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YES24 카테고리 리스트

YES24 유틸메뉴

Global YES24안내보기

Global YES24는?

K-POP/K-Drama 관련상품(음반,도서,DVD)을
영문/중문 으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Korean wave shopping mall, sell the
K-POP/K-Drama (CD,DVD,Blu-ray,Book) We aceept PayPal/UnionPay/Alipay
and support English/Chinese Language service

English

作为出售正规 K-POP/K-Drama 相关(CD,图书,DVD) 韩流商品的网站, 支持 中文/英文 等海外结账方式

中文

검색


어깨배너

9월 상품권
9월 혜택모음
북클러버
추석엔 보너스
모바일 룰렛
추석 이북
1/6

빠른분야찾기


윙배너

마우스를 올려주세요.

마케팅 텍스트 배너

웹진채널예스


A Tribute To 들국화
공유하기 예스24 음반 판매 수량은
차트와 차트 집계에 반영됩니다. 한터차트/가온차트 집계 반영 안내
CD

A Tribute To 들국화

[ 2CD ]
윤도현 밴드 (YB), 권인하, 박효신, 크라잉 넛, 긱스(Gigs) 노래 외 11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다날엔터테인먼트 | 2017년 03월 24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354 판매지수란?
상품 가격정보
판매가 23,800원
할인가 19,300 (19% 할인)
YES포인트
추가혜택쿠폰 및 사은품(1종)
추가혜택쿠폰 쿠폰받기
  • 주문금액대별 할인쿠폰
카드혜택
결제혜택
카드할인 정보
 모바일팝 모바일 5% 즉시할인 (모바일 결제시) 자세히 보기
네이버페이 네이버페이 1% 적립 (전체결제) 자세히 보기
페이코 페이코 포인트결제 2% 적립 (신규고객 4,500원 할인) 자세히 보기
할인/적립 카드 더보기
구매 시 참고사항
구매 시 참고사항

판매중

수량
배송비 : 2,000원 해당 상품과 도서 포함하여 만원
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배송비 안내
  • 해외배송 가능
1/4
광고 AD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7년 03월 24일
시간, 무게, 크기 700g

관련분류

카테고리 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CD1
  • 01 행진 - YB
  • 02 그것만이 내 세상 - 권인하, 박효신
  • 03 세계로 가는 기차 - 크라잉 넛
  • 04 더 이상 내게 - 긱스
  • 05 사랑일 뿐이야 - 이승환
  • 06 매일 그대와 - 박학기, 조규찬
  • 07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 이은미
  • 08 너는 - 렐리쉬
  • 09 제발 - 김장훈
  • 10 내가 찾는 아이 - 델리스파이스
  • 11 제주도의 푸른 밤 - 동물원
  • 12 솔직할 수 있도록 - 언니네 이발관
  • 13 사랑한 후에 - 신해철
  • 14 그것만이 내 세상 - 강산에
CD2
  • 01 행진(Original) - YB
  • 02 그것만이 내 세상(Original) - 권인하, 박효신
  • 03 세계로 가는 기차(Original) - 크라잉 넛
  • 04 더 이상 내게(Original) - 긱스
  • 05 사랑일 뿐이야 (Original) - 이승환
  • 06 매일 그대와(Original) - 박학기, 조규찬
  • 07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Original) - 이은미
  • 08 너는(Original) - 렐리쉬
  • 09 제발(Original) - 김장훈
  • 10 내가 찾는 아이(Original) - 델리스파이스
  • 11 제주도의 푸른 밤(Original) - 동물원
  • 12 솔직할 수 있도록(Original) - 언니네 이발관
  • 13 사랑한 후에(Original) - 신해철
  • 14 그것만이 내 세상(Original) - 강산에

아티스트 소개 (16명)

