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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잡이 민주주의

한 손에는 촛불, 다른 손에는 정치를 들다

최장집, 서복경, 박찬표, 박상훈 공저 | 후마니타스 | 2017년 02월 20일 리뷰 총점10.0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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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7년 0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402g | 150*210*20mm
ISBN13 9788964372715
ISBN10 8964372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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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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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 자 소 개
최장집 :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박찬표 : 목포대학교 정치언론홍보학과 교수 박상훈 : 정치발전소 학교장 서복경 :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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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1. 진행 중인 정치적 대사건, 그리고 박근혜 이후 체제의 시작

2016 촛불 정국은 진행 중인 정치적 대사건이다. 민주화 이후 최대 사건으로 기록될 만한 2016 촛불 시위는 여러 측면에서 흥미로운 사례라 할 수 있다. 짧은 기간 동안 대규모 시민이 참여했다는 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혁명이나 쿠데타가 아니고도 정부의 통치권이 상실될 수 있다는 경험은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선출된 최고 권력’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평화로운 체제 관리가 가능했다는 점도 놀랍다.
민주화 이후 지난 30년간 개선?해결되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여러 이슈들과 과제들이 ? 마치 밀린 빚을 한꺼번에 받아 내겠다는 듯이 ? 일제히 청구되기에 이르렀던 것도 특별한 일이다.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 농단’을 넘어 존재의 목적을 상실한 정부에 책임성을 묻는 방법을 둘러싼 논란, 광장과 국회, 헌재의 역할을 두고 전개된 민주주의 논쟁, 대통령중심제 등 정부 형태 내지 권력 구조를 바꾸자는 문제 제기, 친박의 정치적 시민권 박탈에서부터 ‘대연정 제안’에 이르기까지 정당 체계 변화 논쟁, 검찰과 재벌 권력을 민주화하고 나아가 ‘신자유주의적 발전 국가’로 이야기되는 기존의 발전 모델을 개혁하자는 여러 주장 등, 향후 이 모든 의제들은 여야 내지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다퉈질 중대 이슈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것이 어떻게 전개되든, 또한 어떤 결과로 이어지든 간에, ‘박근혜 이후 체제’는 분명히 시작되었다. 비록 여러 중대 이슈와 의제들이 단기적으로는 실현되지 않을지 몰라도, 그리고 수많은 갈등과 혼란을 동반할지라도 ‘장기적으로 지속될 변화의 압박 요인’으로는 남았다고 생각한다. 달리 말해 ‘박근혜 없는 박근혜 체제’로 끝나거나, 대충 이러다가 마무리될 사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촛불 시위가 전처럼 큰 규모로 지속되든 아니든, 이 문제는 20대 대선은 물론 차기 정부 5년 내내 갈등 이슈로 작용할 것이다. 이는 앞으로도 몇 번의 진통과 전환을 거치면서 한국 민주주의가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할 것임을 예상하게 해준다.

2. ‘해석적 개입’으로서의 글쓰기

“큰 사건일수록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는 깊고 넓을 수밖에 없으며, 어느 정도 먼지가 가라앉을 시간이 지난 뒤에 정리되어야 할 것들도 많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는 변화의 한가운데 있고, 새로운 변화가 계속 만들어지는 상황 속에 있다. 그렇기에 이미 변화가 시작된 의제들이나, 판단을 내려야만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쟁점들과 관련해 불완전하게나마 의견을 말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때 마키아벨리는 시간을 가리켜 ‘모든 진리의 아버지’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시간의 경과가 가져다주는 ‘늦은 지혜’에 만족하지 말고 맹렬한 기세로 ‘변화의 시간’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라고 했다. 2016 촛불 시위로 시작된 변화의 시간을 이어가야 할 과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그간의 변화와 앞으로의 상황을 적극적이고 실천적으로 해석하고 재해석해 내는 일은 중요하다.”

