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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Germain Des-Pres Cafe Vol.18: The Must-Have Playlist from Paris (생제르맹 데프레 카페 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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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Saint-Germain Des-Pres Cafe Vol.18: The Must-Have Playlist from Paris (생제르맹 데프레 카페 18집)

파리의 라운지-재즈-쿨 템포 컴필레이션

[ 2CD ]
Eddie Barclay 작곡/Juliette Greco, Henri Salvador, Yves Montand, Les Freres Jacques 노래 외 12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Wagram | 2017년 01월 20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12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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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Germain Des-Pres Cafe Vol.18: The Must-Have Playlist from Paris (생제르맹 데프레 카페 18집)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7년 01월 20일
제조국 프랑스

관련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CD1
  • 01 Saint-Germain-des-Pres Blues - Johnny Hodges
  • 02 Sous le ciel de Paris - Juliette Greco
  • 03 Deception - Miles Davis
  • 04 Saint-Germain-des-Pres - Henri Salvador
  • 05 That da da Strain - Boris Vian
  • 06 Armstrong, Duke Ellington, Cab Calloway - Ray Ventura
  • 07 Honeysuckle Rose - Sidney Bechet
  • 08 Un gamin d'Paris - Yves Montand
  • 09 Gout du jour - Noel Chiboust Et Son Orchestre
  • 10 Riz a la creole - Claude Luter
CD2
  • 11 Et la fete continue - Les Freres Jacques
  • 12 Wrap Your Troubles In Dreams - Sidney Bechet
  • 13 Les rues de Paris - Mouloudji
  • 14 How Deep Is the Ocean - Charlie Parker
  • 15 Bal dans ma rue - Edith Piaf
  • 16 Nuit de Saint-Germain-des-Pres - Django Reinhardt
  • 17 L'ame des poetes - Charles Trenet
  • 18 Annel - Kenny Clarke
  • 19 Je suis comme je suis - Juliette Greco
  • 20 Peche mignon - Eddie Barclay

아티스트 소개 (17명)

노래 : Juliette Greco (줄리에뜨 그레코)
샹송 가수 샹송 가수
노래 : Henri Salvador (앙리 살바도르,Henry Cording )
배우, 샹송 가수 배우, 샹송 가수
노래 : Mouloudji (모르셀 물루지)
노래 : Edith Piaf (에디뜨 피아프 )
< 작은 체구 큰 노래 -세기의 가수 에디트 피아프 > 지금은 미국이나 영국의 음악에 밀려 유럽 가수들의 노래는 거의 전파를 타지 못하고 있지만 60년대까지만 해도 프랑스 샹송이나 이탈리아 칸소네의 위력은 대단했다. 국내의 당시 팝 팬들도 영미가수들 못지 않게 이브 몽탕, 줄리엣 그레코, 밀바 등 유럽가수들의 음악을 즐겨 들었다. 그 중에서도 40년대와 50년대를 석권한 프랑스 여가수 에디트 피아프(Edith P... < 작은 체구 큰 노래 -세기의 가수 에디트 피아프 > 지금은 미국이나 영국의 음악에 밀려 유럽 가수들의 노래는 거의 전파를 타지 못하고 있지만 60년대까지만 해도 프랑스 샹송이나 이탈리아 칸소네의 위력은 대단했다. 국내의 당시 팝 팬들도 영미가수들 못지 않게 이브 몽탕, 줄리엣 그레코, 밀바 등 유럽가수들의 음악을 즐겨 들었다. 그 중에서도 40년대와 50년대를 석권한 프랑스 여가수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는 전세계에 걸쳐 지명도를 확립한 금세기 톱 가수로 남아 있다. 시사주간지「뉴스위크」는 얼마 전 ‘20세기 100년의 스타들’ 특집을 마련하면서 에디트 피아프를 ‘불후의 프랑스 목소리’라고 칭송하고 별도의 지면을 할애했다. 