윤도현 밴드는 한국의 척박한 록 씬에서 승부를 걸어 뚜렷한 위치를 차지한 아티스트이다. 그들이 발표한 4장의 정규 앨범(라이브 제외)은 비단 사운드만이 아닌 의식의 성숙을 보여주는 과정이다. 군에서 제대한 직후 윤도현은 솔로가수로서 음악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는 1995년 ‘타잔’이 수록된 1집을 발표했다. 그 곡은 얼마간의 인기를 얻게 된다. 그 덕에 그는 한국 최초의 본격 록 영화 에 출연하는 기회를 잡았다... 윤도현 밴드는 한국의 척박한 록 씬에서 승부를 걸어 뚜렷한 위치를 차지한 아티스트이다. 그들이 발표한 4장의 정규 앨범(라이브 제외)은 비단 사운드만이 아닌 의식의 성숙을 보여주는 과정이다. 군에서 제대한 직후 윤도현은 솔로가수로서 음악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는 1995년 ‘타잔’이 수록된 1집을 발표했다. 그 곡은 얼마간의 인기를 얻게 된다. 그 덕에 그는 한국 최초의 본격 록 영화 에 출연하는 기회를 잡았다. 그의 첫 작품은 분단에 대한 아픔(‘임진강’), 환경 파괴에 대한 성찰(‘깨어나라’) 등 묵직한 테마를 삽입하는 나름대로 신경 쓴 흔적이 보이지만 신인의 앨범인 만큼 다분히 시장 지향적인 곡들이 공존했다. 아직 ‘덜 여문’ 앨범이었다. 윤도현은 2집부터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밴드’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했다. 밴드로서의 실질적인 처녀작인 그의 두 번째 작품은 2년여 동안의 준비기간 동안 공을 들인 흔적이 곳곳에 드러나는 수작이다. 수록곡 중 박노해의 시에 곡을 붙인 ‘이땅에 살기 위하여’와 ‘철문을 열며’는 대중음악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양심수와 노동 문제를 전면으로 제기한 문제작으로 밴드의 깊은 사회 의식을 반영했다. 특히 ‘이땅에 살기 위하여’는 강력한 스래쉬 리프를 차용하여 록 팬들 사이에서 상당한 리퀘스트를 받았다. 밴드의 두 기타리스트 유병열과 엄태환은 화려한 솔로보다는 탄탄한 "밴드"중심의 플레이에 역점을 두며 사운드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어 1998년에 발표된 3집에서 밴드는 한층 더 유기적인 조직력을 선보였다. 그것은 모든 곡의 작사와 작곡, 그리고 편곡을 밴드 스스로 해냈다는 독립성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전작에서 나타난 신랄한 메시지는 ‘7년의 그리움’에서 잔잔하지만 진지하게 구현되었다. 이 작품은 정계를 따끔히 질타하는 곡(‘왕관 쓴 바보’)과 과학의 맹신에 따른 암울한 미래(‘공상과학 개꿈’)를 노래한 곡 등 밴드의 다변화된 관심이 투영되어 있는 앨범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밴드의 최대 역작은 99년 말에 발매된 일 것이다. 한국 록의 신화인 신중현을 비롯하여 송창식, 들국화, 그리고 대학가요제의 스타인 활주로와 샌드 페블즈에 이르기까지 윤도현 밴드는 자신들이 동경했던 거장들에 대한 찬사를 백 마디의 말보다 더 절절한 ‘음악’으로 보내고 있다. 따라서 이 앨범은 한 두 곡의 어줍지 않은 리메이크를 삽입한 노골적인 ‘앨범’과는 차별성을 갖는다. 이 작품은 누구도 감히 시도하지 않았던 한국 록의 계보를 파악하려는 치열한 ‘음악 정신’의 산물이다. 러시아 민중들에게 저항의 메시지를 심어주었던 한국계 포크록 가수 빅토르 최의 ‘혈액형.bloodtype’과 통일에 대한 염원을 노래한 김민기 원곡의 ‘철망 앞에서’는 뭉클한 감동을 전해준다. 이 앨범으로 윤도현 밴드는 한국 록의 가계에 자신의 이름을 깊이 각인하는데 성공했다. 그들은 2000년 자신들의 장기인 ‘live’를 음반으로 발매하였다. 그 사이 유병열과 엄태환이 탈퇴하고 기타리스트 허준이 새로 가입하였다. 그 이름 자체로 충분히 ‘고달픈’ 국내의 록음악은 또 한가지의 난관을 극복해야만 한다. ‘촌철살인’의 테크닉을 과시하는 외국의 유수한 뮤지션들의 음악에 젖어 있는 팬들의 귀를 만족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국의 ‘록’밴드 윤도현 밴드의 존재는 빛을 발한다.
6살 때 맹인이 된 소울 뮤직의 거장 레이 찰스(Ray Charles)의 창법에 영향을 받은 권인하는 자작곡 ‘사랑을 잃어버린 나’를 이광조에게 주면서 음악계와 인연을 맺었다. 이듬해 그룹 위(We)를 결성해 ‘세상이 모두’, ‘찬비’ 등으로 라디오용 히트송을 발표한 그는 올림픽의 열풍이 식을 즈음 자신의 첫 솔로 앨범을 발표한다. 그러나 그는 솔로 앨범으로 이름을 얻기보다는 김선민의 프로젝트 그룹 마로니에의 객... 6살 때 맹인이 된 소울 뮤직의 거장 레이 찰스(Ray Charles)의 창법에 영향을 받은 권인하는 자작곡 ‘사랑을 잃어버린 나’를 이광조에게 주면서 음악계와 인연을 맺었다. 이듬해 그룹 위(We)를 결성해 ‘세상이 모두’, ‘찬비’ 등으로 라디오용 히트송을 발표한 그는 올림픽의 열풍이 식을 즈음 자신의 첫 솔로 앨범을 발표한다. 그러나 그는 솔로 앨범으로 이름을 얻기보다는 김선민의 프로젝트 그룹 마로니에의 객원 싱어로 ‘동숭로에서’를 히트시키며 세인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여기서 그는 인상적인 샤우트 창법으로 모든 작곡가들의 표적이 되었다. 이듬해에는 강인원과 만나면서 ‘비오는 날 수채화’로 그 해를 휘어잡고 이어 이 앨범의 솔로 곡 ‘오래 전에’로 사랑을 받는다. 1990년 그는 강인원이 프로듀싱한 그의 두 번째 앨범을 내놓는다. ‘계절이 음악처럼 흐를 때’와 신윤미의 앨범에서 같이 부른 ‘다이얼을 돌려요’로 전에 없는 사랑을 받은 그는 FM의 라디오 진행을 맡으며 높은 인지도를 획득한다. 하지만 권인하는 그 후 여러 차례 DJ와 MC를 맡으며 가수보다는 방송계의 인물로 인기를 얻는다. TV 미니시리즈 < 창밖엔 태양이 빛났다 >, 뮤지컬 < 우리 집 식구는 아무도 못 말려 > 등의 출연은 그에게 연기자로서의 가능성도 부여한다. 한동안 민해경과 함께 강인원의 페르소나로 주목을 받았던 그는 1993년 강인원, 전인권, 김명상 등과 프로젝트 그룹 느티나무언덕을 결성하여 재미있는 가사로 인기를 모은 ‘자아성찰’이라는 곡을 발표했고 작곡가 이영훈의 솔로 작품집에서 이문세를 제치고 ‘그대의 사진’을 부르기도 했다. 1997년부터 1년 여간 신촌뮤직의 대표이사 겸 사장으로 있으면서 장고웅과 함께 여러 가수들의 음반을 제작한 그는 드라마 < 온달왕자들 >에 삽입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던 ‘사랑이 사랑을’이 실린 다섯 번째 솔로 음반을 2000년에 발표하고 < 김현식 트리뷰트 > 앨범에 ‘하나로’란 곡으로 참여한다. 현재 < 신촌 인터내셔널 > 대표이사로 있으면서 < 위먹스(Wemux) >라는 인터넷 방송국을 만들어 DJ로도 활동하고 있는 권인하는 여주 대학, 숭실대 사회교육원 등에서 실용음악을 지도하는 교수이기도 하다.
흔히 임재범과 비교되는 박효신의 음악적 출발은 고1때였다. 평소 노래 부르는 것에 자신감이 없었던 그는 친구의 권유로 부천 청소년 가요제에서 이기찬의 ‘Please’란 노래로 대상을 따내게 된다. 우연일 것 같았던 한 번의 영광은 한 번의 은상을 포함해서 그 후로 계속 이어져 YMCA 청소년 가요제, 제물포 가요제에 출전하여 대상을 받았으며 처음엔 의구심이 들었던 가수라는 직업에 대한 자신감이 생겨났다. 그는 이... 흔히 임재범과 비교되는 박효신의 음악적 출발은 고1때였다. 평소 노래 부르는 것에 자신감이 없었던 그는 친구의 권유로 부천 청소년 가요제에서 이기찬의 ‘Please’란 노래로 대상을 따내게 된다. 우연일 것 같았던 한 번의 영광은 한 번의 은상을 포함해서 그 후로 계속 이어져 YMCA 청소년 가요제, 제물포 가요제에 출전하여 대상을 받았으며 처음엔 의구심이 들었던 가수라는 직업에 대한 자신감이 생겨났다. 그는 이후 친구를 따라 제작자 황윤민을 만났고 즉석에서 스카우트되었다. 1년 반에 걸친 연습 끝에 탄생된 첫 앨범은 1999년 12월에 나왔다. 마이클 볼튼(Michael Bolton)을 연상시키는 거칠지만 단단한 음성으로 그가 추구하고픈 흑인 음악의 테두리에서 R&B 발라드로 전체를 묶어낸 이 앨범은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작곡한 신재홍의 ‘해줄 수 없는 일’과 같은 전형적인 R&B는, 물론 그가 만든 ‘스토킹’과 같은 간간이 펑키와 힙합이 섞인 경쾌한 곡들이 포함되어 있다. 라디오 공개 방송으로 방송 데뷔를 한 그는 < 이소라의 프로포즈 >에 출연하여 선보인 월등한 가창력으로 앨범 주문량의 폭증을 몰고 오며 2000년 단연 최고의 신인으로 발돋움했다. 데뷔 후 넉 달 만인 2000년 4월, 그는 오필리어를 맡은 진주와 더불어 < 록햄릿 >의 주인공으로 발탁되어 신성우와 리아가 보여주던 기존의 록필을 R&B로 바꿔놓는 카리스마를 발휘하기도 했다. 그는 여성 R&B의 신성인 박화요비와 함께 신귀공자의 주제곡 ‘전설 속의 사랑’을 불렀으며 이소라의 4집에서는 ‘It’s gonna be rollin’이라는 곡으로 참여했다. 2000년 5월 꿈에 그리던 첫 콘서트를 가졌으며 11월 4일에는 첫 방송한 것을 기념하여 데뷔 1년만에 < 11월 4일생 >이라는 제목으로 두 번째 콘서트를 가졌다. 소리없는 폭풍을 몰고온 그는 1집 활동으로 제15회 골든 디스크상과 제1회 인터넷 신인 뮤직 어워드에서 1위로 뽑히는 영광을 안았다. 박효신은 2001년에 두 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윤상을 필두로 유희열, 조규만 등의 쟁쟁한 뮤지션들이 함께 한 < Second Story >는 신인가수 전소영과 함께 부른 ‘변심’을 비롯해 윤상이 만든 ‘편지’ 등 세련되고 조화로운 분위기로 그의 감각을 좀 더 고급화 시켰다. 이 앨범에서 ’먼 곳에서’, ’동경’ 등의 곡으로 인지도는 물론 ’가수 박효신’이란 존재를 모든 음악팬들에게 각인시킨 그는 2집 발매 기념 콘서트 < Relax >를 비롯해 하고 싶던 노래를 맘껏 불렀으며 발라드뿐만 아니라 흥겨운 음악에도 소질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2002년 9월에 발표한 < Time-honored voice >란, 다소 자신만만한 제목의 세 번째 음반은 상반신 누드가 담긴 한정판이 몇 일만에 거의 다 팔리는 화제성을 뿌리며 그를 다시 스포트 라이트 속으로 인도한 작품이다. 1년이 넘는 시간동안 공을 들인 이 앨범에는 앤과 함께 부른 리메이크 곡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비롯해 신재홍의 곡이 많이 수록되어 있으며 천성일, 심상원, 나원주 등 인기 작곡가들의 곡이 포함되어 있다.하지만 무엇보다도 발성과 감정에 무게를 실어 내공의 기틀이 다져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첫 주자는 윤사라 작사의 ’좋은 사람’이지만, ’나비의 겨울’, ’You & me’ 등도 좋은 반응이 기대된다.
멤버 : 김인수, 한경록, 박윤식, 이상면, 이상혁 한국 인디음악의 독보적인 존재이자 한국 펑크록을 대표하는 밴드. 이들의 역사는 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부이촌동에서 고등학교까지 동고동락하던 친구들로 대학교 입학 후 우여곡절 끝에 클럽 드럭의 오디션을 통과, 드럭밴드로 발을 내디뎠다. 쌍둥이 형제지간인 이상면(기타)과 상혁(드럼), 박윤식(보컬, 기타), 한경록(베이스) 네 명과 뒤에 합류한 ... 멤버 : 김인수, 한경록, 박윤식, 이상면, 이상혁

한국 인디음악의 독보적인 존재이자 한국 펑크록을 대표하는 밴드. 이들의 역사는 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부이촌동에서 고등학교까지 동고동락하던 친구들로 대학교 입학 후 우여곡절 끝에 클럽 드럭의 오디션을 통과, 드럭밴드로 발을 내디뎠다. 쌍둥이 형제지간인 이상면(기타)과 상혁(드럼), 박윤식(보컬, 기타), 한경록(베이스) 네 명과 뒤에 합류한 김인수(아코디언, 키보드)로 구성된 크라잉넛은 '말 달리자'라는 곡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IMF 한파로 몸과 마음이 얼어붙은 때 터져 나온 '말 달리자'는 "닥쳐, 닥쳐, 닥치고 내 말 들어"라고 부르짖는 후렴구로 당시 20대들을 하나로 만든 청춘의 송가였다. 그리고 이들의 1집은 인디밴드로는 최초로 10만장이라는 판매고를 올리며 전설이 됐다.