3. 왜 ‘양손잡이 민주주의’인가

8년 전 광우병 촛불 시위가 반정치적 시민 저항권의 행사로 특징지을 수 있다면, 이번 촛불 시위를 정치적 시민 저항권으로 볼 수 있는 이유에 주목했다. 촛불만 든 것이 아니라 정치를 선용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내세운 점을 강조하며, 그런 의미를 담아 이를 ‘정치적 시민의 탄생’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양손잡이’는 다른 의미에서도 사용된다. 그것은 진보적 시민의 민주주의관만이 아니라 보수적 시민의 민주주의관이 공존한 특별한 경험이었다는 점이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보수적 시민들의 상당수가 촛불 시위의 참여자이거나 지지자였다. 95%의 촛불 지지는 그런 점에서 ‘시민사회에서의 거대한 동맹’으로 정의할 수 있고, 여권의 상당수까지 찬성한 국회 탄핵 가결은 ‘정치사회에서의 거대 동맹’으로 부를 수 있다.
이는 종북 좌파 내지 보수 꼴통이라는 규정으로 서로를 부정했던 두 길(보수 없는 민주주의와 진보 없는 민주주의의 길)이 아닌, 두 민주주의가 정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 준 대사건임에 주목한 해석이다. 적대와 증오의 언어를 교환하는 ‘정치 양극화’의 악순환을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4. 박정희 패러다임의 붕괴

이 책은 이번 사태를 대통령의 비선 문제(‘국정 농단 사건’)로 좁게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에도 지속되었던 국가-사회-경제 운영 모델이 그 적자의 의도하지 않은 행위의 결과로 인해 스스로 정당성을 상실한 대사건으로 해석한다. 즉, 야당에 의해서도 아니고 대안적 발전 모델의 강력한 도전 때문도 아닌 방식으로 구체제의 발전 모델이 붕괴한 특이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국가와 재벌 관계를 비롯해, 여러 차원의 큰 변화 없이는 해결이 어려운, 민주화 이후 지난 30년 동안 했어야 했는데 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박정희식 국가 운영 모델은 권위주의 시기뿐만 아니라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 사회의 모든 영역, 모든 수준에서 헤게모니를 가졌던 국가의 운영 원리이자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였다. 민주화를 통해 정치체제가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 체계의 차원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도 권위주의적 국가 운영 모델의 헤게모니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권위주의 시대로부터의 사회경제적?이념적 자원을 기반으로 하는 보수적 정당이 헤게모니 정당이 되는 것이 필연적이다. 반면 박정희 패러다임에 대한 대안적 비전과 사회적 기반을 창출할 수 없는 개혁적 야당(들)은 패권적 정당에 대한 항의와 비판에 의지해 선거에서 경쟁자 역할을 했을 뿐이다. 박정희 패러다임을 대체할 만한 정치적 자원을 발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현상은 거의 구조적인 측면이 있다. 그런데 이 헤게모니가 사실상 해체된 것이다. 민주화를 통해서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통해서도 가능하지 않았던 역사적 전환점을 만들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이 열렸다는 점, 이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5. 온건 다당제에 주목하다

“필자(최장집)는 그동안 여당의 성격을 ‘정권으로부터 파생된 정당’으로 보고 야권은 그에 대한 잔여 범주 내지 그에 가까운 한계를 보였다고 비판하면서, ‘서로에 대한 잘못 때문에 존재하는 적대적 양극화 체계’로 규정해 왔는데, 이번 과정을 지켜보면서 ‘온건 다당제로의 길’을 실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야당이 하나일 때보다 3당인 것이 훨씬 더 낫다는 판단을 했고,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합의를 만들어 가는 다당제의 긍정적인 효과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고 본다. 단일 야당 체계였거나, 아니면 민주당과 국민의당처럼 서로를 무한 견제하는 두 야당만 있었다면 이런 변화는 어려웠을 것이다. 3당 내지 2.5당 체계의 물리학적 효과가 꽤나 긍정적일 수 있다는 경험은 특별하다. 향후 새누리당에서 분열해 나온 정당이 자리를 잡아 4당 체계 내지 5당 체계가 들어선다 해도, 그런 다당제하에서 정당들이 발휘하는 정치의 역할은 양당 체계 때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변화를 발전, 내실화시켜 입법부가 제1권력 부서가 되는 ‘민주적 삼권분립의 길’을 가기 위해서라도 정당 체계의 발전은 중요하다. 특히, 사회의 중대 갈등이 정치의 중심이 되는 정당 체계, 이른바 (이념적으로나 계층적으로 실체적 차이를 갖는) ‘다원적 정당정치’로의 길이 넓어져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보수 정당의 역할은 크다. 이번 촛불 시위가 남긴 가장 큰 민주적 효과를 꼽으라면 필자는 한국의 정당 체계가 1990년 삼당 합당의 그늘로부터 벗어날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을 들겠다. 만약 친박으로 대표되는 권위주의 구체제 세력이 과거 자민련의 경우처럼 소멸되는 경로로 가게 된다면 최소한 ‘민주화 세력의 범위 안에서 정당 체계의 오른쪽이 정립’된다는 의미가 있다. 이것은 작은 변화가 아니다.
향후 보수가 한국 민주주의를 끊임없이 퇴행시켰던, 과거와 같은 ‘냉전 반공주의에 기초를 둔 비이성적 정치 동원’ 대신 다른 이념 내지 사회적 기반을 갖지 않으면 안 되는 압박에 노출된 것, 이른바 비박일지라도 그런 변화를 통해서만 ‘정치적 시민권’을 인정받게 될 것이라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냉전-반공-권위주의의 특징을 갖는, 강경 보수가 주도했던 그간의 정당정치는 끝나게 되고, 민주적이면서도 사회 통합적 역할을 하는 보수만이 인정되는 정당정치가 된다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정당 체계의 민주화’는 (헌법 전문가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번 촛불 시위를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병행해 진보 쪽의 정당들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의미에서 변화의 압박이 커진다면, 이는 전체적으로 민주주의 발전에 우호적인 일이 될 것이다.”
“이상과 같이 촛불 시위가 개척한 변화의 실질적 내용에 주목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개헌에 대한 제3의 시각’으로서 ‘정치적 개헌론’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른다.”

