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영국의 유력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현대 사회를 좌우할 열쇳말로‘불확실성(uncertainty)’을 꼽았다. 2008년 국제 금융 위기의 소용돌이 한복판에서 경제 위기가 언제 끝날지,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2010년 현재 세계 경제는 금융 위기에서 빠져 나올 기미를 보이고 있다. 특히 한국 사회는 OECD 국가들 중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금융 위기를 일으킨 불확실성이 해소되었기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수많은 경제학자와 투자자 들은 추가적인 위기를 경고하고 있고, 여전히 세계 경제의 미래는 불확실성의 안개 속에 가려져 있다. 한국 사회로 눈을 돌려 보자. 경기 지표는 분명 긍정적인 신호를 보여 주고 있고, 소비 심리나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구성원 모두는 우리 사회 지면 아래 잠재되어 있는 불확실성의 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공포 속에 살아가고 있다. 정치판에서는 세종시와 4대강을 둘러싼 논쟁이 정치 일정을 혼돈 속에 몰아넣고, 사회에서는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초강력 범죄가 확산되고, 심지어 과학 기술계에서조차 황우석 교수 사건 같은 스캔들이 빈발한다.
최근 발생해 한국 사회 전체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은 천안함 침몰 사건 역시 한국 사회의 불확실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말 그대로 우리는 “불확실한 세상에서도 가장 불확실한 땅, 한국”에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불확실성에 대해 아무런 성찰 없이 보내고 있다. 어떤 정치인도, 경제인도, 지식인도 위기의 현대 사회를 좌우하고 있는 불확실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매번 벌어지는 사건들의 뒤처리에 급급하다. 이번에 (주)사이언스북스에서 10명의 지식인들과 함께 펴낸 『불확실한 세상: 위기의 시대를 좌우할 열쇳말』은 불확실성이라는 시대적 키워드에 대한 논의 물꼬를 트기 위한 첫 시도이다. 정치, 경제, 문화, 생태/환경, 과학 기술, 각 분야에서 저술 및 발언 및 참여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지식인 10인의 담금질된 글들을 모은 이 책은 불확실한 세상에 대한 최초의 메스를 대며 시대를좌우할 키워드를 입체적으로 해부한다.
불확실한 세상에서도 가장 불확실한 땅, 한국
“이 불확실한 나라가 정말 싫어!”
불확실성의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정치, 경제, 문화, 생태/환경, 과학 기술 등 사회의 온갖 영역에서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출몰한다. 이 책에서는 정치, 경제, 문화, 생태/환경, 과학 기술 크게 다섯 지점에서 불확실성을 공략해 들어간다. 그리고 정치는 국내 정치와 국제 정치의 관점에서, 경제는 거시적 측면과 미시적 측면에서, 문화는 세속적 관점과 종교적 관점에서, 생태/환경은 국민 보건적 관점과 전 지구적 기후 변동 관점에서, 과학 기술은 순수 과학과 응용 기술측면에서 접근함으로써 불확실성을 종으로 횡으로 분석해 들어간다. 정치 파트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정치 컨설턴트인 박성민 정치 컨설팅 ‘민’대표와 국제 인권 문제전문가인 조효제 성공회 대학교 교수가, 경제 파트에서는 제도주의 경제학의 신예 학자 박종현 진주산업대 교수와 진화 생물학과 행동 경제학을 통섭적으로 연구하는 최정규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가, 문화 파트에서는 문화 이론과 비판 이론의 전문가인 노명우 아주대학교 교수와 소정 종교학자인 이창익 한신대 연구 교수가, 생태/환경 파트에서는 광우병 논쟁 시 활발하게 논쟁을 주도했던 박상표 국민 건강을 위한 수의사 연대 정책 국장과 젊은 과학 생태 문제 전문 기자인 강양구 《프레시안》 기자가, 과학 기술 파트에서는 대표적인 물리 철학자인 김재영 이화여대 HK 연구 교수와 과학 사회학자인 김명진 시민과학센터 운영 위원이 불확실성이라는 키워드에 도전한다. 경제 위기, 정치 불안, 성과 속의 혼란, 전 지구적 기후 변동, 과학 기술의 내재적 불안정성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이 위기의 시대를 넘어설 것인가? 한국 정치 컨설팅 업계의 개척자이자, 대표적인 정치 평론가인 박성민 정치 컨설팅 ‘민’ 대표는 불확실한 정치에서 한국인이 불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읽어낸다. 논란을 잠재우기는커녕 논란을 확대 재생산하는 데 골몰하는 한국 정치의 무능력함에서 한국인이 받고 있는 스트레스의 근원임을 날카롭게 찾아낸다.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는 핵무기 통제에 실패하고, 테러리즘의 만연 속에서 증대되어 가는 핵위기의 상황을 반추하고, 국제 금융 위기의 전말을 살펴보며 불확실성이라는 이름의 저울이 국제 정치를 어떻게 이끌어 가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국제 정치 세계에서 이 불확실성을 통제하려는 여러 흐름들을 소개하고 비판
적으로 검토한다.