1970년대 후반 영국을 강타했던 펑크를 부활시켜 '조선 펑크'라는 이름으로 군림한 크라잉넛. 2010년 6집 앨범을 내며 15년 세월을 단 한 번의 멤버 교체 없이 함께해온 이들은 '환갑 현역 로커'를 꿈꾸며 지금도 달리고 있다.
2005년 동반제대 후 전용 녹음 스튜디오까지 마련해 명실공히 '자주독립 음악인'이 된 크라잉넛은 여전히 술 마셨다 하면 새벽을 보는 체력으로 공연 뒷풀이를 주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서커스 유랑단' '룩셈부르크' '밤이 깊었네' '좋지 아니한가' 등 다수의 히트곡이 있다.

‘음악 놀이터’ 의 조그만 창고에서 태어난 크라잉넛은 거침없이 질주하는 ‘말달리자’로 1990년대 후반 국내에도 인디라는 이름의 주류 음악에 대한 대항마가 엄존하고있음을 증명한 밴드이다. ‘닥쳐, 닥쳐, 닥치고 내 말들어’라는 후렴구를 뿌려대며 다섯 악동들은 신촌일대를 휩쓸고 다녔고, 이는 클럽문화의 세(勢)확산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홍대 신촌의 언더그라운드로 운집했고, 그들을 수용할 라이브 클럽들이 속속 생겨났다. 메인스트림에서도 지하세계의 조직적인 움직임에 관심을 집중했고, 자의반 타의반 인디의 존재와 가능성을 인정했다. TV 가요 프로와 고비용의 뮤직 비디오가 아닐지라도 음악이 생동감 있게 스피커에서 터져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 것이다. 크라잉넛은 그러면서 우리 음악계에 펑크라는 ‘뉴 록’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는 의미 있는 발자취를 새겼다.

그들은 1970년대 후반 영국을 평정했던 섹스 피스톨스와 클래시를 부활시키며 우리에게 없었던 펑크 록의 에너지와 파괴력을 전달했다. 그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야성미와 고무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한폭탄성 발랄은 펑크의 본질, 바로 그것이었다. IMF 한파로 인해 몸과 마음이 얼어붙은 시점에 등장한 것도 영국 펑크의 태동 배경과 맞아 들어갔다. 하지만 크라잉너트는 단순히 이 땅에 외제 펑크를 수용하는 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펑크에서 음악적 ‘자유’를 보았다. 펑크의 약속이라 할 3코드와 미니멀리즘에 집착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레게와 스카뿐 아니라 폴카와 보사노바도 할 수 있는 것이고, 또 재즈나 헤비메탈을 못할 게 없었다. 그들은 이런 짬뽕 사운드를 ‘조선 펑크’라 명명했다. 펑크의 개량화 또한 국산화였다.

그러한 지향은 한국 젊은이들의 송가가 된 ‘말달리자’로 인해 인디 밴드로는 최초로 5만장이라는 음반 판매고를 기록한 1998년 데뷔작, 그리고 주류와 인디을 수시로 넘나드는 유랑(?) 생활을 선언한 이듬해의 2집 에 계속되었다. 이번에 내놓은 3집 에서도 크라잉너트의 조선 펑크는 건재하다. 그동안 후지 록페스티벌 참가, 들국화 헌정 앨범 참여, CF 출연 그리고 곧 디지털 영화 의 주연 등의 활동으로 인해 혹시 펑크 오리지널리티의 소멸을 가져온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그건 잠시의 기우에 불과했다. 멤버들은 오히려 “다양한 접근법을 통해 음악을 볼 수 있는 폭 넓은 시야를 확보했다”며 엔터테이너로서의 행보를 즐거워했다. 하기야 인디 밴드가 언더에 숨기만 하라는 법은 없지 않는가. 앨범은 전작 보다 더 진일보했음이 나타난다. 타성에 젖는다는 것은 이들에게는 남의 일처럼 보인다.