그녀가 이처럼 지난 세기의 위대한 음악유산으로 기록되는 것은 단지 ‘진실하고 열정적으로’ 노래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력(死力)을 다해서 또 혼을 토해내며 노래를 불렀다. 엄청난 파괴력이 탑재된 그 막강한 소리가 왜소한 체구의 여성에게서 나온 것을 알고 나면 더욱 경이롭다. 피아프는 참새라는 뜻의 파리 속어로 그를 스타로 키워준 카바레 주인 루이 레플레가 그의 작은 체구를 두고 붙여준 별명이다(카바레는 지금 성인오락장으로 인식되어 있지만 애초에는 작은 뮤직 홀이었다). 1915년에 태어나 2차 대전 때인 1939년에 스타덤에 오르기 전까지 ‘작은 거인’ 피아프의 인생은 비참했다. 어머니는 피아프를 낳자마자 도망쳤고 아버지 역시 그녀를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멀리 떠나버렸다. 그녀는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90년대의 여가수 리앙 폴리는 말한다. “피아프는 안락과 돈이란 조금도 없이 시작해 길거리에서 노래했다. 지금의 흑인 랩 가수들과 다를 게 없다. 진실로 사랑의 이야기와 세상의 곤궁을 노래했다는 점에서 그녀는 혁명적이었다.” 인기가 치솟으면서 프랭크 시내트라와 빙 크로스비 다음으로 돈을 많이 번 연예인이 됐지만 그랬어도 그녀의 생은 언제나 불행했다. 헤비급 복싱 챔피언 마르셀 세르당, 이브 몽탕, 자크 필스 그리고 26살 연하의 청년 테오 사라포 등 잇단 남자들과의 실연으로 고통을 당했으며 내내 술과 진통제에 의존해 살아갔다. 최근 영화 「노팅 힐」에서 엘비스 코스텔로가 불러 히트한 곡 ‘그녀(She)''의 오리지널 가수 겸 작곡자이며 ‘샹송의 대부’로 추앙되는 샤를르 아즈나부르는 이렇게 술회한다. “피아프는 복서 마르셀 세르당을 사랑했지요. 그는 경기를 위해 뉴욕으로 떠나 있었고 피아프는 베르샤이유에서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세르당은 피아프와 같이 있기 위해 일찍 떠났고 비행기는 추락하고 말았지요. 그녀는 이틀 아니면 사흘 자기 방에 꼭 박혀 있더니 삭발하고 나타나 ‘사랑의 찬가(Hymne a l''amour)''를 불렀습니다. 방에서 그 곡의 가사를 완성하여 죽은 세르당을 위해 노래한 것입니다.” 피아프의 또 다른 고전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도 이브 몽탕과의 핑크빛 사연이 빚어낸 곡이다. 이처럼 상상이나 허구가 아닌 실제의 삶이 진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그녀의 노래가 우리에게 감동을 제공하는 것이다. 피아프는 음악과 예술에 헌신한 사람이다. 결코 인기나 영예를 노리고 노래한 것은 아니었다. 죽기 전 무대에서 노래부르다 쓰러져 스탭이 무대 밖으로 끌고 나오려고 했으나 그가 피아노 레그를 붙잡고 ‘노래는 마쳐야 한다’며 고집을 부려 노래를 끝까지 마친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영화「파니 핑크」에 사용되어 재조명된 후반기의 절창 ‘난 후회하지 않아요(Non je ne regrette rien)를 위시한 그의 무수한 노래를 듣고 있으면 뼛속까지 파고드는 듯한 가공할 전율을 경험하게 된다. 많은 사람이 스캔들, 비극, 알코올중독을 먼저 기억하고, 실상 그것들이 피아프를 시대의 아이콘으로 상승시킨 요소가 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기적 열창의 절대 파워가 빚어내는 미학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어떤 평자가 묘사한 것처럼 신성한 광기(Divine madness)라고 할까. 하지만 그녀는 노래의 터뜨릴 때를 알았던 것처럼 속삭일 때를 알았고 사람의 감정을 뒤흔들어놓을 때를 알았다. 그리하여 그녀의 노래에는 폭발과 절제가 절묘하게 동거한다. 간혹 전문가들은 그녀가 잘하는 노래가 아니었다고 주장하지만 그녀의 노래에 투영된 진실성과 불굴의 에너지만으로도 피아프가 ‘세기 최고의 여가수’였음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여가수를 집대성한 저서「시 밥」을 쓴 루시 오브리엔은 그녀를 ‘잔다르크와 동등한 팝 히로인’으로 표현했다. 1963년 48살의 길지 않은 일기로 세상을 떠난 그녀가 역사에 남긴 자취는 거대하다. 그녀야말로 지금 여가수의 텃밭이 된 ‘팝 발라드’의 영역을 크게 넓혔다. ‘여가수는 노래를 이렇게 해야 감동을 부른다’는 패턴을 시범한 것이다. 샹송이 프랑스를 넘어 ‘국제 음악언어’로 승격된 것도 다름 아닌 피아프의 공헌이다. 그녀는 또한 54년 미국을 방문해 피아프 열풍을 일으키면서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도 ‘미국판 피아프’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주디 갈란드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명백히 그녀의 영향을 흡수하여 스타덤에 오른 인물들이다. 에디트 피아프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은 ‘가수는 목숨을 걸고 노래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무대에 설 자격이 없다’는 사실이다. 노래로 승부하지 않고 요란한 의상과 차림이나 섹시한 자태 등 음악외적인 측면에 호소하려는 경향이 농후한 요즘 여가수들이 바로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인기와 명성에만 중독이 되어 기본기를 갖추지 못한 그들에게 이런 무대에 대한 천착이 있을 리 만무다. 그러니 그들의 노래에서 어찌 그녀와 같은 카리스마를 발견할 수 있겠는가. 그녀가 사망한지 어느덧 35년 이상이 흘렀어도 아직도 에디트 피아프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래 : Charles Trenet (샤를르 트레네)