박종현 진주산업대 교수는 불확실성과 리스크의 차이에 대해 성찰해 슿 케인스 이후 경제학자들의 논의를 치밀하게 짚어 가면서 경제학에서 불확실성을 어떻게 다루어 왔는지, 어떤 대응 방안을 내놓았는지를 상세하게 보여 준다. 불확실성으로 하여금 창조의 동력으로, 새로운 활동의 원천으로 기능하게 하고, 사회 구성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안을 모색한다.
최정규 경북대 교수는 정보화 시대가 분명 전통 경제에 존재했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확실히 성공하기는 했지만, 모순적으로 새로운 불확실성을 생산하고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 준다. 그리고 정보화 시대가 가져온 새로운 차원의 불확실성은 ‘승자 독식’의 구조를 사회 속에 깊이 뿌리 내리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노명우 아주대 교수는 현대 사회에서 불확실성 앞에서 무능력해진 인간이 어떻게 종교와 과학 기술 같은 세속 지식을 이용해 불확실성에서 벗어나려 하는지 보여 준다. 불확실성에 대한 오래된 대처 방안이었던 종교가 힘을 잃자 경제인(Homo economicus)이 호모 쇼퍼홀릭(Homo shopaholic)으로 진화해 불확실성에 대처하려 했고, 결국 20세기에 빈발했던 대공황과 경제 위기에서 증명되었던 것처럼 실패했던 근대인의 시도를 냉철하게 그려 낸다.
이창익 한신대 연구 교수는 성스러움이 종교를 떠난 현대 사회에서 종교가 어떠한 변천을 겪었는지 치밀하게 분석한다. 기성 종교가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방안으로서 힘을 잃고 세속적인 장치들에게 역할과 권한 그리고 권력을 양보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분석해 현대의 불확실성에 종교가 어떤 식으로 마주하고 있
는지 보여 준다.
박상표 국민 건강을 위한 수의사 연대 정책 국장은 광우병과 관련된 의과학계 논쟁의 역사,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의 논의를 소개하면서 광우병이 얼마나 불확실한 상황 속에 놓여 있는지 다시 한번 환기시킨다. 그리고 국민 건강/보건 문제와 관련된 불확실성에 대해서는 ‘사전 예방’의 원칙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역설한다. 신종 플루 등 새로운 질병과 보건 문제가 운위되고 있는 현실에서 중요한 시사점들을 던져 주고 있다.
강양구 기자는 최근 논란이 격화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 석유 생산 정점(oilpeak) 관련 이슈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지구 온난화가 가져올 기후 변동과 석유 생산이 한계에 달하는 석유 생산 정점 문제에 분명 불확실성이 있을 수 있고, 예측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응과 대비를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 전 지구적 명운이 걸린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책으로는 연대밖에 없음을 역설하고 있다.
김재영 이화여자대 HK 연구 교수는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면서 과학과 수학이 불확실성이라는 개념을 학문 속으로 포섭하게 된 과정을 설명한다. 데카르트의 확실한 지식에 대한 꿈이 깨진 후 확률을 과학적, 수학적으로 사유할 수 있게 되고, 양자 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와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를 거쳐 과학과 수학이 자신 속에 내재하는 불확실성을 긍정하게 된 역사가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김명진 시민과학센터 운영 위원은 우주 왕복선 컬럼비아호 폭발 사고와 전자 조작 식품의 사례들을 상세하게 분석하며 과학자나 엔지니어의 믿음이나 기대와는 달리, 실험실 밖으로 나온 과학과 기술에는 불확실성의 요소가 내재되어 있으며 절대 배제할 수 없고 오히려 확대됨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