6. 직접 민주주의가 아닌 대의 민주주의의 심화로

“촛불 시위에서 제시하는 직접민주주의는 과연 대의제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촛불 민주주의 등의 개념이 갖는 문제는, 정치사회 현실과 상이한 경험을 마치 동일한 것처럼 잘못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집회나 광장, SNS 공간 등은 서로 비슷한 의견을 갖는 비교적 동질적인 사람들이 모여, 서로에 대해 어떠한 구속력도 갖지 않는, 자유로운 논의를 하는 곳이다. 이에 반해 정치의 공간은 서로 다르고 적대적인 의견을 갖는 이질적인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어, 서로에 대해 강제적 구속력을 갖는 공적 결정을 추구하는 곳이다. 시민사회 공간과 정치의 공간은 전혀 상이한 것이다. 촛불 민주주의 등의 개념은 이질적인 두 공간을 마치 동일한 것처럼 혼동하게 만들 수 있다.
촛불 시위 현장을 들어 비유하자면, 민주주의는 촛불 시민 내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촛불 시민과 탄핵 반대 시민 사이에서 작동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직접민주주의란, 촛불 시민들이 그 내부에서 자율적 토론을 통해 어떤 의사 결정(참여자들에게 강제력을 갖지 않는)을 하는 과정이 결코 아니다. 직접민주주의란 촛불 시민과 탄핵 반대 시민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강제적으로 적용되는 권위적 의사 결정을 하는 메커니즘이다. 따라서 그 과정이, 참여자들이 모두 발언의 자유를 가지면서 물리적 충돌 없이 합리적 의사소통을 통해 진행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정치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인식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직접민주주의 논의들은 자칫 정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당초의 목적과 반대로 현실 정치에 대한 혐오나 반정치의 정서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이 점은 특별히 경계할 필요가 있다.
탄핵 국면에서도 나타나듯이,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가장 중대한 문제의 하나는 ‘시민사회의 정치적 양극화’라고 생각된다. 흔히 자유민주주의에서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의 경험은, 역지사지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상호 인정과 관용의 자세를 촉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그것은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탄핵 사태 역시 이런 상황을 악화시킬 개연성이 높다. 외형적으로는 탄핵을 둘러싸고 국민 통합이 이루어진 듯 보이지만, 내부적으로 탄핵은 여권 지지자들 사이에 감정적 내상을 입히고 반대파에 대한 감정적 반감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흄(David Hume)의 지적처럼, ‘이성은 감정의 노예’이기 때문이다.
직접민주주의 주창자들은 정치를 ‘시민 대 정치 엘리트’의 구도로 바라보면서, 대의제를 정치 엘리트 독점 체제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직접민주주의를 통한 국민 주권의 회복을 주창한다. 직접민주주의하에서 정치는, 정치 엘리트들의 권력 쟁투의 장에서 시민들의 집단 지성이 발현되는 장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현실의 국민이나 시민사회를 너무 규범적?낙관적으로 바라본 결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국민이나 시민은 결코 하나의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 안에는 지역?계층?세대?성 등에 따른 균열이 존재한다. 특히 한국의 시민사회는, 촛불 국면에서 나타나듯이, 이념적 균열로 양분되어 있고 이런 균열이 정파적 지지와 견고히 연계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직접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자치 공간이 되기보다, 정파적 시민들 간의 직접적 충돌의 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직접민주주의가 공적인 의사 결정 체제로 작동할 때 나타나는 결정적 단점은 바로 이런 파벌 경쟁과 정치적 갈등의 격화이다. 아테네 민주정의 최대 단점 역시 이것이었다(헬드 2010, 52-3). 이런 점에서 직접민주주의로 대의제를 대체하는 것은, 현대 국가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가져올 정치적 결과에 있어서도 바람직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직접민주주의 논의는 폐기되어야 하는가? 이에 대한 건설적인 대답은, ‘직접민주주의인가 대의 민주주인가’라는 양자택일적?폐쇄적 질문을 ‘직접민주주의 논의의 궁극적 지향점인 시민 주권의 확대 혹은 정치 참여 확대를 실현하기 위해 중요하고도 시급한 과제는 무엇인가?’라는 개방적 질문으로 바꾸고, 여기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우선의 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현실의 민주정인 대의제의 운영에 있어서 시민의 정치적 의사 표현이나 정치 참여 기회를 가로막고 있는 각종 법?제도들을 개혁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대의제 전체를 뭉뚱그려 비판하기보다는, 대의제가 대의 ‘민주주의’로 작동하는 것을 가로막는 구체적 장애물들을 찾아내고 이를 제거하는 것이 정치 개혁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직접민주주의 제도는, 대의제를 기본으로 해, 대의제의 문제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논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7. 촛불 시위를 통해 나타난 시민사회의 한계