재즈 색소폰 연주자 재즈 색소폰 연주자
연주 : Miles Davis (마일즈 데이비스)
재즈 트럼펫 주자이자 작곡가, 밴드 리더인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음악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 롤링스톤 >는 록전문지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100년 간의 톱10 뮤지션(8위) 가운데 한사람으로 그를 선정했다. 인상적인 선율로 마음 한 가운데를 울리는 우수 어린 트럼펫 소리는 분명 ‘마일스’만의 것이다. 그러나 마일스 데이비스는 출중한 연주실력을 지닌 재즈 음악인이기 전... 재즈 트럼펫 주자이자 작곡가, 밴드 리더인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음악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 롤링스톤 >는 록전문지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100년 간의 톱10 뮤지션(8위) 가운데 한사람으로 그를 선정했다. 인상적인 선율로 마음 한 가운데를 울리는 우수 어린 트럼펫 소리는 분명 ‘마일스’만의 것이다. 그러나 마일스 데이비스는 출중한 연주실력을 지닌 재즈 음악인이기 전에 재즈의 다양한 장르를 창조해 낸 ‘스타일리스트’이다. 1940년대부터 90년대에 이르기까지 마일스는 정체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나가는 창조의 면모를 보여준다. 쿨, 모드, 휴전에 이르기까지 그는 재즈 음악의 새로운 경향을 제시하고 리드해 갔다. 마일스는 현재에 유행하는 음악에 민감했고 시대 상황에 예의 주시할 줄 아는 아티스트였다. 단지 뛰어난 기량을 지닌 일반 뮤지션의 범주에서 논할 수 없는 가히 ‘대가’였다. 본명 마일스 듀이 데이비스 주니어인 그는 1926년 5월 25일 일리노이주 알턴에서 태어났다. 치과의사인 아버지를 둔 중산층의 유복한 가정환경에 자라나 이스트 세인트루이스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13세가 되던 생일 아버지가 사주신 트럼펫이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트럼펫 훈련을 받게 된다. 16세때 부터 바(Bar)에서 주말마다 연주를 한 마일스는 지역 밴드인 ‘에디 랜들스 블루 데빌스’의 멤버로 활동하다 17살이었던 1944년 비밥(Bebop)의 혁명을 몰고 온 디지 길레스피와 찰리 파커가 활동하던 ‘빌리 엑스타인 빅 밴드’가 그가 살던 이스트 세인트 루이스에 순회공연을 오게 됐고, 마일스는 우연한 기회에 그들과 한 무대에 설 기회를 얻게 된다. 이 때의 경험은 그가 길레스피와 파커의 추종자가 됨을 물론 비밥의 스타일을 스스로 터득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스피디한 연주, 두드러진 즉흥 솔로, 복잡한 리듬감으로 어우러진 비밥은 40년대 재즈계를 강타한 ‘재즈혁명의 전주곡’이었다. 젊은 재즈 연주자들은 모두 비밥에 심취해 있었고 마일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단지 비밥을 추종하는 트렌드의 수혜로 그치지 않으려고 했고, 그 해 이스트 세인트루이스를 떠나 뉴욕에 있는 줄리어드음대에 입학한다. 줄리어드음대를 다니면서 그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곳은 바로 뉴욕 52번가의 ‘민턴스 플레이 하우스’라는 재즈 클럽이었다. 매일 밤 이곳에 나가 음악을 듣고 또 그곳의 전통에 따라 무대에 돌아가며 올라가고 하면서 재즈 트럼펫 연주의 정체를 깨닫는다. 1947-48년 동안 찰리 파커의 밴드에서 활동하게된 마일스는 이를 통해 비밥의 문법을 완전히 자기의 것으로 익힌다. 1948년 여름 마침내 마일스는 당시로서는 생소한 9인조 빅 밴드를 조직한다. 뉴욕에서 만난 캐나다 출신의 작곡가 길 에반스(Gil Evans)를 비롯한 미국 서부 출신 백인 재즈 연주자들을 기용, 이듬해인 1949년 캐피톨(Capitol)을 통해 발표된 앨범 < Birth Of Cool >은 재즈의 바탕에 백인적 감수성을 가미시킨 걸작이었다. 이 앨범은 ‘쿨의 탄생’이란 제목이 입증하듯 이후 당시 앨범에 참여했던 리 코니츠, 제리 멀리건과 같은 뮤지션들이 중심이 되어 미국 웨스트 코스트를 중심으로 한 ‘쿨’이라는 음악 스타일을 개척하는 데 씨앗을 뿌린 재즈사(史)의 명반이었다. 