영화의 메인 테마로 삽입된 동명의 곡은 극적인 곡의 전개가 긴장감을 더하는 스카펑크 트랙이며 김혜수, 이성재, 차승원이 주인공을 맡아 곧 개봉 예정인 영화 에서 흘러나오게 될 ‘지독한 노래’는 빠른 보컬과 격렬한 리듬 전개가 인상적이다. 몸파는 여성에 대한 노래 ‘붉은 방’은 슬픔을 머금은 아코디언 음색이 주도하는 비가(悲歌)이며,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Honey’’는 박윤식이 3인조 여성 록밴드 파스텔의 베이시스트 김선희와 듀엣으로 아주 부드럽게 처리했다. 컨트리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 사물놀이 한판 ‘금환식’ 등도 놓치지 말아야 할 곡들이다. 전체적으로는 요즘 분위기를 의식한 듯 복고성향이 두드러진다. 지금까지는 말달리며 ‘앞으로’ 나갔지만 이제는 이소룡 양귀비 금환식 불놀이와 같은 저 옛날로, ‘뒤로’ 돌아가 거기서 재미와 충격을 채집하고있는 셈이다. 자칫 잘못하면 퇴행이 될지도 모르는 것을 그들 특유의 스타일로 온고지신을 꾸려냈다. 특히 타이틀곡으로 낙점 된 ‘밤이 깊었네’는 음반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곡이다. 부드러운 소프트 록 사운드는 이제까지의 크라잉넛 음악 가운데 가장 쇼킹한 주류로의 전향이다. 이러한 밴드의 태도는 그러나 기회주의나 억지가 아니라 6년 간의 음악 관록이 빚어내는 자연스런 연착륙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 언더와 펑크에의 수절을 강제하기보다는 도리어 갈채로 화답할 때가 아닐까. 박윤식 이상면 한경록 이상혁 김인수가 일궈내는 편안한 연주 화합은 친구들이기에 가능했고, 비치 보이스 정도는 아닐지라도 뛰어난 보컬 하모니를 자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제 그들은 치고 달리기만 하던 펑크 키드에서 생각하고 노력하는 아티스트로의 점진적인 이동을 수행한다. ‘말달리자’로 인디의 개막을 고하며 스타트를 끊었지만, 다양성과 자유가 담긴 조선 펑크를 앞세워 인디 속에 함몰되지 않고 수면위로 부상, 비상하고있다. 이것은 국내에서 인디 밴드가 뻗어나가기 위해 취해야할 적극적인 생존방식이다. 언제까지 우물안 개구리로 살수는 없다.
“이 시대 최고의 헛소리 썰렁밴드를 소개하겠습니다! 그 이름도 찬란한 기이~익스!” 어린 시절부터 같은 학교를 다니며 친구로 지내던 정원영과 한상원은 한정밴드를 만들어 공연을 위주로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여기에는 독일에서 음향학을 전공한 뒤 윤도현밴드에서 활동했던 강호정이 한상원의 소개로 와 있었고, 재즈 아카데미에서 드럼을 전공한 이상민, 작.편곡과를 전공한 정재일도 한상원의 눈에 띄어 발탁됐다. 한정밴드의 ... “이 시대 최고의 헛소리 썰렁밴드를 소개하겠습니다! 그 이름도 찬란한 기이~익스!” 어린 시절부터 같은 학교를 다니며 친구로 지내던 정원영과 한상원은 한정밴드를 만들어 공연을 위주로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여기에는 독일에서 음향학을 전공한 뒤 윤도현밴드에서 활동했던 강호정이 한상원의 소개로 와 있었고, 재즈 아카데미에서 드럼을 전공한 이상민, 작.편곡과를 전공한 정재일도 한상원의 눈에 띄어 발탁됐다. 한정밴드의 공연에 자주 게스트로 불려왔던 이적은 한정밴드의 원래 보컬이 팀을 나가는 바람에 강력하게 자리를 밀고 들어와 밴드의 프런트맨이 됐다. 3명의 교수와 촉망받는 뮤지션들로 채워져 출발부터 커다란 화제와 기대를 모은 이들은 튀어 나왔던 많은 아이디어들 중에서 ‘연주, 연주회, 연주하다’의 뜻을 지닌 구어체이며 록이나 재즈음악 분야에서 ''역동적인 연주''라는 말로 쓰이는 gig이란 단어로 긱스(Gigs)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대중의 엄청난 기대와 아직은 물리.화학적으로 결합이 안된 상태에서 나온 이들의 1집은 한상원의 1집 < Seoul, Soul, Soul >에서 같이 일했던 해외의 엔지니어들을 끌어들이며 곡 작업을 비롯해 1년이라는 긴 시간을 투자했지만 여러모로 아쉬운 작품이었다. 모든 멤버가 곡을 만들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이들의 다재다능한 장기는 시너지를 발휘하지 못하고 서로를 견제했다. 펑키(Funky) 하면서도 토속적인 색깔이 묻어나는 ‘노올자’, 갖가지 음악적 스타일이 혼재된 ‘랄랄라’ 등은 인기를 끌었지만 숙성된 대가들의 음악이라고 보기엔 미약했고 퓨전 재즈의 냄새가 나는 크로스오버 ‘Tripping now..''나 ‘아가에게’의 팝 발라드에서 아리랑, 합창을 소화한 부분이 그나마 가장 이들의 미래를 예약할 수 있는 지점 이였다. 2000년에 발표한 이들의 2집은 일반인들의 기대치라는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확실한 색깔을 담고자 했다. “껄렁한 우리들은 동네음악대”라고 외치며 라이브를 중요시하고 즉흥성을 강조한 측면은 여전하지만 펑키함과 블루스를 오가는 이들의 정체성은 다져진 느낌을 주며 “난 너를 원해 냉면보다 더”라고 외치는 치기 어린 가사가 돋보이는 ‘짝사랑’이 있는가 하면 이상민과 정원영이 노래한 ‘새’나 ‘그날 이후’, 패닉을 연상시키는 ‘The real me'' 등으로 프로젝트성 밴드의 기운을 사뿐히 넘었다. 멤버들 각각의 개성이 다 두드러지는 만큼 한 가지 색만을 고집할 수는 없는 이들의 진수는 아무래도 전체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공연 무대이며 2집의 ‘가자’와 같이 즉흥성을 강조한 곡이 잘 표출될 수 있는 곳도 역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라이브무대다. 따라서 언젠가는 잘 된 라이브 공연이 녹음된 음반을 들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세 명의 베테랑은 자기 일을 하면서 밴드 활동을 하고 있고 이적은 공익 근무 요원의 신분이 되었다. 또 황신혜밴드와 수요예술무대 등의 세션을 맡았던 이상민은 < Time to rock >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드럼 교습을 하고 있다. 자신의 일을 중요시하면서도 밴드에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는 이들은 긱스라는 이름으로 오래도록 활동하고 싶다. 이 팀에는 국가대표급 꿈나무라 불리 우는 천재 뮤지션이 있다. 자신의 포지션인 베이스는 물론 기타, 피아노, 퍼커션, 턴테이블, 시퀀싱, 샘플링에 이르기까지 실로 만능 플레이어로서의 모든 것을 보여주며 < 강원도의 힘 >, < 아름다운 시절 >등의 영화음악에서 건반과 기타를 맡았던 정재일이 바로 그다. 팀의 성장과 더불어 그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될 것이다.
이승환(1965년)만큼 주류의 물줄기를 타면서 꾸준하게 인기를 유지하는 가수도 없을 것이다. 그는 TV(라이브무대만 주로 가끔 나온다)와 CF를 외면했지만 비디오 클립과 공연만으로, 그리고 그가 만든 드림팩토리의 홈페이지와 그 곳에서 발행되는 간행물로만 자신을 홍보해 TV를 들락거리는 가수들보다 더 많은 인기를 얻고있고, 무차별 상업적 폭격을 가하는 어떤 가수보다도 많은 앨범을 판매한다. 그의 앨범은 1989년 ... 이승환(1965년)만큼 주류의 물줄기를 타면서 꾸준하게 인기를 유지하는 가수도 없을 것이다. 그는 TV(라이브무대만 주로 가끔 나온다)와 CF를 외면했지만 비디오 클립과 공연만으로, 그리고 그가 만든 드림팩토리의 홈페이지와 그 곳에서 발행되는 간행물로만 자신을 홍보해 TV를 들락거리는 가수들보다 더 많은 인기를 얻고있고, 무차별 상업적 폭격을 가하는 어떤 가수보다도 많은 앨범을 판매한다. 그의 앨범은 1989년 내놓은 데뷔 앨범을 기점으로 단 한차례도 정상에서 내려온 적이 없으며 그의 식구들을 모아 만든 컴필레이션 앨범조차도 최장기간 높은 판매 순위에 머물며 그의 사단을 먹여 살렸다. 고교시절 < 월간 팝송 >을 열독하며 평론가의 꿈을 키우던 그는 대학 1학년 때 들국화의 공연을 보고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교내에서 처음 생긴 아웃사이더란 그룹의 오디션을 보았으며 1차에서 떨어졌지만 이펙터를 뇌물로 바치며 결국 보컬의 자리를 꿰찼다. 2학년 때는 오태호, 박문수와 아카시아라는 그룹을 결성해 활동했다. 덕택에 음악에 대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룩한 그는 7년여 다니며 수 많은 권총 세례를 받았던 외국어대 영어과를 뛰쳐나왔다. 그리고 1989년 12월, 자신의 이름으로 된 첫 앨범을 발표한다. 소설 < 어린왕자 >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 B.C 603 >이란 타이틀을 가진 앨범은 ‘텅 빈 마음’과 ‘기다릴 날도 지워질 날도’로 가뿐히 차트를 유린한다. 1집의 성공은 그의 뛰어난 작곡 능력에 대한 시험 무대가 되기도 했지만 동료 오태호의 지분이 많이 작용했으며 이런 상황은 2집에도 이어져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이 빅히트를 기록했으며 ‘나는 나일뿐’이라는 곡이 저변에서 인기를 모았다. 학교시절부터 내려온 둘의 친분은 결국 A면과 B면을 각각 자신의 곡만으로 채운 조인트 앨범 < 이오공감 >을 발표하기에 이르르고, 이 음반에서 둘이 불렀던 오태호의 곡 ‘한사람을 위한 마음’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라이브의 황제라는 별명을 일찍부터 얻어낸 이승환은 1993년에 통산 3집을 발표하고 김광진의 곡인 ‘내게’와 ‘덩크슛’으로 인기 가도를 달린다. 그리고 더 폭을 넓혀 인간에 대한 전체적인 주제를 컨셉으로 잡아, 장인의 반열에 오르게 한 4집을 발표한다. < Human, The Different side >란 제목이 붙어 있는 이 앨범은 해외에서 녹음하며 수많은 세션을 등용했으며 015B의 정석원과 함께 프로듀싱해 앨범의 단 한 곡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베스트 트랙들을 만들어 냈다. ‘천일동안’이 차트를 오르내렸지만 “이제 더 이상 초라한 행복은 싫어”라고 김종서와 같이 외치는 역작 ‘너의 나라’가 앨범의 후반부에서 절정을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작업은 이후에도 더욱 치밀해지며 웅대해지는 양상을 보여, 그 다음 나온 < Cycle >은 15곡으로 늘었으며 가족들과의 원대한 화합을 노래한 ‘가족’이 팬 100여 명의 목소리와 울리고 있다. 1999년에 나온 그의 정규 6번째 앨범은 그간 고정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한 몫 해온 이승환표 발라드와 달콤한 곡들로 구성된 정상side와 그의 몸 안에서 꿈틀거리던 록의 기치를 수용한 비정상side로 구성되어 있다. ‘너의 나라’에 비견될만한 ‘나의 영웅’이 수록되어 있고 애절한 이별의 서곡 ‘당부’ 그리고 테크노를 표방하며 미래 적인 사운드로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 the future’가 날로 예리해지는 그의 음악성을 대변했다. 이승환은 5집 작업 후에 드림팩토리라는 녹음실을 만들어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으며 신인 가수 지누, 이소은, 하루 등을 발굴하는 등 제작자와 사업가로서의 성공적인 변신으로 우리 음악 산업을 이끌어 가고 있다. 이 소속사 가수들이 총 출동한 “드림팩토리여 영원하소서!”라고 외치는 컴필레이션 앨범은 장장 6개월 동안 판매 차트 상위권을 유지하며 구한말을 소재로 한 사랑과 배신의 클립 ‘그대가 그대를’이라는 인기곡을 배출했다. 이후 스튜디오 외에도 문구, 팬시 등으로 그 사업 영역을 확대한 그는 한 앨범에서 두 음악 스타일로 나누었던 것을 7번째 앨범 < Egg >에서는 따로 분리해 판매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sunny side-up은 대중들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발라드를 수록했으며 over easy는 록음악이 수록되어 있다. 그 어느때보다 작곡에 많은 참여를 보인 그는 타이틀곡 ’잘못’을 위해 영화 < 스타워즈 > 제작팀과 함께 로보트를 만들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실패를 맛본 그는 록음악으로만 편곡해 만든 스페셜 앨범 < Serious Day >와 편곡을 달리해 만든 그의 두번째 발라드 모음집을 내놓았다. 그의 음악성은 완벽에 가까운 음반제작과 최고의 동료들을 자기편으로 포섭해낸 결과물이지만 무엇보다도 데뷔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버라이어티한 재미를 선사하는 콘서트에 있다. 그의 콘서트는 그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한번쯤은 봐야하는, 음악 애호가들의 필수 코스 같은 것이 되었으며 국내 대중 음악이 선사하는 즐거움 중의 하나가 되었다.
꾸준히 언더 그라운드의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박학기가 가수에 대한 꿈을 꾼 것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였다. 노래 실력이 월등했던 그는 동네에서나 학교에서 인기 있는 가수였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통기타로 고액의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숙련된 내공을 지니고 있었다. 1988년 < 우리노래 전시회 3집 >에서 ‘계절은 이렇게 내리네’로 좋은 반응을 얻은 그는 전곡을 김현철의 곡으로 도배한 데뷔 앨범에서 ‘향기로운... 꾸준히 언더 그라운드의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박학기가 가수에 대한 꿈을 꾼 것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였다. 노래 실력이 월등했던 그는 동네에서나 학교에서 인기 있는 가수였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통기타로 고액의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숙련된 내공을 지니고 있었다. 1988년 < 우리노래 전시회 3집 >에서 ‘계절은 이렇게 내리네’로 좋은 반응을 얻은 그는 전곡을 김현철의 곡으로 도배한 데뷔 앨범에서 ‘향기로운 추억’을 크게 히트시키며 1989년 골든 디스크 신인상을 비롯한 많은 상을 휩쓸며 음악계의 다크호스로 떠올랐고 그렇게 성공적인 음악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이름을 아직까지도 라디오에서 호명되게 하며 꾸준한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첫 앨범에는 ‘이미 그댄’, ‘아름다운 비밀’, ‘내 소중한 사람에게’ 등이 연속해서 인기를 얻었으며 가늘고 독특한 음색은 애청자들을 위로하며 앨범의 전 곡이 심야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신청을 받았다. 그는 이 인기에 힘입어 같은 소속사 식구인 푸른하늘의 4집에서 ‘우리 모두 여기에’라는 곡을 같이 부르는 한편, 기독교도로서 CCM 음악에도 활동 무대를 넓혀 복음성가집 < 우리 모두 하나되어 >에서는 ‘나의 기도’를 작곡해 직접 불러주었으며 < 빛으로 모두 함께 >라는 앨범에서는 ‘언젠가 당신 곁에서’라는 곡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김현철의 풋풋함이 살아 있는 그의 첫 앨범이 성공한 뒤로 너무 뚜렷한, 혹은 개성이 없는 그의 음악 세계는 수면 아래로 내려가고 만다. 2집에서 역시 김현철의 힘을 입은 ‘자꾸 서성이게 돼’가 인기를 얻고 어떤날의 곡을 보사노바로 리메이크한 ‘오래된 친구’가 리퀘스트를 받았지만, ‘유난히’가 수록된 3집, ‘그대 창가로 눈부신 아침이’가 수록된 4집은 전혀 반응을 보이지 못했고 그는 좌절한다. 실의의 나날 속에 한동안 진로에 대한 고민과 전공이였던 미술에 대한 회귀를 생각한 그는 노래에 대한 애정을 담은 ‘나의 길’이 수록된 5집을 발표하고 조규찬과 같이 라이브 공연을 펼치며 재기의 전의를 다진다. 라이브 공연에서 보여준 팬들의 성원과 단짝 조규찬의 도움으로 계속해서 1998년 ‘자전거’와 ‘제발 나를’, 그리고 김광석의 추모곡인 ‘남겨진 너의 노래’가 수록된 6집을 발표한 그는 1999년에는 조규찬과 같이 김민기 트리뷰트 공연에서 ‘그 사이’를 불렀다. 2000년 그는 유리 상자의 노래 ‘신부에게’를 피처링 해 주기도 하고 김광석 추모 앨범을 기획하고 프로듀싱하는 저력을 보이며 김광석의 장학재단에 힘을 실어 준 그는 들국화의 트리뷰트 앨범에서 역시 조규찬과 함께 ‘매일 그대와’를 부르는 등 가장 바쁜 나날을 보냈다. 유리상자, 이수영 등에게 곡을 주는 작곡가로도 활동하며 음악학원의 강사로도 바쁜 그는 최근 그의 음악 인생을 정리하는 < Go Back >이라는 타이틀로, 지난날의 추억을 떠올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Go Back과 발음이 비슷함)한다는 의미로 콘서트를 했다. 이런 그가 심기일전해서 새 앨범으로 팬들의 가슴을 다시 두드리길 기대한다.
71년 1월 생, 89년 제1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금상으로 세상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알린 그는 현재까지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것을 직업으로 살아가는 아티스트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그림 그리기를 유별나게 좋아했던 그는 결국 미술을 공부했지만 엉뚱하게도 직업 뮤지션이 됐다. 뮤지션으로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일상 속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만의 감성을 담은 음악으로 평론가와 대중들에게 고른 공감과 지지를... 71년 1월 생, 89년 제1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금상으로 세상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알린 그는 현재까지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것을 직업으로 살아가는 아티스트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그림 그리기를 유별나게 좋아했던 그는 결국 미술을 공부했지만 엉뚱하게도 직업 뮤지션이 됐다. 뮤지션으로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일상 속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만의 감성을 담은 음악으로 평론가와 대중들에게 고른 공감과 지지를 받아왔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수상 이후 1집 『추억(1993)』을 시작으로 지난해 말 『Remake(2008)』까지 총 12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지금은 사랑하는 가족과 일상에서 행복을 누리길 원하고, 때때로 자신이 가진 음악적 자산과 경험을 현장과 교단에서 전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평생 음악을 하며 살기를 희망한다. 저서 『달에서 온 편지』는 그가 음악으로 표현하지 못했던 가슴 속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방송에서 이은미의 모습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공연장이 그녀의 주된 행동 반경이기 때문이다. 무대 위의 그녀는 누구보다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신발조차 신지 않고 스테이지를 마음껏 가로지르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맨발의 디바’라는 호칭을 선물했다. 이 격정적인 여가수는 1988년 다운타운에서 처음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신촌블루스의 앨범에 참여하며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그녀는 1992년에 와서야 ... 방송에서 이은미의 모습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공연장이 그녀의 주된 행동 반경이기 때문이다. 무대 위의 그녀는 누구보다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신발조차 신지 않고 스테이지를 마음껏 가로지르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맨발의 디바’라는 호칭을 선물했다. 이 격정적인 여가수는 1988년 다운타운에서 처음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신촌블루스의 앨범에 참여하며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그녀는 1992년에 와서야 꽃을 피운다. 그해 발표된 1집에 실린 ‘기억 속으로’는 놀라운 반응을 몰고왔다. 이 곡은 엄청난 리퀘스트를 받았으며, 많은 이들에 의해 여기저기서 불려졌다. 그리고 일반인들에게 그녀는 유려한 발라드를 부르는 가수로 기억됐다. 그 이미지는 다음 앨범의 히트곡 ‘어떤 그리움’을 통해 더욱 굳어졌다. 하지만 그녀의 콘서트에 한 번이라도 가 본 사람은 그녀의 빼어난 록 보컬을 알고 있었고 내심 작품에 그 재능이 반영되기를 바랐다. 그동안 가려졌던 그녀의 모습은 세 번째 앨범 < 자유인 >에서 활짝 드러났다. 수록곡들은 열기에 찬 라이브 현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폭발적인 ‘참을 만큼 참았어’는 기존의 이미지를 단숨에 날려 버렸다. 사람들은 서서히 그녀의 진가를 알기 시작했다. 이은미는 다른 가수들의 곡들도 무리 없이 소화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원곡의 감성과는 또 다른 느낌을 선사하는 매력적인 보이스는 이미 1996년의 리메이크 앨범 < 팝스 월드 >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이었다.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의 ‘Greatest love of all'', 저니(Journey)의 ‘Open arms''등의 팝 명곡들을 멋지게 불러낸 그녀는 1999년 < Nostalgia >를 통해 가요에도 각별한 애정이 있음을 보여줬다. 그녀의 보컬은 발라드, 재즈, 록, 포크의 경계를 자유롭게 가르고 있었다. 2001년의 새 앨범 < 노블레스 >에서 이은미는 그 다양한 장르를 한데 끌어들였다. 이 앨범은 타이틀이 상징하듯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의 음악적 자존심을 지켜 나가겠다는 선언이었다. 어느 새 서른을 훌쩍 넘어버린 그녀의 목소리엔 치기 어린 과시욕보다 편안함이 묻어 있었다. 이은미는 아직도 1년에 수십 회 이상의 공연을 치뤄내며 음악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드러내고 있다. 비록 TV에서 접할 수는 없지만 그녀는 꾸밈 없는 진솔한 음악을 바라는 이들의 곁에 언제까지라도 머물러 있을 것이다.
한때 김장훈은 정말 노래만 불렀다. 그의 노래제목처럼. 적어도 그가 말하는 이른바 ‘소파 생활’을 할 때는 그랬다. 때는 대략 1994년에서 1997년 사이다. 경원대학교 영문과실 소파에 앉아 밤이건 낮이건 언제나 노래만 불렀다. 오죽했으면 옆 과실에서 자던 학우들이 새벽녘 느닷없이 포효하는 그의 거친 노랫소리에 놀라 깼다는 에피소드가 들릴까.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다. 그는 이제 더 이상 고단했던 소파 생활은 ... 한때 김장훈은 정말 노래만 불렀다. 그의 노래제목처럼. 적어도 그가 말하는 이른바 ‘소파 생활’을 할 때는 그랬다. 때는 대략 1994년에서 1997년 사이다. 경원대학교 영문과실 소파에 앉아 밤이건 낮이건 언제나 노래만 불렀다. 오죽했으면 옆 과실에서 자던 학우들이 새벽녘 느닷없이 포효하는 그의 거친 노랫소리에 놀라 깼다는 에피소드가 들릴까.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다. 그는 이제 더 이상 고단했던 소파 생활은 하지 않는다. 발라드 ‘나와 같다면’의 히트로 그는 지루했던 언더 아닌 언더 생활을 청산하고 주류 연예계에 입성했다. 이후 그가 보여준 활약은 참 눈부셨다. 처음 출발은 < 이소라의 프로포즈 >. 토크와 라이브가 결합된 이 프로그램은 김장훈의 진면목을 발휘하기에 아주 적합한 무대였다. 이승환, 박상민과 더불어 가요계 만담꾼 빅3라 할 정도로 말재주가 뛰어난 그는 이소라의 넋이 나갈 정도로 사람들을 웃겼다(어쩌면 ‘웃기다’는 것이 요즘 팬들에겐 처음 떠오르는 그의 이미지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이러한 김장훈의 ‘놀라운’ 재능이 소문나자 방송국들은 앞다퉈 그를 섭외 했다. 그의 노래 ‘나와 같다면’이 큰사랑을 받았지만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노래보단 그의 ‘입심’을 더 원했다. 김장훈은 그 요구를 가능한 한 모두 수용했다. 그래서 < 김혜수의 플러스 유 > 같은 토크쇼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 이소라의 프로포즈 >에서는 ‘최대 출연자’라는 영예도 얻었다. 이제 그는 노래만 부르지는 않는다. 종종 ‘개인기’도 척척 해내며, 팬들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망가지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이제 그를 엔터테이너라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그렇지만 예전의 그를 알던 일부 사람들은 그의 요즘모습을 보고 변절이라 욕한다. 도대체 그가 예전엔 무엇을 했다고 그런 비난을 하는 건지? 김장훈을 개그맨 정도로 여기거나 최근에 그를 알게된 사람들은 다들 그를 발라드 가수로 여기고 있다. 그것도 이해가 되는 것이, 그를 대중적으로 알린 ‘나와 같다면’이나 히트곡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Good-bye day’, ‘혼잣말’ 같은 노래들은 모두 발라드 곡들이다. 이렇듯 발라드 곡들을 부르는데 발라드 가수가 아니란 말인가? 애매하긴 하지만 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이다. 김장훈은 1991년 처음 데뷔했다. 그는 로커였다. 그것도 목이 터져라 내지르는 창법을 구사하는 로커. 요즘도 간간이 그런 창법을 들려주지만 당시엔 요즘처럼 일정 음역 내에서 내지르는 것이 아니라 폭넓은 음역대를 소화하며 내지르는 것이었다. 록 보컬의 대가들인 전인권, 김현식을 존경했다니 알만 하지 않은가. 데뷔 당시는 물론이고 한참 후까지 그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몇 번 관심을 끈 적이 있긴 하다. 김현식이 세상을 떠나고 그의 유작앨범이 불티나게 팔리던 1991년쯤이었다. 당시 김장훈은 김현식의 사촌동생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호형호제하는 사이였지만 사촌관계는 아니다). 그로부터 5년 후 그는 미완성이었던 김현식의 7집에서 ‘다시 처음이라오’와 ‘사랑의 불씨’를 불러 화제를 모았다. 그는 김홍준 감독의 1994년 영화 < 장미빛 인생 >에서 조동익이 작곡한 주제곡 ‘아침을 맞으러’를 불러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아무튼 2집을 거쳐 3집 < 노래만 불렀지 >에 이르기까지 김장훈은 지금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밑바닥 생활을 전전했다. 노래만 부르던 시기였다. 소파 생활을 했다지만 소극장에서 라이브 공연도 많이 했다. 그러던 그가 1998년 발표한 4집부터 많이 달라졌다. 노래는 한결 부드러워졌고, 그의 주종목은 록에서 발라드로 바뀌었다. 그전까지 다소 꺼리던 방송 출연도 시작했다. ‘엔터테이너’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솔직하다. 그런 것들에 대해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는다. “관객과 팬들이 원하면 완전히 망가져야죠” 그의 변(辯)이다. 5집과 6집이 나오는 동안 그는 완전히 떴다. 앨범은 수십만 장이 팔려나가며 콘서트는 전회 매진사례를 이룬다. 이제 그의 옛 팬들은 예전의 김장훈을 기대해봐야 별 소용이 없을 듯하다. 그는 절대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대중들은 그가 노래만 부르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건 김장훈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말대로 그것은 ‘변절이 아니라 화해’다. 그렇지만 그래도 일말의 아쉬움은 남는다. 이제 어느 정도 화해했으니 앞으로는 자신의 빛나던 노래재능도 되살렸으면 하는 바램이다.
멤버 : 김민규(보컬/기타), 윤준호(보컬/베이스), 서상준(드럼), 이요한(키보드) 통신 모임 하이텔에서 모인 델리스파이스의 멤버들은 인디씬의 등장 전부터 활동했던 인디의 입김을 담지한 밴드이다. 당시 유행하던 헤비메탈밴드 스타일을 탈피하고 자신들의 감수성을 무기로 한 모던록 계열의 음악을 하고자 했던 이들은 인디 레이블이 생성되기 조금 전에 앨범을 발표하며, 출범 초기에는 기존 음악의 대안 세력으로 떠올... 멤버 : 김민규(보컬/기타), 윤준호(보컬/베이스), 서상준(드럼), 이요한(키보드)