“촛불 시위가 절정으로 향하던 12월 7일 철도 노조는 72일 간의 파업을 아무 성과 없이 마무리하고 현업에 복귀했다. 12일에는 시중은행 성과 연봉제 도입이 전격 결정된 데 이어, 12월 말 지방은행으로까지 확산되었다. 결국 대통령 탄핵이라는 큰 이슈 속에서 노동 이슈는 묻혀 버렸다. 민중 총궐기는 촛불 시위를 계기로 시민 속으로 확장된 것이 아니라 희석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는 촛불 시위의 궁극적 목적인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중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부문적?계층적?사회경제적 이슈보다 보편적?일반적?정치적 이슈가 쟁점이 될 때 활성화되고 정치적으로 동원된다는 사실이다. 물론 촛불 시위에서도 대통령 퇴진 외에 여러 부문적 요구들이 분출했다. 하지만 그것은 촛불 시위의 구조적 배경은 되었지만, 직접적 촉발 요인은 아니었다. 결국, 사회경제적 불만과 요구가 있다 하더라도 직접 행동의 광장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최순실 게이트라는 계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달리 말하면, 부문적?사회경제적 이해의 분출은 어떤 공적인 것에 대한 요구라는 정치적 외피가 필요했던 것이다. ……
결국 시민들의 집단적?사회적 참여는 사회경제적 이슈보다 정치적 이슈를 중심으로, 부문적?계층적?계급적 이슈보다는 보편적?일반적 이슈를 초점으로 해 이루어지며, 이 경우 시민들은 사적 영역에서 벗어나 공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로 호명된다. 민중 총궐기와 대비해 볼 때, 촛불 시민은 보편적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공공선에 헌신하는 존재로 그려지는 것이다. ……
주의해야 할 것은, 공적?보편적 의제에 민감히 반응하는 한국 시민사회의 특징이 상당한 장점과 동시에 어떤 문제점도 안고 있다는 것이다. …… 첫째, 공적 의제 중심으로 활성화되는 한국 시민사회의 속성은 부문 이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져오기 쉽다. 시민들의 사회적?정치적 행위에 있어 공공선이 강조될 경우, 그것은 시민사회 각 부문의 자기 이익 추구 행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사회 각 부문 집단의 집단적 이익의 분출을 정당한 것으로 수용하고 지지하는 자세와는 거리가 먼 정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이런 정서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파업 등과 같은 특정 부문 집단의 집단행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 혹은 방관적 외면이라 생각된다. 예를 들면, 현대자동차 노조 파업에 대해서는 ‘귀족 노조의 이익 챙기기’라는 비판이, 공공 부문 파업에 대해서는 ‘철밥통 지키기’라는 비판이, 정규직 파업에 대해서는 ‘비정규직에 대한 특권 지키기’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도시 철거민 시위나 밀양 송전탑 반대 시위, 농민 시위 등에 대해서도 집단 이기주의 혹은 지역이기주의라는 비판이 따르곤 한다. 물론 이런 비판은 지배 계층의 이념 공세에서 비롯된 것이고, 보수 언론을 통해 사회적으로 확산된다. 하지만 그런 이념 공세가 비교적 쉽게 수용될 수 있는 시민사회적 토양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공적 대의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부문 이익의 분출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우리 시민사회의 특징이 가져온 부정적 결과는 1987년 민주화 과정에서 나타난 바 있다. 주지하듯이 1987년 6월까지 정치적 민주화라는 대의에 대해서는 도시 중산층까지 포함하는 전 시민적 지지가 모아졌다. 하지만 7~9월 노동자 대투쟁이 시작되자 보수 언론의 주도하에 시민들은 등을 돌렸다.
촛불 시위에서도 이런 양상이 일정 부분 반복되는 듯하다. 촛불 시위와 함께 민중 총궐기, 노조 파업 등이 전개되었지만 사회적 연대를 확보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 가져올 수 있는 최악의 결과는, 사회 각 부문들이 구체적 삶의 이슈와 관련된 각자의 영역에서 서로 분리된 채 각개 격파되는 상황이다.”