이 음반이 녹음된 당시엔 재즈계의 촉각이 비밥에 쏠려 있던 시기라 아무도 마일스의 시도에 주목하지 않았다가 1957년 2월 캐피톨사가 이 앨범을 재발매하면서 마침내 그의 진가가 인정받기에 이른다. 1950년대 초반 잠시 헤로인에 중독된 마일스는 위기를 맞지만 이후 프레스티지(Prestige) 레이블을 통해 수많은 음반을 발표한다. 테너 색스폰 주자 존 콜트레인과의 협연으로 유명한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Miles Davis Quintet)의 시작을 알렸던 시기인 프레스티지의 내공축적 시절 동안, 마일스는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는다. 그의 대표작으로 반드시 입에 오르는 ‘Round midnight’를 1955년 7월 뉴 포트 재즈페스티벌서 연주하게 되었고 이를 도화선으로 메이저 레이블인 콜럼비아 레코드사와 계약한다. 트럼펫의 마일스 데이비스를 비롯하여 테너 색스폰의 존 콜트레인, 피아노에 레드 갈런드, 베이스에 폴 챔임버, 드럼에 필리 조 존슨으로 구성된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은 같은 해 10월 콜롬비아 레코드 데뷔작 < Round Midnight >를 발표, 그의 음악은 대중적인 인지도를 획득하기 시작했다. 콜롬비아에서 첫 앨범을 내놓았지만 아직 프레스티지 레코드와 5장의 음반에 대한 계약 분이 남아있었기에 마일스는 잔여 분을 해결하기 위해 단 이틀만의 전대미문 세션을 통해 녹음 작업을 마치는데 성공한다. 그 결과 나온 작품이 < Relaxin > < Cookin’ > < Workin > 그리고 < Steamin’ >이었으며 이 음반들 모두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의 전작 < Round Midnight > 이상의 호평을 받는다. 1957년 < Birth Of Cool >의 재발매와 동시에 그는 이전 음악 동료인 길 에반스와 다시 만난다. ‘쿨의 탄생’에서 보여준 빅 밴드 편성을 다시 도입, 길 에반스의 클래시컬한 편곡으로 ‘쿨의 탄생’에서 진일보한 연주를 선보이기 위해서였다. 1956년의 < Miles Ahead >와 이듬해 < Porgy & Bess > 그리고 1960년의 < Sketches of Spain >이 모두 마일스와 길 에반스와의 공동의 땀으로 결실을 맺은 명작들이었다. 1957년 12월에는 파리를 방문, 프랑스 ‘누벨 바그’ 영화의 거장 루이 말 감독의 <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L’Ascenseur pour l’Echafaud )의 스코어를 맡았으며 이 영화음악으로 1960년 그래미상 베스트 재즈 퍼포먼스부문 후보에 오르는 성과도 거둔다. 1958년에는 존 콜트레인과 함께 했던 그의 퀸텟에 알토 색스폰 주자인 캐논볼 애덜리를 영입, 6인조 섹스텟으로 새로 출발하여 < Milestone >을 녹음한다. 재즈에 모드(mode: 각 스케일, 노트에서 일곱음을 모두 사용하는 연주 방식) 주법을 처음 도입한 이 앨범을 끝으로 밴드 내의 피아노 주자 레드 갈란드가 떠나고 모드에 정통한 피아노 주자 빌 에반스(Bill Evans)가 들어오면서 그의 섹스텟의 색깔은 더욱 ‘모드’로 진행되었다. 모드 주법의 본격적인 시도를 알렸던 그의 대표작 < Kind of Blue >(1959)는 ‘드림팀’이라고 할 만한 쟁쟁한 멤버들로 구성된 그의 섹스텟 연주의 정점이었다. 이 앨범은 코드 변화와 즉흥연주 중심의 기존 재즈음악 스타일을 과감히 벗은 ‘모던 재즈’(modern jazz)의 시작을 알렸으며 지금까지 200만장 판매라는 상업적 성공도 포획했다. 1960년대 초반 솔로 활동을 위해 존 콜트레인과 빌 에반스가 마일스의 섹스텟을 떠나고 이들을 대신할 피아노 주자 윈튼 켈리와 색스폰 주자 행크 모빌이 들어온다. < Kind Of Blue > 때와 같은 창조성은 아니었지만 이전보다 대중들과의 친화력을 더 높아졌으며 < Someday My Prince Will Come >(1961)과 같은 수작 생산을 거르지 않는다. 섹스텟을 떠난 빌 에반스와의 작업을 이후에도 지속하여 같은 해 내놓은 앨범 < Live At Carnegie Hall >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오넷 콜먼(Ornette Coleman)이라는 젊은 색스폰 주자가 ‘프리 재즈’를 선보이면서 재즈 음악계는 어느덧 ‘프리 재즈’ 쪽으로 말을 갈아 타고있었다. 마일스는 이런 오넷 콜먼의 시도를 그다지 반기지 않았고 마일스의 섹스텟의 활동이 다소간 시들해진 60년대 중반, 다시 퀸텟으로 밴드를 재편했다. 이 때의 명분은 반(反)프리재즈에 입각한 듯한 ‘재즈-스탠더드 풍의 전통에 입각한 새로운 시도’였다. 베이시스트 론 카터,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 드러머 토니 윌리엄스, 테너 색스폰에 웨인 쇼더와 같은 젊은 피를 수혈받으며 마일스의 쿼텟은 < Kind Of Blue > 이후 최고의 창작력을 다시 불태운다. 1965년 < E.S.P >를 시작으로 < Miles Smiles >(1966), < Sorcerer >(1967), < Nefertiti >(1967), < Miles In The Sky >(1968), < Fills De Kilimanjaro >(1968)까지 줄기차게 이어진다. 