통신 모임 하이텔에서 모인 델리스파이스의 멤버들은 인디씬의 등장 전부터 활동했던 인디의 입김을 담지한 밴드이다. 당시 유행하던 헤비메탈밴드 스타일을 탈피하고 자신들의 감수성을 무기로 한 모던록 계열의 음악을 하고자 했던 이들은 인디 레이블이 생성되기 조금 전에 앨범을 발표하며, 출범 초기에는 기존 음악의 대안 세력으로 떠올랐다. 그냥 입에서 나온 의성어를 가져다 붙인 팀 이름은 Delicious와 Spice의 합성어로 인정되었으며 이들의 1집 표지나 2집의 속지에서 알 수 있듯이 스파게티를 연상시켰다. 김민규, 윤준호, 이승기, 오인록이 참여한 이들의 1집은 나오자마자 상당히 많은 비평적 호의를 받았으며 변변한 매니저 하나 없이도 상당한 성과를 이루어 내었다. 라디오와 입소문 만으로 인기를 얻은 ‘챠우챠우’는 이들의 최대 히트곡이 되었고 앨범 수록곡들의 귀에 달라붙는 친숙한 멜로디들은 구매욕을 자극시켰다. 이에 힘입어 이들은 1집 발매 단독 공연을 가졌으며 클럽 오픈 기념 공연 등에 참가하며 높은 인지도를 구가했다. 1집 녹음 뒤, 팀에서 떠난 오인록 대신에 최재혁을 가입시킨 이들은 리메이크 앨범 에 참여해 ‘오후만 있던 일요일’을 부르고 그룹 곱창전골 멤버 하세가와의 추천으로 일본 공연에 참가한다. 1999년에 발표한 이들의 2집은 빠른 활동 중단에도 불구하고 뮤직 비디오로 제작한 ‘달려라 자전거’가 크게 히트했고 ‘종이비행기’, ‘마이웨이’ 등이 팬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앨범에는 객원 가수가 2명 있는데, ‘하이에나’에서는 박건이 참여하고 있으며 가제보(Gazebo)의 ‘I like Chopin’’을 샘플링한 ‘두 눈을 감은 타조처럼’에서는 그룹 에코의 김정애가 참여하고 있다. 이 앨범에는 ‘태양의 계곡’이라는 인스트루멘탈 곡이 있으며 산울림의 곡을 리메이크한 ‘회상’이라는 곡도 수록되어 있다. 김민규가 자신의 레이블 문라이즈를 설립하고 솔로 EP 을 발표하면서 시장성과 손익분기점에 대한 실체를 어느 정도 파악한 이들은 불합리한 소속사와의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빠른 앨범 작업에 착수한다. 이전에 김민규와 윤준호는 라디오 방송의 DJ 생활을 시작했으며 산울림의 트리뷰트 앨범에 2집의 수록곡과는 다른 버전으로 ‘회상’을 들려준다. 키보드를 양용준으로 교체하고 발표한 이들의 3집은 자조적으로 자신들의 실체를 비꼰 이라는 타이틀로 선보였다. 고딕 스타일의 비디오 클립을 감상할 수 있는 ‘고양이와 새에 관한 진실’이 인기를 끌었으며 이들의 분노를 감지한 듯 팬들의 호응도 높은 편이였다. 3집 발매 기념 공연을 끝으로 이들은 소속사에서 자유로워졌다. 김민규는 스위트피의 공식적인 1집을 발표했으며 이들의 예술의 전당 단독 공연과 일본 투어는 팬들의 열광적인 호응 속에 마쳤다. 계속해서 윤준호는 신인 그룹 넬의 1집을 프로듀싱 했으며 최재혁은 그룹 데이트리퍼의 ‘호밀밭’에 참여했다. 2001년 들국화의 트리뷰트 앨범에 ‘내가 찾는 아이’로 참여하고 기획 앨범 에 ‘한 길’이라는 곡을 부른 이들은 키보드 양용준의 탈퇴로 현 3인조로 4집 음반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 유통업계는 아직도 투명하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유통 구조의 어느 한 명이라도 솔직하지 못하면 아티스트는 정확한 자기 몫을 챙길 수 없게 된다. 우리 음악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투명한 분배의 균형이 중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음악을 잘해도 이 세계를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것은 우리 모두의 손실이다. 아티스트에게 힘을 실어주는 음반산업이 될 때 비로소 우리는 감동이 있는 음악의 역사를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기가 좋아하던 일이라도 직업이 되는 순간, 모든 것은 일상화되고 감동을 상실하며 돈을 더 잘 벌기 위한 수단이 되어 자신의 앞길을 옥죄어 온다. 여행스케치가 학교 생활 속에서 아마추어의 눈으로 음악을 그렸다면 동물원은 사회 생활을 하며 직업 외의 여가 활동으로 이러한 압박을 느끼지 않고 음악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런데도 이 밴드는 데뷔 음반을 낸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노선을 잘 지키고 있으... 아무리 자기가 좋아하던 일이라도 직업이 되는 순간, 모든 것은 일상화되고 감동을 상실하며 돈을 더 잘 벌기 위한 수단이 되어 자신의 앞길을 옥죄어 온다. 여행스케치가 학교 생활 속에서 아마추어의 눈으로 음악을 그렸다면 동물원은 사회 생활을 하며 직업 외의 여가 활동으로 이러한 압박을 느끼지 않고 음악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런데도 이 밴드는 데뷔 음반을 낸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노선을 잘 지키고 있으며 아마추어로서 오히려 프로들을 제압하는 놀라운 실력도 보여주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 팀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취미 생활을 멋있게 하라’는 것뿐만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즐겁게 하라(혹은 카르페 디엠?)’가 아닐까? 이것은 일상에 찌들어 사는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일 뿐만 아니라 이제 막 데뷔하는 신인들에게도 해당되는 명제이다. 성공은 절대 강박관념만으로 오지 않는다는 것. 그런 면에서 어쩌면 동물원이야말로 프로들이 꼭 가져야할 정신을 가진 그룹일 것이다. 동물원은 초창기부터 신선함과 뛰어난 곡들로 두터운 팬층을 확보했다. 데뷔 앨범에서 이들은 ‘거리에서’와 ‘변해가네’로 대학가와 메인스트림을 두들겼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대학생들이 통기타를 들고 부를만한 명곡들이 가득 찬 1집에 이어 같은 해에 나온 2집으로, 그 놀라움을 더 증폭시킨다. ‘혜화동’의 그리움에서 ‘별빛 가득한 밤에’의 감수성, ‘새장 속의 친구’의 시적 형용, 그리고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의 대중성으로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며 이 앨범은 이들의 5집과 더불어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몇몇이 솔로로 전향한 가운데 동물원은 앨범마다 한 곡씩 히트곡을 내놓는, 일반 직업 가수들도 하기 힘든, 저력을 보인다. 모든 연인들의 가슴을 뒤흔들어 놓은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아침이면’ 등이 이들의 히트리스트에 올랐으며 댄스의 완전 장악이 이루어진 후에는 더블 앨범의 형태로 된 5집이 별다른 주목을 못 받았지만, 6집에선 ‘널 사랑하겠어’가 다시 차트에 모습을 드러내며 이들의 기나긴 생명력을 증언했다. 이들은 7집이 실패한 뒤 과거의 화려했던 멤버들이 대부분 솔로로, 혹은 자신의 갈 길로 간 뒤 남은 박기영, 유준열, 배영길 셋만 남아 2000년에 8집을 냈다. 남은 세 명 중 두 명은 직업 가수가 되었고, 유준열 만이 회사를 다니며 자신의 꿈을 계속 이루어 가고 있지만 멤버들 각자가 스타일리스트라 할만큼 팀의 조화와 개인의 성향을 뚜렷이 유지하고 있으며 추억과 그리움에 대한 회고적인 가사와 멜로디로 여전한 사랑을 받고 있다. 부디 시장의 변덕에도 초심의 마음을 잃지 않고 순항하길...
언니네이발관은 23년전인 1995년에 결성 현재까지 여섯장의 앨범을 발표한 우리 나라 모던록의 효시로 알려져 있는 그룹이다. 긴시간 앨범을 준비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그런만큼 늘 만족스러운 퀄리티가 담겨 있는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다. 2008년에 발표한 5집 가장 보통의 존재는 그들의 최고작으로 그해 한국 대중음악상 올해의 앨범, 올해의 모던록, 올해의 노래 등 3개의 상을 휩쓸었다. 언니네이발관은 23년전인 1995년에 결성 현재까지 여섯장의 앨범을 발표한 우리 나라 모던록의 효시로 알려져 있는 그룹이다. 긴시간 앨범을 준비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그런만큼 늘 만족스러운 퀄리티가 담겨 있는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다.

