓰고 프로듀서로도 활동하는 대한민국 대표 '여성 싱어 송 라이터'이다. 하지만 10년이라는 시간이 달콤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박기영이라는 이름을 걸고 음악을 사랑하기엔 세상은 너무나 묽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운명처럼 '산티아고 가는 길'을 만났다. 그렇게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향해 걸음을 내딛었고, 순...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가수 생활을 한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노래를 부르는 것뿐만 아니라 곡을 쓰고 프로듀서로도 활동하는 대한민국 대표 '여성 싱어 송 라이터'이다. 하지만 10년이라는 시간이 달콤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박기영이라는 이름을 걸고 음악을 사랑하기엔 세상은 너무나 묽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운명처럼 '산티아고 가는 길'을 만났다. 그렇게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향해 걸음을 내딛었고, 순례를 마친 지금 그녀는 '진짜' 박기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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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도 장사가 안돼는 록이라는 장르를 여가수가 표방한다는 것은 이 땅에서 명백히 모험이다. 밴드 속에서 자우림의 김윤아와 롤러코스터의 조원선, 그리고 작곡은 하지 않지만 주주클럽의 주다인 정도가 고군분투하고 있는 국내 록 시장에서의 솔로는 서문탁, 박혜경, 박기영 등이 있다. 이들은 분명 소수지만 일천한 우리 록 음악계에 조금이라도 다른 색을 넣으려는 몇 안돼는 선두주자들이다. 박기영(동물원과 거리의 시인들에도 같은 이름의 남자가 있다)은 데뷔하기 전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었다. 그녀는 초등학교시절 피아노로 두 차례의 전국대회를 수상한 경험이 있으며 탤런트 박은혜의 소개로 고등학교 때는 <가위 바위 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가서 당당히 1등을 차지해 1개월간 프로그램에 고정출연하기도 했다. 또한 연말 결선에서의 1등으로 담당 PD에 의해 서태지와 아이들의 매니저였던 김철을 소개받는다. 중 3때 처음으로 밴드에 들어간 그녀는 대학 시절에도 블루레인이란 밴드에서 공연을 하며 자신의 분위기를 찾을 수 있었고 여기에서의 활동으로 데뷔 앨범을 발표하는데 많은 정신적 힘을 얻었다. 1998년에 발표한 앨범은 그룹 미스 미스터의 기타리스트 김민정이 작곡한 ‘기억하고 있니’가 라디오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대중에게 알려졌다. 시원한 듯하면서 허스키함이 앳된 그녀의 목소리에 실린 앨범 수록곡들은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지만, 앨범보다는 다른 가수의 게스트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여기서 그녀는 청중을 주도하는 뛰어난 리더십으로 심지어 앵콜을 받아내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을 초래하기도 했다. 그녀의 곡이 4곡 들어가며 좀 더 록의 모습에 가까워진 2집은 발매되자마자 ‘시작’이 라디오에서 끊이지 않으면서 인기를 얻었다. 이 곡과 후속곡으로 인기를 얻은 ‘마지막 사랑’의 힘을 얻어 앨범판매고는 20만장을 넘겼다. 경쾌한 모던 록 ‘우리 사이’과 ‘약속’, 아프리카 토속악기로 신비감을 입힌 ‘사막의 문’, 김종서의 멜로디 라인이 살아 있는 ‘With me''가 수록된 이 앨범은 특히 그녀가 만든 곡들이 독특한 어두움을 발산하며 자기의 색깔을 분명히 한다. ‘밀레니엄’은 록의 기운을 맘껏 느낄 수 있는 대곡으로 그녀가 생각하는 세상 속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얼터너티브한 사운드가 빛나는 ‘내가 생각했던 세상은’에서는 현실에 동화되어 가는 자신을 채찍질하는 그녀를 느낄 수 있다. 수없이 많은 공연과 축제에 게스트로 불려나간 그녀는 밴드와 1년여간 호흡을 맞추며 새롭게 편곡을 한 곡들로 2집 마무리 공연을 했다. 그러나 무리한 스케줄의 강행군으로 성대결절이라는 병을 얻고 두 달간 절대 안정의 시간 속으로 의지해야만 했다. 2집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그녀는 “제가 만든 노래를 많이 부르고 싶어요”라던 자신의 소원을 실현시킨 앨범을 들고 다시 찾아왔다. 작사, 작곡은 물론 편곡과 디렉팅까지 손을 댄 그녀의 욕심은 하드록, 얼터너티브, 모던록, 록큰롤 등 자신이 하고자 했던 록의 색채를 맘껏 집어넣었다. 펑키한 ‘Intro''를 지나 3집 활동기간 내내 사랑을 받은 ’Blue sky'', ‘마지막 사랑’을 연상시키는 모던록 ‘널 보낸 나를’, 서우영이 참여한 ‘어두운 상상’, 윤도현, 홍경민이 같이 한 ‘혼잣말’ 등의 곡들이 포진되어 있는 이 앨범은 전작처럼 시장에서 많은 사랑을 받진 못했지만 그녀의 골수 팬들을 더욱 만족시켰으며 록커로서 그녀의 이름을 되새긴 앨범이다. 모든 곡으로 앨범을 만든 그녀가 앞으로 나아갈 길은 “진짜 음악을 사랑할 줄 알고, 들을 줄 알고, 판단할 줄 아는 대중이 되길 바랍니다”라는 그녀의 메시지처럼 그러한 음악을 실현시키는 일일 것이다.

- 제공 : IZM (www.izm.co.kr)
멤버 : 배기성(보컬), 이종원(보컬) 독일의 크라우트 록(Kraut rock) 밴드인 캔(Can)과 똑같은 이름의 이 밴드는, TV에 나와 재담과 입담으로 인기를 얻기 전까지는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았다. 음악적인 평가보다는 광대의 인상으로 인지도를 넓힌 이들이 앞으로 극복해야 할 것은 개인기뿐만 아니라 음악에 대한 실력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박상민이 히트시킨 ‘무기여 잘 있거라’와 ‘애원’의 ... 멤버 : 배기성(보컬), 이종원(보컬)

독일의 크라우트 록(Kraut rock) 밴드인 캔(Can)과 똑같은 이름의 이 밴드는, TV에 나와 재담과 입담으로 인기를 얻기 전까지는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았다. 음악적인 평가보다는 광대의 인상으로 인지도를 넓힌 이들이 앞으로 극복해야 할 것은 개인기뿐만 아니라 음악에 대한 실력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박상민이 히트시킨 ‘무기여 잘 있거라’와 ‘애원’의 작곡가인 유해준은 자신의 곡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해 그룹 모자이크의 보컬로 활동했던 이종원과 팀을 이뤄 작업을 한다. 박상민이 소속되어 있던 소속사의 이름이자 기획사의 제작자 닉네임인 캔으로 이름을 정한 이들은 1998년 사랑의 아픔을 표현한 ‘천상연’이 들어 있는 데뷔작을 내 놓는다. 이태원 등에서 밴드 활동을 한 유해준은 데모 테입을 들고 뛰어다닌 끝에 이 기획사에 손이 닿았고 이종원은 미국에서 엔지니어링을 공부한 재원으로 음악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고 있던 꿈나무였다. 이들의 첫 앨범에는 장혜진과 유해준이 같이 부른 ‘선인장’, IMF 시대를 뚫고 나가자는 ‘Happy day'', 철없는 자식의 사랑이야기 ‘불효자는 웁니다’, ''70년대 말 히트했던 피버스의 ‘그대로 그렇게’ 가 리메이크 되어 있다. 하지만 소속사의 위기로 앨범 활동을 전혀 하지 못한 이들은 유해준이 박상민, 박완규, 장혜진, 이승훈 등의 앨범에 참여하는 음악감독으로 따로 활동하고, 기존 멤버 이종원에 배기성을 받아들여 2집을 발표한다. MBC 대학가요제에서 ‘노을진 바다’로 은상을 수상한 배기성은 이종원이 영화 < 주유소 습격 사건 >에서 ‘희망가’로 참여했을 때 사운드 트랙에서 ‘오늘도 참는다’를 부른 것이 계기가 되어 알게됐다. 미성의 이종원과 걸쭉한 음성으로 뽑아 올리는 스타일의 배기성이 참여한 2집은 72인조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Forever Love’와 드라마 < 뜨거운 것이 좋아 >에 삽입되어 앨범의 판매고에 한몫 한 ‘Dream away'', 이종원과 배기성이 각각 솔로로 부른 리메이크 곡 ‘우리들이 함께 있는 밤’과 ‘Endless love'' TV에서 게스트로 출연해 개인기로 인기를 얻은 후에 나온 ’Dr Can''등 록에서 팝 발라드, 애시드 재즈 등의 다양한 레퍼토리를 담았다. 음반에는 곡을 소화하는 능력이 뛰어난 재량이 출중하게 담겨져 있지만 이들은 곡이나 앨범보다는 토크쇼의 게스트로 나와 재주를 펼쳐 보이며 인기를 얻는다. 특히 연극에 많이 출연한 경험이 있는 배기성은 입담은 물론 다른 가수의 흉내를 내며 많이 얼굴을 알린다. 대학로에서 < 대학로 습격사건 >이라는 제목으로 코믹무비를 지향하는 공연을 벌이기도 한 이들은 이후 나온 < Winter Story >에서 ‘겨울이야기’로 인기를 얻었으며 2001년에 유해준이 참여했던 1집을 다시 이들만의 목소리로 담아 출반 해 그냥 묻히기는 아쉬운 과거를 다시 복원했다.
멤버 : 고유진(보컬), 김우디(베이스), 고성진(기타) 1960년대 후반부터 1070년 초.중반까지의 청년 문화 중에서 히피족들이 반전 사상과 함께 자연 회귀론을 제창하던 플라워무브먼트(Flower Movement)라는 운동의 와중에 태어난 김우디와 고성진은 기존의 형식에 반기를 드는 음악 자세를 담으려는 의미로 밴드의 이름을 이 운동에서 따왔다. 우디 알렌을 좋아해 이름을 바꾼 김우디는 중학교 시절부터 ... 멤버 : 고유진(보컬), 김우디(베이스), 고성진(기타)

1960년대 후반부터 1070년 초.중반까지의 청년 문화 중에서 히피족들이 반전 사상과 함께 자연 회귀론을 제창하던 플라워무브먼트(Flower Movement)라는 운동의 와중에 태어난 김우디와 고성진은 기존의 형식에 반기를 드는 음악 자세를 담으려는 의미로 밴드의 이름을 이 운동에서 따왔다. 우디 알렌을 좋아해 이름을 바꾼 김우디는 중학교 시절부터 스쿨밴드를 거치면서 손무현의 더블 트러블에서 베이스를 맡은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박선주, 김정민 등에게 곡을 주면서 작곡가로도 데뷔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역시 스쿨밴드를 경험한 고성진은 김정민에게 ‘무한지애’, 안재욱에게 ‘Forever'' 등을 작곡해 주었으며 이 외에도 이지훈, 박지윤, 이동건, 박상민, 김민종 등에게 곡을 주며 이름을 알렸다. 팀의 막내로 들어온 보컬의 고유진은 성악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으로, 그가 수면위로 부상한 것은 꿈 많은 예비 스타들의 통로인 < 별밤 뽐내기 대회 >에서 미스터 빅(Mr. Big)의 ‘To be with you’라는 곡으로 입상하면서부터였다. 포크록 위주의 첫 번째 음반은 사운드는 복고풍이지만 멜로디는 ''90년대의 정서를 담은 록음악이다. 이들의 공연장을 가득 메운 팬들을 매료시킨 ‘눈물’은 여성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해 거세를 해야했던 카스트라토의 생애를 그린 영화 < 파리넬리 >의 주제곡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의 일부를 곡의 앞부분에 따온 것으로, 이 영화에서 ‘울게 하소서’를 부르는 장면을 본 플라워의 멤버들은 평소 남성과 여성의 보컬을 동시에 내는 카운터 테너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고유진의 특기를 살려 그 구절을 넣은 ‘눈물’을 만들었다. 이 곡은 고음의 매력을 한껏 살린 만화 < 스노우맨(Snow Man) >의 주제곡 ‘Walking in the air''와 더불어 초창기 이들 공연의 카리스마를 확인할 수 있는 곡이다. 이외에도 이들의 첫 앨범에는 객원보컬 서영은의 맑은 목소리로 소년.소녀 가장에게 들려주는 발라드곡 ‘힘겨워하는 아이들을 위하여’와 복고풍의 ‘저버린 약속들’ 등 농익은 연주실력이 돋보이는 노래들이 실려있다. 이어 나온 이들의 2집 < Bloom >은 데뷔앨범에서 가지고 있었던 음악적 장르의 한계를 허물며 ‘밴드’를 강조한 재킷에서 알 수 있듯이 록밴드로서의 기치를 높이 세우려는 시도를 했다. 1집의 연장선상에 있는 ‘플라워''라는 곡이 서두를 장식하고 있지만 힙합, 네오펑크, 하드코어, 얼터너티브, 록앤롤까지 아우르는 이들의 음악적 색깔은 전작에 비해 보다 자유롭고 다양하게 변주되어 있다. 이들은 또한 자신들의 콘서트에 왔던 연출진의 권유로 드라마 < 눈꽃 >의 주제가 ‘Endless''를 불러 인기 차트 상위권에 랭크 시키는 저력을 보였으며 이 곡을 타이틀로 한 < 소품집 >이라는 앨범을 냈다. 시끄럽고 복잡한 음악보다는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음악으로 쉬어 가고 싶었다는 이 앨범은 SKY, 김정민, 안재욱 등 발라드 가수들의 노래를 작사해온 하해룡이 쓴 사랑과 이별에 대한 노래말을 주제로 한 앨범으로 < 해룡이의 sad love story >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 브리지 앨범에는 김정민의 ''Yesterday''와 안재욱의 ''Forever'' 등을 리메이크 했고 다양한 편곡이 돋보이는 피아노와 기타 연주곡이 담겨 소품집의 특색을 살리며 비교적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그러나 인기 스타의 대열에 들진 못했던 이들을 알린 것은 뭐니뭐니해도 쇼프로그램에 나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고유진의 폭넓은 음역에서 우러나오는 김경호를 비롯한 가수들에 대한 모창이다.
2000년 라틴댄스를 표방한 ‘흔들린 우정’으로 메인 스트림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홍경민(본명 : 홍성민, 1976년)의 이력은 록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홍경민의 성공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음악으로 성공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 사회에 대한 우울한 보고서이다. 언젠가는 그룹으로 돌아가 자신의 음악적 기원을 찾고자하는 이 청년의 지금 상황을 트로이의 목마라고 부를 수 있을까? 홍경민이 음악이라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자하... 2000년 라틴댄스를 표방한 ‘흔들린 우정’으로 메인 스트림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홍경민(본명 : 홍성민, 1976년)의 이력은 록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홍경민의 성공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음악으로 성공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 사회에 대한 우울한 보고서이다. 언젠가는 그룹으로 돌아가 자신의 음악적 기원을 찾고자하는 이 청년의 지금 상황을 트로이의 목마라고 부를 수 있을까? 홍경민이 음악이라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자하는 계기의 처음 시작은 그가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고 경청하는 신해철의 데뷔 무대인 무한궤도에 대한 추억으로 시작한다. 대학가요제에서 무한궤도를 본 순간 그는 계시를 받은 듯 이끌렸고 친구들과 그룹을 만들었다. 재수 시절에는 ETC란 그룹을 만들었으며 이후에는 GUM이란 그룹으로 활동했다. 가수로의 꿈을 품에 안은 채 연습과 공연으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낸 그가 처음으로 오디션에 응시한 것은 1995년 김건모, 신승훈을 배출한 덕윤산업 이였다. 하지만 그는 당시 같이 오디션 동기인 S.E.S의 바다와 함께 계약에 실패하고 만다. 이후 태진아가 운영하는 프로덕션에서는 소속 댄스그룹 ART의 멤버로 활동하라고 권유하기도 했지만 그는 당시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이듬해의 레코드사와 전속계약은 회사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비운을 맛보았다. 탤런트로서의 전업을 권유받기도 했던 그가 발표한 1997년의 첫 독집과 이후 나온 2집은 발라드 가수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데 그쳤다. 데뷔 앨범에서 ‘이제는’이 사랑을 받았지만 확실한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이 앨범에는 과거를 떨치자는 내용의 ‘이제는’ 이외에 조규만의 ‘그대 푸른 바다를 사랑하는가’, 유영석의 ‘체념’ 그가 직접 곡을 만들었으며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이라는 ‘돼지에게’ 등이 수록되어 있다. 그의 두 번째 앨범은 신촌뮤직 장고웅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그룹 넥스트의 전면적인 도움을 얻고 이경섭, 하광훈 등의 인기 작곡가를 포진했다. 축구스타 고정수와 탤런트 김정은이 출연해 화제를 모은 뮤직 비디오 ‘내 남은 사랑을 위해’가 기대를 모으고 라이브 콘서트로 뜨거운 열기를 몰았지만 1집 이상 가는 인기를 확보하지는 못했다. 이 앨범에는 신해철의 ‘50년 후의 내 모습’과 김민우가 불러 인기를 끌었던 ‘휴식 같은 친구’가 리메이크 되어 있다. 그의 음악인생의 극적인 반전은 댄스 음악으로 ''9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김창환의 조련으로 시작됐다. 김창환은 TV에서 라이브 프로그램을 보며 그의 숨겨진 끼를 찾아냈고 어떻게든 가수로서 자리를 잡아야겠다는 홍경민의 강박관념은 스타일의 변신을 자연스럽게 몰고 왔다. 그는 새 앨범에서 자신의 곡을 한 곡도 실지 않았으며 새롭게 시작하는 각오로 김창환의 방법론에만 매달렸다. ‘흔들린 우정’은 공중파를 휘어잡았으며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의 변형판인 가사는 젊은이들 사이에 공감대를 얻어냈다. 그는 이 라틴댄스로 ‘느끼마틴’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후속곡 ‘널 보내며’로도 많은 인기를 모았다. 이 인기로 유리상자의 앨범에서 ‘우리 모두 여기에’의 한 부분을 부르기도 한 그는 KBS 2TV의 < 드라마시티 >, SBS 청춘시트콤 < 골뱅이 > 등에 출연하는 등 연기에도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2001년, 그는 예상보다 빨리 4집을 들고 나타났다. 이번에도 라틴 댄스를 접목시킨 강렬한 리듬의 ‘가져가’가 타이틀이고 ‘첨이야’는 후속곡으로 인기를 모았다.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그는 더 가수로서의 인기를 다지겠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노래로 승부 하는 이들을 가수라 칭하지만 비주얼한 감각에 과부하가 걸린 순위 프로그램이 득세하는 현실에선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이 되려 어색해 보이는 작금의 세태 속에서도 소신 있게 라이브를 고집하는 가수들도 있다. 조장혁이 바로 그러한 경우다. 결코 쉬운 곡을 부르지 않으면서도 방송에서 매번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주는 조장혁은 지금까지 앨범 세 장을 내놓은 뮤지션이다. 199... 노래로 승부 하는 이들을 가수라 칭하지만 비주얼한 감각에 과부하가 걸린 순위 프로그램이 득세하는 현실에선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이 되려 어색해 보이는 작금의 세태 속에서도 소신 있게 라이브를 고집하는 가수들도 있다. 조장혁이 바로 그러한 경우다. 결코 쉬운 곡을 부르지 않으면서도 방송에서 매번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주는 조장혁은 지금까지 앨범 세 장을 내놓은 뮤지션이다. 1996년 공개한 데뷔작 < 그대 떠나가도 >에선 드라마 < 별은 내 가슴에 >에 삽입된 ‘그대 떠나가도’가 히트를 기록했으나 정작 본인은 주목받지 못했다. 2년 후에 나온 두 번째 음반 < In Side Your Heart >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실연’, ‘안녕’같은 곡들이 조금 인기를 모았을 뿐이었다. 2000년 발표된 3집 앨범 < Love >가 받은 뜨거운 관심은 ‘요행수’가 아니었다. 타이틀 곡 ‘중독된 사랑’의 뮤직비디오를 위해 수억의 돈과 박진희, 안재욱이라는 스타가 동원된 것은 이차적인 문제였다. 보컬의 폭이 한층 깊어지고, 중량감이 더해졌다. 물론 이전부터 그는 발라드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쩍 힘이 붙은 것은 이 음반부터였다. 차트에 진입한 ‘중독된 사랑’, ‘러브’외의 다른 곡들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가 직접 곡을 쓰는 싱어 송라이터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스스로 작품을 마름질하고 세공 할 수 있기에 곡들은 과장 없이도 감성을 전달하는데 무리가 없다.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음성으로 이야기한다. 사랑의 절절함과 아픔, 애뜻함을 주로 노래하는 발라드는 가요계의 우점종(優占種)은 아니라 해도 대중들이 흥미를 잃어버린 장르도 역시 아니다. 댄스의 위세에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발라드는 아직까지는 시장에서 유효한 상품이다. 특히 일정 수준 이상의 가창력이 담보돼야 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받는다. 조장혁은 발라드 음악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급조되지 않았기에 곡들은 더 자연스럽다. 약간은 틀에 박힌 형식만 잘 추스릴 수 있다면 보다 양질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뮤지션이다.
김범수는 ’90년대에 선보인 마켓팅 전략을 한꺼번에 다 보여준 가수이다. 하광훈이 전폭 지원한 그의 첫 번째 앨범에 수록된 ‘약속’은 드라마의 영상을 타고 인기를 끌었으며 그의 두 번째 앨범은 리메이크와 뮤직 비디오, 조성모가 덕을 본 ‘얼굴 없는 가수’ 전략이라는 총력전을 펼쳐 결국 ‘하루’라는 곡을 알리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고도로 산업화된 음악계는 이제 노래 실력만으로는 힘들게 되었다. 시대의 추세를 거스르... 김범수는 ’90년대에 선보인 마켓팅 전략을 한꺼번에 다 보여준 가수이다. 하광훈이 전폭 지원한 그의 첫 번째 앨범에 수록된 ‘약속’은 드라마의 영상을 타고 인기를 끌었으며 그의 두 번째 앨범은 리메이크와 뮤직 비디오, 조성모가 덕을 본 ‘얼굴 없는 가수’ 전략이라는 총력전을 펼쳐 결국 ‘하루’라는 곡을 알리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고도로 산업화된 음악계는 이제 노래 실력만으로는 힘들게 되었다. 시대의 추세를 거스르긴 힘들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분명히 아티스트가 가져야 할 예술적 자세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김범수는 ‘귀로’를 히트시켰던 박선주와 만나 R.ef의 음반에 참여하며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 그의 데뷔 앨범은 R&B의 향기로 진득하다. 타이틀 곡 ‘약속’을 비롯해 김민우의 곡을 R&B 버전으로 바꾼 ‘사랑일 뿐야’, 조지 벤슨(George Benson)의 재즈 넘버 ‘This Masquerade’, 펑키(funky)한 R&B를 담아낸 ‘첫사랑’, 힙합풍의 ‘너의 시작으로’까지 그의 구슬프면서 허스키한 목소리는 약간 다른 냄새를 풍기는 R&B를 만들었다. 그는 곧 TV 일일극 < 보고 또 보고 >에 ‘약속’을 테마곡으로 사용해 상당한 주가를 올렸으며 흐느끼는 목소리로 < 백만 송이 장미 >라는 드라마에서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곡을 불러 시청자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의 1집은 뮤직비디오에 배우 명세빈, 김석훈이 출연한 타이틀곡 ‘약속’이 라디오에서 선전한 것에 비해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진 못했다. 2000년 말에 발표한 그의 두 번째 앨범은 리메이크곡을 대거 수록해 ’90년대에 한 경향으로 자리잡은 리메이크 앨범이라는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이 중 첫 번째로 민 곡은 고 김현식이 불렀던 원소스에 자신의 노래를 담아 듀엣으로 만든 ‘비처럼 음악처럼’이였다. 하지만 소울적인 김현식의 목소리에 R&B적 감성이 깃든 이 곡을 팬들은 좋아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원곡을 망쳤다는 비난을 쏟아 부었다. 신인수의 ‘눈물과 바꾼 사랑’, 김형석의 ‘하루만 더’ 등의 신곡 중에서 그는 윤일상이 만든 ‘하루’라는 곡을 후속곡으로 발표한다. 뮤직 비디오는 5억을 들여 캐나다에서 촬영했으며 드라마 < 가을동화 >의 신화를 창조한 송혜교, 송승헌이 참여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수 없이 반복된 비디오 클립은 라디오로 이어졌고 다시 판매량으로 직결되었다. 앨범에는 ‘비처럼 음악처럼’ 이외에도 이현도의 랩을 들을 수 있는 김종찬의 ‘사랑이 저만치 가네’, 김광민의 피아노 선율로 표현한 유재하의 ‘그대와 영원히’ 등이 수록되어 있다. 김현식을 존경하는 그는 김현식의 트리뷰트 앨범에 ‘눈 내리던 겨울밤’으로 참여하고 < 순수 >라는 드라마에서 ‘웨딩드레스를 불러 외모는 가리웠어도 목소리는 꾸준히 대중의 귀에 익숙하게 만들었다. 외모에 자신이 없다고 말하던 그는 “가수는 외모가 아니라 노래로 승부 해야 한다”고 말해 한때 음반사와의 마켓팅 전략에 대치되는 문제로 사이가 소원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하루’의 성공으로 드디어 인기가수의 반열에 올랐으며 이어 발표한 2.5집도 같은 전략으로 밀고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성향은 브라운 아이즈, 왁스, 최진영 등에 의해 대중화 됨으로써 이제는 그렇게 특이하지 않은 것으로 변해 버렸다. 국내에서 사랑받는 가수가 된 그는 2001년 12월, ’하루’를 영어 버전으로 만든 ’Hello, goodbye, hello’로 미국 빌보드 차트에 명함을 내민 최초의 한국 가수가 되었다.
임창정은 가수와 예능인, 배우로서 모두 일정 수준의 성공을 거둔 만능 엔터테이너다. 출발은 영화배우였지만 곧 가수로도 성공하였으며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발군의 재능을 뽐내며 1990년대와 2000년대 최고의 멀티 엔터테이너 연예인으로 활동했다. 현재도 연기와 음악을 병행하며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가녀린 미성의 발라드 곡을 주로 하는 임창정의 음악 세계다. 1990년 영화 "남부"에 출연하면서 데뷔, 멀... 임창정은 가수와 예능인, 배우로서 모두 일정 수준의 성공을 거둔 만능 엔터테이너다. 출발은 영화배우였지만 곧 가수로도 성공하였으며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발군의 재능을 뽐내며 1990년대와 2000년대 최고의 멀티 엔터테이너 연예인으로 활동했다. 현재도 연기와 음악을 병행하며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가녀린 미성의 발라드 곡을 주로 하는 임창정의 음악 세계다.

1990년 영화 "남부"에 출연하면서 데뷔, 멀티 엔터테이너의 길을 걷게 된다. 1993년에는 "동숭동연가"를 통해 뮤지컬 배우로서도 데뷔했으며, 1995년 자신의 첫 정규앨범 [이미 나에게로]를 발매했다. 정규 3집 [그때 또다시]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가요계에서 먼저 성공을 맛보게 된다. 김형석 작곡가의 힘을 빌린 앨범에서는 잔잔한 발라드곡 '그때 또다시'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결혼해 줘', '지킬게' 등 연타석 흥행 곡이 터져 나오며 그 해 KBS "가요대상" 대상, "골든디스크" 본상을 수상했다.

1998년 발매된 4집 [4th Album]에서는 댄스곡 '늑대와 함께 춤을'과 발라드 곡 '별이 되어'가 히트하며 인기를 이어갔다. 이듬해 다섯 번째 정규 앨범에서는 'Love Affair'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사랑받았으며, 조규만이 프로듀싱을 맡은 여섯 번째 앨범[White]에서는 고난도 댄스로 주목받은 '기쁜 우리'와 발라드 곡 '나의 연인'이 히트했다. 같은 해 [www.Love.7th]에서도'날 닮은 너', 'www.사랑.com'가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식지 않는 임창정 표 음악의 인기를 증명했다.

이듬해 [Different Color]에서는 '미련', '기다리는 이유'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3집과 6집, 8집이 임창정 최고의 앨범이라는 여론에 힘을 실었다. 2002년 [C.J. 2002]를 발매하였고, 이 앨범으로 그 해의 SBS "가요대전" 본상을 수상함으로써 1997년부터 연속 6년으로 "가요대전" 본상을 수상한 아티스트가 되었다.

2003년 자신이 공약했던 "10장의 앨범 후 연기를 위해 음악 활동 중단"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규 10집 앨범 [Bye]를 끝으로 음악계 잠정 은퇴를 선언한다. 마지막 앨범의 타이틀곡은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소주 한 잔'이었다. 음악 활동의 휴지기 동안 임창정은 8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영화배우로서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9년 3월 10일, 임창정 표 발라드 '오랜만이야'를 타이틀로 한 그의 음악계 컴백 앨범 [Return To My World]가 발매되었다. '소주 한 잔'의 작곡가 이동원의 작품인 '오랜만이야'는 오랜만의 컴백에 힘을 실어주었지만 긴 공백기로 인해 기대한 만큼의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임창정은 그 해 뮤지컬 "빨래"에 출연하였고, 이듬해 뮤지컬 "라디오스타"에 출연하는 등 음악적으로 다시금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2014년 정규 12집 [흔한 노래……. 흔한 멜로디]를 발매하여 정석적인 발라드 곡 '흔한 노래'는 발라드 장인 임창정의 매력을 대중에게 다시 한 번 어필한 곡이었다.