이중 < Miles Smiles >는 1967년 그래미상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성과를 거뒀고, 기타리스트 조지 벤슨이 참여한 < Miles In The Sky >와 칙 코리아의 일렉트릭 피아노가 참여한 < Filles De Kilimanjaro >는 얼마 후 마일스의 또 한차례 혁명인 ‘재즈-록 휴전’으로의 이동을 암시하는 작품이었다. 1968년 마일스는 제임스 브라운, 슬라이 & 더 훼밀리 스톤, 지미 헨드릭스 등 당시 대중들을 휘어잡은 R&B와 펑키 음악에 관심을 갖는다. 얼마 후 지미 헨드릭스를 만나게 되었고, 둘은 함께 작업할 것을 약속한다(물론 이 약속은 지미 헨드릭스의 요절로 이뤄지지 못했다.)마일스는 당시 유행하던 록 음악의 열풍을 예의 주시했고, 일렉트릭 기타와 키보드가 재즈의 진보를 이끌어낼 것으로 판단한다. 콜트레인의 죽음 후 재즈는 기존 프리 재즈에서 더 진행하지 못하고 있었고, 수요층 측면에서 어느덧 백인 지식인이나 상류층들이 즐기는 음악으로 변모해가고 있었다. 1968년 말 그의 두 번째 퀸텟은 해산을 맞아 색스폰 주자 웨인 쇼더를 제외하고 모두 솔로로 독립한 상황이었지만 마일스는 또 다시 새로운 시도를 감행함으로써 존재를 부각한다. 토니 윌리엄스를 대신 할 잭 드자넷, 론 카터를 대신할 데이브 홀란드, 일렉트릭 건반주자 칙 코리아, 조 자위눌이 마일스와 함께 연주를 하게 되고, 영국 출신의 일렉트릭 기타리스트 존 맥러플린도 그의 밴드에 합류한다. 이들과 함께 1969년 2월에 녹음한 < In A Silent Way >는 코드 없이 부유하는 듯한 멜로디로만 진행된 방식으로서, 거기에 일렉트릭 기타사운드를 집어넣어 ‘록’적인 요소를 재즈에 본격적으로 가미한 것이었다. 같은 해 8월 재즈계의 최대 문제작인 < Bitches Brew >이 녹음되어 1970년 3월 세상에 나왔다. 오케스트라 편곡으로 도저히 옮겨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즉흥성에 토대를 둔 이 앨범에서 마일스의 트럼펫은 전기 코드를 꽂은 듯 우렁찼으며 일렉트릭 피아노와 일렉트릭 기타의 펑키(funky)감과 드럼의 강한 비트는 바야흐로 재즈-록 휴전(Jazz Rock Fusion)의 출현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이미 길이 갈라선 록과 재즈의 융합을 꾀한 이 기념비적 가치의 앨범은 발매되자 마자 골드를 기록했고 빌보드 Top40에 오르는 인기를 누려 대중들에게 다가가려는 취지를 충분히 달성했다. 마일스의 재즈-록으로의 실험은 이후 5년 간 계속된다. 라이브 실황을 담은 < Miles Davis In Filmore East >(1970), < Live-Evil >(1970)를 비롯하여 흑인 권투선수 잭 존슨에게 헌정하는 < Tribute to Jack Johnson >(1970), 슬라이 스톤과 제임스 브라운으로부터 영향 받은 게 명백한 펑키 리듬의 < On the Corner >(1972)와 같은 ‘재즈-록 휴전’의 명반을 잇달아 발표한다. 그가 시도한 재즈-퓨전은 잇단 재즈 슈퍼그룹의 출현을 몰고 왔다. 칙 코리아는 1970년 말 마일스를 떠나 써클(Circle)을 거쳐 1971년 리턴 투 포에버(Return To Forever)를 결성했으며 기타주자 존 맥러플린도 같은 해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Mahavishnu Orchestra)를 만들었다. 마일스에게 일렉트릭 피아노를 소개했던 조 자위눌과 색스폰 주자 웨인 쇼터는 그들 보다 더 빠른 1970년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를 결성하면서 1970년대 재즈의 대세를 재즈-록 퓨전으로 돌려놓았다. 건강상의 이유로 1975년 마일스는 은퇴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정확히 6년 후인 1981년, 일렉트릭 베이스에 마커스 밀러, 일렉 기타에 마이크 스턴, 색스폰에 빌 에반스 등 젊은 재즈 뮤지션들로 완비된 밴드와 함께 재기해 < The Man With The Horn >을 발표한다. 이어 기타리스트 존 스코필드를 가입시키고 자신이 직접 표지그림까지 완성한 < Star People >(1982), < Decoy >(1983), < You’re Under Arrest >(1985)를 연달아 내놓으며 에너지를 과시했다. 30년 동안의 콜롬비아에서의 활동을 마감하고 1986년 워너로 이적하여 < TuTu >를 선보인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투투 주교의 이름을 따온 이 앨범은 토미 리푸마, 마커스 밀러, 조지 듀크 등 3인 프로듀서의 지휘 아래 만들어졌고, 마일스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고 있던 마커스 밀러가 작곡과 편곡을 맡았다. 일렉트릭-펑키 풍의 편곡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던 흑인 로커 프린스(Prince)의 영향을 느끼게 했다. 이듬해 1987년 워너 브라더스에서 두 번째로 내놓은 < Siesta >는 엘렌 바킨, 줄리앙 샌즈 주연의 동명 영화 음악으로 작품 전체가 예전 길 에반스와의 작업 < Sketches Of Spain > 때와 같이 스페니시한 연주로 가득 차있다. 마일스는 사망하기 직전인 1991년 7월 스웨덴에서 열린 몬트럭스 재즈 페스티벌서 연주자로 참여, 그의 음악적 동반자로 1988년 세상을 떠난 길 에반스와 녹음했던 많은 곳들을 재즈팬과 평론가들 앞에서 재현하며 엄청난 환호의 박수를 받았다. 