2008년에 발표한 5집 가장 보통의 존재는 그들의 최고작으로 그해 한국 대중음악상 올해의 앨범, 올해의 모던록, 올해의 노래 등 3개의 상을 휩쓸었다.
1968년 1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고교 시절에 밴드 ‘각시탈’을 결성하면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1987년에 서강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 어린 시절 친구 등과 함께 밴드 ‘무한궤도’를 결성했으며, 1988년 12월 24일 MBC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로 대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무한궤도 1집을 발표하고 잠시 활동했으나, 곧 밴드가 해체되었다. 1990년에 첫 솔로 음반을 발표해 수록곡 <슬픈 표정 하지... 1968년 1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고교 시절에 밴드 ‘각시탈’을 결성하면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1987년에 서강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 어린 시절 친구 등과 함께 밴드 ‘무한궤도’를 결성했으며, 1988년 12월 24일 MBC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로 대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무한궤도 1집을 발표하고 잠시 활동했으나, 곧 밴드가 해체되었다. 1990년에 첫 솔로 음반을 발표해 수록곡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로 큰 인기를 끌었고, 이듬해에 솔로 2집을 발표해 독특한 음악적 스타일과 세태를 짚어내면서도 감성적인 가사로 젊은 층의 절대적 지지를 얻게 된다.