영화와 음악계에서 종횡무진 활동하던 2015년, '소주 한 잔' 같은 히트곡이 탄생한다. 임창정의 첫 미니 앨범 [또다시 사랑]의 타이틀곡 '또다시 사랑'은 임창정이 직접 작사 작곡해 깊은 감성을 담았으며, "히든싱어 시즌4" 방송 이후 역주행을 시작해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했다. 2015년 9월에 발매되어 차트 반영 기간이 3개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멜론 연간 차트 1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흥행에 이어 이듬해인 2016년 발표된 신곡 '내가 저지른 사랑'이 발매하자마자 음원 차트 1위에 랭크되었고, 엄청난 고음에도 흔들리지 않는 라이브 실력을 선보였다.

2018년 9월, [하루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를 발표, 동명의 타이틀곡으로 발매 직후 음원 차트 최상위권에 진입해 변하지 않은 영향력을 증명했다.
1997년 제대로 된 인터뷰도 없이 솔리드가 해체됐을 때 김조한의 솔로 데뷔에 대한 가능성은 당연한 것 이였다. 솔리드의 리더는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정재윤 이였지만 그룹에서 김조한의 목소리를 빼놓고서 솔리드를 상상하기란 사실 불가능했다. 그의 목소리는 작곡가 김형석이 최고로 인정하는 부분이며 깊은 바이브레이션과 서투른 억양으로 대표되는 음색은 솔리드를 R&B 그룹으로 만들게 된 주요 원인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 1997년 제대로 된 인터뷰도 없이 솔리드가 해체됐을 때 김조한의 솔로 데뷔에 대한 가능성은 당연한 것 이였다. 솔리드의 리더는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정재윤 이였지만 그룹에서 김조한의 목소리를 빼놓고서 솔리드를 상상하기란 사실 불가능했다. 그의 목소리는 작곡가 김형석이 최고로 인정하는 부분이며 깊은 바이브레이션과 서투른 억양으로 대표되는 음색은 솔리드를 R&B 그룹으로 만들게 된 주요 원인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모색이 있은 후에 그는 완벽한 앨범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첫 앨범의 제작을 위해 수 십 시간을 차 타고 오가며 뮤지션들을 섭외 했으며 자기의 음악적 고집을 내세워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끝까지 세션들을 괴롭혔다. 음악에 대한 강한 열정은 노래에 그치지 않고 편곡을 비롯한 사운드의 조화로까지 이어졌다. 세 명이 아닌 혼자라는 것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것은 외로움 이였고 부담감 이였다. 목소리를 들으면, 그는 어려서부터 노래만 잘했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그는 어릴 때부터 6년간 바이올린을 배웠으며 한때는 친구들과 어울려 바비 브라운(Bobby Brown)과 MC 해머(MC Hammer)의 춤을 모방하며 2년여간 랩만을 탐구하기도 했다. 그 시절 좋지 않은 환경의 경험은 그를 교회로 이끌었고 이 곳에서 솔리드의 조율사 정재윤을 만났다. 물론 그와 함께 작업함으로써 R&B로 굳혀지긴 했지만, 그의 몸과 마음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은 사실 여러 장르의 음악이다. 그는 교회에서 R&B뿐만 아니라 흑인들의 소울적인 가스펠 창법에 영향을 받게 된다. 이러한 스타일은 솔리드 시절의 음악들로 대번에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솔리드 3집 때부터 작곡에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노력은 그의 첫 앨범에서 대부분의 곡을 작곡함으로써 일련의 성과를 얻게 된다. 그의 첫 앨범에는 솔리드의 멤버인 정재윤과 이준이 도움 준 것을 비롯해 휘트니 휴스턴(Whitney),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셀린 디온(Celine Dion)의 기타세션을 맡았던 레이 퓰러(Ray Fuller),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와 작업한 바 있는 베이시스트 애이브 라보리엘(Abe Laboriel) 등의 세션이 대거 참여해 완성도를 높였다. 솔로 1집과 1999년에 100여 명의 팬들과 같이 ‘Thank you my friend''를 불렀던 2집은 뛰어난 구성에도 불구하고 솔리드 시절에 비해 그렇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의 가창력은 여전히 다른 아티스트들의 표적과 동시에 기준점이 되고 있으며 표현력은 이후 등장한 R&B 주자들의 표준이 되고 있다. 2000년에는 일본에서 싱글 앨범을 발매한 김조한은 2001년 1월에 발표한 3집에서 보다 부드러워지고 편안해진 분위기와 그전보다 성숙해진 목소리와 팝적인 사운드로 우리를 새로운 음악의 경지로 초대하고 있다.
심플하고 깔끔한 목소리와 인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성시경은 인터넷 음악 전문 사이트에서 개최한 < 뜨악 페스티벌 >에 참가해 입상하면서 가수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 페스티벌이 기존의 가요제와 다른 건, 창작 가요제가 아니라 기성 작곡가로부터 미리 받은 여러 곡 중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곡을 골라 부른다는 점이었다. 김형석, 윤일상, 유승범, 이윤상, 신인수, 강은경 등의 베테랑들이 참여한 가운데 성시경은... 심플하고 깔끔한 목소리와 인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성시경은 인터넷 음악 전문 사이트에서 개최한 < 뜨악 페스티벌 >에 참가해 입상하면서 가수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 페스티벌이 기존의 가요제와 다른 건, 창작 가요제가 아니라 기성 작곡가로부터 미리 받은 여러 곡 중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곡을 골라 부른다는 점이었다. 김형석, 윤일상, 유승범, 이윤상, 신인수, 강은경 등의 베테랑들이 참여한 가운데 성시경은 김형석의 곡을 불러 입상했다. 이 대회의 입상자들이 발매한 앨범 < 발악 >에서 ‘내게 오는 길’과 ‘못 할거야’라는 곡을 녹음한 성시경은 김형석이 만들고 김조한이 코러스를 넣어 준 ‘내게 오는 길’이 라디오 청취자들의 신청을 많이 받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인기를 얻어 갔다. 이 곡은 오케스트라의 세련된 연주와 편곡, 사진가와 수녀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을 테마로 한 뮤직 비디오 등이 화제를 모으며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는 인기에 힘입어 데뷔 앨범을 발표한다. 2001년 발표한 성시경의 데뷔 앨범은 김형석, 박승화, 유희열, 이현승 등의 작곡가들이 참여해 완성도를 높여 주고 있으며 짙은 호소력으로 부드럽게 다가오는 그의 목소리에 차분히 감겨오는 곡들로 가득 채우고 있다. 타이틀 곡 ‘처음처럼’으로 TV와 라디오에서 맹활약 중이며 이 외에도 ‘포용’, ‘내 안의 그대’, 리메이크 곡인 프로젝트 그룹 토이의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차세대 발라드계의 선두 주자로 온갖 기대를 받고 있는 그는 높아져 가는 인기만큼이나 도처에서 생겨나는 팬클럽의 수에 기뻐하고 있으며 여러 방송국의 게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한때 김장훈은 정말 노래만 불렀다. 그의 노래제목처럼. 적어도 그가 말하는 이른바 ‘소파 생활’을 할 때는 그랬다. 때는 대략 1994년에서 1997년 사이다. 경원대학교 영문과실 소파에 앉아 밤이건 낮이건 언제나 노래만 불렀다. 오죽했으면 옆 과실에서 자던 학우들이 새벽녘 느닷없이 포효하는 그의 거친 노랫소리에 놀라 깼다는 에피소드가 들릴까.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다. 그는 이제 더 이상 고단했던 소파 생활은 ... 한때 김장훈은 정말 노래만 불렀다. 그의 노래제목처럼. 적어도 그가 말하는 이른바 ‘소파 생활’을 할 때는 그랬다. 때는 대략 1994년에서 1997년 사이다. 경원대학교 영문과실 소파에 앉아 밤이건 낮이건 언제나 노래만 불렀다. 오죽했으면 옆 과실에서 자던 학우들이 새벽녘 느닷없이 포효하는 그의 거친 노랫소리에 놀라 깼다는 에피소드가 들릴까.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다. 그는 이제 더 이상 고단했던 소파 생활은 하지 않는다. 발라드 ‘나와 같다면’의 히트로 그는 지루했던 언더 아닌 언더 생활을 청산하고 주류 연예계에 입성했다. 이후 그가 보여준 활약은 참 눈부셨다. 처음 출발은 < 이소라의 프로포즈 >. 토크와 라이브가 결합된 이 프로그램은 김장훈의 진면목을 발휘하기에 아주 적합한 무대였다. 이승환, 박상민과 더불어 가요계 만담꾼 빅3라 할 정도로 말재주가 뛰어난 그는 이소라의 넋이 나갈 정도로 사람들을 웃겼다(어쩌면 ‘웃기다’는 것이 요즘 팬들에겐 처음 떠오르는 그의 이미지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이러한 김장훈의 ‘놀라운’ 재능이 소문나자 방송국들은 앞다퉈 그를 섭외 했다. 그의 노래 ‘나와 같다면’이 큰사랑을 받았지만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노래보단 그의 ‘입심’을 더 원했다. 김장훈은 그 요구를 가능한 한 모두 수용했다. 그래서 < 김혜수의 플러스 유 > 같은 토크쇼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 이소라의 프로포즈 >에서는 ‘최대 출연자’라는 영예도 얻었다. 이제 그는 노래만 부르지는 않는다. 종종 ‘개인기’도 척척 해내며, 팬들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망가지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이제 그를 엔터테이너라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그렇지만 예전의 그를 알던 일부 사람들은 그의 요즘모습을 보고 변절이라 욕한다. 도대체 그가 예전엔 무엇을 했다고 그런 비난을 하는 건지? 김장훈을 개그맨 정도로 여기거나 최근에 그를 알게된 사람들은 다들 그를 발라드 가수로 여기고 있다. 그것도 이해가 되는 것이, 그를 대중적으로 알린 ‘나와 같다면’이나 히트곡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Good-bye day’, ‘혼잣말’ 같은 노래들은 모두 발라드 곡들이다. 이렇듯 발라드 곡들을 부르는데 발라드 가수가 아니란 말인가? 애매하긴 하지만 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이다. 김장훈은 1991년 처음 데뷔했다. 그는 로커였다. 그것도 목이 터져라 내지르는 창법을 구사하는 로커. 요즘도 간간이 그런 창법을 들려주지만 당시엔 요즘처럼 일정 음역 내에서 내지르는 것이 아니라 폭넓은 음역대를 소화하며 내지르는 것이었다. 록 보컬의 대가들인 전인권, 김현식을 존경했다니 알만 하지 않은가. 데뷔 당시는 물론이고 한참 후까지 그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몇 번 관심을 끈 적이 있긴 하다. 김현식이 세상을 떠나고 그의 유작앨범이 불티나게 팔리던 1991년쯤이었다. 당시 김장훈은 김현식의 사촌동생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호형호제하는 사이였지만 사촌관계는 아니다). 그로부터 5년 후 그는 미완성이었던 김현식의 7집에서 ‘다시 처음이라오’와 ‘사랑의 불씨’를 불러 화제를 모았다. 그는 김홍준 감독의 1994년 영화 < 장미빛 인생 >에서 조동익이 작곡한 주제곡 ‘아침을 맞으러’를 불러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아무튼 2집을 거쳐 3집 < 노래만 불렀지 >에 이르기까지 김장훈은 지금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밑바닥 생활을 전전했다. 노래만 부르던 시기였다. 소파 생활을 했다지만 소극장에서 라이브 공연도 많이 했다. 그러던 그가 1998년 발표한 4집부터 많이 달라졌다. 노래는 한결 부드러워졌고, 그의 주종목은 록에서 발라드로 바뀌었다. 그전까지 다소 꺼리던 방송 출연도 시작했다. ‘엔터테이너’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솔직하다. 그런 것들에 대해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는다. “관객과 팬들이 원하면 완전히 망가져야죠” 그의 변(辯)이다. 5집과 6집이 나오는 동안 그는 완전히 떴다. 앨범은 수십만 장이 팔려나가며 콘서트는 전회 매진사례를 이룬다. 이제 그의 옛 팬들은 예전의 김장훈을 기대해봐야 별 소용이 없을 듯하다. 그는 절대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대중들은 그가 노래만 부르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건 김장훈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말대로 그것은 ‘변절이 아니라 화해’다. 그렇지만 그래도 일말의 아쉬움은 남는다. 이제 어느 정도 화해했으니 앞으로는 자신의 빛나던 노래재능도 되살렸으면 하는 바램이다.
1987년 미국 공연을 끝으로 들국화의 멤버들은 각자의 활동 속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최구희는 괴짜들을 재결성 하여 앨범을 발표했고 주찬권은 믿음소망사랑을 결성했다. 최성원과 손진태는 세션으로 바쁜 솔로 활동을 시작했고 전인권(1954년)은 허성욱과 듀엣 앨범인 < 추억 들국화 >를 내 놓는다. 알 스튜어트(Al Stewart)의 ‘The palace of Versailles’’를 리메이크 한 ‘사랑한 후에’가 ... 1987년 미국 공연을 끝으로 들국화의 멤버들은 각자의 활동 속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최구희는 괴짜들을 재결성 하여 앨범을 발표했고 주찬권은 믿음소망사랑을 결성했다. 최성원과 손진태는 세션으로 바쁜 솔로 활동을 시작했고 전인권(1954년)은 허성욱과 듀엣 앨범인 < 추억 들국화 >를 내 놓는다. 알 스튜어트(Al Stewart)의 ‘The palace of Versailles’’를 리메이크 한 ‘사랑한 후에’가 대단한 인기를 얻은 이 앨범의 이름은 ‘들국화를 오래 기억해달라’라는 뜻을 가진 것이었으며 허성욱의 미성을 느낄 수 있는 ‘머리에 꽃을’, 최구희의 필에 젖은 기타가 일품인 ‘어떤...(가을)’ 그리고 연극 < 칠수와 만수 >에 삽입되었던 작자 미상의 ‘사노라면’ 등이 수록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종종 전인권과 최성원의 주도권 다툼으로 해석되고 있는 들국화의 해체는 전인권의 대마초 사건으로 가속화되었고 그렇게 그룹 들국화는 전설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전인권은 삼청동의 자기 집에서 1여 년을 쉬며 파랑새 기획을 만들고 히식스 출신의 김광석, 변성군, 민재현, 배수현 등과 그룹 가야를 구상했다. 하지만 우여곡절을 겪은 이 그룹은 끝내 탄생하지 못했고 전인권은 1988년 자신의 솔로 앨범을 제작한다. 역시 들국화를 산출한 동아기획과 자신의 기획사인 파랑새에서 나온 이 앨범에는 ‘돌고 돌고 돌고’가 스매시 히트를 기록한 가운데 ‘돛배를 찾아서’, 따로또같이 시절에 부른 ‘헛사랑’ 등이 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좀더 완성도 높은 < 지금까지 또 이제부터 >를 발매한다. 이 앨범에는 큰 히트곡은 나오지 않았지만 ‘Last song’’, ‘언제나 영화처럼’, ‘우리들의 사랑은’ 등과 같은 수작이 진열되어 있으며 최성원의 코러스를 들을 수 있는 ‘제발’이 다른 버전으로 녹음되어 있다. 이 앨범에서 그는 최성원에 못지 않은 작곡 실력을 뽐내면서 존 레논(John Lennon)의 ‘Oh my love’’와 ‘Love’’를 인구에 회자시켰다. 이러한 형태의 자기 표현은 전인권을 존 레논으로 최성원을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전인권은 민재현, 이건태, 정태국, 유태구 등과 함께 들국화의 재건을 시작한다. 하지만 오리지널 멤버들의 전설을 따라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들국화의 이름으로 내놓은 3집은 아쉬움 속에서 외면을 받았다. 모든 사람들은 들국화의 이름보다는 전인권의 새 그룹을 원했다. 그리고 그는 한상원과 조인트 앨범을 내놓으며 그의 소울풀한 가창력이 아직도 살아 있음을 알렸다. 그러나 그는 음악 활동 속에서 줄곧 대마초에 손을 대며 동면 속에 빠진다. 그리고 모든 공연에서 부르는 그의 노래는 정확한 음정보다는 필링이 주가 되는 양상을 띤다. 한번 떨어진 집중력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최근 그는 대마초 흡연은 죄가 아니라는 표현으로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얻고 있다. 역시 그의 벽은 들국화였을까? 그는 다시 최성원, 주찬권과 들국화로 돌아온다. 그리고 장기 공연을 펼치며 왕년의 지지자들을 다시 끌어 모은다. 들국화의 트리뷰트 앨범도 나왔으며 팬 사이트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계속 공감대를 확산시켰다. 그리고 모두들 전인권은 혼자 일 때보다 들국화의 보컬리스트일 때 가장 돋보인다고 생각한다
1970년대에 중창단의 진영으로 빼어난 선율과 화음의 융화를 선보이며 모던 포크 계열의 선두에 섰던 혼성그룹 해바라기는 처음에 김의철을 리더로 하고 한영애, 김영미, 이광조가 한 팀이 되어 명동에 있는 업소를 중심으로 노래를 불렀다. 김의철이 건강상의 이유로 팀을 떠나자, 이정선이 대장으로 들어오고 이광조가 군에 간 사이에 이정선과 자주 콘서트를 가졌던 이주호가 들어와 4인조의 진영을 갖춘다. 명동 카톨릭 여학생... 1970년대에 중창단의 진영으로 빼어난 선율과 화음의 융화를 선보이며 모던 포크 계열의 선두에 섰던 혼성그룹 해바라기는 처음에 김의철을 리더로 하고 한영애, 김영미, 이광조가 한 팀이 되어 명동에 있는 업소를 중심으로 노래를 불렀다. 김의철이 건강상의 이유로 팀을 떠나자, 이정선이 대장으로 들어오고 이광조가 군에 간 사이에 이정선과 자주 콘서트를 가졌던 이주호가 들어와 4인조의 진영을 갖춘다. 명동 카톨릭 여학생회관 해바라기 홀에서 콘서트를 갖기 시작한 이들은 1977년 8곡의 합창곡과 4곡의 솔로 곡이 실린 첫 음반을 발표하고 ‘구름 들꽃 돌 연인’을 히트시키며 기타를 든 청년들에게 주요한 레퍼토리를 제공 해 준다. 이 음반은 이미 2장의 솔로 앨범으로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과시한 이정선이 프로듀서의 위치에서 참여했고 그를 비롯한 각 멤버가 솔로 한 곡씩을 불렀다. 이 중 이주호가 고교 시절 지었다는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를’은 한영애의 목소리로 담겨 있으며 후에 이주호, 유익종의 해바라기가 리메이크 한다. 1집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이들은 1978년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한다. 이주호 대신에 이광조가 한 자리를 차지한 이 앨범에는 ‘뭉게 구름’이 히트를 했고 같은 해 < TBC 해변가요제 >에서 징검다리의 노래로 대상을 차지한 ‘여름’, 이정선의 솔로 앨범에 수록했었던 ‘섬 소년’ 등이 앨범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다. 이 앨범을 끝으로 이정선은 이광조, 엄인호와 풍선이란 그룹을 만들어 활동했고 한영애는 솔로 앨범의 실패로 연극계로 발을 옮긴다. 그리고 김영미는 유학을 떠난다. 1986년 김영미의 일시적인 귀국으로 같이 모이게 된 이들은 ‘우리가 지금은 헤어져도’, ‘우리네 인생’이 수록된 고별 앨범을 발표한다. 이중 타이틀곡인 ‘우리가 지금은 헤어져도’는 이별과 재회의 희망을 단아하게 노래해 라디오를 중심으로 아주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자신의 포크적인 음악세계를 고집하는 유익종은 1974년 박시춘의 막내아들 박재정과 듀엣 그린빈즈(Green Beans)를 결성하면서 가요계에 데뷔했다. 첫 번째로 발표한 음반에서 ‘난 이 다음에’란 곡 등을 발표했지만 군 문제 때문에 휴식기를 가진다. 다시 파랑새란 이름으로 합쳐 ‘나는 왜’가 수록된 음반을 발표한 이들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박재정은 종교 음악과 재즈 공부를 위해 유학을 떠나고 그는 다른... 자신의 포크적인 음악세계를 고집하는 유익종은 1974년 박시춘의 막내아들 박재정과 듀엣 그린빈즈(Green Beans)를 결성하면서 가요계에 데뷔했다. 첫 번째로 발표한 음반에서 ‘난 이 다음에’란 곡 등을 발표했지만 군 문제 때문에 휴식기를 가진다. 다시 파랑새란 이름으로 합쳐 ‘나는 왜’가 수록된 음반을 발표한 이들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박재정은 종교 음악과 재즈 공부를 위해 유학을 떠나고 그는 다른 사업거리를 구상한다. 1981년 해바라기 출신의 이주호와 지금은 녹음기사로 일하고 있는 박성일 등과 유리박이란 그룹을 결성한 유익종은 이 팀의 와해와 동시에 이주호와 듀엣 해바라기를 출범시킨다. 해바라기의 1집에선 ‘행복을 주는 사람’, ‘모두가 사랑 이예요’ 등이 히트했지만 이주호와의 음악 차이를 느낀 그는 팀을 떠나 솔로 앨범을 발표하고 ‘사랑의 눈동자’를 히트시킨다. 하지만 그룹 활동은 하지 않고 노래만 부르기로 했던 해바라기 3집으로 다시 해바라기의 멤버로 오랜 활동을 한다. 이 앨범에서는 ‘내 마음의 보석 상자’, ‘사랑은 언제나 그 자리에’ 등이 크게 히트하고 ‘오랜 침묵은 깨어지고’, ‘도시의 밤 풍경’ 등이 라디오를 타면서 2년여간 활동하며 많은 인기를 모으게 된다. 아직도 이 시절의 인기는 그를 해바라기 시절의 멤버로 각인 시킨다. 해바라기 3집 발표 시에는 그의 솔로 2집 앨범이 일주일먼저 나오고 이주호의 앨범 등과 겹쳐 솔로 활동은 해보지도 못하고 접는다. 2집에서는 아직까지도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가 팬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1987년 옴니버스 앨범에 유영건이 만든 ‘세상 가장 밝은 곳에서 가장 빛나는 목소리로’를 수록해 주목을 받은 그는 1989년 미국의 LA에서 일어난 흑인폭동으로 교민들의 인기를 모은 하광훈의 ‘이연’이 수록된 3집을 발표한다. 이 앨범에는 여진의 ‘그해 가을’, ‘가을에 떠난 사람’, ‘하나가 되어’ 등이 수록되어 있다. 1991년 ‘차창에 흐르는 이별’이 수록된 4집은 그가 처음으로 제작하고 가장 많이 공을 들인 앨범이지만 가장 대중적인 외면을 받은 앨범으로 기억된다. 후에 아쉬움이 남는 곡들을 모아 발표한 < Worst > 앨범에서 이두헌이 만든 ‘저길 저편 저 차에 오르면’, 박강성의 ‘그대의 허상’ 왈츠 풍의 ‘그리움’ 등을 수록해 4집에 대한 애정을 유감없이 표출했다. ‘반추’가 수록된 5집을 발표한 유익종은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리메이크 앨범을 내놓는다. 앞으로 나올 3장의 기획 앨범 중 첫 번째라는 의미로 이름 붙인 < 3분의 1 > 앨범에서 여진의 ‘그리움만 쌓이네’, 조용필의 ‘들꽃’, 최성수의 ‘해후’ 등을 불러 오랜 소원을 풀었다. 1998년에 발표한 6집에는 ‘그리운 얼굴’이 주목받으며 매스컴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앨범에는 따로또같이의 ‘나는 이 노래하리오’의 두 가지 버전을 수록해 자신의 스타일과 유행하는 현재의 음악 스타일을 비교하였다. 1999년 묻어만 두기엔 아까운 노래들로만 모은 < Worst > 앨범을 발표한 그는 최근 미사리에서 라이브로 팬들을 만나며 7집을 구상하고 있다.
허스키한 창법을 전면에 내세우는 박상민은 대중 취향에 잘 맞는 록 가수다. 유려한 멜로디와 애잔한 분위기가 깔린 그의 곡들엔 강한 후크(Hook)가 있다. 특히 록발라드를 좋아하는 20대 이상의 팬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잘 나가던 가수는 아니었다. 록 보컬리스트로서의 자부심이 담긴 데뷔작 < Start >는 이렇다 할 히트 넘버를 배출하는데 실패했다. 이 시기 박상민은 다른 가수들... 허스키한 창법을 전면에 내세우는 박상민은 대중 취향에 잘 맞는 록 가수다. 유려한 멜로디와 애잔한 분위기가 깔린 그의 곡들엔 강한 후크(Hook)가 있다. 특히 록발라드를 좋아하는 20대 이상의 팬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잘 나가던 가수는 아니었다. 록 보컬리스트로서의 자부심이 담긴 데뷔작 < Start >는 이렇다 할 히트 넘버를 배출하는데 실패했다. 이 시기 박상민은 다른 가수들의 공연에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정상에 대한 꿈을 키웠다. 시나위의 기타리스트 신대철이 만들어준 ‘멀어져간 사람아’는 그에게 너무나 소중한 곡이 됐다. 비장한 선율에 걸걸한 목소리가 잘 어우러진 이 노래 하나로 그는 무명의 그림자를 단번에 떨쳐 버렸다. 그리고 이 곡이 실린 2집 < Volume 2 >는 그에게 기념비적인 음반이 되었다. 이후 그의 상승세는 대단했다. ‘청바지 아가씨’는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댄스곡이었음에도 좋은 반응을 얻었고, 경쾌한 ‘무기여 잘 있거라’ 또한 방송부적격 판정(제목이 남성의 중요한 부위를 연상케 한다는 것이 이유)에도 불구하고 차트의 상위권을 맴돌았다. 5집에 이르러서야 그는 전공인 록발라드로 회귀한다. 거칠면서도 한편으론 섬세한 그의 보이스가 다시 살아났다. 드라마에 삽입된 ‘하나의 사랑’,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와 애뜻한 가사가 매력적인 ‘비원’이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꾸준한 모습을 보이던 박상민은 2000년의 < Romanticism >에 와서 변화를 보였다. 어떤 음반보다도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이 작품에선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도입되었고, 모던 록을 시도하는 등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노력이 읽혔다. 이 작품에서는 ‘사랑인거죠’와 ‘상실’이 팬들을 사로잡았다. 박상민은 의외로 수가 많지 않은 가창력을 소유한 록 뮤지션이다. 하루가 다르게 트랜드가 바뀌는 국내에서 줄기차게 록으로 승부한다는 것은 인정할 만한 일이다. 어느 덧 일곱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한 이 가수는 이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놓고 있다.
생년월일 1973년 6월 19일 지금은 해체된 공일오비(015B)의 특색 중 하나는 ‘만드는 주체’과 ‘부르는 객체’가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부활의 관계에서 입증되었듯 보컬과 세션과의 피할 수 없는 충돌을 경계하여 시행한 이 시스템을 객원가수제라 불렀고, 공일오비의 음악영역을 풍성하게 하는 동시에 그리 성공적이라 할 수는 없지만 몇몇 신인가수들의 등용문으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1번 타자는 윤종신이었... 생년월일 1973년 6월 19일 지금은 해체된 공일오비(015B)의 특색 중 하나는 ‘만드는 주체’과 ‘부르는 객체’가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부활의 관계에서 입증되었듯 보컬과 세션과의 피할 수 없는 충돌을 경계하여 시행한 이 시스템을 객원가수제라 불렀고, 공일오비의 음악영역을 풍성하게 하는 동시에 그리 성공적이라 할 수는 없지만 몇몇 신인가수들의 등용문으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1번 타자는 윤종신이었고, 이후 김태우와 이장우를 거쳐 김돈규와 조성민이 새로운 활동을 펼쳤다. 대학 진학에 실패한 평범한 청년 김돈규에게 가수의 길을 열어준 주인공은 경문고등학교 동창 이장우를 통해 만난 장호일이었다. 이장우나 윤종신과는 완벽하게 다른, 가성과 진성이 적절히 섞인 김돈규만의 독특한 음색을 발견하고는 1993년, 장호일의 야심찬 개인 음반 < Kloma >에 적극 투입하게 된다. 각각 영화 < 비상구는 없다 >, < 그 여자 그 남자 >의 사운드 트랙으로 만든 ‘꿈이 없는 세상’, ‘그 여자 그 남자’에 목소리를 입혔고, ‘세상은’, ‘쉐리’, ‘반짝이는 요정’ 등 주요곡에 참여하며 기본기를 닦았지만 세상은 그를 아직 알아보지 못했다. 음반은 공일오비의 명성에 비해 그리 양성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놓칠 수 없는 기회가 찾아왔다. 윤종신, 김태우에 이어 공일오비의 타이틀 곡을 부르는 뉴 페이스로 등극한 것이다. 5주 연속 1위를 차지해 공일오비에게 KBS < 가요톱텐 > 골든컵 수상의 영예를 안겨줬던 히트 곡 ‘신 인류의 사랑’으로 일곱 번(후보로 두 번, 1위로 다섯 번) 무대에 섰던 김돈규는 TV 출연을 극구 거부했던 핵심멤버들과 달리 쉽게 얼굴이 알려질 수 있었다. 이어 공일오비에 기댄 50%의 독주를 5집 ‘슬픈 인연’으로 마무리한 뒤 비로소 고된 솔로 활동의 포문을 열었다. 공일오비 곁에서 불렀던 ‘세월의 흔적 다 버리고’, ‘아직도 희망은 있어’와 비슷한 분위기의 발라드 곡인 ‘내 안에 너의 모습’을 타이틀로 밀고 신동우가 프로듀싱한 1995년의 첫 번째 음반은 신동우, 윤일상, 박강영 등의 작곡가와 코러스의 여왕 박선주가 김돈규를 보필해 선례의 윤종신이나 이장우와 달리 공일오비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났지만 그 용감무쌍한 시도가 독립의 성공을 보장할 만한 획기적인 요인이 되지는 못했다. 완벽한 분리는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했다. 침체의 늪에 빠진 김돈규는 1년 후 심기일전 해 새 작업에 착수했다. 공식적으로는 1집이라 하지만 엄밀히 말해 두 번째 음반인 < Separation >(1996)은 암흑의 처녀작에 수록되어 있는 ‘그대 사랑 내가 아님을’과 ‘Good night’를 얹고, 조성민의 ’3분 55초간의 고백‘을 리메이크 한 ’3분 45초간의 고백‘(원래 김돈규의 곡이었다 전해진다),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 말고도 이경섭과 정시로, 윤상, 하광훈 등의 유명 작곡가를 동원하여 보다 안정된 구성을 보여준다. 훗날(2002년) 정인호가 부르게 되는 ’집에 가지마‘가 DJ DOC의 ’OK? OK!‘와 묶여 제목의 의미가 수상하다는 이유로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아 잠시 실의에 빠지기도 했으나 심의 규정이 완화되어 풀리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김돈규를 다시 일어서게 해 준 곡은 정지-해금의 논란을 겪은 타이틀이 아니라 라디오 방송국 PD 들에 의해 선택된 ‘나만의 슬픔’이었다. 1년 후 조성모라는 신인 가수에게 대박을 안겨 줄 ‘To heaven’을 만든 이경섭의 출세작이기도 한 ’나만의 슬픔‘은 31만장 판매량의 원동력이었으며 이어지는 음반 작업의 촉매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 Born Again >(1998), < 무아 >(2000) 등 두 장의 음반을 발표한 김돈규는 많지는 않지만 간혹 자신의 음반에 작사, 작곡가로 크레딧을 채우며 윤종신의 성공가도를 향해 차분히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그러나 타이틀 곡은 이경섭-강은경 콤비와 함께 각각 ‘다시 태어나도’, ‘단(但)’으로 발라드 행렬을 계속했으며, 드라마 < 레디고 >, < 아름다운 선택 >, < 흐르는 강물처럼 > 등의 사운드 트랙과 얀(Yarn)의 1, 2집에서 작사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탤런트 안연홍과의 스캔들로 간혹 언론에 이름을 비추며 오랜 팬들에게 가뭄에 콩나듯 근황을 전하고 있다. 2003/05 이민희(shamchi@hanmail.net) 김돈규는 윤종신, 김태우, 조성민 등과 함께 ’9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015B의 객원 싱어로 음악계에 데뷔했다. 공일오비의 4집에서 ’신인류의 사랑’, ’세월의 흔적 다 버리고’, 5집에서 나미의 곡을 리메이크 한 ’슬픈 인연’ 등을 불러 많은 인기를 모은 그는 군 제대후 자신의 첫 번째 솔로 앨범을 발표한다. 조성모를 발굴한 이경섭의 손에 의해 다듬어지고 김형석, 손무현, 윤상, 하광훈 등의 이름 있는 작곡가들이 참여한 1집에서 타이틀곡으로 ’집에 가지마’를 선보인 그는, 뛰어난 선율을 자랑하는 이 곡으로 재기를 노렸지만 섹스어필하는 가사로 당시에는 방송불가 판정을 받으며 그의 계획을 무산시켰다. 하지만 연인을 두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의 심정을 담은 ’나만의 슬픔’이 라디오를 중심으로 서서히 반응을 얻자, 그는 여기에 힘입어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음반 판매량의 수치를 높인다. TV 활동보다는 공연이나 라디오를 위주로 활동했던 김돈규는 두 번째 앨범에서 ’뭐를 잘못한 거니!’라는 곡으로 인기를 얻은 에스더와 함께 ’다시 태어나도’를 불러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슬픈 운명’과 ’슬픈 인연’을 R&B로 소화해 다시 한번 저력을 발휘하며 팬들의 주목을 끌었다. 탁음과 바이브레이션을 주무기로 하는 독특한 음색을 가지고 있는 김돈규는 이경섭이 지휘봉을 잡은 3집을 2000년에 발매한다. < 무아(無我) >라는 독특한 타이틀이 남다른 각오를 말해주는 그의 앨범은 그가 ’나만의 슬픔’에서 보여주었던 섬세한 발라드를 연상시키는 ’단’이 사랑을 받고 있고 콩가 리듬으로 만든 발라드 ’반심향요(反心向謠)’, 펑키한 ’왜 그래’, 재수록 된 ’3분 34초간의 고백’ 등으로 변신에 힘을 쏟고 있다. 3집에서 자신의 자작곡을 선보이며 자신의 음악세계가 비상할 시점을 기다리고 있는 김돈규는 2001년 5월 발매된 이경섭의 프로젝트 앨범 < 조이 >에 김민종, 조성모, 류시원 등과 참여했으며 ’나와 같을 테니’라는 곡을 불렀다. 2001/05 지운 (sunshine1126@izm.co.kr)
