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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6년 12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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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36쪽 | 274g | 145*210*20mm |
ISBN13 | 9791187064084 |
ISBN10 | 11870640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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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 너머, 메갈리아 이후의 모색
나도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여자가 원한을 품으면 삼 년 동안 가뭄이 든다
여자가 입술이 푸르면 색골이다
여자가 열이 모이면 쇠도 녹인다
-《전통 속담 사전》의 ‘여자’에 관한 속담 가운데
요즘 여자들끼리 모였을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은어가 있다. 각종 온라인 사이트, 떠도는 게시글에서 유행하는 단어들이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기도 하지만 각종 미러링 단어를 구사하며 낄낄거린다. 많은 여성들이 메갈리아의 헤비 유저이든 눈팅족이든 메갈리안인 것이다. 사실 나의 관심사는 메갈리아 그 자체보다는 이 집단 혹은 현상을 둘러싼 말들이었다. 메갈리아의 존재와 의미는 사회적 상식이 되었고, 페미니즘은 소위 ‘메갈’의 움직임으로 간단히 축소되어 통용되고 해석되고 있다. 나의 주변 남성들의 반응은 대체로 여성들의 이러한 행동에 일단 놀라고, 혐오에 혐오로 대응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자 일베’ 아니냐‘”) 반응했다. 메갈리아의 언어를 ’일베‘의 그것과 같은 혐오로 해석하는 이들의 단순함에 놀라고, 일베 가운데 여성은 없을 것이란 순수한 전제에 두 번 놀랐다.
그러던 가운데 일반적인 상식을 전복하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인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책을 집어 들었다. 대체로 공저자의 책은 저자마다 톤이 다르고 집중도를 흐리기 쉽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양성평등에 반대한다》를 읽으며 개별 원고를 파악할 뿐만 아니라 원고 사이의 관계, 책 한 권으로 묶이면서 더 커진 목소리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2016년 페미니즘은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되었고, 이전까지 여성에게 잠재적으로 찍히던 페미니스트라는 낙인은 (책의 표현에 따르자면) ‘식어버린 인두’가 되었다. 초기 메갈리아가 한국에 가져다 준 충격 내지는 청량감으로 인해 마치 유행처럼 페미니즘 담론이 팽창했지만, 현재 메가리아는 워마드 등으로 분화되었다. 온라인 매체 ‘슬로우 뉴스’에서 필명을 ‘풍호’로 하는 이의 분석에 따르면, 초기 메갈리아는 여러 전선이 혼재된 회색지대와 같은 공간이었으며, 경제적, 사회적 경험이 다른 여성을 하나로 볼 수 없듯 이들이 마주한 남성(소위 ‘한남충’) 역시 같지 않다고 분석한다. 대체로 교육 수준이 낮고, 경제적 지위가 낮을수록 전통적 성역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심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에 대응해 페미니스트 역시 ‘교양파’와 ‘죽창파’로 나눈다. <그들이 유일하게 이해하는 말, 메갈리아 미러링>에서 “여성의 인권만 챙겨 가겠다”며 포털사이트 다음의 비공개 카페 ‘레디즘’과 ‘워마드’ 등으로 이탈해 나간 무리를 ‘죽창파’로 분류할 수 있다.
여성의 인권만 분리한다는 지점에서 여/남 구분의 이분법, 그리고 이에 기반해 남성과 여성의 평등을 주장하는 이퀄리즘을 읽어낼 수 있다. 표제와 같은 글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에서는 논리적으로 젠더 이분법을 해체한다. 정희진 선생은 가장 익숙한 도식인 이분법이 사실상 주체 일방의 논리이며 위계를 대칭으로 위장하여 사회적 불평등을 은폐한다고 지적한다. 여성주의 이론가들은 일찍이 이성과 몸, 문명과 자연 등의 이분법적 논리, 철학을 비판해왔다. 성별 이분법 역시 성/젠더 구분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어 차별에 일조한다. 생물학적 구분(성sex)이든 사회적인 것(젠더gender)이든 남성/성(man)은 이항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보편, 기준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규범으로서의 성별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남성의 기준이라 여기는 군대 역시 군 또는 사회의 필요에 따라 징병률이 달라지고, 여성성의 상징이라 하는 출산 역시 모든 여성이 겪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성=입대’, ‘여성=출산’과 같은 도식이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젠더 체계의 예외적 존재인 동성애자, 트랜스젠더가 사회 속에 공존하며 해부학적으로 성별을 구분할 수 없는 인터섹스 역시 반증의 사례이다. 애초에 ‘양성’ 평등의 개념 자체가 잘못 설정된 것이다. 더구나 ‘평등’의 개념 역시 희망사항이나 지향이지 현실이 될 수 없고, 남성에게는 오해나 반발을 불러일으킬 뿐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왜 이와 같은 성별 구분과 여성 차별 혹은 혐오가 지속될까? 이는 <왜 한국 개신교는 ‘동성애 혐오’를 필요로 하는가?>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저자 한채윤은 혐오의 정치에 쉽게 포획되지 않으려면 누가, 왜, 무엇을 위해 이 혐오를 필요로 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 개신교의 동성애 혐오는 기독교인들이 성서에 기반한 혐오라기보다는 정치적인 필요에 의해 혐오를 이용한다는 분석이다. ‘Divide and Conquer’ 과 같은 유명한 정치 수사처럼 한국의 개신교는 밖으로는 분할하고 안으로 결속하기 위해 동성애 혐오를 이용했다. 공동의 증오가 구성원을 결합시키고, 내부의 결점을 감추며 사회적 지배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높일 기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여성 혐오와 양성 평등을 같은 선상에 놓고 생각해 본다. 가부장제 질서 존속을 위해 여성 혐오가 필요하며, 이에 저항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틀어막기 위해 이퀄리즘, 양성 평등이 대두되는 것이다. 양성 평등의 깃발 아래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 진출은 늘어났지만 여성 혐오를 유지함으로써 사회의 역할을 여성에게 전담시키고 책임을 전가한다.