꿈꾸던 재즈의 진보를 평생동안 실현해온 마일스는 1991년 9월28일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소재의 세인트 존스 호스피탈 앤 헬스 센터에서 폐렴에 의한 호흡곤란과 뇌졸중으로 숨을 모았다. 사망 후 완성된 2개의 트랙이 포함된 스튜디오 앨범 < Doo-Bop >이 1992년 공개되면서 위대한 재즈맨을 잃은 상실감에 젖은 팬들의 아쉬움을 달래줬다. 마일스는 ‘모든 음악적 요소’를 그에 트럼펫에 담아 내려했고,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 뮤지션이 되길 원했다. 비밥의 출현 때부터 재즈의 중심에 있어오면서 기존의 전통을 답습하기보다는, 재즈-스탠더드를 바탕으로 현재의 음악흐름을 늘 주시했고 거기에서 항상 새롭고 실험적인 것을 추구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길 원했다. 마일스에게 ‘재즈의 거장’이라는 칭호를 붙임에 있어선 논란의 여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길 에반스와의 작업과 재즈-록 퓨전을 시도할 당시 일각의 재즈평론가들로부터 ‘백인에게 아부하는 재즈 뮤지션’ 혹은 ‘재즈를 팔아먹었다’는 식의 혹평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근거 없는 비판은 이미 루이 암스트롱이나 듀크 엘링턴과 같은 대가들도 경험했던 얘기들이었다. 마일스의 시도는 그의 음악을 통해 대중에게 더 접근하고 싶어 한 그 만의 것이었다. 마일스는 자신의 공연을 할 때 젊은 흑인관객과 눈이 마주치길 원했고, 그런 흑인 청중들에게 반가운 미소를 보내었다.(하지만 물론 지금까지 그의 음악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거의 백인들이다.) 그의 유산은 오늘날에 음악 곳곳에서 확인된다. “이념과 인종으로 갈라진 세상에서 음악만큼이라도 퓨전되어야 한다”는 그의 지론과 명언은 어느덧 재즈는 물론이고 현대의 대중음악을 가로지르는 음악트렌드가 되었다.
소설가이자 엔지니어이기도 했으며, 작사가, 평론가, 번역가, 시나리오 작가, 영화배우 등으로 활동하며 트럼펫을 연주하는 재즈 음악가이기도 했던, 프랑스 문학계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1920년 3월 10일 프랑스 빌다브레에서 태어난 그는 12살 때 심장 질환을 겪고, 이후 약한 심장으로 고생한다. 콩도르세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5살 때 프랑스 대입 시험인 바칼로레아를 통과했다. 10대 시절부터 문학에 열정을 ... 소설가이자 엔지니어이기도 했으며, 작사가, 평론가, 번역가, 시나리오 작가, 영화배우 등으로 활동하며 트럼펫을 연주하는 재즈 음악가이기도 했던, 프랑스 문학계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1920년 3월 10일 프랑스 빌다브레에서 태어난 그는 12살 때 심장 질환을 겪고, 이후 약한 심장으로 고생한다. 콩도르세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5살 때 프랑스 대입 시험인 바칼로레아를 통과했다. 10대 시절부터 문학에 열정을 쏟기 시작했으며, 17세에는 트럼펫 연주를 시작했다. 1939년에 약한 체질로 인해 징병 부적합 판정을 받고 앙굴렘의 중앙기술학교에 입학했으며, 1942년부터 1946년까지 프랑스 규격협회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1945년 비앙은 프랑스 최고의 출판사인 갈리마르에서 소설 『베르코캥과 플랑크톤』을 출간했으며, 이듬해에는 소설 『물거품의 나날L’Ecume des jours』을 출간함으로써 프랑스 문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시기 즈음에 비앙은 ‘생-제르맹 문학 그룹’의 일원이 되었고, 그룹의 리더인 시몬 드 보부아르와 장폴 사르트르와 가깝게 지냈다. 『물거품의 나날』 출간 몇 달 후, 그는 미국 스릴러 장르의 위트 있는 혼성 모방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로 다시 한 번 문학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비앙은 버넌 설리반(Vernon Sullivan)이라는 필명으로 출간한 후 자신이 번역자라고 주장했다. 이 소설은 1947년 내내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라 있었으며, 뒤이어 출간된 스릴러들인 『죽은 자들은 모두 같은 피부색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끔찍한 자들을 죽일 것이다』 역시 문학적 논란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마찬가지로 크게 성공했다. 비앙의 이 작품들은 프랑스 누아르(Noir) 소설에 해당한다. 누아르 소설은 범죄와 폭력, 섹스에 대하여 비정하고 냉혹한 태도로 도덕적 판단을 배제한 채, 사건의 해결보다는 행동에 중점을 두며, 불필요한 수식이 없는 간결한 문체로 거친 분위기를 묘사하는 특징을 지닌다.