“촛불 시민은 민중 총궐기를 주도했던 민중 부문과 일반 시민 두 부분으로 구성되고 있으며, 이들 간에는 일치와 불일치의 양면적 관계가 존재한다. 촛불 시위의 요구는 민주주의의 복원과 사회경제적 개혁이라는 두 범주로 구분되는데, 전자에서는 일치가, 후자에서는 불일치가 발견되는 것이다. 전자는 보편적?일반적 의제로서 촛불 시위 내부는 물론이고 거의 전 국민적 합의를 획득한 사안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후자는 부문적?계층적?계급적 요구라고 할 수 있으며, 촛불 시위 국면에서도 시민적 지지나 연대의 획득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국 사회경제적 개혁 추진의 내적 한계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한국 민주화의 오래된 숙제를 반영한다. 즉, 정치적 민주주의를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심화하는 문제이다. 전자가 초점이 된 촛불 시위에서 민중 진영과 일반 시민들은 최대 다수 연합을 형성했고, 그 결과 국회의 탄핵 소추를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이후까지 연합이 유지될지는 의문이다. 탄핵 이후에는 결국 광장에 다시 민중 진영만이 남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촛불 시위 이전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한편에서는 촛불 시위의 ‘한계’ 혹은 ‘배반’을 지적하는 민중 진영의 비판이 예상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민중 총궐기를 촛불 시위와 대비시켜 ‘불순?과격?불법 시위’로 몰아 탄압하려는 보수 진영의 공세가 본격화될 것이다(대선에서 정권 교체에 성공해 ‘개혁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민중 진영의 사회경제적 개혁 요구를 모두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촛불 시위가 ‘대통령 탄핵을 통한 절차적 민주주의의 회복’이라는 일차적 목표를 넘어,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으려면, 민중 부문과 시민 부문의 긍정적 결합을 어떻게 확보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8. 한국 민주주의의 오디세이아

“전반전 경기를 매우 드라마틱하게 마친 다음 후반전을 준비하는 휴식 시간 같은 상황이다. 전반전의 변화와 성취를 잘 해석해 후반전을 준비해야 한다. 2016 촛불 시위가 압도적인 시민 여론의 지지에 의해 가능했고, 이어서 야 3당이 이끄는 다당제의 좋은 효과가 탄핵 국면으로 이어졌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번의 대사건은 야당들 모두에게 ‘안정적인 정권 교체를 실현하고 박근혜 이후 체제를 만들어 가는 공통의 과업’을 부과했다고 볼 수 있다.”

확실히 한국 민주주의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고, 우리는 이미 그 길 한가운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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