이후 록밴드 ‘넥스트(N.EX.T)’를 결성, 밴드 활동을 재개했다. 1992년에 발표한 넥스트 1집은 음악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곡들로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서 호평을 받았다. 1994년 발표한 넥스트 2집, 그리고 1995년 발표한 3집은 음악성은 물론 가사에 담긴 깊은 사유를 통해 대중음악의 외연을 확장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 시기에 동료 뮤지션의 음반 프로듀싱, 객원 보컬, OST 작업, 프로젝트 밴드 ‘노땐스’ 활동 등을 병행했으며 1995년 4월부터 1997년 10월까지 MBC 라디오 의 초대 DJ로 활동하며 라디오 진행자로서의 탁월한 역량을 보여주었다. 1997년 발표한 넥스트 4집을 끝으로 넥스트는 해체했으며,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음악공부를 하며 그곳에서 쌓은 테크노 장르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1998년 《Crom’s Techno Works》를 발표한다. 이듬해에는 프로젝트 그룹 ‘모노크롬’을 결성, 동명 타이틀로 앨범을 발표했으며 2000년에는 밴드 ‘비트겐슈타인’을 결성, 실험성이 강한 음반을 발표했다.
2001년에는 그가 진행한 대표적 라디오 방송 <고스트스테이션>을 시작했다. 2003년 4월까지 선보인 이 방송은 거침없는 언변과 진심어린 진행으로 마니아 청취자층 ‘고스족’을 양산했고, 그의 별칭 ‘마왕’도 이때 얻었다.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 활동을 벌였으며,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대마초 비범죄화/간통죄 폐지체벌 금지 등 민감한 사회 현안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펼쳐 화제를 낳기도 했다. 2003년 10월 <고스트네이션> 방송을 시작했으며 2004년에는 새 라인업으로 재결성한 넥스트 정규 5집을 발표했다. 2005년에는 연예매니지먼트 회사 ‘싸이렌’을 설립했으며 이듬해 넥스트 리메이크 음반 5.5집을 발표했다. 2008년 넥스트 6집을 발표하는 한편, 이해 3월부터 10월까지 SBS 라디오에서 <고스트스테이션> 방송을 다시 진행했다. 2011년 5월에는 MBC 라디오에서 <고스트스테이션> 진행을 재개했으며 2012년 10월 방송을 끝냈는데, 이로써 11년간 이어온 <고스트스테이션> 진행을 완전히 종료했다.