전후에 비앙은 작은 재즈 클럽인 ‘르 타부’에서 형제인 알랭과 만든 재즈 밴드로 매일 밤 연주했다. 르 타부는 곧 파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클럽이 되었지만 르 타부가 인기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의 병이 재발하였고, 그는 트럼펫 연주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러나 1946년 프랑스 잡지인 《핫재즈》의 편집 팀에 합류하여, 그 후 10년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르에 대한 훌륭한 기사와 정기적인 평론을 썼다. 또한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 같은 미국 스릴러들을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번역하여 출간하기도 했다.

1940년대 후반에 이르자 또 다른 유명한 재즈 까페인 ‘르 클럽 생-제르맹-데-프레’에 드나들며, 듀크 엘링턴, 찰리 파커, 마일스 데이비스 같은 미국의 재즈 스타들을 초대하여 콘서트를 열었다. 1952년에는 실험적인 작가 모임에 합류하여 레몽 크노, 외젠 이오네스코, 자크 프레베르 등의 동료작가들과 친분을 쌓았다. 1954년에 인도차이나 전쟁의 막바지에 반전 가요로 유명해진 샹송 「탈영병le D?serteur」을 발표했는데, 이 샹송은 당국으로부터 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그 외에도 비앙은 프랑스의 명곡들 가운데 많은 곡을 작사했다. 1957년과 1958년에는 필립스 사와 폰타나 사에서 아트 디렉터 일을 맡기도 했다.

1959년에는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가 영화화되었으며, 그해 6월 23일에 그는 영화의 특별 시사회에 초대 받았다. 그러나 막 영화가 시작한 몇 장면 직후 39세의 나이로 시사회장에서 쓰러져 운명을 달리했다.
연주 : Ray Ventura (레이 벤추라,Raymond Ventura)
소프라노 클라리넷, 색소폰 연주자 소프라노 클라리넷, 색소폰 연주자
연주 : Claude Luter (클로드 뤼테르)
재즈 클라리넷 연주자 재즈 클라리넷 연주자
1955년 3월12일, 뉴욕의 어느 조그만 아파트에서 한 흑인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 관계자들은 시신을 살펴본 뒤 조사내용을 서류에 기입했다. 사인은 약물중독에 의한 심장마비, 인종은 흑인, 나이는 약 65세. 당시 현장의 경찰 관계자들은 그것이 누구의 시신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비밥의 혁명가’ 찰리 파커(Charlie Parker; 이하 버드)의 죽음은 이토록 비참했다. 1920년... 1955년 3월12일, 뉴욕의 어느 조그만 아파트에서 한 흑인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 관계자들은 시신을 살펴본 뒤 조사내용을 서류에 기입했다. 사인은 약물중독에 의한 심장마비, 인종은 흑인, 나이는 약 65세. 당시 현장의 경찰 관계자들은 그것이 누구의 시신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비밥의 혁명가’ 찰리 파커(Charlie Parker; 이하 버드)의 죽음은 이토록 비참했다. 1920년 생이니까 사망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35살, 하지만 술과 마약에 찌든 그의 몸은 망가져 있었고, 그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65살 노인으로 착각했을 정도이니 그의 건강이 얼마나 절체 절명의 상황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영화배우이자 제작자인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가 감독한 영화 < Bird >(1988)는 이 비운의 버드의 생애를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1945년, 민턴스 플레이 하우스(Minton’s Play House)에서 동료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와 함께 한 성공적인 데뷔를 시작으로 그는 하루아침에 재즈계의 유명 인사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가 창안한 비밥이란 문법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수 없다’는 이유로 대중들의 차가운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그의 뇌리 속엔 ‘자신은 흑인’이라는 운명이 자리잡고있었다. 공연 때마다 그를 보러오는 백인 여성들은 그를 유혹했고 하루에도 몇 번씩 그는 이들과 성의 향연(?)을 벌이곤 했다. 하지만 흑인이었기에, 그의 천재성은 백인이 패권을 지고 있던 미국 사회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었다. 타협이라곤 모르는 그의 성격은 그를 차츰 고립의 늪으로 치닫게 했고, 외로움을 잊기 위해 20년 넘게 해온 마약과 술은 그를 파멸로 몰아넣었다. 민턴스 플레이 하우스에서 디지가 작곡해 준 ‘Groovin’ high’를 그의 색스폰으로 우렁차게 울린 그 날, 재즈의 역사는 다시 쓰여졌다. 비밥(Bebop)이라는 재즈의 신종 문법은 1940년대 주류 대중음악인 스윙의 대세를 벗어나 20대 초의 젊은 흑인 재즈 뮤지션들을 중심으로 ’음악적 실험‘을 끝에 비밥은 빛을 본다. 