“맨움들을 위한 옷에는 페호가 있어야 해. 항상 그래왔고 미래에도 늘 그럴 거야. (...중략...)미학적이지 않다고. 크리스토퍼. 그게 훨씬 더 심각한 문제지. 나는 내 아들이 그것을 다리 사이에서 흔들며 돌아다니게 하지는 않을 거야. 죽어도!” - 《이갈리아의 딸들》 중에서
저자 정희진은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이 단순한 말의 미러링 세계가 아님을 논한다. 그리고 말을 넘어서 노동의 교환으로서 미러링을 제안한다. 더불어 “남성의 노동이 사회적, 정치적 이슈로 전면에 등장하기 전까지 평등 논쟁은 의미가 없다.”며 논의를 마무리했다. ‘하우 투how to’에 해당하는 이 논의는 앞서 언급한 ‘교양파’와 ‘죽창파’가 갈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다소 계몽적인 태도로 남성에게 페미니즘을 설파하며 사회를 바꿔가자는 태도가 전자의 것이라면 워마드 등에서 전투적으로 등장하는 죽창파 페미니스트들은 ‘한남’들의 각성을 포기 혹은 단념한다. 이에 비혼 선언, 출산 파업 등의 움직임으로 이어진다. 나 역시 의문이 든다. 슈퍼우먼 여성들의 이중 노동과 희생의 대가로 유지되어온 구조 속에서 혜택을 누려온 남성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육아와 가사 노동을 분담할까?
<미성년자 의제강간, 무엇을 보호하는가>에서는 성을 다른 사회적 관계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변수로 여기며 청소년의 성을 관리, 감독하려고 하는,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보호하지도 못하는 현실을 꼬집는다. 글의 논지처럼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성관계를 결정하고 책임질 수 없다. 이 논의를 확장해 청소년의 성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젠더 규범으로 외연을 넓히면, 다른 사회·정치적 관계와 함께 페미니즘의 문제도 풀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이른다. 패러디로서의 미러링, 전술적인 메갈리아의 움직임은 한국 사회에 여성주의의 토양을 다져 놓았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과 결부해 문화적, 구조적 문제점을 깨닫기 시작했으며 ‘코르셋을 벗어던지듯’ 해방감을 맛보았다. 이제 <그들이 유일하게 이해하는 말, 메갈리아 미러링>에서 제시한 ‘포스트 여성 주체’들은 언어를 획득하고, 자신이 서 있는 지형에서 페미니즘을 세력화해야 할 것이다. “미러링은 반드시 위쪽을 향하여 더 큰 권력에 저항해야 한다 혐오의 연쇄에서 여성만 오롯이 빠져나올 수 없다. 큰 범주로서 여성뿐만 아니라, 작고 많은 소수자 특질을 자기 안에서 발견해내어, 남성을 중심으로 하는 차별적 구조를 깨부숴야 한다.” 여성들이 이러한 움직임을 보일 때 혐오 세력 메갈 vs 한남충 게이 구도를 넘어서 구조 전체를 전복할 수 있고, 체제의 수혜자에게 최소한 위기의식이라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여러 글을 묶다보니 개인적으로 다소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음란과 폭력을 다시 생각한다>에서 기존에 ‘바바리맨 사건’으로 큐레이팅 되었던 전 지검장의 음란 행위를 새로이 큐레이팅하여 퀴어범죄학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공공성이 있는 장소’와 ‘음란 행위’를 비틀어 생각함으로써 전 지검장이 선고 받았던 범죄의 성립 요건을 재검토하고, ‘보통의 사람들과 건전한 사회 통념에 위배’하는지, ‘선량한 성적 도의 관념’을 묻는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전 지검장의 행태뿐만 아니라 공공장소에서 음란 행위를 한 개인을 도착 증세로 판단함으로써 개인의 일탈로 만들어 이성애-이원 젠더 구조를 보호하고 나아가 문제점을 은폐한다. 하지만 논리의 비약 지점이 눈에 띄었고 몇몇 주장에는 쉬의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음란에 대한 과잉 처벌과 폭력에 대한 관대한 문화가 서로 상관관계가 있는지 의아했고, 쾌락을 생산하는 음란 행위와 성행위를 범죄로 판결하는 현행법, 혹은 사회 규범이 성/폭력을 재생산하는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문이 납득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면을 일부 할애한 <선암여고 탐정단> 의 사례가 글의 주제에 더 적합한 사례가 아닌지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건을 새로이 큐레이팅하는 데도, 젠더 규범 바깥의 소수자 혹은 ‘비정상’을 억압하는 권력을 드러내고자 한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의 전체적인 큐레이팅 흐름에도 어긋나는 듯하다.
그럼에도 책의 전반을 읽고 나니 문제제기와 해결까지 흐름의 물꼬가 트였고 나름대로 생각의 가지치기가 되는 느낌이었다. 여성 혐오의 자리에 은근슬쩍 양성평등(이퀄리즘)을 끼워 넣으려하는 꼼수(?)를 막을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시의 적절하게 현재 꼭 필요한 목소리를 긴 호흡으로 담아낸 책이다. 주위의 친구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예부터 ‘여자 열 명이 모이면 쇠도 녹일’ 만큼 뜨겁다고 하지 않았는가.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녹은 쇠를 제련할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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