2014년에는 새 솔로 음반 준비를 본격화해, 싱글 〈A.DD.a〉를 공개했으며 이어 EP 《Reboot Myself》를 발매했다. 2014년 10월 27일 향년 46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故 신해철의 정확한 사인은 의료사고 의혹 속에 아직 온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노래 : 강산에 (본명 : 강영걸)
가장 한국적인 록을 한다는 평을 받고 있는 강산에(강영걸)는 1992년 충격적인 데뷔작 으로 순식간에 존재를 환기시켰다. 부산에서 얌전히 모범생으로 자라 한의대에 입학한, 장래가 촉망되던 그는 서울에서 받은 문화적 충격과 학비조달에 무거운 짐을 느끼던 중 이종환이 운영하는 라이브 업소의 노래 대회에 출전해 대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쉽게 열릴 것 같았던 가수라는 직업은 기회로 다가오지 않았다. 일본인 친구와 함께 ... 가장 한국적인 록을 한다는 평을 받고 있는 강산에(강영걸)는 1992년 충격적인 데뷔작 으로 순식간에 존재를 환기시켰다. 부산에서 얌전히 모범생으로 자라 한의대에 입학한, 장래가 촉망되던 그는 서울에서 받은 문화적 충격과 학비조달에 무거운 짐을 느끼던 중 이종환이 운영하는 라이브 업소의 노래 대회에 출전해 대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쉽게 열릴 것 같았던 가수라는 직업은 기회로 다가오지 않았다. 일본인 친구와 함께 일본으로 놀러갔던 그는 그 곳에서 두 번째로 문화적인 충격을 받으며 음악은 가수가 아니어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일본을 좋아하게 된 그는 그곳에서 공부하며 아르바이트도 하고 틈틈이 곡들을 만들었다. 하지만 가수를 포기해 버린 뒤라서 기획사의 끈질긴 회유에도 한동안은 꿈쩍하지 않았다. 그의 데뷔 앨범은 일본에서 만든 곡들치고는 대단히 국내의 토착 생활을 일깨우는 음악들로 가득 차있다. 이로 인해 비평적으로 환대를 받았으며 국내 록 음악의 새로운 물결로 제시 되었다. 그만이 낼 수 있는 시원한 목소리는 수록곡들을 활기차게 만들었고 빠르게 인기를 안겨주었다. 이 첫 앨범에는 ‘에럴랄라’, ‘할아버지와 수박’, 그리고 이산의 아픔을 서민의 정서에 담아 관통한 ‘...라구요’와 같은 일상의 한국적인 분위기를 간직한 곡들이 주로 수록되어 있으며 그의 내지르는 칼칼한 목소리는 이른바 토속적인 냄새를 풍기게 했다. 이런 독특한 색깔은 그를 록은 록이지만 서구의 록과 다른 맛을 내는 가수로 인식되게 했으며 우리 대중 음악사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록음악의 대안으로 꼽히게 했다. 시작은 0부터라는 생각에서 붙인 앨범 제목처럼 그의 반골적인 기질과 직선적 사고도 이때부터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첫 앨범으로 비평적, 상업적 성공을 거둬 단연 록계의 유망주가 되었다. 두 번째 앨범은 1집에 비해 꽉 짜여진 느낌이 덜 하지만 반전 문제를 다룬 ‘더 이상 더는’이나, 돈의 문제를 직설적 화법에 실은 ‘문제’(원래 제목은 ‘돈’이지만 심의 과정에서 불가 판정을 받아 바꿨다),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한 ‘아웃사이더’와 같은 곡들로 계속해서 자신의 분위기를 이어갔다. 무엇보다도 최대의 히트곡 ‘넌 할 수 있어’가 들어 있는 이 앨범으로 라이브 공연을 시작한 그는 공연중 반말을 하는 등의 사건으로 매체에서 가장 꺼리는 가수 중의 하나가 되었지만, 자신의 주장과 생각을 굽히지 않는 소신은 더욱 더 록커의 모습으로 서게 했다. 세상이 강요한 대로만 살았던 그가 이제서야 사춘기를 느낀다는 제목의 2집 로 인기 가수의 반열에 오른 그는 1996년 서우영의 드라이하고 단선적인 멜로디의 ‘삐딱하게’가 실린 를 발표한다. 좀 더 의식적으로 사회적 문제를 다룬 이 앨범에는 대한민국의 부조리를 태극기에 감정 이입한 ‘태극기’, 통일을 염원한 ‘One’ 등이 있으며 너무 형식화되고 보편화되어 개성이 없는 모습에 짜증을 낸 ‘삐딱하게’, 남들과 다르고 싶은 그의 생각을 “삐딱하며 자유롭게”라고 외치는 ‘차라리’에서처럼 자신의 고유한 멋을 잃어버린 세태에 대한 불만을 주로 노래하고 있다. 일본인 친구가 프로듀싱한 이 앨범에는 영화 에서 쓰였던 ‘어쩌면’이 수록되어 있고 표지를 비롯한 속지 디자인은 어어부밴드의 마부가 했으며 ’별뜻없어’에서는 이상은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1998년에 나온 그의 4집은 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긴 제목의 트랙인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이 인기를 얻은 이 앨범은 사회적인 맥락의 이슈들을 개인의 문제로 득화시켰다. 사고의 틀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그의 모습처럼 의도적인 메시지보다는 자신의 성찰을 담아내려 한 이 앨범에는 ‘미스 탬버린’이나 ‘춤추는 나’와 같이 예의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흥겨운 록큰롤도 있었지만 왠지 시장에서 많은 환대를 받지는 못했다. 이후 그는 쉬어 가는 의미에서 평소 자신이 좋아하던 곡들을 담아 리메이크 앨범을 발매했다. 이정선의 ‘우연히, 한 대수의 ‘물좀 주소’, ‘하루 아침’, 산울림의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 조동진의 ‘제비꽃’ 등이 수록된 이 앨범에서 그는 블루스에 기초한 발성과 시원한 목소리로 새로운 맛을 보여 주고 있으며 그 동안 금기시 했던 미디 음악에 대한 모색을 하며 다양화를 위한 전초전을 마련했다. 그는 한 때 대마초 사건으로 사회 봉사 활동을 명령받고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하는 체험을 하기도 했으며 미국의 사막을 여행하며 자아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방황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Jesus Christ Superstar)에서 가롯 유다 역이 이끌어낸 호평에서 볼 수 있듯이 그가 돌아갈 곳은 음악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2001년 라는 타이틀을 걸고 무대로 돌아온 그는 “열창은 가수의 사회 봉사”라며 가수로서의 직무 유기를 하는 요즘 세태를 비판했다. 새로운 출발점에 선 그는 200여 명의 가수들과 함께 음악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의 콘텐츠 사업에 참여했으며 단 1%의 재편집이나 더빙이 없는 순수 라이브로 제작된 음반을 들고 나타났다. 2002년 10월에 발표한 총 일곱번째 앨범은 본명인 강영걸을 타이틀로 내세우고 스트레이트한 록을 구사했던 전작들과는 다른 면을 보여주고있다. 그간 그의 앨범을 프로듀싱 해왔던 하치 히로부미를 뒤로 하고 직접 프로듀서의 명함을 새긴 그는 근력보다는 연륜의 깊이에 기대고 있는 이 앨범에서 무엇보다도 사투리를 강조한 ’명태’, ’와그라노’ 등을 국내적인 랩으로 승화시켰다. 그의 아내가 작사했다는 부드러운 선율의 ’지금’이란 곡이 타이틀곡으로 내정됐다.

회원리뷰 (0건)

매주 10건의 우수리뷰를 선정하여 YES상품권 3만원을 드립니다.
3,000원 이상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일반회원 300원, 마니아회원 6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리뷰쓰기

등록된 리뷰가 없습니다.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0건)

1,000원 이상 구매 후 한줄평 작성 시 일반회원 50원, 마니아회원 1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0/50

등록된 한줄평이 없습니다.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배송 안내
배송 구분 YES24 배송
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 포장안내1
  • 포장안내2
  • 포장안내3
  • 포장안내4
포스터 안내
  •  구매하신 상품에 포스터 사은품이 있는 경우, 포스터는 상품 수량과 동일한 수량이 제공됩니다.
  •  포스터는 기본적으로 지관통에 포장되며, 2장 이상의 포스터도 1개의 지관통에 담겨 발송됩니다.
  •  포스터 수량이 많은 경우, 상황에 따라 지관통 추가 및 별도 박스에 포장되어 발송될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반품/교환 방법
  •  마이페이지 > 반품/교환 신청 및 조회, 1:1 문의,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예스이십사(주)
서울시 영등포구 은행로 11, 5층~6층(여의도동,일신빌딩) 대표 : 김석환   개인정보보호책임자 : 권민석 yes24help@yes24.com 사업자등록번호 : 229-81-37000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05-02682호 사업자 정보확인 호스팅 서비스사업자 : 예스이십사(주)
고객만족센터 T.1544-3800
상담 전화번호
  • 중고샵 문의 1566-4295
  • 영화예매 문의 1544-7758
  • 공연예매 문의 1544-6399
1:1 문의하기 자주 묻는 질문 상담시간 안내
YES24 수상내역 정보보호 관리체계 ISMS인증획득 개인정보보호 우수사이트
소비자피해보상보험 서울보증보험
고객님은 안전거래를 위해 현금 등으로 결제 시 저희 쇼핑몰에서 가입한 구매안전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서비스가입사실 확인
EQUUS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