흔히 임재범과 비교되는 박효신의 음악적 출발은 고1때였다. 평소 노래 부르는 것에 자신감이 없었던 그는 친구의 권유로 부천 청소년 가요제에서 이기찬의 ‘Please’란 노래로 대상을 따내게 된다. 우연일 것 같았던 한 번의 영광은 한 번의 은상을 포함해서 그 후로 계속 이어져 YMCA 청소년 가요제, 제물포 가요제에 출전하여 대상을 받았으며 처음엔 의구심이 들었던 가수라는 직업에 대한 자신감이 생겨났다. 그는 이... 흔히 임재범과 비교되는 박효신의 음악적 출발은 고1때였다. 평소 노래 부르는 것에 자신감이 없었던 그는 친구의 권유로 부천 청소년 가요제에서 이기찬의 ‘Please’란 노래로 대상을 따내게 된다. 우연일 것 같았던 한 번의 영광은 한 번의 은상을 포함해서 그 후로 계속 이어져 YMCA 청소년 가요제, 제물포 가요제에 출전하여 대상을 받았으며 처음엔 의구심이 들었던 가수라는 직업에 대한 자신감이 생겨났다. 그는 이후 친구를 따라 제작자 황윤민을 만났고 즉석에서 스카우트되었다. 1년 반에 걸친 연습 끝에 탄생된 첫 앨범은 1999년 12월에 나왔다. 마이클 볼튼(Michael Bolton)을 연상시키는 거칠지만 단단한 음성으로 그가 추구하고픈 흑인 음악의 테두리에서 R&B 발라드로 전체를 묶어낸 이 앨범은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작곡한 신재홍의 ‘해줄 수 없는 일’과 같은 전형적인 R&B는, 물론 그가 만든 ‘스토킹’과 같은 간간이 펑키와 힙합이 섞인 경쾌한 곡들이 포함되어 있다. 라디오 공개 방송으로 방송 데뷔를 한 그는 < 이소라의 프로포즈 >에 출연하여 선보인 월등한 가창력으로 앨범 주문량의 폭증을 몰고 오며 2000년 단연 최고의 신인으로 발돋움했다. 데뷔 후 넉 달 만인 2000년 4월, 그는 오필리어를 맡은 진주와 더불어 < 록햄릿 >의 주인공으로 발탁되어 신성우와 리아가 보여주던 기존의 록필을 R&B로 바꿔놓는 카리스마를 발휘하기도 했다. 그는 여성 R&B의 신성인 박화요비와 함께 신귀공자의 주제곡 ‘전설 속의 사랑’을 불렀으며 이소라의 4집에서는 ‘It’s gonna be rollin’이라는 곡으로 참여했다. 2000년 5월 꿈에 그리던 첫 콘서트를 가졌으며 11월 4일에는 첫 방송한 것을 기념하여 데뷔 1년만에 < 11월 4일생 >이라는 제목으로 두 번째 콘서트를 가졌다. 소리없는 폭풍을 몰고온 그는 1집 활동으로 제15회 골든 디스크상과 제1회 인터넷 신인 뮤직 어워드에서 1위로 뽑히는 영광을 안았다. 박효신은 2001년에 두 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윤상을 필두로 유희열, 조규만 등의 쟁쟁한 뮤지션들이 함께 한 < Second Story >는 신인가수 전소영과 함께 부른 ‘변심’을 비롯해 윤상이 만든 ‘편지’ 등 세련되고 조화로운 분위기로 그의 감각을 좀 더 고급화 시켰다. 이 앨범에서 ’먼 곳에서’, ’동경’ 등의 곡으로 인지도는 물론 ’가수 박효신’이란 존재를 모든 음악팬들에게 각인시킨 그는 2집 발매 기념 콘서트 < Relax >를 비롯해 하고 싶던 노래를 맘껏 불렀으며 발라드뿐만 아니라 흥겨운 음악에도 소질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2002년 9월에 발표한 < Time-honored voice >란, 다소 자신만만한 제목의 세 번째 음반은 상반신 누드가 담긴 한정판이 몇 일만에 거의 다 팔리는 화제성을 뿌리며 그를 다시 스포트 라이트 속으로 인도한 작품이다. 1년이 넘는 시간동안 공을 들인 이 앨범에는 앤과 함께 부른 리메이크 곡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비롯해 신재홍의 곡이 많이 수록되어 있으며 천성일, 심상원, 나원주 등 인기 작곡가들의 곡이 포함되어 있다.하지만 무엇보다도 발성과 감정에 무게를 실어 내공의 기틀이 다져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첫 주자는 윤사라 작사의 ’좋은 사람’이지만, ’나비의 겨울’, ’You & me’ 등도 좋은 반응이 기대된다.
뮤지션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음악인들은 모두 자기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베이스로, 기타로, 드럼으로 키보드로 자신을 표현하고 누구는 곡으로, 프로듀싱으로, 편곡으로 음악을 증명한다. 대중 음악에서 절대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가수라는 직함을 가진 이는 이 모든 것을 아우르기도 하지만, 이승철처럼 목소리로만 장인기질을 발휘하는 이도 있다. 천부적인 매력으로 발산하는 그의 음성은 연주가 가질 수 없는 영역... 뮤지션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음악인들은 모두 자기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베이스로, 기타로, 드럼으로 키보드로 자신을 표현하고 누구는 곡으로, 프로듀싱으로, 편곡으로 음악을 증명한다. 대중 음악에서 절대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가수라는 직함을 가진 이는 이 모든 것을 아우르기도 하지만, 이승철처럼 목소리로만 장인기질을 발휘하는 이도 있다. 천부적인 매력으로 발산하는 그의 음성은 연주가 가질 수 없는 영역을 보여준다. 이것은 오페라에서 성악가의 위치에 비견해도 좋으리라 1985년 그룹 부활의 리드보컬로 데뷔한 이승철(1966년)은 그룹을 빠져 나와 1989년 솔로로 데뷔한다. 부활의 팬들에게 야유를 받으며 ‘안녕 이라고 말하지마’를 히트시킨 그는 이후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1집의 파트 2에서 ‘마지막콘서트’, ‘소녀시대’ ‘그녀는 새침떼기’, 솔로 2집에서 ‘그대가 나에게’ 등을 잇단 히트시키며 절정의 라이브 감각을 발휘했다. 수많은 공연으로 라이브 황제의 면모를 보여주며 파트 2 앨범으로 골든 디스크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그는 1992년 박찬욱 감독의 데뷔작 < 달은...해가 꾸는 꿈 >에 출연하며 스크린 속으로 산책을 나가기도 한다. 1992년 12월 발표한 그의 3집은 ‘방황’, ‘검은 고양이’, ‘넌 또 다른 나''등의 대량 히트곡들을 쏟아 부었지만, 타이틀 곡 ‘방황’이 바비브라운(Bobby Brown)의 ‘Humpin'' around''를 표절 했다는 의혹과 마약 사건 등의 악재로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이승철의 고백일기라는 형식을 빌은 < 뮤즈의 초상 >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한 그는 1994년 ‘색깔 속의 비밀’이 들어 있는 4집을 발표하며 비평계의 높은 호응을 얻으며 재기에 성공한다. 뉴욕에서 제작한 이 앨범은 해외의 유명 뮤지션들로 세션을 이뤄 재즈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곡들로 채워졌다. 다음해 전국투어콘서트에서 4집의 ‘겨울 그림’에 참여했던 미국의 아카펠라 그룹 뉴욕보이스(N.Y Voices)와 함께 한 그는 라이브앨범을 발표한 뒤 탤런트 강문영과 결혼해 그녀가 주연한 영화 < 도둑과 시인 >의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시집 < 색깔 속의 비밀 >을 출간한 그는 1996년 5집을 발표하고 나이트 클럽을 휩쓴 ‘오늘도 난’이라는 곡을 히트시킨다. 유행하는 트랜드를 흡수한 그는 미국에서 데려온 흑인백댄서와 함께 안무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그는 1999년 발표한 6집에선 데뷔 앨범에서 많이 선보였던 팝 발라드 계열의 음악으로 다시 돌아갔다. 이 앨범에서는 ‘오직 너뿐인 나를’, ‘이별의 무게’ 등이 히트했지만 ‘오직 너뿐인 나를’의 원곡 ‘Finally''를 만든 원작자의 소재를 적극적으로 파악하지 안은 채 음반 작곡자란에 “외국 곡(작곡자의 행방을 찾으며)”이라는 문구만을 기재해 판매 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2000년 이문세, 이상은, 이은미 등과 < 사인사색 > 앨범을 발표한 그는 영화 < 비천무 >에 ‘말리꽃’이라는 곡으로 참여하고 ''80년대의 가수들인 변진섭, 이선희, 김완선, 소방차 등과 결성한 대팔회에서 발표한 < Harmonized >에서 ‘The day''라는 곡을 불러준다. 2001년 4월 40억 여 원을 들인 국내 최고의 음향과 녹음 시설을 갖춘 < 퓨쳐 스튜디오 >를 완공해 업무에 들어간 그는 팝 발라드의 기조를 유지한 6.5집 < Confession >을 발표하고 ‘고백’이란 곡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앨범에는 신곡과 리메이크 곡, 과거의 히트곡을 다시 불러 CD 2장에 담고 있다.
최근 탤런트 이영애가 등장하는 카드회사 CF에서 강렬한 카리스마를 느끼게 하는 보컬로 시청자들의 귀를 사로잡은 김태영은 1994년 드라마 < 종합병원 >의 삽입곡으로, 성가곡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를 번안한 ‘혼자만의 사랑’으로 인기를 모았던 가수이다. 하지만 CM 송 가수로 각광받던 그녀에게 먼저 프로포즈했던 기획사는 그녀의 데뷔 앨범 작업이 마무리되어 갈 즈음에 앨범에 수록할 예정이었던 ‘... 최근 탤런트 이영애가 등장하는 카드회사 CF에서 강렬한 카리스마를 느끼게 하는 보컬로 시청자들의 귀를 사로잡은 김태영은 1994년 드라마 < 종합병원 >의 삽입곡으로, 성가곡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를 번안한 ‘혼자만의 사랑’으로 인기를 모았던 가수이다. 하지만 CM 송 가수로 각광받던 그녀에게 먼저 프로포즈했던 기획사는 그녀의 데뷔 앨범 작업이 마무리되어 갈 즈음에 앨범에 수록할 예정이었던 ‘혼자만의 사랑’만을 빼서 드라마의 삽입곡으로 넣어 버렸다. 그리고 그녀의 음반은 뒷전으로 미루어 졌다. 한번 미루어진 음반은 시장에 나올 시점을 자꾸만 놓쳐갔고 거물가수와의 음반출시가 맞물려지고, 소속사가 어려워지고 하는 등의 난맥상으로 5년을 기다려야 했다. 어느 날 시청자들은 ‘돌아와’를 부르는 클론의 뒤에서 마녀 같은 외모로 거침없이 후렴구를 외치는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그녀는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클론의 3번째 앨범에 있는 ‘돌아와’, ‘Funky tonight'', ‘사랑과 영혼’ 등의 히트곡은 마치 그녀를 위해 클론의 랩을 차용한 느낌을 주었다. 가수로 인기를 얻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린 그녀는 물이 오른 내공으로 단 한 순간에 그녀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클론 앨범의 대성공으로 프로듀서 김창환의 눈에 든 그녀는 아쉽게 사라져버린 1집에 대한 꿈을 다시 꾸었다. 2시간 동안 화장한 얼굴이 화제가 되었던 그녀의 통산 2집 앨범에서, 그녀는 원색적인 목소리로 시원하게 질러내던 모습과는 달리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한 제목의 타이틀곡 ‘오랜 방황의 끝’을 비롯한 대부분의 곡들을 절제된 감정으로 잔잔하게 불렀다. 특히 애절한 느낌의 발라드로 호소력 있게 부른 ‘오랜 방황의 끝’은 2000년 상반기 방송 매체에서 700여 회 방송되는 기록을 낳았으며 연이어 라틴풍의 댄스곡 ‘거울 앞에서’가 인기를 끌었다. 탄탄한 기본기를 자랑하는 이 앨범에는 이외에도 드라마 < 착한 남자 >의 테마로 수록된 ‘영원한 이별’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앨범의 인기로 그녀는 < Solo >라는 제목으로 드디어 첫 콘서트를 가졌으며 앨범에 수록되었던 노래들과 자신이 그간 불렀던 500여 편의 CF 송을 불러 무명에 대한 설움을 씻어 냈다. 그리고 코러스로 인기를 모은 그녀는 김수희, 채정안, 신인 여가수 이세진 등의 앨범에 참여했으며 최원석과 듀엣으로 ‘For you’를 불러 가수들이 원하는 가수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가수는 한 때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시간을 기다려온 이 기다릴 줄 아는 가수에게 앞으로 나올 더 뛰어난 앨범으로 서광이 비추길 바란다.
1975년의 가요정화운동과 대마초 파동으로 황폐화된 음악계에 한 줄기 서광을 비쳐 준 것은 삼 형제로 구성된 산울림이었다. 10대 중반부터 작곡을 시작했던 이 형제들은 김창완의 대학 졸업 기념으로 만든 데뷔 앨범으로 한 순간에 가요계를 전복시켰고 우리 모두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의 역사적인 데뷔 음반과 동시대성을 획득한 이들의 데뷔 음반은 끝없는 창작욕을 발현한 첫 번째 단추... 1975년의 가요정화운동과 대마초 파동으로 황폐화된 음악계에 한 줄기 서광을 비쳐 준 것은 삼 형제로 구성된 산울림이었다. 10대 중반부터 작곡을 시작했던 이 형제들은 김창완의 대학 졸업 기념으로 만든 데뷔 앨범으로 한 순간에 가요계를 전복시켰고 우리 모두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의 역사적인 데뷔 음반과 동시대성을 획득한 이들의 데뷔 음반은 끝없는 창작욕을 발현한 첫 번째 단추가 되었으며, 신중현이 열어 놓은 록의 세계를 아마추어의 경지에서 마음껏 조리한 역사적인 음반이 되었다. 둘째 김창훈의 곡인 ‘나 어떡해’를 부른 샌드페블즈가 대상을 받은 제1회 MBC 대학가요제에 ‘문 좀 열어 줘’란 곡으로 출전했지만, 김창완이 졸업생 이여서 자격미달로 실격한 이들은 자신들의 기념 음반을 가지고 싶었던 나머지 친척들을 졸라 앨범 제작비를 구걸했고 그간 만들어 놓았던 150곡 중 몇 곡을 추려 데모 테이프를 만들었다. 그리곤 가장 가까운 레코드 회사인 서라벌을 찾아가 자신들의 소원을 얘기했다. 이들의 데모 테이프를 들어 본 사장은 아무 조건 없이 음반을 만들어 주겠다며 손수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고 이들의 이름을 산울림으로 지어 주었다. 하지만 이들이 가져온 악기는 연주를 하고 나면 줄이 풀려 끝까지 마칠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평론가 이백천에게서 팬더사의 스트라토 기타와 암페그에서 만든 베이스를 빌려온 이들은 하루만에 녹음을 끝마쳤으며 음반의 성공을 예상하지 못한 채 본격적인 사회인이 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렇게 탄생한 이들의 데뷔 음반은 상상을 초월하는 성공을 거두며 삽시간에 팔려 나갔다. 그리고 명반으로 꼽히는 2집을 4개월만에 내놓았으며 역시 파격과 혁신의 메아리로 소리를 내지르며 커다랗게 산울림을 자아냈다. 이것은 2집이 나온 지 6개월만에 발매된 3집의 ‘그대는 이미 나’로까지 이어진다. 동생들이 군대에 가자 산울림은 제대로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4집은 각종 드라마와 영화, 연극 등에 쓰였던 주제곡들을 모아 편집한 음반으로 발매했고 5집은 동생들이 휴가 나온 사이 녹음을 끝내야 했다. 데뷔 음반의 폭발적인 반응에서 멀어진 듯한 이들의 인기는 6집의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동생들이 제대하고 같이 만든 7집의 ‘청춘’, 8집의 ‘내게 사랑은 너무 써’와 같은 스탠더드 류의 히트곡으로 계속 이어지며 초창기의 실험정신이 가득했던 곡들보다는 대중성이 뛰어난 곡들로 꾸며지며 계속 전성기를 누린다. 하지만 3인 밴드 최상의 사운드를 들려주며 우리 나라 헤비메탈 사운드의 포문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9집이 상업적으로 실패하자 이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혼자 남은 김창완은 < 기타가 있는 수필 >이란 솔로 앨범에서 ‘어머니와 고등어’를 히트시키며 이후 계속 되는 솔로 여정의 첫 삽을 뜬다. 그는 이어 본인이 혼자 만든 산울림 10집에서 감상적 발라드 ‘너의 의미’를 히트시킨다. 그는 또한 가능성 있는 신인들을 모아 포크 그룹 꾸러기들을 만들어 활동에 들어갔으며 ‘아주 옛날에는 사람이 안 살았다는데’라는 긴 제목의 곡으로 100일간의 장기 공연을 치뤄 냈다. 밴드 음악의 감독으로 산울림을 지휘한 김창완의 한편에는 동요라는 장르가 있다. 처음의 기획의도는 기존의 동요를 재해석하는 것이었지만, 대부분의 곡들이 외국 곡이라는 한계를 알게 된 그는 직접 동심의 세계를 표현한 곡들로 시장을 두들겼고 ‘개구장이’, ‘산할아버지’, ‘안녕’ 등과 같이 정규 앨범의 히트곡 못지 않은 인기곡들을 양산한다. 그의 동요 앨범들은 그의 천진무구한 창작적인 감수성이 뽑아낸 새로운 시도였다. 9집 이후 김창완 혼자서 작업했던 산울림은 과거의 뮤지션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다시 합체식을 가졌다. 국내에서 트리뷰트를 받은 몇 안 되는 아티스트의 반열에 오른 이들은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로 노익장을 과시했으며 ‘내 마음’에서 보여준 김창훈의 메탈성 보컬로 오랜만에 원초적인 삼 형제의 힘을 발휘하며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음악 자체의 순수성을 엮어낸다. 그리고 폭풍 속의 댄스씬을 빠져 나온 우리는 깨닫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산울림이 있었다는 것을.
윤도현 밴드는 한국의 척박한 록 씬에서 승부를 걸어 뚜렷한 위치를 차지한 아티스트이다. 그들이 발표한 4장의 정규 앨범(라이브 제외)은 비단 사운드만이 아닌 의식의 성숙을 보여주는 과정이다. 군에서 제대한 직후 윤도현은 솔로가수로서 음악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는 1995년 ‘타잔’이 수록된 1집을 발표했다. 그 곡은 얼마간의 인기를 얻게 된다. 그 덕에 그는 한국 최초의 본격 록 영화 에 출연하는 기회를 잡았다... 윤도현 밴드는 한국의 척박한 록 씬에서 승부를 걸어 뚜렷한 위치를 차지한 아티스트이다. 그들이 발표한 4장의 정규 앨범(라이브 제외)은 비단 사운드만이 아닌 의식의 성숙을 보여주는 과정이다. 군에서 제대한 직후 윤도현은 솔로가수로서 음악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는 1995년 ‘타잔’이 수록된 1집을 발표했다. 그 곡은 얼마간의 인기를 얻게 된다. 그 덕에 그는 한국 최초의 본격 록 영화 에 출연하는 기회를 잡았다. 그의 첫 작품은 분단에 대한 아픔(‘임진강’), 환경 파괴에 대한 성찰(‘깨어나라’) 등 묵직한 테마를 삽입하는 나름대로 신경 쓴 흔적이 보이지만 신인의 앨범인 만큼 다분히 시장 지향적인 곡들이 공존했다. 아직 ‘덜 여문’ 앨범이었다. 윤도현은 2집부터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밴드’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했다. 밴드로서의 실질적인 처녀작인 그의 두 번째 작품은 2년여 동안의 준비기간 동안 공을 들인 흔적이 곳곳에 드러나는 수작이다. 수록곡 중 박노해의 시에 곡을 붙인 ‘이땅에 살기 위하여’와 ‘철문을 열며’는 대중음악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양심수와 노동 문제를 전면으로 제기한 문제작으로 밴드의 깊은 사회 의식을 반영했다. 특히 ‘이땅에 살기 위하여’는 강력한 스래쉬 리프를 차용하여 록 팬들 사이에서 상당한 리퀘스트를 받았다. 밴드의 두 기타리스트 유병열과 엄태환은 화려한 솔로보다는 탄탄한 "밴드"중심의 플레이에 역점을 두며 사운드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어 1998년에 발표된 3집에서 밴드는 한층 더 유기적인 조직력을 선보였다. 그것은 모든 곡의 작사와 작곡, 그리고 편곡을 밴드 스스로 해냈다는 독립성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전작에서 나타난 신랄한 메시지는 ‘7년의 그리움’에서 잔잔하지만 진지하게 구현되었다. 이 작품은 정계를 따끔히 질타하는 곡(‘왕관 쓴 바보’)과 과학의 맹신에 따른 암울한 미래(‘공상과학 개꿈’)를 노래한 곡 등 밴드의 다변화된 관심이 투영되어 있는 앨범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밴드의 최대 역작은 99년 말에 발매된 일 것이다. 한국 록의 신화인 신중현을 비롯하여 송창식, 들국화, 그리고 대학가요제의 스타인 활주로와 샌드 페블즈에 이르기까지 윤도현 밴드는 자신들이 동경했던 거장들에 대한 찬사를 백 마디의 말보다 더 절절한 ‘음악’으로 보내고 있다. 따라서 이 앨범은 한 두 곡의 어줍지 않은 리메이크를 삽입한 노골적인 ‘앨범’과는 차별성을 갖는다. 이 작품은 누구도 감히 시도하지 않았던 한국 록의 계보를 파악하려는 치열한 ‘음악 정신’의 산물이다. 러시아 민중들에게 저항의 메시지를 심어주었던 한국계 포크록 가수 빅토르 최의 ‘혈액형.bloodtype’과 통일에 대한 염원을 노래한 김민기 원곡의 ‘철망 앞에서’는 뭉클한 감동을 전해준다. 이 앨범으로 윤도현 밴드는 한국 록의 가계에 자신의 이름을 깊이 각인하는데 성공했다. 그들은 2000년 자신들의 장기인 ‘live’를 음반으로 발매하였다. 그 사이 유병열과 엄태환이 탈퇴하고 기타리스트 허준이 새로 가입하였다. 그 이름 자체로 충분히 ‘고달픈’ 국내의 록음악은 또 한가지의 난관을 극복해야만 한다. ‘촌철살인’의 테크닉을 과시하는 외국의 유수한 뮤지션들의 음악에 젖어 있는 팬들의 귀를 만족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국의 ‘록’밴드 윤도현 밴드의 존재는 빛을 발한다.
“록을 하면 라이브로 하는 게 당연하죠”. “서태지와 라이브로 승부하고 싶습니다”. 뮤지션으로서 가질 수 있는 이 단순한 의견의 피력은 그를 서태지를 이용한 센세이셔널리즘의 화신으로 둔갑시켰고 많은 서태지 팬들은 그를 상술의 환자로 몰아부치며 비난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이 말은 그 저의를 떠나서 지극히 당연한 록커로서의 자세를 표현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며, 자신의 자신감을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장인의 오만함(영... “록을 하면 라이브로 하는 게 당연하죠”. “서태지와 라이브로 승부하고 싶습니다”. 뮤지션으로서 가질 수 있는 이 단순한 의견의 피력은 그를 서태지를 이용한 센세이셔널리즘의 화신으로 둔갑시켰고 많은 서태지 팬들은 그를 상술의 환자로 몰아부치며 비난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이 말은 그 저의를 떠나서 지극히 당연한 록커로서의 자세를 표현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며, 자신의 자신감을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장인의 오만함(영국의 로비 윌리암스(Robbie Williams)가 그룹 오아시스(Oasis)의 리암 겔러거(Liam Gallagher)에게 권투시합을 하자고 브릿어워드에서 제안을 했던 것처럼) 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우리 음악계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PC 통신에서의 익명으로 쏘아부치는 설전 보단 훨씬 낫지 않은가? 고1때는 오함마, 고2때는 Dark horse, 고3 때는 그룹 루시퍼에서 보컬을 맡으며 이미 싹 수 노란 록커의 피를 지녔던 박완규(1973년)는 고교 졸업 후 K.nest, Gray Wolf 등의 밴드를 결성하여 미군 기지에서 활동하며 다수의 공연을 펼쳤다. 그러다 친누나의 소개로 록그룹 부활의 오디션에 참가한 그는 부활의 과거 노래들을 자기의 색깔로 불러내 김태원의 지명을 끌어낸다. 그렇게 해서 그는 유난히 보컬의 운이 없는 부활의 5집에 참여한다. 부활은 여기에 수록된 ‘Lonely Night’으로 나름대로 밴드의 지명은 유지하지만 예전의 인기를 얻지 못하고 활동이 뜸해진다. 그러자 앨범 < 불의 발견 >은 박완규와 부활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고 그는 경제사정과 음악의 이견차이 등의 이유로 팀을 떠난다. 과거 김종서가 몸담았고 장혜진, 박상민, 캔 등을 보유하고 있는 소속사와 끈이 닿은 그는 1999년 자신의 솔로 앨범을 발표한다. 이 앨범에서 보여준 부활 때 보다 더 걸걸해진 목소리와 중후한 분위기는 애절한 발라드를 임재범 스타일로 녹여냈으며 거기에 더욱 강해진 록필은 그를 차세대 남자가수의 위치로 올려놓았다. 인기를 얻은 ‘천년의 사랑’ 비디오 클립은 일본 애니메이션 < 카우보이 비밥 >의 장면들을 사용해서 만들어 화제를 모았으며, ‘Angel’, ‘진심’, ‘자유’, ‘약속’과 같은 앨범의 수록곡 전부가 골고루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전국 투어를 이끌어내며 신명에 지치도록 노래만 불렀다. 2000년에 발표한 그의 두 번째 앨범은 나오자마자 ‘욕망이란 이름...’이 폭발했다. 그와 동시에 서태지와의 논쟁은 판매고는 물론이고 가십란을 장식한 그의 이름을 한껏 드높였다. 팝메탈의 성격이 짙은 그의 음악은 하드코어의 환기와 더불어 관심을 끌었으며 천리안 사이버 가요제에서 은상을 수상한 펄럭펄럭과의 결합은 록의 기치를 높이 세우려는 그의 의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앨범에 수록된 전인권과의 듀엣곡 ‘사랑한 후에’만으로도(후에 전인권이 이 곡을 무단 사용했다며 박완규와 음반제작에 관여한 캔 기획, 동아뮤직 대표를 저작권법 위반 혐의 등으로 서울지검 서부지청에 고소하긴 했지만) 이와 같은 음악적 이력을 증명하고 있다. 저력 있는 완성도로 뭉쳐있는 그의 두 번째 앨범에는 중국 악기 이오를 사용한 발라드 ‘왜 그랬어’, ‘비’ 영화 < 불후의 명작 > 화면을 주요 테마로 사용한 ‘눈물 없는 이별’ 등의 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수록곡들을 영어 버전은 만든 ‘Naked desire’, ’Rain’, ’TV&16’ 등이 담겨 있다. 이 앨범의 성공으로 여기저기 불려 다닌 그는 한때 몸을 추스리지 못하고 탈진증세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미니시리즈 < 성난 얼굴로 돌아 보라 >에서 ‘기다림에 지친 너에게’를 부르기도 하고 박미경의 앨범에 참여해 ‘You are my friend’란 곡을 같이 부르기도 한 그는 이후 SBS 특별기획드라마 < 유리구두 >에서 ’비상지아’, ’Help me love’을 불렀으며 영화 < 웃기는 영화 >에선 ’또 다른 시간 속에서’, 김현철의 8집에는 ’어부의 아들’로 참여했다. R&B의 신성 박화요비와 함께 뮤지컬 < 바람의 나라 >에서 호연을 보여준 그는 ’천연지애’의 작곡가 유해준의 ’After you’ve gone’을 타이틀곡으로 한 세 번째 앨범 < It’s Now or Never >를 2002년 9월 발매했다. 일본의 오노 마사토시가 불렀던 ‘You’re the only’의 리메이크곡 ‘I love you tonight’이 수록된 이 음반과 더불어 라이브 공연을 시작했으며 제목이 주는 결단성만큼 의욕과 승부욕의 가득 차 있다.
멤버 : 김인수, 한경록, 박윤식, 이상면, 이상혁 한국 인디음악의 독보적인 존재이자 한국 펑크록을 대표하는 밴드. 이들의 역사는 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부이촌동에서 고등학교까지 동고동락하던 친구들로 대학교 입학 후 우여곡절 끝에 클럽 드럭의 오디션을 통과, 드럭밴드로 발을 내디뎠다. 쌍둥이 형제지간인 이상면(기타)과 상혁(드럼), 박윤식(보컬, 기타), 한경록(베이스) 네 명과 뒤에 합류한 ... 멤버 : 김인수, 한경록, 박윤식, 이상면, 이상혁