바야흐로 모던 재즈 시대를 활짝 열어놓은 이들 젊은 뮤지션들은 중 단연 눈길을 끌었던 인물은 바로 버드였다. 그의 천재성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미국 캔사스 씨티 출신인 그는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와 같은 스윙 스타를 배출한 캔사스 씨티 음악 씬의 중심부에서 소년기를 보낸다. 바리톤 색스폰을 독학으로 익힌 그는 14세가 되던 1934년, 학교를 그만두고 그 지역 밴드들을 따라다니며 색스폰 연주를 익혀나간다. 이곳저곳을 배회하며 잼(Jam) 세션을 벌인 그는 얼마 후 그는 그 지역의 스타 카운트 베이시 악단과 연주할 기회를 얻게 된다. 하지만 카운트 베이시 악단과 함께 했던 기억은 버드에게 영원히 지워질 수 없는 상처가 되고 만다. 그의 어설픈(?) 솔로가 진행되던 도중, 당시 드럼을 연주하던 조 존스는 갑자기 연주하던 심발을 풀어 그를 향해 내던졌다. 순간 그가 대중들의 웃음거리로 전략하고 만 이 일화는 물론 16세라는 나이를 감안할 때 아직 완성도가 떨어지는 그의 열악한 연주실력을 반증해주는 사례였지만, 스윙시대를 주름잡은 그의 선배들이 그의 독창적인 솔로 전개를 매우 거북스러워했음을 또한 증명해 준다. 스윙이 대세였던 당시까지만 해도 그가 새로운 재즈의 물결을 주도할 것이라는 예상은 그 누구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색스폰 주자 레스터 영(Lester Yong)의 음악에 심취해 있던 그는 다시 몇 년의 치열한 내공을 쌓은 후인 1940년, 뉴욕 52번가에 자리한 클럽 ‘민턴스 플레이 하우스’의 매니저 테디 힐(Teddy Hill)의 주선으로 뉴욕에 입성하며 ‘무서운 신인’으로 두각을 나타낸다. 그는 케니 클라트, 델로니우스 몽크, 닉 팬톤, 하워드 맥기, 조 가이, 그리고 그의 비밥 혁명을 가능케 해준 동반자 디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비밥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재즈의 흐름을 모색해 간다. 당시 재즈 평론가 제임스 콜리어가 옮겨 전하고 있는 케니 클라크의 말은 버드와의 첫 만남에 대해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우리가 전혀 들어본 적도 없는 것들을 연주하고 있었어요. 이미 내가 드럼으로 연주하고 싶어했던 것들을 들려주었죠. 래스터 영보다 두 배는 빠르게 연주했고, 영이 다루지 못한 음들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 마찬가지의 것을 추구하고 있었지만, 우리보다 한 발 앞서 있었어요. 무엇보다도 그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1943년, 최초의 비밥 보컬리스트 사라 본(Sarah Vaughan)의 백업 밴드를 맡고 있던 드러머 빌리 엑스타인 밴드에 합류해 그의 첫 레코딩을 하게 되고, 1944년 말 디지와 듀오를 결성, 버드 파웰(피아노), 막스 로치(드럼), 찰스 밍거스(베이스)으로 구성된 퀸텟을 결성한다. 이듬해 민턴스 플레이 하우스에서 성공적인 데뷔식을 치룬 그는, 자신의 애칭인 ‘새’(Bird)를 자신의 공식적인 이름으로 대신한다. 1945-1947년 디지와 함께 하며 미국 L.A. 지역 클럽들을 중심으로 활발한 투어를 펼치던 이 시기에 ‘Groovin’ high’, ’Salt peanuts’, ’Shaw’ nuff’, ’Hot house’, ’Donna lee’, ’Ko ko’등 그의 음악성을 대표하는 명곡들을 발표한다.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1947-1949년 동안 자신의 새로운 퀸텟을 이끌며 듀크 조던, 토미 포터, 막스 로취, 그리고 줄리어드 음대를 다니다 그의 문하생이 된 신인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를 영입한다. 1950년까지 지속적인 활동을 보인 그의 퀸텟은 사보이(Savoy)레이블에서 활발한 레코딩 작업과 유럽 투어를 펼치며 연주경력의 절정을 맞이한다. 같은 해 버브(Verve)레이블과 계약, 디지와 다시 함께 한 앨범 < Bird & Diz >(1950)을 발표한다. 그러나 당시까지 그의 음악은 대중들로부턴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었다. 그나마 생계를 유지해 준 뉴욕의 클럽들도 하나둘씩 문을 닫고 R&B와 로큰롤이 서서히 고개를 들며 대중들은 점점 재즈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사생활 문제까지 겹친 그는 헤로인과 술로 시름을 달래려 했고, 이로 인해 결국 자살까지 시도하기에 이른다. 1953년 그의 생애 마지막 녹음이 된 명반 < Jazz at Massey Hall >을 데뷔 시절 한솥밥을 먹은 디지 길레스피, 버드 파웰, 찰스 밍거스, 막스 로치와 함께 녹음한다. 악화된 건강은 결국 심장마비를 불러왔고 35세란 젊은 나이에 그는 자신의 여자친구 집에서 객사한다. 50년대 말 그의 영향을 고스란히 계승한 존 콜트레인의 등장으로 인해 그의 업적이 재즈계 내에서 차츰 부각되기 시작, 후대 재즈 학자들은 그를 기점으로 ‘아티스트의 주도’하에 이뤄진 찬란한 모던 재즈(Mordern Jazz) 시대가 개화했다고 칭송해마지 않는다.
연주 : Django Reinhardt (장고 라인하르트)
재즈 기타 연주자 재즈 기타 연주자
재즈 드럼 연주자 재즈 드럼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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