한국 인디음악의 독보적인 존재이자 한국 펑크록을 대표하는 밴드. 이들의 역사는 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부이촌동에서 고등학교까지 동고동락하던 친구들로 대학교 입학 후 우여곡절 끝에 클럽 드럭의 오디션을 통과, 드럭밴드로 발을 내디뎠다. 쌍둥이 형제지간인 이상면(기타)과 상혁(드럼), 박윤식(보컬, 기타), 한경록(베이스) 네 명과 뒤에 합류한 김인수(아코디언, 키보드)로 구성된 크라잉넛은 '말 달리자'라는 곡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IMF 한파로 몸과 마음이 얼어붙은 때 터져 나온 '말 달리자'는 "닥쳐, 닥쳐, 닥치고 내 말 들어"라고 부르짖는 후렴구로 당시 20대들을 하나로 만든 청춘의 송가였다. 그리고 이들의 1집은 인디밴드로는 최초로 10만장이라는 판매고를 올리며 전설이 됐다.

1970년대 후반 영국을 강타했던 펑크를 부활시켜 '조선 펑크'라는 이름으로 군림한 크라잉넛. 2010년 6집 앨범을 내며 15년 세월을 단 한 번의 멤버 교체 없이 함께해온 이들은 '환갑 현역 로커'를 꿈꾸며 지금도 달리고 있다.
2005년 동반제대 후 전용 녹음 스튜디오까지 마련해 명실공히 '자주독립 음악인'이 된 크라잉넛은 여전히 술 마셨다 하면 새벽을 보는 체력으로 공연 뒷풀이를 주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서커스 유랑단' '룩셈부르크' '밤이 깊었네' '좋지 아니한가' 등 다수의 히트곡이 있다.

‘음악 놀이터’ 의 조그만 창고에서 태어난 크라잉넛은 거침없이 질주하는 ‘말달리자’로 1990년대 후반 국내에도 인디라는 이름의 주류 음악에 대한 대항마가 엄존하고있음을 증명한 밴드이다. ‘닥쳐, 닥쳐, 닥치고 내 말들어’라는 후렴구를 뿌려대며 다섯 악동들은 신촌일대를 휩쓸고 다녔고, 이는 클럽문화의 세(勢)확산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홍대 신촌의 언더그라운드로 운집했고, 그들을 수용할 라이브 클럽들이 속속 생겨났다. 메인스트림에서도 지하세계의 조직적인 움직임에 관심을 집중했고, 자의반 타의반 인디의 존재와 가능성을 인정했다. TV 가요 프로와 고비용의 뮤직 비디오가 아닐지라도 음악이 생동감 있게 스피커에서 터져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 것이다. 크라잉넛은 그러면서 우리 음악계에 펑크라는 ‘뉴 록’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는 의미 있는 발자취를 새겼다.

그들은 1970년대 후반 영국을 평정했던 섹스 피스톨스와 클래시를 부활시키며 우리에게 없었던 펑크 록의 에너지와 파괴력을 전달했다. 그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야성미와 고무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한폭탄성 발랄은 펑크의 본질, 바로 그것이었다. IMF 한파로 인해 몸과 마음이 얼어붙은 시점에 등장한 것도 영국 펑크의 태동 배경과 맞아 들어갔다. 하지만 크라잉너트는 단순히 이 땅에 외제 펑크를 수용하는 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펑크에서 음악적 ‘자유’를 보았다. 펑크의 약속이라 할 3코드와 미니멀리즘에 집착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레게와 스카뿐 아니라 폴카와 보사노바도 할 수 있는 것이고, 또 재즈나 헤비메탈을 못할 게 없었다. 그들은 이런 짬뽕 사운드를 ‘조선 펑크’라 명명했다. 펑크의 개량화 또한 국산화였다.

그러한 지향은 한국 젊은이들의 송가가 된 ‘말달리자’로 인해 인디 밴드로는 최초로 5만장이라는 음반 판매고를 기록한 1998년 데뷔작, 그리고 주류와 인디을 수시로 넘나드는 유랑(?) 생활을 선언한 이듬해의 2집 에 계속되었다. 이번에 내놓은 3집 에서도 크라잉너트의 조선 펑크는 건재하다. 그동안 후지 록페스티벌 참가, 들국화 헌정 앨범 참여, CF 출연 그리고 곧 디지털 영화 의 주연 등의 활동으로 인해 혹시 펑크 오리지널리티의 소멸을 가져온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그건 잠시의 기우에 불과했다. 멤버들은 오히려 “다양한 접근법을 통해 음악을 볼 수 있는 폭 넓은 시야를 확보했다”며 엔터테이너로서의 행보를 즐거워했다. 하기야 인디 밴드가 언더에 숨기만 하라는 법은 없지 않는가. 앨범은 전작 보다 더 진일보했음이 나타난다. 타성에 젖는다는 것은 이들에게는 남의 일처럼 보인다.

영화의 메인 테마로 삽입된 동명의 곡은 극적인 곡의 전개가 긴장감을 더하는 스카펑크 트랙이며 김혜수, 이성재, 차승원이 주인공을 맡아 곧 개봉 예정인 영화 에서 흘러나오게 될 ‘지독한 노래’는 빠른 보컬과 격렬한 리듬 전개가 인상적이다. 몸파는 여성에 대한 노래 ‘붉은 방’은 슬픔을 머금은 아코디언 음색이 주도하는 비가(悲歌)이며,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Honey’’는 박윤식이 3인조 여성 록밴드 파스텔의 베이시스트 김선희와 듀엣으로 아주 부드럽게 처리했다. 컨트리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 사물놀이 한판 ‘금환식’ 등도 놓치지 말아야 할 곡들이다. 전체적으로는 요즘 분위기를 의식한 듯 복고성향이 두드러진다. 지금까지는 말달리며 ‘앞으로’ 나갔지만 이제는 이소룡 양귀비 금환식 불놀이와 같은 저 옛날로, ‘뒤로’ 돌아가 거기서 재미와 충격을 채집하고있는 셈이다. 자칫 잘못하면 퇴행이 될지도 모르는 것을 그들 특유의 스타일로 온고지신을 꾸려냈다. 특히 타이틀곡으로 낙점 된 ‘밤이 깊었네’는 음반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곡이다. 부드러운 소프트 록 사운드는 이제까지의 크라잉넛 음악 가운데 가장 쇼킹한 주류로의 전향이다. 이러한 밴드의 태도는 그러나 기회주의나 억지가 아니라 6년 간의 음악 관록이 빚어내는 자연스런 연착륙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 언더와 펑크에의 수절을 강제하기보다는 도리어 갈채로 화답할 때가 아닐까. 박윤식 이상면 한경록 이상혁 김인수가 일궈내는 편안한 연주 화합은 친구들이기에 가능했고, 비치 보이스 정도는 아닐지라도 뛰어난 보컬 하모니를 자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제 그들은 치고 달리기만 하던 펑크 키드에서 생각하고 노력하는 아티스트로의 점진적인 이동을 수행한다. ‘말달리자’로 인디의 개막을 고하며 스타트를 끊었지만, 다양성과 자유가 담긴 조선 펑크를 앞세워 인디 속에 함몰되지 않고 수면위로 부상, 비상하고있다. 이것은 국내에서 인디 밴드가 뻗어나가기 위해 취해야할 적극적인 생존방식이다. 언제까지 우물안 개구리로 살수는 없다.
멤버 : 김민규(보컬/기타), 윤준호(보컬/베이스), 서상준(드럼), 이요한(키보드) 통신 모임 하이텔에서 모인 델리스파이스의 멤버들은 인디씬의 등장 전부터 활동했던 인디의 입김을 담지한 밴드이다. 당시 유행하던 헤비메탈밴드 스타일을 탈피하고 자신들의 감수성을 무기로 한 모던록 계열의 음악을 하고자 했던 이들은 인디 레이블이 생성되기 조금 전에 앨범을 발표하며, 출범 초기에는 기존 음악의 대안 세력으로 떠올... 멤버 : 김민규(보컬/기타), 윤준호(보컬/베이스), 서상준(드럼), 이요한(키보드)

통신 모임 하이텔에서 모인 델리스파이스의 멤버들은 인디씬의 등장 전부터 활동했던 인디의 입김을 담지한 밴드이다. 당시 유행하던 헤비메탈밴드 스타일을 탈피하고 자신들의 감수성을 무기로 한 모던록 계열의 음악을 하고자 했던 이들은 인디 레이블이 생성되기 조금 전에 앨범을 발표하며, 출범 초기에는 기존 음악의 대안 세력으로 떠올랐다. 그냥 입에서 나온 의성어를 가져다 붙인 팀 이름은 Delicious와 Spice의 합성어로 인정되었으며 이들의 1집 표지나 2집의 속지에서 알 수 있듯이 스파게티를 연상시켰다. 김민규, 윤준호, 이승기, 오인록이 참여한 이들의 1집은 나오자마자 상당히 많은 비평적 호의를 받았으며 변변한 매니저 하나 없이도 상당한 성과를 이루어 내었다. 라디오와 입소문 만으로 인기를 얻은 ‘챠우챠우’는 이들의 최대 히트곡이 되었고 앨범 수록곡들의 귀에 달라붙는 친숙한 멜로디들은 구매욕을 자극시켰다. 이에 힘입어 이들은 1집 발매 단독 공연을 가졌으며 클럽 오픈 기념 공연 등에 참가하며 높은 인지도를 구가했다. 1집 녹음 뒤, 팀에서 떠난 오인록 대신에 최재혁을 가입시킨 이들은 리메이크 앨범 에 참여해 ‘오후만 있던 일요일’을 부르고 그룹 곱창전골 멤버 하세가와의 추천으로 일본 공연에 참가한다. 1999년에 발표한 이들의 2집은 빠른 활동 중단에도 불구하고 뮤직 비디오로 제작한 ‘달려라 자전거’가 크게 히트했고 ‘종이비행기’, ‘마이웨이’ 등이 팬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앨범에는 객원 가수가 2명 있는데, ‘하이에나’에서는 박건이 참여하고 있으며 가제보(Gazebo)의 ‘I like Chopin’’을 샘플링한 ‘두 눈을 감은 타조처럼’에서는 그룹 에코의 김정애가 참여하고 있다. 이 앨범에는 ‘태양의 계곡’이라는 인스트루멘탈 곡이 있으며 산울림의 곡을 리메이크한 ‘회상’이라는 곡도 수록되어 있다. 김민규가 자신의 레이블 문라이즈를 설립하고 솔로 EP 을 발표하면서 시장성과 손익분기점에 대한 실체를 어느 정도 파악한 이들은 불합리한 소속사와의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빠른 앨범 작업에 착수한다. 이전에 김민규와 윤준호는 라디오 방송의 DJ 생활을 시작했으며 산울림의 트리뷰트 앨범에 2집의 수록곡과는 다른 버전으로 ‘회상’을 들려준다. 키보드를 양용준으로 교체하고 발표한 이들의 3집은 자조적으로 자신들의 실체를 비꼰 이라는 타이틀로 선보였다. 고딕 스타일의 비디오 클립을 감상할 수 있는 ‘고양이와 새에 관한 진실’이 인기를 끌었으며 이들의 분노를 감지한 듯 팬들의 호응도 높은 편이였다. 3집 발매 기념 공연을 끝으로 이들은 소속사에서 자유로워졌다. 김민규는 스위트피의 공식적인 1집을 발표했으며 이들의 예술의 전당 단독 공연과 일본 투어는 팬들의 열광적인 호응 속에 마쳤다. 계속해서 윤준호는 신인 그룹 넬의 1집을 프로듀싱 했으며 최재혁은 그룹 데이트리퍼의 ‘호밀밭’에 참여했다. 2001년 들국화의 트리뷰트 앨범에 ‘내가 찾는 아이’로 참여하고 기획 앨범 에 ‘한 길’이라는 곡을 부른 이들은 키보드 양용준의 탈퇴로 현 3인조로 4집 음반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 유통업계는 아직도 투명하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유통 구조의 어느 한 명이라도 솔직하지 못하면 아티스트는 정확한 자기 몫을 챙길 수 없게 된다. 우리 음악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투명한 분배의 균형이 중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음악을 잘해도 이 세계를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것은 우리 모두의 손실이다. 아티스트에게 힘을 실어주는 음반산업이 될 때 비로소 우리는 감동이 있는 음악의 역사를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노래 : 강산에 (본명 : 강영걸)
가장 한국적인 록을 한다는 평을 받고 있는 강산에(강영걸)는 1992년 충격적인 데뷔작 으로 순식간에 존재를 환기시켰다. 부산에서 얌전히 모범생으로 자라 한의대에 입학한, 장래가 촉망되던 그는 서울에서 받은 문화적 충격과 학비조달에 무거운 짐을 느끼던 중 이종환이 운영하는 라이브 업소의 노래 대회에 출전해 대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쉽게 열릴 것 같았던 가수라는 직업은 기회로 다가오지 않았다. 일본인 친구와 함께 ... 가장 한국적인 록을 한다는 평을 받고 있는 강산에(강영걸)는 1992년 충격적인 데뷔작 으로 순식간에 존재를 환기시켰다. 부산에서 얌전히 모범생으로 자라 한의대에 입학한, 장래가 촉망되던 그는 서울에서 받은 문화적 충격과 학비조달에 무거운 짐을 느끼던 중 이종환이 운영하는 라이브 업소의 노래 대회에 출전해 대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쉽게 열릴 것 같았던 가수라는 직업은 기회로 다가오지 않았다. 일본인 친구와 함께 일본으로 놀러갔던 그는 그 곳에서 두 번째로 문화적인 충격을 받으며 음악은 가수가 아니어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일본을 좋아하게 된 그는 그곳에서 공부하며 아르바이트도 하고 틈틈이 곡들을 만들었다. 하지만 가수를 포기해 버린 뒤라서 기획사의 끈질긴 회유에도 한동안은 꿈쩍하지 않았다. 그의 데뷔 앨범은 일본에서 만든 곡들치고는 대단히 국내의 토착 생활을 일깨우는 음악들로 가득 차있다. 이로 인해 비평적으로 환대를 받았으며 국내 록 음악의 새로운 물결로 제시 되었다. 그만이 낼 수 있는 시원한 목소리는 수록곡들을 활기차게 만들었고 빠르게 인기를 안겨주었다. 이 첫 앨범에는 ‘에럴랄라’, ‘할아버지와 수박’, 그리고 이산의 아픔을 서민의 정서에 담아 관통한 ‘...라구요’와 같은 일상의 한국적인 분위기를 간직한 곡들이 주로 수록되어 있으며 그의 내지르는 칼칼한 목소리는 이른바 토속적인 냄새를 풍기게 했다. 이런 독특한 색깔은 그를 록은 록이지만 서구의 록과 다른 맛을 내는 가수로 인식되게 했으며 우리 대중 음악사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록음악의 대안으로 꼽히게 했다. 시작은 0부터라는 생각에서 붙인 앨범 제목처럼 그의 반골적인 기질과 직선적 사고도 이때부터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첫 앨범으로 비평적, 상업적 성공을 거둬 단연 록계의 유망주가 되었다. 두 번째 앨범은 1집에 비해 꽉 짜여진 느낌이 덜 하지만 반전 문제를 다룬 ‘더 이상 더는’이나, 돈의 문제를 직설적 화법에 실은 ‘문제’(원래 제목은 ‘돈’이지만 심의 과정에서 불가 판정을 받아 바꿨다),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한 ‘아웃사이더’와 같은 곡들로 계속해서 자신의 분위기를 이어갔다. 무엇보다도 최대의 히트곡 ‘넌 할 수 있어’가 들어 있는 이 앨범으로 라이브 공연을 시작한 그는 공연중 반말을 하는 등의 사건으로 매체에서 가장 꺼리는 가수 중의 하나가 되었지만, 자신의 주장과 생각을 굽히지 않는 소신은 더욱 더 록커의 모습으로 서게 했다. 세상이 강요한 대로만 살았던 그가 이제서야 사춘기를 느낀다는 제목의 2집 로 인기 가수의 반열에 오른 그는 1996년 서우영의 드라이하고 단선적인 멜로디의 ‘삐딱하게’가 실린 를 발표한다. 좀 더 의식적으로 사회적 문제를 다룬 이 앨범에는 대한민국의 부조리를 태극기에 감정 이입한 ‘태극기’, 통일을 염원한 ‘One’ 등이 있으며 너무 형식화되고 보편화되어 개성이 없는 모습에 짜증을 낸 ‘삐딱하게’, 남들과 다르고 싶은 그의 생각을 “삐딱하며 자유롭게”라고 외치는 ‘차라리’에서처럼 자신의 고유한 멋을 잃어버린 세태에 대한 불만을 주로 노래하고 있다. 일본인 친구가 프로듀싱한 이 앨범에는 영화 에서 쓰였던 ‘어쩌면’이 수록되어 있고 표지를 비롯한 속지 디자인은 어어부밴드의 마부가 했으며 ’별뜻없어’에서는 이상은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1998년에 나온 그의 4집은 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긴 제목의 트랙인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이 인기를 얻은 이 앨범은 사회적인 맥락의 이슈들을 개인의 문제로 득화시켰다. 사고의 틀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그의 모습처럼 의도적인 메시지보다는 자신의 성찰을 담아내려 한 이 앨범에는 ‘미스 탬버린’이나 ‘춤추는 나’와 같이 예의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흥겨운 록큰롤도 있었지만 왠지 시장에서 많은 환대를 받지는 못했다. 이후 그는 쉬어 가는 의미에서 평소 자신이 좋아하던 곡들을 담아 리메이크 앨범을 발매했다. 이정선의 ‘우연히, 한 대수의 ‘물좀 주소’, ‘하루 아침’, 산울림의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 조동진의 ‘제비꽃’ 등이 수록된 이 앨범에서 그는 블루스에 기초한 발성과 시원한 목소리로 새로운 맛을 보여 주고 있으며 그 동안 금기시 했던 미디 음악에 대한 모색을 하며 다양화를 위한 전초전을 마련했다. 그는 한 때 대마초 사건으로 사회 봉사 활동을 명령받고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하는 체험을 하기도 했으며 미국의 사막을 여행하며 자아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방황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Jesus Christ Superstar)에서 가롯 유다 역이 이끌어낸 호평에서 볼 수 있듯이 그가 돌아갈 곳은 음악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2001년 라는 타이틀을 걸고 무대로 돌아온 그는 “열창은 가수의 사회 봉사”라며 가수로서의 직무 유기를 하는 요즘 세태를 비판했다. 새로운 출발점에 선 그는 200여 명의 가수들과 함께 음악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의 콘텐츠 사업에 참여했으며 단 1%의 재편집이나 더빙이 없는 순수 라이브로 제작된 음반을 들고 나타났다. 2002년 10월에 발표한 총 일곱번째 앨범은 본명인 강영걸을 타이틀로 내세우고 스트레이트한 록을 구사했던 전작들과는 다른 면을 보여주고있다. 그간 그의 앨범을 프로듀싱 해왔던 하치 히로부미를 뒤로 하고 직접 프로듀서의 명함을 새긴 그는 근력보다는 연륜의 깊이에 기대고 있는 이 앨범에서 무엇보다도 사투리를 강조한 ’명태’, ’와그라노’ 등을 국내적인 랩으로 승화시켰다. 그의 아내가 작사했다는 부드러운 선율의 ’지금’이란 곡이 타이틀곡으로 내정됐다.
홍익대학교 전자제어공학과를 졸업하였다. 1989년 1집 「춘천 가는 기차」로 데뷔하여 9장의 정규앨범과 다수의 디지털 싱글앨범, 영화, 드라마, 뮤지컬 음악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음악작업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온 인기가수이다. 가수활동 이외에도 가수 이소라 등의 음반을 프로듀싱하여 히트시킨 유능한 제작자이기도 하다. MBC FM '밤의 디스크쇼', '김현철의 오후의 발견'의 DJ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서울예술대학 ... 홍익대학교 전자제어공학과를 졸업하였다. 1989년 1집 「춘천 가는 기차」로 데뷔하여 9장의 정규앨범과 다수의 디지털 싱글앨범, 영화, 드라마, 뮤지컬 음악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음악작업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온 인기가수이다. 가수활동 이외에도 가수 이소라 등의 음반을 프로듀싱하여 히트시킨 유능한 제작자이기도 하다. MBC FM '밤의 디스크쇼', '김현철의 오후의 발견'의 DJ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서울예술대학 및 동덕여대에서 강의를 하였으며, 현재 후너스 크리에이티브의 대표이사로 있다.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한 그가 최근에는 어린이 전문 음악앨범인 키즈팝을 이끌고 있다. 어린이가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자하는 고민에서 출발한 키즈팝을 통해 그의 음악인으로서의 행보가 유난히 특별해 보인다. 어릴 때부터 습득한 음악적 소양과 유연성이 커다란 난관에 부딪친 사람들을 위로하고 힘을 준다고 믿는 김현철만의 신념이 일구어낸 성과로 최근 『뮤직비타민』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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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적이며 R&B풍의 세련되고 깔끔한 편곡으로 특징 지워지는 음악세계를 선보이고 있는 김현철은 우리 대중 음악계에서 고유한 색을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뮤지션 중의 하나이다. 그의 데뷔는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학기에게 ‘이미 그댄’이라는 곡을 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박학기의 소개로 음악 세계에 결정적 영향을 준 조동익과 하덕규 등을 소개받은 그는 당시 통기타로 라이브를 하던 한 카페에서 몇 편의 자작곡을 선보이며 멋진 재수 생활을 시작한다. 물론 그가 만든 곡을 발표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 아니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교회성가대회 참가곡을 만들어 대상을 받은 경험이 있으며 고등학교 시절에는 아침향기라는 밴드를 만들어 친구들과 함께 콘서트를 했다. 여기서 발표한 노래들은 B급 테이프를 만들어 팔기도 했는데, 이 때 만든 ‘아침향기’라는 곡은 그의 데뷔 앨범에도 실려있다. 조동익의 도움으로 세션에도 여러 번 참가했던 김현철은 동아기획의 대장 김영으로부터 앨범 제작을 제의 받는다. 그는 자신감으로 상당액의 계약금을 요구했으며 이를 관철시키고 작은 거장의 행보를 시작했다. 조동익에게 보내는 송가인 ‘형’, 지금도 그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춘천 가는 기차’ 등이 수록된 데뷔 앨범이 수록된 그의 음악은 대중적인 인기는 얻지 못했지만 동아기획의 산물들이 그렇듯이 서서히 저변에 많은 팬들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국내 대중음악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세대들로부터 컬트적 숭배를 받는다. 초기 그의 음악은 어떤날(그는 어떤날의 두 번째 앨범에 세션으로 참여했다)과 시인과 촌장의 노선에 있었으며 당시 선보인 매끄럽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는 지속적으로 그의 색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그의 정점으로 평가되는 두 번째 앨범은 1992년 8월에 나왔다. 이보다 앞서 교통사고로 인해 1년여 동안 미뤄줬던 퓨전 재즈팀 야샤(Yasha)의 앨범을 1992년 3월에 발표한다. 야샤에는 그의 영웅 조동익과 함춘호, 손진태 등이 가세하고 있었으며 고급스런 연주곡 위주의 패턴을 이끌어갈 그룹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각자가 2곡 여씩을 만들어 수록한 단 한 장의 앨범으로 그쳤다. 이중 그가 만든 ‘눈싸움하던 아이들’이란 곡이 실려 있는 그의 2번째 앨범은 빼어난 리듬감을 느낄 수 있는 ‘38도 여름’과 조규찬과 같이 부른 ‘나나나’, ‘사과나무’와 ‘까만 치마를 입고’ 등의 뛰어난 곡으로 다시 한번 자신의 이름을 두텁게 인식시킨다. 이 앨범은 3집 앨범의 대중적인 성공을 가져다주는 촉매제 역할을 했으며 한층 성숙해진 멜로디 감각과 편곡을 느낄 수 있다. 그는 2집 발표 후 이현승 감독의 <그대 안의 블루>란 영화의 스코어 작업을 한다. 대학 선배인 이 감독과의 인연은 그 후로도 계속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와 <시월애>의 음악 작업으로 이어진다. <그대 안의 블루>에서 흔히 ‘그대 안의 블루’라고 불려지는 ‘그대 눈빛 속의 나’가 처음으로 가시적인 히트곡 선상에 올랐으며 이어 ‘횡계에서 돌아오는 저녁’이라는 연주곡을 정면에 배치한 그의 3집에선 ‘달의 몰락’이 차트의 정상권에 오르며 그를 인기 가수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계속해서 그는 4집과 5집으로 일정한 판매량을 기록하며 대중 스타로서의 입지를 누렸으며 프로듀서로서도 인정받아 이문세를 비롯한 장혜진, 이소라 등의 앨범을 감독한다. 그가 손댄 음반은 대중적인 성공도 함께 이끌어 내며 음악인으로서 확실한 자리를 잡기도 했지만 4집의 ‘나를’이나 이문세에게 준 ‘난 괜찮아’ 등의 표절 시비는 한편으로 그를 매너리즘 속으로 이끌기도 한다. 이후 발표한 6집과 7집은 예전의 음악 패턴을 반복하며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 적지않은 외면을 받았다. 그는 현재 서울예대 실용음악과에서 작곡을 강의하고 있으며 2000년에는 국가에서 시상하는 오늘의 젊은 작가상 대중 음악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중견 가수의 경지에 올랐지만 아직은 할 일이 많으며 앞으로도 끊임없는 음악을 토해낼 그의 창작력은 여전히 대중적인 기대를 모으고 있으며 많은 음악인들로부터 지지에 찬 기대를 받고 있다.

- 제공 : IZM (www.izm.co.kr)
데뷔 초기 ‘Boy from New york city'', ‘Twilight zone''을 히트시켰던 미국 뉴욕의 재즈 보컬팀 맨하탄 트랜스퍼(Manhattan Transfer)를 연상시켰던 그룹 낯선사람들은 인천대 동아리 모임인 포크라인의 멤버들을 주축으로 결성되었다. 5명 중 명지대 모임인 주리랑 출신인 백명석을 제외하곤 고찬용, 이소라, 허은영, 신진이 모두 여기 출신이다. 맏형 신진은 옴니버스 앨범 < 도... 데뷔 초기 ‘Boy from New york city'', ‘Twilight zone''을 히트시켰던 미국 뉴욕의 재즈 보컬팀 맨하탄 트랜스퍼(Manhattan Transfer)를 연상시켰던 그룹 낯선사람들은 인천대 동아리 모임인 포크라인의 멤버들을 주축으로 결성되었다. 5명 중 명지대 모임인 주리랑 출신인 백명석을 제외하곤 고찬용, 이소라, 허은영, 신진이 모두 여기 출신이다. 맏형 신진은 옴니버스 앨범 < 도시 모자이크 >에 참여했던 경력이 있었으며, 팀의 리더 고찬용은 제2회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에서 ’거리풍경‘으로 대상을 차지했었고, 이소라는 김현철과의 듀엣곡 ‘그대 안의 블루’로 약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백명석은 1991년 강변가요제로 음악계와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대중들에게는 낯설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 만큼 무명이었고, 스타일로 삼은 보컬 중심의 음악도 대중과는 친해지기 위해서는 상당히 시간을 요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낯설음은 항상 기대를 동반하는 것이기에 팀이름은 약간은 자기 파괴적이지만 낯선 사람들이란 이름으로 귀착되었다. 이들의 1집에는 정원영, 김현철, 김광민, 이영경, 조동익, 손진태 등의 초호화 세션이 참여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악기는 재즈에 기본을 둔 화음을 구사하는 이들의 목소리이며 회화적으로 채색되어진 가사는 절묘한 화음 속에서 이질적인 느낌을 주며 앨범의 묘미를 더해 주고 있다. 특히 ‘왜 늘’을 부른 중저음 파트의 이소라는 유독 튀는 보컬을 들려주고 있는데, 이후 그녀는 조규찬의 앨범에 듀엣으로 참여하고 결국은 김현철의 도움닫기를 받아 솔로로 대성공을 거둔다. 이 앨범에는 아카펠라 ‘비닐우산’, 팀 이름을 노래한 ‘낯선 사람들’, ‘동물원’ 등이 인기를 끌었다. 1994년 성공적인 첫 단독 콘서트를 가진 이들은 이소라 대신 들어온 차은주와 함께 2집을 발표한다. 전편의 재즈적인 분위기에서 상당수 팝적으로 기운 2집은 펑키함도 상당히 곁들여 일상사의 일들을 어쿠스틱한 악기에 실었다. 이 앨범에서는 스캣의 흥겨움이 인상적인 ‘두려운 행운’과 ‘프리즘’ 등이 인기를 얻었지만 1집의 반응에 비해 다소 미지근한 관심을 받았고 기대주 차은주는 솔로 앨범을 위해 팀을 나가 2000년에는 김현철과의 듀엣곡 ‘그대니까요’를 히트시킨다. 잠시 해체기를 가졌던 나머지 멤버들은 베이스음을 담당했던 백명석이 빠지고 서울 예술대 조교 김민정을 새롭게 받아들여 팀의 기둥으로서 자리를 지키는 고찬용, 신진, 허은영과 함께 4명이 새롭게 출발했다. 이 후 이들은 김현철의 5집에서 ‘연극이 끝나고 난 후’를 같이 불렀으며 하나 옴니버스 앨범 < 겨울노래 >에 ‘첫 눈’이라는 곡으로 참여했다. 팬들은 하나 기획의 재건과 함께 언제 나올지 모를 팀의 새 앨범을 기다리고 있으며 모두들 고찬용의 미래를 조동익이 올라선 반열의 그 어디쯤으로 추측하고 있다.
1998년 초 발표된 ‘그녀와의 이별’이 사람들을 사로잡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한동안 반응을 얻지 못했던 이 노래는 클럽 가에서 유행을 타며 결국 방송가에까지 진출한다. 첫 앨범의 부진으로 곧바로 후속 음반 녹음을 계획하고 있던 김현정은 뜻하지 않은 기회를 잡게 됐고,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후 그녀는 누구보다도 분주했던 한해를 보내야 했다. 그녀의 밀어 올리는 창법이 전면에 드러난 이 댄스곡은 각 방송사와 ... 1998년 초 발표된 ‘그녀와의 이별’이 사람들을 사로잡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한동안 반응을 얻지 못했던 이 노래는 클럽 가에서 유행을 타며 결국 방송가에까지 진출한다. 첫 앨범의 부진으로 곧바로 후속 음반 녹음을 계획하고 있던 김현정은 뜻하지 않은 기회를 잡게 됐고,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후 그녀는 누구보다도 분주했던 한해를 보내야 했다. 그녀의 밀어 올리는 창법이 전면에 드러난 이 댄스곡은 각 방송사와 케이블 TV의 채널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그녀와의 이별’은 그 해 연말 거의 모든 가요 순위 프로그램의 총결산 가수상을 수상하며 김현정을 여제의 위치에 등극케 했다. 메탈 음악으로 다져진 탄탄한 목소리가 그녀의 강점. 댄스 음악을 주로 하면서도 따라 부르기 힘든 높은 음역을 구사한다. 1999년 공개한 2집 < 갈매기의 꿈 >의 타이틀 곡 ‘되돌아 온 이별’도 그런 스타일의 노래였다. 이 곡 역시 그녀의 히트 넘버 중 하나로 기록됐고 좋은 흐름은 계속 이어졌다. 그녀의 두 번째 음반은 데뷔작과는 달리 김형석, 윤일상, 천성일, 주영훈 등 ‘히트 메이커들’이 총동원되어 세심하게 기획됐다. 댄스, 발라드, 모던 록등 다양한 장르의 곡들이 수록되어 있지만 이 곡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테마는 철저한 ‘대중지향’이다. ‘벽’, ‘실루엣’, ‘몽중인’등 수록된 노래들에서 이 ‘친화력’을 느낄 수 있다. 2집을 제작한 가요계의 연금술사들이 고스란히 참여한 그녀의 세 번째 앨범 < Kim Hyun Jung 3 >의 미래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너 정말?’, ‘멍’, ‘거짓말처럼’이 연속으로 지지를 받았다. 김현정은 인지도라는 측면에서 절정에 올라선 가수라 할 수 있다. 그녀가 지금까지 공개한 세 장의 음반들은 ‘불황’의 그늘이 아직 걷히지 않은 시장 속에서도 일정 수준을 상회하는 인기를 누렸다. 다만 곡들간의 유사성은 극복해야 할 점이다. 노래들이 정형화된 범주 내에서 가공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것은 지금까지 수많은 주류의 인기 가수들을 양성해 온 유명 작곡가들에게 한 발을 디디고 있는 그녀의 상황에서 비롯됐다 할 수 있다. ‘몰개성’은 연예인에게 득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히트곡을 만드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자신의 실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다음 앨범의 귀추가 주목된다.
1998년 한 비디오 클립이 가요 시장을 뒤숭숭하게 했다. 이병헌과 김하늘이 등장하고 허준호, 조민수, 훗날 세 친구로 인기스타의 반열에 오르는 정웅인이 등장하는 이 뮤직비디오는 세련된 영상미로 슬픈 드라마를 엮어냈으며 가수의 얼굴이 등장하지 않는 화제성은 세인의 관심을 증폭시키며 곧 음반의 구매로 이어졌다. 이 영화 같은 ‘To heaven'' 클립의 폭발적인 성공은 신인가수 조성모(1977년) 뿐만 아니라 감... 1998년 한 비디오 클립이 가요 시장을 뒤숭숭하게 했다. 이병헌과 김하늘이 등장하고 허준호, 조민수, 훗날 세 친구로 인기스타의 반열에 오르는 정웅인이 등장하는 이 뮤직비디오는 세련된 영상미로 슬픈 드라마를 엮어냈으며 가수의 얼굴이 등장하지 않는 화제성은 세인의 관심을 증폭시키며 곧 음반의 구매로 이어졌다. 이 영화 같은 ‘To heaven'' 클립의 폭발적인 성공은 신인가수 조성모(1977년) 뿐만 아니라 감독 김세훈을 스타로 키워냈으며 작곡가 이경섭, 스타제조기로 소문난 GM사의 김광수에게도 그 영예의 한 자리를 선사했다. 하루아침에 스타덤에 오른 조성모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가수가 되겠다는 일념 없이 그냥 이경섭을 따라다녔다. 어느 날 이경섭은 조성모의 가능성을 발견했고 조성모가 스타가 될 것임을 그는 예견했지만 소속사를 잡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댄스 그룹의 일원이 될 뻔도 했지만 발라드를 고집한 조성모와 이경섭의 신념을 받아들인 김광수는 조성모를 4년여에 걸쳐 조련한다. ‘얼굴 없는 가수’로 프로모션을 짜고 비디오에만 1억을 투자한 ‘To heaven''이 서서히 정상권에 진입하자 이 미소년은 TV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TV에 매달리는 일반 가수의 심리를 역이용한 이 작전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어 다시 큰돈을 투자한 뮤직비디오 ’‘불멸의 사랑’이 히트하고 그의 휴지기에는 ‘후회’가 10대의 귀를 사로잡으며 음반 판매량은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대부분의 곡들은 표절의혹을 받았지만 그의 폭발적인 인기에 함몰되었다. 그의 2집은 1집과 똑같았다. ‘For your soul''은 1집의 분위기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았고 앨범 재킷은 우타다 히카루의 것을 도용했음이 판명되었으며 ‘상처’는 ‘후회’의 반응을 의식해서 나왔다. 또한 거액을 들인 뮤직 비디오에는 신현준과 최지우를 비롯한 최고의 배우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무슨 상관인가? 앨범은 더 많이 팔렸고 조성모는 신승훈을 가뿐히 누르고 발라드계의 새로운 챔피온이 되었다. 음반 판매에 관한 신기록은 그의 리메이크 앨범으로 절정에 이른다. 그가 즐겨 부르던 히트곡들을 모아 만든 < Classic >은 200만의 벽을 깨며 기네스에 오른 김건모의 3집을 위협했다.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 이문세의 ‘깊은 밤을 날아서’,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 우순실의 ‘잃어버린 우산’ 등의 리메이크 곡들과 신곡 3곡이 포함되어 있는 이 앨범은 2000년 상반기를 강타하면서 기존의 곡을 사랑한 올드 팬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지만, 그는 16개월만에 석 장 연속 100만장을 넘기는 진기록을 세웠으며 이영애와 김석훈이 등장하는 뮤직 비디오는 다시 한번 화제를 뿌렸다. 다시 2000년 가을 조성모는 그의 정규 세 번째 앨범으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이 기록의 사나이는 서태지의 등장에도 기가 죽지 않았으며, HOT의 등장에도 기세를 늦추지 않았다. 10억 원을 투입해 필리핀 로케를 다녀온 ‘아시나요’의 뮤직 비디오에는 조성모를 비롯해 허준호, 정준호, 양민아가 열연을 펼쳤으며 2편의 버전이 만들어졌다. 이 비디오에서 표현된 한국군의 몰살 장면으로 백마부대의 항의를 받았지만 그의 인기를 부채질할 뿐이었고 언론은 스포트라이트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계속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강초현과의 만남 등을 보도했다. 그는 인기의 정상을 확인한 것뿐만 아니라 이 앨범에서 2곡을 작곡하며 드디어 싱어 송 라이터의 문을 통과했다. 서두르지 않고 가수의 길을 걷겠다던 소망과는 상관없이 그는 짧은 시간에 너무나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어쩌면 오래도록 가야할 음악의 길에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팬들의 사랑에 너무 연연하지 않고 좀 더 진지한 음악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음악이 예술이 되는 것은 음악성을 얻기 위한 길고 긴 여정이 있기 때문이다. 초기의 열정을 지닌 사람은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열정이 식으면 작품에 그대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조성모가 이것을 잊지 않는다면 그토록 하고 싶어하는 R&B로도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며, 초반의 영광은 최고의 가수로 길이 이어질 것이다.
멤버 : 박준형(랩, 리더), 데니안(랩), 윤계상(보컬), 손호영(보컬), 김태우(리드보컬) 당시 신비주의 콘셉트가 난무하던 시절, 평범한 청년 컨셉으로 편안함으로 다가와 기존 아이돌 주 소비층인 10대를 포함, 전연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그룹이다. 2000년 3집 음반 184만장, 2001년 4집 음반 171만장 이상을 판매하고, 방송 3사 가요대상을 수상하는 등 국민그룹으로 불리며 최고의 전... 멤버 : 박준형(랩, 리더), 데니안(랩), 윤계상(보컬), 손호영(보컬), 김태우(리드보컬)

당시 신비주의 콘셉트가 난무하던 시절, 평범한 청년 컨셉으로 편안함으로 다가와 기존 아이돌 주 소비층인 10대를 포함, 전연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그룹이다.

2000년 3집 음반 184만장, 2001년 4집 음반 171만장 이상을 판매하고, 방송 3사 가요대상을 수상하는 등 국민그룹으로 불리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100일간의 휴먼 콘서트'라는 타이틀에 매일 다른 주제로 구성된 콘서트 100회를 전회 매진시키며 성공적으로 끝마쳐 공연계의 한 획을 긋기도 했다. 데뷔 당시 5인조였던 god는 2004년 윤계상의 탈퇴이후 나머지 네명이 4인조로 활동을 계속했으나 2005년 발매한 7집 ‘하늘 속으로’를 마지막으로 활동을 잠정 중단하고 멤버들은 개인활동을 시작했다.

2014년 5월 탈퇴했던 윤계상을 포함하여 9년만에 5명으로 싱글 《미운오리새끼》를 발매했다. 5월 8일 음원 공개 직후 멜론, 엠넷닷컴, 올레뮤직, 네이버뮤직, 소리바다, 지니, 벅스, 싸이월드뮤직, 몽키3 등 9개 음원 차트 1위를 석권했다. 7월 1일, 3집 '하늘색 풍선'에 이은 또 다른 팬송 '하늘색 약속'을 발표하여, 각종 음원차트 1위에 올랐고, 7월 8일 공개한 정규 8집 수록곡들은 각종 음원차트에서 줄세우기에 성공했다.
우리 대중 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기 가수의 한 명으로 자신의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김건모는 처음에 평균율이라는 그룹에서 키보디스트 겸 싱어로 가요계에 입문했다. 하지만 이렇다할 성과가 없는 활동으로 진전이 없던 시기에,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으며 일찍이 기타를 치는 등 음악적인 면에서 뛰어난 감각을 가졌던 그를 발견한 것은 프로듀서 김창환 이였다. 댄스 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프로듀서를 만난 김건모는 데뷔... 우리 대중 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기 가수의 한 명으로 자신의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김건모는 처음에 평균율이라는 그룹에서 키보디스트 겸 싱어로 가요계에 입문했다. 하지만 이렇다할 성과가 없는 활동으로 진전이 없던 시기에,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으며 일찍이 기타를 치는 등 음악적인 면에서 뛰어난 감각을 가졌던 그를 발견한 것은 프로듀서 김창환 이였다. 댄스 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프로듀서를 만난 김건모는 데뷔 앨범부터 히트곡을 터트리며 성공가도를 달린다. 첫 싱글인 이승철의 ‘잠도 오지 않는 밤에’를 샘플링한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와 ‘첫인상’은 방송에서 각각 1위를 차지했으며 다음에 나온, 레게 열풍의 주역인 ‘핑계’가 들어 있는 2집은 그를 명실상부한 최고의 가수로 만들었다. 이어 나온 에서 ‘핑계’를 영어 버전으로 만든 ‘Show your smile''로 MTV 아시아 차트에 오른 그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I just call to say I love you''를 리메이크해 그 해 겨울 길보드 차트를 장악했다. 그는 3번째 앨범으로 최정상의 경지에 오른다. 음반 판매는 공식 집계상 250만장 이상이 팔려 기네스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으며, 연말엔 우리 나라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상을 다 받았다. 장기간 사랑을 받은 ‘잘못된 만남’과 ‘드라마’, ‘넌 친구, 난 연인’ 등이 계속해서 구매욕을 자극했으며 앨범의 전곡은 라디오를 두들겼다. 이 총공세는 그의 비상의 최절정 이였고 동시에 가요계가 시장성이라는 인프라를 구축한 이래 최대치였다. 그러나 그는 이 후유증으로 김창환과 결별해야 했으며 애석하지만 10대 시장을 더 이상 좌지우지 할 수 없는 위치로 내려앉았다. 그의 음악은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봐도 좋다. 김창환의 손에서 달아난 그는 직접 자신의 색깔을 음악에 집어넣고자 애썼다. 4집에선 ‘스피드’를 제외한 모든 곡들을 예전의 달콤함에서부터 격리시켰고 그의 5집에서 선보인 성인 취향의 권진원과 같이 부른 ‘오늘처럼 이렇게’, ‘Rainy Christmas'', ‘이 빠진 동그라미’ 등은 갑작스럽고 낯설기는 했지만, 분명한 성숙의 시작이었다. 댄스풍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나 비디오 클립으로 콘텐츠 산업화 장관상을 받은 ‘자유에 관하여’에서 조차도 그의 음악은 과거를 상기시키지 않았다. 그는 6곡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면서 비로소 스타의 왕관을 내려놓고 음악이라는 지휘봉을 잡았다. 6집은 들으면 들을수록 애착이 가는 A/C 계열의 음악들로 채웠다. 박진영이 작곡과 랩을 맡은 ‘괜찮아요’, 이문세가 듀오로 참여한 ‘가재와 게’, 피아노 반주에만 맞춰 읊조리는 완전한 자기만의 곡 ‘야상곡’, 프로듀서 웨인 린지가 편곡하고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가 브라스로 참여한 ‘부메랑’, “But I''m sorry"의 뜻이 담긴 ‘버담소리’ 등이 그러하다. 그는 30대가 된 자기 자신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는 건음프로덕션을 차리고 제작자로도 출발을 했다. 그리고 스튜디오 모우를 운영하면서 자신의 음반과 번개라는 밴드의 음반을 제작했다. 또한 김광석의 추모 앨범에 ‘그녀가 처음 울던 날’로 참여하고 이문세의 13번째 앨범에 ‘여인의 향기’로 듀엣을 부른 그는 최근 김정민의 솔로 앨범에 곡을 주기도 하는 등의 활동을 보이며 출중한 프로듀서로가 되기 위한 길을 꾸준히 가고 있다. 하지만 팬들의 뇌리에는 좋은 것뿐만 아니라 한때 탈세혐의와 재미동포의 협박으로부터 시달린 것도 기억하고 있다. “단순히 유행을 좇아가지 않겠다. 한국에서 나 같은 고참들이 해야할 일은 우리 가요계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그가 여러 다양한 음악이 공존하는 음악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우리는 앞으로 계속 볼 수 있을 것이다.
코요태는 ‘복고주의’를 내세워 인기를 얻었던 그룹이다. 그들의 캐치프레이즈였던 ‘복고’의 뒤편엔 당시 사회 전반을 냉각시킨 전례 없는 불경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대중문화 역시 그 차가운 바람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위축된 사람들의 구매 심리를 부추길 수 있는 최고의 키워드는 바로 ‘향수와 추억’이었다. 힘겨운 시기에 지난날들을 떠올리며 사람들은 위안을 얻었던 것이다. 코요태의 성공의 비밀은 바로 ‘과거지향 사운드... 코요태는 ‘복고주의’를 내세워 인기를 얻었던 그룹이다. 그들의 캐치프레이즈였던 ‘복고’의 뒤편엔 당시 사회 전반을 냉각시킨 전례 없는 불경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대중문화 역시 그 차가운 바람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위축된 사람들의 구매 심리를 부추길 수 있는 최고의 키워드는 바로 ‘향수와 추억’이었다. 힘겨운 시기에 지난날들을 떠올리며 사람들은 위안을 얻었던 것이다. 코요태의 성공의 비밀은 바로 ‘과거지향 사운드’였다. 1집 에 실린 ‘순정’은 가장 좋은 예시이다. 코요태를 주목할 만한 신인의 지위로 올려놓은 이 곡은 단번에 청자들의 귀를 끄는 마력을 발휘했다. 현란한 랩이 지배하는 여타 댄스 넘버와는 다르게 20대 이상의 음악팬이 즐기는 데도 부담이 덜한 곡 구성과 1980년대 팝 음악 같은 친근한 선율이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코요태는 고교생이던 홍일점 신지와 두 명의 미국 유학파 김구, 차승민에 의해 모양이 완성됐다. 특히 신지는 에서 두 차례나 입상한 경력을 가진 실력파로 팀 내에서도 빼어난 솜씨를 보여주며 그룹 인기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된다. 1999년 말미에 발표된 두 번째 앨범 에서도 그녀의 목소리는 다시 한번 대중들의 귀를 끌었다. 당시 국내에서 크게 유행한 테크노를 도입한 이 음반의 매력 포인트는 무엇보다 고음부를 비교적 무리 없이 소화해 낸 신지의 보이스에 있었다. 공중파 차트에 오른 ‘실연’과 ‘미련’’은 선명한 멜로디에 잘 조화된 그녀의 보컬 능력을 보여주는 곡들이다. 멜로디가 뛰어난 댄스 그룹의 이미지는 다음 앨범인 까지 연결됐다. 2집에 이어 테크노 리듬을 최대한 살려낸 이 음반에서만 처음으로 커트된 ‘Passion’’을 비롯해 ‘파란’, ‘자존심’, ‘열정’등이 줄줄이 사랑 받았다. 그룹의 지명도가 어느 정도 있다 하더라도 음악의 퀄리티가 받쳐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결과임에 틀림없다. 복고를 표방하며 첫 선을 보인 코요태는 이제 동시대적인 감각에 보다 역점을 두면서도 많은 팬들을 확보했다. 공들인 음악은 외면 당하지 않는다. 아울러 잘 만든 곡은 팬들을 사로잡는다.
방송에서 이은미의 모습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공연장이 그녀의 주된 행동 반경이기 때문이다. 무대 위의 그녀는 누구보다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신발조차 신지 않고 스테이지를 마음껏 가로지르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맨발의 디바’라는 호칭을 선물했다. 이 격정적인 여가수는 1988년 다운타운에서 처음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신촌블루스의 앨범에 참여하며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그녀는 1992년에 와서야 ... 방송에서 이은미의 모습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공연장이 그녀의 주된 행동 반경이기 때문이다. 무대 위의 그녀는 누구보다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신발조차 신지 않고 스테이지를 마음껏 가로지르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맨발의 디바’라는 호칭을 선물했다. 이 격정적인 여가수는 1988년 다운타운에서 처음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신촌블루스의 앨범에 참여하며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그녀는 1992년에 와서야 꽃을 피운다. 그해 발표된 1집에 실린 ‘기억 속으로’는 놀라운 반응을 몰고왔다. 이 곡은 엄청난 리퀘스트를 받았으며, 많은 이들에 의해 여기저기서 불려졌다. 그리고 일반인들에게 그녀는 유려한 발라드를 부르는 가수로 기억됐다. 그 이미지는 다음 앨범의 히트곡 ‘어떤 그리움’을 통해 더욱 굳어졌다. 하지만 그녀의 콘서트에 한 번이라도 가 본 사람은 그녀의 빼어난 록 보컬을 알고 있었고 내심 작품에 그 재능이 반영되기를 바랐다. 그동안 가려졌던 그녀의 모습은 세 번째 앨범 < 자유인 >에서 활짝 드러났다. 수록곡들은 열기에 찬 라이브 현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폭발적인 ‘참을 만큼 참았어’는 기존의 이미지를 단숨에 날려 버렸다. 사람들은 서서히 그녀의 진가를 알기 시작했다. 이은미는 다른 가수들의 곡들도 무리 없이 소화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원곡의 감성과는 또 다른 느낌을 선사하는 매력적인 보이스는 이미 1996년의 리메이크 앨범 < 팝스 월드 >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이었다.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의 ‘Greatest love of all'', 저니(Journey)의 ‘Open arms''등의 팝 명곡들을 멋지게 불러낸 그녀는 1999년 < Nostalgia >를 통해 가요에도 각별한 애정이 있음을 보여줬다. 그녀의 보컬은 발라드, 재즈, 록, 포크의 경계를 자유롭게 가르고 있었다. 2001년의 새 앨범 < 노블레스 >에서 이은미는 그 다양한 장르를 한데 끌어들였다. 이 앨범은 타이틀이 상징하듯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의 음악적 자존심을 지켜 나가겠다는 선언이었다. 어느 새 서른을 훌쩍 넘어버린 그녀의 목소리엔 치기 어린 과시욕보다 편안함이 묻어 있었다. 이은미는 아직도 1년에 수십 회 이상의 공연을 치뤄내며 음악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드러내고 있다. 비록 TV에서 접할 수는 없지만 그녀는 꾸밈 없는 진솔한 음악을 바라는 이들의 곁에 언제까지라도 머물러 있을 것이다.
에코는 여성 뮤지션들도 흑인 음악으로 차트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그룹이다. 이들의 음악을 정통 힙합과 R&B라고 규정하기는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펑크(Funk)와 소울에 팝적인 필을 적절히 안배한 이들의 곡들은 분명 매력적인 것이다. 1994년 넥스트 출신의 임창수, 음향학 전공의 뮤지션 박기영, 그리고 세션 기타 연주자 샘리가 오디션을 거쳐 팀을 구성했다. 1집은 2년 후에야 공개된다. 강한 비트와... 에코는 여성 뮤지션들도 흑인 음악으로 차트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그룹이다. 이들의 음악을 정통 힙합과 R&B라고 규정하기는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펑크(Funk)와 소울에 팝적인 필을 적절히 안배한 이들의 곡들은 분명 매력적인 것이다. 1994년 넥스트 출신의 임창수, 음향학 전공의 뮤지션 박기영, 그리고 세션 기타 연주자 샘리가 오디션을 거쳐 팀을 구성했다. 1집은 2년 후에야 공개된다. 강한 비트와 통통 튀는 리듬을 강조한 데뷔작은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멤버들의 역량은 인정받을 만했으나 대중들의 취향을 만족시키려면 보다 선명한 멜로디가 필요했다. 에코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1997년 발표된 2집 < Voice Of Eco >에서 이들은 탁월한 가창력을 무기로 전작보다 한 차원 상승한 ‘보이스’라인을 선보였다. 그 좋은 예증은 이들의 잊혀지지 않는 선율과 극적인 구성, 청각을 사로잡는 화음을 가진 ‘행복한 나를’이다. 이 노래는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며 그룹의 지명도를 높이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앨범에 실린 ‘너의 향기’, ‘언제까지나’ 등 다른 곡들도 세련된 팝 소울 음악을 들려주며 인기몰이에 한 몫 했다. 이들은 분명 비주얼 일변도인 동시대 타 댄스그룹들과는 구별되는 지점에 있었다. 에코의 상승기류는 1년 후에 나온 세 번째 음반 < Voice Of Love >까지 이어졌다. 이 작품에선 보다 다양한 접근이 이루어졌다. 여기서 이들은 발라드 넘버뿐만 아니라 댄스와 보사노바까지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앨범 발매 시기인 가을의 분위기와 맞아떨어진 싱글 ‘마지막 사랑’은 전작의 ‘행복한 나를’만큼의 흡인력을 발휘하며 그룹의 위상을 드높였다. 네 번째 앨범의 준비를 앞두고 구성원의 교체 없이 ‘튼튼한’ 팀워크를 과시하던 에코의 목소리에 불협화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창단 멤버 신지선이 갑작스런 약혼을 발표하며 탈퇴를 선언한 것. 다른 팀원들에게는 당혹스런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활동을 계속하자는 권유를 거절한 그녀는 결국 탈퇴의 길을 걷게 됐다. 둘만 남게 된 에코는 타개책을 모색했고 결국 멤버 보강이라는 해법을 얻었다. 새로 영입된 그룹의 막내 조주은은 부산 지역 대학가에서 어느 정도의 지명도를 획득한 싱어였다. 2000년 3월 새롭게 정비된 에코의 < Voice Of Angel >이 출시됐다. 2년 동안의 힘겨운 시간을 딛고 일어선 이들의 4집에서는 특유의 하모니가 살아 있는 ‘그대도 내게도’가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멤버 교체의 후유증은 예상보다 커서 예전 작품들만큼의 인지도를 받지는 못했다. 에코는 국내 주류 음악계에 보컬 위주의 흑인 음악을 수혈했다. 이들은 격렬한 랩과 댄스가 아니면 안 된다는 기존의 고정 관념을 깨뜨리며 팬들의 연령층을 확대했다. 이미 검증된 음악성을 선보인 이들이기에 한 번의 실패는 그다지 염려할 사항이 아닐 것이다.
국내 뮤지션 중 몇 안 되는 재즈 보컬리스트의 잠재력으로 차세대 유망주의 기대를 한껏 모으고 있는 서영은은 고등학교때 방송반을 하면서 엘라 피츠제랄드(Ella Fitzerald) 등의 음악을 들으며 남달리 재즈라는 분야에 익숙한 분위기를 키워왔다. 1994년에 열린 제1회 캠퍼스 재즈(Campus Jazz Class)에서 공연을 펼치며 세인의 관심을 모았고 미국의 맨하탄에서 열린 MSM 재즈 여름 학교(Summe... 국내 뮤지션 중 몇 안 되는 재즈 보컬리스트의 잠재력으로 차세대 유망주의 기대를 한껏 모으고 있는 서영은은 고등학교때 방송반을 하면서 엘라 피츠제랄드(Ella Fitzerald) 등의 음악을 들으며 남달리 재즈라는 분야에 익숙한 분위기를 키워왔다. 1994년에 열린 제1회 캠퍼스 재즈(Campus Jazz Class)에서 공연을 펼치며 세인의 관심을 모았고 미국의 맨하탄에서 열린 MSM 재즈 여름 학교(Summer Jazz Workshop)를 수료하면서 본격적인 재즈 보컬에 입문한 그녀는 이후 약 2년여에 걸쳐 신관웅 재즈 빅밴드(Jazz Big Band)에서 재즈 보컬로 참여하고 있던 중 우연히 신촌의 한 클럽에서 ‘아라비안 나이트’를 불렀던 김준선의 눈에 띄어 자신의 첫 독집 음반을 발표한다. 전체적으로 느슨한 재즈의 느낌이 배어있긴 하지만 명백한 발라드 음반인 그녀의 데뷔 앨범에서는 ‘그때까지만’과 게임 < Refrain Love >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초록별의 전설’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삼바의 느낌이 스며든 ‘연인의 달’, ‘하얀 여름의 기억’, 보사노바풍의 ‘Someone to love'' 등이 수록되어 있다. 김준선이 프로듀싱하고 거의 모든 곡을 작곡한 이 음반에서는 또한 상큼하고 귀여운 ‘Happy together''와 임창정과 듀엣으로 부른 ‘그대를 위한 나’가 팬들에게 인기 곡으로 지목 받았으며 서영은의 재즈 적인 느낌을 가장 잘 보여준 그룹 푸른하늘의 ‘겨울바다’가 리메이크 되어 있다. 중학교 때부터 다져진 피아노 실력과 가창력으로 이은미, 김경호 등의 콘서트에서뿐만 아니라 성세정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 0시의 스튜디오 >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해 꾸준한 반응을 얻은 그녀는 영화 < 미술관 옆 동물원 >에서 ‘사랑하는 날에’ 등을 부르기도 했다. 1집의 대중적인 아쉬움을 딛고 내놓은 2집은 그룹 유앤미블루의 방준석이 만든 ‘Summer breeze'', MGR이 만든 ‘우미에’, 스트레이트한 느낌의 ‘바램’, 정경화의 느낌이 그대로 드러나는 ‘은애’ 등과 같이 완성도 높은 음악들이 가득한 음반으로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끌어낸 앨범이다. 한편으로 노래의 가사를 제대로 전달하는 데 많은 치중을 하기도 한 이 음반으로 그녀는 대중들에게 확실하게 자신의 이름을 아로새겼으며 이후 드라마 < 불꽃 >의 주제곡인 ‘사랑의 찬가’를 유열과 같이 부르고 힙합 그룹 CB Mass의 ‘서울 블루스’를 피쳐링 하는 등 뮤지션들 사이에서도 가창력을 인정받았다. 서영은은 올 초 히트곡과 영화, 드라마 사운드트랙에 수록되었던 노래만을 모아 스페셜 앨범을 발표했다. 기존의 곡들을 그대로 편집하기보다는 새롭게 각색하고 색다른 연출을 위해 노력한 이 음반에는 데뷔 곡인 ‘그때까지만’과 영화 < Love Affair >의 선율을 노래로 만든 ‘Love affair''을 오케스트라의 풍성한 사운드로 창출했고 뛰어난 필링을 선사하기로 유명한 임재범의 4집에 실렸던 ‘아직도 사랑할 뿐인데’를 그와의 듀엣 곡으로 다시 녹음해 러브 발라드의 형식으로 만들었다. 이 외에도 드라마와 영화 음악 등 그간 여러 음반을 통해 보여준 서영은의 모습을 담은 이 앨범은 주로 편곡을 하는 권석홍과 김대홍이 공동 프로듀서를 맡아 그녀의 재즈 적인 색채와 팝 음반이 선사하는 분위기를 잘 조화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00년 봄, 라디오에서는 신인 가수 이수영(이지연, 1980년)의 노래 ’I Believe’가 끊이지 않고 흘러 나왔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된 이후 히트되는 거의 모든 앨범에 빠지지 않는, 음악계의 숨은 슈퍼스타 드림팩토리의 MGR이 영화 [Love Letter]를 보고 만든 이 노래는, 중국가수 등려군의 노래를 연상시키는 이수영의 보이스 칼라와 그림이 그려지는 스토리 텔링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만... 2000년 봄, 라디오에서는 신인 가수 이수영(이지연, 1980년)의 노래 ’I Believe’가 끊이지 않고 흘러 나왔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된 이후 히트되는 거의 모든 앨범에 빠지지 않는, 음악계의 숨은 슈퍼스타 드림팩토리의 MGR이 영화 [Love Letter]를 보고 만든 이 노래는, 중국가수 등려군의 노래를 연상시키는 이수영의 보이스 칼라와 그림이 그려지는 스토리 텔링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만들어 냈으며 이로 인해 감칠 맛나게 어우러진 이수영의 가창력을 만방에 알렸다. 그녀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며 친구의 소개로 기획사에 발탁된 후, 한창 가수에 대한 부푼 꿈을 꾸고 있을 때 온갖 고생을 하시던 어머니 마저 돌아가시고 고아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기다리던 녹음에 들어가기 직전 이였다. 갑자기 소녀가장이 된 그녀는 두 동생들을 돌보며 학업을 해야했고 아르바이트와 정부보조금으로 생활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더욱 더 가수에 대한 열의를 불태웠다. 이런 일화는 후에 애니메이션의 주제가를 부르는 기회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기획사를 통해 집을 구입하기 전까지의 어린 소녀가 겪어야 했던 고난은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그녀가 가수의 꿈을 키운 것은 중학교 3학년 때 별밤 뽐내기 대회에서 상을 받은 후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노래를 한다는 것에 대한 새로운 애정이 솟아났고 연극반에서 여러 작품에 출연하던 그 시절, 싱어로서의 기회가 자주 주어졌다. 발라드로 일관한 1집은 그녀의 비음 섞인 목소리가 주는 트로트적 기질이 십분 발휘됐으며 ’I Believe’에서 보여준, 속으로 끌어안고 들어가는 비애의 감정은 서정적인 비디오 클립과 더불어 한 편의 드라마를 연출해냈다. 24만장이라는 판매고를 올린 1집의 성공에 이어 그녀는 SBS의 애니메이션 [하얀 마음 백구]의 주제가를 불렀으며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제작된 ’드림송’의 타이틀곡 ’널 위한 날개’를 부른 15명의 한 명으로 참가한다. 2000년 3월에는 첫 단독 콘서트를 가져 그녀를 향한 성원을 확인했으며 이런 그녀의 목소리와 곡에 반한 홍콩의 스타 장학우는 ’I Believe’를 리메이크 했다. 2001년 2월, 그녀는 영화 배우 신현준과 홍콩 여배우 종려시와의 열애설을 낳은 ’Never again’이라는 곡으로 2집과 함께 팬들 앞에 섰다. 그녀가 잠깐 까메오로 출연하기도 한 이 클립은 포지션의 ’I love you’와 함께 팬들의 이목을 가장 많이 받은 뮤직 비디오가 되었다. 이 곡의 히트에 이어 후속곡 ’스치듯 안녕’이 계속 사랑을 받았으며 두 번째 단독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치고 ’그녀에게 감사해요’가 수록된 라이브 앨범을 발표했다. 또한 2집과 3집의 공백기에 컴필레이션 앨범에서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을 리메이크해 부른 그녀는 MGR의 독특한 음악 색깔이 묻어난 ’그리고 사랑해’가 수록된 3집 [Made in Winter]를 2001년 12월 발표한다. 2집 발표후 불과 10개월 사이에 그녀는 이토록 많은 일을 해낸 것이다. 기획사의 대대적인 홍보 전략과 절제된 훅이 매력적인 ’그리고 사랑해’, 그리고 간혹 TV에 출연해 연변 처녀를 개인기로 내세우며 많은 사랑을 받긴 했지만 이 앨범은 1, 2집을 사랑했던 많은 팬들에게 약간의 실망을 안겨준 음반이 되었다. 일본 여가수 리키가 부른 OST [Final Fantasy)의 주제곡 ’수테키 다네’를 ’얼마나 좋을까’란 제목으로 리메이크한 이수영은 뮤직 비디오가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공중파 방송으로부터 불가 판정을 받기도 했지만 인터넷과 소문을 통해 점진적인 꾸준한 사랑을 이끌어 내던 중인 2002년 9월 ’라라라’를 타이틀곡으로 한 4번째 음반을 발표했다.
1987년 MBC 신인가요제에서 '우리의 사랑이야기'라는 자작곡으로 은상을 받으며 공식 데뷔를 한 변진섭은 1987년 '홀로 된다는 것'을 타이틀로 한 그의 첫 번째 앨범을 발표하였다. 이 곡외에도 '새들처럼', '그대에게', '늦었잖아요'등이 라디오에 흘러나오면서 커다란 성공을 가져오게 되었다. 데뷔 앨범으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며 골든 디스크 신인상 등의 영예를 안았고 당시로서는 경이로운 100만장 이상의 판매... 1987년 MBC 신인가요제에서 '우리의 사랑이야기'라는 자작곡으로 은상을 받으며 공식 데뷔를 한 변진섭은 1987년 '홀로 된다는 것'을 타이틀로 한 그의 첫 번째 앨범을 발표하였다. 이 곡외에도 '새들처럼', '그대에게', '늦었잖아요'등이 라디오에 흘러나오면서 커다란 성공을 가져오게 되었다. 데뷔 앨범으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며 골든 디스크 신인상 등의 영예를 안았고 당시로서는 경이로운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등 데뷔음반 1장으로 당시 최고의 발라드 가수로 부상하였다.

하광훈, 윤상, 지근식 등의 작곡가의 곡을 받아 1989년에 발표한 2집으로 최고의 가수 자리에 다시 오르게 되었다. 노영심의 '희망 사항'과 하광훈의 '너에게로 또다시'는 동시에 가요 차트 1위 후보에 오르는 진기록을 수립했으며 1집과 마찬가지로 '숙녀에게', '저 하늘을 날아서' 등 전곡이 라디오를 오르내렸다. 이 앨범으로 그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인기가수 반열에 올랐으며 그 해 모든 상을 휩쓸며 그것을 입증했다. 이후 1990년 3집, 1991년 4집을 연이어 발표하며 꾸준하게 활동해온 변진섭은 1992년 5집, 1994년 6집을 내면서 끊임없는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특히 6집에 수록된 '니가 오는 날'은 박주연의 애절한 가사에 녹아드는 그의 잔잔한 목소리가 진가를 발휘하는 발라드 곡으로 조용한 인기를 얻기도 했다. 이어서 1996년에는 '에필로그'가 수록된 7집, 1998년에는 8집, 1999년에는 9집까지 인기와는 상관없이 꾸준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착실한 가수이기도 하다.

이후에도 1998년 10주년 기념앨범을 내고 2002년에는 베스트 앨범을 발표하는 등 계속적인 음반 발매로 음반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새내기 지망생들을 스타로 키우는 '나우 스타'라는 인터넷 방송국의 이사가 되어 이제는 후배 가수를 양성하는 등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고 있다.
김종서의 이름은 록 씬에서는 언제나 초점의 대상이었다. 카리스마, 부활, 시나위 등 그룹 시절의 음반과 지금까지 발표한 총 일곱 장의 솔로 앨범을 통해 그는 이제 ‘자기 세계’라 부를만한 체계를 구축했다. 또한 꾸준하게 차트에 진입하는 곡들을 내놓으며 ‘인기 가수’로도 입지를 다졌다. ‘대답없는 너’, ‘겨울비’, ‘플라스틱 신드롬’, ‘아름다운 구속’을 비롯한 그의 숱한 노래들은 그의 목소리가 ‘친화력’을 갖추... 김종서의 이름은 록 씬에서는 언제나 초점의 대상이었다. 카리스마, 부활, 시나위 등 그룹 시절의 음반과 지금까지 발표한 총 일곱 장의 솔로 앨범을 통해 그는 이제 ‘자기 세계’라 부를만한 체계를 구축했다. 또한 꾸준하게 차트에 진입하는 곡들을 내놓으며 ‘인기 가수’로도 입지를 다졌다. ‘대답없는 너’, ‘겨울비’, ‘플라스틱 신드롬’, ‘아름다운 구속’을 비롯한 그의 숱한 노래들은 그의 목소리가 ‘친화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줬다. 대중적으로 사랑 받은 곡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 록 보컬리스트로서의 능력에 오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김종서가 지금까지 거두어들인 명성과 축적한 캐리어란 대단한 것이다. 1984년 기타리스트 신대철과의 만남은 한국 헤비메탈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순간이었다. 두 사람의 결합으로 시나위의 설계가 완성된 것이다. 허나 그는 얼마 견디지 못한 채 반 강제로 팀을 나오게 된다. 보이스에 문제가 있다는 게 이유. 하지만 김종서는 임재범의 탈퇴로 균열이 생긴 시나위의 보컬리스트로 다시 가입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앨범이 명반으로 인정받는 시나위의 2집 < Down & Up >이다. ‘새가 되어 가리’, ‘빈 하늘’ 등 많은 트랙들은 그에게 잠시나마 붙었던 ‘의문부호’를 단번에 날려 버렸다. 이후 시나위 4집에서 ‘겨울비’라는 공전의 히트 넘버를 남긴 채 그는 솔로로 전향한다. 혼자가 되었지만 그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많은 팬들은 여전히 그를 반겼다. 예전의 찌를 듯한 고음의 창법이 많이 순화됐지만 ‘록’에 대한 헌신에는 변함이 없었다. 1년마다 한 장씩의 음반을 공개하며 꾸준한 모습을 보였다. 1996년의 다섯 번째 앨범 < 추락천사 >의 동명 타이틀곡은 랩 보컬을 시도하는 파격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타락천사’, ‘영원’, ‘아름다운 구속’등이 연달아 인기를 끌었다. 이 음반부터 각 파트에 고정된 뮤지션이 배치되어, ‘밴드’의 형식을 갖췄다. 1998년 6집 < Seeds >과 이듬해 일곱 번째 작품 < The Seven >을 공개하고 여전한 창작력을 과시했다. < Seeds >에 수록된 ‘To H.C''는 친구이기도 한 서태지에 관한 곡으로 눈길을 끌었다. 김종서가 한국 메탈과 록에 끼친 영향이란 부연이 필요 없을 정도다. 그룹 시절 그는 대단했고, 솔로 데뷔이래 보여준 행보도 범상하진 않았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곡들이 발산하는 카리스마가 예전만 못하다는 점이다. 약간은 정체성이 모호한 곡들도 보인다. 그의 개성을 흐리는 조금 뻔한 노래들은 지양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한 트랙들이 없어도 그의 진가를 인정해 줄 이들은 상당수 존재한다.
특유의 음성으로 저음에서 고음까지 뽑아 올리는 가창력을 자랑하는 박정운은 가수가 되겠다는 청운의 꿈을 품고 미국에서 건너왔다. 그는 이미 대학 시절 밴드의 경험이 있었고 곡을 만들 줄 아는 능력도 겸비하고 있었다. 또한 멜로디 감각은 ‘서울의 아가씨’를 작곡한 아버지로부터 선천적으로 이수되었다. 그는 솔로 음반을 내기 전에 오석준, 장필순과 함께 영화 < 굿모닝 대통령 >의 음악을 만들어 오장박이라는 이름으로 ‘... 특유의 음성으로 저음에서 고음까지 뽑아 올리는 가창력을 자랑하는 박정운은 가수가 되겠다는 청운의 꿈을 품고 미국에서 건너왔다. 그는 이미 대학 시절 밴드의 경험이 있었고 곡을 만들 줄 아는 능력도 겸비하고 있었다. 또한 멜로디 감각은 ‘서울의 아가씨’를 작곡한 아버지로부터 선천적으로 이수되었다. 그는 솔로 음반을 내기 전에 오석준, 장필순과 함께 영화 < 굿모닝 대통령 >의 음악을 만들어 오장박이라는 이름으로 ‘내일이 찾아오면’을 히트시켰다. 하지만 ‘난 그대만을 사랑했나봐’라는 댄스곡이 포함된 첫 번째 음반은 희미한 과거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게다가 두 번째 앨범도 무려 10개월이나 반응이 없었다. 박정운의 이름 앞에 스타라는 딱지를 붙여 준 곡은 지금도 라디오에서 간간이 흘러나오는 발라드 ‘오늘 같은 밤이면’이다. 발표한 앨범들이 전연 호응이 없어 속을 썩히고 있던 그는 2집을 포기하고 3집 작업에 들어갈 생각 이였다. 하지만 서서히 라디오를 포위해갔던 이 노래는 순식간에 모든 매체를 점령했고 몇 달간 계속 울려 퍼졌다. 그러자 KBS와 MBC 양 방송사는 그에서 상을 선사해 주었다. 후속곡 ‘기억에 남는 건 젖은 너의 눈동자’도 연달아 인기를 얻은 2집에는 오태호의 ‘처음 만난 그때로’를 제외한 전곡을 작곡했으며 발라드 외에도 록과 보사노바 등의 장르가 어우러져 있다. 힘을 얻은 그는 3집에서 좀더 그룹의 모습으로 다가섰다. 어쿠스틱한 사운드의 이면에는 강기영, 김민기, 박청귀 등이 지원하고 있고 인기전선을 만들어 준 팝 발라드가 2곡, 펑키(funky) 리듬이 2곡, 록큰롤풍이 1곡 등으로 짜여져 있다. 이 앨범에서는 ‘먼 훗날에’가 스매시 히트를 기록했고 오석준이 불렀던 ‘헤어지고 난 후’를 다시 불러 색다른 맛을 풍겼다. 그러나 운은 다한 듯 이후부터 뚜렷한 히트곡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국내활동을 위해 미국 국적을 포기했고 4집 작업을 위해 여타의 활동을 모두 끊은 채 일본에서 앨범작업에만 매달렸다. 앨범 발표와 동시에 그렇게 꿈꿔오던 첫 콘서트는 대성공을 기록했다. 하지만 6분에 달하는 팝발라드 ‘그대만을 위한 사랑’이 자주 전파를 탔음에도 어찌된 일인지 그의 화려한 가창력을 대중의 귀는 쉽사리 놓쳤다. 이것은 그 이후로도 계속 그랬다. 화가 날만큼 대중의 외면은 차가웠다. 박정운은 대중의 눈에서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계속 대학가 축제와 라이브 콘서트를 치뤘고 일본에서는 한국어 버전으로 싱글앨범을 발표하고 후쿠오카, 오사카, 히로시마를 돌며 프로모션 투어를 했다. 거기에 영화음악 < 사랑하기좋은날 >의 음악 작업을 맡았으며 음악친구 오석준과 < JUN&JONG > 이란 싱글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5집을 준비하던 그는 자기가 만든 곡만을 불렀던 고집을 접었다. 그리고 지나치게 실험적이라는 평을 들었던 < 알바트로스 > 앨범의 가운을 벗고 정원영, 윤종신, 김광진, 박용준, 유정연 등에게서 곡을 받아 발라드로 회귀했다. ‘목동에서’라는 명곡이 들어 있는 이 앨범도 역시 가수로서의 이름은 알렸지만 수입은 변변치 않은 상태를 지속시켰다. 그를 가수로 인정한 KBS의 가수왕이라는 타이틀도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는 그토록 하고 싶었다는 펑키(funky)록을 실험한 곡들인 ‘꿈깨’, ‘그저 그런 사랑이야기’, ‘직감’ 등이 실린 6집으로 그의 변신만큼이나 변해버린 팬들의 사랑을 느껴야 했다. 할리퀸의 2집을 제작하기도 하며 여타의 공연에서 베이스를 연주하던 그는 현재 자신의 홈페이지를 운영하며 언제 나올지 모를 7집을 준비하고 있다. 한때 그룹을 조직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기도 했던 그는 자신의 색깔을 찾기 위해 그리고 음악적 모색을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모습이다.
노래 : 신성우 (본명 : 신동륜)
영원한 테리우스의 표상인 신성우는 뛰어난 음악적 감각과 사회상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심미안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음악보다는 스캔들과 가십거리의 대상으로 항상 뉴스의 머리를 장식해 왔던 뮤지션이다. 그리고 미술만큼 음악을 사랑했던 동화 속 왕자님의 모습을 지닌 이 순정 만화의 주인공은 드라마와 뮤지컬로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음악에 대한 짙은 회의와 모색으로 몇 해를 지냈다. 그는 1992년 댄스 음악의 원년에 데뷔했... 영원한 테리우스의 표상인 신성우는 뛰어난 음악적 감각과 사회상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심미안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음악보다는 스캔들과 가십거리의 대상으로 항상 뉴스의 머리를 장식해 왔던 뮤지션이다. 그리고 미술만큼 음악을 사랑했던 동화 속 왕자님의 모습을 지닌 이 순정 만화의 주인공은 드라마와 뮤지컬로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음악에 대한 짙은 회의와 모색으로 몇 해를 지냈다. 그는 1992년 댄스 음악의 원년에 데뷔했다. 치렁치렁한 머리와 헤비메탈 의상으로 마이크를 움켜 쥔 모습은 영락없는 록커의 그것이었다. 그리고 ‘내일을 향해’로 정상으로 치닫는다. 그는 여성 팬들의 폭발적인 지원에 힘입어 댄스 음악의 뮤지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1990년대 중반을 돌파한다. ‘꿈이라는 건’, ‘노을에 기댄 이유’, ‘서시’, ‘친구라는 건’ 등의 많은 히트곡을 만들어 냈으며 항상 록음악에 대한 동경으로 남성 팬들에게도 지지를 받는다. 그는 ‘내일을 향해’와 4집의 ‘슬픔이 올 때’로 표절 시비에 휘말리고 3집의 ‘기쁨이 될 것을’은 랩을 도용했다는 이유로 록음악의 변절자로 치부되며 본질을 보지 못하는 팬들에 의해 매도된다. 하지만 그의 음악성을 인정하는 팬들은 ‘천사여 울지 마세요’, ‘건달의 허세’,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 ‘모순’과 같은 곡들로 그를 높이 평가하며 하마평을 짓눌렀다. 신성우는 한때 장호일, 이동규와 지니(Geenie)라는 그룹을 만들어 펑크적 성향의 음악을 시도했다. 2장의 앨범을 냈던 이 그룹은 ‘뭐야 이건’, ‘바른생활’, ‘재회’, ‘코끼리’ 등을 히트시켰다. 이 당시의 음악은 신성우 솔로 앨범보다는 가볍고 멜로딕한 장점이 잘 살아 나는 곡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으며 무거운 주제들을 질주하는 기타 연주에 실어 한바탕 소란의 분위기로 엮어내 많은 사랑을 받았다. 4집에서 영국 록의 모습을 수용한 그는 스캔들을 딛고 발표한 5집 < Mauve >로 가장 큰 실패를 경험한다. 대중적인 외면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가장 부진한 모습을 보인 이 앨범은 초췌한 모습으로 뮤직비디오에 그의 모습을 드러낸 ‘사랑한 후에’가 타이틀 곡이었다. 신성우는 노래 활동뿐만 아니라 뮤지컬 < 드라큘라 >, 리아와 열연한 < 록햄릿 >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드라마 < 미스 힙합 미스터 록 > 등에 출연해 연기자로서의 재능도 선보이며 전천후 예술가의 끼를 발휘했다. 또한 그는 일과 작업이란 미술 그룹을 결성해 1999년과 2000년에 < 일과작업(Work and works) >이란 제목의 전시회를 열며 미술에 대한 남다른 재능을 선보이기도 했다. 2000년 그는 2년만에 새 앨범을 발표했다. 테리우스의 이미지와 뮤지컬 < 드라큘라 >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긴 머리를 자르고 제주도와 동해 인근을 돌며 곡 작업을 했다. 그리고 영국에서 후반 작업을 마무리했고 록음악에 대한 식지 않은 열정을 보여주며 전체적으로 모던하고 복고적 사운드로 이뤄졌다. 하지만 팬서비스는 최신식이다. Enhanced CD로 뮤직비디오가 동영상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국내 최초로 앨범 제작 과정(스튜디오녹음, 재킷촬영, 뮤직비디오 제작현장, 앨범 뒷 이야기 등)을 동영상으로 수록하였다. 이 땅의 수용자들은 그에게 발라드만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그를 자꾸 침잠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겠지만, 앨범의 한 쪽 구석을 그가 하고 싶은 음악으로 채운다면 그것의 꾸준함은 언젠가 재평가를 일구어낼 것이다.
남성적인 목소리와 특유의 내지르는 창법으로 사랑 받는 김정민(본명:김정수)은 한때 밴드를 조직하며 가수가 아닌 최고의 베이스 주자를 꿈꾸던 청년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이라는 영원한 꿈에 빠져든 그는 교내 록그룹의 오디션에서 첫방에 나가 떨어졌지만 6개월간 선배들을 괴롭힌 덕택에 경쟁자였던 현 플라워의 베이시스트 김우디를 베이스에서 싱어자리로 몰아냈으며 결국 록그룹 보헤미안의 베이스 주전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남성적인 목소리와 특유의 내지르는 창법으로 사랑 받는 김정민(본명:김정수)은 한때 밴드를 조직하며 가수가 아닌 최고의 베이스 주자를 꿈꾸던 청년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이라는 영원한 꿈에 빠져든 그는 교내 록그룹의 오디션에서 첫방에 나가 떨어졌지만 6개월간 선배들을 괴롭힌 덕택에 경쟁자였던 현 플라워의 베이시스트 김우디를 베이스에서 싱어자리로 몰아냈으며 결국 록그룹 보헤미안의 베이스 주전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이후 프로의 세계로 뛰어들기 위해 플래곤이라는 그룹을 만들고 강변가요제에 출전했던 그는 실력은 인정받았지만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음악에 열정으로 곰삭던 그는 보헤미안의 후배인 김민우의 소개로 기획사와 손이 닿았고 듀엣을 준비하게 되었으며 MBC 특집드라마 < 4일간의 사랑 > 주제곡 의뢰를 받고 본격적인 솔로 활동에 들어간다. 이 드라마에는 그의 데뷔 곡 ‘그대 사랑 안에 머물러’가 삽입되었으며 이 곡은 데뷔 앨범에 수록되어 1994년 작지 않은 히트를 기록하였다. 그는 이 곡이 알려짐과 동시에 잘생긴 풍채 덕분에 드라마에 출연하라는 요구를 기획사로 부터 줄기차게 받았다. 하지만 노래만 하고 싶었던 그는 잦은 요구에 지쳐 잠적하는 해프닝을 연출한다. 우여곡절 끝에 나온 2집에서 그는 ‘사랑의 서약’으로 그 해 겨울을 강타한다. 라디오 신청곡 1위와 더불어 각종 차트 정상에 올랐으며 뒤이은 ‘마지막 약속’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그를 반무명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했다. 1집 때 자신의 감정을 잘 살리지 못했던 그는 2집 당시에는 장기인 마음껏 내지르는 창법으로 자신의 기량을 찾는다. 작곡가 김형석의 지도에 따라 느낌을 강조한 3집에서는 ‘애인’, 불의의 사고로 죽은 친구를 노래한 ‘Good bye my friend’’, ‘무한지애’가 연달아 히트하며 그의 인기 가도에 가속 페달을 밟아 주었고 패티킴의 곡 ‘이별’의 리메이크는 그의 음악적 진지함을 도와주었다. 1998년에 그는 자그마한 변신을 시도한다. 원래 록커로서의 면모를 지니고 있던 그는 늘어진 장발로 이미지 쇄신을 노리며 ’비(悲)’와 ‘아모르’, ‘리멤버’ 등으로 사랑 받던 자신의 모습에 변화를 가한다. 하지만 꾸준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인기에 비해 그렇게 많은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그는 다시 머리를 자르고 박상민, 안재욱, 조장혁 등과 < From Christmas To Christmas >를 발표한다. 그가 주축이 되어 김정민과 프렌즈라는 이름을 붙인 이 연합체는 서로의 히트곡을 바꿔 부르는 재미있고 독특한 구성으로 관심을 모았다. 그는 시원한 가창력으로 김형석의 프로젝트 앨범에 ‘내가 선택한 길’이라는 곡으로 참여하고 박상민의 앨범에는 의형제를 맺은 권선욱과 ‘무기여 잘 있거라’를 불렀다. 그리고 김건모, 강현수의 앨범에서 코러스로 받쳐주며 음악에 대한 전반적인 내공을 다시 쌓았다. 최근에 박상민, 개그맨 홍록기 등과 쇼부닷컴이라는 인터넷 방송국을 개국한 그는 앨범제작에 10억 원을 투자하며 러시아 국립오케스트라와 녹음 작업, 미국 최대의 호른팀 타워 오브 파워(Tower Of Power)와의 작업, 러시아의 레닌그라드를 배경으로 뮤직비디오 제작 등의 화제를 뿌리며 5집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앨범에서 3곡을 작곡하며 그 동안 구사해온 터프한 보이스를 약간 뒤로하고 부드럽고 경쾌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2002년 발표한 이 앨범의 첫 싱글은 신현준과 손태영의 스캔들로 유명세를 치룬 ’정상에서’다.
1990년대 초반을 즈음해서 감수성이 한참 예민할 십대와 이십 대를 보낸 팬들에게 윤상은 애잔한 발라드 가수로 회상된다. '이별의 그늘' 그리고 '가려진 시간 사이로'로 기억되는 그는 음악적 재능과, 준수한 외모로 당대 가요계를 대표하는 뮤지션 중 하나였다. 강렬한 음색보다는 오히려 한 톤 낮춘 나직함을 통한 감정표현과 작사가 박창학과의 협업을 통해 1990년대의 주요 경향이었던 발라드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1990년대 초반을 즈음해서 감수성이 한참 예민할 십대와 이십 대를 보낸 팬들에게 윤상은 애잔한 발라드 가수로 회상된다. '이별의 그늘' 그리고 '가려진 시간 사이로'로 기억되는 그는 음악적 재능과, 준수한 외모로 당대 가요계를 대표하는 뮤지션 중 하나였다. 강렬한 음색보다는 오히려 한 톤 낮춘 나직함을 통한 감정표현과 작사가 박창학과의 협업을 통해 1990년대의 주요 경향이었던 발라드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발라드 곡을 통해 데뷔를 하고 이후로도 비슷한 곡들로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종종 발라드 분야의 중요 인물로 언급되곤 하지만 사실상 그는 테크노, 일렉트로니카 그리고 월드뮤직 등을 접하고 이를 자신의 음악으로 끌어들이려 다양한 시도를 해온 인물이다. 윤상(본명: 이윤상)이라는 이름으로 가요계에 받을 내딛은 지 어느덧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그가 여전히 대중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와 같이 언제나 놓치지 않는 음악적 호기심과 이것을 곧 음악으로 소화해내려는 놀라운 실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1968년에 태어난 윤상은 고교(충암고) 시절부터 스쿨밴드 페이퍼 모드(Paper Mode)를 결성하며 음악에 발을 들였고, 19세의 비교적 빠른 나이에 당시 최고의 위치에 있던 1988년 김현식의 4집 앨범에 '여름밤의 꿈'으로 작곡가로 입문을 하게 된다. 이후 1989-1991년에 걸쳐 그에게 결정적 인지도 제고의 계기가 된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와 강수지의 '보라 빛 향기' '흩어진 나날들'을 비롯해서 황치훈('추억 속의 그대'), 변진섭('로라'), 조정현('미련'), 박성신('그대 때문에') 등 여럿 인기가수들에게 곡을 주며 작곡가로의 지반을 공고히 다졌다. 작곡가와 가수 두 분야 모두에서 재능과 인기를 보장 받는 몇 안 되는 뮤지션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1992년 2집 ' Part 1 '에서부터 이미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음악에 이용함으로 개인이 커버할 수 없던 음악적 한계를 보완하고,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이는 세련되고 진보적인 뮤지션으로 평가받는 성과를 낳았다. 1996년에는 신해철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노 댄스'(NO DANCE)를 결성하여 전자음악에 대한 개인적 관심을 좀 더 구체화하고 표면화한다.

윤상의 앨범 중 으뜸으로 꼽히는 ' Cliche '는 제3세계 월드뮤직과 결합하여 기존의 윤상에게 심어져 있던 이미지를 탈피하는 동시에 영미 팝에 물려 새로운 음악 공기를 찾고자 했던 다수 리스너들에게 오아시스와도 같은 역할을 했다. 이어서 발표된 2002년 ' 이사 '에서 윤상은 라틴음악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켜 발라드 가수를 벗어나 라틴음악 또는 제3세계 음악의 전파자의 수식어를 안게 되었다. '노 댄스'에서의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네 번째 앨범에서의 라틴음악을 적절히 섞은 다섯 번째 정규 앨범 ' There Is A Man '을 발표한 이후 2003년 결혼과 동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뮤지션으로보다는 배우는 학생의 입장으로 돌아가 국내에서는 결핍되어 채워지지 않았던 음악 공부에 매진했다.

유학 중 모텟(mo:tet)과 다큐멘터리 O.S.T 6집 ' 그땐 몰랐던 일들 ' 등으로 음악 활동을 해오며 물리적인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을 고대하는 국내 팬들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시도했다. 버클리 음악대학교에서 뮤직 신스학과 석사과정을 마친 뒤 바로 뉴욕대학교 대학원에서 톤마이스터 과정을 수료하고 현재는 후배 양성을 위해 상명대학교 실용음악과에서 객원교수로 활동 중이다.
23살의 나이에 ‘늪’이라는 노래로 우아하게 스타덤에 오른 조관우(본명 : 조광호, 1965년)는 우리 나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특이한 창법의 소유자다. 하지만 그 비밀은 그의 생애를 훑어 올라가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는 2대째 소리꾼인 아버지 조통달(1대는 할머니 박초월이며 그의 아버지는 현재 신동 유태평양의 스승으로도 유명하다)의 기질을 물려받으며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부모님의 ... 23살의 나이에 ‘늪’이라는 노래로 우아하게 스타덤에 오른 조관우(본명 : 조광호, 1965년)는 우리 나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특이한 창법의 소유자다. 하지만 그 비밀은 그의 생애를 훑어 올라가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는 2대째 소리꾼인 아버지 조통달(1대는 할머니 박초월이며 그의 아버지는 현재 신동 유태평양의 스승으로도 유명하다)의 기질을 물려받으며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부모님의 이혼. 그리고 해외공연이 잦은 아버지의 출장 등으로 음울한 유년기를 보냈으며 떠돌이처럼 할머니와 고모 집을 전전했다. 이런 생활 환경 탓이었는지, 쉽게 또래 아이들과 친해지지 못했고 항상 벙어리처럼 말없는 아이로 지내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환경은 음악으로 가는 길을 열어 주었다. 당시 음악을 끼고 살았던 그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흑인 음악을 들으며 이미 7살 때 가락이 가지는 음의 떨림을 선천적인 감각으로 체화시키는 천재성을 발휘했다. 그런 아들이 싫고 판.검사가 되길 바랬던 아버지는 기타와 드럼 세트를 비롯한 모든 악기를 여러 차례 부수며 “1만 명이 도전해서 단 한 명도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소리”라며 그의 고난을 대물림하는데 완강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중 3때 연극반 이였던 조관우는 주연으로 대한민국청소년 연극제에 < 승무(僧舞) >라는 작품으로 참가 우수 연기상을 수상하며 여러 고교의 특채입학을 제의 받는다. 그러나 피를 속일 수 없었던 끼는 국악예고로 인도했고 가야금을 전공했던 그는 장인으로 우뚝 설 날을 고대하며 악기를 부여잡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호텔과 클럽 등의 밤업소를 떠돌며 독특한 자신의 음악을 선보였지만 당시 그런 풍의 음악을 수용할 층은 형성되지 않았고 그 곳에서 그는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댄스에 그루브함을 더한 비지스(BeeGees)나 어스윈드앤파이어(Earth, Wind & Fire)의 음악을 하루 종일 들으며 독자적인 창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3년간 배리 깁(Barry Gibb)의 발라드와 같이 하늘하늘 끊어질 듯 이어지는 팔세토를 연구하며 시간을 보낸 그는 21살 때 문선대원으로 활동하며 군 시절을 보냈다. 이후 그는 강력한 댄스 음악이 휘몰아치는 밤무대를 잠시 거쳐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작곡가 하광훈을 만나게 된다. 1994년,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버린 여자를 첫눈에 보고 사랑해버린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늪’을 필두로 4곡의 히트곡이 터진 데뷔 앨범은 여러 가지로 그를 주목하게 했다. 국악을 했다는 것과 가성으로 다져진 목소리, 그리고 방송 출연을 하지 않고도 높은 판매고를 기록한 것 등이다. 이어 2곡의 신곡을 제외한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와 ‘꽃밭에서’ 등을 리메이크로 채운 2집은 1집의 기세를 능가하며 확실한 밀리언셀러주자로 그를 인식시킨다. 그러나 그는 당시 제작자와의 불리한 계약으로 인기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지 못했으며 이러한 이유로 하광훈을 비롯한 당시의 회사와 결별을 하게 된다. 1996년 발표해 ‘영원’이 히트한, 록의 색채가 있는 3집 < Story About >은 그에게 약간의 보상을 해 주며 한국영상음악협회 골든디스크 부문 본상과 KMTV 가요대전 인기가수상을 안겨주었지만 1, 2집에 비해 반향은 적은 편이었다. 이 앨범을 뒤로하고 R&B에 자신의 트로트적 음색을 더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4집 < Waiting >은 미국에서 활동중인 작곡가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이 앨범 발표 후 몇 달 안돼 그는 매니저와의 일방적인 계약파기로 인한 손해 배상 청구소송을 당하며 아파트를 비롯한 인세 등을 가압류 당한다. 잇달아 그는 혼인을 빙자한 간음혐의로 피소되었다. 이 사건은 무혐의로 처리되었지만 그를 오랜 칩거 생활로 이끈다. 그리고 이러한 아픔을 딛고 2년만에 발표한 5집 < 실락원 >은 타이틀곡 ‘실락원’이 SBS로부터 “가사가 염세적이고 자살을 미화한다”는 이유로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는가 하면 동성애를 소재로 한 ’Angel Eyes’의 뮤직비디오는 종합유선방송심의위원회로부터 역시 방송불가 처분을 받아 여러 송사로 좋지 않은 이미지와 더불어 판매고에 악영향을 끼친다. 2001년, 자신이 소속된 클릭엔터프라이즈라는 기획사의 소유주이기도 한 그는 와신상담끝에 ‘연(緣)’이라는 곡을 발표하여 재기를 다지고 있으며 30대 부부의 스와핑(부부 섹스교환)과 성적 일탈, 그리고 사랑을 그린 영화 < 클럽 버터플라이 >의 주제가 ‘노을’을 불러 처음으로 영화 음악에 도전한다.
노래 : 화요비 (본명: 박레아)
새로운 세기를 앞둔 2000년에는, 춤꾼들을 대동하고 미디어의 위력을 막강하게 뽐냈던 TV용 스타들을 뒤로하고 가창력있는 신인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런 양상을 주도한 것은 R&B라는 장르였으며 그 중 박화요비( 박미영)라는 독특한 이름의 여가수는 박정현에 버금가는 실력을 선보이며 차세대 디바의 자리를 예약한 신성이다. 그녀의 이름은 화요일과 R&B의 ‘비’자를 합성해 만들어낸 이름이다. 데뷔 앨범을 내기 전까지는... 새로운 세기를 앞둔 2000년에는, 춤꾼들을 대동하고 미디어의 위력을 막강하게 뽐냈던 TV용 스타들을 뒤로하고 가창력있는 신인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런 양상을 주도한 것은 R&B라는 장르였으며 그 중 박화요비( 박미영)라는 독특한 이름의 여가수는 박정현에 버금가는 실력을 선보이며 차세대 디바의 자리를 예약한 신성이다. 그녀의 이름은 화요일과 R&B의 ‘비’자를 합성해 만들어낸 이름이다. 데뷔 앨범을 내기 전까지는 박노미란 이름을 썼고 그 흔적은 같은 소속사의 물건 박효신의 데뷔 앨범에 참여했던 ‘애써’에서 확인할 수 있다. 클래식을 10여 년간 공부했던 그녀는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의 음악을 처음 접하고 그 환상적인 애드립에 반해 R&B를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교 2년 때 MBC 라디오의 연말 결선에서 이희진의 ‘용서’를 불러 대상을 차지하며 심사위원으로 참관했던 한 작곡가에 의해 발탁됐다.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지만 그녀의 의지는 확고했으며 결국 클래식을 접고 실용음악과로 진로를 정했다. 그리하여 그렇게 역사는 시작된다.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Lie’가 인기를 끈 데뷔 앨범은 지금껏 볼 수 없었던 R&B의 성찬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가 만든 곡들은 머라이어 캐리의 영향력이 너무나도 두드러져 멜로디와 애드립에서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비틀고 꺾는 고유의 기술은 감성과 하나되어 빼어난 감정이입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그녀를 보고 한국인 가수를 발굴하러 왔던 미국의 랩퍼 MC 해머(MC Hammer)는 “박화요비의 R&B 정도면 미국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앨범에는 천둥으로 비오는 분위기를 잘 연출한 클립이 인상적인 ‘Lie’ 외에도 집에서 다림질하다 만들었다는 ‘여기까지만’과 계약한날 저녁 집에서 피아노를 치다가 만들었다는 ‘바램’ 등의 자작곡을 감상할 수 있고, 후속곡으로 인기를 모은 ‘그런 일은’, 탄력적인 음성으로 경쾌하게 노래하는 ‘Crazy love’, 그리고 마지막에는 드라마 에 수록되어 많은 인기를 얻은 박효신과의 듀엣곡 ‘전설 속의 사랑’이 숨어 있다. 보기 드문 가창력으로 서울가요대상 신인상을 수상한 그녀는 라는 타이틀로 첫 콘서트를 열었으며 이 공연의 성공으로 2001년에는 생일을 기념한 라는 이름으로 1집 활동을 마감하는 무대를 마련했다. 3534(윤희중)을 비롯, 윤상, 윤사라, 정연준, 이승환(The Story), 황성제등 호화 뮤지션들을 기용한 2집은, 분명 성숙한 모습으로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1집을 답습한 모습도 보였다. ’운명’, ’고백’ 등 비트감이 느껴지는 곡들에 대한 소화력도 뒤지지 않음을 보여준 이 앨범에서 그녀는 반 정도의 곡에 참여하며 전작과 같이 싱어 송 라이터의 기질을 발휘하고 있으며 R&B라는 장르 안에서 나름대로 다양함을 고심했다. 앨범 발표 후 뮤지컬 에서 주연을 맡아 전국을 순회했던 그녀는 김현철, 윤종신과 , 소속사 식구들과 함께 한 등의 라이브 공연에 참여했으며 단독 콘서트 로 2집 활동을 끝냈다. 무대에선 이은미의 카리스마를 닮고 싶고 “R&B는 분위기에 따라 다르게 애드립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좋다”고 R&B에 대한 애정을 늘어놓는 그녀가 2002년 발표한 3집의 타이틀곡은 놀랍게도 이정봉의 히트곡 ’어떤가요’다. 가창력있는 모든 여성 가수들이 거의 한 번씩 노려보는 이 곡의 리메이크로 그녀는 원곡보다 더 뛰어난 리메이크 작이라는 평가를 얻어내고 있다.
1994년에 등장한 K2는 서정성 가득한 록발라드로 많은 인기를 얻었던 팀이다. 대중의 입맛에 충실하면서도 완성도 있는 음악을 만들어냈던 이들의 음악적 배경에는 헤비메탈 그룹 활동을 통해 다져진 견고함이 있다. 철장미의 리드보컬로 활동하던 김성면과 스래시 메탈밴드인 아발란시(Avalanche)의 기타리스트로 재적 중이던 테크니션 이태섭은 한국 최초의 옴니버스 메탈앨범인 < Friday Afternoon 1 >에서... 1994년에 등장한 K2는 서정성 가득한 록발라드로 많은 인기를 얻었던 팀이다. 대중의 입맛에 충실하면서도 완성도 있는 음악을 만들어냈던 이들의 음악적 배경에는 헤비메탈 그룹 활동을 통해 다져진 견고함이 있다. 철장미의 리드보컬로 활동하던 김성면과 스래시 메탈밴드인 아발란시(Avalanche)의 기타리스트로 재적 중이던 테크니션 이태섭은 한국 최초의 옴니버스 메탈앨범인 < Friday Afternoon 1 >에서 처음으로 조우했다. 이후 김성면은 그룹 피노키오에서 활약하며 ‘사랑과 우정사이’라는 히트곡을 배출했다. 이후 솔로로 전향한 그는 곧 이태섭과 함께 K2를 조직하고 아름다운 선율의 탐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K2의 음악은 김성면의 하이 톤 보이스를 앞세우며 극적인 절정 부를 포함하고 있다. 특히 이들의 인기 레퍼토리는 모두 이런 형식을 따르고 있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잃어버린 너’, ‘소유하지 않은 사랑’, ‘그녀의 연인에게’등이 그 드라마틱한 구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곡들이다. 1집 < K2 >에서 보컬의 뒤를 든든히 받쳐준 이태섭이 자신의 그룹 루트(The Root)를 결성하기 위해 팀을 떠나면서 K2엔 김성면 혼자 남게 됐다. 하지만 그는 팀 명을 변경하지 않고 계속 K2라는 이름 하에 곡을 발표한다. 다행히 곡에 대한 감각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그 흔들리지 않은 보컬 소화력은 1997년에 공개된 두 번째 앨범 < Real Spark >에 실린 트랙들에서 엿볼 수 있다. 많은 지지를 얻은 ‘소유하지 않은 사랑’외에도 애절한 느낌을 전하는 ‘그들만의 사랑’, 펑키(Funky)한 느낌의 록 ‘Corner of my mind''등의 노래들은 바래지 않은 실력을 입증했다. 1999년 세 번째 음반인 < Vocalist >에서도 ‘그녀의 연인에게’, ‘유리의 성’, 김민종과 듀엣으로 부른 ‘널 위한 나’가 연속으로 주목받으며 K2는 록발라드 전문 팀으로 입지를 굳혔다. 한번만 들어도 K2의 곡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이들의 음악은 정형화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단점이자 동시에 강점이다. 조금은 도식적인 그 패턴이 지금까지 K2라는 이름을 팬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못하게 한다.
노래 : 서문탁 (본명 : 이수진)
큰 키에 남성 같은 목소리로 거칠게 록을 뽑아 내는 서문탁(본명 : 이수진)은 위와 같은 이유에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아마추어 복싱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이력 등으로 항상 성전환 수술을 받은 여자 혹은 게이 등과 같은 편견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러한 선입견은 여자는 록을 해도 부드러운 톤으로 해야된다는 남성중심주의 사고의 분위기를 반증하는 것일 뿐 아무런 비난도 되지 못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밴드 활동을 했던... 큰 키에 남성 같은 목소리로 거칠게 록을 뽑아 내는 서문탁(본명 : 이수진)은 위와 같은 이유에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아마추어 복싱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이력 등으로 항상 성전환 수술을 받은 여자 혹은 게이 등과 같은 편견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러한 선입견은 여자는 록을 해도 부드러운 톤으로 해야된다는 남성중심주의 사고의 분위기를 반증하는 것일 뿐 아무런 비난도 되지 못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밴드 활동을 했던 그녀는 주니어 가요제, 세종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으며 EBS 청소년 창작 가요제에 자신이 만든 곡 ‘용서’로 참가해 특별상을 받으며 어린 나이임에도 화려하게 자신의 가창력을 신고했다. 그녀가 처음 가수로 신고한 것은 < 팬덤 >이라는 음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아는 언니의 소개로 알게 된 이 팀은 실력 있는 무명 뮤지션과 음반제작자들과 연결해 주는 중개 프로젝트였으며 무명 신인들을 모아 한 달에 한 번씩 서울 충무로 경동교회에서 정기 공연을 펼쳤다. 서문탁은 여기서 축구응원가 ‘최강의 꿈’을 불렀는데, 이 곡이 ’98년 축구 올스타전 현장에서 불려지면서 관심을 모았다. 매니저에 의해 이름을 “서문(4대문) 안에서 탁월해라”라는 뜻이 담긴 서문탁으로 바꾼 그녀는 199년 첫 앨범을 발표했다. 그리고 신인임에도 여자가 록을 한다는 큰 위험 요소를 가지고 뛰어든 시장에서 비교적 성공적인 대접을 받았다. 이 앨범에서 ‘각인’과 ‘사랑, 결코 시들지 않는...’이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스토커’와 ‘거짓말’ 등이 팬들의 꾸준한 리퀘스트를 받았다. 그녀의 보컬은 밑에서부터 끌어올리는 시원한 고성을 자랑했고 음악은 일반 대중들에게 어필하기 까다로운 정통적인 록의 모습에 삼바, 펑키(funky), 블루스를 접목해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했다. 이것은 확실히 무늬만 록인 음악과는 다른 것이었다. 폭넓은 사랑을 배경으로 등장한 그녀의 두 번째 앨범도 ‘사슬’이라는 곡을 판매량이나 각종 차트에서 상위권에 랭크 시키며 팬들의 깊은 사랑을 받았다. 그녀는 남성으로 오인 받을 만큼 거칠고 투박했던 처음의 모습을 약간 수정하여 여성적인 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살을 뺐으며 장신구들을 달았다. 음악도 멜로디를 많이 부각시켰으며 머리에도 색을 들였다. 기존의 모습을 고수하길 바라는 팬들도 많았지만 그녀의 변신은 대체적으로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다. 잊혀지지 않는 기억을 사슬로 표현한 타이틀곡 외에 동성애와 독극 살인 장면의 비디오 클립이 문제가 된 후속곡 ‘각인 그 후...’, 기타 소리가 사랑을 받은 ‘시찌프스’, 사랑의 아픔을 주제로 한 발라드 ‘차가워진 열쇠’, 그녀의 이름을 연상시키는 ‘질러! 탁’ 등이 앨범에 수록되어 주목을 받았다. 현재 록을 하는 여성의 목소리 중에서 가장 거친 음색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록으로 여는 세상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으며 다양한 음악으로 자신의 세계를 더 넓게 펼치고자 꿈을 꾸고 있는 넓은 마음의 신세대이다.
노래 : 제이 (J.ae,본명 : 정재영)
한 살 때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제이는 팝과 소울(Soul)을 동경하며 가수가 되길 희망했다. 1997년 귀국한 그녀는 이듬해 < Gold >와 < Blue >라는 두 장의 앨범을 동시에 공개하지만, 현재의 모습과는 상당히 이질적인 댄스 음악은 대중들에게 어필하지 못한다. ‘굿바이’가 잠시 반응을 얻었지만, 과잉공급 상태에 있던 댄스뮤직 씬은 그녀에게 관용을 베풀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신중하게 2집을... 한 살 때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제이는 팝과 소울(Soul)을 동경하며 가수가 되길 희망했다. 1997년 귀국한 그녀는 이듬해 < Gold >와 < Blue >라는 두 장의 앨범을 동시에 공개하지만, 현재의 모습과는 상당히 이질적인 댄스 음악은 대중들에게 어필하지 못한다. ‘굿바이’가 잠시 반응을 얻었지만, 과잉공급 상태에 있던 댄스뮤직 씬은 그녀에게 관용을 베풀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신중하게 2집을 준비하면서 제이는 자신의 방향성을 바로 잡는다. 그녀의 호소력 짙은 보이스를 최대한 살리려면 역시 소울로 가야 했다. 절치부심 끝에 내놓은 < I.N.L.O.V.E >는 팝 소울과 R&B가 멋지게 균형을 이룬 수작이었고, 앨범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놀라운 것이었다. 특히 타이틀 넘버 ‘어제처럼’은 정말 많은 사랑을 받으며 그녀를 단숨에 가요계의 몇 되지 않는 디바의 위치에 등극케 했다. 뒤이은 ‘Time out''역시 복싱 춤을 앞세우고 인기몰이에 가세했다. 히트곡들 외에도 ‘재’, ‘끝이 없는 욕심’등은 그녀의 깊이 있는 보컬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트랙들이었다. 그 해 2000년은 제이에게 여러 모로 최고의 한해였다. 앨범의 승승장구는 물론 연말 SBS가요대상에서 신인가수상 부문을 거머쥔 것. 그 기세를 몰아 그녀는 해를 넘기지 않고 전곡을 영어로 부른 음반 < Chocolate >을 발표하며 자신의 역량을 한껏 과시했다. 이 작품엔 토니 브랙스톤(Toni Braxton)이 재적했던 그룹 브랙스톤즈(The Braxtons)의 ‘The boss''가 리메이크 곡으로 실려 있어 이채로움을 더했다. 2001년 6월, 제이는 세 번째 음반 < Beautiful Ones >를 가지고 팬들을 찾아왔다. 첫 곡으로 내정된 ‘빛’은 ‘어제처럼’의 콤비인 심상원과 윤사라가 참여해 분위기가 유사하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멀어지나요’, ‘마지막 선물’에서 들려주는 감수성은 여전하다. 또한 요새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R&B 듀오 브라운 아이즈가 만들어 준 ‘Erase the dayz''와 애뜻한 느낌의 ‘가장 슬픈 말’은 그녀의 장기인 흑인음악의 필이 잘 녹아든 곡으로 매우 인상적이다. 17곡이라는 방대한 곡이 담긴 이번 3집은 전작의 인기를 이어가려는 제이의 노력이 곳곳에 묻어나며, 완성도 면에서도 < I.N.L.O.V.E >에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적당한 선에서 참아주는 보컬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면서도 절제가 엿보인다. 제이는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내면에 접혀져 있던 능력을 하나씩 발견해낸다. 3집을 통해 ‘성숙’을 익힌 그녀에게 ‘자만’말고는 두려워할 적이 없을 듯하다. 이번 음반을 계기로 그녀는 롱런의 길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모던록 그룹 더더의 보컬로 많은 인지도를 확립한 박혜경은 처음에 뮤지컬 배우로서 음악계에 입문했다.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 이 시골 처녀의 어릴 적 꿈은 뮤지컬 배우였다. 그녀는 <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 등을 비롯한 15편에 출연하면서 지구 레코드에서 개최한 영상음악경연대회에서와 대학 팝송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가수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다. 더더에서 탈퇴한 후 발표한 1999년의 첫 번째... 모던록 그룹 더더의 보컬로 많은 인지도를 확립한 박혜경은 처음에 뮤지컬 배우로서 음악계에 입문했다.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 이 시골 처녀의 어릴 적 꿈은 뮤지컬 배우였다. 그녀는 <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 등을 비롯한 15편에 출연하면서 지구 레코드에서 개최한 영상음악경연대회에서와 대학 팝송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가수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다. 더더에서 탈퇴한 후 발표한 1999년의 첫 번째 앨범은 더더의 분위기와 거의 흡사한 전개를 가진 작품이다. 자신의 껍질을 하나씩 벗기는 듯한 인상을 주는 속지와 자신의 다른 면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가 도사리고 있는 이 앨범은, 더더의 2집에서 ''It''s you''를 만든 강현민이 전면에 나서 그녀가 인기를 쌓는데 혁혁한 공헌을 한 ‘고백’과 스카 리듬의 ‘주문을 걸어’ 등을 만들어 주었다. 한결 소프트해진 측면이 있지만 뿜어져 나오는 발성과 독특한 보이스 칼라로 그녀의 세계를 한껏 뽐냈다. 더더 시절과 별다른 것을 보여주진 않았지만 작곡자가 아무리 달라도 그녀만의 입김으로 담아내는 표현력은 솔로로서의 성공적인 전향을 뒷받침해 주고 있으며 ‘Deep love''를 비롯한 그녀가 직접 만든 4곡은 또한 싱어 송 라이터의 기질을 담보하는 것이기에 투명한 미래를 기약하게 했다. 그녀의 두 번째 앨범은 강현민의 곡이 많지만 같은 유재하 창작 가요제 출신의 심현보가 많은 부분을 참여했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인기를 이끌어준 ‘하루’와 오래도록 사랑 받을 곡으로 예상되는 ‘별’과 같은 곡이 그의 곡이다. 그녀는 처음 앨범 보단 능숙해진 보컬을 보여주지만 왠지 중국 가수 왕정문을 연상시키던 왈가닥 처녀(물론 인터뷰때는 그런 모습이 여전하지만)의 티를 벗어버리고 다소곳하고 말랑말랑한 느낌을 강조했다. 그리고 2곡을 만들었지만 전편에 비해 많이 나아가지 못한 모습이다. 하지만 어떠랴! 그녀는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한 걸. 그녀의 콘서트는 매번 가득 찬 관객으로 공연장의 열기를 입소문으로 전파하고 있다. 공연장에서 그녀는 그녀의 곡뿐만 아니라 다른 가수의 곡도 그녀는 뛰어나게 소화해 낸다. 그리고 팬서비스 차원에서 댄스도 약간은 보여주고 있다. TV엔 거의 나오지 않지만 라이브무대에 가면 그녀의 안방과도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강현민의 솔로 앨범에서 ‘이런 난 걸요’를 함께 부른 그녀는 언젠가는 다시 록그룹으로 돌아가 노다웃(No Doubt)이나 크랜베리스(Cranberries)와 같은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너무나도 젊은 서른 즈음에 생을 마감한 김광석은 TV없이 스타가 될 수 없었던 ''90년대를, 1,000여 회를 상회하는 콘서트만으로 음악계를 제패한 유일무이한 인물이다. 그의 슬프면서도 맑은 음색에서 피어나는 삶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3~4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바로 사라지는 한 때의 가수들과 달리 사후에도 끊임없이 재조명되고 있으며, 그의 인기는 오히려 더 높아지고 있다. 이것은 철저한 자기관리와 음악에 대한... 너무나도 젊은 서른 즈음에 생을 마감한 김광석은 TV없이 스타가 될 수 없었던 ''90년대를, 1,000여 회를 상회하는 콘서트만으로 음악계를 제패한 유일무이한 인물이다. 그의 슬프면서도 맑은 음색에서 피어나는 삶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3~4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바로 사라지는 한 때의 가수들과 달리 사후에도 끊임없이 재조명되고 있으며, 그의 인기는 오히려 더 높아지고 있다. 이것은 철저한 자기관리와 음악에 대한 애정이 낳은 ''90년대의 소중한 보석과도 같은 해답이다. 지금 이 땅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몸소 보여준 김광석의 자세에 관한 것인지도 모른다. 중학교 때는 현악반에서 바이올린, 오보에, 플루트, 악보 보는 법 등을 배웠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합창단에서, 대학에 들어가서는 연합 동아리 <연합메아리>에서 기타를 두들기며 업소를 오가던 그는 김민기의 록 오페라 <개똥이> 음반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프로의 무대와 맞닿는다. 그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 동물원 등에서 활동하며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거리에서’ 등의 히트곡을 남기며 이름을 널리 알리고 한시적으로 몸담았던 동물원을 나와 자신만의 색으로 음악을 조제하기 시작했다. 그의 풋풋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1집에서 우리는 ‘기다려줘’란 노래로 그의 이름을 알게 된다. 동물원의 박기영이 키보디스트로 참여한 1집은 그렇게 대중적인 성공을 가져오지는 못했지만 그가 만든 ‘너에게’, ‘아스팔트 열기 속에서’와 같은 곡들이 김광석이란 가수의 미래에 희망을 갖게 했다. 그리고 이내 2집은 이것을 증명하는 증거물이 되었다. 그는 2집에서 한동준이 만들어 준 ‘사랑했지만’으로 긴 인기의 향연을 시작한다. 그리고 김형석의 ‘사랑이라는 이유로’와 그가 만든 ‘슬픈 노래’가 라디오를 휘어잡으며 2집의 롱런이 시작된다. 이 앨범에는 이 외에도 문대헌, 김창기, 박용준, 조규만 등의 작곡가들이 참여하여 완성도 높은 음반을 만들어 주고 있다. 2집과 같이 다양한 작곡가들이 참여한 3집에서도 ‘나의 노래’를 인구에 회자시킨 김광석은 <다시 부르기>란 이름으로 앨범을 내놓는다. 이 앨범은 과거에 그가 불렀던 노래들을 리메이크의 형식을 취해 다시 발표한 앨범으로 무엇보다도 성숙해진 해석력을 보여준 음반이다. 여기서 김현성의 ‘이등병의 편지’를 세상에 알린 그는 다음해 내 놓은 4집에서 ‘일어나’, ‘너무 아픈 사랑이 아니었음을’, ‘서른 즈음에’ 등을 잇달아 히트시킨다. 자기 색깔을 제대로 내 보인 앨범으로, 음악적 궤도에 올라선 앨범으로, 가장 마음에 들어했다는 4집에는 본인의 곡이 4곡이나 들어 있고 노영심, 김창기 등이 작곡가로 참여했으며 김지하의 시에 황난주의 곡을 붙인 ‘회귀’가 수록되어 있다. 김광석은 그가 발표한 음반 중에서 중요한 앨범으로 기록되는 <다시 부르기 2>를 1995년 발표한다. 이 음반은 예전에 불렀던 곡들을 다시 부른 1집과 달리 그의 음악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뛰어난 포크 음악의 고전들을 위주로 실었다. 한대수의 ‘바람과 나’, 양병집이 미국의 포크 그룹 피터 폴 앤 매리(Peter, Paul & Mary)의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을 리메이크한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이정선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김목경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등이 실린 이 음반은 신문기사로 처리한 앨범의 표지와 함께 김광석의 음악을 다시 부흥하게 했다. 하지만 군에서 장교로 복무하던 형이 그랬듯 그는 우리에게 갑작스런 비보를 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강력한 미련으로 마지막까지 붙잡는 삶의 집착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스스로 자신의 생을 마감했다. 그 이유는 우리들의 짧은 생각과 추측 속에 남겨둔 채. 하지만 그의 음악은 식을 줄 모르는 재평가와 재생산의 장을 열어 젖히고 있다. 백창우의 ‘부치지 않은 편지’를 타이틀로 한 그의 첫 번째 트리뷰트 앨범 <가객>이 1998년에 나왔고 2000년에는 박학기의 주도로 모인 가수들에 의해서 라는 트리뷰트 앨범이 발매되었다. 그전에 2000년 최다관객 기록을 수립한 <공동경비구역 JSA>에서는 ‘부치지 않은 편지’와 ‘이등병의 편지’가 다시 인기몰이를 했고 2001년에는 그의 미발표곡과 히트곡을 체코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입혀 다섯 번째라고 이름 붙인 앨범을, 함춘호, 조동익, 김형석, 박용준 등이 주축이 되어 만들었다. 대부분의 가수들이 사후 그 동안에만 반짝하고 빛을 발하는 것과 달리 김광석은 더 이상 신곡을 발표할 수 없음에도 주기적으로 표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노래만을 부르다가 사라진 한 고인에 대한 넋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우리가 그의 작품을 제대로 기리는 것은 그와 같은 뮤지션이 다시 재창출되도록 우리의 환경을 조성하는 길이다. 그것이 못다 핀 그의 음악세계를 더욱 잊지 않게 하는 방법일 것이다.

- 제공 : IZM (www.izm.co.kr)
한 2년 전부터 포크 가수들의 연대가 두드러지고 있다. 트윈폴리오의 번안곡 시대가 열린 뒤 발흥된 우리의 포크 문화는 한대수와 김민기의 실험성과 독창성으로 정점을 이루던 시기가 있었고 유신정권의 가요규제 조치로 타격을 받았다. 조동진으로 시작된 발라드 계열의 일상 언어를 소재로 한 포크 음악은 해바라기, 따로또같이, 시인과 촌장, 어떤날로 이어지며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았고 다시 1990년대의 댄스씬으로 인해 좌초... 한 2년 전부터 포크 가수들의 연대가 두드러지고 있다. 트윈폴리오의 번안곡 시대가 열린 뒤 발흥된 우리의 포크 문화는 한대수와 김민기의 실험성과 독창성으로 정점을 이루던 시기가 있었고 유신정권의 가요규제 조치로 타격을 받았다. 조동진으로 시작된 발라드 계열의 일상 언어를 소재로 한 포크 음악은 해바라기, 따로또같이, 시인과 촌장, 어떤날로 이어지며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았고 다시 1990년대의 댄스씬으로 인해 좌초되었다. 포크 발라드의 전형을 이루며 많은 인기를 누렸던 조덕배도 1980년대의 인기를 1990년대에 잃어버리며 바로 포크의 운명을 그대로 따랐다. 한 쪽 다리를 절었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 기타를 퉁기며 모든 음악을 섭렵했던 그는, 이루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추억으로 만든 ‘나의 옛날 이야기’로 라디오의 차트에 등장해 높은 순위를 기록한다. 그의 애잔한 목소리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같은 데뷔 앨범에 속해 있던 ‘너풀거리듯’을 히트시켰다. 담백한 목소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몽환적 분위기 때문에 포크 경향이면서도 사이키델릭한 느낌을 주는 데뷔 앨범은 이후로도 계속 라디오를 타며 사랑을 받았다. 그는 2집의 ‘꿈에’로 차트 정상에 오르고 계속해서 ‘슬픈 노래는 부르지 않을 꺼야’, 국내에 보사노바의 열기를 전한 곡으로 평가받는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으로 아낌없는 갈채를 받으며 전성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발라드의 몰락과 더불어 그의 통기타 시절도 막을 내리고 말았다. 1990년대에 환영을 받은 포크 가수는 김광석, 안치환, 정태춘 등의 운동권 계열의 가수들이었고 나긋나긋한 그의 목소리는 힘과 이미지, 센세이셔널한 사고 등, 모든 면에서 이들에게 밀렸다. 1996년 발표한 리메이크 앨범을 비롯한 그의 모든 앨범은 이후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했고 그는 단지 대마초로 신문지상을 여러 차례 오르내렸다. 조덕배는 포크 음악의 재건에 나선 노장 가수들과 함께 기념 콘서트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으며 2000년에는 포크 음악 30주년 기념 음반에서 ‘하늘에서 나무까지’라는 타이틀곡을 부르기도 했다. 현재는 미사리의 라이브 카페에서 음악을 들려주고 있으며 언젠가는 험난했던 자신의 삶을 들려 줄 시간을 기다리며 음악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고 있다.
생년월일 : 1953년생 지금도 노래방을 비롯해 여타의 술자리에서 빠지지 않고 한 레파토리를 장식하는 ’남행열차’의 주인공 김수희는 1973년 작곡가로 음악계에 데뷔했다. 어린 시절부터 노래에 남다른 실력을 보이던 그녀는 광주에서 올라와 밤무대와 미 8군의 업소에서 그룹 블랙캣츠(Black Cats)의 리드 싱어로 활동하다 1976년 데뷔 곡 ’너무합니다’가 수록된 자신의 첫 앨범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솔로 활동을... 생년월일 : 1953년생 지금도 노래방을 비롯해 여타의 술자리에서 빠지지 않고 한 레파토리를 장식하는 ’남행열차’의 주인공 김수희는 1973년 작곡가로 음악계에 데뷔했다. 어린 시절부터 노래에 남다른 실력을 보이던 그녀는 광주에서 올라와 밤무대와 미 8군의 업소에서 그룹 블랙캣츠(Black Cats)의 리드 싱어로 활동하다 1976년 데뷔 곡 ’너무합니다’가 수록된 자신의 첫 앨범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솔로 활동을 시작한다. ’남포동부르스’, 리메이크 곡 ’알뜰한 당신’ 등이 수록된 이 앨범은 당시에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79년경부터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그녀의 이름이 라디오를 타고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기나긴 무명의 시간 속에서 평범한 삶을 꿈꾸던 그녀는 서울 상경기를 전해들은 웅진 레코드사 사장의 전폭적인 지원에 의해 수면 위로 급부상 한다. 공륜에 의해 4번이나 퇴짜를 맞았던 ’멍에’라는 곡은 원래 가수 방미가 취입할 예정이었으나 사장의 결단에 의해 김수희에게 낙찰되었다. 녹음 당시 감기와 임신의 몸으로 노래를 불러야 했던 그녀는 컨디션이 좋지 못한 상태에서 레코딩을 마쳐야 했지만 결국 곡에 세미 트로트의 감칠맛 나는 목소리를 덧입힘으로써 이 히트곡의 결정적인 키워드 작용을 해냈다. 그녀의 이름으로 탄생시킨 최초의 홈런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방송국에서 중고 신인으로 낙인찍혀 제대로 설자리를 찾지 못했던 그녀는 밤무대를 주축으로 전국적인 상종가를 치기 시작했으며 소속사의 로비로 간신히 주택복권을 추첨하는 프로에 출연한 이후에는 몰려드는 중간상들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한달 반을 밤낮으로 판을 찍어내야 했다. 그렇게 해서 이 곡은 1983년 최대 히트곡 중의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이 곡의 대 히트이후 그녀는 다시 또 침묵을 지켜야 했다.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었으며 이후 발표한 ’마지막 포옹’, ’잃어버린 정’, ’고독한 연인’, ’당신은 누구세요’ 등이 줄줄이 시장에서 참패를 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조용필과 언더그라운드가 지배하던 ’80년대를 ’너무합니다’와 ’멍에’, ’남행열차’ 단 3곡으로 버텨야 했으며 간혹 ’한오백년’과 팝과 트로트의 경계에 서 있던 ’지금은 가지 마세요’라는 곡으로 맞서야 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희레코드사를 설립하고 1990년에 발표한 ’서울여자’, 이듬해 발표한 ’자존심 두고 떠나라’ 등이 아무런 반응을 얻지 못하는 가운데, 그녀는 필리핀의 한 심령사에 의해 유방암 치료를 받으며 화제성을 뿌렸고 가수에 대한 회의감으로 어릴적부터 꿈꾸어 오던 시나리오 작가의 세계에도 발을 디딘다. 그런 그녀의 두 번째 상승기는 서태지와 아이들로 대변되는 신세대 문화의 폭풍이 절정을 가할 무렵인 1993년 느닷없이 찾아온다. 이미 ’90년에 발표한 적이 있던 ’애모’라는 곡은 순식간에 라디오와 길보드 차트를 점령했으며 음악문화의 주도권을 완전히 신세대에게 빼앗겨버린 기성세대와 짝을 이뤄 전국을 석권해 버렸다. 하지만 이 곡이 지닌 의의는, 곡의 인지도가 비단 기성세대에게만 그친 것이 아니라 신세대에게도 파급 효과를 미쳤다는 것이며 한쪽으로 종횡무진 달려가는 획일적 댄스 문화에 일침을 가했다는 데 있다. 이 곡으로 KBS가요대상을 비롯해 MBC 올해의 가수상. 서울가요 대상, 한국 노랫말 대상, 일간, 조선, 서울 등 3대 일간 스포츠지 올해의 가수상을 수상한 그녀는 1993년과 94년을 명실상부한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이에 탄력을 받아 희필름이란 영화사를 설립하고 < 애수의 하모니카 >란 영화에서 제작은 물론 시나리오에 감독까지 1인 3역을 해내며 오랜 소원이었던 감독의 꿈을 이뤘다. 거기에 소설과 에세이 등을 출간하며 작가로서의 직함도 손에 넣었으며 종교인으로서 성가곡집도 발표했다. 이 앨범에서 그녀는 ’애모’를 성가가사로 바꾸어 부르기도 했다. 영화 등의 실패와 일본 활동의 정체 등으로 4년여간 앨범을 발표하지 않았던 그녀는 1998년 ’존재의 이유’로 잘 알려진 김종환 작곡의 ’Amor’가 실린 자신의 9번째 음반을 발표했으며 2000년에는 박미경, 엄정화, 김현정, 신효범, 소찬휘, 진주, 채정안 등 그녀를 사랑하는 후배들이 총출동한 10집 음반 < Pathos >를 발표하고 공연 위주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조선일보 선정 < 건국 이후 가수 베스트 50 >에서 33위로 존재의 진가를 확인한 그녀는 최근 KBS 라디오가 수도권 지역에 거주하는 10대들을 조사한 자료에서 ’남행열차’가 10대가 좋아하는 트로트 1위로 뽑혔으며 여전히 그녀가 부른 ’애모’를 비롯한 기존의 곡들도 트로트의 기준점을 세우는 바로미터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편 그녀의 딸 Sunny는 주영훈 작곡의 ’Damage’를 타이틀로 한 데뷔 앨범을 발표하고 모전여전의 카리스마를 이어가고 있다.
일곱 살 되던 해 가을, 달빛이 무척 밝았던 밤 멀리서 들려오던 하모니카의 선율이 음악과의 첫 만남이었다고 고백하는 조용필은 국내에서 인기와 음악성 모두 최고의 인정을 받은 가수다. 그의 가창력은 아직도 모든 가수들이 꿈꾸는 선망의 경지이며, 오빠부대를 최초로 이끌 때부터 < Eternity >의 ‘바람의 소리’로 다시 주목을 받을 때까지, 그는 내내 실질적인 인기 순위 1위는 물론 역대 최정상의 위용을 뽐냈다.... 일곱 살 되던 해 가을, 달빛이 무척 밝았던 밤 멀리서 들려오던 하모니카의 선율이 음악과의 첫 만남이었다고 고백하는 조용필은 국내에서 인기와 음악성 모두 최고의 인정을 받은 가수다. 그의 가창력은 아직도 모든 가수들이 꿈꾸는 선망의 경지이며, 오빠부대를 최초로 이끌 때부터 < Eternity >의 ‘바람의 소리’로 다시 주목을 받을 때까지, 그는 내내 실질적인 인기 순위 1위는 물론 역대 최정상의 위용을 뽐냈다. 그가 오버그라운드에 군림함으로써 언더그라운드의 모든 기수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과대포장하지 않았고 그가 있음으로 다양한 장르가 조명받았다. 비록 1980년대 내내 아무런 저항이나 반정부적 구호 하나 외치지 않았고 발전을 위한 2인자도 허락하지 않았지만 현재 그를 미워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것은 기교와 센세이셔널리즘을 넘어 일정한 경지를 몸소 터득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는 당분간 이런 가수를 오랫동안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중.고등학교 시절, 기타를 끼고 살았던 그는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쳐 집을 가출한다. 이후 7년 동안 첵돌스, 파이브 핑거스 등의 그룹을 거치며 파주 일대의 미군기지에서 활동했던 그는 오로지 음악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만을 체득한다. 어느 날, 한 미군병사가 신청한 재즈뮤지션 바비 블랜드(Bobby Blend)의 ‘Lead me on’은 그의 음악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친 그룹 애드포(AD4)의 드러머 김대환을 만나게 해 준다. 당시 업소에서 소울 계통의 음악을 자주 불렀던 그는 이 신청 곡을 접수한 뒤, 밤무대의 중요한 레파토리로 선정했고, 이 노래를 들은 김대환은 그에게 팀을 만들자고 제의했다. 김대환, 이남이, 최이철 등 쟁쟁한 뮤지션이 합류한 그의 새로운 팀은 리더인 김대환의 성을 딴 김트리오였다. 후에 김대환이 매니저로 물러서고 4인조가 된 이 그룹에서, 조용필은 청음, 채보 하는 법 등을 배웠으며 지독한 연습으로 일취월장했다. 이 팀은 선데이 서울컵 팝그룹 콘테스트에서 ‘Lead me on’을 번안한 ‘님이여’란 곡으로 최우수 가수왕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김대환의 해체 선언으로 모두 흩어지고 말았다. 군 제대 후 조갑출과 그룹 25시에 잠시 몸담았던 그는 미국의 재즈록 그룹 시카고(Chicago)의 영향을 받아 8인조 브라스 밴드인 조용필과 그림자를 만들고 당시 인기 있던 서울의 고고클럽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김트리오와 조용필과 그림자 시절 각각 한 장의 음반을 냈던 그는, 축구선수 이회택과 조갑출을 통해 소개받은 박성배를 만나 첫 솔로 음반을 제의 받는다. 그리고 최초의 메이저 히트곡을 터트린다. 부산이라는 지명 때문인지는 몰라도, 부산에서부터 치고 올라온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원래는 4분의 2박 트로트 음악이었지만 4분의 4박형 트로트 고고로 편곡한 곡이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저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했으며 세인들의 가슴을 파고들기까지는 몇 개월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이 짧은 기다림은 그에게 다가올 80년대의 영광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했다. 조용필은 벅찬 감격에 젖어 그 뜨거운 반응을 만끽했으며 방송 출연 및 밤무대를 휩쓸었다. 그러나 파이브 핑거스 시절 몇 대 피웠던 대마초는 1975년 휩쓴 대마초 파동 때 그를 비껴가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정부의 활동정지처분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1977년 “톱 싱어가 되기보다는 음악 하는 사람으로 계속 머물기를 바랐습니다”라는 말을 남긴 은퇴 선언으로 세상에 이별을 고한다. 휴식기에 TV 드라마에서 본 ‘한오백년’이라는 창을 들은 그는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와 같은 탁성을 내고 싶어 명산을 찾아다니며 발성연습을 시작했다. 진도 아리랑, 성주풀이, 흥부전까지 소화하며 목을 틔운 그는 급기야 피를 쏟았으며 부은 목이 가라앉을 시점이 되서는 그토록 원하던 목소리가 비로서 시원스럽게 터져 나왔다. 그는 용기를 얻고 베이스 주자 유재학과 조용필과 그림자란 팀을 이끌며 부산, 서울 등지의 밤무대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대마초가수라는 오명을 벗기는 힘이 들었으며 그의 전과를 알아본 팬들 때문에 금방 금방 쫓겨났다. 다시 방송에 설 수 있게 되기까지는 1979년 대마초 연예인 완전해금조치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은 1980년 초 동아방송 연속극 < 창 밖의 여자 > 주제곡을 작곡하면서부터였다. 지금 들으면 난해하기 짝이 없는 이 가사에서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라는 결정적 문구는 절대적인 지위를 얻었고 같은 앨범 수록곡 ‘단발머리’, ‘한오백년’ 등의 히트곡으로 인기 지형의 급 물살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는 유재학을 매니저로 하고 김청산, 이건태, 이호준, 곽경욱, 김택환을 멤버로 하여 1980년대를 가로지른 실력파 그룹 위대한 탄생을 출범시키기에 이른다. 조선일보 선정 건국 이후 최고의 가수 자리를 차지한 조용필의 후일담은 우리가 모두 아는 대로 살아있는 전설 그 자체이다. 1980년대 그의 아성에 도전한 이는 이용, 김수철, 전영록 정도였으며 그리 길지 못했다. 그리고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그의 활동은 일본과 중국을 가로질렀고 국내 음악씬을 초토화시켰다. 그는 오빠부대의 원조이며 모든 장르를 국내 음악에 이식시킨 공로도 가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제쳐두더라도 그가 쏟아낸 히트곡은 역사상 최고의 수준이다. 1998년, 그는 음악 인생 30주년을 맞아 그간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곡들을 모아 기념음반을 냈다. 아직까지 우리에게 이런 가수가 있다는 것은 너무나 큰 행복이다. 영화나 TV에 기웃거리지 않고 후배 자신들도 인기와 음악성만으로 끝까지 사랑 받을 수 있다는,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뮤지션이라면 한번 도전해 볼만한 일 아닌가?
멤버 : 이천행, 이박무, 황성택, 남덕현 멤버 : 이천행, 이박무, 황성택, 남덕현
멤버 : 유영춘, 안치행, 장현종, 박동수, 장대헌 멤버 : 유영춘, 안치행, 장현종, 박동수, 장대헌
3집에 수록된 ‘잘됐어’ 이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샵의 이지혜는 소속사에 의해 길거리 캐스팅 된 뒤 오디션에서 이상민의 심사를 통과해 뽑혔고, 귀여운 덧니가 인상적인 서지영은 고 2때 의류브랜드 모델에 지원했다가 역시 심사위원이었던 이상민에 의해 발탁됐다. 이 두 명의 여성 싱어가 주도하는 샵의 1집은 여기에 오디션을 통과한 장석현 김영진, 오희종으로 구성된 3명의 남성으로 구성된 혼성 그룹 이였다. 이... 3집에 수록된 ‘잘됐어’ 이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샵의 이지혜는 소속사에 의해 길거리 캐스팅 된 뒤 오디션에서 이상민의 심사를 통과해 뽑혔고, 귀여운 덧니가 인상적인 서지영은 고 2때 의류브랜드 모델에 지원했다가 역시 심사위원이었던 이상민에 의해 발탁됐다. 이 두 명의 여성 싱어가 주도하는 샵의 1집은 여기에 오디션을 통과한 장석현 김영진, 오희종으로 구성된 3명의 남성으로 구성된 혼성 그룹 이였다. 이 앨범에선 이지혜의 도발적이고 파워풀한 보컬이 빛을 발하는 ‘Yes’가 인기를 끌었고, 이어 서지영의 애교 섞인 목소리를 내세운 펑키 넘버 ‘Lying’이 히트하여 이들의 롱런에 초석을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당시에 수 없이 등장한 보통의 그룹과는 뭔가 달라보였던 이들은 힙합 부분을 담당했던 김영진과 오희종이 빠진 대신에 1집의 말미에 들어온 크리스(그는 유현상이 프로듀스 했던 댄스 그룹 E&C의 멤버였다)와 여성 싱어 소리가 보강되어 발표한 2집에서 힙합의 성향을 많이 가미했던 전작에 비해 좀 더 대중적으로 다가서며 동시대 그룹과 동색으로 노선의 차별화를 무시해버렸다. 앨범의 ‘Tell me tell me’, ‘가까이’가 연속으로 팬들의 귀를 사로잡았으며 ‘For you’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미국의 자이브 사운드를 연상시키는 강한 정글 사운드를 도입한 ‘잘됐어’가 조성모와 서태지의 늪을 헤치고 선전한 이들의 3집은 학업을 위해 소리가 빠지고 남녀의 비율을 2 : 2로 맞추어 새롭게 출발한 앨범이다. 역동적인 안무와 섹시 마켓팅을 적극적으로 살려 서지영과 이지혜를 전면에 부각시킨 이 앨범은 보통의 인기로 그 빛을 다 할것 같던 샵을 최고 인기 댄스 그룹의 하나로 발돋움시켰다. 가수는 제목 따라 간다는 징크스를 다분히 이용한 제목이 특징적인 ‘잘됐어’에 이어 인기를 모은 후속곡 ‘그래도 될까’에서는 양궁 금메달 리스트 오교문이 뮤직 비디오에 참여해 화제를 모았으며 거의 1년 여만에 내는 앨범의 사이클에 만족하지 않고 곧장 새로운 음반 작업에 들어갔다. 3집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 3달만에 4집을 들고 나타난 이들의 행로는 인기를 절정으로 이끌었다. 타이틀 곡 ‘Sweety’ 방송횟수 133 회를 기록해 이 부문 신기록을 이룩했으며 이 폭발적인 사랑은 높은 판매고로 이어지며 3집의 여파로 얻은 인기를 계속 확산시켜 나갔다. 후속곡으로 정해진 ‘백일기도’ 이외에도 도나 서머(Donna Summer)의 ’Hot stuff’를 샘플링한 ’사이’, ’별 하나 사랑 둘’ 역시 구매자들 사이에서 폭넓은 인기를 끌었다. 데뷔시절부터 빠른 비트와 율동이 가미된 노래만을 불러왔던 이들은 그룹이름 샵(#)에 대비되는 이름 플랫(b)을 사용해 쉬어가는 음반을 공개했다. 빠른 음악 못지않게 발라드에도 자신있음을 보여준 이 < Flat Album >에서는 서지영의 소프트한 랩과 이지혜의 서정적인 목소리가 어우러진 ’내 입술...따뜻한 커피처럼’이 각종 방송 차트 1위에 오르며 이들을 장수그룹의 대열에 끼게 했으며 록과 댄스 음악을 조화롭게 이어간 후속곡 ’Kiss me’로 계속해서 주의를 끌었다. 장석현이 시트콤 < 오렌지 >에서 배우로, 이지혜가 라디오 프로그램 게스트로, 크리스가 타 가수들의 피처링으로, 서지영이 각 방송사 연기자겸 인기 게스트 섭외를 받으면서 팀원 모두가 다각도의 활동에 열린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들은 2002년 9월 다섯번째 음반을 발표했다. 멤버 모두가 한 곡씩 작곡하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표출한 이 앨범에서는 더 더욱 대중성을 염두해 두고 만든 음반으로, 제목과 달리 신나게 ’오렐레’라는 춤과 같이하는 ’눈물’이 첫 타자로 힘을 모으고 있고 듣기에 무난한 곡들로 가득 채우고 있지만 귀를 잡아끌던 과거의 작품들에 비해 별 재미를 못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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